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5화 (76/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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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이 느껴져 눈을 뜨자 수혁이가 날 바라보고 있었다.

“형은 엄마를 많이 닮았어.”

푸르스름한 새벽의 기운이 가시지 않은 하늘을 닮은 낮고 조용한 목소리였다.

“그래서, 깨우지도 않고 보고 있었어?”

고개를 슬쩍 돌려 보자 시계가 가리킨 시간은 여섯 시, 집에 들렀다가 출근해야 했다.

“그냥, 아직 좀 더 자도 되잖아.”

수혁이가 어리광을 부리며 내 허리에 팔을 감고 품으로 파고들었다.

“옷 갈아입으러 가야 해.”

“내 옷 입어.”

“어정쩡하게 클 거 같아서 싫어.”

망설임 없이 대답하자 수혁이가 불만스러운 듯 입술을 꾹 다물었다.

수혁이네 집에도 셔츠는 얼마든지 있다.

대학을 졸업한 수혁이는 유명 건축가의 조수로 들어가서 실무 경험을 쌓는 중이었는데, 평소에는 잘 안 입어도 클라이언트 미팅 때는 정장을 입었다.

“대체 왜 동생이면서 나보다 더 큰 거야.”

수혁이 볼을 살짝 꼬집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난 수혁이가 정장 입는 걸 좋아한다. 몸 선이 예뻐서 정장도 너무 잘 어울렸다.

처음 정장 입은 걸 봤을 땐 어이가 없을 정도로 흥분해 버렸고, 그걸 눈치챈 수혁이가 넥타이도 풀지 않고 바지에서 성기만 꺼낸 채 현관에서 박아줬다.

엉덩이가 얼얼할 정도로 세게 박아대서 마지막엔 거의 정신을 놓고 울었던 게 불과 몇 개월 전이다.

“넌 아빠를 많이 닮았어.”

수혁이 머리칼을 손바닥으로 쓰다듬으며 말하자 수혁이 눈초리가 가늘어졌다.

“…그, 래?”

딱딱하게 흘러나온 목소리에는 불쾌감이 그대로 드러났다.

“…아빠? 아빠란 말이지.”

내가 뭔가 말할 틈도 없이 수혁이가 혼자 중얼거렸다. 아빠라는 단어를 입에 담는 것 자체가 어색해 보이는 표정이었다.

“기분 나빠?”

가만 생각해보면 수혁이가 아빠한테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을 것 같지가 않다는 사실에 조심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아니, 기분 나쁠 게 뭐 있어, 아빠 맞잖아.”

“어, 그렇긴 하지.”

“엄마는 그런 말한 적 없는데, 형이 그렇게 말하니까 신기해서, 많이 닮았어?”

“부모잖아, 어떻게 안 닮았겠어.”

우물우물 말을 뱉자 수혁이가 킥 소리를 내며 웃음을 터트렸다.

“부모 맞지, 아빠라고 불러본 적은 없지만.”

“뭐?”

처음 알았다. 사이가 안 좋은 줄은 알았지만 그래도 설마 불러본 적도 없을 줄은 몰랐다.

“뭘 그렇게 놀라? 제대로 얼굴 본 적도 거의 없어. 본관에 전할 말이 있으면 엄마가 사람을 불렀으니까. 정 얼굴을 봐야 하면 엄마가 밤늦게 혼자 다녀왔고. 나는 그 사람 얼굴 거의 못 봤어.”

그 사람이라는 단어에서 진한 경멸이 느껴졌다.

“하긴 양심이 있으면 얼굴 보러 못 왔겠지, 저가 오메가로 낳았다고 생각하면 올 수가 없지. 나도 그렇지만 아마 그 사람도 날 자식으로 생각 안 하고 싶을 걸?”

수혁이는 혼자만 뭔가 납득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런 독선적인 면도 닮았다고 하면 더 싫어하겠지.

이제 수혁인 싫어한다는 티를 팍팍 내고 있었다. 언짢아하는 사람을 앞에 두고 이런 생각을 하면 안 되지만 둘이 서로를 싫어하는 것도 닮았다.

아빠는 수혁이가 오메가여서 싫어하고, 수혁이는 저를 오메가로 낳은 아빠를 싫어한다.

사람의 뜻대로 할 수 없는 형질이 두 사람을 완전히 갈라놓았다고 생각하니, 조금 아이러니한 기분이 들었다.

장담하는데 수혁이가 태어날 때 아빠는 누구보다 우성 알파이길 바랐을 것이다. 그런데 수혁이는 오메가였다. 그건 수혁이의 뜻도 아니었고 아빠의 뜻도 아니었다.

둘이 잘못한 게 아닌데 천륜을 가볍게 저버린 상황이라니, 역시 계속 같은 피를 섞어서 자식을 낳다보니 이런 일이 벌어진 거 아닐까.

“그래도 마지막에 그 집에서 나올 때는 봤어.”

혼자만의 생각에 빠지던 걸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그땐 나랑 닮았다는 생각은 못 했는데, 어디가 닮았어?”

수혁이가 얼굴을 가까이 들이댔다. 콧등이 스칠 정도로 가까워서 나도 모르게 숨을 참았다.

“이렇게 가까이 오면 더 안 보여.”

“그럼 이 정도면 돼?”

조금 뒤로 물러난 얼굴을 가만히 바라봤다.

“정말 궁금해?”

“형이 그렇게 말하니까 궁금해.”

기분 나빠하면 말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수혁이는 순순히 제 얼굴을 내게 보여줬다.

어렸을 때는 예쁘다고 생각했던 얼굴은 선이 굵어지면서 예쁘다기보다는 아름다워졌다.

엄마한테 교육을 받은 몸가짐도 흠잡을 곳이 없었고, 그러면서 몸은 또 남자답게 자라서 강해 보였다.

“…눈동자가 제일 많이 닮았고.”

수혁이 얼굴을 하나하나 뜯어보면서 말했다.

“덩치도 좀 비슷한 거 같아, 콧등이나 턱선 같은 것도 많이 닮았고.”

전체적으로 풍기는 분위기가 많이 닮았다.

이대로 수혁이가 나이를 먹으면 정말 아빠와 많이 닮은 모습이 될 것 같다.

아빠는 우성 알파라는 것에 자부심이 굉장한 사람이다. 어쩌면 수혁이가 자신을 닮았다는 걸 알고 집에서 나가는 걸 쉽게 허락한 것인지도 모른다.

오메가와 자신이 닮았다는 사실이 싫어서.

“그래?”

“응, 그래도 성격은 네가 훨씬 좋아.”

수혁이 뺨에 가볍게 키스했다.

“형밖에 없어.”

“뭐가.”

수혁이가 내 몸을 꼭 끌어안고 목덜미에 콧등을 비볐다.

“나한테 성격 좋다고 말하는 사람, 진짜 형밖에 없어.”

“네가 성격이 안 좋으면 누가 성격이 좋은 거야.”

말도 안 된다는 듯 웃으면서 수혁이 몸을 밀었다. 더 게으름을 부리기엔 시간이 아슬아슬했다.

“또 언제 올 거야?”

바지를 입고 버클을 채우자 침대에 엎드려 있던 수혁이가 물었다.

“별로 안 바쁘니까 또 올게, 아니면 오늘 같이 저녁이라도 먹을까?”

“정말? 나야 좋지.”

수혁이가 망설임 없이 대답해서 말하길 잘했다는 뿌듯함이 피어올랐다.

이 집에 드나들기 시작하면서 수혁이랑 밖에서 제대로 밥 한번을 못 먹었다. 늘 내가 집에 찾아와서 몸을 섞고, 수혁이가 차려준 밥을 먹었다.

별채에 있을 때부터 혼자 지낸 수혁이는 요리를 곧잘 했다. 간단한 볶음밥에서부터 나는 엄두도 못 내는 찌개나 국 같은 것도 끓일 줄 알았다. 물론 맛도 최고였다. 수혁이가 차려준 음식은 언제나 내 입에 딱 맞았다.

그러다 보니 수혁이랑 있으면 게을러지고 만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알아서 다 해주니까.

“연락할게.”

수혁이 공간에서 빠져 나와 엘리베이터에 혼자 오르자 허전한 기분이 등 뒤에 따라붙었다. 돌아서고 싶은 기분을 떨쳐내며 복도를 빠르게 걸었다.

수혁이네서 자면 매번 이른 아침에 옷을 갈아입으러 집에 간다. 하지만 사실 옷을 갈아입는 건 핑계고 아침을 같이 먹어야 했다.

아침 식사 자리는 암묵적으로 정해진 보고의 자리였고, 그 자리에 참석하지 않으면 아빠가 내 행방을 캐낼 것이 신경 쓰였다. 그러다 수혁이네 집에 드나드는 게 걸리면 피곤해지는 건 내가 아니라 수혁이 일 게 분명했다.

이 집에 세 번째 왔을 때 수혁이가 말했었다.

‘그 집이랑 나는 인연을 끊었으니까.’

‘어?’

‘재산 포기 각서까지 쓰고 나왔다니까.’

‘그런 걸, 했어?’

‘나중에 헛소리하지 말라고, 그렇게 말하더라. 사실 엄마 돌아가시고 난 다음에 내 호적을 파버리고 싶었을 건데 오메가라 입양 보낼 곳이 마땅치 않았던 거 같아, 그리고 이미 어린 나이가 아니었으니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어떤 말이든 다 조악할 것이니까. 나 혼자만 꽃밭에서 살았던 것 같아서 미안했다.

강유혁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나는 아마 지금도 계속 꽃밭에 있었을 것이다. 시키는 일만 하면 언젠가는 세연 강씨의 정점에 오를 거라고 생각하면서.

‘그래서 형을 보러 갈 수도 없었어, 그러니까 형이 날 보러 오는 게 너무 좋아.’

어렸을 때부터 어른이 된 지금도. 내가 만나러 가지 않으면 수혁이를 만날 수 없는 상황이다.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알싸한 감정이 퍼져서 입 안이 썼다. 집안이랑 인연을 끊었는데 나랑 계속 만나도 괜찮은 것인지 따위는 물어볼 수 없었다.

안 괜찮다고 해도 나는 수혁이를 만나고 싶어서 욕심을 부릴 것이니까. 그냥 모르는 척, 집에도 들키지 않게 조심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고 지금까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래도, 내가 보고 싶으면 와도 돼.’

나는 그날 수혁이한테 거짓말을 했다. 수혁이가 절대 집에 오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면서 한 거짓말.

수혁이가 날 보러 진짜 집에 오면 아빠한테 오메가랑 어울리니까 유약하네, 어쩌네 소리를 들을 게 분명했고 나는 강유혁이 있는 앞에서 그런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다.

‘형이 보고 싶다고 하면.’

내 거짓말을 알면서도 수혁이는 모르는 척 대답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서 깊은 한숨을 지었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수 없다는 건 안다.

아빠가 준비하는 선 자리 주기가 점점 짧아지고 있다. 이대로 내가 계속 그녀들에게 퇴짜를 맞으면 결국 나는 강씨 집안의 누군가와 짝짓기를 하게 될 것이다.

여자는 씨받이가 되고 나는 종마가 되는 그런 짝짓기.

그러다 내 자식이 오메가로 태어나면 제 2의 수혁이가 되는 걸까.

생각만 해도 너무 끔찍해서 머리가 다 어질거렸다.

나는 그러고 싶지 않은데, 어디까지나 생각만 그렇게 하고 있을 뿐 행동을 못 하고 있다.

내가 알파로서 원래 쥐고 있던 것을 놓을 생각도 없고, 수혁이도 놓고 싶지 않다.

손에 쥔 것을 계속 가지고 있으려면 여성 알파와 결혼해서 우성 알파를 낳아야 한다. 그러면 수혁이와는 끝내야 하는 게 맞다.

멀쩡한 여자 인생 망치지 않으려면 그게 옳다. 남편이 바람피우는 것도 뒷목 잡을 일인데 바람 상대가 친동생이라니, 혀 깨물고 죽을 일 아닌가.

조금만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짓으로 인해 여러 사람이 괴로워질 미래가 훤히 보인다. 그런데도 수혁일 만나러 오는 걸 멈추지 못하겠다.

수혁이는 내가 없으면 망가질 것이다. 그리고 나는 동생을 버릴 수 없다.

수혁이를 만나러 올 때 나는 늘 이 생각을 한다.

내가 여기 오는 건 수혁이를 위해서라고. 하지만 그게 아니라는 걸 내가 제일 잘 안다.

저런 건 그냥 나한테 하는 구차한 변명일 뿐이다.

나는 수혁이를 안 보면 잘 살 수 있을까?

답은 이미 뻔하다.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사람도 정확하다. 고칠 수 있는 방법도 알고 있지만 하지 않는다.

그냥 생각만 할뿐 정체 되어 있다.

정말이지 대책은 없고, 욕심만 많아서 앞으로 나아가질 못 하고 있는 게 딱 내 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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