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6화 〉 [ 두 번째 이야기 ] 흑인거근으로 소중한 딸을 범해버리는 엄마.
* * *
'머리카락이.. 또 자랐어.'
거울을 보는 아라의 표정이 좋지 못하다.
원래는 단발머리였던 자신의 머리카락이 어깨에 닿을 정도로 길어져 이제는 누가봐도 장발이라고 말할 길이가 되었다.
'이렇게 기르려면 몇 개월은 걸려야 할 텐데도..'
고작 두 달 정도의 시간이 흘렀을 뿐인데 머리카락이 너무 빠르게 자란다.
아니. 사실 머리카락이 길어진 정도는 다른 문제에 비하면 그리 큰 문제도 아니었으니.
꽈악..
셔츠의 가슴 부분을 미친 듯이 벌려 단추를 힘겹게 만들고 있는 가슴.
본래 b컵이었던 사이즈가 어느새 g컵이 되어 있었고..
불룩..!
가슴 아래 쪽의 배 부분은 아예 단추가 채워지지 않을 정도로 부풀어 배꼽이 앞으로 불룩 튀어나와 있다.
아무리 음식을 많이 먹었다고 해도 이렇게 배만 살이 불을 수는 없다.
바보가 아닌 이상 알 것이다.
이건 절대 살이 찐 게 아니다.
'생리를 안하고.. 배와 가슴이 커지고.. 입덧도 해...'
산부인과에서 일하는 아라였기에 더더욱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나.. 설마.. 임신했어?'
창백한 얼굴로 자신의 배 위에 손을 올리며 중얼거리는 아라.
살이라면 말랑말랑 거렸을 텐데 임신한 배 특유의 딱딱하고 안에 무언가 들어 있는 느낌이 손바닥으로 느껴진다.
'그..그렇지만! 임신했다고 쳐도 이 배 크기는 적어도 8개월은 된 사이즈잖아? 고작 두 달 조금 지났는데..!'
자신의 태아가 돌연변이 후타나리안의 정액을 흡수해서 컸다는 걸 모르는 아라는 임신 쪽에서 병에 걸린 건 아닐까라고 생각의 추가 기울고 있었지만..
툭! 툭!
"..읏?!"
갑자기 안에서 무언가 차는 느낌과 함께 배의 표면 한 부분이 불룩 튀어나왔다가 들어간다.
"...?"
멍하니 그 모습을 보고 있을 때.
투욱! 출렁!
이번에는 아래.. 방광 쪽을 걷어차는 태아.
"흐히익..!"
그 충격으로 오줌보가 터질 것 같음에 아라는 서둘러 잠옷 바지를 내리고 변기에 앉아.
쉬이이잇..!
몰려든 소변을 전부 몸 밖으로 배출 시키기 시작했다.
"아으으.."
커다래진 자궁으로 인해 요도관이 압박되어 방광에 쌓여만 있던 소변을 싸내자 시원함에 잠시 상황을 잊고 풀린 표정을 짓는 아라.
'잠깐..?'
..하지만 이내 자신의 배에서 일어난 현상이 어느 정도 성장한 태아가 움직일 때 나타나는 '태동'이란 걸 깨달은 아라는.
"나.. 진짜로 임신했어..!?"
이번에는 의문이 아닌 확신에 가까운 경악성을 내뱉는다.
'대체 언제?! 생길만한 일은 전혀 하지 않았는데..!'
"주변에 남자도 없..!"
남자를 언급하며 없다고 말하려던 아라는 병원에 방문하는 수많은 후타나리안들과 간호사 중에도 몇몇 섞여있는 후타나리안을 떠올리며 말을 멈춘다.
'가능성은 있어.. 회식 때 술 자리도 있었으니까.'
"흐윽.."
계속 자신을 임신시킨 후보군을 떠올리던 아라는 이내 고개를 푹 숙이며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강간당한데다가.. 임신이라니.. 나 이제 어떻게 하면 좋아..?"
단 한 번도 남자친구를 사귄 적이 없다.
고등학생 때는 사춘기였기에 남자를 사귀는 것에 관심이 있었지만 얼마가지 못해 아빠가 세상을 뜨고 홀로 수절을 지키는 엄마, 아영을 보며 자연스럽게 성관계는 결혼 할 상대와만 하겠다고 생각했다.
'박아라..! 너 대체 뭐하는 건데? 남이 널 범하는 동안 기억도 못하고..바보같이!'
그래서 처녀성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자신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순간에 범해지고 임신했다는 현실에 몸을 범한 강간범에 대한 분노와 강간을 당하면서도 전혀 눈치채지 못한 자신의 한심함에 화가 났다.
"그..그래 아직 모르는 거야.. 임신 테스트기를 일단 써보고.."
결국 한참동안 화장실에서 흐느끼던 아라는 도저히 현실을 인정할 수 없어 회사에 긴급휴직계를 내고 임신 테스트기를 사용해보도록 했다.
띠리리 띠리리
병원 측 수간호사님의 번호로 전화를 걸었고..
왜 쉰다는 건데? 몸 아파?
"그..그게 조금 몸살 기운이.."
얘 너 그럴 줄 알았다니까? 왜 임신했는데 임신휴가 안 내는 거야? 우리가 산부인과 간호사잖니. 임신했는데 무리하면 아이한테도 안 좋고 산모한테도 안 좋고..
"..."
그와중에 병원에서는 이미 아라, 자신이 임신했다는 사실을 전부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다.
'진짜 멍청이도 아니고..'
자신의 몸을 자기만 모르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스스로를 처녀라 믿고 있는데 갑자기 임신을 한다는 말도 안 되는 사실을 무의식적으로 인정하기 싫었을 지도 모른다.
저벅 저벅
"..."
넓은 코트를 입고 넋이 나간 얼굴로 약국에서 임신 테스트기를 산 아라는.
끼익..
지체할 것도 없이 주변 공원의 여자화장실로 들어갔다.
쬬르륵..
임신 테스트기의 끝 면에 오줌물을 묻히고 잠시 시간이 지난 뒤..
[ I I ]
"싫어어!!"
탁!
테스트 기 위로 나타난 두 줄 표시를 보고는 땅바닥에 테스트기를 내던지는 아라.
"흐윽.. 흐아아앙.. 흑..! 흐끄윽..!!"
이제야 임신했다는 사실이 실감이 된 것인지 아라는 자신의 얼굴을 손으로 감싸며 어린아이처럼 울부짖었다.
'나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해? 엄마한테는 또 뭐라고 말해야 하고..!?'
임신시킨 상대를 찾는 것 역시 문제다.
찾아도 강간범인 이상 연애감정을 일절 들지 않으니 당연히 신고해서 감옥으로 보낼 것이고 못 찾는다면 죄값을 치루게 할 수도 없으며 피해보상금 같은 것 역시 받을 수 없을 것이다.
'싫어..! 좋아하지도 않는 상대의 아이를 낳는 건 싫단 말이야!!'
"흐흑..!! 제발..!! 꿈이라고 해줘..!"
무엇보다 가장 끔찍한 건 아이가 낙태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는 것.
이제 아라에게 남은 건 자신의 피와 강간범의 섞인 아이를 출산하는 일 밖에 없었다.
처녀였던 몸에서 아이를 낳은 경험이 있는 여자가 되는 것이다.
"하아.. 하아.."
한참을 울고 변기 커버에 등을 기댄 채 숨을 몰아쉬는 아라.
분명 체력은 기묘할 정도로 빠르게 회복됐지만 정신적인 충격이 커 손가락 하나 까딱 할 수 없다.
"집..집에 가서.."
그렇게 중얼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난 아라는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화장실을 나와 집으로 가는 방향의 도로를 걷기 시작했다.
'낳으면.. 보육원에 보내야 해.. 하지만 내 피도 섞인 아이인데.. 아이는 무슨 죄가..'
걸으면서도 끝임 없이 아이에 대한 걸 생각하던 아라는.
휘청!
"...?"
박힌 돌을 보지 못하고 발을 헛디뎌 무게 중심을 잃고 넘어졌고
덥썩!
"괜찮으세요?!"
그 순간 뒤에서 빠르게 다가온 누군가 팔을 잡으며 넘어지는 몸을 일으켜 준다.
"아니.. 임신도 하신 분이 이렇게 높은 굽을 신으시고..!"
상대는 여자..
'후타나리안..?'
..가 아니다. 눈에서 흐르는 붉은 안광을 봤을 때 후타나리안이 틀림 없다.
홱!
"놔..놔요!"
"네?"
고맙다는 말을 들을 줄 알았는데 아라가 돌연 소리치자 당황한 회사원 차림의 여성.
"다..다가오지마요! 다가오지마!"
"허참.."
아라가 급격한 거부반응을 보이며 소리치자 혀를 찬 여성은 그대로 가버렸다.
"허억.. 허억.."
그제야 쭈그려 앉으며 쉼호흡을 몰아쉬는 아라.
'무서워.. 무섭단 말이야..!'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후타나리안들이 너무 두렵다.
저들은 여자의 얼굴을 하고 있음에도 그 고간에는 남성기를 가지고 있으며 힘과 성욕 역시도 남자와 여자를 합친 것보다도 훨씬 강하다.
타닥!
'..집으로 가야 돼!'
아라는 후타나리안들이 너무나 끔찍하고 무섭게 느껴졌다.
저벅! 저벅! 저벅!
언제 돌변해서 자신을 강간 할지도 모른다는 피해망상에 사로잡혀 빠른 걸음으로 집까지 걸어갔다.
'우리집..! 엄마가 있는 집..!'
그리고 저 멀리 아파트가 보이기 시작할 때.
"음?"
"..!"
반대편 길에서 장바구니를 들고 돌아오는 엄마.. 아영의 모습이 보였다.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대상인 엄마가 이쪽을 발견하고 손을 드는 그 모습에.
타다닥..!
'엄마..! 우리 엄마야!'
곧바로 아영 쪽으로 달려간 아라는.
포옥!
"흐아앙..! 엄마! 엄마! 엄마아..!!"
그대로 아영을 껴안고 속에 쌓인 서러움이 북 받쳐 눈물을 쏟아낸다.
"아..아라야? 무슨 일이야? 왜 울어 우리 딸.. 뚝! 뚝하고 엄마한테 말해봐 응?"
"흐어엉.. 흐윽.. 흑..!"
팔로 등을 토닥여주며 묻는 아영의 상냥한 목소리에 그 부드러운 가슴에 고개를 묻고 눈물을 흘리던 아라는..
"어..엄마 나 임신했어..!"
"뭐..?"
아영에게 자신의 임신 사실을 고백했고.
투두둑..!
그 순간 충격을 받은 아영의 표정과 함께 손에 들려 있던 장바구니가 쏟아진다.
홱!
"너..너 그게 무슨 말이야?! 임신?"
그리고 양 팔로 아라의 어깨를 잡고 그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며 묻는다.
"응..! 나..나 분명 남자랑.. 아.. 아니! 후타나리안이랑 성관계 갖은 적 없었는데 배가 점점 불러와서 테스트기 썼더니.. 흑.. 흑.. 임..임신이래.. 나 어떻게 해? 엄마.."
"그럴 리가.. 그럴 리가 없는데.."
다시 자신의 품에 얼굴을 파묻으며 우는 아라를 달랠 생각조차 못한 채 아영은 멍하니 중얼거렸다.
스윽..!
그리고 가슴 아랫 쪽 배 부근에 스치는 딸의 부푼 배에..
'아니야.. 사실 알고 있었잖아..'
머릿 속으로 스쳐 지나가는 아라의 나신과 하루하루 부풀어 가던 배.
콘돔을 썼고 임신하지 못하는 시기에만 관계를 나눠 안심하고 있었지만 사실 아라보다도 먼저 임신했을 지도 모른다는 의문을 느낀 건 바로 아영이었다.
허나 별다른 대처를 취하지 않은 건 잘못을 고백하기엔 너무 늦어버렸고 고백한 이후에는 어떤 식으로 해결해야 할 지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 속으로 묻어놨던 것 뿐이었다.
'큰 일이야..!'
그게 지금 터졌다.
아라가 강간범이라고 소리치며 경찰에 아영, 자신을 신고하더라도 별다른 변명조차 할 수 없다.
믿었는데! 엄마는.. 아니 당신은 엄마도 아니야! 딸에게 수면제를 먹이고 강간하고 임신시키는 엄마가 세상에 어딨는데!?
'아아..!'
가장 두려운 건 하나뿐인 딸이 평생 꼴도보기 싫다며 경멸과 혐오의 시선을 보낼지도 모른다는 현실이었다.
'잠깐만.. 지금 강간범한테 범해졌다고 했어?'
순간 아라가 자신에게 안기며 강간마에게 범해졌다고 말했던 걸 떠올리는 아영.
'내가 범인이란 걸 알고 있다면 나에게 안기지도 않았을 거고.. 나한테 강간마라고 외쳤겠지!'
즉 아이를 낳아 유전자 검사를 할 때까지 아라는 누가 자신을 임신시켰는지 전혀 알 방법이 없다.
'그래.. 그 사이에 방법을 찾는 거야!'
이미 딸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는 것보다도 오로지 자신의 일상이 유지되는 해결책을 찾는 것에 익숙해진 아영.
"이..일단! 집에 들어가서 얘기하자 아라야."
"으응.. 엄마."
그렇게 아영은 자신의 아이를 임신해서 배가 부푼 딸을 부축하며 차갑게 가라앉은 얼굴로 아파트 현관을 지났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