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맛있다.”
“맛있다니까.”
다음날, 두 사람은 김유겸이 가보고 싶다던 룸 카페에 왔다. 처음 발을 들인 룸 카페의 형태에 김유겸이 흠칫 어깨를 떨었다. 룸 카페라고 그래서 룸 형식의 술집을 생각했는데, 완전한 오판이었다. 일단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했고, 바닥에는 가죽 소파 같은 질감의 무언가가 깔려 있었고, 등을 기대고 앉게끔 쿠션도 구비되었다. 또한, 추우면 덮으라고 무릎담요도 곳곳에 놓였다.
방의 크기는 그다지 크지는 않았지만, 이진언이 누우면 딱 맞을 정도였다. 이곳을 좋아한다는 말이 거짓은 아닌 듯, 이진언은 방에 안내되자마자 쿠션을 머리에 괴고 누워버린다. 너무나 경계심을 지니지 않은 모습에 김유겸은 픽 실소해야만 했다.
그러니까 여기, 왜인지 가슴을 울렁이게 만든다고요.
“여기 형이 왜 좋아하는지 알겠어요.”
“왜?”
“좁잖아요.”
원래가 집에서 잘 나오지 않는 성격이다. 나서는 것을 싫어하고, 제 주장을 펼치는 것도 조심스러워한다. 원래가 조용조용한 걸 좋아하는 성격인데 그러면서도 불의를 보면 참지를 못한다. 그러다 보니 나설 데가 많아졌다. 대학교라는 곳이 얼마나 편협한 편견과 비합리적인 비리로 이루어진 집단인지를 이진언이 나서서 일을 해결했던 사건의 수만 봐도 알기 싫어도 알게 되었다.
“형은 뭐랄까, 몸에 딱 붙어서 남들의 눈에 띄지 않는 곳 좋아하잖아요.”
“맞아. 그러는 게 마음이 편해.”
왜 그런 곳을 좋아하게 됐는지 모르는 바는 아니었지만, 역시나 용납하지는 않을 예정이었다. 자신의 눈에 콩깍지가 쓰여서 그렇다기보다는, 이진언은 객관적으로 봐도 예쁜 사람이었다. 비단 얼굴에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었다. 성격도 마찬가지였다. 김유겸은 살면서 이진언처럼 정도를 지키려고 노력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다들 되는대로, 대충 요령을 피우면 피웠지, 스스로가 손해날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살지는 않았다. 어찌 보면 이진언이 최초였고, 그래서 신기했다.
“그래도 저랑 있으려고 노력하는 것도 알아요.”
그런 사람이 자신과 함께하려고 선호하지 않은 곳을 다니는 중이었다. 그게 김유겸은 고마웠다. 성격대로라면 김유겸이 좋아하는 곳은 이진언 취향이 아니었다. 게임할 때를 제외하면 밖으로 나가는 걸 좋아하는 성격인 김유겸이었고, 이진언은 최대한 맞춰주려고 노력했다.
원래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노력이라는 걸 잘하지 않는 성격이라는 걸 알아서 이럴 때마다 저이가 나를 좋아하는 게 맞구나 하는 확신이 든다. 때문에 아직 말로써 좋아한다는 소리를 듣지 못했어도 괜찮았다.
“알면 잘해라.”
“여기서 더요? 음, 알았어요.”
사귀고 나서 알게 된 점 하나는, 김유겸이 의외로 능글맞다는 사실이었다. 사귀기 전에도 넉살이 좋은 녀석이라고는 생각했지만, 지금처럼 능글맞은 녀석이라고 예상하지 못했었다. 제 성격에서는 절대 하지 못할 말들을 김유겸은 정말 얼굴빛 하나 변하지 않고 뻔뻔하게 잘만 해댔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농담이야. 지금도 잘해.”
김유겸이 이렇게 나오면 대답할 말이 사실 많지 않았다. 정말로 네가 못해서 잘하라고 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은 둘 다 안다. 농담으로 건넨 말에 진담으로 대답하는 김유겸의 행동이 고맙다가도, 정말 못 말리겠다 싶어서 두 손 두 발을 다 들게 된다. 구렁이가 담 넘어가듯 은근슬쩍 상황을 모두 자신에게 유리하게 변화시키는 김유겸의 저런 성격은 닮아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형 그런데 여기 좀 위험해요.”
“위험하다니. 뭐가.”
작은 테이블 위에 음료와 조각 케이크를 놓고 한쪽 구석에 치워두었다. 블로그에서 추천한 블루베리 케이크 조각을 사 왔는데, 역시나 맛있었다. 따듯한 차에 부드러운 케이크. 정말 여기가 극락이구나 싶었다. 음료값이나 케이크값이 비싸기는 했지만, 자릿세려니 하고 넘겼다.
“뻘짓하기 좋을 거 같아서요.”
방마다 TV가 보였지만, 그보다 연인이 들어오면 서로가 너무나 가까이에 자리하게 되는 구조였다. 다행히 꽉 막힌 공간은 아니었고 위가 뚫려 옆방의 소리가 적나라하게 들리게 된다는 걸 모두가 알게끔 설계되었다. 뻘짓을 막는다고 한 방어 체계인 거 같은데, 저게 과연 제대로 기능할까 하는 의구심이 들기는 했다.
“가만히 들어보면 야한 소리가 많이 들리기는 하지.”
좋아하는 맛있는 것을 배부르게 먹고 제가 좋아하는 장소에 있으니, 이진언의 얼굴은 평소보다 평온하게 풀어졌다. 무방비하게 누워서 쿠션을 벤 머리 뒤로 한쪽 손을 밀어 넣고 다른 손으로는 제 작은 배를 통통 두드리는 손짓에서 지금이 얼마나 평온한가를 알게 하였다. 그런 이진언의 모습에 김유겸은 한숨을 포옥 내어 쉬었다.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자신도 좋기는 한데, 너무 경계심을 지니지 않아서 조금은 복잡한 심경이었다.
나 늑대라고 얼마 전에 분명히 경고했는데.
“? 뭐야?”
“몰라요.”
심술이 난 마음에 톡, 이진언의 뺨을 손가락으로 찔렀다. 손끝에 부드러운 살결이 닿는가 싶더니 이내 안으로 살짝 들어간다. 아기처럼 부들부들한 살결이 기분을 좋게 했다. 겉에서 보면 하얗게 빛나는 살결은 만지면 차갑거나 미끌거릴 거 같은데, 막상 닿은 체온은 따스했다. 그게 신기해서 계속해서 살결을 훑게 만든다. 이건 절대 자신이 변태라서가 아니다.
“어쭈?”
계속해서 뺨을 쿡쿡 쑤시기만 하자 곧 작은 손이 다가오더니 김유겸의 행동을 저지했다. 장난을 치던 손은 허공에서 멈췄다. 이진언의 눈가에 순간 장난기가 돌더니 작은 입이 벌어졌다. 딱, 허공에서 이를 부딪쳐 소리를 냈다. 마치 내가 너를 잡아먹고 말겠다, 는 표시와 같았지만, 역시나 하나도 무섭지 않았다. 입가가 유려하게 호를 그린 뒤 작은 입이 다가와봤자 공포라기보다는 귀여울 뿐이다.
“계속해보겠다 이거지.”
심술 가득한 김유겸의 얼굴과 웃음기가 마르지 않는 이진언의 얼굴은 어찌 보면 대조적이었지만, 분위기 만큼은 달콤했다. 정말로 상대가 삐진 게 아니라는 걸 알아서 가능한 반응이었다. 누웠던 몸을 일으킨 이진언의 얼굴에는 한층 더 장난기가 돌았고, 그런 이진언의 모습을 처음 본 김유겸의 얼굴도 어느새 삐진 티가 소거되고 웃는 낯이 되었다. 몽글몽글한 분위기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진언이 한 번 더 장난을 치려고 입을 열어 마치 크앙~하는 것과 같은 소리를 냈다.
“아, 잠깐, 아.”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아서 김유겸의 얼굴도 배시시 미소가 찾아드는데, 순간 두 사람의 행동을 완전히 정지하게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짧고 낮은 여자의 신음이었다. 두 사람은 순식간에 동작 그만이 돼서 서로의 얼굴을 멀거니 보았다. 벽 위쪽이 트였다고 생각했는데, 역시나 바로 옆방에서 무언가 하는 소리가 적나라하게 들려왔다. 벽걸이 TV의 소리를 높게 튼 채였다. 딴에는 소리를 죽인다고 죽인 모양인데, 줄인다고 소거될 소리가 아니다.
곧 나지막한 탄성과 몰아치는 거친 숨소리가 공기 중을 통해 전달되었다.
“…….”
“…….”
왜인지 부끄러워졌다. 자리에서 일어난 이진언이 손을 들어 뺨을 긁적거렸다. 김유겸도 마찬가지였다. 손을 들어 머리를 멋쩍게 쓸어내렸다. 옆방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어느새 절정을 향해 달려갔고, 금방 남자의 작은 탄성이 흘러나왔다. 둘은 그제야 후유, 하는 안도의 한숨을 내어 쉬었다. 서로의 얼굴을 빤히 보다가 킥킥 웃음이 터졌다.
“너무하지 않아요? 이런 곳에서.”
옆방에서 후다닥 정리하는 소리가 나더니 이내 문이 열리고 사람이 나가는 소리도 같이 들렸다. 사방이 조용해져서야 두 사람은 마음껏 웃었다. 김유겸은 고개를 숙여 이진언의 귓가에 조용하게 불평을 늘어놓았다. 같은 마음이었던 터라 이진언도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 행동했지만, 이진언의 귓가도 이미 빨개진 채였다. 원체 담백하고 담담하게 굴어서 이런 일이 발생했을 때도 혼자만 민망한가 싶었는데, 그렇지는 않았다. 솔직히 아까 소리가 절정에 치달았을 때는 곤란한 상황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할 정도였는데, 다행히 거기까지는 안 갔다. 슬쩍 이진언의 상태를 확인해보고 싶었지만, 역시나 용기가 부족해 실행하지는 못했다.
“한창 혈기왕성할 때니까, 뭐.”
아무렇지도 않게 옆방에서 발생했던 일을 평가하는 이진언의 얼굴을 김유겸은 물끄러미 관찰했다. 이런 일이 일어났을 때 이진언이 불쾌해하거나 혐오스러운 얼굴을 할 거라고 예상했다. 틀렸다. 이진언은 나름 제 선 안에서 사람들을 인정했다. 그게 김유겸은 신기했다. 나라면 이런 상황에서 저렇게 말할 수 있었을까. 자신 없다. 그래서 이진언이 더 대견해 보인다.
“손 뭐야.”
“그냥. 기특해서요.”
“어쭈?”
예쁜 마음에 손이 나갔다. 살짝 붉어진 귓가를 조심스럽게 매만졌다. 간지러운지 이진언이 눈을 찡그리며 돌아봤다. 얼굴은 역시나 미소가 가득했다. 그게 기특했다.
솔직한 말로 김유겸이 이진언을 기특해하는 건 월권인 행위였다. 이진언의 과거는 상처였고, 아픔이었으며, 고통이었다. 보통 인간은 본인의 고통과 타인의 본능을 구별하여 생각하지 못했다. 그것은 어려운 행동이었다. 이 어려운 행위를 이진언은 해냈다. 그러한 사실이 김유겸은 기특했지만, 사실 누구도 김유겸에게 이진언을 기특해할 자격이나 권리를 주지는 않았다. 김유겸도 분명히 인지한 내용이었다.
“형이 너무 멋져요.”
그럼에도 김유겸은 지금의 이진언이 기특했다.
몸에 닿은 손에 조금씩 마음이 스며들었다. 따듯한 온기를 지닌 진심이었다. 전해져오는 온기에 진심이 닿아서 이진언은 가만했다. 김유겸의 손은 내도록 이진언을 어루만졌다. 왜인지 이진언의 마음속에 자리한 상처까지 만지고 만져서 사라지게 하고 싶다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이진언은 고개를 들어 김유겸을 바로 보았다. 김유겸이 빙긋 웃었다. 웃는 얼굴이 어여뻤다. 하나같이 진심이었다.
“…….”
“…….”
서로의 얼굴이 가까이 다가오는 건 불가항력이었다. 둘은 이제 어여쁨을 몸으로 표현해도 되는 사이였다. 특히나 김유겸이 그랬다. 사랑스러우면 손이 나가는 타입이었다. 지금은 입술이 닿지 않고는 못 배길 거 같았다. 살짝 닿은 입술이 안타까워서, 이진언의 귓가를 매만졌던 손에 힘을 주었다. 그대로 끌어당겼다. 순순히 품 안에 들어오는 작은 체온이 사랑스러웠다.
정말은 사랑하다가 죽었으면 하고 바랐다.
“진짜 예쁘다니까.”
키스를 나누다가 언제 자리에 눕게 됐는지는 항상 기억나지 않았다. 입술이 쪽 소리를 내며 떨어져 나가면 언제나 김유겸은 위에 자리하고 이진언은 바닥에 누운 채였다. 그때마다 가슴이 거세게 뛰었다. 남자의 본능을 누구보다 먼저 몸으로 깨우친 게 이진언이다. 무섭지 않다면 거짓말이지만, 저를 내려다보는 김유겸의 눈빛에 자애가 가득해 두려움을 물리치고는 했다.
“누가 누구더러.”
“아하혀.”
자꾸만 간지럽게 저를 쳐다보는 눈길에 멋쩍어 이진언은 손을 들어 김유겸의 볼을 쭉 늘렸다. 말랑말랑한 살이 옆으로 쫙 늘어났다. 마치 찹쌀떡 같았다. 항상 제 살결이 부드럽다고 말하는 김유겸이었지만, 오늘은 어째 반대다. 손바닥에서 느껴지는 감촉은 찹쌀떡처럼 말랑말랑, 쫀득쫀득했다. 마냥 손안에 넣고 굴리고만 싶었다.
“그러니까 누가 장난치래.”
“장난 아닌데.”
장난이라는 말에 볼에 바람을 넣고 굴리는 폼이 적잖이 불만인 모양이었다. 하는 짓이 마냥 강아지 같아서 이진언은 피식 웃었다. 아닌 게 아니라 정말 귀여운 강아지 같다. 덩치는 커서, 지 몸은 생각하지 않고 주인에게 놀아달라고 마냥 치대는 크고 하얀 강아지. 아니, 사실은 개.
“어, 선배 전화 와요.”
옆방에서 뻘짓했다고 우리까지 그러면 안 되지. 암, 안 되고말고. 사실 이진언이 허락한다면 실행할 의사야 다분하다만, 허락하지 않을 게 뻔해서 애써 김유겸은 자신을 달랬다. 여기서 완전히 흥분하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만약 그랬다면 상상하기도 싫은 일이 발생했을지도 모른다. 옆방의 일은 한창 혈기왕성할 때라서 이해한다고 했던 이진언도 막상 저가 똑같은 상황에 처하게 되면 어떻게 나올지 모른다. 옆방의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던 이유는 당사자가 아니라서다.
이진언은 확실히 개인주의적 성향이 짙었다.
“…….”
퇴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이러쿵저러쿵 말하는데, 이진언의 전화가 울렸다. 저장되지 않은 번호였는지 발신인의 이름은 뜨지 않았다. 김유겸은 조금 신기한 심정으로 핸드폰을 보았다. 이진언은 발신인이 불분명한 전화도 곧잘 받아서 스팸이면 예의 바르게 거절하고 끊었었다. 반면 김유겸은 저장되지 않은 번호는 아예 씹었다. 그랬던 이진언이 지금은 조용히 화면을 밝히는 전화를 가만히 보기만 한다. 애초에 벨 소리는 정신 사나워서 싫다던 사람이었다.
“형?”
전화번호를 조용히 바라보기만 하는 이진언의 얼굴이 낯설다. 얼굴에 무슨 표정이라도 서리면 그것으로 저 전화가 무엇인지 유추라도 하겠으나, 지금 이진언의 얼굴은 무표정했다. 김유겸은 침을 꿀꺽 삼켰다.
아는 번호다. 저것은 분명, 이진언이 아는 번호였다.
“…….”
순식간에 가라앉은 이진언의 표정에 김유겸도 더불어 차분해진다. 이진언이 어떤 선택을 하든 자신이 그것을 온전하게 수용 가능할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설마 구 애인 전화번호는 아니겠지. 지금은 이런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이진언의 성격상 번호를 아는데 전화를 받지 않는다는 건 말도 안 된다. 그러니 지금 전화를 받지 않은 태도에서 알겠는 건 이진언과 상대방의 사이가 껄끄럽다는 사실이었다. 웬만한 일에는 정석대로 정면 돌파하는 이진언이 껄끄러워 전화를 받지 않을 사이의 사람은 김유겸이 생각하기에는 많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구 애인의 번호라고 생각하는 게 이상하지는 않다는 소리다.
만약 이 소리를 박지운이 들었다면 이진언은 모쏠이라고 코웃음을 칠 일이었으나, 불행인지 다행인지 김유겸은 이진언이 모쏠이라는 사실을 몰랐다.
“형?”
“응.”
한참 동안 불을 밝히며 존재를 뽐내던 전화가 마침내 끊겼다. 혹시라도 다시 통화 시도를 할까 싶어 잠시간 대기했지만, 기우였다. 속으로 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어 쉬며 가슴을 끌어내린 김유겸의 이진언을 불렀다. 이진언은 무감한 얼굴로 돌아보았다. 마치 사귀기 전, 자신에게 하등 관심을 주지 않았을 때의 얼굴 같은 이진언의 모습에 김유겸은 아리게 입술을 짓씹었다.
“아는 사람이죠.”
의심이 아니다. 확신이었다. 지금 전화를 건 사람은 이진언이 아는 사람이다. 그것도 이진언이 좋아하지 않는 사람. 어쩌면 싫어하는 사람. 이진언이 상대를 싫어하면 이유가 분명할 텐데, 무슨 사이의 사람이라서 이진언이 이렇게까지 노골적으로 혐오감을 드러내나 하는 것이 문득 궁금해진다.
“누구예요.”
이 정도는 물어도 되겠지. 김유겸은 판단했다. 판단의 근거는 확고했다.
김유겸은 연애를 많이까지는 아니어도 나름 해봤다고 자부한다. 그런 사이에서 지금과 같은 상황이었을 때 상대가 누구인지는 물어도 되는 주제였다. 어쨌든 두 사람은 조금 전까지만 해도 몽글몽글하고 달달한 시간을 보냈다. 그랬던 시간을 완전히 깨부순 게 바로 지금의 전화였으니, 함께 있었던 사람으로서 상대방이 누구인지는 당연하게 알아야 한다고 판단했었다.
“…아니야, 아무것도.”
“…….”
이진언은 달랐다. 테이블 위에 놓인 핸드폰을 들어 가방에 넣으며 아무것도 아니라고 대답했다. 절대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니라는 걸 아는 김유겸 앞에서, 혹시나 전화를 건 상대방이 구 애인은 아닐까 하는 망상을 펼치는 현 애인 앞에서, 이진언은 상대가 누구인지 알려주기 싫다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알려왔다.
하늘 위에 둥둥 떴던 김유겸의 기분이 바닥으로 처박히는 건 순식간이었다.
“나가자.”
주변을 야무지게 정리한 이진언이 제안했다. 아무래도 조금의 전화 때문에 이곳에 더 자리하기 싫어진 모양이었다. 사실은 퇴실 시간이 다 돼서 주변을 정리하는 중이었지만, 김유겸에게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았다. 한번 심상한 기분이 좀처럼 올라올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어깨가 축 늘어졌다.
“유겸아?”
평소라면 헤어지기 아쉬워요, 나 형네 집에 가도 돼요? 등등의 말이 들려와야 하는데 어째 조용했다. 뭐지, 싶어서 뒤를 돌아보니 김유겸의 얼굴이 아주 볼만했다. 화가 난 것도 같고, 서운한 것도 같고. 그것도 아니라면 곧 울 듯한 얼굴이기도 했다. 도대체 쟤가 왜 저러는지 모르겠어서 이진언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래?”
둔하다면 둔한 저를 안다. 때문에 룸 카페에 나와서 한참을 걷고 나서야 김유겸이 이상하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터벅터벅 걷는 발길에 힘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았다. 정말로 이상하다 싶어서 이진언은 김유겸의 앞에 섰다. 김유겸의 얼굴에는 서운함이 한가득이었다. 옆에서 콕 찌르면 눈물을 콸콸 쏟을 듯한 표정이었다.
“정말 나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어?”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로 뭐든지 감추면, 정말 내가 형한테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되는 거잖아요.”
“아니 저기 유겸아, 그게 아니고,”
어디서 서운했는지 알게 되자 이건 뭐 어이없다고 해야 하는 건지 아니면 귀엽다고 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했을 때 이게 서운할 일인가? 싶은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비밀이라는 건 존중해 줘야 한다는 생각이 기본적인 이진언이라서 상대가 무언가 말하기 싫어하는 티를 낸다면 그동안은 굳이 꼬치꼬치 알려고 하지 않았다. 김유겸도 같은 줄 알았다.
“정말 아무것도 아니에요, 나?”
“…미치겠네.”
제 개인주의적 성향을 알고 있다. 다만 그게 연인의 서운함을 초래할 거라고는 알지 못했다. 박지운은 연애는 서로가 끝의 끝까지 공유하는 거라고 했지만, 그때와 마찬가지로 끝의 끝이 어디까지인지 이진언은 아직도 모른다. 이 말을 박지운에게 하면 넌 개인주의가 아니라 무심하다고 평가할 것만 같다.
“네가 왜 아무것도 아니야. 네가 아무것도 아닌데 내가 왜 신경을 써.”
신경 쓴다는 정의가 달랐다.
김유겸은 상대에게 자신이 관심을 지녔다는 걸 애써 숨기지 않는 타입이었다. 반면에 이진언은 신중하게 주변을 관찰한 뒤 상대가 불편해하지 않을 선에서 잘해주는 타입이었다. 어찌 보면 이진언이 손해 보는 성격이었고, 또 다르게 보면 제 만족도만 높은 방식이었다. 상대를 배려한다고 하지만, 상대가 알아차리지 못한다면 쓸데없는 행동이 될 뿐이었다.
“누구였어요.”
“그게 그렇게 알고 싶었어?”
“누구였냐구요.”
“부모님. 더 정확히는 아빠.”
누구라고 말해주지 못할 것도 없었다. 다만 이진언이 말하기 싫었다. 아직 가족과 해결하지 못한 응어리가 가슴에 묵직하게 흔적했다. 특히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래도 가끔 전화하고 얼굴을 보고 살지만, 아버지는 이혼 후 집을 나가서 외딴곳에 홀로 정착하셨다. 쓸쓸히 홀로 생활하시는 아버지를 보면 가슴이 꽉 막혔다.
그러나 원망의 마음은 아직도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다.
어찌 됐든 아버지는 돈을 받고 사건을 종결시켰다. 아들은 무자비한 구타와 인격의 유린 속에서 한창 신음할 때, 아버지는 사업이 어렵다는 이유로 돈을 받았다. 그것이 시발이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잦은 싸움을 하셨고, 사건이 발생하고 채 반년도 되지 않아 이혼에 합의하셨다. 모든 게 제 탓 같았다. 죄송했다. 얼굴을 볼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아버지를 보는 건 괴로웠다.
“별로 좋은 관계가 아니라서.”
너에게 어디까지 말해줘도 되는 걸까. 이진언은 고민했다.
여기까지만 해도 눈치 빠른 김유겸은 저와 부모님, 특히 아버지와의 사이가 좋지 않다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후에 지금과 같은 상황이 반복된다면 오늘을 교훈 삼아 서운한 감정을 드러내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진언이 원하는 결과와는 다른 형상이었다. 이진언은 제가 김유겸에게 솔직한 만큼, 김유겸도 저에게 솔직하기를 바란다. 가끔은 지나치게 솔직해서 탈일 정도로.
“…구 애인인 줄 알았어요.”
“어?”
“보통 때라면 누구야, 라고 말해줬을 사람이 얼버무리니까, 구 애인인가? 그런 생각밖에 안 들었다구요.”
“아.”
그렇게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애초에 이진언 자체가 과거에 크게 연연하지 않는 성격이었다. 질투도 딱히 없었다. 방금과 같은 상황에서 입장이 반대됐다면 이진언은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고 그저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을지도 모른다. 아니, 십중팔구 그랬다. 저와 김유겸의 가치관이 다르다는 사실을 이런 식으로 계속 확인받는구나 싶었다.
“구 애인 없어.”
“…네?”
“사람을 사귀어봤어야 구 애인이 있지.”
고백이야 많이 받아봤다. 전부 거절했다. 이 사실을 김유겸도 안다고 생각했는데 아닌 모양이었다. 사실이 아닌 허상으로 불안하게 만들기는 싫었다. 사람을 사귄 경험이 없다는 게 딱히 흠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실직고가 가능했다. 확실히 일반적인 연애론과는 조금 다른 개념일지도 모른다.
“어…어??”
일순 김유겸의 얼굴에서 혼란이 읽혔다. 지금 내가 무슨 말을 들은 거지? 그런 얼굴이었다. 이진언은 풋 웃었다. 그러니까 감당 가능한 행동을 하라고. 정말 귀여워서는.
“그러니까, 형 첫사랑이…?”
김유겸의 귀가 확 붉어졌다. 아니, 첫사랑까지는 아닌데. 불만스럽게 중얼거렸지만, 이미 김유겸은 귀를 막아버린 지 오래다. 얼굴이 확연하게 붉어진 김유겸을 보다가 이진언은 피식 웃었다. 그래, 뭐 어떠랴 싶었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니까.
“아, 진언이 형.”
김유겸이 이진언을 와락 끌어안았다. 가까이 다가온 체온에 두근거리는 심장박동이 다 들릴 지경이었다. 평소라면 부끄러워서 도망이라도 갔을 김유겸이겠지만, 오늘만큼은 자신의 기분 그대로를 모두 알려주겠다는 듯 몸을 빼지 않았다.
“제가 정말 잘할게요. 후회 안 하게 할게요, 진짜.”
왜 결론이 이렇게 나는지 알지 못했지만, 뭐 나쁜 기분은 아니어서 이진언은 가만히 김유겸에게 안겼다. 그래, 하고 싶은 거 다 해봐. 허락해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제 허락에 김유겸은 예쁘게 웃었다. 씩 웃는 얼굴에 뭘 하려고 저러나 싶어서 괜히 불안한 마음이 생성되기는 했지만, 그래도 뭐 좋은 게 좋은 거라며 애써 이진언은 불안을 잠식시켜야 했다.
6.
“이진언 페북 봤냐.”
“아니.”
“그래, 넌 그랬을 줄 알았다.”
“?”
축제로 인한 한껏 들뜬 분위기가 가라앉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따라서 축제 뒤 1~2주 동안은 여기저기서 본의 아니게 사람들이 누군가를 입에 올려놓고 씹어댔다. 학생회에서 축제 분위기가 가라앉으려고만 하면 학교 홈페이지에 그날의 동영상을 하나하나 게재하는 행위도 이러한 현상에 한몫한다는 것은 부정하지 못하는 현실이었다.
“안 그래도 유명한데 왜 매번 이런 일이 휘둘리지.”
“무슨 말이야. 알아듣게 설명해.”
“너랑 김유겸이랑 김동준 목격담이 게시판 점령했다고.”
김동준이 누구더라, 하고 생각했다가 이내 떠올랐다. 축제 마지막 날에 김유겸 친구라고 소개받은 아이돌. 그때도 지금도 사실 이진언은 아이돌에 무지했다. 김유겸의 친구라는 정도만 알지, 만남 후에도 김동준이나 소속된 그룹에 대해서 알아보지 않았다. 박지운은 이런 친구의 무심함을 진즉 인지했지만, 이번에만큼은 이진언이 너무했다는 데 동의했다.
“밑에 댓글 봐봐. 너보고 아이돌 데뷔하라는데.”
박지운의 말에 이진언은 피식 실소했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다. 내가 아이돌은 무슨. 그런 건 김유겸에게나 어울린다. 평소라면 의식하지 않고 지나갔지만, 김유겸은 정말 아이돌이 됐다면 엄청난 인기를 누릴 법했다. 일단 타고난 성격이 다정하고 다감해 사람의 마음을 돌볼 줄 알았다. 정말 아이돌이었다면 팬 사랑이 엄청났을 거 같았다.
“어쩐지 요새 사람들이 인사하더라니.”
안 그래도 유명 인사였는데 페북에 온통 목격담으로 도배가 되니 더한 현상이 펼쳐졌다. 원래 김유겸이랑 친한 거야 사람들도 이제는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지만, 거기에 연예인이 가미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요 며칠 사이에 혹시라도 김유겸으로 인해 김동준이랑 연계된 거 아닌가 하는 의심 아닌 의심의 눈초리가 달라붙었다는 걸 지금에야 알게 되었다. 저에게 콩고물이나 받아먹겠다는 심산이라는 뜻이라 괜히 이진언은 속이 불편해졌다.
“가지치기 좀 해야겠네.”
인사하면 받아준다. 이진언은 단지 그것뿐이었다. 이러한 행위에 어느 누군가가 희망을 품는다는 걸 알지만, 그건 착각이다. 주변을 조금만 둘러보면 알 사실이었다. 이진언에게 예외는 존재하지 않았다. 박지운이 거의 유일하다시피 할 정도였다. 거기에 이제는 김유겸이 추가되었지만, 이진언 자체가 이 둘을 제외하고는 누구도 더는 제 울타리 안에 들이지 않을 계획이었다. 사실 김유겸도 완전히 제 영역 안에 들였다고 하기는 모호하다. 얼마 전 사건으로 인해 확실하게 깨달았다.
“유갱이 너랑 같이 있냐고 물어보는데.”
“아, 카톡 안 봤다.”
“있다고 말한다?”
“응.”
딴에는 열심히 연락해 준다고 하는 것인데 가끔 지금처럼 까먹고는 한다. 박지운이 김유겸에 답장하는 사이 이진언은 핸드폰을 살폈다. 김유겸에게서 –어디에요? 라는 카톡이 온 지 채 5분도 되지 않았다. 이 5분을 기다리지 못하고 김유겸은 박지운에게 제 행방을 물었다. 픽 웃음이 났다. 아무래도 이 똥강아지를 오래 기다리게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다시 든다.
“너랑 있다고 하니까 이제 마음이 좀 놓이나. 인스타 좋아요 누르고 다니네.”
“누구?”
“누구겠냐. 김유겸이지.”
“…….”
인스타니 뭐니 하는 SNS에는 딱히 관심 없었다. 누군가와 일상을 공유하는 행위를 본질적으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하라고 하면이야 하겠지만, 막상 한다고 해도 제대로 하지 않을 것을 알아서 지금까지는 미뤄뒀다. 그랬던 것이 김유겸이 한다고 하니까 괜히 관심이 갔다. 슬쩍 박지운의 핸드폰으로 김유겸의 인스타를 훔쳐봤다. 김유겸도 열심히 하는 편은 아닌지 사진이 드문드문이었는데, 가장 최근 사진이 저랑 같이 갔던 카페에서 먹었던 블루베리 케이크였다. 그것을 보니 괜히 기분이 몽실몽실해졌다.
“어쭈? 이 새끼는 어제 아프다고 회의 안 나오더니, 그 시간에 여친이랑 놀러를 가셨어?”
김유겸의 연락으로 인스타 탐방을 시작한 박지운이 어떤 동기의 행동을 포착하고는 한바탕 욕을 퍼붓기 시작했다. 박지운의 입장에서는 꽤 화가 날 법한 행동이라 이진언은 말리지 않았다. 가끔 동기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연애의 고충을 듣게 될 때가 종종 발생했다. 그럴 때 가만히 이야기를 들어보면 연락 때문에 싸우는 커플이 많다는 걸 알게 됐다. 상대가 카톡은 안읽씹했는데 인스타에 좋아요를 눌렀다며 분해하는 경우가 많다는 뜻이다. 그때는 인터넷의 발달이 이럴 때는 좋지 않구나, 하고 넘겼다. 지금은 잘 모르겠다.
만약 김유겸이 저와 연락은 하지 않고 인스타나 뭐 그런 데 댓글을 달았다는 걸 알게 되면 기분이 어떨까. 당해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좋지만은 않으리라는 사실이었다. 원래가 연락에 급급해하지 않은 제 성격을 알지만, 그래도 무시당했다는 감정을 지우지는 못할 것만 같았다.
하여튼 요새 연애는 이게 문제다. 재고 따지지 말고 서로에게 솔직하면 되는데.
“형!”
어느새 김유겸이 왔다. 얼굴에는 해사하게 복사꽃이 피었다. 저만 보면 웃음이 실실 새는지 얼굴에는 미소가 한가득이었다. 날씨는 완연한 여름으로 접어드는데, 김유겸의 얼굴만 봄이 아직 머무는 것만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왔냐. 아우, 오자마자 사람들 몰리는 거 봐.”
세 사람이 마주 앉은 곳은 학교 앞 스타벅스였다. 교내에서 나름 명당이라고 소문이 자자한 곳이었다. 그런 곳에서 학교에서 유명하다는 사람 셋이 모였으니, 시선이 몰리는 건 당연했다. 박지운은 김유겸과 이진언만 유난이라는 듯 말했지만, 솔직히 말하면 본인도 만만찮았다. 옷차림에 신경을 많이 쓰지 않아서 그렇지, 박지운도 어디서 얼굴로는 빠지지 않았다.
그런 사람 셋이 유명 브랜드 커피숍에 앉아서 웃고 떠드니 당연한 수순으로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된다. 어떤 사람은 몰래 사진을 찍기도 했다. 다행히 세 사람의 눈에 띄지는 않아서 넘어갔지, 이진언이 알았다면 당장 사진을 지우라고 요구했을 행위였다. 김유겸은 학교 홈페이지뿐만 아니라 일반 웹에까지 훈남이라고 사진이 떠돌아다니고는 했다.
“학교 게시판에 너랑 이진언 사진 올라오던데. 네 친구랑 같이 있던 거.”
“안 그래도 그거 말씀드리려고 했어요. 목격담이라고 해서 올라오기는 하는데, 저는 불편하거든요. 그거 못 올리게 하는 방법 없어요?”
“관리하는 애한테 한번 말해볼게. 일반인이니까 사진 올리지 말라고.”
“그것도 몰카 아냐?”
“몰카 맞죠. 저 그런 거 싫어했어요, 옛날부터.”
연습생에 떨어지고 나서부터는 누군가 자신의 사진을 몰래 찍는 것에 노이로제가 걸린 듯 찾아다녔다. 학교 무대 사진이야 공식적인 행사였으니 넘어간다손 치더라도, 일상적인 사진은 절대 사양이었다. 잘생겨서 혹은 친구에게 자랑하려고, 라는 이유로 김유겸은 계속 몰카의 대상이 돼야만 했다. 더는 사양이었다. 이유야 어쨌든 김유겸은 일반인이었다.
“사람들이 몰카를 되게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네. 성범죄에 이용된 거 아니면 괜찮다, 뭐 이런 건가.”
이진언이 심드렁하게 말했다. 박지운은 심각한 표정이 되었고, 김유겸은 옆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몰카의 정의가 몰래 찍은 사진을 말하는 거라면, 학교 홈페이지에 올라오는 김동준과의 사진은 모두 몰카가 맞았다. 적어도 김유겸과 이진언은 자신들이 사진이 찍히는지 인지하지 못했고 또, 그러한 사진이 웹상에 업로드되기를 바라지도 않았기 때문이었다. 연예인이니까, 연예인 지망생이니까, 혹은 학교 내 유명 인사니까, 라는 어쭙잖은 이유를 핑계로 불법적인 일이 더는 자행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유겸아, 안녕.”
셋이서 앉아서 수다를 떨었다. 김유겸과 이진언의 관계를 아는 이는 박지운이 유일하다시피 했다. 이러한 사실은 두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었다. 비록 박지운은 눈꼴이 시리다는 표정을 짓기는 했지만, 어디 가서 두 사람의 관계를 함부로 발설할 사람이 아님을 알아서 가능한 시간이었다.
“어, 안녕.”
그러는 사이 사람들의 시선은 더욱 집중됐다. 더는 이곳에서 대화하지 못할 정도가 되었다. 슬슬 주변 사람들의 시야가 불편해진 이진언이 자리를 정리하자고 제안할 때였다. 어딘가에서 불쑥 튀어나온 밝은 음성이 김유겸에게 아는 체를 했다. 고개를 들어 상대를 보니 학교에서 얼굴이 예쁘기로 이름깨나 알려진 학우였다. 자연스러운 스타일을 추구했음에도 주변보다 그녀의 곁이 한층 환하게 빛나는 것만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내일 올 거야?”
“내일? 내일 뭐 있었어?”
상대와 김유겸은 그전부터 친한 사이였던 듯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갔다. 이진언은 가만히 김유겸이 하는 양을 보기만 했고, 박지운은 슬쩍 김유겸과 이진언을 번갈아 보며 눈치를 살폈다. 이진언의 얼굴에는 딱히 어떠한 표정이 서리지도 않고 평소처럼 무덤덤했다. 어쩌면 그래서 더 무서운 것인지도 몰랐다.
“과팅. 너 와야 한다고 애들이 난리 피우던데.”
“아 그거. 안 한다고 전부터 얘기했는데. 나 애인 있어.”
축제 이후 김유겸은 작년과 같이 고백이 줄을 이었다. 그때마다 김유겸은 애인이 있다며 거절했다. 그러나 아이들은 김유겸의 거절 사유를 믿지 않았다. 애인이 있는 사람치고 김유겸은 너무 이진언이랑 친했다. 둘이 사귄다는 가제도 많이 떠돌았지만, 김유겸을 대하는 이진언의 태도는 그러한 의심을 사그라지게 만들기 충분했다. 타인이 보기에 이진언은 김유겸을 특별 취급하지 않았고, 따라서 아이들은 애인이 있다는 김유겸의 말을 그저 그런 변명으로 치부했다. 지금 김유겸에게 과팅을 권유하는 상대도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과 애들 전부 참석하는 건데 얼굴 한번 내미는 게 낫지 않아? 애인한테는 내가 잘 말해줄게.”
은근슬쩍 김유겸의 어깨를 스치며 말하는 꼬라지에 이진언의 눈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원래도 싫다는 사람에게 계속 강요하는 짓거리를 좋게 생각하지 않던 이진언이다. 강길태와의 대립도 그래서 생겼다. 그랬던 이진언이 이제는 저에게 소중하게 된 사람이 누군가의 강요 당하는 모습을 가만히 앉아서 구경할 리가 만무하다.
“싫다고 하면-,”
“아까워서 안 돼.”
“뭐?”
강길태에게 했던 것 그대로 당사자가 싫다는데 왜 강요를 하느냐고 한마디 하려고 했던 이진언은 곧이어 들려온 김유겸의 말에 이게 뭔 말인가 싶어서 입을 다물어야 했다. 박지운도, 과팅을 권유하던 학우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이 이게 무슨 말인가 싶어서 고개를 갸웃거리는 동안, 김유겸은 싱글거리는 얼굴을 지우지 않았다.
“우리 애인님 아까워서 남들한테 못 보여줘.”
“아, 어. 그래. 그렇구나.”
“응, 그러니까 얘기는 우리 애인님한테 말고 다른 애들한테 잘해줘. 부탁할게, 혜주야.”
“어, 응. 알았어.”
정혜주는 김유겸의 싱글거리는 얼굴에 본인이 한 방 먹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다른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김유겸의 애인설이 가짜라고 생각해서 다소 무데뽀로 밀어붙였던 건데, 정확하게 어퍼컷으로 맞았다. 김유겸이 저렇게까지 이야기하는 것을 봐서 애인은 정말인 듯했다. 상대가 누구인지는 알지 못하지만, 아니고서야 저런 식으로 과팅을 거절할 리가 만무하다. 정혜주는 다소 얼떨떨한 얼굴이 돼서는 자리를 벗어났다. 김유겸은 어깨를 한 번 으쓱한 다음 시선을 바로 했다.
“아우, 징그러운 놈.”
옆에서 해당 광경을 모두 목격한 박지운의 평가는 그랬다. 둘이 사귀는 거 뻔히 아는 상황에서 이러한 행위는 눈꼴 시릴 뿐이었다. 정말이지 커플 사이에 껴서 내가 왜 이 고생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강타하고 지나갔다. 부러우면 지는 거라고 사람들이 말하는데, 사실 지금은 쬐애금 부러웠다.
“부러우면 지는 거래요.”
이런 박지운의 심정에 김유겸이 기름을 부었다. 내가 언제 부럽댔어!!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이라는 세간의 말을 잊고, 박지운은 침을 튀겨가며 아니라고 항변했다. 정말 아니라는 건지 아니면 진짜인데 괜히 정곡을 찔려서 괜히 심하게 변명하는 건지 알지 못할 정도로 엄청난 반응이었다. 이진언은 제 절친한 친우의 행동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여튼 주변에 자리한 것들의 속은 전부 투명하다. 이러한 사실이 좋게 작용할지 나쁘게 작용할지 알지는 못했으나, 적어도 저에게는 거짓을 말하지 않으니 되었다고 생각한다.
“징그러운 놈들.”
버럭버럭 소리를 다 지른 모양인지 박지운은 앞에 놓인 아메리카노의 아직 녹지 않은 얼음을 입에 넣고 우두둑우두둑 씹어 먹었다. 앙칼지게 어금니에 힘을 줘 씹는 모양새가 제법 옹골졌다. 아무래도 조금 전 김유겸의 말이 꽤 거슬리는 모양이다.
“…지운 선배 화 많이 난 거 같은데요….”
눈앞에 자리한 커플의 꼴을 보기 싫다는 듯 손부채질까지 하는 박지운의 모습에 김유겸이 기가 죽어서 이진언에게 작게 귓속말을 속삭였다. 퍽 예의 차리는 김유겸의 성격상 혹시라도 박지운이 기분이 많이 상했으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에 좌불안석이었다. 반면 이진언은 힐끗 박지운을 일별하고도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다. 박지운의 성격을 너무나 잘 아는 이진언은, 조만간 박지운이 이런 본인의 행동이 어리석었다며 머리를 쥐어뜯고 고민하리라는 게 너무나 훤히 예상되었던 탓이다.
“괜찮아. 그냥 둬.”
“그래도,”
절친인 이진언은 그냥 두라 하지만, 왜인지 자신이 실수한 것만 같아서 김유겸의 마음은 좋지 않았다. 그렇게 미안하면 커피나 한잔 더 사다 주던가. 괜찮다고 해도 자꾸만 안절부절못하는 김유겸에게 해결법을 제시하자마자 냉큼 일어나 쪼르르 계산대로 뛰어가 버린다. 그러는 뒷모습에 이진언은 픽 웃음이 났다.
“심술 그만 부려.”
“심술부리는 거 아니거든?”
“애가 눈치 보잖아.”
“…….”
평소라면 남친 편드냐? 라는 소리가 나왔어야 하는 타이밍인데 박지운은 입을 꾹 다물었다. 조금 전에 본인이 지나치게 예민했다는 사실에 동의한다는 무언의 감상이었다. 이진언은 제 남친에게 무례하게 군 박지운을 용서했다. 혹시라도 본인보다 남친을 우위로 칠까 봐 솔직한 말로 조금 불만을 품었었는데, 역시나 박지운이 아는 이진언은 그럴 인간이 아니다. 다만, 이런 자리에서 별것도 아닌 일로 상대를 불편하게 만들지 말라고 충고할 뿐이다. 다분히 이진언다운 지적이라서 박지운은 입을 다물었다.
“지운 선배, 커피 더 드세요.”
“…고마워.”
아닌 밤중에 홍두깨처럼 괜히 잘못하지도 않았으면서 타박을 받은 김유겸이었으나 상대를 원망하는 모습을 보이지는 않았다. 이진언과 얽힌 인연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김유겸에게 박지운은 자신이 꽤 좋아하는 선배였다. 그런 선배의 심기를 건드려 놓고 태평할 정도로 무심한 성격은 아니다. 아메리카노 한잔에 선배가 마음을 풀어준다면 싸게 먹혔다.
“홈페이지는 걱정하지 마. 내가 어떻게든 해볼게.”
괜히 심술부린 게 미안해서 박지운은 재빨리 화두를 돌렸다. 정혜주가 등장하기 전까지만 해도 대화하던 주제였으니 집중은 금방이었다. 박지운이 마음 푼 것을 눈으로 확인한 김유겸의 얼굴에 다시 광명이 찾아들었다. 옆에서 이진언은 혀를 쯧쯧 찼다.
“이참에 몰카 모두 업로드하지 못하게 해.”
성범죄와 관련된 사건에서만 등장하는 단어라서 대중들이 인식하는 몰카의 정의는 국한된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당사자가 인지하지 못한 사이에 찍은 사진을 인터넷으로 유포하는 건 전부 불법이었다. 모두가 아는 사실이었으나, 사람들은 뭐든지 예외를 뒀다. 어쩌면 몰카라는 정의 자체를 다르게 하는지도 몰랐다. 학교 홈페이지는 특히 더 심했다.
이 사람 누구예요? 라는 질문 글로 심심찮게 김유겸이나 이진언의 몰래 찍은 사진이 업로드됐다. 밑으로는 당사자가 누구인가 하는 댓글이 달렸다. 이러한 행위 자체가 요즘 한창 문제라는 신상 털이 범죄라는 걸 모두 인지하지 못하고 연출되는 상황이었다. 인터넷에서 특정인의 신상을 너무나 확연하게 알게끔 글을 올리거나 발설하는 건 모두 개인 정보 침해였다. 예를 들어 게시판에 누군가의 얼굴을 올리고 무슨 과 몇 학번 누구입니다, 라고 알려주는 것도 이러한 침해에 속했다. 해당 인물이 단 한 명이기 때문이다.
“그래야지. 이번이 너무 유난하다.”
개인이 팔로워를 수락하는 SNS와 학교 홈페이지는 다르다. 불특정 다수에게 본인의 특징을 노출하는 것을 원하는 사람은 없었다. 또한, 보통 학교 홈페이지에 올라오는 글 대부분은 당사자의 동의를 구하지 않았다. 평소에 인터넷과 담쌓고 사는 이진언이나 김유겸으로서는 불쾌한 일일 뿐이다.
“그래, 몇 년 전 같은 일이 또 발생하지 않게 해야지.”
몇 년 전에 누군가가 익명으로 어떤 남자 학우의 벗은 사진을 올리며 당사자가 게이라고 아웃팅했었다. 당사자가 뭘 어떻게 하지도 못하게 사진은 급격하게 확산되었고, 나중에는 전혀 무관한 곳에까지 해당 학우의 사진이 등재됐다. 평소 인터넷을 하지 않던 학우는 사람들의 시선에 혐오가 절정에 치달았을 때 사건의 내막을 알게 되었고, 아니라고 때늦은 항변을 했지만 결과는 참혹했다. 누구도 믿지 않았다. 피해자였던 것이 분명했던 학우는 몇 달 지나지 않아 휴학해야만 했다.
그 학우가 지금 어디서 뭘 하고 사는지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때 그 사진 올린 사람이 길태 선배라는 소리가 있던데.”
“…뭐?”
대중들은 잔인하다. 그것을 이진언은 몸으로 깨우친 사람이었다. 진실이지도 않은 일을 마치 진짜인 것처럼 부풀리면서 타인에게 전도한다. 죽어서 저세상에 가면 말의 죄를 다스리는 지옥이 왜 존재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이진언은 너무나 선연하게 알고 있다. 정말은 다른 이들이 죄를 짓지 않기를 바라지만, 이뤄지지 않는 소원일 뿐이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이진언은 포기했다. 애초에 설득이 들어 먹히는 사람들이 아니라고.
“그때 피해자였던 사람 길태 선배랑 동기일걸. 그리고 길태 선배는 누가 봐도 엄청난 포비아고. 그래서 그러는 거지, 뭐.”
“…….”
“…….”
강길태가 포비아라는 사실을 몰랐던 것은 아니나 박지운의 입에서 확인 사살을 받는 기분은 솔직히 별로다. 정말은 강길태가 몇 년 전 끔찍했던 일의 주범이라는 증거는 부족한 상황이었지만, 어쩌면 강길태라면 그런 일을 자행하고도 남을 인간이라는 데 고개는 끄덕이게 된다. 누군가를 혐오한다는 걸 공공연히 표출하는 건 지양해야 하는 일이라는 건 모두가 인지한 사실이었지만, 강길태는 그러한 사실과 본인은 관계없다는 듯 굴었다.
하지만 이진언은 강길태가 몇 년 전 일의 범인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정말 몇 년 전 일의 진범이 강길태라면 본인이 한 행위를 위대한 업적이라고 생각해 주구장창 떠들고 다녀야 했다. 그렇지 않다는 건 적어도 강길태가 그때 일의 진범이 아니라서다.
“설마 길태 선배가 정말 그랬을라고요. 정말 그랬으면 이미 본인이 했다고 떠벌려도 옛날에 떠벌리고 다니지 않았을까요.”
표정이 딱딱하게 굳은 건 김유겸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면서 이진언과 동일한 판단을 의견했다. 사랑하면 닮는다더니, 사고의 패턴도 유사해지는 것만 같았다.
“행동은 그래도 길태 선배, 주변 눈 엄청 의식해. 일 발생했을 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사진 올린 범인 욕하는 사람들 수두룩한데, 정말 길태 선배가 그랬던 거라면 주변 돌아가는 말소리 때문에라도 본인이 그랬다고 못 할걸.”
“…….”
“…….”
박지운의 총평에 두 사람은 말을 잃었다. 정말이었다.
강길태는 밖에서 보이는 모습에 꽤 공을 들였다. 이번 김유겸 무대 사건 때만 해도 그랬다. 김유겸과 아이돌이 한꺼번에 무대에 오르자 학교는 대대적인 입소문을 탔다. 아이돌의 유명세에 힘입어 연예 정보 프로그램에 학교의 교정이 방송을 탔으며, 김유겸의 사연이 짧게 전파를 탔다. 이미 네임밸류가 높은 곳이라고 하지만, 공짜홍보를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때문에 교수진 쪽에서 이번 축제를 기획한 학생회에 금일봉을 내렸다는 후문이다. 어떻게 사용됐는지는 불분명했지만.
“뭐, 어디까지나 심증일 뿐이니까.”
평소라면 아니면 말고, 라고 말하는 사람을 경멸한다는 사실을 굳이 숨기지 않았겠지만, 지금은 사정이 좀 다르다. 정말 강길태는 그러고도 남는다. 떠도는 소문이 아니라 직접 경험한 바로 판단한 근거가 그랬다. 이진언은 얼마 전 강길태가 저와 김유겸을 걸고넘어진 상황을 복기했다. 단순히 당시 상황이 본인에게 불리해 그런 것이려니 하고 넘어갔는데 아니었나 보다. 사실 그때는 강길태보다 김유겸과의 일이 더 급해서 깊게 생각하지 않았었다.
“…몸 좀 사려야겠다.”
강길태 앞에서 몸을 사려야 한다는 사실이 싫지만, 유비무환이었다. 뭐든지 조심해서 나쁘지 않았다. 상대가 강길태라는 게 조금 마음에 걸렸지만, 김유겸을 위험에 빠지게 두지는 않을 예정이었다. 어차피 서로를 마음에 담고 동행하는 길이 험난하리라는 건 예상했다. 우리의 첫 번째 고난이 강길태라는 게 마음에 들지 않을 뿐, 어차피 한번은 넘어야 하는 고행이었다.
“일단 얘부터 좀 삭제해라.”
“어라? 그새 또 올라왔냐. 징하다, 진짜.”
갑자기 내려앉은 어색한 분위기를 바꾸려고 학교 홈페이지에 들어갔다. 여기서는 심각한 이야기를 하는 중인데, 고새를 못 참고 사진 하나가 또 올라왔다. 세 사람의 실시간 사진이었다. 셋이 함께 있으니 그림이 된다는 둥, 역시 눈 호강한다는 둥, 저런 사람들은 나라에서 보호해야 하나는 둥 과한 찬사가 주를 이뤘지만, 정작 사진의 주인공인 세 사람은 불쾌하기만 했다. 더군다나 댓글이 점점 셋이서 사귀면 안 되느냐는 쪽으로 흘렀다. 성희롱이었다.
“삭제 완료.”
박지운은 해당 페이지 주소를 복사해서 홈페이지 관리를 도맡은 후배에게 카톡을 보냈다. 당연히 얌전히 보내지 않았다. 이런 거 하나도 거르지 못하고 뭐 하는 거냐고 쿠사리를 거하게 주었다. 학생회 단톡이었다. 후배는 재빠르게 해당 사진을 삭제했고, 조만간 사진에 대한 공지를 재정비하겠다고 말해왔다. 박지운은 더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고, 이진언도 아무 말 안 했다.
“…….”
거의 바닥을 보이는 음료를 스트롱을 쭉쭉 빨면서 이진언은 주변을 살펴보았다. 지금 여기에 자리한 누군가가 우리들의 사진을 찍어 홈페이지에 올렸다. 누군지 모르니 답답했다. 알면 대면해서 경고하면 되는데. 후, 한숨이 절로 나왔다. 또다시 남들의 눈에 띄어 혓바닥에서 난장을 당해야 하는 앞날이 상상돼서 몸서리쳐지도록 싫었다.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그렇게 지어서. 정말이지 한숨이 끊이지 않고 되풀이되는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