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화 〉 [ 두 번째 이야기 ] 흑인거근으로 소중한 딸을 범해버리는 엄마.
* * *
"아영아 너 미쳤어?! 나이 차이가 20이야! 20!"
"심지어 그 사람 전부인하고 낳은 애도 있다며? 제발 다시 생각해라.. 진짜 친구라서 하는 말이야. 너 후회한다?"
친구들 그리고 주변에서 말리는 목소리에 나 역시도 처음에는 내 감정을 의심했다.
아영씨. 쉬엄쉬엄 해. 항상 사람은 가늘고 오래 가는 게 중요한거야! 하하!
일 끝났어요? 어후! 우리 신입도 드디어 한 사람 몫은 하네? 수고했어요. 아영씨.
그저 상대방에게서 느껴지는 어른스러움과 칭찬해줄 때 짓는 자상함이 가득한 미소에서 한 번도 가져본 적 없는 '아버지'가 느껴졌기에 기대고 싶어하는 마음을 사랑으로 착각했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아영씨. 나도 아영씨가 좋긴 한데.. 아영씨는 나한테 너무 과분한 사람이에요.
나는 나이도 먹을 만큼 먹은 아저씨인데다가 딸아이도 있는 사람인 걸? 아영씨는 충분히 나보다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거야.. 그러니까 이런 아저씨 같은 사람은 잊어버리고.
..하지만 계속해서 감정을 고백할 때마다 현실과 관련된 말을 해주며 애써 거절하는 그의 모습에서 오히려.
"과장님이 부족한 사람이라면 저 역시도 부족한 점은 많아요! 전 부모도 없는 고아인데다가..! 나이도 어려서 미숙한 부분 역시 있겠지만. 과장님에 대한 사랑만큼은 진짜에요! 전 과장님과 가족을 꾸리고 싶은 걸요!?"
과장님에 대한 진짜 내 마음을 확인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아영씨.. 알겠어요. 그럼 일단 연애부터 해보고 나중에 가서도 아영씨의 마음이 그대로라면.. 하 모르겠네.
그렇게 끝없는 고백 끝에 과장님과 조금 더 가까운 사이가 된 나의 마음은.
"사랑해요.. 진욱씨."
시간이 지나도 전혀 변함이 없었고.
"아영아. 정말 괜찮겠어? 그 애한테 미리 말해놓기는 했는데.."
"괜찮아요! 오히려 아라.. 라고 했죠? 분명 나보다는 아라가 더욱 긴장하고 있을 테니까요."
걱정스레 묻는 말에 나는 당차게 대답하며 예약 해 놓은 레스토랑 앞으로 걸어갔다.
..날 싫어하면 어떡하지? 나이 차이도 얼마 안나는 여자가 엄마가 되는 게 말이 되냐고 따지면 어떻게 해?
사실 당당한 척 했지만 속으로는 엄청나게 떨었다.
"아"
"아..안녕?"
그리고 그 귀여운 아이를 마주한 순간 나도 모르게 목소리를 떨어버렸고..
"..."
아무렇지 않게 다가온 아라라는 이름을 가진 그 애는 내 얼굴을 이리저리 살피더니.
찰싹!
"아빠는 상도둑이야! 어떻게 이렇게 어린 사람하고 연애를.. 그것도 결혼을 한다고 할 수 있어?!"
내가 사랑하는 그 이의 어깨를 팍팍 치며 소리치는 여자애.. 아라의 모습.
"언니도 진짜 우리 아빠 좋아해서 만나는 거예요? 호..혹시 다른 속셈이 있다거나..!"
꽃뱀을 떠올리는 듯 경계어린 시선으로 속삭이며 묻는 그 아이의 말에.
"아라야. 나는 정말로 아라의 아빠를 사랑하고 있어."
"에..?"
최대한 진심을 담아 말하자 부쩍 당황한 얼굴로 쳐다보던 아이는.
"이..일단! 밥부터 먹으면서 얘기해보자고요."
고개를 돌리며 레스토랑 안으로 들어갔다.
첫 만남에 불과하지만 이미 그 때 조아라라는 이름을 가진 그 애가 착한 심성을 가진데다가 똑 부러진 애라는 걸 난 직감했다.
"언니! 제가 도와드릴게요!"
"엄마라고 부르지 못 해서 죄송해요.. 그래도 언니한테는 늘 감사하다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조금 힘들지는 몰라도 이 아이와 함께라면 사랑하는 남편과 함께 화목한 가정을 꾸릴 수 있을 거라고... 그런 생각이 들었는데.
아이고 아이고
남편이 죽었다.
원인은 상대편 운전자의 부주의.
보험사의 말에 따르면 상대방 측은 만취한 상태로 운전을 했었고 남편은 갑작스럽게 치고 들어오는 차량을 피하다가 주변 가로등과 충돌 해 그 자리에서 급사했다고 한다.
"이익!! 그런..!"
처음에는 화가 나서 미쳐버릴 것 같았지만.
"흐윽... 흐으윽..."
이제는 남편이 영영 내 곁에 없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화낼 기운조차 생기지 않았다.
"..."
그리고 그건 아라 역시도 나랑 똑같은.. 아니 나보다 더 큰 충격을 받은 것처럼 보였다.
늘 잘 웃던 애가 자기 아빠의 부고를 듣고 난 순간부터 하얗게 질린 얼굴로 멍하니 서 있는다. 마치 감정을 잃어버린 인형처럼.
"며늘 아가야. 우리 진욱이의 일은 일이고 너 역시 살 길을 찾아야 하지 않겠니? 아직 젊은 애한테 애를 혼자 키우라고 하는 건 우리도 염치가 없고 진욱이도 원하지 않을 게 분명..."
장례식장에서의 마지막 날 시아버님은 나를 불러놓고 말했다.
그 슬픔이 가득한 눈에서 진욱씨의 유산이나 막대한 피해보상금의 문제가 아닌 순수하게 내 쪽을 걱정해서 건네는 말이란 걸 알 수 있었다.
"아니요. 아버님. 걱정해주신 건 감사해요. 하지만 전 진욱씨와 결혼할 때부터 다짐했어요. 아라는.. 이제부터 내 딸이다. 그 사실은 진욱씨가 죽은 지금도.. 똑같다고 생각해요."
멍하니 있었던 아라를 떠올리면 도저히 홀로 남기고 혼자 떠난다는 생각은 할 수 없었다.
"아라야.."
"언..니?"
"아빠는 먼저 하늘나라로 갔지만 아라 곁에는 언니가.. 아니 엄마가 있으니까. 응?"
"흐아아앙..!! 흐윽..!!"
조문객들이 전부 떠난 빈 장례식장에서 아라를 안아주며 난 진정한 의미에서 엄마가 되었다.
그리고 시간은 빠르게 흘러 남편이 죽은 지 6년이란 시간이 지났다.
"엄마! 나 다녀올게~ 아! 오늘 저녁은 병원에서 회식한다고 했으니까 내 꺼는 준비 안 해주셔도 되요!"
어느덧 학생의 모습에서 어엿한 성인 여성의 모습으로 자란 딸이 현관문에서 외친다.
"그래. 우리 딸. 갈 때도 올 때도 항상 몸조심하고. 요즘 세상이 흉흉하잖니? 후타나리안이니 뭐니 해서.."
"정말~ 엄마는 걱정이 너무 많다니까요! 딸이 애인가 뭐."
"후훗 엄마 눈에는 늘 아이처럼 보이는 걸?"
"에이 나 애 일 때는 본 적 없으면서!"
"어머 얘 좀 봐? 사진으로 엄청나게 봤네요. 우리 아라 정말 귀엽던 걸?"
내 말에 아라는 푸훗 하고 웃으며 그런 건 언제 봤냐고 부끄러워한다.
이제는 이런 농담을 아무렇지 않게 할 정도로 아라와 난 매우 친밀한 관계를 이루고 있다.
모녀 두 명이서 6년 간 아버지, 남편 없이 서로 의지하며 지내온 시간의 힘이었다.
"그리고.. 조심해야 할 건 엄마도 마찬가지잖아."
"엄마? 엄마야 아줌마인데 뭐."
"아줌마? 엄마가? 엄마 아직 20대야! 밖에 나가면 모두 엄마랑 나 자매로 보는데?"
"그건.."
확실히 '사태'가 발발하기 전 밖에 나가면 딸과 나를 남들이 자매로 착각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현재 내 나이가 28. 딸이 22이니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래도 나름 나이 들어보이려고 40대나 30대 유부녀들이 입는 롱 원피스를 자주 입어보기도 했는데.
저.. 그 쪽 완전 마음에 들어서 그런데 번호 좀.. 안 될까요?
웬 젊은 대학생이 번호를 물어오는 등 곤란한 경우가 생겼다.
"엄마 자신감을 가져. 몸매도 좋고 얼굴도 예쁜 우리 엄마인데."
"얘는 참! 엄마한테 못하는 소리가 없어. 엄마 걱정은 그만하고 우리 아가씨는 출근이나 하세요! 이러다 병원 지각한다?"
"네네~ 알았어요."
내 재촉에 딸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며 현관문을 나섰다.
딸을 출근 시키는 일이 끝나면 이제부터 내 일과가 시작 된다.
가정주부로서 집안일을 해야만 한다.
..하지만 그전에.
끼익..
부부의 방으로 가서.
"진욱씨. 아라 밥 챙겨 먹여서 보냈어요."
활짝 웃는 얼굴을 하고 있는 남편의 사진이 담긴 액자에 아침 인사 겸 간단한 이야기를 한다.
남편이 내 곁을 떠나고 나서 가끔씩 그 빈자리가 느껴지거나 혼자서 감당하기 힘이 드는 일이 생길때면 이렇게 액자에 대고 말을 건다.
"헤헤.. 만약 당신이 살아 있었다면 다른 집처럼 진욱씨가 제 몸과 하나가 됐을까요..?"
그럼 꼭 남편이 옆에서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 같아 다시 힘을 얻고 든든한 기분이 든다.
띠리리
그 때 울리는 휴대폰의 알람소리.
"아! 장을 보러갈 시간이에요! 늦으면 우리 아라 밥 못 먹이니까... 서둘러 다녀올게요! 여보!"
난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나갈 채비를 갖췄다.
타닥!
"늦기 전에 가야 하는데..!"
원래는 대형마트나 인터넷 주문으로 여유롭게 물건을 구매했지만 6개월 전 일어난 지구의 모든 남자들이 기생남근으로 변하는 사건, 남성기화 사태 때문에 대부분의 매장이나 인터넷 쇼핑몰이 마비되고 말았다.
웅성웅성..!
"앗! 벌써 사람들이..!"
그래서 물건을 사기 위해서는 아침 장터에 나와 한정 된 수량의 물품을 구매해야 한다.
"아니! 이봐요! 내가 잡은 건데 왜 가져가요?!"
"뭔 소리에요! 내가 먼저 잡았다니까! 이 여편네가!?"
악착같은 아주머니들 사이에서 진열되어 있는 야채를 집기 위해서 나 역시도 죽을 힘을 다해 손을 뻗는다.
덥썩!
..잡았다!
야채를 잡자마자 누가 가져갈까 빠르게 바구니에 넣는 그 사이에.
스윽 스윽
말캉..!
"응?!"
계속해서 불룩하고 말캉거리는 무언가를 비비는 감촉이 엉덩이나 허벅지 뒤편으로 느껴진다.
"으읏.."
혐오감과 함께 뒤 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히히."
"어머머.. 엉덩이가 실하시네요."
음흉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건네는 변태.. 아니 아줌마들이 있다.
움찔..! 움찔..!
그들의 고간은 모두 불룩한 상태.
성기화 사태 발발 이후 남성과 융합된 '후타나리안'(저명한 일본 학자가 이름을 붙였다)이라 불리는 여성들이 평범한 여성을 추행하는 일들이 많아졌다.
원래 갖고 있던 여성의 성욕에 남성의 성욕이 합쳐지니 욕구를 참을 수 없게 되었다고 하는데..
스윽 툭..! 스윽 스윽
아예 대놓고 성추행을 일삼아도 그들을 처벌하기가 쉽지 않다.
일단은 후타나리안 법이 세밀하게 제정되지 않아 대부분 같은 여자로서 범죄가 다뤄지기 때문에 직접 납치해서 범하는 정도가 아니고서야 행위에 대한 성적 의도를 추정 할 수가 없다.
거기에 지금은 경찰 인력까지 부족한 상황이니..
..분명 힘은 남자랑.. 아니 남자보다 강한데!
점점 내 뒤 쪽으로 몰려드는 인파에 이대로 있다가는 큰일 날 것 같다는 예감이 든 난.
홱!
"여기요!"
빠르게 가판대 위 식재료를 구매하고 자리를 떴다.
"저기요!"
"새댁 나랑 얘기 좀..!"
뒤 쪽에서 날 잡으려 하는 후타나리안 여성들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빠르게 순찰을 돌고 있는(후타나리안 범죄 예방을 위해 배치 된) 여경 쪽으로 달려가.
"도..도와주세요! 이상한 사람들이 절 쫓아와요!"
"흠?"
내 외침에 무언가 강해보이는 인상의 짧은 머리 여경은 내 쪽을 쳐다보더니.
...내 가슴.. 보고 있어!
빠르게 내 가슴골을 훔쳐본다.
흠칫. 바로 가슴골을 가리고 여경에게서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불룩.. 여경의 바지 고간은 불룩하게 부풀어 있었지만.
"거기! 후타나리안은 일반 여성에게 접근 금지인 거 모르나! 현재 계엄령이 선포되어 있어 경찰재량으로 인계도 가능하다!"
직업 정신은 잃지 않았는지 빠르게 뒤 쪽에서 다가오던 후타나리안 아줌마들을 내쫓아준다.
"감.. 감사합니다."
나는 빠르게 고개를 숙이며 여경이 뒤돌아보기 전에 그 자리를 조용히 떴다.
도와주기는 했지만 경찰조차 안전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기에.
저벅.. 저벅.
"하아.. 하아.."
어두운 뒷골목을 걸으며 달리느라 목 밑까지 올라온 호흡을 내몰아 쉰다.
"빨리.. 집에 가야 되는데."
사실 위험하기는 뒷골목이 더욱 위험하지만.
계속 이쪽의 몸을 훑으며 당장이라도 범할 것 같은 시선을 보내오던 후타나리안들이 가득한 거리는 걷기가 두렵다.
"정말..! 전부 쓸데없이 큰 이 가슴이랑 엉덩이 때문이야!"
고아원에서부터 전문학교를 다니는 동안 또래보다 엉덩이나 가슴이 크다는 걸 깨달았다.
딱히 뭔가를 더 먹지도 않았는데 성적인 부분만 발육이 남달랐던 것이다.
그래도 예쁜 브래지어나 팬티를 구하기가 어렵다는 점이나.. 가끔씩 어깨가 결린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그다지 불편하지는 않았는데..
"후타나리안들은 가슴과 엉덩이가 큰 여자에게 더 흥분한다고 하니까.."
무법지대에 가까워진 지금에 와서는 여성적인 부분이 발달되었다는 게 후타나리안들에게 노려지게 되는 원인으로서 작용하고 있었다.
"아라한테는 괜찮다고 말했는데.. 나.. 전혀 괜찮지가 않네."
그렇게 중얼거리며 작게 한 숨을 내쉬고 있을 때.
부스럭 부스럭
"응!?"
갑자기 아랫쪽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고양이?
뒷골목이니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 고양이의 모습.
그저 방금 전 멈춰 서며 나도 모르게 내려놨던 바구니의 모습만 보인다.
"설마..! 고양이가 안에 들어갔나?!"
그렇게 생각하며 조심스럽게 바구니를 들어 안을 들여다본다.
"아하하.. 그럴 리가 없지."
허나 바구니 안에는 아까 전 손에 잡히는 대로 집어넣었던 식재료들만 가득했다.
양파, 감자, 양배추.. 그리고 기다란 막대 모양의 흑갈색 고구마와 둥근 알 모양의 고구마 두 개.
"생각보다 많이 집어 왔구나. 나.. 그 힘 쎈 아줌마들 사이에서 이 정도면 선전한 거지! 응응!"
묵직한 바구니의 무게에 절로 어깨에 힘이 들어간 나는 한결 나아진 기분으로 골목을 지나 집으로 향했다.
움찔..! 움찔..!
허나 나는 알지 못했다.
불끈..!
가판대에 길쭉한 고구마 같은 건 없었다는 사실을.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