깜빡이 좀 켜줄래 2권
공학관 구석에 위치한 동아리방은 신입생들의 아지트가 되었다. 동아리 인원 가운데 2학년 이상은 대부분 예비역들이 주를 이루었다. 1학년 때 질릴 만큼 놀고 실컷 불태운 선배들은 공강 시간에 중앙 도서관이나 공대 도서관으로 향했다.
타과생들의 동정을 사는 공대의 안타까운 남녀 성비 탓에 동방은 연애의 장이 될 수도 없었다. 게다가 학과 공부에 도움이 되는 기계공학 관련 동아리가 아닌 뜬금없는 영어 동아리라 애초에 올해 들어온 신입생이 석경의 무리와 이수현 말고는 없었다.
주 1회 있는 정기모임 때에도 약 한 시간가량 영어 스터디를 진행하긴 했으나, 사실상 스터디가 끝난 뒤에 있는 뒤풀이가 주목적이었다. 그때만큼은 선배들도 동방을 찾았다.
석경은 공강 시간에 신입생들의 아지트가 된 조용한 동방에서 열흘 앞으로 다가온 중간고사 공부를 했다. 준영과 태정은 당구를 치러 갔고, 권윤조는 석경의 바로 옆자리에 앉아 테이블 위에 상체를 나른하게 엎드린 채로 있었다. 엎드려 있기만 하다면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을 테지만 석경의 얼굴에 붙어 떠나지 않는 시선이 문제였다. 저의 구석구석을 면밀히 살피는 눈길이 느긋하면서도 신중했다.
“석경아.”
“응.”
석경은 전공 책의 페이지를 넘기면서 권윤조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무심히 대답했다.
“나 무릎베개 해 줘.”
석경을 향한 연민과 책임감, 의무감으로도 모자라 부채감까지 안게 된 권윤조에게 희한한 변화가 생겼다. 이거 해 줘, 저거 해 줘, 해 달라는 게 부쩍 많아졌고 그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석경에게 해다 바치는 것도 많았다.
“무릎베개? 불편할 텐데.”
권윤조의 변화는 당연히 두 사람의 관계에도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하루아침에 생긴 변화는 아니었다. 무방비한 상태에서 겪는 권윤조의 말과 행동에 온몸이 불덩이같이 변한 석경이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거나 간혹 고개를 작게 갸웃하는 사이 어느덧 보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의자 이어 붙여서 누우면 돼. 안 불편해.”
“아니, 너 말고 내가 불편하다고.”
권윤조가 무언가를 원할 때마다 퍼뜩퍼뜩 놀라기 바빴던 석경도 보름이라는 시간의 힘을 빌려 변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새삼스레 유난을 떨며 선을 그을 수도 없는 사소한 상황이 반복되면서 권윤조의 행동들이 익숙해지고 당연해진 것이다.
“해 줘. 닳는 것도 아니잖아.”
아이처럼 조르는 말투에 석경의 입술 사이로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저라는 사람에게 딱히 바라는 것도 없으면서 일방적으로 다정하게 굴 때보다 지금이 차라리 좋았다. 그가 원하는 것들이 대부분 ‘무릎베개 해 줘’와 비슷한 성격의 것들인 게 문제긴 해도 한쪽으로 기운 관계가 균형을 잡아가는 것 같아 마음이 편했다.
“닳지는 않지만 불편하잖아.”
더 조를 줄 알았던 권윤조는 예상외로 쉽게 입을 다물었고 동방에는 다시 고요가 찾아왔다. 석경이 페이지를 세 번 더 넘기는 동안 권윤조는 내내 조용했다.
공부하는 석경을 가만히 지켜보는 권윤조에게는 나름대로의 암묵적인 규칙이 하나 있었다. 페이지 한 장을 넘길 때마다 석경에게 말을 거는 것. 벌써 세 번이나 말을 걸었어야 하는데 아무 말도 하지 않아서 석경은 권윤조가 잠들었다고 생각했다.
슬쩍 시선을 옆으로 내리자 여전히 자신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권윤조와 눈이 마주쳤다. 방심하고 있던 심장이 세차게 뛰었다. 이런 일을 겪을 때마다 수명이 한 달씩 줄어드는 느낌이었다.
“석경아, 나랑 벚꽃 보러 같이 가 줄래?”
“아니, 공부해야지.”
“낭만이 없구나.”
“벚꽃의 꽃말은 중간고산데 왜 벚꽃에서 낭만을 찾아?”
“농대 앞에 300년 된 벚나무가 있대. 보러 가자.”
“300년 된 벚나무가 거기 왜 있어. 30년이면 몰라도. 그런 소문은 다 구라라고 보면 돼.”
“석경아, 너 정말 낭만이 없구나.”
침울한 목소리가 낮게 울렸다. 너무 단칼에 자른 것 같아 석경은 괜스레 마음이 쓰였다.
“너 과제 다 했어?
“어떤 거? 과제가 한두 개여야지.”
“아직 안 한 과제가 한두 개가 아니라는 소리네?”
“우리 과 과제 너무 많아. 신입생인데 과제 때문에 밤새우는 건 좀 아니잖아.”
“너 그래서 과제 하느라 밤새운 적 있어?”
“아니. 밤새우기 싫어서 안 했지.”
석경은 조용히 웃으며 책으로 시선을 돌렸고 대화는 끊겼다.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석경은 권윤조의 집요한 시선을 알아챘던 처음을 떠올렸다. 그때도 동방이었고 지금과 같은 자리였다. 권윤조는 마찬가지로 엎드려 있었다. 석경은 권윤조가 당연히 자고 있다고 생각했다. 페이지를 넘기다 무심코 자신을 바라보는 눈동자와 마주쳤을 때 석경은 숨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뭘 보냐.’ 순간 수명이 한 달이나 줄어든 주제에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물었다.
‘네 얼굴.’
‘내 얼굴을 왜 보는데.’
‘눈에 보여서.’
‘나 보지 말고 책 봐.’
너무 떨려서 제정신이 아니었던 터라 어색하게 웃는 게 석경이 반응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그때 장난처럼 웃어넘기지 말았어야 했다. 오로지 책에만 관심 있는 척하지 말았어야 했다.
때늦은 후회를 하면서도 여전히 책에만 관심 있는 척을 하고 있는데 테이블에 올려놓았던 휴대폰이 짧게 울었다. 조별 과제 조원이었던 선배에게서 온 메시지였다.
“누구야?”
권윤조가 물었다.
“같이 팀플 했던 2학년 선배.”
“성격 더럽게 생긴 선배? 네 볼 막 꼬집고 그러던?”
“성격이 더럽게 생겼나? 그냥, 생겼던데.”
“너 누가 네 얼굴 함부로 만지는 거 싫어하잖아. 그 선배가 만지는 건 괜찮아?”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전에 내가 네 얼굴 만졌을 때 싫어했잖아. 눈 엄청 사납게 치켜뜨고 노려봤잖아.”
“그거야…….”
제 양 볼을 강하게 틀어쥐던 압박감이 선명하게 되살아나는 바람에 말끝을 흐리자 테이블과 한 몸이 된 줄로만 알았던 권윤조가 드디어 몸을 일으켰다. 살짝 찌푸린 미간에 짜증이 매달려 있었다.
“팀플 끝나지 않았어? 왜 자꾸 연락한대? 용건이 뭐래?”
“오늘 저녁 사 준다고.”
“저녁을 왜 사 줘? 너 꼬시려는 거 아냐?”
“어처구니가 없다. 남자가 남자를 왜 꼬셔. 여친도 있는 사람한테 그게 무슨 실례되는 말이야.”
“아, 여친도 있는 사람이라서 너 막 만져도 아무 말 안 하고 웃고만 있었던 거야? 여친 있으면 너 만져도 돼?”
“그 만진다는 말 좀 그만할 수 없냐.”
애써 웃는 낯으로 제동을 걸자 흥분 직전까지 갔던 권윤조의 페로몬이 조금 누그러졌다. 그의 페로몬이 짙어지면 결국 손해 보는 건 자신이었다.
“그래서 넌 뭐라고 대답했는데? 밥 먹겠다고 했어?”
“아직 대답 안 했어.”
“선약 있다고, 해 줘.”
가까스로 명령조를 비껴난 말투였다. 말 사이의 간극에서 찰나의 주저와 고뇌가 엿보였다. ‘선약 있다고 해’ 원래 하려던 말은 아마도 그거였을까. 석경은 조금 위태로운 마음을 안고 입을 다물었다.
“…….”
“저녁 나랑 안 먹을 거야? 여태 나랑 저녁 같이 먹어 줬잖아. 근데 날 배신하겠다고? 이렇게 갑자기?”
“뭘 또 배신이래.”
석경은 옅게 웃으며 선배에게 답장을 보냈다. 죄송해요. 오늘은 선약이 있어서요. 목을 쭉 빼고 액정을 들여다보던 권윤조의 얼굴에 그제야 화색이 돌았다. 권윤조는 석경이 낯선 사람을 만나는 것을 경계했다. 그가 팀플 선배의 얼굴을 아는 이유도 모임까지 따라왔기 때문이다.
“니들 사귀냐?”
동방을 지킨 지 한 시간 만에 권윤조와 석경이 아닌 제3자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들려왔다. 몇 자리 떨어진 곳에서 묵묵히 공부를 하던 이수현이었다. 비아냥과 진심이 섞인 말투와 한심하다는 눈빛은 석경이 아닌 권윤조를 향해 있었다.
석경은 늘 그렇듯 남의 일인 양 뒤로 빠졌다. 여기부터는 권윤조가 알아서 이수현을 상대할 터였다.
“어? 이수현. 너 언제부터 거기 있었냐?”
“너보다 내가 먼저 와 있었거든?”
“왜 난 몰랐지?”
“권윤조 너는 이석경 말고는 다 투명 인간이지?”
“투명 인간까지는 아니고. 뭐야, 질투하냐? 나 좀 부담스러운데. 나 좋아하지 마.”
“웃겨. 둘이 잘됐으면 좋겠다. 이미 잘된 것 같다. 나 진심으로 니들 응원하는 사람인데 제발 동방에서 연애하지 말고 날씨도 좋은데 밖으로 나가서 연애하렴. 300년 된 벚나무인지 3천 년 된 벚나무인지 보러 나가라고.”
“석경아, 이수현 열받았다. 얼른 나가자.”
권윤조는 신이 나서 석경의 책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거의 던지듯이 책장에 책을 꽂고 석경의 팔을 잡아끌었다.
석경은 그렇게 권윤조의 손에 이끌려 정신없이 동방을 나와 농대 앞에 있는 300년 된 벚나무 앞에 섰다. 흩날리는 꽃비를 맞으며 서 있는데 어쩐지 바닥에 떨어진 꽃잎에 더 눈이 갔다. 아깝고 아쉬워서.
두 사람은 벚나무를 배경으로 어깨동무를 한 채 사진을 찍었다. 석경은 남자끼리 사진은 무슨 사진이냐고 질색하면서도 자연스럽게 제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제 얼굴이 잘 나온 사진으로만 골라서 보내 주려고. 휴대폰 화면 속 권윤조는 참 예뻤고 석경은 같이 예쁘고 싶어서 나름 표정을 예쁘게 지으려고 노력했지만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결국 무표정한 사진만 잔뜩 찍었다. 한 장도 빼놓지 말고 다 보내달라는 권윤조의 말에 알았다고 대충 대답했지만 암만 봐도 개인 소장 각이었다. 이걸 어떻게 보내냐고.
실수인 척 권윤조의 손을 클로즈업해서 찍기도 했다. 기다란 손가락과 힘줄이 바짝 선 손등이 적나라하게 찍혀서 석경은 매우 흡족했다. 전 재산을 털어서라도 반지를 사다 끼워 주고 싶은 예쁜 손이었다. ‘아, 잘못 눌렀어. 이건 지워야겠네.’ 그렇게 말했지만 당연히 지울 생각은 없었다.
사진을 다 찍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하나씩 손에 들고 벤치에 앉았다. 벚나무가 잘 보이는 명당자리였다. 이제 막 도착한 듯한 커플은 두 사람이 처음 그랬던 것처럼 벚꽃을 배경으로 정신없이 사진을 찍어대고 있었다.
적당히 따듯한 기온, 새하얀 햇빛, 아름다운 벚나무, 모든 것이 좋았다. 농대 카페가 맛집이라더니 과연 커피 맛도 좋았다.
무언가에 꽂혀 생각에 잠겨 있던 석경은 앞니로 잘근 씹고 있던 빨대 끝을 놓았다. 농대 커피가 맛있다는 정보만 염두에 둔 채 그의 의사를 묻지도 않고 아메리카노를 주문해 버렸다. 잘 마시는 것 같아 다행이지만, 청포도 에이드가 메뉴에 있었으면 그거라도 시켜 줬을 텐데. 늘 얻어먹기만 하다가 고집을 부린 끝에 겨우 지갑을 열었는데 그마저도 카페에서 가장 저렴한 메뉴라 미안했다.
“권윤조 너는…….”
“응.”
“뭘 좋아해?”
궁금했다. 권윤조가 좋아하는 거. 그게 뭐든 맞춰 주고 싶었다.
“나?”
“응.”
햇빛이 눈부신지 눈을 가늘게 뜬 권윤조가 고개를 모로 기울이고 턱 밑을 느리게 문질렀다.
“너.”
“뭐?”
“왜?”
“장난치지 말고.”
“장난 아닌데.”
“허, 나라고 해줘서 퍽이나 고맙다.”
갑자기 술이 당겼다.
“석경아, 너는?”
“나?”
“너는 뭘 좋아해?”
“술.”
“뭐야, 나 짝사랑이야?”
권윤조가 소리 내어 웃는 동안 석경은 창백하게 질려갔다. 온몸에 핏기가 가시는 느낌이었다.
얘는 진짜 요즘 하는 말마다 작정이라도 한 것처럼 아주, 사람을 놀려대고. 근데 놀림 좀 당하면 어때. 원래 사람은 놀림 당하면서 크는 거야. 아니 시발, 지금 내가 무슨 생각 하는 거지.
휙휙 돌변하는 자아에 석경은 진심으로 술이 당겼다. 술 마실 건수가 분명 있었던 것 같은데. 내일 저녁으로 잡힌 동아리 회식이 번쩍 떠올랐다.
“내일 동아리 회식 갈 거야?”
“너는?”
“나는 갈 건데.”
“네가 가면 나도 가야지.”
왜? 라는 질문은 새삼스러운 것이 되었다. 석경은 자신이 권윤조의 뭐라도 된 듯한 착각을 더 이상 하지 않는다. 우쭐하지도 않는다. 권윤조는 원래 이런 애니까.
다만 이수현이 장난스럽게 던진 말처럼 연애가 이런 건가 싶을 때는 간혹 있었다. 훗날 누군가와 연애를 한다면 지금 우리 관계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어렴풋이 들곤 했다. 거의 하루 종일 붙어 있고, 그나마도 떨어져 있는 시간에는 잠들기 전까지 문자를 주고받고, 기분 좋은 구속감을 느낄 만큼만 석경의 인간관계를 권윤조가 통제한다. 석경은 ‘진짜 연애’가 이보다 더 거창할 것 같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물론 연인끼리 나누는 스킨십을 빼면 말이다.
“중간고사 앞두고 무슨 회식이래?”
권윤조는 아무래도 동아리 회식이 탐탁지 않은 모양이었다. 막상 가면 잘 어울릴 뿐만 아니라 중심이 되는 주제에 사람 많은 북적북적한 자리를 꺼려 한다. ‘이석경 또 술 많이 마시겠네.’ 작게 투덜대는 목소리에 불만이 한가득이었다. 석경은 뒷말은 못 들은 척 대꾸했다.
“OB 선배가 쏜다더라.”
“남자?”
“선배들 말로는 잘생겼다던데? 남자려나, 남자겠지?”
“졸업했으면서 학교는 왜 오는 거래? 설마 알파는 아니겠지?”
“…….”
“석경아, 혹시 모르니까 억제제 잘 챙기고. 근데 나도 억제제 가지고 다니니까 필요하면 나한테 말해. 술 조금만 마시라는 말은 안 할게. 대신 내 옆에 딱 붙어 있어야 돼. 내 시야에서 절대 벗어나지 말고.”
조별 과제 모임 전에 이미 한 차례 겪었던 상황임에도 석경은 불안을 한가득 매달고 당부를 늘어놓는 권윤조의 얼굴에서 눈을 떼기가 어려웠다. 그의 관심이 마냥 기쁨이 되면 좋으련만 생각이 많아졌다. 이런 건 마냥 단순해야 장땡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고 있으면서도 생각의 줄기가 거침없이 뻗어나갔다.
단 30분만 저와 연락이 안 돼도 세상이 무너진 것처럼 난리를 치는 권윤조. 준영과 태정이 알아차릴 정도로 티 나게 자신을 싸고도는 권윤조. 그런 그에게 묻고 싶었다. 너는 도대체 뭘 걱정하는 거야? 내가 어쩌길 바라는 거야? 새터 때도 개총 때도 술을 그렇게 퍼부었는데 자신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권윤조가 그걸 모를 리가 없을 텐데 염려가 지나치다.
“걱정 마. 내가 알아서 잘할게.”
“당연히 알아서 잘해야지. 근데 나도 알아서 잘 할게. 우리 서로 알아서 잘하자.”
“아니, 넌 잘할 필요 없어. 내 일이잖아.”
“널 지켜주는 것도 내 일이야.”
“나 그냥 회식 가지 말까? 그럼 네가 나 신경 쓸 일도 없잖아.”
말투가 딱딱해지자 권윤조는 의기소침한 표정을 지었다.
“석경아, 나는 네가 하고 싶은 거 다 했으면 좋겠어. 회식 가자. 가서 너 좋아하는 술도 마시고. 응? 너한테 신경 쓰는 거 나는 너무 좋아.”
사실 석경은 권윤조가 왜 이렇게까지 자신을 싸고도는지 알고 있다. 권윤조 앞에서 잔뜩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는 걸로도 모자라 안아달라고 구걸까지 한 자신이다. 그런 나약한 오메가를 친절한 권윤조가 그냥 놔둘 리 없었다. 동정은 자고로 받는 쪽보다 베푸는 쪽의 만족이 우선이라는 것 또한 석경은 알고 있다.
석경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도 이렇게 또 양가감정에 시달리고 만다. 권윤조의 연민을 자극한 스스로에 대한 지독한 자괴감 한편으로 저를 챙겨 주지 못해 안달이 난 권윤조를 보며 좋아서 죽을 것 같은 교활한 감정 때문에 속이 바싹바싹 타들어 갔다. 그건 도무지 극복할 수 없는 괴리감이었다.
가만히 놔두면 저 혼자 달아올랐다가 알아서 식었을지도 모를 마음이 단단하게 다져지는 모양을 넋 놓고 지켜보는 것도 뒤숭숭했다. 놀랍게도 아직 석경은 제 감정이 풋익은 것이라 믿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믿음은 빠른 속도로 붕괴되고 있었다.
“야, 나 술 그렇게까지 안 좋아해.”
자신을 바라보는 권윤조의 눈빛이 다정하기보다 은밀해지기를 바라는 욕심도 난감하기 그지없었다.
“알아, 넌 나를 더 좋아하지.”
남의 속도 모르고 나직하게 내뱉는 농담에 석경은 끝내 웃음을 터뜨리고야 말았다.
* * *
“동역학 좆같아. 3차원 구면 좌표계 웅앵웅 가속도 구하다가 밤 꼴딱 새웠잖아. 전과랑 휴학이랑 자퇴 중에 뭐 해야 할지 고민하느라.”
“움직이는 거라 변수가 존나 많잖냐. 그래도 유체역학 들어가면 동역학 그리워진다더라.”
“시발, 그리워할 게 없어서 별걸 다 그리워하네.”
동아리 회식이 있는 날 저녁, 15명 남짓한 인원이 술집에 모였다. 석경은 2학년 선배들의 대화를 한 귀로 흘려들으며 저쪽 테이블에 앉아 있는 권윤조를 흘끔거렸다. 이러다 가끔 눈이 마주치면 어찌할 바를 모르고 허둥대는 주제에 자꾸만 시선이 가는 것을 막을 도리가 없었다.
신경 쓸 거라며. 옆에 딱 붙어 있으라며. 그래놓고 여자 선배와 참 좋아 보였다. 헤살거리는 얼굴이 못마땅해서, 더 솔직히 말하자면 옹졸해지는 자신이 못마땅해서 입술에 술잔을 가져다 댔더니 대번에 권윤조의 시선이 이쪽으로 향했다.
없어 보이게 눈이 바로 마주쳤다. 이러면 계속 쟤만 쳐다보고 있었던 것 같잖아. 계속은 아니고 가끔이었는데. 섬세한 표정으로 걱정을 내비치고 입모양으로 천천히 마시라고 주의를 주는 그를 본체만체하고 한입에 털어 넣었다.
한쪽에서 동아리 회장의 취한 노랫소리가 들렸다.
“지금 이 수운간! 마법처럼! 날 묶어와았던 사슬을 벗어어, 어? 벗어?”
노래가 점차 악으로 변했다. 왁자한 웃음소리가 터지고 그나마 멀쩡한 선배가 악을 써대는 회장을 주저앉혔다.
“왜 이래, 술집 전세 냈냐!”
준영이 화장실에 간다고 잠시 자리를 비운 틈에 누군가 석경의 옆자리에 앉았다. 오늘의 물주 OB였다. ‘제 친구 자린데요’라고 말할 수는 없어서 석경은 괜히 목을 쭉 빼고 화장실 쪽을 바라봤다.
“후배는 이름이 뭐야?”
OB가 한 손에 소주병을 든 채 물었다. 석경은 얼른 제 잔을 내밀며 대답했다.
“이석경입니다.”
“반가워. 내 이름은 알지?”
“네.”
사실 모른다. 초반에 선배들이 아무개 선배라고 소개를 하긴 한 것 같은데 귀담아듣지 않았다. 물주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도 갖추지 않은 것 같아서 석경은 이름 모를 OB에게 조금 미안해졌다.
“모르는 것 같은데.”
“……아닙니다, 선배님.”
OB는 석경의 빈 잔을 확인하더니 다시 소주를 따랐다. 바로 마셔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는데 OB가 빙글빙글 웃으며 말했다.
“그래? 내 이름이 뭔데?”
근데 선배들이 잘생겼다고 하지 않았었나? 어쩔 수 없이 권윤조와 OB의 외모를 비교하게 됐다. 그냥…… 꼴뚜기잖아. 내가…… 꼴뚜기 이름을 어떻게 알아.
“…….”
대답을 못하자 OB는 그럴 줄 알았다는 얼굴로 웃으며 턱짓을 했다. ‘마셔.’ 석경은 술잔을 비웠다. 곧바로 잔이 채워졌다.
“내 이름 기억날 때까지 마시는 거야.”
석경은 미간을 찌푸렸다. 죽을 때까지 마시라는 말이나 다름없는 것이었다.
대각선 자리에 앉은 이수현과 눈이 마주쳤다. 눈짓으로 도움을 청하자 이수현은 자기도 모른다는 얼굴로 어깨를 으쓱했다. 이제 보니 OB가 왜 갑자기 제 옆자리에 와서 이름 타령을 해대는지 알 것도 같았다. 이수현의 관심을 끌고 싶어서겠지. OB가 앉은 자리는 이수현과 바로 마주 보는 자리였다.
석경은 일단 술을 마셨다.
“죄송합니다, 선배님. 제가 사실은 선배님 성함을 모릅니다.”
“그래?”
OB는 과장되게 놀란 표정을 지으며 석경을 향해 빈 맥주잔을 내밀었다. 상한 자존심을 짓궂은 웃음과 느물거리는 말투로 가리려는 모습이 서툰 연기자 같아서 거부감이 일었다. 본인이 사교에 능숙하고 분위기를 장악한다고 착각하지만 실상은 꼰대일 수밖에 없는, 가급적 마주치지 말아야 할 종류의 남자가 점점 부담스러워졌다.
석경은 떨떠름한 얼굴로 맥주잔을 받았다. OB가 맥주잔에 소주를 절반이나 채웠다. 제가 술을 아무리 좋아한다지만 한 번에 이렇게나 많은 양은 버겁다.
“알려 주시면 이번에는 제대로 기억하겠습니다.”
“그거 마시면 알려 줄게.”
뭐야, 이 새끼. 튀어나오는 욕을 간신히 참은 석경의 눈에 이쪽을 주시하는 권윤조의 모습이 보였다. 권윤조를 보자마자 석경은 앞뒤 재지 않고 소주를 단숨에 들이켰다. 말도 안 되는 트집을 잡으며 술을 억지로 권하는 OB와 실랑이를 벌여 권윤조의 주의를 끌고 싶지 않았다. 알량한 자존심이 OB의 만만한 밥이 된 모습을 보여주기를 꺼려 했다.
술잔을 비운 석경은 입가에 묻은 소주를 손등으로 닦아내며 OB를 똑바로 바라봤다. 술을 마시면 OB가 이름을 알려 줄 테니 작은 해프닝도 여기서 끝나리라 생각했다.
“마셨습니다. 알려 주세요.”
“잘 마시네. 근데 내 이름값이 겨우 소주 한 잔밖에 안 되나?”
이게 무슨 소주한테 실례되는 말이지.
“아까 선배님이 알려 주신다고…….”
“한 잔 더 마셔. 그래야 수지가 맞을 것 같아.”
오늘 술값을 계산하는 생색을 저에게 몽땅 퍼부으려는 것인가. 아니면 원래 이렇게 사람을 갈구고 괴롭히는 스타일인가. 뭐가 됐든 제대로 된 인간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이름이…….”
“…….”
“그렇게 중요해요?”
“크하하, 얘 좀 보게.”
OB가 징그럽게 웃으며 다시 소주병을 들자 권윤조가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꼰대 짓을 하는 분위기를 얼추 읽었는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었다.
석경은 재빨리 눈빛으로 권윤조를 제지했다. 오지 마. 거기 있어. 네가 와서 나를 도와주면 나는 뭐가 되냐. 용케 알아먹고 도로 앉기는 했는데 형형하게 눈을 빛내는 것이 여차하면 달려올 기세였다. 달려오면 뭘 어쩌려고. 저번처럼 흑기사라도 하려고? 안 돼. 이 술은 내 거야.
맥주잔에 다시 투명한 소주가 채워졌고 권윤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랫입술을 짓씹던 석경은 소주를 빠르게 들이켰다.
“선배님, 저 맥주 한 잔 주세요.”
가까이서 내내 상황을 지켜보던 이수현이 석경의 손에 있는 빈 맥주잔을 빼앗아 OB에게 내밀었다. 석경을 향해 아예 몸을 틀고 앉아 있던 OB가 그제야 정면에 앉은 이수현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쩌지? 난 맥주는 안 따라 주는데?”
“어쩌죠? 전 소주는 안 마시는데.”
이수현은 생글생글 웃으며 당돌하게 받아쳤다.
잠깐 사이에 급하게 술기운이 올라왔다. 이수현에게 저 미친 선배를 떠넘기기는 싫었지만 석경은 우선 저부터 살고 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일어났다. 무엇보다 권윤조가 와서 2절을 시작하기 전에 자리를 떠야 할 것 같았다. 그런 석경의 손목을 OB가 덥석 붙잡았다
“후배님, 어디 가?”
“아, 저 화장실에…….”
“술이 많이 된 것 같은데 걸을 수 있겠어? 부축해 줄까?”
“괜찮습니다.”
석경은 억지 미소를 지으며 붙잡힌 손목을 빼냈다. 아니, 빼내려고 했다. 그러나 어느새 다가온 권윤조가 석경의 허리를 뒤에서 끌어안고 OB의 손을 제법 세게 떼어냈기 때문에 굳이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돌아보자 저를 보고 싱긋 웃어주는 얼굴이 말도 안 되게 든든해서 OB 때문에 날카롭게 도사렸던 마음이 포근포근해졌다.
“제 친구는 제가 잘 챙길 테니까 선배님은 계속 술이나 드시면 됩니다.”
권윤조는 넉살 좋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한없이 예의 바른 겉모습 탓에 말뜻을 헤아리기까지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뒤늦게 건방진 말뜻을 알아차렸을 테지만 이미 권윤조는 석경을 끌고 저만치 멀어진 후였다.
석경은 권윤조의 품에 안기다시피하며 술집을 나왔다.
“야아, 배 누르지 마. 토할 것 같아.”
“저 새끼 알파야.”
권윤조가 분하다는 듯 씩씩거렸다. 여전히 석경의 허리를 끌어안은 채였다. 요새 운동을 게을리해서 보일 듯 말 듯 희미해진 자신의 복근이 떠올랐다. 복근 좀 만들어 놓을걸. 석경은 몸을 비틀어 권윤조의 품에서 빠져나왔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알아.”
그렇지 않아도 ‘저 새끼’ 페로몬 때문에 역겨워 죽는 줄 알았다. 비위가 상하는 바람에 술도 더 빨리 올라왔고.
“아는데 왜 거기서 그러고 있었어?”
“나 지금 냄새 안 나잖아. 저 선배는 내가 오메가인 거 몰랐을 거야.”
석경의 대꾸는 가벼웠다.
“냄새가 문제가 아니라 너는…….”
“……내가 뭐?”
“됐다.”
한숨을 무겁게 내쉰 권윤조가 다시 석경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허리에 뻣뻣하게 긴장이 뱄다. ‘야아, 놔.’ 밀어내는 석경을 단단히 고쳐 안은 권윤조가 희미하게 분노가 남은 눈동자로 석경을 내려다봤다.
“가만 좀 있어.”
“…….”
석경은 더는 권윤조를 밀어내지 않고 순순히 품에 안겼다. 술이 여기서 조금만 덜 취했더라면 어떻게든 그를 밀어냈을 텐데, 술기운을 빌려서 그에게 기대기로 한 것이다.
“그 새끼 작정하고 가서 네 옆에 앉았던데 눈치껏 빠져나오지 그랬어. 술은 왜 주는 대로 다 받아 마셔?”
“내 옆에 앉은 게 아니라, 이수현 앞에 앉은 거야. 그 선배가 뭐 하러 남자 옆에 작정하고 앉아.”
“그래그래, 내가 말을 말아야지.”
권윤조는 석경을 다시 고쳐 안았다. 왜 이렇게 세게 안는 거야. 왜 이렇게 놓치면 큰일이라도 나는 것처럼 꽉 붙들고 있는 건데. 당장이라도 속마음이 튀어나갈 것 같아서 석경은 어금니를 악물었다.
이제 거의 집착과도 같은 권윤조의 다정함에 온몸이 녹아내릴 것 같으면서도 아닌 척 스스로를 속이는 순간들에 신물이 났다. 사실 더 집착해 달라고 나만 봐 달라고 조르고 싶으면서 왜 이렇게 극성이냐며 싫은 소리를 내뱉고야 마는 순간들이 못내 안타까웠다.
“야, 허리 만지지 마.”
“왜?”
“간지러워.”
그러자 피식 웃으면서 더 세게 끌어안아 왔다. 내가 괜한 떡밥을 주었구나.
“간지러운 거 싫어?”
“싫지.”
“그럼 아픈 거는?”
“왜 그래?”
“그건 좋아?”
“안 좋아.”
“아플까 봐 살살 안았는데 꽉 안아도 되겠네.”
“안 좋다니까.”
허리를 휘감은 강한 힘에 어이가 없어서 웃어 버렸다. 걸음을 멈추고 권윤조의 품 안에서 빠져나왔다. 덩달아 걸음을 멈춘 권윤조가 의아한 얼굴로 석경을 바라봤다.
“왜? 속 안 좋아?”
석경은 고개를 저었다. 걱정이 가득한 눈길이 저에게 쏟아졌다. 아낌없는 권윤조의 관심이 저에게로 쏟아졌다.
언젠가 태정이 함께 술을 마시던 중에 말했다. ‘권윤조가 약간, 아니 좀 많이 외골수 기질이 있어. 한번 꽂히면 다른 건 안 보거든. 거기에만 미치는 거야. 걔가 괜히 신컨이 아니거든. 근데 요새는 게임 안 하잖아. 한번 질리면 끝이야. 윤조 원래 이 학교 들어올 성적도 안 됐어. 근데 어느 날 갑자기 공부한다고 하더니 미친 듯이 공부만 하더라고. 지금은 봐, 공부 절대 안 하잖아. 인생을 계획적으로 사는 건지 막 사는 건지 헷갈린다니까.’
태정이 그런 구구절절한 이야기를 꺼낸 이유를 석경은 알고 있었다. 석경을 향한 권윤조의 기이한 집착을 눈치채고 저러다가 말 테니까 이해해 달라는 뜻이었을 것이다.
석경은 눈을 천천히 감았다 떴다.
“…….”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러다가 말 집착. 언제 그랬냐는 듯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 버릴 관심. 석경은 고개를 숙이고 픽픽 웃음을 터뜨렸다. 취기에 젖은 웃음이 헤펐다.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친화력이 좋은 권윤조가 사실은 사람 이름을 잘 외우지 못한다는 것을 석경은 진작 눈치챘다. 관심이 없으니까 이름을 모르는 거다. 그가 저에게 관심이 없었다면 마찬가지로 자신의 이름도 기억하지 않았을 것이다.
“석경아, 너 괜찮아?”
“괜찮지 그럼.”
“아이스크림 먹을래?”
석경은 고개를 들었다. 찬바람을 쐰 덕분인지 술기운이 많이 가셨다.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고 삐뚜름하게 권윤조를 올려다봤다. 권윤조는 그런 석경을 보며 염려 반 웃음 반의 묘한 표정을 지었다.
“권윤조, 너 시험공부 안 할 거야?”
“나 A급 족보 많아.”
“족보에서 안 나오면? 백지 낼 거야?”
“편지 쓰지 뭐. 교수한테 안부 인사도 하고 좋지.”
“학점 조지려구? 편지 그거 역효과래. 그러다 학고 맞는다.”
“출석 꼬박꼬박 잘 하잖아. 학고까진 절대 아니야.”
석경은 걸음을 옮겼다. 편의점 간판이 보였다. 아이스크림 두 개를 사서 편의점 앞 테이블에 권윤조와 마주 앉았다. 머리가 띵할 정도의 단맛이 당겨서 열심히 빨아 먹는데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다.
슬쩍 눈을 돌리자 권윤조가 흥미진진한 얼굴로 저를 말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모른 척 눈을 돌릴까 했지만 몹쓸 호기심이 발동하고 말았다.
“왜.”
“석경아, 왜 아이스크림을 그렇게 먹어?”
“어?”
“좀, 그런 식으로 빨아야 돼?”
“어떤 식?”
“잘?”
“…….”
“잘 빠네, 되게.”
반들반들 장난기 어린 미소에서 야한 농담의 기운이 물씬 풍겼다. 갑자기 액체가 목에 걸려 컥컥거렸다. 이거 지금…… 음담패설 한 거야? 나만 쓰레기라 괜한 오해하는 거 아니지?
길쭉한 모양의 아이스크림과 권윤조의 얼굴을 번갈아 보던 석경은 황당한 표정으로 있다가 눈썹을 구겼다. 아이스크림 하나 먹다가 이게 무슨 봉변인가 싶었다.
“미친…….”
“아니, 너무 막 빨아 대니까. 지나다니는 사람도 많은데. 내가 다 얼굴이 화끈거리네.”
“뭐래. 보지 마. 안 보면 되잖아.”
불퉁하게 쏘아붙이자 권윤조가 눈을 내리깔았다. 너무 세게 말했나 싶어서 눈치를 보다가 빨아 먹는 대신 깨물어 먹었다. 아이스크림을 빨아 먹는 문제 따위로 그와 다투고 싶지는 않았다.
아무렇지 않게 농담을 받아치고도 싶었지만 걸리는 문제가 많았다. 권윤조는 친구의 입장에서 자연스럽게 장난을 걸었겠지만 석경은 결코 그와 같을 수가 없었다.
지난번에 그를 덮쳤던 일도 그렇고 제 마음이 농담을 농담으로 받아칠 만큼 순수하지 않은 게 가장 컸다. 농담이 재미있어야 하는데 그러지를 못하고 솜털이 쭈뼛 설 만큼 오싹했던 것이다.
“석경아, 화났어?”
“화난 건 아니고, 그런 농담은 적응이 안 돼서.”
적응이라니. 그것도 변명이랍시고 늘어놓자 권윤조가 오묘한 표정으로 뒷목을 매만졌다.
준영이나 태정이었다면 그를 이토록 무안하게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어울려 주지 않고 정색한 게 차라리 정답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앞으로 다시는 안 그러겠지. 또다시 그러면 그때는 나도. 그렇게 얼마간 벼르는 마음도 들었다.
“권윤조, 나 내일부터 중도에서 살 거야.”
어중간하게 식은 분위기를 바꿔 보려고 석경은 화제를 돌렸다.
“그래?”
“같이 할래, 공부?”
권윤조가 학점 관리에 관심이 없어도 공부를 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관심이 없는 것에도 관심을 나눠 주는 습관이 생겼으면 했다. 언젠가 저에게 관심이 사라지더라도 제 꼴을 조금이라도 봐 줬으면 해서. 그런데 내일 당장 권윤조가 저에게 질린다면? 그저 상상만 했을 뿐인데도 거대한 것이 허물어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석경은 입안의 아이스크림을 녹여 먹으며 일부러 무심한 표정으로 권윤조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래, 같이 하자.”
혀끝이 달았다. 권윤조와 함께 나란히 앉아 공부할 생각을 하자 마음이 벌써부터 들떴다.
설마 도서관에서도 동방에서 그랬던 것처럼 나만 바라보고 있는 건 아니겠지. 그럼 나 진짜 집중 못 할 텐데. 석경은 김칫국으로 배부른 걱정까지 미리 앞당겨가며 내일을 기대했다. 술집에서 OB 때문에 불쾌했던 기분은 어딘가에 떨구어두고 왔는지 온데간데없었다.
“이수현 괜찮을까?”
그러고 보니 이수현을 남겨두고 왔다는 생각이 이제서야 들었다. 워낙 똑 부러지는 데다 해야 할 말을 담아두지 않는 성미라 알아서 잘 대처했겠지만 그래도 마음에 걸렸다.
“이수현? 갑자기?”
“아까 그 선배가 나 술 먹일 때 이수현이 도와줬거든.”
“그래서?”
“그냥 두고 나온 게 걸려서.”
“그럼 걔를 데리고 나왔어야 한다는 말이야?”
권윤조의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와 굳은 인상에 석경은 눈치를 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아이스크림을 절대 빨아 먹지 않고 신중하게 깨물어 먹으면서 적절한 대답을 끄집어내기 위해 잠시 시간을 벌었다. 눈빛이 왜 그래. 제대로 깨물어 먹고 있는데.
“그 뜻이 아니라, 문제를 떠넘기고 나만 쏙 빠져나간 것 같아서 미안하다는 말이지.”
“그게 다야?”
“응?”
“미안한 마음이 다냐고.”
또 견제인가. 환장하겠네. 나는 너의 연적이 아닐뿐더러 설령 연적이라 하더라도 감히 네 상대조차 되지 않는데 견제가 다 무슨 소용이야.
이수현이든 최승희든 전부 내려놓자고 마음먹었는데도 이런 순간들을 맞닥뜨리면 등신같이 가슴이 긁혔다.
“응, 그게 다야.”
“…….”
“뭐가 또 있어야 돼?”
그의 얼굴에 어렴풋이 떠오르는 안도를 보자 열불이 뻗쳤다. 그래 봐야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고작 콧김을 뿜으며 고개를 돌리는 것밖에는 없었다.
* * *
석경은 이해할 수 없었다. 대학교의 도서관은 자고로 공부하는 곳이 아니던가. 특히나 시험을 앞둔 도서관이라면 더더욱. 그러나 지난 일주일 동안 중앙 도서관을 오가면서 석경의 인식이 약간 변했다. 중도는 마음에 드는 이성을 찾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 인간들의 소굴이었다.
공부를 하다가 잠시 휴식을 취하고 돌아오면 권윤조의 책상 위에는 매번 간식거리와 쪽지가 놓여있었다. 마치 자리를 비우기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간식거리가 쌓였는데 어느 정도냐 하면 자리가 모자라서 석경의 책상까지 넘어올 정도였다.
권윤조는 쪽지를 읽지도 않고 구겨 버렸으며 간식거리는 전부 석경에게 줬다. ‘쪽지 왜 안 읽고 버려?’ 화이트데이 때 마음이 담긴 어쩌고 하며 이수현에게 매너를 운운하던 권윤조가 생각나서 묻자 돌아온 대답이 가관이었다.
‘감히 누굴 넘봐.’
제가 아는 권윤조는 타인의 호의를 적당히 예의 바르게 받아주거나 상대의 기분이 상하지 않게끔 정중하게 거절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때문에 석경은 그 대답을 의외라고 여기는 한편 속으로는 뜨끔했다. 그러게. 내가 감히 누굴 넘보고 있었지? 제 발 저리는 속내를 감추기 위해 괜히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아, 재수 없어.’
말은 그렇게 했지만 한편으로는 쪽지를 읽지도 않고 버리는 권윤조에게 내심 고마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내가 아니면 다른 사람도 안 돼. 뭐 이런 음흉하고 치졸한 심리였다.
“많이 먹어, 석경아. 체하니까 꼭꼭 씹어 먹고.”
오늘 강의는 6교시가 마지막이었다. 석경은 수업이 끝나자마자 권윤조와 함께 곧장 도서관으로 향했다.
그렇게 두어 시간 공부를 하다가 저녁을 먹으러 학교 밖으로 나왔다. 대충 학식에서 때울 셈이었지만 권윤조가 저녁은 든든히 먹어야 한다며 고집을 부린 탓이었다. 사흘 전부터 도서관 멤버가 된 준영과 태정도 함께 온 것까지는 좋았는데 그 뒤부터가 문제였다.
“석경이가 애냐?”
석경의 접시를 끌어다 스테이크를 예쁘게 잘라 주는 권윤조를 보며 준영이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반면 태정은 그러려니 하는 기색이었다.
석경은 늘 그렇듯이 과도한 챙김을 받는 것 때문에 체할 것처럼 명치가 답답해졌다. 열흘 치 식비에 상당하는 비싼 메뉴를 얻어먹는 것도 충분히 부담인데 스테이크를 잘라 주는 행동은 더 큰 부담이었다.
권윤조의 표정은 딱 그랬다. 네가 밥을 많이 먹는 것 말고 나한테 중요한 건 하나도 없어. 석경이 먹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눈길과 다정하게 올라간 입꼬리에 애정이 듬뿍 담겨 있었다.
“너도 먹어. 너 거의 손도 안 댔잖아.”
그의 접시에 힐끗 눈을 주자 권윤조가 보란 듯이 스테이크를 크게 잘라 먹고 샐러드까지 듬뿍 떠먹었다.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자 기분이 좋아졌다. 이래서 권윤조가 자꾸 뭘 먹이려고 하는 건가. 석경의 입꼬리도 덩달아 올라갔다. 겨우 밥 한 끼 같이 먹는 건데 설레고 재미있고 신나고 난리 났다. 소박한 기쁨에 감탄하느라 체할 것 같은 속은 어느덧 뒷전이었다.
저 역시도 그를 기쁘게 해 주려고 빠르게 스테이크 몇 조각을 씹어 넘기는데 진짜로 얹혔는지 속이 꽉 막혔다. 주먹으로 가슴을 툭툭 치자 등을 쓸어내리는 다정한 손길이 느껴졌다.
“꼭꼭 씹어 먹으라니까.”
고개를 들어 괜찮다는 눈짓을 해도 커다란 손은 떠나지를 않았다. 영화든 드라마든 책이든 과하게 친절하면 뻔하던데 권윤조는 어렵기만 했다. 석경아, 너 이래도 착각 안 할 거야? 착각하고 싶지 않아? 내가 널 좋아한다고 마음껏 착각하고 싶잖아. 석경은 환청과 싸우다가 도저히 안 되겠기에 결국 포크를 내려놓고 말았다.
“왜? 그만 먹으려고?”
권윤조는 마치 지구 종말이라도 앞둔 절망적인 얼굴로 물었다.
“응.”
“요새 왜 이렇게 못 먹어.”
너 때문이잖아. 석경은 이미 곪을 대로 곪아버린 문장을 속으로 삼켰다.
“입맛이 없어.”
“여기 스테이크 육질도 부드럽고 맛있다고 해서 믿고 왔는데 입에 안 맞아? 별로야?”
“그게 아니라, 그냥 내가 입맛이 없어.”
“그래도 먹어야지. 공부하느라 머리도 많이 쓰는데.”
“됐어. 너나 많이 먹어.”
괜찮으니까 나는 신경 쓰지 말라는 의미였는데 말투가 무뚝뚝하게 튀어나갔다. 뭐라 변명하려는 순간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얼굴의 권윤조가 스테이크 한 조각을 제 입가에 들이밀었다.
“딱 한입만 더 먹자, 응?”
뭐야, 그거 네 포크…… 이러면 간접 키스잖아. 어이없게도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이 그거였다. 놀라서 아무 말도 못 하는 석경을 대신해 준영이 치를 떨었다.
“씨발, 지금 내가 뭘 본 거냐?”
“그러니까 내가 아까 분명 말했잖아. 저것들이랑 겸상하기 싫다고.”
태정이 어느새 마지막 남은 스테이크 조각을 입에 쑤셔 넣으며 건조하게 말했다.
“얼른 먹어, 석경아.”
“야, 그걸 내가 왜 먹어. 네가 먹던 포크잖아.”
굳게 다문 입술을 두드리는 다정한 목소리에 하마터면 입을 벌릴 뻔했던 석경은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거부했다. 권윤조가 먹던 포크, 권윤조 접시에 있던 스테이크, 거부하는 이유가 마치 그것 때문이라는 듯 과장되게 싫은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더 설레는 주제에 한껏 아닌 척 마음을 숨겼다.
“내가 더러워?”
“더러운 건 아닌데.”
“안 더럽지? 더럽다고 하면 나 상처 받을 뻔했어.”
“아냐, 진짜 안 더러워. 근데 그건 안 먹고 싶어.”
“석경아, 너 먹을 때까지 나 이러고 있을 거야.”
“이 새끼가 가만 보니까 희한한 방식으로 애를 잡네? 야, 석경이가 너한테 도대체 뭘 잘못했어? 엉? 돈이라도 떼먹은 거야? 얼만데 그래?”
보다 못한 준영이 목소리를 높여도 권윤조의 시선은 오로지 석경에게 고정돼 있었다. 급기야 준영이 권윤조의 눈앞에 대고 손을 흔들었다.
“야, 권윤조! 혹시 나 안 보이냐? 나 또 투명인간 된 거야?”
“권윤조 저 하찮은 새끼, 병이야 병. 농담이 아니라 진짜 병원 한번 가야 돼. 안과든 정신과든. 너 다 먹었냐? 다 먹었으면 나가자.”
태정은 손을 흔들어대는 준영을 데리고 먼저 자리를 떴다.
권윤조는 여전히 포크를 들고 보채는 눈빛으로 석경을 바라봤다. 다른 테이블의 시선이 느껴졌다. 상황이 어떻게 마무리될까 하는 호기심 가득한 눈빛이었다.
애들을 따라 나가려고 주춤주춤 몸을 일으키려 하자 권윤조의 손이 석경의 허벅지를 꾹 눌러 왔다. 평온한 표정을 하고 있는 사람의 것이라고는 믿기 힘든 강한 힘이었다.
“놔.”
“한 입만 먹어. 너 반도 안 먹었어.”
“……그럼 내 거 먹을게.”
“내 거 먹어. 내 거가 더 맛있어.”
“똑같은 메뉴잖아.”
“석경아, 나 팔 아파.”
“…….”
“얼른 벌려.”
벌리라는 말을 그런 섹시한 눈빛으로 하면 어떡하냐. 미쳤나 봐. 나 완전 쓰레기 됐어. 나만 쓰레기 만들어 놓고 너는 행복하냐?
현타를 세게 맞은 석경은 하는 수없이 입을 벌렸다. 스테이크가 입속으로 꾸역꾸역 밀려 들어왔다. ‘옳지, 잘 먹네.’ 웃음기 섞인 권윤조의 목소리를 애써 무시하며 고기를 씹었다. 크게도 잘라 줬네. 볼을 한가득 부풀리고 먹다 보니 목이 막혔다. 석경이 물을 마시려다 멈칫했다.
제 입술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권윤조의 눈에 흥미진진한 웃음이 매달려 있었다. 안 좋은 쪽으로 어디서 많이 본 듯한 표정이었다. 아이스크림을 먹다가 당했던 봉변이 뇌리를 스쳤다. 내가 또 거슬리게 먹었나? 쩝쩝 소리도 안 냈고 입도 꾹 다물고 먹었다.
빠른 속도로 검열을 끝내고 눈을 들자 진심으로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저를 바라보는 눈빛과 정면으로 마주쳤다.
“왜 또.”
“석경아, 왜 스테이크를 그렇게 먹어?”
“……내가 어떻게 먹는데.”
“음, 부지런히?”
“뭐?”
“되게 부지런히 오물오물거리네.”
“…….”
“다른 것도 입에 물려 주고 싶어지게.”
고요하던 권윤조의 눈빛이 언뜻 번뜩였다. 눈빛에 압도당한 석경은 저절로 벌어지려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 다른 거, 뭘 물려 주고 싶다는 거지.
“…….”
“…….”
석경은 침묵 속에서 오만 가지 생각을 했다. 슬쩍 눈을 굴려 권윤조의 눈동자에 떠오른 짓궂은 열기를 탐색했다. 저를 지그시 내리누르는 듯한 묵직한 눈빛을 살폈다.
아무래도 야한 농담 맞는 것 같은데. 아이스크림 때랑 같은 선상인가. 아님 내가 너무 발랑 까진 걸까. 못 알아들은 척할 수도 없게 왜 나는 순진하지를 못할까. 순조롭게 쓰레기가 되어가는 기분이었다.
지난번에 그렇게 무안을 줬는데도 또 이런다는 게 신기했고 한편으로는 대단했다. 벼르고 있었던 건지 충동인지는 모르겠으나 저를 놀리려는 의도는 확실해 보였다.
조용한 눈싸움이 이어졌다. 어떻게 이런 금욕적인 얼굴로 이다지도 발칙한 농담을 할 수가 있을까. 침묵이 위태로웠다. 오랜 눈싸움의 부작용으로 눈꺼풀이 떨렸고 숨 쉴 타이밍도 놓쳤다. 결말을 아무래도 이쪽에서 내야 할 것 같은데. 이 요망한 녀석을 어쩌면 좋지.
짧은 고민 끝에 석경은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기로 정했다. 여기서 정색하면 권윤조는 잘도 빠져나갈 것이다. 먹을 것을 물려주고 싶다는 말로. 그럼 먹을 게 아니라 다른 걸, 이를테면 지난밤 갑작스레 히트사이클을 맞아 반쯤 제정신이 아니었을 때 입술로 더듬었던 길고 단단한 그의 기둥을 떠올린 자신은 재활용도 안 되는 쓰레기가 될 것이다.
석경은 힘없이 웃으며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어쩌겠어.”
“…….”
“내가 이렇게 생겨 먹은 걸.”
한대 얻어맞은 듯 잠시 멍해 있던 권윤조가 이윽고 소리 내어 웃음을 터뜨렸다. 다행히 위태로운 분위기가 깨졌다. 석경도 그제야 안심하고 따라 웃었다.
밖으로 나가자 레스토랑 주차장에서 준영과 태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왜 이렇게 늦게 나오냐.”
태정의 핀잔을 듣는 둥 마는 둥 한 권윤조가 스마트키를 눌러 차 시동을 걸었다. 스테이크집이 학교에서 거리가 꽤 있었던 터라 그의 차로 이동을 해 온 것이다.
권윤조는 올 때와 마찬가지로 자연스럽게 보조석 문을 열어 줬다.
“석경아, 타.”
“안 열어 줘도 되는데.”
권윤조는 대꾸 없이 싱긋 웃기만 하고는 문까지 손수 닫아 준 후에 운전석으로 걸어갔다. 뒷좌석에 나란히 탄 준영과 태정이 역시나 입을 다물지 못하고 뭐라 뭐라 구시렁댔다.
“야, 커퀴들 데이트하는 데 눈치 없이 낀 거 같지 않냐?”
“김준영, 연애 안 해 봤냐? 안전벨트까지 매 줘야 진정한 커퀴지.”
“연애는 해 봤는데 차가 없었지. 나 몇 달 전까지 미자였잖아.”
“차는 지금도 없잖아.”
“씨발. 어쩌라고, 친구야.”
차 문이 열리고 권윤조가 운전석에 올라탔다. 준영과 태정의 대화를 들은 석경이 혹시나 하는 마음에 부랴부랴 안전벨트를 매는데 마음이 급해서인지 자꾸만 헛손질을 해 댔다. 지켜보던 권윤조가 차분한 손길로 벨트를 매 줬다. 고맙다고 눈인사를 하긴 했는데 얼빠진 표정이었을 게 분명했다.
“거봐, 커퀴 맞잖아.”
준영이 태정의 옆구리를 툭 치며 말했다.
“내가 두 번 다시는 이 차 안 탄다.”
“난 탈 건데? 야, 권윤조. 내가 보조석에 앉으면 나도 안전벨트 매 주는 거냐?”
“석경이가 있는데 너 따위가 보조석에 앉을 일이 있을까?”
권윤조의 말을 끝으로 차가 부드럽게 주차장을 빠져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