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4화 (85/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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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별채에서 벌어진 일은 비밀이 돼야 했다.

아빠 앞에서 수혁이한테 몇 번이나 안겼고 각인까지 했다. 형제니까 불가능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각인은 쉽게, 제대로 이루어졌다.

각인을 해 본 적 없는 아빠는 믿을 수 없어 했지만 우리가 했다는데 어쩌겠나, 믿어야지.

아빠는 나를 덮치려고 했던 일을 포함해서 남자끼리, 형제끼리 각인했다는 사실을 아무한테도 말할 수 없었다.

아빠는 집에서 둘 다 나가는 대신 우리 둘의 형질을 비밀로 할 것을 명령했다. 그렇게 하면 할아버지들한테는 강유혁을 유일한 후계로 삼기 위해 나를 내보낸 것이라고 하겠다고 했다.

마치 옛날 왕처럼 세자가 책봉돼서 형제들을 밖으로 쫓아내는 것 같은 모양새였다.

그날 새벽 아침, 수혁이는 나를 데리고 당당하게 무섭도록 큰 집의 정문을 통과했다.

아마도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 다시는 갈 일 없는 집이었다.

사실 아빠가 왜 알파인 수혁이를 순순히 놔 줬는지는 모른다.

내가 정신을 차렸을 때, 두 사람의 거래는 이미 끝난 다음이었다.

나는 그저 막연하게 오메가인 나와 각인했고, 원래 자식이라고 생각도 안 했기 때문이라고 그냥 그렇게 생각했다.

아빠는 하룻밤 새에 무척이나 늙어버린 것처럼 보였다.

그날로부터 한 달, 나는 회사에 출근해서 수혁이네 집으로 퇴근하는 일상을 보냈다.

각인하면 오메가 페로몬은 상대 알파에게만 효과가 있었기 때문에 회사 다니는 것에 문제도 없었다.

[앞에 도착했어]

문자를 확인하고 사무실에서 나오자 수혁이가 새까만 차에서 내렸다.

“형.”

“이거, 뭐야? 샀어?”

“그냥 갖고 싶어서.”

수혁이가 타고 온 검은색 포르쉐는 갖고 싶다고 해서 쉽게 살 수 있는 금액이 아니었다.

수혁이는 아빠한테 돈을 뜯어냈을지도 모른다.

거래 조건은 내가 오메가가 됐다는 걸 비밀로 하겠다는 거 아니었을까? 알파였던 아들이 오메가로 변질 됐다는 걸 누구보다 숨기고 싶어 할 사람이니까.

“근데 어디 가는 거야?”

“가보면 알아.”

조수석에 앉아 운전하는 수혁이를 바라봤다.

흠 잡을 곳 하나 없는 완벽한 성인 남성, 내 알파였다. 그렇게 생각하자 두근거리면서 페로몬이 살짝 새어 나간 느낌이 들었지만 상관없을 것이었다. 수혁이는 못 느낄 거니까.

“야한 생각 했지?”

“뭐, 뭐야.”

“형은 우리가 각인했다는 거 까먹나 봐, 페로몬 아니어도 알 수 있거든?”

입술을 삐죽이며 창밖을 바라봤다.

각인하면 세세한 생각까지는 몰라도 상대의 감정을 느낄 수 있다.

기분 좋다, 화가 났다, 신난다, 성적으로 흥분했다 같은 감정들부터 내게 애정을 갖고 있는지, 아닌지까지 대강 알 수 있다.

“그거, 별로 안 좋은 거 같아.”

솔직하지 못한 불만을 중얼거리자 수혁이가 피식 웃었다.

“왜? 난 형이 야한 생각하는지 아닌지 알 수 있어서 좋은데, 형이 흥분한 것도 금방 알 수 있고.”

“됐으니까, 그만하고 운전이나 해.”

계속 그런 말을 했다가는 멍청하게 발기할 것 같았다.

회사에서 30분 정도 달려 도심을 벗어난 차는 저수지를 지나 언덕길을 올라갔다. 그리고 생판 처음 보는 집 앞에 멈췄다.

어딜 온 건가 싶었는데 차에서 내린 순간 알아차렸다.

나는 이 집을 ‘실제로’ 보는 것만 처음이다.

“마음에 들어?”

언젠가 수혁이가 그렸던 도면으로 본 집이었다.

“응. 여기, 뭐야? 네가 만든 거, 맞지?”

“뭐긴 뭐야, 우리 집이지.”

“…어?”

“형이랑 나랑 살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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