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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숨 자고 일어났더니 기분이 나아졌다. 인간은 생각보다 복잡하지 않은 생물인지도 모르겠다.
형들은 아빠가 혼외자식이라는 걸 알까 궁금해졌지만, 알면 어떻고 또 모르면 어떠랴 싶어 입을 다물었다.
큰형이 낮에 끓여 놓았던 미역국과 계란말이, 두부 부침으로 밥을 먹고 소파에 앉아서 TV를 보는데 또다시 벨이 울렸다.
집에 찾아올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벨 소리가 반갑지 않았다. 짜증이 치밀어 형들보다 내가 먼저 일어나 인터폰으로 다가갔다.
친척들이 다시 왔다면 마음이 바뀌어서 한 푼도 못 준다고 일갈하려는데 인터폰 화면에 비친 얼굴은 완전히 다른 얼굴이었다.
형들은 내 뒤에서 인터폰 화면을 확인하더니 문을 열었다.
“갑자기 어쩐 일이야?”
어렸을 때는 자주 놀러 왔지만 커서 온 적은 거의 없었기 때문에 반가운 마음에 묻자 현관으로 다가온 시준이 인상을 썼다.
“들어와.”
“어, 아냐. 잠깐 밖에서 얘기 좀 해.”
시준이 말에 평상으로 걸어갔다.
“왜, 안 들어오고.”
“집안에 알파 페로몬이 강해서 나 같은 일반 알파는 들어가지도 못 하겠어.”
“…진짜?”
낮에 친척들도 들어오지 않았던 게 떠올라 얼굴에 열이 올랐다.
페로몬 때문에 피한 거였구나.
“넌 괜찮아? 아니, 잠깐 너한테도 나는 거 같은데?”
“아, 어, 난 괜찮아.”
추궁 아닌 추궁에 손부채질하며 얼굴에 몰린 열을 식히려 했지만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친척들도 느꼈을까.
“김지훈, 설마….”
시준이 나와 현관 근처에 서서 우릴 보고 있는 형들을 번갈아 보더니 눈을 크게 떴다가 입을 꽉 다물었다. 뭔가 눈치챈 것 같았지만 입에 담지 않으려는 행동이었다.
“내일은, 학교 올 거야?”
알아차린 사실 대신 전혀 다른 말이 시준이 입에서 흘러나왔다.
“응, 이제 괜찮은 거 같으니까 갈 거야.”
“그래, 그럼 나갈게. 내일 보자.”
대문을 빠져나가는 시준이를 보고 가벼운 한숨을 지었다.
사실 들켰어도 이제와 어쩔 수 없지만 모른 척해준 것이 고마웠다.
“쟤는 그냥 가는 거야?”
“어, 내일 학교에서 보기로 했어.”
작은형의 질문에 대답하고 집안으로 들어섰다.
“우리 오늘 일찍 잘까?”
내가 묻자 형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각자 방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고 이번엔 내 방 침대에 셋이 나란히 누웠다.
형들은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처럼 내 옆자리를 각자 차지했는데 그게 너무 익숙해 보여서 오래 전부터 이랬던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