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윤도가 주위를 힐끗 살폈다. 동물과 인간들이 뒤섞여 있는 모습이 꽤나 부자연스러웠다.
‘천대경은 없나.’
건강이 상당히 악화한 걸지도. 그는 혀를 가볍게 찼다. 천대경이 없는 대신, 그의 수족과도 같은 백사우가 대신 윗자리 옆에 서 있었다.
“조용.”
사우의 짧은 목소리에 정적이 흘렀다.
“윤도. 얘기해 보세요.”
“뭐 얘기라고 할 만한 게 있나? 탈론에서 날 죽이려 들었다는 거, 알 사람은 다 알 텐데.”
윤도가 픽 웃었다. 쓸모없어 보이는 자리였다. 뭘 공평하게 얘기를 듣겠다고. 입술 위로 비틀린 웃음이 지어졌다. 맞은편에 가만히 앉은 수빈은 그저 덤덤한 얼굴로 먼 바닥을 보고 있을 뿐이었다.
“덕분에 죽을 뻔했고. 심지어 내 클리크 소속의 시체를 널어 두기까지 했지. 고마웠다, 새대가리들아.”
이죽거리는 말에 사우가 낮게 한숨을 쉬었다.
“괜한 소리는 덧붙이지 말아 주세요.”
“우린 모르는 일이야!”
한 여자가 거칠게 외치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새로 변해 앞쪽으로 포르르 날아왔다. 윤도는 알록달록한 깃털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새 종류 따위 알게 뭔가. 그것이 날개를 접으면서 다시 인간으로 변했다.
“오윤도, 탈론을 걸고넘어지지 마.”
여자가 흥 하고 코웃음을 쳤다. 약간 구불거리는 머리카락을 어깨 뒤로 넘긴 그녀가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섰다. 사우는 여자를 제지하는 대신 그냥 눈을 가늘게 뜨며 지켜보기만 했다.
‘망할 새끼.’
어떻게 돌아가는 일인지 뻔히 알고 있을 텐데, 닥치고 있는 꼴이라니. 윤도가 이를 으득 물었다. 여자를 잡아 죽일 기세로 노려보고 있으니, 그녀가 흘긋 그를 돌아보곤 노골적으로 코웃음을 쳤다.
“탈론은 윤도가 공격당한 것도 몰랐어.”
윤도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윤도, 그런 식으로 비웃지 마세요.”
또 그에게 잔소리가 날아왔다.
“모두 천수빈의 개인행동이야. 사실, 둘 사이의 관계가 그리 썩 좋지 않았다는 거 다들 알고 있잖아?”
“그런 식으로 나오겠다?”
윤도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당장 저것의 목을 뽑아 버리고 싶은 충동에 주먹을 꽉 쥐었다.
“그래. 천수빈과 오윤도 사이에 언쟁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고.”
누군가가 탈론의 무리 속에서 외쳤다. 윤도는 여전히 가만히 앉아 있는 천수빈을 빤히 쳐다봤다. 모두가 그에게 뒤집어씌우고 발을 빼려는 이 상황에서도 수빈은 입 한 번 열지 않았다.
“이 새끼들이 뭐라고 지껄이는 거야? 언쟁이 하루 이틀 있었어? 씨발, 그 정도 일로 죽이려고 드는 게 더 이상한 거 아닌가?”
주훈이 으르렁거리며 이를 드러냈다. 인간의 얼굴이 짐승답게 일그러지는 건 제법 사나웠다.
“수빈이 참다 참다 폭발했을 수도 있지. 그리고 먼저 모욕적인 말을 내뱉은 건 윤도잖아.”
여자가 태연하게 말하면서 윤도에게 성큼 다가왔다. 동그란 눈이 살짝 휘어지면서 미소를 띠었다.
“오윤도는 싸가지도 없고 주둥이 조심도 안 해. 물론 수빈이가 조금 격했다는 건 인정하겠어.”
그녀가 당장이라도 쪼아 버릴 듯 고개를 들이밀었다. 윤도가 고개를 숙여 위압적으로 내려다봤지만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저번에 뭐라고 했는지 기억하고 있을 텐데. 아무리 땅을 기어 다니는 개새끼라고 해도 그 정도 대가리는 있지?”
살살 웃는 그 얼굴을 쥐어 뭉개면 좋을 텐데. 윤도가 빙긋 웃었다. 물러날 생각은 없었다.
“아, 오늘도 그 말에 걸맞은 날이야. 새새끼들이 모여 있으니 닭똥 냄새가 진동을 하거든.”
잠시 침묵이 흘렀다. 천수빈이 큭 하고 웃는 소리를 냈다. 여자가 순간 얼굴을 일그러뜨리더니 금세 진정하고 웃었다.
“수빈은 탈론을 위해 ‘알아서’ 나선 것뿐이야. 가축 냄새가 나는 것들이 주둥이 조심을 안 하는데. 수빈이 화난 것도 이해해.”
“하늘에서 똥이나 싸지르는 것들이 말이 많네.”
“이런. 하늘에서 떨어지는 똥에 맞는 버러지들이 누구더라.”
분위기가 삽시간에 안 좋아졌다. 윤도는 주먹을 꽉 쥐었다가 폈다. 당장 여자의 목을 움켜쥐면 크게 문제가 되겠지. 이를 꽉 악물었다. 상대 역시 으득거리며 이를 갈았다.
“하아…….”
백사우가 들으라는 듯 큰 한숨을 내쉬었다.
“둘 다 그만하죠.”
그가 눈짓하자 클로와 탈론에서 몇 명이 나와 윤도와 여자 사이를 떨어뜨렸다. 수빈은 여전히 덤덤한 얼굴을 한 채 그냥 그대로 앉아 있기만 했다.
“당신들은 정말 싸울 생각밖에 안 하네요.”
걱정이라곤 조금도 없는 심드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우가 지긋지긋하다는 듯 무미건조하게 말하더니 이마를 짚었다.
“대부께서 아시면 슬퍼하시겠어요.”
정말 슬픈 듯 울상을 지어 보인 그가 다시 표정을 풀었다. 백사우는 비어 있는 의자를 다시 집어넣었다. 마치 천대경이 거기 앉았다 일어난 것처럼.
“이런 귀찮은 일에 대부님이 직접 안 오셔서 정말 다행입니다.”
‘귀찮은’ 일. 윤도가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사우가 살피듯이 그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더니 마치 파리를 쫓아 버리듯 손을 내저었다.
“대충 보니, 평소 사이가 안 좋았던 두 분이 조금 심하게 다툰 걸로 보이네요.”
모든 걸 알고 있으면서도 그냥 그렇게 넘어갈 거라는 선언이나 다름없었다. 사우가 눈을 가늘게 떴다.
“그래도 패밀리의 분위기를 망쳤으니, 두 사람 다 근신 한 달에 처합니다.”
“잠깐.”
윤도가 거칠게 말을 꺼냈다. 사우는 그가 말을 꺼낼 줄 알았다는 듯 매끄럽게 먼저 대답을 내놨다.
“물론 죽을 뻔했던 상황은 안타깝지만, 조금 더 말을 조심하는 편이 좋겠네요. 오윤도.”
그리고 제 딴엔 공평하려고 하는지 수빈에게도 고개를 돌렸다.
“천수빈. 당신도 조금 더 인내하는 법을 배우도록 하세요.”
한 달 근신. 지금 천대경이 없는 상황에서 백사우가 그의 권한을 대행하는 셈이니 반발할 수는 없었다. 윤도가 입술을 꾹 다물었다. 천수빈은 그냥 얌전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젠장.’
윤도가 뒤돌아섰다. 한 달 근신이라고 해도 빠져나갈 방법이 있긴 할 터. 근신 당하는 게 처음도 아니니 별걱정은 안 됐다.
그리고 그 생각을 읽어 낸 듯 사우가 빙글빙글 웃으면서 말을 덧붙였다.
“몰래 빠져나가려는 멍청한 생각은 안 하고 있겠죠? 어길 시엔 두 사람의 위치를 고려해서 중징계를 내릴 생각입니다.”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던 천수빈이 처음으로 이죽거리는 소리를 냈다. 빈정거리는 표정을 숨길 생각도 없는 듯 코웃음까지 쳤다. 그동안 조용히 침묵하고 있다가 중징계에 반응하는 꼴이 우스웠다. 하지만 그것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윤도 역시 짜증이 치미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중징계?”
감히? 라는 단어를 애써 지워낸 듯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 말에 사우는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즐기듯이 빙긋 웃은 그가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둘에게 나란히 수갑을 채워서 같은 방에서 한 달 근신이라도 시켜 볼까요?”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표정이었다. 사우가 제 옷을 툭 털곤 겉옷을 걸쳤다.
“그럼 회의는 이것으로 마치죠. 다른 길로 빠지지 말고 얌전히 근신해 주세요.”
그가 성큼성큼 회의실을 나가 버렸다. 윤도는 일그러진 천수빈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제법 고소했다. 노골적인 짜증이 가득 밴 얼굴.
‘백사우…….’
뱀 수인. 천대경의 광신도. 윤도는 혀를 차곤 거친 발걸음으로 걸어 나가는 수빈의 뒷모습을 힐끔 쳐다봤다.
“윤도야.”
“…됐어.”
주훈이 인상을 찌푸리면서 다가왔다.
“백사우 그 새끼는 언제 봐도 짜증 나.”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물론 짜증나긴 마찬가지였으나 그렇게까지 싫진 않았다. 무엇보다도 천수빈의 기분을 긁어 대는 데는 천재적이었으니까.
윤도는 살살 긁어대는 사우보다 수빈이 더 불쾌했다.
“…집에 돌아가야겠네.”
집. 윤도가 그 말을 입속에서 다시 한 번 중얼거렸다. 새삼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그동안 집이라고 하면 찬의 집을 생각했는데. 그는 찌뿌둥한 어깨를 돌렸다.
‘들렀다 갈 수는 없고.’
곧장 근신하라 했으니, 다른 길로 빠졌다간 중징계가 내려질지도 몰랐다. 백사우의 말은 농담 같지만 잘못 걸리면 어떻게든 실천에 옮길 놈이기도 했다.
수빈과 수갑을 차고 함께 생활한다는 건 생각만 해도 징그럽고 불쾌했다. 윤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별일은 없겠지.’
모든 일의 중심에 있던 그도 사라졌고, 찬을 위협할 만한 수빈 역시 근신형에 처해졌으니 한 달은 조용하리라. 윤도는 클리크에게 찬을 조금 보살피라 말할까 고민하다 그냥 입을 다물었다.
삶에 의욕도 없어 보이지만, 적어도 스스로 죽으려 들진 않았다. 최소한의 죽을 용기조차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윤도는 혀를 찼다.
한 달은 금방 지나가겠지.
그는 찬의 생각을 털어 냈다.
* * *
윤도가 사라졌다. 찬은 그것이 너무도 어색했다. 원래부터 어딜 다녀온다고, 언제쯤 돌아오겠다고 일일이 말해 주지는 않았지만, 이렇게 안 돌아올 줄은 몰랐다.
‘하긴, 처음에도 갑자기 나타났으니까…….’
찬은 비어 있는 이부자리를 힐끔 살폈다. 윤도가 나간 날 썼던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는 이불 위에서 자는 대신, 다시 바닥으로 내려왔다. 윤도에게 다리를 벌려 주기 시작하면서 다시 돌아갔던 자리였으니 혼자 눕기는 싫었다.
혼자 이부자리에 누워 본 지 너무 오래됐다. 찬은 빈 공간에서 시선을 돌리고 멍하니 젓가락을 움직였다. 아직도 약간 차가운 볶음밥을 떠먹었다. 별맛은 없었다. 그냥 살아야 하니까 먹었다. 반찬 삼아 꺼낸 카레를 볶음밥에 비볐다. 윤도가 봤다면 또 쓰레기를 보듯 경멸하는 눈으로 봤겠지.
찬은 멍하니 고개를 들었다. 눈앞에 굵은 다리도 없고, 커다란 그림자도 없다. 입안에서 언 기가 남은 밥알이 설겅설겅 씹혔다. 찬은 억지로 밥을 욱여넣었다.
‘…라면을 다시 사 올까.’
차라리 컵라면을 먹을 때가 더 맛있었다. 지금은 마치 종잇조각을 씹는 기분이었다. 불쾌한 맛. 아무리 씹어도 넘어가지 않는 음식. 찬은 토할 것 같은 기분으로 볶음밥을 반쯤 먹곤 내려놨다.
넓지 않은 거실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고 누워 있던 거구의 남자가 사라진 빈자리는, 생각보다도 더 컸다. 윤도가 돌아오지 않던 첫 날. 찬은 평소처럼 문밖을 내다보면서 누워 있었다. 그러다가 깜박 잠이 들었다. 가물가물 눈을 떴다가, 또 감았다. 몇 번을 반복해도 거실이 서늘했다. 그 커다란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를 못 느낄 리 없는데. 찬은 몸을 웅크렸다.
체감상 한 삼일 정도가 지난 것 같았다. 윤도가 그동안 제법 먹여 둔 탓인지 그저 멍하니 그러고 있어도 죽지 않았다. 찬은 비척비척 일어섰다. 낮이고 밤이고 그의 뒷구멍을 들쑤시던 체온이 떠올랐다. 윤도는 제 나름의 방법으로 달래주듯이 찬의 빼빼 마른 몸을 번쩍 들어 끌어안아 줬다. 그럴 때면 찬은 뜨끈한 그의 가슴팍에 달라붙었다. 느릿하게 흘러가는 심장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윤도의 손에 몸을 내던졌다. 척추를 하나하나 세듯이 더듬다가, 등을 끌어안는 뜨거운 체온에 눈을 감았다.
찬이 가슴 위에 손을 얹었다. 미약하게 팔딱팔딱 뛰는 제 심장 소리는 윤도와 확연히 달랐다. 멍하니 허공을 쳐다봤다. 뭘 하고 싶은지도 알 수 없었다. 머릿속을 텅 비운 채, 그저 손바닥 아래 느껴지는 심장 소리를 세고 또 셌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났다. 아마 그쯤 시간이 흘렀겠지. 찬은 윤도가 없어도 살았고 그가 있어도 살았다.
늘 그랬듯이 그냥 살아갔다. 잠을 자고, 버릇이라도 된 것처럼 청소를 하고. 종이로 만든 모형을 씹는 기분으로 음식을 먹었다.
가끔 윤도의 생각이 나기도 했다. 그러나 모든 생각은 파도에 휩쓸려가듯 금세 사라졌다. 찬은 버릇처럼 바닥에서 잤고, 구겨진 이불을 똑바로 펴지도 않았다. 그냥 그 공간이 그렇게 사라져 버린 듯이 지냈다.
그리고 발작하듯 가끔 대문 밖으로 고개를 쑥 내밀었다.
“…없네.”
뭘 바라고 있는 건지 스스로도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그냥 왠지 내다봐야 할 것 같아서. 그래서 가끔 불쑥 대문을 열고 밖을 쳐다봤다.
찬은 맨발로 마당을 지났다는 걸 방금 깨달았다. 흙이 묻은 발을 다시 대문 안으로 들였다. 나갈 이유조차 없다. 윤도가 사다 쌓아 둔 음식은 아직도 많이 남아 있었으니까. 찬은 대문을 약간 열어 둔 채 다시 거실로 돌아왔다. 그리고 몸을 웅크린 채 담요를 덮었다.
그렇게 또 시간이 흘렀다.
부정확한 감각으로 느끼기엔 대충 한 달쯤 지나지 않았을까 멍하니 그런 생각을 했다.
“야! 찬! 유찬! 죽은 거 아니지?”
대문 밖에서 커다란 외침이 들렸다. 찬은 평소처럼 조금 열린 문틈으로 밖을 내다봤다. 무언가를 발견하는 것이 두려운 듯, 대문을 아주 느리게 밀어 보았다. 그 틈새로 정호가 고개를 쑥 들이밀었다.
“살아 있는 거 맞지? 사람 놀래고 있어.”
눈을 느리게 깜박이자 정호가 킬킬 웃으면서 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익숙하게 마당을 가로지르고 문을 벌컥 열었다.
“왜 대답을 안 해? 메시지를 읽지도 않고. 답장 안 하는 건 그러려니 하겠는데. 어떻게 읽지도 않냐? 죽은 줄 알고 왔잖아.”
정호가 묻지도 않은 말을 경쾌하게 하면서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왔다. 찬은 멍하게 친구를 올려다보기만 했다.
“왜 이불에 안 눕고 바닥에 누워 있어? 그러다 허리 아작 난다.”
그가 짓궂게 웃더니 찬의 담요를 쭉 잡아당겼다.
“어째 할머니 돌아가셨을 때보다 더 마른 것 같다.”
정호가 인상을 찌푸렸다. 찬은 부스스 일어나 고개를 흔들었다.
“일은 어쩌고.”
“일이야 휴가 내고 왔지. 네가 그래도 메시지 읽어 주기라도 할 때가 나았다는 걸 뼈저리게 깨달았다.”
그렇게 말하더니 손에 들고 온 봉지를 부스럭거리면서 열었다. 그 안에는 먹을 것들이 가득 담겨 있었다. 냉장고에 차곡차곡 담는 손을 가만히 보더니 찬이 낮게 한숨을 쉬었다.
“너 아무리 그래도 먹고 살아. 대체 뭐 먹고 있어?”
“…냉동.”
“냉동? 안 그래도 비쩍 마른 놈이 냉동?”
정호가 있는 대로 인상을 찌푸렸다. 그가 갑자기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고개를 쑥 들이밀었다. 그리곤 냄새를 맡았다.
“그래도 씻고 살긴 하나 보네. 냄새는 안 난다.”
찬이 새삼스러운 얼굴로 스스로의 냄새를 맡았다.
“청소도 나름대로 하고는 있는 것 같고. 자주는 안 하는 것 같지만.”
정호가 손바닥으로 바닥을 쓸었다. 손을 툭툭 턴 그가 씩 웃었다.
“뭐라도 좀 해 줄게. 메뉴를 정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이 사 온 건 아니니까 주는 대로 먹어.”
얼마 안 있어 통통 도마를 두드리는 칼 소리와 물이 끓는 소리가 났다. 찬은 윤도가 데리고 다녔던 식당들을 떠올렸다. 마지막으로 제대로 ‘만든’ 음식을 먹어 본 게 언제였는지 가물가물했다.
또 깜박 잠이 들었다가 눈을 뜨니, 이불 안이었다. 찬은 가만히 이불의 감촉을 느끼다 몸을 웅크렸다. 희미하게 짐승의 냄새가 났다. 다시 눈을 감았다.
“찬아, 일어나. 밥 먹고 자.”
웃음기 어린 목소리가 들렸다. 집안에 음식 냄새가 가득 찬 게 언제였더라. 아마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로 처음인 것 같았다. 찬이 상 위에 차려진 몇 가지 음식을 살폈다. 된장찌개에 나물무침 몇 개, 그리고 불고기.
“…고마워.”
냄새는 분명 맛있는데,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따끈따끈 김이 올라오는 밥을 조금 떠서 씹었지만 여전히 종이를 씹는 느낌이었다.
“팍팍 좀 먹어라. 밥은 너 밥솥에 있으면 안 먹을 것 같아서 식히고 있어. 식으면 나눠서 얼려 둘 테니까 녹여서 먹든지 해.”
“응.”
“그리고 반찬도 많이는 안 했으니까, 상하기 전에 먹고. 된장찌개는 약간 짜게 했으니까 다시 끓이면 며칠 먹어도 돼.”
그 뒤로도 정호의 잔소리가 이어졌다. 찬은 기계처럼 고개를 몇 번이고 끄덕였다. 끄덕끄덕. 목이 아팠다.
잔소리가 심하긴 했지만 좋은 친구였다. 그만큼 찬을 챙겨 주는 사람은 할머니가 유일했으니까.
밥그릇을 억지로 비웠다. 중간 중간 정호가 반찬을 그의 밥그릇에 올려놔, 그것도 조금 먹었다. 넘어가지 않는 음식을 씹고 또 씹다가 겨우 삼켰다.
“그러고 보니 너 강아지 키운다고 하지 않았냐?”
“…….”
“강아지는 어딨어?”
뒤늦게 생각난 듯 정호가 약간 들뜬 얼굴로 고개를 이리저리 쭉 뺐다.
“그런데 강아지 용품이 하나도 없네. 설마 사람 음식 주는 거 아니지?”
“…….”
찬은 그냥 젓가락으로 밥알을 하나하나 세기만 했다.
“도망쳤어.”
정확히 말하면 키운 적도 없다. 덤덤한 그 말에 정호가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금세 웃었다.
“나쁜 강아지네. 네가 괴롭힌 것도 아닐 텐데 말이야.”
“뭐, 그렇지.”
적당히 대답했다.
“신경 쓰지 마. 어차피 시골이니까 어디 좋은 데 갔을지도 몰라.”
“…응.”
다른 좋은 곳. 찬이 그 말을 곱씹었다. 사실 윤도가 이곳에서 지내는 게 좋았을 거라곤 생각한 적 없었다. 그냥 잠을 자고, 섹스를 하고, 몸을 회복했다. 그게 전부였다.
정호가 위로 아닌 위로를 줄줄 내뱉더니 부산스럽게 상을 치웠다. 찬은 멀거니 그 몸짓을 눈으로 좇았다. 그에게 말했던 대로 식은 밥을 나눠서 냉동실에 넣고, 반찬들은 통에 담았다. 말끔하게 정리한 정호가 다시 찬의 앞에 앉았다.
“아픈 데는 없지?”
고개를 끄덕였다. 윤도가 조금 거칠어진 날이면 가끔 구멍이 찢어진 듯 아프긴 했지만 그 욱신거림도 사라진 지 오래였다.
게다가 친구에게 남자랑 잤는데 뒷구멍이 아파, 라고 말할 수도 없지 않은가. 정호가 약간 미심쩍은 얼굴로 이리저리 고개를 돌렸다.
“뭐, 아프지 않다니 다행이긴 하네.”
씩 웃는 얼굴이 가까웠다. 찬은 멀거니 빙긋 웃는 눈을 쳐다봤다. 그 순간 그의 위로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어두워진 시야에 정호가 고개를 위로 쳐들었다.
“어? 누구…….”
윤도가 불쾌한 기색으로 눈썹을 치켜세우는 게 보였다. 찬은 그냥 그를 보기만 했다. 사라졌을 때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다시 돌아왔다.
‘아니, 여기가 돌아오는 장소는 아니겠지.’
멍하니 그런 생각을 했다. 정호가 눈치를 보듯 찬과 윤도를 번갈아 쳐다봤다.
“아는… 사이야?”
조심스러운 물음에 분위기가 얼어붙었다.
* * *
윤도의 한 달 근신은 생각보다 별일이 많았다. 호텔 최상층에 갇힌 건 별문제가 되지 않았다. 원래부터 혼자 있는 것을 즐기기도 했고, 룸은 윤도가 늑대의 모습으로 어슬렁거려도 될 만큼 넓었다.
차가운 물이 가득 담긴 욕조에서 벌떡 일어난 윤도가 널찍한 호텔 방을 성큼성큼 가로질렀다. 그의 몸에서 뚝뚝 떨어지는 물방울이 바닥의 카펫에 흔적을 남겼다. 그러거나 말거나. 온 사방에 물방울을 튕긴 윤도가 신경질적으로 침대에 몸을 던졌다.
아무리 다른 일을 해도 자꾸 찬이 생각났다. 그저 멀거니 앉아 있기만 하는 그 썩어 버린 눈이 떠올랐다.
“젠장…….”
윤도가 눈을 꽉 감았다가 떴다. 클리크에게 지켜보라고 할 걸 그랬나. 뒤늦은 후회가 들었다. 물론 그런 행동을 했다간 오히려 탈론에게 약점을 내준 꼴이 됐겠지만. 윤도가 주먹으로 침대를 쾅 내리쳤다.
침대가 푹 꺼졌다가 튀어 오르며 복구됐다. 천장을 바라보다 숨을 들썩였다. 그나마 다행인 건 천수빈 역시 근신을 당했다는 점이었다. 탈론의 새새끼들이 그를 내세우지 않고 직접 나설 리는 없을 테니까.
‘…중징계를 각오하면서까지 나서지는 않겠지.’
고개를 흔들었다. 그럴 리가 없다. 천수빈이? 윤도의 입꼬리가 뒤틀렸다. 백사우라면 어떤 식으로든 그들에게 엿을 먹이리라. 게다가 그의 뒤에는 천대경이 버티고 있으니, 쉽사리 손댈 수도 없다.
윤도가 이를 득득 갈았다. 긴 한숨을 내쉰 그는 천천히 아래쪽으로 손을 옮겼다. 찬을 안는 맛이 아주 좋았던 건 아니었다. 비쩍 마른 몸은 끌어안으면 부서질 것 같았고, 달뜬 신음 역시 당장 숨이 끊어질 것처럼 처절했다. 그래도 무기력한 모습으로도 오물오물 구멍을 조이고, 헐떡이며 정액을 질질 흘리는 그 모습이 꽤나 야했는데. 윤도가 아래를 더듬어 반쯤 단단해진 자지를 손에 쥐었다.
“하…….”
다음엔 그 입에다가 한번 쑤셔 넣어 볼까. 그 역겨운 음식들도 먹어 대는 걸 보면 정액도 기꺼이 먹을 것 같았다. 윤도가 큭큭 웃으면서 찬의 엉덩이를 떠올렸다. 언제나 시작할 때면 찢어진다고 벌벌 떠는 게 재미있었다. 물론 근신 당하기 전쯤에는 손도 쑥 들어갈 만큼 늘어나 거뜬했지만. 윤도가 혀끝으로 입술을 핥으면서 느릿느릿 자지를 훑었다. 그의 손안에서 팔딱거리는 감각이 익숙했다.
바짝 마른 배 위로 불룩 솟아오른 모습이라니. 얇은 가죽과 얼마 안 되는 근육 아래로 자지를 훑고 있으면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오싹한 쾌감이 흘렀다. 거기다가 어색하고 두려운 손짓으로 귀두 부근을 더듬는 손길이란. 윤도의 입술 사이로 들뜬 숨이 흘렀다.
“…하.”
온몸을 늘어뜨린 채로 얌전히 가슴에 기대 오는 머리카락은 언제나 간질간질했다. 새끼들의 털이 그렇게 부들부들하려나. 윤도는 손에 힘을 줬다. 몇 번 더 훑어 내리자 사정감이 치밀었다.
손을 멈췄다.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 같은 기분이었지만 손을 떼어 냈다. 묵직한 감각이 배 위를 툭 때렸다. 윤도가 쿡쿡 웃으면서 그냥 그대로 눈을 감았다. 손에 싸 버리느니, 모아다 한 달 치를 몽땅 쏟아부어야지. 아마 배가 불룩하게 나올지도 모른다. 그런 상상을 하니 제법 기분이 좋았다.
‘한 달이라.’
그냥 눈 몇 번 감았다가 뜨면 지나 있을 줄 알았는데. 윤도는 짜증 가득한 얼굴로 옷을 벗어 던졌다. 그의 몸이 서서히 털에 뒤덮이다 늑대로 변했다.
길게 이어지는 울음소리가 룸 안을 꽉 채웠다.
* * *
근신 처분이 풀리자마자 윤도는 그대로 찬의 집까지 직행했다.
‘천수빈이 먼저 가진 않았겠지.’
그의 굵은 눈썹이 꿈틀 움직였다. 찬에 대해서는 별생각이 없었다. 어차피 늘 그랬듯 죽지 못해 겨우겨우 생을 이어가고 있겠지. 그나마 사들여 놓은 것들이 많았으니 집 밖에 안 나가고도 충분히 지낼 수 있었으리라. 윤도는 약간 즐거운 기분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들어가자마자 끌고 나가서 뭘 먹여야 하나. 아니면 다리를 먼저 벌릴까. 뻐근하게 자지가 부푸는 느낌에 낮게 신음했다.
그동안 뼈밖에 없어서 조금이나마 살을 붙여 뒀는데. 한 달 동안 다시 바짝 말라 있을 걸 생각하니 조금 짜증이 나기도 했다. 내 것이나 다름없는 몸뚱이를 그딴 식으로 굴려서야. 그가 불쾌한 기분을 억눌렀다.
‘뭐. 예뻐해 주면 되지.’
아니면 나중에 새끼라도 배게 만들어 볼까. 딱히 새끼가 필요하다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그것도 나쁘진 않았다. 윤도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여전히 무방비하게 열린 대문을 밀고 들어갔다.
여느 때처럼 멍하게 밖을 쳐다보고 있는 눈 대신, 말소리가 들려왔다. 남자의 목소리. 낯선 소리. 윤도가 이를 드러냈다. 불쾌한 감정이 울컥 치밀었다.
‘남자?’
어차피 구멍은 벌어질 대로 벌어져서 다른 놈들의 자지는 맞지도 않을 텐데. 윤도의 심기가 뒤틀렸다. 생각조차 해본 적 없던 일이었다. 쭉 같이 지내면서 집에 찾아오는 사람도 없었다. 누군가가 굳이 찬을 찾지도 않았다. 그는 인간들의 세상에 살면서도 격리되어 있었다.
그런데 어째서. 아니. 누가. 감히. 단어들이 토막토막 난 채 윤도의 머릿속을 무참히 짓밟았다. 성큼성큼 걸어가 신발도 벗지 않고 거실로 들어갔다. 이부자리에 웅크리고 앉은 찬과 그 앞의 남자가 보였다.
“…….”
낯선 인간이 고개를 들어 윤도를 흘끔 보더니 찬을 쳐다봤다.
“아는 사이야?”
그 질문에 찬은 그냥 입을 다물었다. 옅게 남아 있는 음식 냄새. 그리고 바짝 붙은 거리. 윤도가 한 걸음 더 다가갔다.
“저기… 신발 신고 계신데요.”
낯선 남자가 고개를 푹 숙이더니 윤도에게 작게 말했다. 목소리 속에 담긴 옅은 두려움까지 모두 숨길 수는 없었다. 찬이 멀거니 윤도를 보다가 그냥 고개를 숙였다.
“…일어나.”
낮게 흘러나오는 목소리에도 그는 움직이지 않았다. 윤도가 허리를 숙여 찬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콜록…….”
목이 졸린 듯 찬이 컥컥거리며 기침을 했다.
“잠깐. 당신 누, 누구야. 왜 찬이를……. 아니 찬아, 이 사람 알아? 대체…….”
어디서부터 지적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정호가 혼란스럽게 중얼거렸다. 그의 눈이 윤도와 찬을 빠르게 훑었다. 잘게 떨리는 눈처럼 찬의 팔을 붙잡은 손이 떨리는 게 고스란히 보였다.
윤도의 인상이 더욱 일그러졌다. 다른 무언가가 그의 것을 건드렸다. 덜덜 떨리는 손을 툭 쳐내자 정호가 뒤로 몇 발자국이나 물러나더니 덜컹하면서 서랍장에 부딪혔다.
“…찬아! 야! 너 누구냐고!”
슬슬 눈에 뵈는 게 없는지 정호가 자세를 바로잡고 덤비려 했다. 찬이 윤도에게 붙잡힌 채 늘어져 있다가 쌕쌕거리는 숨소리와 함께 겨우 입을 열었다.
“정호야……. 괜, 찮……. 윽.”
정호? 윤도가 찬의 목을 움켜쥐었다. 비쩍 마른 목뼈가 손가락 아래 느껴졌다.
“미친… 미친 새끼 아냐 이거!”
정호가 덤벼들었다. 윤도는 그를 상대하는 대신 그냥 문을 나섰다. 문을 쾅 닫자 문에 부딪힌 듯 거친 소리와 함께 신음 소리가 흘렀다. 문틈으로 옅은 피 냄새가 새어 나왔다.
“헉, 하, 하…….”
새빨개진 얼굴로 찬이 버둥거렸다. 늘 언제나 죽지 못해 산다는 얼굴로 있었으면서 지금은 살아 보겠다고 발버둥 쳤다. 윤도는 그것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어차피 죽일 생각은 없다. 그는 언제나 ‘그의 것’에게 너그러웠으니까.
찬의 눈가로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제대로 숨을 쉬지 못해서 어떻게든 공기를 빨아들이려고 벌린 입술 밖으로 타액이 줄줄 흘러내렸다. 버둥거림은 길지 않았다. 어차피 버틸 만한 체력도 없는 몸은 금세 축 늘어졌다.
찬을 어깨에 걸친 윤도는 그대로 집을 벗어났다. 이제 그 집에 있는 건 불쾌했다. 왜? 문득 떠오른 의문에 그는 흐느적거리는 찬의 다리를 붙잡았다.
‘천수빈이 올지도 모르고.’
어쨌든 윤도의 것이니 챙기긴 챙겨야 하지 않는가. 그는 제 나름대로 납득하곤 빠르게 시골을 벗어났다.
* * *
윤도는 그가 살고 있는 호텔로 당당하게 들어갔다. 손톱에서 운영하고 있는 호텔인 데다가, 상층부는 수인들만 이용하고 있으니 더 편하다.
로비를 성큼성큼 지나, 수인들만이 알고 있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죽 올라갔다. 찬은 여전히 정신을 잃은 채였다. 간혹 죽었나 싶어 숨소리를 듣고 있으면, 미약하게나마 색색 숨 쉬는 소리가 들렸다.
딩 하는 작은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가 멈춰 섰다.
“어…….”
패밀리 중 한 명이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다가 윤도를 보곤 주춤 물러섰다. 약간 새파랗게 질린 얼굴 위로 옅은 두려움이 스쳤다.
“오, 오랜만이네.”
나름대로 같은 패밀리라서인지, 어색하게나마 인사를 건네는 모습을 흘깃 보곤 지나쳤다. 본 모습으로, 혹은 사람의 모습으로 윤도를 뻔히 바라보던 수인들이 슬그머니 뒤로 물러났다.
다들 작게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오윤도가 인간을 데려왔다. 화난 것처럼 보인다. 죽이려는 건가. 수많은 말들이 윤도의 귀를 스쳤다. 성큼 걸어가자 데스크 앞에 있던 수인들이 슬그머니 자리를 비켰다.
“윤도 님. 일찍 돌아오셨네요. 여기 있습니다.”
싹싹한 미소와 함께 자그마한 남자가 열쇠를 내밀었다. 윤도는 익숙하게 위로 향했다. 원래 이렇게 일찍 올 생각은 없었다. 당분간 찬의 집에서 머물까도 생각했건만.
가장 꼭대기 층까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기도 귀찮아서 계단으로 올라왔다. 윤도가 방문을 쾅 닫았다. 이 호텔에서 가장 좋은 방이라는 말이 아깝지 않게 넓은 곳이었다. 아름답게 꾸며진 거실, 몇 개나 되는 방과 욕실. 윤도는 익숙하게 침실 문을 열어젖혔다.
그가 나간 사이 말끔하게 정리한 듯 주름 하나 없는 침대 위로 찬을 내던졌다. 폭 안겨 있던 몸이 떨어져 내려 늘어졌다. 여전히 깰 기미는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윤도가 침대 위로 올라갔다.
“일어나.”
그의 손등이 찬의 뺨을 철썩 때렸다. 금세 벌겋게 변하는 피부가 내일이면 퍼렇게 멍이 들 거라는 건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었다. 고개가 돌아간 찬은 늘어져 있었다.
윤도가 다시 손을 올렸다. 그나마 손바닥으로 때리지 않는 게 약간 남은 자비심이었다. 그의 것인 몸뚱이를 여기저기 내돌렸으니, 찬을 조각조각 찢어서 버려야 했다. 하지만 한 달 동안 무척이나 보고 싶었으니까, 참았다.
“더러워.”
윤도가 낮게 으르렁거렸다. 그의 자지를 품었던 구멍이 다른 남자의 정액을 삼켰다는 생각을 하니 아주 불쾌했다. 아니, 불쾌하다는 말로 다 할 수가 없었다. 정액에 절여진 찬의 내장을 박박 긁어내고, 다른 사내의 물건이 닿았던 피부를 모조리 뜯어내고 싶었다.
윤도는 손을 내렸다. 어차피 그가 가진 것 중 하나가 아닌가. 아무리 윤도가 자신의 것을 상처 내는 행동이라 해도, 찬이 흠집 난 건 보고 싶지 않았다. 말끔하고 깨끗한 편이 보기 좋으니까.
그는 그냥 옷을 찢어 냈다. 뼈마디가 고스란히 보이는 몸이 드러났다. 속옷 한 장까지 모조리 뜯어낸 윤도가 그대로 찬의 다리를 벌렸다. 질질 끌려오는 몸은 전보다 더 가벼웠다. 그가 바지 앞을 풀어내자 뻣뻣해진 자지가 기다렸다는 듯 모습을 보였다. 귀두가 번들번들 젖어 있어 달리 세울 필요도 없었다.
“하…….”
윤도가 낮게 신음하면서 찬의 엉덩이를 벌렸다. 살짝 다물린 구멍에 천천히 자지를 밀어 넣었다. 풀어 주지도 않았는데, 찬의 뒷구멍은 기다렸다는 듯 윤도를 받아들였다.
욕이 나왔다. 그가 없는 동안 얼마나 구멍을 써 댔으면 이렇게 부드럽게 벌어지나. 윤도가 찬의 허리를 꽉 잡아당겼다. 퍽 소리와 함께 피부가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윤도는 기절한 찬을 끌어안는 대신, 허리 옆으로 늘어진 다리를 잡아 찬의 가슴까지 꾹 눌렀다. 그의 것을 집어삼킨 구멍과 반쯤 선 채 정액을 흘리고 있는 자지가 고스란히 보였다. 윤도는 그대로 허리를 움직였다.
“으, 으……. 으…….”
찬이 고통스러운 얼굴로 끙끙거렸다. 한껏 구부린 채 엉덩이만 들린 자세에서도 마른 배 위로 윤도의 형태가 고스란히 보였다. 쑥 들어갔다가, 끝까지 빠져나갔다가. 그리고 쑤셔 넣으면 찬이 정액을 질질 흘렸다.
“아…….”
당장이라도 사라질 것 같은 신음 소리와 함께 흔들리던 몸이 바르작거렸다. 부르르 떨리던 속눈썹 사이로 짙은 갈색의 눈동자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깼어?”
윤도가 픽 웃었다. 가느다란 손으로 그의 가슴팍을 밀어내려던 찬이 아래로 시선을 돌렸다.
“흐윽…….”
“때려도 안 일어나더니, 박아 주니까 일어나네?”
빈정거리는 말에 그가 고개를 저었다. 속이 뒤틀렸다. 가슴을 밀어내던 손이 줄줄 미끄러져, 윤도의 배 위에 닿았다.
“읏. 으……. 아, 아파…….”
“피도 안 나는데, 왜. 그냥 찢어 줄까? 아팠으면 좋겠어?”
그 말을 내뱉는 입술이 삐뚜름하게 올라갔다. 찬이 허덕이면서 이불을 움켜쥐었다.
“흐윽……. 응…….”
정말 아프다는 듯 인상을 찌푸리는 모습이 오히려 가증스러웠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자지를 물어 댔으면 이렇게 부드럽게 받아들이나. 윤도가 빠듯하게 벌어진 구멍을 손가락으로 더듬었다. 집어넣을 것처럼 손끝으로 꾹 누르자 찬이 새파래진 얼굴로 고개를 흔들었다.
“하윽……. 아, 안돼……. 싫어. 읏, 으흑!”
“매일같이 뒷구멍 쑤셔 주던 게 사라지니까 허전했어?”
“아니… 제발……. 아니야… 으…….”
찬의 뺨에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헐떡이면서 애원하는 말이 별로 믿기진 않았다. 하필이면, 딱 윤도가 간 그날 남자와 단둘이 이불 위에 앉아 있는 모습이라니. 윤도가 없는 동안 그 남자는 얼마나 그 집을 드나들었을까.
“한 놈으로 충분하지 않았을 텐데.”
찬이 버둥거리다가 도망치려는 듯 팔을 휘저었다. 윤도의 분노를 어떤 말로도 잠재울 수 없다는 걸 지금 깨달은 모양이었다.
“응? 몇 놈인지 말해.”
“없어… 한 명도……. 하윽! 읏!”
거짓말. 윤도의 서늘한 눈 아래서 찬이 고개를 몇 번이고 흔들었다. 그가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애원하듯 울면서 허덕이는 꼴이 불쾌했다. 멋대로 몸을 굴려댄 게 뭘 잘했다고. 윤도가 자지를 쑥 뽑아내자 구멍이 달려 올라오듯 달라붙었다가 떨어졌다.
벌벌 떠는 팔로 어떻게든 도망가려는 모습이 그의 분노를 더욱 부채질했다.
“아니면 두 개 세 개씩 처넣었어? 난 내 거 다른 놈들이랑 공유하는 거 안 좋아하거든.”
“아니… 야. 아악!”
엉금엉금 기어가려는 찬의 발목을 쭉 잡아당겼다. 처절한 비명과 함께 그가 발버둥 쳤다. 질질 끌려온 몸뚱이를 짓누르고, 엉덩이를 벌렸다.
“그만…….”
다리가 버둥거렸다. 윤도가 찬의 다리를 짓누르고, 뒷목을 물어뜯었다.
“악! 아파……. 흑… 윽…….”
피 맛이 났다. 비릿한 냄새가 훅 퍼지면서 비쩍 마른 목덜미에 핏방울이 주륵 흘러내렸다.
“제발… 아무랑도 안 했……어.”
윤도가 다시 뒷구멍에 자지를 쑥 집어넣었다. 이미 미끈거리는 구멍은 어렵지 않게 그를 받아들였다. 벌벌 떨리는 뒷목을 잘근잘근 씹었다.
“읏, 으흑……. 아, 아파…….”
찬이 헐떡였다. 살도 거의 없는 엉덩이가 짓눌리고 쓸려 벌겋게 부어올랐다. 윤도가 한 번 깊이 파고들 때마다 그의 허벅지에 닿은 다리가 경련했다.
“얌전히 있었어야지, 응?”
꽉 물고 있던 목덜미를 혀로 핥았다. 피 맛이 났다. 찬은 죽은 듯 그대로 침대 위에 고개를 박은 채였다.
“고개 들어.”
“…읏… 윽…….”
신음 소리마저도 침대에 파묻혔다. 몸이 아래위로 흔들릴 때마다 찬의 억누른 소리가 들렸다. 윤도의 손이 찬의 머리카락을 꽉 움켜쥐었다. 그는 가차 없이 손을 당겼다.
“악…….”
비명마저도 죽어가듯 미약했다. 눈을 꾹 감고 있는 찬의 속눈썹이 흠뻑 젖어 있었다. 윤도는 그 얼굴을 물끄러미 보다 손을 놨다.
“왜, 고통이 좋아?”
“…흐으…….”
침대에 처박힌 고개가 약하게 좌우로 흔들렸다. 그 모습에 윤도가 혀끝으로 입술을 핥았다. 찬의 피 맛이 났다.
“아주 구멍이 꽉꽉 조이고 난린데.”
핏빛으로 물든 혀끝이 뒷목의 상처에 닿았다. 찬의 몸이 움찔거렸다. 윤도의 자지를 집어삼킨 구멍이 꽉 조여 드는 감각에 웃음이 나왔다.
그는 느긋하게 잇자국을 핥았다. 쓰린 고통이 지날 때마다 몸이 경련했다. 찬은 마치 시체처럼 가만히 엎드린 채 약한 신음만 짜냈다.
“그래서 다른 남자를 끌어들였어?”
“…아니… 야.”
“내가 화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얼마나 맞고 싶어?”
“아니… 아니라고…….”
뼈가 드러난 등이 덜덜 떨렸다. 윤도가 다정하게도 뺨을 쓰다듬었다. 손바닥에 눈물이 흠뻑 묻어 나왔다. 그가 쿡쿡 웃자 찬은 두려운 얼굴로 눈을 질끈 감아 버렸다.
“어디까지 넣었어?”
“안… 안 넣었……. 흐윽… 제발…….”
눈물이 뚝뚝 흘렀다. 윤도는 애원하는 그 말을 가만히 곱씹었다. 언제나 사는 것에 미련이 없다는 듯 무미건조하게 대답하거나, 멍하니 숨만 쉬는 모습이었는데. 지금은 울고, 애원하고, 살려 달라 빌었다. 그 모습이 보기 좋았다. 짜릿한 흥분이 윤도의 등줄기를 타고 올라갔다.
그가 몸을 떼어 냈다. 찬이 눈물로 퉁퉁 부은 눈을 가느다랗게 떴다. 윤도의 자지가 빠져나왔음에도 뒷구멍은 안쪽의 속살을 그대로 내보였다. 다 다물어지지 못한 붉은 살덩어리가 움찔거리면서 조금씩 움츠러들었다.
윤도가 찬을 똑바로 눕히니 멍한 눈이 천장으로 향했다. 엉덩이 밑에 베개를 받히니, 허리가 높이 들렸다. 치욕스러운 자세일 텐데도 찬은 반항하지 않았다. 그냥 온몸을 늘어뜨린 채 붉어진 눈으로 가쁜 숨만 쌕쌕 내뱉는 중이었다.
굵은 손가락이 찬의 엉덩이를 잡아 벌리고, 구멍을 검지로 잡아 벌렸다.
“으… 으읏…….”
아픈 듯 눈을 질끈 감으면서 고개를 옆으로 트는 모습이 윤도의 눈에 고스란히 박혔다. 그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벌어진 구멍 안으로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검지, 중지, 약지, 새끼손가락. 네 개를 집어넣고 벌리자 주름 하나 남지 않을 정도로 팽팽하게 벌어진 피부가 당장이라도 찢어질 것처럼 벌겋게 변했다.
“…아윽…….”
찬의 손가락이 침대 시트를 움켜쥐었다. 윤도의 입꼬리가 뒤틀렸다. 엄지손가락이 늘어날 대로 늘어난 구멍을 살살 긁었다.
질끈 감겨 있던 눈이 슬며시 뜨였다. 짙은 갈색 눈동자 위로 옅은 공포심이 어렸다. 그것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설마, 하면서 믿을 수 없는 표정이었다.
“아, 안… 안 돼……. 안 돼…….”
이미 힘이 빠진 다리가 의미 없이 휘적 흔들렸다. 찬이 손을 뻗어 윤도의 팔을 긁었다. 손톱도 제대로 세우지 못한 손가락은 간지러움조차 남기지 못하고 그의 근육 위로 미끄러졌다.
“안 돼?”
찬이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면서 고개를 느리게 끄덕였다. 윤도가 픽 웃었다. 찬의 구멍은 이미 찬의 것이 아닌데, 왜 안 된다 된다를 저가 결정하려 하는 걸까. 찬의 구멍은 윤도의 것이니 그 누구도 못쓰게 찢어 버리든, 아니면 자지를 처박든 윤도의 자유였다.
웃는 소리에 찬이 눈을 질끈 감았다. 한껏 늘어난 피부를 살살 긁던 엄지가 천천히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으윽… 읏…….”
비쩍 마른 허벅지가 벌벌 떨렸다. 빠듯하게 벌어진 구멍은 정말 찢어질 것 같았다. 윤도가 아주 느리게, 찢어지지 않을 만큼 느리게 파고들었다. 물론 느린 만큼 찬의 고통은 오래가리라.
“힘 빼 봐. 찢어지겠네.”
그 말에 찬이 허덕이면서 몸을 뒤틀었다. 어떻게든 고통을 줄여 보려는 발악이 이어졌지만, 이미 뒷구멍에 들어찬 손 때문에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윤도의 손이 쑥 들어갔다. 찬의 온몸이 식은땀에 푹 절었다.
“찢어 버리긴 아까우니…….”
윤도가 축축하게 젖은 그의 허벅지를 남은 한 손으로 꽉 붙잡았다. 베개 탑 위에서 찬이 자꾸 미끄러지려고 했다. 안쪽에 집어넣은 손을 휘저었다. 내벽이 미끈거리면서 윤도의 손에 찰싹 달라붙어 왔다.
“잘도 집어삼키네.”
“으…….”
구멍 밖으로 나온 손목이 조금 이상하게 보였다. 윤도의 커다란 손이 안쪽을 헤집었다. 배 너머로 자지가 보였듯 손의 움직임이 어렴풋이 보였다.
윤도가 안쪽을 거칠게 헤집었다. 찬이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쌕쌕거리는 숨소리를 냈다.
“정액이 닿은 곳이 어디지? 아니면 몸속을 모조리 박박 긁어내야 하나?”
“…….”
이젠 대답할 기운도 없다는 듯 고개를 겨우 한 번 저었다. 그가 창백한 얼굴로 눈을 감았다. 윤도는 질척하고 달라붙어 오는 안쪽을 더듬었다. 그의 것. 어떻게 해야 할까. 다른 놈들의 자지가 닿은 부분이나 더러운 정액이 닿은 곳을 모조리 긁어낼 생각이었는데. 그러면 또 한동안 못 쓰지 않을까. 윤도는 인상을 찌푸리면서 손을 쑥 뽑아냈다.
“으흑!”
한 번에 빠져나오자 찬의 허리가 튀었다. 전에 없이 벌어진 구멍 안쪽으로 벌건 속살이 그대로 보였다. 윤도의 손가락이 새빨간 속을 훑었다. 이대로 망가져 버린 게 아닐까 싶었다. 그렇다 해도 버릴 생각은 없었지만.
“…아, 그렇지.”
근신이 풀리면서 찬에게 새끼를 배게 만들까 지나가듯 생각했다. 이 정도로 벌어지는 구멍이라면 새끼를 낳는 것도 어렵지 않으리라. 윤도는 다시 자지를 쑥 집어넣었다. 가끔 아플 정도로 조이던 게 짜증이 나기도 했는데. 한계까지 벌어져 흐물거리니 부드럽게 감싸 주는 감각에 금세 사정감이 치밀었다.
“찬.”
위아래로 흔들거리던 찬이 눈을 가느다랗게 떴다. 윤도가 씩 웃었다. 그 웃음이 그는 오히려 더 무서운 듯 몸을 움츠렸다.
“너를 내 암컷으로 삼아야겠다.”
그 말에 찬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굳이 설명해 줄 생각은 없었다. 어차피 그가 결정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새끼. 그 생각을 하자 자지가 터질 듯 부풀었다. 그동안 굳이 새끼를 배게 할 생각은 없었는데. 임신시킬 생각을 하니 금세 쾌감이 정수리까지 치솟았다. 윤도가 찬의 안에 정액을 짜냈다.
“읏…….”
끝났으니 다행이라는 듯 안도한 표정의 찬이 낮은 한숨을 토해 냈다. 그리곤 그 시간을 겨우 버텼다는 듯 기절해 버렸다. 윤도는 완벽하게 늘어진 몸뚱이를 붙잡았다.
정신을 잃거나 말거나, 한 달 치의 정액을 쏟아 부어줘야 했다. 그동안 일부러 사정도 안 했는데. 윤도는 다시 찬을 엎드리게 하곤 엉덩이를 잡아 들었다.
벌겋게 변한 뒷구멍이 퉁퉁 부어 애처로울 정도였다. 그 밖으로 그의 정액이 조금 흘러내렸다. 윤도는 그 모습에 더욱 흥분해선 찬의 엉덩이를 움켜쥐고, 허리를 움직였다.
* * *
찬은 눈을 떴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짐작도 가질 않았다. 눈은 퉁퉁 부었는지 뜨는 것조차 버거웠고, 엉덩이는 그냥 얼얼했다. 아니, 그냥 허리 아래로는 아무 감각도 없었다.
그는 멍하니 이불을 움켜쥐고 있다가 조심스럽게 손을 안에 집어넣었다. 홀쭉한 배 위는 여느 때와 같이 말라붙은 정액이 만져졌다. 찬은 꺼끌꺼끌한 목에 침을 삼켰다. 떨리는 손가락이 천천히 엉덩이골로 들어가 구멍을 더듬었다.
“…아.”
갈라진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보이지는 않았지만 만져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퉁퉁 부어오른 구멍은 손끝이 닿을 때마다 고통스러웠다. 손가락을 움츠린 찬은 침대에 늘어졌다. 여기가 어딘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질 상대조차 없다. 고개를 조금 들자, 새하얀 침대 위에 점점이 떨어진 핏방울이 보였다.
뒷덜미를 만지니, 피딱지로 추정되는 것이 손톱에 걸렸다. 욱신거리는 아픔이 찾아왔다. 찬은 멍한 얼굴로 다시 천장을 바라봤다.
대체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침대에 몸이 파묻혔다.
처음에 강간당했을 땐 정말로 ‘개에게 물렸다’고 생각했다. 시골길을 걷다 보면 풀어 두고 키우는 개들이 헥헥거리면서 다가와 다리를 붙잡고 허리 짓을 하기도 했으니까. 대충 그런 정도의 감각이었다. 물론 정말로 찬의 뒷구멍을 들쑤시고, 정액을 쏟아 내고, 물어뜯기까지 했지만 그냥 그렇게 생각하고 지나가고 싶었다.
‘그냥 개에게 한 번 잘못 물린 거라고 생각했는데.’
게다가 정말 개의 형상과 비슷하지 않았나. 물론 늑대라는 걸 알고 본 이후로는 개와 다르다고 생각했지만, 모르고 본 사람이라면 충분히 개로 생각할 만했다. 오윤도. 그는 사람의 형상을 했지만 개새끼라고. 그렇게 그냥 머릿속에서 치워 버렸다.
그런데 어영부영 섹스를 계속하다가, 이번엔 두 번째로 강간당했다. 처음보다 심각했다. 차라리 처음 강간당했을 때는 그저 본능에 충실하기만 했다. 어떻게든 박고, 싸는 것뿐이었는데. 이번에는 찬을 뭉개 버리겠다는 악의마저 느껴졌다.
“…읏.”
몸을 움츠리려 했는데 몸이 움직이는 대신 신음만 나왔다. 온몸을 흠씬 두들겨 맞은 것처럼 제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겨우 움직이는 팔을 뻗어 상체라도 일으키려고 버둥거렸지만, 힘이 들어가질 않았다.
“헉… 헉…….”
할 수 있는 것도 없는데 힘만 빠졌다. 찬은 눈을 질끈 감았다. 이대로 윤도가 또 강간할까. 아니면 섹스를 할까. 혼란스러웠다.
사내새끼로 태어나서 다른 남자의 정액받이가 될 거라곤 상상조차 해 본 적 없었는데. 찬이 약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도망쳐야 하나.’
이곳이 어디인지는 모르겠으나, 그의 시골집처럼 허술한 곳이 아니라는 건 확실했다. 침실은 널찍했고, 침대는 찬이 누워 본 그 어떤 것보다 폭신했다. 그리고 단단하게 닫힌 문까지. 찬은 바짝 마른 입술을 천천히 핥았다.
어떻게 해야 할지 결정하지도 못한 채 또다시 깜박 정신이 나갔다가 돌아왔다. 한계까지 몰린 정신과 체력이 자꾸만 방전 직전인 것처럼 깜박였다. 그나마 다행인 건 한 번 눈을 감았다 뜰 때마다 마비된 듯 얼얼하던 허리 아래쪽의 감각이 돌아온다는 점이었다. 아예 윤도가 찬의 허리를 부러뜨리진 않은 모양이었다.
“일어나 있네.”
문이 벌컥 열렸다. 윤도가 처음 보는 멀끔한 정장 차림으로 침실 문을 거칠게 닫았다. 그리곤 타이를 쭉 당겨 풀어내고 대충 옆으로 집어던졌다. 찬은 눈을 데구르르 굴렸다. 도망칠 수 없다. 당장 걷는 것도 힘든데 어딜 간다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윤도가 씩 웃으면서 침대에 걸터앉았다.
“좀 씻지 그랬어?”
퍽이나 다정한 말이었다.
“…몸, 이.”
소리가 목 안쪽에 상처를 내듯 거칠게 흘러나왔다. 찬의 뚝뚝 끊기는 두 글자에 별 관심이 없는지, 윤도가 셔츠를 벗어 던졌다. 찰칵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벨트를 푼 그가 이불을 휙 걷었다.
“아.”
뭔가 예상했던 것과는 다른 듯 윤도가 인상을 슬쩍 찌푸렸다. 찬은 멀거니 그를 쳐다보기만 했다. 당장 박고 싶은데 더럽기라도 하다는 걸까. 윤도가 잠시 고민하듯 보더니 그냥 그의 다리를 벌렸다.
“…….”
찬은 그냥 가만히 있었다. 예전처럼 성급하게라도 풀어 줄까. 아니면 그대로 자지부터 박고 볼까. 윤도의 손가락이 부어오른 구멍을 더듬었다.
“읏…….”
고통스러운 신음이 흘러나왔다. 하지 말라고 하는 대신 그냥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어차피 하지 말라 해도 절대 멈추지 않는다는 걸 어제 끔찍할 정도로 잘 깨달았다.
손가락 두 개가 부어오른 구멍을 벌리자 안쪽에 고여 있던 무언가가 줄줄 흘러내리는 느낌이 났다. 윤도가 쿡쿡 웃었다.
“벌써 암컷이 되고 싶은가 보네. 빨리 새끼가 배고 싶어?”
찬은 흘러내린 것이 정액이라는 걸 깨달았다. 미적지근한 것이 엉덩이골을 타고 등허리까지 흘러내렸다. 윤도가 흥이 난 듯 혀로 입술을 슬쩍 훑더니 그대로 뻣뻣해진 자지를 갖다 댔다.
“으흑…….”
찬이 눈을 질끈 감았다. 아팠다. 어제처럼 그저 짓밟으려고 하는 강간보다 훨씬, 훨씬 부드러운 허리 짓인데도 욱신거리는 고통이 찾아왔다. 퉁퉁 부은 살이 쓸릴 때마다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읏, 읏…….”
혀를 깨물지 않기 위해 이를 악물었다. 윤도가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제 물건을 깊이 들이박을 때마다 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정액이 움찔 새어 나왔다. 멍하니 그의 자지가 윤도를 닮았다고 생각했다. 둘 다 전혀 컨트롤이 되지 않았으니까. 그만 싸고 싶은데. 막을 수 없는 천재지변이 닥쳐온 듯 정액을 줄줄 흘렸다.
‘…한심해.’
스스로의 자지 하나도 제대로 컨트롤 할 수 없다니. 찬이 눈을 질끈 감았다.
“눈 떠.”
음산한 목소리가 귀에 박혔다. 찬이 얌전히 그 말을 들었다. 퉁퉁 부은 눈 덕분에 가늘어진 시야 사이로 윤도의 얼굴이 보였다.
“말 잘 들으니 얼마나 좋아, 그치?”
그가 만족스럽게 웃으면서 찬의 뺨을 툭툭 두드렸다. 입술 사이로도 정액 같이 멈출 수 없는 신음이 흘렀다. 그가 얌전한 만큼 윤도 역시 얌전해졌다. 다정한 말이나 애무 같은 건 없었지만, 몇 번이고 찬의 몸속에 정액을 쏟아내곤 그대로 그를 둔 채 잠들었다.
다음날 일어나니 또 윤도는 없었다.
‘…말을 잘 들으면 아프게 하지 않겠다는 뜻인가.’
부어올랐던 뒷구멍도 가라앉았다. 물어뜯지도 않았다. 찬은 덜덜 떨리는 다리를 붙잡으면서 겨우 욕실까지 기어가 몸을 씻었다.
어쨌든 잘 보이면, 그의 눈에 들게 행동하면 적어도 해는 끼치지 않을 거라는 노골적인 메시지를 무시할 수는 없었다. 죽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뒷구멍이 찢어져 죽을 생각은 없었다.
대강이나마 물을 끼얹으려던 찬은 그냥 포기하고 엉금엉금 기어 욕조 안에 들어앉았다. 그리고 물을 콸콸 틀었다. 씻을 자신도 없다.
“하아…….”
찬이 들어간 욕조에 물이 넘치기 시작했다. 뜨끈한 물속에 가만히 있으니 온몸이 녹아 사라지는 기분이 들었다.
‘어떻게 해야 하지.’
답이 나오질 않는다. 윤도의 뜻은 단순했다. 얌전히 그의 ‘암컷’이 되는 것. 반항하지 않는 것.
그것만 지키면 그는 다른 건 바라지 않을 눈치였다. 아마도. 찬은 뒤에 작은 가정을 덧붙였다. 어쨌든 이곳에 온 뒤로 윤도는 어김없이 들어오면 섹스를 하고, 잠들었다. 그리고 눈을 뜨면 또 나가 버린 뒤였다. 찬은 수증기로 가득 찬 허공으로 시선을 돌렸다.
‘도망칠 수는 있고?’
바깥으로 연결된 침실의 문을 살짝 흔들어 봤으나, 단단히 잠긴 상태였다. 창문도 없다. 게다가 가끔 밖에서는 다른 누군가의 기척이 들렸다.
도망칠 수 있는 가능성이 한없이 줄어들었다. 찬은 긴 신음을 흘렸다. 뒷목에 물이 닿으니 따끔따끔해서, 조금 더 위쪽으로 앉았다. 도망. 그 단어를 곰곰이 생각하던 그가 눈을 질끈 감았다.
‘도망가면. 성공하면 뭘 어쩌지?’
집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어디 몸을 의탁할 친척들은 연락이 끊긴 지 오래였다. 정호에게 찾아가자니, 집을 몰랐다.
휴대폰 역시 어디 갔는지 알 길이 없으니, 연락을 해서 어디 사냐 묻는 것도 불가능하다. 찬은 계속 넘치고 있는 물을 꾹 잠갔다. 머릿속이 멍했다. 뜨거운 물 속에 오래 있어서 그런지, 아니면 그냥 이 상황이 버거운 건지.
찬이 대강 몸을 씻어내고 후들거리는 다리로 다시 나와 침대에 몸을 던졌다. 입을 옷조차 없었다. 윤도의 옷은 아마 침실 밖에 있는 모양이었다.
“이것도 나쁘지 않아.”
스스로를 납득시키려고 작게 소리 내어 말했다. 사실 생각하는 것조차 귀찮고 버거웠다. 어차피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로 아무 생각도 없었다. 그냥 살아 있으니까 생을 이어갈 뿐이었다. 그냥 이대로 산다면 찬이 머무는 곳이 집이든, 아니면 오윤도의 침실이든 크게 상관없는 거 아닌가.
찬은 긴 한숨을 토해냈다. 너무 지쳐서 무언가를 생각할 힘도 없었다. 그냥 이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제일 편했다. 처음부터 이상했으니까. 늑대가 사람이 되고, 사람이 늑대가 되는 것부터였다. 그냥 그대로. 아, 그렇구나, 하고 넘어가는 상황들이 이어지니 더 이상 무언가를 심각하게 고민하는 것조차 쓸모없다는 생각이 들 지경이었다.
묵직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오윤도…….’
이렇게 거침없이 침실까지 곧장 이어지는 발소리는 단 하나뿐이다. 찬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침대에 드러누워 있기만 했다.
달칵거리면서 문을 여는 소리가 들리고 윤도가 들어왔다.
“씻었구나.”
기특하다는 듯 웃음기가 담긴 목소리가 들려왔다. 찬은 그를 힐끗 보곤 다시 천장으로 고개를 돌렸다. 반갑게 인사 같은 걸 하지 않아도 아무렇지 않아 한다는 건 꽤 다행이었다.
애써 반가운 척, 그가 와서 좋은 척하지 않아도 되니까. 윤도가 평소처럼 넥타이를 풀어 집어던지곤 성큼 다가왔다. 가운 하나 걸치지 못한 채 그냥 알몸으로 누워 있는 찬을 훑어보는 눈길이 오싹했다.
“정액도 좀 빼 두지. 뒷구멍이 오줌이라도 싸는 줄 알았잖아.”
큭큭 웃는 소리에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애써 빼내지 않아도 그냥 슬쩍 벌리는 정도로 정액이 허벅지를 타고 줄줄 흘렀다. 게다가 뭐 얼마나 열심히 빼야 하는지 찬은 몰랐다. 남자와, 아니 섹스를 하는 것 자체가 처음인데 알 리가.
윤도가 다가와 다리 한쪽을 들어 올렸다. 훤히 드러나는 아랫부분에 약한 수치심이 밀려들었다. 반듯하게 정장을 입고 있는 그의 손가락이 구멍을 슬쩍 벌렸다. 이번엔 정액이 흘러나오지 않았다.
찬은 고개를 침대에 파묻었다. 내팽개치듯 다리를 놓은 윤도가 이번엔 팔을 잡아당겼다.
“맨날 뒷구멍만 쓰려니 힘들지?”
별로 좋은 뉘앙스는 아닌 것 같다. 찬의 상체가 억지로 세워졌다. 그의 뒷머리를 살살 쓰다듬은 윤도가 낮은 한숨을 쉬면서 벨트를 풀어 내렸다.
이미 뻣뻣해진 자지의 윤곽이 드러났다. 찬은 뒷머리를 단단히 붙잡기 시작하는 손이 무슨 뜻인지 알아챘다. 만약 여기서 반항하면 또 거칠게 굴까. 차라리 먼저 나서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윤도의 자지가 찬의 이마 위에 툭 떨어졌다. 묵직한 무게가 느껴졌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고 있지?”
재미있다는 듯 웃는 목소리가 머리 위에서 들려왔다. 뜨거운 열기가 머리 위에 쏟아졌다.
‘…못 할 거 없잖아.’
이미 뒷구멍으로 정액을 받는데, 입으로 못할 건 또 뭐지. 찬이 손을 들어 윤도의 자지를 살짝 잡았다. 손안에 다 들어오지 않는 둘레에 약간 두려워졌다. 이런 것이 들어왔었나. 현기증이 일었다.
고개를 살짝 기울이자 이번엔 뜨끈한 자지가 뺨에 닿았다.
“하…….”
그게 마음에 들었는지. 뒷머리를 붙잡은 손이 움직였다. 쿠퍼액이 나온 귀두가 찬의 뺨을 꾹 누르고, 굵은 기둥이 그것을 펴 바르듯 문질렀다. 찬의 코에, 눈 위에, 뺨과 입술에 온통 자지를 문지른 윤도가 큭큭 웃었다.
“보기 좋네.”
미끈거리는 액체로 범벅이 된 얼굴에서 수컷의 냄새가 났다. 찬은 떨리는 입술을 귀두에 갖다 댔다. 부드럽고 말랑거리는 살덩어리를 혀로 쓱 훑었다. 약간 짠맛이 났다. 투명한 액체를 흘리고 있는 요도구를 혀로 쿡쿡 찌르면서 자지 끝을 입에 물었다.
“더 깊이.”
반항하지 않은 덕분인지, 억지로 머리를 짓누르는 대신 명령조의 말이 떨어졌다. 찬이 어설프게 혀를 움직이면서 조금 더 입술 사이로 자지를 밀어 넣었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혼란스러웠다. 누가 자지 빠는 모습을 봤어야 말이지.
“더.”
성에 안 차는 듯 뒷머리에 닿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윤도가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냈다. 찬이 눈을 질끈 감았다. 나름대로 한계까지 밀어 넣었지만 끌어당기는 손의 힘이 약해지질 않았다.
“욱… 아…….”
물컹한 귀두가 목젖을 쿡 찔렀다. 먹은 게 없는 없어 빈속이었음에도 헛구역질이 올라 왔다. 물지 않기 위해 턱이 아프도록 입을 벌렸다. 찬의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다 뚝 떨어졌다.
“그래, 잘하네.”
윤도의 말이 머릿속에 들어오질 않았다. 어딜 짚어야 할지 몰라 그의 근육 덩어리 허벅지를 겨우 붙잡았다.
“욱… 우욱…….”
재차 헛구역질이 났다. 목구멍을 벌리고 들어오는 자지의 감각이 그대로 느껴졌다. 숨이 턱 막혀왔다. 뒷구멍만큼이나 입술도 작았는지. 입술이 툭툭 찢어져 피가 흘렀다.
“하…….”
느긋한 숨소리와 함께 찬의 코가 윤도의 음모 위에 처박혔다. 그의 허벅지를 잡은 손이 벌벌 떨렸다. 숨이 막혔다. 머릿속이 몽롱하게 흐려졌다.
“흐으……. 네 구멍들은 다 자지를 좋아하나 보네.”
찬의 머리를 붙잡은 손이 뒤로 빠졌다. 목에서 자지가 쑥 빠져나가는 느낌에 허겁지겁 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고 다시 목 깊이 단단한 물건이 처박혔다.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줄줄 흘렀다. 차라리 깨물어 버리고 싶지만, 턱을 다무는 것조차 할 수 없었다.
“욱… 욱…….”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지 윤도의 손이 조금씩 빨라졌다. 찬은 눈을 질끈 감았다. 머릿속이 엉망진창이었다. 목구멍 깊숙이 들어오는 수컷의 냄새, 크기, 거친 털. 찬은 겨우 숨을 들이마셨다.
“다 삼켜.”
그 말과 함께 코가 얼얼할 정도로 강하게 윤도에게 부딪혔다. 움찔거리면서 부피를 키우는 감각에 목 안쪽이 아팠다.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어 얼굴에 열이 올랐다. 애초에 삼키고 말고 할 것도 없이 목구멍 안쪽에 그대로 싸는데, 어떻게 뱉을 수 있을까.
“후…….”
그가 천천히 자지를 빼냈다. 미처 다 짜내지 못한 정액이 꿀렁꿀렁 흘러나오다 찬의 혀에 늘어졌다. 윤도가 커다란 손으로 훑어내자 남아 있던 정액이 혀 위에 쏟아졌다.
썼다. 비릿한 냄새가 났다. 그동안 꽤나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너무 낯설었다. 찬이 입을 벌린 채 위로 시선을 올렸다. 윤도의 자지가 다시 뻣뻣해지는 중이었다.
“입 다물어.”
“…….”
그냥 입을 꾹 다물었다. 입안에 정액 맛이 훅 퍼졌다. 헛구역질이 났다. 그러자 목 안쪽에 싸 놓은 뜨끈한 액체가 울컥 치밀었다.
찬이 급히 입을 틀어막았다. 눈을 질끈 감고 꿀꺽 삼켰다. 그러자 윤도가 제법 다정하게도 머리를 살살 쓰다듬었다. 개는 그였는데, 오히려 찬이 개가 된 기분이었다. 윤도가 바닥에 꿇어앉은 그를 번쩍 들어 올렸다. 그리곤 침대에 얌전히 올려놓았다. 역시 반항하지 않으니 거칠게 굴지 않는다.
찬은 그냥 멀뚱히 그를 쳐다봤다.
“엎드려.”
셔츠 단추를 풀던 윤도가 턱짓했다. 찬은 고분고분 그의 말대로 엎드렸다. 어차피 할 자세는 하나뿐이니, 알아서 엉덩이를 들어 올렸다. 수도 없이 섹스를 했지만 이렇게 고스란히 내보일 때면 매번 수치심이 들었다.
윤도가 그의 엉덩이를 가볍게 찰싹 때렸다. 약간 욱신거렸지만 찬은 그게 진짜 ‘때리’는 게 아니라는 걸 아니까 그냥 참았다. 그의 타액으로 흠뻑 젖어 있을 자지가 구멍에 닿았다.
“으흑…….”
매일같이 이어지는 섹스에, 뒷구멍이 기다렸다는 듯 윤도를 받아들였다. 퍽퍽거리며 살이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찬은 고개를 파묻은 채 베개를 끌어안았다. 입안에서 정액 맛이 났다. 코 안에 수컷의 냄새가 들러붙어 버린 듯 몽롱했다.
이미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몸은 쾌감을 좇아 이리저리 꿈틀거렸다. 찬이 달뜬 신음을 애써 참았다. 머릿속에 남는 것은 오로지 성욕뿐이었다.
그렇게 하루가 또 지나갔다.
* * *
찬은 이불을 어깨에 두르고 문 앞을 서성거렸다. 가운이라도 있으면 좋을 텐데. 속옷 한 장 없는 이곳에서는 그나마 이불이라도 두르고 있는 게 마음이 편했다.
바깥에서 사람들이 조용하게 오가는 소리가 들렸다. 찬은 문 앞에 가만히 쪼그리고 앉았다. 그동안 얌전히 윤도의 말을 잘 들어 준 결과, 걷지 못할 정도로 만신창이로 만드는 일은 더 이상 없었다. 물론 다음날 엉덩이가 욱신거리는 건 어쩔 수 없었지만.
찬은 멍하니 문틈을 바라봤다. 바깥이 조금이라도 보이면 좋을 텐데. 어떤 식으로 이루어진 곳인지 아무리 눈을 갖다 대 봐도 새까만 어둠만 보였다.
‘밖에 사람들이 다니는 걸 보면 밝겠지?’
여기가 어딘지는 대충이나마 알 것 같았다. 어디 숙박 시설인 듯했다. 윤도가 여기서 살고 있긴 했지만 정신 차려 보면 말끔하게 정리된 침구와 물기 하나 없는 욕실. 그리고 언제나 새것처럼 보송한 수건까지.
찬은 서늘한 문에 이마를 기댔다.
‘그럼 밖에 다니는 사람들은 날 감시하는 게 아니라 사용인들인가?’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청소기 소리가 어렴풋이 들리고, 농담을 하듯 주고받는 목소리들도 작게 들렸다. 무엇이든 좋으니 알아내려고 얼마나 기다렸을까.
귀에 단어 하나가 박혔다.
“암컷이… 윤도…….”
암컷. 윤도가 가끔 기분 좋을 때면 찬에게 ‘내 암컷’이라 부르곤 했다. 보통 사람들이 사람에게 잘 쓰는 말은 아니니, 이들이 말하는 대상은 그일 게 확실했다.
‘암컷은 무슨……. 그냥 섹스하는 상대 아닌가.’
굳이 사람들에게 찬을 ‘섹스 파트너’가 아니라 ‘암컷’이라고 말한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찬은 숨소리조차 죽이고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불쌍… 암컷…….”
그 단어가 겨우 들렸다. 찬은 방을 두리번거렸다. 탁자 위에 놓인 물컵이 눈에 들어왔다. 그가 발소리를 죽이고 컵을 가져와 벽에 댔다.
“조용히 해. 들을라.”
“늘 이 시간엔 자고 있잖아.”
“됐으니까 나가자.”
그들이 물건을 챙기더니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찬은 손에 들고 있는 컵을 물끄러미 내려다봤다.
그날 이후로 그는 윤도가 오기 전까지 문 앞을 서성이면서 사용인들의 말을 엿들었다. 그리고 알아낸 건 모두가 찬을 동정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대체 왜?’
그냥 오윤도의 섹스 상대라서? 그렇게 생각하기엔 석연치 않은 구석이 너무 많았다. 암컷이 무슨 의미인지 다들 아는 반응이었다. 모르고 있는 건 그 모든 대화를 들은 찬뿐이었다.
다들 핵심적인 말을 피해서 불쌍하다는 말만 나누니, 답답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들이 말하고자 하는 건 윤도의 가학적인 행동도 아니오, 감금당한 사실도 아니다. 찬은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물어봐야겠어.’
윤도에게 물어보는 건 마지막으로 미루고 싶었다. 사람들의 반응을 보니 그에게 물었을 때 좋은 대답이 나올 것 같지 않았으니까.
기회를 노려야 했다. 자고 일어나면 언제나 침실이 정리되어 있었으니, 사용인들이 침실에 들어올 때가 있다는 뜻이다. 찬이 눈을 뜨고 있을 땐 안 오니 잘 때 오겠지. 하지만 매일같이 이어지는 섹스에 눈을 뜨고 있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찬은 우연찮게도 윤도가 씻고 나오는 순간에 잠에서 깨어났다. 그동안 폭력적인 처사가 없었던 덕분에 체력이 제법 회복된 모양이었다.
찬은 깬 티를 내는 대신, 숨죽이고 윤도가 나가길 기다렸다. 수건을 대충 아무 데나 툭 던지는 소리와 함께 침실을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곧 나가겠지?’
그냥 가만히 잠들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누워 있었다. 거실을 몇 번 돌아다니는 소리가 나더니 오래 지나지 않아 현관문으로 추정되는 묵직한 문소리가 들렸다.
“…….”
찬이 몸을 일으켰다. 침실 문은 약간 열린 상태였다.
‘…확실해.’
침실 청소를 끝내고 나면, 그때 문이 잠기는 모양이었다. 자동으로 잠기는 장치가 있는 게 아닐까. 찬은 멀뚱히 앉아 있다가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에 허둥지둥 다시 누웠다.
몇 번이고 들었던 익숙한 목소리들이 가벼운 농담을 주고받으면서 들어왔다.
“출근하자마자 침실부터 치우는 거 너무 귀찮아.”
“나중엔 잠기니까 어쩔 수 없지.”
“여기까지 또 올라와야 하잖아, 다른 방 치우러.”
“그래도 막 어지르지 않으니까 좋잖아.”
“그건 그래.”
소리죽여 웃는 소리가 들렸다. 찬은 눈을 질끈 감았다. 침실에 가까워지자 그들이 마치 짜기라도 한 것처럼 입을 꾹 다물었다. 거의 소리를 내지 않고 들어와 조용하게 방을 정리했다. 찬이 눈을 가늘게 떴다. 남자 한 명과 여자 한 명이었다.
“저기요.”
불쑥 말을 꺼내자 두 사람 모두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두 명이 서로를 쳐다보더니 찬의 말을 못 들은 척하며 다시 고개를 돌렸다.
“저기… 잠깐만요.”
이번엔 노골적인 무시였다. 찬은 입술을 달싹였다. 어떻게 묻는 게 좋을까. 대뜸 암컷이 무슨 의미냐 묻는 것도 이상하다. 그가 눈을 굴리다 이불을 어깨에 두르고 질질 끌면서 내려갔다.
찬이 움직이기까지 하니, 정말 경악한 듯 두 사람의 손놀림이 바빠졌다.
“잠깐 물어볼 게 있어요.”
또 무시. 찬은 두 사람을 쳐다보다 가까이 있는 여자에게 다가갔다. 알몸이라 조금 민망하긴 했으나, 이불을 둘렀으니 괜찮다고 스스로에게 변명했다.
“암컷이라는 게…….”
“꺅!”
말을 듣는 기색이 없어, 여자의 팔을 툭 쳤다. 그러자 그녀가 새파래진 얼굴로 뒤로 물러나다 엉덩방아를 찧었다.
“괘, 괜찮아?”
“응……. 괜찮아.”
무슨 두려운 역병이라도 되는 듯 여자가 엉덩이를 뒤로 밀면서 거리를 벌렸다. 남자가 그녀가 일어나는 걸 돕더니 문 쪽으로 여자의 등을 쭉 밀었다.
“먼저 나가.”
여자가 도망치듯 문을 나섰다. 찬은 멀거니 그 뒷모습을 바라봤다.
“방은… 나중에 다시 치우든지 하겠습니다.”
남자 역시 새파래진 얼굴로 재빠르게 내뱉더니 그대로 도망쳤다. 쿵 소리와 함께 문이 닫혔다. 철컥거리면서 잠기는 소리가 났다.
철컥, 철컥. 몇 개의 자물쇠가 달린 걸까. 찬은 그래도 꽤 멀끔해진 방안을 둘러봤다.
“…대체 왜?”
그렇게까지 도망칠 이유가 대체 어디 있단 말인가. 혹시라도 알몸인가 싶어 아래를 봤지만, 이불에 꽁꽁 싸여 드러난 건 얼굴뿐이었다.
“…….”
찬은 멍하니 침대에 다시 누웠다. 말을 걸면 무시하고, 정말 가볍게 툭 건드리자마자 도망쳤다.
‘…윤도의 명령?’
그것 외에는 생각할 수 없다. 이곳에 드나드는 건 사용인과 윤도뿐이니, 이제 암컷에 대한 답을 얻는 길도 하나뿐이다. 찬은 긴 한숨과 함께 눈을 감았다.
찬은 침대에 멀거니 앉아 윤도를 기다렸다. 그를 ‘기다린’ 건 처음이었다. 언제나 오면 오는구나, 가면 가는구나. 그냥 그 정도의 감상이었는데. 창문이 없는 침실에서는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짐작할 수 없었다.
배가 고프면 언제나 꽉꽉 채워진 미니바와 냉장고, 서랍에서 먹을 걸 꺼내 먹었다. 가끔은 윤도가 룸서비스를 시켜 주기도 했다. 찬은 침대에 누웠다가 다시 일어났다.
얼마나 시간이 더 흘렀는지는 바깥의 사람만이 알고 있으리라. 이젠 익숙한 걸음걸이가 들렸다. 그리고 여느 때와 같이 자물쇠를 여는 소리가 들리고 윤도가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침대에 덩그러니 앉아 있는 찬을 보곤 약간 의외라는 듯 픽 웃었다. 평소와 같이 넥타이를 잡아당기는 손길이 느긋했다.
“윤도…….”
윤도야. 혹은 오윤도. 그 어떤 것도 결정하지 못한 채 어색하기 짝이 없이 이름을 불렀다. 차라리 집에 있었을 때가 더 가까웠다. 지금이나 그때나 대화 한 마디 없다는 건 똑같았지만, 집에 있을 땐 그 침묵도 제법 편했는데.
이름을 부를 줄은 몰랐다는 듯 윤도가 멀거니 찬을 보더니 침대에 걸터앉았다. 대답을 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 셔츠 단추를 풀고 있는 손을 보다가 다급히 다가갔다. 이불이 질질 끌리는 소리가 났다.
옷을 벗고 나면 그 뒤에 할 일은 뻔했다. 찬이 그의 소매를 꽉 붙잡았다. 물어볼 게 있는데 라는 말을 꺼내 봐야 아무 소용없다는 걸 알기에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암컷이라는 게 뭐야?”
“암컷이 암컷이지.”
시큰둥한 대답이 돌아왔다. 윤도가 셔츠 단추를 풀던 걸 멈추고 벨트부터 풀었다.
“그러니까, 그게 무슨 의미……. 윽!”
커다란 손이 뒤통수를 붙잡아 당겼다. 찬이 그대로 끌려갔다. 근육질의 허벅지에 뺨이 짓눌리고, 눈앞에 검붉은 형태의 익숙한 자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암컷다운 짓을 해.”
재미있다는 듯 웃는 소리가 들렸다. 찬이 고개를 슬쩍 들자 긴 손가락이 양 뺨을 움켜쥐었다.
“아……. 아아.”
저절로 신음 소리가 났다. 아팠다. 윤도라면 그냥 사과를 뭉개듯이 턱뼈를 으스러뜨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뺨이 짓눌려 입을 벌리자 코앞에 번들거리는 귀두가 다가왔다.
익숙한 냄새가 났다. 몇 번이고 코를 처박고, 삼켜야 했으니까. 다물지 못한 입술 사이로 타액이 주르륵 흘러 자지 위로 떨어졌다. 찬은 눈을 질끈 감았다. 혀를 내밀어 기둥을 슬쩍 핥자 그제야 턱을 붙잡은 손이 떨어졌다. 뺨이 얼얼했다.
“으읍…….”
찬이 입안 가득 자지를 물었다. 수컷의 냄새에 머릿속이 어질어질했다. 매번 암컷이라는 얘길 들어서인지, 정말 암컷이라도 된 기분이었다. 찬이 조금씩 머리를 내렸다. 혀가 미끈거리는 피부를 핥을 때마다 윤도가 머리를 쓰다듬어 줬다.
“욱. 아…….”
약하게 헛구역질이 났다. 움찔거리며 목구멍이 벌어질 때마다 조금씩 더 자지를 목 뒤로 삼켰다. 숨이 턱 막혀 왔다.
“하악… 헉…….”
“도와줄까?”
애써 조금씩 더 삼키다가 버거워져서 고개를 들었다. 헉헉거리며 숨을 고르고 있으니 다정하기 짝이 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아니…….”
찬이 입술 밖으로 흐른 타액을 손등으로 문질렀다. 뒷머리를 불길하도록 쓰다듬는 손길에 소름이 오싹 끼쳤다. 젖어서 번들거리는 자지를 손으로 붙잡았다. 그리고 애교부리는 짐승이라도 된 기분으로 그것을 뺨에 문지르고, 코끝을 비볐다.
“음.”
윤도의 손길이 조금 느려졌다. 찬의 얼굴이 엉망으로 젖었다. 끈적거리는 쿠퍼액이 자지 끝과 그의 코끝에 늘어졌다.
“읍……. 으…….”
말랑하고 커다란 귀두를 입에 가득 물었다. 입안을 사용해서 문지르다가, 혀끝을 세워 움찔거리는 구멍을 쿡쿡 들쑤셨다.
“하아…….”
만족스러움이 담긴 낮은 한숨 소리가 들렸다. 찬은 끝에서 방울지는 진득한 액체를 핥고, 또 핥았다. 그다음으로는 혀로 불거진 핏줄을 하나하나 더듬으며 밑으로 고개를 내렸다. 자지가 얼굴에 툭 닿았다. 이마에 끝이 문질러지다가, 머리카락에 엉겼다.
찬이 정신없이 뿌리 쪽을 빨아 대고 있으니 윤도가 손을 뻗어 엉덩이를 더듬었다.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구멍을 쿡 찌르는 손가락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이미 미끈거리고 있었는지 손가락은 걸리는 곳 없이 부드럽게 쑥 안으로 들어왔다. 찬이 가쁜 숨을 내쉬었다. 오물거리면서 침입을 반기고 있는 뒷구멍을 스스로도 느낄 수 있었다.
“흐으…….”
손가락 하나로 들쑤시는 감각이 애달팠다. 이제 그런 것으로는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다. 좀 더 굵고, 단단한 것. 찬이 허덕이면서 윤도의 자지에 얼굴을 비볐다.
“으읏, 응…….”
허리가 들썩이고 있는 것도 느끼지 못했다. 찬의 자지가 꺼떡꺼떡 흔들렸다. 그걸 물끄러미 보던 윤도가 손가락을 빼내더니 뻣뻣해진 그의 자지를 붙잡았다.
“이제 앞으로 쌀 수 있어?”
느긋하게 문지르는 손길에 자지가 부풀었다. 찬이 허덕이면서 윤도의 허벅지를 붙잡았다.
“으흑……. 아, 아…….”
자지를 훑는 감각이 낯설게 느껴졌다. 그동안 굳이 자위를 할 생각도 없었고, 윤도도 딱히 만져 주지 않았으니까. 처음으로 ‘섹스’ 했을 때 이후로 두 번째였다.
“읏, 응.”
찬의 허리가 움찔거리면서 튀었다. 손이 느리게, 혹은 강하게 자지를 만졌다. 짐승이 된 기분이었다. 찬이 신음하면서 윤도에게 매달렸다. 반쯤 벌어진 셔츠 자락을 붙잡고 가쁜 숨을 내쉬었다. 얼마나 오래 있었을까. 엄지로 귀두를 문지르는 느낌에 벌벌 떨었다. 강한 쾌감이 척추를 따라 올라오는데도 도저히 사정할 수 없다.
마지막 벽을 못 넘는 느낌. 그 답답한 감각에 찬이 고개를 흔들었다.
“하… 제발…….”
“응?”
“흐윽…….”
사정하고 싶다. 그 끝을 느끼고 싶었다. 윤도가 자지로 들쑤실 때마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줄줄 정액이 새어 나오던 그 감각이 더 강렬했다. 제어할 수 없을 정도로 거친 쾌감. 뒤를 쑤셔 주는 게 없다면 절정에 이르지 못할 거라는 걸 깨달았다. 구멍이 꽉 오므라드는 게 느껴졌다.
찬이 더듬더듬 손을 내려 윤도의 자지를 붙잡았다.
“왜, 못 싸겠어?”
느긋한 목소리였다. 차마 끄덕일 수는 없었다. 미끈거리는 자지를 손으로 훑었다. 사실 세우는 행위도 필요 없었다. 이미 단단해질 대로 단단해져 있었으니까.
찬이 무릎걸음으로 윤도에게 조금 더 다가갔다. 스스로 다리를 벌리고 그의 허벅지 위에 앉았다.
“너 기분 좋으라고 만져 주고 있잖아.”
윤도가 아래쪽을 눈짓했다. 그의 손에 쥐어진 자지는 터질 듯 부풀어 있긴 했지만, 결국 사정하진 못했다. 쿠퍼액만 새어 나와 윤도의 손을 질척하게 적셨다. 찬이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그가 바라는 게 뭔지 확실했다. 평소 같았으면 그냥 다리를 벌리고, 젤만 짜낸 뒤 성 기구라도 쓰듯 구멍만 들쑤셨을 텐데. 찬이 손가락을 입속에 넣었다. 타액으로 흠뻑 젖은 손가락을 천천히 뒷구멍에 넣었다.
매일같이 한계까지 벌어진 구멍이 어렵지 않게 손가락을 삼켰다. 윤도의 것에 비하면 너무 가늘다. 지체 없이 하나를 더 집어넣었다.
“흐윽…….”
자지가 움찔 떨렸다. 뒷구멍을 잡아 벌리는 것만으로도 흥분이 일었다. 찬이 손가락을 벌렸다. 뻐끔 벌어지는 느낌에 엉덩이가 바르르 떨렸다. 윤도는 별말 없이 찬이 하는 행동을 지켜보기만 했다.
암컷다운 짓을 해.
그 목소리가 머릿속을 쾅쾅 울렸다. 찬이 헐떡이면서 손가락을 하나 더 넣었다. 세 개. 자지를 붙잡아 만져 주는 손이 느려졌다. 아까보다 자극이 덜해졌음에도 자지는 더욱 단단해졌다.
“읏, 으……. 아…….”
찬이 조금 성급하게 손가락을 뺐다. 벌어진 크기가 한참 부족하긴 했지만 매일같이 받아들였으니 찢어지진 않으리라. 그가 윤도의 어깨를 짚고 허리를 들었다. 날카로운 손톱이 요도구를 꾹 누르고 강하게 긁어내렸다.
“하으윽…….”
찬이 넓은 어깨에 뺨을 비볐다. 애교라도 부리는 듯한 행동이었지만 주체할 수 없다. 귀두 아래쪽부터 뿌리까지 죽 긁듯이 내려갔다가, 가장 아래쪽부터 강하게 위로 훑어 올렸다. 그리고 말랑한 귀두를 만지다 또 앞쪽 구멍을 손끝으로 쿡쿡 들쑤셨다.
머릿속에 하얀빛이 번쩍번쩍 튈 정도의 쾌감이 느껴졌다. 그런데도 찬의 자지는 사정하지 못했다. 그는 숨을 가다듬고 윤도의 커다란 자지를 붙잡아 구멍에 댔다. 익숙하게 살을 벌리는 느낌에 기운이 쭉 빠졌다.
“아윽!”
찬이 단숨에 허리를 내렸다. 이미 그의 자지에 맞춰 늘어나 있는 구멍이지만 넣을 때마다 또 빠듯했다. 찬이 가쁜 숨을 골랐다.
“진짜 암컷 다 됐네.”
윤도가 웃는 소리가 들렸다. 정액으로 흠뻑 젖은 손바닥을 그의 얼굴 앞에 들이밀었다. 찬이 몽롱한 눈으로 그걸 물끄러미 쳐다봤다. 짙은 정액 냄새. 툭 흘러내린 허옇고 진득한 액체가 찬의 자지 위로 떨어졌다.
계속해서 꾸물꾸물 정액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질척한 손바닥이 뺨에 닿았다. 이미 쿠퍼액으로 엉망이 된 얼굴에 정액이 덧입혀졌다. 윤도의 엄지가 입술을 벌리고 이 사이로 파고들었다. 물컹한 혀를 끄집어내는 손가락에 찬이 약하게 신음했다.
“아, 아아…….”
혀 위로 미끈거리는 손바닥이 닿았다. 정액의 비릿하고 쓴맛이 느껴졌다. 윤도가 쿡쿡 웃으면서 그의 혓바닥에 손을 닦더니 그대로 뒤로 몸을 젖혔다.
“암컷이니까 정액 짜내는 일 정도는 할 줄 알아야지.”
찬이 천천히 허리를 위로 들었다가 내렸다. 한 번 움직일 때마다 허벅지 안쪽이 덜덜 떨려왔다. 입안에 정액 맛이 가득 느껴졌다.
혀를 굴려 입안을 훑어 몇 번이나 삼켰는데도, 여전히 풋내가 났다.
“흣… 윽. 응…….”
몇 번이고 허리를 들썩이던 찬이 그대로 윤도의 위에 늘어졌다.
“끝이야?”
“흐으…….”
눈을 질끈 감았다. 어쩔 수 없다. 윤도의 자지를 물고 있는 것만으로도 민감한 부분이 형편없이 뭉개졌다. 움찔하면서 구멍이 한 번 오물거리는 것으로도 다리에서 힘이 쭉 빠졌고, 한번 안쪽을 비비면 정액이 줄줄 흘렀다. 찬의 엉덩이가 경련하듯 떨렸다.
“손이 많이 가는 암컷이네.”
생각보다 짜증스럽진 않게 들렸다. 윤도가 혀를 차더니 몸을 돌려 그의 위로 올라왔다. 허벅지를 밀어 벌리는 손에 근육이 찢어질 것처럼 아팠다.
찬은 시트를 꼭 움켜쥐었다. 곧 퍽퍽 하고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침대가 끼익거리며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찬 역시 쥐어 짜내지는 듯한 신음 소리를 냈다.
“아, 아윽. 읏…….”
눈을 뜨니 시야가 엉망진창으로 일그러졌다. 윤도는 보이지 않았다.
평소와 같이 거의 기절했다 일어난 찬은 또다시 닫혀 있는 방문을 쳐다봤다.
‘그 일이 귀에 들어갔나.’
하긴, 안 들어갈 리가. 말끔하게 정리된 방은 평소와 똑같았다. 아무래도 평소보다 더 심하게 했는지 또다시 하반신이 얼얼했다. 손가락으로 뒷구멍을 더듬어 봤지만 부어 있진 않았다.
윤도는 암컷에 대해 알려 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찬은 그냥 늘어져라 침대에 누웠다. 그냥 암컷이라고 부르고 싶은 것뿐일까. 아니면 다른 무언가가 있나.
‘어차피 달라질 건 없잖아.’
결국 여기서 윤도의 정액을 삼키면서 지내야 하는 건 달라지지 않는다. 찬은 멍하니 눈을 깜박이다가 부스스 일어섰다.
아무것도 변한 건 없었다.
* * *
윤도는 늘어져 잠든 찬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이불도 못 덮은 채 침대에 널브러진 꼴이 조금 불쌍하게 보이기도 했다. 저러다 새벽이 되면 더듬거리면서 이불을 찾아 들어간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굳이 이불을 덮어 줘야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비쩍 마른 몸은 나아지질 않았다. 그래도 섹스로 허덕인 탓인지 점점 먹는 양이 늘긴 했다. 며칠에 한 번씩 쓰레기 같은 걸 주워 먹더니, 호텔에 온 뒤로는 제법 음식 같은 것을 먹긴 했다.
그렇게 먹고 나서 실컷 섹스해 대니 살은 찌지 않았지만, 그래도 체력은 좀 나아지지 않았을까. 윤도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찬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햇빛을 안 봐서인지 새하얗다 못해 창백한 피부에 뼈마디가 두드러진 몸. 숨소리조차 미약해서 가끔 죽은 게 아닐까 싶어 목을 더듬어보기도 했다. 윤도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가 찬을 끌어당겼다.
“으…….”
바르작거리며 반항하듯 손을 내젓는 것마저도 기운이 없다. 윤도는 그냥 그를 끌어안았다. 미적지근한 체온이 안겨 왔다. 불편한지 끙끙거리며 약한 신음을 흘리더니, 금세 따듯함을 찾아 달라붙어 왔다.
이상하다. 윤도는 까만 머리카락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매일같이 몸을 가져도 공허했다. 그럴수록 더욱 몰아세웠다. 그런데도 어딘가, 그의 마음 한구석에 까끌까끌한 무언가가 거슬렸다.
입안에 돋은 가시. 아니면 발아래 굴러다니는 모래.
‘뭐지.’
그 감정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한참을 생각했지만, 적절한 단어를 떠올리지 못했다. 거슬렸다. 그냥 신경 쓰였다. 윤도의 것이라서? 아니면, 이 인간이 정말 이상한 인간이라서?
처음 만났을 때부터 찬은 계속 이상했다. 찬의 집 앞에 쓰러져 있었던 그날, 윤도는 움직일 힘도 기력도 없었지만 귀는 제대로 열려 있었다. 찬은 인간의 모습으로 쓰러져 있는 윤도를 보며 망설이긴 했지만 그냥 지나쳤다. 딱히 무언가를 바란 건 아니었다. 어쨌든 인간의 마을 끝자락에라도 왔으니 조금 안심했을 뿐이다. 며칠이고 잠도 자지 않고 내달린 덕분에 한계까지 치달은 몸이 축축 늘어졌다.
인간으로 있으니 빗물에 체온이 금세 떨어졌다. 윤도는 마지막 힘을 박박 긁어모아 늑대로 변했다. 인간들이 그를 잡아 죽이지 않는다면 하루쯤 푹 자면 조금 회복되리라. 그런 생각을 하면서 숨을 내쉬었다. 머릿속이 어질어질했다. 흘린 피가 생각보다 더 많은 모양이었다.
그리고 다시 돌아온 인간은 늑대의 모습인 그를 구했다. 인간이 인간을 구하지 않고 개를 구했다. 확실히 이상했다. 보통 인간들은 인간에게 더 안쓰러움을 느끼니까.
‘제정신이 아니긴 하지.’
윤도는 쌕쌕 숨을 내쉬는 찬을 가만히 쳐다봤다. 무슨 짓을 해도 그냥 받아들였다. 강간했을 때도 도망치지 않았다. 말도 없이 질질 끌고 나왔을 때도 벗어나려 하지 않았다. 설명도 없이 가두고, 강간하고, 섹스를 해도. 거칠게 입에 자지를 박아 대도. 찬은 그냥 받아들였다.
아무렇지 않은 건지, 아니면 정말 정신이 나간 건지. 윤도가 천장을 보고 누웠다. 따끈한 체온이 떨어져 나가자 찬이 더듬더듬 손을 내젓더니 또 옆에 달라붙었다.
살고 싶어 따뜻한 곳을 찾으면서, 어째서 그 눈은 그토록 공허한지 이해할 수 없었다. 목을 조를 때 버둥거리던 그 몸짓은 분명 살고 싶다는 뜻인데. 몸은 그렇게 살겠다고 발버둥 치는데 어째서 그 정신은 죽어 가려고 할까. 짙은 갈색의 눈동자 속에는 감정이란 것은 새겨지지 않을 것 같았다.
‘어쩌란 말이야.’
그냥 이대로 평생 가둬 두고, 섹스나 하고, 그러고 살아야 하나. 찬이 웃어 주지 않아도 좋았다. 그냥 그 죽은 생선같이 멍청한 눈 속에 감정이 일었으면 했다. 그게 증오든, 분노든. 아니면 기쁨이든.
윤도가 긴 한숨을 토해 냈다. 뒷구멍을 찢어 놓을 정도로 강간해도 찬은 다음날이면 그냥 덤덤한 얼굴로 그를 맞았다. 차라리 내보내 달라고 애원이라도 하거나, 도망치려는 시도라도 했으면 오히려 기분이 좋았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찬은 그냥 그럼 그렇지, 라는 반응뿐이었다.
그리고 다음엔 제법 다정하게 대해 줬다. 윤도가 먼저 웃으면서 칭찬도 해 줬고, 찢어지지 않게 조심스럽게 했다. 그런데도 찬은 무엇이 다른지조차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윤도가 픽 웃었다.
“…어렵네.”
찬이라는 존재가 계속 거슬렸다. 신경 쓰였다. 그 눈 속에 증오라도 가득하다면 윤도는 기꺼이 웃을 수 있었다. 차라리 칼이라도 쥐고 죽여 버리겠다 덤비면 신날 것 같았다.
‘죽어 줄 생각은 없지만.’
발악하면서 악을 쓰는 찬을 강간하는 것도 꽤 기분 좋지 않을까. 그럴 때 입속에 자지를 쑤셔 넣어보고 싶은데. 물어뜯으려고 헐떡이는 모습을 상상했다. 윤도의 입술 사이로 낮은 웃음소리가 흘렀다.
그의 손이 찬의 머리카락을 쥐었다가 풀었다. 땀에 절어 있던 머리카락은 약간 버석거리는 느낌이 났다. 윤도가 개의치 않고 쓰다듬다 문득 손을 멈췄다. 찬을 표현할 정확한 말이 떠올랐다.
‘모래알.’
그래. 그는 모래알 같았다. 어떻게든 가지고 싶어서 박박 긁어모아 힘껏 쥐어도 슬금슬금 사이로 빠져나가 버린다. 모두 다 가지고 있는 줄 알았는데. 눈 깜박할 새에 손바닥에는 모래 몇 알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윤도는 손바닥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남은 모래 몇 알이 그를 쳐다보면서 크게 비웃기 시작했다. 다 가진 줄 알았냐고. 네가 쥘 수 있는 건 고작 이것뿐이라고 귀가 먹먹하게 웃어 댔다.
윤도가 손을 꽉 쥐었다. 잡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아무리 많이 쥐려고 해도 남는 것은 보잘것없다. 윤도가 손을 쥐었다 펴길 반복했다.
‘…어떻게?’
무심코 찬의 목을 움켜쥐었다. 파닥거리면서 날갯짓을 하듯 연약한 맥박이 느껴졌다. 손가락에 힘을 주면 뚝 부러질 목. 윤도의 엄지가 두근거리는 부분을 꾹 짓눌렀다. 찬의 얼굴이 약간 달아올랐다. 아픈지 옅은 신음과 함께 도망치려는 듯 몸을 뒤틀었다.
윤도가 손을 떼어 내고, 꾸물거리는 몸을 당겨 안았다. 어쨌든 도망치는 건 용서할 수 없었다. 이건 그의 것이었으니까. 모래알들을 쥐고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역시 진짜 암컷으로 만들어야 하나.’
윤도는 진지하게 생각했다.
* * *
백사우가 의외라는 얼굴로 윤도를 맞았다. 이런 일이 아니었으면 굳이 찾아오지 않았을 곳. 그는 말끔한 공간을 쓱 훑었다.
뱀에게 아주 어울리는 삭막한 곳이었다.
“어쩐 일로 제게 연락을 다 하셨죠. 윤도?”
윤도는 성큼성큼 걸어가 소파에 앉았다. 사우는 제 자리에서 일어날 생각이 없어 보였다. 굳이 얼굴 마주하면서 해야 할 얘기도 아니니, 그냥 소파에 등을 기댔다.
“강제 각성 의식을 치를 생각이야.”
그 말에 사우가 고개를 들었다. 강제 각성 의식. 그 말에 담긴 무게가 그리 가볍진 않다는 걸 둘 다 알았다.
‘별수 없지.’
윤도는 어깨를 으쓱였다. 암컷으로 만드는데 그것 외에 무슨 방법이 있으랴. 사우가 그제야 흥미가 생긴 듯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
“어떤 말을 하고 있는지… 확실히 알고 있는 모양이네요.”
사우가 가볍게 웃었다.
강제 각성 의식은 보통 수인에게 행해졌다. 수인과 수인 사이에서는 수인이 태어난다. 그런데 가끔, 돌연변이처럼 수인의 특성이 제대로 발현되지 않는 경우가 있었다. 인간으로 변하지 못하거나, 아니면 짐승으로 변하지 못하거나. 그럴 경우 강제 각성 의식을 거치면 제대로 수인으로서 자리 잡을 수 있게 된다.
원래는 그런 목적의 의식이었지만 세월이 많이 흐르면서 각성 의식이 인간에게 행해지는 경우가 생겼다.
수인들은 아주 오랜 옛날부터 인간과 섞여 살아왔다. 인간의 모습을 할 수 있으니, 인간들과 뒤섞이는 건 어렵지 않았다. 게다가 수인과 수인의 결합과 달리 인간과 수인의 결합은 무조건 인간만이 태어났으니, 이상할 것도 없었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면서 인간들의 대부분이 수인의 형질을 조금씩이나마 갖게 되었다. 그래서 대부분의 인간에게 강제 각성 의식을 행할 수 있었다.
‘거기다 여긴 한반도니…….’
여기가 넓은 나라였다면 아직도 온전한 ‘인간’이 남아 있을지도 모르지만, 한국은 조금 특수했다. 고립된 나라에 수인의 피가 흐르지 않는 사람이 없듯, 한반도 역시 땅이 좁고 인구가 밀집된 편이라 인간과 수인의 혈통이 꽤 많이 뒤섞인 상태였다. 덕분에 아주 평범해 보이는 인간도 각성 확률이 꽤나 높았다.
윤도는 사우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그가 씩 웃더니 경고하듯 말했다.
“윤도, 당연히 죽을 확률이 더 높다는 거. 알고 있죠?”
수인이 각성 의식을 치르는 건 위험하지 않지만 인간은 위험했다. 얼마나 많은 수인의 형질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그 결과는 천차만별로 달라졌다. 그걸 미리 구분할 수는 없다. 아주 오래전의 조상에 수인이 한 번 섞인 정도라면 거의 죽는다. 만약 부모 중 한 명이 수인이라면 절반 정도의 확률로 수인이 되는 셈이었다.
윤도는 고개를 끄덕였다. 인간과 살아가는 수인들은 그런 모험을 하고 싶지 않아 했다. 모두가 평생 수인인 걸 숨기고 살다 보니, 상대에게 수인의 형질이 얼마나 섞였나 물을 수도 없었으니까.
사랑하는 상대가 죽을 수도 있는 방법을 택하는 이는 없다. 수인들은 평생 인간인 척 살아 왔으니 인간 곁에 사는 건 어려울 게 없었다.
“인간 각성 의식이 얼마만이지?”
“제 기억 속에는 없죠.”
사우가 빙긋 웃었다. 윤도는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나 많은 인간들이 이 의식에서 죽어 나갔든, 그게 중요한 건 아니었으니까.
“암컷이 동의했나요?”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
윤도의 대답에 사우가 눈을 가늘게 떴다. 탐색하듯 훑는 눈길이 불쾌했지만 참았다. 각성 의식을 꼭 해야 했으니까.
“그 암컷에게서 새끼를 보고 싶어서요?”
대답하지 않았다. 사우가 쿡쿡 웃었다. 남자라는 건 처음부터 중요하지 않았다. 어차피 여자였어도 마찬가지였으리라.
‘아, 아니지. 여자였으면 새끼는 금방 낳았겠군.’
윤도가 큭큭 웃었다. 물론 낳은 새끼는 인간이겠지만 종족은 별 상관없었다. 그냥 찬에게 그의 씨를 뿌리고 새끼를 낳게 하면, 손에서 빠져나가는 모래 알갱이를 붙잡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뿐이었으니까.
수인의 성별이 무색해진 건 100년쯤 전부터였다. 인간 세상에 섞여 들어가 인간인 아이를 낳는 수인들이 제법 많았다. 수인끼리의 결합이 꾸준히 이어진다 해도 그 수는 해가 갈수록 줄어들었다. 아무리 돼지 수인이라 해도 수인인 이상 새끼를 8마리씩 낳을 수는 없었으니까.
그러다 보니 수인의 숫자가 극도로 적어졌다. 그때부터 태어나는 아이들은 어떻게든 핏줄을 이어가기 위해 진화했다. 성별이 무엇이든 상관없었다. 누구든 아이를 낳을 수 있었고, 임신시킬 수 있었다. 물론 수인의 형질 자체가 그렇게 변화한 셈이니, 찬에게 수인의 피가 흐른다면 그 역시 마찬가지이리라.
“뭐 좋습니다.”
새끼 문제는 그냥 해 본 말이라는 듯 사우가 어깨를 으쓱였다. 윤도가 팔걸이에 팔을 올렸다. 느긋한 그의 모습을 보던 사우가 빙긋 웃었다.
“강제 각성 의식을 허락하겠습니다. 그러나 그걸 그냥 해 드릴 수는 없죠.”
역시나. 그냥 넘어가면 백사우가 아니지. 윤도의 입술이 뒤틀린 웃음을 지었다. 이미 뭘 대가로 지불할지 생각해 놓은 터라 고민 없이 말이 나왔다.
“클럽 두 개.”
“…흐음.”
백사우가 턱을 매만졌다. 머릿속으로 수지가 맞는지 열심히 계산하고 있으리라. 윤도는 가만히 기다렸다.
“당신이 관리하는 곳 중 어딜 말하는 거죠?”
“…눈독 들이는 거 있었잖아?”
슬쩍 인상을 찌푸렸다. 그 말에도 사우는 약간 탐탁지 않은 기색을 내비쳤다. 그게 흥정하려는 행동인 걸 알면서도 마음이 달았다.
스스로의 생각에 윤도가 흠칫 놀랐다. 이만큼 절박하게 찬을 암컷으로 삼고 싶었나. 그의 얼굴이 슬쩍 굳었다.
“잘못하면 시체 치워야 하는 일이에요.”
다시 한 번 경고하는 듯한 말이 나왔다. 그 표현에 윤도는 표정을 굳혔다. 시체. 불쾌했다. 이를 지그시 물었다. 두 사람의 시선이 부딪쳤다.
“각성 의식에 필요한 약이 굉장히 귀하고… 좋죠.”
사우가 빙긋 웃었다. 무언가를 더 바라는 듯한 반응에 윤도는 손가락으로 팔걸이를 툭툭 두드렸다. 대체 뭘 더 바라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그가 가지고 있는 호텔? 아니면 클럽 전부 다? 그것도 아니면 사업 일체? 윤도는 뭐가 됐든 다 줘도 괜찮다고 생각했다가, 눈을 느리게 감았다 떴다.
‘망할…….’
아무리 절박하다 해도 그런 식으로 행동할 수는 없다. 사우가 뜸을 들이다 느릿하게 말을 이어갔다.
“당신은 다음의 대부가 될 수 있죠.”
“정해지진 않았어.”
“가능성이 누구보다 높잖아요?”
그가 빙글빙글 웃었다. 윤도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니, 부탁을 들어 드려도 좋을 것 같네요.”
허락한다는 소리를 아주 길게 늘여서 짜증나게 잘하는 놈이었다. 윤도가 불쾌한 기색을 보였다.
“제 호의라는 거 잊지 마세요.”
“대가를 치른 일도 호의라고 하나?”
“그런 일을 허락해 준 것 자체가 호의인 겁니다.”
정말 너그러운 마음으로 마지못해 허락한다는 듯한 반응이었다. 윤도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더 이상 사우와 마주 앉아 있고 싶지도 않았다.
“언제 시작할 수 있지?”
“빠른 게 좋은가요?”
“그래.”
“그럼 삼일 뒤로 하죠.”
윤도가 문을 거의 부술 기세로 나가 버렸다. 사우는 쾅 하는 소리에 인상을 찌푸렸다가 폈다.
“…클럽 두 개라.”
그는 느긋하게 기대고 앉았다. 윤도가 무언가를 부탁한 건 처음이었다. 그것도 엄청난 대가를 바쳐 가면서. 사우가 손을 들어 눈가를 덮었다. 웃음을 멈출 수 없었다.
웃음소리가 울렸다.
‘유찬이라고 했던가.’
아주 마음에 드는 이름이었다. 그의 존재 자체가 기꺼웠다. 지금 당장은 그냥 암컷에게 새끼를 배게 해야지, 정도로 단순하게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그는 분명 윤도의 약점이었다.
언제나 혼자 고고한 척하면서 살아온 늑대의 유일한 약점. 질질 끌어다 제 우리에 가둬 두고, 누군가가 구경하려 하면 위협을 일삼았다. 자각하고 있지 못한 지금도 꽤나 아끼고 있는데, 나중에는 어떻게 될지.
‘재미있네.’
사우가 빙글빙글 웃었다. 난데없이 찾아와서 클럽까지 들이밀면서 각성 의식을 치르게 해 달라 할 줄이야. 성공하면 그것대로 좋고, 실패해도 좋았다.
진짜 수인이 된다면 찬은 이제 수인의 세계에서 살아야 했다. 물론 인간들 틈에 뒤섞여 살 수도 있겠지만, 오윤도의 약점을 그냥 둘 리가. 절절매면서 그것을 싸고돌려고 발악할 모습을 상상하니 저절로 웃음이 지어졌다.
죽는다 해도 꽤 재미있으리라. 사우는 혀끝으로 입술을 핥았다. 만약 각성 의식 중 죽어 버린다면 윤도의 약점은 사라지겠지만, 정신적으로 꽤나 타격을 받겠지. 게다가 동의도 구하지 않은 것 같고. 그의 생각으로 밀어붙인 걸 테니까.
‘자괴감이라는 단어랑 어울리는 놈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 상황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죽었으니 아깝네, 라고 말하고 넘어갈 수는 없으리라. 언제나 완벽한 척하는 윤도가 절망하는 모습을 상상한 사우가 느릿하게 웃었다.
* * *
윤도는 찬을 물끄러미 내려다봤다. 숨 가쁘게 헐떡이던 찬은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하… 하아…….”
달뜬 숨을 내쉬던 찬이 움찔 떨면서 구멍을 꽉 죄었다. 윤도는 그냥 가만히 있었다.
“…?”
움직이지 않는 그의 모습이 영 이상했는지, 찬이 꾸물꾸물 상체를 일으켰다. 움직일 때마다 안쪽이 움직이며 자지를 꽉 물어 댔다.
“윤도……?”
윤도가 한숨을 내쉬었다. 어차피 이미 결정된 일이다. 아니, 처음부터 찬의 생각 따윈 중요하지 않았다.
‘어쩌면 죽을 수도 있다는 말에 좋다고 할 수도 있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묻는 말은 없었다. 약간 어리둥절한 모습으로 쳐다보던 찬이 슬금 몸을 뒤로 빼려고 했다.
“어딜…….”
감히 벗어나려고. 윤도가 발목을 잡아 뒤로 당겼다. 찬이 주르륵 끌려왔다.
“으흑……!”
다리를 한껏 벌리고 퍽퍽 소리가 나도록 허리를 움직였다. 젤을 너무 많이 짜낸 탓인지 철퍽거리는 소리가 섞였다. 찬이 헐떡이면서 시트를 쥐었다.
죽을 수도 있다. 윤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처음부터 삶에 의지가 없는 놈이니 죽어도 상관없다 생각했으면서도, 진짜 사라진다 생각하니 불쾌함이 가시질 않았다.
윤도가 엉덩이를 꽉 움켜쥐고 한껏 벌렸다.
“아윽… 아. 아… 아파…. 읏, 응!”
찬이 버둥거리다가 허덕이면서 고개를 뒤로 젖혔다. 윤도가 속도를 느리게 바꿨다. 느긋하게 안쪽을 탐색하듯이 움직였다. 자지에 느껴지는 내벽의 감촉을 하나하나 더듬었다.
“으… 아아…….”
그의 형태에 따라 길들여진 내벽의 감촉이 좋았다. 윤도가 불룩해진 배를 슬슬 쓰다듬었다.
‘새끼를 배면 배가 나오나.’
그러면 그땐 자지를 넣어도 만질 수 없으려나. 픽 웃음이 나왔다. 배를 꾹 누르자 자지에 감각이 전해졌다.
“그, 으흑…. 그거… 싫…….”
벌벌 떨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찬이 고개를 저으면서 윤도의 손등을 긁었다. 손톱을 세우려 한 것 같으나, 떨리는 손끝으로는 생채기 하나 낼 수 없었다.
“왜 싫어?”
“읏. 아… 그만……. 그만! 아앗!”
윤도가 손에 힘을 줘서 슬슬 배 위를 쓰다듬었다. 꽉 물어오는 구멍의 느낌이 조금씩 달라졌다. 그중에서도 가장 세게 조이는 부분을 꾹꾹 누르니, 찬이 비명을 지르듯 신음했다.
“아. 아으……. 으으…….”
낯선 반응에 윤도가 손끝으로 그 부분을 더듬었다. 탐색하듯 자지를 뽑아내니, 그 부분에 무언가 약하게 덜걱 걸리는 것 같기도 했다.
‘기분 좋은 곳인가.’
어딘지는 모르겠으나 그 부분을 귀두로 밀어젖히며 지나가자 찬의 엉덩이가 들썩였다. 손끝으로 배 위를 꾹 누르면서 몇 번이고 그곳을 자지로 문질렀다.
“아… 흣. 윽…….”
찬이 눈을 크게 떴다가 질끈 감았다. 베개를 움켜쥔 손에 힘이 얼마나 들어갔던지 당장 부러질 것 같았다. 윤도가 느긋하게 움직였다. 이미 찬의 자지에서는 멀건 액체만 줄줄 새어 나오는 중이었다.
“흐음…….”
다른 손으로 질척거리는 자지를 쥐었다. 그리고 슬슬 문지르기 시작하니 찬이 경악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 아…….”
멍하니 벌어진 입술 사이로 타액이 주륵 흘러내렸다. 허리가 떨리다 못해 온몸이 경직되듯 굳어져 경련했다. 윤도의 자지를 비틀어 끊어 내기라도 하겠다는 듯 구멍이 오므라들었다.
“으응……!”
찬이 고개를 뒤로 젖혔다. 그동안 쾌락에 절여진 모습은 몇 번이고 봤지만, 이번엔 완전히 정신이 나가 버린 표정이었다. 윤도가 멍하니 풀어진 찬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완전히 풀어진 온몸이 기절하듯 늘어졌다. 윤도는 기계라도 된 듯 허리를 움직였다.
“아…….”
완전히 망가져 버렸는지, 신음 소리조차 제대로 내지 않았다. 윤도는 그냥 평소처럼 늘어진 몸에 자지를 쑤셔 넣었다. 흐물흐물 풀어진 내벽이 아프도록 조이기보단 부드럽게 감싸 오는 느낌이 제법 좋았다.
윤도는 손을 뻗어 찬의 얼굴을 붙잡았다. 아직도 제정신이 아닌지 몽롱하게 풀린 눈동자 속에는 아무것도 담겨 있지 않았다. 멍하니 풀린 얼굴은 마치 죽은 시체같이 보이기도 했다.
“…웃어.”
불쑥 말이 나왔다. 강하게 뺨을 짓누르니 찬이 희미하게 인상을 찌푸렸다. 윤도의 기분이 나락으로 떨어졌다.
한 달 만에 본 그가 희미하게 웃던 게 떠올랐다. 누군지 모를 남자와 마주 앉아서 대화를 하고, 작지만 분명하게 웃었다. 다른 남자와 그렇게 웃을 수 있다니. 윤도가 낮은 소리를 냈다. 위협적인 소리에 찬이 눈을 동그랗게 떴지만, 웃진 않았다.
특별해지고 싶었다. 찬에게 어떤 의미로든 특별하게 각인되고 싶었다. 희열이든, 분노든. 그 어떤 쪽으로든 특별해지고 싶은데. 어째서 찬의 눈동자는 늘 공허한 걸까.
“…너는 내 암컷이야.”
턱을 부서져라 붙잡았다. 찬이 체념한 얼굴로 그냥 눈을 감았다.
“눈 떠.”
그 말에 고분고분 또 눈을 뜬다. 윤도의 말을 무척이나 잘 듣는 점은 좋았지만 그뿐이다. 그냥 눈을 뜨라면 뜨고, 자지를 빨라면 빨고, 다리를 벌리라 하면 벌렸다.
윤도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아픈지 찬이 미미하게 인상을 찌푸렸다. 손을 떼어 내니 벌건 손자국이 남았다. 턱을 더듬더듬 만지는 마른 손가락이 자국을 스쳤다.
“…그래, 내 거지.”
윤도가 작게 중얼거렸다. 어떤 식으로 해도 찬은 결국 그를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니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수밖에. 수인으로 만들고 새끼를 배게 만들면 좋든 싫든 특별해질 게 아닌가. 윤도는 희미한 자국조차 남지 않은 찬의 어깨를 더듬었다. 제법 깊게 물었는데 이젠 희미한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그가 고개를 숙였다. 목에 바짝 다가가니 긴장한 듯 쿵쾅거리는 심장 소리가 들렸다. 입을 벌리고 목을 꽉 물었다. 죽지 않을 정도만, 조금만.
“흑… 힉… 싫… 윽…….”
두려운 듯 떨리는 목소리가 뚝뚝 끊어졌다. 윤도가 여린 목덜미를 꽉 물었다. 빠른 박동이 혀 아래 느껴졌다.
모래알이 손가락 사이로 또 빠져나갔다. 어깨를 더듬더듬 밀어내려던 손이 툭 떨어졌다. 체념조차 빠르다. 찬에게 윤도는 그저 모래사장을 스치는 파도였다. 언젠간 빠져나갈 그런 존재.
이가 피부를 찢었다. 떨리는 신음 소리가 들렸다. 윤도는 혀로 상처를 헤집었다.
“읏… 아…….”
고통을 줄 때마다 몸이 떨렸다. 구멍이 오물오물 움직였다. 윤도가 느리게 몸을 일으켰다. 목덜미에 남은 잇자국이 벌겋게 보였다. 핏방울이 흘러내렸다.
“아프지?”
“…….”
“살려 달라고 매달려 봐.”
윤도가 손끝으로 상처를 더듬다가 살며시 목을 쥐었다. 손바닥에 닿은 상처에 열이 올랐다. 쓰린 듯 인상을 찌푸린 찬이 고개를 흔들었다. 윤도가 다시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하니 가벼운 몸뚱이가 아래위로 정신없이 흔들렸다.
끼익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헉……. 흐윽…….”
목이 턱턱 손에 짓눌리고, 찬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헉헉거리면서 가쁜 숨을 들이마시는 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하으……. 흐…….”
마른 손가락이 윤도의 손등과 손목을 긁었다. 손바닥 아래 느껴지는 심장박동 소리가 거칠어졌다.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도 아무 말 하지 않는다는 점이 더 화가 났다.
“빌어.”
침대가 끼익거리는 소리를 내며 흔들렸다. 윤도가 내뱉는 말에 찬이 가까스로 눈을 뜨니, 핏줄이 터져 온통 붉었다. 얼굴도 붉고, 눈도, 입술도 모두 새빨갰다. 살겠다고 어떻게든 숨을 들이마시는 몸에 힘이 들어갔다. 찬의 다리가 버둥거렸다. 구멍도, 내벽도 모두 공기를 짜내듯 자지를 꽉 물었다.
“흐윽…….”
가느다란 틈새로 공기가 새어 들어갔다. 의미 없이 윤도의 손등을 긁어내리던 손톱이 따끔한 상처를 남겼다. 꽉 조여 오던 구멍이 일순간 나긋하게 풀렸다. 윤도는 저도 모르게 꽉 움켜쥐었던 목에서 손을 풀어냈다.
삐걱거리는 소리가 잦아들어 갔다. 손자국이 남은 목을 가만히 쳐다보다 가슴을 더듬었다. 비쩍 마른 몸에 갈비뼈가 그대로 만져졌다. 윤도가 가슴 한가운데 손을 얹은 채 가만히 심장박동을 셌다.
어째서 죽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걸까. 이해할 수 없었다. 그의 몸은 살려고 버둥거리는데, 찬은 언제든 죽어도 괜찮은 것처럼 행동하려 했다. 목을 조르면 어떻게든 숨을 쉬어 보려 발버둥 칠 거면서. 윤도의 시선이 조금씩 제 색을 되찾아가는 찬의 얼굴에서 손등으로 이동했다. 작은 생채기가 남은 손등에서는 한 방울의 피도 나지 않았다.
“…젠장.”
다음날이면. 아니, 몇 시간이면 사라질 상처. 윤도가 손등을 살짝 핥았다. 희미한 피의 맛이 났다. 따끔한 아픔이 금세 흐려졌다.
짜증이 치밀었다. 가장 귀한 것도 순순히 버리려는 듯 행동하는 찬에게 화가 났고, 윤도에게 제대로 반항하지도 못하는 찬이 답답했다. 상처 하나 제대로 내지 못하는 한심한 인간. 반항이 뭔지도 모르는 머저리.
그리고 그의 암컷. 윤도는 낮은 한숨을 쉬곤 찬을 끌어안았다. 다시 침대가 끼익거리는 소리가 났다. 늘어진 몸을 품에 안고, 눈물이 맺힌 눈가를 핥았다.
또다시 모래 알갱이가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갔다.
* * *
오늘은 평소와 다르다. 찬은 눈치를 보듯 윤도를 힐끔거렸다. 그가 쳐다보고 있다는 걸 알고 있을 텐데도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왜 안 나가지?’
언제나 자고 일어나면 그는 사라져 있었다. 아침인지 밤인지도 알 길이 없었지만 짐작하기로는 아침에 나가지 않을까 생각했다. 정장을 입고 다니는 걸 보면 뭔가 일을 하긴 하는 모양이었으니까.
씻어야 하나. 아니면 그냥 죽은 척할까. 찬은 눈을 느리게 감았다가 떴다. 목 안이 깔깔했다. 숨을 쉴 때마다 그 안에 섞인 모래가 목에 상처를 내는 기분이었다.
‘목을 졸랐지…….’
뒤늦게 목에 난 상처도 생각났다. 찬이 손끝으로 목을 더듬었다. 닿는 곳마다 아팠다. 거울을 보면 손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지 않을까. 물어뜯긴 자국은 유독 쓰렸다.
“일어났으면 씻어.”
윤도의 덤덤한 말이 들렸다. 찬은 그 말에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켰다. 눈을 데구르르 굴리니, 그의 맨 등이 보였다.
또 섹스하자고 하려나. 그렇지만 굳이 씻으라 한 게 조금 의아했다. 윤도는 찬이 정액투성이이든 말든 신경 쓰지 않았으니까. 찬이 눈을 굴리고 있으니 그가 셔츠를 입었다. 널찍한 등이 천 아래 감춰졌다. 얇은 천 아래 근육이 꿈틀거리는 게 고스란히 보였다.
“씻겨 줬으면 해서 그러고 있어?”
윤도가 그렇게 말하면서 고개를 돌렸다. 단추를 하나하나 채우는 손길이 느렸다. 찬은 멀거니 그를 쳐다보다 침대에서 일어섰다.
다리에서 힘이 턱 풀렸다. 평소처럼 욕조에 물을 틀어놓고 멍하니 그 안에 앉았다. 찬은 수증기로 가득 찬 천장으로 시선을 돌렸다. 지금쯤이면 나갔을까. 문소리가 안 들리긴 했으나, 물소리에 묻혔을 수도 있다.
문득 본 손톱 아래에 옅은 핏자국이 남아 있었다. 찬은 그걸 가만히 보다가 물에 마구 씻어냈다. 뜨거운 수증기에 숨이 턱 막힐 때까지 오랫동안 있다가 나가니, 윤도가 침대에 걸터앉아 있었다.
“무슨……. 하. 아니. 됐어.”
인상을 일그러뜨린 그가 낮은 소리로 혀를 차곤 손짓했다. 찬은 욕실 문에 기대선 채 윤도를 멀거니 쳐다봤다. 찬이 욕실에 들어가 있는 사이 쓰리피스 정장을 말끔하게 차려입은 윤도는 제법 괜찮아 보였다. 그를 강간하고, 폭력적으로 구는 상대를 괜찮다고 생각하다니. 미친 게 틀림없다. 찬이 스스로를 비웃었다.
“이리 와.”
그가 손짓에 오지 않는 게 답답한지 성큼성큼 다가와 팔을 단단히 붙들었다. 발이 끌리든 말든 질질 끌고 가는 행동에 팔이 욱신거렸다.
“읏…….”
안 그래도 온몸이 아픈데. 어깨가 빠질 것처럼 욱신거렸다. 윤도가 침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이곳에 갇힌 뒤 처음으로 나서는 셈이다. 찬이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잠, 잠깐……. 아파. 나 옷… 아니 속옷이라도……. 가운…….”
늘 사용인들이 들어오지 않나. 윤도의 손목을 붙잡았지만 그는 그냥 말없이 찬을 잡아끌었다. 카펫에 발바닥이 쓸렸다. 제대로 발에 체중을 실은 게 오랜만이라 그런지 걷는 게 어색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찬은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식탁이 있는 곳까지 오는 동안 다행스럽게도 아무도 마주치지 않았다. 윤도는 그를 강제로 의자에 앉히곤 맞은편에 느긋하게 앉았다.
“먹어.”
먹으라고 한들, 홀딱 벗은 채로 커다란 식탁에 앉아 있으니 불안감만 커졌다. 찬이 주위를 둘러보고 있으니 윤도가 그릇 덮개를 하나하나 들어냈다.
온갖 음식이 준비되어 있었다. 밥과 반찬에 따끈한 김이 올라오는 국까지. 찬은 자기 앞에만 놓인 수저를 가만히 내려다보다가 윤도에게 시선을 돌렸다.
“…뭘 쳐다봐? 먹으라고.”
그가 이렇게 식사를 챙긴 적이 있던가. 할머니 집에서 함께 지냈을 때가 생각났다. 대충 인스턴트식품을 섞어서 먹고 있으면 질질 끌고 나가 밥을 먹이곤 했는데.
찬은 음식 냄새보다도 지금 엉덩이에 닿는 의자의 감촉이 더 신경 쓰였다. 맞은편에 앉은 남자가 멀끔하게 정장을 차려입고 있으니 조금 더 비참한 기분이 들었다.
“…옷이라도 줘.”
“옷?”
“…….”
찬이 윤도와 시선을 마주했다. 그의 짙은 회색 눈동자가 목을 지나 어깨로 훑고 내려가는 게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정장 웃옷을 벗어 건넸다.
“…….”
“먹는데 무슨 옷이 필요해?”
짜증스러운 말이 돌아왔다. 찬은 그거라도 받아 팔을 꿰어 넣었다. 품이 남다 못해 줄줄 흘러내릴 것 같았다. 소매가 손끝까지 내려와서 엉망으로 접어 올렸는데도 윤도는 별다른 말이 없었다.
찬은 그제야 수저를 들었다. 왜 옷에 그렇게 집착했는지 스스로도 정확히 이유를 생각해 낼 수 없었다. 고요한 가운데 달그락거리는 소리만 들렸다.
“한동안 못 볼 거야.”
윤도가 툭 던지듯이 말했다. 무슨 대답을 해야 할까. 왜 못 보냐고, 보고 싶을 거라고 말이라도 해야 하나. 찬은 그냥 멀거니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다. 윤도가 그와 대화를 나누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하는 거라곤 섹스뿐인데. 뭐가 달라질까.
찬은 까끌까끌하게 느껴지는 밥알을 씹었다.
‘하루가 지났다는 건 알 수가 없겠네.’
그가 오면 대충 하루가 또 지났구나, 막연히 그런 생각을 했다. 별 상관은 없었다. 어차피 이곳에서 식사도 나오고, 잠도 잘 수 있으니까. 찬은 또 음식들이 종이처럼 느껴졌다. 넘어가지 않는 것을 씹고 또 씹다가 억지로 삼켰다.
조용히 젓가락을 내려놓으니 윤도가 눈짓했다.
“더 먹어.”
“배부른데.”
“억지로 벌리고 넣기 전에 스스로 넣어.”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그 말이 왜 야하게 들렸을까. 매일 받는 자극이라곤 섹스뿐이니 그럴 수밖에 없다고 스스로에게 변명했다. 찬은 다시 젓가락을 움직였다.
넘어가지 않는 음식을 꾸역꾸역 넘겼다. 거의 목 끝까지 채워 넣은 찬이 수저를 내려놨다. 남은 것들을 흘깃 본 윤도가 다시 자리에서 일어섰다. 멀거니 보고 있자 그가 찬을 안아 들었다.
“…어.”
별 어려움 없이 그를 한 팔로 안아 드는 행동에 오히려 놀랐다. 그동안 멱살이나 팔을 잡아 질질 끌었는데. 엉덩이 아래 느껴지는 매끄러운 셔츠의 질감과 근육의 움직임에 찬이 입술을 뻐끔거렸다.
윤도는 별다른 말이 없었다. 단단히 다리를 붙든 그가 성큼성큼 문밖으로 나섰다.
“잠깐. 옷이…….”
들어 줄 생각은 조금도 없다. 찬은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래쪽이 허전하고, 품이 너무 큰 웃옷은 자꾸 어깨 아래로 흘러내렸다. 옷깃을 필사적으로 붙잡으면서 몸을 웅크리고, 윤도의 목덜미에 고개를 떨어뜨렸다.
몇 명의 기척이 들렸다.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엔진 소리와 지하 주차장 바닥에 바퀴가 끼익하고 마찰하는 소리가 들렸다. 뒤이어 윤도가 찬을 차 안으로 밀어 넣었다. 뒤이어 그가 자리에 앉자마자 운전기사가 다가와 문을 닫아 줬다.
“…….”
찬이 눈을 데굴데굴 굴리는 동안 차가 출발했다. 속옷 한 장 없이 밖으로 나오다니. 변태라도 된 느낌에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윤도가 희롱하거나, 차 안에서 또 섹스하려고 들지도 모른다 생각했지만 그는 그냥 무서운 얼굴로 앞만 바라보고 있었다.
찬은 정장을 끌어내렸다. 그 밑으로 보이는 가느다란 허벅지가 이쑤시개같이 보였다.
“어디… 가?”
그 말에 윤도가 흘깃 쳐다보더니 다시 앞으로 시선을 돌렸다. 언제나 그랬다. 그는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대답을 들려 준 적 없다. 찬은 금방 포기하곤 창밖을 멀거니 쳐다봤다.
그가 살던 시골과는 완벽하게 다른 번화가가 창밖을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높다랗게 솟은 건물, 수많은 사람들, 도로를 채우는 차. 찬은 멍하니 창에 달라붙었다. 시골에서 말하는 번화가는 읍내 정도가 전부였다. 물론 젊은 사람들은 도시에도 나가 놀곤 했지만 찬은 그 정도로 의욕이 넘치지 않았다. 게다가 대부분의 시간은 집에 틀어박힌 채 할머니와 보내기도 했고.
수많은 것들이 창밖에 나타났다 사라졌다. 창문에 윤도가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모습이 스쳤다.
“천천히 가.”
윤도의 무심한 말에 차 속도가 현저히 줄어들었다. 찬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봤다. 구경하라는 의미인가. 아니면 그냥 천천히 가야 해서인가. 답을 대충 알고는 있었지만 굳이 아는 척하진 않았다.
'날 위해서라면 뭐가 달라지나.'
아무런 의미도 없는 생각이다. 창밖으로 높은 건물들이 느릿느릿 스쳐 지나갔다. 도시. 찬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반짝이고, 무채색이었으며, 알록달록한 세상이었다.
찬은 그냥 가만히 차 유리를 바라보고, 또 바라봤다. 놀라울 정도로 번화한 세상보다, 창에 얼핏 비치는 윤도를 눈으로 더듬었다. 윤도 역시 앞을 보면서 가만히 있다가, 찬을 흘깃 쳐다봤다. 이마를 유리에 대니 서늘한 기운이 느껴졌다.
찬은 매끄럽게 닿는 천을 조금 더 끌어당겼다. 창밖으로 세상이 흘러갔다.
* * *
차가 부드럽게 정차했다. 찬은 멍하니 눈을 깜박였다. 어느새 깜박 잠들었던 모양이다.
‘…어디지.’
어차피 답을 들을 수 없으니 굳이 질문하진 않았다. 윤도가 찬을 끌어당겨 다시 안고 차에서 내렸다.
“대기해.”
낮게 말한 그가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지하로 이어지는 계단을 내려가고, 긴 복도를 지나갔다. 습한 공기가 느껴졌다. 찬은 윤도의 어깨를 짚고 고개를 들었다. 기척 하나 없이 고요한 복도에 발소리 하나만 울렸다.
하나로 쭉 이어진 복도 끝에 금고의 문처럼 보이는 두꺼운 철문이 보였다. 윤도가 망설임 없이 그곳으로 성큼 들어갔다.
“…윤도.”
슬쩍 두려움이 피어올랐다. 안쪽은 그저 새까맣기만 해서 복도의 불빛이 입구 쪽만 밝게 비춰 주고 있었다. 그의 옷깃을 꽉 붙잡았다.
안쪽은 아무것도 안 보였다. 그 속은 끝이 없어 보이기도 했고, 무척이나 좁아 보이기도 했다. 발바닥에 차가운 바닥이 닿았다.
“여긴……. 으읍, 으?”
찬은 눈을 크게 떴다. 윤도의 회색 눈동자가 가까이 보였다. 맞닿은 입술의 감촉이 말랑하고, 부드럽다. 혀가 입술을 살짝 훑고 틈새를 비집어 열었다.
“아…….”
첫 키스. 찬이 눈을 질끈 감았다. 그동안 수백 번도 더 몸을 겹쳤음에도 처음 하는 키스라니. 허리를 단단히 붙든 팔에 힘이 들어갔다. 입술을 벌리자 무언가가 혀 위에 닿았다. 단단한 그것에서는 쓴맛이 났다.
“으. 아…….”
윤도의 혀가 그것을 목 끝까지 밀어 넣었다. 찬이 반사적으로 그것을 삼켰다. 꽤 커다란 무언가가 목 아래로 내려가는 게 느껴졌다. 물컹한 혀가 입안을 헤집었다.
키스라는 게 이런 기분이 든다는 걸 처음 알았다. 윤도는 찬의 이를 훑고, 움츠러든 혀를 빨아 당겼다.
“흐응……. 하아…….”
저릿한 전율이 흘렀다. 어지러운 현기증이 일었다. 저도 모르게 윤도의 옷깃을 붙잡고 매달렸다. 거칠게 쾌감만 뒤좇는 섹스와 달리 부드러웠다. 윤도의 이가 혀끝을 가볍게 물자 오싹한 감각이 등줄기를 타고 흘렀다.
찬이 허덕이면서 옷깃을 구겨 쥐었다. 겨우 붙들고 있던 정장 웃옷이 어깨 아래로 흘러내렸다. 평소라면 당장 다리를 벌리게 했을 텐데. 윤도의 손은 얌전하게 등허리를 당기기만 했다. 머릿속이 빙글빙글 돌았다.
꽤 시간이 지난 뒤에야 윤도가 입술을 떼어 냈다. 옷깃을 꽉 붙잡고 있는 찬의 손을 내려다본 그가 매정하게도 손을 떼어냈다.
‘이상해.’
오늘 전부 이상했다. 잠든 사이 나가지 않은 윤도. 식사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윤도. 어딘가 다정한 윤도. 그리고 처음으로 한 키스. 찬은 옷깃 대신 정장 웃옷을 쥐고 어깨 위로 끌어올렸다.
윤도가 뒤돌아섰다. 그리고 성큼 밖으로 나서려 했다. 어둠이 뒷덜미를 잡아채듯 오싹했다.
“잠깐… 어디 가는……!”
찬이 허둥지둥 그의 옷자락을 잡으려고 쫓아간 순간, 다리가 휘청거리며 풀렸다. 제대로 걷지도 않고 지낸 지 너무 오래되어서일까. 바닥에 꽝 소리를 내며 넘어졌다.
“윤…….”
다급히 고개를 든 순간, 찬의 눈에 마지막으로 보인 건 문틈으로 사라지는 윤도의 뒷모습이었다. 돌아보지도 않았다. 바닥에 부딪힌 무릎과 코가 아파 왔다. 서늘한 기운이 온몸으로 스며들었다.
어둠 속에서 끼익거리며 문이 잠기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다 사라지기 전에 찬이 엉금엉금 어둠 속을 기어갔다.
“내, 내보내 줘.”
목소리가 덜덜 떨렸다. 빛이라곤 전혀 들어오지 않는 어둠에 공포가 엄습했다. 더듬거리며 문을 찾았지만 틈새조차 발견할 수 없었다. 찬이 꽉 말아 쥔 주먹으로 문으로 짐작되는 곳을 두드렸다.
“윤도… 윤도야. 오윤도…….”
유일하게 부를 수 있는 이름을 불렀다. 목소리가 떨렸다.
“왜…….”
왜 가뒀을까. 무슨 이유일까. 수많은 의문이 뒤엉켜서 입 밖으로 무엇부터 꺼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찬은 손이 아프도록 문을 두드리고 또 두드렸다. 두꺼운 문은 열리지 않았다.
* * *
윤도는 뒤에서 흐릿하게 들려오는 소리에 잠시 발걸음을 멈췄다. 콩 콩 하고 가벼운 소리가 들렸다. 찬의 꼴에 걸맞은 미약한 울림이었다.
‘100일…….’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벌써부터 조금 막막했다. 한 달도 그렇게 지겹고 길었는데 100일이라니. 윤도가 픽 웃었다.
복도에 울리는 하나의 발소리는 들어갈 때와 똑같았다. 그는 구겨진 옷깃을 펴다가 웃옷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커다란 옷 속에 푹 파묻혀 있던 찬의 모습이 떠올랐다.
‘살아남겠지.’
그냥 그러리라 믿었다. 수인이 되는 방법은 간단하고, 어려웠다. 짐승의 모습을 일깨우는 약을 먹고, 새까만 공간에 가둔다. 그리고 100일을 기다리면 된다.
물론 그 수인이 별 위해를 끼치지 못하는 작은 햄스터일지, 아니면 호랑이 같은 맹수일지 아무도 짐작할 수 없으니, 특수하게 제작된 ‘우리’에 가둬야 했다. 멋대로 탈출할 수 없도록.
약을 먹고 조금 시간이 지나면 안에 잠들어 있던 짐승이 튀어나오기 시작한다.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본능이니 처음에는 해방감에 마구 날뛰기 시작한다. 이성도 없다. 그저 그동안 가둬 둔 것에 대한 분노를 온 사방에 흩뿌리다가 점점 지치기 시작하면서 인간의 육체에 적응하기 시작한다. 몸이 먼저 적응하고 나면 그다음은 인간의 정신이 스며든다.
그동안 날뛰는 짐승이 누군가를 해칠 수도 있으니 격리시키고 어둠 속에 가두는 것이 원칙이었다. 두 개의 모습이 뒤엉키면서 짐승은 인간의 모습에 충격을 받고, 인간은 짐승이 된 스스로의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 정신이 무너지면 그 기간 동안 스스로를 해칠 수도 있다.
그러니 그동안 견뎌내야 하는 건 온전히 자신의 몫이다. 물론 중간에 자해하는 일이 없다 하더라도 변화하는 도중에 그냥 죽어 버릴 수도 있겠지만. 윤도는 머리카락을 쓸어 올렸다.
‘이미 시작된 일이야.’
되돌릴 수 없다. 지금 가서 약을 토해 내게 만들 수도 없고, 한 번 시작한 일을 중단시킬 방법도 없다.
그는 계단 앞에서 귀를 기울였다. 미약하게 콩 하고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느려졌다. 윤도는 마지막 문을 닫았다. 차가 출발하는 그 순간까지 그의 시선은 찬이 있는 곳 문 너머를 바라봤다.
2권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