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오후를 어떻게 보냈는지 정신을 차렸을 때는 해가 지고 있었다.
정민이는 정말 몸이 괜찮아진 것인지 섹스를 조르지 않았다. 뒤에서 끌어오지도 않았고 야하게 달라붙지도 않았다.
코끝에 감돌던 냄새도 희미해져서 끝났다는 말은 거짓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오직 나만 끝내지 못하고 있었다.
저녁은 정민이가 라면을 먹고 싶다고 해서 라면을 끓여서 먹었고, 영화를 한 편 더 보자고 해서 영화를 봤다.
좀비 영화였는데 TV 속에서 비명을 지르는 주인공을 볼 때마다 나도 같이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가슴 속에 있는 무언가가 수런거려서 심란했다.
어떻게 하고 싶은지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알 수 없었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우리 둘만 남았을 때보다 더 난감하고 복잡했다.
“형.”
“어?”
내 무릎을 베고 누워 있는 정민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조화롭게 잘생긴 얼굴이 심장에 아프게 박혀 들었다.
“왜 화났어?”
내내 아무 말도 안 하고 있어서 오해한 것인지 정민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화 안 났어.”
“그래?”
“내가 언제 너한테 화낸 적 있어?”
“없지.”
정민이 바로 수긍했다. 부모님이 같이 계실 때도 그랬지만 나는 정민이에게 화낸 적이 없다. 물론 정민이도 내가 화를 낼 만한 일을 한 적 없다.
생각해 보면 진짜 비정상적일 정도로 사이가 좋기만 했다. 나이 차가 꽤 많이 나는데도.
학창 시절에도 친구들보다 정민이랑 있는 것이 더 좋아서 학교 끝나면 빠르게 귀가하곤 했다. 지금 연락하는 친구가 거의 없는 것은 아마 그 때문이리라.
딱 한 번 선생님이 시킨 일 때문에 늦은 적이 있었다. 자료실 정리를 마치고 서둘러 집에 가는데 이미 해가 져서 거리가 차가웠다.
아파트 입구에 들어섰을 때 움직인 작은 인영을 본 순간 깜짝 놀랐다.
차가운 겨울 거리에서 열 살의 정민이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지만 혼자 기다렸을 거라는 생각에 심장이 무너질 것같이 아팠다.
왜 기다렸냐, 여기서 뭘 했냐 같은 말은 하지 않았다. 연락도 없이 늦으면 나 역시 정민을 그렇게 기다렸을 것이기에.
그저 손을 꽉 잡고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그럼, 왜 기분이 안 좋아?”
아직 어린 날의 얼굴이 남아 있는 정민일 바라봤다.
내 기분에 예민한 정민인 그냥 물러설 생각이 없어 보였다. 어째서 언짢은 것인지 이유를 알기 위해 조용한 눈빛으로 추궁했다.
“혹시, 내가 너무 자주 하자고 했던 것 때문에 그래?”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나? 정말 얼마나 더 충격을 주려고 하는 것인지.
“아냐, 그런 거. 처음에 내가 하자고 하기도 했고.”
첫날 달달한 냄새에 끌려 정민이의 방문을 연 것은 내 선택이었다.
정민이는 러트의 본능에 못 이겨 오메가인 내게 끌려 온 것뿐이다. 그리고 이제는 끝내야 한다.
“…그리고 그것도 이번뿐이잖아.”
결심하고 입 밖으로 말을 뱉자 정민이 얼굴이 살짝 굳었다. 정민이만 내 기분을 알아차릴 수 있는 게 아니다. 나도 정민이 기분을 알아차릴 수 있다.
당연하지, 이십 년을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봤는데 어떻게 모를 수 있겠나.
침묵이 우리 둘 사이를 메웠다.
매 순간순간 수다스럽게 말하는 건 아니지만 지금처럼 침묵이 무겁게 느껴진 건 처음이었다. 할 말이 있는데 하지 않아서 생긴 침묵이라 그런 것이다.
정민이는 날 가만히 보다가 스르륵 눈을 감았다.
흐트러진 앞머리를 정리해주기 위해 손을 뻗었다가 멈췄다. 어설프게 허공을 배회하는 손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끙끙 앓았다.
스스럼없이 만지던 것이 먼 옛날 일처럼 느껴졌다. 지난 며칠 사이에 우리에게 있던 일을 떠올리면, 앞으로도 아무 감정 없이 정민일 만지는 건 무리였다.
괜찮을 거라고 몇 번이나 다짐했지만 사실은 괜찮을 리 없다.
없던 일로 돌리고 아무렇지 않게 행동할 수 있을 거라는 건 나에게 한 얄팍한 거짓말이었다.
한번 찍힌 낙인은 주홍글씨처럼 지워지지 않는다. 애써 모르는 척 해봐도 이미 수놓아진 글자였다.
나는 동생과 섹스했다.
인지 능력이 명확한 상태에서 몇 번이나 동생의 성기를 물고 헐떡거렸다.
동생에게 성애를 느낀다.
정민이 옆에 나 말고 다른 누군가가 있게 될 미래는 상상만으로도 숨이 턱턱 막혔다.
몸이 닿아서 그런 것이 아니다. 나는 처음부터 동생에게 비틀리고 기이한 집착을 갖고 있었다. 계속 쌓이고 있었던 것이 이번에 이런 식으로 터진 것이다.
울음이 쏟아질 것 같아 입술을 꾹 깨물었다.
내 마음을 솔직하게 말하면 정민이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설령 우리가 같은 마음이더라도 그다음은 괜찮은 걸까. 그냥 조용히 있으면 넘어갈 일인데 일을 크게 만드는 건 아닐까.
하고 싶은 말이 입가를 맴돌았지만 쉽게 나오지 않았다.
동생이 비뚤어진 길을 가려고 하면 올바른 길로 인도해야 하는 것이 형인데, 오히려 일탈로 잡아끌려고 하고 있으니, 정말이지 난 형 실격이다.
“…정민아.”
“응.”
눈을 뜨지 않고 순순히 대답하는 목소리가 심장을 쳤다. 무슨 말을 하려고 부른 것인지 나조차 알 수가 없어 입술을 꾹 다물고 있는데 정민이 시선을 맞췄다.
처음 내게 왔던 날처럼 말간 눈동자가 얼굴에 묵직하게 달라붙었다. 불렀으면 말을 하라는 시선에 입술을 달싹이다 정민이 앞머리를 넘겨줬다.
부드러운 머리카락이 몇 번이나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갈 때까지 아무 말도 못 했다.
“형.”
“응?”
침묵을 가르고 들려온 나지막한 호칭에 발끝이 오므라들었다. 아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벌써 내 마음을 들킨 것 같아 곤란했다.
“형은 괜찮아?”
“뭐, 뭐가.”
양심이 콕콕 찔려 나도 모르게 말을 더듬었다. 좀 더 생각을 정리하고 부를 걸 그랬다. 무턱대고 부른 탓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더 알 수가 없다.
“음, 아니 그러니까….”
정민이 말을 고르며 손끝으로 앞머리를 매만졌다. 난감해 보이기도 하고 기다림에 지친 아니, 지루해진 것 같은 모습이었다.
“다음 달에 나 또 러트 올 거고.”
당연한 것을 왜 저렇게 어렵게 말하는지. 무슨 얘기를 하려고 뜸을 들이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아니, 그러니까 다음 러트도 형이 옆에 있어 줬으면 싶은데.”
“무, 무슨 소리야?”
툭 던져 놓는 결론에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아 왼쪽 가슴을 손바닥으로 꾹 눌렀다.
여기서 더 나가면 안 되는데.
“형이 그렇게 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아서.”
이어서 들려온 말에 정신이 휘청거렸다. 나를 위해 그렇게 하겠다는 말은 원한 적 없다.
“너는 아니면서, 나만 그런 것처럼 말하지 마. 이번뿐이라고 한 건 처음부터 너….”
촉.
닿은 입술보다 소리에 몸이 먼저 반응했다. 벌어진 상황을 사고가 따라가지 못했다. 섹스는 여러 번 했지만 입술은 닿은 적이 없었다.
뺨에 하던 뽀뽀도 정민이가 중학교를 졸업할 무렵부터는 안 했는데.
갑자기, 입술에, 어, 아….
과부하 걸린 머리가 말을 못 하고 입만 벙긋거렸다. 스치듯 가볍게 닿은 것뿐인데 닿은 곳이 불에 덴 것처럼 뜨겁고 가슴이 답답했다.
눈가가 촉촉해지는 게 느껴져 팔뚝으로 눈두덩을 가리는데 누워 있던 정민이 몸을 일으키더니 내 얼굴을 감싸 당겼다.
정민이 양손에 붙잡힌 얼굴은 감정을 그대로 노출했다. 얼굴이 가까이 다가오더니 입술이 아까보다 깊게 섞였다. 닿은 곳은 물론이고 닿지 않은 곳까지 뜨거워졌다.
이러면 안 되는데, 이건 분명 옳지 않은 일인데 밀어낼 수 없다. 밀어내고 싶지 않다.
“나는 형 히트 책임져 줄게.”
입술을 마주 댄 채 정민이가 작게 속삭였다.
누구도 듣지 못하도록 나에게만 속삭이고 있었다.
“정민아, 너 그게….”
“형은 내가 다른 사람이랑 러트 보내는 거 진짜, 괜찮아? 나는 형이 다른 사람이랑 히트 보낸다고 생각하면.”
적당한 단어를 고르는 것처럼 정민이 잠깐 말을 멈췄다.
“피가 거꾸로 솟아.”
“그게, 무슨….”
“형은 내 거잖아.”
지구가 도는 것만큼 당연한 진리인 것처럼 확고한 말에 고혈압 환자처럼 맥박이 빠르게 뛰었다.
“나도 형 거야, 형이 원하는 만큼.”
손끝에서 시작한 떨림이 전신으로 퍼져 나갔다.
나는 이렇게 마음을 표현하는 법을 가르쳐 준 적이 없는데.
“태어나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남을 원한 적 없어, 난 형만 있으면 되니까.”
정민이가 장례식장에서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던 사실이 떠올랐다. 그 때문에 매정하다는 소리를 친척들에게 들었을 정도니 아마 저 말에 거짓은 없을 것이다.
갈피를 못 잡은 마음이 봄날 버드나무처럼 어지럽게 흔들렸다.
나는, 그러니까, 그래도 내가 형이니까….
조금 전까지는 내 마음을 솔직하게 말해 볼 생각이 있었는데 막상 이렇게 먼저 말을 들으니 걱정이 앞섰다.
이건 아니라고, 지금이라도 잘 말하면….
“형, 거짓말은 하지 마.”
거절은 생각하지 말라는 듯 입술을 움직이는 정민이가 어른스럽게 보였다.
“열 떨어졌는데도 나랑 섹스했잖아.”
돌이킬 수 없는 명확한 증거가 앞에 들이밀어 지자 눈을 마주칠 수가 없었다.
얼굴을 보이기 싫은데 여전히 얼굴이 붙잡혀 있어서 고개를 떨어트리는 것도 어려웠다.
눈동자만 빙글 굴려 관심도 없는 TV에 시선을 줬다가 바닥을 내려다봤다.
아니, 잠깐. 그냥 단순히 러트나 히트를 같이 보내자는 의미인가. 근데 그것도 이상한 거잖아. 세상에 어떤 형제가 발정기 해소를 서로에게 한단 말인가.
혼란에 혼란이 가중돼서 정민이를 바라봤다.
정민이가 말하는 게 어떤 의미인지 확실히 해야 한다. 나는 성욕 해소의 상대를 원하는 게 아니다.
이젠 원래의 형제 사이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알지만, 돌아갈 수 없다고 해서 섹스파트너 같은 관계가 되는 건 더 아니지 않나.
“너, 임신시키고 싶은 게 아니라고, 단호하게, 굴었잖아….”
슬쩍 돌려 말하자 정민이 내 이마에 자기 이마를 댔다. 가까이 다가온 얼굴이 숨도 쉴 수 없을 만큼 사랑스러웠다.
아, 이런 순간조차 이런 감정을 느끼는 내가 진짜 구제 불능이다.
“형은 임신하고 싶었어?”
미소를 머금은 얼굴에 내가 이상한 말을 했다는 걸 자각하고 말았다.
“아, 아니 그게 아니라.”
당황해서 얼굴에 달라붙어 있는 손을 떼려고 움직이자 정민이 미소가 더 짙어졌다. 개구쟁이 같은 얼굴은 원하는 걸 쟁취했을 때와 비슷했다.
추운 겨울날 밤길에서 날 기다리다가 발견했을 때와 같은, 그런 얼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