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팬지
-만약 둘 사이에 네임 버스 설정이 더해진다면
지구상에서 약 30%의 사람에겐 10대 때 신체 부위에 이름이 떠오른다. 그렇게 몸에 발현되는 이름은 운명을 나타낸다. 물론 이름이 발현됐다고 해서 그 상대를 반드시 만나리라는 보장은 없다. 지구에는 80억에 가까운 사람이 살고 세계는 넓었다. 그렇다 보니 한국인에게서 발현되는 운명의 상대가 한국인이라고 장담할 수도 없었다.
이름이 발현된 사람들은 평생 만날지 못 만날지 모르는 이름을 몸에 지니고 있는 것보다 지우기를 바랐고, 반대로 이름이 발현되지 않는 사람들은 로맨틱하다며 제 연인의 이름을 새겨 넣곤 했다.
덕분에 이득을 보는 건 타투이스트들이었는데 개중에도 발현된 이름을 지워주는 특수 기술을 가진 네이미스트들은 돈을 쓸어모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권력자들은 그들끼리 관계를 맺길 바랐기 때문에 제 자식들에게 듣도 보도 못한 사람의 이름이 나타나는 것을 기피했다. 그들은 이름이 나타나면 지우고 정략결혼 상대 이름을 새기기 바빴다. 유명한 네이미스트들은 모두 비밀 엄수를 지키며 어느 권력가 집안과 계약을 맺고 일하는 것이 태반이었다.
물론 세연 강씨도 예외는 아니었다.
우성 알파로만 대를 잇고 싶어 하는 세연 강씨 집안에게 몸에 발현되는 이름은 성가시고 귀찮은 존재일 뿐이었다. 어제는 사촌이었던 여자와 오늘은 결혼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 빈번한 집안에서 이름이 발현되고, 그 이름의 상대를 찾겠다고 나가기라도 하면 여간 골치가 아니었다.
그 때문에 세연 강씨는 아이의 몸에 이름이 나타나기라도 하면 무섭게 그 흔적을 지워버렸다. 지혁은 자신도 언젠가 몸에 이름이 나타나면 네이미스트와 조우할 줄 알았으나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대학교에 입학할 때까지 지혁에게는 누구의 이름도 나타나지 않았다. 이름이 발현되는 것이 100%가 아닌 것은 알고 있지만 지혁은 내심 서운했다. 우성 알파가 아닌 것도 모자라 이름조차 발현되지 않으니 평범한 인간이라고 신이 저에게 말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반면 동생 수혁인 이미 10살 때 이름이 발현됐다고 했다. 물론 지혁도 실제로 본 것은 아니고 수혁에게 들은 얘기였다. 수혁은 오메가라는 이유로 일찍부터 집안의 관심에서 벗어난 상태였다. 수혁의 몸에 발현된 이름은 집안의 어느 누구도 궁금해하지 않았고,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당연히 지우지도 않았다.
지혁이 수혁에게 보여 달라고 하면 충분히 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지혁은 단 한 번도 보여 달라고 한 적이 없었다. 수혁의 몸에 떠오른 낯선 이름을 굳이 눈으로 확인하고 싶지 않았다. 수혁에게 저 말고 다른 상대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은 말로 정의하기 어려운 불쾌함을 갖고 왔다. 덩달아 저는 생기지 않은 이름이 수혁에게는 생긴 것도 부러웠다.
시기와 질투, 이런 부정적인 감정 때문에 지혁은 그 몸에 있는 이름을 한 번도 보여 달라고 한 적이 없었다. 지혁이 수혁의 이름을 본 것은 성인이 된 뒤, 수혁이 지혁에게 제 마음을 온전히 드러낸 다음이었다.
***
“읏.”
지혁이 자신을 덮치듯이 내려다보고 있는 수혁의 왼쪽 옆구리 위, 갈비뼈 부근을 손가락으로 문지르자 수혁이 작게 앓는 소리를 냈다.
“간지러워?”
“알면서, 왜 그래.”
“난 몰라.”
지혁이 새침하게 말하며 왼쪽 옆구리 위, 갈비뼈 위에 새겨진 [강지혁]이라는 이름을 손가락으로 또 문질렀다.
처음 이름을 봤을 때 지혁은 놀라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이거, 진짜야?’
얼빠진 목소리로 묻자 수혁이 손으로 머리를 털었다.
‘왜, 어디 가서 돈 주고 새겼을까 봐?’
돌아온 물음에 지혁은 입을 딱 다물었다. 제 속을 들킨 것 같아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어쩐지 수혁이라면 그러고도 남았을 것 같았다.
‘아니야, 이렇게 말하면 좀 웃기지만 자연산이야.’
지혁은 입술을 꾹 눌러 다물었다.
‘…언제 발현했어?’
‘열넷.’
‘이 강지혁이 나라고, 생각해?’
‘아닐 이유가 있어?’
수혁은 생각할 가치도 없다는 듯 말했지만 지혁은 보면서도 믿을 수 없었다. 강지혁이라는 동명이인이 전혀 없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수혁이 정말 제 운명이라면 자신의 몸에도 이름이 발현됐을 텐데 지혁의 몸에는 아무런 이름이 없었다.
지혁은 조심스러운 손길로 이름을 더듬어 봤다. 이름이 쓰여 있는 부분도 손끝에 걸리는 건 아무것도 없이 피부가 미끈했다. 피부 자체에 박혀 있는 것 같았다.
‘읏, 거기 그렇게 계속 만지면.’
수혁은 곤란하다는 듯 웃었다. 그때는 그 웃음이 무슨 의미인지 바로 이해하지 못했다. 몇 번을 더 손가락으로 문질러 보고 수혁의 앞섶이 터질 것처럼 부푼 것을 보고서야 알았다.
이름이 발현된 신체 부위는 성감대라고 했다. 이름이 발현된 적이 없는 지혁의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뜬구름 잡는 소리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수혁은 그 부위를 만져주면 심하게 흥분했다.
지금처럼―
“흐읏.”
안쪽에 박힌 성기가 몸집을 키워 지혁의 입에서 앓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장난치면 형만 힘들어.”
수혁은 옆구리를 간지럽히는 지혁의 손가락을 잘근잘근 깨물며 경고하듯 속삭였다. 물론 경고는 경고에서 끝나지 않았다. 지혁은 행동으로 밀어붙이는 듯 거칠게 움직이는 수혁의 아래서 울부짖으며 쾌감을 느껴야 했다.
분명 알파였던 시절이 있는데 지혁의 몸은 이제 수혁이 내벽을 비벼줄 때마다 자지러졌다. 그렇게 정신없이 쾌락에 침몰할 때면 지혁은 버릇처럼 수혁의 몸에 새겨진 이름을 문질렀다. 마치 수혁이 더 강하게 흥분하길 바라는 것 같은 손길이었다.
***
[완벽한 소유를 주장하세요, 당신의 이름을 새겨 드립니다]
“어때요?”
“제품에 이름이 새겨져 있으면 좋아할까?”
지혁은 눈앞에 있는 카피를 보며 턱을 매만졌다. 새로 출시하는 노트북에 시행될 서비스로, 소유자의 이름을 브랜드 로고 아래 새겨주는 서비스였다.
“이름만큼 소유권을 나타내는 것도 없으니까요.”
“그 왜, 학교 다닐 때도 자기 책에는 이름 쓰고 그러잖아요.”
“그건 도난 방지 아니었어?”
“도난 방지를 왜 하겠어요, 주인이 있다 이거잖아요.”
“꼭 본명이 아니더라도 상관없으니까 좋아하지 않을까요? 멤버십 카드에도 닉네임 새겨주잖아요.”
의견을 교환하는 팀원들을 보며 지혁은 턱을 매만졌다. 이름만큼 소유를 나타내는 것도 없다라…. 맞는 말 같으면서도 틀린 말 같았다.
“일단 시범단 뽑아서 진행해 보고, SNS에 뿌려서 소비자 동향 한번 살펴봐요. 아까 말한 멤버십 카드 소비자 반응도 같이 체크해 보고.”
“네, 알겠습니다.”
짧은 회의를 마친 후 자리로 온 지혁은 손끝으로 책상을 톡톡 두드렸다. 수혁은 여태까지 한 번도 지혁의 몸에 이름이 없는 것을 불평한 적이 없다. 오히려 제 몸에 이름이 있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듯 굴었다.
‘형 없으면 나 죽는다고 알려주는 거 같지 않아?’
‘내 몸에 이름이 있으니까 형은 평생 나 책임져야 해.’
‘형이 내 주인이잖아.’
수혁이 버릇처럼 입에 담는 달콤한 밀어가 떠올라 지혁은 입술에 침을 발랐다. 애정 표현이 과감한 수혁은 지혁의 몸이 변한 뒤에도 한결같았다. 그런데도 마음 한쪽이 씁쓸했다. 알파였다가 오메가가 돼서 동생과 각인까지 했으면서 뭘 더 바라는 것인지 자꾸만 욕심이 생겼다.
지혁은 키보드에 손가락을 올려 타투이스트를 검색했다. 집안과 계약을 맺은 전문 네이미스트가 있다는 건 알지만 그 사람에게 연락하는 건 위험했다. 회사에 다니는 것까지가 지혁과 집안의 연결고리였다. 그 이상 얽히면 지혁은 물론이고 수혁도 피곤해질 일이었다.
지혁은 몸을 살짝 일으켜 파티션 너머로 사무실을 둘러봤다. 지시 사항을 해결하기 위해 팀원들은 모두 분주했다. 지혁은 업무 시간이라는 것도 잊고 모니터에 떠오른 타투 숍을 살펴왔다.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고, 가게 분위기 어둡지 않은 곳을 중심으로 살펴보다가 [SOMI]라는 가게를 클릭했다.
홈페이지에 올라온 가게 내부 사진은 노란색 가구와 밝은 조명으로 꾸며져 있었다. 이제까지 봤던 타투 숍들과 다르게 훨씬 밝아 보이는 분위기였다. 손님들 몸에 새긴 타투를 대충 훑어보다가 [NAME]이라는 메뉴를 클릭했다.
[당신의 운명을 몸에 새겨 보세요]
요란한 광고 문구와 함께 각종 신체 부위에 새긴 이름 사진들이 나왔다. 한글은 물론 영어와 한자, 일본어까지 있었다. 새기는 사람들이 마음대로 선택한 것이 분명했다. 신체 부위도 발목, 손목, 목 뒤 등 다양해서 지혁은 홀린 것처럼 사진들을 바라봤다.
유행처럼 번져 있는 네임 타투들은 수혁의 몸에 새겨져 있는 것과 닮은 것 같았지만 또 달랐다. 아무리 진짜처럼 새겨준다고 해도 결국에는 가짜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심한 짓이라는 걸 알면서도 지혁은 만약 새긴다면 어느 부위가 좋을지 고민했다. 수혁과 같은 부위도 괜찮을 것 같고, 아니면 좌우를 반대로 새기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지혁은 핸드폰으로 가게를 다시 검색해서 주소를 저장해 두고 잡생각을 밀어내고 일에 집중했다.
***
“나 이름 새길까?”
퇴근 후 저녁을 먹으면서 지혁이 꺼낸 말에 수혁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소리인지 수혁은 입에 젓가락을 그대로 물고 있었다.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야?”
퍼뜩 정신을 차린 것처럼 수혁이 젓가락을 내려놓고 물었다.
“아니, 요즘은 많이 하니까. 나도 할까 해서.”
“형은 할 필요 없어.”
수혁은 더 들을 가치도 없다는 듯 단호하게 대꾸했다. 이런 식의 반응을 보일 줄은 몰랐기 때문에 지혁은 살짝 얼이 빠졌다. 아무리 봐도 지금 대화는 화내거나 기분 상할 문제는 아니었다.
“왜 말을 그렇게 해.”
지혁은 기분이 상했다는 걸 숨기지 않고 무뚝뚝하게 대꾸했다.
“내가 지금 다른 사람 이름 새긴다고 한 것도 아니잖아.”
“아니, 그게 아니고….”
수혁은 기분이 상한 지혁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허둥지둥 입을 움직였다.
“내가 있으니까 형은 할 필요 없다는―”
“그래, 너한테‘만’ 있지.”
지혁은 숟가락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잘 먹었어, 먼저 쉴게.”
그대로 주방을 빠져나가 버리는 지혁을 수혁은 잡지 않았다. 언짢아하는 지혁을 붙잡고 말해 봐야 제대로 된 대화가 이어질 리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수혁을 혼자 두고 욕실로 들어온 지혁은 양치질을 하며 거울을 봤다. 눈썹을 찡그린 제 얼굴에 불만이 가득했다. 수혁이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는 건 안다. 굳이 필요가 없다는 말은 진심일 것이다. 그런데도 그걸 있는 자의 여유로 받아들인 자신이 속 좁은 것이다.
머리로는 알지만 그래도 속은 답답했다. 수혁은 있으니까 없는 사람의 초조함 같은 걸 모르는 거다. 저가 오메가였을 때는 ‘형은 알파여서 내 마음 몰라.’라고 했으면서. 아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이것도 거짓말이다. 수혁은 처음부터 알파였으니까.
입에 가득 차오른 양치 거품을 뱉으면서 지혁은 자신은 어쩌면 이미 오래전에 수혁이 쳐 놓은 거미줄에 걸렸던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렇다고 하더라도 벗어나고 싶은 의지 같은 건 조금도 없으니 문제가 있는 건 아니었다.
양치를 마친 지혁은 거실 소파에 앉아 TV를 켰다. 드라마나 예능 같은 프로그램 자체에는 관심이 없지만 프로그램 사이사이에 하는 광고에는 관심이 많았다. 반쯤 일을 하는 심정으로 정신없는 속도로 지나가는 광고들을 보고 있는데 소파 한쪽이 묵직하게 가라앉았다. 고개를 돌려 볼 필요도 없이 수혁이 옆에 왔다는 걸 알았지만 지혁은 TV에 시선을 고정했다.
“형….”
눈치를 보는 것처럼 잔뜩 어린 티를 내는 목소리에 지혁은 리모콘을 쥐고 있는 손에 힘을 줬다. 수혁은 이제 어리지 않다. 아니, 좀 더 정확히는 자신이 이런 행동에 약하다는 걸 알고 이용하는 영악한 어른이었다.
“형.”
대답이 없자 수혁이 지혁의 팔꿈치를 살짝 붙잡고 흔들었다. 저를 봐달라는 작은 몸짓에 마음이 동했다. 이런 식으로 넘어가면 또 금방 화를 풀어버리게 될 것이라는 걸 아는데 반사적으로 움직이고 말았다.
“왜.”
“화났어?”
까만 눈동자가 수혁의 눈동자와 빈틈없이 마주쳤다.
“틀린 말 한 것도 아닌데 내가 왜 화가 나.”
눈동자에 붙잡힌 지혁의 목에서 감정이 수그러든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이름 같은 거 없어도 좋아.”
“…알아.”
“내가 형 거잖아.”
지혁은 수혁을 가만히 바라봤다. 이 감정을 어떻게 말하면 좋을까. 지혁은 서랍을 열어 물건을 정리하는 것처럼 생각을 정리하고 입을 열었다. 싸우고 싶지 않은 건 수혁만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름이 원인이라면 언젠가는 또 이런 비슷한 문제로 싸우게 될지도 모른다. 원래 사람은 없는 것, 갖지 못한 것에 대한 열망을 멈추는 법을 모르니까. 그렇다면 그냥 솔직하게 말하는 편이 좋을 것이었다.
“나도 네 거 하고 싶어서, 그래서 이름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면 이해할 거야?”
조심조심 단어를 골라 말을 뱉자 수혁의 눈동자가 깊어졌다.
“하아, 형….”
나른한 한숨에 지혁은 저가 말을 잘 못 한 건가 싶어졌다.
“아무리 그래도 가짜 이름은 아니잖아.”
수혁은 지혁이 입고 있는 셔츠 아래로 손을 밀어 넣어 복근을 더듬었다.
“형, 피부가 얼마나 예쁜데, 이 피부에 상처를 내는 건 말이 안 돼.”
“그냥 상처가 아니라―”
“알아, 내 이름을 새기고 싶다는 거잖아.”
제 속을 알아주지 않는 것이 원망스럽다는 듯 말하는 지혁을 수혁이 막았다.
“그렇게, 내 거였으면 좋겠어?”
수혁의 손길에 다른 열기가 담기고 눈동자에 욕망이 서렸다.
지혁은 심각한 분위기로 얘기하다 변한 수혁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설마 그냥 몸으로 때우려는 건가 싶어 눈을 가늘게 뜨자 수혁이 지혁의 귓불을 깨물었다.
“보여줄까?”
“뭐?”
앞뒤 맥락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물음이었다.
“원래 나만 알고 있으려고 했는데, 형이 그렇게 내 거라는 걸 확인하고 싶으면, 알려줄게.”
“무슨 소리야.”
“대신, 하나만 약속해.”
수혁이 지혁의 목울대를 살짝 깨물었다.
“부끄러워하지 않기로.”
“알아듣게 말을―”
“형, 내 거야. 지금부터 그 증거 보여준다고. 그러니까 내가 시키는 대로 하는 거야.”
시키는 대로 하겠다는 대답을 하지 않으면 물어뜯을 것처럼 수혁이 목덜미에 입술을 대고 말했다. 지혁은 목울대를 크게 움직여 마른침을 삼켰다.
***
거실 소파가 아니라 침대로 장소를 옮긴 것은 좋았지만 지혁은 여전히 부끄러웠다. 불을 끄지 않은 방은 너무 밝아서 지혁의 몸의 변화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이불로 가릴 수도 없어 지혁은 팔뚝으로 제 눈을 가렸다.
수혁은 지혁의 얼굴을 가만히 보다가 살짝 웃음을 터트렸다.
“형, 보고 싶다면서 그렇게 눈을 가리면 어떻게 봐?”
수혁이 지혁의 무릎을 손바닥으로 더듬으며 속삭였다.
“그럼 불 좀 꺼….”
엄밀히 말하면 밝은 곳에서 하는 건 처음이 아니다. 햇살이 들이치는 아침에 한 적도 있고 욕실에서 한 적도 있다. 하지만 그건 대부분 지혁의 정신이 반쯤 나가 있는 상태였고, 지금처럼 맨정신에 밝은 형광등 아래서 하는 건 민망했고 수치스러웠다.
“제대로 보려면 불 끄면 안 되지.”
지혁은 윗입술로 아랫입술을 지그시 눌렀다. 뭘 보여주려고 이러는 것인지 지혁의 입장에서는 알 수가 없었다. 엉덩이 사이에 들어와 있는 수혁의 손가락이 입구 부근을 가볍게 긁어내렸다.
“흣….”
“보여준다면서 그건 왜 하는, 거야.”
“형은 여기가 좋지?”
“아흣.”
안쪽으로 깊이 들어왔던 중지가 점막을 꾹꾹 누르다가 다시 쑥 빠져나가 입구를 헤집었다. 꼬리뼈에 뜨거운 흥분이 고였다. 지혁은 허리를 비틀면서 시트를 움켜쥐었다. 수혁의 손가락이 닿는 부분이 찌릿찌릿했다.
“알파였을 때도, 처음부터 여기 좋아했잖아.”
“내가, 언제, 흣….”
“거짓말은 하면 안 돼, 형.”
“아읏, 수혁아, 흣.”
입구만 문지르는 것인데도 너무 심하게 느끼는 것 같았다. 다리 사이가 축축해지면서 동시에 성기 끝이 왈칵 젖었다. 금방이라도 사정할 것 같아 지혁이 허벅지에 단단히 힘을 줬다.
“아….”
지혁의 입에서 절절한 아쉬움이 묻은 소리가 흘러나왔다. 딱 한번, 한 번만 더 문질렀으면 절정에 달아올랐을 것인데 수혁이 손가락을 빼냈다. 애액과 함께 주르륵 빠져나간 손가락을 보고 있으려니 숨이 꽉 막혔다.
손가락을 빼내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수혁은 침대에서 내려가기까지 했다.
“형, 기대앉아 봐.”
베개를 탁탁 두드려 벽에 세운 수혁이 기대라는 눈짓을 보냈다. 지혁은 여전히 뭐가 뭔지 알 수 없었지만 몸은 착실하게 수혁의 말을 듣고 있었다. 눈앞에서 놓친 절정이 아쉬워서라도 빨리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지혁이 등을 기대앉자 수혁은 다리를 접어 양옆으로 벌렸다. M자로 벌린 다리 사이로 흥분한 지혁의 성기가 위로 솟아올랐다. 반사적으로 다리를 오므리려고 하는 지혁의 움직임을 수혁이 막았다.
“안 돼, 지금부터는 형이 할 거야.”
자세를 잡아 준 수혁은 평소에는 거의 사용한 적 없는 티 테이블 의자에 앉아 지혁을 바라봤다. 감상이라도 하는 것 같은 자세였다.
“뭘 하라고….”
대충 어떤 걸 말하는 것인지 알지만 모르고 싶어서 질문하자 수혁이 입술을 삐뚤게 당겨 웃었다.
“혼자 넓혀 봐.”
“강수혁, 너 진짜…!”
“그래야 볼 수 있어, 진짜야.”
수혁은 거짓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눈동자로 지혁을 바라봤다. 지혁은 수혁을 믿어야 할지 아니면 지금이라도 안 봐도 된다고 해야 할지 망설여졌다. 아무리 그래도 동생 앞에서 그냥 자위도 아니고 구멍 자위를 하려니 눈앞이 빙글빙글 돌았다.
“안 할 거야?”
낮게 울리는 목소리가 지혁의 몸을 점령했다. 이미 수혁이 손가락으로 자극해 놓은 구멍이 달콤하게 떨려서 숨이 넘어갔다. 지혁은 수혁의 얼굴을 바라보며 손가락을 아래로 내렸다. 옆으로 벌린 다리가 수치심에 파르르 떨렸지만 딱 그만큼 더 흥분됐다. 살짝 벌어져 벌름거리는 구멍 입구를 손가락으로 문지르자 금세 열기가 피어올랐다.
“하아….”
달뜬 숨을 뱉으며 중지를 하나 밀어 넣고 수혁이 했던 것처럼 내벽을 문질러 보자 허리가 덜덜 떨렸다. 슬쩍, 눈동자를 들어 올려 수혁의 얼굴을 확인한 지혁은 손가락을 좀 더 밀어 넣었다. 기다란 중지를 쭉 뻗어서 안쪽을 문지르자 수혁의 오른쪽 눈썹이 위로 솟아올랐다.
수혁은 갈증을 느끼는 사람처럼 혀끝으로 입술을 문질렀다. 홀랑 벗겨 놓은 지혁의 몸은 짧은 애무에 발갛게 달아올랐는데, 그 상태에서 스스로 다리를 벌리고 구멍을 만지는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기립한 아랫도리가 딱딱해져서 그대로 터질 것 같았다.
“좋아 보이네.”
“으응, 네가 하라, 흣.”
지혁은 시키지도 않았는데 손가락을 하나 더 밀어 넣고 허리를 가볍게 흔들었다. 두꺼운 것으로 안쪽이 헤집어질 때 쏟아지는 쾌락을 아는 몸이 성급하게 재촉했다.
조금 더, 조금 더.
“수혁아….”
지혁이 애가 타는 목소리로 부르자 수혁은 짧게 한숨을 쉬었다.
“보고 싶다고 그렇게 조르더니, 그렇게 혼자서 좋아하는 거야?”
수혁은 테이블 위에 놓아둔 작은 거울을 들고 다가왔다.
“구멍 벌려 봐.”
지혁은 여전히 이유를 알 수 없는 수혁의 명령을 수행했다.
“하읏.”
밀어 넣었던 손가락 두 개를 빼내자 구멍 입구가 파르르 떨렸다. 욱신욱신하는 달콤한 통증에 몸이 달았다. 수혁이 시키는 대로 양손으로 엉덩이를 잡아 좌우로 벌리자 꽉 다물어졌던 구멍이 빠끔 벌어지며 애액이 흐르는 게 느껴졌다.
수혁은 고개를 숙여 다리 사이를 빤히 보더니 훅 하고 바람을 불었다. 뜨겁게 달아오른 구멍 위에 닿은 찬바람에 몸이 덜덜 떨렸다.
“흣, 그거 하지, 마….”
지혁이 말했지만 수혁은 뭘 확인하는지 구멍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시선이 닿는 부위가 화끈거렸다. 성기 끝에서는 쿠퍼액이 잔뜩 흘러나왔고, 구멍에서는 애액이 흘러나와 앞뒤로 흠뻑 젖은 다리 사이가 엉망이었다.
“그, 만, 진짜….”
“형이 직접 봐.”
수혁은 거의 울기 직전인 지혁의 얼굴을 바라보며 지혁의 다리 사이에 거울을 갖다 댔다.
거울 속에는 지혁의 양손에 의해 빠끔 벌어진 구멍이 속살을 드러내고 있었다. 손가락으로 문질러서 달아오른 입구 점막은 연한 분홍색이었다. 촉촉하게 젖은 음탕한 구멍을 이런 식으로 자세하게 볼 날이 올 줄은 몰랐기에 지혁은 눈을 질끈 감았다.
“보고 싶다며, 형, 자세히 봐.”
수혁이 달래는 목소리로 지혁의 시선을 아래로 잡아당겼다. 지혁은 감았던 눈을 천천히 뜨고 거울 속에서 여전히 벌름거리는 구멍을 바라봤다. 제 몸의 일부인데도 음탕하게만 느껴지는 구멍을 한참 말없이 보던 지혁은 입술을 꽉 다물었다.
이름이 발현되는 부위는 사람마다 모두 다르다고 했다. 손목이나 발목, 목 뒤처럼 흔한 부위도 있고, 정수리나 성기같이 좀처럼 눈에 띄기 어려운 부위도 있다. 하지만, 설마 저런 곳에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왜 집안 사람들이 지혁의 몸을 샅샅이 검사했는데 이름이 안 나온 것인지, 알 수 있었다.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설마 뒷구멍 입구에 이름이 있을 줄이야.
너무 작아서 자세히는 안 보였지만 수혁의 반응을 봤을 때 그 이름이 강수혁이라는 건 의심할 필요가 없었다.
“꼭 이 구멍이 내 거라고 정해진 거 같지 않아?”
수혁은 사랑스럽다는 듯 이름이 쓰인 부위를 손가락으로 문지르다 거울을 치우고 지혁의 몸을 침대에 눕혔다.
“다리는 계속 잡고 있어, 형.”
수혁은 대답 대신 명령했고 지혁은 침대에 누운 채 무릎 뒤에 손을 밀어 넣고 다리를 벌렸다. 스스로 남자의 성기를 바라는 것 같은 천박한 자세에 몸이 떨렸다.
“왜, 말… 안 했어?”
바지를 끌어 내리는 수혁을 향해 지혁이 초조하게 물었다. 지금 수혁이 삽입하면 정신을 못 차릴 것 같아 그 전에 이유를 알고 싶었다.
“대답, 안 해줄 거야?”
지혁이 수혁이 바지 속에서 꺼낸 검붉은 성기를 바라보며 물었다.
“…말하면 거기에 내가 넣어서 좋은 게 아니라, 이름 쓰인 부위여서 좋은 건 줄 알 거 아냐.”
“뭐?”
조금도 예상하지 못했던 대답에 심장이 꾹 눌렸다. 어린애 같은 이유였고, 말도 안 되는 이유인데 귀여웠다.
“나랑 해서 좋은 건 줄 아는 게 좋으니까.”
수혁은 어서 들어오라고 손짓하는 것 같은 구멍 틈으로 성기를 느릿하게 밀어 넣었다.
“아, 으읏….”
빠르지 않은 속도로 들어온 성기가 안쪽 깊이 쑤셔 박히자 지혁의 내벽이 기다렸다는 듯 성기를 주물렀다. 수혁의 성기가 상하운동을 하며 움직이자 지혁은 눈앞이 번쩍거렸다. 원래도 좋았지만 이름이 있는 부분에 성기가 닿았다고 생각하자 흥분이 배가 되는 것 같았다.
“아, 아응, 흣…!”
참지 못하고 신음을 내지르자 수혁이 점점 더 거칠게 움직였다. 팔에서 힘이 빠진 지혁은 붙잡고 있던 다리를 놓쳤다. 수혁은 지혁의 다리를 제 허리에 걸치고 퍽퍽 소리가 나도록 움직였다. 녹진녹진해진 점막이 수혁을 꽉꽉 조이며 달라붙었다.
“이거 봐, 이렇게 야한 소리나 내고. 이름 있는데 문질러 주는 게 그렇게 좋아?”
“아냐, 하읏, 너라서, 아으응….”
수혁은 그렁그렁한 눈으로 저를 보는 지혁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처음엔 지혁에게 이름이 없는 것이 화가 났다. 자신은 이렇게 뚜렷하게 형에게 예속됐다는 증거를 몸에 달고 있는데 지혁에게는 없는 것이 마음에 안 들었다. 그렇다고 제 몸에 새겨진 이름이 형 말고 다른 강지혁일 거라고는 생각할 수도 없었다.
어차피 근친이 판을 치는 집안, 운명의 상대로 형의 이름 나오는 것쯤이야 특별한 일도 아니니까 지혁의 몸에도 분명 이름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지혁의 머리카락을 다 밀어 볼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머릿속에 있었다면 분명 집안에서 검사했을 때 알았을 것이다. 이름을 찾아내기 위해 지혁의 몸을 구석구석 헤집기를 여러 번, 아침에 잠든 지혁의 구멍을 혀로 애무하다가 발견했다. 평소에는 조명 없는 어두운 방에서 해서 몰랐는데 지혁의 구멍 속에서부터 입구에 걸쳐 쓰여 있는 건 분명 제 이름이었다. 주름이 없을 때까지 팽팽하게 당겨야만 온전히 보이는 이름이었다.
“흣, 말해 주지… 하읏, 왜 안 말해 준 거야.”
이제야 알려준 것이 원망스러운 것처럼 지혁이 칭얼거리자 수혁이 손바닥으로 가볍게 뺨을 쓸어내리면서 속삭였다.
“형도 모르는 비밀을 나만 아는 게 즐거워서.”
제정신이 아닌 독점욕이라는 건 알지만 사실이었다. 강지혁도 모르는 걸 강수혁만 알고 있다는 것에서 오는 작은 희열이 있었다.
지혁이 이름을 새기겠다는 이상한 말만 하지 않았어도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냥 두면 갑자기 같잖은 네임 타투를 새기고 올 것 같아 말리기 위해 말한 것이다.
“형.”
“아으응….”
지혁의 허리가 곡선으로 그리며 위로 솟아오르더니 난잡한 욕망에 배에 뿌려졌다.
“사랑해.”
절정에 달한 수혁의 목소리가 끈적하게 갈라졌다.
“흣, 나도, 나도….”
지혁은 수혁의 목을 꽉 끌어안으며 정신없이 중얼거렸다. 이제야 온전히 서로의 것이 된 것 같아 지혁의 마음속에서 충족감이 넘쳐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