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형, 갈아입을 옷 갖고 왔어, 너무 오래 있어도 안 좋아.”
욕조에서 나와 막 샤워를 마쳤을 때 정확한 타이밍에 문 밖에서 정민이가 말을 걸었다. 평소 내가 씻는 데 걸리는 시간을 알기 때문에 할 수 있는 행동이었다.
“응, 나갈게.”
수도꼭지를 잠그고 문을 열기 위해 움직이다 멈칫했다. 이전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열었을 문인데 지금은 맨몸을 보여주기 부끄러웠다.
수건으로 가리는 것도 애매해서 문을 반만 열고 팔을 밖으로 쭉 뻗었다.
정민이가 내 손목을 잡아당겨 손가락을 펴게 했다. 내 체온 때문에 정민의 체온이 유난히 서늘하게 느껴졌다.
달달한 냄새가 손가락을 타고 올라왔다. 옷 달라고 말하기 위해 입을 움직이려는데 손안에 옷가지가 떨어졌다.
옷을 손에 꼭 쥐고 욕실 문을 닫았다. 선반 위에 받은 것을 올려놓고 수건으로 물기를 정리한 뒤 팬티를 입고 셔츠를 입었다.
헐렁한 박스티를 입고 비어 버린 선반을 바라봤다. 일부러인지 아니면 깜박한 것인지 바지가 없었다.
잠깐 고민하다 밖으로 나오자 정민이 전자레인지 앞에 서 있는 게 보였다.
“거기서 뭐 해?”
“오늘 종일 아무것도 안 먹었을 거 아냐, 죽 사 왔으니까 먹어.”
“바지 좀 입고.”
“몸 좀 식히는 게 좋을 거 같아서 일부러 안 입힌 거야.”
하루 아니, 반나절 만에 정민이 나보다 어른이 된 것처럼 느껴졌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원래 그런가. 나는 어땠더라. 내가 스물이 됐을 때는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라 정신이 없었다.
아니다, 사실 나는 계속 베타였으니까 알파나 오메가 형질 문제에 있어서는 정민이가 나보다 어른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멍한 정신으로 눈만 깜박이는데 정민이 내 손가락을 톡톡 건드렸다.
“형, 얼른.”
“어? 응, 너는? 너도 먹어.”
정민은 냉장고에서 우유를 꺼내 내 앞에 앉더니 식탁 위에 있던 봉투에서 크림빵을 꺼내 먹었다. 정민이 좋아하는 빵이었다.
문득 이건 아니다 싶은 기분이 들었다. 아무리 좋아하는 빵이라고 해도 오늘은 졸업식인데 저런 거로 끼니를 때우게 했다고 생각하니 속이 쓰렸다.
“…뭐라도 배달시킬까?”
“다른 거 먹고 싶은 거 있어?”
“아니, 너 오늘….”
“형, 나 이거 좋아하잖아, 진짜 괜찮아.”
웃으면서 말하는 얼굴은 여전히 아직도 어려 보이고 귀여웠다.
손을 뻗어 습관처럼 정민의 정수리를 쓱쓱 문질렀다. 정민이 고양이처럼 내 손바닥에 가볍게 머리를 기대왔다.
부드러운 머리카락이 손바닥은 물론 손가락 사이를 간질거렸다.
“대학 가도 염색하지 마.”
“응.”
정민이가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순순히 대답했다.
“오늘은 따로 자자.”
식사가 끝나갈 무렵 정민이가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이제는 그만 같이 잘 때가 됐다고 계속 생각했으면서 막상 말을 들으니 서운함이 가슴 한쪽에 피어올랐다.
“형 아직 발정기 안 끝나서 위험하니까.”
정민이가 설명처럼 덧붙였다.
무슨 말인지는 안다. 발정기 오메가와 알파가 같이 있는 건 미친 짓이다. 지금도 이렇게 정민이 향이 뚜렷하게 느껴지는데 같이 잤다가는 사달이 날 것이었다.
그래도 서운했다.
“…응.”
싫다거나 그럴 필요가 있냐는 말을 할 수 없어서 마지못해 대답했다.
나는 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