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으읍, 읏….”
연신 입에서 신음이 흘렀다. 귓가에 스며드는 소리에 김유겸의 정신은 아득해졌다. 아리따운 노랫말처럼 흘러들어오는 소리에 허리가 저릿하다. 술 먹은 이성이 간당간당했다. 왜 교제 시작 후 외박을 자제했는지에 대한 이유는 잊었다. 지금은 맞닿은 가슴에서 감지되는 따듯한 온기만이 자신을 살게 하는 유일이었다. 지금 이것을 잃어버린다면 죽도록 한 슬픔에 잠겨 허망의 바다를 영원히 유영할지도 몰랐다.
정말은 지금 자신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
“진짜, 너무 예뻐.”
알코올의 힘은 위대했다. 사실 술을 많이 마시지도 않았다. 최후의 이성은 남았다. 김유겸의 판단은 그랬지만, 현실은 달랐다. 이성의 벽이 가늘어졌다. 평소에는 자제하고 억제하던 인내가 붕괴되기 시작했다. 택시에서 내려 이진언의 자췻집까지 걸어오는 동안 얇게나마 유지되던 이성은 얼굴을 마주한 순간 무너졌다. 말간 얼굴을 보자마자 속에서 화재가 일었다. 그대로 손을 뻗어 이진언의 허리를 감싸고 품에 가뒀다. 순순히 딸려오는 작은 몸의 입술을 찾아 물었다. 이진언은 반항하지 않았다.
“술 많이 마셨어.”
“음, 조금요?”
얼굴을 보자마자 가타부타 설명 없이 입술부터 들이대는 어린 애인의 치기를 이진언은 나무라지 않았다. 외려 손을 뻗어 목에 걸고는 꽉 끌어안았다. 맞닿은 가슴에서 자맥질하는 심장의 고동이 감지됐다. 날씨가 점점 더워짐에 따라 옷감이 얇아졌다. 잘만 하면 뽈록 융기한 돌기가 옷감 겉면에서 잡혀질 것도 같았다.
“냄새나요?”
한참을 부드러운 입술을 물고 빨았더니 조금 정신이 들었다. 현관에서 끌어안았는데 어느새 정신을 차리고 보니 침대 위였다. 작은 몸을 아래에 깔고 위에서 내려보노라니 마음이 싱숭해졌다. 타박하지 않고 잔잔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이진언의 표정 때문에 더 그랬다. 작고 하얀 손끝이 톡톡 김유겸의 얼굴선을 덧그렸다. 말로 하지 않는 자상한 타박이었다.
“조금만 마셔.”
이미 지나간 과거에 대한 타박보다는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꾸중이었다. 야단치는 목소리가 너무 잔잔해서 상대방이 호통으로 알아들었을까 의심스러웠지만 말이다. 쪽쪽, 야단하는 와중에도 얼굴 곳곳에 내려앉은 입술로 볼 때 김유겸은 확실히 지금 혼난다고 인식하지 않았다.
“친구가 우울해해서요.”
“왜?”
“썸 깨졌대요.”
친구 만난다고 보고했을 때 무엇 때문인지는 말하지 않았다. 솔직히 김동준의 고민은 사생활이었으니 말할 생각이 들지 않는 게 당연했다. 지금 같은 분위기가 아니었다면 이진언도 안 물었을지도 모른다. 현재 분위기가 분위기다 보니 묻지 않은 이야기도 술술이었다. 이래서야 이진언 앞에서 거짓말해야 할 때 제대로 할까 싶었다. 연인은 서로 솔직해야 하는 게 맞지만 서프라이즈하고 싶을 때가 생기면 큰일이다 싶었다.
“위로는 잘 해줬고?”
머리를 쓱쓱 건드리며 묻는 말이 자상했다. 김유겸은 씩 웃었다. 열심히 머릿속을 휘젓는 손의 체온이 기분 좋았다. 분위기 타는지 답지 않게 상냥해진 이진언에게 마냥 어리광을 피우고 싶은 기분이었다.
“네.”
“하긴, 너 위로 잘하지.”
“내가 위로 잘하는 거 어떻게 알아요.”
“나한테 한두 번 했어?”
“나 형 위로한 적 없는데.”
정말이었다. 김유겸은 이진언을 위로하지 않았다. 위로라는 건 상대방이 슬픔에 처했을 때 행하는 행위였다. 김유겸이 아는 한 이진언이 슬픔에 처한 걸 못 봤다. 만약 목격했다면 위로가 아니라 해결하려고 했다. 되든 안 되든 일단 이진언의 눈에서 눈물 나는 꼴을 못 보는 김유겸이었다.
“있어.”
“언제요?”
진심으로 모르겠다고 묻는 김유겸의 모습에서 이진언은 푸스스 웃었다. 얘는 정말 다정한 게 습관이구나. 이 생각밖에 안 들었다. 정작 저는 김유겸의 다정한 위로에 얼마나 위안을 얻었는지.
“많지. 버스에서도 그랬고, 다른 애들이 내 소문 퍼 나를 때도 그랬고. 그때뿐이야. 나 힘들 때마다 네가 옆에서 쫑알쫑알 떠들었잖아.”
“아.”
몇몇의 장면을 설명해서야 김유겸은 멍청한 소리를 냈다. 손을 들어 머리를 긁적였다. 예상대로 그때의 행위를 위로라고 인식하지 않은 듯했다. 이진언의 슬픔에 공감하지 않았다는 뜻이 아니라, 자신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서 위로라 의식하지 않았다는 소리였다.
“싫었어요?”
혹시라도 지나치게 참견해서 싫은가 하여 슬쩍 눈치 보며 묻는다. 이진언은 픽 웃었다. 싫었다면 지금처럼 차분하게 이야기하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김유겸은 아직도 인지하지 못했다. 왜 나를 알아주지 않느냐고 짜증 내기보다는 이제부터 하나둘 알게 해주면 되지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성가심보다는 이해가 먼저 되니 확실히 제가 달라지기는 했다.
“싫었으면?”
넌지시 농담처럼 되물으니 안 그래도 아래로 내려간 눈이 축 처진다. 기가 팍 죽은 게 육안으로도 확인돼서 이진언은 피식피식 웃음이 샜다. 살짝 미소를 비추는 얼굴에 김유겸의 입술은 뾰족뾰족 날이 선다. 자신을 서운하게 하고 웃는 얼굴이 섭섭한 모양이었다.
“자제할게요.”
될지는 모르겠지만. 성격이라서 될 리가 만무하다는 걸 알면서도 자제한다고 말하는 모습에 이진언은 정말 크게 웃어버렸다. 뭐가 즐거운지 대소하는 이진언의 모습에 김유겸의 얼굴은 더욱 볼만해졌다. 조금만 더 놀렸다가는 삐져서 말 한마디도 안 할 기세라 이진언은 얼른 웃음을 갈무리했다. 머리를 쓰다듬는 손을 멈추지 않았다. 서운하면 그만하라고 머리를 쓱 뒤로 비킬 만도 한데, 서운한 건 서운한 거고 쓰다듬은 계속 받고 싶은지 김유겸은 머리를 뒤로 물리지 않았다.
“안 싫었어.”
의외로 솔직한 답에 김유겸은 다소 놀랐다는 듯 두 눈을 끔뻑이다가 이내 해사하게 미소 지었다. 웃는 얼굴이 예뻐서 이진언의 손은 오랫동안 김유겸의 머리와 뺨에 머물렀다. 김유겸이 저를 좋아하는 사실을 인지했지만, 지금처럼 확인받는 기분은 확실히 좋았다. 김유겸이 표현하는 것에 반만이라도 같이 해주면 좋을 텐데 잘되지 않아서 걱정이었다. 이런 마음을 발설하면 괜찮다고 할 김유겸을 알아서 굳이 애 마음고생 하게 말하지는 않을 예정이라지만 걱정은 걱정이었다.
안 그래도 낮에 만난 박지운에게 한 소리 들었다. 관계가 관계이니 밖에서 조심하는 게 맞기는 한데, 너무 몸 사린다는 평가였다. 김유겸 성격이 살가워서 다행이지, 아니었으면 싸워도 벌써 싸웠다고 했다. 박지운이 지켜보았을 때 둘의 사이는 전과 달라진 게 거의 없었다. 김유겸은 여전히 이진언에게 치댔고, 이진언은 마지못해 받아주는 형상이었다.
연막으로야 좋기는 하겠다만 감정이 문제였다. 전과 달라진 관계 정의에 네 행동에도 무언가 변화가 생겨야 하지 않냐고 박지운이 의문했다. 이진언은 대답하지 못했다. 김유겸은 변했다고 느끼는데 정작 당사자는 몰랐다.
“그럼 자제 안 할래요.”
하나하나 허락해 주면 되는 걸까. 이진언은 속으로 생각했다. 교제가 처음이다 보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게 솔직한 감상이었다. 이렇게 이렇게 해주세요라고 요구한다면 수용할 의사야 다분하다만, 문제는 그러한 요구를 하지 않을 김유겸이었다. 그걸 알아서 이진언도 나름 열심히 찾아서 행동하고는 하는데, 박지운의 눈에는 아직 한참 부족한 모양이었다. 너희 연애사에 자꾸 간섭하게 하지 말라는 말도 들었다. 딱히 틀린 말은 아니라 부정하지 못했다.
“이것도요.”
자제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김유겸이 재빠르게 쪽 입술을 붙여왔다. 살짝 닿았다 떨어지는 버드키스가 이어졌다. 쪽쪽쪽쪽, 몇 번인지 세지도 못할 만큼 얼굴 전역으로 확대되는 키스는 달콤했다. 살짝 알딸딸할 만큼 취한 김유겸의 애정표현이 간지러웠다. 입술에서 시작돼 뺨으로 이동하는 키스가 나쁘지 않아서 푸스스 웃으며 고개를 틀었다. 고개를 비틀면 멈출 줄 알았는데 김유겸은 계속 키스를 퍼부었다. 살짝 비튼 고개 때문에 불툭 튀어나온 목빗근에 입술이 닿았다.
“읏,”
이곳에 입술이 닿은 건 오랜만이었다. 상기하자면 지난번 삽입하지 않은 섹스 이후 처음이었다. 그동안 김유겸은 이진언에게 닿는다고 하여도 어딘가 자제하는 면모를 보였다. 필시 시작하면 끝을 보고야 말리라는 걸 알아서 인내하는 모습이었다. 인내하려고 노력하는 게 고마워서라도 더는 부추기지 말아야지, 하고 다짐했는데, 오늘은 약간 섭취된 알코올로 인해 그러한 판단이 흐려진 듯했다.
“으응, 으….”
그래서 지금이 싫으냐고 묻는다면 아니라고 답하겠다. 김유겸이 이 문제로 고민했던 만큼 이진언도 고심했다. 결과는 어차피 하나였다. 이진언은 김유겸을 받아주고 싶었다. 회피하고 싶다면 거절하면 그만이었다. 싫다고 하는 저에게 김유겸은 강요하지 못한다. 아니 애초에 거절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김유겸과 그런 의미로 살을 맞대는 게 싫지 않다는 소리다. 외려 좋았다. 비록 유린으로 상처받아 움츠러들었을지언정 본능이 아예 거세되지는 않았다. 김유겸을 만나서 되살아난 본능욕이기도 했다.
“하아,”
낮은, 쾌락 섞인 탄성이 들려왔다. 툭 불거진 목빗근을 따라서 하강하는 숨결은 더운 기운을 품었다. 혀를 내밀어 살짝 핥아 내렸을 때 이진언의 몸이 한번 움찔했다. 살짝 꿈틀거리는 몸을 다정한 손이 득달같이 달려와 다감하게 토닥였다. 그제야 이진언은 허리를 펴고 누우며 심호흡했다.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너무 긴장했다. 김유겸이 제 몸에 나쁜 짓을 하지 않으리라는 걸 알지만 마음과는 다르게 경계 반응이 나오는 걸 저도 어쩌지 못했다. 이러한 행위로 김유겸이 상처받는다는 사실을 알지만, 저도 어쩌지 못하는 자연적인 방어 태세였다.
“괜찮아요?”
잠깐이지만 빳빳하게 경직된 몸에 바로 걱정의 말이 들려왔다. 응, 작게 화답해주고 손을 들어 눈을 가렸다. 후우, 숨을 몰아쉬었다. 괜찮아, 작게 다시 응답했지만, 믿지 않는 눈치였다. 긴장했던 몸이 완전히 이완됐다는 걸 확인하고서야 눈을 가린 손을 아래로 내렸다. 시야 가득 걱정스러운 표정의 김유겸이 포착됐다.
“괜찮아, 정말이야.”
손을 들어 얼굴을 쓸어내리며 안도를 말했다. 어느새 어두워진 표정에는 후회하는 빛이 역력했다. 술에 취해 실수했다고 생각하는 거 같았다. 평소 김유겸의 주량을 잘 알고 또 저에게 올 때 만취하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믿는 이진언으로서는 저런 표정을 짓게 만들어서 미안했다. 그런 표정 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러면 또 속으로 자신을 탓할 김유겸을 알아서 그냥 웃었다. 손을 쭉 뻗어 목에 걸었다. 크고 따듯한 손이 등을 토닥였다.
“싫은 거 아니야.”
“알아요.”
“나도 좋아.”
“그것도 알지.”
싫어하지 않는 것도, 좋아한다는 것도 안다. 싫어하지 않지만, 좋아하지만, 매번 행위를 이어갈 때마다 거부 반응을 보인다. 마음은 수용하고 싶지만, 몸이 거부한다는 뜻이다. 감정을 자신을 향했지만, 육체는 준비가 덜 되었다는 의미기도 했다.
“상처받지 마.”
“형이야말로.”
서로를 가슴에 끌어안은 채로 다짐한다. 괜찮다, 괜찮다, 위로한다. 토닥토닥 등에서 느껴지는 움직임에 이진언은 눈을 감았다. 괜찮은 거 같은데. 이제 정말 괜찮은 거 같은데, 이렇게 한 번씩 괜찮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할 때마다 눈앞이 아득해지는 기분이다. 저가 이럴진대 김유겸은 어떨까 생각하니 마음이 좀 흐려진다. 아직 다 낫지도 않은 몸으로 교제를 너무 쉽게 허락했나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완전할 때 온전하게 받아주고 싶은데 그러지 못해서 미안한 마음이 컸다.
그래도 이제는 물리고 싶지 않았다. 전이었다면 너무 이르다며 도망할 궁리부터 찾았겠지만, 지금은 다르다. 김유겸이 좋은 아이라는 걸 안다. 수없이도 많이 확인했다. 단순히 좋은 사람이라는 이유뿐이었다면 포기가 쉬웠겠지만, 이진언이 김유겸을 허락한 건 이런 단순한 이유만이 아니었다. 이진언은 김유겸을 만나고 나서야 좋아하는 감정에도 종류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저에게 김유겸도 박지운도 좋은 사람이었지만 둘은 확실히 유형이 달랐다. 이진언은 박지운에게 욕망하지 않는다.
“아, 잠,”
한차례 폭풍 같던 시간이 지나간 후 김유겸의 손이 안착한 곳은 어쩐지 이진언의 팬티 속이었다. 괜찮다 괜찮다 느리게 읊조리던 손이 둥근 어깨를 쓸었고, 고개가 내려왔다. 이진언은 눈을 감았다. 아까 한번 움찔거렸던 몸이 이번에는 괜찮았다. 괜찮다고 계속 되뇐 효과인 듯했다.
입술을 계속 마주한 상태에서 김유겸의 손은 바빴다. 탄탄한 가슴을 쓸어내리더니 이내 망설이지 않고 쑥 아래로 하강했다. 집이라서 편안하게 입었던 바지 속으로 쓱 들어가는 걸 말릴 틈도 주지 않았다.
“으읏,”
탄력 좋은 마지막 의복을 헤치고 들어간 손은 이내 잡히는 살덩이를 꾹 쥐었다. 돌연한 감각에 화들짝 놀란 몸을 다정하게도 입 맞추며 달랬다. 감미로운 키스를 받으며 이진언의 온몸이 부르르 떨었다. 평소라면 이쯤에서 그만둘 애가 오늘은 집요했다. 아무래도 알코올이 좀 된 거 같았다. 이진언은 살며시 압박감이 감지되다가 회유되는 힘에 숨을 헐떡였다. 보통 같지 않고 조금 집요하게 구는 게 좋았다.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바로 행위를 중단했었다면 마음속 죄책감이 더욱 쌓일 게 뻔했다.
“다리 벌려 봐요.”
꾹꾹 손에 힘을 주는 바람에 다리가 모아졌다. 술은 전부 휘발된 거 같은데 어딘지 모르게 눅진해진 채 명하는 목소리에 등허리가 저릿해졌다. 아직도 가슴에서는 거부 반응이 나타나지만 아까 같지는 않았다. 이 정도는 의식적으로 참을만해서 이진언은 입술을 꾹 짓씹었다. 김유겸의 요청대로 딱 달라붙은 두 다리를 조금 유리했다. 맞붙은 살결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김유겸이 자리했다.
“괜찮으니까,”
아까와 똑같이 괜찮다는 말이 귓가에 내려앉았다. 동일한 단어였는데 와 닿는 감각이 달랐다. 조금 전에는 침착함을 유지한 파란색이었는데, 지금은 불꽃이 넘실거리는 붉은색이었다. 욕망이었다. 하나도 감추지 않고 오롯이 쏟아 내는 욕정이다.
“자, 잠, 읏,”
오늘 이진언은 맨정신이었다. 지난번에는 술에 취한 채였다. 그때는 지금보다 훨씬 쉽게 이성이 사라졌었다. 알코올의 힘이 위대하다고밖에 설명하지 못하는 행위였다. 오늘은 달랐다. 술에 취하지 않은 몸은 수치를 알았다. 아래에서 올라오는 쾌감이 머리를 찡하게 울려 정신을 놓고 싶지만, 이성이 붙잡았다. 윽윽, 목으로 올라오는 신음이 짓이겨진다.
“나예요.”
온몸이 수치로 벌게져 한계점에 임박하여 울고 싶어지려는 찰나, 마주 다가온 입술에서 속삭여진 구원이었다. 형의 유겸이예요. 귓가에 내려앉은 목소리가 너무 달아서 반항을 잊었다. 머리는 인지했지만, 몸과 합일되지 않아 생성됐던 거부 반응이 소멸하는 순간이었다. 무엇에도 취하지 않은 정신은 지금이 무척 두렵고 무섭다고 말했다. 애써 모른 척하며 김유겸을 받아들이지만, 역시나 쉽지 않았다. 어느새 몸이 벌벌 떨렸다. 저를 만져오는 손길이 김유겸이라는 사실을 알지만, 알아도 전역으로 퍼지는 파동은 어쩌지 못했다.
“형, 진언이 형.”
“흐읍, 흐으으읍,”
평생 이러면 어쩌지. 순간 덜컥 겁이 났다. 마음은 지금 당장 허락하고 싶은데 몸의 반응은 사뭇 달랐다. 머릿속이 암전이었다. 공황 상태에 빠지기 직전이었다. 귓가에 나지막이 들리는 목소리에 퍼뜩 정신이 들었다. 김유겸은 필사적이었다. 지금 너를 매만지는 이가 다른 누구도 아니고, 과거의 끔찍했던 기억에 자리한 상기하기조차 싫은 어떤 이가 아니고, 자신이라는 걸 피력했다. 너를 사랑하는 사람이고, 네가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강조했다. 사실 기대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이 다정한 주장이 먹혔다.
“괜찮아, 괜찮아.”
잠깐 흐려졌던 눈에 이지가 돌아오면서 이진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김유겸의 어깨에 고개를 처박고는 전율했다. 패닉까지 가지 않아 다행이었다. 죄의식이 걷어낸 몸은 본연의 역할에 충실했다. 술에 취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진언이 발기했다. 확실히 그때 술에 취해 이성이 흐린 채로 반응해서 맨정신에 하는 발기가 이토록 힘겨웠다. 이러한 사실을 알아차린 김유겸은 고개를 내려 이내 보이는 이진언의 목덜미에 쪽쪽 입을 맞췄다. 아까처럼 이진언의 몸이 또 움찔거렸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진언아.”
연신 쏟아지는 낮은 숨에 배인 욕망이 이제는 무섭지 않았다. 뜨거운 품에 안긴 채로 울고 싶었다. 목을 감싸 안은 팔에 힘을 주었다. 더욱 가까이 몸을 겹쳤다. 괜찮아, 괜찮아, 연신 귓가에 낮게 노래처럼 읊어지는 목소리에 정신을 집중했다. 파도처럼 울렁이던 불안감이 가셨다. 그제야 이진언은 제가 멀미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속이 울렁거리며 위장이 쪼그라들었다. 까딱 잘못했다가는 김유겸의 얼굴에 토할 뻔했다.
“진언아, 이진언.”
평소라면 반말하지 말라며 한소리 나와야 하는데 지금은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그만큼 이진언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오늘 술 마신 게 이진언이 아니라 김유겸이라서 다행한 일이었다. 평소라면 이진언이 몸을 움츠린 시점에서 두 번을 시도하지 않았겠지만, 알코올의 힘을 빌려 대담해진 김유겸은 진취적이었다. 완전히 이성을 놓은 게 아니라서 적당히 수위 조절하며 이진언을 몰고 갔다. 종국에는 임계점을 알아냈다. 두 사람 사이에서는 굉장한 쾌거였다.
“읏, 유겸아.”
“응, 나야.”
한 손으로는 발기한 예쁜 성기를 쓰다듬으며 다른 손으로는 붉게 물든 뺨을 쓰다듬었다. 고개를 들게 해 마주 보고 이내 입술을 집어삼켰다. 평소의 상냥한 키스와는 다르게 욕망 가득한 몸짓이었다. 미끄러지고 떨어진 습기 머금은 입술이 잔뜩 숨을 죽였다. 쭉쭉 내려왔다. 어느새 이진언을 침대에 눕힌 후 걸리적거리는 옷을 위로 들었다. 하얀 몸이 드러나자마자 쭉 흡입했다. 확실히 물컹한 느낌은 아니었다. 군살이라고는 자리하지 않은 몸은 오히려 탄탄하고 단단했다. 꾹 눌렀을 때 안으로 들어가는 게 아니라 힘주어 버티고 섰다. 말랑말랑하지 않았다. 그게 왜인지 더 흥분을 유도했다.
단단하고 매끄러운 피부에서 입술이 분리되지 않도록 한 김유겸은 마음껏 하얀 가슴을 돌아다녔다. 아까 입술을 마주했을 때 상상했던 일도 실행했다. 뽈록 튀어나온 색 진한 돌기를 입에 넣고 굴렸다. 으으윽, 생경한 소리가 이진언의 입에서 흘러나오며 허리가 허공으로 들렸다. 허벅지에 단단하게 힘이 들어가면서 발끝으로 이불을 훑었다. 온몸에 힘이 들어가 주먹을 쥐어 부들부들 팔을 떨지만 싫다고 밀어내지는 않는다.
“하아, 하아, 하아,”
“괜찮아요?”
잠시 이진언에게 유리되면서 김유겸이 물었다. 뜨거운 숨이 올라오는 가슴을 들썩이면서 이진언은 고개를 끄덕였다. 김유겸은 슬쩍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꼿꼿하게 고개를 치켜든 이진언의 하체가 보였다. 사정까지 하는 걸 보고 싶은데 처음에 느꼈던 거부 반응 때문인지 이진언은 쉽게 절정에 도달하지 못했다. 자신의 행동이 다소 충동적이라는 사실을 인지야 하지만 지금은 술김이라는 핑계로 더한 짓도 하고 싶었다. 더군다나 술에 취한 건 자신이지 이진언이 아니다. 얼마든지 만류가 가능한 사람이 여기까지 허용했다는 건 이진언도 어찌 됐든 끝을 보고 싶다는 뜻이라고 이해했다.
“잠깐만요.”
생각하고 결심하자 실행은 쉬웠다. 원래가 오래 고민하는 건 성미에 맞지 않는다. 이진언을 처음 봤을 때 그래서 행동했다. 친해지고 싶다고 생각했고, 재회했을 때 망설이지 않았다. 그랬던 결과가 지금 눈앞에 있다. 김유겸이 다시 한번 행동하는 게 이상하지 않다는 소리다.
“으윽-!!!”
순식간에 이진언의 몸에서 바지가 유리되었다. 동시에 속옷도 딸려 나갔다. 다소 탁한 형광등 불빛 아래 평소에는 꽁꽁 싸매고 다녔던 이진언의 하얀 하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술에 취해 삽입하지 않는 섹스한 날 이후 최초로 조우하는 모습이었다. 여전히 숨 막히게 희었고, 한결같이 서늘하게 아름다웠다.
“예쁘다.”
얼굴도 그랬지만, 몸도 그랬다. 정말 예쁘다는 소리가 절로 나오게 생겼다. 눈앞의 사람이 동성이라는 사실을 잊은 게 아니다. 이 사람이 남자라고 자각했어도 여전히 김유겸에게 이진언은 눈물겹도록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이런 사람을 탐하는 지금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이진언이 자신에게 욕망하고, 자신의 욕망을 받아준다는 사실이 정말 미치도록 좋았다.
“아, 김유…!!”
하여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퉁 튀어나온 성기를 봤을 때 망설이지 않았다. 고개를 쓱 숙여 한입에 머금었다. 이진언이 놀라서 벼락 맞은 듯 몸을 튀었다. 팔을 들어 김유겸의 등을 팡팡 두들겼다. 만류하는 몸짓이었지만, 애초에 김유겸은 이진언을 말을 들어줄 용의가 없었다. 이미 팽팽하게 부풀어 곧 탁하고 점액질을 뱉어놔야 하는 형상이었지만 어째서인지 분출하지 못하는 성기를 이제 그만 해방시켜 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발기는 하지만 사정은 죄악이라 여겨서 그렇다면 아니라고도 말해주고 싶다.
“그만, 그…,”
신음에서 긴박함이 감지됐다. 머리를 움직여 쭉쭉 빨아들이자 하얀빛 예쁘도록 곧게 선 기둥이 전율했다. 부들부들 떨었다. 이미 안이 꽉 차도록 발기한 기둥이 더욱 부풀어 오르는 걸 느꼈다. 김유겸은 더욱 세차게 곧게 선 살덩이를 입으로 빨았다. 팡팡, 등을 때리는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동안 배려한답시고 힘 조절했던 걸 잊었는지 꽤 매웠다. 상관하지 않았다. 지금 중요한 일은 이진언의 사정이지 따가운 등이 아니었다.
“아……!”
집요하게 아래를 공격한 끝에 항복을 얻어냈다. 입안으로 왈칵 정액이 쏟아졌다. 손을 들어 얼굴을 가린 채로 이진언은 김유겸의 입안에 액체를 뿜어냈다. 온몸만 부들부들 떠는 게 아니라 위를 향해 발딱 선 성기도 요동쳤다. 혹여라도 중간에 사정이 끊길세라 김유겸은 머리를 열심히도 움직였다. 입술에 힘주어 연속 자극을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마지막 한 방울까지 모조리 짜내어 목구멍 너머로 밀어 삼켰다. 미끌미끌한 점액질이 맛을 음미할 새도 없이 넘어갔다. 조금 아쉬웠다.
“하아, 하아, 하아, 읏,”
꽤 오랜 시간 공들여 사정한 이진언의 얼굴은 온통 땀투성이였다. 남들은 쉽게 하는 분출이 이진언에게는 너무나 힘겨운 투쟁이었다. 원해서 이리된 게 아님을 알아서 안타까웠다. 본연의 역할을 마치고 원래의 크기로 되돌아간 작고 하얀 성기를 보면서 김유겸은 잠시 침묵했다. 그럴 필요가 있었다고는 하나 이진언의 만류를 듣지 않고 일을 진행했으니 한 대 맞을 각오는 해야만 했다.
“형.”
혹시라도 잔류 물질에 몸을 떨까 봐 입가에 남은 흔적을 혀로 모조리 정리한 뒤에야 이진언을 불렀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잠시 숨을 고르던 이진언이 맑은 눈빛으로 김유겸과 눈을 맞췄다. 잘못을 알아서 쭈뼛쭈뼛 눈치 보던 김유겸은 다행히도 이진언의 얼굴에 그늘지지 않을 것을 확인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어 쉬었다.
“괜찮아요?”
아까와는 다른 의미로 내뱉어진 괜찮냐는 말에 이진언이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다고 확인해 주어서야 고개 숙여 쪽 입 맞췄다. 미끌거리는 액체가 남아서 혹여라도 몸을 떨까 싶었는데 이진언은 잠깐 눈을 찌푸릴 뿐, 다른 반응은 보이지 않았다.
“나 술 다 깼어요.”
혹시라도 나쁜 생각 할까 봐 조금 전이 술김이었다고 고백했다. 술에 취해 충동적으로 행동하기는 했지만, 오롯이 주취 중에 발생한 일이라고 하기는 애매했다. 그래도 일단은 취해서 생긴 일이라고 연막했다. 아니라면 자신을 탓하기보다는 스스로를 탓할 이진언을 알아서 피운 작전이었다. 현타가 뒤늦게 발현될지도 몰라서 가만히 두 눈을 바라보는데 걱정했던 빛은 띠지 않았다. 연막이 잘 먹혀든 건지 괜한 기우였던 건지 모르겠다.
“술 안 취했었던 거 같은데.”
“아니요, 엄청 취했었는데요? 저 정말 취했었어요.”
바지를 추슬러 주면서 열심히 항변했다. 완전히 취했던 건 아니었지만 온전히 깨었다고 하기도 뭐한 상황이기는 했다. 아주 거짓은 아니라고 스스로 위로하면서 취했다고 우겼다. 뒤처리 후 바지를 꼼꼼하게 챙겨 입은 이진언이 피식 웃었다. 원래도 아는 척할 예정은 아니었는데 애쓰는 게 기특해 더 모른 척하자 다짐했다.
“이리 와.”
두 팔 가득 벌려 다가오라고 하니 그대로 폭 안아온다. 안아준다고 했는데 안겨버린 자세가 되었음에도 이진언은 아무런 타박하지 않았다. 토닥토닥, 아까 제 등을 토닥여준 것처럼 김유겸의 등을 토닥였다. 커다란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김유겸은 이진언의 몸에 매달렸다. 문득 비벼지는 아래가 신경 쓰였다. 저는 조금 전에 흥분할 대로 흥분했는데, 얘는 괜찮은 걸까.
“유겸아.”
“네.”
“누워봐.”
이제는 곧잘 유겸아, 라고 부르는 이진언이었다. 가끔 아직도 김유겸, 이라고 딱딱하게 성까지 붙여 불렀지만, 그래도 의식하는 한 성을 떼고 이름만 부르려고 노력했다. 성격상 타의로 무언가를 변화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가를 알아서 혹여라도 이진언이 실수로 이름을 성까지 붙여 부른다고 해도 서운한 티를 내지 않고 대답했다. 조금씩 변화하는 게 보여서 가능한 인내였다.
“이렇게요?”
누워보라 해서 바로 누웠다. 이진언의 시선이 얼굴에서 점점 아래로 내려갔다. 그제야 왜 누워보라고 했는지 이해된 김유겸이 얼른 손을 내려 고간 사이를 가렸다. 아닌 게 아니라 김유겸의 아래는 아까부터 한껏 성이 났다. 자신보다 이진언이 더 위급하다고 판단해서 차치했을 뿐, 이쪽도 난리였다.
“매번 생각하는 거지만, 참 건강해.”
“하하, 하하하.”
완전하게 발기한 모양을 한두 번 보여준 게 아니었지만, 매번 민망했다. 항상 이럴 때 자신은 한껏 흥분하고 이진언은 침착해 보여서 더 그랬다. 조금 전의 열기가 거짓말 같은 지금 김유겸은 그래서 부끄러웠다. 이진언이 저에게 욕망해도 된다고 허락했다고 해서 반응 하나하나를 생중계하는 지금이 창피하지 않다는 말은 아니었다.
“어어어, 자, 잠깐만요-!”
아까의 이진언과 마찬가지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아오른 기둥에 멋쩍은 웃음을 흘리는데, 작고 야무진 손이 다가와 바지 버클을 풀었다. 헉, 해서 김유겸이 벌떡 상체를 일으켰다. 타이밍이 다소 늦었다. 이미 이진언의 손은 바지를 반쯤 벗겨냈다. 딱히 달라붙는 소재의 옷감도 아니었는데 버클을 반쯤 내리자마자 퉁 기둥이 바로 일어났다. 하하하하, 민망한 웃음이 흘렀지만, 이진언은 웃지 않았다.
“괜찮아요, 제가 할게요.”
그 밤 이후, 김유겸은 항상 아래를 알아서 처리했다. 이진언은 이럴 때 철저한 방관자였고, 김유겸은 자신의 반응을 질타하지 않아 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워했다. 이진언의 집에서, 이진언을 생각하며 아래를 흔들어 분출하는 일은 생각보다 현타를 유발하지 않았다. 몇 번이나 이진언의 허락하에 물을 뺐다. 이제 와 이진언 앞에서 한껏 피가 뭉친 아래가 부끄러울 이유가 없다는 말이었다. 그럼에도 김유겸은 지금이 부끄러웠다.
“형?”
어차피 오늘은 이진언의 욕구를 풀어주려고 한 날이지, 자신의 욕구를 풀려고 한 날이 아니었다. 감춰져 숨겨졌던 이진언의 욕망과 마주한 것만으로도 의의가 있었다. 묘한 표정으로 얼굴을 바라보는 이진언에게 서운함이 들지 않았다는 뜻이다. 누웠던 몸을 일으켜 다시 이진언에게 가볍게 입 맞춘 김유겸은 그래서 화장실에 가려고 하는 자신을 만류하는 손길이 의아했다.
“어어, 어…?”
일어서는 자신의 옷깃을 부여잡은 손에 고개를 갸웃대고 도로 주저앉았다. 왜 그래요? 걱정된 마음에 얼굴을 들이밀며 상태를 확인하자 쑥 고개가 아래로 내려간다. 이게 뭐지? 라고 생각하는 찰나, 버클이 완전하게 아래로 내려갔고 이내 점점이 진한 색이 번진 속옷이 밑으로 끌렸다. 곧 퉁, 튕기듯 거대하게 부푼 살덩이가 공기 중에 노출되었고, 드러난 살 기둥이 추울세라 작은 손이 야무지게 움켜쥐었다.
“읏-!”
아래에서 느껴지는 악력에 김유겸은 눈을 찡긋였다. 작다고는 하지만 연약하다는 뜻은 아니었던 터라, 꽉 하고 손에 힘을 주자 살짝 인상 쓸 정도의 압박이 감지됐다. 손에 연신 힘을 주었다 풀었다를 반복하며 서서히 발기를 유도하는 손짓은 서툴렀지만 정직했다. 하, 진짜 미치겠다. 이진언의 뜻을 고스란히 알아들은 김유겸은 마른침을 꿀꺽 집어삼키며 머리를 쓸어 올렸다. 등 근육이 바짝 수축해 온몸에 파르라니 긴장이 서렸다.
“해주려구요?”
“응.”
손을 엇갈려 불난 성기를 만지작거리더니 이내 고개를 푹 숙여 입에 물었다. 길이를 예단하지 못해 처음부터 끝까지 삼켜서 욱, 헛구역질했다. 놀라서 허리를 뒤로 빼려고 했는데 이내 꾹 하고 숨을 몰아쉰 이진언이 침을 꿀꺽 삼키고는 그대로 다시 고개를 숙여 전진해왔다. 이번에는 잘 재단해서 구역질 나지 않을 길이만 삼켰다가 재차 고개를 뒤로 뺐다. 서너 번 왕복하자 어느새 익숙해졌는지 속도가 붙었다. 김유겸은 어금니를 꽉 앙다물고 자신의 아래에서 머릿짓 하는 이진언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습기 찬 내부가 하체를 덮는 느낌에 김유겸은 하마터면 허리를 위로 쳐올릴 뻔했다. 가까스로 인내해 허벅지에 힘을 줬다. 두 팔을 뒤로 뻗어 상체를 지탱하면서 아드득 어금니를 깨물었다. 뜨겁고 축축한 내부가 성기를 온전히 덮는가 싶더니 이내 기둥 아래가 다시 서늘해졌다. 급하지 않고 천천히 상하로 피스톤질하는 입구는 좁았다. 좁은 입안에서 안 그래도 피가 몰린 아래가 더욱 부푸는 게 느껴졌다. 잠시 잠깐 움직이던 걸 멈춘 이진언이 의아하다는 눈빛을 보내왔다. 척하니 보기에도 완전히 풀 발기한 거 같은데 점점 더 커지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는 눈빛이었다.
“하하하하,”
이해되지 않기는 김유겸도 마찬가지였다. 살면서 이 정도까지 흥분한 적이 없었다. 좁은 입안을 마구 유린하고 싶어졌다. 작고 고운 목에 자신의 커다란 손을 얹어 고정하고는 그대로 허리를 위로 올려 치고 싶은 욕구를 참느라 힘들었다. 아랫입술을 짓씹고, 뒤로 뻗어 말아 쥔 주먹에 힘이 서린다. 욕구를 참는 게 아까보다 어려워 하박에 핏줄이 살벌하게 섰다. 손목에서부터 불뚝 튀어나와 팔꿈치까지 올라가는 힘줄의 주장이 남달랐다.
“그만해도 돼요.”
더 하면 정말 자제하지 못할 것만 같아서 그만해도 된다고 말했지만, 이진언은 듣지 않았다. 고집스럽게 하체에 더욱 깊이 얼굴을 묻었다. 순간 읏, 하는 신음이 흘렀다. 정말 고집은 알아줘야 한다. 두 손 두 발 다 든 김유겸은 손을 들어 이진언의 흘러내린 앞머리를 쓸어올렸다. 예쁘게 둥근 이마에 땀이 서렸다. 미간이 좁아 들었다. 저를 어렵게 사정시킨 김유겸이니, 저도 반드시 사정시키고 말리라는 의지가 확연하게 고지됐다. 경쟁도 아닌데 저렇게까지 열심이어야 하나 싶지만 귀여워서 만류하지는 않을 생각이었다.
“하아,”
낮은 숨을 연속으로 내뱉었다. 기어코 터졌다. 김유겸과는 다르게 이진언에게서는 욱, 하는 소리가 크게 났다. 면역되지 않은 행위에 놀랐을까 싶어 재빨리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토해내라는 의미였지만, 아까 김유겸이 했던 것처럼 이진언도 목울대를 움직이며 제 입에 쏟아진 액체를 전부 집어삼켰다. 꿀꺽, 우렁차게 움직이는 울대뼈의 움직임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이내 인상 쓴 얼굴이 눈에 들어와서야 급하게 휴지를 찾았다.
삼키지 않아도 됐는데 똑같이 한다고 무리한 모습에 가슴이 짠하면서도 감동이었다. 이런 모습 때문에 마음의 크기가 비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도 견딜 만했다. 누가 누구를 더 좋아하고 덜 좋아하면 어떠냐고 생각하게 된다. 가끔 이렇게 저도 자신을 좋아한다고 알려올 때면 정말 사랑스러워 죽겠는데.
“진짜 못 말리겠어.”
입가에 흐른 잔류까지 모두 닦아내고 나서야 얼굴을 마주 봤다. 대범하게 굴 때는 언제고 살짝 눈을 마주하자 도르륵 눈동자가 굴러갔다. 아무렇지 않은 척하려고 하지만 실패했다. 뻔뻔하게 굴 거면 끝까지 그러지, 꼭 이런 데서 한 박자 느리다. 쑥스러워하는 건 아닌데 익숙하지 않다는 티를 낸다. 이럴 때면 이 사람의 첫 연애를 자신이 가져갔다는 사실이 가슴 벅차오르게 기뻤다.
“술 다 깼다, 진짜.”
말이야 바른말이지, 술은 아까부터 완전히 깼다. 술기운을 빌려 약간의 객기를 부리기는 했지만, 온전히 술기운 때문에 저지른 일은 또 아니었다. 김동준과의 만남이 도화선이었다. 어차피 한번은 넘어야 할 산이었다. 넘지 않으려 했다면 시도하지 않았다. 수위를 알았으니 기회가 문제다. 조금씩 천천히 놀라지 않게 진도 나가도 된다는 교훈을 얻었다. 이런 계획을 지녔다는 사실 자체가 미안하기는 했지만, 자신도 남자인 이상 기대하게 되는 건 당연했다. 플라토닉만 하지 못하는 몸이라서 죄책감이 일기는 했지만 이제 와 무를 생각은 없었다.
“말은.”
타박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난다. 뭐 하려고 저러나 싶어서 고개를 빼꼼 빼서 동선을 쫓으니 원룸 한편에 구비된 냉장고로 다가간다. 허리 숙여 냉장고 문을 연 이진언은 생수를 하나 꺼내 입을 헹궜다. 체액을 그대로 흡입했으니 당연한 행동이었다. 한 번 입안을 헹군 후, 다시 입에 물을 머금고 김유겸에게 다가왔다. 생수 한 병만 꺼낸 줄 알았는데 두 병을 꺼냈는지 김유겸에게도 물병이 건네졌다. 김유겸 또한 두말 않고 얌전히 물을 받아 입안을 헹궜다.
“술 얼마나 먹었어.”
“많이 안 먹었어요.”
“진짜야?”
“진짠데. 혹시 저 아직도 냄새나요?”
분명 아까도 했던 대화인데 완전히 새로웠다. 혹시나 해서 킁킁 몸 냄새를 맡아보지만 잘 모르겠다. 과장된 몸짓으로 정말이냐고 묻는 김유겸의 모습에 이진언은 웃음으로 대답했다. 하의가 약간 흐트러진 채로 대화하는 지금이 좋았다. 늦은 새벽 애인의 주사 아닌 주사를 받아준 데에 대해 불평은 하지 않았다.
“양치하고 자자.”
생수로 입안을 헹궜지만 역시 깔끔한 이진언의 성에는 차지 않는 모양이었다. 늦은 밤 보러 가겠다고 선언했을 때부터 외박은 예정된 사실이어서 김유겸은 양치하자는 이진언의 제안에 순순히 응했다. 사귀고 나서 어떠한 이유를 붙여 이진언의 집에서 외박하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역시나 의지가 그리움을 이기지는 못했다.
“아, 웬만하면 이제 형네 집에서 외박 안 하려고 했는데.”
“원하면 쫓아내 주고.”
“안 돼요. 안 갈 거예요. 이렇게 형 꼭 끌어안고 잘 거예요.”
오랜만에 같은 침대에 누워서 서로의 몸을 꼭 끌어안았다. 사귀기 전에도 침대를 공유했었지만 끌어안지는 않았다. 그때 김유겸은 나름 선을 지키려고 노력했다. 마음이야 현재처럼 하고 싶었을지라도 인내했다. 미움받고 싶지 않은 까닭이었다. 그때는 자신이 안아주는 걸 이진언이 좋아하는지 아닌지에 대한 기준이 모호했다.
“아, 진짜 좋다.”
맞춤 제작된 것처럼 품에 딱 맞는 몸을 꽉 끌어안고 마음껏 부비적거렸다. 품 안의 이진언이 가만했다. 전과 다르게 이진언을 덥석덥석 안아도 되는 지금이 너무 행복했다. 허락받지 않고 안는다고 해도 이진언이 좋아한다는 사실을 안다.
“진짜 너~무 좋다.”
연속 좋다고 말하는 김유겸의 행동에 아직 술 덜 깬 거 같다는 감상을 늘어놓지는 않았다. 말해버리면 기껏 잠자리에 들게 한 애, 아니라는 열성적인 항변을 위해 취침 시간이 얼마까지 뒤로 밀릴지 장담하지 못했다. 커다란 품에 꼭 안긴 채로 이진언은 손을 들어 김유겸의 등을 도닥였다. 다 깼다고는 하지만 술에 취하기는 했던 모양인지 김유겸은 금방 도로롱 잠이 들었다. 어두운 공간에서 보이지도 않은 김유겸의 얼굴을 멀거니 보던 이진언도 눈을 감았다. 한창 시끄러운 밖과 상관없이 조용한 숨결이 주변을 지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