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1화 (2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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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질척하게 몸을 섞었다는 것만 빼면 늦은 식사 시간은 평범했다.

어제 끓여 놓은 미역국과 계란말이를 해서 먹었고 소파에 앉아 귤을 까먹으면서 TV를 봤다.

아니, 사실은 그냥 틀어 놓기만 했다는 게 맞을 것이다. TV에서 뭘 하는지는 별 관심도 없었다.

“형.”

“어, 응?”

또 하고 싶어진 건가 싶어 약간 긴장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내가 생각해도 얼빠진 목소리였다.

“몸 어때?”

질문에 바로 대답할 수가 없었다. 몸은 이제 괜찮다. 하지만 괜찮다고 말하면 요 며칠 일이 다 없던 일이 될 거라는 걸 알아서 대답하고 싶지가 않았다.

“어, 잘 모르겠는데….”

마냥 대답을 피하고만 있을 수 없어서 두루뭉술하게 대답하자 정민이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더니 커다란 손으로 귤을 들었다.

손가락을 몇 번 움직이지 않고 귤껍질을 슥슥 벗긴 정민이 나를 봤다.

“난 괜찮아진 거 같아.”

발밑이 가라앉는 것 같아 주먹을 꽉 쥐었다.

당연히 언젠가 끝날 일이었다. 우리의 며칠은 내가 갑자기 발현하면서 정민이 러트가 예정과 다르게 터지는 바람에 벌어진 사고니까.

“그래, 그럼 다행이네.”

침착함을 유지하며 벽에 걸린 시계를 봤다. 초침이 일정한 박자로 움직이는 걸 보며 엷은 심호흡을 했다.

“오늘은 이미 늦은 거 같으니까 내일 병원 예약하는 게 좋겠다.”

“응, 내가 예약할게.”

정민이 소파 테이블 위에 던져 놓았던 핸드폰을 들었다. 온라인 예약을 하는 것인지 화면을 두드리는 손가락이 바빴다.

아무런 미련 없이 그동안 있었던 일을 정리하는 것 같은 행동을 더 보고 있을 수 없어 TV로 시선을 돌렸다.

나는 도대체 정민이랑 뭘 어떻게 하고 싶은 걸까.

아니, 우리 관계에 변화가 가당키나 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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