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1화 (61/91)

31

옆에 누워 있는 지훈이 앞머리를 손가락으로 넘겨주고 얼굴을 건드리자 영훈이가 지훈이 아랫배를 살살 문질렀다.

손길이 간지러운지 지훈이가 작게 웃음을 터트려서 뺨에 키스했다.

보면 볼수록 귀엽다. 아까 보니까 말도 잘하고, 언제 이렇게 다 컸을까. 앞으로는 또 어떻게 크려나.

어떤 모습으로 커도 절대 놔 줄 생각은 없지만 너무 빨리는 크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마 아빠도 엄마한테 이런 집착을 부렸을 거다.

엄마와 아빠가 남매라는 사실은 가끔 집에 오는 외할머니를 보고 알았다.

외할머니는 아빠와 얼굴을 최대한 마주치지 않으려고 했는데, 싫어하는 게 아니라 불편해 하는 것 같았다.

‘할머니는 아빠 싫어해?’

‘아니.’

‘근데 왜 아빠랑은 같이 밥도 안 먹어?’

‘…네 아빠 얼굴 보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어서.’

내가 물으면 할머니는 항상 똑같은 대답을 했는데 난 다른 이유를 듣고 싶었다. 그러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딱 한 번 다른 대답을 했다.

‘네 할아버지가 생각나서.’

‘외할아버지?’

‘…….’

할머니는 더 대답하지 않았지만 침묵은 긍정이었다.

외할머니가 아빠의 얼굴에서 외할아버지를 떠올리는 이유를 나는 좀 더 뒤에 이해했고, 그것이 도덕적으로 옳지 못한 일이라는 건 한참 뒤에야 알았다.

근친혼은 법이 아니라 윤리적으로 금기시된다.

그 이유를 굳이 과학에서 찾는다면 열성 유전자가 유전될 확률이 높아지면서 정신장애를 가진 아이가 태어날 확률이 높기 때문이라고 했다.

어쩌면 과학이 완전히 틀린 게 아닌지도 모른다. 나나 영훈인 아마도 정신에 문제가 있을 거다. 틈만 나면 동생한테 좆을 박고 허리를 흔들고 싶어 하는 걸 제정신이라고 보기는 어렵지.

내가 태어난 지 육 년 후 지훈이가 태어났고, 엄마가 죽었다. 꼭 등가 교환의 법칙 같았다.

오메가가 떠나자 새로운 오메가가 우리 곁으로 왔다. 그것도 엄마와 아주 많이 닮은 얼굴을 한 오메가. 그러니 아빠가 우리 곁을 떠났을 때 당연히 새로운 알파를 찾아야 했다.

외할머니도 없었기 때문에 떠오른 사람은 당연히 두 사람의 아빠인 할아버지였다. 우리를 길러줄 유일한 핏줄이라고 느꼈으니까.

일가친척 하나 없는 초라한 장례식이 끝났을 때 동생들을 데리고 할아버지한테 왔다. 아동보호 시설 같은 곳으로 가기 전에 움직이기 위해 서둘렀다.

주소는 엄마가 유품으로 갖고 있던 할머니의 일기장에 적혀 있었다. 할머니가 잊지 않기 위해 적어 둔 것인지 만약을 대비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나한텐 천만다행이었다.

부모님의 아버지, 그러니까 할아버지는 살아있는 유일한 혈육답게 우릴 내치지 않았다.

할아버지 집에 온 우리는 건강하게 자랐다. 그러다 지훈이 몸이 일반인들과 다르다는 걸 안 건 첫 발정기 때였다.

첫 발정기에 놀라서 부랴부랴 병원에 갔을 때 들은 소식은 까무러칠 만한 얘기였다.

지훈이는 우성 오메가인데, 자궁이 없었다. 아이를 가질 수 없는 오메가.

그게 말이 되는 건가 싶어 얼떨떨했는데 의사는 기형의 일종이라고 간단하게 일축했다. 그리고 지훈이는 자궁이 없는 대신 페로몬 샘이 다른 오메가들보다 두 배 정도 크다고 했다.

그 사실을 처음 들었을 때 할아버지는 쓰러질 것처럼 휘청거렸고, 영훈이는 당황했다. 그리고 난, 아마도 기뻤던 것 같다.

우리 핏줄은 여기서 끝이다.

애를 낳아서 그 애들이 또 서로에게 끌리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으니 차라리 잘 됐다.

근친애가 대대로 물려줄 만한 좋은 관습은 아니지 않나.

누구의 입으로도 들은 적 없지만 나는 엄마와 아빠가 같은 핏줄임을 알고도 사랑했다고 믿는다.

핏줄이 서로를 끌어당겼을 것이니까.

그러니 우리도 이상한 게 아니다.

자라면서 부모님이 일반적인 상식에서 벗어난 사랑을 했다는 걸 나는 이해했고, 동시에 내가 동생들을 사랑하는 것이 아주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느껴졌다.

옆에 누운 지훈이 가슴팍을 꽉 끌어안자 영훈이 지지 않으려는 것처럼 지훈이 허리를 끌어안았다.

손을 내려 영훈이 팔뚝을 손바닥으로 문질렀다.

세 사람의 페로몬이 자연스럽게 섞이는 게 느껴졌다.

코끝이 간질간질한 기분이 들어 엷게 웃었다. 오래 걸렸지만 드디어 퍼즐이 완성된 기분이다.

이건 처음부터 반드시 오고야 말 행복이었다.

4. 베고니아

1

“그게 무슨 말이야, 처음에 했던 말이랑 다르잖아.”

“괜찮을 거 같았는데, 생각해보니까 너 아침에 잘 일어나지도 못하고. 집도 엉망으로 해 둘 거 같고, 그럴 거면 그냥 형이랑 같이 지내는 게 낫잖아.”

“그래, 그 위치면 한이도 회사에서 별로 안 머니까. 대신 오피스텔 말고 아파트로 얻어줄게, 방도 세 개고 거실도 넓고. 대학생한테는 사치지.”

아빠들이 번갈아 가면서 나긋나긋한 어조로 설득했다.

머리가 가볍게 울려서 옆에 앉아 있는 형을 노려봤다. 형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포크로 사과를 찍은 다음 입에 옮기고 있었지만, 아빠들 마음을 돌린 건 형이 분명하다.

완벽한 모범생 얼굴로 동생이 걱정되니 같이 살겠다고 했을 것이다. 아니면 동생이랑 둘이 나갈 테니 신혼 기분 내라고 했을 수도 있고.

어느 쪽이든 형이 했을 법한 말이고 거기에 홀랑 넘어간 건 아빠들이다.

“이제와서 이러는 게 어디 있어?”

“아직 계약서 안 썼으니까 괜찮아.”

“사실 너 혼자 산다고 해서 걱정됐는데 잘 됐지.”

소파 테이블 위에 있는 파파가 갖고 온 아파트 팸플릿을 노려봤다.

사실 대학 입학할 때부터 자취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반대 당했다. 집에서도 충분히 다닐 수 있는데 밖에서 살 이유가 없다는 이유였다.

그래도 1년 동안 끈질기게 졸랐더니 군대 다녀오면 생각해 보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 말에 냉큼 군대를 다녀왔다. 그랬더니 이번엔 계속 떨어져 있었는데 꼭 나가야 하냐며 아빠가 마음 약해지는 소릴 하며 붙잡았다.

결국 복학하고 한 학기만 더 집에서 다니겠다고 했다.

하지만! 말로 하는 약속은 역시 믿을 게 안 된다. 약속된 기간을 채웠으니 나가겠다고 했더니, 아빠들은 처음에 한 학기라고 한 적은 없다면서 오리발을 내밀었다.

그런 법이 어디 있느냐고 가출한다고 언성을 높이자 다음 타협안이 1년 동안 장학금을 받으면 인정해 준다는 거였다.

장학금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그전에도 계속 받았으니까. 다만 1년은 길었다.

한 학기로 줄여달라고 했지만 아빠들이 양보해 주지 않았다. 게다가 가출한다고 엄포는 놨지만 분명 얼마 못 가 찾아낼 사람들이었다.

선우제약 전무이사와 비서인 아빠들이 가진 정보력과 부릴 수 있는 사람 수만 생각해도 나 하나 찾는 건 일도 아닐 게 분명했다.

내가 어디 시골에 가서 처박히지 않는 한 무조건 찾을 것이다. 아니, 시골에 있어도 시간이 걸릴 뿐 찾아낼 것 같다.

울며 겨자 먹기로 꾸역꾸역 참으면서 1년을 더 집에서 다녔고, 대학 생활이 1년 남은 시점에 자취, 그러니까 독립을 허락 받았다.

형 얼굴 안 보고 혼자 살 날에 잔뜩 꿈에 부풀었었는데, 이게 무슨 풍선에 바람 빠지는 소리란 말인가.

내가 집에서 왜 나가고 싶은 건데?! 형이랑 같이 살라고? 그것도 둘이?

부아가 치밀어 다시 한번 옆에 앉아 있는 형을 노려봤지만, 형은 여전히 태연한 얼굴로 사과만 씹어 먹었다.

“어떻게 할래?”

“뭘 어떻게 할래야?”

결정하라는 듯 날 보고 있는 아빠를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웃는 얼굴이 예쁜 아빠는 오메가로, 알파인 파파가 첫눈에 반해서 쫓아다녔다고 했다.

같은 회사에서 일하는 중에 대시를 받아 처음에는 거절했으나 그 거절은 채 열 번이 안 됐고, 둘은 만난 지 1년 조금 넘어서 바로 결혼했다고 들었다.

문제는 아이였는데, 아빠는 오메가가 태어나면 피곤한 삶을 살게 될 거라서 아이를 원하지 않았다고 했다.

알파와 오메가가 만났으니 오메가가 태어날 확률은 40% 정도였다. 제일 높은 게 베타로 55% 정도, 그리고 나머지 5%가 알파다.

아빠는 오메가가 얼마나 피곤한 인생을 사는지 알기 때문에 피했지만, 파파의 끈질긴 설득으로 결혼 후 2년 만에 첫애를 가졌다.

첫애, 그러니까 형이 태어났을 때 애를 키우는 것이 바빠서 아빠는 사실 둘째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고 했다. 형 하나만 예쁘고 건강하게 잘 키울 생각이었는데, 뜻밖에도 동생을 원한 건 형이었다고 한다.

형은 세 살 때부터 동생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노래를 불렀고, 형을 뒤에 엎은 파파는 기회다 싶어서 다시 아빠를 설득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파파가 어린 형한테 시킨 건지도 모른다.

형이 태어난 지 정확히 4년 뒤, 아빠는 나를 가졌다.

난 복중에 있을 때부터 너무 얌전해서 오메가로 짐작했다고 한다. 반대로 아빠들은 형이 알파인 줄 알았다고 했다.

총명했고 성장이 빨라 또래보다 체격이 좋았고, 알파인 파파와 성격도 비슷했기 때문에.

하지만 열 살에 처음 형질 검사를 받았을 때 나온 결과는 오메가였다.

아빠는 실망했다기보다는 속상했다고 그랬다. 아무리 사회적 인식이 바뀌었어도 눈에 보이지 않는 차별과 편견은 분명히 존재했기 때문에 자신이 오메가로서 겪었던 일은 형이 겪을지도 모른다는 게 상상만으로도 싫었다고 했다.

파파는 그럴 일 없을 거라고 위로했지만 발정기정도에 따라서 사회생활을 제대로 못 할 수 있는 걸 고려하면 오메가가 사회 활동하는 건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반대로 오메가일 줄 알았던 나는 열 살 때, 형질 검사에서 알파 판정을 받았다. 우성도 열성도 아닌 딱 보통인 그냥 일반 알파.

전체 사회에서 보면 희소 가치가 높은 피라미드의 위쪽에 위치했지만, 알파 사회에서 보면 그냥 흔한 알파라는 말이다.

뭐, 어쨌거나 아빠들의 예상과 다르게 형과 나는 각각 오메가와 알파 판정을 받았다.

근데 웃긴 건 외모도 내가 오메가인 아빠를 닮아서 피부도 하얗고, 머리카락도 연한 갈색, 눈동자도 햇빛 아래서 보면 투명한 갈색을 띠었다.

반면 형은 알파인 파파를 닮아서 다 진했다. 피부색도 나보다 진했고, 눈썹도 머리카락도 눈동자도 다 까만색이었다. 어렸을 때 이것저것 해 먹인 것 때문인지 형은 키도 나와 거의 비슷했다.

형이 말하지 않는 한, 아니 페로몬을 뿌리지 않는 한 형을 보고 한눈에 오메가라는 걸 알아차리는 사람은 없었다.

약은 꼬박꼬박 먹었고 성격도 유들유들하니 좋아서 주변에 사람도 많았다. 그래서 나도 형이 오메가라는 걸 깊게 생각한 적이 없었다.

“싫으면 그냥 계속 집에서 살아, 어차피 마지막 방학 때는 인턴으로 회사 나올 거 아냐?”

“그러니까! 회사에서도 온 가족이 얼굴 볼 건데 좀 따로 살게 해달라고.”

진짜, 생각만 해도 답답하다. 이미 형도 아빠들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데….

지금은 학교나 다른 것들을 핑계로 피할 수 있었지만 같이 일하게 되면 피할 수 없을 거니까.

형을 힐끔 보자 이번엔 포크가 키위를 찍었다. 접시에 가득 있던 과일을 혼자 야금야금 잘도 먹고 있다.

마치 남 일이라는 것처럼 굴고 있지만 난 안다, 내 독립을 방해한 건 분명 형이다.

“그렇게 말하면 서운한데.”

파파가 능청스럽게 말했다. 사실 안 서운하면서.

“신아, 다른 타협안은 없어. 형이랑 같이 살 거나 아니면 그냥 집에 있어, 혼자는 안 돼.”

아빠가 단호하게 말했다. 마주친 눈동자에서 아무리 졸라도 들어주지 않을 단호함이 드러났다.

“…생각 좀 해 볼게.”

빌어먹을.

짜증을 잔뜩 부리면서 팸플릿을 움켜쥐고 일어나 2층으로 향했다. 불만이 있다는 티를 내기 위해 발소리를 세게 냈지만 아빠들은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2층으로 올라와 방문을 열기 위해 팔을 뻗은 순간 탁탁 하는 발소리가 들렸다. 돌아보지 않아도 누군지 알았다.

“신아.”

몸을 돌리자 역시나 예상대로 형이 서 있었다. 할 말 있으면 해 보라는 눈짓을 보내자 형이 작게 헛기침을 했다.

“생각할 필요가 있어?”

진짜 이 뻔뻔한―.

손에 쥐고 있던 팸플릿을 찢어 버릴 듯이 세게 움켜쥐었다.

“형이랑 내가 어떻게 둘이 살아?”

날카롭게 대꾸하자 형이 입술을 꾹 깨물고 고개를 돌렸다.

“…아직도 그거 때문에 화났어?”

“화난 게 아니라, 싫어하는 거야.”

“그래도 난 좋아하니까 어쩔 수 없어.”

덤덤한 얼굴로 아무렇지도 않게 터트리는 폭탄에 심장이 발끝까지 떨어졌다가 단박에 튀어 올랐다.

형이 이럴 때마다 미치고 팔짝 뛰겠다.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나보고 어쩌라고?! 이걸 아빠들한테 말할 수도 없고. 진짜―.

“뻔뻔하네.”

“너한테 피해 가는 건 없잖아.”

“소름 끼쳐.”

일부러 상처를 주려고 모난 말을 뱉었지만 형은 조용한 시선으로 날 응시했다. 잠깐의 텀을 두고 형이 손바닥으로 머리를 쓸어 넘기더니 생긋 웃었다.

“그래도 형이 있는 게 편할 거야.”

도대체 진짜 감정이 있는 걸까. 어떻게 이런 말을 듣고도 아무렇지 않을 수가 있지? 나 같으면 진작 때려치웠거나, 아니면 패버렸을 거다.

사람을 상대로 해도 될 말이 있고 하면 안 되는 말이 있는데, 아무리 봐도 소름끼친다는 말은 후자에 해당했다. 여러모로 형제한테 할 말은 절대 아니었다.

말하는 나도 언짢으니 듣는 사람 속이 편할 리 없는데, 형은 언제나 이런 식으로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편하긴 뭐가 편해?”

“밥도 빨래도 다 형이 해 줄 거니까, 너 그런 거 잘 못 하잖아.”

“그런 건.”

사실이어서 말문이 막혔다.

“…하다 보면 늘어.”

뒤늦게 대답했지만 형은 생글생글 웃었다.

“독립해 보고 싶다며.”

“그러니까, 더 같이 살기 싫다는 거잖아.”

같은 말을 또 하게 하는 것에 짜증이 치밀어 뚱하게 대꾸하자 형이 턱을 매만지며 엷은 한숨을 뱉었다.

스치듯 떠오른 고민이 아름다운 얼굴을 더 수려하게 만들었다. 쌍꺼풀 진 눈꺼풀이 아래로 내려가면서 눈썹처럼 짙은 속눈썹이 잘게 떨렸다.

“그럼, 네가 혼자 살 수 있다고 판단되면 난 본가로 돌아올게. 그럼 되겠어?”

“그게 뭐야? 결국 형이 내킬 때까지라는 거잖아.”

나한테 지금 혼자 살고 싶으면 형한테 잘 보이라는 말을 하는 거야?

“더는 안 돼.”

형이 양보할 수 없다는 듯 말했다.

들고 있던 팸플릿을 형이 서 있는 쪽 바닥에 팽개쳤다.

그 판단을 왜 형이 하는 건데?

불만이 치솟으면서 이미 내가 졌다는 걸 알았지만 그래도 짜증이 났다. 내가 누구 때문에 나가려고 하는지 알면서, 저러는 게 제일 화가 났다. 진짜 뻔뻔해.

“나한테 함부로 말 걸지 마, 기분 나빠.”

2

방 앞에 서 있는 형을 두고 그대로 문을 열었다. 닫히는 문틈 사이로 형이 허리를 굽혀 팸플릿을 주워드는 게 보였다.

아마 형은 이제 내려가서 ‘같이 살기로 했어요.’라는 말을 시작으로 계약이며 이사 날짜 같은 것들을 정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나를 귀찮게 할 일은 전혀 없겠지.

그런 면만 봐도 형은 전혀 오메가 같지 않다. 보통의 오메가들은 의존적인 성향이 강하다고 했는데 형은 아니었다.

아빠만 봐도 다른 사람들한테는 아니지만 파파한테만큼은 확실하게 의지하고 무한한 신뢰를 보내지 않나. 그 기대에 부응하는 게 알파인 파파의 몫이고.

침대에 드러누워 천장을 향해 한숨을 뱉었다가 이불을 덮으면서 눈을 꾹 감았다.

처음부터 형한테 이런 태도를 보인 건 아니었다. 어렸을 때는 사이가 좋았다. 아니, 내가 형을 엄청 많이 따랐다.

나보다 네 살 많은 형은 아빠 같은 면이 있어서 좋았다. 일 때문에 늦으시는 아빠들을 대신해서 나랑 놀아주고 공부를 봐주고 밥을 차려 줬다.

맹세컨대 형이랑 같이하는 시간이 싫었던 적은 단 한 순간도 없었다. 스물이 되기 전까지는.

막 스물이 됐을 때, 고등학교 졸업하고 대학교 입학 전인 그 짧은 시간.

어른이라도 된 것 같이 기뻐서 친구들과 자주 나돌아 다녔다. 술을 마시는 일이 잦았는데 그날도 술을 마시느라 늦게 왔다.

집안이 어두워서 아빠들은 물론이고 형도 없는 줄 알았다. 술기운이 가시지 않은 눈동자로 손목시계를 확인했을 때는 밤 열 시 반이었다.

많이 늦은 시간은 아니라고 생각하며 2층으로 올라왔을 때 내 방문이 오 센티 정도 열려 있었고 그 틈으로 빛이 새어 나왔다.

순간 형이 내 방에 있는 건가 싶어 하며 성큼성큼 걸어갔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뭔가 느낌이 이상했다.

알 수 없는 불길함에 휩싸여 걸음의 보폭이 좁아지고 발끝에 힘이 들어갔다.

“아, 하아, 응….”

옅은 신음에 놀라 입가에 힘을 줬다. 남자니까 자위 정도는 얼마든지 할 수 있지만 그 자위를 동생 방에서 하는 건 이해가 안 갔다.

그냥 모르는 척 피할까, 끝나고 들어온 척해야 하나, 별생각을 다 하고 있었지만 이미 호기심을 이기지 못한 내 몸은 방문을 향해 팔을 뻗고 있었다.

찰나의 망설임 때문에 쉽게 문을 열지 못한 순간.

“하으, 신아….”

고막을 찢고 들어온 내 이름에 더 이상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문을 벌컥 열자 형이 바닥에 앉은 채 침대에 얼굴을 비비면서 성기를 흔들고 있었다.

문을 여는 것과 동시에 반쯤 감고 있던 눈이 크게 떠졌고 나와 눈이 마주쳤을 때 형의 손에 흰 점액질이 달라붙었다. 허리를 부르르 떠는 형 때문에 머릿속이 노래졌다.

“아, 신아.”

달큰하고 끈적하게 날 부르던 목소리와 당황이 묻은 목소리가 겹쳐져 환청처럼 들렸다. 술에 취해서 환각이라도 보는 걸까, 차라리 그게 나을 것 같았다.

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 가까이 다가온 형에게서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강한 단내가 났다. 정액의 풋내와 섞여서 흘러나오는 그 냄새에 더는 그 자리에 있을 수 없었다.

“더러, 워….”

간신히 말을 뱉고 도망치듯이 집에서 뛰쳐나왔다.

그 뒤 사흘 동안 친구 집을 전전했다. 걱정시키고 싶지 않아 아빠들에게만 연락했다. 다행히 고삐가 풀린 것이라 생각한 것인지 잔소리는 없었다.

물론 형은 달랐다. 그때도 형은 뻔뻔하게 내 친구의 집을 찾아왔다.

누구 집에 있는지 어떻게 맞춘 것인지 그다지 찾아다닌 기색도 아니었다.

‘집에 가자.’

길게 말하지도 않았다. 그런 모습을 보이고 아무렇지도 않은 게 너무 황당했다.

‘…나한테 뭐 할 말 없어?’

먼저 말할 기미가 없어 신경질적으로 추궁하자 형이 턱을 매만지며 작게 앓는 소리를 냈다.

‘네가 늦게 올 줄 알았어, 그런 걸 보여줄 생각은 없었어.’

지저스! 무슨 말을 하는 거야? 그게 아니라 미안하다거나, 다시는 안 한다거나 그런 말을 해야 하는 거 아냐? 늦게 와서 나한테 걸리지 않았으면 해도 된다는 거야?

아니, 도대체 언제부터 했던 건데? 보통 동생한테 자위 현장을 걸린 것만으로도 쪽팔려 해야 하는 거 아냐?

거기다 동생 이름 부르면서 동생 방에서 했으면 빼도 박도 못 하는 거잖아. 어떤 신경 줄을 가지고 있으면 저렇게 태연할 수 있는 거야? 미친 건가? 진짜, 돈 거 아냐?

‘일단 집에 가, 남의 집에서 며칠씩 자는 거 민폐야.’

형이 내 방에서 딸친 게 더 민폐야! 라는 말이 목젖을 탁 쳤지만 입을 꾹 다물었다.

길에서 하면 안 되는 얘기라는 생각도 있었지만, 형이 지금보다 더 뻔뻔하게 나오면 답이 없을 것 같았다.

쉽게 물러날 기미도 안 보였고 언제까지 친구 집에 있을 수 만은 없어 형을 따라나섰다.

앞서 걷는 형의 뒷모습을 보는 게 싫어 형을 지나쳐 택시를 잡았다. 혼자 타고 가려고 했는데 뒷문을 닫기 무섭게 조수석에 형이 올라탔다.

태연하게 집 주소를 말하고 안전벨트를 매는 뒤통수를 노려봤다. 같은 집으로 돌아가서 얼굴을 볼 생각을 하니 곤혹스러웠다.

형이 자위하던 침대 위에서 어떻게 자냐고―.

‘그렇게 집에 가는 게 싫으면, 자취라도 하든지.’

조용하던 형이 툭 던지듯 말했다. 잘못은 형이 해 놓고 왜 나보고 나가래? 어이가 없어 못 들은 척했는데 택시가 집 앞에 도착했을 때는 차라리 혼자 사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입학 예정인 대학은 편도 사십 분 정도. 지하철을 두 번이나 갈아타야 했다. 그럴 시간에 공부를 더 하는 게 이득이지 않겠냐고 하면 아빠들도 싫어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지금이 1월, 개강이 3월이니 집을 구할 시간도 촉박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어느 순간 내 머릿속에서는 형이 낸 의견이라는 생각은 싹 사라지고 구체적으로 자취를 허락받기 위한 계획을 짜느라 바빴다.

하지만 자취 실현은 내 계획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군대도 사실 자취 허락 받는 게 목적인 것도 있었지만, 형 얼굴 보는 게 껄끄러워서 도피성으로 간 거기도 했다.

오메가여서 면제 받은 형은 군대를 갈 수 없으니까.

뭐, 이래저래 아빠들의 억지 주장을 들어주면서 결국 올해 1월 자취 허락을 받았다.

다 된 줄 알았는데 이제 와서 형이랑 같이 사는 게 아니면 허락을 못 해주겠다니, 이건 아무리 봐도 형의 농간이다.

아무렇지도 않게 좋아한다고 말하는 선우 한, 진짜 재수 없어.

내가 친동생이라는 자각은 있는 거야?

3

역시나 내 예상대로 형의 준비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칼 같이 이루어졌다.

아빠들이랑 거실에서 이야기한 다음 날 미리 점찍어 둔 아파트를 계약했고, 그다음엔 이사 날짜를 잡았다.

필요하면 언제든지 집에 들러서 갖고 갈 수 있을 거리였기 때문에 짐은 형 차로 옮기기로 했다.

포장 이사가 아니었기 때문에 직접 챙겨야 했는데 특별히 말하지 않았음에도 형은 내 짐을 알아서 정리했다.

매일 밖에 돌아다니다 집에 오면 내 방 짐이 줄어들었고 현관 입구에 상자가 쌓였다. 내가 당장 쓸 것과 당장 쓰지 않아도 되는 것을 기가 막힐 정도로 잘 구분해서 가벼운 소름이 돋았다.

그렇게 짐을 정리해 놓고 개강하기 하루 전, 우린 정식으로 이사했다.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해.”

“외식 자주 하지 말고.”

“뭐, 한이가 알아서 하겠지만, 너도 너무 늦게까지 돌아다니지 마.”

이사 가는 집은 지하철역으로 치면 7개 밖에 안 되는데 아빠들이 은근히 요란을 떨었다. 알았다는 의미로 대충 고개를 끄덕이고 몸을 돌렸다.

형이 입사한 뒤 처음 개발한 약이 대박을 터트린 다음 산 마세라티 뒷좌석에 올랐다.

조수석이 비어 있었지만 형과 나란히 앉고 싶은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기에 짐을 비집고 들어가 앉았다. 팔에 걸리적거리는 작은 상자 두 개를 대충 조수석으로 넘겨 자리를 확보하고 등을 기댔다.

아빠들이랑 이야기하느라 조금 늦게 운전석에 올라탄 형은 백미러로 뒷좌석을 힐끔 보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파트 입구에 도착했을 때 속으로 웃었다. 집이랑은 적당히 떨어져 있었고 대학이랑은 가까웠다. 학교는 버스 타고 한 번에 갈 수 있는 거리로 15분이면 도착할 것이다. 차를 타고 가면 아마 그 반절 정도밖에 안 걸릴 것이고.

사실 차를 갖고 싶었지만 아빠들이 차는 사회생활 시작하면 그때 사주겠다고 해서 어쩔 수 없었다.

차에서 짐을 내린 형이 상자 세 개를 들고 곤란한 표정으로 날 봐서 모르는 척 서 있다가 결국에는 작은 상자 하나를 들었다.

오전부터 형이 두 번 정도 왔다 갔다가 하면서 짐을 옮기는 동안 아무것도 안 한 것에 대한 양심의 가책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상자를 끌어안은 채 아파트 현관으로 다가가자 경비 아저씨가 문을 열어줬다. 평소에는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와야 하는데 아침부터 왔다 갔다 한 형의 얼굴을 기억해서 열어준 것 같았다.

“감사합니다.”

형이 사람 좋은 얼굴로 웃어서 나도 경비 아저씨를 향해 꾸벅 인사했다.

“동생이에요.”

간단한 소개말에 경비아저씨가 똑똑하게 생겼다는 인사치레를 해서 그냥 웃었다. 아저씨는 이미 내 관심 밖이었다.

형이 나를 남한테 동생이라고 말할 줄 아는 거 보면 완전히 미친 건 아닌가 하는 엉뚱한 생각만 들었다.

상자를 들고 형이 움직이는 대로 따라 움직였다.

현관을 지나면 로비가 나오고 오른쪽으로 돌면 엘리베이터 홀이 나오는 아파트는 딱 보기에도 고급이었다.

엘리베이터도 아무 층이나 갈 수 있는 게 아니라 호텔처럼 가지고 있는 카드키를 대면 거주지가 있는 층에만 갈 수 있었다. 원래 살던 주택보다 훨씬 방범 시설이 탄탄한 느낌이었다.

남자 둘이 사는데 굳이 이렇게까지 까다로운 집을 고를 필요가 있었나 싶었지만 오메가가 살기에는 이런 곳이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키가 없으면 엘리베이터 못 타니까 잊지 말고 갖고 다녀.”

엘리베이터 숫자판에서 15를 누른 형이 말했다.

“계단으로 오면 되잖아.”

“비상구 문도 아무나 열 수 없는 게 당연하잖아.”

“불이라도 나면 더 위험한 거 아냐?”

“안에서는 열 수 있어, 밖에서 못 열뿐이지. 불이 난다고 해도 다른 층에 들어갈 이유는 없으니까.”

심술을 부려본 건데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대꾸하니 오히려 맥이 빠졌다.

“저녁은 어떻게 할래?”

현관 비밀번호를 입력하면서 형이 물었다.

패드의 숫자를 누르는 손가락을 보고 비밀번호는 바로 알았다. 본가 비밀번호와 똑같았다. 나와 형 생일 조합으로 이루어진 8자리 숫자.

“아무거나.”

“그게 제일 어려운데.”

그러거나 말거나 아무 대꾸 없이 방으로 들어갔다.

새 책상과 새 침대, 시트와 이불도 모두 새것이었다. 책장에는 벌써 책이 꽂혀 있었고 설치를 마친 데스크톱 옆에는 노트북과 태블릿도 있었다.

넓은 책상 옆에는 2단 행거가 있었고 옷이 색깔별로 쭉 정리가 돼 있었다. 누군지 확인할 것도 없다. 이건 다 형이 했을 것이다.

태블릿을 들고 침대에 누워서 게임을 켰다. 저녁 먹기 전까지는 시간이 남았고 짐 정리는 할 것이 없었기 때문에 할 일이 없었다.

그렇다고 거실에 나가서 형 얼굴을 보고 있는 건 생각만으로도 숨이 막혔다.

어색하지 않았던 때가 좋았지만 아무리 몇 년이 지났어도 생생하게 기억이 나는데 어떻게 아무렇지도 않게 대해.

무엇보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척하고 있지만 형은 어제도 날 좋아한다고 말했다.

그거, 아무리 봐도 제정신 아닌 거 아냐? 아빠들한테 말하고 병원 가서 검사받게 해야 하나? 아니면 나랑 떨어져 지내거나.

“신아, 밥 먹어.”

딴생각을 하다 보니 문밖에서 형이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고 들어올 것 같아서 벌떡 일어나 방 밖으로 나왔다.

식탁에 앉자 소금과 후추로 간을 한 야채 볶음밥과 소고기뭇국, 계란말이가 차례로 놓였다. 요 몇 년간 내가 일방적으로 피했기 때문에 둘이 식탁에 앉는 건 오랜만이었다.

“오늘은 간단하게 먹고 내일은 불고기 해줄게, 강의 몇 시에 끝나?”

형이 내가 좋아하는 고기반찬을 입에 담았다. 내가 무슨 아직도 앤 줄 아나? 언제까지 그런 거에 홀랑홀랑 넘어갈 줄 알고?

“강의는 세 시면 끝나는데, 몇 시에 올지 몰라, 개강이라 친구들 만날 수도 있고.”

형이랑 당연히 저녁을 먹을 거라 생각하는 것 같아 일부러 기대에 어긋나는 대답을 했다.

“그리고 별로 나 신경 쓰지 마. 저녁도 각자 먹어도 돼. 난 독립하고 싶어서 형이랑 같이 사는 걸 선택했을 뿐이지, 사실은 엄청 싫어, 되도록 안 마주치고 싶어.”

가사는 형이 해준다고 했으니까 맡기긴 할 거지만, 그건 출퇴근 가정부처럼 해주면 되잖아. 그러면 얼굴 마주칠 일 거의 없지 않나?

얼굴을 보고 싶지 않은 건 사실이다. 형을 보면 속이 답답하다. 해도 될 말이 뭔지, 하면 안 될 말이 뭔지 제대로 분간이 안 간다.

그건 점점 더 심해지고 있어서 같이 사는 게 결정된 다음부터는 더 뾰족뾰족한 말만 했다. 그럴 바엔 차라리 말을 안 하는 게 낫지. 집에서야 아빠들 눈도 있고 하니까 적당히 말을 섞었지만 이제 여기서는 그럴 필요가 없지 않나.

“음, 무슨 말인지는 알겠는데.”

형이 국그릇을 숟가락으로 휘휘 젓더니 고개를 들었다.

“외식 자주 하는 건 몸에 안 좋아, 매일 사 먹는 건 점심으로 충분해. 그러니까 늦으면 늦는다고 문자 정도는 보내. 식사 준비하려면 몇 시에 오는지 정도는 알아야 하니까.”

물러설 기미 없는 단호한 말에 잠깐 고민하다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 이럴 때 보면 영락없이 아빠 아들이다.

게다가 올지 안 올지 모르는 사람의 저녁을 준비하는 건 시간 낭비 재료 낭비였다. 어차피 형도 일하는 사람이니 식사 준비에만 매달릴 수도 없을 거고.

그 말을 끝으로 식탁에는 식기 부딪히는 소리만 울렸다.

뭐랄까. 이렇게 한마디도 안 할 거면 같이 밥 먹는 의미가 있나?

하아, 집에서 나와 살면 좀 더 멋대로 해도 될 줄 알았는데, 아빠들이랑 같이 있는 것보다 더 피곤한 기분이다.

한숨과 함께 영겁의 저녁 식사가 끝난 뒤에는 피곤해서 씻자마자 바로 잠들었다.

4

“…신아, 일어나.”

“으응, 오 분만.”

머리 위에서 들리는 부드러운 목소리에 약간의 잠투정을 섞어서 이불을 끌어 올렸다.

“안 돼, 밥 먹고 가려면 지금 일어나야 해.”

아까보다는 단호했지만 여전히 부드러운 음색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눈꺼풀을 느릿하게 밀어 올리자 흐릿한 시야에 제일 먼저 짙은 눈썹이 들어왔다. 그다음엔 구슬 같은 반짝임을 머금은 새까만 눈동자.

“흐억…! 뭐야? 왜 들어왔어?”

형이라는 걸 인식하기 무섭게 벌떡 일어나 소리를 질렀다.

“문밖에서 불렀는데 대답이 없기에.”

“그렇다고 왜 들어오는 건데?”

“…….”

“내 얼굴 보고 뭐 했어? 이상한 짓 했지? 이 방엔 들어오지 마, 꼭 그렇게 말을 해야 알아?”

속사포처럼 쏟아내자 형이 엷은 한숨을 뱉었다.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참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알았어.”

많은 말을 눌러 담은 것 같은 입술 새에서 흘러나온 말은 그것뿐이었다.

“뭐야, 뭔데? 할 말 있으면 해.”

“별로.”

“거짓말하지 마.”

형이 거짓말을 하는지 안 하는지 정도는 얼마든지 구분할 수 있다. 그야 한 집에 산 세월이 얼만데 그걸 모를 리가.

내가 계속 시선을 보내자 형이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그래, 그럼 솔직하게 말할게. 일단 첫째, 난 아무것도 안 했어. 둘째, 자는 네 얼굴을 보고 내가 무조건 뭘 할 거라고 생각하는 건 네가 날 너무 의식하는 거 아냐? 그게 아니면 자의식 과잉이거나. 몇 번을 말하지만, 그날은 네 귀가 시간을 잘못 계산해서 벌어진 착오였어. 그리고 셋째, 내가 방에 들어와서 깨우지 않기를 바라면, 네가 알아서 일어나. 아침에 일어나서 거실에 나와 있거나 씻고 있으면 이 방에 들어올 일 없어. 바꿔 말하면 네가 알아서 일어나지 않으면 난 또 이 방에 들어올 거라는 말이야.”

형은 내가 말한 것보다 훨씬 느리지만 반박할 1밀리의 틈도 없이 조곤조곤 말했다. 말문이 턱 막혔다.

도대체 이게 어디가 좋아하는 거야? 금기를 깬 사람 맞아? 왜 내가 유난인 것처럼 돼야 하는 건데?!

형이 나 좋아한다고, 그런 이상한 말을 하니까 내가 이러는 거지, 뭐? 자의식 과잉? 내가 무슨 관심 받고 싶어서 안달 난 관심병자야? 왜 자기가 한 잘못은 쏙 빼는 건데?

“할 말 없으면 일어나서 씻어.”

할 말은 떠올랐지만 안타깝게도 형처럼 조근조근 반박할 수가 없어 입을 다물었다. 그런 나를 두고 형은 아까와는 다르게 속이 후련한 표정을 짓더니 그대로 몸을 돌렸다.

보란 듯이 방문을 열어 놓고 나가는 태도에 머리에 열이 올랐다.

침대 위에 있던 베개를 집어 던졌지만, 베개는 문가 근처에서 툭 떨어졌을 뿐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았다.

하, 진짜로 자위 정도는 나한테 피해 주는 게 없다고 생각하는 걸까. 그건 아니잖아, 딸 감의 입장도 생각해 줘야지.

섹시한 누나나 귀여운 후배가 아니라 친형의 딸 감이라니, 도대체 내 어떤 모습을 상상하면 그렇게 쌀 수 있는 건데.

5

“야, 왜 그러고 있냐? 학기 시작한 지 일주일인데 왜 그렇게 기운이 빠져 있어?”

책상에 엎드려 있던 내 등짝을 신나게 내리친 뒤 옆에 앉는 동기인 상혁의 얼굴을 바라봤다.

학기 시작한 지 일주일인데 왜 기운이 빠져 있냐고? 이유야 많다. 형과 같이 산 것도 딱 그만큼이고 그동안 나는 단 하루도 형이 깨우기 전에 먼저 일어나지 못했다.

아침엔 원래 약한 편이지만 난 내 의지가 이렇게나 박약일 줄 생각도 못 했다.

결국 덕분에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제일 먼저 보는 건 말끔한 형의 얼굴이다. 출근 준비를 마친 형은 언제나 셔츠차림에 넥타이를 헐렁하게 매고 있었는데, 그 넥타이는 아침을 먹고 양치질을 하면 목 아래에 반듯하게 자리 잡았다.

아빠들 제약 회사 신약 개발팀에서 일하는 형은 낙하산 소리 듣는 걸 끔찍하게 싫어해서 남들보다 두 배는 더 부지런했다. 전공은 경영인데 연구원으로 일하는 것만 봐도 얼마나 독종인지 대충 짐작 된다.

입사하고 한 달도 안 돼서 출시한 오메가 억제제는 지금도 선우 제약 주력 상품이다. 입사 이 년 차인 지금은 책임 연구원이고 낙하산 소리 하는 사람들도 없는 걸로 알고 있다.

오메가라는 핸디캡을 가지고 있는 걸 생각해 봤을 때 대단한 결과였고, 그 사실을 알아서 아빠들도 형에 대해서는 신뢰도가 하늘을 찌를 듯이 높았다.

그러니까 그 신뢰도라는 게 어느 정도냐면 집안에 하나뿐인 귀여운 막내를 온전히 형 손에 맡길 정도가 되겠다.

뭐, 그게 아니더라도 어렸을 때부터 날 돌보는 건 거의 형이 했지만. 그래서 더 이해가 안 되는 거다. 그렇게 코흘리개 일 때부터 본 동생한테 왜 고추가 서냐고!

아무튼 그렇게 형 얼굴을 보고 찜찜한 기분으로 눈을 떠서 간단한 아침을 먹었고, 씻고 나오면 커피가 준비돼 있었다.

일주일 동안 늦지 않게 들어간다고 처음 약속한 대로 연락했고, 그 때문에 저녁도 형이랑 먹었다. 침묵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식사 시간은 벌을 받는 기분이었다.

형은 내가 먼저 말 걸기 전에는 입을 열지 않았다. 단순히 하고 싶은 말이 없는 것일 수도 있지만 형 성격에 내 학교생활이 안 궁금할 리가 없다. 그런데도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TV라도 켜 놓을까 싶었지만 어차피 식탁에서는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기 때문에 소용없는 짓이었다.

그렇게 벌 받는 것 같은 식사가 끝나면 씻고 바로 내 방으로 왔다. 내 계획은 이게 아니었는데 형이 끼어들어서 자유는커녕 오히려 숨만 더 막힌다.

그나마 평일에는 학교와 직장이라는 핑계로 마주치지 않아도 됐지만 주말은 또 얘기가 달랐다.

어제와 그제, 이틀이나 되는 주말 동안 난 내 방에 틀어박혀서 게임만 했다.

친구들을 만날 기분도 아니었고, 거실에 나갔다가 형이랑 얼굴을 마주칠 기분은 더더욱 아니었다.

완전히 창살 없는 감옥이 따로 없었다.

“진짜 뭔 일 있어?”

상혁이 얼굴을 바짝 들이대서 손바닥으로 밀었다.

“없어, 일이 있긴 뭐가 있어.”

“그럼 오늘 끝나고 한 잔? 너 지난주에도 그냥 집에 갔잖아.”

그래, 집에 갔지.

술 마시고 집에 갔는데 형이 또 자위라도 하고 있으면 어떻게 해? 아니, 내가 싫은 티를 팍팍 냈으니까 그럴 일은 없으려나.

아니지, 아니야. 둘이 사는 상황이니까 더 조심해야 된다. 언제 또 내 방에서 그런 짓을 할 줄 알고.

“됐어, 술 마실 생각 없어.”

“야, 어차피 우리 논문 준비하기 시작하면 놀 시간도 없는데, 한잔하자, 나 오늘 엄청 당긴단 말이야.”

“아니, 진짜 그럴 기분 아니라니까.”

“왜 이렇게 튕기실까, 같이 놀자 신님, 응? 선우 신님.”

“술값 내라는 거냐?”

“역시 귀신, 신님.”

“남의 이름 갖고 놀리지 마.”

장난치는 상혁을 째려봤다.

“알바비 나오면 다음엔 내가 쏠게.”

돈도 없으면서 궁상맞게 사달라는 상혁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저렇게 마시자고 하는 거 보면 뭔가 이유가 있을 거 같긴 한데, 지금 물어보면 피곤할 거 같고.

그래도 내가 가출 아닌 가출했을 때 신세 진 것도 있으니 너무 무정하게 굴면 도리가 아니겠지.

내가 집에 갔을 때 형이 그러고 있을 가능성과 내가 술이 떡이 될 확률을 계산했다. 어설프게 마시지 말고 진탕 마셔서 술 먹고 바로 뻗으면 얼굴도 안 보고 좋을지도.

상혁의 설득 아닌 설득과 형을 피하고 싶은 마음이 어설프게 타협해서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어영부영 대답하자 상혁이 뭐가 좋은지 낄낄거렸다.

강의가 끝난 오후 네 시 반, 정문으로 빠져나가면서 형한테 문자를 보내려다 겉옷 주머니 속에 핸드폰을 쑤셔 박았다.

굳이 내가 먼저 말하지 않아도 시간이 되면 형한테 연락이 올 거다. 지난주 내내 그랬다.

[저녁 어떻게 할 거야?]

앞뒤 다 자른 간결한 물음에 나는 항상 집에서 먹을 거라고 대답했다. 보나 마나 오늘도 문자가 올 거고 문자를 받은 다음에 늦게 들어간다고 대답해줘도 될 것이다.

“근데 술 먹기에 이른 거 아니냐?”

“대학생의 로망은 낮술이지.”

“핑계도 가지, 가지.”

술 먹고 싶다는 상혁은 아직 해가 다 지지도 않았는데 학교 앞 술집으로 날 끌었다.

6

“걔가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가 있냐.”

젠장, 너야말로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냐.

뭔가 할 말이 있을 것 같다고 대충 짐작하긴 했지만 그게 여자 친구가 바람피웠다는 내용일 줄이야.

정확히 한 시간 반 동안 어떻게 그럴 수 있냐는 말을 오십 번째 하는 걸 듣고 있으려니 취하 긴커녕 짜증만 밀려왔다.

“너야말로 왜 고민하냐, 바람피웠으면 끝이지.”

제발 가치가 있는 일에 고민하라는 의미로 술을 벌컥벌컥 마셨다.

“어떻게 그렇게 쉬워, 넌 사랑이 그렇게 쉽냐?”

철 지난 유행어를 읊으면서 오버하는 상혁을 보고 있으려니 갈증이 강해졌다. 술을 따라서 연달아 석 잔을 마시자 상혁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너도 실연당했냐?”

“실연 같은 소리 하네, 너 하는 게 웃겨서 그런다. 배신당했는데 무슨 사랑 타령이야, 막말로 걔는 이제 너 안 좋아하니까 그렇게 배신하는 거지. 그리고 네가 이렇게 술 마시자고 징징거릴 정도면 단순한 바람도 아닌 것 같은데. 둘이 떡이라도 친 거 아냐?”

“난 대인배라 한번은 용서해 줄 수 있어.”

기가 막힐 노릇이다. 상혁은 알파였다. 알파의 소유욕이 어떤지 잘 알고 있다. 그런데 딴 놈이랑 자고 온 여자를 용서한다고? 설마, 그냥은 절대 안 할 짓이다.

여자는 둘째 치고 일단 남자는 반 죽여 놔야 직성이 풀릴 게 알파다. 그러고도 분해서 어쩔 줄 몰라 할 것인데 용서라니, 내걸 남과 공유하는 알파는 본 적이 없어서 헛웃음이 나왔다.

“왜? 너도 원나잇 한 적 있어서?”

“꼭 그런 건 아니지만. 원래 몸 섞었다고 마음 주는 거 아니잖아.”

기습 공격이라도 당한 것 같아 입을 꾹 다물었다.

“한 번이면 그럴 수 있지, 라고 생각은 하는데―. 씨발, 진짜 그래도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

쿨한 척하더니 결국 원점이다.

한 번이면 그럴 수 있다? 형도 그냥 어쩌다 한 번인가?

명치 부근이 갑갑해져서 다시 빠르게 술을 마셨다. 알고 싶지 않았던 감정을 떠올릴 것 같아서 생각을 멈추고 싶었다.

“몸 정, 떡 정이란 말이 괜히 있냐? 한 번이면 뭘 그럴 수 있어?”

“그것도 여러 번 해서 쌓이는 거지, 한 번에 정이 쌓이겠냐?”

“만리장성은 쌓는다던데.”

일부러 얄밉게 말하자 상혁이 쫙 찢어진 눈을 했다.

“그래서, 걔는 뭐라는데?”

어차피 푸념 들어줄 상대가 필요하다는 걸 알기 때문에 별 궁금하지도 않은 걸 물어봤다.

“내가 하자는 대로 한대.”

“하…?”

“처분만 기다리겠다는 얼굴로 말하는데 죽겠더라. 눈 딱 감고 없던 일로 칠까 싶으면서도 눈만 감으면 생각나는데 어쩌냐.”

한숨이 나올 것 같아 소주와 함께 삼켜 버렸다.

일부러 대입하고 싶지 않은데 바람피운 여자 친구와 형이 자꾸 겹쳐졌다. 형의 태도도 그랬으니까. 내가 결정하는 대로 따르겠다는 것처럼.

만약 내가 그날 일을 못 본 것처럼,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면 형도 그렇게 할 것이다. 속은 어떨지 몰라도 겉은 평범한 형처럼 나를 대하려고 할 게 분명했다.

하지만 그러지 못 하는 건 나다. 실제로 그날 일을 툭 하면 입에 담는 건 나지, 형이 아니다. 징그럽다고 말하면서 내가 그날 일을 기억하고 있다는 티를 팍팍 냈다.

상혁이 말처럼 눈만 감으면, 침대에 누우면 그날 일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방문을 열었을 때 눈이 마주친 순간 달아오른 얼굴로 거칠게 숨을 내쉬던 형의 얼굴이나 숨소리, 내 이름을 부르던 목소리까지, 사진 속 한 장면처럼 뚜렷하게 각인됐다.

아, 맞다. 연락―.

형 생각을 하자 문자 확인을 안 했다는 사실이 떠올라 핸드폰을 꺼내려는데 상혁이 내 손을 턱 붙잡았다.

“야, 핸드폰 하지 마. 지금 난 우울하니까 너는 날 위로해줄 의무가 있어.”

“웃기시네, 문자 하나만 보낼게.”

“뭐냐, 애인도 없으면서.”

애인 없이도 시집살이는 하는 내 마음을 너같이 태평한 놈이 어떻게 알겠냐.

벗어 놓은 겉옷에서 핸드폰을 꺼내 화면을 본 순간 작게 욕이 나왔다.

형한테 온 부재중 18.

옷을 벗어 놓는 바람에 진동이 울리는 걸 전혀 몰랐다. 아니, 근데 하필이면 십팔이라니, 욕한 건가. 이거 일부러 그런 거 같은데.

전화를 하면 이것저것 물어볼 것 같아서 문자를 보냈다.

[친구랑 술 마셔서 늦어]

전화 온 거 몰랐다는 말을 할까 하다가 기다리라고 한 적은 없었기 때문에 일부러 용건만 보냈다.

문자를 보내고 잠깐 화면을 응시했지만 읽은 게 분명한데 형한테는 답이 없었다. 하긴, 그러고 보면 늘 그렇다. 먼저 문자를 보내고 내가 대답을 하면 더 말하지 않는다.

전에는 좀 더 이것저것 얘기하지 않았나.

“야, 뭐 하는데? 무슨 문자를 눈으로 보내냐?”

상혁의 질타에 핸드폰을 끄고 다시 겉옷 주머니에 넣었다. 순간적으로 연락을 기다린 내가 바보 같이 느껴졌다.

그 뒤로도 상혁이 녀석의 비슷한 푸념을 듣다가 일어났을 때는 시간이 훌쩍 지나있었지만, 워낙 일찍부터 마셨던 터라 늦은 시간은 아니었다.

2차를 가자는 걸 무시하고 술 마셨다는 핑계로 버스가 아닌 택시를 탔다.

아파트 현관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습관처럼 경비 아저씨를 향해 인사하려는데 로비 소파에 앉아 있는 익숙한 인영이 눈에 들어왔다.

소파에서 일어난 기다란 인영은 나를 향해 걸어왔다. 퇴근하고 옷도 갈아입지 않은 것인지 형은 넥타이를 끝까지 올려 맨 상태였다.

형이 걸어오면서 셔츠 소매를 슬쩍 위로 당겨 시계를 확인하는 게 보여 나도 핸드폰을 꺼내 시계를 확인했다.

여덟 시 이십 분. 성인 남자의 귀가 시간치고는 늦은 시간이 아니었다.

카드키를 잊어버렸나? 아니다, 형이 그런 걸 잊을 리 없다. 그러니까 이건 날 기다리고 있던 거 같은데.

언제부터 기다렸던 걸까. 술 마신다고 했는데 왜 여기서 기다린 걸까. 늦는다고 했으니까 그냥 먼저 들어가 있으면 되잖아, 밥은 먹었나? 아, 왜, 사람 신경 쓰이게.

“가자.”

형은 특별한 말을 하지 않고 엘리베이터를 향해 앞장섰다.

특별히 잘못한 게 없는데, 잘못은 내가 아니라 형이 더 크게 했는데, 꼭 내가 죄지은 것 같은 분위기가 마음에 안 들었다.

“그렇게 늦은 것도 아니잖아.”

현관문을 열고 신발을 벗으면서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그래서.”

겉옷을 소파 등받이에 내려놓은 형이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어 내렸다.

“독립했으니까, 좀 자유롭게 살 수도 있는 거지, 뭘 그렇게 잡아먹을 것처럼 구는 건데? 누가 보면 지금이 아침 여덟 시고, 내가 외박한 줄 알겠어, 어떻게 아빠들보다 더 해? 쫓아다니면서 그렇게 잔소리가 하고 싶어?”

술기운에 불만을 주르륵 나열했다. 내가 잘못한 건 없다. 숨 막힐 것 같은 불편함을 형성하는 것도 내가 아니라 형이다.

“잔소리한 적 없어.”

“뭘 잔소리한 적이 없어, 지금 형 얼굴에 잔뜩 쓰여 있는데.”

“뭐라고 쓰여 있는데?”

“밖에서 저녁 먹고 올 거면 먼저 연락해 줄 수 있던 거 아니냐, 술을 마실 거면 적당히 마셨어야지, 상태 보니까 적게 마신 거 같지가 않다, 일방적으로 술 마셔서 늦는다고 하면 몇 시에 올지 모르니 걱정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니냐.”

형이 가졌을 불만을 추측해서 말하자 형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잘 아네.”

짧지만 단호한 대꾸에 입을 꾹 다물었다.

“아는 거 같으니까 더 말하지는 않을게, 근데.”

말하지 않는다면서 뭔가 싶어 고개를 들었다.

“착각하는 거 같아서 말해주는 건데, 보통은 부모님이 집 얻어준 걸 독립이라고 하지 않아. 진짜 독립하고 싶었으면 알아서 돈을 벌어서, 알아서 집을 구했어야지. 넌 아빠들 회사가 당연히 네 거라고 생각해서 그런 생각 한 번도 안 해봤지? 취업도 고민해 본 적 없을 거고.”

머리끝까지 차올랐던 취기가 순식간에 발밑으로 빠져나갔다.

“뭐, 네가 잘못했다는 건 아냐. 태어나면서부터 기득권이니까 그런 사고방식은 당연하지, 그게 알파잖아.”

조롱기가 다분한 끝말에 심장이 쿵쿵 떨렸다.

수긍하고 싶지 않았지만 수긍할 수밖에 없는 말에 입만 벙긋거리는데 형이 매끄럽게 웃었다. 입꼬리가 호선을 그렸지만, 그 미소가 가짜라는 건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뭐야, 지금, 설마 화난 거야?

“뭐라도 마실래? 술 마시면 갈증 나잖아.”

“됐어.”

그런 식으로 몰아붙여 놓고 분위기를 싹 바꿔서 챙겨주는 것처럼 굴면 누가 좋아한다고?

속으로만 씩씩거리면서 방문을 쾅 닫고 침대 위로 떨어졌다.

7

갈증이 느껴져 눈을 떴을 땐 밖에서 들어오는 빛이 하나도 없어 깜깜했다.

형은 아침에 내 방에 들어오면 커튼을 열어서 빛이 들어오게 한다. 그리고 오늘 그 커튼을 내가 다시 친 기억은 없으니 커튼을 쳐 둔 것은 형일 거다.

방에 들어왔었구나.

약간 얼빠진 생각을 하며 몸을 일으켰다. 겉옷도 제대로 안 벗었는데 옷도 벗겨 준 모양이다. 내가 난리를 칠거라 생각해서 그런 것인지 입고 있던 맨투맨 티셔츠와 청바지는 그대로였다.

팔을 뻗어 스탠드를 켜고 핸드폰을 확인하자 열한 시, 그대로 두 시간은 넘게 잤다.

뭔가 마실 생각으로 일어나려는데 침대 헤드 위에 생수 두 병과 주스가 있었다. 컵에 담긴 하얀 주스는 마셔서 확인할 필요도 없이 분명 배다.

입을 대보자 아니나 다를까 직접 갈아 만든 배즙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왔다. 일부러 시원하게 마시라고 사이드 테이블이 아니라 창문 바로 아래 둔 것 같았다.

단숨에 주스를 한 잔 다 비우고 침대에서 발을 내리자 맨발에 장판이 닿았다. 형이 양말도 벗겨 놓았다는 걸 그제야 알았다. 겉옷하고 양말까지는 괜찮을 거라 생각한 건가.

태연한 철면피처럼 굴면서도 내가 화낼 걸 신경 쓰는 것 같은 행동에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싸움이라고 할 수도 없이 내가 당한 것 같은 기분이지만, 주스는 고맙다고 해야 할 것 같아 거실을 지나 형이 사용하는 방으로 걸어갔다.

거실을 기준으로 안쪽 방은 내가, 현관과 가까운 복도 쪽 방은 형이 쓴다.

내가 쓰는 방의 옆방도 있지만 형은 그 방을 사용하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거리를 두고 싶어 하는 내 속을 읽은 것처럼 형은 내가 쓰는 방에서 제일 멀리 떨어진 방을 골랐다. 덕분에 옆방은 그냥 비어 있다.

나중에 아빠들 오면 자는 방 정도로 쓰려나 싶다.

거실을 지나자 형의 방문 틈으로 불빛이 흘러나왔다. 아직 안 자고 있다는 걸 알아서 노크하려다가 지난날의 기억이 떠올라 방문에 귀를 댔다. 심장이 콩닥콩닥 뛰었다.

형이 또 내 이름 부르면서 고추를 흔들고 있으면 어떻게 하지? 이번에는 진짜 화를 낼까? 두 번이면 진짜 빼도 박도 못하잖아. 완벽한 약점으로 삼아서 본가로 돌아가지 않으면 아빠들한테 말할 거라고 협박할까?

하지만 기대와는 다르게 문 너머에서 들리는 소리는 따로 없이 조용했다.

가만히 숨을 죽이고 귀를 쫑긋 세우자 규칙적으로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와 마우스로 클릭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마도 일을 하는 것이리라. 확실히 형은 업무량이 적은 위치가 아니었다. 그런데 매일 같이 칼퇴근을 해서 내 저녁을 챙겼다. 그렇게 침묵 속에서 밥을 먹고 난 뒤에는 늘 이렇게 일을 했던 건가. 집에서 일하는 거 좋아하지 않을 거 같은데.

방 앞에서 몇 분 서 있다가 말을 걸고 싶은 마음이 사라져서 조용히 방으로 돌아와 갈아입을 옷을 챙겨서 욕실로 들어갔다.

아빠들 회사가 당연히 내게 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느냐는 형의 말에 반박할 수 없던 건 사실이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형을 밀어내고 내가 독식할 꿈을 꾸고 있느냐 하면 그건 절대 아니다. 그냥 나와 형이 알아서 적당히 나눠서 받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니면 아빠들처럼 파트너 관계로 일해도 나쁘지 않을 거라고.

아니다, 이건 거짓말이다. 사실 회사는 그냥 내 거라고 생각했다. 경영학을 전공하고 있는 것도 나중에 써먹을 때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였다.

크게 절실한 건 아니었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내 손에 쥐어지게 될 거니까.

근데 형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니, 어쩐지 좀 충격이다.

형은 연구원으로 신약 개발할 수 있으면 만족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마지막 말은 알파를 비웃는 말이었다. 손 댈 수 없는 구제 불능인 것처럼 말하는 어조는 영락없는 비하였다.

오메가라서 열등감이 있는 건가? 아니면 그냥 오메가다 보니까 알파가 싫어진 건가?

아빠도 나랑 파파 말고 다른 알파는 별로 안 좋아하니까. 형도 그 영향을 받은 건지도 모르겠다.

혹시, 그래서 나를 좋아한다고 말한 건가? 다른 알파는 싫어도 동생인 나는 좋으니까. 그래서 나를 좋아한다고―.

샤워기 아래서 물을 맞으면서 한참을 더 생각해 봤지만 뚜렷하게 떠오르는 답은 없었다.

여전히 동생 이름을 부르면서 자위하는 형을 이해할 수 없고, 그런 형을 싫다고 하면서도 같은 집에 사는 나도 이해가 안 됐고, 알파가 싫은 것처럼 비아냥거렸으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내가 좋다고 말하는 형도 납득할 수가 없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정상이 없는 것 같아서 뭐가 어디서부터 꼬인 건지도 알 수 없었다.

다음 날 아침에도 평소와 다를 게 없었다.

형이 아침에 날 깨웠고 조용하게 아침을 먹었고 각자 학교와 회사를 갔다.

[오늘은 늦을 거야, 저녁은 준비해뒀으니까 먹어]

오후에 형이 보낸 문자를 확인하고 알겠다고 답은 보냈지만 굳이 집에 가서 먹을 필요가 있나 싶어졌다.

어차피 형이 없으면 그냥 밖에서 먹어도 상관없을 것 같았는데, 생각만 했을 뿐 아바타처럼 형이 시킨 대로 집에서 저녁을 먹었다.

다음 날에도 그다음 날에도 일이 바빠진 것인지 형이 늦었고 난 혼자 저녁을 먹었다.

혼자 있으면 편할 것 같았는데 꼭 그런 것만도 아니었다. 방에 있는데도 집이 유난히 썰렁하게 느껴졌다. 결국 참지 못하고 TV를 켰다.

TV 소리라도 들리니 덜 외로운 것 같아서 거실에서 노트북으로 과제를 하고 있는데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자 형이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내가 거실에 있을 줄 몰랐던 얼굴이었는데 삼 일 만에 보는 형은 많이 피곤해 보였다.

왔냐 라든지, 저녁 먹었냐 같은 인사말이 머릿속에는 떠올랐지만, 입 밖으로 안 나와서 머뭇거리는데 형이 먼저 입을 열었다.

“밥은 먹었어?”

“어, 응.”

“과제하는 중이야?”

방으로 들어가고 싶었지만 피하는 것 같아서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데 형이 가까이 다가와 노트북 화면을 봤다.

허리를 숙여 소파 등받이 너머로 얼굴을 내민 형과 간격이 순식간에 좁혀져서 숨을 참았다. 은은하게 풍기는 코롱 냄새가 익숙하면서도 어색했다.

“이거, 이지형 교수님 거?”

“어, 어떻게 알아?”

“나도 교수님 강의 들었으니까. 교수님은 이렇게 쓰는 거 싫어하는데.”

형이 노트북 화면을 내리면서 말했다. 잊고 있었는데 형은 나랑 같은 학교, 같은 과를 졸업했다.

“난 이 교수님 강의 처음 들어서.”

“각주는 맨 마지막보다 페이지마다 달아주는 거 좋아하셔.”

“그냥 리포튼데?”

“그래도 성실함의 척도라고 보시니까.”

할아버지 교수님의 얼굴을 떠올리곤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고개를 끄덕였다.

“인터넷 자료보다는 책에서 찾은 자료 더 좋아하고.”

안 그런 교수님이 어디 있겠어.

“출처 밝혀야 하고, 문단도 이렇게 바로 이어지는 거보다 한 줄 띄는 거 좋아하시고.”

“그럼 분량 늘리기 했다고 생각하시는 거 아냐?”

“내용을 보면 분량 늘리려고 한 건지 아닌지 정도는 알지, 교수님 그 강의 벌써 십 년도 넘게 하시는 건데.”

“그런가.”

“내가 썼던 거 보여줄까? 나 교수님 거 다 A이상이었어.”

다른 강의도 그랬을 거면서, 형이 A이하를 받은 적은 아마 없을 거다. 알파가 득실대는 경영학과에서 형은 이례적인 오메가였다.

“리포트도 갖고 있어?”

“아마 찾아보면 있을 거야.”

고민할 필요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형 리포트는 족보 수준이 아니라 정답이나 마찬가진데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기다려봐, 씻고 나올 테니까.”

씻고 나온 형은 거실 바닥에 앉아 노트북을 켜더니 TV를 껐다. 보고 있지 않았는데도 TV를 끄자 아쉬워졌다.

무거운 침묵을 견딜 수 없을 것 같아 그냥 방으로 들어갈까 싶어졌는데 형이 메일로 예전에 쓴 리포트를 넘겨줬다.

메일로 줄 거라면 굳이 거실까지 노트북을 갖고 올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무슨 생각인지 알 수 없어 형을 힐끔거리며 메일로 받은 리포트를 켰다. 형은 처음부터 나와 함께 있을 생각이었던 건지, 그대로 앉아서 일했다.

난 소파에서, 형은 바닥 테이블에서 각자 말없이 노트북 화면만 봤는데 숨이 막힐 것 같은 건 처음뿐이었고 곧 조용한 분위기에 익숙해졌다.

면학 분위기라는 게 있는 걸 증명이라도 하는 것처럼 TV를 켜 놓고 하는 것보다 몇 배는 더 집중이 잘 됐다.

“뭐, 좀 먹을래?”

시계를 보자 열한 시가 넘었다. 한참 집중하던 중이라 시간 가는 걸 몰랐다.

고개를 끄덕이자 형이 토마토 위에 모짜렐라 치즈를 올려서 만든 카프레제에 크래커를 곁들여왔다. 가벼운 야식은 딱 내 취향이었다.

이거 좋아하는 거 기억하고 있었네.

요 몇 년 동안 야식은커녕 한 집에 사는 게 무색할 정도로 밥도 같이 안 먹었기 때문에 형이 내 취향을 기억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코끝이 찡해져서 카프레제를 입에 밀어 넣고 꼭꼭 씹었다. 그러니까, 괜히 이상한 기분이 드는 건 토마토와 치즈가 너무 맛있어서 그런 거다.

야식을 먹고 리포트를 마무리 지었을 때는 새벽 두 시였다.

“과제 제출이 언제까지야?”

“다음 주.”

“급한 것도 아닌데, 늦게 자는 건 안 좋아.”

“시작하면 끝내고 싶잖아.”

어설프게 대충 하는 건 싫다는 의미로 말하고는 노트북을 덮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잘 자라고 말을 할까 말까 고민하다 타이밍을 놓쳐서 그냥 방으로 들어가는데 문을 닫기 직전에 형이 말했다.

“잘 자.”

그 단순한 인사에 그리움 같은 게 훅 밀려와 목구멍이 갑갑해졌다. 전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했던 인산데, 지금은 아니었기 때문에 기분이 너무 이상했다.

거실에서 같이 과제를 하고 간단한 야식을 먹은 뒤 종종 그런 날들이 생겼다.

형과 생활하는 건 내가 그 일을 꺼내지만 않으면 불편한 게 없었다. 처음 말했던 것처럼 가사 전반은 형이 다 알아서 해줬고, 과제도 형이 도와줘서 빨리 끝낼 수 있었다.

일부러 형이 오면 하려고 게임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어디 한 군데 툭 치면 부서질 것 같이 불안정하긴 했지만 나름 평화로웠기에 형과 지내는 방법을 찾았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니까 내가 그날 일만 입에 안 담으면 된다.

8

누가 그랬던가, 벚꽃의 꽃말은 중간고사라고. 참 실없는 소리라고 생각했는데 그거만큼 딱 떨어지는 말도 없는 것 같다.

“신, 시험 잘 봤냐?”

막 마지막 시험을 마친 상혁이 말을 걸어서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뭐야, 그 여유 있는 표정은? 진짜 잘 봤나 보네.”

“그냥, 뭐 나쁘지 않았어.”

거짓말, 사실 엄청 잘 봤다. 공부할 때도 형이 바로 옆에 있어서 잘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을 물어 봤더니 실무에 있는 사람답게 예를 들어 쉽게 설명해줬고, 그 사례들을 적어냈다. 점수를 못 받을 리가 없다.

“그럼 시험도 끝났는데 한잔해.”

“그럴까.”

“어쩐 일로 순순히 대답해?”

그거야 오늘 형도 늦을 거라고 했으니까 굳이 서두를 필요가 없다고나 할까.

“싫으면 말고.”

“아냐, 아냐, 가자. 지난번에 얻어먹었으니까 이번엔 내가 쏜다고 했잖아.”

상혁과 걸어가면서 핸드폰을 꺼내 문자를 보냈다. 지난번처럼 형을 로비에서 기다리게 하고 싶지도 않았고, 그것 때문에 싸우고 싶지도 않았다.

무작정 피하기만 할 땐 몰랐는데 형이 생활을 살펴주는 건 꽤 편했다.

아침에 못 일어날 걱정도 없고, 가사 전반은 물론이고 과제까지 도와주니까. 프로 가사도우미를 써도 이보다 완벽하지는 않을 것이다.

9

“나 계속 사귄다.”

술집에 앉기 무섭게 상혁이 말을 꺼냈다. 주어 없는 말이었지만 바로 알아들었다.

“그냥 덮고 넘어가는 거야?”

“그런 거지, 걔도 반성했고 이젠 안 그런다는 약속도 받았고 나만 덮고 넘어가면 괜찮을 거니까.”

그거 진짜 괜찮은 게 맞아? 순간 의문이 들었지만 당사자가 괜찮다는 마당에 내가 왈가왈부할 일은 아닌 것 같아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좀 비슷하다. 형도 내가 말 안 하면 지금처럼 대할 거니까. 그러면 그걸로 된 거 아닐까. 좋아한다고 해도 어디까지가 진심인지도 모르겠고. 아, 어렵다.

원래도 편하다고 할 수 없었지만 요즘 이런 생각을 하면 속이 꽉 죄어온다.

꼭 아슬아슬하게 가득 찬 물잔 같다. 표면장력으로 꾹꾹 누르고 있지만 한 방울만 떨어져도 위태롭게 쏟아질 것 같은 정체를 알 수 없는 감정이 가득했다.

울렁거리는 속을 달랜다는 핑계로 빠른 속도로 술잔을 비웠다.

“야, 아무리 내가 쏘는 거라지만 너무 많이 마시는 거 아니야?”

“알바비 받았다며.”

“삼촌 가게에서 하는 건데 얼마나 번다고.”

“너 알바, 카페에서 한다고 했나?”

“브런치 가게, 여자 친구도 거기서 만났고. 왜? 너 알바하게? 우리 가게 사람 구하는데 면접 볼래? 넌 얼굴 괜찮으니까―”

시끄럽게 떠드는 상혁일 두고 금방 딴생각에 빠졌다. 아르바이트는 한 번도 해 본 적 없다. 딱히 그걸 해야 할 정도로 돈이 필요하지 않았으니까.

갑자기 형이 진짜 독립을 하고 싶으면 돈을 벌어서 해야 하는 거라고 했던 게 떠올랐다. 언젠가 아빠들 회사에서 일할 거지만, 역시 사회 경험을 미리 해 보는 게 좋으려나.

사회 경험이라고 생각하면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면 형도 그렇게 쉽게 날 무시하는 말은 못 하겠지.

“할래.”

“그래, 그럼 내일 강의 끝나고 가자, 삼촌한테 연락해 둘게. 학교에서도 가깝고 일하는 사람들도 나쁘지 않아.”

고개를 끄덕이는데 테이블에 올려놓았던 핸드폰이 진동했다. 화면에는 [형]이라는 글자가 떠올랐다. 문자도 아닌 전화에 살짝 놀라서 통화 버튼을 급하게 눌렀다.

“여, 보세요?”

― 어디야? 아직 밖이야?

“어.”

― 일 끝났는데, 데리러 갈까?

약간의 텀을 두고 건너오는 목소리에는 거절당할 것을 고려한 기색이 가득했다. 앞에 앉은 상혁이 얼굴을 흘끔 보자 이미 얼큰하게 취한 티가 났다.

“학교 앞에서 봐.”

여기서 집까지 얼마 안 걸리지만 굳이 데리러 온다는 걸 말릴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내일 면접 보러 가기로 하고 상혁과 헤어진 뒤 학교 앞에 도착하자 대학가와는 전혀 안 어울리는 검은색 세단이 눈에 들어왔다.

가까이 다가가 조수석에 올라타자 형이 별말 없이 시동을 걸었다.

“데리러 올 필요까지는 없어.”

“너 지난번에 택시 타고 왔잖아.”

형은 택시가 위험하다고 말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형 차가 안전한 건 맞아?”

어림짐작으로 말을 건네자 형이 긴 한숨을 내쉬었다. 말을 꺼내지 않아서 유지됐던 평화에 금이 가는 소리가 들렸다.

“…나 아르바이트할 거야.”

화제를 전환하기 위해 아직 결정되지 않은 것에 대해 불쑥 말을 꺼내자 형이 눈을 크게 떴다. 신호에 걸려 차가 멈췄기에 망정이지 앞을 제대로 보지 않아서 사고가 났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네가 그걸 왜 해?”

왜 하냐니, 형이 먼저 그런 식으로 말했으면서. 예상치 못한 반대하는 분위기에 기분이 팍 상했다.

“아르바이트가 왜? 설마, 내가 못 할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배우면 나도 할 수 있어.”

“해본 적도 없잖아. 갑자기 왜 하려고 하는 건데?”

“내가 알파여서, 당연히 회사 물려받는 게 싫은 거 아니었어? 사회 경험 좀 미리 하려고 하는 건데, 안 될 이유 없잖아.”

“너―”

형은 반쯤 벌렸던 입을 다물고 정면을 봤다. 신호에 맞춰 차가 출발했고 형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왜 형이 화내는 건지 모르겠어, 그렇게 입 다물지 말고 불만이 있으면 말을 하라고.”

“불만 없어.”

말할 생각이 없어 보이는 대답에 울컥 화가 치밀었다.

“그거, 다행이네. 형이랑 마주치는 거 싫었거든. 생각할수록 징그러워.”

언제나 여유가 넘쳐 보이는 뻔뻔한 얼굴을 일그러트리고 싶어서 요 몇 주간 입에 담지 않았던 말을 입에 담았다.

형의 미간이 좁아지더니 이번엔 아까보다 더 짙은 한숨이 입새에서 새어 나왔다.

“생각을 안 하면 되잖아.”

“어떻게 생각을 안 해? 그런 걸 봤는데, 그거 트라우마야. 형은 나한테 사과도 안 했잖아.”

아파트 입구에서 차가 멈추고 시동이 꺼지자 숨 막히는 침묵이 어깨를 짓눌렀다.

“네가 듣고 싶은 말이 그거야? 내가 미안하다고 하면 돼?”

눈을 똑바로 마주친 채 묻는 말에 숨이 턱 막혔다. 마주쳐 온 시선에 빈틈이 없어서 도망칠 수가 없었다. 갈비뼈가 꽉 조이면서 속이 답답해졌다.

“설령 그렇다고 해도 안 할 거야.”

내 대답을 오래 기다리지 않고 형이 계속 말했다.

“내가, 좋아한다고 했잖아.”

그대로 머리가 터질 것처럼 순식간에 열이 올랐다.

“좋아하긴 뭘 좋아한다는 거야?!”

떼쓰는 어린애처럼 소리를 지르고 형이 붙잡기 전에 차 문을 내리고 현관으로 뛰었다. 어차피 도망칠 곳은 정해져 있음에도 형이 오기 전에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으로 올라왔다.

단순히 화라기보다는 분노에 가까운 감정이 속에서 부글부글 끓었다.

그런 식으로 가볍게 할 말이 아니잖아. 내가 누군지 잊은 거야? 어떻게 그런 말을 그렇게 쉽게 하는 건데? 그렇게 말하는 걸 어떻게 믿냐고.

침대에 엎드려 베개에 여러 번 주먹질을 했지만 이미 가득 찬 분노는 풀리지 않았다.

9

머리가 묵직한 기분이 들어 눈을 떴다. 어제 마신 술 때문에 이러는 건가 싶어 손바닥으로 배를 문지른 순간 몸이 뜨끈뜨끈한 걸 깨달았다.

단순히 감기로 인한 발열이 아니었다. 이불 밖으로 팔을 뻗어 핸드폰으로 시계를 확인했다. 일곱 시 이십 분. 평소 형이 날 깨우는 것보다 훨씬 이른 시간이다.

손가락을 움직여 러트 주기를 확인하는 앱을 켜자 아직 일주일이나 남아 있었다.

씨발, 왜 벌써 시작하고 난리야.

약을 먹어야 한다는 건 알았지만 몸이 무거웠다. 요즘 시험공부 한다고 불규칙적으로 잔 데다 어제 형이랑 싸워서 스트레스를 받은 몸이 예정보다 빠른 러트를 불러일으킨 것 같았다.

손바닥으로 이마를 문지르자 달아오른 몸에서 솟아난 땀이 묻어났다.

한 발 빼고 먹자.

이미 터질 것처럼 발기한 상태였기 때문에 약을 먹어도 괴로울 것이다. 그러면 일단 한 발 빼고 그다음에 약을 먹는 게 훨씬 났다.

러트 주기가 어긋나는 일은 전에도 종종 있던 일이었던 일이기 때문에 놀랄 일은 아니었다.

몸을 옆으로 말고 손을 아래로 내려 성기를 쥐고 가볍게 흔들었다. 꺼덕이는 성기 끝에서 쿠퍼액이 주룩 흘러나와 손바닥을 적셨다.

“하아, 하아….”

평소보다 훨씬 뜨거워진 몸을 시트에 비비며 손을 움직이는 것에 집중했다.

러트가 시작되면 싸고 싶은 욕망만 강해지기 때문에 특별히 뭔가를 상상하지 않아도 온몸이 흥분으로 넘실거렸다.

리드미컬하게 흔들자 금방이라도 사정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탁탁탁탁탁, 살을 치는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눈을 꽉 감고 전신에 힘을 준 순간 방문이 벌컥 열렸다.

형은 보통 여덟 시에 날 깨운다. 분명 시간상 여유가 있기 때문에 시작한 자위였다. 아무리 몰두했다고 해도 벌써 사십 분이나 지났을 리가 없다. 근데 방문이 열렸다.

이불 속에 넣고 있던 얼굴을 빼보자 아니나 다를까 약간은 당황한 얼굴로 형이 날 보고 있었다. 눈이 마주쳐서 손에 힘을 줘 성기를 꽉 움켜쥐었다.

“뭐, 뭐야?”

당황을 숨기기 위해 갈라진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보기 흉한 꼴을 보였다고 생각은 했지만 일부러 당당하게 굴었다. 난 누구처럼 이름을 부르지는 않았으니까.

“아냐, 일찍 일어났네.”

형이 못 본 척 담담하게 물러나는 것에 부아가 치밀었다. 저래 놓고 뭘 좋아한다는 걸까.

지금 내 방에는 페로몬이 깔렸을 거다. 그러면 뭔가 반응을 보여야 하는 거 아닌가? 뭐가 그렇게 당당해서 혼자만 태연한 건데?

“좋아한다며.”

문을 닫으려는 형을 향해 말을 던졌다.

몸을 일으켜 이불을 밀어서 한쪽으로 치우고 바지와 속옷을 훌렁 벗었다.

다리를 벌리자 형 때문에 놀라서 반쯤 죽은 성기가 덜렁거렸다. 형이 난감한 얼굴로 방에 들어오지도 못하고 날 보지도 못 했다.

“나랑 하고 싶었던 거 아냐?”

의도적으로 알파 페로몬을 확 풀자 형이 콧등을 찡그렸다.

“내 이름까지 부르면서 흔들고 있었잖아, 그거 나랑 해 보고 싶었던 거 아니냐고.”

“…트라우마라며.”

형이 손바닥으로 목덜미를 문지르며 조용하게 대꾸했다.

“좋아한다며.”

똑같은 말을 반복하자 형의 얼굴에 그제야 약간의 난감함이 번졌다. 괜히 말했다고 후회를 하는 것인지 아니면 상황을 수습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잘 알 수 없었다.

“요즘도 해? 무슨 생각하면서 그렇게 흔들었어? 나한테 박히는 상상? 형 젖었을 거 아냐, 오메가니까.”

형이 입술을 깨물었다. 그날 이후 늘 뻔뻔하게 능청을 부리던 얼굴에서 감정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나 때문에 형이 확실히 곤란해 하고 있다는 직관적인 사실에 알 수 없는 흥분이 고였다.

이미 벌렸던 다리를 좀 더 넓게 벌리고 손가락으로 고간을 가르쳤다.

“빨고 싶지?”

형의 얼굴이 달라지는 걸 보고 싶다. 천연덕스러운 얼굴로 좋아한다고 말할 게 아니라, 좀 더 다른 종류의 것.

열에 들뜬 머리로 가볍게 요구하자 형이 방문을 닫았다.

“잘 빨면 박아줄게, 오메가는 원래 알파한테 박히고 싶어 하잖아. 형은 징그러운 변태라서 동생한테 박히고 싶어 하는 거 같으니까. 잘 된 거 아냐? 마침 나 러트도 시작할 거 같으니까.”

형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침대 위로 움직였다. 출근하기 위해 입은 슈트가 구겨지는 것도 개의치 않고 내 다리 사이로 올라왔다. 느슨하게 맨 넥타이와 단추를 풀어 놓은 셔츠 틈으로 목덜미가 보였다.

형은 내 얼굴을 보면서 머뭇머뭇 손을 뻗었다. 기다란 손가락으로 성기를 더듬다가 손바닥으로 가볍게 움켜쥐고 위로 잡아당겼다. 단정한 손가락이 성기를 휘감고 있는 것만으로도 아찔한 쾌감이 밀려왔다.

욕이 나올 것 같아 어금니에 힘을 꽉 주고 있자 형이 고개를 숙였다.

선이 얇은 입술 끝에 쿠퍼액이 잔뜩 흘러나온 귀두가 닿았다. 금기를 깨는 생생한 현장을 눈으로 목격하자 심장이 갈비뼈 아래로 뚝 떨어졌다.

짜릿한 감각이 아랫배를 기준으로 몸 전체에 퍼지면서 욱신욱신거렸다.

축축한 점막 안으로 성기가 사라져서 발가락에 힘이 들어갔다. 천장을 향해 나른한 숨을 뱉었다.

어차피 형은 일반 오메가라 본격적으로 페로몬을 풀어도 내가 이길 수 있다. 상황 봐서 아니다 싶으면 페로몬 풀고 도망가면 그만이다.

입술을 오물거리면서 조심스럽게 빠는 것에 감질맛이 났다.

“형, 별로 경험 없어? 그렇게 빨면 지각하겠어.”

가벼운 조소와 함께 비아냥거리자 형이 눈동자만 굴려 날 보더니 성기를 쭉 빨아들였다. 그전까지 망설이며 조심스럽게 움직였던 게 거짓말인 것처럼 형이 입을 크게 벌려 완전히 삼켜버렸다.

목구멍까지 완전히 열고 성기를 세게 빨아들이는 힘에 엉덩이에 바짝 힘이 들어갔다. 음낭을 주무르며 형이 내 성기를 게걸스럽게 츕츕 소리를 내며 빨았다. 쿠퍼액과 타액이 잔뜩 묻은 성기가 형의 입 안에서 미끌거렸다.

도발은 했지만 이런 태도를 보일 줄은 몰라서 시트를 손으로 꽉 움켜쥐었다. 사정하고 싶은 욕구가 켜켜이 쌓이면서 벌벌 떨렸다.

“크읏, 그만, 해….”

꼼짝없이 형 입에 쌀 것 같아서 뒤통수를 붙잡아 떼려고 하자 형이 고개를 들고 내 성기를 꽉 잡았다. 분출을 코앞에 둔 성기가 씰룩거렸다.

숨을 쌕쌕 몰아쉬며 놓아달라는 말을 하려는 순간 형이 느슨하게 매고 있던 넥타이를 빠르게 풀었다.

뭐 하는 것인지 인식하기도 전에 탱탱하게 발기한 뿌리 끝에 넥타이가 감겼다.

“읏, 뭐 하는 거야.”

“빨아보라며, 빨아보고 싶었거든.”

형이 눈 끝에 주름이 잡힐 정도로 진하게 웃었다. 그러더니 허벅지를 확 벌려 손바닥으로 꽉 누르더니 사타구니에 고개를 처박았다.

성기를 핥을 때보다 훨씬 아래 처박혀서 얼굴도 제대로 안 보였다. 몰캉거리는 혀가 정액이 꽉 찬 불알을 핥았다. 혀끝으로 톡톡 건드렸다가 입술로 세게 빨아서 허리가 절로 떠올랐다. 정액을 토하고 싶은 귀두가 새빨갛게 부풀었다.

형이 불알을 입에 넣고 굴렸다가 빼고 다시 혀로 할짝이며 잔뜩 침칠을 했다. 불알을 혀로 괴롭힘 당할수록 성기의 핏줄이 툭툭 튀어 올랐다. 넥타이를 풀어서 해방되고 싶은 욕구가 강해졌다.

손을 아래로 내려 넥타이 매듭을 풀려고 한 순간 귀신같이 알아차린 형이 손을 붙잡았다.

“빨아 보라고, 한 건 너잖아.”

한 번 뱉은 말에 책임을 지라는 것 같은 눈빛이었다.

빨아 보라고 했지, 이렇게 묶으라고는 안 했다고!

욕지기가 치밀었지만 형의 혀가 상상도 못 한 곳에 닿아서 입만 벙긋거렸다.

회음부를 혓바닥으로 꾹꾹 눌렀다가 길게 핥아 올리는 감촉은 꼭 뱀이 기어 다니는 것 같았다. 가벼운 소름이 돋아 온몸을 부르르 떨자 형이 혀끝을 뾰족하게 세워 회음부를 집요하게 건드렸다. 숨이 턱 밑까지 차올라 몸이 파르르 떨렸다.

이제까지 성경험이 없던 건 아니다. 하지만 상대는 무조건 베타였다. 오메가랑 하면 무슨 문제가 생길지 모르니까.

학교 선배한테 동정을 뗐고, 휴가 나왔을 때 친구들이랑 이름도 모르는 사람을 꼬셔서 원나잇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중 누구도 거길 핥아준 적은 없었다. 아니, 보통 알파의 거길 누가 빠냐고!

이성은 물론이고 동성도 안 할 짓인데 그걸 형이 하고 있었다.

회음부에 키스 마크라도 남길 것처럼 연신 빨아대던 형이 혀끝으로 문지르다 점점 아래로 움직였다.

“흐아, 하지, 하윽…!”

큰 소리가 튀어나와 손바닥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내 입에서 나온 소리는 포르노에 등장하는 오메가와 같았다.

문제는 그들은 연기였을 그 소리가 내 목구멍에서는 진심으로 터져 나왔다는 사실이다.

입에서 손을 떼면 듣고 싶지 않은 소리가 나올 것 같아서 다리를 버둥거렸다. 어떻게든 벗어나려고 했지만 형이 우악스럽게 허벅지를 잡아 눌러서 무리였다.

“알파는 진짜 안 젖는구나.”

엉덩이 아래를 빤히 보며 너무도 당연한 소릴 주절거리는 형의 얼굴은 열이 올라 살짝 붉어졌을 뿐 표정은 다를 게 없었다.

붉은 혀가 길게 빠져나와 엉덩이 사이를 쑥 핥았다. 충격적인 감각에 동공이 절로 확장됐다. 허리가 붕 떠올랐다.

형이 고개를 처박아서 잘빠진 콧날이 회음부를 눌렀다. 혀끝이 구멍 틈을 억지로 벌리고 들어왔고, 입구가 타액으로 완전히 축축하게 젖어 들었다.

형체가 불분명한 혀는 입구 주변을 노닐었다. 더 깊게 들어오지는 않았지만 위화감은 충분했다.

입구 주변 주름 개수를 세듯이 섬세하게 움직이는 혀가 야릇한 쾌감을 형성했다. 꺼덕이는 성기가 사정하고 싶어서 고통을 호소했다. 발가락에 힘을 줘 시트를 꽉 쥐었다.

“으, 그만, 흣….”

손바닥으로 입을 틀어막은 채 웅얼웅얼 말하자 형이 고개를 들었다. 입가에 쿠퍼액과 타액이 묻은 얼굴이 너무 야했다. 완벽한 수컷의 얼굴이었다.

형은 저런데 나 혼자만 정신을 못 차리고 흥분한 게 짜증났다. 이번에도 사정을 막으면 얼굴을 한 대 갈겨 줄 생각을 하며 넥타이 끝을 잡은 순간 지익, 지퍼 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난 방향으로 고개를 들자 형이 입술을 할짝였다.

“빠는 것만 하려고 했는데, 안 되겠어.”

“뭐, 뭘 하려고….”

설마 싶어 엉덩이를 뒤로 빼는데 형이 내 어깨를 붙잡아 침대 위로 눌렀다.

“하아, 비비기만 할게.”

도망치려는 내 몸을 꼭 붙들고 형이 다정하게 말하더니 다리를 확 벌리며 자세를 잡았다. 마주친 새까만 눈동자에 욕정의 불꽃이 튀어 올랐다. 원하는 바가 뚜렷한 그 눈빛에 압도당했다.

바지춤에서 성기를 꺼낸 형이 넥타이를 풀었다. 막혔던 혈관이 뚫린 기분이 들어 그대로 쌀 것 같았다.

형의 얼굴을 보면서 사정하는 것만큼은 피하고 싶어 눈을 꾹 감는데 성기가 붙잡혔다. 형은 커다란 손으로 성기 두 개를 손에 꽉 쥐고 허리를 흔들었다.

“아, 흐읍.”

한 손으로 입을 막고 한 손은 형의 어깨를 붙잡았다. 밀어내려고 했던 건데 형의 허리 움직임이 빨라지자 매달리는 자세가 만들어졌다.

벌어진 다리 사이로 형이 움직였다. 허벅지 안쪽으로 단단한 허리가 들락거렸다. 그저 비비고 있는 것뿐인데 진짜 섹스라도 하는 것 같은 자세에 눈앞이 노래졌다.

무엇보다 이건, 꼭 형이 나한테 박는 것 같은 자세여서 더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아, 으응.”

손가락까지 깨물면서 참아 보려고 했지만 입에서 터져 나오는 신음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핏줄까지 발기한 성기가 손바닥에 감싸이고 형의 성기에 쓸리면서 짜릿한 쾌감을 선사했다. 욱신욱신 달콤하게 퍼지는 쾌감이 척추를 타고 올라와 후두부를 강타했다.

분명 내가 알판데 왜 내가 아래서 이런 기분을―.

불만이 차오르는 것도 잠시 형이 허리를 빠르게 흔들어서 눈앞이 흐려졌다. 강렬한 쾌감에 엉덩이가 씰룩거렸다.

“아, 으읍….”

큰 소리를 낼 것 같아 손가락을 콱 깨문 순간 형이 성기를 놓아줬다.

내내 붙잡혀 있던 성기가 해방감을 분출했다. 원래도 사정 액이 많은데 형의 것이랑 섞여서 훨씬 더 많은 양이 줄줄 쏟아졌다.

형이 거친 숨을 쏟아내며 바짝 긴장했던 몸에서 힘을 빼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반쯤 넋이 나간 채로 흥건하게 젖은 배를 보는데 형이 내가 물고 있던 손가락을 잡아당겼다. 세게 물어서 잇자국이 그대로 남은 손을 보더니 형이 입술로 꾹 눌렀다.

닿은 곳이 심장이라도 된 것처럼 요동을 쳤다.

“…뭐 하는 거야?!”

퍼뜩 정신을 차리고 손을 빼내자 형은 내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사이드 테이블 위에서 티슈를 몇 장 뽑아 아래를 닦아 주고 이마를 손바닥으로 짚었다.

“심하진 않네, 러트 완전히 시작한 건 아닌 거지?”

기미가 있을 뿐이다. 진짜 시작했다면 이 정도에서 멈출 수 있을 리가 없다.

“물 갖다 줄 테니까 약 먹어.”

형이 눈짓으로 약이 있는 서랍을 가리켰다. 그리고는 휴지를 더 꺼내 자신의 아래도 스스로 정리하고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금방이라도 덮칠 것처럼 굴었으면서 또 아무렇지도 않아 보이는 형을 씩씩거리며 노려보자 형이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네가 해보라고 한 거잖아. 왜 당한 것 같은 얼굴을 하는 건데.”

“그런 것까지 하라고는 안 했어.”

“…그럼 어디까지 해도 됐던 건데.”

정확히 말하지 않은 내 잘못이라고 하는 것 같았다.

알파를 그런 식으로 만지는 오메가가 어디 있어? 아니, 그보다 형제끼리 이런 걸 했으면 좀 민망해 하는 척이라도 해야 되는 거 아냐?

“됐으니까 나가.”

형은 더 말하지 않고 방에서 나갔다.

내가 먼저 시켜 놓고 이런 태도를 보이는 게 일방적인 심술이라는 건 알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안 그러면 형이 만진 곳이 또 금방이라도 발기할 것 같았다.

조금, 진짜 조금 곤란하게 해 줄 심산이었는데 내가 더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휴지로만 닦아서 아직 끈적한 기운이 남아 있는 아랫배를 손바닥으로 문질렀다. 내 것이 아니라 남의 정액이 몸에 묻는 건 처음이었다. 그것도 내 거랑 완전히 섞여서.

손바닥으로 정수리를 북북 문지르는데 방문이 열리고 형이 다시 들어왔다.

“그렇게 있으면 지각한다, 씻고 아침 먹어.”

형은 물이 담긴 컵을 테이블 위에 두고 바로 나갔다.

완전히 평소 모드로 돌아온 모습에 한숨이 나왔다. 어떻게 온오프가 저렇게 빠를 수 있는 걸까.

나는 아직도 아랫배 안쪽에 열기가 고여있는 것 같은데, 형은 담담해 보였다. 무릎을 세워 가슴 쪽으로 끌어안고 그대로 얼굴을 묻었다.

형이 핥았던 구멍이 달콤하게 떨렸다. 나는 분명 알판데, 형이 내 위로 올라왔을 때 그대로 엉덩이가 뚫리는 줄 알았다. 완전히 발기한 형의 중심이 그대로 내 안에 들어올 것 같았다.

형이 내 위에서 허리를 흔들 때 쾌감으로 완전히 흐려진 머릿속에서,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할 음란한 망상을 했다.

가랑이 사이에 달린 것이 주인의 의지를 반하고 또 대가리를 쳐들 것 같아 한숨이 나왔다.

하, 이거 무슨 전염병인가? 형 때문에 나도 이상해진 거 아냐? 그렇게 징그럽다고 혐오하듯 굴었으면서.

“미쳤냐고, 진짜―”

알아줄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속이 답답해서 들으라는 듯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10

“그럼 언제부터 일할 수 있어?”

상혁일 따라 면접을 본 가게 사장님은 인상이 너무 좋았다.

사장님은 상혁이 삼촌으로 50대 아저씨였다. 그는 젊은 시절 해외여행 다니면서 먹어본 음식들을 모티프로 요리를 만들고 있다고 했다.

“오늘부터도 할 수 있어요.”

형 얼굴을 보지 않기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시간을 할애할 수 있었다.

“시험 끝나서 여유 있거든요.”

“그래? 그럼 잘됐네, 아홉 시까지 해주고, 다음 주부터는 시프트 짜 줄게.”

“네, 알겠습니다.”

옆에 있던 상혁이 잘 됐다는 의미로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근데 형이 허락해줬네.”

“어?”

“너 전에 우리 집에 며칠 있을 때도 그렇고, 술 마시는데도 데리러 올 정도니까 과보호가 심한 거 같았거든. 알바 같은 거 한다고 하면 반대할 줄 알았지, 너 돈이 궁한 것도 아니니까.”

라커룸에서 앞치마 매는 법을 알려주며 상혁이 말했다. 앞치마는 목에 걸어서 허리에 묶는 검은색 베스트 형식으로 된 것으로 왼쪽 가슴에 가게 로고가 박혀 있었다. 보통은 그 아래 명찰을 다는 것 같은데 오늘 막 출근한 내 명찰은 당연히 없었다.

“너도 돈 필요해서 하는 거 아니잖아.”

상혁이네 집은 프랜차이즈 외식 사업을 하기 때문에 학비나 생활비를 벌기 위해 필사적으로 알바를 해야 하는 건 아니다.

“우리 집은 용돈 대신 여기서 일하라고 했으니까. 반쯤 어쩔 수 없는 거지. 근데 넌 내내 안 했잖아. 형이 반대해서 그런 줄 알았어.”

역시, 부모님의 교육 방식일 줄 알았다.

“형은, 별로 상관없어.”

일단 문자로 오늘부터 아르바이트한다고 보냈지만 장소는 말하지 않았다. 형이 가게에 찾아오기라도 하면 곤란할 것 같았다.

“상주 직원은 우리 삼촌 포함해서 네 명, 그리고 아르바이트생이 네 명인데 알바는 시간대가 달라서 못 볼 수도 있어, 근데 오늘은 다 나오는 날이니까 얼굴은 볼 수 있겠다.”

상혁이 벽에 붙은 스케줄 표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낮에 짧게 일하는 것도 가능해?”

“어, 은근히 손님이 꾸준히 있거든. 점심 때는 브런치 먹는 사람들, 오후는 차 마시는 사람들, 저녁엔 밥 먹으면서 와인 마시는 사람들. 이렇게 있으니까.”

상혁인 까불거리지 않고 제법 진지하게 가게에서 판매하는 메뉴는 물론이고 손님이 왔을 때 인사 멘트와 테이블에 나가야 하는 것들을 알려줬다.

생전 처음 하는 아르바이트였기 때문에 그저 배우는 것에 급급해서 시간이 훅훅 지나갔고 일이 끝났을 때는 녹초였다.

세 시간 연강을 듣는 것보다 훨씬 힘들었다. 오래 서 있어 본 적이 없어서 다리도 불편했고 바른 자세를 의식적으로 유지하려고 했기 때문에 등허리도 당겼다.

“갈게.”

마감까지 일해야 한다는 상혁일 두고 가게 밖으로 나왔을 때는 깜깜했다.

택시를 타고 갈까 하는 유혹이 가볍게 일었지만 그런 습관을 바꾸지 않으면 일하는 의미가 없었다.

핸드폰을 꺼내 보자 형한테는 아무 연락이 없었다. 알바를 반대하는 기색이었으니 뭐라고 한마디쯤 하지 않았을까 싶었는데 예상이 완전히 빗나갔다.

아파트 현관에 도착했을 때는 살짝 긴장했다. 그 언젠가처럼 형이 로비에서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닐까 싶었지만 형은 로비에 없었다.

맥이 탁 빠져서 한숨을 쉬며 엘리베이터 앞에 섰을 때 마침 1층으로 내려온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한쪽에 비켜서서 바닥을 본 채 사람이 내리길 기다리는데 안에 탄 사람은 아무런 미동도 없었다. 뭔가 싶어 고개를 들자 형이 검은 고수머리를 손바닥으로 쓸어 올린 채 날 바라봤다.

“일은, 할 만 했어?”

“어.”

엘리베이터에 타서 어디 가려던 중이냐고 물으려다 형이 버튼 누르는 걸 물끄러미 바라봤다.

“로비에서 기다릴 생각이었어?”

“아니, 데리러 가려고 했어.”

“어디서 일하는지 모르잖아.”

“전화하려고 했지.”

형이 핸드폰을 흔들어 보였다. 내가 안 받을 거라고는 생각 안 하는 건가.

“형은 좀 과보호야.”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서 상혁이한테 들은 말을 그대로 옮겼다. 만나면 도망가고 싶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덤덤하게 말이 나왔다.

“좋아하니까, 걱정하는 건 당연하잖아.”

형이 먼저 집안으로 들어서며 조용하게 대꾸했다. 듣고 싶지 않은데 같은 말을 계속 들으니 이제는 더 참기가 어려웠다. 현관에 서서 형을 빤히 바라봤다.

“그 좋아한다는 말, 별로 믿을 수가 없어.”

“어?”

“좋아한다는 게, 그런 의미야? 이성을 좋아한다는, 그거랑 같은 의미야?”

한번 말 해보라는 의미로 따지듯이 물었다. 언제까지 나만 휘둘리는 건 적성에 안 맞는다. 이건 진짜 아니잖아.

“…그게 아니면, 너한테 그런 거 안 했어.”

확실히 그건 맞는 말이다. 물론 나도 형한테 반응하긴 했지만 그건 물리적 자극이 있었으니까. 남자로서 어쩔 수 없는 불가항력이었다.

“네가 싫어하니까 참아 보려고 했는데, 막을 수가 없어.”

본인도 어쩌지 못하겠다는 듯 중얼거리며 형이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었다.

아침에 내게 묶었던 것과는 다른 넥타이인데도 속이 울렁거렸다. 약을 먹어서 발정기 기운을 눌렀는데도 몸이 뜨거워질 것 같다.

“솔직히 말하면, 안고 싶어.”

형이 어딘가 절실한 눈빛으로 날 바라봤다. 외면하려고 했던 진심이 손에 잡힐 것처럼 확실하게 형태가 느껴져서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안고 싶다고? 안기고 싶은 게 아니라? 내가 알판데?

하고 싶은 말이 어지럽게 혀끝을 맴돌았지만, 어떤 말도 쉽게 나오지 않았다.

내 방에서 형이 자위를 한 걸 처음 봤을 때는 내가 알파고 형이 오메가니까 단순히 발정기 증상의 일부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지 않으면 내 얼굴을 보고 태연한 게 말이 안 되니까.

나를 좋아한다는 말도 단순히 형제로서 좋아한다는 건지, 진짜 좋아한다는 건지 헷갈렸다.

형제로 좋아하니까 그런 실수를 저질렀어도 나를 내버려 둘 수 없다는 건지, 나를 좋아하니까 자위를 한 건지. 뭐가 뭔지 하나도 알 수 없는데 형은 혼자 태연했고 천연덕스러웠다.

그런데 지금 형은 진심으로 동생인 나한테 욕정 한다고, 솔직하게 말하고 있다. 진짜 까딱하면 순식간에 잡아먹힐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형이 자위하는 걸 본 순간 내가 우위에 선 줄 알았는데 왜 자꾸 내가 궁지에 몰리는 기분이 드는 걸까.

“나는, 아니야.”

최대한 무뚝뚝하게 말을 뱉고 형을 지나쳐 방으로 들어와 짧게 심호흡을 했다.

나를 뚫어지게 보던 형의 눈동자는 분명 진심이었다.

손바닥으로 입을 가렸다. 웃음이 새어 나올 것 같아서 꾹 참아야 했다.

모르고 싶었던 마음을 마주하자 아슬아슬하게 넘치지 않았던 것이 흘러넘칠 것 같다.

11

“아침이야.”

부드러운 어조에 눈을 뜨자 형이 침대 가에 서 있었다.

최근 알게 된 건데, 형은 보통 일곱 시 반쯤 내 방에 들어와서 내 얼굴을 보다가 여덟 시쯤 나를 부른다.

자는 얼굴 보는 게 뭐가 좋다고. 그냥 묵묵히 보고 있다. 만지는 것도 아니고 시선만 보내다가 시간이 되면 날 부른다.

며칠 전 그런 대화를 했다고 해서 우리 사이에 변화가 생긴 건 아니었다. 형이 나를 그런 눈으로 보면서 좋아한다고 해도 내가 해 줄 수 있는 건 없었다.

애초에 형제끼리 뭘 어떻게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지 않나. 보답 받지 못할 마음이라는 걸 알면서도 시작한 건 형이다.

쉽게 말하면 난 그 마음에 응해줄 필요도 없고 책임질 필요도 없다.

형 입장에선 내가 징그럽게 여기면서 피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기뻐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래서 그런지 형은 아침에 날 깨울 때도 내 몸에 닿지 않으려고 신경 써서 목소리 크기만 키워 가면서 날 부른다. 만지면 싫어할 거라고 생각해서 그런 거라는 걸 안다. 날 배려해 준 거라는 걸 아는데 그게 미치겠다.

형은 수도승같이 깔끔하고 단정한 움직임으로 나한테 손끝 하나 대지 않았다. 그날 아침에 날 보던 눈빛이 완전히 거짓말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그런 모습을 보니까 왠지 미치겠다.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 아래쪽에서는 나를 원하고 있다는 걸 알아서, 그런 가벼운 상상만으로도 호흡이 거칠어졌다.

기미가 보이자마자 약을 먹어서 러트를 눌렀다. 몸에 감도는 열 같은 건 있을 리가 없는데 요즘엔 침대에 누워 있으면 그날 일이 떠올랐다.

그나마 밤이면 나은데 몸이 뜨거워지면서 발정하는 건 언제나 아침이다. 형이 방에 들어오기 직전, 혹은 형이 방에 들어와 내 얼굴을 바라볼 때마다 가랑이 사이가 천박하게 불끈거렸다.

진짜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단순히 성기가 불끈거리는 거라면 오메가에 대한 정복욕으로 넘길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보다 좀 더 깊은 곳이 욱신거려서 괴로웠다.

“일어났어?”

나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린 순간 내 얼굴을 보고 있던 형이 담담하게 물었다. 어쩌면 처음 방에 들어왔을 때부터 내가 일어나 있다는 걸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어.”

하반신에 달라붙은 열기를 무시하며 몸을 일으켰다. 그러면서도 이불이 하반신 아래로 내려가지 않도록 힘을 줘서 붙잡았다.

씻고 나오자 식탁에는 달걀 프라이와 소시지, 베이컨과 토스트가 한 접시에 담겨 있었다. 프라이를 토스트 위에 올려 함께 베어 물자 형이 우유를 따라서 내 앞에 내밀었다.

“알바는 언제까지 할 거야? 기말고사 기간에도 할 거야?”

알바 시작한지 한 달, 이제야 일이 좀 익숙해졌는데 그만 둘 생각은 전혀 없었다.

“당연하지, 금방 그만둘 거였으면 시작도 안 했어, 소개받은 건데 그렇게 그만두면 안 되는 거잖아.”

형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포기했다기보다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해도 좋다고 여기는 것 같았다.

뭐랄까. 나한테 미움 받지 않으려고 하는 것 같아서 어딘가 애처로웠다.

오메가여도 한없이 강하고 아름답기만 한 형이 나를 신경 쓰고, 나에게 신경을 곤두세우는 건 짜릿한 기분이 들어서 묘한 중독성까지 있었다.

나를 좋아하는 형, 그래서 나한테 미움 받지 않으려고 하는 형.

너무 안타깝지만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없다.

“그리고 돈도 필요하고.”

“돈이 왜 필요해?”

“여자 친구 생길 거 같아.”

나이프로 소시지를 자르던 형이 손을 우뚝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반응이 올 거라고 생각해서 지어낸 말인데 이렇게 노골적인 반응을 보이자 입꼬리가 씰룩거렸다.

형의 다양한 반응이 보고 싶다. 아니, 사실 유치하게도 그냥 형이 언제까지, 어디까지 나를 좋아할지 확인하고 싶다.

받아주지도 않을 거면서 이런 마음을 가지는 게 나쁘다는 건 알지만, 나쁜 걸로 따지면 형이 더 하다.

그러니까 왜 피 섞인 친동생한테 욕정 하냐고.

“생길 거 같은 건 뭐야. 네 착각이야?”

“아냐, 상혁이한테 나 마음에 든다고 했다고 하니까 조만간 고백하지 않을까.”

“같이 일하는 애야?”

“어.”

“사귈 거야?”

“안 될 이유는 없잖아.”

“안 좋아하잖아.”

“사귀다 보면 좋아질 수도 있지, 여자는 귀여우니까.”

일부러 형은 절대 될 수 없는 ‘여자는’이라는 단어에 힘을 줬다. 상처에 소금을 뿌릴만한 말을 하자 형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릇엔 아직 손도 대지 않은 음식이 태반이었다.

“오늘 설거지는 네가 해.”

형은 조금도 나랑 같이 있고 싶지 않은 사람처럼 움직였다.

당황스럽고 화도 나고 그러면서 동시에 내가 여자 친구 사귀는 걸 반대할 수 없다고 생각해서 그런 것 같았다.

아, 이런 것도 알파의 종족 특성인 걸까. 형이 처음으로 오메가 같이 느껴졌다. 어딘가 가냘프고 갸륵해서 알파의 보호를 받아야 할 것 같은 오메가.

“여자 친구 사귀게 되면 소개해 줘.”

먼저 준비를 마친 형이 현관으로 향하면서 무뚝뚝한 목소리로 말했다. 진심으로 원해서 저런 말을 하는 것인지, 아니면 단순한 오기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형이 신경 쓰는 것만은 확실해서 기분이 좋아졌다.

여자 친구는 무슨, 괜히 이상한 사람하고 엉켰다가 나중에 경영하는 데 흠이라도 잡히면 어쩌려고.

그리고 지금은 여자보다 친동생을 좋아하는 형한테 훨씬 더 관심이 간다.

형, 형은 얼마만큼 나를 좋아할 수 있어?

12

“오늘 일 왜 쉬어?”

강의 끝나고 가방을 챙기는데 상혁이 다가왔다.

“병원 가는 날.”

“아, 검사?”

“어, 정기 검진.”

“진짜 고달픈 인생이야.”

상혁이 저랑 아무 상관도 없는 것처럼 말했지만, 그러는 저도 검사 받으러 다니는 알파였다.

최근에는 상혁이 왜 바람피운 여자 친구를 용서해 준 것인지 조금 알 것 같다. 그 여자가 상혁이랑 완전히 헤어질 게 아니라 계속 사귄다면 둘의 관계에서 언제나 상혁이 우위에 있을 것이다.

일부러 약점을 삼으려고 한 게 아니더라도 알파가 할 만한 짓이다. 치졸하면서도 확실하게 도망치지 못하게 만들기.

나 역시 형한테 약간은 그런 걸 느끼니까. 내가 싫다고 백 번 말해도 형은 나한테 화내지 못할 것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 관계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는 건 절대 손해가 아니다.

알파라면 위에 있어야지. 그러니까 형이 나를 안는 일은 아마 없을 것이다. 다리 벌리는 알파라니, 생각도 하기 싫다.

13

예약 환자여서 오래 걸리지 않고 진료를 마친 다음 집에 왔을 때, 형은 저녁을 만들고 있었다.

코를 킁킁거려보자 매콤한 냄새가 나는 제육볶음으로 내가 좋아하는 반찬이었다. 평소에도 자주 해주지만 병원에 다녀온 날에는 100% 고기반찬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걸로 일부러 형이 해준다는 걸 이제는 확실히 알지만 그런 건 고맙다고 일일이 말하기에는 너무 당연한 일이었다.

“병원에서 뭐래?”

식탁에 앉자 앞치마를 풀고 맞은편에 앉으며 형이 물었다.

“뭘 뭐래, 그냥 똑같지.”

“그래, 별일 없으면 됐지.”

밥을 먹은 다음 피곤한 기분이 들어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가 심한 갈증이 느껴져서 눈을 떴다.

목이 타들어 가는 것 같아 어두운 방 안을 더듬어 스탠드 불을 켰다. 저녁 먹었던 게 짰나 싶었지만 곧 단순한 갈증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지난달엔 스트레스 때문이라 그랬다지만 이번엔 또 왜 이러는 건데.

손도 대지 않은 중심이 터질 것처럼 발기해서 바지를 밀어내고 있었다.

욕구가 강하게 치밀어 올라 바지 속으로 손을 밀어 넣자 형이 빨아주던 감각이 선명하게 되살아나 등골이 오싹해졌다.

가랑이 사이를 침 범벅으로 만들면서 차마 남에게 말하지 못할 곳까지 샅샅이 빨리던 감각은 처음이었던 만큼 강렬했다.

“씹, 진짜― 짜증나게.”

욕을 짓씹으며 미친놈처럼 고추를 흔드는데 형이 내 몸을 더듬고, 핥고 비비던 감촉이 떠올랐다. 생각하면 안 된다고 마음속에서 외쳐봤지만 점점 더 선명해졌고, 배덕감이 밀려와 턱이 덜덜 떨렸다.

“하, 하아….”

이대로는 형을 떠올리면서 쌀 것 같아 축축하게 젖은 고간에서 억지로 손을 떼고 서랍을 열어 허겁지겁 약을 먹었다.

물도 없이 알약 두 개를 깨물어 먹고 머리끝까지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웠다.

곧 괜찮아 질 거라고, 약을 먹었으니 가라앉을 거라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형을 생각하면서 싸는 건 안 하고 싶다. 그런 짓을 하면 매번 싫다고, 징그럽다고 하면서 형을 무시했던 게 우스워지니까. 절대 하면 안 된다.

이불을 꽉 쥐고 몸에 쌓이는 열을 견디고 있는데 방문이 벌컥 열렸다.

“뭐야, 왜 들어오는 건, 데?”

화를 내고 싶었지만 떨리는 목소리에 힘이 하나도 안 들어갔다. 약 먹은 지 벌써 꽤 지난 것 같은데 상태는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이불을 쥐고 있던 손이 다 축축했다.

“너, 페로몬 지금 엄청 나와.”

“약 먹었으니까, 괜찮아질 거야.”

코를 틀어막고 말하는 형에게 나가라는 의미로 손을 흔들었지만 형은 반대로 행동했다.

가까이 다가온 형이 내 뺨을 쓸어내렸다. 접촉을 피하던 사람답지 않게 당연한 것처럼 만져 오는 손이 시원해서 나도 모르게 뺨을 기댔다.

“약, 먹었어?”

테이블 위에 떨어져 있는 약 껍데기를 보고 형이 물어서 고개를 끄덕였다.

“두 개나 먹었어?”

형이 싱긋 웃으면서 물어서 뱅뱅 도는 눈알을 굴렸다. 러트가 온 것 같아서 약을 먹었는데 왜 웃는 걸까.

“도와줄까?”

“…싫어.”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번에 도와주면 형은 저번처럼 문지르는 데서 끝내지 않을 것이다.

내가 알판데, 그건 아니잖아.

“너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 하는 거 같은데.”

형이 침대 위로 올라오며 이불을 걷었지만 형 말처럼 몸에 힘이 안 들어가서 제대로 된 반항도 할 수 없었다.

“하지 마.”

사타구니를 더듬는 손길을 피하며 턱을 딱딱 부딪쳤다.

“내가 안 하면 그 여자한테 갈 거 아냐?”

“무슨, 소리야.”

형이 가까이 다가오자 기억 속에 있던 페로몬이 현실에서 느껴졌다. 아주 오래전 형이 내 방에서 자위하는 걸 봤던 날, 그때 맡았던 그 단내가 은은하게 내 주변을 감돌았다. 좆이 터질 것처럼 부풀었다.

좆을 비비던 날에는 이런 냄새가 안 났었는데, 왜 지금은―.

“걱정했는데, 다행이다.”

“뭐, 뭐가.”

“페로몬에 반응 안 할까 봐.”

일부러 내 앞에서는 페로몬을 누르고 있었다는 거야?

말을 다 이해하기도 전에 형의 손이 팬티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왔다. 이미 축축하게 젖은 성기에 형의 손이 달라붙었다. 벗어나지 못하도록 옭아매는 손길이 오싹오싹했다.

“싫어, 하지, 마… 흣.”

입으로는 싫다고 했지만 몇 번 만져 주지도 않았는데 정액이 터져 나왔다. 주르륵 쏟아지는 액은 쓸데없이 양은 많아서 형 손을 타고 다리 사이로 흘러내렸다.

헉헉거리면서 숨을 고르는데 형이 단숨에 내 하의를 벗겨 버렸다. 벗어 던진 옷가지가 침대 밖으로 떨어지는 소리에 숨 막힐 것 같은 긴장감이 감돌았다.

형이 다리를 벌리려고 해서 덜덜 떨리는 몸에 힘을 꽉 줬다. 힐끗 내려다본 형의 앞섶도 내 거랑 다를 게 없어서 벌어지면 안 된다는 생각에 필사적으로 막았다.

진짜 꼼짝없이 당할 것 같아 자제하고 있던 페로몬을 확 풀었다. 갑자기 터져 버린 러트 때문에 평소보다 강한 향이 짙게 깔렸다.

페로몬 폭력이라고 불리는 일이라 이렇게까지 하고 싶지 않았지만 지금 형을 누를 방법은 이것밖에 없었다. 그냥 일반 알파와 오메가라면 알파 페로몬이 우세할 수밖에 없다.

자세의 반등을 꾀하며 형의 어깨를 힘을 주어 밀었지만, 조금 뒤로 밀리는 것 같았던 형은 이내 원래 자리로 돌아왔다.

당황한 얼굴로 형을 봤다. 뭐야, 설마 페로몬이 안 통하는 거야?

마주친 눈동자가 탁하게 풀리더니 지독할 정도로 독한 냄새가 날 덮쳤다. 한 번도 맡아본 적 없는 진한 냄새에 반응한 성기 끝에서 정액이 질질 흘러나왔다.

오메가 페로몬, 그것도 그냥 오메가가 아니라 알파를 잡아 삼킬 것 같은 우성 오메가 페로몬이었다.

“이, 이거, 뭐….”

형이 머리를 길게 쓸어 넘기더니 느른하게 웃었다. 야살스러운 미소에 아랫배가 꽉 조여들었다.

“그러니까, 신아. 형한테 관심 좀 갖지 그랬어.”

말도 안 돼, 우성이라니, 그런 말 한 적 없잖아. 아니, 아니었잖아.

혼란이 정리되기 전에 형이 다리 사이로 깊게 손을 밀어 넣고 엉덩이 사이를 중지로 꾸욱 눌렀다.

“걱정하지 마, 아무한테도 말 안 할게.”

“…….”

“알파는 원래 페로몬에 약하니까. 넌 페로몬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형의 입술이 뺨에 닿았다가 귓가로 다가왔다.

“형한테 따먹히는 거야.”

놀라서 아무 말도 못 하는 사이 다리가 벌어졌다. 냄새에 취해 딱딱하게 발기한 성기를 형이 아무 거부감 없이 한입 가득 물고는 길게 빨아올려서 허리가 파르르 떨렸다.

발끝이 오므라들고 아랫배가 뜨거워지면서 눈앞이 깜박였다. 싸고 싶은 욕구가 강하게 차올라 형 입에 대고 허리를 흔들었다.

탁탁 소리를 내며 성기를 깊게 밀어 넣자 형이 웃는 느낌이 들었다. 내 반응을 보려는 것인지 형은 더 이상 빨아주지 않고 그대로 물고만 있었다.

축축한 점막에 싸인 성기가 꿈틀거렸다.

“아흐, 하지, 마, 하….”

입을 벌리자 갈무리하지 못한 타액이 주룩 쏟아졌다. 하지 말라고 하면서도 허리 움직이는 걸 멈출 수가 없었다.

시트를 움켜쥐고 있던 손을 움직여 형 뒤통수를 움켜쥐고 허리를 퍽퍽 쳐올리자 형이 입술을 동그랗게 말아 내 중심을 쪽쪽 빨았다.

“아, 아, 흐읏.”

목젖을 찌를 정도로 깊게 박아 넣은 채 허리를 부르르 떨었다. 이미 세 번째 싸는데도 정액이 줄줄 터졌다. 목구멍 깊숙이 쏟아낸 정액을 목울대를 움직여 삼킨 형은 성기를 샅샅이 핥았다.

포르노 같은 데서 보면 나오는 청소를 직접 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성기가 다시 불끈거렸다. 형이 내뿜는 페로몬이 너무 독해서, 독한데 또 너무 좋아서 죽었던 것이 다시 살아났다.

이런 식으로 유혹적인 페로몬은 처음이었다. 어디든 좋으니까 깊게 박아서 허리를 흔들고 정액을 마음껏 터트리고 싶었다.

눈꺼풀을 밀어 올리자 눈이 마주쳤다.

“알파, 정액은 진짜 많네.”

형이 입가를 닦더니 다시 다리 사이에 손을 뻗었다.

“아, 하으. 거기, 안 젖어.”

메마른 구멍 입구를 더듬는 손을 밀어내려 했지만 허리에 힘이 빠져서 자꾸만 헛손질을 반복했다.

“알아, 전에 확인했잖아.”

“못, 넣어….”

넣을 수 없다고 말했지만 형은 부드럽게 웃더니 바지와 팬티를 벗어 던졌다. 설마 그냥 이대로 넣을 생각인가 싶어 몸을 뒤로 빼는데 형이 내 허리를 붙잡았다.

“신아, 걱정하지 마. 넌 안 나와도 형은 많이 나오니까.”

형이 스스로 제 엉덩이 사이를 만진 다음 흥건하게 젖은 손바닥을 펼쳐 보였다. 축축하게 젖은 액에서 음탕한 냄새가 잔뜩 피어올라 아래가 화끈거렸다.

손바닥에 묻은 액을 내 엉덩이 사이에 바르는 손길에 망설임이라고는 전혀 없었다.

“그렇게 엉덩이가 젖었으면, 그냥 내가 박으면 되잖아, 왜 이렇게, 하는 건데.”

어차피 할 거면 차라리 내가 박는 게 낫지, 왜 오메가면서 자꾸 박으려고 하는 건데.

“왜긴, 네가 형한테 싸서 임신이라도 하면 어떻게 해.”

평소와 다를 게 없는 말투였지만 목소리에 실린 끈적한 열기는 숨기지 못했다.

“그러니까, 정말 그렇게 싫으면 한번 참아봐.”

형의 애액이 치덕치덕 발린 엉덩이 사이에 매끈한 중지가 파고들었다.

“아, 하윽….”

축축한 손가락이 내벽을 둥글게 휘저었다. 아랫배 전체를 들쑤시는 감각에 골이 딩딩 울렸다.

손가락으로 점막을 긁어내듯 움직이던 형이 셔츠를 밀어 올리고 유두를 이로 깨물었다.

“읏, 그런데, 하지, 마, 하.”

“왜, 네가 안았던 여자들한테는 했을 거 아냐, 걔들이 좋아하지 않았어?”

질투가 드러나는 말투는 어딘가 뾰족했다.

“새로 사귈 여자 친구한테도 해 줄 생각이었지?”

“아, 하으, 니야. 그런 거, 없어.”

필사적인 마음으로 솔직하게 말했지만 형은 아무런 대꾸도 없었다.

형이 유두를 잘근잘근 깨물다가 유륜을 혓바닥으로 핥자 허리가 징징 울렸다. 엉덩이 사이를 들쑤시는 손가락에 맞춰 유두가 빨리자 눈앞이 핑핑 돌았다.

참아보라고 했지만 참을 수 있는 쾌감이 아니었다. 아래에 삽입된 것이 기분 나빠야 하는데 손가락이 일정한 박자를 띠기 시작하자 야릇한 쾌감이 빠른 속도로 전신에 퍼졌다.

“하, 아읏, 형….”

양쪽 유두를 쪽쪽 빨던 형이 고개를 들었다.

“또 이렇게 섰네.”

손가락으로 딱딱하게 발기한 성기를 툭 치더니 형이 갈비뼈를 핥으면서 고개를 내렸다. 배꼽을 혀끝으로 꾹 누르고 혀가 성기 기둥을 진득하게 핥아 올렸다.

“하, 흐읏.”

손가락이 하나 더 들어오는 느낌이 들었지만, 이미 잔뜩 흥분한 상태였기에 처음과는 다르게 아무런 이물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눈가에 열이 오르면서 눈물이 쏟아졌다.

“하, 흐으… 싸고 싶어, 쌀래.”

어린애처럼 조르면서 형 머리로 손을 뻗으려는 순간 형이 매정하게 입을 뗐다. 뜨끈하게 감싸던 열기가 사라지자 허공에서 좆이 흔들렸다.

손가락까지 빠져나가서 코앞에 몰려왔던 절정이 쑥 가라앉았다. 사그라지는 감각을 쫓듯이 멍청하게 허리를 흔들었다.

“안 돼.”

단호하게 말한 형은 등이 보이도록 내 허리 위로 올라오더니 질척하게 젖은 엉덩이 사이를 손가락으로 문질렀다.

배 위로 애액이 뚝뚝 떨어지는 감각이 소름 끼쳐서 온몸이 떨렸다.

형은 그대로 주저앉아 내 다리를 더 벌리고 손가락을 밀어 넣었다. 아까보다 훨씬 두꺼운 걸로 봤을 때 세 개는 들어온 것 같았다.

“신아, 하아, 장액이라도 좀 쏟아봐, 너무 좁잖아.”

그걸 내가 쏟고 싶다고 쏟을 수 있는 거야? 말 같은 소리를 좀 하라고 하고 싶은데 생각과 다르게 앓는 신음만 쏟아졌다.

손가락이 안쪽으로 들어와 점막을 비비면서 느릿하게 빠져나갔다. 길을 내는 것 같은 움직임이 이상하면서도 아랫배가 달콤하게 욱신거렸다.

“아, 하아, 혀, 으응….”

“응, 이제 좀 풀리네, 괜찮아.”

쑤걱쑤걱, 손가락이 드나드는 소리가 음탕함을 품었다. 온몸을 저릿하게 만드는 페로몬에 꼼짝도 할 수가 없어 거친 숨을 내쉬었다.

“쌀래, 이제, 흣, 이상, 해….”

허리를 들썩이며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성기를 만지려고 하자 형이 내 손을 막고 뿌리를 꽉 조였다.

쾌감을 주려는 움직임이 아니라 명백히 사정을 방해하는 움직임에 어느새 고인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철이 든 다음부터는 남 앞에서 운 적이 없다. 알파는 그래야 한다고, 무의식적으로 계속 교육받았기 때문에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은데 이미 막을 수가 없었다.

굴욕적인데 형이니까 괜찮을 거라는 안일한 마음이 동시에 내 속에서 고개를 들었다.

손가락 세 개가 여유롭게 드나들 수 있을 때까지 아래를 휘젓던 형이 내 위에서 내려갔다. 뭐가 뭔지 알 수가 없어 눈알을 빙빙 굴리는데 형의 어깨에 다리가 걸쳐졌다.

수치심이 확 몰려왔지만 손가락으로 한창 희롱당한 구멍 입구에 뜨겁게 달아오른 살덩이가 닿자 기절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누가 만지는 것도 아닌데 구멍이 절로 벌름거렸다.

“아, 하으….”

형 말처럼 그래도 내가 넣어서 임신 걱정하는 것보다는 나을지도 모르겠다.

한 번이면, 아무한테도 말 안 하면, 나만 입 다물면, 예전에 내가 형이 자위하는 걸 봤던 때처럼 아무 일 없던 것처럼 넘어갈 수 있지 않을까.

입구에 걸쳐진 살덩이가 구멍을 벌리면서 밀고 들어왔다. 불에 덴 것처럼 달아올라 목이 뒤로 넘어갔다. 형은 그대로 허리를 쭈욱 내려 뿌리까지 성기를 박아 버렸다.

“하, 하윽, 흐으읏…!”

경련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몸을 파르르 떨었다.

“신아, 징그럽다고 하더니 형한테 박혀서 싼 거야?”

정액을 토해내는 성기를 볼 수가 없어 팔로 얼굴을 가리자 형이 이마에 입술을 눌렀다.

“박혀서 싸는 거 보니까, 여자는 못 안겠어. 여자 친구한테 실례잖아, 알파 자존심에 박아 달라고 할 수도 없고.”

“하읏, 아니, 야.”

“아니야? 이렇게 찌를 때마다 질질 흘리는데?”

형이 보여주려는 것처럼 허리를 슬렁슬렁 흔들어 안쪽을 가볍게 쿡쿡 찔렀다. 안쪽이 찔릴 때마다 진짜 고장이라도 난 것처럼 성기 끝에서 좆물이 퓻퓻 튀어 올라 입술을 깨물었다.

“왜, 그렇게 말해, 흑… 나 처음인데, 뒤는 처음인데… 못 됐어, 나한테 왜, 흐읍….”

이미 터진 눈물에 서러움이 더해지자 감정이 줄줄 쏟아졌다. 어리광 부리듯 형의 어깨를 가볍게 주먹으로 때렸다.

“…미안, 알겠으니까 울지 마, 네가 여자 친구 사귄다는 거짓말을 하니까 좀 심술 났어.”

뭐야, 거짓말인 거 알고 있었어?

“이제 부드럽게 할 테니까.”

형이 귓가에 다정하게 속삭이더니 안쪽까지 밀어 넣었던 성기를 주르륵 빼냈다가 다시 밀어붙였다.

매끄럽게 쑤셔 박히는 성기가 퍽퍽 소리를 내며 움직여서 눈앞이 알록달록 물들었다. 뭐가 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한 쾌감이 뇌를 점령했다.

“아, 하읏, 흐응… 안, 돼, 그마… 하응, 아읏.”

어느 순간부터 교성을 참지 못 하고 내자 형이 귀엽다는 듯 목덜미 여기저기에 키스했다. 상체를 바짝 밀어붙여서 형의 팔을 꽉 붙잡았다. 그거라도 잡지 않으면 어딘가로 떠밀려 갈 것 같았다.

“하, 아으응.”

“또 갈 것 같아? 하룻밤에 몇 번을 싸는 거야?”

“아냐, 흣, 하앗…!”

말이 무색하게 또 사정해 버렸다.

“신아, 형 자지로 너무 잘 느낀다. 귀엽게.”

귓불을 깨물면서 속삭이는 말에 등줄기가 오싹 떨리면서 중심에 또 힘이 들어갔다.

“하아, 진짜, 좋아….”

형이 상체를 일으켜 세우고 골반을 붙잡더니 지금까지 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허리를 흔들었다. 형의 애액인지 아니면 진짜 장액이라도 흘러나온 건지 아래에서 젖은 소리가 잔뜩 울렸다.

“아, 하응, 흣.”

붙잡힌 골반이 뜨거워 허리를 뒤틀었다.

“신아, 안으로 느끼는 거야? 안쪽 움찔움찔대는 데?”

“으, 아니, 아응….”

“자꾸 아니라고만 하면, 아까처럼 화낼지도 몰라.”

웃으면서 하는 말이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 진심으로 느껴지는 말에 아랫구멍이 꽈악하고 수축했다.

형 고추에 점막이 완전히 달라붙었다. 깊게 연결된 것이 고스란히 느껴져 허리가 둥글게 휘며 떠올랐다.

“아, 하응, 형… 하읏, 형, 그만, 거기… 하응, 이상, 해… 나, 이상해 져….”

울먹거렸지만 형은 안쪽을 꾹 누른 채 잘게 흔들었다. 넘실거리는 쾌감에 허우적거리다가 형의 팔을 꽉 붙잡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동시에 안쪽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끈적한 점액질이 느껴졌다.

내벽을 온통 적시는 것도 모자라 밖으로 흘러나올 정도로 많은 양이었다. 나보다 더 많이 싸는 것 같았다.

뭐가, 이렇게 많아? 우성 오메가는 원래 정액 양이 많은가?

아니다, 종족 번식 욕구가 강한 건 알파다, 당연히 알파의 정액이 오메가보다 많을 수밖에 없다. 근데 형은 아니었다. 너무 많아서 입으로 새어 나오는 게 아닐까 싶었다.

뒤로 형의 정자를 받으면서 허리를 튕기는데 사정을 끝낸 좆이 아플 정도로 부풀었다.

“하, 아읏….”

귀두구가 갓난아이 주먹처럼 부푼 것을 보고 입을 틀어막았다. 움직이고 싶지 않은데 꼭 삽입이라도 한 것처럼 스스로 허리를 흔들었다.

“씨를 받는데도, 노팅이라니 역시 알파네.”

형이 손을 뻗어 아프게 부푼 귀두를 손바닥으로 꽉 붙잡았다.

“아흐, 형, 그만, 하읏.”

“노팅 중일 때 알파는 스무 배 정도 더 예민하다고 하던데, 지금 흔들면 어떻게 될까?”

“하, 하지 마… 진짜, 하면, 나, 흣, 죽어….”

“안 죽어.”

“이상해, 질, 거 같단, 말이야.”

어린애처럼 말끝을 늘이며 졸라봤지만 형의 눈빛에 서린 욕정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신아, 너 이미 이상해.”

형은 잔인할 정도로 예쁘게 웃으면서 다시 허리를 흔들었다.

14

사람의 정신력은 약한 것 같으면서도 강해서, 의외로 별것 아닌 것에 쉽게 절망하고 극복하기를 반복한다.

내가 처음 절망한 것은 열 살, 형질 검사 결과에서 오메가 판정을 받았을 때다. 믿을 수 없었고 믿고 싶지 않았다. 알파 일줄 알았기 때문에 검사 결과는 당연히 충격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단숨에 내 인생이 불행해진 건 아니다. 그저 짧은 절망을 맛 봤고, 변할 수 없다면 적응하면 된다고 여겼다.

두 번째 절망은 그로부터 4년 뒤, 열네 살에 찾아왔다.

알파 확정 표시가 찍힌 검사표를 신이 갖고 왔을 때 울고 싶었다. 내가 닿을 수 없을 곳으로 신이 가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속이 울렁거렸다.

신이 오메가일 확률은 처음부터 없었다. 내가 보기에 신은 알파였는데 아버지들은 신이 오메가일 것 같다고 했다.

내가 틀렸고 아버지들이 맞길 바랐다. 아니, 그냥 최소한 베타만 돼도 좋을 것 같았는데 야속하게도 예상된 결과는 조금도 엇나가지 않았고 신은 알파였다.

처음에는 신이 동생이라는 것이 좋았다. 형제라는 사실은 무슨 짓을 해도 변하지 않을 단단한 결속이었으니까. 축복이었다. 평생 곁에 있을 수 있으니까.

하지만 알파 확정 도장이 찍힌 검사지를 본 순간 축복이라고 여겼던 형제라는 인연이 족쇄가 됐다.

원래 사람은 가질 수 없는 것에 더 열망하지 않나?

신을 갖고 싶었다. 강한 알파로 성장할 신이 내 옆에서 내 보호를 받으면서 쭉 있기를 바랐다.

신에 대한 내 감정은 어느 순간 집착의 방향을 띠었고, 혈기 왕성한 남성에게 있어 소유와 독점욕의 방향은 성욕으로 점철됐다.

자위하다 들켰을 때 망했다, 이제 신이 얼굴을 못 볼지도 모른다는 마음과 어차피 평생 숨기지 못했을 거다, 언젠가 걸렸을 거라면 차라리 잘 됐다는 마음이 딱 반반이었다.

친구 집에 있던 신을 데리러 갔을 때 날 무시했다면, 말조차 섞지 않았다면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신은 싫다고, 징그럽다고 하면서도 내 눈을 피하지 않았다. 내 얼굴을 똑바로 마주 봤다.

신이 그 일을 입에 담지 않았다면 물 흐르듯이 없던 일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신은 가끔 내게 일부러 상처 주는 말을 해서 관심을 끌려고 하는 것 같기도 했다.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신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면 포기할 수 없었다.

아니, 인간이 느끼는 절망은 모두 극복할 수 있을 정도의 것이라고 배웠고 경험했기 때문에 포기하지 않았다.

연구원으로 아버지들 회사에 입사 이후 비밀리에 형질을 변환하는 약을 연구했다. 그 과정에서 만들어진 페로몬 억제제가 히트했지만 내 입장에서 그건 실패였다.

내가 만들고 싶었던 건 오메가를 알파로 바꾸는 약이었다. 확률적으로 오메가를 베타로 바꾸는 것보다 훨씬 더 가능성이 낮은 신기루 같은 약이었다.

하지만 신이 알파니까, 알파를 가질 수 있으려면 최소한 대등한 알파여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내가 알파가 돼서 동생을 어떻게 해보려고.

남들에게는 말할 수 없는 비밀을 가진 채 연구했다. 공개 연구가 아니었기 때문에 임상시험은 당연히 불가했다.

난 스스로 약을 먹으면서 테스트했다.

그리고 1년 전, 세 번째 절망을 맛 봤다.

알파가 되고 싶어서 먹었던 약은 처음엔 성공인 줄 알았다. 정액의 양이 눈에 띄게 늘었고, 평균 알파보다 많은 양을 싸기 시작했으며 페로몬이 공격적으로 변했다.

이 상태면 우성 알파가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개발 단계인 약을 과용했고, 결과는 대실패였다. 단순한 실패였다면 그나마 다행인데 빌어먹을 부작용을 갖고 왔다.

뒤가 젖는 건 오메가와 다를 게 없는데 정액의 양은 여전히 우성 알파 못지않게 나와서, 정상이 아니었다. 겉으로는 멀쩡했으나 내 형질은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게 됐다.

이상해진 몸으로 할 수 있는 게 없을 것 같아서, 절망을 느꼈지만 신을 포기할 마음은 조금도 안 들었다.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이젠 그냥 직진밖에 없다.

독립하는 신을 돌본다는 이유로 아버지들을 설득해서 같이 나왔고 내 손이 닿지 않으면 아무것도 못 하도록 착실하게 길들였다.

신은 알파인데도 막내라는 위치 때문인지 어리광이 심했다. 어릴 때부터 그랬고, 그건 철저하게 내가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둘이 살면 기회는 언젠가 올 것이고, 기회가 오지 않으면 만들면 된다.

어설프던 경계가 완전히 풀렸을 때, 내 마음을 듣고 나를 떠보듯이 시험하는 신을 더 보고 있을 필요가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렇게 내 마음을 번번이 확인해 보는 건 결국 내게 사랑 받고 싶다는 거잖아.

신은 내가 형이라는 것보다 자신이 알파라는 걸 더 신경 쓰고 있으니까, 알파여도 안길 수 있다는 걸 알려주면 된다.

저녁을 먹은 신이 잠자리에 들었을 때, 병원에서 받아온 약과 내가 만든 약을 바꿔치기 했다.

겉만 봐서는 똑같은 약이지만 성분은 정반대였다. 병원에서 받아온 약은 억제제, 내가 신의 서랍에 넣어둔 약은 유도제였다.

약을 바꿔놓고 오메가 페로몬을 살짝 흘려 놓고 방에서 나왔다.

잠들어 있는 동안 오메가 페로몬을 마신 몸이 발정할 건 뻔했다.

신이 깨기를 기다리면서 거실에서 일하고 있는데 한 시간쯤 지났을 때부터 방에서 강한 알파 향이 흘러나왔다.

타이밍을 재다 문을 열었고, 결과는―.

“아, 하읏, 형….”

다리를 활짝 벌린 채 우는 소리를 내는 신의 뺨을 손바닥으로 어루만졌다. 정액을 잔뜩 싸 놓은 구멍 안에서 성기가 미끌거렸다. 거세게 허리짓을 하지 않아도 욕심 부리는 것처럼 신이 안쪽을 조였다.

“말해, 어떻게 해줄까?”

“몰라, 흣, 모르겠, 어… 하읏.”

“모르면 어떻게 해?”

촉촉해진 눈가로 올려다보는 신을 간헐적으로 찌를 때마다 점막이 날 빨아들였다.

허리를 깊이 숙이자 달콤한 냄새가 목덜미에서부터 피어올랐다. 헐떡거리는 숨결 속에도 단내가 짙게 배어 나와 숨을 집어삼킬 것처럼 깊게 들이켜자 신이 허리를 부들거렸다.

자연스럽게 깊어진 결합을 이기지 못하고 쾌감의 심연으로 뚝 떨어졌다. 축 늘어진 몸을 끌어안고 허리를 몇 번 더 움직였다.

흐물흐물해진 내벽이 알파의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가 없어 미치도록 마음에 들었다.

실신했는데도 성욕이 강한 탓에 움직일 때마다 솔직한 반응을 보였다.

몸속에 있는 열기를 토해내듯 한 번 더 사정하고 느릿하게 빠져나왔다. 성기 끝에 하얗고 끈적한 액이 주르륵 딸려 나와 엉덩이 사이에 흘러내렸다.

골반에 부딪혀 빨갛게 자국이 남은 엉덩이를 주무르다 입술을 쓱쓱 핥고 이마를 시작으로 몸 여기저기에 키스했다.

내 흔적이 잔뜩 새겨진 몸을 꼭 끌어안자 신이 작은 목소리로 “형….” 하고 불렀다.

처음 내가 신을 갖고 싶다고 생각했을 때와 조금도 달라지지 않은 목소리에 아슬아슬한 감정이 복받쳤다.

포기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내 동생, 나의 신.

15

“약 먹어.”

씻고 나오자 형이 덤덤한 얼굴로 컵과 약을 내밀었다.

약을 먹고 났을 때 몸에 더 열이 올랐던 게 떠올라 머뭇거리자 형이 캡슐 포장을 뜯어서 내 손에 올려놨다.

“일시적으로 가라앉은 거니까, 지금 먹어둬. 아니면―”

“됐어.”

‘한 번 더 할래?’라고 물을 것 같아 목덜미를 향해 뻗어 나온 형의 손을 매정하게 밀어냈다.

내 안을 강하게 후빈 지 한 시간도 안 지났는데 형이 또 평소와 다를 게 없어서 짜증이 치밀었다.

없던 일로 넘기는 게 좋을 거라고 은연중에 생각했음에도 막상 형의 아무렇지도 않은 태도가 마음에 안 들었다.

도대체 형은 어떻게 할 생각인 걸까.

약을 먹고 물 컵을 다시 돌려주자 형이 컵을 받았다.

“한숨 더 자, 그다음에 상태 보고 병원을 갈지 말지 결정하자.”

대답하지 않고 방으로 들어왔다. 아직도 속이 뜨겁고 엉덩이 사이에 뭐가 들어있는 것 같다.

설마 섹스하다 실신할 줄은 생각도 못 했다. 그런 경우가 있다고 들은 적은 있지만 경험한 적은 없었다. 알파는 기본 체력이 좋은 편이니 당연히 그럴 수밖에.

오메가들은 매번 그런 느낌으로 섹스하는 걸까.

“진짜, 멍청해질 것 같아.”

갈라진 목소리로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침대에 푹 떨어지자 풀썩거리는 침구 사이로 달달한 냄새가 풍겼다.

더러워진 시트와 이불을 형이 새 걸로 갈아 놓았는데도 방 안에 밴 냄새가 다 빠지지 않아서 몸을 움직일 때마다 향이 느껴졌다.

이게 뭐야, 진짜.

손바닥으로 화끈거리는 얼굴을 문지르며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일시적으로 가라앉았다는 말은 거짓말이 아닌지 몸이 뜨거워지지는 않았지만 기억이 너무 선명했다.

내 안에 들어왔던 뜨거운 중심과 오메가라고 하기에는 너무 많았던 정액의 양, 맡으면 까무러칠 것 같은 진한 페로몬까지.

본능만 내세운 형이 온몸으로 나를 원하고 있어서 진짜, 잡아먹히는 것 같았다.

기절했다가 일어났을 때는 욕조였다. 형이 옮겨 준 거라는 걸 알아서 이루 말할 수 없이 자존심이 상했다.

내가 알판데, 왜 내가 오메가한테 당해야 되는 거야.

억울한 기분이 들어 눈을 꾹 감고 머리를 흔들었다. 아니다, 차라리 잘 됐다. 형 말처럼 오메가 안에 쌌다가 임신이라도 해버리면 그건 더 난감한 일이 발생할 거니까.

형이 애라도 가졌으면 어떻게 하려고. 형이라면 분명히 태연한 얼굴로 ‘낳을 거야.’라고 말할 것 같으니까.

그런 위험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형이 나한테 하는 게― 아니, 이게 아니잖아. 형제끼리 섹스가 말이 되는 거냐고.

단순히 형이 자위하는 걸 봤을 때보다 더 큰 문제다.

나를 좋아한다고 하는 건 형의 일방적인 감정이라고 치부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잖아.

그렇게 좋다고 헐떡거리고 형한테 매달렸는데.

실신했을 때 기억까지 잃었다면 좋았을 것인데 야속하게 마지막까지 다 기억이 났다.

형이 좋다고 속삭여 줄 때마다 몸에 가벼운 전율이 일었다. 다리는 활짝 벌렸고 구멍은 음란하게 조여 대면서 형을 불렀다.

내 목에서 나온 소리라고 인정하고 싶지 않은 끈적한 목소리였다.

욕조에서 안에 들어 있는 걸 빼기 위해 엉덩이 사이에 손가락을 밀어 넣었을 때 나오는 건 별로 없었다. 내가 잠든 사이 형이 다 빼준 것이리라.

뒤처리까지 그렇게 해주면, 진짜 내가 오메가 같잖아.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형 얼굴을 봐도 되는 건가. 이 일도 그냥 말 안 하면 없던 일로 넘길 수 있는 걸까? 이렇게 몸이 기억하는데?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어 복부를 문질렀다. 배꼽 아래서 맥동하던 게 떠올라 입술을 꾹 깨물었다.

더 생각하면 뇌에 쥐가 날 것 같아 억지로 생각을 멈추고 잠을 청했다.

16

몸을 함락시키면 쉽게 항복할 줄 알았는데, 역시 신은 알파였다.

비어버린 방안을 보고 턱을 매만졌다.

벌써 일주일, 신의 얼굴을 제대로 본 적이 없다.

최근 일주일 동안 신은 철저하게 날 피했다. 새벽같이 학교에 갔고 늦게까지 알바를 했다.

집에 안 들어오는 것은 아니었지만, 필사적으로 피하는 걸 보니 얼굴을 보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제 풀에 지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어제 새벽에 방문이 잠긴 걸 확인하고 나니 이젠 슬슬 한계다.

신이 일방적으로 날 무시했을 때도 방문을 잠근 적은 없었다. 내가 방에 들어올 것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게 분명했다.

이십 년이 넘게 기다려서 이제 손에 넣을 수 있게 됐는데, 그냥 둘 수는 없다. 도망치려고 한다면 스스로 나한테 오게 할 수밖에.

17

“여자 친구라도 사귀는 거야?”

발끝에 힘을 주고 현관을 지나는데 거실에서 들린 소리에 화들짝 놀라 움직임을 멈췄다.

형이 날 보지도 않은 채 거실 소파에 앉아 있었다. 벽에 걸린 시계를 보자 열두 시 오 분. 아르바이트 가게 마감을 하고 왔더니 이 시간이다.

대답을 안 하고 있자 형이 천천히 소파에서 일어났다.

“왜 대답을 안 해? 그런 거야?”

형의 표정은 온화했지만 까만 눈동자에는 아무런 감정이 없어서 무슨 생각인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형이랑 상관없잖아.”

일부러 당당한 척 굴었지만 긴장을 완전히 숨길 수 없었다. 형 얼굴을 보면 이럴 줄 알았다.

형과 섹스한 감촉이 아무리 씻어도 지워지지 않아서, 또 마주치면 어떻게 될 것 같아서 피하고 싶었다.

형은 단순히 사고라고, 자위를 들켰던 것처럼 없던 일로 하면서 넘어갈 수 있을지 몰라도 난 아니었다.

아니, 이쯤 되니 형의 좋아한다는 말이 내가 생각하는 것과 다른 방향인가 싶어졌다. 그렇게 생각하자 발판이 없는 곳에 서 있는 것처럼 발밑이 불안해져서, 내내 눌러놓았던 무언가가 터질 것 같았다.

도망치고 싶은데 도망칠 수도 없어서 피하고만 있었는데 이렇게 딱 붙잡히자 숨 쉬는 것도 괴로웠다.

“상관없어?”

형이 성큼 다가와 코앞에서 내 말을 따라 했다.

발끝이 닿을 정도로 거리가 가까워서 뒷걸음질 치자 형이 딱 그만큼 내 앞으로 다가왔다. 다시 반걸음 물러서자 뒤꿈치에 벽이 닿았다.

퇴로가 없다는 걸 자각하고 주먹을 꽉 쥐었다.

“뭐야, 왜 이러는 건데?”

“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뭐?”

“이렇게 늦은 시간에 다니는 거 위험해, 내 얼굴 보기 싫어서 그러는 거지?”

대화의 흐름이 바뀌어서 눈을 깜박였다. 이렇게 정공법으로 물어오니 할 말이 없었다. 싫은 게 아니라 그냥 좀 어려운 거라고 말을 하고 싶은데 입이 잘 안 움직였다.

“내가 너한테 간섭하는 것도 싫은 거고.”

“그건, 형이….”

“알았어, 이제 안 할게. 그러니까 이렇게 늦게 다니지 마. 집에 일주일에 한 번은 전화하고. 아빠 심심해하니까.”

“…어?”

“짐은 천천히 뺄게, 많지도 않으니까, 그 정도는 괜찮지?”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형…?”

“원래 더 같이 있고 싶었지만 네가 이렇게까지 불편해하면―”

“형 때문이잖아!”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상황을 정리하는 형을 향해 버럭 소리를 질렀다.

형이 무슨 소리냐는 의미로 눈을 깜박였다.

“형이, 나한테, 그런 거, 해서, 그런 거잖아. 내가 싫어하는 게 아니라… 형이 잘못한 거잖아. 왜 내가 못된 것처럼 그렇게 말하는 건데, 내가 그런 게 아니잖아…!”

울고 싶지 않은데 댐이 터진 것처럼 물이 흘러나왔다. 표면장력의 한계를 시험하듯이 억지로 눌러놓았던 것이 결국에는 흘러넘쳤다.

내가 우위에 있는 것처럼 굴었지만 처음부터 내가 약자였다.

언제부터였는지 몰라도 나는 분명 형을 좋아했다. 아마 내가 먼저 좋아하지 않았을까?

제대로 자각하지도 못한 마음을 꽁꽁 숨기고 있었는데, 내 방에서 자위를 하고 그것도 모자라서 태연하게 구는 형을 보고 조바심이 났다.

내가 우위인 척 여유를 부렸지만 그건 모두 내가 스스로에게 하는 거짓말이었다.

진짜 싫었으면 형한테서 벗어날 방법은 얼마든지 있었다.

아빠들한테 말을 하는 방법도 있고 형이랑 아예 말을 섞지 않으면 됐다. 둘이 같이 살 걸 알면서 어쩔 수 없다는 듯 따라 나온 건 나였다.

“형은, 좋아한다고 말만 그렇게 하고… 맨날 아무렇지도 않았잖아, 흡…. 여유 있고, 이상한 건 나만 그렇고, 근데 집에 간다는 소리나 하고… 도대체 나보고 어떻게 하라고! 형제끼리, 그러는 거 이상한 거잖아…!”

짜증과 답답함에 훌쩍거리는 소리가 점점 커졌다.

“잘못된 건데, 형은 괜찮아 보이고, 흐윽…. 나는 불안하고 걱정되는데… 형은 아무 생각도 안 하는 거 같고…. 나는 싫은데, 자꾸 잘 때마다 형이 만진 게 생각나서, 흑… 몸도 이상해진 거 같은데…! 진짜 내가 이상한 거야? 그래서 나한테 그렇게 말했어? 나는 진짜….”

앞뒤가 맞는 말인지 아닌지도 모르고 말을 엉망으로 쏟아냈다.

형은 내 말을 자르지 않고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내가 쏟아낸 단어 중에서 필요한 것만 골라서 정리라도 하는 것 같았다.

“나… 여자 친구 같은 거 없어, 제정신이 아닌데 어떻게 다른 사람을 만나… 형도 거짓말인 거 알았잖아… 안 다고 했잖아.”

여전히 아무 말도 없는 형을 보고 있으려니 초조함이 턱밑까지 차올랐다.

“좋아한다고 했으면, 고민하는 티도 내고… 나 때문에 안절부절못하는 모습도 보이고, 좀 그러라고… 형제잖아, 우리는 형제니까 더 불안해야 되는 거 아냐? 아니, 필요 없어… 흐으윽… 나 형 싫어, 안 볼 거야, 안 보면 괜찮을 줄 알았다고….”

“그래서, 괜찮았어?”

내내 듣고만 있던 형이 천천히 질문했다.

“…괜찮았는데, 눈에서 안 보이니까 괜찮았는데… 생각하는 거 정도는 상관없잖아, 형한테 피해준 거 없잖아.”

언젠가 형이 했던 것과 같은 말이 내 입에서 흘러나왔다.

“신아, 인정해.”

“…뭘.”

훌쩍거리면서 형을 바라봤다. 뿌옇게 흐려진 시야 속에서도 형의 검은 눈동자는 또렷했다.

“넌 나 없으면 안 되잖아.”

형이 손가락으로 목덜미를 쓸어내렸다.

“흡.”

“내가 좋다고, 형이 계속 옆에 있었으면 좋겠다고, 네가 그렇게 말하면. 난 그렇게 할 거야.”

“…왜 내가 그렇게 말해야 하는데?! 형이 말할 수도 있는 거잖아, 형은 멀쩡한데 나만 이상해지고…! 형 때문이잖아, 형이 먼저 그런, 거잖아! 왜 내가, 왜 나만… 흐으윽….”

멍청하게 같은 말을 중얼거리고 있자 형이 흘러내린 눈물을 엄지로 닦아줬다.

“형은 늘 말했던 거 같은데.”

“……?”

“좋아한다고. 신아, 좋아해.”

‘너 말고는 아무도 필요 없어.’

들리지 않았지만 조용한 시선이 그렇게 말하고 있어서 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엉엉 소리를 내면서 형 목에 양팔을 감고 매달리자 형이 뒤통수를 손바닥으로 문질렀다.

“내 옆에, 있어.”

“응.”

“어디 갈 생각하지 말고.”

“그래.”

“내 형이잖아, 흑….”

“그래, 네 형이지.”

“선우 한.”

“응.”

“내 거야.”

억지로 눌러 담았던 소유욕이 꽃을 피웠다.

내가 알파고 형이 오메가고 하는 건 다 핑계였다. 형을 가질 수 있다면 나는 얼마든지 다리 벌리는 알파가 될 수 있다.

입술을 겹치자 형이 자연스럽게 입을 벌렸다. 혀끝을 밀어 넣어 얽으면서 질척하게 움직이자 형이 허리를 감아 당겼다.

하반신이 밀착하면서 온몸에 후끈거리는 열기가 감돌았다.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페로몬이 새어 나왔다.

쪽쪽쪽 소리를 내며 형 목덜미에 코를 박자 폐가 떨릴 정도로 좋은 냄새가 풍겼다.

처음 자위하는 걸 봤을 때도 이 냄새를 맡았다. 좋은 냄새였다는 자각은 그때도 있었고 흥분할 것 같았다.

형제의 페로몬에 발정하는 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해서 억눌렀고, 그대로 도망쳤다. 그 뒤 형의 페로몬을 맡은 건 일주일 전이 처음이었다.

심장을 때리는 달콤함에 뇌는 물론 전신이 다 녹아내렸다. 단숨에 발기한 성기가 바지 속에서 갑갑함을 호소했다. 몸을 딱 밀착한 채 비비적거리자 형이 내 손목을 꽉 잡고 현관에서 가까운 형 방으로 당겼다.

문을 여는 것과 동시에 형의 체취와 페로몬이 한가득 밀려와서 어금니를 깨물었다. 이럴 것 같아서 형 방에 들어오지 않았던 거다.

형을 침대 위로 밀어 눕히고 바지에 손을 댔다. 집에서 입는 고무줄 바지를 당겨 아래로 내리기 무섭게 툭 튀어 오른 성기가 흉기처럼 느껴졌다.

잘도 이런 걸 내 배 속에 담았구나, 싶어 조심스럽게 손을 뻗자 형이 작게 웃었다.

“왜?”

눈물이 멎은 눈가를 문지르며 형을 바라봤다.

“아니야, 네가 하려고?”

“내가 못 할 이유가 있어?”

해본 적은 없지만 못할 건 아니지 않나, 형도 내 거 빨았으면서.

“어, 아냐, 좋아서.”

형이 눈꼬리를 살짝 휘며 웃었다. 그 표정이 진짜 좋아 보여서 손에 쥐고 있던 성기를 덥석 물었다. 입을 크게 벌려서 물었지만, 반도 물지 못했는데 입 안이 꽉 찼다.

뭐야, 이거. 형은 어떻게 내 걸 다 물었지? 나 안 작은데.

크기를 놓고 보자면 내 것도 작지 않은데 아무리 입을 벌려도 뿌리까지는 물지 못할 것 같았다.

턱이 빠질 것 같아서 눈동자만 들어 올리자 뭐가 재밌는지 형이 입을 가리고 쿡쿡거렸다.

뭐야, 나 못 하나? 아니, 남의 거 빨아 본 적 없으니까 못할 수도 있는 거지, 왜 웃는 건데.

눈꼬리를 쫙 뻗어 형을 노려보자 형이 턱 아래쪽을 간질였다. 애완동물을 달래는 것 같은 손짓에 얼굴을 찡그렸다.

“그렇게 한 번에 무니까 그렇지. 천천히 해봐.”

흘러내린 머리칼을 귀 뒤로 넘겨주며 형이 다정하게 말해서 무식하게 입 안 가득 물었던 걸 천천히 빼고 귀두만 물었다.

잘한 것 같지 않은데 형의 성기 끝이 축축하게 젖어서 시큼한 액이 흘러나왔다. 혀를 세워 끝부분을 꾹 누르자 형의 허벅지 근육이 단단해지는 게 느껴졌다.

이거 좋은가?

반응을 보기 위해 형의 얼굴을 보자 아까보다 훨씬 상기된 얼굴로 형이 날 내려다봤다.

“그렇게, 혀 쓰면서 조금씩 물어봐.”

“우응….”

형이 잘 가르는 치는 것인지 아니면 내가 학습력이 좋은지 기둥에 침칠을 해가면서 입술을 아래로 내리자 아까보다 훨씬 더 많이 물 수 있었다.

“하아, 좋아, 입, 더 벌려봐.”

입술을 둥글게 말아서 최대한 입을 벌리자 기다란 성기가 목젖을 스치면서 안쪽으로 밀려들어왔다.

음모가 코끝에 닿으면서 형의 페로몬이 더 짙어졌다. 그것만으로도 어쩐지 참을 수 없는 기분이 들어 다리 사이가 불끈거렸다.

빨면서 세우는 날이 올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기 때문에 새로운 취향을 발견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딱딱하게 발기한 것을 손바닥으로 문질렀다. 청바지 너머로 전해지는 뜨거운 열기가 아쉬워 손바닥으로 꽉 누르며 고개를 위아래로 움직이자 형이 내 뒤통수를 손바닥으로 문지르며 작은 탄성을 뱉었다.

흥분을 부추기는 작은 신음에 몸이 움찔거렸다. 머리를 빠르게 움직이자 형의 엉덩이 사이에서 애액이 흘러나왔다. 그 모습이 너무 음란하게 느껴져 바지 속으로 손을 밀어 넣으려는 순간 형이 내 뒤통수를 꽉 내리눌렀다.

“우읍.”

목젖을 퍽퍽 치며 드나드는 것에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입만 벌리고 있었다.

“신아, 하아, 마셔 줘.”

부탁하는 어조인데 명령하는 것 같아서 싫다는 티는 낼 생각도 못 하는 사이, 끈끈한 액이 입 안에 쏟아졌다.

비릿한 액은 형의 페로몬이 가득 묻어나서 꼭 내 몸속에 마킹이라도 하는 것 같았다. 끊어지지 않고 쏟아져 들어오는 정액에 머리가 멍해졌다.

역시, 너무 많아. 무슨 오메가가 이래.

“아, 으읍. 우응….”

한껏 벌어진 입 안을 형이 성기로 가볍게 휘젓더니 빠져나갔다. 입 안에 남은 것은 꿀꺽 삼키자 형이 내 목울대를 손가락으로 눌렀다.

“다 먹었어?”

자연스럽게 입을 벌려 보여주자 목젖을 누르고 있던 손가락이 입 안으로 들어왔다. 형이 입 안 점막 여기저기를 만지더니 손가락으로 입천장을 가볍게 긁었다.

“진짜 다 먹었네.”

“형이, 먹으라며.”

어딘가 시험하는 말투가 마음에 안 들어 뾰로통하게 대꾸하자 형이 피식 웃더니 내 겨드랑이 아래 팔을 끼우더니 몸을 잡아당겼다.

“무슨 맛이야?”

“…몰라.”

“바지 벗어, 신아.”

대답을 바란 질문은 아니었는지 형이 바지를 눈짓으로 가리키고 입고 있던 셔츠를 머리 위로 끌어당겼다.

옷을 다 벗자 형이 내 몸을 제 위로 당겨서 형 허리에 걸터앉은 자세가 됐다.

“바지만 벗으라고 했는데, 팬티까지 벗었네?”

형이 반쯤 발기해서 위로 솟은 내 성기를 손끝으로 쓸어 올리면서 재밌다는 듯 웃었다.

“형….”

민망한 기분이 들어 작게 혀를 굴리자 형이 손가락으로 유두를 잡아당겼다.

“읏, 거기 하지, 마.”

“싫은 거면 안 하겠지만, 그게 아니면―”

멈출 생각이 없다는 의사를 표한 형이 유두를 입술로 물었다. 한쪽은 손으로 매만지고 한쪽은 입술로 문질러서 가슴팍에 열기가 모여들었다.

지난번에 형이 만졌을 때부터 어떻게 할 수 없이 느낀 부위긴 했지만 그땐 러트였지, 이렇게 맨정신에 만져지니 기분이 배는 더 야릇했다.

형은 혓바닥을 길게 내밀어 톡 튀어나온 돌기를 누르고 유륜 주변을 할짝였다. 부드러운 점막에 감싸이자 등줄기가 부르르 떨렸다.

이게, 아닌데. 내가 위에 있으면 내가,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이미 완전히 형의 페이스였다. 형이 입술과 손의 위치를 바꿔 쪽쪽 소리가 나도록 빨았다.

“하으, 형….”

빨리는 건 가슴인데 배랑 마음까지 달콤하게 욱신거렸다. 몸속이 마찰 되는 것 같은 이상한 감각에 상체를 앞으로 내밀자 형이 허리를 더듬으며 유두를 희롱했다.

머릿속이 점점 몽롱해져서 눈을 깜박이지도 못하는데 허리를 더듬던 손이 엉덩이를 묵직하게 주물렀다.

“아, 잠깐, 그거, 아니, 흣….”

가슴에 정신 팔렸던 사이 언제 손을 움직인 것인지 파고드는 손가락이 축축했다. 확인할 것도 없이 형의 애액이 분명했다. 그것만으로도 순식간에 몸이 달아올랐다.

형의 애액이 내 구멍을 넓히고 그 구멍 안에 정액이 쏟아진다. 배덕감을 부추기는, 곧 벌어질 사실에 턱까지 덜덜 떨리려 했다.

이물감을 느낀 것은 잠시뿐 아래를 드나드는 손가락 개수가 점점 늘어났다.

허리에 제대로 힘이 안 들어가 형 어깨를 꽉 붙잡았다가 손에 닿는 옷의 감촉이 마음에 안 들어 셔츠 속으로 손을 밀어 넣었다.

손끝에서 느껴지는 탄탄한 가슴 근육에 입 속에 침이 고였다. 완벽한 성인 남자의 몸이었다.

“벗어.”

셔츠를 밀어 올리면서 말하자 형이 손가락을 쑥 빼냈다. 뒤쪽이 순식간에 허전해지면서 구멍이 벌름거렸다.

“왜, 빼는, 데….”

“벗으라며.”

시키는 대로 하는 것뿐이라는 듯 말하더니 형이 입고 있던 면 티를 훌렁 벗어 던졌다. 침대 위에서 형이 옷을 다 벗은 건 처음 봤다.

꾸준히 운동해서 만들어진 몸은 흡사 조각 같았다. 형은 이사 오기 전에는 헬스장을 다녔었다. 지금도 침대 옆에 아령이 있는 걸 보면 간단한 웨이트는 꾸준히 할 것이다.

보통 오메가는 근육이 잘 붙지 않으니까 어쩌면 이건 나를 위해 가꾼 몸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나랑, 하고 싶었어?”

“당연하지.”

“언제부터?”

형이 이마를 부딪쳐 왔다.

“매일.”

정확한 시기를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오래전부터라고 말하는 것 같아 발끝이 간질거렸다.

“신아, 이제 넣어봐.”

형이 엉덩이 사이를 성기로 문질렀다. 급하지 않은 재촉에 몸이 확 뜨거워졌다. 형의 가슴팍을 손바닥으로 누르면서 하체를 살짝 띄웠다.

손으로 잡지 않아도 딱딱하게 발기한 성기가 바짝 일어서서 엉덩이 사이에 닿았다. 한 손을 뒤로 뻗어 엉덩이를 살짝 벌렸다.

스스로 하는 것에 수치심이 밀려왔지만 멈추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삽입의 욕구가 사라진 게 아니라 받아들이는 것의 쾌감을 알아버린 몸은 조금이라도 빨리 형을 삼키고 싶어 했다.

벌어진 입구 사이로 선단이 침입하자 숨이 가빠졌다. 천천히 몸을 내리자 안쪽이 벌어졌다. 허리가 휘면서 자연스럽게 가슴을 앞으로 내밀자 형이 혀를 내밀어 유두를 핥았다.

성기처럼 발기한 딱딱한 유두에 말캉거리는 혀가 닿자 허리가 떨렸다.

하체를 내리면서 자연스럽게 형의 성기를 더 머금었다. 빠듯하게 벌어진 구멍 주변은 이제 주름이 하나도 없을 것만 같았다.

스스로 엉덩이를 벌려 형을 받아들인다고 생각하자 야릇한 기분이 전신에 확 쏟아졌다.

“읏, 신아, 너 무슨 생각, 해.”

“형, 냄새, 너무 좋아….”

생각지도 못했던 말이 뇌를 거치지 않고 바로 혀에서 나갔다.

형은 상냥한 얼굴로 웃었지만 냄새는 더 진해졌다. 흥분으로 인해 체온이 상승하면서 냄새가 더 진해진 것이다.

“끝까지, 먹어.”

“으, 하아….”

허리를 완전히 내리자 굵직한 것이 완전히 들어왔다. 엉덩이 사이에 까슬한 음모가 닿았다.

한껏 벌어진 아래가 버거워 형 가슴팍에 뺨을 기댔다. 페로몬도 너무 좋았고, 안을 가득 채우는 묵직한 느낌도 너무 좋았다.

고개를 돌려 형의 목덜미를 깨물자 안쪽에 있던 것이 질량을 더했다.

“읏, 뭐야… 왜, 더, 커져.”

“네가 자극했잖아.”

형이 내 목덜미를 진득하게 물어 당기면서 대꾸했다.

허리를 느릿느릿 움직이기 시작했다. 형이 움직였던 것처럼 거칠게 왕복하지 못하고 허리를 앞뒤로 잘게 흔들었다.

불안정한 배에 타고 있는 것 같은 기분에 아랫배를 가득 채우는 형의 중심을 부드럽게 조였다. 놓치면 떨어질 것 같은 기분이라 꽈악꽈악 조이면서 가볍게 허리를 움직였다.

“하아, 형…. 너무, 두꺼, 워….”

안을 채우고 있는 것에 대해 솔직한 평을 내놓자 배 속을 채우고 있는 것이 불끈거렸다.

“아읏.”

그 느낌을 참을 수가 없어 허리를 비틀자 형이 웃으면서 달콤한 숨이 얼굴에 달라붙었다.

“그만 좀, 커져….”

불평을 뱉으면서 형 목에 팔을 감았다. 탄탄한 허리에 올라 타 허벅지를 문지르면서 형을 물고 늘어졌다.

형과 내 몸 사이에 낀 성기에서는 이미 쿠퍼액이 질척하게 흘러서 완전히 젖은 상태였기 때문에 내가 몸을 흔들 때마다 두 사람의 피부 틈에서 성기가 매끄럽게 문질러졌다.

삽입하지 않았는데 형 피부에 문지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고양감이 차올랐다.

“아, 하으, 형… 아응, 흣.”

“신아, 네가 지금 얼마나 야하게 움직이는지 알아?”

모른다는 의미로 고개를 흔들자 형이 귓불을 깨물었다. 일부러 나한테 주도권을 넘긴 듯 움직이지 않고 있는 게 더 야해서 충동적으로 빠르게 몸을 흔들었다.

불이 붙은 아래를 어떻게 하지 못하고 안쪽을 꽉꽉 조였다. 배우지 않았는데도 점막이 부드럽게 수축했다가 이완하기를 반복했다.

“하응, 혀엉….”

애달픈 목소리로 부르자 형이 숨을 집어삼키더니 갑자기 아래서 쑥 찔러 올렸다.

“참으려고 했는데, 안 되겠다.”

형이 내 엉덩이를 양손으로 잡아 주무르자 잔뜩 젖은 아래서 음탕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격렬함에 몸이 흔들렸다. 아까는 불안한 조각배 위 같았다면 지금은 로데오 경기 중인 소의 등에 올라탄 것 같았다.

떨어지지 않기 위해 형한테 꽉 매달렸다. 철퍽철퍽, 피부를 때리는 차진 음이 고막을 때렸다.

숨을 쉬는 걸 잊을 것 같아 애써 심호흡을 하자 진한 페로몬이 그대로 쏟아져 들어왔다.

“신아.”

“하으으으…!”

미약 같은 음성으로 이름이 불린 순간 몸부림치며 안쪽을 꽉 조였다. 정액이 질질 흘러나와 복부를 끈적하게 적시자 내벽이 잘게 경련했다.

형이 참을 수 없다는 듯 미간을 찌푸린 섹시한 얼굴로 몸에 바짝 힘을 준 채 입술을 겹쳤다.

배 안쪽으로 형이 쏟아져 들어왔다. 형이 또 나한테 씨를 뿌렸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몸이 잔뜩 움츠러들었다. 더 조이지 못할 것 같은데 욕심 많은 내벽이 형한테 달라붙어서 쥐어짜 내고 있었다.

긴 사정이 끝나자 입술이 떨어졌다. 가슴팍에 기댄 채 쌕쌕거리며 숨을 고르자 형이 내 등줄기를 쓸어내렸다.

오싹오싹한 전율이 일었지만 움직일 수가 없었다. 움직이면 구멍 틈으로 형이 싼 것이 흘러나올 것 같았다.

“…원래, 우성 오메가는 정액이 많아?”

묵직하게 차오른 아랫배를 느끼곤 조용히 물었다.

“사람마다, 다른 거 아닐까?”

“그래도, 너무 많잖아. 내 거보다 많은 거 같아.”

알파보다 정액이 많은 오메가라니, 진짜 들어 본 적 없다. 고개를 설레설레 젓자 형이 내 엉덩이를 가볍게 주물렀다.

“아무리 많이 싸도, 내가 너한테 싸면 임신할 일은 없잖아.”

18

신이한테는 자궁이 없으니까, 임신할 수도 없다. 임신 가능한 알파가 있다는 연구 논문이 있긴 하지만 그건 판타지 속 용이나 다를 바 없다.

네가 너무 갖고 싶어서 우성 알파가 되려고 약을 먹었다는 말은 할 생각은 없어 능숙하게 화제를 돌렸다. 그 말을 하면 약을 바꿔 놓은 것도 말해야 할 것 같으니까.

굳이 그런 걸 다 알릴 필요는 없다. 중요한 건 이제 신이 나에 대한 마음을 숨기지 않을 거라는 것이다.

형제여도 괜찮아. 내가, 그리고 네가 나를 좋아하잖아. 이렇게 잔뜩 섹스하고 싶어 하잖아.

“아니면, 혹시 형 임신시키고 싶어?”

짓궂게 묻자 신이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부끄러워하는 기색이 귀여워 이마에 키스했다.

신의 등과 어깨를 가볍게 감싸 안고 허리를 일으켜 세우면서 그대로 몸을 옆으로 굴렸다.

내 아래 깔린 신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더 해도 되지?”

신의 무릎 뒤로 손을 넣은 채 다리를 쭉 밀어 올렸다. 무릎이 접힌 채 양 다리가 활짝 벌어졌다.

“혀, 형….”

“더 하고 싶어.”

뭉근하게 허리를 흔들자 신이 입술을 깨문 채 고개를 끄덕였다. 달콤한 페로몬이 나를 향해 피어올랐다.

“신아, 사랑해.”

“…나도, 나도.”

누가 들을 것처럼 신이 입모양으로 ‘사랑해’라고 말해서 웃음이 나왔다.

내 것이 됐다는 걸 실감하기 위해 천천히 허리를 움직이며 입술을 겹치자 만족감과 만복감이 동시에 느껴졌다. 밥을 먹지 않아도 평생 배부를 수 있을 것 같다.

어쩐지 눈물이 날 것 같아 눈을 꾹 감았다.

몇 번의 절망 끝에, 마침내 짝사랑이 끝났다.

<가깝고 친한> 3권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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