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화 (24/30)

5.

“…시험 너무 싫어요.”

책상에 엎드린 채 웅얼거리는 목소리가 퍽 불만에 찼다. 이진언은 피식 웃었다.

둘은 지금 중도에 앉아 공부 중이었다. 김유겸이야 기말이 100% 실기로 대체돼 이론 공부가 불필요하다고 하지만, 이진언은 달랐다. 중간은 팀플로 대체됐지만, 기말은 100% 이론이었다. 이진언은 이론 시험에서 단 한 번도 최우수 성적을 놓치지 않았다. 시험 기간에 공부에 목숨 거는 이유가 타당하다는 소리다.

“집에 있으라니까.”

아침만 해도 이 문제를 가지고 실랑이했다. 편견일지 모르지만, 공부와는 담쌓고 지낸 거 같은 모습의 김유겸에게 중도를 강요할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던 이진언이었다. 집에 있어. 제가 공부하고 올 동안 자취방에 머무르라고 권유했지만, 김유겸은 막무가내였다. 둘은 결국 시험 기간의 중도에서 다른 학생들과 함께 책을 들여다봐야 했다.

“형 없는 집에서 나 혼자 뭐 하라고요.”

다소 투정처럼 나온 말에 이진언은 피식 웃었다. 요새 들어 저런 식이다. 투정 부리는 자신이 귀여운 듯 자주 웃어준다. 그게 결코 나쁜 기분은 아니어서 김유겸은 답지 않게 이진언에게 자꾸 떼를 쓰게 된다. 전이었다면 이런 행동에 질색해 나를 싫어하지는 않을까 걱정했을 테지만, 현재는 달랐다. 다소 곤란하게 만드는 언사나 행동도 너그러이 용인해주는 선을 알게 되었다. 김유겸은 이진언이 제시한 선 안에서 마음껏 그이를 괴롭혀댔다. 괴롭힌다는 표현과는 어울리지는 않기는 했지만 뭐, 그래도 기분이 그랬다.

봐, 지금도 봐주잖아.

옆에서 책상에 머리를 처박고 엎드려서 억지를 부림에도 이진언은 야단치지 않았다. 외려 작은 손이 다가와 아래를 향해 내려간 앞머리를 헤집는다. 누군가 본다면 애정의 손짓이라기보다는 답답해서 휘젓는 줄 알 정도로 투박한 행동이었지만, 막상 이마에 닿은 손길은 따스했다. 배시시 미소가 절로 새어 나왔다.

“내가 형 집을 좋아하는 건 형이 집에 있어서라고요.”

눈을 감고 머리를 간질이는 손길을 느끼면서 한마디 툭 던졌다. 조용한 곳이어서 대화하면 안 되는 줄 알지만 그래도 이 정도는 괜찮겠지, 하는 이기적인 생각이 들었다. 칸막이로 가로막혀서 이진언의 얼굴을 마음껏 못 보는 것에는 심술 나는데, 지금 옆자리를 빼꼼 돌아보며 해주는 스킨십이 너무 좋아 설레었다.

“그래? 그건 몰랐네.”

입으로는 부정을 말하지만, 얼굴은 웃는 낯이었다. 잔잔하게 침식한 눈가에 인자가 가득 차서 저 사람이 지금을 매우 평온해 한다는 사실을 알게 했다. 이제껏 치열한 전쟁터 같은 삶을 살아온 이진언이었으니 자신의 곁에서 조금이라도 휴식한다면 그것만으로도 되었다고 생각했다. 욕심은 자꾸 자란다. 처음에는 작은 것에도 만족했던 마음은 이제는 저 사람을 완전히 독점하고 싶다고 말한다. 얼마 전 정성운으로 인해 확실하게 각성했다.

갖고 싶었다, 이진언을.

“몰라도 돼요. 나만 알면 됐지, 뭐.”

남이 들으면 서운하지 않으냐고 할 행동이나 대답도 김유겸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사실은 남에게 곁을 주지 않는 성격이라서 지금처럼 옆에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저 사람이 나에게 마음 주었다는 사실을 알게 했다. 욕심은 자라지만 김유겸은 절제의 중용을 아는 인간이었다. 더 바라는 마음이 들기야 하지만, 지금은 여기까지가 딱 좋았다. 조금의 모자람이나 넘침도 없이 지금이 정말로 딱.

마치 기다려 훈련받는 강아지가 된 기분이었으나 그나마 이게 어디냐 싶어서 김유겸은 스멀스멀 올라오는 불만을 집어삼켰다. 여기서 더한 불만을 말했다가는 정말 쫓겨날지도 모른다. 어째 이진언이 가면 갈수록 김유겸에게 너그러워지는 것만 같아서 건너편에 앉아서 둘이 하는 양을 가만히 보던 박지운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커플이 하는 꼴을 보노라니 왜인지 속에서 울화가 터져 오를 것만 같아서 열린 책의 페이지에 고개를 더 처박는다.

톡, 톡.

“?”

한참 앉아서 공부하는데, 갑자기 어딘가에서 작게 뭉쳐진 종이 쪼가리가 툭 떨어졌다. 누가 보낸 종이 뭉치인지 보지 않아도 알 거 같아서 이진언은 피식 웃음이 났다. 얌전히 옆자리에서 공부하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이런 반격은 예상외였다. 심심하면 가만히 집에 머물지, 부득불 같이 오겠다고 했을 때부터 이런 반응이리라 예측했었다.

“뭔데 이거.”

최대한 주변이 시끄럽지 않은 한도에서 옆을 빼꼼 바라보며 물었다. 김유겸은 책상에 뺨을 댄 채로 열어보라고 손짓해 보였다.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싶었지만 저리 구는 김유겸이 귀여워서 이진언은 피식 한번 웃고 말았다. 저는 모르는 신종 애교인가 싶었다.

「I like you」

“…….”

작은 쪽지에 적힌 단어는 저게 다였다. 솔직한 마음으로는 LOVE를 쓰고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이진언이 부담스러워할까 봐 LIKE로 합의 봤다. 나름 상대를 위한 배려라며 김유겸은 혼자 뿌듯해했다.

“…형?”

쪽지를 봤으면 뭔가 리액션 하겠거니 했는데, 예상보다 옆자리가 조용했다. 왜 저러나 싶어서 바라본 이진언의 표정은 묘했다. 딱히 싫다는 기색은 아니었지만 좋다는 기미 또한 아니었다. 의아한 마음이 들었다. 혹시나 이런 장난 싫어하나 싶었다. 남에게 피해 끼치는 걸 죽도록 싫어하는 성격의 이진언이었으니 이런 장난을 싫어한다고 해도 이해는 되었다.

“미안해요, 이런 장난 싫어하는 줄 몰랐, 으앗?!”

괜히 장난쳤다가 점수만 까인다 싶어서 싫었으면 미안하다고 사과할 심산이었다. 저 사람이 자신에게 실망하는 모습은 죽어도 보고 싶지 않으니 빨리 사과하고 잘못을 깔끔하게 인정하자 판단했다. 쌈빡하게 사과하려고 입을 여는데 동시에 무언가가 툭 가슴으로 날아들었다. 그게 뭔지 자세하게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 허공에서 본능적으로 낚아챘다. 나이스 캐치-! 평소였다면 자신의 순발력을 자랑했겠으나 지금은 분위기가 분위기라 까불지 못했다.

“목말라.”

“…형?”

무언가를 김유겸에게 직접 던진 이진언은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김유겸은 멀어지는 이진언의 뒷모습을 보면서 머리를 긁적였다. 자신이 아는 이진언은 공부하는 중간에 무언가를 먹는다거나 마신다는 행위를 거의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자신만 전전긍긍해하며 이진언의 끼니를 걱정했다. 시험공부 할 때의 이진언은 그토록 좋아하는 커피도 끊고 책만 파고들었다. 알이 두꺼운 안경만 끼면 책벌레 공붓벌레라는 소리가 나오기 딱 좋은 모습이었다.

이게 뭐지.

그랬던 사람이 자신에게 뭔가를 툭 던져주고 목마르다며 자리를 피하는 지금이 이상하다. 분명 지금 던져준 종이 쪼가리에 평소와 다른 무언가를 했음이었다. 그게 무엇인지 궁금한 한편 두렵기도 했다. 이진언은 욕을 잘하지 않는 성격이었지만 그래서 더 무서웠다. 조곤조곤 팩트로 패면 상대는 언제나 녹다운이 됐다. 강길태의 경우가 그랬다. 아, 이거 예감이 안 좋은데. 왜인지 모를 불안감에 김유겸은 입술이 바싹바싹 마르는 기분이었다.

“…?”

씁씁 후후, 심호흡하고 쪽지를 펼쳐봤다. 자신이 던졌던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다. 역시나 헛소리하지 말고 공부에 집중하게 도와달라는 뜻이었을까. 괜히 긴장한 마음과 안심되는 마음에 휴, 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어 쉴 무렵, 다른 게 눈에 띄었다. 김유겸은 분명 「I like you」 한 단어만 썼는데, 다른 단어가 하나 더 보였다. 그것도 김유겸이 적은 종이 면이 아니고 반대편에 적혀져 불빛에 비춰야만 보이도록 해놓았다. 이진언다운 발상이었다.

“…….”

이진언이 전할 메시지가 무언인가 싶어서 종이를 들어 형광등에 비춰보았다. 지금의 모습을 다른 사람이 목격했다면 미친놈이 뭐하나 싶은 얼굴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상관없었다. 언제나 이진언이 관련되면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았다. 남들 눈이 두려워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 주는 짓은 하지 않겠다고 맹세한 지 오래다.

“하, 진짜.”

불빛에 드러난 이진언의 필체에 김유겸은 뭐라고 형용하지 못할 감정을 느꼈다. 안 그렇게 생겨서는 참 깜찍한 짓을 잘한다 싶었다. 발끝에서부터 서서히 온몸으로 퍼지는 사랑스러움이라는 감정에 김유겸은 책상에 다시 머리를 처박았다. 감정 같아서는 두 주먹 쥔 채 책상을 쾅쾅 내려치고 싶은 마음이었다.

이진언, 진짜.

입을 틀어막고 포효했다. 건너편에서 박지운이 힐끗 김유겸을 바라보더니 쫓아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하는 표정이었다. 박지운이 그러거나 말거나 김유겸은 자신의 손안에 들어온 작은 쪽지를 보며 소리 없이 발광 중이었다. 주변에 영향을 줄 정도였으니 말 다 했다.

쪽지의 내용은 간단했다. 김유겸에게 와 닿는 여운은 간단하지 않았지만.

이진언은 김유겸에게 단 한 마디를 적어 보냈다.

「I’m a like you.」

불빛에 비친 단어는 그랬다.

그것을 김유겸이 건넨 단어와 연결하면 이런 뜻이 된다.

「I’m a like you.

나도 너와 같아.

I like you.

널 좋아해.」

이진언 최초의 고백이었다.

***

“잠깐, 잠…!”

이진언의 목소리가 사그라들었다.

눈앞의 육체를 퍽퍽 때려서 만류하지만, 애초에 들을 예정하지 않았다는 듯 김유겸은 막무가내였다. 사실이 그랬다. 방금 같은 로맨틱한 고백에 가만하는 건 남자가 아니다. 이진언의 수줍은 고백을 눈으로 확인하자마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 김유겸의 가슴은 더없이 심하게 쿵쾅거렸다.

“으읍--!!!”

그대로 이진언을 찾아 나섰다. 이진언은 정말 식수대에서 물을 마셨다. 목마르다는 말이 거짓은 아닌 모양이었다. 상관없었다. 감정 같아서는 지금 당장이라도 달려들어 바지를 벗기고 싶었다. 어디를 어떻게 보아도 하얀 살결 위에 입술을 내리고만 싶었다. 장소에 무관하게 안고 싶었지만, 이진언을 위해 참고 또 참았다.

전에 목적지를 밝히지 않고 사람에게 끌려가는 행위에 트라우마를 지녔다고 고백했었다. 이후 김유겸은 이진언의 트라우마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부단히도 노력했다. 노력은 오늘로 수포가 되었다. 식수대에서 물을 마시는 모습을 본 순간, 성큼성큼 다가온 김유겸은 이진언의 손목을 홱 낚아챘다. 가타부타 설명하지도 않고 화장실로 직행하더니 작은 칸에 집어넣었다. 이진언이 너 지금 뭐 하는 짓이냐고 따질 겨를도 주지 않고 그대로 입술을 감쳐물었다.

“하아, 하아, 으읏, 아,”

내도록 원하는 만큼 이진언의 입술을 괴롭히고, 맨살을 어루만지고, 까딱 잘못하면 바지를 벗길 뻔한 김유겸이 진정한 것은 그로부터 수분이 지난 후였다. 하아, 하아, 일정한 간격으로 숨을 내뱉으며 들썩이는 등을 이진언은 말없이 토닥였다. 성격 같아서는 이게 무슨 짓이냐고 야단하고도 남을 사람인데 지금은 조용히 김유겸을 다독인다. 이런 행동을 예단했었다는 뜻이다.

“어쩜 이러지.”

좁은 공간에 뜨거운 숨이 쏟아진다. 맞닿은 가슴에서 쿵쾅거리며 뛰는 심장이 느껴진다. 절대 지금이 거짓이 아니라고 항변하는 감정에 동화된다. 이진언은 김유겸이 오롯이 쏟아내는 환희의 파도에 몸을 맡겼다. 사실은 풍랑에 떠밀려 가는 걸 죽도로 싫어하는 성격인데, 김유겸의 감정의 파동에는 조용해 동조했다. 그걸 알아서 김유겸은 이진언을 안은 팔에 더욱 힘을 주었다.

“어떻게 이러죠.”

누군가에게 답을 구하는 물음이 아니었다. 마음에서 밀려올라 오는 감정의 파도는 드높고 거셌다. 잠재워지기는 하는 걸까 싶을 만큼 격동한 감정이 온몸에서 흘러내린다. 타인이 목격해도 지금 이진언을 향한 김유겸의 마음을 고스란히 표현 가능할 듯했다.

정말은 붉은 정염의 불꽃이 넘실거린다.

“도대체 어떻게,”

“뭐가.”

자꾸만 무언가를 물어보는 김유겸의 모습에 이진언이 드디어 반응을 보였다. 아까보다 조금은 진정된 모습을 보이는 김유겸의 등을 조금 전과 동일하게 쓰다듬었다. 마치 아이를 어르고 달래는 자비의 손길 같았다. 그제야 김유겸은 속에서 올라오는 열정의 불꽃을 아주 조금 잠재웠다. 정말 정말 조금일 뿐이었지만, 지금은 이 정도만으로도 이진언을 똑바로 보는 게 가능했다.

“이렇게 사랑스럽지.”

여과되지 않은 순수한 감탄사.

제 얼굴을 빤히 바라보며 낯간지러운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김유겸의 모습에 이진언은 가만히 숨을 낮췄다. 언제고 자신의 마음을 가감 없이 표현하던 김유겸이었지만 지금 만큼은 다가오는 공기가 달랐다. 축축하고 눅눅한 대기가 이진언의 피부에 달라붙었다. 마치 온몸에 끈적끈적한 진액을 뒤집어쓴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인간은 피부로도 숨을 쉰다는데, 거짓말 같았다. 그만큼 지금은 숨쉬기가 힘들었다.

“진짜 미칠 거 같아요.”

좁은 화장실 칸에서 성인 남자 두 명이 기대고 서 있으려니 역시나 공간이 너무 협소했다. 다른 때였다면 몸을 떼어냈을 이진언이건만, 어째 오늘은 가만한다. 외려 팔을 들어 올려 김유겸의 허리를 감싸 안은 뒤, 너른 가슴팍에 뺨을 비볐다. 답지 않은 행동에 김유겸의 심장은 더욱 크게 날뛴다. 이진언은 김유겸의 가슴에 귀를 기울인 채 유난히 고동하는 심장 소리에 집중했다.

“아, 진짜,”

지금 이대로 잡아먹었으면 소원이 없겠다. 김유겸은 생각했다.

답지 않게 애교 아닌 애교를 부려오는 이진언의 모습에 심장이 너무 시끄럽다. 이곳이 학교라서 정말이지 유감이다. 학교가 아니라면 당장 자신이 얼마나 이진언을 사랑하는지 몸으로 표현할 텐데 말이다. 이럴 때는 자신이 이성의 인간이라는 사실이 싫다. 사랑이라는 감정에만 휘둘려 살고 싶은데 이성이 자꾸만 태클을 건다. 불만이다.

“형 오늘 잠 다 잤다.”

내일 치를 시험이 중요하다는 사실은 안다. 알지만, 용납해주고 싶은 마음은 없다. 지금처럼 자신을 도발해놓고 오늘 각자의 집에서 잠들라는 건 고문이다. 애초에 고문당하려고 이진언의 곁에 머물겠다고 선언한 게 아니다.

“누가 재워는 준대?”

“형 나한테 약한 거 다 알거든요.”

한번 뻗대는 성격도 안다. 말을 저렇게 해도 은근슬쩍 집에 발을 들이밀면 못 이기는 척 받아준다. 처음에는 까탈스러운 성격이라고 생각했는데, 알면 알수록 줏대 곧은 성품이었다. 이 척박한 세상에 본인의 줏대를 지키며 살기가 얼마나 힘든지 알아서 더 이진언이라는 사람에게 끌리는 건지도 모른다.

사람은 누구나 손해 보고 싶어 하지 않는다. 자신도 마찬가지다. 손해 볼 일이 생기면 은근슬쩍 자리를 회피했다. 그게 편했다. 주류라는 사람들과 어울려 불의를 보고도 못 본 척하는 게 쉬웠다. 모두가 그렇게 산다고 믿었다. 이진언을 만나기 전까지는 분명 그랬다. 이진언을 만나고 나서 변했다.

과거에 자신이 행했던 일이 부끄러운 일이라는 걸 알았으며, 침묵은 동조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쉬운 길과 올바른 길의 갈림길에서 누구도 쉽사리 바른길을 선택하지 못할 텐데도 이진언은 그랬다. 정도를 지키려 노력했다. 그런 모습이 자꾸만 자신 안에 박혀와 절대 이이를 놓아주지 못하도록 종용했다.

“말은.”

투박하게 타박하면서도 이진언의 얼굴은 웃는 낯이었다. 두 손으로 김유겸의 볼을 쭉 잡아 늘이는 손길에는 애정이 듬뿍 함유되었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교제 상대가 이런 곳에서 급박하게 해 오는 키스를 극혐하리라는 걸 너무나 명확하게 알게 하는 사람이었는데, 김유겸에게 한해서는 정말 선이 너무도 많이 희미해졌다. 이러한 사실을 하나씩 확인할 때면 김유겸의 가슴은 희열이 들끓었다. 정말 지금 당장 이진언을 어떻게 해버리고 싶은 욕구가 치솟을 정도다.

“아, 진짜 여기가 학교인 게 천추의 한이다.”

아무래도 아랫도리 사정이 급해진다. 바로 눈앞에서 사랑하는 사람이 자애로운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데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는다면 사나이 김유겸의 자존심이 상할 일이었다. 김유겸은 신체 건강한 20대 청춘이었고, 위대한 청춘에 당면한 20대 남자의 사랑은 육욕적이었다. 발딱 하고 아래에서 느껴지는 욕망에 이진언의 한쪽 눈썹이 삐죽 위로 올라갔지만, 김유겸은 외려 작은 몸을 더욱 꾹 품에 끌어안았다. 맞닿은 가슴이 더욱 비좁아진 틈을 타고 아래에서 너무나 생생하게 상대가 발기하는 게 느껴진 이진언은 그만 푸흣하고 웃어버렸다.

“빼고 와.”

자신을 한계까지 몰고 간 건 누가 뭐래도 이진언이었다. 이것은 너무나 명백하고 정확한 사실이었지만 불만을 토로하면 안 되는 사실이었다. 굉장히 산뜻하게 빼고 나오라고 명령하며 좁디좁았던 화장실을 나서는 이진언의 뒷모습에서는 당장의 상황에 닥친 상대방을 향한 고민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진언이 빠져나가 온기가 사라진 공간에 덩그러니 혼자 남겨진 김유겸은 씁씁후후 심호흡했다. 눈을 꾹 감고 손을 아래로 내렸다. 손안 가득 자신의 심경을 알려주는 열기가 포착됐다. 아, 하는 소리와 함께 힘차게 용두질이 시작됐다.

***

“너무해.”

김유겸이 화장실에서 나온 건 한바탕 아래에서 물을 뺀 뒤로도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였다. 홀로 먼저 화장실을 떠났던 이진언이 하도 애가 안 오니까 들어가서 찾아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 때쯤 김유겸은 얼굴이 시뻘겋게 익은 채로 등장했고, 모두의 이목을 집중했다.

걱정된 마음에 고개를 빼꼼 들어 바라보니 자리에 돌아온 김유겸은 그대로 철퍼덕 책상에 엎드리며 난데없이 이진언을 향해 원망의 말을 쏟아냈다. 이진언은 고개를 갸웃했다. 무엇 때문에 저에게 원망을 쏟아내는지 모른다는 태도에 김유겸은 홱 고개를 반대로 돌렸다. 누가 봐도 나 삐졌어요-, 하는 몸짓이었다. 다 큰 개가 주인에게 반항하는 모습 같기도 했다. 그냥 마냥 귀여웠다.

“너무 매정해.”

“공부 중이었잖아.”

“진짜 집에 가기만 해보라지.”

다소 원망 어린 말투를 보아서 안에서 꽤 오랜 시간 공들여야 하는 일이 발생한 모양이었다. 무엇 때문에 늦었는지 대충 예상돼서 더는 아무런 타박하지 않고 이진언은 얌전히 책으로 시선을 돌렸다. 김유겸은 더는 이진언을 보채지 않고 옆에서 얌전히 자리했다. 때문에 두 사람은 조용히 서로의 일에 집중했다.

“으읏, 자, 잠, 유-,”

도서관이 폐장될 때까지 김유겸은 이진언을 보채지 않았다. 마치 폭풍전야처럼 조용한 김유겸이 이상했지만, 일단 공부가 우선이었던 터라 이진언은 크게 김유겸의 태도를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어차피 집에 갔을 때 김유겸의 행동을 받아주는 것으로 보상할 계획이었다. 이런 마음을 알아차리기라도 했는지 김유겸은 자취방에 도착하자마자 이진언을 몰아붙였다. 딸깍, 문이 닫히자마자 바로 입술을 물더니 그대로 이진언을 밀었다. 순식간에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바닥에 깔렸다.

“으읏,”

입술을 허겁지겁 삼킨 김유겸은 곧 이진언의 목줄기에 혀를 대였다. 순식간에 허리에서 올라오는 짜릿한 감각에 이진언은 숨을 집어삼켰다. 김유겸을 만나기 전까지는 정말 성적으로 담백했다. 옆에서 박지운이 너 정말 괜찮냐고 은근히 걱정할 정도였다. 박지운의 걱정이 무엇인지 모르는 바는 아니었지만, 모르고 살아도 괜찮을 거 같아서 그때는 애써 둔감한 제 몸을 외면했었다. 평생 섹스 따위 하지 않아도 좋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과거의 생각은 지금에 와서는 완전히 뒤바뀌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김유겸과 처음 섹스한 날 이후로 변했다.

“손, 치워요.”

아래에서 올라오는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는 감각에 손을 들어 눈을 가렸더니 이내 탁한 목소리가 치우라고 명령한다. 두근두근 심하게 뛰는 심장을 인지하며 눈가를 가린 손을 치우니 바로 앞에 수컷의 얼굴을 한 김유겸이 보였다. 잔뜩 가라앉은 눈동자와 거친 바람이 절로 올라오는 뜨거운 숨결에 평소보다 붉게 달아오른 체온은 야생의 발정 난 수컷의 표현이었다. 허리 저 아래에서 올라오는 본능에 따라 저를 취하는 김유겸의 얼굴이 지독하리만치 야했다.

“으윽,”

꽉 다물었던 바지 버클을 어느새 풀어버리고 안으로 쑥 들어온 손이 가볍게 톡 튀어나온 남성을 그러쥐었다. 욱, 하고 등이 튀어 오르지만 약간의 아픔과 함께 드는 감각은 분명 머리를 어질어질하게 만드는 쾌감이었다. 아랫입술을 꾹 내리누르며 가슴에서 올라오는 신음을 삼키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어느새 헐렁해진 다리를 매만지는 손에 띤 열기에 온몸이 취했다. 급박한 마음을 알리듯 평소보다 급하게 여기저기 몸에 도장 찍는 입술은 꺼끌꺼끌했다. 입술이 트기 시작했다.

“으읍, 으으음,”

분홍빛 돌기를 덥석 문 김유겸은 한곳을 집중적으로 빨았다. 하얀 가슴 위에 진분홍색으로 톡 튀어나온 돌기의 시각적 폭격이 어마어마했다. 그곳을 한입에 물고 비틀면 이진언의 허리도 같이 비틀렸다. 알고 그러는 거 같지는 않지만, 즉각적으로 보이는 반응 하나하나가 김유겸에게는 자극이었다. 새하얀 눈밭에 한 떨기 수줍은 난초처럼 볼록 올라온 붉은 돌기는 확실히 청초했다.

“아, 형, 나 급해요.”

평소라면 느긋하게 이진언의 몸을 즐길 김유겸이었다. 첫날밤 이후로도 두 사람은 곧잘 살을 맞대고는 했다. 혹시라도 이런 행위를 싫어할까 봐 김유겸이 눈치를 살폈지만, 이진언은 특별히 혐오한다는 몸짓은 보이지 않았다. 자신을 밝히는 놈으로 볼까 싶어 그동안은 나름대로 자제하고 인내했지만, 오늘만큼은 힘들다.

무엇보다 이진언이 최초로 자신을 좋아한다고 해준 날이다. 그간 행동으로 표현했던 사람이었는데 오늘은 확실히 말로 들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말이 아니라 글이었지만 어쨌든, 김유겸에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아플지도 몰라요.”

혹시 몰라 상비해 다니는 콘돔을 찾아 물어뜯어 자신의 물건 위에 잘 씌우면서 김유겸이 미리 양해를 구했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허리를 붙잡혀 그대로 바닥에 눕혀진 채 옷이 반쯤 벗겨진 이진언을 가만히 구경하노라니 정말 아래에서 피가 들끓었다. 평소라면 이진언을 위해 상냥한 행위를 구사했을 테지만 오늘은 진짜 힘들겠다. 마음에서 끓어오르는 열정을 고스란히 토해내기만 해도 벅차다.

“그래,”

벗겨놓은 맨살 여기저기를 마구 문지르며 선언하는 꼴이 정말 오늘 단단히 날 잡았구나 싶었다. 내일 치를 시험이 정말 중요하다는 걸 알지만 오늘의 김유겸을 만류하기는 정말 불가능해 보였다. 또, 저도 궁금했다. 감정이 폭발하는 날의 김유겸이 어떻게 변하는지 말이다. 보지 않아도 난폭할 게 뻔한데, 그때의 행위가 저에게 어떤 느낌으로 다가오는지 알아야 했다. 혹여 아주 작게라도 과거의 상처를 답습한다고 느껴진다면 더는 교제하는 게 불가할 테니.

“원하는 대로 해봐.”

알기 위해서는 체험해야 했다. 어림짐작으로 무작정 김유겸을 부정하면 안 된다. 이것은 교체 초반부터 이진언이 해온 생각이었다. 속으로 이런 생각 했다는 걸 알면 당연히 김유겸이 화를 낼 것이 자명해 굳이 발설할 계획은 아니었지만, 역시나 확고히 해두는 편이 좋겠다. 오늘은 그런 결심을 실행하는 날이다.

“무르기 없어요.”

허락이 떨어지자 김유겸은 그대로 허리 펴고 일어나 옷을 벗어 던졌다. 원룸이 좁아 다행이었다. 침대까지 가는 길이 길었다면 아까 학교에서부터 현재를 기대해 잔뜩 발기한 성난 성기가 터질지도 몰랐다. 자신의 인내가 이토록 짧았던가 싶었지만 뭐 상관없었다. 이진언이 허락했으니 이제 마음껏 사랑할 시간이었다.

“으으윽--!!”

평소라면 아래를 풀어주기 위해 무슨 짓이라도 했을 김유겸이었다. 젤은 물론이고 손가락으로 몇 번이나 밑을 들쑤셨다. 원래가 입구로 만들어진 곳이 아니니 다른 용도로 쓰려면 그만큼의 노력이 필요했다. 오늘은 달랐다. 몇 번 몸에 입술 도장을 찍은 게 다였다. 늘씬하게 늘어진 다리 가운데에 자리 잡더니 이내 옆으로 쫙 벌렸다. 활짝 벌어진 틈새에 이진언이 뭐 하지도 못하는 사이 쿡, 구멍이 벌어졌다.

“으읍-!!”

신음이 절로 올랐다. 뱉어내지는 못했다. 쿡, 하고 박았지만, 평소보다 덜 풀린 구멍은 다른 때와 똑같이 입을 꾹 다물었을 뿐이었다. 이래서는 어디 들어오기나 할까 싶었다. 이진언의 이런 생각을 알아차렸는지 곧 굳센 김유겸의 손이 허리를 부여잡았다. 평소에는 남자치고는 좀 곱다 싶을 정도로 예쁘게 생긴 손가락이 지금만큼은 굳게 날이 선 칼날이 되었다.

모양이 예쁘다는 뜻이지 결코 크기가 작다는 말이 아니었던지라 김유겸은 손아귀 힘도 세었다. 곱고 예쁘지만 굳센 힘으로 허리를 부여잡은 김유겸은 그대로 이진언의 몸을 아래로 쿡 내렸다. 곧 윽, 하는 신음과 함께 두툼한 귀두관이 이진언의 몸속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아, 윽,”

“힘, 좀, 빼요. 찢어지겠어….”

평소에 풀어준다고 풀어줘도 쫄깃한 촉감을 자랑하고는 하던 곳이었다. 안으로 들어갈 때마다 마치 흡착판이 달린 듯 착하고 달라붙어 김유겸을 몰고 갔었다. 그런 곳에 부족한 전희 뒤로 삽입하려니 압박감이 상당했다. 안으로 확 좁아 드는 감각에 하마터면 좆이 부러질 뻔했다. 아니 사실은 부러진다는 표현보다는 찢어진다고 묘사하는 게 맞을지도 모른다. 흔히들 피가 몰린 성기가 단단하다고 예상할지 모르지만 어쨌든 그곳도 피부였다. 잠시 강도가 단단해졌을 뿐, 언제 찢어져도 하등 이상하지 않다.

“너무, 너무,”

풀어주지 않아서 그런가, 너무 확 조였다. 아플 정도는 아니었는데 확실히 평소보다는 좁아 든 통로에 김유겸은 한쪽 눈을 찡그렸다. 아무래도 좀 풀어줘야 할 거 같아서 몸을 들이밀다 말고 허리를 뒤로 뺐다. 밖으로 빠지는 기둥이 길어지자 마치 아쉽다는 듯 내벽이 들러붙었다. 방금까지만 해도 들어오지 말라는 듯 쫙쫙 밀어내듯이 오물거리더니 나가려고 하니까 또 붙어오는 모습이 적잖이 기특했다.

“너무 조여요.”

흐음, 신음이 흘렀다. 지금의 기분을 나쁘냐고 묻는 사람이 있다면 답지 않게 머리를 한 대 때렸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이진언 속에 들어간 곳은 신체에서 별로 많은 면적을 차지하지도 않았는데 마치 자신의 몸 전체를 지배하는 것만 같은 착각이 일었다. 짜릿하고 저릿했다. 작은 곳에서 느껴지는 감각에 사람이 미치는 게 순식간이구나 싶었다.

“으으,”

조인다고 말했지만, 이진언은 듣지 않았다. 애초에 아래에서 올라오는 감각이 평소와 달랐다. 보통 때는 한껏 풀어져 노곤할 때 확하고 치고 들어오는 걸 즐겼는데 지금은 빡빡한 채로 진입해서 구멍이 더 긴장했다. 긴장하다 보니 김유겸의 몸을 이물질로 판단해 밖으로 배출해내려고 내벽이 연속 출렁이며 움직였고, 길이가 월등했던 김유겸의 기둥을 짓씹듯 다지는 효과를 가져왔다. 꾹 하고 말아 문 통로가 너울거리며 춤을 추니 김유겸으로서는 정말 돌아버릴 일이었다.

“아, 난 몰라, 이제.”

분명 자신은 기회를 주었다. 그것을 날려 먹은 건 이진언이었다. 머리에 번개가 튀었다. 꼬리뼈에서 시작된 감각이 척추뼈를 타고 빠릿하게 올라오기 시작했다. 이 감각이 머리에서 터진다면 필시 뇌수가 흘러내리고 온몸이 흐물거릴 게 자명했다. 무서웠지만 한번 느껴보고 싶었다. 과단한 용기가 생성됐다. 뒤로 한껏 빼냈던 허리가 앞으로 푹 박혀 들어가는 건 순간이었다.

“윽-!”

퍽, 박히는 강인한 몸에 이진언은 허리가 튀었다. 갑자기 급격해지는 박자에 다리가 절로 허공으로 튀어 올랐다. 마치 갓난아기처럼 몸을 옹송그렸다. 굳건한 육체 안에 갇혀서 몸을 웅크려봤자 눈앞의 사람을 꽉 끌어안는 꼴밖에 되지 않았다. 이진언은 김유겸의 목을 끌어안은 손에 힘을 주었다. 아래에서 올라오는 생경한 느낌이 거칠어지면 거칠어질수록 몸이 배꼽을 중심으로 쪼그라드는 기분이었다. 으윽, 울대뼈에 걸려서 나오지 않는 신음에 가슴이 답답했다.

“어깨 물어요.”

평소와 다른 반응을 알아차린 김유겸이 어깨를 내려주었다. 제 몸만 아프면 아팠지 김유겸까지 아프라고 하고 싶지 않았던 이진언은 고개를 가로저어 강하게 부정의 뜻을 밝혔지만, 이내 퍽 안으로 들어오는 세찬 몸짓에 눈앞의 어깨를 꽉 물어야 했다. 순간 어깨 쪽에서 느껴지는 통증의 강도에 김유겸은 한쪽 눈을 계속 찡그렸지만, 안으로 박차를 가하는 허리를 가만두지는 못했다.

퍽퍽퍽퍽, 강인한 허벅지와 말랑이는 엉덩이가 접촉됐다가 유리되는 순간의 소리가 살벌하게 공기 중에 울려 퍼졌다. 소리는 한곳에 머물지 않고 계속해서 사방으로 전염되었다. 점점 농도가 짙어졌다. 애써 안으로 뭉쳤던 꽃잎이 활짝 개화하면서 사방에서 노염 쩍은 내음이 진동했다.

“으으으으읏,”

이진언이 김유겸에게 제 몸을 모두 의탁해왔다. 자꾸만 팔에 힘이 들어가 김유겸을 끌어안게 된다. 착한 김유겸은 아플 텐데도 이진언의 행동에 맞춰서 상체를 내려주었다. 입술을 감쳐물었다. 으으읍, 목에서 차마 신음이 되어 나오지 못한 숨이 도로 폐부로 기어들어 갔다. 헉헉헉, 거친 숨결이 목에서 머물며 호시탐탐 밖으로 나올 기회만을 노렸다. 끅끅 신음도 침음도 아닌 소리에 김유겸이 자비롭게 입술을 떼어주어서야 이진언은 한숨 같은 소리를 밖으로 배출해내며 눈을 꾹 감았다.

“아, 예쁘다.”

쪽쪽쪽, 김유겸의 입술이 이진언의 꽉 감은 눈으로 쏟아져 내렸다. 이내 눈에서 뺨으로, 뺨에서 턱밑으로, 턱에서 목으로, 목에서 어깨로 이어졌다. 다른 데는 괜찮았는데 어깨에 입술이 닿은 순간 이진언의 구멍이 더욱 안으로 오그라들었다. 으읏, 구멍이 수축하면서 커다란 성기를 더욱 옥죄어 김유겸은 이진언의 귓가에 신음을 뱉었다. 더운 숨을 지닌 낮은 숨결이 이상하게 간지러워 이진언은 눈을 더욱 꼭 감았다. 이상한 감각이었다.

“예뻐 죽겠다.”

섹스할 때 김유겸은 항상 이진언에게 예쁘다고 말했다. 지금 너를 안은 사람이 자신이라는 걸 상기시키듯 꼭 말을 걸고 봤다. 김유겸의 목소리가 들려서야 이진언은 안심했다. 행위 중에 허리 뒤가 서늘해지며 머릿속이 차가워지고 스멀스멀 방문 너머에 머물던 어둠이 발밑으로 접근하려고 하면, 언제나 김유겸의 밝은 빛을 머금은 목소리가 어둠을 물리쳤다. 그때가 돼서야 이진언은 알았다. 나는 지금 사랑을 하고 있구나. 이 생각이 들면 머리에 환희가 들어차고 사방에 빛이 뿜어져 나왔다. 바로 그때가 이진언의 사정 순간이었다.

“오늘은 형이 빠르네.”

슉, 말랑거리는 성기 끝이 벌어지며 백탁액이 튀어나와 이진언의 가슴에서 번들거렸다. 형광등 아래에서 보이는 맨들맨들한 액체의 느낌은 다소 끈적임을 동반했다. 시각적으로만 봐도 점성이 짙어 보이는 액을 꾹 눌러 가슴에 펴 바르면서 김유겸이 짓궂게 말하고 씩 웃었다.

오늘따라 심술궂은 얼굴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 잠,”

어디까지 여유롭나 보자, 라는 마음이 들어서 엉덩이에 힘을 주었다. 안 그래도 처음부터 풀어주고 들어온 게 아니라서 평소보다 더 조이던 내벽이었는데, 이진언이 마음먹고 엉덩이에 힘을 주자 좁아지는 속도가 어마무시했다. 김유겸은 순식간에 으아, 소리 지르며 이진언의 얼굴 양옆에 팔을 짚었다. 쇄도하던 몸짓도 잊고 팔뚝을 부들부들 떠는 몸짓으로 보아 지금의 느낌이 꽤 당혹스러운 거 같았다.

“하지 말아 봐요.”

“내가 뭘.”

“아, 잘못했으니까….”

너무 꽉 옥좨서 혹시나 이대로 끊어지는 건 아닌지 두려울 정도였다. 섹스하다가 성기가 끊어졌다는 말은 듣지 못했으니 그럴 리가 만무하다는 걸 알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불안감이 생성됐다. 살짝 알알한 감각에 발끝에서부터 짜릿하게 전기가 통했지만, 불안감에 마음껏 즐기지도 못하겠다.

“아, 진짜 조여….”

한번 하겠다고 마음먹은 이진언을 만류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엉덩이에 힘을 꽉 주고 어서 사정하라고 독촉하는 행위도 마찬가지였다. 이제는 숫제 오물거리며 내벽이 인위적으로 울렁였다. 쇄도하던 몸을 정지하고 가만히 허공에 허리를 대고 섰는데, 갑자기 아래에서 울렁이며 내벽이 수축과 이완을 같이 했다. 가만하기만 해도 성기에 자극이 와 닿았다. 아, 이건 정말 못 참겠다. 김유겸은 눈을 꾹 감았다. 그와 동시에 사정했다.

“이런 건 도대체,”

평소처럼 극강의 고도에서 사정한 게 아니라서 쾌감을 느끼지 못할 줄 알았다. 오해였다. 가만한 상태에서 발기한 성기의 기둥을 쫄깃하게 감싸 쥔 뒤 사방에서 수축과 이완을 반복하는 감각은 남자를 미치게 했다. 김유겸은 온몸을 부르르 떨며 사정을 마친 뒤 바로 눈을 떠 이진언을 바라보았다. 지금 자신의 몸을 옥죄는 사람이 이진언이라는 사실을 믿기 힘들었다.

“어디서 배워온 거예요.”

오늘의 이진언은 정말 예측 불가였다. 학교에서도 그랬지만, 집에서도 그랬다.

애초에 이진언은 섹스할 때 무언가를 노력하거나 먼저 행동하지 않은 타입이었다. 김유겸이 해주는 애무를 받기만 하는 건 아니었지만, 다른 사람들처럼 적극적으로 애무에 나서지도 않았다. 이런 이진언의 행동에 불만이 쌓이기보다는 자신이 섹스를 요구했을 때 거절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만 여기던 김유겸이었다.

그랬던 사람이 오늘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자신을 사정시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내벽을 움직였다. 그동안 섹스를 위해 이런 행위를 할 사람이 아니라고 판단했었으니 지금이 퍽 놀라웠다. 섹스가 상호작용하면 더욱 즐거운 행위라는 건 경험을 통해 인지했지만, 이진언에게 강요하지 않을 예정이어서 더 그랬다.

“나 죽이려고….”

사정 후 근육이 풀려서 더는 힘을 주기 힘들어지자 김유겸은 그대로 이진언을 확 끌어안았다. 이진언의 작은 어깨에 머리를 부비며 품을 파고들었다. 가슴과 배, 허벅지 쪽만 허공에 노출된 상태여서 평소라면 부끄럽다고 할 사람이 오늘은 정말 무슨 일인지 김유겸의 행동을 전부 수용했다. 꽉 저를 안아오는 손길을 만류하지 않고 손을 들어 머리를 토닥인다.

“글쎄, 변덕?”

“이런 변덕이면 평생 당할래요.”

변덕이 심한 성격이 아니라는 사실은 누구보다 김유겸이 제일 잘 안다. 한번 아니라고 정한 일에 대해서는 번복하는 성질 또한 아니어서 한동안 마음고생 좀 했었다. 지금에 와 생각하면 그때 어떻게 버텼나 정신이 아찔해진다. 현시처럼 달콤한 시간을 체험해서 더 그럴지도 모른다.

“침대로 가요.”

평소보다 사정이 빠르기는 했지만, 결코 그것이 대충 행위에 임했다는 뜻은 아니었던지라 이진언은 사실 오늘 밤 더는 섹스하지 않으리라고 예상했다. 이진언의 이런 예상을 보기 좋게 파괴하며 잠시 달궈졌던 체온을 식히기 위해 부동이었던 자세를 풀며 옷을 집어 던진 김유겸이 제안했다. 옷을 입었을 때는 몰랐던 잘빠진 근육이 이진언 앞에서 죄 노출되는 순간이었다.

“또?”

“형 오늘 잠 못 잔다는 소리 농담으로 들었죠.”

아직도 바닥에 누워있는 이진언을 일으켜 세우며 김유겸이 씩 웃었다. 웃으니 얼굴이 한층 개구지게 변하는데 이상하게 짓궂은 것도 같았다. 잘생긴 얼굴이 눈앞에서 행복하다는 듯 웃으며 다음의 행위를 경고하는데, 이상하게 이진언은 가슴이 뛰었다. 원래라면 제 의사는 묻지 않고 이런 행위를 통보하는 걸 혐오하는 성격인데, 제아무리 김유겸에게 선이 희미해졌다고 하더라도 별로 반발할 마음이 들지 않으니 큰일이었다.

언제부터인가 김유겸을 보노라면 가슴이 뛰었다. 좋아한다고 인지하고 인정하고 나서도 가슴 설렘을 느끼지는 않았다. 편안했다. 김유겸과 함께하면 긴장하지 않아도 됐고, 어떤 모습도 좋아한다고 천명한 게 거짓은 아닌 듯 항상 똑같은 모습으로 저를 사랑해 줬다. 다른 사람 앞에서는 무게 잡고 올바른 길을 가려고 노력했지만, 스스로는 그런 제 성격이 결코 진심이라거나 진실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았다.

“싫어요?”

다리에 힘주고 서 있지 않으면 무너진다. 붕괴되고 싶지 않았다. 이제껏 제가 쌓아놓은 작은 세계가 파괴되지 않기를 바랐다. 이런 마음의 일환으로 누구도 제 안에 들이지 않았고 벽을 쳤다. 김유겸이라는 아이를 좋아한다고 인정하고 나서도 어느 정도 선을 규정하여 밀어냈던 이진언이었다. 다른 사람보다 조금 더 안에 들여놓기는 했지만, 완전히는 아니었다. 그것이 내내 마음에 걸렸었다.

“…아니.”

원래라면 화내야 하는 게 맞는데, 하지 않아야 하는 것도 맞는데.

이미 옷을 다 벗은 상태에서 보이는 아랫도리의 굉장함과 씩 웃으며 묻는 얼굴의 잘생김이 이진언의 고민을 훌훌 털어버리게 했다. 설마 제가 육욕의 지배를 받을 줄이야 알기나 했을까.

원래라면 성욕도 거의 없는 편이라서 사귄다고 하면 상대의 요구에 맞춰줘야 한다고만 예상했다. 즉, 제가 먼저 행위를 하자고 달려드는 경우의 수는 생각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상대가 김유겸이 아니었다면 어쩌면 이런 이진언의 예측은 적중했을지도 모른다. 김유겸에게 이진언이 모든 면에서 예외였다면, 이진언에게 김유겸은 전반적으로 열외였다.

“싫지 않아.”

“…….”

“좋아.”

솔직하기가 어려웠다. 이제껏 뭐든지 솔직하게 내뱉지 못하고 가슴속에 숨겨놓으며 살아와서 더 그랬다. 울분의 한은 아직도 가슴속에 남았지만 발설해서는 안 됐다. 원하는 대로 했다가는 저뿐만이 아니라 타인이 상처받는다. 수없이도 많이 목도해서 이제는 표출하는 것보다 은닉하는 게 편했다. 기껏 내비친 진심이 짓밟히고 고통에 신음하는 건 과거면 충분한 까닭이었다.

“형, 오늘 진짜 잠 못 잔다.”

그랬던 것이, 김유겸 앞에서는 자꾸만 변한다. 진심을 오롯이 쏟아내도 받아준다. 씩 웃으며 오늘 밤 불면을 예고하는 김유겸의 태도에서 이진언은 또 가슴 뭉클함을 느꼈다. 누구보다 진심을 많이 말하고 표현하라고 할 사람이었다. 자신은 너의 모든 것을 사랑할 준비가 되었다고 끝없이 속삭인다. 빈말이 아니라 정말 제 온 것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사랑할 사람이었다.

“재우지 마, 그럼.”

수줍게 내비친 진심에 씩 웃는 얼굴로 화답한다. 다소 딱딱한 매트리스에 몸을 뉘며 눈을 감았다. 김유겸의 따듯한 체온이 제게로 쏟아진다. 금방 달뜬 열이 온몸을 휘감았다. 이진언은 눈앞의 육체를 꽉 끌어안았다. 아까부터 거세게 뛰기 시작한 심장이 너무 시끄러웠다. 이러다가 꼭 김유겸에게 다 들리지 싶을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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