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챕터3. 식인 늑대 (4/10)

겁에 질린 희성은 밤늦도록 잠들지 못한 채 침대 아래 웅크려 있었다. 그 앞으로 식인 늑대가 자꾸만 강아지가 숨은 침대를 물어뜯고 틈으로 코를 들이밀고 있었다.

‘쟤는 무슨 페로몬 쇼크가 저렇게 와…?’

희성이 몇 번 정신 좀 차리라고 소심하게 짖어 봤지만, 늑대와는 그 어떤 신체 언어도 통하지 않았다. 자신도 못 알아볼 정도로 페로몬 쇼크가 온 게 분명했다. 이내 또다시 늑대의 섬뜩한 송곳니를 본 강아지는 눈물을 찔끔 흘리며 생각했다.

‘내가 그냥, 그냥 이 새끼 벗어나서 독립한다, 시발.’

두려움에 일부러 억세게 생각해 봤지만, 늑대가 제 머리 위에 있는 침대 위를 돌아다닐 때마다 강아지는 눈을 꼭 감은 채 잘게 떨었다.

한참 두려움에 시달리던 강아지는 몸을 웅크린 채 선잠이 들었다. 그나마 침대 위의 식인 늑대가 조용해져서 가능한 일이었다. 내심 윤치영이 걱정되긴 했지만, 차마 밖으로 나가 그를 살펴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강아지에겐 정말 목숨이 걸린 일이었다.

쿵.

꾸벅꾸벅 불편하게 자던 강아지가 깬 건 소음 때문이었다.

“강아지…?”

먼 부름에 눈을 뜨니 해가 떴는지 방 안이 밝았다. 희성은 졸린 눈을 희미하게 뜨며 귀를 세웠다. 멀리서 윤치영의 목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강아지… 대체 어디 있어?”

그때 맨몸에 대충 가운을 걸친 윤치영이 침실 문을 턱 짚고 들어왔다. 그는 꼭 술에 취한 사람처럼 비틀거렸고 행동도 느슨했다. 거기다 어젯밤처럼 숨을 불안정하고 거칠게 내쉬고 있었다.

‘이제 제정신으로 돌아온 건가…?’

강아지는 경계심 어린 얼굴로 윤치영을 노려봤다. 여전히 늑대 귀와 꼬리가 드러난 윤치영의 상태가 의심스러웠다.

“견희성. 견희성….”

희성은 일단 그를 관찰하려 했는데, 윤치영이 자신을 너무도 애타게 찾았다. 평소와 달리 후각도 제대로 못 쓰는지 손끝을 덜덜 떨며 연신 자신을 불렀다. 답지 않게 하얗게 질린 얼굴은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위태로워 보였다.

그 모습이 불쌍해져 강아지는 침대 아래에서 얼굴을 빼꼼히 내밀었다.

와… 왕.

소심하게 짖자 윤치영이 곧장 뒤를 돌아봤다. 그는 베개 솜이 널린 바닥에서 한참 강아지를 못 찾다가, 침대 아래의 까만 점 세 개가 찍힌 솜 덩어리를 보고 겨우 강아지를 구분해 냈다.

눈이 마주치자마자 윤치영이 크게 안도하며 뱀파이어처럼 송곳니가 보이는 웃음을 환하게 지었다.

“하… 거기 있었어? 한참 찾았잖아.”

‘쟤 괜찮은 거 맞나…? 아직 비틀거리는데.’

윤치영이 다가오자 희성은 귀를 뒤로 바짝 젖힌 채 경계심 어린 눈으로 째려봤다.

먼지투성이 강아지를 본 윤치영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읊조렸다.

“다행이다… 안 죽였어.”

‘미, 미친놈.’

기겁한 강아지가 다시 침대 아래로 후진해 들어갔다. 윤치영이 안심하는 모습이 뭔가 이상하긴 했지만, 여전히 희성은 그가 정상으로 돌아온 게 맞는지 의심스러웠다.

그때 윤치영이 침대 앞에 무릎을 꿇으며 팔을 벌렸다.

“이리 와, 자기야.”

개소리를 하는 걸 보니 진짜 윤치영이 맞았다.

그가 정상임을 확인하자 몸을 잔뜩 웅크리고 있던 강아지의 눈이 올망졸망해졌다. 안심이 돼서일까, 간밤의 무서웠던 기억이 가슴속부터 억울하게 몰아쳤다. 꼬리도 다시 깃털처럼 살살 흔들리기 시작했다.

“자, 괜찮아.”

윤치영이 어서 다가오라는 듯 팔을 더 가까이 벌렸다. 강아지의 경계심 그득하던 표정이 서럽게 무너졌다.

‘무서웠잖아!’

강아지가 울듯이 짖으며 윤치영의 품에 꼭 안겨 들었다.

* * *

“너 정말 아무것도 기억 안 나…?”

희성이 윤치영에게 계란죽을 먹여 주며 물었다. 계속 아파하는 게 꼴도 보기 싫어서 음식을 먹여 주는 중이었다. 빨리 나으라고.

아픈 척 힘없이 기대 누워 있던 윤치영이 말했다.

“음… 아침에 깼을 때 주변이 엉망이었단 거 정도?”

“그럼 마지막 기억은 뭔데?”

물음에 윤치영은 제 이마를 짚은 채 고민하다가, 희미한 마지막 기억을 떠올렸다.

“잠든 널 보고 노팅하고 싶다고 생각한 거?”

“…….”

부끄러움 한 점 없는 뻔뻔한 모습에 희성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픈 놈에게 화내고 싶진 않은데, 지난밤 목숨이 위험했던 걸 생각하면 열이 오를 수밖에 없었다.

“그럼, 네가 자고 있던 날 잡아먹을 듯이 침 바른 건 기억 안 나?”

“내가?”

“그래. 도망가던 내 등에도 사냥하듯이 올라탔잖아.”

사납게 말하던 희성의 머리 위로 강아지 귀가 돋아났다. 안 그래도 회복기인 데다가, 잠도 제대로 못 자 피곤한 상태라 수인의 모습이 쉽게 나타났다. 참을 수 없이 화가 난 탓도 컸다.

희성은 침실에 널브러진 베개 솜과 망가진 카펫을 숟가락으로 가리켰다.

“이것도! 네가 솜 다 뜯어 버리고 굴 파듯이 카펫을 긁어서 다 망가졌잖아.”

“아….”

윤치영이 전혀 몰랐다는 듯 나직이 감탄했다. 씩씩대는 희성에 비해 그는 고아한 분위기만이 묻어났다. 보다 못한 희성이 답답하다는 듯 물었다.

“페로몬 쇼크 올 거 같으면 약이라도 먹지, 왜 멍청하게 버텼어?”

물음에 윤치영이 허스키하게 갈라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약으로 버틴 게 그거야.”

“…뭐?”

예상 밖의 대답에 희성은 이번만큼은 화를 내지 못했다. 그 예전 의사와 윤치영이 했던 대화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그간 본체로 돌아가지 않으셨나요?〉

〈강아지 키우느라.〉

윤치영은 자신 때문에 계속 본체로 돌아가지 않았다고 했다.

그게 자신을 공격할까 봐 약을 먹고 버텼다는 뜻이었을까?

생각해 보니 오늘 아침 윤치영은 자신이 무사한 것을 보고 안도했었다. 그 전에는 늘 여유롭던 평소와 달리 극도의 불안에 시달리는 모습도 보였다. 정말 의지대로 이성이 조절이 안 됐다는 뜻일 터였다.

그 사실을 떠올리니 희성은 그에게 무작정 화를 낸 게 미안해졌다.

희성은 다시 슬쩍 침대에 걸터앉아 계란죽을 먹여 주었다. 하얀 꼬리도 미안함에 살랑거렸다. 그에게 뭔가 먹여 주는 이 상황이 낯설었지만, 그간 윤치영이 자신이 아플 때 먹여 주고 씻겨 준 걸 생각하면 이쯤이야 해 줄 수 있었다. 아파 보이던 윤치영이 계란죽을 먹여 줄 때만 생기가 도는 게 수상하긴 했지만….

그때 윤치영이 슬쩍 희성의 무릎을 베고 누웠다. 희성은 당장 밀어낼까 싶었지만 아픈 놈이라 봐줬다. 무사히 무릎베개를 차지해서 기분이 좋은지, 그의 머리 위로 검은 늑대 귀가 간간이 까딱였다.

“근데 그거 알아?”

“뭘?”

“어제 내 행동을 종합해 보면….”

윤치영이 부끄럽다는 듯 제 이마를 짚었다. 검은 머리칼이 그의 이마에 가늘게 떨어지며 시원스럽게 뻗은 회색 눈을 미려하게 가렸다.

“내가 자기 때문에 발정기가 좀 빨리 온 거 같은데… 책임져 줄 거지?”

“…….”

희성은 욕도 아깝다는 듯 옆에 있던 베개로 윤치영을 쥐어 팼다. 하지만 솜이 거의 다 빠져 때려도 타격을 주긴커녕 하얀 솜만이 주변에 흩날렸다. 그 와중에 윤치영은 자꾸만 바닥에 늘어진 솜들이 강아지인 줄 알았다고 해서 매를 더 벌었다.

* * *

결국 윤치영은 병원에 가기로 했다.

의사를 집으로 불러도 됐지만, 이대로 가다간 희성이 어젯밤처럼 위험해질 수도 있기에 직접 병원에 가서 페로몬 완화제를 맞기로 했다. 결단을 내리는 표정이 제법 심각해서 희성이 먼저 윤치영을 챙겨 주게 될 정도였다.

중간에 작은 난관도 있었다.

“오늘은 영배만 따라와.”

윤치영은 페로몬 냄새에 민감한지 조직원들을 모두 물리고, 지영배만 운전수로 데려가겠다고 했다. 조직원들은 이미 반수 상태인 윤치영을 보자마자 멀찍이 물러나 있었다. 희성만 다들 왜 저러는지 몰라 아파하는 윤치영의 손을 잡고 멀뚱멀뚱 서 있었다.

그때 희성에게 지영배가 정중히 물었다.

“이분은 어떻게 불러 드리면 될까요.”

네놈 정체가 뭐냐는 거였다. 강아지로만 살았으니 인간 모습인 희성을 몰라볼 만도 했다. 그래도 희성은 내심 섭섭해져 왜 자신을 몰라보냐는 듯 당당하게 말했다.

“나 강아지인데.”

“…아.”

말하자마자 희성은 후회했다. 얼굴이 후끈 달아올랐고, 옆에서 아픈 척 몸을 기대고 있던 윤치영은 웃음이 터져 입술을 꽉 깨물며 고개를 돌렸다. 표정이 워낙 없어서 로봇이 아닐까 싶던 지영배도 입꼬리를 한번 씰룩였다.

‘씨발. 다 큰 남자가 강아지라 소개하는 게 뭐냐?’

희성이 부끄러움에 어쩔 줄 모르는 사이, 다시 원래의 무표정을 찾은 지영배가 말했다.

“수인이셨군요. 알겠습니다.”

“……?”

희성은 어떻게 이렇게 간단히 넘어가도 되나 싶었다. 역시 프로는 프로인 걸까? 하루아침에 기르던 강아지가 사실 사람이었다고 해도 그저 알겠다고 하다니. 희성은 그게 옆에서 눈빛이 서늘해진 윤치영 때문인 줄도 모르고, 지영배가 참 과묵하다고 생각했다.

병원은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곳에 있었다. 다만 그곳은 희성이 알던 평범한 곳과 완전히 달랐다.

윤치영이 향한 병원은 진료를 받기 위해 대기하는 시간도 없었고 내부 시설도 고급 호텔처럼 우아했다. 그곳에서 윤치영은 빠르게 검사를 받았고, 덩달아 희성도 여러 검사를 함께 받았다.

그렇게 둘은 늑대 일족인 의사와 면담하게 됐다. 희성은 윤치영과 의사의 반대편에 나란히 앉아 검사 결과를 듣게 됐다.

“검사 결과가 뭔가 이상한데… 제가 다시 한번 페로몬 수치 좀 재 보겠습니다.”

“네.”

의사는 희성의 검사 수치를 보곤 의아해하더니, 페로몬 수치를 직접 재기 위해 목뒤를 짚으려 했다. 그러자 옆에 우아하게 앉아 있던 윤치영의 행동이 돌변했다.

으르르….

갑자기 윤치영이 맹수처럼 이를 드러내며 경고했다. 당장 의사를 물어 죽일 것처럼 송곳니를 은근히 드러낸 채 희성을 자신의 품으로 당겼다.

“아, 죄송합니다.”

의사가 당장 손을 무르며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오히려 당황한 건 희성 쪽이었다.

“너 왜 그래…?”

또 윤치영이 어젯밤과 같은 모습을 보여서 희성도 심장이 쿵쿵거렸다. 윤치영은 그저 아무 일도 없던 척 웃어서 이게 당연한 건가 싶을 정도였다.

대답은 오히려 의사가 이해한다는 듯 말했다.

“원래 늑대 일족분들이 겨울쯤 짝을 데려오시면 많이 예민해지십니다.”

“짝 아닌데요.”

이번엔 희성이 송곳니를 은근히 드러내며 예민하게 말했다.

하지만 의사는 그런 희성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다. 어차피 아픈 척하는 윤치영이 정한 짝이라면 곧 이어질 거라 생각되어서였다. 아픈 척이라 확신하는 이유는 페로몬 수치 때문이었다. 지금 페로몬이 쌓일 대로 쌓인 윤치영은 자신도 주체 못 할 정도로 힘이 넘치는 상황일 터였다.

“반려분 페로몬 수치 좀 재겠습니다. 그럼….”

의사가 이번에는 알파독인 윤치영의 허락을 받고, 희성의 페로몬 수치를 조심히 확인했다.

희성은 수치가 6이 나왔고, 그와 반대로 윤치영은 1,210이었다. 200이 정상인 걸 생각하면 둘 다 정상은 아니었다.

안 그래도 희성도 궁금하던 부분이었다. 수인이라면 페로몬이 일반 동물보다 몇백 배는 되어야 할 텐데 이상했다. 희성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수인이 저처럼 페로몬이 옅을 수도 있어요?”

“희귀하지만 가능합니다.”

다시 자리에 앉은 의사가 찬찬히 설명했다.

“페로몬 선은 이차 성징 때 가장 많이 발달합니다. 키 크는 것과 비슷한데, 유전자 탓도 크지만 환경에 따라 충분히 성장의 정도가 다를 수 있습니다.”

의사는 옆쪽의 화면으로 그림 몇 장을 보여 줬다. 윤치영과 희성의 목 뒤쪽에 발달한 페로몬 선을 찍은 사진이었다.

윤치영의 것은 굵직한 나무뿌리처럼 선이 여러 갈래로 발달해 있었다. 하지만 그 옆에 희성의 것은 실처럼 가느다란 선이 중간에 뚝 끊겨 아무것도 없었다.

“윤 이사님처럼 아예 성장기에 본체의 모습만을 유지해서 페로몬 선을 발달시킬 수도 있지만….”

‘…그럼 얘 진짜로 몇 년을 늑대로만 살았단 거야?’

놀란 희성이 물끄러미 윤치영을 쳐다봤다.

그렇다면 예전에 지영배가 말한 감시자가 되기 위한 특수한 훈련은 짐승으로 살았던 세월인 걸까?

어쩌면 그에겐 생각 이상으로 고통스러운 세월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희성이 보기에 윤치영은 늘 우아하고 감정에 충실한 수인이었다. 좋게 말하면 인간다운 놈이었다. 그런데 성장기에 그런 야성의 모습으로 억지로 살았다면… 상당히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생각도 잠시, 이어지는 의사의 말에 희성은 걱정하던 것을 멈추었다.

“반대로 성장기에 충분한 영양 섭취를 못 하면 페로몬 선이 제대로 발달 못 할 수도 있습니다.”

‘…어라.’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희성이 워낙 병원을 멀리하고 살아서 몰랐던 사실이었다. 어릴 때는 몹시 가난했고, 어른이 된 지금은 너무 바빴기 때문이었다.

허약하게 태어난 희성은 어릴 적부터 음식을 먹는 족족 소화를 못 하고 토해 냈다. 가족에게 버려진 뒤로는 도박장에서 죽도록 일하며 제대로 된 음식을 거의 먹지 못했다.

‘…차라리 그냥 몰랐으면 좋았을걸.’

현대 수인 사회에서 야성의 증거인 페로몬쯤이야 옅어도 상관없지만, 그래도 찝찝한 건 사실이었다.

그리고 희성은 내심 자신의 어깨에 기대고 있는 윤치영이 신경 쓰였다. 극과 극인 상황이었지만, 어쩐지 동질감도 느껴졌다.

‘얘도 어릴 때 본체 모습만 유지하고 컸다면… 정상적으로 컸다는 건 아니네.’

윤치영이 원해서 일족의 감시자가 된 것도 아닌데, 비정상적인 훈련으로 아예 짐승 새끼로 키워 놨다.

희성은 어쩐지 윤치영이 안쓰러워졌다. 괜히 그의 허벅지에 손을 올려 못 하는 위로를 하려 했는데, 뭔가 두툼한 게 만져져서 흠칫 놀랐다.

역시 다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윤치영은 희성이 먼저 기둥을 만져 준 게 감동이라는 듯 돌아 버린 듯한 회색 눈깔을 하고 옆을 돌아보고 있었다.

‘시, 시발.’

희성이 기겁해 손을 털어 내려 했지만 윤치영이 태연하게 부푼 앞섶에 희성의 손을 지그시 눌러 뒀다. 놀란 희성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아까 발정기라 하더니 정말이었다. 커도 너무 컸다.

그 책상 아래 상황을 눈치채지 못한 의사는 진지한 표정으로 치료 방법만을 말했다.

“그래도 다행히 반려분이 페로몬 수치가 아주 낮아서, 윤 이사님이 처음으로 공격성도 안 보이고 있으니….”

의사가 잘됐다는 듯 인자하게 웃었다.

“최소 일주일에 한 번은 성관계로 페로몬을 갈무리하시길 권합니다.”

의사의 권유에 윤치영은 환하게 웃었다가, 인상을 꽉 쓴 희성의 얼굴을 보곤 표정을 갈무리했다.

그도 근본은 늑대였다. 교활한 늑대는 섣불리 달려들어 일을 망치지 않았다. 윤치영은 침착하게 대답했다.

“우리 자기가 아직 어려서 섹스는….”

“내가 왜 너랑 섹스를 해?”

이를 드러낸 희성의 사나운 말 한 번에 윤치영은 알겠다는 듯 조용히 머리를 쓰다듬으며 다시 말했다.

“저희가 연애 초기라, 그런 적나라한 권유는 아직….”

쾅.

기어코 희성이 진료실을 박차고 나갔다. 어찌나 화가 난 건지 귀 끝까지 붉어진 채였다.

윤치영은 뭐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희성을 따라 일어나며 의사에게 태연하게 명령했다.

“나 일단 페로몬 완화제 맞춰 줘. 약하게.”

“아, 알겠습니다.”

“고마워. …아, 다음에는 오늘보다 좀 더 제대로 하고.”

반수 상태인 윤치영이 한쪽 늑대 귀를 까딱이며 말했다. 미소 짓는 입술 사이로 은근히 드러난 송곳니가 섬뜩했다. 의사는 그의 눈도 마주치지 못한 채 꾸벅 인사했다. 어느덧 윤치영은 검은 늑대 꼬리를 느릿하게 흔들며 도망간 강아지를 찾으러 갔다.

그 뒤로 의사가 이마에 난 식은땀을 손수건으로 닦았다. 어쨌든 의사도 윤치영의 감시 아래 있는 늑대 일족이었다. 윤치영의 부탁은 사소하긴 했지만, 상대가 상대인지라 긴장이 안 될 수가 없었다. 역시 감시자에게 거슬리지 않고 적당히 남의 연애에 조력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 * *

“의사라서 그런 권유가 쉽나 봐. 자.”

“…열받게.”

윤치영이 딸기 주스를 사 주며 희성을 살살 달랬다. 희성은 사납게 미간을 구긴 채 주스를 받았다. 실은 핫초코를 먹고 싶었는데, 초콜릿은 먹으면 안 된다며 윤치영이 다른 걸 사 줘서 불만이었다.

희성은 라운지의 푹신한 소파에 불량스러운 자세로 앉아 주스를 마셨다. 대체 병원 안에 고급 라운지가 왜 있는지 모르겠지만 윤치영이 살던 세계를 이해하는 건 진작 포기했다. 도박장처럼 밑바닥도 있는데 그만큼 더 좋은 곳도 있겠지 싶었다.

그 와중에 희성의 머릿속에 꽉 들어찬 불만이 있었다.

‘그 거대한 늑대랑 어떻게 같이 자라고.’

희성은 의사의 권유가 말도 안 되게 느껴졌다.

어젯밤에 본 검은 늑대는 그 등이 인간형인 희성의 허리까지 올 정도로 거대했다. 들끓는 울음소리마저 오금이 저릴 정도로 두려운 맹수 그 자체였다.

거기다 지금 반수 상태인 윤치영도 반은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 그는 한결같이 희성의 어깨에 기대 살냄새를 맡아 보고 있었다.

“아, 진짜 미치겠네….”

“들러붙지 마.”

강아지일 때 당하던 뽀뽀에 비하면 좀 나은 상황이긴 했지만, 희성은 내심 무서웠다. 이러다가 또 윤치영이 늑대로 변할 것만 같았다. 아무래도 어젯밤의 일이 트라우마로 남은 듯했다. 역시 윤치영과 함께 자는 게 익숙해졌다고 해도 성관계는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거기다 윤치영은 수상한 전적도 있었다.

“근데 너… 그간 페로몬 쇼크 때문에 애인들이랑 못 잔 거야?”

그 예전 분명 윤건영을 따라온 금발의 남자는 팔에 흉한 흉터가 남아 있었다. 거기다 윤치영이 식인을 한다는 소문도 알음알음 퍼져 있었다. 그 때문에 희성은 자신이 식인 늑대와 한 달이 넘도록 무사히 지낸 게 신기할 지경이었다.

“아니.”

희성에게 편안히 기댄 윤치영이 은근히 웃으며 말했다.

“강아지 만나려고 조신하게 아껴 뒀지.”

“개소리하지 마.”

윤치영은 왜 희성이 자신의 말을 개소리 취급하나 싶었다. 일부일처인 늑대에겐 진심인데. 하지만 희성이 장난을 받아 줄 표정이 아니라서 얌전히 굴었다. 이제 강아지님 비위 맞추는 건 익숙한 일이 됐다.

머뭇대던 희성이 다시 물었다.

“저번에 그 금발의 늑대족 남자는… 페로몬 쇼크 때문에 다치게 한 거 아니었어?”

“그걸 기억해?”

질문에 희성은 어떻게 잊냐는 듯 미간을 심각하게 구긴 채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잊을 수 없는 기억이었다. 윤치영이 사귀던 사람의 손을 물어뜯었다는데 어떻게 잊을까.

“윤치영 님?”

그때 간호사가 윤치영을 불렀다. 자리에서 일어난 윤치영은 검은 롱코트를 벗으며 의외의 말을 남겼다.

“반은 일부러 그랬어.”

“…뭐?”

“나한테 다가오던 애들은 다 이유가 있었어서.”

희성이 놀라 휘둥그레진 눈으로 윤치영을 올려봤다. 윤치영은 그런 희성을 귀엽다는 듯 보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더니, 희성의 등에 도톰한 제 코트를 꼼꼼히 둘러 주고 갔다.

‘그럼… 그것도 다 감시자의 일이었던 건가?’

희성은 담요에 파묻힌 강아지일 때처럼 포근한 모습이 됐다. 하지만 까만 눈에는 더 깊은 혼란만이 남아 버렸다.

* * *

윤치영은 페로몬 완화제를 맞으러 격리실에 들어갔다. 희성은 혼자 있기엔 불안해서 격리실 밖의 유리창에 붙어 서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유리관에 들어간 윤치영은 엎드린 채 팔에는 수액을 맞고, 목 뒤와 등 곳곳에 선이 이어진 패치를 붙인 채 잠이 들었다. 예민해 보이던 표정은 그나마 편안하게 펴졌고 검은 늑대 꼬리도 간간이 까딱였다. 희성은 그의 풀어진 얼굴을 보니 마음이 좀 놓이는 것 같았다.

그때 격리실을 보던 희성에게 간호사가 다가왔다.

“보호자님은 대기실에서 기다리시겠어요?”

“아, 아뇨. 여기 있을게요.”

희성은 보호자라는 단어가 낯설었지만 무던한 척 넘겼다. 유리에 비친 제 꼴을 보니 보호자라는 말은 어울리지는 않는 것 같았다. 발목까지 오는 윤치영의 롱코트를 엉성하게 입은 자신이 그의 보호자가 되다니. 오히려 그간 자신을 돌봐 준 건 윤치영인데 입장이 뒤바뀌니 낯설게만 느껴졌다.

그러다 무심코 윤치영의 의료 카드를 내려다본 희성은 깜짝 놀랐다.

‘이 자식 나보다 6살이나 많았어?’

윤치영이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건 예상했지만, 현실적인 숫자를 보니 괜히 낯설었다. 그간 희성은 윤치영을 ‘야’라 부르는 건 고사하고, 욕설은 물론 실컷 앞발로 두들겨 패며 살았다. 그것도 늑대 일족의 검은돈을 쥐락펴락하는 감시자를.

‘…그냥 계속 야라고 부르지 뭐.’

하지만 희성은 길게 생각하지 않았다. 이제 더는 남의 눈치를 보지 않기로 했다. 더는 잃을 게 없기도 했고, 지칠 대로 지친 마음은 희성의 고민조차 무력하게 만들었다.

“…….”

무리에서 두 번째로 내쳐진 아픈 경험은 희성의 마음을 비뚤어지게 만들었다. 억지로 슬픔을 외면한 탓도 있었지만, 희성은 그 고통을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희성은 형에게 배신당한 일이 슬퍼할 가치가 없다고 고집스레 생각했다. 바닥을 보는 두 눈에 물기가 서렸지만, 희성은 입술을 꾹 깨물어 눈물을 참았다.

자신을 아껴 준 척 이용하려던 형이 나빴던 거다. 그러니 자신은 복수만 생각하는 게 맞다.

억척스럽게 생각한 희성은 다시 격리실을 바라보았다. 빨리 윤치영이 회복해야 박건태를 죽이러 갈 텐데. 그게 아니더라도 윤치영이 건강해야 훨씬 안정감이 느껴지는데. 복수를 생각하니 자꾸만 마음이 조급해졌다.

눈에 고인 물기를 닦던 희성은 옆에 서 있던 지영배에게 말했다.

“나 화장실 갔다 올게.”

“혼자 다니시면 위험합니다.”

“혼자 갈래. 어차피 가깝잖아.”

강아지로 지낸 경험 때문인지 희성은 지영배에게 자연스럽게 말을 놨다. 지영배도 그 점을 딱히 상관하진 않았지만, 희성이 혼자 다니는 것만큼은 걱정되는지 뒤를 따라오려 했다.

“따라오지 마.”

눈물을 들키기 싫어 희성은 일부러 지영배를 따돌리고 화장실로 갔다. 어차피 화장실은 코너를 돌면 바로 있었다.

희성은 검은 대리석으로 된 세련된 화장실을 보곤 이곳저곳에 참 많이도 돈지랄을 해 놨다고 생각했다. 병원 화장실인데 파우더 룸도 따로 있었다. 낯선 곳에 들어선 소동물처럼 머뭇대던 희성은 일단 세면대로 다가가 주스 컵을 내려놓고, 손등을 다 덮은 코트 소매를 걷어 올렸다.

그때 뒤쪽에서 누군가 다가왔다.

“윤 이사님이랑 같이 오신 분 맞죠?”

“네?”

희성이 고개를 들자 거울 너머 금발의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그 예전 윤건영과 함께 왔던, 윤치영을 겁내던 늑대족 남자였다.

의아하게 뒤를 돌아보자 그와 눈이 마주쳤다. 희성보다 키가 반 뼘은 큰 남자는 오늘 매끈한 정장을 입고 있었다. 다만 치료를 받으러 병원에 온 건지, 손등에는 여러 의료 패치가 붙여져 있었다.

“윤 이사님이랑 아는 사이인데, 신기해서 여쭤봤어요. 양혜찬입니다.”

‘…와.’

소개에 대답도 못 한 채, 가까이서 그를 본 희성은 내심 감탄했다. 양혜찬은 완숙한 매력이 느껴지는 청년이었다. 몸에 걸친 양복도 잘 어울렸고, 겁먹을 때는 몰랐지만 편안한 미소를 짓고 있으니 곱게 자란 귀족 도련님 같았다. 척 봐도 밑바닥에서 구를 대로 구르며 자란 자신과는 결이 다른 수인이었다.

‘…윤치영은 이런 사람이랑 만났던 거구나.’

희성은 어쩐지 마음 한구석이 불편해졌다. 그냥 상대가 윤치영과 만났던 사이라는 걸 아니 그가 좀 재수 없게 느껴졌다.

희성은 다시 옆쪽의 거울을 봤다가 미간을 찌푸렸다. 하얗고 아직 소년다운 모습이 남은 자신이 보였다. 하필 사이즈가 큰 윤치영의 코트를 어정쩡하게 입고 있어서 더 미숙해 보였다. 그중 가장 싫은 건 까만 눈에 고인 눈물을 남에게 들킨 것이었다.

아무 일 없던 척 희성은 미간에 인상을 쓴 채 세면대의 물을 틀었다.

“견희성이요.”

“늑대 일족이신가요?”

“아니요. 견인족.”

희성은 손을 씻으며 건성으로 대답했다. 견인족이란 사실도 거리낌 없이 말했다. 어차피 수인의 30%가 견인족일 만큼 흔한 종족이라 상관없었다.

그런데 양혜찬은 그 대답을 듣자마자 세면대에 걸터앉아선 희성을 깔보듯 내려다봤다.

“역시 개였구나.”

재수 없는 순혈 늑대들. 또 시작이다.

도박장에서 수인종 차별에 시달릴 대로 시달린 희성은 그저 귀찮다는 듯한 얼굴로 손을 마저 씻었다. 반면 옆에서 양혜찬은 친절하고 사근사근한 어투로 말을 이었다.

“윤 이사님이 요새 이상하게 자꾸 개를 데리고 다니네….”

“…….”

“괜찮겠어요? 페로몬 완화제 맞으러 온 거 보면 위험한 거 같은데.”

“왜요?”

“그건 관계에 따라 달라지는데… 무슨 사이예요?”

“같이 자는 사이요.”

희성은 지기 싫은 마음에 무작정 대답했다.

‘내가 왜 이렇게 대답했지?’

말하고 후회하긴 했지만, 어쨌든 거짓이 아니라 진짜였다. 희성은 강아지로 지낼 때부터 항상 윤치영과 한 침대에서 잤다.

“같이 잔다고?”

하지만 거짓이라 생각했는지 양혜찬이 은근한 비웃음을 머금었다. 순혈 늑대 특유의 상대를 멸시하는 그 눈빛이 무척 엿같이 느껴졌다.

“그런 사이면 윤치영이 격리실에 들어가진 않았을 텐데.”

‘무슨 상관이래.’

희성은 그저 뚱한 얼굴로 거울 너머 그를 노려봤다. 대체 그가 자신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변했네. 나랑은 죽어도 안 자려고 하더니.”

양혜찬은 은근히 윤치영과 자신이 만났던 사이인 데다가, 아껴 준 척 어필했다.

희성은 그제야 이 자식이 자신을 엿 먹이려고 말을 걸었다는 걸 눈치챘다. 희성은 노골적으로 귀찮다는 기색을 보이기 시작했다. 도박장과 달리 이제 손님 앞에서 기분에 따라 표정을 어필할 수 있어서 소소하게 편했다.

“그 성격에 개를 데리고 다니는 걸 보면 분명 목적이 따로 있을 텐데….”

양혜찬이 희성을 위아래로 살피더니, 퍽 걱정스러운 척 목소리를 죽이고 말했다.

“동족도 물어뜯는 식인 늑대인데. 괜찮겠어요?”

“네.”

“아직 어려 보여서 내가 도망갈 기회 주는 거예요.”

“아… 신경 끄세요.”

“혹시 그 짐승한테 뭐라도 받….”

위이잉!

희성은 그를 무시한 채 핸드 드라이어를 가동했다. 저번엔 강아지로 만나서 양혜찬은 모르겠지만, 그와 구면인 희성은 그가 좀 구질구질해 보였다. 헤어진 전 애인을 욕하고 다니는 것 같아서.

‘누가 누굴 보고 짐승이래.’

거기다 수인에게 짐승이란 말은 큰 모욕이었다. 희성 역시 내심 윤치영을 짐승이라 생각하긴 했지만 양혜찬과는 결이 다르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윤치영을 욕해도 자신이 욕했다. 희성은 갑자기 속이 부글부글 끓기 시작했다.

희성은 나름 윤치영에 대해 많은 걸 알고 있었다. 윤치영은 원해서 감시자가 된 것도 아니었고, 성장기에 그의 페로몬 선을 과하게 발달시킨 것도 늑대 일족이었다. 그런데 경고인 척 떨어지라는 말을 들으니 열이 받았다. 가족 행사 때 본 늑대들처럼, 양혜찬도 왜 윤치영을 외톨이로 만들지 못해 안달인지 모르겠다.

한편으로는 자신이 왜 이렇게까지 화가 나는지 이해가 안 됐지만, 희성은 이런 비겁한 뒷담화를 듣고 윤치영과 떨어질 생각이 없었다. 어쨌든 윤치영은 희성에게 유일하게 남은… 복수 동업자였다.

그래도 병원에서 소란을 피울 수는 없었다.

‘…일단 참자. 윤치영도 아픈데.’

한숨을 깊게 내쉬며 겨우 참아 낸 희성은 손을 털고 화장실을 나가려 했다. 그 등 뒤로 양혜찬이 빙글대며 하는 말이 들렸다.

“난 분명 경고했어요. 그 자식 식인 늑대라고.”

“…….”

역시 참기 싫었다. 생각해 보니 그럴 이유도 없었다. 희성은 이제 눈치 볼 사람도, 더는 잃을 것도 없었다.

다시 뒤돌아선 희성은 양혜찬을 사나운 눈으로 바라보며 성큼성큼 다가갔다.

“딸기 주스 드실래요?”

“음, 괜찮습….”

양혜찬의 대답이 끝나기도 전이었다. 비웃음을 머금은 얼굴에 희성이 딸기 주스를 확 부어 버렸다. 처음으로 양혜찬의 얼굴에 멸시가 사라지고 당황과 분노가 서리기 시작했다.

플라스틱 컵을 세면대에 탁 내려 둔 희성은 송곳니를 은근히 드러낸 채 말했다.

“내 앞에서 윤치영 까지 마. 내가 걔 보호자니까.”

“…아, 씹….”

“뭐. 꼬우면 너도 네 보호자 데려와.”

경고를 남긴 희성은 다시 화장실을 빠져나왔다. 그 뒤로 늑대의 그르렁거리는 소리가 점점 크게 화장실에 울렸다. 본능적으로 희성의 걸음이 빨라졌다. 하필 어젯밤 늑대에게 잡아먹힐 뻔해서 맹수의 울음소리에 평소보다 더욱 질겁하게 됐다.

빠른 걸음으로 화장실을 나온 희성은 복도 코너를 돌자마자 지영배에게 급하게 말했다.

“영배 형, 나 사고 쳤어.”

“…예?”

지영배가 미처 상황을 이해하기도 전에, 희성은 바로 옆쪽 보호자 대기실 문 뒤에서 강아지로 변해 버렸다.

옷은 대충 문 뒤에 쑤셔 둔 강아지는 앞발을 동동 구르며 어쩔 줄 몰라 하다가, 무작정 지영배의 바짓단을 꾸물꾸물 파고들어 가 양복 양말을 신은 발목을 앞발로 꼭 붙잡았다. 옷 더미에 숨어도 되지만 체취를 숨겨야 하니 지영배에게 붙는 게 최적이었다.

그사이 복도에 양혜찬의 거칠어진 목소리가 울렸다.

“지금, 여기 지나간 개새끼 봤어?”

“못 봤습니다.”

지영배가 목소리 톤 하나 바뀌지 않고 모른 척해 주었다. 희성은 동화에서 왜 사슴이 나무꾼에게 보답했는지 알 것 같았다. 갑자기 사고에 휘말린 건데도 지영배가 제 편을 들어줘서 무척 고마웠다.

이후 양혜찬이 몇 번 더 추궁했지만 지영배의 대답은 철벽같았다. 바짓단에 숨은 강아지는 긴장에 짧은 꼬리를 빠르게 흔들며 숨소리를 죽였다.

그때 양혜찬이 집요하게 물었다.

“이번에 윤치영이 데려온 그 개, 진짜 둘이 자는 사이야?”

‘대체 쟤는 그걸 왜 꼬치꼬치 캐묻는 거야?’

희성은 양혜찬이 정말 구질구질하게 느껴졌다. 전 애인 소문이나 캐묻고 다니다니. 그사이 지영배가 묵직하게 대답했다.

“제가 대답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하, 진짜 자는 사이인가 보네.”

강아지는 기가 찬다는 듯 읊조리는 양혜찬을 그저 한심하게 여겼다. 일부일처인 늑대족의 감시자에게 평생의 짝이 생겼단 걸 알려 준 줄은 꿈에도 모른 채. 윤치영이 알면 입을 틀어막을 정도로 감동할 일이었다.

* * *

이후 양혜찬은 몇 번 더 지영배에게 희성과 윤치영의 관계를 추궁하다가 버렸다. 다만 윤치영이 병원에 누군가와 함께 왔단 자체로 확신이 섰는지, 둘이 애인 관계임을 확신하고 사라졌다.

“나오셔도 됩니다.”

복도가 조용해지자 지영배가 희성을 발목에서 꺼내 줬다. 특유의 섬세한 손길이 유독 조심스러웠다.

곧 바짓단 안에서 하얀 솜 덩어리 하나가 굴러떨어졌다. 털이 엉망으로 선 강아지는 예리한 눈으로 지영배에게 물었다.

‘갔어?’

“예.”

지영배가 엉망이 된 강아지의 머리를 잘 쓸어 넘겨줬다. 희성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지영배의 손에 올라탔다. 표정은 진지했고 아직도 긴장감이 가시지 않아 꼬리가 가쁘게 떨리고 있었다.

어쨌든 양혜찬에게 주스를 부은 건 후회되지 않았다.

먼저 제 앞에서 윤치영 욕을 했으니까. 하지만 양혜찬이 순혈 늑대 중에서도 수장의 애인이라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나 괜찮을까?’

고민하던 희성은 신체 언어로 지영배에게 물었다.

윤치영의 눈치를 보는 건 아니었다. 다만 지금 윤치영이 페로몬 쇼크로 예민해진 상태라는 게 마음에 걸렸다. 안 그래도 몸이 안 좋은데, 충격을 더 줬다가 또 페로몬 쇼크가 올까 봐 걱정이었다. 한편으로는 처음으로 윤치영에게 혼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는 순혈 늑대 중에서도 수장의 애인을 건드렸으니 대형 사고가 맞았다.

의외로 지영배는 무덤덤하게 굴었다.

“괜찮으실 겁니다. 먼저 맞으신 거라면.”

‘내가 선빵 친 건데.’

역시 한 대 먼저 얻어맞았어야 했다. 희성은 양혜찬에게 시비를 더 걸어 볼 걸 후회했다. 하지만 주스를 던진 건 후회되지 않았다.

그때 격리실 안에서 부름이 들렸다.

“윤치영 보호자님?”

왕.

강아지가 대답하자 지영배가 희성을 안아서 옮겨 줬다. 간호사는 지영배를 안내하려다가, 강아지가 품에서 감사하다고 꿍얼대는 걸 못 알아듣고 그저 귀엽다는 듯 활짝 웃었다. 늑대 보호자의 본체가 강아지라곤 미처 생각을 못 해서였다.

그때 격리실로 의사가 차트를 들고 들어왔다.

“보호자님이….”

‘저입니다.’

희성이 앞발을 들며 대답해도 의사는 아까 봤던 어려 보이는 보호자를 못 찾다가, 일단 지영배에게 윤치영의 주의 사항을 설명해 주기 시작했다.

“일단 페로몬 완화제로 수치가 1,018까지 떨어졌지만, 당분간은 환자분에게 무리한 자극을 주지 않으셔야 합니다. 위협이나 불안을 느끼면 페로몬 쇼크가 다시 터질 확률이 높습니다.”

왕.

“또 분리 불안이 나타날 수 있으니, 반려분이 최대한 붙어 있으시길 추천합니다. 안정감으로 페로몬 수치가 완화될 수 있습니다. 아, 다른 수인의 페로몬은 공격성을 키울 수 있으니 되도록 멀리해 주십시오.”

왕!

“지, 지금은 환자분이 안정적으로 깨어나실 수 있도록 곁에 있어 주시고, 계속 말을 걸어 주시면 좋습니다.”

왕.

“그럼… 제 말 보호자에게 전달 부탁드립니다.”

의사는 대답을 잘해 주는 강아지를 당황한 채 바라보다가 자신도 모르게 작은 머리를 한번 쓰다듬어 주고 갔다. 아까 희성을 직접 검사하긴 했지만, 본체와 인간형의 모습을 매치하지 못했다.

의사가 당황하든 말든, 희성은 유리관 안에 상체를 탈의한 채 누워 있는 윤치영을 바라봤다. 그는 여전히 반수 상태였고 등과 목 뒤에 붙어 있던 패치는 제거한 채였다.

‘저번에 페로몬 쇼크 뒤에 보였던 게 분리 불안이었나?’

희성은 아침에 윤치영이 자신을 찾으며 패닉에 빠졌던 모습을 떠올렸다. 어쨌든 그 무서운 페로몬 쇼크를 다시 겪지 않으려면 이제 윤치영에게 붙어서 유리 공예처럼 애지중지해 줘야 했다.

희성은 탄탄하게 단련된 그의 상체를 부러움과 짜증을 담아 노려보다가, 그의 얼굴을 바라봤다. 윤치영은 서서히 깨어나는지, 미간을 아프게 구긴 채 엎드렸던 몸을 느릿하게 돌려 바르게 누웠다. 팔에 돋은 힘줄이 간간이 불끈거리는 모습이나, 이마의 식은땀을 보면 아직 고통스러운 듯했다.

희성은 의사의 말대로 그를 깨우기 위해 아무런 말이나 걸었다.

‘일어나. 나 새우 사 줘.’

‘일어나라고.’

‘내가 네 전 남친 이겼어.’

희성이 꿍얼거리자 윤치영이 살살 미간을 풀고 옆을 돌아봤다. 그는 작은 강아지를 보자마자 희게 웃었다. 매일 아침 눈이 마주치면 보던 행복한 웃음이었다.

눈이 마주치자 강아지는 머뭇거리다가 유리관에 앞발을 댔다. 발바닥의 젤리가 유리에 잘 붙었는지, 윤치영이 귀여워 죽겠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앞발이 닿은 곳을 손가락으로 매만졌다.

“나 기다렸어?”

…왕.

희성은 괜히 열이 오르는 느낌이었다. 이 잔인한 늑대 놈은 막 깨어났을 때의 얼굴이 가장 볼 만했다. 늘 우아하게 굴던 그가 적당히 부스스해진 모습으로 있을 때면 꼭 흐트러진 보석을 보는 것 같았다. 그 때문에 희성은 아침에 윤치영이 느슨해진 모습만큼은 보기 좋다고 생각했다.

다만 한 가지 걱정이 있었다.

‘사고 친 거 어떻게 말하지?’

기분 좋게 웃는 윤치영을 보니 사고를 쳤다고 말하기가 좀 미안했다. 희성은 슬쩍 자신을 들어 올린 지영배에게 눈짓을 한번 했다. 통역 잘해 달라는 뜻이었다.

강아지는 미안한 마음을 머금은 채, 윤치영에게 용기 내 말해 보았다.

‘근데 나, 사고 쳤어.’

“강아지께서 양혜찬 도련님에게 이사님과 애인 관계임을 표명하고 딸기 주스를 던지셨습니다.”

‘야!’

크나큰 배신감에 강아지는 지영배를 향해 크게 짖었다. 차라리 평소처럼 엉망이던 통역을 해 줄 것이지, 이런 초월 통역을 바라진 않았다.

그래도 사실이긴 해서 면목이 없었다. 희성이 슬슬 윤치영의 눈치를 보는데, 어째 반응이 이상했다.

“큭큭큭큭큭….”

윤치영은 귀여운 사실을 들은 것처럼 오히려 잘게 어깨를 떨며 웃고 있었다. 잠결에 짓는 느슨한 웃음이 편안하면서도 통쾌해 보였다. 강아지는 영문도 모른 채 그를 보며 꼬리를 슬슬 흔들었다. 생각보다 윤치영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아서 마음이 놓였다.

한참 웃던 윤치영이 겨우 웃음을 갈무리하며 물었다.

“하, 강아지 질투해서 그런 거야?”

‘질투겠냐?’

“이제 질투까지 해 주네.”

강아지는 한심하게 윤치영을 쳐다봤다.

질투라니. 말도 안 됐다. 그냥 희성은 양혜찬이 재수 없어서 그랬다고, 고집스럽게 생각했다.

지잉.

그때 유리관이 천천히 열렸다. 그러자 지영배가 강아지를 윤치영의 가슴팍에 놓아주더니 도망치듯 격리실을 바로 빠져나갔다. 윤치영에게 최대한 페로몬을 노출하지 않기 위해서임을 알았지만, 희성은 그가 조금 원망스러웠다. 식인 늑대와 단둘이 남겨 두다니.

그런데 긍정적인 효과가 있었다.

‘진짜 페로몬 수치가 내려가네?’

안정감 때문인지 화면에 실시간으로 나타나던 페로몬 수치가 1,013으로 조금 내려갔다. 내친김에 희성은 윤치영의 가슴에 호빵처럼 둥글게 주저앉았다. 수치가 더 내려가라고.

그때 윤치영이 강아지를 쓰다듬으며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했다.

“잘했어. 우리 강아지가 내 복수해 줬네.”

‘복수?’

희성은 의아했지만 강아지 모습인지라 더 물을 수가 없었다. 그게 조금 답답했지만, 그래도 윤치영을 위해 일부러 강아지 모습을 유지했다. 어차피 사람일 때는 윤치영이 자신의 살냄새를 맡으며 발정 난 것처럼 구니, 지금 이 모습을 유지하는 게 윤치영에게 펫 테라피가 되는 것 같아 더 나은 듯했다.

잠에서 완전히 깰 때까지 편안히 쉬던 윤치영은 천천히 병원을 빠져나왔다.

‘내가 복수해 줬어.’

차에 탈 때까지, 계속 강아지의 꼬리가 흔들렸다. 평소와 다른 상황에 희성은 내심 들떴다. 대형 사고를 쳤는데 원만하게 넘어간 데다가 칭찬까지 들었다. 박건태 새끼와 살 때는 겪은 적 없는 일이었다.

그 꼬리를 보며 슬슬 웃던 윤치영이 품에 둔 강아지의 사진을 마구 찍기 시작했다.

“가끔은 정말, 미칠 거 같아….”

희성이 한 말이 아니었다. 윤치영이 나른하게 한 혼잣말이었다. 강아지가 한심해하는 눈으로 올려다봐도, 윤치영은 카메라를 섬세하게 들이밀며 읊조렸다.

“내 애인 강아지인데 질투도 해.”

‘또라이.’

희성은 뚱하게 생각했지만 그를 나무라진 않았다. 윤치영이 자신의 편을 들어준 것만큼은 좋아서. 거기다 복수를 해 줬다는 말에 의기양양해졌다. 강아지는 가슴 털을 부풀린 채 윤치영의 한쪽 허벅지에 당당하게 자리했다. 상황을 자세히 듣지 않고 넘어가 주는 윤치영이 좋다기보단, 그가 잘했다고 이해해 줘서 고마웠다. 이제 자신에게도 안정감을 느낄 수 있는 무리가 생긴 것만 같았다.

* * *

집에 돌아오니 큰 변화가 생겼다. 희성의 방이 생겼다.

오늘 윤치영을 따라오지 않은 조직원들이 개조해 둔 듯했다. 제 방을 보자마자 반수로 변한 희성은 동그래진 눈으로 주변을 살폈다. 갑작스러운 선물에 까만 두 눈이 반짝거리고 꼬리가 살랑 흔들거렸지만, 받는 게 익숙하지 않은 희성이 저도 모르게 퉁명스럽게 물었다.

“갑자기 내 방을 왜 만든 거야?”

“우리 같이 살 거니까. 당연히 있어야지.”

뒤쪽에서 윤치영이 희성의 어깨에 가운을 걸쳐 주며 껴안았다. 희성은 귓바퀴가 윤치영에게 깨물리면서도 세련된 방을 낯설게 둘러봤다.

희성의 방은 침실 다음으로 큰 방이었다. 붙박이장을 열어 보니 온갖 브랜드의 새 옷과 신발이 빼곡했고 그 옆으로는 푹신한 소파와 테이블, 그리고 새 노트북까지 있었다.

의아한 점은 방에 침대가 없었다. 희성은 어차피 윤치영과 자니 상관없다고 생각하다가 흠칫했다. 왜 얘랑 자는 게 당연해졌나 싶어서.

그보다 큰 불만은 따로 있었다.

희성은 미간을 꽉 구긴 채 방 한쪽을 노려봤다. 알록달록한 강아지 용품과 강아지들에게 인기라는 기절 방석이 구비되어 있었다.

“내가 진짜 강아지인 줄 아나.”

“그러게. 우리 강아지 투견인데.”

윤치영은 그럼 강아지가 아니면 뭘까 싶었지만 일단 맞춰 줬다. 어쨌든 강아지가 하는 말은 다 맞았다. 희성은 마음에 안 든다는 듯 불만스러운 듯한 얼굴로 강아지 용품을 살펴봤다. 싫은 척은 했지만 그래도 필요한 게 많아서 까만 두 눈에 생기가 돌았다.

“…….”

이내 희성은 힘없이 눈을 돌렸다. 역시 늑대 소굴에 자신의 방이 생기는 게 낯설고 이상했다. 자신이 정착할 곳은 이곳이 아니었다.

“멋대로 내 방 만들지 마.”

“왜?”

“어차피 난 독립할 거야.”

그 말에 뒤에 서 있던 윤치영의 나직한 기세가 느껴졌다. 싸늘해진 분위기에 희성은 뒤를 돌아보기 두려워졌다. 늘 살갑게만 굴던 윤치영의 분위기가 급변한 게 너무도 낯설었다.

잠시 틈을 두고 윤치영이 평소처럼 부드럽게 물었다.

“여기서 나랑 평생 살기로 했잖아.”

“난 그런 말 안 했어.”

희성이 착잡하게 가라앉은 얼굴로 바닥 어딘가를 보며 말했다. 세련되게 꾸며진 방 안에 묵묵한 침묵이 흘렀다.

배신당한 뒤 희성은 조금 변했다. 복수 동업자인 윤치영의 집에 제 공간이 생긴 게 내키지 않았다. 빚을 진 느낌도 싫었고 이제 누구에게도 의지하고 싶지 않았다. 이런 관계는 언젠가 파탄이 날 테였고 그렇게 되면 물질적인 것이든 감정이든 희성이 짊어지게 될 것이었다. 그럴 바엔 차라리 혼자 빈털터리로 시작하는 게 나았다.

“…….”

침묵 끝에, 윤치영이 백허그를 하고 있던 손을 풀었다. 의아함을 느낀 희성이 머뭇대며 뒤를 돌아보자 무표정한 그의 얼굴이 보였다. 자신의 목덜미를 내려다보는 회색 눈은 예리하게 날이 선 채 갈증에 번들거리는 것 같았다. 꼭 간밤에 봤던 늑대의 눈 같았다.

희성은 오싹한 소름이 돋아 한 걸음 물러나려 했는데, 윤치영이 허리를 은근히 힘주어 끌어당겼다. 이내 그가 평소처럼 눈을 마주치며 여리게 웃었다. 희성이 그 모습을 낯설게 보는 사이, 그가 작은 타협점을 제시했다.

“그럼 옷이라도 강아지가 써 줘.”

“옷?”

“응. 내 옷은 안 맞았잖아.”

그러긴 했다. 그간 희성은 사이즈가 몇 치수는 큰 윤치영의 옷을 입고 다녀서 불편했다. 희성은 망설이긴 했지만, 내심 자신의 옷을 원했던지라 몇 가지만 구경해 보기로 했다. 윤치영도 그제야 희성을 놔주더니, 붙박이장을 보란 듯이 부드럽게 열어 주었다.

붙박이장 안에는 수많은 옷이 계절별로 빼곡했다. 도박장에서 살 때 가졌던 옷이 한 박스도 안 되던 희성에겐 다른 세상 같았다.

‘내 새 옷….’

희성은 평소 가지고 싶던 코트를 먼저 꺼내 보았다. 싸구려 양복이나 형에게 물려받은 옷이 아닌, 이렇게 진짜 자신에게 맞는 옷을 가져 보고 싶었다. 희성은 고급 코트의 결을 쓰다듬어 보았다. 한눈에 봐도 양혜찬이 입던 것처럼 고급스러워 보였다.

양혜찬. 자신도 모르게 그를 떠올린 희성은 궁금한 것을 머뭇머뭇 물었다.

“근데… 양혜찬, 걔는 뭐야? 왜 아까 내가 복수해 줬다고 한 거야?”

물음에 희성을 즐겁게 보던 윤치영이 여상하게 대답했다.

“그냥. 걔가 나 죽이려고 했었어.”

“…뭐?”

희성이 놀라 뒤돌아봤다. 소파에 우아하게 앉아 검은 꼬리 끝을 까딱이는 윤치영이 보였다. 그는 심각한 일을 지루한 추억이라는 듯 가볍게 말했다.

“내가 걔네 형을 처리했었어. 그래서 양혜찬이 우리 누나랑 합심해서 나한테 일부러 접근한 거더라고.”

“너희 누나는 왜?”

“원래 수장들은 감시자가 너무 강하면 싫어해.”

“…….”

희성은 그제야 감시자가 겪는 진짜 고충을 알았다. 일족을 감시하고 처리하는 것 자체로 힘들 줄 알았는데, 친인척에게 원한까지 사게 되는 역할이었다. 희성은 그가 일족이 모인 행사 자리에서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하던 걸 떠올렸다. 자신이 다 화나는 기억이었다.

희성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었다.

“그럼 양혜찬 형을 네가 죽였단 거야?”

“안 죽였어. 배신한 값어치만큼만 대가를 치르게 했지.”

“아, 그럼 뭐….”

희성의 심각하던 표정이 풀어졌다. 그럼 배신자는 결국 자업자득 아닌가. 희성은 의를 중요시하는 투견들에게서 자라난 만큼 배신에는 그만한 대가가 따른다고 당연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양혜찬을 일부러 물어뜯었다고 한 거였구나….’

아마 윤치영 성격이면 일부러 자신에게 다가오게 해서 간을 본 뒤, 보복했을 가능성이 컸다. 희성이 보기에 윤치영은 늑대 중에서도 가장 교활했으니까. 그나마 강아지인 자신에겐 실컷 뽀뽀나 하는 멍청한 모습만 보여서 다행이었다.

“…….”

다만 희성은 한 가지가 마음에 걸렸다.

어쨌든 윤치영은 제게 주어진 일을 했을 뿐인데도, 동족에게 원한을 사게 돼서 목숨을 위협받고 있었다. 거기다 가족인 누나까지 그를 죽이려 들었다. 그런데 윤치영은 그런 일을 한두 번 겪은 것 같지도 않았다.

눈빛이 까맣게 가라앉은 희성이 새 신발을 매만지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넌 안 슬퍼?”

“왜?”

“형제가, 누나가 널 죽이려 했던 거잖아.”

“강아지는 슬퍼?”

“씨발, 안 슬퍼.”

희성이 인상을 콱 쓰며 고집스레 말했다. 그 반응에 윤치영이 그저 반한 것처럼 회색 눈을 접어 웃어서 더 열이 받았다. 하지만 희성은 그깟 배신을 당했다고 구질구질하게 굴고 싶지 않았다. 자신은 슬퍼할 이유가 없다고 고집스럽게 믿었다.

소리 없이 웃음을 갈무리한 윤치영이 소파 등받이에 팔을 기대며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괜찮아. 어차피 기대도 안 했어.”

“…….”

그 모습에 희성은 할 말을 잃었다. 말없이 시선을 떨군 희성은 손에 쥔 새 신발을 만지작거렸다.

최근 자신도 가족 같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해서일까. 괜찮다고 하는 윤치영에게 마음이 쓰였다. 그도 자신도 유독 무리의식이 강한 갯과 동물임을 알기에 더욱 그랬다.

무리에서 버려지거나 배척당하는 그 좆같은 느낌. 희성은 매일 밤 악몽을 꿀 정도로 고통스러웠는데, 윤치영에겐 당연한 일상이었다.

“…그게 어떻게 괜찮아?”

“음, 화가 나긴 했는데….”

윤치영이 웃으며 살며시 손을 뻗었다. 그는 희성의 팔을 쥐어서 제 곁으로 조심히 당겼다.

“강아지 만나고 다 괜찮아졌어. 나 도박도 다 끊었잖아.”

그러고 보니 희성은 윤치영이 수많은 도박장의 VIP인 걸 아는데, 자신을 만나고 정말로 도박장을 간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냥 일만 하며 24시간 동안 강아지를 끼고 헤프게 사는 줄 알았는데. 정말 자신을 만나고 나서 달라진 거였다. 워낙 함께 있는 게 당연해서 새삼스럽게 느껴지는 사실이었다.

소파에 앉은 윤치영이 앞에 선 희성을 껴안았다. 그는 희성의 허리에 뺨을 댄 채 검은 늑대 귀를 까딱이며 말했다.

“그러니까 나 혼자 두고 가지 마….”

“…….”

“자기가 내 보호자잖아.”

말할 때마다 윤치영의 등 뒤로 검은 꼬리가 살랑였다. 희성이 알기로 늑대들은 꼬리를 흔들지 않는다던데, 식인 늑대가 강아지를 따라 하고 있었다. 서로를 따라 하는 건 동족이라는 표시였다.

“…….”

희성은 얼떨떨하게 눈을 뜬 채 제 품에 안긴 윤치영의 머리를 찬찬히 안아 보았다. 늑대 귀는 쓰다듬기 쉽게 뒤로 눕혀져 있었고 윤치영도 편안하게 눈을 감았다.

다만 상황을 채 이해하지 못한 강아지의 눈에는 혼란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그 안에는 야트막한 기대감도 서려 있었다.

자신이 이곳을 벗어나면 혼자가 되듯 윤치영도 혼자가 된다. 미래는 알 수 없다고 해도, 지금 우리는 서로뿐이었다.

그에게 조금이나마 마음이 기운 희성은 윤치영의 머리를 품에 깊숙이 껴안았다. 가슴이 빠르게 두근거렸다. 수인은 타고나는 본능이 매우 강했다. 무리에 소속되고 싶어 하는 본능적인 충족감은 희성을 매료시켰다. 강아지는 제 빨라진 심장 박동이 그에게 전해지는 줄도 모르고 평소처럼 억세게 말했다.

“그런 말로 꾀어내려 하지 마.”

“눈치챘어?”

윤치영이 교활하게 눈을 휘어 웃었다. 그는 제 품에 걸려든 희성의 몸을 더욱 가까이 당겼다. 몸이 이끌린 희성은 소파에 앉은 윤치영의 무릎 위에 앉게 됐다.

창밖에는 해가 뉘엿뉘엿 지며 은근한 빛이 새어들었다. 고요함 속에서 윤치영이 희성을 하얀 뺨을 깨물고 버릇 나쁜 입질을 했다. 서로 밀어내고 당기는 손장난이 이어지며 살이 스치는 소리가 유독 생경하게 들렸다.

연달아 윤치영이 장난스럽게 희성의 마른 턱을 깨물었다. 희성이 별 거부감도 없이 웃자, 그는 입꼬리를 올리며 즐겁게 웃었다. 이내 윤치영은 버드 키스를 하듯 희성과 입술을 겹쳤다.

“너….”

놀란 희성이 흠칫 입술을 뗐다. 강아지일 때는 질리도록 윤치영과 뽀뽀를 하긴 했지만, 사람형일 때 입을 맞추는 건 역시 낯설었다. 하지만 윤치영은 오히려 뭐가 문제냐는 듯, 고운 미간을 가엾게 구겼다.

“왜?”

그는 고개를 기울이며 퍽 안쓰러운 눈으로 물었다.

“우리 둘뿐인데… 안 돼?”

“…….”

우리 둘뿐이라는 말이 희성에게 유독 와닿았다. 단순히 이 공간에서 우리 둘뿐이라는 게 아니라, 희성에겐 넓디넓은 세상에서 제 편이 그뿐인 것만 같았다.

늘 희성에게 다가오던 사람들은 말간 인상만 보고 많은 걸 기대했다. 그중 질이 나쁜 놈들은 특별한 서비스를 기대했다. 한 번도 희성 본연의 모습을 받아들여 준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윤치영은 달랐다. 비록 과거가 베일에 감싸인 식인 늑대라 해도, 희성의 모든 모습을 스스럼없이 받아들여 주고 이유 없는 애정을 알려 준 유일한 사람이다. 희성은 세심한 눈으로 윤치영의 수려한 얼굴 곳곳을 바라봤다. 입술을 깨물며 무언가 견디던 윤치영이 이마를 맞대며 눈을 감았다. 자신 좀 봐 달라는 듯, 희성의 허리를 붙잡은 손에 은근한 힘이 들어갔다.

역시 그를 밀어내고 싶지 않았다.

희성은 처음으로 윤치영에게 받은 걸 되돌려 줬다. 잠깐 망설이긴 했지만, 이내 윤치영의 입술에 별 요령 없이 달려들었다. 그 서툰 모습에 윤치영이 입꼬리를 올려 웃다가도, 기꺼이 희성을 껴안고 부드럽게 혀를 섞었다. 희성의 모든 것을 품 안에 가두듯 팔로 몸을 꽉 감싸 안았다.

이내 희성은 강아지일 때처럼 이제 그의 입술을 별 거부감 없이 받아들였다. 하지만 윤치영의 숨결이 금세 거칠어지려 해서 일부러 키스를 깊게 하진 않았다.

그의 입술을 깨물어 대던 희성이 조금 고개를 뗀 채 말했다.

“근데 수장은 왜 내버려 뒀어…? 박건태랑 같이 죽여 버리면 안 돼?”

“그럴까? 허튼짓 안 해서 내버려 둔 거긴 한데….”

대답에 희성이 고심하더니, 그럼 더 지켜보자고 진지하게 속삭였다.

그 모습에 윤치영은 그와 이마를 맞대며 활짝 웃었다. 이런 계략이 모두 진심인 희성의 모습이 너무도 사랑스러워 보였다. 내친김에 윤치영은 그의 목덜미를 당긴 채 혀를 섞었다.

“흐, 그마….”

고조되는 감정을 따라 키스가 깊어졌다. 윤치영의 숨결도 다시 거칠어졌다. 점차 희성의 얼굴이 새빨개지더니, 윤치영의 어깨를 밀어 품에서 벗어났다.

자리에서 일어난 희성은 어느덧 반쯤 풀린 가운 끈을 황급히 갈무리했다. 하얀 꼬리의 솜털까지 선 몸은 분명 신열에 달떠 보였다. 이미 동공이 풀어진 윤치영이 다시 그 몸을 이끌려 해도, 희성이 다그치듯 손을 밀어내더니 엄하게 말했다.

“안 돼, 의사가 너 자극하지 말랬어.”

“어차피 스킨십은 페로몬 풀어 주는 거잖아.”

왕!

말이 끝나기도 전에, 희성이 도망치듯 강아지로 변해 버렸다. 그러더니 먼저 방을 미련 없이 나가 버렸다.

“…….”

혼자 덩그러니 남겨진 윤치영은 뻐근한 하체에 일어서지도 못한 채 큼직한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그의 이마에 두꺼운 힘줄이 돋아났다.

‘분명 조력하라고 했는데.’

희성이 스스로 다가올 시간이 필요한 걸 알지만, 윤치영은 도통 도움이 안 되는 의사를 처리해 버리고 싶어졌다.

〈2권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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