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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싸늘한 아침 공기를 느끼며 눈을 뜨자 새까만 머리카락이 제일 먼저 보였다. 팔을 움직여 머리카락을 손바닥으로 매만졌다.
‘으응.’
머리를 만지는 게 거슬리는 것처럼 정민이 고개를 흔들며 내 가슴팍으로 파고들었다. 이런 걸 보면 여전히 덩치만 큰 어린애였다.
추운 장례식 밤 이후 7년이 지난 지금도 정민이는 나와 같은 침대에 누웠다.
같은 침대에서 자는 건 슬슬 멈춰야 하는 데 늘 당연하다는 듯 내 침대에 눕는 정민이를 보면 나가라는 말을 할 수가 없다.
이젠 스물, 흔히 말하는 성인이 됐지만 내 눈에는 여전히 일곱 살이나 어린 동생이었다.
‘일어나.’
‘5분만.’
‘몇 신줄 알고 5분 만이래? 오늘 졸업식이잖아.’
‘음….’
못마땅한 표정으로 입술을 삐죽이던 정민이 게슴츠레하게 눈을 떴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살이 눈이 부신 것처럼 인상을 찡그렸다가 눈을 깜박였다.
‘몇 신데.’
‘8시 반.’
‘5분 더 누워 있다가 10분 만에 준비할게.’
정민이 내 허리를 끌어안고 몸을 바싹 붙였다. 품에 파고들 듯이 아래로 움직여 이불 끝에 발이 비죽 튀어나왔다.
떨어질 기미도 일어날 기미도 안 보이는 행동에 작게 한숨을 쉬고 뒤통수를 쓸어내렸다.
‘형.’
‘응?’
‘열 있는 거 아냐? 몸이 뜨끈뜨끈해.’
정민이 여전히 눈을 감은 채 말했다.
‘열?’
손바닥으로 이마를 짚어 봤지만 알 수 없었다. 말을 들어서 그런지 미열이 조금 있는 것 같기도 했고 아닌 것 같기도 했다.
‘감기 아냐?’
정민이 눈을 뜨고 내 가슴팍에 턱을 댄 채 고개를 위로 들어 올렸다.
‘음, 괜찮은데― 그보다 너 잠 깼으면 일어나.’
허리에 둘린 팔을 풀고 침대에서 일어나자 정민이 입술을 삐죽이며 마지못해 일어났다.
‘오늘 올 거지?’
‘당연하지, 내가 언제 네 졸업식에 안 간 적 있어?’
‘누가 들으면 나 수십 번 졸업한 줄 알겠어, 일은?’
‘쉬기로 했어.’
까치집이 지어진 머리를 손바닥으로 쓱쓱 문질러 주며 대답했다.
늦장 부리던 정민이 씻으러 들어간 사이 아침을 차리고 있자 정민이 교복을 입고 주방에 들어왔다.
새삼스럽지만 오늘로 교복 차림은 끝이라고 생각하니 괜히 아쉬운 느낌이 들어 정민이를 천천히 살폈다.
특별할 것 없는 흔한 교복인데 키가 크고 자세가 바른 정민은 모델을 해도 될 정도로 잘 어울렸다.
쌍꺼풀이 있는 큰 눈, 시원시원한 눈매도 아름답지만 얼굴 중심에 자리를 잡은 오뚝한 코는 신이 특별하게 빚어낸 모양새였다.
‘오늘 아침에도 잘생겼네.’
‘뭐야, 그게.’
실없는 소리를 들었다는 듯 정민이는 가볍게 웃어넘겼지만 내 생각엔 아니다.
정민인 정말 잘생겼다. 내 동생이라서가 아니라 누가 봐도 그렇게 느낄 것이다. 조물주가 빚을 때 분명 특별히 신경 썼을 것이다.
하나하나 떼어 놓고 봐도 잘생겼고 모아 놓고 보면 더 잘생겼다.
머리카락은 흑색인데 염색이나 파마를 한 번도 하지 않아서 결도 좋았다. 머리카락 색과 똑같은 색의 짙은 눈썹도 누가 그린 것처럼 예뻤다.
‘오늘 병원 가는 날이지?’
정민이가 식탁에 앉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몇 시 예약이야?’
‘2시.’
나는 시계를 흘긋 보고 머릿속으로 오늘 일정을 다시 한번 점검했다.
정민이는 알파였기 때문에 주기적으로 병원에 약을 처방받아왔다. 그 모습을 볼 때마다 아무리 우수하다고 해도 알파니 오메가니 하는 것은 귀찮은 일이라고 느꼈다.
내가 정민과 같은 알파가 아닌 것도 다행이었고 오메가가 아닌 건 더 다행이었다.
알파들은 천성적으로 서로의 페로몬을 싫어하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정민이 내 페로몬을 싫어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끔찍했다.
오메가는 사회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기 때문에 번거로웠다. 페로몬을 풍기면서 길거리를 돌아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무엇보다 우리 형편에 두 사람분의 약값은 부담이었다.
‘졸업식 끝나고 같이 병원 가자, 점심은 뭐 먹고 싶어?’
‘형은?’
식탁에 앉은 정민이 숟가락과 젓가락을 꺼내면서 물었다.
‘형이 먹고 싶은 거 먹자.’
정민인 항상 메뉴 선택권을 내게 줬다. 그리고 내가 뭘 대답하든지 간에 맛있게 먹었다.
처음엔 부모님 영향으로 먹고 싶은 걸 말 못 하는 걸까 싶었는데 그게 아니라는 건 곧 깨달았다. 정민인 정말 뭘 먹어도 상관없어했다.
‘졸업식이니까 역시 짜장면?’
‘그럴 줄 알았어, 나도 좋아.’
‘그럼 시간 맞춰서 갈게.’
‘응.’
창문으로 들어온 차가운 겨울 햇살이 정민이 얼굴 위에 부서졌다.
역시 내 동생, 어디 내놔도 꿀리지 않을 근사한 미소다.
문득 이렇게 잘 자란 걸 부모님들이 보면 어떤 표정을 지을 지 궁금해졌다.
이제 얼마 후엔 국내 최고 대학에 입학을 앞두고 있다. 그것도 무려 장학생이다. 그럴 줄 알았다고 할까 아니면 잘했다고 칭찬을 해줄까.
지금은 알 수 없는 그들의 반응이 궁금해진 건 정민이가 정말 멋있고 잘생기고 귀여운 남자가 돼서 그런 것이다.
아침 먹고 정민일 배웅한 뒤, 나도 외출 준비를 했다.
오늘 입기 위해 세탁소에서 찾아 둔 정장을 입고 넥타이를 맨 다음 시계를 확인했다. 아직 충분히 여유가 있었기 때문에 이불을 세탁기에 넣고 가려고 침대 위에 있던 것을 끌어모았다.
그 순간 몸이 휘청거렸다.
바닥에 몸이 떨어졌지만 이불을 끌어안고 있어서 아프지는 않았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자 달콤한 냄새가 후각을 자극했다. 달달한 냄새가 폐 속으로 빨려 들어왔다.
어디서 나는 것인지 정체를 찾기 위해 코를 킁킁거렸다. 얼마 못 가 냄새의 근원이 이불이라는 걸 알았다.
이불 속에 얼굴을 박고 냄새를 빨아들이자 섬유유연제 냄새와는 비교도 안 되는 좋은 냄새가 났다.
알 수 없는 그리움 같은 것을 떠올리게 하는 냄새에 심장 한쪽이 간질거렸다. 어디서 묻은 냄새인지도 알 수 없었다.
이불 빨래는 항상 내가 했고, 할 때 섬유유연제 말고는 넣지 않았다. 이 냄새는 처음 맡아 보는데 정신이 몽롱해질 정도로 좋았다.
이불에 얼굴을 파묻고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쌕쌕거리는 호흡과 함께 냄새를 먹어 치우듯이 빨아들였다.
몸의 감각 중 후각이 가장 예민하다고 했다. 하지만 그만큼 마비도 빠르다. 냄새에 익숙해져서 더 못 맡아야 하는데 어째서인지 시간이 지날수록 냄새는 더 선명하게 느껴졌다.
이불 말고 다른 곳에서도 냄새가 날까 싶어 시트에 코를 대보자 마찬가지로 좋은 냄새가 났다.
침대에 엉금엉금 기어 올라가 베개에 코를 문지르자 정민이 베개에서 훨씬 진한 냄새가 났다.
체취도 아니고 섬유유연제 냄새도 아니었다.
혼이 나갈 것처럼 달콤하고 부드러웠다. 비슷한 냄새를 떠올렸지만 향 때문에 마비된 머리는 제대로 생각을 하지 못했다.
익숙한 것 같으면서도 새로운 향이었다.
홀린 것처럼 이불을 뒤집어쓰고 베개에 코를 박았다. 향에 완전히 둘러싸인 것 같은 감각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좋았다. 동시에 몸이 뜨거워졌다.
정민이가 아침에 열이 있는 것 같다고 했는데 진짜 열이 있던 걸까.
손바닥으로 이마를 짚어 봤지만 열이 나는지 아닌지 확실하지가 않았다.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있어서 확실히 조금 덥긴 했다.
그렇다고 좋은 냄새를 포기하는 것도 아까워서 이불 속에서 꿈지럭거리면서 바지와 셔츠를 벗었다. 머릿속에는 구겨지기 전에 벗는 게 좋을 것이라는 핑계도 떠올랐다.
팬티와 양말만 걸친 나체나 다름없는 피부에 이불이 닿자 좋은 냄새가 피부에 스미는 것 같았다.
졸업식에 늦지 않게 가려면 슬슬 나가야 한다는 걸 알았지만 몸이 냄새에 절여지기라도 한 것처럼 무겁게 가라앉았다.
침대 위에서 몸을 비비적거리다 아래가 묵직하게 차오른 것을 깨달았다.
성욕 해소는 원래 자위로 해결했다. 하지만 동생과 함께 쓰는 침대에서는 아니었다.
보통은 정민이가 없는 틈에 화장실에서 했는데 지금은 참기가 어려워서 홀린 것처럼 자위에 매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