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 백일홍 (88/91)

2. 백일홍

  -만약 상준이가 늑대 수인이었다면

  

  

  수인이 태어나는 경우는 매우 낮은 확률이라서 그 존재 차제가 희귀하지만, 하준은 수인을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하준의 곁에는 태어나면서부터 함께한 상준이 수인이었다. 둘이 태어났을 때 종이 다른 쌍둥이 탄생에 말이 많았지만 애초에 작은엄마가 늑대였기 때문에 가능성이 제로였던 건 아니었다.

  수인이라고 해서 사실 특별히 인간과 다른 것도 아니었다. 어렸을 때는 조절을 못 해서 귀나 꼬리가 막 튀어나오고 본모습으로 갑자기 변하지만, 크면서는 조절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제 본모습을 드러내고 다니는 수인은 드물었다.

  하준 역시 상준의 늑대 모습을 아주 어렸을 때 빼고는 본 적이 없다. 윤기가 흐르는 털을 가진 작은 늑대를 보고 하준은 강아지를 데리고 노는 것처럼 쓰다듬고 귀여워했다. 상준도 딱히 싫어하는 것 같지 않았는데 어느 순간부터 상준은 하준의 앞에서 늑대 모습을 하지 않았다.

  그것이 서운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늑대로 변해 보라고 할 수는 없었다. 수인은 그 개체가 희귀해서 본 모습을 보이면 사람들이 서커스라도 보는 것 같은 시선을 보냈고, 그 시선이 달갑지 않으리라는 건 조금만 생각해도 알 수 있는 일이었다. 하물며 그것이 가족이라고 해도 예외일 수는 없었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 상준과 하준이 흔한, 평범한 쌍둥이 형제였을 때의 얘기였다. 서로의 마음을 깨닫고 몸을 섞게 된 이후 하준은 틈만 있으면 상준에게 원래 모습을 보여 달라고 졸랐다.

  

  ‘싫어.’

‘왜.’

‘네가 무서워할 거 같아서.’

‘내가 널 왜 무서워해?’

  

  하준이 말도 안 된다는 듯 굴었지만 상준은 이 문제에서만큼은 단호했다. 삐치기도 해보고 화도 내보고 침대에서 되지도 않는 애교도 부려 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하준이 삐치면 상준은 성심성의껏 달래서 기분을 풀어줬고, 화를 내면 바짝 빌면서 재롱을 부렸다. 그나마 제일 잘 먹히는 게 침대에서 부리는 애교였는데, 야하게 유혹하면서 애교를 부려도 보여주는 건 꼬리랑 귀가 전부였다. 그런 식으로 하준이 아무리 졸라도 상준은 요리조리 잘 빠져나갔다.

  

  “치사하게, 진짜 왜 안 보여주는 거야.”

  

  하준은 제 옆에서 잠들어 있는 상준의 코끝에 잡힌 몽우리를 손가락으로 누르면서 투정을 부렸다. 어제부터 엄마들은 여행을 갔고, 상준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하준의 침대에 파고들었다. 아주 당연한 것처럼 벌어지는 월례 행사였다. 

  한 달에 한 번 보름이 다가오면 엄마들은 꼭 외박했는데 어렸을 때는 그 이유를 몰랐지만 지금은 작은엄마가 수인이기 때문이라는 걸 안다. 

  수인의 특징 중 가장 큰 건 보름달이 뜨는 날에 기본적인 3대 욕구인 식욕, 성욕, 수면욕이 강해진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상준은 원래 잘 잤고, 잘 먹었다. 성욕은 평소에 틈만 나면 하고 있어서 그런지 보름이라고 해서 맹렬해지는 느낌은 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잠자리가 평소와 백 퍼센트 똑같은 건 아니었다. 두 번 할 걸 세 번 하는, 그 정도? 어차피 하준도 알파였기 때문에 그 정도 따라가 줄 체력은 충분히 있었다. 하지만 이쯤 되니 슬슬 궁금해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도대체 왜 안 보여주는 것인지, 보름에 욕구가 강해지면 본능을 드러내고 싶을 것인데도 늑대 모습을 안 보여주는 이유가 무엇인지 같은 것들.

  

  “일어났으면서 자는 척하지 마.”

  

  하준은 눈을 감고 있는 상준의 뺨을 가볍게 꼬집었다.

  

  “어떻게 알았어?”

  “그걸 어떻게 몰라?”

  

  상준의 물음에 하준이 뾰로통하게 대꾸했다. 사실 어떻게 알았느냐고 물어보면 할 말이 없다. 안 자고 있다는 걸 그냥 보고 있으면 안다.

  

  “하긴, 근데 왜 이렇게 빨리 일어났어?”

  

  특별한 설명이 없었음에도 납득한 듯 상준이 이불 속에 있던 팔을 꼬물꼬물 움직여 하준의 허리를 꽉 끌어안았다. 맨 살갗 위에 달라붙는 피부가 뜨거웠다. 상준의 체온은 하준보다 항상 높았는데 그것도 수인이 가지는 특징 중 하나라고 하준은 알고 있었다.

  

  “벌써 11시야, 배고파.”

  “아, 벌써? 밥 차려 줄게.”

  

  상준은 당연히 자신이 해야 한다는 것처럼 침대에서 내려가 바닥에 떨어진 바지를 주워 입었다. 팬티는 빼고 바지만 홀랑 주워 입는 걸 보니 밥 먹고 나면 또 응큼을 떨게 분명했다.

  하준은 속으로 생각을 정정했다. 보름이 다가오면 상준은 확실히 성욕이 강해진다. 엄마들이 집에 있어서 눈치 보느라 잘 못 했던 걸 엄마들이 없는 틈에 풀어 놓는 정도가 아니라 그냥 틈만 나면 붙어먹으려 했다. 대수롭지 않게 넘겼던 건 한 달에 한 번 오는 기회를 하준도 놓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준은 방문을 열고 나가는 상준의 뒷모습을 보며 눈알을 빙빙 굴렸다. 보름, 집이 비면 자신도 다리를 벌려 상준을 받아들였다. 그렇게 안 하면 어떻게 될까? 성욕이 강해졌는데 자신이 안 한다고 하면, 그렇게 애를 태우다가 늑대 모습 보여 달라고 조르면 성욕에 져서라도 보여주지 않을까?

  하준은 이불을 꽉 쥐었다. 그동안 이 생각을 못 했던 자신이 바보같이 느껴졌다. 매번 자신의 성욕 처리도 급했기 때문에 어쩌면 쉬운 방법이 있었는데 돌고 돌았는지도 모른다. 하준은 빠르게 욕실로 움직여 몸을 씻고 상준과 다르게 속옷은 물론 위아래 옷을 꼼꼼하게 챙겨 입었다.

  

  “밥 먹어.”

  

  부르는 목소리에 1층으로 내려가자 상준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씻었어?”

  “아침부터 고기야?”

  

  하준은 상준이 잔뜩 구워 놓은 삼겹살을 보며 혀를 찼다.

  

  “응, 먹고 싶어서.”

  

  짐승은 짐승인지도 모르겠다. 아침부터 고기를 이렇게나 많이 구워 먹으려고 하는 거 보면.

  

  “왜 혼자 씻었어?”

  

  일부러 대답하지 않은 것을 모를 리가 없는데 상준이 하준에게 재차 물었다. 대답을 꼭 들어야겠다는 것처럼.

  

  “혼자 씻을 수도 있지, 뭐.”

  “밥 먹고 같이 씻으면 됐잖아.”

  

  상준이 입술을 삐죽거리며 불만을 표했다.

  

  “같이 씻으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내가 몰라?”

  

  같이 씻으면 뻔했다. 상준은 욕실에서 하는 걸 좋아했다. 뭐 어딘들 안 좋아하겠느냐마는. 욕실은 목소리가 울려서 좋다고 했다.

  

  “알면서 그런 게 더 나빠.”

  “밥이나 먹어.”

  

  투덜거리는 상준에게 하준이 젓가락으로 집은 삼겹살을 입술에 문질렀다. 상준은 여전히 불만스러운 표정이었지만 입술을 살짝 벌려서 삼겹살을 받아먹었다.

  

  “맛있냐?”

  “당연하지.”

  “네가 구웠으니까?”

  “네가 먹여줬으니까.”

  

  뻔뻔한 얼굴로 달달한 얘기를 하는 상준을 보며 하준은 작게 헛기침을 했다.

  밥을 먹고 식탁을 정리하는 상준의 엉덩이를 보며 하준이 피식 웃었다.

  

  “너는 노팬티 안 불편해?”

  “왜 불편해?”

  

  상준은 식탁 의자에 앉아 있는 하준의 앞으로 다가와 바지를 아래로 끌어내렸다. 다리 사이에 달랑거리는 성기가 퉁 튀어나왔다.

  

  “바로 할 수 있잖아, 빨아 볼래?”

  

  상준이 단박에 외설적인 분위기를 풍겼다. 하준은 순간 상준의 성기가 먹음직스럽다고 느껴져 혀를 내밀 뻔했다. 자연스럽게 입을 벌리려던 하준은 입술 끝에 단단히 힘을 줬다.

  

  “싫어.”

  “…왜?”

  

  상준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 얼빠진 목소리로 되물었다.

  

  “배불러서 지금은 안 먹고 싶어.”

  

  야한 뉘앙스를 풍기는 말에 상준의 아래는 더 뻐근해졌다.

  

  “끝에만이라도, 해 줘.”

  

  상준은 하준의 뒤통수를 손바닥으로 감아쥐어 성기 쪽으로 끌어당기려 했지만 하준이 고개를 저어 손아귀에서 빠져나왔다.

  

  “안 할 거야, 어제도 많이 했잖아.”

  

  상준은 혀끝으로 입술을 할짝거렸다. 꼭 지금이 아니어도 내일까지는 시간이 많지만 엄마들이 집을 비울 때 하준이 싫다고 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하준이 싫다고 하는 게 꼭 다른 이유가 있는 것 같아 상준은 아쉬움을 꾹꾹 누르고 뒤로 물러났다.

  

  “…나 씻고 올게.”

  

  2층으로 올라가는 상준의 뒷모습을 보며 하준은 입술을 깨물었다. 꺼내 놓지도 않은 꼬리와 귀와 축 처진 게 보이는 것 같아 안쓰러웠다. 지금이라도 그냥 같이 씻자고 할까. 그 한마디면 상준의 기분이 풀릴 것은 눈에 훤했다.

  하지만 그렇게 상준이 하고 싶은 대로 욕구를 다 풀어주면 정작 자신이 원하는 건 볼 수 없을 것도 뻔했다. 하준은 허벅지 위에 가지런히 올려놓은 주먹을 꽉 쥐었다. 밤까지만 어떻게든 밀어내자.

  그 이후에도 하준은 전혀 자연스럽지 않게 상준을 거절했다. 학교라도 가면 시간을 보내기 수월했겠지만 지금은 방학이었다. 집에 온종일 같이 있어야 하는 상황인데 하준은 과제를 핑계로 방문을 닫았다.

  상준은 하준이 거짓말하는 걸 알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지금 감정적으로 굴면 상준에게 좋을 것이 없었다. 보름에 가까워지면 수인은 본능이 강해진다. 그건 감정에도 해당한다. 평소라면 적당히 멈출 수 있지만 보름에는 화를 내면 끝을 본다는 기분으로 화를 내기 때문에 참아야 했다. 물건을 때려 부술지도 몰랐고, 하준에게 상처가 될 감정적인 말들을 미친 듯이 쏟아낼지도 모를 일이었다.

  상준은 닫힌 하준의 방문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

  

  몇 시간 만에 방에서 나온 하준은 저녁을 먹자며 상준을 불렀다. 상준은 하준의 기분이 풀린 건가 싶어 군소리 없이 저녁을 차렸다.

  

  “과제는 다 했어?”

  “아, 뭐, 대충.”

  

  하준은 눈알을 굴려 가며 티가 나는 거짓말을 했다.

  

  “저녁 먹고 뭐 할까?”

  “일찍 잘래.”

  “벌써?”

  

  상준은 벽에 걸린 시계를 보고 눈을 깜박였다. 일찍 잘 수는 있지만 암만 그래도 저녁 8시는 너무 했다. 피하는 건가 싶어 짜증을 내려던 상준은 마음을 바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나도 같이 잘까?”

  “아니.”

  

  생각할 필요 없다는 듯 하준이 단칼에 거절했다.

  

  “…왜.”

  “그냥, 오늘은 따로 잘래.”

  

  청천벽력 같은 소리에 상준은 숟가락을 꽉 쥐었다. 힘 조절을 못해서 하마터면 숟가락을 부러트릴 뻔했다.

  

  “나한테 화난 거 있어?”

  

  상준은 손에 힘을 빼고 진지하게 물으며 머릿속으로는 하준이 화가 났을 이유를 떠올렸다. 어젯밤에 그만하라고 했는데 계속해서 그런 건가 싶은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지만 곧 아니라는 결론이 나왔다. 그것 때문에 화가 났다면 저렇게 꽁해 있을 게 아니라 말을 했을 이가 박하준이다.

  

  “내가 왜 화가 나?”

  

  역시나 돌아온 반응도 전혀 화가 나지 않았음을 알려와서 상준은 애가 탔다.

  

  “그럼 왜 같이 안 자려고 하는 건데?”

  “음….”

  

  하준은 멸치 볶음과 마지막 남은 밥을 숟가락에 싹싹 긁어 담아 입에 넣고 우물우물 씹어 삼켰다.

  

  “너는.”

  “어?”

  “네가 하고 싶은 만큼 나한테 다 하잖아.”

  “…힘들었어?”

  

  수인보다는 못하지만 그래도 알파이기 때문에 체력은 받쳐 줄 거라 생각했는데, 너무 많이 했던 걸까.

  상준은 목을 축이기 위해 컵에 따라 놓은 물을 마셨다.

  

  “그렇다기보다는, 내가 해 달라는 건 안 해주니까.”

  “네가 해 달라는 거?”

  

  상준의 머릿속이 또다시 바쁘게 움직였다. 같은 마음이 된 이후 상준은 하준에게 언제나 최선을 다했다. 물론 하준도 상준에게 최선을 다했다. 말로 하지 않아도 행동으로 보여주는 게 하준이었고 그 모습들에서 애정이 솟아나곤 했다.

  

  “뭔지 감도 안 와? 그렇게 많이 말했는데?”

  

  하준은 자신이 줄 힌트는 다 줬다는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답을 찾으면 방에 와도 돼.”

  “어?”

  “근데 모르겠으면 오면 안 돼.”

  

  설거지통에 그릇을 담아 둔 하준이 몸을 돌려 상준을 바라봤다.

  

  “아, 맞다.”

  

  상준은 여전히 혼란스러운 눈으로 하준을 올려다봤다.

  

  “알았다고 무조건 오면 안 돼, 행동도 해야지. 안 그러면 오늘은 안 해. 아니, 앞으로 안 해.”

  

  엄포 아닌 엄포에 상준은 뒤통수를 세게 맞은 기분이 들었다. 다른 날도 아니고 하필 오늘 안 하겠다는 건 상준에게는 고문이나 다름없었다.

  늑대는 원래 평생 하나의 짝만 만든다. 아니, 비단 늑대여서가 아니더라도 상준은 엄마 배 속에서부터 죽을 때까지, 하준 옆에 있을 거라고 몇 번이나 다짐했다. 그런데 오늘 같은 날, 엄마들이 없는 보름에 제 짝을 옆에 두고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건 상준에게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상준은 남은 밥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식탁을 정리하기 위해 일어났다. 당장 몸으로 밀어붙이는 방법도 있다. 하준은 싫다고 하겠지만 페로몬을 풀고 몸으로 밀어붙이면 결국 받아들여 줄 것이다. 하지만 그 행동은 원초적인 문제 해결에는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몸을 섞을 수는 있지만 화는 풀리지 않을 것이다. 아니, 까딱하면 화만 더 돋우게 될 것이다. 그럴 바엔 안 하는 게 낫다.

  하준은 평소에 온화하지만 한 번 화를 내면 좀처럼 풀리지도 않았고 수그러들지도 않았다. 어렸을 때 상준의 귀나 꼬리를 가지고 놀리는 애들을 상대로 얼마나 화를 냈는지 모른다. 한 번은 돌로 찍어 버릴 기세로 화를 내서 유치원이 뒤집힌 적도 있었다. 그러니 지금의 태도를 봤을 때 박하준이 화가 난 게 아닌 건 맞다. 화가 났으면 말도 안 섞었을 것이고 저런 장난식의 힌트는 꿈도 못 꿀 일이니까.

  그러니까 정답을 찾아서 방문을 열어야 한다는 건데―

  상준은 설거지하면서 하준의 말을 곱씹었다.

  

  ‘원하는 걸 안 들어준다, 행동해야 한다.’

  

  행동으로 보여줄 만한 게 뭐가 있을까.

  애정 표현이라면 하준보다 상준이 더 많이 한다. 숨기거나 거짓말하는 것 없다. 그런데 뭘 행동으로―

  여기까지 떠올린 상준의 머릿속에 빠른 속도로 결론이 떠올랐다.

  하준이 틈만 나면 조르는 일, 그건 늑대 모습을 보여 달라는 것이었다. 상준은 싱크대 물기를 행주로 닦는 것으로 뒷정리를 마치고 손을 닦았다.

  

  “하, 진짜 속도 모르고.”

  

  어금니를 꽉 깨무는 상준의 머리 위로 까맣고 뾰족한 귀가 쫑긋 솟아올랐다.

  

  ***

  

  양치질하고 방에 들어와 침대 헤드에 기대앉은 하준은 문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상준은 바보가 아니다. 이해력도 좋고 눈치도 빠르다. 그러니까 지금쯤 하준의 말 정도는 다 이해했을 것이다.

  똑똑.

  아니나 다를까 방문을 두드리는 노크 소리가 들렸다.

  평소에는 벌컥벌컥 열면서 노크라니…. 생경하게 느껴지는 노크 소리에 하준은 저도 모르게 긴장하고 말았다.

  

  “어, 들어와.”

  

  허락의 말을 내리자 문이 느릿하게 열리고 팔만 먼저 들어왔다. 긴 팔이 벽을 더듬더니 벽에 붙은 스위치를 탁 소리가 나도록 눌렀다. 형광등 불이 싹 사라진 방에 어둠이 가라앉고 언제 떠오른 것인지 창밖에 달빛이 방 안에 스며들었다. 어쩐지 공포 영화에 나올 것 같은 풍경에 하준은 이불을 꽉 잡았다.

  천천히 문이 열리고 상준이 성큼성큼 두 발로 걸어 들어왔다. 두 발로 들어오는 모습을 보고 하준이 미간을 좁혔다. 원하는 게 뭔지 알면서 저런 행동을 하는 것이 괘씸했다.

  

  “뭐야, 내가―”

  

  침대 위로 올라온 상준은 헤드에 기대앉은 하준의 허리에 걸터앉더니 가슴팍에 머리를 기댔다. 그러고는 그대로 하준의 손을 잡아당겨 제 머리 위에 올려놨다.

  하준이 조심스럽게 손을 움직이자 뾰족하게 솟아오른 세모 모양의 귀가 손바닥에 닿았다. 원래 체모가 부드러운 편인데 귀에 있는 털은 훨씬 복슬복슬했고 훨씬 더 부드러웠다.

  탁탁, 매트리스 위를 두드리는 커다란 소리에 하준은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제 위에 올라와 있는 상준의 등을 더듬으며 아래로 내려가자 꼬리뼈 부근에 커다란 꼬리가 만져졌다.

  

  “이제 됐어?”

  

  상준이 하준의 턱 아래에 입술을 문지르며 물었다.

  

  “이건 가끔 보여줬잖아.”

  

  만족할 수 없다는 듯 말하면서도 하준의 상준의 귀를 계속 만지작거렸다.

  

  “…꼭 보고 싶어?”

  “어.”

  “알았어.”

  

  상준이 하준의 턱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평소보다 상준의 송곳니가 훨씬 날카롭게 느껴졌다. 하준의 턱을 깨물며 상준이 셔츠 속으로 손을 밀어 넣었다.

  

  “야, 왜 안 보여주고―”

  “하면서 보여줄게.”

  “…진짜, 야?”

  “그래.”

  

  하준은 귀를 만지작거리면서 망설였다. 거짓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쉽게 허락의 말이 안 나왔다.

  

  “거짓말 아니야. 내가 너한테 거짓말한 적 없잖아.”

  

  상준이 하준의 귓가에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갈라진 목소리가 욕망을 드러내고 있었다.

  

  “근데, 너 그건 알아둬.”

  

  상준은 하준의 셔츠를 위로 끌어 올려서 하준이 양팔을 들어 셔츠를 벗기기 쉽게 도왔다.

  

  “뭘.”

  “네가 보여 달라고 했다는 거.”

  

  상준이 고개를 숙여 하준의 가슴팍에 도드라진 유두를 이로 깨물었다. 다짜고짜 이로 깨무는 통에 알싸한 통증이 퍼졌다.

  

  “내가 아주 많이 참고 있었다는 것도.”

  

  첫 번째 말은 이해했는데 두 번째 말은 제대로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준이 뭔가 더 묻기도 전에 상준은 하준의 바지와 속옷을 한 번에 벗겨 버렸다. 순식간에 하준을 나체로 만든 상준은 저가 걸치고 있던 것들도 빠르게 던져 버리고 맨몸을 겹쳐왔다.

  평소보다 1~2도쯤 더 상승한 피부 온도가 그대로 하준을 덮쳤다. 조금 전 이로 깨물었던 유두를 혀로 할짝대는 것을 시작으로 상준은 하준의 몸을 혀끝으로 더듬듯이 핥았다.

  가슴팍을 지나 갈비뼈 개수를 세는 것처럼 혀가 움직였고 몸 중심에 있는 탯줄의 흔적에 입술을 묻었다. 오목하게 팬 곳에 혀가 침범하자 뱃가죽 아래 있는 장기가 다 간지러운 기분이 들었다. 기묘한 감각에 하준이 몸을 뒤틀었지만 다리 사이에 들어와 있는 상준의 몸통 탓에 쉽게 움직일 수가 없었다.

  상준은 하준의 배꼽을 할짝거리다가 복부 주변을 세게 입술로 빨았다. 불을 켜 확인하지 않아도 붉은 자국이 피어올랐을 것이었다.

  상준의 입술이 점점 아래로 내려가더니 말간 액을 흘리고 있는 성기를 입에 담았다. 망설이는 기색은 조금도 없이 성기를 한 번에 반을 문 상준은 그대로 입술을 내렸다. 상준의 코끝이 음모를 헤치고 안쪽 피부에 닿았다.

  

  “흣.”

  

  평소보다 빠른 속도의 애무에 하준의 목에서 작은 신음이 터져 나왔다. 상준은 손을 움직여 하준의 고환을 주무르면서 입술을 빠르게 움직였다. 기둥을 위아래로 훑어주며 빠르게 움직이는 것에 하준의 목에서 가르릉거리는 소리가 났다. 츄르릅, 입술이 성기 기둥을 핥아 올릴 때마다 외설적인 소리가 울렸다.

  한참 아래를 배회하던 상준이 고개를 들더니 침대 아래로 팔을 뻗었다. 바닥을 더듬자 어제 쓰고 대충 던져 놓은 젤이 손끝에 걸렸다. 상준은 뚜껑을 열어 손바닥에 젤을 짜낸 뒤 온기가 묻은 젤을 한준의 엉덩이 사이에 치덕치덕 발랐다. 하준의 엉덩이 사이로 손가락을 밀어 넣자 구멍이 자연스럽게 벌어졌다. 어젯밤에도 했던 티를 내는 구멍은 상준의 검지를 야무지게 물어 당겼다. 상준은 내벽을 더듬듯이 손가락을 움직여 보다가 망설이지 않고 손가락을 하나 더 밀어 넣었다.

  

  “아, 흐읏, 빨라.”

  “네가 온종일 안달 나게 해서, 급해.”

  “흣, 그게 무슨.”

  “들어서 알잖아, 수인이 보름에 성욕 많아지는 거. 근데 네가, 계속 안 한다고 튕겼으니까.”

  “그건, 튕긴 게 아니, 읏.”

  

  구멍이 벌어지면서 세 번째 손가락이 밀고 들어왔다. 세 번째부터는 구멍이 빠듯해서 상준은 구멍 틈으로 젤을 더 짜냈다.

  

  “박하준.”

  

  이름을 부르는 것인데 어쩐지 으르렁거리는 것 같아 하준은 몸을 움찔 떨었다.

  

  “네가 보고 싶다고 했잖아, 힘 빼.”

  

  보고 싶다고 했지만 왜 힘을 빼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하준은 눈동자를 내려 상준의 얼굴을 바라봤다. 눈이 마주치자 마름모 모양의 눈이 가늘어지면서 어둠 속에서도 아름답고 예리하게 반짝였다. 사냥감을 앞에 둔 육식 짐승 같아서 하준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손가락 세 개를 한 몸처럼 앞뒤로 움직이며 내벽을 넓히던 상준은 마지막 남은 새끼손가락까지 쑤셔 박았다.

  

  “아, 흐읏.”

  

  평소에도 손가락으로 풀어줬지만 네 개를 넣은 적은 없었기 때문에 당황한 하준이 입을 벙긋거렸다. 상준은 손가락 네 개를 꾹 눌러 넣은 채 엄지로는 회음부를 간질였다.

  내벽을 자극당하는 것과 동시에 회음부를 문질리자 발딱 일어선 성기가 꺼덕이며 흔들렸다. 배꼽 아래로 사정 전 분비물이 끈적하게 흘러내렸다.

  

  “그, 하읏, 그렇게 하지, 마.”

  

  하준이 다리를 오므리려 하자 상준이 허벅지를 손바닥으로 내리눌렀다. 묘하게 강압적인 힘이 느껴지는 손길에서 상준의 다급함이 드러났다.

  

  “다 먹으려면, 어쩔 수 없어.”

  

  또다시 알아먹기 힘든 말이 들려왔다. 평소에도 뿌리까지 다 처박으면서, 저게 무슨 말일까.

  상준은 손가락으로 하준의 아래를 집요하게 건드렸다. 내벽과 회음부를 자극하는 것도 모자라 입으로 성기를 쪽쪽 빨기 시작했다. 성기를 집어삼킬 것 같은 강한 압박감에 엉덩이가 허공에 떠올랐다. 더 빨아 달라는 것처럼 허리를 들썩였다.

  상준은 하준의 의도를 안다는 것처럼 손과 입을 움직여 하준의 몸을 녹여냈다. 머릿속이 강한 쾌감으로 휘저어졌다. 사정하면 늘어지니까 참아야 할 것 같은데 사정을 유도하는 집요한 움직임을 이겨 낼 수가 없었다.

  

  “아, 아읏, 나와… 흣, 앗.”

  

  하준이 신음과 함께 정액을 터트렸다.

  상준은 하준의 성기를 쪼옥 빨아 남은 정액까지 입에 머금고는 안쪽에 박혀 있던 손가락들을 한 번에 잡아 뽑았다. 그러고는 입에 머금었던 액을 손바닥에 뱉었다.

  삼키는 것도 민망했지만 저가 뱉어낸 것이 다시 상준의 입에서 나오는 걸 보는 것도 민망해 하준이 팔뚝을 눈두덩에 올려 시야를 가렸다.

  쌕쌕거리면서 숨을 고르는 하준을 보며 상준은 손에 묻은 것을 제 성기에 발랐다. 미지근한 액을 성기에 대충 문지른 상준이 하준의 다리를 양쪽으로 붙잡아 벌렸다.

  

  “아, 너, 흣, 왜 안 보여주고….”

  

  사정해서 늘어진 와중에도 하준이 고집스럽게 중얼거렸다.

  

  “보여줄 거야.”

  

  상준은 하준의 아래 뜨겁게 맥박치는 제 성기를 맞춰서 밀어 넣기 시작했다. 손가락을 네 개나 물었던 구멍이 이번엔 상준의 모양에 맞춰 벌어지기 시작했다. 정액이 끈적하게 묻은 성기가 젤로 젖은 내벽 안을 밀고 들어왔다.

  

  “아, 흐읏.”

  

  평소보다 심하게 느껴지는 압박감에 상준은 이불을 쥐어뜯을 듯이 움켜쥐고 몸을 뒤틀었다. 성기를 깊게 밀어 넣은 상준이 허리를 숙여 하준의 등 뒤로 팔을 밀어 넣었다. 어깨를 단단히 감아쥐고 품에 꽉 끌어안자 상준의 단단한 복근에 하준의 성기가 짓눌렸다. 무게가 가하는 자극에 하준의 성기 끝에서 말간 액이 질질 흐르기 시작했다.

  

  “아, 흐읏, 아응.”

  

  하준이 견디기 힘들다는 듯이 우는 소리를 냈지만 상준은 더 기다려 주지 않고 허리를 흔들었다. 종일 기다리게 한 것에 대한 보상을 원하는 것처럼 상준은 하준의 극점을 찍어 눌렀다.

  철퍽, 철퍽. 젤에 젖은 아래에서 요란한 마찰음이 울렸다. 단번에 쾌감이 치솟을 수밖에 없는 부위를 여러 번 공략 당하자 하준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흣, 아읏.”

  “좋아?”

  “으….”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상준이 입술을 물어뜯을 것처럼 하준의 입술에 맹렬하게 달려들었다. 마주 닿은 심장이 누가 더 빨리 뛰나 내기라도 하는 것처럼 거칠게 뛰어댔다.

  

  “형.”

  “흐으읏.”

  

  상준이 부르는 달콤한 밀어에 하준의 몸이 파블로프의 개처럼 반응했다. 아래를 꽈악 조이자 상준의 미간이 좁아졌다. 못 참겠다는 듯 깊게 찔러 넣었던 것을 입구까지 빼내자 하준은 몸을 바르작거리면서 울먹였다.

  상준이 찔러줄 때마다 너무 좋았다. 하준은 상준의 머리를 감싸 안으며 귀를 매만졌다. 상준의 꼬리가 기분이 좋은 것처럼 탁탁, 소리를 내며 침대 매트리스를 두드렸다.

  사람일 때는 귀를 만져도 특별하게 반응 안 하는데 늑대 귀는 좋은 건가? 하준의 머릿속에 물음이 떠오르는 것과 동시에 상준이 고개를 들었다.

  

  “아직도 보고 싶어?”

  

  질문인데 꼭 경고처럼 느껴졌다. 하준은 상준을 바라보며 끄덕였다. 상준은 짧은 한숨과 함께 깊게 키스했다. 그러고는 느릿하게 상체를 일으켜 세워 허리를 흔들었다. 다시 가해지는 쾌감 속에 시야가 부옇게 흐려졌다.

  

  “아, 으응….”

  

  속절없이 흔들리는 시야 속에서 상준의 몸이 점점 커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니, 느낌이 아니었다. 상준의 몸이 부풀었다. 팔을 뻗어 맨 만져 보자 상준의 매끈한 어깨가 있어야 할 곳에는 북실북실한 털이 느껴졌다. 눈을 똑바로 뜨자 창밖에 들어오는 달빛에 푸르스름하게 빛나는 새까만 털로 뒤덮인 늑대가 하준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하준은 숨도 쉴 수 없었다. 커다란 늑대가 아래의 결합을 풀지 않은 채 제 몸을 짓누르고 있었다. 설마 이런 상태로 모습을 보여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아흣, 잠깐, 박, 상준… 이건, 아니 잖, 하윽.”

  

  하준은 제 안에서 점점 부푸는 성기 때문에 말을 더할 수가 없었다. 상준은 몸만 커진 게 아니었다. 온몸의 내장이 다 위로 밀려 올라가고 구멍이 찢어질 것 같았다.

  노팅할 때보다 훨씬 더 커진 성기 때문에 몸이 망가질 것 같았다. 하준은 꼬챙이에 꿰인 것처럼 몸을 떨며 결합을 풀어 보려 했다. 몸을 위로 움직이자 턱, 늑대의 앞발이 복부를 짓눌렀다. 이대로 몸이 터져 버릴 것 같아 하준이 눈물을 뚝뚝 흘렸다.

  

  “상준, 하읏, 이거… 아응, 찢어질, 거 같, 아윽….”

  

  하준은 거의 울부짖었지만 커다란 짐승 아래 깔린 몸은 연약하기만 했다. 들어오면 안 되는 곳까지 깊게 박혔던 성기가 아래로 빠져나가자 잔뜩 밀려 올라갔던 장기까지 아래로 딸려 나가는 것 같았다.

  상준이 굵은 성기를 처박을 때마다 물에 젖은 종이처럼 몸이 흔들렸다. 뱃가죽이 상준의 모양대로 튀어나왔다가 가라앉기를 반복했다. 거대한 성기가 내벽을 건드려서 어느 부분을 느껴도 좋기만 했다.

  하준은 정액과 함께 눈물을 줄줄 쏟아냈다. 짐승처럼 흘레붙은 아래에 정신이 나가 버릴 것 같았다. 성기가 깊게 박힐 때마다 허리가 절로 튀어 올랐다. 몇 번 허리를 흔들던 상준이 깊게 박아 넣은 채 허리를 잘게 떨었다. 정액이 와르르 쏟아져 들어오는 것 같았다.

  

  “흐으읏.”

  

  하준이 코를 훌쩍거리는데 상준의 성기가 점점 더 부풀었다. 평소에도 노팅을 해본 적이 있지만 그것과는 또 달랐다. 마개처럼 부푼 성기 끝이 한 방울도 흘러나가는 걸 허용할 수 없다는 것처럼 하준의 아래를 꽉 틀어막았다.

  짐승의 정액이 내벽은 물론이고 내장까지 다 스며드는 것 같았다. 입을 벌리면 정액이 나오는 게 아닐까 싶은 기분을 느끼며 하준은 몸을 덜덜 떨었다. 흐릿흐릿해진 시야에 자신을 짓누르는 짐승, 아니 동생을 바라봤다. 달빛을 머금은 눈동자가 오롯이 하준을 향하고 있었다.

  

  ‘형.’

  

  소리 내 말하는 것이 아닌데도 짐승의 눈이 저를 부르는 것 같았다. 상준의 앞다리를 건드리던 팔이 침대 위로 툭 떨어졌다. 하준은 정신이 아득해지는 감각에 몸을 맡긴 채 그대로 눈을 감았다.

  

  ***

  

  

  “으응.”

  

  복슬복슬, 포근한 감각을 따라 하준이 몸을 움직였다. 품 안에 들어오는 털을 손바닥으로 길게 쓸어내렸다가 하준은 느릿느릿 눈을 떴다. 가물가물한 정신이 돌아오자 햇살에 비쳐 밝은 검은 털을 가진 늑대가 제 옆에 눈을 감은 채 엎드려 있는 게 보였다.

  우와.

  하준은 속으로 감탄사를 뱉었다. 박상준이니까 늑대도 분명 멋있을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막상 눈으로 보니 훨씬 더 멋있었다.

  거대했고 부드러웠다.

  하준은 손바닥으로 상준의 등줄기를 쓸어내렸다. 손바닥에 닿는 감촉이 머리카락과는 다르게 너무 좋았다. 신기해서 몇 번을 매만지는데 시선이 느껴졌다. 상준이 가느다란 눈을 하고 자신을 보고 있었다.

  

  “엄청 부드러워.”

  “…….”

  “왜 안 보여 준 거야, 진짜.”

  “…….”

  “근데 너 진짜 짐승이네, 허리 너무 아파. 죽는 줄 알았어. 아래 찢어진 거 아닐까. 병원 가 봐야 하나.”

  

  엉덩이 사이는 여전히 화끈거렸지만 몸은 씻겨 준 듯 깨끗했다. 그걸 알면서도 하준은 일부러 능청을 부렸다. 오늘 밤에 또 할 수는 없다는 의미기도 했다. 하준이 몇 마디 하는 동안 상준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제야 하준이 눈을 동그랗게 굴렸다.

  

  “아, 이 모습이면 말을 못 하는구나.”

  

  하준이 키득거리면서 말하자 상준이 끙하는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하준을 바라봤다.

  

  “말 못 해도 네가 무슨 생각하는지 알아들을 수 있을 거 같은데.”

  ‘그래서 나보고 평생 이렇게 있으라고?’

  

  상준의 불만 서린 눈초리에 하준이 킥킥거렸다.

  하준이 눈을 뜰 때까지 모습을 바꾸지 않은 건 상준 나름의 배려였을 것이다. 어젯밤에 하준이 제대로 못 봤다고 우길 수 있으니까 밝은 곳에서 보여주는 게 분명했다.

  

  “아니, 그래도 역시 말할 수 있는 게 좋다.”

  “…….”

  “슬슬 돌아와, 짐승처럼 덮친 건 용서해 줄 테니까.”

  

  하준이 부드럽게 말하며 상준의 귀를 매만졌다. 그 말이 주문이라도 되는 것처럼 늑대의 몸집이 점점 작아지더니 상준이 나체로 돌아왔다.

  

  “네가 하자고 한 거였어.”

  “보여 달라고 했지, 늑대인 채 덮쳐 달라고 한 적은 없어.”

  “그래? 난 정답을 찾으면 방으로 오라길래 그런 뜻인 줄 알았는데.”

  “뭐?”

  “늑대가 돼서 침대로 오라고 한 거잖아. 그런 취향이 있는 줄은 몰랐어.”

  “아니라니까, 읏.”

  

  소리를 버럭 질렀다가 허리가 울려 하준이 작게 인상을 썼다.

  

  “아프면서, 무리하지 마.”

  “네가 무리하게 하잖아.”

  

  상준이 얼른 팔을 뻗어 하준의 허리를 조물조물 주물렀다. 아프면 안 된다는 듯 다정한 손길에는 어제 같은 모습은 전혀 없었다.

  

  “안 보여준 이유가 뭐야 진짜.”

  

  하준은 꼭 듣고야 말겠다는 듯 상준의 귓불을 꼬집으며 말했다.

  

  “…그 모습이어도 나는 널 덮치고 싶어.”

  

  하준은 입을 꾹 다물었다.

  

  “너는, 내가 평소에 얼마나 많이 참았는지 좀 알 필요가 있어.”

  

  상준은 하준의 코를 가볍게 쥐었다 놓으면서 웃었다. 그 행동이 ‘또 그럴 거야?’라고 묻고 있었다.

  

  “네가 평소에도 가끔 보여주면 되잖아.”

  

  하준이 합의점을 제시하자 상준이 짧게 미간을 찌푸렸다. 실신할 정도로 당했으면서도 아직도 겁이 없다.

  

  “그러다 내가 너 물어뜯으면 어쩌려고? 늑대일 때는 지성이나 이성보다….”

  “네가 나한테 그럴 리가 없잖아.”

  

  하준이 가소롭다는 듯이 웃으면서 상준의 정수리를 손바닥으로 문질렀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네가, 나한테 그럴 리가 없어.”

  

  다시 한번 확신에 가득 찬 목소리로 말하자 상준은 짧게 웃음을 터트렸다. 아주 오랜만에 하준이 진짜 형처럼 느껴졌다.

  

  “응. 그러네, 내가 너한테 그럴 리가 없지.”

  

  상준은 하준의 허리를 꼭 끌어안고 가슴팍에 머리를 기댔다. 확신하는 믿음에서 안도가 피어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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