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화 (63/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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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와 오메가가 있는 사회에서 알파는 우수성의 상징이었다. 우수성의 상징은 곧 권력이었고 명예였으며 재물이었다.

그 유전자를 놓지 않기 위해서 많은 알파 집안들은 알파를 낳기 위해서라면 근친혼도 마다하지 않았는데 우리 집 역시 그런 집 중 하나였다.

그중에서도 우성 알파를 낳을 기회만 노리는 집이었다.

아버지의 아버지, 또 그 아버지의 아버지 대부터 암암리에 행해진, 금기를 깨는 그 행위는 ‘세연 강씨’를 유지하는 비결이자 비밀이었다.

부모님 역시 사촌지간이라고 했다.

큰할아버지의 아들과 작은할아버지의 딸이 결혼했고 그렇게 태어난 게 우리였다.

법적으로 결혼이 불가능한 사촌이었기 때문에 작은할아버지는 자신의 딸을 늙은 고용인의 양녀로 올렸다.

엄마는 미친 짓이라며 도망치고 싶어 했지만 뿌리 깊은 알파 우월주의 사고방식을 가진 집안에서 도망칠 곳은 없었다.

몇 번의 탈출과 자해 시도 끝에 엄마가 배운 건 포기였다.

결국 강민영에서 이민영으로 성이 바뀐 엄마는 강원혁과 결혼했고, 강지혁과 강수혁이라는 아들 둘을 낳았다.

내가 태어났을 때 우리 집 반응은 ‘당연하다’였다. 알파와 알파가 결혼했으니 당연히 알파가 나와야 한다는 반응이었다. 아니, 어쩌면 우성 알파가 아니라 실망하는 분위기가 더 진했을지도 모른다.

우성 알파를 원하는 할아버지들은 엄마에게 또다시 임신을 강요했지만 엄마는 거부했다.

우성 알파였던 아빠는 자신과 같은 우성을 낳기 위해서라면 못할 것도 없다는 듯이 엄마를 안았다. 하지만 억지로 아빠가 안으면 엄마는 바로 피임약을 먹어버렸다.

그 싸움은 한 달 가까이 이어졌고 각종 루트에서 구하던 피임약을 더 구하지 못하게 됐을 때 아빠는 또 엄마를 안았다.

임신이 될 때까지, 몇 번이고 안고 또 안았다. 만약 엄마가 알파가 아니라 일반 베타나 오메가였다면 진작 미쳐 버렸을 것이다.

강요 속에서 가진 아이, 그 누구보다 산모가 원하지 않았던 두 번째 아이가 태어났을 때 집안은 침울하게 가라앉고 말았다.

아이는 오메가였다.

비싼 돈을 들여 복중 태아를 검사했을 때는 분명 알파였는데, 태어난 아이는 오메가였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물에 아빠는 엄마를 벌레 보듯 했고, 할아버지는 분노했다.

그날 출산 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오메가 아이가 버림받을 것이라 생각했다. 애초에 사랑하는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가 아니었기 때문에.

하지만 의외의 반응을 보인 건 엄마였다.

원치 않았던 임신이었고, 심지어 태어난 아이가 오메가였으니까 가장 억울해할 줄 알았는데 엄마는 침착했다고 한다.

동생, 강수혁은 태어났을 때부터 오메가 페로몬을 뿌려댄 특이 케이스여서 형질 검사를 할 필요도 없었다고 한다.

보통은 페로몬 샘이 성장할 때까지 페로몬이 나오지 않는 법이기 때문에 확실히 특이하긴 했다.

고용인들은 반복된 근친으로 드디어 기형아가 태어난 거라며 쉬쉬했다.

페로몬을 함부로 뿌려대는 오메가를 알파와 한 집에 둘 수 없다는 이유로 할아버지가 동생을 버리려고 했을 때, 엄마는 집에서 같이 나가겠다고 강하게 고집을 부렸다.

큰할아버지는 못마땅해 했지만 작은할아버지는 결국 엄마의 말을 들어주었다. 제 딸이기도 하고, 동시에 강씨 집안 알파인 엄마를 버릴 수 없었기에 엄마는 동생과 따로 살게 됐다.

할아버지들이 아빠와 엄마 사이에서 셋째를 바라지 않게 됐으니 가능한 일이었다.

할아버지들이 셋째를 바라지 않은 건 우성 알파를 포기한 게 아니라 오메가를 낳은 알파가 우성 알파를 낳을 걸 기대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그렇게 엄마는 출산 후 몸도 채 다 풀지 못 하고 쫓겨나듯이 별채로 이동했다.

품에는 작은 아이를 끌어안고서, 몸이 다 풀리면 이 집에서 나가겠다는 말과 함께.

하지만 엄마는 출산 후 떨어진 체력이 쉽게 회복되지 않아서 집을 떠날 수 없었다.

미친 집안이었지만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고, 곱게 자란 여자가 성치 않은 몸으로 돈을 벌어 아이를 키우기란 힘들 수밖에 없었다.

결국 엄마는 별채에서 오메가 아들과 둘이 살게 됐다.

여기까지가 집안 고용인들끼리 하는 얘기를 듣고 내가 조립해서 세운, 동생이 태어났을 때의 상황이었다.

나는 어렸지만 상황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고, 만날 수 없는 동생과 엄마에 대한 궁금증만 커졌다.

그렇게 떠도는 소문처럼 들어서 알고 있던 동생을 우연히 만난 건 내가 일곱, 수혁이가 여섯 살 때다.

초등학교 가기 전까지 구구단을 외워야 한다며, 나중에 다 외웠는지 검사하러 오겠다고 나를 혼자 방에 둔 가정교사의 눈을 피해 도망 나왔다.

전부터 마음에 안 들었던 교사를 곤란하게 만들 목적이었다.

창문을 타고 내려와 넓은 정원에 있는 장미 넝쿨 담벼락을 넘어 샛길을 따라 한참 걸었다.

원래 집이 크다는 자각은 있었다. 고용인들이 묵는 숙소에서 본관까지도 걸어서 한참이었다.

건물은 그것만 있는 게 아니었다. 정원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에 각각 건물이 있고, 또 그 뒤로 작은 건물들이 있었다.

사실 집이라기보다는 세연 강씨 알파가 모여 사는 작은 마을 같은 느낌인 곳이었다. 그때 나는 어렸기 때문에 집안에서도 가 본 곳보다 못 가본 곳이 더 많았었다.

한참 길을 걷다가 호수 정원을 지나자 본관과 비슷한 모양의 장미 넝쿨 담벼락이 나왔다.

낮은 담을 훌쩍 넘자 본관 정원을 축소해 놓은 것 같은 작은 정원이 나왔다.

정원 가운데는 분수대가 있었는데 그 분수대 한쪽에 앉아 있는 수혁이를 발견했다.

그 애가 내 동생이라는 걸 첫눈에 알아봤다.

햇빛에 반사되는 애시브라운 색 머리칼은 사진으로 봤던 엄마와 똑같았고, 복숭아가 떠오르는 매끈한 피부는 인형 같았는데, 수혁이가 인형 같아 보였던 더 큰 이유는 얼굴에 아무런 표정이 없었기 때문이다.

무얼 보고 있는 걸까 싶어서 수혁일 따라 시선을 돌리자 정면에 있는 별채를 노려보고 있었다.

‘너 거기서 뭐 해?’

아빠는 항상 나한테 당당하게 말하라고 했기 때문에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어깨를 쫙 편 채 물었다.

움직일 줄 모르는 것 같았던 고개가 천천히 돌아 나를 응시했다.

새까만 눈동자는 아빠의 것과 똑같았다. 잘못했을 때 용서라고는 조금도 할 줄 모르는 눈동자.

움츠릴 뻔한 어깨를 똑바로 펴자 아무런 표정도 없던 아이의 입매가 슬며시 올라갔고 눈이 반짝거렸다.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그 순간 수혁인 정말 빛이 났다.

‘형…?’

쿵. 심장이 발아래로 떨어지고 말았다.

‘형, 맞지?’

낮은 미성조차 너무 예뻤다.

진짜, 동생이다.

내게는 한 번도 제대로 말도 안 해줬던, 떠도는 소문처럼, 유령 같이 느껴졌던 동생.

집안 사람들은 동생이 전염병 환자라도 되는 것처럼 입에 담는 것도 꺼렸지만, 처음으로 만난 동생은 달콤한 냄새가 나는 사랑스러운 아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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