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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해줘』
-선 밖의 사람
1.
사람들은 잘 알지도 못하는 타인에 대해서 참 많은 말을 만들어 내고는 한다.
김유겸 주변의 사람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들은 항상 같은 사람의 행동을 요사스러운 혓바닥 위에 올리고는 난도질하는 걸 즐기었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 뭐가 저렇게 자랑스러워 말을 해대는 건지 항시 의심스럽다. 아니, 본인들이 하는 말에 진실이 부재하다는 걸 아는지도 궁금하다.
대학에 다니는 학생들은 이제는 아이들, 이라는 단어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대가리가 굵어졌으니 본인이 한 말에 책임져야 한다는 뜻이다. 되는대로 입에서 지껄이고 아니면 말고의 시대는 지났다는 말이기도 했다. 그러나 가끔 그들은 그것을 잊는지 입에서 나오는 대로 말을 내뱉고는 하였다. 정말 지독한 습관이었다.
“이진언 선배 말이야, 묘하지 않아?”
그들의 입에서 처음부터 지금까지 회자가 되는 단 한 사람. 바로 이진언이다.
실용음악과 아이돌인 김유겸이 알 정도로 교내에서 유명한 사람이었다. 과가 같은 것도 아니요, 김유겸이 타인에게 관심이 유독 많은 것도 아닌데 그랬다. 아이들에게 이진언은 지금 누군가 언급한 것처럼 묘한 사람이었다. 일단 생긴 것으로 사람들 입에 회자되었으니 말 다 했다.
“묘하게? 어떻게?”
“아, 그게 말로는 설명이 안 되는데….”
이진언을 설명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생긴 것도 그랬지만, 행동도 그랬다.
딱히 어디가 튄다거나 하는 건 아니었다. 학과 행사에 빠지지도 않았다. 적당히 선을 지켰고, 적당히 어울렸다. 어른의 관계였다. 상당히 사회생활을 잘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튀고 싶어 하지 않음을 알겠으나 그래도 이진언은 그들의 눈에 띄었다. 이진언이 원한 것은 아니었다. 원망하려면 이렇게 태어난 저를 원망해야 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사람들은 아름다운 것에 시선을 빼앗기는 경향이 있다.
“좀, 색기가 넘친다고 할까.”
누군가의 평가에 아무도 쿠사리를 주지 않았다. 모두가 공감한다는 무언의 찬성이었다. 김유겸은 고개를 좌우로 꺾었다. 우두둑 소리가 났다. 학점을 맞추려고 어거지로 넣은 교양에서 만난 팀플 팀원들이었다. 실음과 아이돌이라고 소문난 김유겸을 보기 위해 의외로 출석률이 좋았다. 팀플하다 보면 왜 공산주의가 망했는지 알게 된다고 하는데, 그것도 김유겸 앞에서는 소용없어진다.
“그래서. 영역 구분은 어떻게 한다고?”
남 말 하는 건 딱 질색이다. 스스로가 말하는 것도 싫고, 남들에게 듣는 건 더 싫었다. 김유겸이 에둘러 그만 팀플에 집중하자는 내색을 비추자 팀원들이 허둥지둥 영역을 나누네 마네로 입씨름을 시작했다. 김유겸은 시선을 돌려 카페 밖을 바라보았다. 어차피 버리느니 참여하자는 의지로 시작하게 된 과제라 이들이 영역을 모두 정하고 떨거지를 준다고 해도 할 예정이었다. 딱히 전공과 관련인 과목도 아니었고, 이곳에 할애할 열정도 부족했다.
나뭇잎이 싱그러웠다. 바람에 나부끼는 모습이 마치 커튼 같았다. 얇은 재질로 된 부드러운 천이 펄럭이며 속을 드러내는 것처럼, 나뭇잎은 여기저기 몰려다니며 햇볕을 통과시켰다. 이대로 밖으로 나가 빛을 쬐고 싶게 하였다. 이래서 사람은 광합성하며 살아야 한다.
“유겸아!”
“…어?”
“이렇게 나눌 건데, 괜찮아?”
다들 노트북을 소유하기는 하지만, 팀플 첫날까지는 가져오지 않는다. 첫날에 노트북을 가져오면 PPT를 만들어야 한다는 암묵적인 룰이 생성된다. 자료 조사야 얍삽하게 네이버 지식인을 복붙해서 넣으면 되지만, PPT는 다른 이야기였다. PPT를 만든 사람이 마음만 먹으면 다른 팀원들 이름을 다 날려버리겠지만, 대학도 하나의 작은 공동 사회였다. 보통은 사회적으로 매장되는 걸 두려워해서 튀는 행동을 하지는 않았다.
“응, 나는 괜찮아. 이거 해서 어디로 보내면 돼?”
남들이 보면 복 받은 환경이라고 할 만했다. 팀원들은 웬만해서는 여자들이었고, 그녀들은 김유겸에게 친절했다. 실음과 아이돌이라는 말이 괜히 돌지 않았다. 김유겸은 사람들에게 퍽 친절한 편에 속했고, 사람들은 그런 김유겸을 좋아했다. 특히나 여자들이 김유겸을 좋아했다. 이런 현상을 질투해서 남자들이 경계할 법도 한데, 의외로 김유겸의 인맥은 여자보다 남자가 많았다. 즉, 여자들은 짝사랑 상대로 김유겸을 보았고, 남자들은 성격 좋은 친구로 김유겸을 보았다.
인맥이라는 건 세상을 편하게 살기 위한 으뜸 조건이었다.
“어, 이진언 선배다.”
팀원들과 번호를 교환했다. 팀원들은 김유겸의 번호를 무슨 보물이라도 되는 듯 굴었다. 그러는 모습에 김유겸은 피식 웃었다. 어차피 자신의 번호는 공공재였다. 실음과에서 실력이 좋은 보컬이라는 건, 반 연예인과 마찬가지였다. 이미지 관리에 신경 써야 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또한, 직접 알려주지 않은 사람에게서 오는 전화와 문자에도 나름 정중하게 거절해야 하는 때가 발생하기도 하였다. 그래서 김유겸은 대외적으로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번호 외에도 진짜 친한 사람들에게만 뿌리는 전화번호를 별도로 보유했다. 자신의 사생활 보호를 위해서는 이 방법이 최선이었다.
“선배 진짜 예쁘게 생겼다.”
팀원들과 모인 카페는 2층이었다. 스터디룸이 따로 마련된 곳이었다. 요새는 대학가에 이런 카페가 유행이었다. 팀플이다 뭐다 모여야 하는 일정은 많은데, 장소가 마땅하지 않으니 모두가 살기 위한 시대의 변화였다. 주머니 가난한 대학생들에게 제법 인기가 많았다.
“…….”
누군가의 말에 김유겸은 슬쩍 고개를 돌렸다. 훤히 열어놓은 창문 밖에 웬 남자 하나가 교정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예의 “그” 이진언이었다. 조금은 길게 자란 머리를 가지런히 빗었고, 등에는 백팩을 멨다. 하얀색 티셔츠에 블랙진. 거기에 하늘색 스니커즈를 신었다. 정말 특별하지 않은 평범한 대학생룩이었다.
문제는 얼굴이었다. 제아무리 스타일링을 평범하게 한다고 해도 얼굴은 지우지 못했다.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마스크를 했지만, 언뜻언뜻 보이는 살결에서 빛이 난다. 사람들을 끌어당겼다.
예쁘다, 는 말에 공감했다. 남자에게 예쁘다는 말을 써도 될지 모르겠지만, 여하튼 이진언은 예뻤다. 가까이서 보지 않고 멀리서 보기만 했는데도 예쁘다는 것을 알 정도였다. 가까이서 보면 더 환장하게 예쁘지 않을까 하였다. 얼굴만으로 사람 됨됨이를 예상하고 파악하는 건 속물이라고들 하지만, 외모지상주의에서 가장 큰 혜택을 보는 건 다름 아닌 김유겸, 자신이었다.
연습생을 시작할 때는 180이 겨우 될까 말까 했던 키가 연습생이 끝날 때는 180을 훌쩍 웃돌았다. 주변의 기대를 알아서 김유겸은 몸매 관리에도 공을 들였다. 결과로 남들보다 약간 넓은 어깨를 소유하게 됐는데, 큰 키와 넓은 어깨 덕분에 주변의 다른 남자애들도 김유겸을 함부로 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얼굴보다 피지컬로 밀어붙이는 연습생은 또 아니었다. 사람들은 밑으로 내려간 김유겸의 눈꼬리를 매력 포인트로 손꼽았다. 거기에 웃을 때마다 방싯하고 본연의 존재를 드러내는 삶은 달걀 같은 광대도 귀엽다고 입 모아 칭찬했다. 확실히 무표정할 때보다 살살 웃으며 하는 얼굴이 더 호감형이었다. 이런 모습 때문에 한때 별명이 겸댕이였다. 귀염둥이와 댕댕이의 합성어였다.
확실히 김유겸을 가만히 보노라면 주인과의 산책에 신이 나서 꼬리를 흔드는 강아지를 연상케 했다. 굳이 견종을 따지자면 소형견보다는 사람들에게 상냥한 골든 리트리버나 웃는 얼굴이 귀여운 사모예드 같은 대형견에 가까웠다.
눈을 달고 태어난 이상 타인의 외모를 보지 않을 리 만무했다. 평가하는 것과는 별개인 일이었지만, 외형이라는 건 취향을 탔다. 예를 들어 어디의 누군가는 김유겸의 아래로 처진 눈꼬리가 존나게 싫다고 말하고 다녔다.
“선배 친절하다던데. 그런데도 선이 있대.”
“선?”
“응. 친절하기는 한데 묘한 선이 있대. 마치 넘어오지 말라는 것처럼.”
처음 얼굴 보고 앉아서 다들 동갑이라는 걸 알고 말을 편하게 하자 했다. 모두 수락했다. 말을 편하게 하니 회의는 금방이었다. 다행히 누구 하나 빼지 않았다. 김유겸 하나로 인해 팀플하게 된 남자 팀원들은 편하게 과제 할 예정이다.
“친해지고 싶어도 선 넘으면 얄짤없다고 하더라.”
팀원의 말에 김유겸은 고개를 돌렸다. 이미 이진언은 횡단보도를 건너서 학교 정문으로 향했다. 누군가가 반갑게 아는 체를 하자 손을 들어 흔들어주었다. 그뿐이었다. 친한 사이는 아니었는지 후배의 인사를 예의상 받아주는, 딱 그만큼의 친절함.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가장 기본적인. 이진언은 그런 예의가 몸에 밴 사람이다.
“선을 넘으면 안 되지.”
방법은 간단했다. 허무할 정도였다. 예의는 지켜져야 하는 것이 맞았다. 친하다고 과신하다가 엎어지면 끝인 게 인간관계였다. 특히 대학교는 더했다. 학점 0.1점에 누군가는 울고 누군가는 웃는 게 갈리는 세상이었다. 어차피 대학도 경쟁 사회였다. 어찌 되었든 서로 관점이 다른 사람들이 모인 최초의 사회였고, 사람 상대하는 법을 알게 되어 진짜 사회로 나가기 전의 임시 정류장이기도 했다.
“나 연습 때문에 먼저 갈게.”
팀플하기 전에 미리 양해를 구했었다. 팀원들은 노골적인 시선의 아쉬운 마음을 애써 달랬다. 몇몇은 벌써 자신의 번호를 땄다며 단톡에서 호들갑 떨게 분명했다. 익숙한 일이다. 다른 사람들보다 타인의 시선에 많이 노출된 채 살아가야 하다 보니 불편한 것도 많았지만, 지금은 얻는 이익이 더 많다는 걸 알아서 아직은 저런 행동에 태클은 걸지 않을 예정이었다.
김유겸은 팀원들에게 인사를 하고 카페를 나왔다. 정문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카페라서 얼굴을 알아보는 사람들이 많았다.
쟤, 쟤가 김유겸이야. 누구? 왜 있잖아, 실음과 아이돌! 아, 그 연예인 기획사 소속됐다가 나왔다던?
굳이 숨길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졌다. 신경 쓰지 않았다. 기획사에 소속됐던 것도 맞고, 데뷔 코앞에서 엎어졌던 것도 맞다. 거짓을 말한 것이 아니니 정정하라고 요구하지 못한다.
같이 데뷔를 준비했던 친구는 몇 개월 전에 진짜 아이돌로 데뷔했다. 소속사가 커서 데뷔하자마자 인기가 제법 좋았다. 그런 친구가 얼마 전에 SNS에서 자신을 태그해서 글을 올려 김유겸은 더한 유명세를 떨치게 되었다. 안 그래도 학교에서 유명 인사였는데, 이번 일로 인해 더욱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친구는 나중에 미안하다고 사과했지만, 김유겸은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이번이 아니었더라도 언제고 사람들의 시선에 노출될 일이었다.
이쯤이었나.
카페를 나와 횡단보도 앞에 선 김유겸은 뒤를 휙 돌아보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자신이 머물렀던 스터디룸 카페의 창가에 다닥다닥 붙어 밖을 주시하던 인영이 후다닥 흩어지는 모습이 보였다. 김유겸은 피식 웃었다. 이럴 때면 진짜로 연예인이 된 기분이었다. 지난번에 데뷔가 엎어지고 나서 다시는 기획사 쪽은 얼씬도 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는데 말이다.
삐 비비빅- 삐 비비빅-
누군가 눌러 놓은 시각장애인용 알림음에 퍼뜩 정신이 들었다. 사람들이 우르르 횡단보도를 건넜다. 김유겸도 얼른 발을 내밀었다. 뛰다시피 건너갔다. 타이밍이 조금 늦었던 탓에 건너편에 닿자마자 신호등은 빨갛게 바뀌었다. 후하, 숨을 한번 정돈하고 정문 안으로 발길을 재게 놀렸다.
***
“안 해?”
“안 해요.”
“진짜 안 해?”
“진짜 안 해요.”
“안 아깝냐?”
“안 아까워요.”
축제 때 노래를 불러 달라는 청을 거절하는 건 솔직히 힘들었다. 학과 생활에 열을 올리지 않아도 축제 때 노래 한 번으로 학우들에게 확실하게 각인시켜두면 남은 일 년 동안의 생활이 편하다는 걸 모르지는 않았다. 작년에 부른 노래가 거의 전설이 된 지금, 또 한 번 노래를 불러 달라는 학생회의 청은 그래서 김유겸에게는 거부하지 못하는 유혹이기도 하다. 그래도 김유겸은 아까부터 요지부동, 거절의 말을 내뱉었다.
“나였으면 좋다고 달려들 텐데.”
학생회 부회장까지 동원된 캐스팅이었지만, 어째 김유겸은 꼿꼿하도록 고고하기만 했다. 언제부터 저렇게 고집이 세어진 건지 궁금할 정도였다. 이미 교내에서는 얼굴이 팔릴 대로 팔린 인물이라 축제 때 무대 한번 올라가는 건 큰일도 아니었다. 때문에 학생회 측에서는 안일하게 참가를 예정했다. 그들로서는 김유겸의 거절을 예상하지 않았다.
“무대에 서고 나면 교수님들한테 얼굴도장 확실히 찍고, 한동안이기는 하지만, 여자들한테 인기도 좋아지잖아. 너 작년에 축제 무대에 서고 나서 고백 줄줄이 들어왔던 거 기억 안 나냐.”
부회장의 말에 김유겸은 웃었다. 어디의 누군가에게는 그런 일이 부러움의 대상이구나 싶기만 했다. 정작 자신은 그때 곤욕을 치렀던 기억만 존재했다.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에게 쉬는 시간마다 불려가 좋아한다는 말을 들어야 했다. 심지어 어떨 때는 널 좋아하는지 아닌지 헷갈리지만, 호감 간다는 말도 들었다. 남자였다. 편견을 지니지는 않았지만, 성향이 그쪽은 아니라서 정중하게 거절했었다.
“교수님한테는 이미 충분히 예쁨 받고, 인기 같은 거 별로 관심 안 두려구요.”
“자신감이 너무 넘치면 재수 없다더니, 네가 딱 그 꼴이다.”
우웨웨웩- 토하는 시늉하던 부회장은 싫다는데 어쩌겠어, 라는 얼굴이었다. 저런 면 때문에 김유겸은 부회장을 좋아했다. 설득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이대로 돌아가면 분명 괴팍한 학생회장에게 쿠사리 먹을 게 뻔한데, 그래도 싫다고 하니 더는 권유하지 않는다. 부회장이라고 하면 학교에서는 어느 정도 권력을 잡은 직책인데도 사람이 그런 것에 얽매이지 않는 성격이었다.
“어, 왜.”
평안 감사도 싫으면 그만이라는데 내가 뭔 힘이 있겠냐. 마지막으로 부회장은 김유겸더러 찔리라고 말하고는 몸을 돌렸다. 미안하기는 하였으나 티 내지는 않기로 했다. 여기서 티 내버리면 발목을 잡힐지도 모른다. 애초에 거절할 생각이었으면 끝까지 태도를 유지하는 게 맞다.
“아니, 나 김유겸 섭외하려다 나가리 남. 여기? 실음과 연습실. 온다고?”
주머니에서 울리는 벨 소리에 부회장은 양해를 구하고 전화를 받았다. 이야기가 전부 끝났으니 양해를 구하지 않아도 됐을 테지만, 부회장은 예의 하나는 끝장나게 바른 인간이었다. 김유겸은 괜히 통화를 훔쳐 듣는 느낌에 손을 들어 머리를 긁적였다. 예의가 끝장나게 바른 부회장의 모습에 아까 카페에서 팀원들이 말하던 사람이 떠올랐다. 공연히 무관한 사람을 괜히 갖다 붙인다 싶어서 얼른 고개를 가로저어 생각을 떨쳐내었다.
“올, 이진언. 웬일?”
생각을 떨쳐내자마자 들리는 상대의 이름에 김유겸은 푸흣, 입에 머금었던 물을 밖으로 도로 쏟아 내었다. 부회장이 이건 뭐야? 라는 얼굴로 돌아보았다. 캑캑, 사레까지 들려서 기침하자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다가와 등을 두들겨 주었다. 퍽퍽, 다소 감정 실린 주먹이 등을 두들겨 패자 그제야 목에 얹혔던 물이 가슴으로 내려가는 느낌이었다.
“응 알았다. 조금 이따가 봐.”
한쪽 귀로는 통화하고, 다른 손으로는 등을 두들기던 부회장이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우지 못한 채로 전화를 종료했다. 여전히 간헐적으로 캑캑 소리 내는 김유겸을 쯧쯧 혀를 차며 바라보던 부회장은 그대로 연습실 소파에 드러누워 버렸다.
“이진언 오면 깨워.”
“…….”
“아, 너 이진언 모르던가.”
“아뇨, 알아요.”
“엉.”
부회장은 그대로 눈을 감았다. 김유겸은 머리를 긁적였다.
두어 달 정도 뒤에 예정된 축제였지만, 학생회는 벌써 골머리를 썩일 게 많았다. 매년 비슷비슷한 패턴대로 돌아가는 축제처럼 보이지만, 안에 들어간 학생들의 노고가 다르다는 뜻이었다. 당시 학생회 취향이 어떤 것이냐에 따라 콘셉트도 바뀌고, 자잘한 룰도 바뀌었으며, 무엇보다 진행비가 바뀐다. 학교 네임밸류 때문에라도 현재 활동 중인 연예인 중에서 가장 핫한 가수를 부르는 것도 같은 이치다.
연예인, 이라는 단어에 생각이 미치자 김유겸은 혀를 곱씹었다.
올해에 가장 핫한 그룹은 아무래도 자신이 몸담았다가 떨어진 소속사에서 데뷔한 아이돌이었다. 김유겸을 태그한 SNS를 쓴 친구가 활동하는 곳이기도 하다. 학교 측에서 해당 그룹에 출연 의사를 물었다는 걸 김유겸이라고 모르지는 않았고, 거의 100%에 가깝게 출연이 확정되었다는 사실도 이미 학우들 사이에서는 얼마 전에 한창 회자되었다.
당연히 그들의 혀 위에는 자신이 같이 올라갔고, 자신도 모르는 새에 타인에게 집중적으로 난도질을 당했었다. 불쾌한 경험이었다.
누군가에게 회자되기를 원하지 않았다. 작은 일로도 화제를 몰고 다니는 인물이라서 못 본 척할 뿐이지, 원래 성질대로 했다가는 학교 전체를 전부 뒤엎고도 남았다. 보는 눈이 많은 생활을 했던 탓에 지금을 느긋하게 누릴 만큼의 마음가짐이 되었다. 간간이 들려오는 데뷔한 친구의 푸념 섞인 말에도 웃으며 넘기는 여유가 이제는 생겼다. 다행한 일이다.
“박지운.”
부회장은 소파에 누워서 팔짱을 끼더니 그대로 스르륵 잠이 들어버렸다. 연습실 소파라고 해도 전혀 편하지 않았다. 온종일 연습하다가 쪽잠을 자는 용도로 사용되는 소파라서 푹신함은 누구보다 잘 안다. 김유겸은 이곳에서 편히 자라고 해도 죽어도 못 자겠던데, 간밤에 얼마나 잠을 자지 못한 건지 부회장은 정말 그런 소파 위에서 잘만 잤다.
“…안녕하세요.”
부회장이 잠든 지 30여 분이 넘었다. 이제 정말 깨워야 하지 않나 고민하는 찰나, 연습실의 문이 열리더니 한 말쑥한 인영이 들어섰다. 흰 티셔츠에 블랙진, 하늘색 운동화. 검은색 스냅백에 역시나 검은색 마스크를 낀 사람이었다.
저 사람은 스스로가 타인에게 노출되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온몸으로 말한다. 그런 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나 애석하게도 어째, 하고 다니는 꼴이 더 눈에 띄니, 안타깝지만 당신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갔다고 말해주고 싶다.
“아, 네.”
혼자인 줄 알았던 친구가 다른 사람과 함께인 걸 확인하고는 이진언은 흠칫 몸을 떨었다. 뭉개졌던 말을 바로 하기 위해 얼굴의 반을 가린 마스크를 풀어 내렸다. 검은색 마스크 위에 그려진 프린팅은 해골이었다. 딱히 누군가에게 과시하기 위해 고른 물건은 아닐 테지만, 희한하게 감각적인 디자인이기도 했다.
이진언의 턱밑에서 까만 마스크가 달랑였다. 마스크의 고리 한쪽을 귀에 꽂고 다른 쪽은 아래로 내려뜨린 채 박지운! 하고 부회장의 이름을 불렀다. 박지운은 짧은 순간에 얼마나 깊은 잠에 곯아떨어진 건지 이름을 수차례 불러도 일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이진언의 얼굴에 순간 곤란한 빛이 스쳤다.
“도와드려요?”
요새 들어 미세먼지 농도가 나쁘다. 집을 나서기 전에 김유겸도 앱으로 미세먼지 농도를 확인하고 나올 정도다. 그만큼 공기가 탁했고, 하늘은 뿌옇다. 이진언이 마스크를 쓰는 이유를 십분 공감한다는 뜻이다. 다만, 그것은 이 까만 마스크 아래의 얼굴이 저러지 않는다는 가정하에 나오는 공감이었다.
데스메탈 록을 부르는 가수 콘서트에서나 어울릴 법한 프린팅이 그려진 마스크 밑의 얼굴이 이토록 찬란하게 말간 것은 반칙 아닌가.
어리석지만, 이런 생각이 절로 들 만큼의 얼굴이었다.
예쁘다는 말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하도 많이 들어서 면역이 생겨 그렇다기보다는, 뭐랄까.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믿어서다. 예쁘다는 말은 다분히 상대의 외모만을 가지고 판단하는 말이었다. 상대를 평가하는 말이라는 뜻이다.
연습생 생활할 때 관계자에게 전문적으로 평가를 당하며 듣는 예쁘다는 말과 일반인에게 비전문적으로 주관적인 일방적 평가를 당하며 듣는 예쁘다는 말은 다르다. 다름이 틀림이 아님을 알지만, 이럴 때만큼은 틀렸다고 지적하고 싶다.
김유겸은 지금 눈앞의 사람에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모자를 벗고 머리를 쓸어 올리는 이진언이라는 사람의 행동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속으로 예쁘다. 라는 단어를 떠올리고 만다. 누군가에게 이진언을 설명할 때 한 치도 망설이지 않고 예쁜 사람! 이라고 말할 정도로, 눈앞의 사람은 아름다웠다.
김유겸은 속으로 아까 이진언을 평가한 아이들의 말에 공감하였다.
묘하게 예뻐.
맞다. 예쁘다. 그리고 묘했다.
팀원들은 그것을 색기 흐른다고 표현했지만, 그러기도 아니기도 하였다. 이진언은 남자답다는 말로도 여자 같다는 말로도 설명하기 힘들었다. 굳이 구분하자면 상당히 잘생긴 편에 속한 얼굴이었는데, 희한하게 가까이 다가가면 침을 꿀꺽 집어삼킬 분위기를 풍긴다. 청아한 분위기를 지녔지만, 얇은 옷감에 감춰진 속살이 보고 싶게 하였다. 눅눅하고 어두운 분위기에 마른 볕 향기가 나는 거 같은 사람이었다.
홀리고 있다.
정말 이 사람은 의도치 않게 다른 이를 홀리는 분위기를 풍겼다. 김유겸은 왜 이진언이 스냅백을 깊숙이 쓰고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는지에 대해 십분 공감하였다. 저런 얼굴로 이제껏 무사하게 살아왔다면 그게 신기한 일이었다. 제 얼굴을 갈아 먹지 못하니 최대한 숨기는 게 능사다.
“…뭐예요.”
모자를 벗고 머리를 쓸어 올리던 이진언의 눈동자가 김유겸을 찾았다. 이크, 싶어서 재빠르게 시선을 다른 곳으로 옮겼지만, 이미 이진언의 얼굴에는 언짢은 기색이 잔뜩이었다. 너무 노골적으로 봤나 보다. 하기야. 누구라도 얼굴을 이렇듯 노골적으로 쳐다본다면 자신이라도 싫을 거 같았다.
‘친해지고 싶어도 선 넘으면 얄짤없다고 하더라.’
팀원이 아까 해준 말이 떠올랐다. 김유겸은 눈동자를 데구루루 굴리며 이 상황을 모면할 변명거리를 생각해내려 애썼다. 아무래도 자신은 이진언이 정한 선을 넘긴 모양이었다. 김유겸은 이진언에게 무뢰배로 기억되고 싶지 않았다. 이래도 흥 저래도 흥으로 살자가 삶의 모토였지만, 지금만큼은 유유자적이 안 된다.
“김유겸이요.”
“…?”
“뭐냐고 물어보셨잖아요. 김유겸이라구요.”
“…….”
순간, 이진언의 얼굴은 이 또라이는 뭐야? 라는 표정이었다. 제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길래 뭐냐고 물으니 돌아오는 대답이 이름이라. 어디를 보아도 흔히 말하는 정상적인 대화는 아니었다. 그것은 김유겸도 인정하는 바였다. 상대에게 또라이라고 비칠 것을 각오하고 한 대답이다. 지금처럼 말고는 대답할 경우의 수가 제한적이기도 했다.
“…어이가 없네.”
김유겸의 대답에 이진언은 말을 뱉었다. 얼굴은 웃는 낯이었다. 진심으로 어이없어 웃는다기보다는, 지금 이런 상황에서 저런 대답을 한 김유겸의 모습이 귀여워서 웃는 얼굴이었다. 화가 난 게 아니라는 뜻이다. 연신 머리를 쓸어 올리는 손은 작았다. 사샥-하고 넘어가는 머리카락은 부드러웠다. 바람이 불지도 않은 실내에서 왜인지 이진언의 손이 바람이 되어 머리카락을 넘기는 것만 같은 착각이 든다.
“김유겸?”
“네.”
“후배지?”
“네.”
“내가 너 기억한다.”
협박과 비슷한 대화였다. 아니, 정말 그렇다고 해도 상관하지 않았겠지만, 지금 이진언의 얼굴에 웃음이 가득해서 협박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이진언은 지금 김유겸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그것은 김유겸의 천성이었다. 살기를 띠지 않으면 평소에는 순하게 생긴 얼굴은 상대방에게 무조건적인 호감을 지니게 했다. 이진언도 그랬다. 어이없다는 듯 웃던 얼굴이 어느새 귀염 떤다는 표정으로 바뀐 사실 하나만 보더라도 알겠다.
“박지운. 일어나라고.”
“아 아프다고 햄찌새끼야!”
통성명이라고 하지 못할 인사를 마치고 이진언의 시선은 여태 소파에서 곯아떨어져 일어나지 못하는 박지운에게로 향했다. 친한 사이인 듯, 이진언은 박지운의 등을 퍽퍽 후려쳤다. 얼굴은 고양이를 닮았으면서 펀치는 강했다. 흔히 걸그룹이 애교로 보이는 냥냥 펀치가 아니라 이건 진짜로 사심 담아 때리는 살인 펀치였다. 때문에 소파에서 조금이라도 더 눈을 붙이려고 했던 박지운은 두 눈 가득 눈물을 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햄찌보다는 야옹이 같은데….
욕하며 맞은 곳을 문지르는 박지운의 입에서 나온 단어에 김유겸은 생각했지만, 토를 달지는 않았다. 이진언은 박지운을 보며 혀를 쯧쯧 찼고, 박지운은 혹시라도 귀한 몸에 흠집이 났을까 옷을 홀라당 뒤집어서 거울에 비춰보았다. 저렇게 보면 참 몸 생각하는 사람인 거 같은데, 학생부는 왜 들어갔나 모르겠다. 학생부에 들어가면 바로 마음고생, 몸 고생한다는 걸 모르지 않을 텐데 말이다. 훗날 정계로 나갈 거 아니면 안 가는 게 맞지 않나 싶기도 하다.
“가자.”
이진언은 기어코 퍼졌던 박지운을 일으켰다. 투덜투덜하면서도 박지운은 자리에서 일어나 주변을 정리했다. 두 선배가 나가려는 몸짓을 보이자 김유겸은 허리를 꾸벅 숙여 인사했다. 박지운은 다음에 보자며 손을 흔들었고, 이진언은 묵례했다. 연습실을 나가면서 박지운은 이진언에게 침을 튀겨가며 뭐라 뭐라 말을 걸었고, 이진언은 어디서 개가 짖나 하는 얼굴이었다. 김유겸은 두 사람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한참을 바라보았다.
‘어이가 없네.’
‘내가 너 기억한다.’
웃었던가. 말하면서 피식하니 실소했다. 웃음이 싱그럽다고 느꼈다. 아니 말이 좀 이상한데, 싱그럽다는 단어는 꽃이나 뭐 그런 데 쓰는 거 아닌가. 단어의 쓰임이 모순적임을 느끼면서도 김유겸은 정말 그렇게 생각했다. 싱그러웠다.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 저런 게 살아있다고 하는 거구나.
살면서 지나치는 수많은 사람도 전부 살아있을진대, 왜 유독 이진언만 생생하게 다가오는 걸까.
“…….”
김유겸은 주먹을 꽉 쥐었다.
나 저 사람이랑 친해지고 싶어.
그래서 그이가 그어놓은 선 안에 들어가고 싶어.
이상한 욕망이 샘솟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