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화 (13/91)

13

눈을 뜨자마자 보인 정민의 얼굴에 헉 소리가 나올 뻔해서 입을 꾹 다물었다. 좁은 싱글침대에서 그대로 잠든 탓에 정민의 얼굴이 평소보다 훨씬 가까웠다.

얼굴만 가까운 게 아니라 팔베개를 하고 있고 허리를 끌어안은 것도 모자라 내 다리 사이에 정민이 허벅지가 들어와 있었다.

딱 달라붙은 이 자세는 연인들이나 할 만한 자세지, 형제가 할 자세는 아니었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정민일 가만히 보다가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조금 움직였을 뿐인데 허리가 묵직하게 울렸다. 아직도 엉덩이 사이에 뭔가 들어 있는 것 같다.

손바닥으로 정민이 이마를 만져보자 어제보다 훨씬 낮아진 체온이 느껴졌지만 정상 체온은 아니었다.

러트가 하루 만에 끝날 리 없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보니 신기했다. 어제 그렇게 많이 했는데 아직도 부족하다는 것 아닌가.

열이 내려갔을 때 빨리 병원에 다녀와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다리를 움직이는데 엉덩이 사이에서 끈적한 액이 주르륵 쏟아졌다.

뒷정리도 안 하고 그대로 잠들었다는 걸 알고는 이불을 살짝 들춰 아래를 내려다봤다.

“형, 뭐 해.”

언제 깬 것인지 정민이 나를 빤히 보고 있었다.

“아, 씻어야 할 거 같아서.”

“미안, 어제 그냥 잠들었어.”

“네가 왜 미안해.”

목소리를 가다듬고 작게 대꾸했다. 마지막에는 어떻게 됐는지 잘 기억도 안 난다.

정민이가 애타는 목소리로 형하고 부를 때마다 비명인지 신음인지 알 수 없는 소리를 지르며 울었다.

“눈 부었다.”

“괜찮아.”

얼굴을 보기 민망해 눈알을 도록도록 굴리다 천천히 일어나자 허리가 징 울리면서 안에 있던 것이 또 쏟아져 나왔다.

“밥 먹고 병원 갔다 올게.”

“병원?”

“응, 가서 너 약 받아와야지….”

당연한 것인데 어쩐지 조금 아쉬워 나도 모르게 말끝이 느려졌다.

“너 아직 다 끝난 거 아닌 거 같으니까 나 혼자 다녀올게. 늘 받던 걸로 달라고 하면 되지?”

“형 혼자 간다고?”

정민이 믿을 수 없는 말을 들은 것처럼 벌떡 일어났다.

“발정기 오메가가 억제제도 안 먹고 밖에 나간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내가 갔다 올게.”

단호한 말투에 뒷목이 찌르르 울렸다.

“…너도 아직 안 끝났잖아.”

“그래도 형 혼자 나가는 것보다 나아.”

“그럼, 같이….”

“안 돼.”

정민인 전에 없는 단호함을 보였다.

사실 발정기 오메가가 밖에 돌아다니는 건 범해 달라고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뉴스에서 뻑 하면 나오는 기삿거리 중 하나였으니 경험해 본 적이 없다고 해서 모를 수가 없었다.

이제까지는 베타여서 상관없었지만 이젠 상황이 달라졌다. 그러니 동생이 형을 걱정하는 건 당연했다.

“보통 때면 괜찮지만 나도 러트여서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입천장을 혓바닥으로 꾹 눌렀다.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이런 상황에 대한 지식 같은 건 없었다.

“그리고 형, 지금도 냄새 엄청나. 페로몬 조절도 전혀 못 하는 거 같은데 이러고 어떻게 밖을 나가, 차라리 내가 혼자 갔다 올게.”

정민이 내 목덜미 부근에 코를 비비며 중얼거렸다.

“너도 러튼 거 뻔히 아는데 어떻게 너만 보내.”

러트의 알파는 오메가 향에 취약하다고 했다. 밖에서 우연히 오메가를 만나면 이성을 잃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어젯밤 같은 그런 모습을 누구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다.

순간 피어오른 어두운 생각에 스스로도 당황했다. 생각을 지워 내려고 손바닥으로 머리를 쓸어 올리는데 정민이 내 손을 제 앞으로 붙잡아 당겼다.

“형, 우리… 그냥, 집에 있으면 안 돼?”

정민이가 내 눈치를 살피듯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여 심장이 쿵쿵 떨렸다.

“이번만.”

말을 덧붙이며 눈꼬리가 축 처진 것이 안쓰러웠다. 이렇게 기죽은 모습은 어린 시절 엄마 앞에 있을 때 말고는 본 적이 없었다.

“이거 끝나고 병원 가서 검사받으면 다음부터는 안 그럴 테니까.”

정민인 이번 싸이클을 둘이 같이 보내자는 말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말의 의미를 나는 안다.

러트를 맞은 알파와 이제 막 발현해서 발정기를 맞이한 오메가가 한집에 있는데 어젯밤 같은 일이 또 안 벌어질 리가 없었다.

말도 안 되는 일이다. 형제가 발정기를 보내다니.

안 되는 일인데, 그런 걸 이미 잘 알고 있는데 혹했다.

이번만이고, 집 안에만 있으면 아무도 모를 일이다. 우리가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으면 다시 전과 같은 형제 관계로 돌아갈 수 있다.

이건 그냥 어쩔 수 없는 사고니까. 알파와 오메가가 있는 사회에서 흔히 벌어질 수 있는 그런 일.

“…사장님한테 전화해야겠다.”

집에 있겠다는 의미로 정수리를 톡톡 두드려 주자 정민이 안심한 표정을 지었다.

“러트는 3일 정도면 끝나니까 끝나면 내가 병원 갔다 올게. 아니다, 그때는 같이 가도 되겠다.”

정민이 이번만이라는 의미를 담아 다시 한번 설명했다.

“응, 알았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