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화 (5/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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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말하면 우습지만 첫정이 무섭다고 나에게는 동생 정민이 첫 동생이었기 때문에 너무 소중했다. 물론 두 번째 동생이 있는 것은 아니다.

동생이 누워서 천장만 보고 있어야 할 때도 옆에 있었고, 엎드려서 기었을 때도 옆에 있었고, 처음으로 걸었을 때도 내가 옆에 있었다.

처음 사진을 찍은 날, 처음 유치원에 간 날, 처음 글자를 배운 날.

나는 정민의 모든 처음을 옆에서 지켜봤다. 그리고 그 모든 처음 중에는 정민의 형질 검사도 포함됐다.

그때 정민이는 열한 살이었고 나는 열여덟 살이었다.

나는 일찌감치 베타로 판정받았는데 부모님이 모두 베타였기 때문에 당연히 예상된 결과였다. 그리고 정민이도 당연히 베타일 거라고 생각했다.

조금 똑똑한 베타, 딱 그 정도일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정민이가 받아온 형질 검사 결과지에는 우성 알파라는 파란 도장이 찍혀 있었다. 내가 받았던 검은 도장과는 색도 모양도 달랐다.

‘그냥 알파도 아니고 우성이라니.’

아빠의 첫 마디였다. 놀라움이 섞여 있었지만 그래도 기뻐했다.

알파와 오메가가 존재하는 세상에서 알파는 우수성의 상징이었다.

본인들의 자식이 그냥 우수한 정도가 아니라 특별하게 우수하다는 우성 알파라는데 싫어할 부모는 없을 것이었다.

작은 케이크를 사서 파티를 했다.

‘형도 내가 알파인 게 좋아?’

‘당연하지, 내 주변에 알파는 없었는데 나랑 가까운 사람이 알파라니까 되게 신기해.’

내 대답에 정민이 안심한 것처럼 웃었다. 아마도 나와 자신이 달라서 걱정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날이 내가 기억하는 우리 가족의 단란했던 마지막 모습이다.

베타의 삶만 살아왔던 부모님은 아들의 특수성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정민인 점점 체격이 좋아졌고, 이목구비가 뚜렷해졌다. 길을 가다 마주치면 누가 봐도 알파라는 걸 한눈에 알 수 있는 외모였다.

머리는 말할 것도 없이 좋았다. 초등학교 때부터 시험을 보면 항상 백 점이었다. 1등이라는 숫자는 정민의 앞에서 무의미했다.

‘공부 재밌어?’

‘아니, 근데 내가 1등 하면 형이 좋아하잖아.’

멍청한 질문에 돌아온 사랑스러운 대답에 정민을 꼭 끌어안고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근데 형은 네가 1등 아니어도 좋아.’

성적은 좋았지만 안타깝게도 정민의 학교생활은 좋지 못 했다.

특별한 아이에게 친구라는 존재는 신기루나 마찬가지였다. 정민이는 언제나 나만 따라다녔다.

‘정민아, 친구들이랑 노는 거 재미없어?’

내가 돌아올 때까지 혼자 있는 것이 안타까워 묻자 정민이 눈을 깜박였다.

‘내가 친구랑 놀았으면 좋겠어?’

이상하게도 그 말이 마치 ‘형도 내가 귀찮아?’라고 하는 것처럼 들렸다.

‘아니, 네가 심심한 거 아니면 상관없어. 형이 빨리 올게.’

‘응, 그럼 난 친구 필요 없어.’

분명 아직 어린데 너무 조숙한 대답이었다. 하지만 본인이 필요 없다는데 상관없을 것 같았다. 사회성의 문제가 아니었으니까.

정민이 열둘, 내가 열아홉. 입시 준비로 한창 바빴을 때였다.

엄마는 정민이 나만 따라다니는 게 못마땅한 것처럼 화를 냈다.

정민이가 유치원에 다니던 때부터 엄마는 부모보다 형을 따르는 아들을 이해할 수 없어 했는데 그즈음에는 그게 극에 달해 있었다.

‘형만 따라다니지 말고 너도 친구라도 만들지 그러니? 다른 애들 바보 취급하는 건 잘하는 게 아냐.’

정민이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저 독서실에 들리느라 늦게 들어온 나에게 엄마가 했던 얘기를 담담한 목소리로 전달했다.

‘형, 내가 친구가 없는 게 이상한 거야?’

맑은 눈동자가 나를 향했다.

‘…아니, 네가 특별한 건 네 잘못이 아니잖아.’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정민의 친구가 되기에 주변 아이들은 너무 평범했다. 정민에게는 당연한 것들이 그들에게는 당연하지 않았다.

‘너만 괜찮으면 내일부터 형이랑 독서실에 있다가 올래?’

‘응, 그럴래.’

정민은 그제야 안심한 것처럼 배시시 웃었다.

얼마 후 정민이 학교 선생들은 부모님에게 정민이를 특수학교로 보내는 게 좋겠다고 권유했다. 자신들이 가르치기에 이정민은 너무 부담스러운 학생이라고 인정하고 만 것이다.

알파만 다니는 학교를 제안 받았는데 그곳은 기숙사 생활을 해야 하는 학교였다.

‘싫어, 안 갈 거야.’

아빠가 갖고 온 학교 팸플릿을 보지도 않고 정민인 거절했다.

‘가.’

부모님은 이미 마음을 굳힌 뒤였다. 보기 싫은 자식을 눈앞에서 치워 버리려는 것 같았다. 삐걱거리던 가족의 형태가 부서지는 게 눈에 보였다.

정민이 옆에 앉아 있던 나를 바라봤다. 도움을 청하는 열두 살의 어린 시선에 마음이 세차게 흔들렸다.

‘싫다는데 억지로 보내는 건 아니잖아.’

‘애도 아니고, 이제 다 컸어.’

세상에 어떤 부모가 열두 살짜리 애를 보고 다 컸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럼 나도 다 컸으니까 정민이네 학교 근처에서 살게 해줘.’

미성년자인 내가 할 수 있던 최대의 반항이었다.

엄마는 우리 둘을 이해할 수 없다는 시선으로 노려봤고 아빠는 더 말하고 싶지 않다는 듯 자리를 떴다.

내 고집 때문인지 아니면 알파 학교의 등록금이 어마어마했기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정민인 전학 가지 않았다.

계속 내 옆에 있었다.

하지만 부모님은 점점 더 정민이를 버거워했다. 평범한 자신들에 비해 월등히 뛰어나서, 자신들의 부산물이라는 걸 믿을 수 없어 했다.

부모님 앞에서 잘 웃지도 않고, 말도 안 하는 어린 아들이 자신들을 무시한다고 생각했다.

엄마는 내가 없을 때 정민이에게 자주 소리를 질렀고, 아빠는 정민이와 눈도 안 마주쳤다.

나는 정민이가 해주는 얘기를 들을 때마다 마음이 아팠다. 한참 사랑받고 커야 하는 어린 동생이 안쓰러웠다. 내가 더 잘해줘야 했다.

가정의 불화는 부부싸움의 형태로 드러났고 그건 시간이 갈수록 심해졌다.

아빠는 정민이 자신과 닮지 않았다며 엄마의 외도를 의심했고 급기야 친자 확인까지 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그 사실이 들키지 않았다면 어설픈 울타리였어도 좀 더 유지 됐을까.

우습게도 우편으로 배송 온 서류를 열어본 건 엄마였다.

그리고 그날 둘은 거실의 모든 세간을 부술 것처럼 싸우기 시작했고, 참다못한 난 정민이를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적당한 영화를 한 편 보고 아주 늦게 집에 도착했을 때 엄마는 방에서 울고 있었고, 아빠는 집에 없었다.

정민이를 방에 들여보내 먼저 재우고 엄마를 위로했다.

‘엄마, 그만 울어.’

‘혹시 병원에서 애가 바뀐 게 아닐까?’

문득 떠오른 생각처럼 엄마가 중얼거려서 바닥에 구겨진 채 굴러다니는 종이를 힐끔 쳐다봤다.

엄마도 아빠도 인정하고 싶지 않아하고 있지만 정민이는 둘의 자식이 맞다. 과학이 그렇게 증명했다.

알파 학교를 보내려고 했던 것도 과거의 말이 됐다.

둘이 서로를 헐뜯느라 동생은 부모님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아니, 오히려 남처럼 대하려고 했다.

내가 스물, 정민이가 열세 살.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기 전 엄마가 말했다.

‘수민이는 엄마랑 가자.’

‘무슨 소리야? 내 아들이야!’

재산 나누듯이 자식을 나누려는 둘의 싸움을 보고 든 생각은 하나였다.

정민이도 당신들 아들이잖아.

내가, 오직 나만이 동생을 지켜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했다. 그러지 않으면 일곱이나 어린 동생이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을 것 같았다.

동생이 뛰어난 알파여도 내가 평범한 베타여도 상관없었다.

‘난 정민이랑 살래.’

또다시 싸움이 시작되기 전 내가 조용하게 말했다.

‘…형.’

때마침 들어온 정민은 돌아가는 상황을 단번에 이해했고, 나를 봤다. 그 눈빛에 담긴 안도를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수민아….’

‘둘 다 필요 없어요.’

내 말에 핏기가 가시는 건 엄마였고 절망에 빠진 한숨을 뱉은 건 아빠였다.

며칠 후 도장 찍은 서류를 법원에 제출하러 가기 위해 둘은 한 차를 탔다.

그리고 뭐, 정말 어이없게도 같이 떠나버렸다. 내가 필요 없다고 한 말에 복수라도 하는 것처럼.

우리 형제는 하루아침에 고아가 됐다.

검은 옷을 입었고 찾아온 사람들에게 절을 했다. 신기하게도 눈물은 별로 안 났다. 그냥 조금 멍했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지 알 수 없던 장례식이 끝난 밤, 정민이가 내 방에 들어왔다.

혼자 자고 싶지 않다며 이불 속으로 파고들었다. 거절은 생각할 수 없는 일었다.

그 후 보험금으로 정민이를 알파 학교에 전학시켰고, 그 학교 근처에 작은 집을 구했다.

입학 예정이었던 대학은 포기했다. 부모님이 남긴 재산은 나중에 정민이 학비를 위해 남겨 둬야 했다.

둘이 살아가려면 돈이 필요했기 때문에 학교에 갈 것이 아니라 일을 해야 했다.

집 근처 카페에서 일을 시작했다.

익숙하지 않은 일 때문에 몸은 힘들었지만, 부모님과 함께 사는 것보다 마음은 훨씬 더 편했다.

내가 없는 곳에서 정민이가 찬 소리를 듣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안심됐다.

그리고 다행히도 정민이는 전학 간 학교에 무난히 적응했다. 전 학교와 다르게 종종 같은 교실에 있는 애들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정민이 처음으로 꺼낸 친구 얘기는 아직도 기억한다.

‘형, 교실에 쌍둥이가 있어.’

실제로 본 것이 처음이라 신기했던 것인지 정민이 눈이 반짝반짝 했다. 그 쌍둥이들은 분명 정민이의 친구가 될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에스컬레이터 학교니 많지 않아도 친구를 사귀는 것이 나로서도 안심이었다.

‘신기하네, 너랑 같은 교실이면 둘 다 알파라는 거잖아.’

‘응, 말로는 형질 검사 받기 전부터 서로 알파일 줄 알았대.’

‘사이 좋아?’

‘음, 잘 모르겠어.’

‘뭐, 나랑 너만큼 좋지는 않을 거야.’

보통의 형제보다 우리가 특히 사이가 좋은 건 나 역시 알고 있었고, 정민인 그 말에 별 대꾸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내 예상대로 정민이는 학교에서 잘 지냈고, 사고 한번 치지 않았다.

알파들만 모아 놓은 곳에서도 여전히 공부를 잘했다. 잘 자라서 좋은 대학에 가고 대기업에 입사해서 나와는 비교도 안 될 위치로 올라갈 것이 눈에 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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