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9화 (29/91)

29

며칠 후 정민이 방 쓰레기통을 비우다가 약 껍데기를 발견했다. 평소 정민이가 먹는 억제제와 다른 포장이었기 때문에 무슨 약인가 싶어 상자를 살펴봤다.

[발정기 유도제]

* 중요한 일정이 있는데 발정기가 걱정 된다면? 하루 한 알, 발정기를 미리 당겨 보세요!

상자 겉면에 있는 요란한 광고 문구를 보고는 입술을 깨물었다.

“형, 뭐해? 마트 간다며.”

“응, 쓰레기만 비우고.”

쓰레기통에 있던 것들을 쓰레기봉투에 한 번에 옮겨 담고 방문을 열자 정민이 시선을 맞췄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눈빛이지만 정민이는 내가 쓰레기통 비우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러니 약 껍데기는 내가 발견하도록 둔 게 분명했다. 발견하지 않길 바랐다면 좀 더 철저하게 숨겼거나 밖에 버렸겠지.

“가자.”

손을 내밀자 정민이 거리낌 없이 내 손을 잡고 현관문을 열었다.

어디서부터 계획된 일인지 모르지만 이제 와서는 다 상관없는 일이다.

우리는 이미 형제 관계를 이별했다.

2. 백일홍

1

“야, 밥 먹어.”

한창 단잠에 빠져 있는데 방문이 벌컥 열리고 무뚝뚝한 목소리가 날아왔다. 툭 던져진 목소리의 주인은 대답도 듣지 않고 방문을 닫았다.

고개를 들어 시계를 보자 낮 2시, 점심 먹기에는 좀 늦은 시간이었다.

아침 먹고 게임을 하다가 언제 잠들었는지 머리가 멍했다. 배가 고픈가 싶어 아랫배를 문질렀다가 침대에서 내려왔다.

주말 내내 너무 먹고 자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안 가면 뭐라 욕할 게 뻔했다.

1인용 식기가 놓인 식탁에 앉자 상준이 날 힐끔 보더니 그대로 주방을 나가버렸다.

예상은 했지만 오늘도 다, 벌써 몇 개월 째 밥은 차려주면서 같이는 안 먹는다.

우리가 처음부터 사이가 나빴던 건 아니다. 아니, 지금도 사이가 나쁜 건 아니다. 언제부턴가 그냥 데면데면해졌다.

같은 알파끼리는 원래 경쟁심이나 호승심이 강한 편이라지만 형젠데 굳이?

그리고 이미 네가 더 잘난 게 뻔히 나온 상황에서 그럴 필요가 있나?

나한테 화난 게 있다면 차라리 뭔가 말을 해줬으면 좋겠는데 상준인 조개처럼 입을 꾹 다물고만 있다.

그러다보니 화가 난 건지, 아니면 이젠 내가 싫어진 것인지 헷갈린다. 벌써 몇 달째 저러고 있으니 더.

그렇다고 친하게 지내 달라고 말하기도 뭐해 나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아서 둘만 있으면 어색한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만다.

엄마들이 있을 때는 그나마 같이 밥이라도 먹지만 오늘처럼 둘 다 없을 땐 각자 밥을 먹는다.

그럴 거면 밥도 안 차려 주면 될 건데 저놈은 꼭 지 다 먹은 다음에 날 불렀다.

큰엄마가 끓여 놓았을 미역국을 숟가락으로 휘저어 한입 먹자 입맛이 돌았다.

인간이란 참 단순하지, 별생각 없다가도 맛있는 게 입에 닿자 금방 혀가 반응한다. 좋아하는 것이라 더 그랬다.

엄마들 요즘 바쁘다고 했는데 언제 이걸 다 끓여놨데.

우린 아빠가 없다.

알파와 오메가가 있는 요즘 사회에서는 흔하다면 흔한 모자가정으로 엄마가 둘이다. 여성 알파는 러트가 오면 클리토리스가 부풀어서 상대를 임신시킬 수 있는데 그 결과가 우리다.

두 엄마 모두 알파고 원래는 한 명 씩 낳으려 했다고 한다.

어쨌든, 뭐 얼마나 요란한 밤을 보냈는지 모르지만 작은엄마가 쌍둥이를 임신했으니 가족을 더 늘릴 일은 없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게 한 번에 하나 낳는 것도 힘든데 둘을 낳으려니 죽는 줄 알았다고 한다.

진통이 너무 길어서 도중에 제왕절개를 하려고 했는데 작은엄마가 끝까지 고집부려서 10시간 진통 끝에 우리가 나왔다.

우린 일 분 차이로 태어났는데 그때 시간이 달라졌다.

음양이니 오행이니 잘은 모르지만, 할머니는 태어난 시간에 따라 애들 이름을 정했다. 그래서 형인데 내가 하준, 동생이 상준이다.

사람은 이름 따라간다는 말이 있는데 우릴 보면 그건 틀린 말이 아닌 것 같다. 내가 엄마 뱃속에서 먼저 나왔으니 내가 형인데 나는 뭘 해도 상준이보다 아래였다.

어렸을 때는 그렇게 차이가 안 났는데 크면서 어쩔 수 없는 차이가 분명 생겼다.

처음은 아마 형질 검사 결과가 나왔던 날이었을 거다.

우린 둘 다 알파일 거라고 생각했다. 엄마들이 알파였고, 우리 머리가 좋았고, 생김새가 알파임을 나타냈으니까.

예상대로 알파는 맞았다. 다만 나는 열성 알파였고 상준인 우성 알파였다.

열성 알파는 알파에 속하면 떨어지고 베타에 속하면 우월한, 머리 좋은 베타 수준 정도다.

그래도 딱히 불만은 없었다. 엄마들이 내가 열성이라고 해서 차별할 사람들도 아니었고, 그때까지는 상준이도 별다를 게 없었으니까.

달라진 건 내게 첫 러트가 찾아온 다음부터다.

둘 다 러트가 오기 전부터 만약을 대비해서 약은 항상 먹고 있었다.

이 부분은 엄마들한테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사고 치면 거세 시켜 버릴 거다, 남의 인생 망칠 생각하지 말고 알아서 조심해라, 등등등.

그래서 나도 상준이도 약은 빼놓지 않고 먹었다. 문제는 약을 먹어도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었다.

대학교 입학식 때 체육관에 전교생이 모였고 그중 오메가 하나가 갑자기 발정했다. 그 오메가 역시 의도한 것은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다만 내가 재수가 없었다.

근처에 있어서 직격으로 페로몬을 맞았고 눈앞이 하얗게 변하면서 짐승처럼 발정했다.

나도 모르게 오메가를 찾아 움직였고 그걸 막은 게 상준이었다. 녀석은 내 얼굴을 가차 없이 때렸고 센 주먹에 맞은 나는 찍소리도 못하고 뻗어버렸다.

눈을 떴을 땐 병원이었고 엄마들과 상준이가 옆에 있었다.

‘깼어? 괜찮아?’

‘어, 응….’

‘다행이다.’

‘어떻게 된 거야?’

‘우성 오메가래, 약을 먹었는데 긴장 때문에 소용이 없었나 봐.’

‘…내가, 뭐 했어?’

기억이 가물가물했기 때문에 바짝 쫄아서 묻자 엄마들이 고개를 저었다. 다행히 아무 일도 없었다고, 일이 생기기 전에 상준이가 막았다고 했다.

엄마들은 우성 오메가 페로몬에 열성 알파가 발정하는 건 어쩔 수 없던 일이라고, 큰 문제가 없었으니 걱정 말라며 병원에 온 김에 검사받고 다른 약을 처방받자고 말했다.

멍한 정신 속에서 사고 안 친 걸 다행이라고 생각했고, 처음 맡아 본 우성 오메가 페로몬이 엄청나다는 걸 알아서 조금 무서워졌다.

그리고 엄마들이 병실에서 나가고 상준과 둘이 남았을 때였다.

‘야, 네가 때린 데 너무 아프다, 너무 세게 때린 거 아냐?’

멋쩍은 기분이 들어 농담처럼 말을 건넸다. 그럴 수밖에 없던 게 엄마들이 말하는 동안에도 상준이는 딱딱하게 굳은 표정이었으니까.

‘…넌 괜찮았어?’

아무 반응이 없는 상준에게 다시 물었다.

‘내가 너랑 같은 줄 알아? 아무 문제없었어.’

‘야, 무슨 말을 그렇게 하냐. 내가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

‘짐승 새끼도 아니고, 또 그런 일 생기면 그땐 안 도와줄 거야. 새로 처방받으면 약이나 잘 먹어.’

차갑다 못해 남 대하는 것보다 이백 배 정도는 싸가지 없이 말한 상준은 그대로 병실을 나갔다.

그 후 6개월, 첫 학기가 끝나고 방학이 지나고 2학기가 시작했는데도 상준의 태도는 여전히 냉랭했다.

그때 체육관에 있던 알파 중에 나만 발정한 것도 아니고 내가 진짜 덮친 것도 아닌데 저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싶으면서도 잘한 게 없어서 할 말도 없었다.

막말로 형제가 강간 미수범인 게 쪽팔린 일인 수는 있지만, 나도 원해서 그런 건 아닌데….

만약 상준이 사람들 많은 장소에서 오메가를 덮치려고 했으면 난 어떻게 했을까?

좋지는 않겠지만 이렇게 몇 개월이나 무시하지는 않을 거다, 박상준이 아무리 못났어도 내 동생이니까.

뭐, 나라면 그랬을 거란 말이다, 상준인 아니지만.

떠오른 일들에 괜한 서운함이 밀려와 남은 밥을 국에 모두 말아 마시다시피 먹어버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2

“야, 너 1교시잖아. 지금 안 일어나면 늦는다.”

핸드폰 알람보다 먼저 깨우는 소리에 눈을 뜨자 문을 닫고 나가버리는 상준의 뒤통수가 보였다.

내가 그렇게 못마땅하면 신경을 안 쓰면 될 것인데 엄마들 때문인지 상준인 아침이면 늘 날 깨운다.

밥은 따로 먹는데 학교는 같이 가고 돌아올 때도 특별한 일이 없으면 같이 온다.

우린 엄마들이 운영하는 프랜차이즈 제과 회사를 물려받을 예정인데 일찍부터 상준이 경영, 내가 상품 개발로 정해져 있었다. 그래서 대학도 자연스럽게 상준인 경영학과를 선택했고, 난 제과제빵 학과를 선택했다.

과가 달라서 같이 듣는 수업은 상준이 교양으로 선택해서 듣는 우리 과 수업 하나뿐이었다. 그래서 학교에 같이 가지 않아도 되는 날이 더 많은데 상준인 꼭 나랑 학교에 같이 갔다.

웃긴 건 엄마들이 볼 때, 집에서만 같이 나오고 그다음엔 남남처럼 군다.

가는 동안에는 멀찍이 떨어져서 걸었고, 학교에서도 별로 아는 척 안 한다. 유일하게 같이 듣는 수업에서도 옆에 앉은 적이 없다.

돌아올 때도 마찬가지다. 내 시간표를 꿰고 있어서 마지막 강의를 듣고 나오면 항상 상준이 기다리고 있었다.

별말 없이 앞장서서 상준이 걸어가면 목줄 매인 개새끼처럼 그 뒤를 내가 따라서 집에 왔다.

이런 거 보면 싫어하는 건 아닌 것 같다. 진짜 너무 싫으면 옆에 있지도 않으려고 할 거니까. 오히려 걱정하는 거겠지, 한번 벌어진 사고가 언제 또 벌어질지 모른다는 생각에.

뭐, 걱정하는 거라고 내 멋대로 추측하는 거긴 하지만. 사실 아무 말도 안 하는 거 보면 역시 그때 일 때문에 화난 건가 싶기도 하고.

원래 쌍둥이는 서로 통하는 게 있다고 하는데 요즘의 박상준은 진짜 하나도 모르겠다.

도대체 너 무슨 생각이야?

3

“야, 오늘도 같이 왔냐?”

강의실에 들어가자 동기가 말을 걸어서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얘긴지 단박에 알아들었다.

학교에서 상준과 내가 형제인 걸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고, 강의 시간을 제외하면 상준이 나한테 붙어 다닌다는 것도 알만 한 사람은 다 안다.

그도 그럴 게 입학식 날 내가 그 난리를 피웠을 때 상준인 신입생 대표 인사를 하기 위해 단상에 있었다.

인사를 하려다 갑자기 터진 난리 통 속에 상준이가 뛰어들었고, 훤칠하고 똑똑한 알파 박상준은 오메가를 구하려고 뛰어든 왕자님이었다.

단숨에 캠퍼스 유명 인사이자 인기인이 됐다.

그 오메가를 덮치려고 했던 알파 중 하나가 형제였고 그게 나였다는 것도 나중에 알려졌지만, 그런 건 박상준의 이력이나 외모와 비교해 봤을 때 흠도 안 됐다.

결과적으로 상준인 사고를 막았으니까.

“아무리 그래도 너무 하네.”

“뭐가.”

“그거 네가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닌데 너무 감시하는 거 같아서. 따지고 보면 발정기 제대로 체크 못 한 그 오메가 잘못도 있는 거 아냐?”

“걔라고 뭐 일부러 그랬겠냐.”

그 오메가도, 나를 포함해 그날 발정했던 다른 알파도 모두 서로에게 피해자이자 가해자다.

오메가가 페로몬을 뿌리지 않았다면 알파들이 발정하지 않았을 것이고, 아무리 페로몬을 맡았어도 정상적인 인간이라면 타인을 강제로 덮치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알파가 발정한 게 어쩔 수 없다고는 하지만 그건 다 변명이다. 실제로 상준인 아무렇지도 않았으니까.

페로몬에 휘둘리는 인간이라니, 진짜 짐승이나 다름없다.

“아무리 그래도 걔는 학교 잘 다니잖아.”

“나도 잘 다니잖아.”

“너는 상알파 놈 감시 속에서 다니고.”

듣고 싶지 않았던 말이 명치를 콕콕 찔렀다.

나는 상준이가 엄마들 걱정 시키지 않으려고, 혹은 혹시 모를 사고에 휘말릴까 봐 걱정 돼서 나랑 같이 다닌다고 여기는 편이 나았다.

내가 짐승처럼 발정해서 오메가를 덮칠까 봐 감시하는 게 아니라.

“형제니까 걱정할 수도 있는 거지.”

“그 걱정 두 번만 했다가는, 야, 그러지 말고 그냥 차라리 누구 사귀지 그래?”

“뭐?”

“하다못해 베타라도 만나면 쫓아다니면서 감시하는 건 줄어들 거 아냐.”

“아, 그런 거 아니라고.”

기발한 아이디어라도 되는 것처럼 얼굴을 바짝 들이밀며 말하는 동기를 손바닥으로 밀어냈다.

감시 때문 아니라고, 그냥 걱정하는 거라니까.

4

오후 강의는 상준과 같이 듣는 실습이었다.

크리스마스까지는 한참 남았는데 기말시험이 크리스마스 케이크인 관계로 오늘부터는 케이크를 만든다고 했다.

조리대에 서서 크림을 만들기 위해 계란을 푸는데 대각선 앞 조리대에서 초콜릿을 녹이고 있는 상준이 보였다.

허리에 묶는 앞치마를 하고 셔츠를 팔뚝까지 접어 올린 채 진지하게 하고 있었다. 겉모습만 보고 요리하는 걸 의외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실제로 상준인 요리 자체를 좋아했다.

나는 디저트 만드는 것만 좋아하는데 상준인 고루고루 좋아했다. 한식, 중식, 양식, 일식 가리는 것 없이 곧잘 흉내 냈다.

그래서 이 강의를 교양으로 듣는다고 했을 때 놀라지도 않았다. 원래 박상준이 좋아하는 거니까.

“와, 이거 어떻게 이렇게 깔끔하게 했어?”

누가 보기에도 호감 있어 보이는 여자가 상준에게 말을 거는 게 보였다.

다른 강의와 다르게 비교적 자유로운 강의라 학생들끼리 말하는 건 흔한 일이었고, 그 때문에 상준이 추파를 받는 걸 보는 것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인기인은 뭘 해도 인기가 있겠지만, 요리까지 그것도 심지어 디저트를 만드는 남자는 당연히 플러스 될 수밖에 없겠지.

상준이 여자에게 뭔가 대답했는데 잘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표정만으로도 둘이 좋은 분위기라는 건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내 앞에서는 요즘 웃기는커녕 말도 안 해서 자연스럽게 풀어진 얼굴을 보는 건 오랜만이었다.

“그거 계속 치면 넘칠 거 같은데?”

바로 옆에서 들린 목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숙이자 잔뜩 거품이 일어난 계란 흰자가 볼에서 넘치려 하고 있었다.

“아, 망했다.”

“굳이 손으로 할 필요 있어?”

“빵 사이에 넣어 볼까 했는데, 안 되겠네.”

“크리스마스 케이크인데?”

“홀 케이크 말고 다른 거 생각 중이어서.”

핫케이크 사이에 머랭 친 달걀을 넣고 구운 다음에 크림을 바르고 딸기를 장식할 생각이었다.

생크림도 딸기도 박상준이 좋아하는 거다. 내가 좋아하는 건 초코와 치즈. 그러고 보면 쌍둥이여도 은근히 입맛이 갈린다.

과제에 낼 메뉴를 이걸로 정한 건 상준이가 좋아하는 걸 만들어 주면 나한테 삭막하게 대하는 걸 좀 멈춰 줄까 싶어서다.

망친 머랭을 덜어내는 데 시선이 느껴졌다. 고개를 들자 나한테 말을 걸었던 사람이 여전히 내 앞에 있었다.

어깨까지 내려오는 갈색 웨이브 머리를 반 묶음 한 여자는 귀여운 인상이었다.

“누구?”

“뭐야, 누군지도 모르면서 대답한 거야? 같은 과 선배 얼굴 정도는 기억하지 그래?”

“선배, 네? 아, 죄송합니다.”

아무 생각 없이 반말했던 것이 마음에 걸려 바로 대답하자 여자가 웃었다.

학교에 입학한 지 6개월이 넘었는데 선배 얼굴을 모르는 건 일단 입학식 사건 이후 MT 같은 과 행사에 참여하지 못 했기 때문이다.

상준이가 자신도 안 갈 거니까 나도 가지 말라고 해서 안 갔다. 자신이 없는 자리에서 사고 치면 누가 막아주겠느냐는 말에 그때 당시는 사고 친 지 한 달도 안 됐을 때여서 반박할 말이 없었다.

그 후에도 동아리를 하는 것도 아니고, 강의 끝나면 데리러 오는 상준 때문에 과모임에 참석도 못 해서 같이 수업을 듣는 동기들 말고는 교류가 제로였다.

“조아영이야, 너보다 한 학번 위.”

“네, 안녕하세요, 저는―”

“알아, 박하준. 너네 형제 모르는 사람 없을걸.”

입학식 때 일을 말하는 건가 싶어져 민망함에 뒷목을 주물렀다.

“나 이 수업 들을 때마다 거의 네 옆에 있었는데, 너 진짜 사람한테 관심 없구나.”

“아닌데요.”

“아니긴, 맨날 네 형만 보던데.”

조아영이 상준일 턱짓으로 가리켰다. 상준일 형으로 착각하는 사람은 이제까지도 많았다.

그리고 나는 그때마다―.

“제가 형이에요.”

이렇게 정정해줬다.

“어? 그래? 그건 몰랐네.”

조아영은 뭐가 재밌는지 웃으면서 내 어깨를 손바닥으로 가볍게 두드렸다.

“선배, 아픈데요.”

“그냥 누나라고 불러, 선배인 줄도 몰랐으면서.”

“알았어요, 누나. 근데 아프니까 그만 때리면 안 될까요?”

진심으로 한 말인데 조아영 누나는 날 더 때렸다. 엄마들도 그렇고 여자들은 왜 이렇게 손이 매울까.

“너 이거 마지막 강의지?”

“네.”

“끝나고 뭐 해? 사거리에 디저트 카페 새로 생겼는데 안 가볼래?”

“…저랑 같이 가도 돼요?”

내 물음에 오히려 놀란 표정을 지은 건 누나였다.

“왜 안 되는데?”

“아, 아니, 그냥….”

“뭐야, 상관없어. 그건 그냥 사고였잖아. 그리고 나 베타라 문제없기도 하고. 아니면 디저트 카페 관심 없어? 너 강의 듣는 거 보면 아닌 거 같은데.”

“아뇨, 관심 있어요, 갈래요.”

누나가 말한 카페가 어딘지는 나도 안다. 디저트 잡지에서 오픈 전부터 소개된 가게다.

가보고 싶었는데 같이 갈 사람도 없고, 상준이한테 말해봤자 집에나 있으라고 할 것 같아서 입맛만 다셨던 곳이다.

“그럼 이따 정리하고 보자.”

“네.”

기분이 좋아서 나도 모르게 고개까지 신나게 끄덕였다.

잡지에서 봤던 메뉴 몇 가지를 떠올렸다.

일단 브라우니랑 마들렌, 초코케이크랑… 아 맞다, 타르트도 먹어봐야지, 호두 타르트 맛있으면 좋겠다. 그거 상준이도 좋아하는데.

포장해서 갖다 주면 먹으려나 싶어 상준이 쪽으로 고개를 돌린 순간 눈이 마주쳤다.

날 보고 있었던 것인지 정면으로 눈이 마주쳐서 살짝 놀랐다. 강의 중에 내가 상준일 보는 경우는 많았지만, 상준이가 날 보고 있어서 눈이 마주친 건 거의 처음이었다.

상준인 미간을 살짝 찡그리더니 다시 고개를 돌렸다.

내가 다른 사람이랑 말하다 사고 칠까 봐 보고 있던 건가?

그런 거 아닌데….

“오늘은 먼저 가.”

강의가 끝난 후, 조리 기구를 정리하고 상준이한테 말했다.

“왜.”

“약속 있어.”

상준이 고개를 들어 문가에 서서 날 기다리는 아영 누나를 힐긋 봤다.

“언제부터 알았다고 약속을 잡아?”

“우리 과 선배야.”

내가 왜 이런 허락을 일일이 맡아야 하나 싶어 발끈하고 말았다. 아무리 전적이 있다지만 이건 진짜 걱정이 아니라 감시 같잖아.

“…네 마음대로 해.”

무뚝뚝하게 떨어진 대답에 나도 기분이 상해 대꾸하지 않고 몸을 돌렸다.

그렇게 말할 건 없잖아, 내가 무슨 잘못을 얼마나 심하게 했다고.

입을 쭉 내밀고 강의실 문으로 가자 아영 누나가 뭐가 즐거운지 또 웃었다.

“형제끼리 사이가 좋네.”

“네, 아주 좋아요.”

비꼬는 것 같은 말에 기분 나쁜 티를 내며 응수했다.

5

상준이 때문에 기분이 나빴는데 디저트 카페에 도착해서 반짝거리는 디스플레이 케이스를 보자 완전히 풀렸다.

예쁘게 장식된 케이스 속 디저트는 하나같이 다 매력적으로 보였다.

“여기 생과일로 장식한 타르트 되게 많네요.”

“응, 그거 먹으려고 온 거야.”

“뭐 드실 거예요?”

“일단 자몽이랑 귤이랑 레몬도 괜찮을 거 같은데.”

“그럼 전 호두랑 에그 하나씩 먹고 브라우니랑 초코 쉬폰도 하나 할래요.”

“마실 건?”

“아삼 티로, 누나는요?”

“난 잉블.”

직원에게 메뉴를 죽 말하고 계산하기 위해 카드를 내밀자 누나가 손을 잡았다.

“내가 오자고 한 거잖아.”

“와 보고 싶었던 데니까 제가 살게요, 오자고 말 안 했으면 못 왔을 거니까.”

“흐응….”

테이블에 자리를 잡자 아영 누나가 턱을 괴고 날 빤히 바라봤다.

“왜요.”

“아니, 너 과 행사에 얼굴도 안 비치기에 성격이 꼬인 건가 했거든. 근데 말해보니까 안 그렇네.”

“그냥, 참석할 기회가 없던 거뿐이에요.”

“형, 아니 동생 때문에?”

“사고 친 게 있으니까 조심하는 거죠. 걔도 걱정하고.”

“걱정이 유난인가 보네.”

남들이 보기엔 진짜 유난처럼 보이나.

“별로 그렇지도 않아요.”

“아까도 나 엄청 보던데, 아마 내가 오메가였으면 같이 못 가게 했을지도 모르지.”

“아무리 걔라도 보는 거로 오메가인지 아닌지 알 수는 없어요.”

“하긴, 페로몬 풍기는 게 아니면 모르는 게 당연한가.”

“그렇죠, 요즘은 다들 약 잘 먹으니까. 입학식 때 있던 일이 진짜 특이 케이스였어요.”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아 딱딱하게 말하는 사이, 3단 트레이에 우리가 고른 디저트가 차와 함께 예쁘게 담겨 나왔다.

“여기 디스플레이도 진짜 예쁘네요, 사진 찍고 먹어도 되죠?”

“마음대로.”

핸드폰을 꺼내 디저트를 하나씩 사진으로 찍었다. 전에는 이런 사진 보여주면서 만들어 보자는 얘길 상준이랑 종종했었는데, 도대체 언제까지 화나 있을 건지.

“나 궁금한 거 있는데.”

“뭐요?”

“알파 오메가 사이에서 존재하는 운명의 짝이라는 거 있다고 하잖아.”

사진을 다 찍고 포크로 브라우니 끝부분을 잘라 입에 넣었을 때 누나가 말했다.

“운명의 짝이요?”

“그래, 그 사람 페로몬은 맡은 순간부터 장난 아니고, 약으로도 못 누르고 첫눈에 반한다는 뭐 그런 얘기.”

“누나가 베타라서 그런가.”

“뭐?”

“그런 도시 전설 같은 얘기를 믿어요?”

“TV 보면 나오잖아, 운명의 짝이라 거스를 수 없어서 처음 보자마자 각인했다는 거.”

“글쎄요, 그냥 본인들 만남을 특별하게 포장하고 싶은 거 아닐까요. 난 오히려 그렇게 처음 보자마자 알파가 덮쳐서 각인했다는 오메가들 보면 진짜 원해서 한 걸까 하는 생각 먼저 들던데요.”

“왜?”

“사고라고 말하기 싫어서요, 남들한테 사고 쳐서 각인했다고 말하는 것 보다는 우린 처음부터 운명이었다고 말하는 게 있어 보이니까, 그렇게 포장한 것 같지 않아요? 요즘 약도 잘 나와서 페로몬 흘리는 사람이 많지도 않고. 그리고 누나 말대로라면 전 그 오메가랑 운명이게요? 약도 잘 먹는데 발정했으니까? 말도 안 되죠, 그건 그냥 사고였어요, 발정 주기를 체크하지 못한 우성 오메가 페로몬에 열성 알파인 제가 발정한 거예요.”

말을 뱉는 순간 상준이 말이 떠올라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실제로 상준인 그 오메가 페로몬에 아무 반응도 하지 않았으니까, 역시 내가 문제였던 걸까.

“와, 철저하게 안 믿네.”

“믿을 수 있어야 믿죠, 그런 운명 같은 걸로 남을 묶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운명의 짝이어야 행복해진다는 건 더 믿을 수도 없고.”

“동생도 안 믿어?”

“걘 저보다 더 안 믿어요.”

처음 운명의 짝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와 상준인 누가 더 라고 할 것 없이 냉소적이었다.

그 후로도 가끔 운명의 짝을 다룬 드라마 같은 게 TV에서 방영하면 비웃기 바빴다.

‘운명 같은 소리 하네, 그런 게 정해져 있다면 뭐 하러 열심히 살아?’

‘그래도 혹시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면 어떻게 할 거야?’

‘그런 거 필요 없어,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내가 정할 거야.’

상준인 저가 원하는 상대는 스스로 정하겠다는 의지가 어릴 때부터 확실했다.

‘운명의 짝이어서 좋아한다니, 바보 같아.’

‘하긴 엄마들도 운명의 짝 아닌데 아직도 좋아 죽지.’

사실이었다. 운명의 짝은 알파와 오메가 사이에서만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에 둘 다 알파인 엄마들은 운명의 짝일 수가 없었다.

그런데도 20년이 훌쩍 넘은 지금까지도 사이가 좋다. 이혼이 널리고 널린 시대라는 걸 감안했을 때, 우리가 운명의 짝을 믿을 수 없는 건 너무 당연했다.

“안 믿는 사람들도 있구나.”

“안 믿는 사람이 더 많다고 보는데요.”

“아니, 내 주변엔 믿는 사람이 더 많아서.”

“그래요?”

“어, 너 여자 친구 없지?”

“저한테 관심 있어요?”

처음 말을 하고 그대로 디저트 카페에 오자고 한 게 그런 호감의 표현이었나 싶어 묻자 누나가 웃음을 터트렸다.

“그렇게 직구로 말하는 거 보니까 너 알파긴 알파구나.”

알파여서가 아니라 그냥 내 성격인 건데.

“아니, 그냥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어서요.”

“이제야?”

“아니면 상준이한테?”

아무래도 열성보다야 우성이 낫지, 그리고 이런 식으로 나를 다리 삼으려는 여자는 이제까지도 많았기 때문에 내 입에서 자연스럽게 질문이 흘러나왔다.

“뭐야, 그건 또.”

“중고등학교 때는 상준이한테 관심 있는 애들이 저한테 말 거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대학에선 대신 말 걸어달라는 경우는 없었지만.”

중고등학교 때와 다르게 대학에서는 대부분 자력이었다. 상준이한테 관심 있는 여자들은 대부분 상준에게 직접 말을 걸었다. 아까 조리 실습에서 봤던 여자처럼.

“둘 다 아니고, 너한테 관심 있는 후배가 있거든 너만 괜찮으면 소개해주고 싶은데, 어때?”

이 얘기를 하려고 여기 오자고 한 거였구나.

타르트를 입에 넣고 씹으면서 별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한테 여자 친구가 생기면 상준이 걱정도 덜하지 않을까. 어쩌면 진짜 의외로 괜찮은 사람일지도 모르고.

“진짜?”

“한 번 만나 보기만 하는 거면 어려운 거 아니잖아요.”

“깐깐하게 따질 줄 알았어.”

“뭘 안다고 따지겠어요.”

“그래도 사진 보여 달라 소리도 안 해?”

그 말에 내가 누가 나와도 진지하게 사귈 생각이 없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저 상준이 내 걱정을 좀 덜 하고 전처럼 지낼 수 있기 위한 하나의 수단쯤으로 여겼던 것이다.

“별로, 사진이랑 실물 다른 사람 많잖아요.”

남아 있던 에그 타르트를 입에 밀어 넣으며 대답했다.

그 뒤로 남은 디저트를 먹으면서 시답잖은 잡담을 이어나갔다. 같은 전공이라 누나와는 얘기가 통하는 부분이 많았다.

6

집에 도착해서 현관문을 열자 탁탁탁 하는 발소리가 복도를 가로질러 다가왔다. 맨발이 바닥을 두드리는 소리에선 조급함까지 느껴졌다.

기다리고 있던 것인지 상준이 내 얼굴을 빤히 봤다.

“왜? 기다렸어?”

“엄마들 온 줄 알았어.”

상준은 널 기다렸을 리 없다는 듯 딱 잘라 말하고는 몸을 돌렸다. 넓은 어깨가 멀어지려는 걸 손으로 붙잡았다.

“뭐야.”

“이거.”

“뭔데.”

상준이 내가 내민 작은 상자를 받을 생각은 안 하고 멀뚱멀뚱 보기만 했다.

“호두 타르튼데, 너 이거 좋아하잖아.”

“…그 여자랑 먹었어?”

“어? 어. 먹어보고 맛있어서 사 온 건데.”

“이따 먹을게, 식탁에 둬.”

“엄마들 건 안 사 왔는데, 지금 먹어.”

“밥 먹은 지 얼마 안 돼서 별로 생각 없어.”

그 말을 끝으로 상준인 상자를 받지도 않고 그대로 몸을 돌렸다.

기껏 사 왔는데 거들떠보지도 않는 태도에 화가 치밀어 상자를 집어 던지려다 안에 있는 타르트는 아무 죄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 쿵쿵거리는 소리를 내며 식탁에 상자를 툭 던졌다.

거실 소파에 앉아 있던 상준이 시끄럽다는 듯 인상을 썼지만 일부러 더 큰 소리를 냈다.

뭐가 그렇게 불만이 많은 건데?

저도 같은 알파니까 그런 실수 할 수도 있다는 걸 알면서. 그 순간 실수했던 게 나일뿐이지 너일 수도 있던 거잖아, 언제까지 그렇게….

짜증이 치밀어 욕을 뱉으려다 입을 꾹 다물었다.

“밥 안 먹어?”

그대로 2층으로 올라가려는 발길을 상준이 붙잡았다.

“먹고 왔어, 너도 어차피 혼자 먹었으면서 왜 물어봐?”

“왜 짜증이야.”

“그냥 말한 건데? 너야말로 내내 짜증이잖아.”

“짜증 낸 적 없어.”

“그러시겠지, 야, 저거 안 먹을 거면 냉장고에 넣어놔, 괜히 상하게 해서 아무도 못 먹게 하지 말고.”

싸가지 없는 놈.

뒷말을 꿀꺽 집어삼키고 계단을 올라와 방문을 쾅 소리가 나도록 닫았다.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데 뭐 때문에 이렇게 화가 나는 것인지는 잘 알 수 없었다.

침대에 누워서 핸드폰으로 게임하다가 출출한 기분이 들어 거실에 내려왔을 땐 내가 사 온 상자가 쓰레기통에 들어가 있었고 거실엔 아무도 없었다.

어차피 먹을 거였으면 그냥 사다줬을 때 좀 먹지.

엄마들은 아직 오기 전이니 상준이 먹었을 게 확실해서 바보 같을 정도로 기분이 싹 풀렸다.

암, 디저트는 죄가 없지.

먹을 게 있나 싶어 냉장고를 열자 새로 한 반찬으로 보이는 계란 장조림이 보였다.

내가 좋아하는 반찬이어서 주저 없이 꺼냈다.

작은엄마가 해놨나.

만들었을 사람을 짐작하며 밥솥을 열어 밥을 푸는데 현관 오토락이 해제되면서 신발 벗는 소리가 들렸다.

“엄마야?”

“어, 우리 왔어.”

“뭐 하고 있어?”

“밥 먹으려고.”

“너만? 상준이는?”

“난 좀 늦게 왔고, 걘 먹었데. 엄마들은?”

“우리 것도 같이 차려줘.”

“다녀오셨어요.”

엄마들 오는 소리를 들은 상준이 아래층으로 내려오며 인사했다.

“응, 밥 먼저 먹었다며?”

“엄만 아직 안 먹었어?”

“하준이 먹는다기에 같이 먹으려고.”

“내가 차릴게.”

엄마들 앞에서는 모범 아들인 상준이 내가 들고 있던 주걱을 갖고 가더니 주방으로 척척 향했다.

“계란 장조림 했어?”

나랑 같이 부엌에 들어온 엄마들이 식탁 위에 꺼내 둔 반찬통을 보고 말했다.

“엄마가 한 거 아냐?”

“요즘 우리 바빠서 반찬 못 했어.”

“주말에도 미역국 해 놨잖아.”

“아닌데?”

“이거 맛있겠다.”

엄마들 반응에 자연스럽게 상준일 봤다. 아무 말 없이 밥을 푸고 상을 차리고 있었지만 내 시선을 확실히 피하고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반찬을 만들어서 밥 먹으라고 할 거면 그냥 같이 먹자고 해라, 뭐가 그렇게 불만이어서 그렇게 화난 척을 하는 거야.

밥을 차려주는 정도가 아니라 반찬이랑 국을 직접 만들 정도면 화는 다 풀린 건데, 왜 저런 태도인지 진짜 알 수가 없다.

식탁에 앉아 차려준 밥을 엄마들이랑 먹으면서 계속 생각했지만 상준이 생각은 역시 알 수가 없었다.

고매하신 우성 알파니 어련하실까.

7

“언제 시간 돼?”

일주일 후 복도에서 만난 아영 누나가 말을 걸었다.

“네?”

“전에 말했던 걔 소개해 줄게.”

“아, 강의 끝나고 나서는 아무 때나 상관없어요.”

“그럼 오늘 자대 등나무 앞에서 4시에 봐, 끝나고 같이 밥 먹으러 가자.”

“네.”

소개팅이 분명한데 아무런 기대도 안 되는 약속을 잡았다.

마지막 강의가 끝나고 나왔을 때 기다리고 있던 상준에게 약속 있다고 말하자 아니나 다를까 짜증 섞인 시선을 보냈다.

“전에 그 여자?”

“그 여자 아니고, 선배야.”

복도를 지나 계단을 내려가는데 상준이 내 뒤에 바짝 따라붙었다.

“그게 뭐가 중요한데? 그 여자 만나러 가는 거야?”

“아니야.”

“그럼 누구?”

“뭐가 그렇게 궁금한데?”

꼬치꼬치 묻는 상준에게 일부러 말해주고 싶지 않아 심술을 부렸다. 건물을 빠져나와 등나무 쪽으로 가는데도 상준이 계속 따라왔다.

“왜 따라오는데?”

“네가 누굴 만나서 뭔 일을 칠 줄 알고?”

“그건 그냥 사고였어, 또 안 그래.”

“그걸 어떻게 알아? 오메가 페로몬만 맡으면 발정하는….”

“박상준!”

아니길 바랐는데 결국 등하교를 같이했던 이유가 감시였다는 말에 화가 머리끝까지 차올라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야, 지금 그건….”

상준이 뒤늦은 사과를 하려는 듯 내 팔을 향해 손을 뻗었지만 탁 뿌리쳤다.

“아무한테나 발정 안 하려고 여자 소개받기로 했다, 됐냐?”

“뭐?”

기다랗게 뻗은 눈꼬리가 가느다랗게 변했다.

“아영 누나한테 여자 소개받기로 했다고.”

“언제 봤다고 여자를 소개받아?”

“너랑은 상관없잖아.”

“아, 그래? 그럼 네 마음대로 해.”

화를 내야 할 사람은 난데 상준인 오히려 더 화를 내더니 그대로 건물을 빠져나갔다. 휙휙 멀어지는 상준일 보며 바닥을 걷어찼다. 애도 아니고 뭘 자꾸 마음대로 하라는 거야?

떠나 버린 상준일 욕 하다가 늦겠다는 생각이 들어 등나무로 향했다.

등나무 그늘 아래 이미 먼저 와 있던 아영 누나와 옆에 서 있는 여자가 보였다.

아무 생각 없이 움직이던 걸음이 우뚝 멈춰 섰다. 누나 옆에 서 있는 여자는 처음 보는 얼굴이 아니었다.

입학식 날 사고의 가해자이자 피해자, 그 오메가였다.

“어? 하준!”

날 발견한 아영 누나가 손을 흔들며 오메가의 손목을 붙잡은 채 성큼성큼 걸어왔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에 놀라 발이 굳어 버리고 말았다.

불의의 사고였지만 피차 껄끄러운 사이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피해 다녔다. 일부러 알아보지 않았기에 그녀가 무슨 과인지도 모른다. 그저 나와 같이 서 있었으니까 신입생이겠거니 할 뿐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소개해 준다는 사람이 저 여자일 줄이야.

또 그런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차오르자 다리가 땅에 박힌 것처럼 움직일 수가 없었다. 도망치고 싶은 마음과 다르게 몸이 굳어서 안 움직였다.

“얼굴은 이미 알지? 여긴 김유진, 미리 말해줄까 했는데 유진이라고 알려주면 놀랄 것 같아서 일부러 말 안 했는데 괜찮지?”

“어, 아….”

당황해서 입만 벙긋거리고 있는데 아영 누나 옆에 있던 여자가 내 팔을 덥석 당겼다.

“만나고 싶었는데 혼자 있는 일이 거의 없어서, 어떻게 해야 하나 했어. 동갑인 건 아니까 말 편하게 해도 되지?”

“아니, 나는….”

뇌가 굳어 버려서 제대로 말도 못 하고 있는데 몸이 뒤로 휙 쏠렸다.

그대로 뒤로 넘어갈 것처럼 균형을 잃었는데 단단한 가슴팍이 머리에 닿았고, 커다란 손에 코와 입이 막히면서 유진이란 여자가 내 손을 놓쳤다.

“뭐 하는 짓이야? 내 거에 손대지 마!”

머리 위에서 쩌렁쩌렁 들린 소리에 놀라서 고개를 들자 상준이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씩씩거렸다.

먼저 가버리더니 언제 여길 다시 온 거야? 그리고, 뭐? 내 거? 얘가 지금 뭐라는 거야.

앞에 서 있는 둘 다 당황한 표정을 짓더니 한참 만에 김유진이 입을 열었다.

“그때 일을 사과하고 싶었던 것뿐이야, 그렇게까지 경계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사과라는 말에 안도감이 훅 밀려왔다.

“야.”

내 얼굴의 절반을 가리고 있는 팔을 툭툭 쳤지만 상준인 오히려 손바닥으로 내 코를 더 세게 눌렀다.

어떤 냄새도 맡지 못하게 하려는 것 같은 행동에 민망함과 함께 알 수 없는 우월감이 발끝에서 피어올랐다.

상준이 같은 우성 알파가 나를 위해 갔던 길을 되돌아왔다는 것이 묘하게 나를 자극했다.

“사과하러 온 거라잖아, 좀 놔봐.”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감정을 무시한 채 웅얼웅얼 말하자 상준이 마지못해 팔에 힘을 풀었다. 혹시라도 페로몬에 반응할까 걱정인지 코 아래 닿아 있던 손가락이 제일 늦게 떨어졌다.

난 앞에 있는 두 여자가 아니라 상준일 빤히 바라봤고, 상준인 김유진을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

어딘가 곤혹스러운 것처럼 미간을 잔뜩 좁힌 채 뚫어지게 봐서 시선을 받는 사람은 물론 옆에 있는 나까지 다 무안했다.

“사과?”

오만한 말투로 상준이 묻자 김유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날 일.”

상준이 날 힐끔 봤다.

‘너 얘한테 사과 받고 싶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은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내가 뭔가 말해주길 기다리던 상준인 이내 짜증 가득한 얼굴로 몸을 돌렸다. 성큼성큼 떨어지는 뒷모습이 거리가 멀어질수록 속도가 느려졌다.

네가 원하는 대로 알아서 하라는 태도였는데 답지 않게 늘어트린 어깨가 심장에 콕 박혔다.

“사과는 됐어, 나도 잘못한 거고 이미 꽤 지난 일이기도 하고.”

상준일 빨리 쫓아가야 한다는 생각에 대충 건성으로 대답했다. 사과하러 왔다는데 무시하고 가면 김유진 혼자 잘못한 것처럼 느낄 것 같았다.

“그래도 나 때문에 그렇게 된 거니까….”

“일부러 그런 거 아니잖아, 나도 일부러 그런 거 아니었고. 너나 나나 똑같지 뭐. 그날 나만 그런 것도 아닌데 너 다 사과하고 다녔어? 지난 일이니까 신경 쓰지 마, 약 잘 먹으면 되는 거잖아.”

사실은 그냥 엮이지 않는 게 제일 좋을 거 같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같이 다니면 그날 일을 아는 사람이 어떤 소설을 써 댈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아, 그래도 미안하니까 내가 밥 한번 사고 싶은데.”

“아니, 됐어.”

할 말이 끝났다는 생각에 몸을 돌리는데 김유진이 다시 내 팔을 잡았다.

“원래 오늘도 밥 먹기로 한 거 아니었어? 어디 가?”

밥 먹자는 약속을 했던 게 떠올랐지만 그럴 마음은 전혀 안 들었다. 무엇보다 김유진의 행동이 묘하게 집요하게 느껴져 부담스러웠다.

“아냐, 됐어.”

“오늘 바쁘면 내일 살게, 연락처 알려줘.”

“아니, 진짜 괜찮아.”

“그렇게 가면 내가 너무 미안해.”

김유진은 내 손목을 꽉 붙잡고 눈을 마주쳤다. 힘을 주면 뿌리치는 건 일도 아니었지만, 그런 태도를 보이고 싶지 않았다.

아무리 사회적으로 보장하는 제도가 발전했어도 여전히 오메가는 알파 입장에서 약자였다. 그리고 정상적인 교육을 받은 지성인이 약자를 무시하거나 괴롭히는 건 안 되는 일이다. 더군다나 나는 사고 친 것도 있으니까.

“어, 그럼 나중에. 연락처는 누나한테 알려 달라고 해.”

계속 거절해봐야 말만 길어질 것 같아 적당히 수긍했다. 어차피 한국 사회에서 밥 한 번 먹자는 말은 안녕이라는 인사만큼이나 흔하니까.

“저 먼저 갈게요.”

아영 누나한테 서둘러 인사한 다음에 몸을 돌려 상준이 갔을 길을 따라 움직였다.

걸음이 얼마나 빠른 건지 정문을 벗어나도록 안 보여서 서둘러 버스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지가 말한 걸 다시 생각해 보니 쪽팔려서 이불 차고 있을 게 훤했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2층 계단을 일부러 쿵쿵 소리 나게 밟았다. 내가 왔다는 기척을 있는 대로 냈음에도 상준인 아무 반응도 안 보였다.

신발만 봐도 집에 있는 거 뻔히 아는데 없는 척하긴.

“야, 방에 있냐? 네 거 왔다.”

8

문을 여는 소리와 함께 들리는 말에 베개를 머리 위로 당겨 꾹 눌렀다.

병신같이, 거기서 그런 말은 왜 해서.

저런 식으로 놀림 받을 그런 호칭이 아니다.

박하준은 기억 못 하는 것 같지만 그 말을 처음 한 건 내가 아니라 하준이었다.

유치원 때 제일 좋아하는 걸 그려 보라는 말에 하준이는 날 그렸다.

‘하준이는 상준이가 제일 좋아?’

‘네, 제 거예요.’

반짝반짝 웃는 얼굴로 지가 먼저 말했으면서 기억도 못 하고, 내가 말했다고 저렇게 놀릴 건 뭐야.

9

문을 열자 내 말을 들었을 것인데도 못 들은 척 베개로 얼굴을 가리고 있는 상준이 보였다.

마음에 안 드는 게 있으면 이불을 끌어당겨 덮는 게 아니라 베개로 얼굴을 가리는 버릇은 변하질 않았다.

“야.”

“…….”

“안 자는 거 알아, 일어나.”

“잘 거니까 나가.”

아까는 그렇게 소리쳐 놓고 또 왜 저러는 거야.

“안 놀릴 테니까 좀 일어나봐.”

“너한테 놀림 받을 짓 한 적 없어.”

“그래, 알았으니까.”

침대 끝에 걸터앉아 이불 아래로 튀어나온 종아리를 손바닥으로 툭툭 건드리자 귀찮다는 듯 상준이 발을 흔들었다.

“너 나한테 화난 거 아니었냐.”

“…….”

“대학 입학하고 계속 뚱하게 굴었잖아.”

“화났어.”

고집스러운 목소리에 한숨이 폭 나왔다. 그래, 뭐 일단 싫어하는 게 아니라니 그건 다행이네.

“언제까지 화낼 건데.”

“…….”

“그럼 왜 화났는지 말이라도 좀 해주던가.”

더 참지 못하고 불퉁하게 짜증을 부리자 상준이 그제야 얼굴에서 베개를 치우고 날 봤다.

“네가 갑자기 발정했잖아.”

“그건 사고였잖아, 나도 우성이었으면 그럴 일 없었어. 막말로 너한테 그런 것도 아닌데 그게 이렇게 길게 화낼 일이야?”

“차라리 나한테 그랬으면, 화 안 났어.”

“뭔 소리야, 알파가 알파한테 발정한다는 얘긴 들어본 적 없어.”

“됐다, 네 마음대로 해.”

또 마음대로 하라 그러네, 마음대로 하지도 못 하게 하면서.

“야, 화 풀린 거 아니까 밥 먹자. 나 배고파.”

“아까 그 여자들이랑 가서 먹던지.”

“안 먹고 너 쫓아서 왔잖아.”

침대에서 일어나 발로 등을 툭툭 건드리자 상준이 작게 욕을 뱉으면서 일어났다.

어차피 밥 차려 줄 거면서 괜히 짜증이야.

10

엄마들은 날 잘나디 잘난 우성 알파로 낳아줬는데 아무래도 난 좀 호구 같다.

식탁에 밥을 푸고 있으려니 나 스스로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조금도 성장하지 못했다. ‘내 거’라는 한 마디에 심장이 떨어질 것처럼 떨었고, 지금은 너 쫓아서 왔다는 말 한마디에 밥상 차리고 있는 알파가 어디 있단 말인가.

우성 알파면 뭐 해, 열성 알파인 박하준 앞에서 쪽도 못 쓰는데.

차라리 페로몬을 풀어서 찍어 누르면 속 편할까. 아니다, 저 둔한 박하준은 오늘따라 페로몬 냄새가 강하네, 하고 그냥 넘길 놈이다.

하준이 말처럼 알파가 알파한테 발정하는 경우는 없으니까.

물론 나도 마찬가지다. 나라고 뭐 하준이 냄새만 맡으면 좆이 발딱발딱 선 다거나 그런 건 아니다.

언제부터인지 알 수 없다. 그냥 박하준이 내 시야에서 벗어나는 게 싫다.

멍청이가 칠렐레팔렐레 하는 얼굴로 열성이니까 마치 저는 알파가 아니라는 것처럼 아무하고나 부대끼면서 친하게 지내는 것도 마음에 안 든다.

사고가 아니었다면 하준인 대학에서도 중고등학교 때처럼 오메가고 베타고 상관없이 두루두루 친하게 지냈을 것이다.

저는 그런 주제에 나는 우성이라 특별한 것처럼 생각하고 그런 태도를 보이는 것도 싫다. 내 눈에 나보다 잘난 건 박하준이 유일하니까.

입학식 날 그 사건도, 사실은 하준이 잘못이 아니라는 건 안다.

그래도 화가 났다. 매번 저는 알파가 아닌 것처럼, 나만 특별한 알파인 것처럼 그렇게 대했으면서 처음 보는 오메가한테 발정이라니.

네가 늘 그렇게 대단하다는 듯이 보는 나한테는 그런 적 한 번도 없으면서.

그게 당연한 거라면 당연한 거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십 년이 넘게 아니, 엄마 뱃속에서 같이 있던 것 까지 치면 그보다 더 오랜 기간 동안 한 번도 떨어진 적 없는 나한테는 아무렇지도 않은데 별로 좋지도 않은 오메가 냄새에 발정이라니 그건 뭔가 불공평하잖아.

내가 박하준을 훨씬 더 오래 봤고, 내가 박하준에 대해서 더 잘 아는데.

뭘 좋아하는지, 뭘 잘 먹는지, 뭘 잘하는지, 뭘 입고 자는지, 어떻게 자는지, 그런 모든 걸 다 아는데. 갑자기 튀어 나온, 생판 모르는 남한테 발정이라니.

몇 번을 생각해 봐도 그건 불공평한 처사였고, 일종의 배신이었다.

내가 있는데 넌 왜 남한테 발정해?

난 여태까지 단 한 번도 남한테 발정한 적 없는데.

내가 특이 케이스여서 페로몬을 맡지 못 한다면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분명 난 페로몬을 맡을 수 있다.

그날도 오메가 향은 맡았지만 발정할 정도는 아니었다.

박하준 러트가 가까워지면 그 향도 느낀다. 집안 곳곳에 은은하게 퍼져 있는 박하 향은 어렸을 때부터 맡았던 하준의 페로몬이다.

입학식 때도 단상에서 뛰어 내려갔던 건 오메가 페로몬 때문이 아니라 이십 년 넘게 맡아온 박하준의 페로몬이 머리가 아플 정도로 진했기 때문이었다.

수습하지도 못할 정도로 페로몬을 뿌려대는 박하준을 본 건 약을 먹기 시작한 이후 처음이었다.

11

‘내 거’ 언급 이후 상준이랑 다시 자연스럽게 말을 섞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제일 먼저 알아차린 건 역시나 엄마들이었다.

“어, 둘이 이제 화해했어?”

주말 늦은 오전, 난 소파에 누워 있었고 상준이는 바닥에 앉아 소파에 등을 기대고 TV를 보고 있는데 방에서 나온 큰엄마가 말했다.

“어?”

“상준이 삐쳐 있었잖아, 어떻게 풀어줬어?”

“내가 뭘 삐쳐?”

상준이 발끈하며 인상을 썼다.

엄마들 앞에서는 평소랑 다를 거 없이 행동했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알고 있었구나.

“삐친 거 아니었어? 난 영락없이 그런 건 줄 알았는데.”

“아니라니까!”

“그래, 아니면 말고. 점심 뭐 먹을래? 엄마가 해줄게.”

“오늘은 한가해?”

“어, 일단 바쁜 건 끝났으니까.”

“그럼 오랜만에 국수 해줘.”

“그래.”

“작은엄마는 아직 자?”

주방으로 향하는 엄마에게 상준이 물으면서 머리를 옆으로 돌리는 바람에 소파 끝에 있던 손에 상준이 머리칼이 스쳤다.

“응, 더 자게 둬. 이따 먹을 때 깨우면 되니까.”

고개를 끄덕이는 상준이 뒤통수를 보다가 손바닥으로 문질렀다.

“뭐야?”

“간지러워서.”

상준이 귀찮다는 듯 미간을 찡그렸지만 손은 쳐 내지 않았다. TV를 향해 고개를 돌려서 손바닥에 뒤통수가 가득 찼다.

큰엄마를 닮은 곱슬머리를 만지고 있는데 테이블 위에 굴러다니던 핸드폰이 진동했다.

상준이 핸드폰을 힐끗 보더니, TV로 시선을 돌렸다.

“내 거 아냐? 좀 줘봐.”

뒤통수를 문지르며 말했지만 상준은 못 들은 척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야.”

“필요하면 네가 갖고 가.”

얌전하던 분위기에서 금방 태도를 바꾼 상준을 보며 혀를 찼다. 이건 무슨 일곱 살 먹은 애도 아니고 왜 저러는 거야, 진짜.

상체를 반만 일으켜 세워 팔을 뻗어 핸드폰을 손에 들자 상준의 시선이 따라왔다. 핸드폰을 보자 모르는 번호로 문자가 와 있었다.

[아영 언니한테 물어봐서 연락 해, 오늘 뭐 해?]

짤막한 내용이었기 때문에 상준도 아마 문자를 봤을 것이다. 그리고 내용으로 누가 보낸 것인지도 바로 알았을 것이다.

[그냥 집에 있는데]

별생각 없이 손가락을 움직여 문자를 전송하고 핸드폰을 내려놓기 무섭게 다시 진동이 울렸다.

[점심 먹을래? 내가 밥 살게]

얘는 왜 이렇게 밥을 사고 싶어서 환장한 것처럼 구는 거야.

[아니, 집에서 쉴 거라 괜찮아]

나가고 싶은 마음이 없었기 때문에 미련 없이 거절했다.

“뭐야?”

“밥 사준다고 나오래.”

아래 있던 상준이 내 얼굴을 빤히 봤다. 문자를 보내고 핸드폰을 툭 내려놓자 상준이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상준의 손에 들린 핸드폰이 다시 진동했고, 상준이 얼굴을 심하게 구겼다.

[주말인데 집에만 있으면 심심하잖아, 그러지 말고 나와]

“얘는 뭔데 이렇게 만나자고 하는 거야?”

“낸들 아냐?”

“겁도 없네, 자길 덮치려고 했던 알파한테 연락을 하고.”

“사고였어, 두 번은 안 그래.”

“그걸 어떻게 장담해? 처음에도 그러려고 했던 거 아니잖아.”

“넌 내가 그러면 또 그럴 거라는 거야?”

“안 그럴 거라고 백 퍼센트 장담은 못 한다는 거지.”

뾰족뾰족하게 하는 말에 상준일 노려보다 핸드폰을 주워들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

“어, 여보세요? 어디서 볼까, 나갈게.”

일부러 들으라는 듯 크게 말하며 소파에서 일어났다.

상준이 배신당했다는 표정으로 내 입술을 뚫어지게 노려봤다. 배신은 내가 아니라 너지, 치사하게.

― 아, 그럼 사거리 백화점 맞은편에 브런치 가게 있는데 알아?

김유진은 당황한 것 같으면서도 금방 장소를 정했다.

“어딘지 대충 알겠다, 그리로 갈게.”

전화를 끊자 상준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엄마, 나 나갈 거니까 내 건 안 해도 돼.”

상준이 뭔가 말하기 전에 주방을 향해 말하고 몸을 돌렸다.

“나도 나갈 거야.”

“뭐? 둘 다 나간다고?”

엄마가 황당한 얼굴로 주방에서 나왔다.

“갑자기 어디 가는데?”

나 역시 궁금한 얼굴로 상준일 봤다. 주말이라 빈둥거릴 기세였는데 갑자기 어딜 간다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박하준 따라.”

“뭐?”

예상도 못 한 말이었다.

“너랑 같이 간다고. 내가 가면 안 되는 이유가 있어?”

속을 벅벅 긁어댔으면서 저런 식으로 당연하다는 듯 구는 건 너무 뻔뻔하잖아.

“그럼 같이 갈 이유가 있어?”

내가 덮칠까 봐 감시한다고 입을 놀리면 절대 가만두지 않겠다는 의미로 눈을 뾰족하게 떴다.

소리 내서 말하진 않았지만 내 눈빛을 읽은 건지 상준이 가만히 있다가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혼자 있으면 심심해.”

꼭 그런 이유가 아니라는 걸 알았지만 이렇게 약한 척을 해서라도 기어이 따라 움직이겠다는 태도에 마음이 약해졌다.

어렸을 때도 상준인 이런 식이었다. 장난감을 숨겨 놓고 내가 화를 내거나 울면 같이 놀고 싶다고 했었다.

어째 이런 건 어릴 때랑 별다를 게 없는 건지.

큰엄마는 우리 둘을 빤히 보더니 어깨를 으쓱했다.

“그럼 둘 다 나간다는 거지?”

“어.”

내가 대답하기 전에 상준이 먼저 쏙 대답하더니 2층으로 성큼성큼 올라갔다. 옷을 갈아 입으러 가는 게 분명한 모습이었다.

따라오지 말라며 실랑이하는 것도 귀찮아서 핸드폰을 들었다.

[동생이랑 같이 갈 건데, 괜찮아?]

조금 전과 다르게 핸드폰은 바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싫다고 하면 그냥 상준이랑 점심이나 먹고 와야겠다.

둘이 밖에 나가는 건 오랜만이네.

어차피 김유진을 만나고 못 만나고는 별 상관없었다.

청바지에 얇은 니트를 입고 방문을 열자 후드티를 입은 상준이 나왔다.

“엄마, 우리 나가.”

“늦게 올 거야?”

“아니, 그럴 거 같지 않은데.”

“우리 이따 영화 보고 저녁 먹고 올 거야.”

오랜만에 한가한 주말이라 엄마들은 데이트를 하러가겠다는 말이었다.

“알겠어.”

“저녁은 우리끼리 먹을게.”

상준이 신발을 신고 현관문을 열었다. 저녁까지 밖에 있을 생각은 없었는데 상준이 저렇게 대답하는 걸 보니 그래도 상관없겠단 생각이 들었다.

엄마들처럼 오랜만에 영화를 한 편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상준이랑 영화 취향은 잘 맞아서 예전에는 자주 보러 다녔었다. 대학에 들어온 뒤로 영화는커녕 외출도 안 했지만.

영화를 보면 뭘 보는 게 좋으려나. 인터넷 서핑하면서 봤던 트레일러들을 떠올렸다.

“추리 영화 개봉했던데 그거 볼래?”

“셋이 영화를 보자고?”

상준이 기가 막힌 듯 헛숨을 뱉었다.

“아니, 걔 너랑 같이 간다고 하니까 대답 없어, 연락 없으면 그냥 둘이 놀아도 되잖아.”

“…어?”

“너 혼자 있기 심심하다며, 아니면 그냥 집에 가?”

“됐어, 나왔는데 뭘 집에 가.”

“그럼 그 영화 볼 거야?”

“밥부터 먹어.”

상준이 대답하는 것과 동시에 뒷주머니에 넣어뒀던 핸드폰이 진동했다.

[그래]

김유진에게 온 대답은 상준과 함께 만나도 상관없다는 내용이었다.

울컥해서 정한 것이긴 하지만 선약을 한 건 김유진이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짧은 사이 완전히 잊고 있었다.

“뭐야?”

상준이 내 핸드폰 화면을 보기 위해 고개를 숙였다.

“얘는 진짜 왜 이렇게 널 만나고 싶어 하는 거야?”

“나도 모른다니까.”

“진짜 이해할 수가 없네.”

상준이 불만 가득한 얼굴로 바닥에 헛발질하더니 앞장서 걷기 시작했다.

김유진과 함께 만나는 건 마음에 안 들지만 집에 갈 생각은 없는 것처럼 보였다.

12

“왜 만나자고 한 거야?”

가게에 도착해서 앉기 무섭게 상준이 거만한 태도로 물었다.

“너한테 만나자고 한 건 아닌데.”

김유진이 상준을 보며 작지만 확실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렇게 말하면 오메가에 대한 편견이라고 하겠지만 김유진은 오메가 같지가 않았다.

우성 알파 박상준 앞에서 기죽는 게 전혀 없는 건 조금 신기했고, 오메간데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싶었다.

보통의 오메가라면 알파, 그것도 우성 알파 앞에서는 주눅 들 수밖에 없으니까.

“그러니까 얘를 왜 만나자고 한 거냐고.”

“밥 사고 싶어서.”

“너한테 얻어먹을 필요 없는데.”

“얻어먹는 게 아니라, 이 경우는 대접하는 거라고 해야 할 거 같은데.”

“됐어, 둘이 왜 그러는 거야?”

쓸데없는 기 싸움이라는 생각에 둘을 말리고 메뉴판을 펼쳤다.

이왕 온 브런치 가게니 평소 먹을 기회가 없던 에그 베네딕트랑 후르츠 팬케이크를 주문했다.

“프렌치토스트도 시킬까?”

상준일 보며 물었다. 이미 두 개나 골랐기 때문에 세 개는 양이 좀 많은 게 아닐까 싶었다.

“시켜, 남으면 내가 먹으면 되잖아.”

김유진은 우릴 빤히 보다가 메뉴판을 덮고 직원을 부르더니 내가 말한 메뉴에 파니니를 추가해서 주문했다.

“커피 마실래?”

“박하준은 커피 별로 안 좋아해, 로얄 블렌드 있으면 그거 두 잔 주세요.”

상준이 당연하다는 듯 홍차를 주문했고 김유진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주문한 음식은 맛있었지만 분위기는 삭막했다. 김유진도 아마 이런 상황을 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밥 먹고 뭐 할 거야?”

“영화 보러 갈까 하는데.”

“둘이?”

“어, 오랜만에 나왔으니까.”

딱히 거짓말할 이유가 없어서 솔직하게 말하자 김유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같이 봐도 돼?”

“어?”

“안 돼.”

“예매 내가 할게, 뭐 보려고 했어?”

상준이 말을 들었을 것이 분명한데 김유진은 완전히 마이페이스였다.

내 입장에서는 뭐 싫다, 좋다 할 이유가 없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상준인 그게 불만인 것 같았다.

하지만 애초에 상준이랑 둘이 놀려고 했던 게 아닌데, 김유진한테 그냥 가라고 하는 것도 좀 웃기잖아.

어영부영 식사를 마치고 영화관으로 자리를 옮겼고, 마침 시간이 맞아 바로 상영관으로 입장했다.

“내가 여기 앉을 거야.”

“난 네 옆에 앉기 싫어.”

상준이 내 옆에 앉겠다고 우겼고 김유진은 상준이 옆에 앉기 싫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세 살배기 어린애들도 이런 유치한 싸움은 안 하겠다.

“내가 가운데에 앉을게, 그럼 됐지?”

현명한 타협안을 제시하고 자리에 앉자 내 왼쪽에 김유진, 오른쪽에 상준이 앉았다.

어쩐지 묘하게 어색한 기류가 흘렀지만 영화만 보고 집에 갈 거니까 괜찮겠지하고 둘이 내뿜는 불만을 모르는 척했다.

대저택에서 살인사건이 벌어지면서 시작한 영화는 치정이 얽히면서 점점 극으로 치달았다.

단순한 추리물인줄 알았는데 치정이 얽히면서 예상치 못한 러브신이 나왔을 때 나도 모르게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이런 식으로 노골적인 정사 장면이 있는지 몰랐어서 괜한 민망함에 당황하고 있는데 어깨 위로 가벼운 무게가 툭 떨어졌다.

고개를 돌려 보자 김유진이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있었다. 가느다란 머리칼이 뺨을 건드렸고 좋은 냄새가 은은하게 풍겼다.

향수? 아니다, 페로몬이다.

조절을 잘 못 한다고 하더니 자기 몸에서 나오는 걸 모르는 건가? 이 정도는 상관없으려나.

영화 보는 중에 말을 걸기도 뭐해서 스크린으로 고개를 돌리는데 오른쪽에서 상준의 시선이 느껴졌다.

멋쩍은 기분이 들어 뺨을 긁적거리는데 상준이 내 어깨에 기대 있는 김유진을 힐끔 보더니 내 손을 잡아당겨 꼭 쥐었다. 금방이라도 일어날 것 같은 갑작스런 행동이었다.

뭐 하는 거냐고 말하기 위해 입술을 움직이려는 찰나 내 불만을 느낀 것인지 상준인 내 손을 툭 던지듯이 놓아주고는 스크린을 봤다.

화면은 격정적인 러브신이었는데 그걸 보는 상준의 표정은 전에 없이 살벌했다.

도대체 이 분위기 뭐냐고.

영화에 집중할 분위기가 아닌 것 같아 크게 숨을 내쉬었다가 들이마시는데 진한 향이 느껴졌다.

아까는 은은한 정도였다면 지금은 장난이 아니었다.

이런 공공장소에서? 이러다 잘못하면 입학식 2탄을 찍을 것 같았다.

“…김유진.”

“응?”

“너, 지금 페로몬 나와, 약 갖고 있어?”

고개를 숙여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 있긴 한데….”

“나가자.”

김유진의 손을 잡아당기며 일어났다. 몸을 움직이자 페로몬이 더 진하게 느껴졌다. 상준이한테 말해봐야 그럴 줄 알았다는 빈정만 돌아올 것 같아서 내가 해결하고 싶었다.

어차피 상준인 지금 김유진 페로몬을 잘 느끼지도 못 할 것이다.

냄새를 더 맡으면 나도 위험해질 거 같아 김유진 손목을 꽉 잡고 걸음을 서둘렀다.

상영관을 빠져나오는데 머릿속에서 사이렌이 미친 듯이 울렸다.

위험하다. 분명 위험한데 페로몬을 뿜어내는 오메가를 버리고 갈 수도 없었다. 내가 그냥 가버려서 다른 알파가 덮치면 그건 그것대로 죄책감에 시달릴 일이 될 것 아닌가.

상영관을 빠져나와 비상구로 향했다. 비상구 문을 닫고 계단에 앉히자 김유진이 쓰러지듯 벽에 몸을 기댔다.

“약 어디 있어? 먹는 거야? 주사는 없어?”

김유진은 내 팔에 꼭 매달려 숨만 쌕쌕 내쉬었다. 이미 반쯤 이성을 놓은 것처럼 눈이 풀려서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냄새가 점점 더 진해졌다.

도대체 이 정도로 페로몬을 조절 못 하면서 왜 나온 거야?

내가 이런 식으로 페로몬 조절을 못 했다면 엄마들은 약 없이는 절대 외출하지 못하게 할 것이다.

어떻게든 참기 위해 입술을 짓씹었다.

“약 어디 있어?”

김유진이 덜덜 떨리는 손으로 가방을 가리켰다. 가방에서 약을 꺼내기 위해 손을 뻗는데 김유진이 내 허리를 와락 끌어안았다.

콧속을 파고드는 페로몬에 허리가 울리면서 아래가 불끈거렸다. 오메가 페로몬에 내 몸이 반응하기 시작했다. 이대로 김유진이랑 같이 있으면 나까지 위험하다.

역시 그냥 다른 사람한테 맡길 걸 그랬나, 지금이라도 다른 사람을 불러오는 편이 나을까.

비상구는 잠깐이라면 괜찮을 것 같은데.

이성의 끈을 놓지 않기 위해 할 수 있는 오만 잡생각을 다 떠올렸지만 이미 내 입에서 나오는 숨도 뜨거웠다.

“잠깐, 이거 놔.”

김유진의 팔을 뿌리치려고 했지만 더 세게 붙어 와서 힘들었다.

“어차피 지금 상태면, 약 먹어도 안 좋아, 그러니까 그냥 나랑….”

“너랑 뭐?”

띄엄띄엄 말하는 김유진의 말을 날카롭게 쳐내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상준이 짜증이 단단히 난 표정으로 김유진을 노려봤다.

“너 일부러 이런 거지?”

저건 또 무슨 말이야?

무슨 말인지 따져 묻고 싶은데 머리와 다르게 몸에서 힘이 빠졌다. 정신이 몽롱해지면서 김유진이 뿜어내는 페로몬에 머리가 멍해졌다.

아, 더 이상 못 참겠다. 냄새 진짜 좋아….

김유진을 향해 움직이려는 내 몸을 상준이 확 잡아당겼다.

“넌 어딜 가려고 그래?”

“하아, 나, 하아….”

“멍청하긴.”

상준이 내 어깨 부근을 꽉 잡아당겨 끌어안았다.

“놔, 이거, 나, 하아….”

오메가한테 가고 싶어서 몸을 바르작거렸지만 상준인 팔에서 힘을 빼지 않았다.

“가자.”

“싫어, 어떻게, 가…. 혼자 두고 가기도….”

“그럼 네가 뭘 어떻게 할 건데?”

머리가 윙윙 울리는 와중에도 페로몬을 뿜어내는 오메가가 이런 곳에 혼자 있으면 위험할 거라는 생각이 들어 핑계 아닌 핑계를 대며 어물어물 말했다.

본능을 자극하는 냄새가 폐 속으로 밀려들어왔다. 다리 사이에 열이 몰려 후끈거렸다.

“119 신고했어, 여기 계속 있으면 너도 위험해.”

상준이 날 억지로 잡아 당겼다. 단단하게 솟은 팔 근육에 절대 놓아줄 생각 없는 것처럼 힘이 들어갔다.

“가긴, 어딜 간다고 그래?!”

김유진이 상준일 노려보며 씨근거렸다.

“거봐, 너 같은 오메가들 많이 봤지, 내가.”

상준인 또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했다. 무슨 말이냐고 묻고 싶었지만 설명해 줄 분위기도 아니었고, 듣는다고 알아들을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그보다는 오메가 냄새가, 너무 좋아서 이젠 다리 사이가 터질 것 같았다.

“흐으, 야, 잠깐만….”

“또 맞고 싶어?”

상준일 밀어내자 짜증을 버럭 내더니 날 잡아당겨 비상구를 빠져나왔다. 다리에 힘이 풀려 제대로 걷지도 못한 채 질질 끌려갔다.

“넌 왜 따라, 와서….”

맥을 못 추는 게 민망해 엉뚱한 화풀이를 했다. 코끝에 감도는 냄새를 쫓아가고 싶어서 몸이 더 말을 안 들었다.

“그럼 네가 그 여자랑 나가는데 보고만 있어?”

“하아….”

“아니면, 내가 진짜 방해한 거야?”

“그게 아니고….”

순간 휘청거려 무릎이 꺾이는 바람에 상준이 내 허리에 팔을 감아 당겼다.

“미친.”

상준이 머리를 헝클이며 욕을 뱉더니 극장 화장실로 빠르게 움직였다.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한 상준인 제일 안쪽 칸에 날 밀어 넣더니 내 앞에 섰다. 틈 없이 바짝 붙어서 답답했다. 몸이 뜨거워지고 있다는 걸 만져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비켜, 집에 갈 거야….”

정확하지 않은 발음이 내 입술 사이로 빠져 나왔다.

“가긴 어딜 간다고 그래? 너 페로몬 나오잖아.”

그럼 여기서 뭘 어쩌라고, 기다린다고 페로몬이 들어갈 것도 아니고.

아니, 됐으니까 차라리 그냥 시원하게 한 발 빼고 싶은데.

상준이가 날 뚫어지게 보고 있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데 내 바지춤에 손이 닿았다.

내 손이랑 비슷하면서도 다른 손.

“야…!”

“이래서는 가지도 못할 거 아냐.”

“내가 알아서, 할 거니까, 나가….”

“제대로 하지도 못 할 거 같은데?”

“아니라고, 오….”

힘없는 목소리가 길게 늘어져서 꼭 아양이라도 떠는 것 같았다.

아, 이게 아닌데. 머리가 어질어질 하면서 아까 김유진이 뿜어대던 냄새가 다시 떠올랐다.

“아니면 또 맞고 기절할래?”

“하지 말라니까….”

바지 버클을 푸는 상준의 손을 밀었지만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았다.

간신히 정신을 유지하긴 했지만 오메가 페로몬을 너무 많이 마셨다. 그 효과가 제대로 나타나기 시작해서 몸에는 정말 힘이 안 들어갔다.

“아, 흐으….”

나와 닮은 손이 아래를 더듬고 팬티 속으로 파고들었다.

119를 불렀다는 말은 진실인지 밖이 소란스러워졌다. 딴 세상 소리처럼 느껴지는 소음을 뒤로 한 채 상준이 팔목을 양손으로 붙잡았다.

아무리 페로몬을 맡았어도 상준이 손에 딸 치는 것만큼은 피하고 싶은데 팬티를 더듬는 손은 거침이 없었다.

“하지, 말라니, 하읏.”

낮은 체온의 손이 닿자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타인의 손에 성기가 닿은 건 처음이라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금방 해.”

“흣, 안 된다니, 까….”

“뭐가 안 되는데, 아니면 김유진이 좋아?”

“그건, 아니, 그게 아니고….”

고개를 저으며 필사적으로 부정했다. 김유진이 만져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건 아니다. 지금 내가 흥분한 원인이 김유진이라고 해도 이건 다른 문제였다.

그러니까, 아무리 내 상태가 이상해졌다지만, 그래도 이거 좀 아닌 거 같은데.

진짜, 이건, 좀, 이상한 거 아닌가?

“앗.”

상준의 엄지가 귀두를 꾹 눌렀다가 옴폭 패인 뒤쪽을 손톱으로 긁었다. 소름 끼치도록 강한 자극에 다리에 힘이 풀려 상준이한테 몸을 기댔다.

각진 어깨에 턱을 올리자 상준이 혀 차는 소리가 들렸다.

“도대체 왜 발정하는 거야.”

“내가 원한, 게 아니야….”

억울한 기분이 들어 눈물이 핑 돌았다. 우성 오메가 페로몬에 반응하는 건 먹이를 보고 반응하는 개와 다를 게 없다.

“발정한 게 나쁜 거야.”

“너, 그런 말 할 거면 가.”

울컥 짜증이 솟아서 애처럼 칭얼거리자 상준이 성기 기둥을 감싸서 쭉 훑어 올렸다.

“싫어.”

얄미운 목소리로 확실하게 대꾸하는 것에 심술이 일어 상준이 후드를 옆으로 잡아당겨 드러난 목덜미를 세게 깨물었다.

“읏.”

고통을 호소하는 낮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내 성기를 쥔 상준이 손에 힘이 들어가더니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탁탁탁, 살을 치대는 일정한 소리가 영화 속에 등장했던 정사 장면보다 이백 배 정도는 야하게 느껴졌다.

“아, 흣, 으읏….”

가르쳐 준 적도 없는데 내가 좋아하는 부분을 정확히 만져 대서 금방이라도 쌀 것 같았다.

쌍둥이라서 좆 모양도 똑같이 생긴 걸까?

어떻게 이렇게 좋아하는 부분을 꽉꽉 조이면서 누르는 거지? 아니면 내가 지금 흥분 상태라 어딜 만져도 다 좋은 건가?

“으, 흐읍….”

지금 이 상태도 쪽팔린 데 빨리 싸는 것까지 보여주고 싶지 않아 발가락에 단단히 힘을 줬다.

“내 좆이, 좀 더 큰 거 같아.”

가까이 달라붙어 있어서 상준이가 말할 때마다 귓바퀴가 간지러웠다.

미친, 지금 상황에서 왜 그런 걸 비교하는 건데.

“아, 하으, 하지, 거기… 그만, 해, 나오겠, 어….”

이러다 영락없이 상준이 손에 싸겠다 싶어 허리를 떨었지만 성기를 붙잡힌 상태에서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성기 끝에서 흘러나온 분비물 때문에 상준이 손이 움직일 때마다 질척질척한 소리가 났다.

“하, 읏, 하지… 야, 진짜, 거기, 그만….”

“싸, 싸야 가지.”

거칠게 움직이는 손과 다르게 말은 또 다정해서, 숨결과 함께 섞여드는 목소리가 유혹적으로 느껴졌다.

머릿속이 어지럽게 휘저어지며 그대로 허리를 부르르 떨었다.

상준이 손에 쏟아내고 나자 멍했던 머리가 조금 개운해졌다. 여전히 몸은 뜨거웠지만 시끄럽게 울리던 사이렌 소리는 가라앉았다.

“하아, 하아….”

거칠어진 숨을 고르며 상준이 눈치를 슬쩍 봤다. 그리고 하반신이 바짝 붙어 있는 게 어색해 떨어지려는 순간 깨달았다.

나야 오메가 페로몬을 맡아서 그런 거라지만.

넌 왜 선 거야?

꿀꺽.

마른 침 넘어가는 소리가 내 귀에 크게 울렸다.

“…이제, 괜찮아진 거 같아.”

살짝 떨어지자 상준이 제 손에 묻은 희멀건한 액을 빤히 봤다. 나 역시 알파였기 때문에 손에 묻은 정액의 양이 적지 않았다.

민망함에 휴지를 잔뜩 풀어 손에 올려놓자 상준이 내 얼굴을 빤히 보다가 휴지를 꽉 움켜쥐었다.

상준이 손안에서 구겨진 휴지에 정액이 달라붙었다.

“아직 페로몬 나오는데?”

상준이 목덜미에 대고 킁킁거렸다.

“이 정도는, 금방 가라앉아.”

아니, 안 가라앉아도 여기서 뭘 더 어쩐다는 거야, 정신 돌아왔을 때 집에 가야지.

“그래?”

그래, 너야 워낙 잘나서 오메가 페로몬에 끄떡도 안 하니까 모르겠지만, 이젠 괜찮을 거다, 아마도.

“오메가한테 발정했으니까 병원에라도 가야 하는 줄 알았는데, 이 정도로도 괜찮아지는구나, 우성 오메가라고 해도 별 거 아니네.”

비꼼이 가득 묻은 말에 짜증이 치밀었다. 몇 번을 말하지만 정말 내가 원해서, 일부러 이런 일이 벌어진 게 아니다.

“그러는 넌.”

“나 뭐?”

“너도 섰잖아.”

상준의 고개가 삐딱하게 기울어졌다.

“아닌 척했지만 너도 김유진 페로몬에 반응한 거 아냐?”

“내가?”

“그래, 선 거 다 티나.”

“이건 그런 거 아냐.”

“아니긴 뭐가 아냐?”

말은 아니라고 해도 몸은 정직했다. 원래 남자는 머리와 허리 아래가 따로 노는 생물이라고 하지 않나.

“…그럼, 내가 발정했으니까 네가 빼줘야겠네.”

“그게, 또 왜 그렇게 되는 건데.”

“내가 방금 해줬잖아.”

“시킨 적 없어.”

“그럼 발정한 오메가 앞에 그냥 뒀어야 했던 거야?”

그렇게 하지도 않을 거였으면서. 도대체 원하는 게 뭔지 알 수 없다.

동생 앞에서 헐떡거린 것도 모자라 손에다 질펀하게 사정까지 한 내 입장도 생각해 줬으면 좋겠는데, 박상준은 전혀 그럴 기미가 안 보였다.

“궁금하지 않아?”

“뭐가.”

“쌍둥이니까, 좆 모양도 똑같이 생겼는지 아닌지.”

상준이 내 성기를 주물럭거렸을 때 떠올렸던 의문과 같은 말이 흘러나와 얼굴에 열이 몰렸다.

진짜 쌍둥이라서 그런 걸까. 속을 들킨 것 같은 기분을 떨치기 어려웠다.

“…그딴 게, 왜 궁금해?”

영화관 화장실에서 이런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에 벗어나고 싶은데 상준이 보란 듯이 바지 버클을 풀었다.

메마른 공기를 가르고 떨어지는 달칵 소리는 유난히 크게 들려서 귀를 틀어막고 싶어졌다.

“야, 너 뭐 하는….”

“나도 발정했어.”

그거야 보면 안다. 새삼스럽게 말하지 않아도 아까부터 알고 있었으니까.

역시 우성이어도 오메가 페로몬은 어쩔 수 없는 건가. 하긴 김유진도 우성이라고 했으니까.

“너 한테.”

뒤통수를 세게 맞은 것 같은 충격에 골이 징하고 울렸다. 내가 지금 무슨 소릴 들은 것인지 단번에 이해가 되지 않아서 눈알을 뱅뱅 굴렸다.

“무슨, 소리야?”

“못 알아들어? 내가 네 냄새에 발정했다고.”

상준이 나와 제 얼굴을 손가락을 뻗어 가리키며 하나하나 되짚어가며 말했다.

말귀를 못 알아듣는 초등학생에게 차근차근 설명하는 어조였지만 아무리 그래도 단번에 이해되지 않았다.

얘가 지금 뭐라는 거야?

그동안 알고 있던 이론, 알파는 알파한테 발정하지 않는다.

당연하게 여겼던 도덕적 기준, 가족끼리 성애를 느끼지 않는다. 같은 것들을 모조리 부수고 망가트리는 발언에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동시에 강한 페로몬이 내 어깨를 짓눌렀다.

김유진의 오메가 향이 달곰하고 가벼웠다면 그보다 훨씬 진하고 무거운 냄새.

누구 페로몬인지는 일일이 따지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처음 태어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단 한 순간도 내 주변에서 떨어진 적 없는 향이었으니까.

13

말을 뱉은 순간 깨달았다.

입학식, 그날 그 난장판에 뛰어든 건 박하준을 내 곁으로 끌어오기 위함이었다. 다른 누군가가 채가기 전에, 다른 누군가가 하준이 눈에 차기 전에.

그 넓은 강당에서 하준이 페로몬이 누구보다 진하게 느껴졌고, 그에 흥분했다.

성적 흥분과는 조금 다를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박하준 냄새에 반응한 것이 사실이다.

뺏길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앞에 강한 소유욕이 일면서 몸이 먼저 반응했다.

박하준은 내 거야.

좁은 화장실에서 확 풀어 버린 페로몬에 당황한 하준이 손을 꽉 잡았다. 당장 끝까지 하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기엔 장소가 마땅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도망치고 싶어서 어쩔 줄 모르는 박하준을 이 이상 모는 건 내 숨통을 조이는 결과가 될 거니까 참아야 했다.

“너한테, 해달라고 안 할 테니까.”

어렸을 때처럼 살살 구슬렸다. 내가 못된 장난을 쳐서 화를 내고 울어도 결국 나를 혼자 두지 못했던 박하준은 이번에도 그럴 것이다.

“손만 잡아줘.”

손만 잡고 잘게, 같은 상투적인 말을 하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하준이 손에 깍지를 꼈다.

닮은 손가락 열 개가 지금까지 한 번도 얽히지 않았던 모양으로 엉켰다. 그 모양새가 퍽 야하게 느껴져 입술에 침을 발랐다.

내 안에 자리 잡고 있던 도덕이 뿌리째 흔들리는 기묘한 감각은 흥분을 부추겼다.

하준이 시선이 손에서 떨어지지 않는 틈을 타 지퍼를 내려 이미 딱딱하게 발기한 성기를 끄집어내고 휴지를 들고 있는 손으로 감싸 쥐었다.

정액을 머금은 휴지가 내 좆에 달라붙었다.

숨 쉬는 법을 잊은 것인지, 말하는 법을 잊은 것인지 입만 벙긋거리는 얼굴을 보면서 좆을 흔들었다. 그저 얼굴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머리에 피가 몰렸다.

“하아….”

거친 휴지 표면이 예민한 살갗을 스쳤다. 끈적하게 젖은 휴지는 누가 보기에도 청결과 거리가 있었지만, 박하준 정액이 묻은 휴지라고 생각하자 불쾌하긴커녕 흥분만 더 강하게 몰려왔다.

손만 뚫어지게 보던 시선이 사타구니 부근에 닿았다. 노골적으로 움직이는 손을 더 보지 못하고 하준이 눈을 질끈 감았다.

눈꼬리에 주름이 질 정도로 세게 감은 눈을 보고 있으려니 있는지도 몰랐던 가학심이 솟아났다.

이대로 힘으로 밀어붙이면 더 하게 해주지 않을까? 화는 내겠지만 그렇다고 평생 화를 낼 건 분명 아니니까.

내리누르지 못한 욕망이 이기심을 근거로 대가리를 쳐들었다.

“다리, 좀 벌려봐.”

“뭐 하게.”

불안하게 흔들리는 눈동자가 나를 향했다. 지금 이것만으로도 머릿속이 과부하가 걸린 게 분명한 얼굴에 구미가 당겼다.

평소에는 말간 얼굴이 조금 전 사정 때문에 살짝 흐트러진 게, 그러니까 굳이 평범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예뻤다.

좀처럼 움직일 기미가 없는 하준이 신발 사이에 발을 밀어 넣고 왼발을 옆으로 밀자 다리가 벌어졌다.

아직 정리하지 못한 바지춤을 좀 더 아래로 내리자 사정 후 힘이 빠졌던 좆이 살짝 발기한 게 보였다.

“너도 다시 섰네.”

“너, 페로몬, 지금….”

“알파는 알파 페로몬에 발정 안 한다며?”

반박할 말을 잃은 입술이 꽉 다물어졌다.

허벅지 사이로 커다랗게 발기한 좆을 미끄러트리며 휴지를 쥐고 있던 손으로 벽을 짚었다. 완전히 내 품에 갇히는 자세에 당황한 하준이 내 어깨를 밀었다.

“야, 흣, 뭐 하는 거야.”

“넣지는 않을 테니까.”

아까처럼 한 번 더 조르곤 허리를 앞뒤로 움직이자 하준이 내 손을 꽉 움켜쥐었다. 페로몬에 눌려 쉽게 움직이지 못하는 걸 알아서 허리를 조금 더 빠르게 움직였다.

하준이 불알에 내 좆이 스칠 때마다 몸이 파르르 떨리는 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몇 번 움직이자 하준이 좆도 완전히 팽창해서 내가 움직일 때마다 부딪히며 덜렁거렸다.

“아흣, 그만, 이상, 해… 이런 거, 하지, 마….”

이상할 만도 하지, 지금 이 자세는 삽입만 안 했을 뿐 섹스하는 거랑 별다를 게 없는 자세니까.

그래도 밀치지는 않는 거 보면 완전히 싫은 건 아닌 게 아닐까, 아니면 내 페로몬에 눌려서 못 움직이는 건가.

멋대로 행복 회로를 돌리는 사고를 막고 움직이는 것에 집중했다.

쿠퍼액이 흘러나와 질척해진 성기가 허벅지를 건드릴 때마다 쿨쩍거리는 소리가 났다. 하준이 내 어깻죽지에 코를 비비적거렸다.

흥분한 박하준의 페로몬이 진해졌다. 평소에도 자주 맡았지만 이런 상태에서 맡으니 머리가 다 멍해졌다.

미치겠네, 진짜, 씨발.

안 넣는다는 얘기를 괜히 했다는 후회가 밀려와 입술을 짓씹었다.

키스, 지금 하면 싫어할까.

내 영역에서 꿈지럭거리는 박하준한테 하고 싶은 다른 것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귀두가 노팅이라도 할 것처럼 부풀어서 아래서 비비던 두 좆을 손바닥으로 붙잡았다. 모양은 닮았는데 크기가 다른 좆이 손에 가득 들어왔다.

“잡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머뭇거리던 하준이 내 손을 감싸며 좆을 쥐었다. 나머지 한 손은 여전히 깍지를 낀 채 허리를 흔들자 눈앞이 번쩍번쩍 점멸했다.

냄새가, 손짓이, 몸짓이, 박하준의 모든 게 날 미치게 했다.

분명 나랑 닮았는데, 태어났을 때부터 옆에 있으면서 사사로운 것까지 다 아는데 왜 이렇게 더 갖고 싶어서 안달이 나는 것인지.

“아응, 그만, 흣….”

밀려온 사정감을 억누르지 못하며 하준이 손에서 좆을 놓고 까치발을 들었다. 벗어나고 싶어 하는 움직임에 내 손에 더 힘을 줬다.

열이 오른 살덩이를 세게 쥐자 하준이 내 어깨를 주먹으로 때렸다.

“좋으면, 그냥, 싸.”

“흣, 이상, 해… 너랑 이런 거, 왜, 아읏….”

“아무한테도 말 안 해.”

둘만의 비밀이라고 귓가에 속삭이며 달콤하게 꼬드겼다. 귓바퀴를 혀끝으로 살짝 건드리자 내 어깨에 올라와 있던 손이 미끄러지며 셔츠의 가슴팍을 꽉 움켜쥐었다.

“아, 응응….”

작게 울먹이는 신음이 화장실을 울린 순간 밖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하준이 놀란 토끼 눈으로 날 올려다봤다. 멈춰야 하는 순간이라는 건 알지만 그 눈빛에 오히려 몸이 동했다.

허리를 뒤로 물렸다가 아까처럼 허벅지 사이로 좆을 박아 넣었다. 발기한 박하준 좆을 건드리고 불알을 툭툭 치대자 하준이 허리를 뒤틀었다.

“하읏…!”

가느다란 비명에 밖에 있던 남자들이 ‘무슨 소리 못 들었냐?’ 같은 말을 하는 게 들렸다.

하준이 입술을 꽉 깨문 채 고개를 저었다.

그만해 달라는 신호였지만 지금 그런 표정으로 말하는 건, 역효과지.

어차피 하준이 오른손은 내가 붙잡고 있고 다른 손은 내 셔츠를 붙잡고 있느라 입을 막지도 못했다. 나를 놓치면 쓰러질 것 같은지 셔츠를 움켜잡은 손마디는 잔뜩 힘이 올라가 붉었다.

“입 막아줄게.”

이쯤 되니 행동 하나하나에 이유를 만드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

여전히 놀라서 안절부절못하는 하준이 입술에 그대로 입술을 겹치고 허리를 움직였다.

입술을 쪽쪽 빨자 하준이 몸에 힘이 들어갔다. 허벅지 근육이 단단해지면서 아까보다 더 세게 좆을 감쌌다.

문이 덜컹거렸지만 다행히도 밖에 있는 사람들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아마도 베타일 것이다. 오메가나 알파였다면 화장실에 들어온 순간 뿌려져 있는 페로몬을 느꼈을 테니까.

“우으, 응….”

내 입속으로 넘어오는 신음을 다 먹어버릴 것처럼 하준이 입술을 빨았다.

흥분도가 절정으로 치달았다. 숨이 거칠어지고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데 부족했다.

사정이 다가오는 게 이토록 아쉬운 건 처음이었다.

14

집에 돌아가는 길은 상준이한테 멀찍이 떨어져서 걸었다. 그런 짓을 해 놓고 아무렇지도 않을 만큼 뻔뻔한 정신머리는 내게 없다.

마음 같아서는 집에 가고 싶지도 않았는데 미약하지만 아직도 페로몬이 나오고 있어서 밖에 돌아다니는 건 위험했고 대충 정리한 아래도 찜찜했다.

앞서 걷던 상준이 세 걸음 정도 뒤따라 걷는 나를 힐긋 봤다. 뭔가 하고 싶은 얘기가 있는 것 같았지만, 내가 아무 말도 안 해서 상준이도 아무 말도 안 하는 것이다.

상준이 손에 또 한 번 절정을 느낀 뒤 힘이 완전히 빠졌다. 마음 같아서는 차라리 기절하고 싶었다.

기절하고 깨면 지금 일이 모두 없던 일이 되어 있지는 않을까.

물론 말도 안 되는 얄팍한 기대였다. 현실의 나는 동생 손에 두 번이나 절정을 맞이했다. 닮은 손, 닮은 성기로.

하아, 한숨이 흘러나와 손바닥으로 머리를 엉망으로 헤집었다.

상준이 성기가 비벼진 허벅지가 바지에 스칠 때마다 화끈거렸다. 보지 않아도 붉은 자국이 남았을 게 훤했다. 씻을 때도 못 볼 것이다.

화장실에서 일을 치른 다음 엉망이 된 아래를 정리해 주려는 상준의 손을 밀어내고 스스로 닦고 바지를 입었다. 수치스러움과 동시에 치욕감이 밀려왔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건 아니잖아.

집에 도착해서 문을 열자 집안이 고요했다.

큰엄마가 오늘 영화 보러 나간다고 했던 말이 떠올라 한숨이 나왔다. 이렇게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박상준이랑 집에 둘이 있는 건 고역이다.

“야, 저녁 어떻게 할래?”

“안 먹어.”

나는 고민이 어깨를 짓눌러서 천근만근인데 박상준은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다.

도대체 무슨 정신 상태야? 우성이면 원래 다 저런 거야? 내 냄새에 발정했다는 이상한 말이나 하고.

아니, 페로몬에 발정했으니까 형이든 남이든 상관없는 일이라는 거야? 그게 제정신이야?

쌍둥이니까 말하지 않아도 알던 것들이 분명 있었는데 지금의 박상준은 얼굴을 보고 있어도, 말을 섞고 있어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전혀 알 수가 없다.

이상하다고 느끼는 건 나만 그런 거야?

상준이 날 가만히 보며 뭔가 말하기 위해 입을 움직였다가 다시 다물었다.

저도 할 말이 없겠지, 아니면 그냥 없던 일로 하고 싶은 건가? 페로몬 때문에 벌어진 문제니까? 내가 오메가 페로몬에 발정 났던 것처럼 저도 어쩔 수 없다는 건가.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건 아니지. 형질을 따지기 전에 나랑 박상준은 형제잖아.

어색해서 정신 차리고 나니 없던 일로 하고 싶은 거였다면 시작하지를 말았어야지. 지 멋대로 주무르고 그것도 모자라 허벅지에 비벼 대면서 멋대로 싸는 게 어디 있어.

나였으니까 이 정도지, 다른 사람, 특히 여자였다면 뺨을 이백 대는 맞았을 것이다.

화장실에서 그러는 거, 범죄잖아. 아니, 내가 오메가 페로몬을 맡아서 정상이 아니었다고는 하지만 저까지 그럴 필요 있어?

몇 번을 생각해도 답이 안 나오는 생각이 빙빙 돌았다.

내 페로몬에 발정했다는 상준이 말을 믿을 수 없어서 더 그랬다.

2층으로 올라와 방문을 쾅 닫고 침대에 엎어졌다.

익숙한 감촉과 익숙한 냄새가 콧속에 스며들었다. 의식하지 않으면 알지도 못하는 내 냄새다. 베개에 코를 박고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화장실에서 강하게 느껴지던 상준이 냄새와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

그래 뭐, 다 좋다 이거야. 이미 벌어진 일이니 어쩔 수 없다.

과거로 돌아가서 내가 김유진이랑 상영관에서 안 나왔다든지, 아니면 그보다 전으로 가서 김유진을 안 만날 수 있었다면 모를까 지금으로서는 어쩔 수 없다.

내가 상준이 손에 이끌려 사정했다는 건 변하지 않는다.

그보다 지금 내 머릿속에 더 크게 다가온 의문은 상준이 한 말이다.

‘내가 네 냄새에 발정했다고.’

내 눈을 보고 뚜렷하게 말하던 목소리는 흔들림이 하나도 없었다.

절대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그 눈은 거짓말하는 눈이 아니었다.

그리고 이제 와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두 번째 사정했을 땐 나도 흥분했다. 오메가 페로몬 때문이라고 하기엔 뭔가 부족했다. 그때 나는 김유진의 오메가 페로몬이 아니라 박상준의 알파 페로몬 향을 인식하고 있었다.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뒤져 화면을 두드렸다.

[알파 페로몬 알파한테 영향]

두루뭉술하게 검색어를 입력해 봤지만 내가 원하는 내용은 나오지 않았다. 페로몬 싸움에 대한 내용만 나와서 하나도 도움이 안 됐다.

[알파가 알파한테 발정]

상준이 했던 말을 떠올리며 검색어를 입력했다.

“야, 박하준.”

검색어를 입력한 순간 방문이 벌컥 열려 베개 아래로 잽싸게 핸드폰을 밀어 넣었다.

“뭐야?”

“밥 먹어.”

“안 먹는다고 했잖아.”

“아까 낮에 먹고 아무것도 안 먹었잖아, 먹어.”

“이따 배고파지면 알아서 먹을게.”

설사 배가 고프더라도 지금은 얼굴을 마주하고 사이좋게 밥 먹을 기분은 아니었다.

상준이 아무 말 없이 침대에 누워 있는 나를 빤히 봤다.

“뭐냐, 너.”

“뭐가.”

“나랑 먹기 싫어서 그래?”

상준이 가까이 다가와 내 손을 탁 붙잡았다.

“아까 그 일 때문에?”

“…….”

“나 보기 어색해?”

미친놈이, 진짜, 뭐라는 거야. 나는 고민이 되는데 저는 멀쩡한 얼굴로 웃기까지 하니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발끈해서 손을 뿌리치려는 순간 상준이 내 손을 위로 올려 침대 위로 내리눌렀다.

“아까 좋았잖아.”

“아니거든?”

“끝까지 해 볼래? 오늘 엄마들도 늦을 거 같은데.”

“이거 안 놔?!”

발을 들어 상준이 복부를 향해 발길질했지만 가볍게 막혔다.

“너 진짜 돌았어? 나 모르게 뭐 약이라도 잘못 먹은 거야? 아까부터 왜 그러는데?”

“아직도 네 페로몬 나오고 있으니까.”

“무슨 개소리야 진짜?!”

“네 냄새에 흥분한다니까.”

“장난도 작작 쳐!”

붙잡힌 손목을 확 뿌리치고 주먹으로 상준이 얼굴을 갈겼다. 제대로 맞은 상준이 고개가 휙 돌아갔다. 내가 때린 거지만 생각보다 세게 때려서 손가락이 욱신거렸다.

“차라리 나처럼 오메가 페로몬에 발정한 거라고 해, 오메가 페로몬에 발정한 게 자존심이라도 상해? 네가 우성이라? 그래서 내 핑계 대는 거야?”

돌아갔던 상준이 고개가 천천히 제자리를 찾았다.

“너 지금 뭐라고 했어?”

화를 낼 사람은 난데 상준이 오히려 더 화가 난 표정으로 날 노려봤다.

“내가 틀린 말한 거 아니잖아, 말도 안 되는 개소리만 하고 있잖아, 너.”

“내 말을 그렇게 못 믿어?”

분위기가 완전히 삭막해졌다. 아까는 장난이었던 것인지 분위기가 완전히 달랐다.

“개소린지 아닌지 확인시켜 줄게.”

상준이 나를 밀더니 내 위로 올라왔다. 내 어깨를 내리누르는 상준이 손에 단단히 힘이 들어간 게 느껴졌다.

손목을 붙잡아 밀어냈지만 오히려 힘이 더 들어갔다. 매트리스에 어깨가 처박힐 것 같은 힘에 입을 벙긋거렸다.

“비켜.”

이에 힘을 꽉 쥐고 중얼거렸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상준이 페로몬 냄새가 진해졌다. 셔츠 아래로 커다란 손이 들어와 등줄기가 뻣뻣해졌다.

아까처럼 또 흥분할 것 같은 두려움에 발가락이 곱아들었다. 혼이 빠져나갈 것처럼 어지러웠다.

“하지 마! 미친, 너 이거 안 놔?!”

“네가 못 믿는 거 같아서 확인시켜 주려고 하는 건데?”

상준의 긴 눈꼬리가 서늘하게 빛났다. 페로몬이 또 짙어졌다. 심장이 쿵쿵 떨리면서 뇌가 따로 놀 것 같았다.

말도 안 된다. 이건, 진짜.

설마 나 지금 흥분하는 건가? 평생 옆에 있던 박상준한테? 알파인 것보다 이게 더 큰 문제인 거 같은데.

상준이 페로몬 때문에 몸을 움직이는 게 더 힘들 것 같아 목에 바짝 힘을 준 채 입을 열었다.

“확인? 네가 지금 하는 짓이 확인이야?!”

“그럼 뭔데? 너도 지금 내 페로몬 느끼고 있는 거 아냐?”

정곡을 찔리면서 자존심이 팍 상했다.

“느끼긴 뭘 느껴? 이거 안 놔?!”

“싫어, 확인시켜 준다고 했잖아.”

셔츠 속으로 들어온 손이 좀 더 위로 올라왔다.

“싫다고, 네가 지금 하는 게 확인이야? 페로몬으로 찍어 누르고 어떻게 해보려고 하는 페로몬 강간이지?!”

바락바락 소리를 질렀다.

“그것도 네 형한테!”

상준이 내게서 확 떨어졌다.

“형?”

“그래, 내가 네 형이잖아.”

“고작 일 분 가지고 형 소리 듣고 싶어?”

“아, 하긴 네가 언제 날 형으로 생각한 적은 있냐?”

“잘 아네, 난 너 형으로 생각한 적 한 번도 없어.”

어렴풋이 그런 게 아닐까 싶긴 했지만 이렇게 말로 들으니 심장이 시큰거렸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 말할 건 없잖아.

“아니, 그게 아니라, 나는….”

말실수를 했다고 느낀 것인지 상준이 내 얼굴을 향해 손을 뻗었지만 탁 소리가 나도록 세게 쳐냈다.

어릴 때도 치고받는 싸움은 안 했는데 오늘 벌써 두 번이나 때렸다. 때린 건 난데 맞은 것처럼 심장이 욱신거렸다.

“됐으니까 나가, 너 더 안 보고 싶어.”

찬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충격 받은 표정을 지은 상준의 어깨가 축 늘어졌다. 불쌍해 보이는 것과 동시에 어딘가 처량해 보여 마음이 흔들렸다.

어설프게 받아주면 지금 화를 낸 것이 다 소용없어질 것이다.

처음부터 상준이가 잘못했다. 그런 되도 않는 말을 한 것도 페로몬을 풀어서 어색한 상황을 만든 것도 다 박상준이잖아.

상준인 내게 더 이상 밥 먹으라는 말은 물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방을 나갔다.

홀로 남은 공간에 상준이 페로몬만 은은하게 감돌아서 더 짜증이 치밀었다.

“개자식.”

주먹으로 베개를 내리쳐 봤지만 해결되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15

지금 내 상황은 아주 상스럽고 쉬운 말로 정리가 된다.

씨발, 좆 됐다.

하준인 아닌 것처럼 굴지만 어렸을 때부터 형이고 싶어 했다. 난 잘 안 부르지만 엄마들이 박하준보고 형이라고 해서 그런지도 모른다. 그래서 내가 짜증 나게 굴어도 형이니까 참아준다는 생각으로 넘어간 일들도 많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 앞에서 대놓고 형이라고 생각한 적 없다고 했으니, 말은커녕 얼굴도 안 보려고 할 것이다. 아니, 그래도 강간범 취급한 건 박하준이 먼저잖아.

속으로 치사한 변명을 중얼거렸다가 이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입술을 깨물었다.

박하준 말대로 페로몬을 풀어서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게 하고 몸을 더듬은 건 나니까. 내가 잘못한 게 맞다. 김유진이랑 똑같은 짓 한 거 아닌가.

하준이 방 앞에서 멍하니 문을 바라봤다.

이대로 문을 열고 들어가서 무슨 말이라도 하는 게 좋을까. 근데 무슨 말을 해?

가벼운 두통이 일어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꾹 눌렀다.

큰맘 먹고 한 고백이었다. 엄연히 오메가라는 개체가 있는 세상에서 내가 알파인 너에게 발정한다고 말한 건 고백이다.

근데 그걸 고백이라고 못 알아들은 것인지, 조금도 믿지 않는 것처럼 구는 건 너무 하잖아. 조금은 고민이라는 걸 해야 하는 거 아닌가.

형제고 알파고 그런 걸 떠나서 내가 너한테, 그런다니까.

울컥 짜증이 치밀어 주먹으로 문을 내리치려다 꾹 참았다. 화난 박하준에게 기름을 들이부을 행동을 해봐야 내 손해다.

역시 아무리 봐도 난 호구가 맞다.

앞으로 박하준 기분 풀어주려고 눈치만 볼 내 신세가 벌써 눈에 훤하다.

16

말이라는 건 진짜 우습다.

나는 상준이 입에서 흘러나온 형이 아니라는 말에 상처받았고, 상준인 아마 범죄자 취급하는 말과 저를 뿌리친 내 손길에 상처받았을 것이다.

서로 잔뜩 할퀴어 대고 난 뒤에는 얼굴을 보는 게 더 민망해졌다.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어서 그날부터 상준일 피해 다녔다.

아침에 새벽같이 집에서 나왔고 열두 시가 다 돼서 집에 들어갔다.

아침잠도 많은데 얼굴을 보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부지런을 떤 지 8일째, 현관문을 열었더니 거실이 밝았다.

상준이 안 자는 건가 싶어 느릿느릿 걸음을 움직였다.

“지금 와?”

“아, 엄마.”

“저녁은?

“먹었어, 근데 뭐 먹어?”

소파 가까이 다가가자 막 배달 온 것으로 보이는 치킨과 맥주가 보였다.

“우리 야식 먹을 건데 같이 먹자.”

고소한 치킨 냄새에 위장이 반응했다. 손바닥으로 배를 문지르며 2층을 슬쩍 봤다. 먹고 있는데 상준이가 나와서 얼굴 마주치기 싫은데.

“상준인 잔데.”

내 시선을 기가 막히게 빨리 알아본 작은엄마가 말했다.

“어, 그럼 나 먹을래.”

가방을 내려놓고 바닥에 앉아 물티슈로 손을 닦고 닭다리를 하나 들었다.

“왜 이렇게 늦게 와?”

“그냥, 좀 바빠.”

“동아리라도 들었어?”

“아니, 그런 거 안 하는 거 알잖아.”

“그럼 왜 바빠? 상준이는 집에 일찍 온 거 같던데.”

엄마 말을 못 들은 척하며 다 뜯은 뼈를 빈 그릇에 툭 던져 넣고 날개를 들었다. 그 자식이 일찍 오니까 집에 오기 싫은 거라고 말할 수는 없으니까.

상준이 때문에 집에 일찍 오기 싫다고 하면 엄마들은 이유를 물을 것이고 이유를 물었을 때는 할 말이 더 없다.

날 형이라고 생각 안 한다고 해서 화났다고 할 수도 없고, 페로몬으로 찍어 누르려고 했다는 말이나 대딸 쳐줘서 쪽 팔린다는 말도 못 하니까.

말할 수 있는 거라곤 그냥 “일찍 다닐게.”가 전부였다.

이튿날 실습은 그냥 제꼈다. 아영 누나와 마주치면 원치 않는 소식을 들을 것 같아 싫었고, 상준이 얼굴도 보고 싶지 않았다.

김유진은 그날 이후 안 보였다. 원래도 학교에서 마주치던 사이는 아니었지만 그날 발정기가 시작된 거라면 아마 열흘정도는 학교에 못 올 것이다. 그러니까 약을 잘 먹었어야지, 걔도 진짜 이상한 애다.

팔자에도 없던 도서관에서 시간을 죽이는 일이 여러 날 반복됐다. 동아리 활동도 안 하고 같이 놀러 다닐 친구도 많지 않으니 할 수 있는 일이 적었다.

강의 끝나고 도서관으로 움직이자 동기는 알파가 공부해서 뭐에 쓰려고 하냐며 속 모르는 말을 했다.

알파라고 뭐든 다 아는 줄 아나. 시험이 다가올 때 공부하는 건 베타고 오메가고 알파고 다 똑같은 거다.

물론 지금은 시험 기간이 아니지만.

도서관에 앉아 있다 책상에 엎드렸다. 오늘 아침에도 일찍 나와서 수면 부족이다.

주말엔 어떻게 하지? 주말에는 늦잠 자고 싶지만 상준이랑 집에 같이 있기 싫은데.

지난주 토요일엔 집에 있기 싫어서 찜질방에 다녀왔다. 낮잠을 자보려고 했지만 영 불편해서 결국 잠은 못 자고 목욕만 했다.

일요일엔 영화를 세 편이나 봤다. 영화관에 앉아서 시간대 맞는 영화를 대충 골라 닥치는 대로 봤는데 기억에 남는 건 하나도 없었다.

이번 주말엔 어디 가지, 카페에서 책이라도 볼까, 불편하더라도 박상준이랑 같이 있는 것보다는 그게 나을 거다.

하아, 도대체 왜 내가 피해 다녀야 하는 거야. 잘못은 박상준이 다 했는데.

이상한 말, 엉뚱한 말, 심한 말까지 다 박상준이 한 거잖아. 그런 주제에 뭘 잘했다고 가만히 있는 건지 모르겠다.

지가 잘못했다고 생각을 안 해서 그냥 내버려 두는 건가. 어차피 갈 데도 없으니까 지치면 내가 알아서 집에 올 거라고 생각해서?

싸가지 없는 놈.

그래도 어렸을 땐 좀 착했는데. 아니, 커서도 맛있는 건 많이 만들어줬지. 지난번에 저가 삐쳤을 때도 밥은 챙겨줬으니까. 그때 미역국 맛있었는데, 생각하니까 먹고 싶다.

저녁으로 대충 먹었던 편의점 도시락은 진짜 맛없었는데, 밥 먹고 싶다.

됐다, 무슨 개도 아니고 고작 밥 먹고 싶다고 일찍 들어갈 수는 없잖아. 무엇보다 아직 화도 안 풀렸다. 제대로 사과 받지 않으면 앞으로도 상준이 얼굴은 안 볼 거다.

형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내가 상준이보다 잘난 게 없다는 건 순순히 인정하겠지만, 그래도 너무한 건 너무 한 거다. 그렇게 말한다고 해서 우리가 형제인 게 아닌 걸로 변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내 페로몬에 발정한다는, 거지같은 말이나 하고.

손바닥으로 이마를 꾹 눌렀다. 애써 외면하고 있던 문제 때문에 속이 술렁거렸다.

박상준 페로몬, 그거에 내 몸이 반응했다는 것.

그때 만약에 상준이 페로몬을 더 풀었다면 난 어떻게 됐을까. 오메가 페로몬을 맡은 것처럼 맥을 못 추고 상준이한테 달려들었을까.

다시 생각해봐도 이해할 수 없다. 진짜, 미친 짓이다.

알파는 알파 페로몬에 발정하지 않는다.

물론 엄마들 같은 경우는 다르다. 둘 다 알파지만 둘은 사랑하니까 서로의 페로몬이 좋게 느껴질 거다. 그러니까 우리가 나왔겠지.

페로몬을 맡고 몸부터 반응하는 건 보통의 알파 사이에서는 일어날 수 없다. 게다가 박상준은 그냥 알파도 아니고 형제잖아.

‘난 너 형으로 생각한 적 한 번도 없어.’

상준이 말이 귓가에 재생돼서 솜털이 쭈뼛 일어섰다.

깊게 생각하고 싶지 않다, 그냥 박상준은 싸가지 없어서 저보다 못한 나를 형으로 여기지 않는 것이 분명하다. 그것 말고 다른 게 있으면…, 안 된다.

책상을 손톱으로 긁었다.

혼자만 고민하는 게 바보 같다고 생각하면서도 고민을 멈출 수가 없다.

공부는 하나도 안 하고 온갖 잡생각만 하다 도서관에서 나왔을 때 어둠 속에서 익숙한 인영이 보였다.

중앙 입구 기둥에 기대있는 인영의 정체는 밝은 곳에서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저렇게 길고 훤칠하고 멀쩡한 그림자가 누군지는 뻔하니까.

알았다고 해도 아는 척할 마음은 안 들어 못 본 척하고 지나가자 상준이 내 뒤를 따라왔다.

터벅터벅, 집 근처에 도착했을 때 내 뒤를 따라붙던 발소리가 거리를 좁혀 다가왔다.

“야.”

“왜.”

무시하고 가는 것도 웃겨서 뚱하게 대답하자 상준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집에 일찍 좀 와, 시험 기간도 아닌 데 왜 거기 있냐.”

상준인 아마 내가 계속 도서관에 있는 걸 알았을 것이다. 그걸 알면서 일주일이 지난 다음에 온 것도 괘씸하다.

나는 내내 고민했는데 박상준은 또 아무렇지도 않아 보인다. 물론 형제니까 싸웠어도 말없이 그냥 넘어가는 경우는 지금까지도 수도 없이 많았다.

TV를 보다 적당한 화제로 말을 건다든지,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어 준다든지 하면서 자연스럽게 말을 걸었고 그러다 보면 언제 싸웠냐는 듯 풀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지냈다.

하지만 이번 문제도 그래도 되는 건가. 그렇게 가볍게 넘어갈 문젠가?

“무슨 상관이야?”

몸을 휙 돌려 상준일 뾰족하게 바라봤다. 대충 적당히 넘어갈 생각이었던 것인지 상준의 입이 반쯤 벌어졌다.

“뭐?”

“남한테 일일이 신경 쓸 정도로 사람한테 관심 없잖아, 너.”

“남?”

“형 아니라고 한 건 너잖아.”

날 빤히 바라보던 상준이 고개를 떨어트렸다.

늘 그렇지만 저렇게 처진 모습은 박상준한테 별로 어울리지 않는다. 지가 먼저 그렇게 말했으면서 왜 내가 잘못한 것처럼 구는데?

“…내가, 잘못했으니까.”

잘못을 순순히 인정하는 말에 내 눈이 전에 없이 커졌다. 아니, 지금 내가 제대로 말을 들은 게 맞아? 미안함을 표현하기는 했어도 저렇게 직접 말하는 건 처음 봤다.

“그런 말 하지 마.”

상준이 머리를 쓸어 넘기며 고개를 들었다.

“집에 일찍 들어와.”

“…….”

“너 좀 있으면 러트잖아.”

걱정하는 게 분명해서 대답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내 얼굴 보기 싫으면 내가 나가 있을 테니까, 일찍 들어와.”

운동화 앞코로 바닥을 툭툭 두드리던 상준이 나를 스쳐 먼저 집 안으로 들어갔다.

심장이 저릿저릿해서 왼쪽 가슴을 손바닥으로 꾹 눌렀다.

저렇게 나오면 나보고 어쩌라는 거야.

원래 내가 아는 박상준은 거짓말은 안 한다.

하지만 이 명제가 성립되면 나를 형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말도, 내 페로몬에 발정한다는 말도 다 사실이 된다.

그러니까 이건 박상준은 ‘거의’ 거짓말 하지 않는다, 정도로 내 안에서 바꿀 필요가 있다.

날 도서관으로 데리러 온 다음 날, 못 이기는 척 일찍 들어오자 집에 상준인 없었다. 어딜 갔다 온 것인지 그날 상준인 12시가 다 돼서 집에 왔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그랬다. 까치발로 움직이는지 발소리도 거의 내지 않았다. 꼭 같이 살지 않는 사람처럼 상준인 모습을 안 보였다.

나흘째도 박상준이 늦게 오자 신경이 쓰였다.

내가 그러라고 한 건 아니다. 아니, 내가 그런 게 맞다. 말만 안 했을 뿐이지 너랑 같이 있기 싫다는 티를 팍팍 냈으니까.

강의 끝나면 늘 망부석처럼 서 있던 상준이가 없는 걸 보고 동기가 술이라도 한잔하러 가자고 했지만 그럴 기분이 안 들었다.

그냥 적당히 하고 이쯤에서 없던 일로 넘어갈까.

어설프게 고민하는데 정문을 향해 걸어가는 박상준이 보였다. 생각이 정리되기 전에 몸이 먼저 움직였다. 성큼성큼 다가가 어깨를 향해 손을 뻗는 순간 상준이 몸을 돌렸다.

“왜?”

발소리만으로 내가 다가온 걸 알아차린 것 같은 행동에 입술이 바짝 말랐다.

“…오늘도 늦냐? 엄마들이 걱정해.”

뻥이다, 엄만 별말 없었다. 다 큰 아들이 좀 늦을 수도 있지 라고 여길 게 분명하다.

“엄마가?”

상준이 미심쩍은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그래.”

“연락해 둘게.”

무심한 말에 입술을 꾹 깨물었다. 치사한 놈, 왜 네가 더 화난 것처럼 구는 건데.

상준인 ‘할 말 더 없지?’ 란 시선을 보내더니 그대로 몸을 돌렸다.

할 말이 왜 없냐, 어딜 가는지, 뭐 하고 돌아다니는지 궁금하다. 정문으로 나가는 거 보면 도서관에 가는 것도 아닌 것 같은데 너 진짜 뭐 하고 돌아다니는 거야.

17

토요일 오전, 소파 쿠션을 꽉 끌어안고 짧은 한숨을 뱉었다.

주말인데 아침부터 어딜 간 건지 상준인 집에 없다. 현관에 신발이 없는 걸 보고 방문을 살짝 열어 보는 것으로 이미 확인을 다 끝냈다.

내가 그런 것처럼 상준이도 친구가 별로 없다. 학교생활은 무난하게 하지만 따로 만나서 놀러 다닐 인맥이 없다는 건 내가 제일 잘 안다.

필요성을 따져 봤을 때 친구라는 존재가 크게 필요하지 않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앞으로 회사를 경영하려면 친구보다는 성실한 심복, 부하 이런 게 더 필요하다. 괜히 어설프게 의리, 우정 이런 거 운운하면서 돈 빌려 달라고 하는 사람보다는 성실한 부하 직원이 이백 배 낫지.

그러니까 만날 사람도 없으면서 어딜 간 거냐고.

내가 지난주에 했던 짓을 박상준이 할 거라고 생각하자 다시 한숨이 나왔다.

나랑 다르게 혼자 있어도 누군가 말을 걸지도 모르지만 상준이 성격에 그런 사람들이랑 같이 어울려 다닐 것 같지도 않다.

“아들, 한 군데만 보면 안 될까?”

1인용 소파에 앉아 있던 작은엄마가 말을 걸었다. 생각에 빠져서 엄마가 같이 있다는 것도 완전히 잊고 있었다.

“아, 엄마 보고 싶은 거 봐.”

아무 생각 없이 만지작거리고 있던 리모컨을 넘기자 엄마가 날 빤히 봤다.

“상준인 어디 갔어?”

“몰라.”

나야말로 궁금하다.

“둘이 언제까지 그럴 거야?”

“어?”

“저번에는 상준이가 일방적으로 삐친 거니까 아무 말도 안 했지만, 이번엔 그런 것도 아닌 거 같은데?”

역시 엄마들은 예리하다. 아니, 이번엔 너무 티가 났지. 박상준은 이렇게 싸돌아다니는 애가 아니니까.

“둘이 서로 같은 공간에 있고 싶지 않을 정도로 싸운 거야?”

“싸운 거, 아냐.”

“아닌데 지난주 내내 네가 집에 없더니 이번 주는 상준이가 집에 없어?”

“…….”

“가끔 싸우는 정도야 어릴 때도 있었지만, 이렇게 길게 싸운 적은 없잖아.”

사실을 짚어내는 말에 할 말이 없어 애꿎은 쿠션만 꼬집었다. 조금씩 쌓인 답답함이 이제는 목구멍을 짓눌렀다.

“맞아, 엄마들도 신경 쓰여.”

늦은 아침을 만들고 있던 큰엄마가 맞장구를 치며 주방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요즘 일도 한가해져서 여행이라도 다녀올까 했는데 니들이 이러면 신경 쓰여서 뭘 못하잖아.”

“갔다 와, 우리가 뭐 앤가.”

“같이 가자는 말인데.”

“학기 중인데 가긴 어딜 가.”

“주말에 짧게 다녀오면 되잖아.”

“우린 신경 쓰지 말고 갔다 와.”

“니들이 이러는데 어딜 가.”

큰엄마가 고집스럽게 말했다. 여행을 못 가는 걸 원망하는 것처럼 말하지만, 실상은 우리가 싸운 것 자체가 마음에 안 드는 것이다.

“왜 싸운 거야?”

기회를 보고 있던 작은엄마가 은근히 물었다.

“그냥, 뭐….”

뒤통수를 긁적거리며 시선을 피했다. 여전히 엄마들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은 없었다.

“상준이까지 불러서 사자대면 할까? 그러면 말할래?”

농담이 아닐 말에 입술을 깨물었다.

어렸을 때도 우리가 싸우면 엄마들은 우리 둘 다 불러 놓고 왜 싸웠는지 얘기하게 했다. 그리고 누가 잘못했든 벌은 똑같이 받았다.

“진짜 별거 아냐, 걔가 이상한 말 하잖아.”

“무슨 말?”

잡은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 작은엄마가 뚜렷하게 물었다.

“…내 페로몬 냄새, 진하다고.”

원래 거짓말은 통할 상대에게나 하는 것이다. 그래서 완전히 거짓말은 아닌 말로 적당히 둘러대자 작은엄마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게 왜? 새삼스럽게 그런 걸로 싸웠다고?”

“상준인 어렸을 때도 네 냄새는 기가 막히게 잘 알았어.”

순간 거짓말이 걸린 줄 알았는데, 동시에 흘러나온 말에 맥이 빠지면서 내가 이해가 안 됐다.

“걔 페로몬 잘 못 맡잖아.”

내가 아는 박상준은 페로몬을 잘 못 느낀다. 그래서 우성 오메가 페로몬에도 크게 반응을 보이지 않을 수 있는 거라고, 줄곧 그렇게 생각했는데 원래 내 페로몬은 잘 맡았다니 이건 또 무슨 말이야.

“페로몬을 못 맡는 게 아니야, 반응이 느릴 뿐이지.”

“어?”

“러트가 발동하기까지 일반 알파보다 훨씬 많은 페로몬이 필요하다고 할까. 보통 우성이 페로몬에 더 예민하게 반응하는데 상준인 어렸을 때부터 그랬어, 다른 우성이랑 달랐지.”

“…….”

“선천적인 건지 후천적인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쩌면 한 페로몬에 너무 익숙해져서 그런 건지도 모르지.”

태어났을 때부터 박상준이 가장 많이 맡아 본 페로몬이 내 냄새라는 건 오래 생각하지 않아도 확실했다.

내 페로몬에 익숙해져서 다른 사람 페로몬은 못 느낀다고? 그럼 세상 모든 형제들은 다 그래? 아, 아니지. 엄마도 상준이가 좀 특이한 거라고 했지.

“페로몬 못 맡아도 상관없어. 아니, 오히려 둔한 게 낫지 않나?”

작은엄마가 큰 엄마를 향해 동의를 구했다.

“당연하지, 괜히 이 냄새 저 냄새 잘 맡아 봐야 좋을 게 없어, 좋아하는 사람 냄새만 잘 맡으면 되는 거야.”

머리가 띵했다. 내내 피하면서 생각하고 싶지 않았던 사실을 아이러니하게도 엄마들 입으로 확인한 심정이다.

“엄마는 엄마 페로몬에 반응해?”

“당연하지.”

“같은, 알파잖아.”

“알파 이전에 좋아하는 사람이지.”

“그런 건 여기로 생각하기 전에 여기가 먼저 반응하는 거야.”

작은엄마가 머리와 가슴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친절한 어조로 설명했다.

박상준이 처음 나한테 ‘내가 네 냄새에 발정했다고.’라고 말했을 때 했던 행동과 완전히 닮아 있었다. 같은 핏줄이라는 걸 증명이라도 하는 것 같다.

동시에 내 몸이 그날 상준이 페로몬에 반응을 보였던 사실이 떠올랐다.

머리가 결론을 내리기 전에 가슴이 먼저 반응한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나는, 이미….

“엄마.”

“왜.”

“…난 아마 결혼은 못 할 거야.”

엄마들 입장에서는 뜬금없는 소리였겠지만 이 이상은 더 말할 수가 없어 소파에서 벌떡 일어났다.

2층으로 올라와 옷을 갈아입으면서 상준이 어딜 갔을지 추리했다.

타인하고 몸 부딪히는 걸 나보다 더 싫어하는 편이니까 찜질방은 절대 아닐 거다.

내가 아는 박상준을 떠올리다 문득 아영 누나랑 갔던 디저트 카페가 떠올랐다. 남의 시선을 신경 쓰는 타입도 아니니 남자 혼자라고 안 갈 박상준이 아니다.

잡지에 처음 나왔을 때부터 내가 가고 싶다고 했고, 박상준도 거기 타르트를 먹어봤다.

맛있다는 걸 직접 확인했으니 직접 만들어 보기 위해서라도 더 먹어보고 싶어졌을 것이다. 그러면 오늘 같은 날 작정하고 가서 시간을 들여 먹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상준이 있을 위치를 특정하고 난 뒤 빠르게 움직였다.

“엄마들 여행 가.”

1층으로 내려와 바로 현관으로 향하면서 반쯤 명령하듯 말하자 엄마들이 황당한 얼굴을 했다.

“뭐?”

“오늘 가, 오늘, 길게 끌지 말고.”

“뭐야, 갑자기.”

“덕천에 온천 여행이라도 다녀오면 되잖아.”

몇 년 전 가족 여행으로 갔던 곳을 말하자 엄마들이 서로를 바라봤다.

“상준이랑 화해할 테니까, 우리 데려가려고 하지 말고 둘이 가.”

대답은 듣지 않고 그대로 집 밖으로 나왔다.

18

디저트 가게는 주말이라 지난번보다 복작복작 했다. 가게 안을 빙 둘러보자 창가의 4인용 테이블을 양심도 없이 혼자 차지하고 있는 박상준이 보였다.

물론 식탁 위에 있는 디저트 양은 절대 혼자 먹을 양이 아니었다. 저렇게 많이 주문했으니 직원도 그냥 봐준 건가. 아니, 그냥 박상준 와꾸여서 뺀치를 못 놓은 건지도 모르겠다.

크게 한숨을 내쉬고 걸음을 옮겼다. 테이블 근처에 도착한 순간 이번에도 발소리를 알아들은 것인지 상준이 고개를 들었다.

테이블을 힐끔 보자 손도 대지 않은 디저트와 미니 패드가 눈에 들어왔다.

상준인 디저트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겉으로 보이는 재료들까지 적어 놓은 걸 보니 확실히 나중에 만들 생각이었던 게 분명하다.

하지만 보통 모양까지 똑같이 만들지는 않는데, 저가 만들었으면서 여기서 사 온 거라고 나한테 거짓말이라도 할 생각이었던 걸까.

“여기서 혼자 뭐 해?”

“어떻게, 알았어?”

“왜? 알면 안 되냐?”

맞은편에 털썩 주저앉자 상준이 미니 패드를 쓱 치웠다.

“찾아다녔어?”

“아니, 한 번에 맞췄는데.”

“…왜 왔어?”

상준이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엷은 한숨을 뱉었다. 한 번에 찾은 것이 불만인 것처럼 보였다.

“너 혼자서 궁상떨고 있을까 봐, 걱정한다고 했잖아.”

“엄마가?”

“아니, 내가.”

확고한 목소리로 대답하자 상준이 눈을 가늘게 떴다. 내 속내를 알아보려는 눈빛을 모르는 척하고 포크를 들었다.

“뭘 이렇게 많이 시켰어?”

에그 타르트를 반으로 뚝 잘라 한입에 넣자 포슬포슬한 맛이 입에 가득 번졌다.

“뭐 하는 거야?”

“왜, 좀 먹으면 안 돼?”

타르트를 꿀꺽 삼키고 시폰 케이크를 잘라 입에 넣었다.

“너, 화났잖아.”

상준이 말을 못 들은 척 케이크를 연이어 몇 번 잘라 먹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일단 박상준을 찾아야겠어서 닥치는 대로 온 것까지는 좋은데 아직 뭘, 어떻게 할지는 정하지 못했다.

“넌?”

“나?”

“넌 화 안 났냐고.”

“내가, 왜, 화가 나.”

내가 어떻게 화를 내겠냐는 의미가 담긴 말에 다크 수플레를 포크로 뭉갰다.

“그럼 나는?”

이상한 선문답에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모르는 것처럼 상준이 눈알을 빙빙 굴렸다.

“둘이 오신 거예요?”

가게에 처음 들어왔을 때부터 상준일 보는 시선이 꽤 많다고 느꼈는데 기어이 여자 하나가 와서 말을 걸었다.

역시, 여기서는 얘기할 분위기가 아니네.

“이제 갈 거예요, 가자.”

상준이 여전히 의아한 눈으로 바라봤다. 보통 때는 빠릿빠릿하면서 오늘따라 왜 이래?

오히려 말을 건 여자가 더 눈치 빠르게 자리를 떴다.

하, 진짜 내가 형이니까 봐준다.

“어차피 이거 너 다 혼자 못 먹잖아, 저기요, 이거 포장 좀 해주세요.”

직원을 불러 요청하고 맞은편에 있는 상준이 얼굴을 빤히 봤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이네.”

“계속 말도 안 하다가 갑자기 이러니까, 좀.”

이해가 안 된다고 말하면서도 상준인 가방에 패드를 넣고 집에 갈 준비를 했다.

“너 약 먹었어?”

“약?”

“생각해보니까 내가 러트 라는 건 너도 마찬가지라는 거잖아.”

우리 러트 주기는 거의 비슷했다. 어렸을 땐 쌍둥이라서 그런 것도 영향을 받는 것인가 보다 했다.

엄마들은 러트 질투라도 하는 거냐며, 여자들이 주변에서 생리를 하면 따라 시작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했는데, 지금 보면 그 이유가 아닌 것 같다.

“당연히 먹었지, 설마 약도 안 먹고 나왔을까 봐?”

“아침에 먹은 거지?”

보통 억제제는 아침과 저녁으로 먹는다. 만약 이대로 저녁까지 쭉 안 먹으면 러트에 돌입할 것이다.

“너 약 떨어졌냐? 그래서 내 거 달라고?”

생각하는 거하고는, 진짜 너무 현실적이어서 어이가 없다.

“네 거랑 내 거 다를 텐데.”

“알아, 열성이 어떻게 우성이랑 같은 약을 먹겠어.”

“그런 말이 아니라.”

“아니긴 뭐가 아냐? 어차피 사실인데, 그리고 그거 때문에 온 거 아냐.”

‘그럼, 왜?’ 상준의 눈이 다시 가느다랗게 변하며 질문을 던졌다.

“포장 다 됐습니다.”

직원이 내민 상자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 번 확인해 보고 싶어졌어.”

“뭘?”

“내가 네 페로몬에 반응하는지 아닌지.”

상준이와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나와 상준일 손가락으로 번갈아 가리켰다.

“뭐?!”

“그러니까 저녁에 약 먹지 마.”

“너 지금 그게 무슨 말….”

상준이 뭔가 더 말하기 전에 가게 밖으로 나와 빠르게 걸었다.

버스를 타고 집에 오는 내내 상준인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처럼 날 계속 쳐다봤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버스 창밖을 보면서 머릿속을 다시 한번 정리했다.

박상준은 내 페로몬에 발정한다고 명확하게 말했다. 짐승 같은 말이긴 하지만 알파란 게 원래 페로몬의 노예이다 보니 그것만큼 확실한 말도 없다.

오메가 페로몬에 발정하는 것처럼 자연의 섭리가 아니라 같은 알파인데도 나한테 발정한다는 건, 역시 그런 거겠지.

언제부터였을까. 언제 자각했을까. 그래서 입학식 날 그렇게 화를 내고, 김유진 만나러 갔을 때 쭐레쭐레 따라왔던 거라고 생각하니 발바닥이 가려워서 참기가 어렵다.

“야.”

집 근처에 다다랐을 때 더는 못 참겠는지 상준이 날 크게 불렀다.

“왜.”

“너 아까 그게 무슨 뜻이야?”

“뭐가 무슨 뜻이야?”

기대감으로 상기된 얼굴을 빤히 보며 모르는 척 발뺌했다.

쟤 원래 나 볼 때 저런 얼굴이었나?

심장 한쪽이 이상하게 간질거렸다. 아직 페로몬은 나오지도 않을 텐데 좋은 냄새라도 맡은 것처럼 가슴이 술렁였다.

“확인해 본다며.”

“어.”

“근데, 왜 집으로 가?”

나도 모르게 입이 반쯤 벌어졌다. 순진한 척, 모르는 척, 이해 안 된 척하더니 다 눈치 까고 있었던 게 확실한 질문이었다.

“그럼 어딜 가?”

보폭을 넓게 해서 상준이 내 앞으로 불쑥 다가왔다.

“그런 거, 확인해 보기에, 집은 좀 아니지 않냐?”

“왜?”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시치미를 뗐다. 엄마들이 없는 걸 상준이는 모르니까 걱정하는 걸 거다. 아니면 일말의 양심 때문에라도 집에서는 안 된다고 하는 걸지도.

만약 내가 엄마들이랑 그런 대화를 했다는 걸 알면 무슨 표정을 지을까.

“그럼 어딜 가?”

“아니, 아까 갔던 가게, 길 건너면 뒤에 모텔도 있고.”

모텔이란 단어를 어색하게 말하며 상준이 시선을 피했다. 억지로 덮칠 듯이 굴 때는 언제고 뭘 그런 단어 하나에 저렇게 쑥스러워한데?

“너 그런 데 가본 적 있어?”

“내가 그런 델 누구랑 가?!”

당황한 상준이 손바닥으로 정수리를 문질렀다.

대충 예상은 하고 있던 부분이라 놀랍지는 않다. 박상준이 어디 가서 헛짓거리하고 다니지는 않았을 거니까.

“근데 너 무슨 생각을 했기에 모텔 타령이야?”

“네가, 확인해 보자며.”

“그래, 난 그냥 네 냄새가 나한테 좋은지 안 좋은지 알고 싶다고.”

아닌 척 오리발을 내밀자 상준이 콧등을 찡그렸다.

“그거면 약을 안 먹을 필요는 없잖아, 지금도 페로몬 정도는 풀 수 있어.”

쓸데없이 똑똑하긴. 저 말도 사실이다. 러트랑은 다르겠지만 페로몬은 지금도 풀 수 있다.

“여기서 풀지 마.”

“그럼? 진짜, 집에서 풀어?”

어쩐지 상준이 기세가 등등해진 것 같아 뒷걸음질 친 순간 손목이 탁 붙잡혔다.

내가 상준이 표정으로 분위기나 생각을 어느 정도 알 수 있는 것처럼 상준이도 날 보면 그럴 것이다. 그러니 내 시치미나 오리발은 진작 다 들켰을 것이다.

“내 페로몬에 발기라도 하면, 그땐 어떻게 할 건데?”

손목을 쥔 상준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극장에서처럼 그렇게 하려고?”

“그땐 네 냄새에 반응한 거 아니야.”

“그걸 확신해?”

“그보다 이건 좀 놓지? 지난번처럼 화낼까?”

가벼운 말 한마디에 상준이 손을 놓는 건 물론 뒤로 물러서기까지 했다.

뿌리쳐서 이상한 분위기 형성하지 않으려고 한 건데 이렇게 말 잘 듣는 개처럼 굴면, 진짜 귀엽잖아.

다 큰 박상준을 보고 설마 귀엽다고 느낄 날이 올 줄이야.

이젠 나도 나를 모르겠다.

“…화 내지마.”

“그러니까, 지난번에 네 냄새에 반응한 건지 아닌지 헷갈리니까 지금부터 확인해 보자고.”

상준인 아쉬운 표정으로 나를 보다 입술을 핥았다.

대문을 지나 현관 앞에 서서 비밀번호를 누르고 손잡이를 돌리기 전에 옆에 있는 상준일 바라봤다. 나보다 반 뼘 정도 커서 턱이 살짝 들렸다.

상준인 여전히 집에 들어가는 게 못마땅해 보였다. 하긴, 러트인 거 뻔히 알면서, 약까지 먹지 말라고 한 주제에 엄마들 다 있는 집으로 왔으니 불만스러울 수밖에.

“엄마들 여행 갔어.”

상준이랑 화해하겠다고 큰소리 쳐놨으니까 엄마들은 여행 갔을 것이다.

“내일까지 안 올 거야.”

가까이 있던 상준의 눈이 동공까지 확장되는 게 보였다. 그 순간 짜릿한 냄새가 콧속을 파고들었다. 감정에 반응한 페로몬인지 상준이 몸에서 흘러나오는 냄새는 너무 갑작스러웠다.

“야…!”

상준이 집안으로 날 당겨 확 끌어안았다. 털썩, 손에 들고 있던 케이크 상자가 제일 먼저 떨어졌고, 이어서 철컥 닫히는 현관문 소리와 띠리릭 하고 도어락이 잠기는 소리가 들렸다.

“확인, 해 보고 싶다며.”

그렇다고 이렇게 갑자기 풀어 버리는 게 어디 있냐, 깜박이 좀 켜고 들어와라, 진짜.

“…내가 어떻게 하면 돼?”

“뭘, 어떻게 해.”

“그냥 페로몬만 풀면 돼?”

먼저 유혹하는 모양새로 집까지 끌고 온 건 좋은데 이 다음은 생각을 안 했다. 좀 더 생각해 볼걸.

“아니면, 키스해도 돼?”

상준이 손가락이 귓불을 지분거리다가 귓바퀴 안으로 파고들었다.

“…넌 나한테 그런 게 하고 싶어?”

확실히 짚고 넘어 가는 게 아무래도 좋겠지.

어설프게 굴다가 괜히 이도 저도 아니게 돼서 형제 사이까지 어색해 지는 건 절대 사양이다.

어깨를 밀어내며 품에서 빠져나와 묻자 상준이 얼굴에 난감함이 피어올랐다. 고민이라고는 전혀 안 하는 줄 알았는데 저 표정을 보니 저도 저 나름대로 고민이란 걸 했던 것 같다.

하긴, 같은 엄마 배 속에서 자란 같은 핏줄한테 그런 걸 느낀다는 게 정상은 아니지.

그래서 나 역시 확인해 보고 싶다. 정말 형제한테 제대로 성욕을 느끼는 것인지 아닌지.

원래 보통 가족들끼리는 페로몬도 거의 비슷한 편이다. 게다가 우리 집은 네 식구가 다 알파이기 때문에 차이는 있지만 페로몬이 가진 분위기는 닮았다.

그러니까 쉽게 말하면 나와 닮은 냄새에 발정한다는 건데, 단언컨대 그건 정상이 아니다.

“너한테 좋은 냄새 나니까.”

“나 아직 페로몬 안 풀었어.”

“알아.”

고개를 끄덕이며 상준이 내 목덜미에 코를 박았다. 셔츠를 어깨 아래로 당겨 드러난 맨피부에 닿은 높은 콧대가 내 어깨를 간지럽혔다.

“네가 안 푼다고 내가 네 냄새를 몰라?”

심장박동이 빨라졌다. 내 얼굴에 닿은 상준이 손가락이 뜨거워진 게 느껴졌다. 굳이 몸을 만져 보지 않아도 체온이 올라간 게 확연했다.

알파는 알파 페로몬에 발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박하준은 박상준 페로몬에 반응한다. 박상준도 박하준한테 반응한다. 심지어 페로몬은 아직 다 풀지도 않았는데.

이 단순한 사실이 가리키는 바는 너무 단순하고 명쾌했다.

알파여서, 형제여서 같은 이유가 아니라 내가 박상준을 좋아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자 목구멍이 시원해졌다.

가슴 속 깊이 쌓여있던 응어리가 풀어져서 눈물이 핑 돌았다.

“…키스, 해 봐.”

19

이렇게 나오니 내가 박하준 앞에서 호구가 될 수밖에 없는 거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하준인 날 다루는 법을 너무 잘 안다. 이런 분위기에서 키스하지 말라고 해도 들을 수밖에 없지 않나.

그래도 박상준 다루는데 도가 튼 박하준은 내가 듣고 싶은 명령을 내렸다.

허리를 감아 당겨 고개를 숙여 적당히 도톰한 윗입술을 빨아들이면서 턱을 손으로 붙잡았다. 턱을 위로 잡아당기자 입술이 자연스럽게 벌어져 그 안으로 혀를 밀어 넣었다.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몰라 어색한 듯 안쪽으로 도망간 혀를 쫓아 입술을 밀어붙이자 입맞춤이 한층 짙어졌다.

목젖을 건드릴 기세로 혀를 길게 빼서 밀어 넣고 혀뿌리와 입천장을 번갈아 건드리자 하준의 목 안이 얕은 소리를 내며 진동했다.

너무 강제로 밀어붙이면 싫어 할 것 같아서 살짝 물러서며 입 안을 여기저기 핥아댔다.

지난번처럼 입술만 빨아대는 키스가 아니라 입 안을 마음껏 휘저어대자 하준이한테서 페로몬이 은은하게 피어올랐다.

성적 흥분으로 인해 몸에서 빠져나온 페로몬은 일부러 푼 것처럼 진하지는 않았지만 그 정도만으로도 나한테는 충분했다.

언제부터였을까. 어렸을 때부터 껌딱지처럼 붙어 다니긴 했지만 이런 식으로 성애를 느낀 건 불과 1년도 안 됐다.

입학식 날 내가 가진 어두운 소유욕을 나도 처음 발견했으니까.

하지만 언제부터인 게 뭐가 중요할까. 어차피 처음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아마 앞으로도 내 눈에 들 사람은, 내가 페로몬을 맡았을 때 흥분할 사람도 박하준뿐일 게 분명한데.

내 옆에 다른 사람도 웃기지만, 박하준 옆에 다른 사람이 있는 것도 웃기다.

각자의 옆에 다른 사람이라니, 그게 코미디가 아니면 뭐가 코미디겠어.

엄마 배 속에서부터 지금까지 우린 계속 같이 있었는데.

운명의 짝 같은 건 안 믿지만 만약 있다면 내 운명은 박하준이 분명하다.

같은 배 속에서 태어나서 평생을 함께할 운명. 어설프게 페로몬에 발정해서 운명의 짝이 되는 것보다는 이쪽이 훨씬 더 진한 운명 같지 않나?

정신없이 입 안 점막을 건드리며 단물이라도 되는 것처럼 타액을 빨아 넘기는데 하준의 다리에 힘이 풀렸다.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을 것 같아 허리를 감싼 손에 힘을 주고 입술을 떨어트렸다.

내 타액으로 젖어 번들거리는 입술, 숨이 부족해서 촉촉해진 눈가가 음심을 부추겼다.

“하아, 하아….”

작게 숨을 고르는 하준일 가만히 바라봤다. 다음 명령을 기다리는 순종적인 개처럼.

“너, 키스도 처음이야?”

하준이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저번에 너랑 했잖아.”

다른 사람 입술을 빨고 싶다는 생각 같은 건 이제까지 해 본 적 없다. 아니, 맨날 네 옆에 붙어 있었는데 누구랑 한다는 거야.

“내가 해 볼래.”

“어?”

하준이 손등으로 입가를 훔치더니 내 멱살을 가볍게 붙잡아 당겼다.

몸을 밀어붙이면서 하준이 다짜고짜 혀부터 밀어 넣었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저도 마음대로 하고 싶은 것인지 몰캉거리는 혀가 내 입 안을 어지럽혔다.

고개를 좀 더 숙여주자 입 속으로 하준의 혀가 더 깊게 빨려 들어와 꼭 잡아먹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정신없이 키스하던 하준이 내 몸을 살짝 뒤로 미는 바람에 균형을 잃었고 쿵 소리와 함께 엉덩방아를 찧었다.

“으.”

아프다는 소리를 냈지만 하준이는 입술을 떨어트리지 않고 주저앉은 내 다리 위로 올라탔다.

열성이어도 확실히 알파는 알파였다. 마음먹은 이상 행동에 주저함은 없다. 원하는 걸 쟁취하기 위해서는 타인의 불행도 이용한다.

알파라는 종족의 특성이었다. 그들의 우월함의 저변에는 잔인함, 공감 능력 결여 같은 것이 분명 있다. 그리고 나와 박하준은 둘 다 그런 알파였다.

허리를 붙잡고 등줄기를 쓸어내리자 하준의 허리가 움찔거렸다.

“신발, 벗어.”

입술이 떨어진 틈에 중얼거렸다. 신발도 벗지 않고 언제까지 현관에서 이러고 있을 수는 없다. 빨리, 조금이라도 빨리 침대로 가고 싶다. 푹신한 매트리스 위에 눕혀 놓고 마음대로 만져 보고 싶다.

너도 내 페로몬에 반응하잖아, 그러니까 더 뺄 필요 없는 거 아냐?

“으응, 조금만 더.”

키스가 마음에 든 건지 하준이 신발 벗을 생각을 하지 않고 더 달라붙었다. 어깨에 있던 손이 목을 더듬으며 올라와 양손으로 내 귀를 감쌌다.

귀가 막히면서 외부 소리가 차단되자 내 몸 안에서 나는 소리가 가득 차올랐다. 머릿속까지 휘저어지는 느낌에 아랫배에 단단히 힘이 들어갔다. 하준이 혀가 움직일 때마다 입 안에서 나는 젖은 소리가 소름 끼치도록 야하게 느껴졌다.

하준이한테도 들려주고 싶어서 똑같이 양쪽 귀를 막고 내 입 속에서 노니는 혀를 감아 당겨 얽었다가 뿌리까지 쪽쪽 빨아 당기자 하준이 허리를 바짝 세웠다.

키스는 상냥한 것 같으면서도 저돌적이었다. 누군가 키스는 입술로 하는 섹스라고 했는데 틀린 말이 아니다.

마주 닿은 사타구니가 눈에 띄게 부풀어서 누가 더 흥분했는지 따질 필요가 없었다.

“하아.”

아랫입술을 쪽 빨아주면서 입술을 떼자 하준이 긴 숨을 뱉었다.

“계속 키스만 해?”

“넌 뭘 더하고 싶어서 계속 물어보는 건데?”

하준이 엉덩이를 주무르면서 사타구니를 바짝 밀어붙였다.

“여기 섰으면, 할 건 하나밖에 없지 않냐?”

‘넌 안 하고 싶어?’ 뒷말은 굳이 입 밖으로 내지 않았지만 박하준이라면 분명 알아들었을 것이다.

“해 본 적은 있어?”

“넌 나한테 무슨 말이 듣고 싶은 거야?”

“뭐?”

“아닐 걸 알면서 계속 같은 질문을 하는 건 뭔가 듣고 싶은 대답이 있어서 그런 거 아냐?”

“아닌데?”

“아니긴 뭐가 아냐.”

손을 들어 박하준 뒤통수를 쓸어내리자 작은엄마를 닮은 직모가 손가락에 사락 감겨왔다.

“너하고만 하고 싶어.”

이 정도면 원하는 대답이 되려나.

“오메가 페로몬에도 발정 안 하는데 너랑 있으니까 금방 이렇게 됐잖아, 이걸로 충분하지 않아?”

사타구니를 눈짓으로 가리키며 말하자 하준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얼굴을 보아하니 대충 정답을 말한 것 같다. 아무래도 진짜 본격적으로 일을 치르기 전에 확실히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역시 그때 화장실에서 했던 말은 고백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건가.

“그러니까, 그만 애태우고.”

하준이 발을 감싸고 있는 운동화 뒤꿈치를 잡아당겼다.

“신발 벗고 이제 침대 가, 나 급해.”

목덜미를 앞니로 살짝 깨물며 중얼거렸다. 거짓말이 아니라 진짜다, 이 상태면 넣자마자 쌀 것 같다.

“네 신발이나 벗어.”

하준이 달아오른 얼굴의 열을 식히려고 손부채질을 하며 내 위에서 일어나 신발을 벗어 바닥에 툭툭 던졌다.

세상에, 알파답기도 하지.

떨리는 손끝을 숨기고 아무렇지도 않은 척 부리는 귀여운 허세를 속으로 칭찬했다. 말로 하면 놀린다고 생각해서 삐칠 수도 있으니까.

계단을 올라가는 발소리가 묵직했다. 단순히 양말을 신고 있어서 그런 게 아니라는 건 평생 박하준을 본 내가 제일 잘 알았다.

신발을 벗고 숨을 크게 들이켜자 현관에 배어 있는 냄새가 느껴졌다. 페로몬을 풀어서 내 냄새가 압도적으로 진했지만 중간중간 하준이 향이 엉키듯 배어 있었다.

페로몬에 예민한 사람이라면 페로몬의 주인들이 뭘 했을지, 혹은 앞으로 뭘 할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을 정도였다.

하준이를 따라 2층으로 올라왔을 때 순간적으로 발 길이 방향을 잃었다.

내 방? 박하준 방? 어디지?

하준이 페로몬 흔적을 따라가기 위해 코를 킁킁거렸다. 냄새로 주인 따라 움직이는 개가 된 것 같다.

내 방문을 열자 하준이 침대에 멀뚱히 앉아 있었다.

“왜 내 방이야?”

“넌 준비해 놨을 거 같아서.”

합당하다고밖에 할 수 없는 이유에 웃음이 나왔다. 역시 박하준은 날 너무 잘 안다. 그날 극장에서 한 이후 바로 사뒀다.

하준이 화가 풀리면 언젠가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그때 없어서 허둥거리는 것보다는 있는 게 나을 거라고 생각했다.

페로몬 강간 소리 듣지 않으려면 아프지 않게 해야 할 테니까.

“내 방 뒤졌어?”

책상 맨 아래 서랍을 열어 젤을 꺼내자 하준이 작게 웃었다. 저건 예상에서 벗어나지 않은 걸 보고 즐거워하는 것이다.

“뒤질 필요가 있을 거 같아?”

“아니.”

당연히 없겠지, 내가 어디서 죽치고 있을지도 한 번에 알아냈는데.

하준이가 셔츠를 머리 위로 당겨서 휙 벗어 던졌다. 바닥에 떨어진 셔츠에 시선을 줬다 고개를 돌리자 눈이 마주쳤다.

“벗겨 줄까?”

“내가 벗겨주고 싶었는데.”

“아쉽겠네.”

하준이 양말을 벗어 던지고 바지까지 단숨에 벗었다. 어두운색 드로즈만 입은 하준이 나도 벗으라는 눈짓을 보냈다.

“다음엔 내가 벗겨 줄래.”

“다음이 있을 거라고 보는 거야?”

“그럼 오늘로 끝이야?”

“확인이라고 했잖아.”

몸에 걸치고 있는 옷들을 하나하나 벗으면서 입술을 핥았다.

“거기 이미 젖었는데 더 확인해야 해? 아니면 내 페로몬이 오메가 페로몬이랑 비슷하다는 핑계라도 댈 거야?”

형체를 뚜렷하게 드러낸 채 발기한 좆 끄트머리 부분을 감싼 드로즈가 젖어 있는 걸 지적하자 하준이 작게 인상을 썼다.

“누워 봐, 풀어 줄게.”

젤을 손에 쥐고 흔들어 보이자 하준이 침대 헤드에 등을 기댔다.

“근데 왜 내가 당연한 것처럼 아래야?”

하준이 발목을 당기며 드로즈를 아래로 잡아당겼다. 쑥 미끄러진 드로즈에서 발을 빼낸 뒤 다리를 벌리고 침대 위로 올라가 자리를 잡았다.

“네가 하준이잖아.”

“뭐?”

“네가 ‘하’고 내가 ‘상’이니까 어쩔 수 없는 거야,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거 같지 않아?”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우리 할머니 미신 잘 믿던데 어디 가서 점이라도 보고 온 건지도 모르지.”

“뭔 소리야.”

“네가 내 아래 깔릴 거라는 그런 점.”

“야.”

발길질하려는 하준이 종아리를 붙잡아 움직임을 저지했다.

“농담, 내가 하고 싶어, 하게 해줘. 안 아프게 할게.”

하준이 눈을 빙글 굴리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속으로는 형이니까 봐준다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20

오메가나 여자처럼 젖는 기관이 아니라서 그런지 젤을 흥건할 정도로 부었는데도 아래가 뻑뻑했다.

중지를 밀어 넣어 안쪽을 더듬고 지문이 있는 부분으로 비벼대자 하준이 입술을 깨문 채 다리를 덜덜 떨었다.

이물감 때문인지 미간에 잡힌 주름이 안쓰러워서 페로몬을 풀면서 달래주듯이 손가락을 움직였다.

젤이 녹아 쿨쩍거릴 때까지 아래를 끈질기게 비비다가 손가락을 하나 더 밀어 넣자 하준이 입술을 깨물었다. 그 와중에도 좆은 발딱 서서 말간 액을 질질 흘리는 걸 보니 확실히 내 페로몬에 흥분하는 모양이다.

내벽을 탐색하듯이 집요하게 손가락을 움직이자 하준이 다리를 부들부들 떨었다. 아읏, 탄성 같은 신음이 중간중간 흘러나올 때마다 머리가 멍해졌다.

완전히 풀어줘야 한다는 생각에 필사적으로 이성을 부여잡고 손가락을 하나 더 밀어 넣었다. 기분 좋아야 다음에 또 한다고 할 거니까.

“흐, 몇 개나, 넣는 거야….”

“왜? 별로야?”

“하아, 너무 이상해….”

“이상한 게 전부 같지는 않은데, 아래 찌를 때마다 여기 움찔거려.”

좆 기둥을 느릿하게 훑어 올리자 하준이 이불을 쥐어뜯을 것처럼 움켜쥐었다.

분명 남자도 안쪽에 느끼는 부분이 있을 건데, 오메가랑 다르게 더 깊은 데 있나. 오메가는 전립선 근처에 자궁 입구가 있다고 했고 그 부분이 보통 성감대라고 했다.

남성 알파도 자궁이 있기는 하지만, 여성이나 오메가에 비하면 완전히 퇴화한 장기라 찾기 쉽지 않고 그 구실도 거의 못 한다고 했다.

뭐, 남성 알파가 임신하려고 하는 경우도 드물겠지만.

풀어주는 것에 멈추지 않고 전립선을 찾아볼 생각으로 손가락을 길게 쭉 뻗어 배꼽을 향해 돌리면서 안쪽을 긁자 하준이 허리를 튕겼다.

지금까지 와는 확연하게 다른 반응에 나는 물론 하준이도 놀란 눈을 했다.

“흣, 뭐야… 거기, 이상, 하읏.”

이상하다는 말이 끝나기 전에 한 번 더 손가락을 움직이자 하준이 성기 끝에서 쿠퍼액이 줄줄 쏟아졌다.

하, 이거 뭐야, 이렇게 반응이 좋아도 되는 건가.

“뭐야, 너 존나 야해. 개발 끝난 거 아냐? 혹시 나 모르게 후장 자위했어?”

흥분한 바람에 속으로 생각했어야 할 말들이 막 튀어 나갔다.

“흣, 무슨 후장, 자위야, 아읏.”

“여기, 되게 좋아하네.”

반응이 상상 이상으로 적나라해서 같은 부분을 집요하게 찔러대자 하준이 몸을 배배 꼬았다.

“좆물 되게 많이 나와, 젤도 필요 없겠다.”

기둥을 타고 흘러내린 쿠퍼액이 불알을 지나 회음부까지 적시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자 하준이 턱을 덜덜 떨며 머리를 흔들었다.

반쯤 벌어진 입에서 신음과 함께 쌕쌕거리는 숨이 터져 나왔다.

“아읏, 그만… 읏.”

“하아, 미치겠다.”

반응이 좋아진 것과 동시에 하준이 냄새까지 진해져서 머리가 어질거렸다. 눈앞이 핑그르르 돌면서 아랫배가 정복욕으로 들끓었다.

하준이 신음을 뱉을 때마다 머릿속이 하얗게 변하면서 씨를 뿌리고 싶은 욕망만 강해졌다.

벌어진 애널 입구가 빠끔거리면서 손가락에 달라붙었다. 손가락이 들락날락하는 것에 완전히 익숙해진 것처럼 꿈틀거리는 점막에 심장이 움틀거렸다.

손가락으로 안쪽을 들쑤시자 구멍 입구가 분홍색으로 달아올라 헤프게 풀어졌다.

하, 박하준이랑 섹스하면 마냥 좋을 거라고 상상했지, 이렇게 야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아읏, 손, 가락 빼줘… 흣.”

하준이 다리를 버둥거리며 허리를 들썩였다. 다리 사이에서 덜렁거리는 좆이 아플 정도로 발기해서 배꼽 아래를 툭툭 건드렸다.

“그럼, 다른 건 넣어도 돼?”

전립선을 꾸욱 누른 채 묻자 하준이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언뜻 보기에도 반쯤 정신이 나가 보였다.

다른 게 뭔지는 알고 저러는 건가, 아니면 나 모르게 어디서 약이라도 먹고 온 걸까.

뭐라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느끼는 걸 보니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물론 기회를 놓치면 안 된다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어서 팬티를 대충 내려 핏줄까지 붉어진 좆을 입구에 맞췄다.

좀 전까지 손가락을 물고 있던 입구에 귀두를 갖다 대자 씹어 먹을 것처럼 구멍이 오물거렸다. 달아오른 구멍을 향해 좆을 천천히 밀어 넣었다.

아, 씨발, 뜨거워, 좁아….

21

“아파, 잠깐…!”

손가락이 세 개나 들락거렸으니까 충분히 괜찮을 줄 알았는데 부피감이 손가락과는 전혀 달랐다.

어깨를 밀어내며 버둥거리자 살짝 밀어 넣었던 성기를 상준이 뒤로 뺐다.

“…아파?”

내 다리 사이와 제 다리 사이를 보는 눈에는 아쉬움이 가득 묻어 있었다.

빨리 안에 들어가고 싶어서 어쩔 줄 몰라 하며 상준이 제 성기를 손으로 훑고 흔들었다.

완전히 발정난 눈을 하고 날 보고 있어서 손끝이 저릿저릿했다.

“더 풀까?”

눈은 욕정으로 이글거리는데 그래도 날 위해주겠다는 듯 물러나는 태도에 마음이 흔들렸다.

“됐어, 그냥 넣어.”

다리를 좀 더 벌리고 옅은 심호흡을 하자 상준이 다가왔다.

“뒤로 할래? 그쪽이 더 편할지도.”

“…싫어.”

그래도 자존심이 있지, 처음인데 엉덩이만 대주는 그런 폼으로 하고 싶지는 않다.

“천천히 할게.”

상준이 내 허벅지를 쓰다듬으며 달랬다. 긴장을 풀라는 신호에 가슴팍이 들썩거릴 정도로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가 내쉬자 상준이 무릎 뒤에 손을 밀어 넣고 다리를 밀어 올렸다.

허리가 접히고 엉덩이가 허공에 붕 떠오르면서 상준이 얼굴이 가까이 다가왔다.

“읏, 야….”

“이쪽이 더 나을 거 같아서.”

얼굴에 떨어지는 숨결이 너무 뜨거웠다. 부끄러운 기분이 들어 고개를 돌려 시선을 피했다.

정말 단 한 번도 상상하지 않았던 순간이다.

나를 저런 눈으로 보는 박상준이라든지, 박상준 아래서 다리를 활짝 벌리고 있는 나라든지.

“첫 경험은 당연히 여자랑 할 줄 알았는데….”

손바닥으로 얼굴을 문지르며 작게 중얼거렸다.

“이런 흉기를 여자한테 넣으려고 한 거야? 매너가 없네.”

상준이 내 성기를 손바닥으로 감싸 쥐고 흔들었다. 긴장을 풀어주는 것과 동시에 성감을 돋워주는 움직임에 척추가 징징 울렸다.

앞에 가해지는 자극에 몸이 확 풀어진 순간 입구에 닿았던 귀두가 안쪽을 파고들었다.

처음의 조심스러웠던 삽입과 다르게 이번엔 성급했다. 속전속결로 처박으려는 움직임에 허리를 비틀었다.

“잠깐, 너무, 커. 안 들어간다고!”

반 정도 들어왔을까, 장기가 밀려 올라가면서 숨이 턱턱 막혀와 몸을 비틀었다.

“바보냐? 네가 큰데 당연히 내 것도 크지.”

상준이 내 성기를 꽉 쥐고 흔들며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아무리 쌍둥이여도 그런 것까지 닮을 필요 없잖아.

“그리고 지난번에 다 봤으면서 왜 엄살이야.”

“뭐가, 흣, 엄살이야.”

“힘 좀 빼봐, 늘려놔서 다 들어갈 거 같으니까….”

상준이 복근에 힘을 준 채 느릿하게 몸을 내리눌렀다.

“아, 하으으, 내가 헐렁한 것처럼, 말 하지 마, 이 개, 하읏.”

눈물이 줄줄 쏟아졌다. 진짜 이건 아니다, 정말 이건, 인간적으로 너무 크잖아.

상준인 내 기분 좋아지라고 나도 크네 어쩌네 했지만 난 이렇게 무식하게 크지 않다. 우성이라 좆도 더 큰 거야, 뭐야.

“천천히… 한다며, 흣.”

“욕하는 거 보니까, 하아, 괜찮아 보이길래.”

다리를 좀 더 밀어 올리며 상준이 성기를 욱여넣듯이 몸을 밀어붙였다. 한계까지 벌어진 구멍이 거대한 살덩이를 빠듯하게 물었다.

이대로 움직이면 죽을 것 같아 덜덜 떨리는 손으로 상준이 팔뚝을 꽉 붙잡았다.

“아직, 흣, 움직이지, 마, 하아….”

움직이면 정말 죽을 것 같아서 필사적으로 말을 뱉자 상준이 손바닥으로 내 얼굴을 쓸었다.

“너도 기분 좋았으면 좋겠는데.”

아까 손가락으로 눌렀던 부분을 찔러 주겠다는 말에 도리질 쳤다. 이렇게 압박감이 센데 거길 눌렀다가는 진짜 죽을지도 모른다.

“내가, 안 좋다고 하면 안 할 거야?”

“기분 좋게 해줄게.”

“안 한다는, 말은 안 하지?”

“여기에 기분 좋아라고 써 있으니까.”

상준이 힘들다고 말하면서도 여전히 꼿꼿하게 서 있는 내 성기를 툭 건드렸다. 그건 삽입에 의한 쾌감이 아니라 아까부터 후각을 절일 기세로 퍼져 나오는 박상준 페로몬 때문에 흥분한 거다. 삽입에 의한 쾌감과는 분명 다른 문제다.

상준이 내 얼굴을 가만히 내려다보며 은근히 허리를 움직였다. 천천히 뒤로 빠져나갔던 성기는 길을 내는 것처럼 다시 느릿하게 밀고 들어왔다. 몇 번 느릿느릿 움직이던 성기는 조금씩, 조금씩 더 안쪽으로 들어왔다.

상준이 노리는 지점이 예상돼서 숨을 할딱이는데 역시나 손가락으로 눌러댔던 전립선에 귀두가 푹 꽂혔다.

“하으읏…!”

내 목에서 나온 소리라고 인정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높은 교성에 머리가 핑 돌면서 성기 끝에서 정액이 터져 나왔다.

단숨에 치달은 절정에 눈앞이 하얗게 흔들렸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상준이 힘 조절 없이 넣었다가 빼기를 반복했다. 그러다 배 안쪽까지 푸욱 찔러 넣은 채 허리만 돌려 변태같이 내벽을 헤집었다.

“아, 잠깐… 흣, 거기, 하지, 아읏.”

“질질 나오는데?”

말과 다르게 몸은 쾌감에 절었다.

상준의 흥분도를 알리는 것처럼 페로몬도 점점 진해졌다. 허리를 들썩일 때마다 피부가 부딪혔고 젖은 소리가 요란하게 났다. 달콤한 희열이 온몸에 퍼지면서 전신을 지배했다.

단단하고 커다란 살기둥이 반복적으로 움직이는 단순한 행위가 너무 좋아서 생각이 정리되지 않았다.

“읏, 으응, 하아….”

천박하고 음탕한 신음과 함께 몸이 흔들리다 배 안쪽을 가득 채운 것이 점점 부푸는 게 느껴져 몸을 파르르 떨었다.

상준이 곧 사정할 거라는 걸 알아서 몸이 덜덜 떨렸다.

아, 근데, 잠깐, 얘 지금 노콘 아냐?

“야, 너, 콘돔, 으읏.”

“안에 싸면, 안 돼?”

“하읏, 미쳤, 어? 준비 해, 놨다며? 읏.”

“있긴 한데, 아깝잖아.”

뭐가 아깝다는 거야? 지 정액이? 우성 알파라 정액 귀하다고 자랑하는 거야?

“안 돼, 빼… 흣, 안에, 싸지, 마….”

“왜? 임신할 거 같아서?”

임신이라니, 알파 남성의 임신은 현대 사회에서 전 인류의 1%가 될까 말까 할 정도로 희귀한 일이다. 그리고 난 그 1%가 되고 싶지 않다.

“그런, 문제가, 아니잖, 하읏.”

“오메가도 아닌데 뭐 어때.”

박상준이 잘생긴 얼굴로 눈꼬리를 휘었다. 오메가면 100% 임신 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이 묻은 말에 아랫배가 뜨거워졌다. 없는 게 당연하다고 여겼던 자궁이 생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심지어 동생의 씨를 받으려고.

상준이 뒤로 허리를 빼고 다시 안쪽으로 성기를 처박았다. 찰박거리며 쿠퍼액과 젤이 섞여 엉덩이 주변에 막 튀었다.

“하아, 쌀래.”

“안 된, 다니, 하읏, 빼….”

“진짜, 안 돼?”

첫 경험이 삽입되는 쪽인 것도 좀 억울한데 안에 싼다니, 진짜 미친 거 아냐?

잔뜩 욕을 해줄 요량으로 입을 벌리는데 상준이 허리를 숙여 얼굴을 가까이했다.

귓가에 입술이 스칠 정도로 바짝 붙은 상준이 입을 움직였다.

“사랑해, 형.”

어, 어? 짧은 말에 몸이 찌르르 울렸다. 이건, 진짜 아니잖아. 너 지금 형이라고 부르는 건 반칙이지.

그렇게 말하면 내가 허락할 걸 알아서 이런다는 걸 아는데, 머리로는 계산이 섰는데 몸은 허락의 신호를 보내고 말았다. 상준이 허리에 다리를 감아 꽉 끌어당겼다.

역시 알파는 페로몬의 노예다.

안쪽을 꽉 채우고 있던 살덩이 끝에서 뜨거운 게 쏟아져 나왔다. 양이 적지 않은 액이 끝없이 흘러서 내 안을 적시는 생경한 느낌에 내 성기 끝에서도 정액이 주르륵 쏟아졌다.

“하아, 형이라고 부르니까 좋아?”

“미친, 너, 진짜, 일부러, 흣….”

상준이 허리를 부들부들 떨다가 움직임을 멈추고 날 바라봤다.

“큰일 났다, 형.”

“왜, 또, 뭔데, 읍…?!”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안 되는 강렬한 페로몬이 내 몸을 짓눌렀다.

상준인 페로몬을 잘 갈무리 하는 편이었고 지난번을 제외하고는 내 앞에서 페로몬을 완전히 풀지도 않았다. 우성이 열성을 페로몬으로 누르는 그런 현상이 혹시라도 벌어질까 봐.

근데 지금 이건 완전히 풀어 버린 거다. 아니, 상준이 의지로 풀어버린 게 아니라….

“나 러트 왔어.”

22

똑, 상준이 얼굴에 맺힌 땀이 가슴팍으로 떨어졌다.

온몸이 예민해져서 그 작은 감촉에도 예민하게 반응했다. 상준이한테서 풍기는 단내는 이제 위압적일 정도여서 머리가 멍했다.

이대로 녹아서 사라지는 게 아닐까.

세상에, 섹스하는 도중에 러트가 올 수도 있는 거야? 이건 진짜 너무 하잖아.

“하아, 진짜 너무 좋아.”

아직도 아래를 가득 채우고 있는 걸로 배 속을 헤집으며 상준이 중얼거렸다.

처음에 발랐던 젤이 녹고 상준이 몇 번이나 안에 싼 바람에 이젠 움직일 때마다 철벅거리는 소리가 났다.

안을 꽉 채우고 있던 것이 주르륵 빠지더니 다시 끝까지 밀고 들어왔다.

“흣, 이제, 그만, 해… 이렇게까지 하자는 얘기는 안, 했어, 엉덩이, 이상해질 거, 같아….”

코를 훌쩍거리며 어깨를 밀었지만 상준이 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근데, 형 페로몬, 하아… 너무 좋아서, 선 게 죽지를 않아.”

무슨 소리야, 괜히 페로몬 탓이나 하고, 지금 이 방에 가득 찬 건 온통 박상준 냄새다. 원래 방에 배어있던 체취를 시작으로 이불이나 베개에도 냄새가 묻어 있어서 완전히 잡아먹히는 것 같다.

무엇보다 제 마음도 잘 표현하지 못하는 서투른 놈이 날 좋아한다고 생각하면, 별걸 하지 않아도 배 속이 오싹오싹했다.

“흣, 아니, 잖, 아읏….”

“하아, 형.”

평소에는 아니, 원래는 부르지도 않던 호칭을 일부러 쓰면서 부를 때마다 나도 모르게 몸이 움찔거렸다.

형이라는 말이, 원래 이렇게 야한 거였나?

“형이라고 부를 때마다 이렇게 조이는 거 보니까, 너 좀 변탠가 봐.”

“너, 일부러, 그렇게 부르, 지 마.”

“왜? 내가 형이라고 부르면 형제가 섹스하는 거 같잖아.”

심장이 바짝 움츠러들었다. 머릿속으로 분명 알고 있던 사실인데 몸에도 새겨지는 것 같아 입술을 꾹 다물었다.

“그거, 너무 배덕하지 않아?”

상준이 옆구리를 더듬다가 골반을 움켜쥐고 위로 당겼다. 굵은 성기에 다시 한번 몸이 뚫려서 다리가 파들거렸다.

“심지어 나 지금 러트여서 임신 가능성도 높은데, 이렇게, 많이 쌌어.”

커다란 손이 엉덩이를 움켜잡고 한계까지 벌어져 있는 구멍을 더 벌렸다. 빈틈이 없을 줄 알았는데 억지로 벌어진 구멍 틈에서 정액이 흘러나오는 게 느껴졌다.

“임신하면 엄마들한테 뭐라고 할래?”

“…미친, 형한테 씨 뿌리면서 임신 드립하는 네가 더 변태지.”

제멋대로 박아대는 게 괘씸해서 씨근거리자 상준이 샐쭉하게 웃었다. 어느 정도 했으면 체력이 떨어져야 정상인데 어째선지 상준이는 하면 할수록 더 팔팔해 보였다.

“근데, 형.”

“하아, 그렇게 부르지 마… 이제 불안하다 진짜….”

동정심이라도 유발해 볼까 싶어 말끝을 흐리자 슬렁슬렁 흔들리던 허리가 멈췄다.

먹힌 건가? 이제 그만 할 건가?

상준이 젖은 내 앞머리를 손으로 넘겨주고 큰 손으로 얼굴을 쓸었다. 따끈한 온기가 좋아서 고개를 기울였다.

뺨을 쓰다듬던 손이 턱을 더듬고 입술을 벌리고 안으로 들어왔다. 입 안에 들어온 손가락을 쪽 소리 나게 빨자 상준이 입술을 깨물었다.

“좀 더 힘내 봐.”

다정했던 것도 잠시, 상준이 내 오른쪽 다리를 위로 밀어 어깨에 걸치더니 퍽퍽 소리가 나도록 밀어붙였다.

고통에 가까운 쾌감에 눈꼬리를 타고 물기가 흘러내렸다.

“못, 한다니, 까, 흣….”

“형 구멍이 내 좆을 씹어 먹는 거 같아, 안 놔줘.”

네가 그냥 쑤셔 박는 거잖아, 내가 안 놔주는 게 아니라.

“아응, 흣….”

머릿속에는 불만이 차올랐지만 입 밖으로 흘러나간 소리는 신음이었다. 어디를 건드려도 좋은 것처럼 몸이 반응했다.

상준이 페로몬은 엄마들 냄새랑도 비슷하고, 내 냄새랑도 비슷해서 그런지 익숙했고, 그 익숙한 페로몬에 발정한 것처럼 헐떡거리는 내가 너무 변태 같은데, 또 너무 좋아서 머리가 어지러웠다.

오메가 페로몬을 맡았을 때도 이 정도로 강하게 성욕을 느낀 적은 없는 것 같은데, 너무 이상했다.

“진짜, 흣, 그만, 해… 나 이제, 나올 것도 없어….”

“괜찮아, 형. 정액은 실시간으로 생성이니까, 계속 쌀 수 있어.”

읏, 형 소리에 또 멍청할 정도로 솔직하게 아래가 조여들었다.

처음 했을 때보다 더 깊게 들어와 박힌 성기는 이제 배꼽 아래 있는 것 같다. 무의식적으로 아랫배를 문지르자 내가 싼 정액이 손바닥에 닿았다.

끈적거리는 액을 닦아 내듯 움직이자 들어찬 성기 때문에 아랫배가 볼록한 게 만져졌다.

“하아… 사람 환장하게 만드는 재주 있네.”

“흣, 뭐가….”

가물거리는 눈 사이로 상준이 머리를 쓸어 넘기는 게 보였다. 그 모습이 포르노 잡지에 나오는 배우처럼 선정적이어서 늘어져 있던 성기가 불끈거렸다.

모두가 아는 것처럼 알파의 성욕은 강하다. 그리고 나 역시 어쩔 수 없는 알파였기 때문에 이렇게 시각적으로 자극당하면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다.

“배 만지는 거, 일부러 그러는 거야? 엄청, 야해 보여.”

진짜, 이제 별 핑계를 다 대는구나 싶어 눈꼬리를 올려 노려보자 상준이 엄지로 눈가를 쓸었다.

“그렇게 쳐다보는 것도.”

자신은 아무 잘못이 없고 다 나 때문이라는 것처럼 말해서 말문이 막혔다.

“형.”

일부러 대답하지 않고 도리질 치자 상준이 손바닥으로 가슴팍을 문지르더니 톡 튀어나온 유두를 비틀었다.

“거긴, 또, 왜…!”

“나 없는 데서, 발정하고 다니지 마.”

지독한 소유욕 선언에 등이 튕기듯이 떠올랐다. 의도하지 않게 유두를 더 만져 달라는 것처럼 가슴을 내밀고 말았다.

그 자세를 민망해할 틈도 없이 작은 돌기가 상준이 입 속으로 사라졌다.

끈적끈적하게 젖은 입술이 유두를 감싸더니 날카로운 이로 깨물었다. 잘근잘근 깨물면서 입술로 쪽쪽 빨아대는 통에 허리 안쪽이 덜덜 떨렸다.

“아, 아파… 너, 진짜, 흣, 그만, 해….”

러트가 끝날 때까지 계속할 생각인가 싶어 겁이 덜컥 났다.

“약, 먹지 말라고 한 건 형이잖아.”

“네가, 언제부터, 그렇게 내 말을 잘 들었다고….”

유두를 문 채 웅얼거리는 상준이 머리를 밀며 반박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잘 들어, 난 네 말은 원래 잘 들었어.”

세상에, 엄마들이 들으면 기가 막혀서 한참을 웃을 소리다.

네가 내 말을 잘 들은 게 아니라 내가 네 말을 잘 들었겠지. 지금도 멈추라는데 안 멈추고 있으면서.

“아까부터 싫다고, 힘들다고 하면서도 계속 서 있잖아, 냄새도 엄청 진하고.”

상준이 입술을 반대쪽 유두로 옮기면서 내 성기를 쥐었다. 발기한 채 야한 물을 뚝뚝 흘리던 것은 손길이 기쁜 것처럼 움찔거리며 정액을 질금 쏟아냈다.

“할수록 냄새가 진해져.”

허리를 바짝 밀어붙여서 몸 속에 들어있던 것이 안쪽에서 꿈틀거렸다.

아까부터 상준인 내 페로몬 냄새가 나는 것처럼 말하는데 솔직히 난 잘 모르겠다.

숨을 쉴 때마다 느껴지는 건 폐를 점령할 것처럼 밀고 들어오는 박상준 페로몬이지, 내 페로몬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러트라는 말을 증명하는 것처럼 위협적으로 풍겨대는 향 때문에 발기도 못 멈추고 몸은 예민해질 대로 예민해져서 쾌감에 순종적으로 반응하고 만다.

상준이 성기를 가볍게 흔들면서 유두에 집중했다. 어째서 관심이 갑자기 유두로 변한 건지 모르겠지만, 세게 물리고 빨릴 때마다 저릿한 통증이 번져 온몸이 음란하게 꿈틀거렸다.

“흣, 진짜, 그만, 빨아….”

“하아, 힘들어?”

그럼 안 힘들겠냐?

분명 해가 다 지기 전에 들어 온 집인데 이미 창밖이 어둑어둑하다. 몇 번을 쌌는지 세는 건 진작 포기했다.

쓸데없이 기본 체력은 좋아서 기절도 못 하고 상준이 아래 깔린 채 계속 신음했다. 처음 몇 번은 너무 헐떡거려서 과호흡으로 숨이 넘어갈 것 같았다.

어떻게 된 것인지 후각은 상준이 페로몬에 익숙해지지도 않았다. 모공 하나하나가 다 열려서 상준이 페로몬이 내 몸속으로 흘러들어오는 것 같다.

“…한번, 만 싸고 그만할게.”

당장 멈추는 것에 대해서는 재고할 여지가 조금도 없는 게 분명하다. 아까부터 동공이 반쯤 풀린 박상준이 제정신이 아니라는 건 내가 제일 잘 알겠다.

“진짜, 한 번만이야….”

“응.”

상준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내 허리를 양손으로 붙잡고 휙 돌렸다. 계속 천장을 보고 누워 있던 몸이 반전되면서 베개가 뺨에 닿았다.

“읏, 야…!”

“러트라고, 했잖아.”

“그래서, 그게, 흣… 왜 이 자센, 데.”

“깊게 싸고 싶어서.”

말 같지도 않은 소리 하지 말라고 하고 싶었는데 상준이 골반을 붙잡고 허리짓을 시작했다. 강하게 밀고 들어오는 힘을 이기지 못한 허리가 아래로 추락했다.

엉덩이만 치켜든 자세로는 상준일 받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아으, 으응….”

“하아, 처음보다 더 깊게 들어가는 것 같아.”

무슨 말인지 알 것 같다. 나도 그렇게 느꼈으니까. 저건 거짓말이 아니다. 분명 첫 삽입 때보다 상준이 더 들어오고 있다.

그럴 수밖에 없지, 몇 시간이나 헤집어서 늘려 놨으니까.

“형, 허리 흔들려.”

나도 모르고 있던 사실을 지적당했다.

“내가 뒤로 빠지면, 하아, 엉덩이가 달라붙을 것처럼 따라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사실을 친절하게 덧붙이며 상준이 움직였다. 상준일 따라 움직인다는 사실이 부끄러워 머리맡에 있던 베개를 끌어안고 입에 물었다.

“하아, 왜, 그래, 아까처럼 움직여봐.”

“으응….”

입을 꾹 다물고 머리를 흔들었다. 그 태도가 불만이었던 걸까?

어떻게든 움직이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붙잡고 있던 베개는 상준이 손에 떨어져 나갔다.

“흣, 야, 잠깐…!”

상준이 팔이 내 가슴팍으로 올라와 단단히 감아쥐더니 허리를 일으켜 세웠다.

“아, 흐읍….”

내 등에 상준이 가슴 근육이 닿으면서 완전히 품에 안겼다. 피부가 닿는 면적이 넓어져서 그런지 향이 더 진해졌다.

머리가 몽롱했다. 무슨 생각으로 러트가 올 알파한테 약 먹지 말라는 대단한 소리를 한 걸까.

“너, 진짜… 흣, 약 먹어…”

“지금 먹어봐야, 약효 돌려면 시간, 걸려.”

“특효약이라도, 먹어.”

부작용 때문에라도 거의 쓰지 않는 약이라도 먹으라고 하자 상준이 잘게 웃었다.

“그럼 너도 먹어야 될 거 같은데?”

상준이 내 성기를 손으로 쥐고 흔들기 시작했다.

허벅지가 단단해지면서 허리가 부들부들 떨렸다. 내벽이 멋대로 움직이며 이미 깊게 들어와 있는 살덩이를 더 안으로 잡아당기듯이 움직였다.

“아, 흣… 이상, 해, 하읏…!”

지금까지와는 다른 강한 쾌감이 꼬리뼈를 중심으로 고여 들었다. 미지의 영역으로 들어서는 문을 열 것 같아 참으려고 해도 몸이 덜덜 떨렸다. 눈앞이 하얗게 흐려질 정도로 쾌감에 절은 뼈마디가 달콤하게 삐걱거렸다.

“아, 응, 좋아… 흣, 아… 으응….”

“좋아? 진짜?”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좋기는 진작부터 좋았지만 솔직하게 말을 못 했는데 지금은 참기가 어려웠다.

피가 이어진 동생을 받아들이며 거칠게 흔들릴 때마다 성기 끝에서 끈적끈적한 액이 질질 흘렀다.

상준의 허리짓이 절정을 향해 움직였다. 엉덩이를 세게 두드리는 마찰음에 몸을 맡기고 있자 배 속에서 뜨거운 것이 터지는 게 느껴졌다.

이미 몇 번을 쌌으면서 또다시 처음처럼 쏟아져 들어오는 양이 어마어마했다. 그 감각을 견디지 못한 듯 내 성기에서도 정액이 줄줄 터졌다.

상준이 정액이 내 몸을 통해 밖으로 나오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먼저 시험해 보자고는 했지만 설마 이렇게까지 느낄 줄은 몰랐다. 역시, 이거 문제 있는 거 아닌가.

“다, 쌌으면, 빼….”

길었던 사정이 끝나는 걸 느끼고 어깨에 입술을 문지르는 상준의 정수리를 손으로 문질렀다.

“안 돼.”

“마지막, 이라고, 하윽…!”

“지금 못 빼.”

뇌가 딱딱하게 굳어 버린 것처럼 말을 더할 수가 없었다.

내 깊은 곳에서 상준이 귀두가 부푸는 게 선명하게 느껴졌다. 이게 뭔지는 중학교 성교육 시간 때부터 지겹도록 배워서 알고 있다.

노팅.

정액이 흘러나오지 못하도록 귀두가 부풀어서 막는다는, 그걸 지금 상준이 내 안에서 하고 있었다.

“흣, 안 돼… 아파, 흐윽….”

더 벌어질 수 없을 것 같은 안쪽을 억지로 벌리면서 부푸는 감각에 우는 소리를 내자 상준이 뒤로 앉으면서 날 잡아당겼다.

의자에 앉는 것처럼 상준이 몸 위에 앉혀지자 내 체중으로 결합이 더 깊어졌다.

“아흐윽…!”

“지금, 못 빼니까, 좀 참아….”

노팅 중에 성기를 뺄 수 없다는 건 들어서 알고 있었다. 발정기가 오면 알파의 사정은 길면 십 분 정도 지속하고 노팅은 이십 분 정도 한다.

“진짜, 너, 미쳤어….”

“근데, 형도 지금 하는데?”

손바닥으로 얼굴을 문지르다 놀라서 아래를 내려다보자 상준이 손안에서 귀두가 잔뜩 부푼 내 성기가 보였다.

뒤에 들어온 것에 신경을 집중하느라 내 상태는 몰랐다. 상준이 귀두를 손바닥으로 꽉 감싸 쥐고 뒷목을 핥아 올렸다.

나도 모르게 허리를 앞뒤로 튕기며 흔들었다.

같은 피가 흐르는 알파한테 노팅 당하는 것도 모자라서 허공에 노팅이라니, 들어본 적도 없고 어디 가서 말도 못 할 일이었다.

죄책감과 쾌감이 뒤섞여서 멀미라도 하는 것처럼 속이 울렁거렸다.

내 등 여기저기에 키스하던 상준이 고개를 앞으로 움직여 내 입술을 찾았다.

쌍둥이라서 알 수 있는 동질감인지, 금기를 범한 것에서 오는 흥분인지 알 수 없는 감정이 뒤섞인 호흡이 섞여들었다.

“고마워, 형. 이제 진짜 내거, 야….”

조금은 험악하게 느껴지는 목소리를 들으며 그대로 눈을 감았다. 어차피 노팅이 끝날 때까지는 움직일 수도 없다.

23

품 안에 체온이 안 느껴져 팔을 뻗어 옆을 더듬다가 눈을 번쩍 떴다. 분명 신나게 하고 실컷 싸고 잠들었는데 침대 위에는 나 말고 아무도 없었다.

아직 잠에서 덜 깬 건가 싶은 기분이 들어 눈을 끔벅였지만 풍경은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실컷 해대서 화난 건가.

책상 위 전자시계는 벌써 오전 10시였다. 하준이는 나에 비하면 아침잠이 많은 편이라 나보다 먼저 움직이는 경우가 거의 없는데, 어딜 간 거야?

혹시 어제 일을 후회해서 도망친 건가.

안 좋은 생각이 머릿속을 점령할 것 같아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불이 흘러내리자 허벅지를 비롯한 사타구니에 말라붙은 정액이 보였다. 어제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서 대충 바지만 올려 입고 셔츠에 팔을 끼면서 1층으로 내려갔다.

엄마들이라도 온 건가 싶어 급하게 내려가는데 거실에서 하준이 목소리가 들렸다.

“어, 알았어, 지금 밥 먹는다니까, 우리가 뭐 앤가, 천천히 와.”

말을 주고받는 걸로 대화 상대가 엄마라는 건 바로 파악했다.

“엄마야?”

마지막 계단을 내려가며 말을 던지자 전화를 끊은 하준이 턱을 아래로 살짝 움직였다.

“언제 온대?”

“점심 먹고.”

“그래?”

이왕 간 거 한 일주일 있다 오면 안 되나.

떨어져 있는데도 하준이한테서 여전히 상쾌한 향이 풍겼다. 어제 러트가 시작됐으니까 페로몬이 나오는 건 당연했다.

“우리도 밥 먹자.”

하준이 핸드폰을 소파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주방으로 걸어갔다. 별말 없이 따라 들어가자 여행 가기 전에 엄마가 해 놓은 것인지 카레 냄새가 났다.

특별히 반찬이 필요 없는 음식 중 하나인지라 냉장고에서 김치만 꺼내서 상을 차리는 걸 물끄러미 봤다.

밥을 같이 먹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지만 하준이 차려주는 건 상당히, 꺼림칙했다.

맨날 내가 해줘서 그렇다기보다는 지금 박하준은 너무 아무렇지 않은 척, 그러니까 아예 없던 일로 하려는 것 같은 분위기였다. 눈도 안 마주치고.

“야, 박하준.”

“…왜.”

“너 허리 괜찮아?”

밥 위에 카레를 푸고 있던 하준이 어깨를 움찔거려 국자를 놓쳤다.

“안 괜찮으면, 뭐.”

“근데 왜 나 안 보냐?”

가까이 다가가자 하준이 고개를 들어 시선을 마주쳤다. 머리카락 색과 닮은 어두운색 눈동자에 내가 담겼다.

“뭘 안 봐.”

“피한 거 같은데?”

“아니야.”

손에 들고 있던 그릇을 내려놓게 하고 몸을 돌려세웠다. 억지로 마주 보는 자세가 불편한 것처럼 하준이 시선을 떨어트렸다.

“너, 후회해?”

“…꿈꾼 거야.”

하준이 사선으로 고개를 기울인 채 작게 중얼거렸다. 꿈? 뭐가?

“확인해 보자고 한 건 너잖아.”

“…….”

하, 진짜. 혼자 일어나서 무슨 생각을 한 걸까. 왜 이렇게 고집을 부리는 건지 모르겠네.

“뭐가, 꿈인데? 넌 나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하잖아.”

하준의 입술 끝이 파르르 떨렸다.

내가 너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는 것처럼 너도 그렇잖아.

“그리고 진짜 꿈으로 하고 싶었으면, 약 먹었어야지. 지금도 페로몬 나와, 형.”

고개를 숙여 목덜미에 코를 대고 냄새를 맡자 소름 끼치도록 좋은 청량한 단내가 전신을 휘감았다.

“박, 상준….”

“형, 사랑해.”

쐐기를 박았다. 페로몬에 취해서 섹스하지 않는 상황에도 말할 수 있다는 걸 일부러 보여줬다.

하준이 아무 말도 못 하고 눈을 꾹 감았다. 어차피 박하준은 날 거절하지 못한다.

아침에 혼자 눈뜨고 나니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겠지, 그 마당에 엄마한테 전화까지 오니까 겁이 난 걸지도 모른다.

세간에서 말하는 도덕적 기준이라든지, 엄마들이 바라는 형제 상 같은 걸 완전히 무너트릴 자신도 없어졌을 거고.

하지만 그건 그냥 고민이야. 어쩌면 평생 해야 할지도 모르지. 그렇다고 해서 내가 널 포기할 거 같아? 그건 너도 마찬가지잖아.

자꾸 그러면 오메가랑 사귀는 척하는 수도 있다. 만약 그러면 박하준은 미치려고 할 게 뻔하다. 알파의 독점욕은 같은 알파인 내가 제일 잘 안다.

흔히들 쌍둥이는 영혼의 동반자라고 하지 않나. 나는 운명의 짝보다는 이쪽이 훨씬 더 강한 인연 같은데.

“놔 줄 거면 시작도 안 했어.”

콧등을 문지르다 목덜미에 입술 도장을 꾹 찍고 하준이 다리 사이에 허벅지를 밀어 넣었다.

“야…!”

“하고 싶어, 나 러트잖아, 네 페로몬 맡았더니 또 섰다.”

“어제도 많이 했으면서.”

하준이 말끝이 둥글어졌다. 그러고 보면 아까도 별로 단호한 느낌은 아니었다. 싫으면 진짜 싫은 티를 냈을 텐데, 뭐야, 설마…?

퍼져나가는 생각을 멈추고 입을 움직였다.

“너도 금방 설 거야.”

왜냐면 내가 페로몬 풀 거거든.

생각과 동시에 뭉쳐져 있던 페로몬을 풀자 하준이 얼굴이 금방 벌겋게 달아올랐다. 말은 안 했지만 내가 가까이 왔을 때부터 느꼈을 페로몬이었다.

“방으로, 가….”

거절하는 시늉도 못 하고 하준이 내 어깨를 붙잡고 속닥였다.

“싫어.”

하준이 허리를 꽉 끌어안고는 끙 소리와 함께 몸을 들어 올렸다. 뼈와 근육으로 이루어진 묵직한 몸이 놀라서 바짝 힘이 들어갔다.

식탁 위에 앉히자 하준이 눈이 크게 떠졌다.

“뭐, 하는 거야.”

하준이 식탁에서 내려오기 위해 움직였지만 내가 더 빨랐다. 하준이 다리 사이에 내 몸통을 밀어 넣어 움직임을 막았다.

“여기서 할 거야.”

고무줄 바지의 밴드를 잡고 아래로 잡아당겼다. 아침에 일어나서 씻은 것인지 하준인 속옷까지 다 입고 있었다.

혼자 챙겨 입은 게 마음에 들지 않아 혀를 차며 바지와 속옷을 벗기려고 하자 하준이 엉덩이를 뒤로 움직였다.

툭, 손끝에 걸린 것을 확인하기 위해 하준이 고개를 돌린 순간 바로 속옷과 바지를 벗겨 버렸다.

“심하게 움직이면 김치 떨어진다.”

“박상준…!”

몸을 바르작거리는 하준이 엉덩이를 양손으로 감싸 식탁 끝으로 잡아당겼다. 쑥 끌려 내려온 엉덩이를 주무르다 손가락으로 엉덩이 사이를 문질렀다.

“너, 왜 이러는데.”

“화났어.”

“뭐가….”

“네가 거짓말했잖아.”

“꿈이라고 한 거 때문에 그래? 알았어, 그거 아니니까 일단 방에 가서….”

하준이 필사적으로 변명했다.

“뭐, 그것도 화나지만 없던 일로 할 생각도 없으면서 그런 척한 게 제일 화나.”

쌍둥이로 산 게 몇 년인데 내가 박하준을 모를까.

정말 없던 일로 할 생각이었다면 하준인 약을 먹었어야 한다. 그리고 내가 자는 동안 약을 먹이거나 주사라도 놨어야지. 그런데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러트인 걸 뻔히 아는데, 내가 몇 번이나 박하준 페로몬에 발정한다고 했는데. 그러니까 이건 박하준이 날 시험한 거다.

자신이 없던 일로 하자고 했을 때, 내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보려는 못된 시험.

평생을 네 옆에 있던 나를 안 믿으면 도대체 누굴 믿으려고?

역시나 내 말에 정곡을 찔린 것인지 하준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러니까 여기서 할 거야.”

“화났는데, 왜 여기서 하는데.”

“엄마들이 가족을 위해 밥 차려 주는 주방에서 동생이 형을 덮치는 거니까.”

“……?”

하준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도덕심을 무너트리는 말에 어쩔 줄 몰라 하는 기색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그리고 그건 형이 동생을 꼬셔서야.”

“내가 언제?!”

책임전가까지 하자 하준이 발끈했다.

“네가 달달한 냄새 풍기면서 엉덩이 흔들었잖아.”

하준이 억울하단 표정으로 날 봤지만 이미 늦었다. 중지를 쑥 밀어 넣자 어제 하도 해서 살짝 부은 내벽이 느껴졌다.

“부었네?”

“하아… 젤도 없잖아.”

하준이 내 어깨에 얼굴을 비비며 웅얼거렸다.

“어제보다 더 좁겠다.”

“미친, 이 변태가, 흣….”

어제 질릴 정도로 만져서 정확히 알아버린 스팟을 손가락으로 문지르자 하준이 금방 반응을 보였다.

움찔움찔 떨리는 내벽을 문지르다 손가락을 쑥 빼냈다. 젤이 없어서 확실히 퍽퍽했다.

페로몬에 흥분한 귀두 끝에서 흘러나온 쿠퍼액을 묻혀 다시 손가락을 밀어 넣자 하준이 허리가 바짝 일어섰다.

벌어진 다리 사이로 손가락을 들락거리며 쑤셨다.

“하으, 좀, 살살….”

어제 해서 익숙해진 것인지 손가락을 물어 당기는 내벽이 금방 녹진녹진해졌다.

“많이 하면 저절로 젖는 거 아냐?”

그러면 진짜 야하겠다. 그럴 리 없다는 걸 알면서 머릿속에 멍청한 생각이 떠올랐다.

내가 손가락만 넣어도 풀려서 질질 흘리는 박하준이라니, 상상만으로도 코피가 나올 것 같다.

“말이 되는, 소리를, 좀, 해라.”

“왜? 그렇게 되면 너도 좋을 거 같지 않아?”

귓바퀴에 혀를 밀어 넣고 핥아주자 하준이 등줄기가 파르르 떨렸다. 귀는 어제 발견한 곳 중 하나였다. 유두도 잘 느끼고 귀도 잘 느낀다. 엉덩이를 주물러 주면 갈라진 신음이 금방 달콤한 음성으로 바뀐다.

흥분하면 흥분할수록 냄새가 진해져서 아무리 싫다고, 힘들다고 해도 말로만 그런다는 걸 안다.

무엇보다 박하준은 알파여서 체력이 나랑 크게 차이가 없기 때문에 실컷 할 수 있다.

“내 전용 오메가.”

“흣, 아니야….”

손가락 개수를 늘려서 문지르자 하준이 팔을 꽉 잡고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그럼 동생 전용 형으로 할래?”

“흐으, 알겠으니까… 장난 그만치고, 방에 가.”

“장난 아니야, 나 진짜 화났다니까.”

“내가, 미안하다고, 하읏, 했잖아.”

“응, 그러니까 지금부터 화해 섹스.”

하준이 입술을 쪽 소리 나게 빨아주고는 밀어 넣었던 손가락을 잡아 뺐다. 바지춤을 아래로 내리자 살기둥이 퉁 튀어나왔다. 이미 잔뜩 젖어서 번들거리는 좆은 터지기 직전이었다.

“너, 왜, 노팬티, 야.”

“집안 전체에 네 냄새 나서 하고 싶어서 내려 온 거야.”

사실 하준이 위치만 확인하고 씻을 생각이었기 때문이지만 이 정도 거짓말은 걸리지 않을 거라 괜찮을 것이다.

좆 끝을 입구에 대자 하준이 구멍이 움찔움찔거렸다.

“으, 으응….”

말로는 안 된다고, 침대로 가자고 했으면서 하준이 내 어깨를 잡아당기며 은근히 삽입을 재촉했다. 페로몬에 흥분한 것이라 본능을 누르기 힘든 것이다.

하아, 오메가도 아닌데 알파 페로몬에 흥분하다니, 진짜 미치게 야하네.

내가 흥분하는 것보다 몇 배는 더 음란하게 느껴져 머리가 핑핑 돌았다. 허리에 힘을 준 채 구멍 속을 파고들었다. 바른 것도 없는데 축축하고 습한 내벽이 좆을 잡아당기며 부드럽게 조였다.

“하아, 형, 때문에 나 미치겠다.”

하준이 페로몬이 진해졌다.

러트 기간에 돌입한 알파답게 성욕을 누르지 못하는 게 확실했다.

“너는, 싫다고 하는 건 말뿐이야.”

“네가 일부러 페로몬 풀었잖, 하아….”

“동생 탓 하지 마, 형.”

안쪽이 꾸욱 하더니 내 좆을 확 잡아당겼다.

아, 내가 먹으려고 했는데, 이건 내가 먹히는 기분이다.

24

미치겠는 건 네가 아니라 나지.

채 뱉지 못한 말이 입가를 빙빙 돌았다. 식탁 위에 꺼내 놓은 김치가 떨어질까 봐 뒤로 움직이지도 못했다. 양다리는 상준이 허리에 감고 양팔은 목에 감고 떨어지지 않도록 했는데도 불안했다.

아래를 채운 성기가 푹푹 소리를 내며 움직일 때마다 식탁 다리가 흔들렸다. 네 가족이 사용하는 식탁은 좁지 않은데 남자 둘이 흔들어대니 위태롭게 울어대느라 바빴다.

움직임이 거칠어질 때마다 식탁이 부서지는 게 아닐까 싶어 꽉 붙잡았지만 내가 달라붙는 것에 상준인 더 흥분하는 것 같았다.

주방에서 이런 짓을 하면 앞으로 밥 먹을 때 도대체 어쩌려고. 아니, 박상준이라면 일부러 그걸 노리는 게 분명하다.

그냥 한 번 떠본 말이었는데 찔러 본 거라는 걸 단박에 눈치채고 밀어붙이는데 이겨낼 재간이 없다.

누울 자리를 보고 발을 뻗으라는 옛말은 틀린 말이 아니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박상준을 시험해 보려고 했던 걸까.

이미 마음의 결정은 다 했으면서, 상준이 마음이 흔들리는 건 아닐까 궁금했다.

물론 결과는 아니었다. 만약 그랬다면 내 나름 방법을 썼을 거다.

협박이나 감금 같이 폭력적인 방법도 있지만, 박상준을 괴롭히는 가장 효과적이면서 쉬운 방법으로.

내가 독립하겠다고 한 마디만 하면 상준인 그대로 난리가 날 거다. 독점욕이나 소유욕을 숨기지 못하고 발광하겠지.

내가 옆에 없으면 견디지 못할 거잖아, 그러니까 혹시 내가 없던 일로 하려고 해도 넌 죽어도 쫓아 와야지, 따지고 보면 이건 네가 먼저 시작한 거잖아.

엄마들한테 미안한 마음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건 이미 어쩔 수 없다.

사실 우리를 쌍둥이로 낳은 건 엄마잖아, 그러니까 왜 쌍둥이로 낳았어. 최소한 몇 년 터울이라도 있었으면 이렇게 질긴 인연 같은 건 못 느꼈을지도 모르는데.

쌍둥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미 옆에 있는 게 당연하게 느껴지는데 어떻게 하라고.

이기적이고 편협한 변명이다.

근데 원래 알파가 다 이렇지 뭐, 세상 사람들 다 알고 있잖아, 남을 밟고 정점에 서는 게 알파라는 족속이라고, 사람들이 늘 말하잖아.

그것이 설사 가족의 불행이더라도 어쩔 수 없다.

알파가 가지고 있는 저열한 독점욕이 이미 내 안에서 눈을 떴다. 열성이라 평소에는 드러나지 않던 감정이 이제 박상준을 향해 피어난다.

그러니까 그런 못된 시험을 해보려 한 거겠지, 아마 일반적인 연애였다면 의심받은 상대가 못 견디지 않았을까.

“여유 있네?”

안에 들어찬 것으로 내벽을 짓이기며 상준이 물었다.

“뭐, 가….”

“지금 딴생각하잖아, 그새 익숙해졌어? 오메가도 너보다는 힘들어할 거 같은데?”

“아, 니야….”

“아니기는.”

상준이 목덜미에 이를 박았다. 잡아 뜯을 것처럼 세게 무는 힘에 허리가 덜덜 떨렸다. 페로몬이 몸 속으로 퍼지듯이 끼쳐왔다.

소름 끼칠 정도로 좋아서 허리에 걸쳐 놓았던 다리에 자꾸만 힘이 풀리려 했다.

“하, 으읏.”

콧속을 후비면서 들어오는 페로몬 때문에 정신이 몽롱해졌다. 상준이 몇 번 드나든 아래는 벌어졌다 오므라들 때마다 찌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더, 더 해줘, 안에, 세게, 찔러줘.

입을 열면 음탕한 조름이 쏟아질 것 같아 이를 악물었다. 이미 벌린 다리라지만 말로 하는 건 또 달랐다.

“하, 너 진짜 미치겠다….”

내가 너 때문에 미치겠다니까.

찌걱찌걱, 상준이한테 익숙해지면서 아래가 젖는 것이 느껴져 차마 말은 못 하고 속으로만 중얼거렸다.

상준이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마치 내 페로몬을 다 빨아들일 것처럼 숨을 쉬더니 허리를 세게 치고 들어왔다.

“아읏…!”

목이 휙 뒤로 넘어가며 천장이 눈에 들어왔다. 눈을 질끈 감고 상준이 어깨에 턱을 올렸다. 전신이 요란하게 흥분해서 두근거렸다.

“네가 지금 내 옷을, 하아, 얼마나 더럽힌 지 알아?”

난데없는 지적에 눈을 뜨자 깔끔하게 정돈된 주방 전경이 눈에 들어왔다.

미쳤다, 진짜, 2층에 방이 두 개나 있는데 왜 주방에서 이러고 있는 거야.

“흣, 침대, 가자니까….”

때늦은 칭얼거림을 흘리자 상준이 얼굴에 키스를 퍼부었다. 이마와 콧등, 입술과 뺨 여기저기 내려앉은 입술이 간지럽고 달콤해서 손끝이 저릿했다.

“침대가 아니라, 씻고 빨래부터 해야 할 걸?”

“하아, 응?”

“너 지금 내가 이렇게 세게 박아줄 때마다 싸고 있잖아.”

말과 동시에 상준이 퍽 소리 나게 밀어 붙였다. 전립선이 푹 찔리고, 젖은 피부가 달라붙었다가 떨어지는 순간 정액이 퓻 튀어 올랐다.

고개를 숙여 보자 상준이 셔츠가 언제부터 흘린 건지 알 수 없는 정액 범벅이었다.

“아, 흐….”

이러다 밖에서도 박상준 페로몬만 맡으면 질질 싸는 거 아닐까.

동생 냄새에 발정하는 형이라니, 변태도 이런 상변태가 없다.

“으응, 그만, 읏.”

완전히 풀려 버린 혀로 무의미한 소리를 반복했지만, 상준인 들은 척도 안 했다.

“정액이, 얼마나 많은 거야.”

내 민망함 따위는 알 바 아닌 것처럼 상준이 노골적으로 말하며 엉덩이를 움켜잡아 제 쪽으로 당겼다. 달라붙어 있는 상태로 사타구니 전체에 내 엉덩이를 비벼가며 상준이 허리를 털었다.

탄성과 닮은 신음이 상준이 입에서 흘러나온 순간 곧 어제도 느꼈던 감각이 몸 안에 번졌다. 독처럼 퍼져가는 정액이 이대로 나를 집어삼킬 것 같아 허벅지가 경련하듯 떨렸다.

“아… 으응….”

“안에 싸주는 거 좋아?”

“무슨, 아니거든?”

상식적으로 그런 걸 좋아할 알파가 어디 있어. 게다가 상준이 정액은 매번 양이 너무 많아서 내벽을 적시는 것도 모자라 장기까지 스며드는 것 같아 이상했다.

“무슨 느낌이야?”

상준이 콧등을 마주대고 비비면서 물었다. 나긋나긋한 말투와 비슷하게 안쪽에 들어 있는 성기가 부드럽게 움직였다.

정액으로 흠뻑 젖어버린 내벽을 가볍게 휘젓는 움직임에 구멍이 절로 움찔거렸다.

“말해 봐.”

“아, 흐… 그냥 잔뜩 들어오는 거 같은데, 흣, 네가 자꾸 움직이니까….”

말할 생각이 없었는데 상준이 다정함을 흘리자 홀린 것처럼 입이 움직였다.

“미끌미끌거려서 가만히 있기가 힘들어.”

“일부러, 바르는 거 아니고?”

“네가 그러는 거겠지.”

실제로 상준인 사정하면서 긴 성기로 영역표시라도 하는 것처럼 움직였다.

“그런 것도 있지, 어차피 각인은 못 하니까.”

아, 각인, 그건 못 하지. 각인은 원래 알파와 오메가 사이만 할 수 있는 거니까.

상준이 내 등을 꽉 끌어안더니 느릿한 추삽질을 이어갔다. 정액 발린 내벽이 움찔움찔거리면서 성기가 움직이는 것에 맞춰 반응을 보였다.

이대로 여기서 한 번 더 할 것 같아 있는 힘껏 고개를 저었다.

“하으, 그만, 진짜… 이제 엉덩이 아파.”

엄살까지 부렸는데 상준인 내 얼굴을 빤히 보기만 하고 안에 들어 있는 걸 빼지 않았다.

혓바닥으로 상준이 입술을 몇 번 핥다가 팔과 다리를 이용해 품에 들어와 있는 몸통을 꽉 끌어안았다.

“화 풀렸어?”

“…어?”

“화해 섹스라며, 화 풀렸냐고.”

“아, 어.”

“그럼, 이제 형 말을 잘 들어야 착한 동생이지.”

쪽 소리가 나도록 입술에 뽀뽀하자 상준이 눈이 가느다랗게 변했다.

“…침대?”

잠깐 고민하는 기색을 보이더니 상준이 물었다.

진짜 얼마나 더 할 생각인 걸까, 러트는 보통 3일인데 설마 3일 내내? 아니, 그렇게 하면 엉덩이 쪼개지는 거 아냐?

“옮길 수 있으면.”

“너 무거워.”

2층 계단을 힐끔 보더니 상준이 중얼거렸다.

안다, 알아서 시키는 거다. 아까 싱크대에서 식탁으로 옮기는 것도 꽤 힘들어 했는데 이 상태로 2층까지 가는 건 무리다.

“그럼 이제 그만 하, 읏…?!”

살살 달래서 끝내려는 순간 상준이 나를 들었다. 팔에 잔뜩 힘을 줘서 근육이 솟아오른 게 선명하게 느껴졌다.

미쳤어, 진짜 이대로 2층 간다고?

결코 가볍지 않을 무게를 짊어지고 박상준이 불안하게 움직였다. 후들거리는 다리에 힘이 잘 안 들어가는 것 같았다. 거기다 아래는 여전히 결합된 상태여서 상준이 불안하게 움직일 때마다 기묘한 방향으로 성기가 쿡쿡 찌르는 바람에 기분이 이상했다.

“아, 그냥, 내릴래.”

주방을 채 나서기 전에 어깨를 밀며 중얼거렸지만 놓치지 않으려는 것처럼 상준이 내 허리를 꽉 끌어안았다.

엉덩이를 비틀며 품에서 벗어나려고 하자 오히려 안쪽을 채우고 있는 성기가 딱딱해지면서 점막을 자극했다.

“아흐, 야, 그만, 진짜, 이상, 해.”

이대로 계단을 올라가면 진짜 굴러 떨어질 것 같다. 섹스하다 구급차를 부르는 건 사양하고 싶다고.

나는 왜 박상준이 쉽게 물러설 거라고 생각한 걸까.

당연히 계단이 있는 곳으로 갈 줄 알았는데 상준이 엉뚱한 곳으로 방향을 틀었다.

“야, 어디 가는, 거, 야…?”

이제는 완전히 딱딱하게 발기한 성기가 점막을 자극해서 혀가 풀리기 시작했다.

익숙해진 줄 알았던 페로몬이 또 나를 자극했고, 흥분 때문에 내 페로몬이 진해지기라도 한 건지, 아니면 나를 들고 움직이는 게 힘든 것인지 상준의 숨소리도 거칠어졌다.

“침대.”

“거기, 아니잖아.”

“침대는 저기도 있잖아.”

상준이 턱짓으로 가리킨 방향을 따라 고개를 움직였다.

헉, 숨이 막혀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박상준이 가리킨 곳은 철이 들 무렵부터는 거의 들어갈 일이 없던 곳, 부부의 침실이었다.

“야, 잠깐… 저기, 아니잖아.”

“네가 침대 가고 싶다며.”

“아니라니, 까…!”

버둥거리면서 상준일 밀쳤지만 어디서 나온 괴력인지 상준이 아까보다 더 빠르게 성큼성큼 움직였다.

이런 말 웃기지만 금기를 범하는 것도 정도가 있는 거지, 이건 진짜 아니잖아.

우릴 낳아준 엄마 침실에서 떡 치는 형제가 어디 있어?

손잡이를 향해 쭉 뻗어진 팔을 본 순간 울음이 왈칵 터져 나왔다.

25

하준이 절대 안 된다는 것처럼 내 팔을 꽉 붙잡고 고개를 흔들었다. 머리를 흔들 때마다 가볍게 떨어지는 눈물방울에 아래가 불끈거렸다.

장담하는데 박하준이 우는 걸 보고 싶다고 상상한 적도 없고, 울리고 싶다고 생각한 적도 없다.

어제는 흐트러져서 성감 때문에 막지도 못하고 흘리는 거라면 이건 약간 겁을 먹은 것 같은 게, 또 달랐다.

박하준이 이런 식으로 우는 걸 마지막으로 본 건 이미 한참 전이다.

열한 살 때 작은엄마 결혼반지를 갖고 놀다 잃어버려서 큰엄마한테 엄청나게 혼났을 때, 그때 이후로 처음 보는 것 같다. 뭐, 결혼반지가 엄마들 침대 아래서 발견되는 바람에 무사히 넘어 갔지만.

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근 십 년 만에 보는 박하준 우는 얼굴이 이렇게 꼴릴 줄이야.

“열지, 마… 흣, 문 열지 마.”

아래가 달아올라서 화끈거렸다. 익숙해진 줄 알았던 내벽이 뜨겁게 달아올라 중심에 피가 쏠렸다.

“알았으니까, 그만 울어.”

몸을 틀어 소파에 앉으면서 얼굴을 손바닥으로 닦아주자 하준이 품에 폭 안겨 왔다.

아, 진짜… 미치겠네. 왜 이렇게 귀엽게 구는 건데, 야했다가 귀여웠다가 진짜 사람 환장하게 하네.

“야… 흑, 이 미친, 놈아… 너, 왜 더 커져….”

촉촉해진 눈가를 한 하준이 어깨를 주먹으로 툭툭 때렸는데 하나도 안 아팠다. 힘이 안 들어가서 이러는 건지, 아니면 애교라도 부리는 건지 정확히 판단이 안 섰다. 아니, 페로몬 때문에 판단을 내리기도 어려웠다.

“하아, 내가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니, 고.”

“뻥치지 마, 이 변태 자식아…!”

하준이 벌게진 얼굴로 목소리를 높이자 아래가 꽉 조였다.

“읏.”

“이렇게 조이는데, 그럼 어떻게 안 서?”

“아니라고….”

“엄마 방에서 할까 봐, 그렇게 무서웠어요?”

유치원 선생님이 어린애를 대하듯 묻자 하준이 얼굴이 더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허리를 툭툭 위로 쳐올리자 하준이 몸이 부드럽게 흔들렸다.

“하읏, 지마.”

어린애들 놀아주듯이 둥기둥기 하는 박자로 움직이는 걸 알아차린 것인지 하준이 내 어깨를 꼬집듯이 붙잡았다.

“뭘?”

“그렇게… 움직이지, 마, 으응….”

“싫어?”

“으, 그만, 해….”

하준이 입술을 삐죽였다. 내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는 티를 내려고 한 것 같은데 하룻밤 새 콩깍지가 몇 센티는 자란 것인지 오히려 귀엽게 느껴졌다.

얼굴은 뾰로통한데 아래는 꽉 조이고 좆은 발기해 있는 게 조금 웃기기도 했다.

페로몬에 둘러싸여 있으니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을 거지만 그래도 너무 야하다, 박하준.

“싫으면 네가 일어나서 빼 봐.”

손가락으로 귓불을 조물거리며 일부러 낮게 속삭이자 하준이 미간을 찌푸렸다.

‘못 할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어두운색 눈동자가 그렇게 물어서 입꼬리를 슬쩍 올렸다.

하준이 손바닥으로 내 어깨를 꽉 붙잡고 느릿하게 허리를 세워 일어나기 시작했다. 뿌리까지 꽉 물고 있던 엉덩이가 기둥을 쓸어 올렸다.

내가 움직이는 것과는 다른 속도로 점막이 좆을 물고 움직여서 가벼운 소름이 돋았다.

“아, 으응.”

야릇한 소리를 흘리는 얼굴을 가만히 보다가 하준이 움직인 만큼 허리를 위로 들었다. 빠졌던 좆이 언제 그랬냐는 듯 음탕한 구멍 안으로 쏙 빨려 들어갔다.

젖은 소리를 내며 사라진 게 진짜 하준이 날 먹어버린 것 같다.

“야, 네가 움직이면.”

“그럼 빨리 빼면 되잖아, 아쉬워서 일부러, 느릿느릿 구는 거 아냐?”

“하아, 니야… 진짜, 하지 마.”

살짝 주저앉았던 하준이 다시 허리를 움직였다. 아까보다는 빨랐지만 여전히 느렸고 느린 박자는 그만큼 사람을 애태웠다.

이젠 진짜 골이 다 띵하다. 하준이 안에서 빠져나올 때마다 정액에 젖은 좆이 점점 더 커졌다.

스스로 움직이는 것에 흥분한 건지 페로몬도 진해졌다. 박하준 페로몬은 원래 청량한 느낌인데 흥분한 페로몬은 달게만 느껴졌다. 너무 달아서 머리가 다 이상해질 것 같다.

“아, 흐읏… 자세 바꿔, 흣.”

“왜.”

“배에 쓸려서, 이상, 해….”

고개를 숙이자 하준이 스스로 움직이면서 내 아랫배에 은근히 지 좆을 비비고 있었다.

“하아, 일부러 그러는 거 같은데?”

“으, 흐응….”

“침대는 싫다고 울기까지 했으면서 소파는 괜찮아?”

내가 생각해도 심술 맞은 질문에 대답 대신 아래가 꽉 조여들었다. 정액을 쥐어짜 낼 것 같이 바짝 조여대는 통에 척추를 타고 올라온 쾌감이 정수리를 강타했다.

강렬한 쾌감에 욕이 나올 것 같아 입술을 깨물었다. 아마 이 소파에 평소에 누가 앉는지 떠올리곤 저도 모르게 몸으로 반응한 것이리라.

머릿속에서 무슨 음란한 생각을 하는 거야, 진짜.

“무슨 생각을 했기에 이렇게 꽉 조여?”

하준이 엉덩이를 찰싹 소리가 나도록 가볍게 때렸다.

“히윽…! 야, 너, 진짜 변태야?”

“변태는 내가 아니라 형이지, 무슨 생각을 했기에 멀쩡한, 동생 좆을 끊어 먹으려고 하는데?”

양손에 살짝 넘치게 들어오는 살집이 마음에 들어 엉덩이를 멋대로 주무르자 하준이 고개를 저었다. 아닌 척 새침 떨지만 분명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했을 것이다.

“엄마들한테 보여주는 상상이라도 했어?”

“흣, 아니라니까….”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이라던데. 거센 반응을 보이는 하준이를 향해 허리를 쳐올렸다.

더 못 참겠다. 페로몬 때문에 세포가 다 녹아버릴 것 같다.

한참 전부터 좆을 물고 있는 구멍은 이제 완전히 녹진녹진해져서 제멋대로 오물거렸다. 속도를 올리자 하준이 뒤로 넘어갈 것처럼 휘청거렸다.

팔로 등을 받치려는 순간 하준이 날 끌어안고 입을 맞췄다. 입술을 벌리자 기다렸다는 듯 혀가 침범했다.

입이 막히자 하준이 끙끙거리며 신음을 뱉었다. 입이 막혀서 오히려 안심인 것처럼 아까보다 내는 소리가 훨씬 많았다.

거실이라 소리 신경 쓰고 있었나?

하, 진짜. 어떻게 행동이 하나하나 이렇게 다 야할 수 있지? 어디서 연습이라도 하고 온 거 아니야?

아니란 걸 알면서도 질투가 인다. 셔츠 안으로 손을 밀어 넣고 등을 쓸어내렸다가 골반을 잡고 피치를 올렸다. 퍽퍽 소리가 나도록 강하게 치받자 바로 사정의 기미가 밀려왔다.

씨를 뿌리고 싶다는 욕구가 절정을 찍은 순간 눈앞이 하얗게 점멸했다. 경련하듯 정액을 토해내자 하준이 허리도 파들거렸다.

“하아, 하아.”

떨어진 입술 틈으로 거칠게 달아오른 호흡이 뿜어져 나왔다.

안 했을 땐 몰랐는데 진짜 좋다.

난 아마 다시는 박하준과 섹스하기 전으로는 못 돌아갈 것이다.

“너, 진짜… 또 안에 싸고….”

호흡을 정리한 하준이 불퉁한 얼굴로 중얼 거렸다.

이미 어제부터 몇 번을 쌌는데, 싼 횟수로 임신 한다면 박하준은 이미 야구 팀 하나는 만들 정도로 낳게 될 것이다. 아니, 축구인가?

하준이 잔소리를 못 들은 척 목덜미에 코를 박았다. 여전히 단내가 진해서 또 할 수 있을 것 같다.

“너, 진짜… 매너가 똥이야.”

“무슨 매너?”

하준이 양심도 없냐는 눈길로 날 흘겨봤다.

“피임하는 게 매너야?”

“당연한 거 아냐?”

“아니야, 형.”

26

이젠 상준이가 형이라고 부르면 몸이 먼저 반응하게 생겼다. 나도 모르게 몸에 힘을 꼭 준 채 눈을 굴렸다.

상준이 고개를 숙여 내 귓가에 입술을 바짝 붙였다.

“섹스는 원래 임신하기 위한 수단이야, 그러니까 피임을 안 하는 게 매너지.”

다정한 목소리에 조곤조곤 설명하는 어조로 말하는, 개떡 같은 논리에 말문이 턱 막혔다.

그래서, 지금 날 임신 시키고 싶다는 거야, 뭐야, 이 무슨…!

27

“뭘 그렇게 놀란 얼굴이야?”

“네가 거지같은 말을 하니까, 그렇지.”

“그런 반응 보이면 오메가인가, 하고 생각하게 되는데.”

정말 특이한 경우가 아니면 알파인데 자궁은 가진 자는 드물다. 그러니, 임신이란 단어에 저런 반응을 보이면 오메가를 떠올릴 수밖에 없다.

물론 형제 임신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놀라고 당황스러울 순 있지만, 진짜 벌어질 일도 아니고, 설령 벌어진다고 해도―.

“흐응, 알파는 임신 안 하니까 막 쌌다, 이 말이네?”

하준의 말끝이 올라갔다. 기분이 상했을 때 나오는 말투였고, 아까 주방에서와 다르게 이건 진짜였다.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화난 이유를 찾아야 한다. 박하준이 화내면 난감한 건 나니까.

“그게 아니라, 너는 오메가가 아니라는 거지.”

어영부영 대꾸하며 눈치를 보았지만, 하준이 표정은 여전히 변화가 없다.

“그래, 그래서 임신 걱정 없이 싼 거고.”

“…왜 말을 그렇게 해.”

“그럼 뭐?”

하준이 인상을 쓴 채 내 위에서 일어나려고 해서 팔을 꽉 잡았다.

“임신해도 상관없어.”

“뭐?”

그건 또 무슨 말이냐는 눈을 해서 붙잡은 손목과 손바닥에 차례로 입술 도장을 찍었다.

“임신해도 상관없다고, 내 애잖아.”

“…….”

“형 닮으면 예쁠 거니까.”

뭐 맞지, 이왕 낳을 거라면 나를 닮은 애보다는 하준이 닮은 애가 낫겠다. 거울로 보는 것도 지겨운데 뭣 하러 나랑 닮은 얼굴을 봐.

“너, 진짜….”

하준이 자포자기한 것처럼 고개를 저었지만 기분은 확실히 풀린 티가 났다.

진짜 임신하고 싶은 건가.

“임신할 때까지 해 볼까?”

뒷목을 가볍게 주무르며 손을 아래로 움직이려 하자 하준이 내 손목을 딱 붙잡았다.

“아니, 정 하고 싶으면 네가 하자. 내가 안아 줄게.”

역시 알파.

하긴, 허공에 노팅까지 할 정도인데 당연히 박고 싶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지.

“할 수는 있고?”

“뭐?”

“박아 본 적 없지? 근데 박히는 거 먼저 배웠는데 할 수 있겠어? 섬세하게 안 하면 다쳐.”

“너, 하나도 안 섬세했어.”

어제 일을 지적하는 말에 입을 다물었다. 풀어주는 척했지만 급하게 밀어 넣었고 진짜 좆대로 흔들어댄 게 사실이었다.

“어, 일단 씻으러 갈까?”

화제를 돌렸다. 하준이가 정 원한다면 한 번쯤 생각은 해 보겠지만 지금 일단 내가 박히는 걸 주제로 토론하고 싶지는 않았다.

“…이불 빨래도 해야 돼.”

다행히 물고 늘어질 생각은 없는지 하준이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얼굴을 더 잘 보고 싶어 머리칼을 뒤로 넘겨주자 땀에 젖은 이마가 드러났다.

“같이 씻―”

“아니, 너 그 핑계로 또 할 거 같아, 아직도 페로몬 나오는데, 분명히 나도 휩쓸릴걸.”

“휩쓸렸다니, 너도 좋아했으면서.”

하준이 못 들은 척하며 내 위에서 일어났다. 기분을 신경 쓰느라 줄어든 성기가 아까와 다르게 수월하게 빠져나왔다.

“나 힘드니까 네가 해.”

뭘 시키는 건지 알아서 고개를 끄덕인 순간 차고 셔터가 올라가는 소리가 들렸다.

셔터가 올라간다는 건 누군가 열었다는 거고 그 말은 그 차고에 들어갈 차가 도착했다는 거다. 그리고 그건 생각할 것도 없이 엄마들이 왔다는 말이다.

벽에 걸린 시계를 보다 동시에 눈이 마주쳤다.

다음 순간 우린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서둘렀다.

하준이 거실 창문을 열면서 1층 욕실에 들어갔고 난 주방으로 가서 대충 벗어 놓은 바지를 입고 하준이 속옷과 바지를 챙겼다.

2층 계단 위로 하준이 옷가지를 휙 던져 놓고 베란다 문을 여는 것과 동시에 현관문이 열렸다.

“일찍, 왔네?”

예리한 엄마들이 제발 아무 눈치 못 채기를 바랐다.

페로몬 제발, 엄마들 거랑 비슷하니까 그냥 못 알아채라, 제발, 세이프―.

“밥 먹었어?”

“아니, 지금 먹으려고. 뭐 사 왔어?”

작은엄마가 손에 들고 있는 걸 당겨 내용물을 확인했다. 일부러 시선을 피하기 위한 행동이라는 걸 눈치채지 않길 바라며 정신없이 굴었다.

“뭐야, 고기? 등심이잖아.”

“문은 왜 다 열어놨어?”

“환기.”

“지금 열어 놓은 거 아냐?”

“형은?”

큰엄마가 주방으로 성큼성큼 걸어가서 심장이 바짝 쪼그라들었다.

바닥에 흘린 거 있으면 어쩌지? 하준이 말 안 듣고 엄마들 침실에서 했으면 어땠을지 상상만으로도 간이 없어질 것 같다.

“씻어.”

“1층 욕실 쓰는 거야?”

평소에는 2층 욕실을 쓰는 걸 알고 있는 엄마들이 당연히 의아하게 여겼다.

“어, 내가 2층에서 씻는다고 했거든.”

“둘이 다 씻는다고? 어디 나가려고 했어?”

“이 김치는 뭐야?”

돌아버리겠네, 진짜. 양쪽에서 날아오는 질문 공세에 머리가 어지러웠다.

조금만 어색하게 굴면 바로 알아차릴 사람들이라 질문 하나에 대답 하나 할 때마다 뇌세포가 삼천 개씩 죽는 느낌이 들었다.

엄마들도 다 알파여서 어설픈 눈속임은 통할 리가 없다.

어쩌지? 그냥 확 다 불어 버려?

“그러니까, 원래는 나가서 먹으려고 했지, 그래서 각자 욕실로 들어가려고 했는데, 목말라서 주방에 오니까 카레가 있는 거야. 그래서 박하준 나오면 카레를 먹어야겠다 싶어서 김치를 꺼내는데 엄마들이 온 거, 야.”

이 정도면 대충 앞뒤는 맞는 얘기 아닌가? 나가기로 했으면서 나 혼자 아무 준비도 안 한 건 의심 받으려나?

“카레 다 식었는데?”

큰엄마가 냄비에 손을 대며 날 빤히 봤다.

“어?”

“야, 박상준!”

대답을 못 찾고 있는데 욕실에서 하준이 목소리가 크게 울렸다.

“수건 갖다 준다며.”

“어? 어, 알았어.”

질문 공세에서 빠져나올 틈이다 싶어서 얼른 거실로 나왔다.

“팬티도 갖다 줘야 되지?”

“어.”

들으라는 듯 질문을 크게 던지고 2층으로 올라가면서 옷, 수건, 팬티를 챙겨서 1층 욕실 문을 두드렸다.

하준이 문틈으로 팔만 쭉 뻗어서 내 손에 들린 것들을 받아 들었다.

욕실 문이 바로 닫혀서 1층에 더 있기 어색해서 2층 욕실로 움직였다. 어쩐지 등 뒤로 달라붙는 시선이 예리한 칼날 같아서 차마 엄마들이 있는 쪽을 볼 수가 없었다.

나 노팬티였는데, 몰랐겠지?

28

욕실 샤워기 물만 틀어 놓고 상준과 엄마들이 하는 대화에 귀를 세웠다.

수상하게 여길만한 점이 한두 개가 아니라는 걸 증명하듯 쏟아진 질문 공세에 아랫배가 쑤셨다.

조금 전까지 박상준이 멋대로 헤집어 대서 달콤하게 욱신거렸다면 지금은 스트레스 위염이라도 올 것 같다.

혹시 뭔가 눈치채서 확인하려고 일부러 갑자기 일찍 온 건… 설마, 아니겠지?

상준이가 평소와 다르게 구는 것 같아 결국 수건을 갖다 달라는 핑계로 자리를 피하게 하고 씻으면서 머리를 굴렸다. 뭐라고 하지? 아, 진짜 돌겠다.

평소의 두 배 정도 거품을 내서 몸을 박박 닦고 나오자 주방에서부터 시선이 날아왔다.

앉아 있는 작은엄마는 식탁에 턱을 괴고 있었고, 큰엄마는 할 말이 있으면 해 보라는 듯 허리에 손을 올리고 날 바라봤다.

엄마들은 꼭 이럴 때 내가 형이라는 걸 내세운다. 형이니까 네가 설명해봐, 지금도 그런 눈으로 날 보고 있다.

시선을 모르는 척 2층으로 움직이려는 순간 큰엄마 입술이 움직였다.

“욕실에 있는 게 다 수건인데, 수건을 갖다 달라고 해?”

아, 그냥 모르는 척해주면 안 되나.

“…없는 줄 알았어.”

이렇게 된 이상 그냥 뻔뻔하게 나가는 수밖에 없다 싶어 오리발을 내밀자 큰엄마 눈초리가 날카롭게 올라갔다.

“니들―”

“박상준 러트야, 페로몬 냄새 너무 많이 나서 문 열었어. 나도 러트 옮은 거 같아서 열 식히려고 씻은 거고, 수건도 속옷도 그래서 갖다 달라고 한 거야.”

“러트가 옮아?”

“엄마가 그랬잖아, 우리는 러트도 질투하는 것처럼 따라 한다며.”

“그래서 열을 식히려고 했다고?”

연이어 날아오는 질문에 더 대답하지 않았다. 딱히 할 말도 없었고 이 이상 말해봐야 거짓말만 많아진다.

“…진짜 그런 거면 빨리 각인이라도 하는 게 좋겠네.”

가만히 듣고 있던 작은엄마의 말에 반응을 보인 건 내가 아니라 2층에서 내려온 상준이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막 씻고 내려온 상준이 머리칼이 촉촉하게 젖어서 흔들렸다.

“입학식 때도 그렇고, 니들 그것 때문에 싸우는 것도 그렇고, 지금 하준이 러트도 상준이 너 때문에 갑자기 온 거라는 말인데, 각인이라도 해야 안정될 거 아냐.”

틀린 말은 아니지만 돌아버릴 것 같은 소리였다.

“내가, 나 결혼 못 할 거라고 했잖아.”

상준이 앞에서는 그다지 하고 싶지 않았던 말을 입에 담았다. 이미 내가 결심했다는 티를 내는 건 안 하고 싶었는데, 얼마나 의기양양하게 굴지 안 봐도 비디오다.

아니나 다를까 굳이 고개를 돌려 보지 않아도 상준이 입꼬리가 희미하게 올라간 게 느껴졌다.

이거 봐, 쟤 때문에 미치는 건 나라니까, 진짜 미치겠다.

“그럼 평생 아무하고도 안 할 거야?”

“엄마들도 안 했잖아, 그래도 잘살고 있고, 아니면 뭐 둘이 각자 우리 모르는 각인 상대라도 있어?”

뾰족뾰족하게 말을 던지자 가만히 얘기를 듣고 있던 큰엄마가 골치가 아픈 것처럼 손바닥으로 이마를 짚었다.

“됐어, 밥이나 먹자.”

더 이상 말하지 않겠다는 뉘앙스에 상준이와 시선을 교환했다.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어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가 된 심정으로 발걸음을 움직였다.

부모와 자식 관계는 참 불공평하다.

자식이 자라는 걸 쭉 지켜본 부모는 그 속을 어느 정도 짐작하지만, 부모의 젊은 시절을 모르는 자식은 그 속을 쉽게 알 수가 없다.

싫다, 좋다 말할 분위기가 아니었기에 눈치만 보며 밥상을 차렸다.

큰엄마가 사 온 고기를 구울 준비를 해서 상준이가 냉장고 위에 있는 전기 프라이팬을 꺼냈고, 작은 엄마가 야채를 씻는 동안 내가 식탁을 닦았다.

딱히 누가 뭘 시키지 않아도 각자 할 일을 해서 차린 식탁에 앉았을 때는 이상한 기류가 수그러들었다.

말하지 않았는데, 분명 누구도 말하지 않았는데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바뀌었다.

마법이라고 하기에는 거창했고 일상이라고 표현하기에는 곤궁했다.

밥을 먹으면서 엄마들이 다녀온 짧은 여행에 대한 얘기를 들었고, 뒷정리를 한 다음에는 TV를 봤다.

요즘 한창 인기인 오메가 둘이 서로 열렬히 사랑하는 비현실적인 내용의 드라마 재방송을 보며 잡담을 하다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배부르니까 졸리다, 나 한숨 잘래.”

아직 해는 중천이었는데 잠을 자러 간다며 일어났다. 불과 몇 시간 전에 섹스한 소파에 가족들이 다 앉아 있으려니 정신적으로 한계가 왔다.

오메가 둘이 사랑하는 드라마가 비현실적인지 우리 가족이 비현실적인지 이젠 모르겠다.

이런 줄타기는 하고 싶지 않다.

자리를 피해 2층으로 올라와 내 방에 들어와서 문을 닫고 크게 숨을 내쉬었다.

내 몸에 밴 것인지 아니면 원래 내 페로몬이랑 상준이 페로몬이랑 비슷해서 그런 것인지 상준이 냄새가 났다.

29

“…나도 졸리다.”

2층으로 올라가는 하준이 뒤통수를 가만히 보다가 엄마들한테 말했다. 이대로 혼자 두면 이번엔 장난이 아니라 진짜 심각하게 멈춰야 하나 고민할지도 모른다.

그래봤자 금방 아니라는 결론을 내릴 거지만 잠깐이라도 우리 관계를 망설이는 건 싫었다.

“아들.”

하준이를 따라 첫 번째 계단을 밟은 순간 작은엄마가 불렀다.

엄청난 말이 나올 것 같아 무시하고 싶었지만 차마 그럴 수는 없어 억지로 고개를 돌렸다. 눈이 마주치자 엄마가 내 얼굴을 찬찬히 살펴봤다.

“많이 컸네, 언제 이렇게 다 컸나 몰라.”

“뭐야, 갑자기.”

묵직한 말에 뼈를 맞은 것처럼 다리에 힘이 풀리려 해 난간을 꽉 붙잡았다.

뭐야, 뭘 아는 건가? 언제부터? 뭐라고 해야 하지? 온몸의 세포가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일제히 고민했다.

“됐어, 올라가 봐.”

구세주처럼 느껴지는 큰엄마의 말에 고개만 끄덕이고 빠르게 계단을 올라왔다.

하준이 방문을 열자 벽을 보고 이불을 머리끝까지 쓰고 있는 게 보였다. 저건 박하준이 고민하는 자세였다.

소리가 나지 않도록 문을 닫고 이불 속으로 기어들어 가자 하준이가 몸을 움직여 자리를 만들어줬다.

“…뭐야.”

“그냥, 같이 있고 싶어서.”

“아래층에 엄마들 있어, 장난치지 말고 내려가.”

못 들은 척 허리를 끌어안고 목덜미에 입술을 문지르자 하준이가 엷은 한숨을 내쉬었다.

퐁퐁퐁, 페로몬이 가볍게 솟아났다. 러트가 안 끝난 몸은 체온이 닿는 것만으로도 페로몬을 발산했다.

“야, 진짜, 하지 마.”

“안 해, 이 정도는 괜찮잖아.”

어리광 아닌 어리광을 부리자 하준이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엄마들은 분명 뭔가 알고 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아마 하준이도 눈치챘을 것이다. 그럼 우린 어떻게 하면 좋을까.

“…엄마들한텐 말 안 하면 돼.”

머리를 빙빙 굴리다 걱정하지 말라는 의미로 말하자 하준이가 몸을 돌려 시선을 마주쳤다. 가까이 닿은 시선은 거울을 보는 것 같은 기묘한 느낌이었다.

나랑 하준이 생김새는 닮은 듯 다른데 시선은 또 비슷한 느낌이라 새삼 우리가 역시 쌍둥이가 맞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바보냐? 엄마들은 다 알걸.”

역시, 하준이도 눈치챈 거다. 엄마들이 무슨 생각인지는 아직도 모르고, 앞으로도 모를 가능성이 높지만 아까의 식사로 하나는 확실해졌다.

“알아도 엄마들이 우리한테 먼저 말할 리 없잖아.”

말간 얼굴로 날 가만히 보고 있던 하준이 잠깐의 텀을 두고 피식 웃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무언의 긍정이자 동의였다.

사실 그렇지, 세상 어떤 부모가 형제 둘이 섹스하는 걸 안다고 말하겠나, 눈치챘어도 그냥 모르는 척하겠지.

알파의 소유욕은 베타나 오메가보다 훨씬 강하다. 물론 소유욕에 따라붙는 독점욕도 강했다.

원하는 걸 갖기 위해서는 남을 짓밟거나 괴롭히는 짓, 예를 들어 가정에 불화를 가져오는 짓도 스스럼없이 할 수 있는 게 알파였다. 그리고 우린 둘 다 알파, 엄마들도 알파.

그걸 알기 때문에 입을 다문 것이다.

“그리고.”

뭐야, 그거 말고 문제가 또 있는 건가.

“나 알파야.”

“그래서.”

“각인 못 해.”

작은엄마의 말을 신경 쓰는 것 같은 말에 웃음이 나왔다.

“결혼 못 할 거라며?”

“그건 그거고.”

알파가 오메가에게 하는 각인은 일종의 낙인이자 이름표다. 내 거라는 걸 남에게 알리는 이기적인 행위, 그게 각인이다.

“네가 나 말고 다른 애한테 발정만 안 하면 돼.”

“…어쩔 수 없을 때는?”

하준이 약간은 자신 없는 목소리로 물었다. 이미 두 번이나 전적이 있어서 불안한지도 모른다.

“그럼 뭐, 발정 못 할 정도로 매일 해야겠네.”

별 수 없다는 듯 대꾸하자 하준이 미간을 찡그렸다. 김유진 일을 신경 쓰는 것 같아 하준이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김유진, 걔가 왜 너한테 접근한 건지 알아?”

“뭔데?”

“걔 페로몬 조절을 못 한다는 건 사실일 거야.”

“그렇겠지, 일부러 극장에서 흘렸으면 또라이지.”

하준이 생각하기도 싫다는 듯 굴었다. 나도 싫었고 지금도 싫지만, 김유진이 계기가 된 건 맞지. 그러니까 내가 알아차린 걸 말해줘도 될 것이다.

박하준은 이제 내 거라고 도장 찍었으니까.

“극장에서 그런 건 일부러였을 걸, 너랑 어떻게 해 보려고.”

“뭐야, 그게…?”

“페로몬 조절 못 하는 오메가가 편해지는 방법은 각인이잖아, 각인하면 한 명의 알파하고만 하면 되니까. 다른 엉성한 놈보다는 순하고 착실한 네가 괜찮을 거라고 여긴 거겠지.”

“별, 거지같은.”

하준이 눈꼬리가 가느다래지면서 얼굴에 짜증이 번졌다.

김유진은 보는 눈이 없다. 열성이라서 다른 알파보다 박하준이 순할 거라고 멋대로 판단했다면 진짜 사람 잘못 봤다.

하준인 열성이라는 것에 콤플렉스 아닌 콤플렉스가 있어서 때때로 나보다 더 치밀했다. 자존감이 낮은 게 아니라 그냥 겸손한 거다. 몸을 낮추고 기회를 보는, 누운 호랑이가 박하준이다.

아마 지금부터는 어떻게 하면 자신을 만만하게 본 김유진한테 빅엿을 날릴지 고민할 거고 얼마 후엔 실행으로 옮길 것이다. 알파의 실행력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니까.

어떻게 움직일지 모르지만 나랑은 상관없다. 김유진의 불행 따위 내 알바가 아니다. 어차피 걔가 진심으로 박하준을 좋아한 것도 아니고.

“근데, 넌 그걸 어떻게 알았어?”

“그런 애들 많이 봤어,”

우성한테는 그런 식으로 접근하는 오메가 꽤 있다. 무작정 페로몬 풀고 다가오는 오메가들을 학교 다닐 때부터 많이 만났다.

일반적으로 오메가를 피해자로 보는 경우가 많지만, 나는 이런 경우는 알파도 피해자라고 본다.

입학식 사건만 해도 하준이 역시 피해자 아닌가, 그때 그 페로몬만 아니었어도 발정할 일 없었다.

물론 공정하려고 노력하는 박하준은 오메가 탓은 안 하려고 했지만 김유진한테는 이제 아닐 거다.

하준이 목 아래로 팔을 밀어 넣어 팔베개를 해주고 품으로 끌어당겼다.

“그리고, 넌 각인 안 하면 내 옆에서 떨어질 거야?”

동그란 눈동자가 어이없다는 눈초리로 날 바라봤다.

“그럴 리가, 없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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