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에게 물렸다 1
서장
남자의 뺨 위로 흐른 핏방울이 턱에 맺혔다. 거칠게 턱을 손등으로 문지른 그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주변을 훑었다.
‘…젠장.’
짜증이 치밀었다. 윤도는 손에 든 새의 시체를 거칠게 집어던졌다. 험악한 손짓에 빠져나간 깃털이 허공에 살랑살랑 휘날렸다.
“새대가리 새끼들.”
그가 히죽 웃었다. 그 말에 대답하듯 새의 울음소리가 울렸다. 까마귀, 매, 수리. 작게는 참새까지. 윤도는 입안을 혀로 훑곤 피를 뱉어 냈다. 비릿한 맛이 느껴졌다.
‘…시간을 끌려는 건가.’
다들 쉽사리 덤비질 않았다. 아니. 덤빌 생각이 없어 보였다. 윤도는 피로 찐득거리는 손을 꽉 쥐었다. 수는 대충 봐도 수십이 넘어 보였다. 단기간에 모을 수 있는 최대한의 숫자일까.
윤도는 담벼락 위에 앉은 새들을 힐끔 쳐다봤다.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었다. 커다란 새와 작은 새들이 불협화음을 내듯 부리를 열어 새 소리를 냈다. 그는 그 중 커다란 덩치의 수리에게 시선을 돌렸다.
부리를 꾹 다문 채 있던 수리가 가만히 윤도를 쳐다봤다. 새의 시선에 그는 웃으면서 손을 까닥거렸다.
“덤벼, 새대가리.”
다시 턱밑에 핏방울이 고였다. 짜증이 치밀었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덤빈다면 살아 나갈 수는 있을까. 자신은 있었다. 이미 몇이나 잡아다 물어 죽이지 않았던가. 윤도가 이를 드러내며 웃자, 피로 물든 이가 날카롭게 변했다가 정상으로 돌아왔다.
까악거리는 까마귀 소리가 울렸다. 파득거리는 날갯짓 소리와 함께 몇 마리의 새들이 더 날아 왔다. 계속해서 수가 불어났다. 오싹한 광경이었다. 적의를 가지고 윤도를 노려보는 수많은 눈. 조금씩 압박해 오는 사람의 벽.
위압감에 질식할 것 같은 상황에서도 그는 짜증 가득한 손짓으로 턱을 손등으로 닦아 냈다. 상처가 제법 컸는지 자꾸만 피가 흘렀다. 윤도의 손등에 길게 핏자국이 남았다.
“고작 나 하나 잡자고…….”
목소리가 거칠게 나왔다. 인상을 찌푸린 그가 다시 핏덩어리를 뱉어 냈다.
“이렇게 많이 모이다니. 어지간히도 자신이 없나 보지?”
윤도가 크게 웃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그들은 더 이상 가까지 다가오지 않았다. 대체 뭘 노리고 시간을 끄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단순히 동료를 더 불러 모으려고 기다리는 건가. 어차피 고만고만한 것들을 물러 모아 봐야 윤도를 잡을 수 없다. 아직도 그걸 모르나.
“단순히 숫자놀음 할 생각이면 짜증나니까 관둬. 새대가리들 여럿 모인다고 아이큐가 합산되는 줄 아나.”
그 말에 수리가 날개를 펼치고 가볍게 퍼덕였다. 담벼락 아래로 내려오는 발톱부터 시작해서 마치 환상을 덧씌우듯 사람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윤도는 그 모습을 보며 주먹을 꽉 쥐었다. 언제든지 튀어 나갈 준비를 하듯 온몸의 근육을 긴장시켰다. 바닥에 발이 닿았을 때 수리는 완벽히 사람의 형태로 변해 있었다.
어둠 속에서도 그의 눈이 희번뜩 빛났다. 옅은 색의 눈동자는 그가 수리였을 때와 똑같았다. 미소를 짓는 입술이 길게 찢어지듯 늘어났다.
“가는 길 혼자면 외롭잖아. 클로의 유망주가 가는 길인데. 그 만한 대우를 해 드려야지.”
윤도는 화를 내는 대신 씩 웃었다. 어차피 이런 도발이 하루 이틀도 아니다. 단지 이렇게까지 작정한 적이 없었을 뿐. 그는 성큼 다가갔다. 2미터에 가까운 윤도와 거의 마주할 정도로 큰 남자가 무척이나 거슬렸다. 아니, 그냥 짜증이 났다. 기회만 된다면 그 날개를 잡아 뜯어 버리고 싶을 정도로.
둘의 시선이 마주쳤다. 윤도의 턱밑에 맺힌 핏방울이 톡 떨어졌다. 온통 피투성이인 그와 달리 멀끔한 모습인 게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탈론은 이렇게 가는 길을 챙기나?”
윤도가 히죽 웃었다. 여전히 입속에서는 피 맛이 났다.
“이야. 탈론은 사치를 좋아하나 보군. 아니지, 새대가리들이라 목숨값이 싸구려인 건가?”
이죽거리는 그 말에 남자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다. 윤도가 크게 웃었다.
“그것도 아니면 그냥 네가 자신이 없는 건가. 탈론의 유망주 씨.”
일부러 유망주라는 단어에 힘을 실었다. 그가 탈론의 윗대가리들에게서 얼마나 압박을 받고 있는지 알고 있었으니까. 윤도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는지, 지금까지 봤던 그 어떤 표정보다도 험악하게 입가가 일그러졌다. 언제나 길게 찢어지는 듯한 미소를 지었는데. 윤도는 불쾌해 하는 그 얼굴이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닥쳐, 오윤도.”
잇새로 떨리는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꽉 쥐었던 주먹을 풀고 손을 쥐었다가 폈다. 노골적으로 무시하듯 긴장했던 근육을 늘어뜨렸다.
“그래도 같은 ‘패밀리’인데. 위아래도 구분 못 하는 놈이 형제라니. 창피하다, 수빈아.”
“개새끼야.”
수빈이 손을 뻗어 윤도의 멱살을 쥐려고 했다. 그 순간 늘어뜨렸던 손이 수빈의 손목을 꽉 쥐었다.
“정말 창피하니까 어디 가서 내 동생이라고 하지 마라. 천수빈.”
“동생? 너 같은 개새끼를 형으로 둔 적도 없어.”
그 말에 윤도가 쿡쿡 웃었다. 천수빈 역시 어디 가서 빠지는 키와 몸은 아니었지만, 윤도 앞에서는 상대적으로 꽤나 호리호리하게 보였다. 손목을 잡은 손에 힘을 꽉 줬지만 수빈은 아픈 티조차 내지 않았다.
“할 줄 아는 거라곤 힘쓰는 것밖에 없는 개새끼가 클로의 윗대가리라니. 머릿속에 든 건 뇌가 아니라 우동사리인가 보지?”
“그러게. 새대가리는 멍청한데다가 힘도 없어서 어쩌나.”
“서열질 말곤 할 줄 아는 것도 없는 개새끼.”
윤도가 빙긋 웃으면서 손목을 놓자 수빈이 손목을 문질렀다. 작게 욕설이 들려왔다. 화낼 생각은 없었다. 이미 상당히 피곤했고, 계속 뚝뚝 흐르는 피에 슬슬 위험해지고 있다는 걸 스스로도 인지하고 있었으니까. 이걸 노리면서 시간을 끈 걸지도 모른다.
“그 서열질도 제대로 못 하는 새대가리가 그런 말을 할 자격이나 되나?”
“…….”
“같은 ‘패밀리’로서 충고하는데. 좀 조용히 다녀, 천수빈. 나 하나 상대 못 해서 이렇게 졸개들 몰고 다니는 거 소문이라도 나면 마음 아프잖아. 내가 같은 패밀리인 것도 창피해지고. 응?”
수빈의 어깨를 툭 쳤다. 옷 위로 선명하게 붉은 손자국이 남았다.
“…너 따윈 나 혼자로도 충분해.”
다시 입술이 길게 찢어졌다.
“물러나.”
가볍게 손을 내젓자 뒤쪽에 서 있던 놈들이 머뭇거렸다.
“수빈 님! 안됩니다.”
“물러나라고 했다.”
수빈의 단호한 말에 그들이 슬그머니 물러섰다. 담벼락에 앉아 있던 새들이 울음소리를 내곤 일제히 날아올랐다. 퍼드득거리는 날갯짓 소리가 겹치자 귀가 멍멍해질 정도였다.
“이렇게 강한 척할 필요 없는데. 어차피 안 될 거라는 거. 알고 있잖아?”
윤도가 빙긋 웃었다. 계속 턱 밑에 맺히는 핏방울이 거슬렸다. 톡 하는 작은 소리와 함께 바닥에 핏방울이 떨어졌다.
“낙오된 주제에 말이 많군.”
“너랑 달리 난 혼자서도 충분히 네놈의 날개를 찢어 놓을 수 있거든.”
그 말과 함께 모여든 숫자를 대강이나마 셌다. 아무래도 싸우던 탈론의 새새끼들이 모두 온 모양이었다.
‘그럼 나머지를 쫓진 않는 건가.’
낙오해서 천수빈과 그 졸개를 잡아 두다니.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다행이긴 했다. 윤도가 없는 클로가 탈론과 전면전을 했을 때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미지수였으니까. 그는 씩 웃었다.
약간 눈앞이 어지러웠다. 시간으로 치면 벌써 꼬박 하루를 넘게 싸웠다. 체력은 아직도 남아 있었지만 피가 문제다. 지혈하지 못한 상처는 끊임없이 벌어져 피를 흘려 댔다. 윤도가 수빈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살려 달라고 졸개들에게 빌 생각이면 그냥 미리 빌어 둬. 말할 틈도 없을 테니까.”
“입만 살았군.”
그 말과 함께 수빈이 눈짓하자 사람들이 조금 더 물러섰다. 윤도가 킥킥 웃었다. 당장이라도 덤벼들 듯 자세를 낮추고 주먹을 꽉 쥐었다. 수빈 역시 찢어질 듯한 미소를 거두었다.
그 순간, 윤도는 덤벼드는 대신 늑대로 변했다. 수빈이 우아한 척하며 느릿하게 변하던 것과는 다르게 눈 깜박할 새였다. 거대한 늑대가 튕겨지듯 담벼락으로 뛰어올랐다. 한 번의 도약으로 꽤 높은 담을 훌쩍 넘은 윤도는 그대로 내달렸다.
‘젠장, 조금만 더.’
변화하는 것도 체력이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인간의 모습으로 달리는 것보다 늑대로 달리는 게 훨씬 빠르다.
당연히 덤빌 줄 알았는지 수빈이 쫓는 타이밍이 조금 늦었다. 쇠를 긁듯 소름 끼치는 검독수리의 울음소리가 울렸다. 윤도는 있는 힘껏 내달렸다. 곧 뒤이어 퍼덕거리는 소리와 함께 엄청난 날갯짓 소리가 뒤덮이기 시작했다. 옅은 달빛이 흩뿌려진 밤하늘이 새까맣게 뒤덮였다.
온갖 새소리가 뒤섞이며 귀가 찢어질 듯한 소음을 만들어 냈다. 날갯짓 소리가 조금씩 가까워졌다. 땅을 뛰는 것보다 당연히 나는 게 빠르다. 윤도는 이를 악물었다.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털로 뒤덮인 육체가 비명을 질렀다.
‘숲. 숲이 있었나.’
크게 숨을 들이마시자 습기 섞인 숲의 냄새가 났다. 그는 그대로 그쪽으로 달렸다. 시야가 훤히 트인 곳에서 새들의 추격을 피하긴 쉽지 않다. 건물에 들어갈 수는 없으니 숲으로 가야 했다.
나무와 풀의 냄새가 짙어졌다. 시야에 새까만 숲이 보이기 시작했다. 윤도의 생각을 알았는지 새들의 날갯짓이 더욱 격렬해졌다. 퍼덕거리는 소리에 귀가 멍멍해졌다. 고도를 낮추는 듯 날개에서 일어난 거친 바람이 윤도의 털에 닿을 지경이었다.
등 뒤에 바짝 다가온 건 누구일까, 그는 이를 악물고 다리에 힘을 꽉 줬다. 아마 검독수리인 천수빈이겠지. 이죽거리는 웃음을 참을 수 없다. 검독수리는 나무가 빼곡한 숲속에서 날 수 없다.
‘작은 것들이 쫓아오긴 하겠지만….’
그런 것들은 충분히 따돌릴 수 있다. 윤도는 습기 가득한 숲으로 뛰어들었다. 발밑에 닿는 나뭇잎의 감촉을 즐길 새도 없었다. 새들이 온갖 소리를 내며 울었다.
수빈이 내뱉은 게 분명한 쇳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날갯짓 소리가 점점 더 약해졌다. 몇몇 새들이 기를 쓰고 윤도를 쫓아왔지만 나무 사이를 뛰어가는 동안 몇 마리씩 떨어져 나갔다.
‘조금만 더.’
눈앞이 흐려졌다. 숨소리가 거칠다 못해 뚝뚝 끊기기 시작했다. 털이 피에 젖은 감각이 불쾌했다. 새까만 숲은 아무리 달려도 끝이 없었다.
얼마나 달렸을까. 마침내 마지막 새의 소리도 사라졌다. 나뭇잎에 가려진 하늘은 달의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윤도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조금 더 달리다가. 조금씩 속도를 멈추고 느리게 걷기 시작했다.
발아래 밟히는 나뭇가지 소리가 크게 들렸다. 잇새로 그르렁거리는 소리가 저절로 흘러나왔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새까만 어둠 속을 걷고 또 걸었다. 사람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을 했지만 힘이 조금도 남아 있지 않았다.
‘…젠장.’
윤도는 그 자리에 풀썩 쓰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