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챕터2. 하룻강아지 (3/10)

〈늑대 새끼들은 교활하고 난폭해. 거기다 결속력도 좋아서 한 놈만 물어도 떼로 몰려와. 그러니 절대 비위 거스르지 말고 일단 무조건 굽히고 들어가.〉

희성이 형에게 들은 늑대족에 대한 설명이었다.

형의 가르침이니 희성은 깊이 새겨들었다. 도박장에서 일하기 위해서는 수인 손님의 종족에 따른 특성을 알아 두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었다. 대표적으로 고양잇과 수인들은 청결을 중요시하며 개인플레이를 선호했고, 여우 수인들은 자신들이 똑똑하다고 믿으므로 적당히 멍청한 수인들이 모인 도박판에 끼게 해야 돈을 많이 썼다.

그들을 겪어 본 희성은 대체로 수인들의 이런 특성이 날 때부터 타고난다고 믿었다.

윤치영을 만나기 전까진.

‘이 미친 새끼…!’

지금 희성은 일생일대의 힘을 쥐어짜 내고 있었다. 코앞까지 다가온 윤치영의 미소를 머금은 수려한 면상과 씨름 중이었기 때문이었다. 희성은 자꾸만 가까워지는 그의 입술을 막기 위해 필사적으로 앞발을 뻗었다.

즐거운 웃음을 터트린 윤치영이 마치 애인에게 투정 부리듯 강아지에게 물었다.

“간식도 줬는데… 뽀뽀 한 번만 해 주면 안 돼?”

‘하….’

겨우 테이블에 안착한 희성은 한숨을 내쉬었다. 강아지 꼴로 한숨을 푸 내쉬니 윤치영이 귀엽다는 듯 물렁하고 따끈따끈한 몸을 조몰락거렸다. 전부 애정 표현이었지만 희성은 정말 짜증 나 죽을 지경이었다.

제발 윤치영이 자신을 좀 내버려 뒀으면 좋겠다.

차라리 윤치영이 일반적인 늑대들처럼 교활하고 난폭했으면 편했을 것 같았다. 그러면 대충 수그리고 들어가면 끝일 테니까.

그런데 윤치영은 마치 강아지가 제 애인인 것처럼 행동했고 절대 품에서 떼어 놓지 않았다. 오죽하면 회의까지 당당히 강아지를 데리고 들어가 중요한 결정을 물어볼 정도였다―물론 무시했다―.

그럴수록 희성은 조급해졌다. 작은 틈만 보이면 이 늑대 굴을 탈출할 텐데, 윤치영이 자신을 어디든 귀엽다고 데리고 다녀서 기회를 엿볼 수도 없었다. 오죽하면 사실 이게 다 감시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이상하다….”

그때 자포자기한 강아지의 배에 코를 묻던 윤치영이 읊조렸다.

“이 귀여운 걸 왜 버린 거지?”

‘누가 버려져?’

강아지가 짧은 앞발로 윤치영의 뺨에 세게 도장을 찍었다. 그가 무심코 지나가듯 한 말이 심하게 거슬렸다.

버려지다니. 아무래도 윤치영은 자신이 단순히 버려진 강아지인 줄 아는 듯했다. 하지만 희성은 그 단어 자체에 거부감을 불쾌할 정도로 느꼈다.

‘난 안 버려졌어.’

강아지가 홧김에 윤치영의 손을 세게 깨물었지만, 부상으로 힘이 없어 저번과 달리 피 한 방울도 보이지 않았다. 윤치영도 작은 이빨 자국을 보고 오히려 귀엽다는 듯 푸스스 웃을 정도였다. 긍지 높은 견인족의 자존심이 팍 상했다.

“강아지 왜 화났어?”

퇴근길, 차에서 윤치영의 무릎에 앉은 희성은 그가 쓰다듬어 줘도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인형 사 줄게. 화 풀어.”

‘장난해?’

살가운 말을 들어도 화는 풀리지 않았다. 오히려 치욕적이기만 했다. 애초에 희성은 어엿한 성인이었다.

기어코 멋대로 인형을 사 온 윤치영은 집에 돌아오자마자 세탁기에 인형을 넣어 두었다.

“인형 씻기고 가지고 놀게 해 줄게.”

‘…또라이.’

불만이 쌓인 희성은 집 청소를 도와주는 도우미를 따라다니며 악독한 계략을 꾸몄다. 도우미는 윤치영이 귀가하자 인형을 서둘러 세탁기에 돌리고 도망치듯 퇴근해 일을 꾸미기도 쉬웠다.

그사이 씻고 나온 윤치영은 강아지가 드럼 세탁기를 빤히 보는 걸 발견했다.

그 안에는 작은 오리와 뱀 인형이 빙글빙글 돌아가고 있었다. 귀여움에 윤치영은 세탁기 앞에 앉아 강아지의 시선을 따라가 보았다.

“아….”

그리고 윤치영은 강아지가 야심차게 보던 게 새 인형이 아니란 걸 알게 됐다.

세탁기 안에는 치영의 무선 이어폰도 함께 돌아가고 있었다.

* * *

희성은 무선 이어폰을 세탁기에 넣은 죄로 벌을 받게 됐다. 윤치영의 저녁 식사 자리에 함께 가는 벌이었다.

“죄송합니다만, 저희 레스토랑은 반려견 동반 불가입니다.”

중간에 작은 난관에 봉착하긴 했지만, 윤치영은 알겠다며 웃곤 대책을 마련했다.

“잠깐 여기 있어.”

‘미친 새끼야!’

희성이 이를 드러내며 버둥거렸지만 결국 윤치영의 코트 주머니에 들어가게 됐다.

코트 주머니에 자리한 강아지의 몸을 윤치영이 보호하듯 손으로 감싸 줬다. 주머니 크기도 적당했고 그의 손도 커서 강아지 몸이 둥글게 안착할 수 있었다.

결국 자포자기한 희성은 노곤한 얼굴로 주머니에 드러눕게 됐다.

‘개따듯해….’

부상도 힘겨운데 종일 윤치영의 입술에 시달리고 그의 손가락과 전쟁까지 치러서일까, 희성은 금방이라도 잠들 것만 같았다. 하지만 아슬아슬하게 남은 긴장감이 의식을 붙잡게 만들었다. 식인 늑대의 곁이라 생긴 긴장감이었다.

‘형 주머니 속이었으면 더 편했을 텐데.’

지금보다 어릴 적에는 형이 일에 지친 희성을 가방이나 주머니에 넣어 주곤 했다. 그때는 형도 조직에서 힘들게 구르던 때라, 그게 희성을 챙겨 주는 최선의 행동이었다. 그래도 포근하고 따듯한 단잠을 잘 수 있던 유일한 곳이라 유독 기억에 남았다.

하지만 그게 윤치영이라면 사절이었다.

‘윤치영은 날 가지고 놀다가 살찌워서 잡아먹으려는 건가?’

식인 늑대 소문마저 도는 놈인데, 강아지라고 못 잡아먹을 리가 없었다. 갑자기 윤치영이 잘해 주고 양껏 간식을 주는 것마저 수상했다.

그사이 윤치영은 직원에게 어디론가 안내받았다. 음식 냄새를 맡아 보니 한정식집인 듯했다. 윤치영이 가는 곳도 따로 예약한 룸인지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어, 윤치영 왔냐?”

문이 열리자, 어딘가 익숙한 젊은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 소음에 노곤하게 누워 있던 희성의 두 귀가 쫑긋 섰다. 왜 익숙하게 느껴지는 목소리지? 희성의 까만 두 눈이 커졌다.

그사이 윤치영이 대화를 이었다.

“웬일로 날 불렀어?”

“왜긴, 우리가 일 있어서 만날 사이야?”

“당연하지.”

윤치영이 여상하게 대답했다. 장난스러운 대답인데, 상대가 어렵사리 어색하게 웃어넘기는 소리가 들렸다. 편하게 대하는 듯해도 서열은 확실히 윤치영이 위인 듯했다.

뒤늦게 상대가 한층 은밀하게 말했다.

“야, 윤치영. 오늘 내가 다 살게. 대신 견인족 도박장에 같이 좀 가자.”

“하아….”

윤치영은 귀찮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그와 반대로 주머니 속의 희성은 희망적으로 몸을 일으켰다.

‘견인족 도박장?’

만약 윤치영이 남자의 말을 따라 견인족 도박장에 간다면 도망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남자가 살살 꼬드기듯 이어 말했다.

“네가 가면 견인족 애들이 시체라도 파 주려 하잖아. 한 번만 손 좀 써 줘.”

“목적이 뭔데?”

윤치영이 자리에 앉는 게 느껴졌다. 코트를 벗지도 않아서 희성도 어쩌다 보니 그의 허벅지 부근에 안착하게 됐다. 어떻게든 밖에 나가려 했지만 윤치영의 손이 강아지의 동그란 몸을 착실하게 막고 있었다.

“찾는 애가 있는데, 요새 계속 견인족 도박장에 가 봤는데 없어. 불러도 견인족 애들이 안 내주고.”

그 얼굴이면 분명 누가 데려간 거 같은데… 상대가 혼잣말처럼 읊조렸다. 희성은 이런 말을 하는 게 누군지 궁금해 윤치영의 손을 깨물어 댔다. 어서 주머니에서 꺼내 달라는 뜻이었다.

남자가 이어 말했다.

“이름도 알아 왔어. 견희성이래.”

‘진짜 날 찾는 거야?’

희성은 기대감 어린 얼굴로 기다렸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계속 코트 안에 있고 싶었는데, 지금은 당장이라도 얼굴을 내밀고 싶었다. 상대는 어쩌면 자신을 걱정하는 견인족 수인이거나 형의 지인일지도 몰랐다. 희성을 이 식인 늑대의 품에서 구해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윤치영은 무언가를 마시며 귀찮다는 듯 읊조렸다.

“이상하게 그 강아지 찾는 애들이 많네….”

“하, 자꾸 생각나서 안 되겠어.”

‘날 들어! 꺼내 줘!’

안달이 난 희성이 주머니 속에서 힘껏 꾸물거렸다. 그러자 윤치영이 그제야 아는 척을 해 줬다.

“왜? 꺼내 줘?”

윤치영이 알겠다고 읊조리며 희성을 꺼내 줬다. 투정을 받아 주듯 부드러운 어투였다. 하지만 어딘가 이 상황을 즐기는 듯한 미묘함이 느껴졌다.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는 희성은 기대감 어린 얼굴로 코트 밖에 얼굴을 드러냈다. 정전기에 솜털이 다 섰지만 지금 자신을 찾는 사내가 누군지 확인하는 게 더 중요했다.

“하. 만나면 반드시….”

마침내 남자를 본 강아지의 눈에는 살기만이 가득해졌다.

희성도 아는 놈이었다. 이미 구면이기도 했고, 윤치영만큼 싫은 놈이기도 했다.

“내 좆부터 물려 줄 거야.”

‘…씨발….’

조직 보스여도 수려하게 생긴 윤치영과 달리, 그저 싸가지 없게 생긴 말 수인. 그리고 희성이 형에게 혼나게 만든 장본인.

〈다 네가 예쁘장하니까 분위기 타서 그러는 거잖아. 왜 다짜고짜 칩을 손님 면상에 던져?〉

희성에게 포커를 치는 동안 빨아 달라고 해서 칩을 면상에 얻어맞았던 권기혁이었다.

원래 희성은 다른 수인을 잘 기억 못 하는 편이지만, 권기혁만큼은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몇 살이야? 남자랑 자 봤어?〉

〈내가 이번 판에 돈을 따면, 얘부터 살래.〉

〈같이 올라갈래? 난 얘랑 달리 침대에서 수인은 안 잡아먹어.〉

권기혁을 생전 처음 마주쳤을 때 들은 말이었다. 이미 첫마디에 주먹을 꽉 움켜쥐었던 희성은 형을 생각하며 꿋꿋이 참았다. 안 그래도 그 당시 사고를 하나 쳐서 형에게 단단히 주의를 받은 상태였다.

〈권기혁네는 정치인 집안인데… 망해 가서 돈 나올 곳은 없지만 혹시 모르니 거슬리지만 말고 고분고분 굴어. 알겠지?〉

형이 희성에게 주의를 주며 했던 말이었다. 하지만 그가 정치인의 아들이든 아니든 간에 희성에겐 그냥 변태 말 수인 새끼일 뿐이었다.

그리고 뒤늦게 알았지만 그 판에는 윤치영도 있었다.

〈난 얘랑 달리 침대에서 수인 안 잡아먹어.〉

분명 권기혁은 그 말을 윤치영을 가리키며 했었다. 당시 희성은 그저 권기혁을 죽이고만 싶어서 신경 쓰지 못했는데, 다시 생각해 보니 윤치영이 동족을 잡아먹는다는 소문은 꽤 널리 퍼져 있는 모양이었다. 그만큼 소문이 사실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런데도 희성은 식인 늑대 새끼보다도 변태 새끼가 더 싫었다.

“그 강아지는 뭐야?”

다시 만나게 된 권기혁이 하찮은 것을 보듯 심드렁하게 물었다. 쓸데없이 프라이드만 넘치는 말 일족다웠다. 갑자기 그는 강아지를 위협하듯 아으! 이를 드러내기도 했다.

그 위협에 희성도 똑같이 경계심을 내보였다. 송곳니를 드러낸 채 으르렁거렸고 윤치영의 팔에 걸친 앞발을 안달 내듯 종종거렸다.

윤치영은 품 안에 맹수를 두고도 느긋이 잔을 들며 대답했다.

“내 강아지.”

“수인 아니고 진짜 개 맞지? 성깔 봐. 좆만 한 게.”

왕!

권기혁이 빙글대고 웃으며 한 말에 희성이 날카롭게 짖었다. 아직 몸이 아파 무리하면 안 되는데, 그렇게라도 분노를 표출하지 않으면 열이 뻗쳐 죽을 것 같았다. 그러자 윤치영이 주먹만 한 강아지를 상전 모시듯 쓰다듬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강아지를 살살 달래던 윤치영이 반대편 자리에 앉아 있는 권기혁에게 다가갔다. 그러더니 강아지에게 권기혁의 면상을 가까이 보여 주며 물었다.

“왜 그래? 얘 싫어?”

‘존나 싫어. 더러워.’

강아지가 말을 알아들은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권기혁을 향한 강아지의 두 눈에는 경멸과 증오심뿐이었다.

그때 나직하면서도 다정한 물음이 들렸다.

“그럼 얘 잡아먹을래?”

‘뭐…?’

뭔가 이상함을 느낀 희성이 열심히 고개를 뒤로 젖혔다. 자신을 내려다보는 윤치영의 수려한 얼굴이 보였다. 볼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어디 영화배우로 내놓아도 손색없는 잘생긴 얼굴이었다.

자연스럽게 반쯤 넘긴 검은 머리칼과 선이 굵으면서도 시원스러운 이목구비, 그리고 부드러운 눈빛. 그 안에… 또라이같이 동공이 희미해진 회색 눈동자가 보였다.

“우리 강아지가 가지고 놀까? 목줄도 채워서, 직접 끌고 다닐래?”

“너 무슨 개소리, 윽…!”

윤치영이 앉아 있던 권기혁의 머리칼을 움켜쥐어 얼굴이 잘 보이도록 억세게 뒤로 당겼다. 권기혁의 얼굴에 당황이 배어나고 훤히 드러난 목에 핏줄이 돋았다. 숨 또한 당혹함에 거칠어진 채였다.

순식간에 룸 안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윤치영의 미소도 싸늘해졌다. 강아지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며 하는 행동치곤 악랄했다. 희성은 그제야 윤치영이 잔인한 늑대족이었음을 상기했다.

그때 당황한 채 숨을 고른 권기혁이 윤치영의 단단한 팔을 짚으며 어색하게 웃었다.

“야, 윤치영… 하하. 넌 장난이 항상, 씨발.”

“아… 싫어?”

권기혁이 무슨 말을 하든 윤치영은 품 안의 강아지만 내려다보았다.

이미 희성은 열심히 고개를 가로젓고 있었다. 권기혁은 더럽고 가까이하기도 싫다. 사실 희성은 제 성욕과 좆 크기를 자랑스러워하며 날뛰는 말 일족이 그냥 다 싫었다. 그간 도박장에서 겪기로 말 일족은 늘 성적인 농담을 즐겼다. 뒤에서는 야생의 말이 그러하듯 조루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모르고 말이다.

뒤늦게 윤치영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우리 강아지는 더러운 거 먹으면 안 되지.”

“…하.”

권기혁이 어이없어하며 웃든 말든 윤치영은 머리칼을 쥐었던 손을 멸시하듯 놔 버렸다. 이마에 힘줄이 돋은 권기혁의 얼굴이 꼴사납게 밀려났다. 그 옆에서 윤치영은 그의 비싸 보이는 고급 정장에 손을 슥 닦았다. 강아지는 그 광경을 이해할 수 없다는 눈으로 번갈아 봤다.

‘얘네 친구 아니었나?’

분명 친구인 줄 알았는데, 지금 윤치영은 권기혁을 제 강아지의 장난감 정도로 취급하고 있었다.

“강아지랑 놀기도 바쁜데.”

윤치영이 지루해하는 한숨과 함께 다시 자리에 돌아와 앉았다. 그러고는 희성을 보석을 다루듯 테이블에 조심히 내려 줬다. 덕분에 강아지는 온갖 고급 한정식 사이에 서게 됐다.

떡갈비를 눈앞에 뒀는데도 희성은 윤치영이 지루하다는 듯 하는 말에 더 관심이 갔다.

“난 권 의원님이 곧 뉴스 나오기 직전이라, 뭐라도 준비해서 만나자고 한 줄 알았더니….”

“뭐?”

“굳이 여기까지 나올 필요가 없었네.”

“무슨, 소리야? 윤치영.”

권기혁이 심각하게 물었다. 세련되게 넘겼던 머리칼은 미친 과학자처럼 흐트러진 채였다. 얼굴엔 애써 짓던 어색한 웃음마저 사라졌다.

그 광경을 보던 희성은 갑자기 기분이 이상해졌다.

자신을 괴롭히던 놈의 바닥을 너무도 쉽게 보게 됐다. 어딘가 허무하면서도, 희성은 질 나쁜 만족감을 느꼈다. 애초에 동정심을 느낄 상대가 아니었다.

룸에 딸린 화장실로 자신을 끌고 가서 따 먹으려던 개자식.

과거를 떠올린 희성은 참지 않았다. 강아지는 뒷다리를 절뚝이면서도 음식 사이를 지나가 권기혁 쪽으로 향했다. 윤치영은 뻔히 보고서도 말리지 않았고 권기혁은 작은 강아지를 신경 못 쓰고 있었다.

희성은 권기혁이 원하던 대로 그의 아랫도리를 뜨겁게 만들어 줬다.

“우리 아빠가 왜? 대체 뭔지 말부터… 으윽, 씨발!”

희성은 대놓고 사고를 쳤다. 권기혁 앞에 있던 뜨거운 국을 쏟아 버린 것이었다.

원하던 대로 아랫도리가 뜨거워진 권기혁이 욕을 하며 날뛰는 게 진풍경이었다. 급하게 일어나 사타구니를 터는 꼴이 꼭 조랑말이 촐랑대는 것 같아 우스웠다.

“괜찮아?”

그 와중에도 윤치영은 권기혁은 안 보인다는 듯 희성만을 품에 안아 챙겨 줬다. 그 품 안에서 강아지는 야비하게 눈을 빛내며 권기혁을 노려봤다.

“저걸 쏟고 싶었어? 잘했어.”

윤치영은 희성이 사고를 쳐도 칭찬해 줬다. 맨날 참으라고 말리던 형과는 달랐다. 희성은 짜릿한 흡족감에 가슴을 펴 솜털을 송송 세웠다.

그리고 룸을 나서려던 윤치영을 권기혁이 거친 욕설과 함께 붙잡았다.

“씹새끼야, 아까 그거 무슨 말이냐고!”

“하.”

윤치영의 얼굴에 미소가 사라졌다. 그의 싸늘한 눈빛을 본 희성은 흠칫 하얀 귀를 세웠다. 본능적으로 느껴졌다. 지금 윤치영을 건드리면 위험했다.

윤치영은 신경질적으로 굴지 않았다. 그저 아까처럼 희성을 코트 주머니에 고이 넣어 두었다. 하지만 읊조린 말은 어딘가 심상치 않았다.

“나쁜 거 보면 안 되니까 여기 있어.”

‘같이 봐!’

희성은 주머니에 들어가지 않으려 윤치영의 손목을 앞다리로 꼭 붙잡아 봤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이후 희성은 묵직한 소리 하나를 들었다. 코트 깃이 힘껏 울렁였으니 윤치영이 직접 무언가를 발로 찬 게 분명했다.

빠각.

희성은 그렇게 말끔하게 뼈가 부러지는 소리는 처음 들어 봤다. 비명조차 힘겨운지 권기혁이 끅끅대며 숨을 못 쉬는 소리도 들렸다.

곧 잔인한 소리가 멀어지고, 문이 열리며 홀에서 고급 식기가 달그락 부딪치는 소리만이 들렸다. 주머니 속에서 희성은 묘한 고양감에 휩싸여 계속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다.

사고를 치고도 혼나지 않은 건 처음이었다. 누군가 자신의 편이 되어 준 것도.

* * *

차로 돌아간 윤치영은 뒷좌석에 올라탔다. 차는 윤치영이 올라타자 매끄럽게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그때까지도 희성은 가슴이 두근거렸다. 권기혁을 엿 먹여서 흐뭇했다. 역시 자신도 근본은 개자식이었다.

그 기분을 만끽하는데, 윤치영의 쓸데없는 물음이 들렸다.

“나 잘했어?”

희성은 윤치영의 말을 무시했다. 그저 윤치영의 허벅지에 엎드려 뚱하게 다른 곳을 봤다. 기분이 좋아진 지금은 혼자 조용히 권기혁의 뼈가 부러지던 소리를 되새기고 싶었다.

“근데… 아까 왜 걔 좆에 국물 쏟았어? 관심 있었어?”

그런데 윤치영이 또 서운하다는 듯 목소리를 낮췄다. 분명 수려한 얼굴도 십분 활용하고 있을 테지만, 희성은 절대 올려다보지 않았다. 잘생긴 게 재수 없어서.

“걔 거보다 내 게 더 큰데….”

‘아오!’

알고 싶지도 않던 말에 강아지는 몸서리치며 앞발로 제 귀를 막으려 했다. 하지만 다리가 짧아 힘들었다. 좆이든 뭐든 그에 대한 건 무엇도 알기 싫었다.

“왜? 질투 나?”

대체 질투할 게 뭐가 있다고. 이제 욕하기도 지친 희성은 들은 척도 안 하고 귀만 힘겹게 틀어막았다. 하지만 윤치영은 상대가 안 듣는다고 해서 입을 닥치는 놈이 아니었다.

“내가 일부러 보려고 한 건 아냐. 쟤가 온갖 곳에 다 빨아 달라 하고 다녀서.”

원하지도 않는 해명에 희성은 좁쌀만 한 송곳니를 악물었다.

회복해서 사람으로 돌아가게 되면 저 입만큼은 반드시 꿰매 버린다. 희성은 굳세게 다짐했다.

* * *

수인은 인간보다도 결속력이 몹시 중요했다.

부상을 당해 본체로 돌아간 수인은 반드시 무리의 도움이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아으, 귀 가려워.’

강아지로 돌아간 희성은 특히 동족의 손길이 필요했다. 안 그래도 손을 못 써 불편한데 하필 반쯤 접힌 귀는 귓병에 취약해 자주 가려웠다. 더욱이 지금은 뒷다리도 다쳤으니 평소처럼 뒷발로 긁을 수도 없었다.

결국 희성은 윤치영을 찾았다. 필요할 땐 식인 늑대의 손이라도 빌려야 하는 법이었다.

강아지는 드넓은 테라스로 나갔다. 그곳에서 담배를 피우던―얘네 집이 꼭대기 층이라 별 상관없는 듯했다―윤치영의 바짓단을 깨물어 당겼다. 태블릿으로 서류를 보던 윤치영은 기꺼이 강아지를 내려다보았다.

“응?”

‘귀, 귀 가려워.’

희성은 앞발로 열심히 제 귀를 문질러 보였다. 간지러워 죽을 것 같았다. 그동안은 형이 주기적으로 귀 청소를 해 줘서 괜찮았는데 윤치영의 집에 온 뒤로는 한 번도 귀를 닦지 못했다.

아무래도 말이 안 통하는 이유가 가장 컸다.

“안아 달라고?”

‘아니, 야.’

“아, 쓰다듬어 줘? 뽀뽀?”

왕!

기어코 희성이 분통을 터트렸다. 윤치영의 입술을 앞발로 밀어내며 뽀뽀를 필사적으로 피했다.

역시 말이 안 통하는 답답함이 너무 컸다. 같은 종의 수인끼리는 본체로 돌아가도 어느 정도 의사소통이 됐다. 완전한 문장은 구사할 수 없지만, 핵심 단어 두세 개쯤은 신체 언어로 나눌 수 있었다.

하지만 개와 늑대만 돼도 서로 쓰는 신체 언어가 완전히 달라졌다. 말이 다른 외국인을 만난 느낌이었다. 사실 수인들 중에서도 늑대들은 유독 신체 언어가 비밀스러워서 다른 수인과 말이 잘 통하지 않는 편이었다.

궁금한 건 마찬가지인지 서류를 보던 윤치영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지금 영배 있어? 올라오라 해.”

희성이 알기로 오늘은 주말인데 조폭들은 휴일도 없나 보다. 몇 분 뒤 윤치영의 집으로 건장한 남자 한 명이 들어섰다. 과묵하고 눈이 삼백안이라 무서워 보였지만 의외로 손이 섬세한 조직원이었다. 예전에 희성의 머리에 핀을 꽂아 줘서 알고 있었다. 당장 빼냈지만.

윤치영은 생글대고 웃으며 지영배에게 테라스 테이블에 둔 강아지를 눈짓했다.

“너 견인족이지?”

“예.”

“강아지가 뭐라는 거야?”

‘내 말 알아들어?’

희성은 별 기대 없이 지영배를 째려봤다. 같은 견인족이면서 늑대들 아래에서 일하는 게 수상쩍었다.

거기다 견인족이면 희성이 그냥 강아지가 아니라 수인인 걸 눈치챌 수도 있었다. 같은 종인 수인과 동물끼리는 어느 정도 의사소통이 되긴 했다. 하지만 수인보다 동물의 지능이 낮은 만큼, 수인 입장에선 5살짜리와 대화를 하는 것과 비슷했다. 의사소통이 너무 잘됐다간 정체를 들킬 수도 있으니, 행동을 조심하는 게 좋았다.

그때 또 귀가 미친 듯이 가려웠다. 급해진 희성은 앞발로 귀를 문지르며 웅알거렸다.

‘귀, 내 귀 좀 닦아 줘.’

이번엔 아주 칼같이 정확한 신체 언어를 보여 줬다. 그러자 지영배가 진지하게 보스에게 보고했다.

“귀를 만져 달라 하십니다.”

‘시발!’

같은 지역에서 자란 견인족이 아닌지 소통 오류가 났다. 의외로 수인족 본체끼리도 지역이 다르면 소통이 힘들었다. 서로 심한 방언을 쓰는 상대를 만난 것과 비슷했다.

해석 오류인데도 윤치영은 귀여워 죽겠다는 듯 희성을 얼굴 앞에 가까이 들어 올려 눈을 맞췄다.

“아, 귀 만져 줘? 우리 강아지는 귀를 만져 주는 게 좋아?”

“…….”

자포자기한 강아지는 대꾸도 공격도 포기했다. 이제 희성은 다른 이유로 형이 간절했다.

희성이 기억하기로 윤치영은 쫑긋 선 검은 늑대 귀를 가졌다. 애초에 통풍이 잘되는 귀를 타고났으니 접힌 귀의 고통을 모를 것이다. 희성은 재수 없는 유전자를 탓하며 자포자기한 채 테이블에 축 늘어져 엎드렸다. 그런 강아지의 귀를 윤치영이 살살 만져 줬다.

그런데 의외의 수확이 있었다. 습관처럼 강아지의 귀를 까뒤집던 윤치영이 무언가 발견했다.

“얘 귓병 난 거 아니지?”

“어….”

지영배와 윤치영의 시선이 강아지 귀로 모였다. 장정 둘이 제 주먹만 한 강아지를 내려다보자 희성은 위험한 기분을 느꼈다. 하지만 자신의 더러운 귀를 어필하기 위해 가만히 있었다. 치욕적이면서도 서글펐지만 마음만큼은 간절했다.

“귀 청소해야겠네.”

‘맞아!’

다행히 같은 갯과라 그런지 윤치영이 필요한 걸 알아주었다.

윤치영이 강아지를 옆구리에 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손을 씻은 그는 거실 소파에 앉더니 구석에 놓여 있던 종이 백을 들어 속에 있던 것들을 와르르 쏟았다. 수많은 애견 용품이 테이블에 늘어섰다. 모두 포장도 그대로인 새것이었다.

‘…나 애견 숍 안 가?’

내심 애견 숍에서 손길 부드러운 누나를 만나길 기대했는데. 지금 눈앞의 조폭은 직접 이리저리 귀 청소 도구를 만져 보고 있었다. 강아지는 그 옆에서 공포스러운 눈으로 윤치영을 올려봤다.

그 눈길을 느꼈는지 옆을 돌아본 윤치영이 입꼬리를 매끄럽게 올리며 웃었다.

“우리 평생 같이 살 거니까, 이제 내가 해 줘야지.”

“…….”

화사한 미소였지만 희성에겐 악당의 미소로 보였다. 이 새끼는 자신이 가장 싫어하는 걸 이미 알고 있는 게 분명했다.

곧 강아지 귀에 귀 청소액이 듬뿍 묻은 솜이 파고들었다. 윤치영이 살살 솜을 문질러 주자 뿌작대는 소리와 함께 강아지의 표정이 허술하게 풀어졌다.

‘허, 흐아.’

인정하기 싫지만 형보다 윤치영의 귀 청소 실력이 훨씬 좋았다. 손길도 부드러웠고 마치 보석을 만지듯 섬세하게 닦아 줬다. 서류를 심각하게 보던 시간보다 희성의 귀를 청소해 준 시간이 더 길었을 정도였다.

내친김에 강아지의 눈곱도 말끔히 정리해 준 윤치영은 별것도 안 했는데 칭찬과 간식까지 줬다.

“잘했어. 자, 냠냠이.”

“…….”

왕. 희성은 그를 노려보며 고구마 말랭이를 받아먹었다. 그런 강아지를 윤치영이 푹신한 카펫에 내려 줬다.

절뚝이며 전신 거울 앞으로 간 희성은 그 앞에 주저앉았다. 기분이 묘했다.

‘씨발. 만족스러워….’

윤치영의 집에 온 지 4일째. 기절한 3일까지 합하면 일주일째였다. 그간 호사를 누린 희성은 자신의 모습이 제법 변했다는 걸 깨달았다.

거울 속에는 생전 처음 보는 자신의 모습이 비치고 있었다. 하얀 털에는 윤기가 흘렀고 비쩍 말랐던 몸에 살도 조금 올랐다. 늘 눈물 자국으로 꼬질꼬질하던 얼굴은 깨끗했고 까만 눈도 생기로 반짝였다. 사고를 친 주제에 몸 편히 지내고 그만큼 때깔도 좋아진 자신의 모습을 보니 형에게 미안해졌다.

형이 그립지만, 그렇지만… 일을 시작한 뒤로 이렇게 마음껏 쉬어 본 건 처음이었다. 돌아가기 조금 싫을 정도로.

‘미쳤냐, 견희성.’

아무리 그래도 식인 늑대의 손길에 만족할 수는 없었다.

희성은 무리를 중요시하는 견인족이다. 반드시 돌아가야 할 곳이 있었다. 비록 돌아가면 마약을 털린 죗값으로 고통스럽게 일하겠지만….

‘정신 차리자. 여긴 내 집이 아니야.’

윤치영에게서 벗어나야 해. 희성은 제 결심을 되새기며, 제 몸만 한 뱀 인형을 윤치영이라 생각하고 마구 물어뜯었다. 그러곤 하루빨리 회복해서 형에게 돌아가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내심 희성은 회복이 조금만 더 늦어져도 괜찮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 * *

다시 테라스로 나온 윤치영은 자리에 앉아 태블릿을 들었다.

태블릿에는 몇몇 사진과 CCTV 동영상이 떠올라 있었다. 옆으로 자료를 넘기자 간단한 서류와 조직원이 올린 보고도 나타났다.

모두 강아지를 발견한 날 늑대족 본거지 주변의 기록이었다.

기록을 보며 생각에 빠져 있던 윤치영은 뒤쪽에 서 있던 지영배에게 물었다.

“이날 우리 영역에 침범한 조직은 없다고 했지?”

“예. 그렇습니다.”

윤치영은 픽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강아지는 CCTV가 안 보이는 사각지대에서 다친 채 나타났지만, 머리가 좋은 윤치영은 어느 정도 정황이 보였다.

고작 몇천만 원어치 마약 털겠다고 늑대족 본거지 앞에서 싸움을 일으키는 건 수지 타산에 안 맞았다. 길거리 깡패라 해도 영역 의식이 강한 늑대족의 본거지는 조용히 지나치는 편이었다.

오히려 귀찮은 혹을 떼어 내고, 개인적으로 돈도 챙기려 한다면 모를까.

거기다 늑대족 영역에서 조직의 막내가 사라졌다면, 섣불리 조사하기도 어려워할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한 윤치영은 테라스에서 집 안을 바라보았다. 하얀 강아지가 까만 카펫 위에서 뱀 인형을 껴안고 곤히 잠들어 있었다.

“어쩌지….”

윤치영은 슬그머니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어쩐지 상황이 우스웠다. 도박장 실장인 박건태. 안 그래도 예의 주시하던 놈이었다. 자꾸만 그놈의 손을 거치면 물건이 조금씩 비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워낙 여자에 빠진 놈이라, 저러다간 제 살도 팔아먹겠다 싶었는데… 기어코 가장 중요한 패를 내던져 버렸다.

“사실이면 우리 강아지가 많이 상처받겠는데.”

말은 걱정 어린 어투를 하고 있었으나, 회색 눈동자는 상기된 듯 동공이 벌어졌다.

이내 윤치영은 지영배에게 간단한 명령을 내렸다.

“오늘부터 박건태 감시 들어가.”

“알겠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난 윤치영은 검은 카펫에 얼룩처럼 누워 있던 하얀 덩어리를 챙겨 들었다. 그러곤 자신의 침대 옆자리에 눕혀 주었다. 강아지를 내려다보는 눈빛에는 전에 없던 흥분감이 감돌았다.

* * *

주말이 지나고, 윤치영은 웬일로 출근하지 않고 집에 남았다. 희성은 윤치영이 틀어 준 최신 영화를 함께 보고 그가 손수 까 준 대하구이를 먹었다.

“강아지 새우 좋아했어?”

‘몰라. 처음 먹어.’

희성은 살면서 대하를 처음 먹어 봤다. 새우가 그렇게 맛있을 줄은 몰랐다. 처음으로 직접 윤치영의 손목에 매달려 대하를 받아먹을 정도였다. 윤치영은 그런 강아지를 보며 뿌듯하게 말했다.

“하, 귀여워 죽겠네.”

‘뭐래.’

“빨리 먹고 회복해. 겨울에 잡아먹게.”

“…….”

희성은 입맛이 뚝 떨어졌다.

그제야 강아지는 대하를 그만 먹고 윤치영을 평소처럼 째려봤다. 내친김에 물컵도 엎었다. 윤치영은 그게 뭐가 좋다고 시원스레 입꼬리를 올려 웃더니, 뇌물처럼 대하를 더 까 주었다. 강아지는 고심 끝에 그것도 남김없이 먹었다.

겨울에 잡아먹는다니. 재수 없는 말을 들어 입맛이 덜했지만, 어차피 희성은 그 전에 탈출할 거니 상관없었다.

저녁이 되자 마약 중독자 같던 그 의사가 집으로 찾아와 배가 빵빵해진 강아지를 진찰했다.

“이번에도 페로몬이 거의 감지되지 않습니다. 그냥 강아지가 맞네요.”

‘돌팔이 자식.’

초췌한 의사는 정말로 마약 중독자라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희성을 강아지라 잘못 진단 내렸다. 페로몬 측정 기계를 희성의 목뒤에 다시 대 보더니 확신했다. 그 모습을 윤치영이 미묘한 미소를 머금고 응시했지만, 별달리 말을 얹진 않았다.

그래도 의사는 실력만큼은 있는 듯했다. 그는 강아지를 귀하게 살폈고 절대 실수하지 않았다. 곁에서 윤치영이 회색 눈을 서늘하게 뜨고 지켜봐서일지도 몰랐다.

“다행히 상처 회복 속도가 빠르군요. 깁스는 오늘 풀어도 되겠고, 다음 주에는 실밥을 제거해도 될 거 같습니다. 아직 걷기는 힘들겠지만 실밥을 풀 즈음이면 활동도 가능할 겁니다.”

“…….”

희성은 회복이 빠르다는 말을 들어도 기쁘지 않았다.

그간 배부르고 등 따습게 지냈다고 안일해졌다. 형을 생각하면 이러면 안 되는데. 답답한 마음에 희성은 괜히 자신을 쓰다듬던 윤치영의 손을 깨물어 성질을 부렸다.

그러다 희성은 자신의 다리를 살폈다. 피부를 꿰맨 흔적이 흉하게 보였고 작은 몸 곳곳에 멍이 보였다.

‘그래도 아직 사람으로 변하긴 힘들 거 같은데….’

수인은 본체로 돌아가야만 신체 회복이 빨랐다. 신체도 본능적으로 부상 중 가장 안전한 모습을 유지하려 했다. 그래서 희성이 인간으로 변하려 시도해도 상처의 고통이 느껴져서 변하길 포기하게 됐다. 아직 몸이 회복기라는 증거였다.

그래도 사람 모습으로 빨리 돌아가야 탈출 시도도 수월할 것이다. 희성은 회복기 동안 탈출 준비라도 해 두자고 굳게 다짐했다.

그때 손이 깨물리던 윤치영이 의사에게 물었다.

“산책은 언제 가능하지?”

‘…얘는 진짜 날 개처럼 키우는 건가?’

산책이라니. 희성은 절대 윤치영이 걸어 주는 가슴 줄을 할 생각이 없었다. 이미 그간 가슴 줄을 채워 주면 아예 발라당 드러누워 풀라고 시위를 한 전적이 있었다. 넥 칼라도 어떻게든 풀어내고 항의의 표시로 커피든 뭐든 쏟아 놨다. 그럴 때마다 윤치영이 사진부터 찍으며 좋아해서 열받았지만, 어쨌든 가슴 줄이나 강아지 용품을 안 쓰는 건 견인족의 마지막 자존심이었다.

의사가 조언했다.

“지금은 날이 추운 11월이고 환자견이라, 아무래도 산책은 당분간 자중하시는 게….”

“음….”

윤치영은 딱히 아쉬워하지 않았다. 그저 강아지의 상처를 살피며 미묘하게 한쪽 눈을 구겼다. 강아지의 회복이 빠른 게 그에게도 희소식은 아닌 듯했다. 의사는 그런 윤치영의 눈치를 살피며 도대체 어느 장단에 맞춰 줘야 할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저, 그럼….”

그때 의사가 조심스레 페로몬 측정 기계를 윤치영에게 가까이했다. 윤치영은 딱히 거부감 없이 고개만 한 번 끄덕였다.

의사는 페로몬 측정 기계를 윤치영의 목 뒤에 댔다. 그러자 위협적인 기계음이 반복되며 붉은 수치가 떴다. 892. 고작 4나 5가 뜨던 희성에 비해 몇백 배가 넘는 수치였다.

의사가 수치를 보고 놀라며 물었다.

“정상 수치가 200인데… 그간 본체로 돌아가지 않으셨나요?”

“강아지 키우느라.”

윤치영이 듣는 둥 마는 둥 강아지만 쓰다듬으며 대답했다. 의사는 프로 의식이 남아 있는지 윤치영에게 조언을 쏟아 냈다.

“그래도 수인인 만큼 본체로 돌아가거나 성관계로 페로몬을 갈무리해 주셔야 합니다. 특히 수인의 힘을 강하게 타고나셨으니 최소한 2주에 한 번은….”

‘2주에 한 번?’

희성은 놀라 고개를 들었다.

수인은 그래도 인간에 가까웠다. 본체로 돌아가 페로몬을 갈무리하는 건 주로 두 달에 한 번꼴이면 충분했다. 그런데 2주에 한 번이라니. 그만큼 윤치영은 늑대의 피가 진하다는 뜻이었다.

‘이 새끼 진짜 그냥 짐승 아냐?’

그래서 식인 소문이 도는 게 아닐까?

희성이 심각하게 고민하는 사이, 윤치영이 피곤해하는 얼굴로 집에서 의사를 내보냈다.

그는 의사를 내보내자마자 집을 환기했다. 희성이 느끼기로 윤치영은 후각이 예민한 듯해서 늘 누가 집에 들렀다가 가면 환기를 했다. 스스로 피운 담배 냄새도 싫어하는지 늘 손을 씻고 민트 사탕을 들고 다닐 정도였다.

“하….”

침대로 돌아온 윤치영은 강아지를 껴안고 누웠다.

희성은 그가 누운 베개에 올라가서 평소처럼 이 식인 늑대를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했다.

그런데, 오늘은 윤치영이 상당히 지쳐 보였다.

‘…얘 아픈가?’

윤치영은 숨이 거칠었고, 어느덧 검은 늑대 귀와 강아지만 한 꼬리도 튀어나와 있었다. 혹시나 싶어 희성이 앞발을 그의 뺨을 대 보니 살도 뜨거웠다.

‘멍청이.’

아마 페로몬을 갈무리하지 못해 몸이 버거워하는 듯했다. 그냥 늑대로 변해도 되는데, 자신이 겁먹을까 봐 그러는지 윤치영은 꽤 고집스럽게 인간형을 유지했다. 희성은 윤치영의 입술 부근에 날카롭게 튀어나온 송곳니를 보다가, 슬쩍 꼬리를 말았다.

‘오늘은 괴롭히면 안 되겠군.’

희성은 똑똑했다. 도박장에서 일하며 그래도 없던 눈치가 생겼다. 페로몬으로 흥분한 수인들은 공격성이나 성욕이 짙어지기 때문에 되도록 건들지 않는 게 상식이었다.

상식. 갑자기 희성은 도박장에서 주워들은 정보가 떠올랐다.

〈하, 늑대 새끼들 겨울 활동이 뜸해서 매출이 줄었어.〉

〈왜? 걔네 겨울잠이라도 자?〉

〈아니.〉

형이 어이없어하며 한 말이 있었다.

〈늑대들은 날이 추워지면 번식기를 가지거든. 야생에서는 그래야 봄에 새끼를 치니까.〉

그 말을 떠올린 희성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지금은 11월. 슬슬 날이 추워지고 있었다. 그런데 일부일처를 고집하는 늑대들은 연인을 찾기 전까지 번식기를 약으로 버티거나 혼자 넘긴다고 들었다.

그 말은 윤치영이 성격부터 난폭해지는 번식기를 앞뒀다는 뜻이었다. 식인 늑대를 옆에 둔 희성은 간담이 서늘해졌다.

‘…얘는 늑대의 피도 진하다며?’

똑똑한 강아지는 베개에서 일어나 슬쩍 윤치영의 탄탄한 가슴팍으로 올라갔다. 유독 길고 훤칠한 다리가 한눈에 보였다.

그리고… 하체에 굵직한 윤곽을 드러낸 것도 보였다. 차라리 꼬리였으면 하는 윤곽이. 그 크기를 본 희성은 소름이 돋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하필 번식기를 앞둔 늑대랑 한 침대를 쓴다니.

‘번식기가 되면 나부터 공격할 텐데.’

어쨌든 희성도 수컷 강아지였다. 이렇게 가까이 있다간 번식기로 인해 영역 의식이 민감해진 늑대에게 공격당할 수도 있었다.

빨리 몸이 낫는다고 서운해할 때가 아니었다. 희성은 이제 다른 이유로 강아지인 척하다가 한시라도 빨리 탈출해야만 했다.

그때 윤치영이 자리에 누운 채 강아지를 제 얼굴 앞으로 들어 올렸다.

“강아지….”

‘놔, 놔!’

놀란 희성은 사지를 발버둥 쳤다. 하지만 큼직한 손안에서 저항은 고작 꾸물거린 정도에 그쳤다.

윤치영은 강아지를 동공이 희미한 눈으로 응시하더니, 매끄러운 콧날을 강아지의 배에 파묻으며 읊조렸다.

“난 너는 안 잡아먹을 거 같아.”

‘확신 있게 말하라고!’

괘씸함에 희성이 다리를 허우적거렸다. 하지만 별 의미 없는 몸짓이었다. 거기다 윤치영이 평소와 달리 진지하게 굴어서 강아지도 곧 저항을 멈추고 의아해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니다….”

어둡게 전등을 켜 둔 터라, 윤치영의 이목구비 뚜렷한 얼굴에 유독 음영이 깊이 졌다. 희성은 시원스럽게 뻗은 그의 눈매와 은근하게 빛나는 회색 눈동자를 보고 설핏 두려움을 느꼈다.

몸이 굳은 강아지를 본 윤치영이 희미하게 웃었다.

“어떻게 되든 정말 안 잡아먹을게.”

‘뭐…?’

곧 윤치영이 강아지를 제 가슴팍에 내려 뒀다. 희성은 배가 푹 닿자 그의 일정한 심장 박동과 함께 따듯한 체온을 느꼈다.

그곳에서 희성은 수상하게 윤치영을 노려봤다.

‘내가 수인인 걸 눈치챈 건 아니겠지?’

설마. 그렇다면 자신이 수인인 걸 알고도 강아지처럼 키웠다는 말인데, 그거야말로 정말 또라이 아닌가.

‘…아니면 나한테 벌써 그렇게 정이 든 건가?’

수상함에 희성은 그날 밤이 깊도록 잠들지 못했다. 먼저 잠든 윤치영을 심각하게 내려다보며 알 수 없는 그의 의중에 대해 고심했다.

하지만 강아지인 상태로는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었다.

결국 졸음이 밀려온 희성은 윤치영의 두 눈에 안대처럼 엎어진 채 잠이 들었다. 윤치영이 오늘은 그냥 푹 잠들길 바라며.

그래도 그가 자신을 안 잡아먹을 거라 한 약속은 마음에 들었다.

* * *

윤치영에게 사육당한 지 어느덧 열흘이 지났다.

이제 희성은 늦은 점심에 출근하는―조폭이라 그런지 출근 시간이 지 마음대로였다―윤치영을 따라 몸단장을 당하고, 그의 품에 종일 장식처럼 매달려 다니며 수발을 받았다.

그간 희성이 느낀 것은, 윤치영은 참 조폭 보스감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왜냐면 보스라는 수인이 사람 말도 못 하는 강아지에게 혼자 잘도 주절대곤 했기 때문이었다.

“강아지. 내 이상형이 어떤 사람인 줄 알아?”

‘몰라. 안 궁금해.’

출근길, 차 안에서 윤치영이 강아지에게 다정하게 말을 걸었다. 희성은 상관하지 않고 그가 스마트폰으로 틀어 준 액션 영화를 감상했다.

무시에도 윤치영이 뻔뻔하게 강아지를 건드리며 말했다.

“항상 내게… 짜릿한 자극을 주는 사람이야.”

‘안 궁금하다고!’

영화에 집중하던 강아지가 맹수처럼 윤치영의 손가락에 달려들었다. 닿는 대로 물어뜯고 성질을 부려도 윤치영은 뭐가 그리 좋은지 웃기 바빴다.

내키는 대로 공격을 마친 희성은 다시 스마트폰을 봤다. 그 위에서 윤치영이 강아지의 감자만 한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말했다.

“거기다 귀엽고 섹시하기까지 한 사람을 봤을 때는 진짜… 하. 눈만 마주쳐도 돌 거 같단 게 뭔지 알겠더라.”

‘또라이 이거 또 시작이네.’

희성은 원래 자신의 사람들만 중요시하고 남의 말은 잘 안 들었다. 당연히 탈출 대상인 윤치영의 말을 주의 깊게 들을 리가 없었다.

그리고 윤치영은 알 수 없는 헛소리를 많이 했다.

“내가 먼저 빨아 주고 싶다고 느낄 정도였어.”

‘시발!’

입 좀 닫아! 짜증이 난 강아지가 드러누운 채 사지를 버둥거렸다. 윤치영을 물어뜯어도 소용없으니 그게 최선이었다.

결국 출근길에 싫증이 날 대로 난 강아지는 탈출 대신 다른 대책을 강구했다.

‘누나, 누나가 나 데려가.’

희성은 소파에 앉은 늑대 일족에게 짧은 꼬리를 흔들며 까만 눈을 빛냈다. 윤치영에게 애교를 떠는 건 치욕스럽지만 그 대상이 여자라면 말이 달랐다.

“이 강아지는 뭐지?”

윤건영이 픽 웃으며 솜털 같은 강아지를 한 손으로 들어 올렸다.

그녀는 윤치영의 누나로, 윤치영과 닮긴 했지만 느낌은 확연히 달랐다. 늑대 일족이 분명한데 마치 고양잇과 맹수처럼 은근한 우아함과 날카로움이 느껴졌다.

거기다 핏줄은 어디 안 가는지 까만 생머리가 무척 섹시하고 멋졌다. 희성은 그녀에게 마음껏 꼬리를 치며 제 매력을 어필했다. 윤치영이 반대편 소파에서 입가에만 미소를 머금은 채 자신을 응시하는 게 느껴졌지만 상관하지 않았다.

‘윤치영 누나라면 더 세겠지?’

그러니 동생의 강아지쯤은 뺏어 갈 수 있을 것이다. 희성은 벌써 자신을 품에 안아 주는 누나에게 푹 빠져 정신없이 꼬리를 쳤다.

그때 윤치영이 품에서 담배를 꺼내며 낮게 읊조렸다.

“이젠 대놓고 바람을 피우네.”

“잡종에게 정을 준다는 게 사실이었군.”

윤건영이 같잖다는 듯 말하며 강아지를 제 품에서 내려놨다.

‘순혈주의는 재수 없지만 윤치영보다 누나가 나을 거 같아.’

이제 강아지는 배를 까고 누운 채 열심히 그녀를 유혹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윤건영의 곁에 붙어 앉은 남자를 보게 됐다.

‘쟤는 왜 윤치영을 보고 덜덜 떠는 거야?’

윤건영과 함께 온 금발의 늑대족 남자는 윤치영의 눈도 못 마주치고 덜덜 몸을 떨고 있었다.

강아지는 이해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이제 희성에게 윤치영은 무서운 존재라기보단 뽀뽀와 스킨십에 미친 놈이었다.

그때 담배에 불을 붙인 윤치영이 나른하게 연기를 뱉으며 물었다.

“누나가 나랑 놀려고 온 건 아닐 텐데… 왜 왔어? 애인한테 잘 보이려고?”

그 말에 금발의 남자가 윤건영의 손을 꼭 쥔 채 이를 악물었다. 곱상한 놈이 그러고 있으니 희성이 긴장 좀 풀라고 다독여 주고 싶을 정도였다.

“윤치영.”

거두절미한 채 윤건영이 훈계하듯 엄격하게 말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놀이판에 다니는 건 자중해라.”

“고작 그 말을 하려고 누나가 여기까지 왔어?”

“차기 수장으로서 하는 말이다. 보는 눈이 많으니 예의를 차려.”

“아… 잔소리구나.”

윤치영이 연기를 푸스스 내뱉으며 웃더니 꼬아 앉은 다리 끝을 까딱거렸다. 차기 수장이라는 말을 들어도 윤치영은 별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비웃음과 함께 말했다.

“내가 도박장 안 다닌 지 일주일은 됐는데… 정보가 많이 느리네.”

“예의를 차리라는 건 그 잡종도 내다 버리라는 소리다.”

‘누나 말이 심하네.’

빈정이 상한 강아지는 애교를 포기한 채 몸을 추슬러 일어났다. 그간 잊고 있던 오만한 늑대족의 본모습을 다시 보게 된 기분이었다.

강아지는 사뭇 심각해진 얼굴로 남매를 번갈아 봤다. 분위기만 보면 마치 적이라도 만난 것 같았다. 윤치영이 노골적으로 살기를 드러내는 모습도 처음 봤다.

“투견으로 키워 놓더니. 이제 와서 예의?”

‘투견? 그건 무슨 소리지?’

투견은 난데. 강아지가 의아해하는 사이, 매끄럽게 웃은 윤치영이 긴 손가락 끝으로 담뱃재를 털며 물었다.

“누나야말로 동생이랑 만나던 남자랑 놀아나도 되겠어?”

윤치영이 늑대족 남자를 흘겨보며 말했다. 금발의 남자는 감정을 제어 못 할 정도로 질겁했는지 어느덧 노란 늑대 귀가 드러나고 있었다.

윤건영은 멸시하듯 동생을 노려보다가 나직이 말했다.

“넌 잡아먹으려던 거겠지.”

윤건영은 대수롭지 않게 받아넘겼다. 차가운 눈빛만 보면 가족을 대하는 게 아니라 윤치영을 그저 적대적으로 보는 것 같았다.

그 모습을 보던 강아지는 의아함을 느꼈다.

‘…왜 자기 동생을 멸시하듯 보는 거야?’

희성의 형은 친형은 아니지만 의리를 중시했다. 절대 윤건영처럼 적대적으로 동생을 대하진 않았다. 그런데 희성이 알음알음 듣기론 늑대들은 무리의식이 견인족만큼 강하다던데, 지금 눈앞의 순혈 늑대들은 금방이라도 서로를 죽이려 들 것만 같았다.

기 싸움만 실컷 한 윤건영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윤치영도 우아하게 담배를 피울 뿐 그녀를 붙잡지 않았다. 그저 은근한 미소와 함께 노골적인 경고를 남겼을 뿐이었다.

“누나, 차기 수장이 된 거 축하해.”

“…….”

“내가 누나는 안 죽였으면 좋겠네.”

윤건영은 더는 동생을 상대하지 않았다. 남매 사이에는 팽팽한 살기만이 감돌았다.

그때 금발의 남자가 강아지가 깔고 앉은 제 코트를 추스르려 했다. 희성은 멀뚱멀뚱 별생각 없이 남자가 자신을 옮기는 대로 앉아 있었다.

그때 희성의 까만 눈이 커졌다.

‘어라….’

금발의 남자가 쭉 소매로 숨기고 있던 오른손.

강아지를 옮기는 손짓은 엉성했고 손등의 살은 죄다 뜯겨 있었다. 마치 맹수에게 잔인한 공격을 받은 것처럼.

그 모습을 반대편에서 보던 윤치영이 빙글대며 웃었다.

“이제 손 잘 쓰네?”

“…….”

말 한마디에 금발의 남자가 얼굴이 새하얗게 질리더니 성급히 자리를 빠져나갔다.

그 광경을 본 강아지의 얼굴이 멍해졌다.

‘정말… 만나던 애를 물어뜯은 거야?’

희성은 그들이 자리를 떠난 뒤에도 멍하니 윤치영을 바라보고 있었다.

새삼스럽게 그의 존재가 낯설게 느껴졌다.

* * *

희성은 퇴근 후 집에 돌아온 뒤에도 한참 작은 머리로 고민했다.

‘얘는 왜 동족을 잡아먹는 거지?’

그간 희성이 느끼기로 윤치영은 잔인하게 행동하긴 했지만, 수인을 잡아먹으려 들진 않았다. 물론 그에게 다른 이면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감이 좋은 희성은 후각이 민감하고 미식가인 그가 조리되지 않은 생물을 맛볼 것 같진 않았다.

“우리 강아지가 여자를 좋아할 줄은 몰랐네….”

거기다 이런 뒤끝이나 부리는데 식인이라니.

침대에 윤치영과 함께 누워 있던 강아지는 벌써부터 느껴지는 귀찮음에 한숨을 내쉬었다.

그 곁에 팔을 기대 누운 윤치영이 투정처럼 강아지의 꼬리를 매만지며 물었다.

“나한테는 한 번도 애교 안 부렸으면서.”

‘어쩌라고.’

“내일 대하구이 사 주려 했는데….”

그 말에 강아지가 처음으로 반응을 보였다. 윤치영을 슬쩍 돌아보며 꼬리를 대충 흔들었다. 내일 사 달라는 나름의 애교였다.

작은 관심을 받아 기쁜지 윤치영이 얄궂게 웃으며 얼굴을 강아지에게 가까이했다. 희성은 그만큼 고개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 또 윤치영이 쓸데없는 말을 할 것 같았다.

“강아지는 교미해 봤어?”

예감이 맞았다. 희성은 그걸 강아지한테 묻는다고 대답이 나오겠냐고 욕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낼 수 있는 반응은 언짢고 한심하다는 듯 윤치영을 흘겨보는 게 전부였다.

윤치영은 그 마음을 읽은 것도 아닐 텐데, 한 번 더 희성을 찔러 봤다.

“아… 안 해 봤구나?”

‘네가 알아서 뭐 어쩔 건데!’

다혈질 강아지가 앞발로 윤치영의 얼굴을 힘껏 밀었다. 좁쌀만 한 발톱으로 깨끗한 피부를 긁어 주자 윤치영이 알겠다는 듯 웃으며 꼬리를 매만지던 손을 물렀다.

“반응 보니 진짜 안 해 봤나 보네.”

‘시발….’

이래서 이 자식이랑은 말을 섞기 싫었다. 자신만 속이 터지는 기분이었다.

희성은 교미 같은 건 안 해 봤다. 아직 어리기도 했고, 그간 형 아래에서 일만 하며 구르느라 바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수인 사회에서 여자들은 힘이 세고 덩치 큰 수컷을 원했기에, 자연히 하얗고 말간 희성은 경쟁에서 밀렸다.

그래도 희성이 인기가 없는 건 아니었다. 개 같지만 희성은 남자들에게 제법 인기가 있었다. 도박장에서 일할 때도 희성을 따로 부르는 남자들이 종종 있었고 돈을 쥐여 주며 벨트를 풀던 놈이나 은밀하게 엉덩이를 꽉 쥐고 가는 놈도 있었다.

물론 그때마다 희성은 참지 않았다.

〈희성이 너 인마!〉

형이 그렇게 외칠 때쯤 정신을 차려 보면 이미 손님을 후려친 뒤였다. 희성은 비록 본체는 작은 소형견이지만 그를 키운 건 투견인 조폭들이었다. 그 때문에 희성을 건드리고 몸 제대로 건사한 놈은 없을 지경이었다.

‘그래서 내가 스킨십에 예민한 거였나?’

희성은 새삼스러운 자신의 성향을 깨달았다.

도박장에서 그런 성희롱을 당하며 살았으니 터치에 예민해질 수밖에 없었고, 자신을 깨물던 윤치영마저 위치는 생각도 못 하고 무작정 후려쳐 버렸었다.

“다행이네.”

그때 윤치영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드니 강아지 목을 손가락 하나로 살살 쓰다듬는 윤치영과 눈이 마주쳤다.

“나만 안 해 본 거면 좀 서운할 뻔했는데.”

“…….”

네가?

새까만 강아지 눈에 의문이 그대로 보였을 것이다. 희성이 자신도 모르게 고개까지 기울였으니까. 그 반응이 귀여운지 윤치영이 입꼬리를 올려 활짝 웃으며 강아지를 껴안았다.

그 품에 휩쓸린 희성은 말도 안 된다는 듯 눈을 크게 뜨고 있었다.

그렇다면 오른팔을 물어뜯긴 곱상한 늑대족 남자는 대체 뭐란 말인가?

거기다 늑대족 남자는 윤치영을 두려워했다. 귀와 꼬리까지 드러낼 정도로 감정을 제어 못 했고 제대로 눈조차 마주치지 못하던 모습이 눈에 선했다.

‘설마… 침대로 유혹해서 공격하는 건가?’

그럴싸했다. 윤치영은 얼굴이 수려한 데다 수컷으로서 우월한 신장을 가졌으니 그 자체로 유혹적이었다.

게다가 소문이 이유 없이 도는 게 아니었다. 도박장에서 일해 본 희성의 경험상, 있을 만하다 생각되는 소문은 거짓이었고 설마 싶은 소문은 진짜이곤 했다.

“…….”

그렇다면 식인 늑대 소문은 진짜인 것 같은데. 이상하게도 이젠 윤치영이 두렵지 않았다.

희성은 윤치영을 위로 째려보면서도 슬쩍 그의 품에 뺨을 기댔다.

‘…아니야. 나는 안 잡아먹는다고 했어.’

어쩐지 자신이 한 입 거리인 소형견이라 그가 안 잡아먹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윤치영이 거짓말은 안 하는 걸 알기에 믿음이 갔다.

그리고 희성은 순혈주의에 가족조차 멸시하는 누나보다는 식인 늑대가 나은 것 같았다.

희성에게 진짜 가족이 남아 있었다면, 절대 멸시하지 않고 소중히 했을 테니까.

* * *

희성이 도망을 꿈도 못 꿀 정도로, 식인 늑대는 강아지와 24시간을 함께했다.

하지만 희성은 포기하지 않고 도망 준비를 철저히 해 놨다.

‘집은 더럽게 넓어 가지고.’

강아지는 그간 윤치영의 집 안 구조를 완벽하게 파악해 놨다. 방이 다섯 개나 되고 테라스가 거실만큼 넓은 데다가 세탁실에 잘못 들어갔다가 갇히기도 했지만―치욕적이지만 짖어서 윤치영을 불러야 했다―, 강아지는 절뚝거리는 다리로 열심히 돌아다녀서 최적의 숨을 장소와 도망 루트를 찾아 놨다.

‘생각보다 현관이 침실이랑 멀어서 문제인데….’

희성은 매일 거실 카펫에 앉아 도망칠 상황을 시뮬레이션하곤 했다. 현관과 침실이 멀어서 작은 강아지 몸으로 달려가기는 힘들었지만, 그래도 현관의 소리가 침실까지 잘 안 들리는 게 장점이었다. 거기다 윤치영은 자기 전에 알 수 없는 약을 먹고 깊이 잠드니, 그가 잘 때가 도망치기 좋은 최적의 순간이었다.

그런데 가끔은, 넓고 검게 인테리어 된 집을 볼 때면 쓸쓸한 기분이 들었다.

‘얘는 혼자 살면서 왜 이렇게 쓸데없이 넓은 곳에 사는 거야?’

집이 커도 너무 컸다. 그리고 윤치영은 늘 그곳에 덩그러니 혼자 있었다. 강아지는 가끔 그가 넓고 검은 집에 혼자 있노라면 무척 쓸쓸해 보였다. 그나마도 자신이 없으면 이 집 안에 아무런 소음도 없을 것이었다.

희성은 소파에 앉아 있는 윤치영을 바라보다가, 눈이 마주치자 수수하게 웃는 잘생긴 얼굴을 보곤 고개를 돌렸다. 저런 놈을 동정해 봤자 뭐 할까. 자신은 어차피 이곳을 탈출할 건데.

탈출 루트를 파악한 뒤에는 도망 자금을 마련했다.

윤치영은 가끔 거실 테이블에 현금 다발을 한가득 쌓아 두고 조직원들에게 보고를 들었다.

“그 여우 수인이랑 접촉한 사람은? 이 돈 말고 숨긴 게 더 있을 텐데….”

그때마다 희성은 여러 잡다한 정보를 주워들을 수 있었다. 더불어 가끔은 바람에 날리거나 실수로 떨어진 5만 원권 지폐도 주울 수 있었다.

스윽.

도둑 강아지는 주로 어둑한 소파 밑에서 활동했다. 윤치영의 쓸데없이 예쁜 복사뼈를 노려보다가, 이따금 돈이 떨어지면 열심히 주워 왔다. 운 좋게 돈이 코앞에 떨어지면 하얀 앞발만 밖으로 슥 뻗어서 지폐를 가져올 수 있었다.

‘도박장에서 일하는 것보다 돈이 잘 모이는데?’

그렇게 모은 돈은 소파 아래를 뜯어 만든 공간에 모아 뒀다. 오직 강아지만이 찾을 수 있는 금고였는데, 어느새 꾸깃꾸깃한 지폐가 한가득이었다.

부잣집 곳간에서 먼지 정도만 훔쳤을 뿐인데, 희성이 도박장에서 일할 때보다 수익이 좋은 듯했다. 그 사실이 뭔가 불만스러웠지만, 희성은 이왕 훔칠 거 더 담대하게 훔치자고 마음먹었다. 그래야 도박장으로 돌아갈 때 조금이라도 마약을 빼앗긴 사고를 만회할 돈이 생길 것이다.

기회는 하늘이 주신 것처럼 찾아왔다.

툭.

뭉툭한 소리와 함께 지폐 다발이 소파 바로 앞에 떨어졌다. 기회를 노리던 강아지의 까만 눈에 노란 돈의 모습이 꽉 찼다.

돈에 눈이 먼 희성은 허겁지겁 빠져나와 노란 지폐 다발을 입에 물었다. 작은 몸으로 옮기긴 버거웠지만 이 정도 돈이면 몇 달은 돈 걱정 없이 살 수 있겠다고, 생각할 때였다.

“…….”

돈을 물고 돌아서자마자 빙그레 미소 짓고 있던 윤치영과 눈이 마주쳤다.

놀란 희성이 그 회색 눈을 멍하니 바라본 채 입에 물고 있던 돈을 툭 놓쳤다. 이상하게도 윤치영이 일부러 무언가를 떨어트린 것처럼 손을 들고 있었는데, 당황한 강아지는 무작정 연기부터 했다.

와, 왕!

평소처럼 사나운 강아지인 척 카펫에 있던 뱀 인형을 마구 물어뜯었다. 등 뒤로 다른 늑대 조직원들의 시선이 꽂히는 게 느껴져 간담이 서늘했지만, 다행히 희성에게 모인 묵직한 관심은 금방 사라졌다.

“뭐… 일단 그 여우는 계속 활동하게 내버려 둬. 돈 좀 모아 뒀을 때 다시 잡지 뭐.”

윤치영이 즐겁다는 듯 말하며 소파 등받이에 느긋이 기댔다. 희성은 얼굴도 모르는 여우 수인에게 잠깐 동정심을 느꼈지만, 열심히 부스러기를 챙겼다. 틈이 생기자마자 지폐 다발을 다시 물고 소파 아래 금고로 재빨리 돌아왔다.

‘노, 놀래라.’

큰일 날 뻔했다. 돈을 챙겨 온 뒤로도 희성은 가슴이 계속 콩닥거렸다. 하필 집 안의 인테리어가 온통 검어서 하얀 자신은 움직임을 들키기가 쉬웠다. 그나마 크기가 작아 다행이었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모아야겠군.’

그래도 희성은 적절히 타이밍을 볼 줄 알았다. 도박장에서 일하며 너무 욕심내다 오히려 모든 걸 잃는 경우를 많이 봤기 때문이었다. 희성은 제법 만족스럽게 모인 수익을 소파 아래 구멍에 잘 넣어 두고, 신중하게 타이밍을 보다가 밖으로 나갔다.

희성이 소파 밖으로 나가자마자 조직원들을 내보낸 윤치영이 반갑게 강아지를 안아 줬다.

“강아지 또 먼지투성이 됐네…. 같이 씻을까?”

‘…시발.’

돈이 안전한 곳에 있는 만큼 단점도 있었다. 먼지를 매번 뒤집어쓰게 돼서 윤치영에게 치욕스러운 목욕을 당해야 했다. 희성은 표정으로 욕을 하며 싫다는 내색을 했지만, 결국 따듯한 물이 채워진 세면대에 욕조처럼 앉게 됐다. 상처가 있는 다리에는 방수 패치까지 말끔하게 붙인 채였다.

“청소 도우미한테 소파 아래도 잘 청소해 달라고 해야겠다.”

“……?”

물에 젖어 몸이 볼품없이 작아진 강아지가 뭔가 찔리는 얼굴로 윤치영을 뒤돌아봤다.

설마 금고를 눈치챘나.

만약 그렇게 되면 그간 모은 돈을 새로운 금고를 찾아 옮겨 둬야 했다.

그 긴장한 눈빛을 본 윤치영이 은근하게 웃었다. 넓게 벌어진 어깨 아래로 마디가 두드러진 손을 내리는 행동이 수상했다.

“아니다…. 그냥 같이 씻으면 되겠네.”

그렇게 말하며 윤치영이 편하게 입고 있던 나이트가운을 벗었다. 당장 강아지는 비명과 함께 눈을 돌렸다. 함께 살며 당연히 윤치영의 알몸을 본 적이 있었다. 모델처럼 단단하게 단련된 훤칠한 몸은 누가 봐도 근사해 보였다.

문제는 보고 싶지 않은 것마저 보게 된다는 거였다.

‘시, 시발. 너무 커….’

강아지가 진저리를 치며 세면대 구석만 바라봤다. 지난번에 윤치영이 자신의 것이 말 수인보다도 크다고 한 걸 들었을 때는 헛소리라 여겼는데, 그 말이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다 작은 강아지의 모습으로 있으면 뭐든 훨씬 커 보여서 더 끔찍하게 느껴졌다.

결국 희성은 한동안 소파 아래에 들어가지 않았다. 윤치영의 묵직한 물건을 다시는 보고 싶지 않았다.

거기다 가장 싫은 건, 윤치영의 키 크고 훤칠한 몸이 부러웠다는 것이다. 키에 콤플렉스가 있던 희성이 바라던 근육이 균형 있게 짜인 근사한 몸이었다. 희성은 신이 불공평하다 느끼며 한동안 괜히 윤치영에게 평소보다 더욱 성질을 부렸다.

* * *

슬슬 윤치영과 함께 출근하는 게 익숙해졌을 때였다.

호시탐탐 탈출 기회를 엿보던 희성은 처음으로 윤치영과 떨어질 기회가 생겼다.

“음… 아니. 내가 가겠다고 해.”

수행원에게 귓속말로 무언가 전달받은 윤치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더니 그는 품에 있던 강아지를 자신이 앉아 있던 가죽 의자에 고이 내려 뒀다.

“조금만 기다리고 있어. 금방 올게.”

‘늦게 와.’

윤치영은 자신을 야심 차게 째려보는 강아지를 한 차례 쓰다듬어 준 뒤 문을 나섰다. 희성은 그의 발걸음 소리가 멀어질 때까지 한쪽 귀를 세운 채 기회를 엿봤다.

곧 사무실이 완전히 조용해졌다. 희성은 감격할 것만 같았다.

기회다.

드디어 지긋지긋한 윤치영과 떨어지게 됐다. 2주 만에 처음인 일이다. 강아지는 신나 흥분되면서도 어딘가 허전한 기분이었지만, 그래도 기회를 놓치진 않았다.

‘일단 어디든 몸을 숨기면 돼.’

이미 희성은 계획도 짜 뒀다. 일단 윤치영과 떨어지기만 하면 구석에 숨어 있다가 밤이 되면 몰래 움직일 생각이었다. 소형견의 유일한 장점인 작은 몸은 은신에 최적이었다.

‘다리 하나가 부러지더라도 뛰어야 해.’

강아지는 높은 의자에서 앞발을 종종거리며 뛰어내릴 각을 신중하게 잡았다. 아직 뒷다리가 다 낫지 않았고 절뚝거려야 했지만 이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곧 희성은 용감하게 몸을 날려 의자 아래로 뛰어내렸다.

하지만 희성의 몸은 뛰어내린 그대로 허공에 붕 떠 있었다.

뭔가 이상해 아래를 봤더니 큼직한 손이 강아지의 말랑한 배를 안정적으로 받치고 있었다.

“뛰어내리시면 위험합니다.”

“…….”

지영배가 강아지를 의자에 다시 고이 모셔 뒀다. 늘 강아지의 말을 반만 해석해 줘서 희성의 불신과 짜증을 산 조직원이었다.

희성은 그제야 절벽처럼 높은 의자 등받이 뒤를 돌아보게 됐다. 시야가 낮은 강아지에게는 안 보이던 곳이 보였다.

‘시발… 비겁한 늑대 새끼.’

장성한 늑대 일족 조직원 여섯이 강아지 한 마리를 감시하고 있었다. 희성은 그들을 한심하게 보다가 한숨을 폭 내쉬며 앞을 보았다. 어쩐지 윤치영이 너무 쉽게 사라진다 싶었다.

결국 포기한 강아지는 의자에 베이글처럼 몸을 둥글게 말았다. 편치 못한 마음을 따라 몸을 더욱 작게 웅크리게 됐다.

‘곧 도박장 정산일인데. 내 실수까지 형이 책임지겠지….’

시간이 갈수록 희성은 불안해졌다. 윤치영의 곁에서 몸은 편하지만 마음은 늘 좌불안석이었다.

견인족은 의를 가장 중시했다. 그리고 가족은 배신해도 조직원은 배신하지 말자는 게 투견들의 모토였다. 그런 희성에게 버려진 자신을 거둬 준 형은 늘 빚을 갚아야 하는 존재였다.

‘형은 내가 도망간 게 아니라고 믿고 있을 텐데….’

그런데 무리로 돌아가지 않고 이렇게 시간을 지체하다가, 결국 견인족 간의 의를 저버리면… 자신은 또 무리에서 버려질지도 몰랐다.

희성은 멀리 있는 시계를 초조하게 바라봤다. 회복을 더 빨리해서 사람으로 변할 수 있다면 도망칠 기회가 좀 생길 텐데. 오늘따라 작고 허약한 제 몸이 원망스러웠다.

* * *

“이사님! 오랜만입니다.”

윤치영이 접견실로 들어서자, 박건태가 황급히 일어나 인사했다. 그는 모처럼 정장을 차려입고 늑대족 본거지로 찾아왔다.

윤치영은 고개만 끄덕여 인사를 대신하고 앞쪽 소파에 앉았다. 박건태에겐 딱히 자리를 권하지도 않고 그대로 서 있게 뒀다. 윤치영은 손목시계를 까딱 내려다보며 도박장에서처럼 박건태를 편하게 대했다.

“굳이 여기까지 올 일이 있어?”

“예. 그게 드릴 말씀이 있어서… 혹시 바쁘십니까?”

“많이.”

윤치영은 숨기지 않고 말했다. 기다리는 강아지가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를 모르는 박건태는 과장되게 역시 최근에 바쁘신 거 같다고, 요즘 사업이 잘되시냐고 말을 늘어놓더니 뒤늦게 본론을 말했다.

“저, 지난번 저희가 거래한 물건 말입니다….”

“음, 마약?”

“예, 그거. 예….”

직설적인 말에 박건태가 쩔쩔맸다. 어차피 평소엔 잘도 말하고 다녔으면서 괜히 순박한 척을 하는 거였다. 이어질 말이 어려운 부탁이라 그랬다.

“아무래도 그 물건을 운반하던 견희성이가… 물건을 빼돌린 거 같습니다.”

“아… 너희 막내가?”

“예. 그래서 막내를 찾을 때까지 잔금을 치르는 기한을 좀 주시면….”

박건태가 어렵사리 말했다. 자신들도 피해를 본 상황이라 힘드니 이해해 달라는 뜻이었다.

윤치영은 미소 지은 채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하지만 회색 눈동자만큼은 박건태를 멸시하듯 훑어보고 있었다.

“그래. 막내가 늑대 일족 본거지에서 사라져서 뭔가 수상하고, 거기다 물건도 어디로 갔는지 모르니까… 잔금은 당장 치를 수 없다는 거구나.”

“그 뜻은 아니었는데… 하하.”

박건태는 어렵게 말하며 발가벗겨진 사람처럼 윤치영의 눈치를 흘끗거렸다. 상대는 도박장 VIP이자 검은돈을 꽉 잡은 늑대 일족이었다. 그런데 윤치영이라는 놈은 워낙 제멋대로에 눈치마저 좋은 놈이라 비위를 맞추기가 힘들었다. 박건태는 속으로 욕을 씹으면서도 어떻게든 그의 눈에 잘 들기 위해 쩔쩔매는 척을 했다.

그때 뜬금없는 질문이 날아들었다.

“그 막내는 어디서 데려왔어?”

“예. 견희성이는 저희가… 예?”

박건태가 앞을 보니, 어느덧 윤치영이 세상에서 가장 흥미로운 대화를 듣듯 기대감 어린 눈으로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박건태는 면상만 멀쩡한 사이코가 제 앞에서 그러고 있는 걸 보자니 얼떨떨했지만 일단 기억나는 대로 말해 주었다.

“그, 5년 전쯤인가? 재개발 구역에서 집에 혼자 있던 강아지를 발견하고 저희가 데려왔습니다.”

“…가족이 버리고 간 거야?”

“확실하진 않지만, 아무래도 판자촌이기도 하고. 허약해서 곧 죽기 직전이던 놈이라… 버려진 게 맞는 거 같습니다.”

“아, 그런….”

윤치영이 마치 제 이야기처럼 슬퍼했다. VIP 손님들의 성향을 하나하나 잘 아는 박건태는 씁쓸한 척 고개를 끄덕였다. 윤치영은 생각보다 감수성이 깊어서 입을 잘 터는 조직원을 판에 넣어 둬야 수익이 늘곤 했다.

“그럼 걔는 뭐 좋아해?”

“예?”

“뭘 좋아하냐고.”

윤치영의 미소가 조금 식었다. 입꼬리가 미묘하게 가라앉은 것뿐이었지만 눈치가 빠른 박건태는 그 차이를 알고 황급히 대답했다.

“그, 희성이가 좋아하는 게….”

“응.”

“흠. 먹는 건 대체로 다 좋아한 거 같은데….”

“…….”

박건태가 횡설수설해도 윤치영은 비루한 연극을 보듯이 눈을 떼지 않았다. 회색 눈동자가 서늘하게 빛났다. 지루하면 눈이라도 돌리겠지만 비루하면 어디까지 바닥을 기나 보게 되는 법이었다.

윤치영이 은근히 고개를 기울이며 물었다.

“몰라?”

“아, 아니. 압니다. 걔가 라면을 참 좋아했습니다.”

“아… 라면.”

대답을 들은 윤치영은 픽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이미 질릴 대로 질린 얼굴로 소파 어딘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평소 하얀 덩어리가 공격적으로 굴던 어딘가를.

“그럼 생일은?”

“아마 여름에… 7월쯤이었는데. 제가 생일날이 지나더라도 꼭 챙겨 주던 동생이었습니다.”

“뭐… 그래.”

부연 설명에도 윤치영은 이제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입가의 미소마저 사라진 채였고, 지루한 시간에 지친 것처럼 꼬아 앉은 발끝을 까딱이며 중얼거렸다.

“5년을 데리고 있었는데. 좋아하는 것도, 생일도 제대로 모르더니. 이젠 뒤통수까지 맞고 행방도 모른다는 거네….”

“…예.”

박건태는 등 뒤로 식은땀이 났다. 이상하게도 잘못한 것도 없는데 실수한 기분이 들었다.

거기다 윤치영이 자신을 가지고 노는 것 같다는 생각이 꾸준히 들었다. 그리고 무표정하던 윤치영이 갑자기 혼자 즐겁다는 듯 웃는 모습을 보곤 확신했다. 이 새낀 뭔가 다른 꿍꿍이가 있다고.

“그래, 알겠어.”

이내 윤치영이 자리에서 가뿐하게 일어났다.

“가 볼게. 막내 잡을 때까지 입금은 안 해도 돼.”

“정말이십니까? 사정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에 도박장에 오시면 저희가….”

“애인이 기다려서.”

윤치영이 미묘하게 웃으며 구태여 말해 주었다. 미련 없이 나가려는 윤치영의 옆으로 박건태가 따라붙어서 주절주절 사람 좋게 떠들었다.

“그래서 도박장에 뜸하셨군요. 그럼 다음에 애인분도 한번 데려와 주십시오.”

“그래야지.”

가뿐히 대답한 윤치영이 문 앞에 섰다. 그 앞으로 무표정한 늑대족 조직원들이 문을 열고 조용히 대기했다. 묵직한 분위기 속에서 한가롭게 구는 건 윤치영뿐이었다.

“아.”

그때 뭔가 떠올린 듯 나직이 운을 뗀 윤치영이 반쯤 뒤를 돌아보았다.

“너희 막내는 대하구이 좋아하더라.”

그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당황한 박건태가 뭐라 더 반응할 새도 없이 윤치영이 복도로 나갔다. 박건태가 마지막으로 본 건 키가 훤칠한 그가 걸을 때마다 은근히 나부끼는 검은 코트 자락뿐이었다.

윤치영이 자리를 뜬 뒤에도, 박건태는 한동안 자리에 못 박힌 듯이 서 있었다. 등골을 타고 오르는 불쾌한 긴장감에 욕지거리가 절로 나왔다.

“…뭐지? 저 씨발 새끼.”

조금 전 윤치영이 남긴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별거 아닌 말일 수도 있겠지만, 그 말을 한 사람이 교활한 늑대라면 달랐다. 그것도 윤치영이라면….

곧 박건태는 굳은 얼굴로 도망치듯 늑대족 영역을 빠져나갔다. 뭔가 심상치 않았다.

* * *

‘왜 이렇게 늦게 왔어!’

윤치영이 돌아오자마자 강아지가 호통을 쳤다.

조직원 여섯이 자신만 노려보는데, 희성은 정말 눈빛만으로 온몸이 구워지는 줄 알았다. 조금만 움직여도 늑대들의 시선이 따라붙어서 꼬리 한 번 제대로 못 흔들 정도였다.

호통에 윤치영이 성큼 다가와서는 부드럽게 솜 덩어리를 안아 달랬다.

“나 기다렸어?”

강아지는 대답도 안 한 채 이를 드러내고 다른 곳만 노려봤다. 짜증 나니 말 걸지 말라는 거였다.

어쨌든 늑대 일족 여섯에게 감시당하는 것보다 윤치영이 낫긴 한데, 그 논리가 무척 마음에 안 들었다. 자신이 윤치영을 기다렸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강아지가 삐졌다고 생각한 건지, 윤치영이 희성을 품에 안고 쓰다듬어 주며 연인처럼 차근차근 달래 주었다.

“잘못했어, 응? 한 번만 봐줘.”

“…….”

“다시는 곁에서 안 떨어질게. 약속.”

‘애교 좀 부리지 마!’

차라리 가만히 뒀으면 혼자 화를 삭였을 텐데. 잘생긴 얼굴로 치대니 기어코 강아지가 극대로했다. 희성은 윤치영의 손을 보이는 대로 공격하며 마구 짖었다.

왕! 왕!

“뭐라는 거지? 내가 너무 좋대? 빨리 집에 가재?”

윤치영이 강아지를 쓰다듬으며 견인족 수하인 지영배에게 물었다. 손을 계속 강아지에게 물리고 있었지만 그는 늘 낭만적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지영배도 늘 솔직하게 대답했다.

“예, 이사님…. ‘십새끼야.’라 하고 있습니다.”

“존나 귀엽다…. 알겠어, 빨리 집에 가서 단둘이 있자.”

지영배는 늘 희성의 말을 반절만 알아들었는데, 욕만큼은 똑바로 알아들었다. 욕에는 방언이 없기 때문이었다. 희성에겐 그나마 덜 답답한 일이지만, 윤치영이 아무런 타격도 안 입는다는 게 문제였다.

윤치영이 차 뒷좌석에 올라타자 지친 강아지는 잠잠해졌다. 아예 얼굴도 보기 싫은지 혼자 윤치영의 탄탄한 복부에 머리를 박고 면벽 수행 중이었다.

그 감자만 한 머리를 살살 쓰다듬던 윤치영이 물었다.

“강아지는 라면 좋아해?”

‘좋겠냐?’

뜬금없는 질문이었다. 희성은 대답할 가치가 없어서 뚱하게 자세를 유지했다.

라면은 싫었다. 도박장에서 매번 먹어서 질릴 대로 질렸다. 그래서 희성은 그냥 따듯한 밥에 간장을 비벼 먹는 게 더 좋을 지경이었다.

무시에도 윤치영이 다시 다정하게 물었다.

“그럼 대하구이는?”

“…….”

희성은 반응하고 싶지 않았다. 정말로.

그런데 하얀 꼬리가 흠칫흠칫 떨리더니, 이내 꼬리 끝이 윤치영의 허벅지 위에서 바쁘게 흔들렸다. 그 솔직한 반응에 윤치영이 웃음을 터트리며 뒷좌석에 강아지를 안고 옆으로 누웠다. 희성은 처음으로 제 꼬리가 원망스러워졌다.

‘…난 대하구이만 좋은 거야. 대하만.’

강아지는 고집스레 생각하며 자신의 꼬리를 슬쩍 앞발로 눌러 뒀다.

처음으로 먹은 귀중한 음식은 희성의 꼬리만큼은 녹여 주었다. 누군가 자신만을 위해 차려 준 음식이라 그런 걸지도 몰랐다. 살면서 처음이었다.

그래도 희성은 그 특별함에 넘어가지 말자고 홀로 다짐했지만, 앞발로 눌러 둔 꼬리는 다른 생물처럼 줄곧 꼬물거리고 있었다.

* * *

온통 검게 인테리어 된 집으로 돌아오니 한식이 푸짐하게 차려져 있었다. 식탁 가운데에는 대하구이를 바로 먹을 수 있도록 세팅까지 돼 있었다. 몹시 배가 고팠던 희성은 윤치영이 손을 씻고 자리에 앉자마자 식탁에서 빨리 먹여 달라고 안달을 냈다.

강아지에게 죽부터―수인 어린이용 이유식이다―먹여 주던 윤치영이 말했다.

“평생 누구한테 이렇게 밥 먹여 준 적 없었는데.”

‘나라고 다른 조직 보스가 밥 먹여 줄 줄 알았겠냐.’

이제 희성은 혼잣말하는 게 익숙해졌다. 그건 윤치영도 마찬가지인지, 대하를 긴 손가락으로 까 주며 희성에게 도란도란 다정한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강아지. 나 내일 가기 싫은 곳 가야 하는데… 같이 가 줄 거지?”

‘아니.’

희성은 가기 싫었다. 어떻게든 윤치영과 떨어져야 탈출 시도를 하든가, 최소한 사람으로 변하는 시도를 할 수 있을 것이었다.

그리고 사실 강아지는 스킨십에 미친 윤치영과 좀 떨어지고 싶었다. 윤치영이 하도 강아지 몸을 조몰락거려서 자신의 몸이 찰흙처럼 뭉개지는 꿈을 꿀 정도였다. 그만큼 강아지도 혼자 쉴 시간이 필요했다.

강아지가 별 반응도 없이 대하만 초롱초롱 바라보자, 윤치영이 속상해하듯 말했다.

“안 가 줄 거야? 나 너 없으면 아무 데도 못 가잖아….”

‘…시발.’

희성의 눈앞에 대하가 미끼처럼 걸렸다. 강아지가 테이블에서 두 발로 서도 대하는 그만큼 멀어지기만 했다.

강아지가 살심을 담아 윤치영을 올려다봤다. 하지만 매력적으로 웃는 윤치영보다도 대하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탱탱하고 붉게 달아오른 살은 간도 적절하게 돼 있었다.

결국 꼬리가 먼저 강아지를 배신했다. 바쁘게 꼬리를 흔들던 희성은 냉큼 대하를 물어뜯어 원하지 않은 수락을 하게 됐다.

“그럼 같이 가는 거다?”

‘어차피 데려갔을 거면서.’

강아지가 아무리 성질을 부려도 윤치영은 어디든 데려갔을 거였다. 이미 지난 3주간 지긋지긋하게 강아지를 품에 끼고 다닌 걸 보면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내일은 우리 누나의 수장 승계식에 갈 거야.”

평화로운 분위기 속에서, 윤치영이 강아지에게 대하구이를 까 바치며 말했다.

“난 형이 둘 있고, 누나 하나랑 여동생 하나가 있는데….”

‘늑대 5남매야? 동화보다 살벌하다.’

“나도 어릴 땐 내 남매들처럼 수장이 되고 싶었어.”

‘하지 그랬냐.’

강아지는 대충 들으며 냉큼 대하구이를 또 하나 받아먹었다. 그러다 실수로 윤치영의 바지에 대하를 흘렸는데, 윤치영은 혼내기는커녕 떨어진 건 먹지 말라고 치워 주고 새로 대하를 까 주며 말했다.

“그런데 나만큼은 안 되는 위치더라.”

“……?”

어딘가 씁쓸함이 느껴지는 말이었다. 강아지는 의아해하는 눈으로 윤치영을 올려다보았다.

‘왜?’

궁금하다는 걸 알리려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윤치영은 그저 대하를 예쁘게 까서 강아지 앞의 접시에 놔 줬다. 강아지는 어쩐지 분위기가 가라앉은 윤치영을 못마땅하게 째려보다가, 슬쩍 접시를 윤치영 쪽으로 밀어 줬다.

‘이젠 강아지한테 투정이냐?’

기운 내라고 대하를 양보한 건 아니었다. 그냥, 조금 배부르기도 하고 맨날 치대던 놈이 기운 없이 있으니 자신이 다 신경 쓰였다.

앞발로 접시를 밀어 주자 그제야 윤치영이 부드럽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곤 강아지가 양보해 준 대하를 먹었다. 내친김에 뽀뽀까지 하려 해서 희성은 질색을 하며 뒤쪽으로 물러났다.

그래도 희성은 내심 그가 신경 쓰였다.

‘…얘는 조직 보스라 이런 거 말할 만한 가족이나 친구가 없는 건가?’

그나마 친구 같던 말 수인은 직접 뼈를 부러트리더니, 이제는 강아지에게 혼자 말을 걸며 정을 주고 있었다. 가족 사정도 좋지 않은 듯했는데, 그간 희성이 보기로 가족과 연락은커녕 윤치영의 누나는 그를 멸시했고 마주치는 수인 대부분이 그를 두려워했다. 희성은 그래도 조직에 친구가 몇 있는데, 늘 혼자인 윤치영이 조금 안쓰러울 지경이었다.

생각하던 강아지는 흠칫 몸을 떨었다.

‘내가 왜 얘를 불쌍해하는 거야?’

돈이 썩어 나는 놈인데 뭐 하러? 강아지는 다시 미간을 꽉 구긴 채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다.

도박장에서 일했던 희성은 윤치영이 하룻밤에 가지고 노는 돈이 얼마인지 알고 있었다. 희성이 몇 년을 숨만 쉬고 살아야 벌 돈을 그는 쉽게 도박장에 던지곤 했다.

“자, 한 입 더 먹자.”

그때 윤치영이 희성에게 새끼손톱만 하게 자른 떡갈비에 밥풀을 몇 개 붙여 내밀었다. 눈앞에서 그것을 고심해 보던 강아지는 떡갈비를 덥석 받아먹었다. 그러곤 테이블을 둘러봤다. 드넓은 대리석 테이블에 호화로운 음식이 차려져 있는데, 그곳에 덩그러니 앉아 있는 건 윤치영과 자신뿐이었다.

‘…그래도 이런 건 돈으로 따질 문제가 아니잖아.’

씁쓸하게 생각한 희성은 테이블에서 윤치영 앞쪽으로 걸어갔다. 그러곤 직접 윤치영의 무릎으로 폴짝 뛰어내렸다. 그의 품으로 먼저 간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건 윤치영도 아는지 식사는 뒷전으로 두고 강아지를 안아 주었다.

문득 형의 잔소리가 희성의 머릿속에 스쳤다.

〈희성이 너 인마, 그렇게 정에 약해서 어떡할래? 너한테 잘해 준다고 해서 다 좋은 사람인 건 아니야.〉

하지만 강아지는 윤치영의 기뻐하는 수려한 얼굴을 보며 자리를 뜨지 못했다.

‘형이 이런 모습 봤으면 또 한 소리 했겠지….’

희성은 이런 자신이 한심했지만, 얌전히 윤치영의 품을 지켜 주었다.

윤치영은 강아지를 품에 두고 늦은 식사를 기분 좋게 했다. 실수로 강아지의 하얀 머리에 양념장을 흘려서 한바탕 혼이 나긴 했지만.

* * *

늑대 일족의 행사는 우아하고 화려했다.

희성이 생전 처음 가 보는 천장이 높은 호텔에서 행사가 진행됐다. 그곳에서 머리에 양념장 자국이 난 강아지는―씻어도 안 지워졌다―윤치영의 손에 매달려 순혈 늑대들을 구경할 수 있었다. 유명한 야구 선수랑 축구 선수도 있었고, 업계 고위 인사랑 영화배우도 있었다.

신기한 점은 모두 꼭 윤치영에게 표면적으로라도 반가운 척 인사를 하러 온다는 것이었다.

“오랜만입니다, 이사님. 잘 지내셨죠?”

윤치영의 대답은 사람에 따라 달랐다. 물론 그럴 때마다 늑대들의 반응도 달라졌다.

‘좀 바빴어, 덕분에.’ 이렇게 대답하면 늑대들은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쩔쩔맸고.

‘나야 평소랑 똑같지.’ 이렇게 대답해도 늑대들은 윤치영을 어려워하며 어렵게 미소를 지었다.

‘요새는 오히려 좀 심심했어.’라고 대답해야 통과인 듯했다. 윤치영과 대화하던 늑대들의 표정이 그 대답을 들으면 그나마 밝아졌다.

‘다들 윤치영에게 관심받기 싫어하는 건가?’

하도 품에서 그 광경을 봤더니 이제 강아지는 늑대들의 반응을 분석할 수 있게 됐다. 모두 윤치영을 어려워하거나 혹은 두려워했고, 눈빛 깊숙한 곳에 일말의 경멸이 남아 있었다. 그와 반대로 윤치영은 상대가 노인이든 유명하든 딱히 어려워하지 않아서 신기했다.

시간이 되자 수장 승계식이 시작됐다.

순혈 늑대들은 자리에 앉아 엄숙한 얼굴로 행사에 임했다. 주변은 밝고 화려하게 꾸며져 있었지만 희성은 이곳에 미묘한 긴장감이 감도는 걸 느꼈다. 아마 긴장한 늑대들에게서 은연중에 나온 페로몬 때문일 것이었다.

“여기 냄새 싫지? 잠깐 저기 있어.”

강아지가 걱정됐는지 윤치영이 웬일로 희성을 다른 곳에 맡겼다. 표정도 불쾌감이 가득해 보였다. 페로몬에 그다지 민감하지 않은 희성은 어디든 딱히 상관없었지만, 행사장 벽 쪽에 서 있던 조직원 중 지영배의 손으로 넘어가게 됐다.

“강아지가 원하는 건 다 해 줘.”

특별한 명령까지 받은 지영배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희성은 윤치영이 자리로 돌아가자마자 원하는 걸 꿍얼꿍얼 말해 봤다.

‘나 탈출시켜 줘.’

“화장실에 가고 싶으십니까?”

“…….”

강아지는 바로 포기했다. 서로 말이 반만 통하는지라 지영배와 조금만 대화를 해도 희성은 피곤해졌다. 차라리 혼잣말을 주절대는 윤치영이 편할 지경이었다.

뚱하게 앞을 보던 강아지는 뭔가 이상한 걸 발견했다.

‘뭐야?’

순혈 늑대들은 각자 동그란 테이블에 삼삼오오 자리했다.

그런데, 앞쪽 명당에 있는 윤치영의 테이블에는 그 혼자만이 우아하게 앉아 있었다.

궁금해진 희성은 지영배에게 윤치영을 앞발로 가리키며 물었다.

‘쟤 왕따야?’

“아닙니다.”

‘어, 내 말 바로 알아들은 건가?’

강아지가 까만 눈을 빛내며 위를 올려다봤다. 늘 무표정하고 진지한 지영배의 모습이 보였다.

“이사님은 감자가 아니라 늑대십니다.”

‘너도 짜증 나.’

희성은 앞발로 지영배의 손을 퍽 치며 성질을 냈다. 늘 이런 식이라 대화를 포기하는 거였다.

그래도 궁금증을 못 참아 이번엔 더 정확한 신체 언어를 보여 주었다.

‘쟤. 왜. 혼자?’

다행히 이번엔 지영배가 알아들은 듯했다.

“아. 특별 대우입니다. 이사님은 일족의 감시자이셔서 그렇습니다.”

‘감시자?’

감시자라는 단어는 신체 언어로 표현할 수가 없어서 일부러 의아해하는 리액션을 크게 했다. 다행히 고개를 기우뚱하는 것만으로 지영배가 뜻을 알아들었다.

“늑대 일족은 순혈과 품위를 중요시하는 만큼 내부 분란과 배신에 엄격합니다.”

‘그게 뭐.’

“때문에 늑대 일족은 분란 종자와 배신자를 직접 처리하는 감시자가 따로 있습니다.”

‘…뭐?’

강아지의 얼굴이 멍해졌다. 까만 눈 안에는 테이블에 홀로 앉은 윤치영의 넓은 등과 느슨한 뒷모습이 보였다.

‘그렇다면 감시자라는 건… 친인척들을 감시하고 배신하면 제 손으로 죽인다는 거야?’

그러고 보니 지난번 윤치영은 윤건영에게 누나는 안 죽였으면 좋겠다고 했다. 말뜻을 추리해 보면, 이미 윤치영은 친척을 직접 처리한 경험이 있는 듯했다.

〈그런데 나만큼은 안 되는 위치더라.〉

하지만 윤치영은 스스로 원해서 감시자가 된 것 같진 않았다. 뭔가 이상했다.

강아지는 다시 열심히 앞발과 꼬리를 휘적대며 지영배에게 신체 언어를 보여 주었다.

‘그건, 어떻게 돼?’

‘감시자는 누가 되냐고.’

‘왜 쟤가 됐냐고!’

몇 번의 소통 오류 끝에 희성은 겨우 원하는 대답을 듣게 됐다.

“아, 감시자는 대대로 늑대의 피를 가장 진하게 이어받은 강한 자가 맡아 왔습니다. 대신 어릴 적부터 가족과 떨어진 채 혼자 특수한 훈련을 받으며 자라나죠.”

‘제일 강하면, 왜 수장을 안 시키고?’

희성이 앞발로 단상에 선 윤건영을 가리켰다. 왜 가장 강한 윤치영이 아니라 윤건영이 일족의 다음 수장이 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지영배는 그 질문을 예상한 것처럼 묵직하게 알려 주었다.

“늑대 일족의 수장은 가장 현명한 자를 선출합니다.”

‘…미친놈들.’

그 말뜻은 윤치영은 늑대의 피가 진하다는 이유로 어릴 때부터 동족상잔을 하도록 따로 키워졌다는 거 아닌가.

“…그래서 일족원 모두가 감시자를 두려워합니다.”

그래 놓곤 다들 감시자를 꺼려 하고 있었다. 같은 가족인데도. 희성은 윤치영의 등을 길게 응시했다.

‘무슨 가족끼리 애를 왕따시키냐?’

강아지는 왠지 이 상황 자체에 열이 받았다. 이유는 자신도 몰랐다. 적어도 희성을 키워 낸 투견들은 동족상잔 하는 역할을 따로 키우진 않았다. 의리로 뭉친 투견들에게 그런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나 쟤한테 갈래.’

“예?”

‘쟤한테. 간다. 나.’

강아지는 무척 절도 있게 신체 언어를 보여 주었다. 눈빛도 강렬하게 빛냈다. 하지만 지영배는 선뜻 따르지 못하고, 제 주먹만 한 강아지와 윤치영을 번갈아 보며 망설였다.

“하지만….”

강아지는 주저하는 지영배를 엄하게 째려봤다.

결국 초롱초롱한 눈빛을 못 이긴 지영배는 엄숙한 자리로 조심히 들어갔다. 어쨌든 명령은 따라야 했다. 강아지가 원하는 건 다 들어주라는 보스의 말을.

“이사님.”

승계식이 한창 이뤄지고 있는 곳에서 말하고 움직이는 건 지영배뿐이었다. 그는 지루한 얼굴로 옆을 돌아본 윤치영에게 화가 난 강아지를 조심스레 내밀었다.

“강아지가 이사님께 가겠다고 고집을 부리셔서….”

“아… 그래. 이리 와.”

윤치영이 처음으로 웃었다. 그는 표정이 험악한 강아지를 건네받아 고이 품에 뒀다. 몇몇 못마땅해하는 일족원의 눈이 모였지만 윤치영에게 직접 언질을 주는 수인은 아무도 없었다.

마지막으로 지영배는 전달 사항도 잊지 않았다.

“그리고 강아지께서… 기죽지 말라 하셨습니다.”

“큽, 콜록…!”

와인을 마시던 윤치영이 사레가 들렸다. 붉고 선명한 액체가 그의 입가에서 흘러 하얀 강아지의 등에 장미 꽃잎처럼 빨간 자국을 남겼다.

‘야, 이….’

난데없이 와인을 맞은 희성이 인상을 험악하게 찌푸리고 제 등과 윤치영을 번갈아 봤다. 머리에 남은 양념장 자국도 종일 맛있는 냄새를 풍겨 열받았는데 이제 몸에 향긋한 와인까지 묻었다.

하지만 윤치영은 화난 강아지를 신경 쓸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큼직한 손으로 제 얼굴을 덮은 윤치영은 어깨를 가늘게 떨며 웃음을 참느라 바빴다.

‘지금 내 등에 와인을 흘리고 웃어?’

불만스러웠지만, 강아지는 행사가 끝날 때까지 윤치영의 품에 당당히 자리해 줬다. 일족원들의 언짢아하는 시선이 느껴지면 사납게 순혈 늑대를 마주 노려봤다.

행사 이후에도 강아지는 나름의 조력을 했다.

‘너도 개새끼야.’

‘너도 씨발!’

윤치영에게 순혈 늑대들이 어렵사리 다가올 때마다 강아지는 이를 드러내며 손을 죄 물어뜯으려 했다. 건방진 강아지를 본 늑대들은 당장이라도 물어 죽일 것 같은 표정이 됐지만, 서늘해진 윤치영의 눈치를 보곤 다음을 기약하며 도망치듯 사라졌다.

“하, 우리 강아지가 귀찮은 늑대들 다 치워 주네.”

윤치영은 처음으로 드넓은 홀에서 활짝 웃었다.

그러다 윤치영은 옆쪽 대리석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됐다. 금빛 샹들리에 아래 행복하게 웃는 자신의 모습이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그리고 품 안의 성격 나쁜 강아지마저 완벽하게 느껴졌다. 가족 행사 자리에서 처음 느끼는 기분이었다.

* * *

견인족 도박장은 밤에 영업을 시작했다. 저녁 늦게 출근한 박건태는 심각한 얼굴로 사무실에 앉아 생각에 빠져 있었다.

〈너희 막내는 대하구이 좋아하더라.〉

지난번에 분명 윤치영이 그렇게 말했었다. 단순한 말일 수도 있지만, 박건태는 도저히 쉽게 넘길 수가 없었다.

‘그놈이 대하같이 귀한 걸 먹어 봤을 리가 없는데.’

희성은 주에 6.5일을 일했고 쉬는 날에는 무조건 잠을 잤다. 먹는 것보다 차라리 자고 싶다고, 잠 귀신 들린 놈처럼 굴던 놈이었다. 몸이 워낙 허약한 탓이었다. 거기다 월급도 박건태가 관리해 주겠다는 명목으로 거의 주지 않아서 뭔가 사 먹을 돈도 없을 터였다.

그 때문에 박건태는 윤치영의 말이 범상치 않게 느껴졌다. 늑대 일족이 사라져 버린 희성을 데리고 있다는 단서일지도 몰랐다.

‘만약 견희성이가 살아 있으면… 내가 돈을 빼돌린 걸 언젠가 우리 보스가 알게 될 텐데.’

이번에 박건태는 늑대 일족에게 받은 마약을 빼돌려 개인적인 이익을 챙겼다. 그리고 희성에게 누명을 고스란히 뒤집어씌웠다.

그날 견희성이 받은 마약은 대략 1억 원어치였다.

도박장에서는 심심치 않게 오가는 돈이었지만, 박건태에겐 꼭 개인적으로 필요한 돈이었다.

‘이제야 이 바닥에서 손 터나 했는데… 씨발.’

박건태는 젊을 때 도박으로 도박장에 크나큰 빚을 지고 맨몸으로 일하게 됐다. 그나마 열심히 살아 빚을 거의 갚아 가고 도박장 실장 자리도 꿰차게 됐을 때, 다른 꿈이 생겼다.

결혼하고 싶은 여자를 만났다. 평생 가족 없이 고아로 살아온 박건태는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자가 자신의 정체를 알고 도망가기 전에 빚을 완전히 청산하고 이 바닥에서 손을 떼야 했다.

〈우리 이번 일만 하고, 같이 손 털자.〉

희성에게 했던 그 말은 사실 자신을 위한 말이었다.

하지만 박건태는 희성을 속인 게 그다지 미안하지 않았다.

‘버려진 놈 내가 거둬다 먹여 주고 재워 주고 사고 친 거 다 수습해서 키워 줬는데, 씨발.’

그간 희성의 일급을 자신의 빚을 갚는 데 쓰긴 했지만, 박건태는 자신에게 당연히 그럴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다. 5년이나 거둬서 키워 줬으면 된 거 아닐까. 자신은 오롯이 혼자 컸는데.

죄책감이 없는 만큼 일은 대담하게 꾸몄다. 늑대들은 견인족 보스도 함부로 못 건드리니, 그 구역에서 견희성을 처리하고 물건을 빼돌렸다.

그렇게 잔금 기한을 미루다가 시간이 좀 지나 자신이 아끼는 동생 좀 찾겠다고 적당히 설치면, 영역 의식이 강한 늑대들은 같잖은 이유로 침범하지 말라고 이를 드러낼 터였고. 그렇게 되면 견인족 보스도 막내가 물건을 들고튀었다고 욕을 하며 넘어갈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만약, 윤치영이 견희성을 살려서 데리고 있는 거라면….

‘…그 식인 늑대 새끼가 날 협박하는 건가?’

어쨌든 불미스러운 일을 늑대 일족의 영역에서 저지른 거니 심하게 거슬려 할 수도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 사이코패스 새끼가 개 한 마리랑 놀아날 리가 없는데?’

박건태는 윤치영이 희성에게 애정 같은 걸 느낄 거라는 생각은 추호도 안 했다. 만약 희성을 거뒀다고 해도, 도박을 하듯 단순한 흥밋거리로 가지고 놀다가 버릴 게 뻔했다. 희성도 성격이 더러워서 누구를 정상적으로 만날 만한 놈이 아니었다.

하지만 애정 관계가 아니더라도 윤치영이 희성을 데리고 있다면 위험했다. 이번 계략이 까발려지면 자신이 늑대들의 표적이 되고 만다.

결국 답답함에 박건태는 인맥으로 정보를 얻으려 했다. 다행히 꾸준히 견희성을 찾는 미친놈이 하나 있었다.

“씨발, 윤치영 얘기를 왜 나한테 물어? 견희성이나 데려오라고!”

말 수인인 권기혁이었다.

최근 오른팔에 깁스를 한 그는 술에 취해 도박장에 오기만 하면 견희성을 찾았다. 그때마다 마치 부모의 원수라도 찾는 것처럼 두 눈이 붉어진 채 광기로 번들거렸다.

“권 사장님. 정말 저도 답답해서 그럽니다….”

박건태는 도박장에 딸린 룸에서 그를 살살 달래며 구슬렸다.

어쨌든 권기혁은 윤치영과 친분이 있었다. 거기다 미친 듯이 견희성을 찾고 있으니 단서를 흘리면 정보를 줄지도 몰랐다.

“사실 우리 희성이가 이번에 늑대 일족의 구역에서 사라졌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찾으려 해도 통 종적을 찾을 수가 없어서….”

“윤치영네 구역에서, 견희성이?”

“예. 본체가 하얗고 작은 개입니다.”

“…….”

권기혁의 미간이 뭔가 이상하다는 듯 구겨졌다.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그는 술을 한 잔 더 마시며 물었다.

“혹시 다 큰 어른의 본체가 강아지일 수가 있나?”

“예. 견희성이는 특히 작았습니다. 부견이 진돗개였는데, 모견이 아주 작은 몰티즈랬나….”

박건태는 희성이 평생 숨긴 비밀을 거리낌 없이 말했다. 지금 자신의 목이 간당간당한지라 어떻게라도 정보를 흘려서 단서를 얻어야 했다.

그러자 권기혁이 픽 웃었다.

“지금 존나 웃긴 상황 같은데… 펜 좀 줘 봐.”

권기혁은 펜을 찾더니 종이 위에 뭔가 슥슥 그렸다. 왼손으로 그려 엉성한 그림이었다. 대충 감자를 두 개 붙여 둔 것 같은 그림. 그 위에 접힌 귀를 붙인 그는 작품을 박건태에게 보여 줬다.

“혹시 본체가 진짜 이만해?”

“…예.”

“하, 씨발. 그럼 맞네.”

권기혁이 미처 생각도 못 했다는 듯 픽 웃었다.

“윤치영이 최근에 하얀 강아지를 들고 다니기 시작했어. 뒷다리를 절뚝거리는 좆만 한 개.”

“……!”

그럼 견희성일 가능성이 컸다. 의뢰한 놈들이 견희성의 허벅다리에 칼을 찔렀다고 했다. 박건태는 간담이 서늘해졌다. 윤치영이 대체 무슨 꿍꿍이인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의 계략이 알려져서는 안 됐다.

“사장님. 조금 더 자세히 말씀해 주시면 저희가….”

“내가 알려 주면.”

권기혁이 자리에서 거만하게 등을 기댔다. 팔이 부러진 뒤부터 유독 초췌해진 그는 대충 종이를 구겨 던지며 말했다.

“견희성 되찾았을 때 반드시 나한테 팔아.”

“…….”

“약속하면 정보든 뭐든 다 내줄게.”

박건태의 시선 끝에 구겨진 종이가 보였다. 대충 그려진 강아지의 모습이 보였다. 나름 아끼던 동생이라 껄끄럽긴 했지만, 제 목숨과 바꿀 만큼은 아니었다. 거기다 박건태는 어떻게든 일을 처리하고 말끔히 손을 털고 싶었다. 아니, 마지막인 만큼 깨끗이 처리해야만 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었다.

“견희성이를 어디에 쓰시려는 겁니까?”

“왜?”

권기혁이 안주를 씹으며 고개를 불량하게 기울였다. 실핏줄이 터진 흰자위에 붉은 눈빛이 번들거렸다.

“그 새끼 구멍이 헐 때까지 가지고 놀 건데. 쓰임에 따라 가격이 달라? 얼마 원하는데.”

“…아닙니다. 저희 쪽 일만 처리하면 바로 넘기겠습니다.”

박건태는 그의 도움을 받아야만 했다. 윤치영의 정보는 얻기도 어려울뿐더러, 마침 이 말 수인도 견희성을 원하니 어쨌든 윈윈이었다.

‘희성이를 얼마에 넘겨야 손실을 메꾸지?’

게다가 희성을 이 변태 말 수인에게 넘기면 돈도 꽤나 챙길 수 있을 것이다.

그날 밤, 박건태는 권기혁에게 온갖 정보를 들으며 치밀하게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교활한 식인 늑대의 의도를 알기 위해서.

* * *

늑대 일족의 행사가 끝난 뒤, 윤치영은 바로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강아지, 잠시만 기다리고 있어. 알겠지?”

오히려 그는 강아지를 지영배에게 맡기고 어디론가 바삐 사라졌다. 희성은 멀어지는 윤치영의 등을 보며 의아하게 생각했다.

‘도망칠 기회라도 주는 건가?’

그러지 않고서야 스킨십에 미친 놈이 이럴 리가 없을 텐데. 신기한 일이었다.

강아지는 조용한 대기실에 세 명의 조직원과 함께 남게 됐다. 지난번에 여섯의 감시를 받았다고 이제 셋쯤은 편했다. 강아지는 탈출은커녕 밀려드는 졸음에 꾸벅꾸벅 졸다가 지영배의 손바닥에 옆으로 고꾸라져 잠이 들었다. 그러자 손길 섬세한 지영배가 강아지용 담요를―원래 윤치영의 손수건이었다―꼼꼼하게 덮어 주었다. 편하긴 엄청 편했다.

잠시 후, 몸을 뒤척이던 강아지는 자리에서 일어나 앞발로 고양이 세수를 했다. 역시 드넓은 침대가 아니라 그런지 금방 깨게 됐다.

‘1시간이나 안 왔어?’

앞발로 지영배의 손목시계를 확인해 보니 1시간이나 지나 있었다. 선잠에서 깬 강아지는 짜증에 양념장 자국이 남은 머리를 마구 손수건에 비볐다.

그때 문이 열리며 부드러운 부름이 들렸다.

“나 왔어, 기다렸어?”

빠르게 걸어 들어오는 윤치영이 보였다. 희성은 좁쌀만 한 이빨부터 드러냈다. 무려 1시간이나 윤치영을 기다렸다. 졸려 죽겠는데.

‘내가 기다렸는데 옷까지 갈아입고 와?’

거기다 윤치영은 멋진 새 양복까지 차려입고 왔다. 강아지는 열 걸음 거리에서 윤치영을 보자마자 죽일 듯이 노려봤다. 그 눈빛이 윤치영에겐 그저 새침하게만 보였는지 그가 보답처럼 활짝 웃어 보였다.

“미안해, 빨리 처리하려 했는데….”

‘차라리 날 혼자 두든지, 왜 늑대들이랑 두고 가선…!’

꿍얼대던 강아지의 물렁한 몸이 순간 굳어 버렸다.

가까이 다가온 윤치영에게서 진득한 피 냄새가 났다. 말끔하게 옷을 갈아입은 그는 비누 향과 향수 냄새로 피 냄새를 가리려 한 것 같지만, 강아지의 예리한 후각을 속일 수는 없었다.

‘아까는 피 냄새가 안 났는데? …후각도 예민하면서 향수는 왜 뿌린 거야?’

마구 화를 내던 강아지의 얼굴이 멍해졌다. 윤치영이 이제 집에 가자고 다정하게 말해도 아무런 반응도 못 한 채 그의 체취를 다시 확인했다.

강아지는 가까워진 그의 손 냄새를 맡아 보았다. 희미하지만 분명 피 냄새가 맞았다.

‘누구를 처리하고 온 거지?’

이곳은 순혈 늑대가 모인 곳이니, 윤치영은 지금 감시자의 본분을 하고 온 게 분명했다.

생각과 함께 희성의 머릿속에 강렬한 기억이 스쳤다. 그 예전, 윤치영의 앞에 쓰러져 있던 피떡이 된 수인. 기억을 따라 그날 느낀 두려움이 소름과 함께 떠올랐다.

“나 그래도 최대한 빨리 온 건데… 삐졌어?”

“…….”

윤치영이 강아지를 얼굴 앞에 들어 올리며 말해도 희성은 차마 그의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두려워서는 아니었다. 사실 그렇게 느꼈다 해도, 희성은 그를 두려워하기 싫었다. 아이를 감시자로 키워 더러운 일을 맡겨 놓곤, 그를 멸시하고 두려워하는 순혈 늑대들과 똑같아지기 싫었다.

하지만 긴장에 몸이 굳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희성은 의리를 중시하는 투견들의 손에서 자라났다. 조금 전 친인척을 처리하고 왔을 윤치영이 갑자기 너무도 멀게 느껴졌다.

“강아지는 그런 적 있어?”

그 질겁한 마음도 모르고, 윤치영이 강아지를 품에 안아 솜털 등에 입술을 맞췄다. 보석을 다루듯 소중해하는 손길인데, 그에게 몸이 가까워지자 피 냄새가 더 선명해졌다. 딸꾹. 결국 강아지는 딸꾹질을 하기 시작했다.

윤치영이 그런 강아지를 조심히 쓰다듬어 주며 말했다.

“처음에는 사실, 그냥 좀 마음에 들었던 상대였는데….”

“…딸꾹.”

“이제는 잘 보이고 싶어서 안 하던 짓까지 하게 되더라.”

윤치영이 저가 말하고도 낯이 뜨거운지 얼굴을 짚으며 웃었다. 잘생긴 얼굴로 부끄러워하는 행동을 보면 꼭 처음 연애를 해 보는 배우 같은데, 강아지는 그저 긴장한 채 생각했다.

‘…대체 누구한테 잘 보이고 싶단 거지?’

강아지인 자신은 아닐 테니, 연회장에 있는 가족이나 다른 누군가일지도 몰랐다. 흠칫. 두려움에 질린 강아지가 또 크게 딸꾹질을 했다. 솜 덩어리 몸이 한순간 경직됐다가 다시 원형으로 돌아갔다. 윤치영의 회색 눈을 여전히 마주하지 못한 채였다.

조금 전까지 윤치영에게 기죽지 말라 했는데, 이렇게 무작정 겁에 질린 자신이 한심했다. 윤치영이 원해서 한 일도 아닐 텐데.

‘너 감시자 안 하면 안 돼? 그냥 감자 같은 거 해….’

희성은 괜히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자신도 왜 그에게 그렇게 권하고 싶은지는 모르겠다. 다만 동족상잔은 희성에게 가장 납득하기가 어려운 크나큰 벽이었다.

“우리 강아지 왜 이렇게 딸꾹질하지?”

윤치영이 얼굴을 가까이하며 강아지를 걱정스레 바라봤다. 그는 강아지를 품에 두고 등을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 분명 다정한 행동인데, 희성은 쉽게 진정하기가 힘들어 한참 딸꾹질을 했다.

“강아지….”

뭔가 이상함을 느꼈는지 윤치영이 강아지를 어깨 쪽으로 안은 채 속삭이듯 말했다.

“나 나쁜 짓 안 했어.”

“…….”

“진짜야. 오늘은 경고만 좀 한 거야.”

‘지금 그게 문제냐?’

희성은 그렇게 따지고 싶었지만 그래도 긴장이 조금 풀렸다.

어차피 희성도 피 냄새에 익숙한 편이었다. 애초에 하룻밤에 몇 번씩이고 사고가 터지는 도박장에서 굴렀었다. 이 바닥의 생리를 잘 알기에 윤치영이 하는 일쯤은 무던하게 넘길 수 있었다.

“많이 놀랐나 보네…. 집에 가서 맛있는 거 먹이고 푹 재워 줘야겠다.”

곧 윤치영이 강아지를 안고 드넓은 홀을 걸었다. 그의 뒤로는 조직원들이 따랐고, 윤치영이 걸을 때마다 순혈 늑대들이 굳은 얼굴로 물러나 길을 만들었다.

희성은 그 광경을 기괴하게 바라봤다. 그들도 후각이 예민한 늑대 수인이니 윤치영이 풍기는 피 냄새를 맡았을 것이었다. 그리고 방금 전 자신처럼 윤치영이 한 짓을 눈치채고 두렵게 느꼈을 것이었다. 저들이 억지로 떠민 역할인데도 말이다.

‘…난 너 안 두려워할 거야.’

그 광경을 본 희성은 다짐처럼 속으로 생각했다. 조금 전 윤치영의 사정을 알고도 두려워한 자신이 싫었던 만큼, 굳세게 각오했다.

‘난 투견이니까, 저 늑대들처럼 비겁하게 안 굴 거야.’

생각을 정리한 강아지는 평소처럼 윤치영을 강렬하게 째려봤다.

“이제야 나 봐 주는 거야?”

드디어 까맣고 동그란 눈을 마주한 윤치영이 수려한 미소를 지었다. 흠칫 딸꾹질하는 강아지가 귀엽다고 동영상을 찍기도 했다. 비록 영상에는 다짐이 담기진 않았지만, 희성의 굳은 생각이 깃든 눈빛은 고스란히 찍혔다.

자신이 직접 두 눈으로 보고 겪은 대로 그를 판단하겠다는 동그란 투견의 다짐이.

* * *

늑대 일족의 행사에 다녀온 뒤, 윤치영은 집이 멀다며 호텔로 향했다.

“호텔이 반려견 동반 불가래.”

‘난 두고 가든지.’

강아지가 차창 밖의 야경만 보며 멀뚱멀뚱 생각하는 사이, 행동력 좋은 윤치영은 이미 대안을 찾아 실행하고 있었다.

“코트 주머니보다 여기가 낫겠지?”

‘또라이야!’

이번에 강아지는 정장 재킷 안에 들어가게 됐다. 희성은 남자의 가슴에 기대고 싶진 않아서 필사적으로 버둥거렸는데, 윤치영이 괜찮다고 뽀뽀로 달래 주려 해서 어쩔 수 없이 재킷 안으로 자진 도피했다. 그러자 윤치영의 왼쪽 가슴 부근이 빵이라도 숨겨 둔 것처럼 불룩해졌다.

‘노곤해….’

그래도 한번 자리 잡으니 꽤 괜찮았다. 편안함에 강아지는 점점 납작하게 늘어졌다. 인정하기 싫지만 꽤 안락하고 코트 주머니보다 훨씬 따듯했다. 윤치영은 집에 헬스 룸을 따로 두고 매일 운동할 정도로 몸 관리를 하더니, 잘 단련된 가슴에 기대서 자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그사이 바깥에서는 여러 소리가 들렸다. 윤치영이 호텔 로비에 들어서는 소리, 간단히 체크인을 하는 정중한 대화 소리가 들렸다. 거기다 친화성 좋게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수인 아이와 살갑게 인사를 하는 소리도 들렸다.

윤치영이 처음 만난 아이에게 비밀스럽게 말했다.

“무서운 거 보여 줄까요?”

밖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든, 품 안의 희성은 꾸벅꾸벅 누워 자기만 했다. 곧 윤치영이 무릎을 굽히더니 강아지를 감싼 재킷을 조금 열었다. 꺄악, 하고 어린아이가 귀엽다며 기쁨의 환호성을 지르는 소리가 이어졌다. 희성은 놀라 귀를 움찔 떨었지만 깨어나진 않았다. 그저 윤치영이 참 조직 보스 감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달칵.

곧 객실에 들어서는 소리가 들린 뒤, 고요한 공간에서 윤치영이 혼잣말하는 게 들렸다.

“그러고 보니 자기 저녁을 안 먹였네….”

‘…나 말하는 건 아니겠지?’

강아지가 졸린 눈을 흐릿하게 떴다. 최근 윤치영이 이상한 혼잣말을 더 많이 하는 것 같은데, 어쩐지 태클을 걸기도 애매했다. 애초에 희성은 지금 강아지였다.

그때 재킷 속으로 큼직한 손이 쓱 들어와 따끈따끈한 강아지를 조심스레 꺼내 들려 했다.

“같이 밥 먹고 잘까?”

‘나가기 싫다고!’

완벽하게 안락함에 취해 있는 순간인데 윤치영이 수면을 방해했다. 하지만 희성은 그를 깨물고 공격할 기운도 없어서 멍하니 그가 내려놓는 대로 테이블에 안착했다.

강아지의 앞에 호텔 룸서비스 메뉴판이 펼쳐졌다.

“뭐 먹을까?”

“……?”

물음에도 강아지는 눈을 휘둥그레 뜨고만 있었다.

‘미친 건가? 무슨 곰탕이 5만 원이나 해?’

믿기지 않는 가격이었다. 하지만 윤치영은 가격은 별 상관 안 하는지 자기 전이니 한식을 먹자며 메뉴를 짚어 줬다.

“갈비 정식 먹고 잘까? 강아지 소화할 수 있겠지?”

강아지는 평소 소화를 잘 못 해서 윤치영이 식단을 각별히 신경 쓰곤 했다. 어차피 조금 먹을 생각인 희성은 별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룸서비스는 윤치영이 씻고 나왔을 때쯤 세팅됐다. 강아지도 세면대에서 몸을 간단히 씻김 당하고 수건에 부리토처럼 말려서 나왔다. 자리에 앉자마자 윤치영은 강아지에게 야들야들한 갈빗살을 발라서 밥풀 몇 개와 함께 먼저 먹여 주었다.

“어때? 맛있어?”

‘…우, 우와.’

줄곧 졸려 하던 강아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가격이 비싸서 사치라 생각했는데, 야들야들한 갈비는 희성이 살면서 먹어 본 고기 중 가장 맛있었다. 사실 갈비를 몇 번 먹어 보지도 못했지만 그랬다.

‘더, 더 줘.’

희성은 모처럼 윤치영의 손목에 매달려 음식을 받아먹었다. 윤치영은 기꺼이 갈비 살을 바르는 대로 강아지에게 먹여 주더니, 뒤늦게 강아지의 입 주변에 묻은 갈비 양념을 보며 허탈하게 웃었다.

“분명 귀하게 키우는데 자꾸 꼬질꼬질해지네….”

강아지는 뜻을 몰라 혀로 코를 닦다가 뒤늦게 옆쪽의 거울을 보게 됐다. 그러자 머리에는 양념장 자국, 등에는 와인 자국, 입 주변에는 갈비 양념이 남은 얼룩 강아지가 보였다.

‘반은 네가 남긴 자국이잖아!’

희성이 버둥거리며 이를 드러내자 윤치영이 갈비로 화를 달래 줬다. 강아지는 다시 잠잠해진 채 만족스러운 식사를 마쳤다.

식사 후 강아지는 기분 좋게 푹신한 침대에 누웠다. 호텔 침구는 구름 위에 누운 것처럼 푹신푹신했다.

‘기분 좋아….’

이제 희성은 윤치영과 함께 지내고 호사를 누리는 것에 조금 익숙해졌다. 전부 살면서 처음인 낯선 것들인데, 참 자신은 적응이 빠른 것 같았다.

“…….”

하지만 이런 기분을 느낄 때면 희성은 조금 우울해지곤 했다.

원래 자신의 것이 아닌 걸 거짓말로 누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만약 자신이 그냥 강아지가 아니라 수인 견희성이라는 걸 들켰더라면, 이런 호사는커녕 저지른 사고를 수습하느라 바빴을 것이다. 죄책감을 느껴서일까, 희성은 문득 자신의 본 모습으로 지낼 수 있는 도박장이 그립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내 강아지는 단호하게 생각했다.

‘아냐. …도박장은 어떻게 해도 안 그리워.’

싫은 이유는 떠올리고 싶지 않아도 여러 개 생각났다. 성희롱을 일삼던 손님들. 돈으로 자신을 사려던 수인이나, 거절했다고 폭언과 폭력에 시달리던 기억. 그리고 형마저 자신에게 좀만 참으면 되지 않느냐고 혼내던, 그 모든 것들이 고통스러웠다.

‘…형도 윤치영처럼 늘 내 편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렇게 생각하던 강아지는 급하게 고개를 저었다. 동족이자 자신을 거둬 준 형을 식인 늑대와 비교할 수는 없었다. 어쨌든 형은 희성의 은인이었다.

뒤늦게 강아지는 의아해하며 고개를 들었다.

‘얘는 웬일로 조용하지?’

원래라면 윤치영은 침대에 누우면 강아지에게 징글징글할 정도로 들러붙었는데, 오늘은 이상하게 잠잠했다. 또 무슨 짓을 하나 수상한 마음이 든 강아지는 정전기로 온몸의 털이 송송 솟은 채 윤치영의 얼굴로 다가갔다.

‘…너 또 아파?’

윤치영은 지난번처럼 검은 늑대 귀를 드러낸 채,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옆으로 몸을 웅크린 채 미간을 찌푸린 모습이 한눈에 봐도 고통스러워 보였다.

이미 강아지는 몇 번 봤던 모습이었다. 갈수록 밤에 윤치영이 고통스러워하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었다. 지난번 의사가 경고한 대로 페로몬을 갈무리하지 못해 생긴 통증일 것이다.

“윽, 하아….”

‘왜 본체로 안 변해? 그냥 늑대로 변하면 되잖아.’

그러고 보니 윤치영은 한 번도 희성에게 본체를 보여 준 적이 없었다. 24시간을 붙어 있으면서 그는 강박적이다 싶을 정도로 제 본체를 숨겼다.

설마 강아지인 자신이 두려워할 거라 생각한 걸까? 하지만 희성은 이미 난폭한 투견들 사이에서 자랐기에 늑대쯤은 두렵지 않았다.

‘야, 본체로 변해. 나 늑대 안 무서워. 너 계속 이렇게 페로몬 쌓이면 페로몬 쇼크 와.’

강아지는 윤치영에게 말해 보았다. 윤치영에겐 그냥 강아지가 웅알대는 거로 들리겠지만 희성은 진지했다.

수인의 특징인 페로몬은 몸에 쌓이면 독이 되기에 주기적으로 본체로 돌아가거나 성관계로 풀어내야 했다.

만약 페로몬이 독처럼 쌓여 페로몬 쇼크가 올 경우, 수인은 공격성을 제어 못 하고 날뛰는 증상이 나타났다. 심하면 자해로도 이어져서, 수인에게 페로몬을 주기적으로 배출하는 건 몹시 중요했다.

“강아지….”

강아지의 잔소리에 윤치영이 희미하게 웃었다. 식은땀에 앞 머리칼이 살짝 젖은 그는 눈꼬리를 미려하게 휘었다. 잘생겨서 짜증 났지만 희성은 얌전히 그의 말을 들어 주었다.

“강아지가 오늘 내 편 들어줘서 기분 좋더라….”

‘아픈데 그런 말이 나오냐?’

“이제 강아지도… 나 좋아해 주는 거겠지?”

‘착각하지 마.’

강아지는 한심하게 쳐다보면서도 슬쩍 윤치영의 뺨을 핥아 줬다. 그러자 윤치영이 거칠어진 숨을 고르며 가늘게 웃었다. 그 눈 안의 회색 눈동자만큼은 강아지의 반응을 살피듯 예리하게 빛나고 있었다.

“나 좀 아파도… 강아지랑 계속 이렇게 사는 게 괜찮은 거 같아.”

“…….”

제법 낭만적인 말 같았지만, 그게 식인 늑대가 하는 말이라면 달랐다. 강아지는 오늘도 그가 누군가의 피 냄새를 손에 묻혀 온 걸 알고 있었다.

그래도 이제 그가 두렵진 않았지만… 희성은 갈수록 조급해졌다. 식인 늑대가 페로몬을 갈무리 못 할수록 점점 돌아가야만 하는 시간이 다가오는 것 같았다.

그리고 희성은 그에게 다른 대답을 하고 싶었다.

‘난 이렇게 살기 두려운데….’

조용히 생각한 강아지는 윤치영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온 힘을 다해 그의 몸에 이불을 덮어 주었다.

그날 희성은 밤늦도록 잠들지 못했다. 생각에 빠진 강아지는 혼자 침대 위를 이리저리 떠돌았다. 몸집이 작아서 그것만으로도 괜찮은 산책이 됐다.

마지막으로 이불 속으로 파고든 강아지는 윤치영의 허벅지 사이에 몸을 둥글게 웅크린 채 생각했다.

‘내가 인간으로 돌아가기 싫어질까 봐 두려워.’

수인으로 태어났는데, 남을 속이고 이렇게 작은 강아지로 사는 게 과연 옳은 걸까.

그러나 희성은 인간으로 돌아갔을 때 죗값을 치르는 것 역시 두려웠다. 윤치영에게 사고를 친 건 사실이지만, 마약을 빼앗기고 죽을 위기에 처했던 것조차 자신의 탓이라기엔 억울하고 아픈 일이었다.

하지만 그보다도 두려운 건 따로 있었다.

자신을 거둬 준 형마저 자신을 비난하고 돌아서는 것이었다. 희성은 이미 가족에게 버려진 경험이 있었다. 그 아픔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다시는 가족에게 버려지고 싶지 않았다.

‘…무리에서 떨어지고 싶지 않아.’

생각하던 강아지의 까만 눈에 눈물이 고였다. 하지만 희성은 울지 않기 위해 몸을 꾹 웅크린 채 잠이 들었다. 식인 늑대의 곁이 편해진 자신이 조금 싫어진 채였다.

* * *

다음 날이 돼도 희성은 기운이 없었다. 아침마다 잘 먹던 계란죽도 조금만 먹고 창밖만 멀거니 볼 정도였다.

“강아지가 밥 안 먹으면 내 마음이 아픈데….”

‘…그냥 너 먹어.’

희성이 앞발로 티스푼을 밀었다. 강아지가 계란죽을 처음으로 남겼다. 윤치영은 그런 강아지를 조용히 쓰다듬어 주더니, 날짜를 확인하고 희성의 다리에 난 상처를 살폈다. 강아지는 그런 걸 신경 쓸 여력이 없어서 그의 허벅지에 엎어져 누워 있었다.

강아지는 혼란스러웠다. 어젯밤 했던 고민이 아침까지 남아 있었다.

동족상잔을 하는 윤치영과 그것을 머리로는 이해해도 마음으로는 받아들이기 힘든 자신.

그리고 점점 페로몬이 진해져 발정기가 다가오는 늑대와, 그럼에도 인간으로 돌아가기 두려워하는 자신의 마음마저 모두 혼란스러웠다.

사무실에 가서도 희성은 윤치영의 품에 기대 있었다. 이제 누군가 윤치영에게 경고를 받아 질겁한 채 돌아가거나, 목숨이 간당간당한 광경을 봐도 아무렇지도 않았다. 도박장에서 잔인한 꼴을 많이 본 탓도 있지만, 이곳이 익숙해진 이유가 가장 컸다.

‘처음엔 내가 윤치영의 얼굴을 후려친 수인이라는 걸 들키기 싫었던 건데….’

이제는 그보다 깊은 고민들이 솜털 몸에 꽉 차도록 남아 버렸다. 희성은 늘 상황을 별 희망 없이 보곤 했다. 덩달아 갈수록 해소 못 할 고민이 깊어졌다.

‘…어차피 윤치영은 내가 인간으로 돌아가면 죽이려 들 거야.’

당연한 사실인데도 희성은 그것이 신경 쓰였다.

윤치영이 아무리 자신에게 정이 들었다고 해도, 그건 강아지에게 생긴 애정이지 ‘견희성’인 자신은 아닐 것이다. 그간 운 좋게 강아지인 척 그를 속여 왔지만 만약 자신이 사실 수인이라는 걸 들키면, 그것도 그에게 사고 친 장본인이란 걸 들키면 윤치영은 미련 없이 자신을 버릴 것이다.

어차피 희성도 윤치영에게 그 이상을 바라진 않았지만, 자꾸만 마음이 무거워지는 자신이 이상했다.

그때 강아지의 코앞에 무언가 내밀어졌다.

“자, 냠냠이.”

“…….”

윤치영이 고구마 말랭이를 건네줬다. 책상에 엎드려 있던 희성은 윤치영을 잠시 짜증스럽게 쳐다봤을 뿐, 고개를 돌려 간식을 거부했다.

“강아지 왜 그러지…. 아픈 건가?”

윤치영이 걱정스럽게 읊조리며 제 강아지를 얼굴 앞으로 들어 올렸다. 평소와 다른 희성의 모습에 걱정이 되는 듯했다. 안아 주면 마구 깨물고 성질을 부리던 평소와 달리, 강아지는 축 처진 채 우울하게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곧 희성은 다시 책상에 안착하게 됐다. 힘없이 엎드린 강아지의 옆으로 윤치영이 고개를 가까이 기대며 애인을 달래듯 다정하게 물었다.

“아프면 집에 갈까? 응?”

“…….”

“아니면 여기 질려? 같이 바다라도 놀러 갈까?”

‘…싫어. 귀찮게 하지 마.’

물음에도 희성은 듣기 싫다는 듯 몸을 웅크려 고개를 숨겨 버렸다. 자꾸 자신에게 잘해 주는 윤치영이 오늘따라 화가 나지도, 그렇다고 기쁘지도 않았다. 어차피 자신은 그를 속이면서 평생 강아지로 살 수 없었다.

그때 조직원 중 하나가 조심스레 말을 걸었다.

“이사님. 따로 보고할 게 있습니다.”

“그냥 말해.”

윤치영이 강아지만 쓰다듬으며 나직이 말했다. 강아지를 애지중지 대할 때와는 온도부터 다른 낮은 목소리였다.

조직원이 간결하게 말했다.

“지난번 말씀하신 여우 일족을 잡아 뒀습니다. 또… 견인족 도박장 실장이 찾아왔습니다.”

“…….”

그 말에 반응을 보인 건 희성이었다. 강아지가 드디어 고개를 들며 보고하던 조직원을 돌아봤다.

‘형이 여기까지 찾아왔다고?’

원래 도박장 실장은 고객의 정보마저도 비밀로 관리하는 만큼 웬만해선 고객에게 찾아가지 않았다. 대신 언제든 고객을 맞이할 준비를 해 둬야 하는 거라고, 형이 늘 자신만만하게 말했었다.

그런데 늑대 일족의 본거지까지 찾아왔다면, 분명 어떻게라도 직접 봐서 해결해야 하는 큰 문제가 있단 뜻이었다. 예를 들어, 자신의 실종 문제 같은.

하지만 결정권자는 대수롭지도 않게 강아지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내보내. 나 데이트 중이라 해.”

“예.”

데이트라니. 명백히 도박장 실장을 무시하는 변명이었다. 하지만 조직원들은 묵직한 대답을 남기곤 방을 나서 버렸다. 막 몸을 털고 일어난 희성만 급해졌다.

왕…!

형이 여기까지 온 거면 중대한 일일 터였고, 아무리 생각해도 그만한 건은 자신이 친 사고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렇게 문전박대당하게 둘 수는 없었다. 희성은 무작정 말리기 위해 윤치영의 팔을 긁고 그의 소매를 힘껏 잡아끌었다.

“오늘은 같이 대하 먹을까?”

“…….”

하지만 윤치영은 그저 나른하게 희성에게 물었다. 그 모습을 본 희성은 자신에겐 그 어떤 선택권조차도 없다는 걸 깨달았다. 강아지로 남아 버린 자신의 업보였다.

희성은 늦은 점심으로 호화로운 한식과 대하를 먹었다. 윤치영의 품에 앉아서 그가 먹여 주는 대로 음식을 받아먹었다. 대부분 생애 처음 맛보는 고급 요리였지만, 희성은 도저히 입맛이 돌지 않았다. 거기다 마음에 남은 상념이 희성을 줄곧 괴롭혔다.

‘형은 나 때문에 여기까지 온 게 분명해.’

자신이 사라진 지도 어언 한 달이 다 돼 갔다. 그간 사라진 자신도 문제였겠지만, 감쪽같이 사라진 마약 때문에 견인족 보스가 분명 형을 가만두지 않았을 터였다. 어떻게든 해결하라고 투견다운 성격으로 엄포를 놨을 것이다.

강아지는 결국 식사를 평소의 반절도 못 먹었다.

윤치영도 그런 강아지를 탓하거나 나무라지 않았다. 그저 그날 들어온 보고는 모두 무시한 채 넘기며, 유독 강아지를 품에서 떼어 놓지 않았다.

결국 축 처진 강아지가 신경 쓰이는지 윤치영이 강아지를 들어 올리며 물었다.

“우리 오늘 집에 일찍 갈까?”

‘대체 왜 묻는 거야?’

어차피 마음대로 할 거면서. 윤치영은 매번 강아지에게 의사를 묻곤 했다. 가끔은 누군가의 목숨이 달린 일마저도 물었다. 윤치영의 혼잣말은 이제 희성에게 익숙한 일상이 됐다.

“집에 가서 맛있는 거 먹고 푹 쉬자.”

예상대로 윤치영이 강아지를 품에 안고 일어났다. 강아지는 그저 불만스럽게 그의 품에 안겨 있었다. 자신은 혼란스러운데 이 자식은 늘 마음이 편해 보여 얄밉기만 했다.

고급 코트를 챙겨 입은 윤치영이 복도로 향했다. 강아지는 그저 높은 건물의 창밖 풍경을 애달프게 보고 있었다. 저녁이라 그런지 평소처럼 늑대 구역 어디선가 하울링이 들렸다.

아우우!

하울링은 수인 사회에서 흔하게 들리는 소리였다. 축제라도 열리면 매번 울렸고, 술을 퍼마신 견인족들이 심심하면 하는 게 하울링이었다. 그 때문에 늑대 영역의 누구도 하울링을 신경 쓰지 않았다.

아우!

투견들에게서 자란 강아지 빼고.

“……!”

희성은 접힌 귀를 쫑긋 세웠다. 현대 사회의 수인들은 하울링을 기분이 몹시 들떴을 때나 하지만, 투견들은 아니었다. 구역마다 하울링으로 서로를 찾을 수 있게 그 패턴이 달랐다.

긴 하울링 한 번, 틈을 두고 다시 짧은 하울링 두 번.

희성의 조직에서 쓰는 하울링 패턴이었다. 그 예전 술자리나 조직의 모임에서나 했었는데, 서로를 찾기 위해 하울링을 하는 건 처음 들었다.

‘형이 나를 찾고 있어.’

희성은 본능적으로 동족이 자신을 찾는다는 걸 알아챘다. 그러지 않고서야 늑대 일족의 본거지 주변에서 도박장의 개들이 하울링을 할 리가 없었다.

강아지는 당장 자신의 위치를 알리려 했다.

아웅-!

강아지의 하울링은 어딘가 어설펐다. 하지만 그 또한 어엿한 도박장의 투견임을 알리는 소리였다. 희성은 본능처럼 하울링으로 동족에게 제 위치를 알렸다. 커다란 진돗개들 사이에서 따라 했던 하울링을 강아지는 잊지 않았다. 애초에 잊을 수가 없었다. 견인족은 늑대만큼이나 결속력이 뛰어났다. 하울링을 들은 희성은 이성보다도 본능으로 동족을 찾기 시작했다.

그때 위쪽에서 강렬한 시선이 느껴진다 싶더니, 강아지의 몸이 누군가의 품에 푹 파묻혔다.

“씁.”

윤치영이었다.

그는 회색 눈으로 엄하게 내려다보며 주의를 줬다. 마치 어린 동물을 달래듯이. 하지만 희성은 진정하기는커녕 오히려 그를 앞발로 세게 밀어내려 했다.

‘네가 뭔데!’

강아지가 버둥거리며 소리가 들리는 창가를 조금이라도 돌아보려 안달을 냈다. 그러자 윤치영이 평소와 다른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평소 희성에게 다정하게 굴던 모습을 상상할 수도 없는 무표정이었다.

“하….”

차갑게 눈빛을 가라앉힌 그는 뒤를 따르던 조직원들에게 읊조렸다.

“지금 하울링 내는 것들, 당장 우리 구역에서 내쫓아.”

“예.”

말하자마자 조직원 셋이 늑대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거대한 검회색 늑대 세 마리가 빠른 속도로 건물을 달려 나가 사라졌다. 그 뒤로 윤치영이 강아지를 아예 코트 자락으로 덮어 품 안에 숨기며,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놔! 꺼내 달라고!’

강아지는 품 안에서 쉴 새 없이 꼬물거렸다. 윤치영은 평소와 달리 강아지를 달래 주지도 않고 코트 자락을 여문 채 조용히 서 있었다.

곧 차갑게 굳은 윤치영의 얼굴 앞으로 엘리베이터 문이 조용히 닫혔다.

* * *

아웅-!

집에 돌아온 뒤로도 희성은 계속 창밖을 보고 하울링을 몇 번 했다. 윤치영은 강아지를 달래 주었지만, 격렬히 저항하는 모습을 보곤 말리지 않았다. 그가 다른 곳에 연락하는 걸 봤지만 강아지도 상관하지 않았다.

‘형이 날 찾고 있었어.’

희성은 동족의 하울링을 떠올리고 있었다.

아까 들은 하울링은 분명 한둘이 아니었다. 자신이 무리를 배신했다고 생각할 줄 알았는데, 위험한 늑대 구역까지 와서 찾고 있다는 건 희성을 기다리고 있다는 증거였다.

거기다 그 전에 형이 늑대 일족의 본거지까지 찾아왔었다. 분명 마지막까지 자신을 믿고 어떤 단서라도 찾는 게 분명했다.

희성은 초조해졌다. 자신이 쓸데없는 고민에 시간을 허비하는 동안 동족들은 자신을 계속 찾아다녔을 것이다. 미안함을 느낀 희성은 몇 번은 더 무의미한 하울링을 했다. 동족이 들을 리가 없겠지만 자신이 계속 여기 있다고 알렸다.

그런 강아지의 뒤로 누군가 다가왔다.

‘넌 또 왜 왔어?’

조심스레 작은 몸을 들어 올린 건 마약 중독자 의사였다. 집에 온 줄도 몰랐던 희성은 몇 번 저항했지만, 그가 어려워하는 손길을 보곤 포기했다. 치료는 일단 잘 받아야 했다.

곧 강아지는 깨끗한 천을 펼친 테이블에 앉게 됐다. 그 양옆으로 윤치영과 의사가 섰다.

“강아지는 좀 어때?”

“다행히 회복이 빠릅니다. 처음 봤을 때보다 영양 상태도 아주 좋아요.”

의사가 감탄하며 말했다. 하지만 윤치영은 미묘한 미소를 머금은 채 그 반대편에 서서 강아지와 의사를 조용히 번갈아 봤다. 그의 회색 눈빛이 오늘따라 낮게 가라앉은 것처럼 보였다.

그의 눈치를 보던 의사가 왕진 가방에서 도구를 꺼내며 말했다.

“그럼… 실밥 풀겠습니다. 대신 강아지가 당분간 꼭 다리를 무리하게 쓰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알아.”

윤치영은 그저 강아지를 쓰다듬으며 대답했다. 희성은 의사가 실밥을 푸는 감각이 소름 돋을 정도로 싫었지만, 작은 머릿속으로 계략을 떠올리며 참았다.

‘회복이 빠르다면, 이제 인간으로 변해 봐도 될 거야.’

그럼 형에게 연락부터 보내 두면 괜찮을 것이다. 시간만 조금 더 주면 무사히 윤치영의 곁을 탈출하겠다고.

곧 다리에 흉하게 남았던 실밥이 하나하나 제거됐다. 강아지는 윤치영의 손에 고개를 파묻은 채 통증을 견뎌 냈다. 아픔을 견디는 것쯤이야 익숙했다.

다행히 처치는 금방 끝났다. 의사는 상처를 소독하고, 마지막으로 강아지의 이빨 상태와 눈과 귀를 살폈다.

“그간 반려견을 관리 잘해 주셨나 보군요. 이대로만 잘 유지해 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난 반려견이 아니야.’

강아지는 의사가 알아줄 리도 없는데 고집스레 손을 물며 생각했다.

‘난 도박장의 투견이야.’

의사가 바닥에 내려 주자마자 희성은 다시 절뚝절뚝 창가로 향했다. 그 뒤로 조용히 자신을 지켜보는 윤치영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희성은 오늘 밤에 꾸밀 일만을 생각했다.

‘윤치영이 잠들 때까지 기다려야 해.’

윤치영은 깨어 있을 때 감각이 예민한 편인데, 잠들 때만큼은 알 수 없는 약을 먹고 깊이 잠들었다. 그 때문에 희성은 윤치영이 잠들거나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자신을 혼자 두는 순간을 기다리기로 했다.

윤치영이 의사를 돌려보낸 뒤 늦은 밤이 찾아왔다. 시간이 이미 늦었는지라 윤치영은 적당히 주변을 정리하고 약을 먹은 뒤 강아지와 잠자리에 들려 했다.

침대에 누운 윤치영은 강아지를 길게 바라보다가 혼잣말했다.

“처음엔 이렇게 될 줄 몰랐는데….”

‘또 뭐.’

“강아지도 나 좋아하는 거 맞지?”

“…….”

강아지는 그의 말을 애써 못 들은 척했다. 그저 윤치영이 뭐라 하든 어서 그가 잠들기만을 바랐다.

다행히 오늘 그는 어젯밤처럼 페로몬에 신음하지 않아서 금방 잠들 듯했다. 강아지는 식인 늑대가 조용해질 때까지 그의 어깨 부근에 몸을 둥글게 만 채 초조하게 시간을 보냈다.

“…….”

곧 방 안이 고요해졌다. 강아지 몸을 습관처럼 쓰다듬던 윤치영의 손도 움직임이 멎었다. 희성은 조용해진 그의 얼굴을 기웃거리며 살피고, 그의 스마트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새벽 3시. 평소 윤치영이 잠들던 시간이었다.

강아지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곤 높은 침대 위에서 이불을 이로 문 채 로프처럼 스르륵 타고 내려갔다. 강아지로 지내다가 자연히 터득하게 된 방법이었다.

고요한 거실로 나온 강아지는 어둑한 집 안에서 자신의 뒷다리부터 살폈다.

‘이 정도면 거의 다 나은 거 같은데.’

역시 사람으로 변해서 형에게 연락해 상황을 보고, 그간 탐구해 둔 탈출 방법을 시도해 볼 때가 된 것 같았다. 아무리 윤치영의 곁이 익숙하고 편하다고 해도, 희성은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야만 했다.

그리고 희성은 언제까지 자신이 강아지로 살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러고 싶지도 않다. 희성은 어엿한 수인으로서 살아가고 싶었다. 공부도 해 보고 싶었고,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아 보고 싶었다.

게다가 오늘 형이 자신을 직접 찾았다. 그간 형이 자신을 걱정했을 걸 생각하니 너무도 미안했다.

‘하지만, 내가 도박장으로 돌아가면….’

생각하던 강아지의 눈에 우울이 서렸다.

인간으로 돌아가면 일단 도박장으로 가야 했다. 그렇게 되면, 이번에 마약을 털린 일을 추궁받고 책임을 지게 될 것이다. 그만큼 도박장에서 또다시 더러운 일들을 해야 할 수도 있었다. 흔하게 성희롱을 당하고, 누군가에게 이유 없이 맞기도 하고, 더러워진 룸을 치우고, 돈 없는 손님을 내쫓고…. 쉬는 날 없이 일하며, 잠을 유일한 휴식으로 여기며 살 것이다.

‘…그래도 내 동족들이 날 찾는걸.’

동족을 향한 희성의 생각은 맹목적이었다. 과거 가족에게 버려졌던 기억이 있는 희성은 다시는 무리에서 버려지고 싶지 않았다. 다시는.

결심을 마친 강아지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윤치영 몰래 변해야 해.’

희성은 윤치영이 잠든 침실에서 가장 멀리 있는 홈 시어터 룸으로 향했다. 영화를 좋아하는 윤치영이 자주 강아지와 휴식을 즐기던 곳으로, 조명이 어두워서 일을 치르기 좋았다.

톡톡톡. 강아지는 걸을 때마다 발톱 소리가 최대한 안 나도록 조심스레 걸었다. 그러곤 홈 시어터 룸으로 향하는 복도의 전신 거울 앞에 섰다.

강아지는 눈을 감고 변신을 시도해 보았다. 마치 온몸을 스트레칭 하는 것처럼, 찌뿌드드한 몸을 힘껏 기지개 켰다.

그러자 점점 몸에서 변화가 느껴졌다.

‘아, 흐으….’

다친 다리에서 극심한 통증이 느껴졌다. 본능적으로 희성의 몸이 변하길 거부하고 있었다. 아직 회복이 필요하다는 신호였다.

하지만 강아지는 이를 꾹 악물고 버텨 냈다.

‘이 정도는 참을 수 있어.’

강아지는 몸을 웅크린 채 부르르 떨며 고통의 시간을 견뎠다. 하지만 다친 다리의 피부가 찢어질 정도로 고통이 느껴져서 희성은 변하길 포기하려 했다.

‘아, 아파….’

누운 채 고통에 헐떡이던 희성은 가까스로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눈앞에 전신 거울이 보였다.

“어…?”

희성의 눈이 커졌다. 거울에 낯익은 자신의 모습이 비쳤다.

성공했다. 하얀 털옷을 입은 강아지가 아니라, 인간으로 변한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사람으로 변하자 새하얀 알몸이 드러났다. 다만 완전히 사람으로 변하진 못해서 하얀 강아지 귀와 꼬리는 그대로였다.

희성은 제 알몸은 별달리 신경 쓰지 않은 채 인상을 쓰고 거울을 바라봤다.

‘머리만 길었지 그대로네.’

희성은 늘 자신의 하얗고 말간 외모가 싫었다.

순해 보이는 미형의 이목구비 때문에 희성에겐 이상한 놈들이 꼬이곤 했다. 키도 조금만 더 컸다면 좋았을 텐데, 평균 아래인 키와 마른 체격은 늘 희성의 고민거리였다.

그 때문에 희성은 늘 순한 얼굴에 인상을 써서 사나워 보이게 했다. 별 효과는 없었지만 그렇게라도 해야 도박장의 투견다운 표정이 나왔다. 하지만 인상을 풀면 여전히 강아지처럼 둥그런 눈매가 두드러졌다. 희성은 거울 속 자신을 불만스레 쳐다보다가, 인상을 쓴 채 휙 고개를 돌렸다.

몸 곳곳에서 통증이 싸하게 느껴졌다. 희성은 고통에 미간을 찌푸린 채 무언가 타고 흐르는 제 허벅지를 내려다봤다.

‘어쩐지 다시 아프다 싶더니.’

겨우 살이 차올랐던 허벅지의 상처가 다시 찢어졌다. 깊지는 않았지만 벌써 피가 뚝뚝 흘러 바닥을 적시고 있었다. 이래서 부상을 입은 수인은 함부로 인간으로 변하면 안 됐다. 무리한 신체 변형은 상처를 덧나게 했다.

‘피 냄새 풍기면 윤치영이 깰지도 모르는데.’

희성은 고통을 무던하게 넘기며 지혈할 수 있을 만한 천을 찾았다. 그중 수건을 찾은 희성은 천을 허벅지에 꽉 둘러 지혈했다. 하얗게 드러난 알몸에는 윤치영의 나이트가운을 걸쳤다.

이내 희성은 씩씩대며 미간을 구겼다.

‘쓸데없이 큰 늑대 자식.’

윤치영의 종아리까지 오던 나이트가운은 희성이 입자 땅에 살짝 끌렸다. 체격 차이가 머리 하나 크기는 난다는 걸 진작 알았지만 그래도 불만스러운 건 어쩔 수 없었다. 강아지일 때나 인간일 때나 희성에게 키와 체격은 늘 콤플렉스였다.

짜증을 삼킨 희성은 목표부터 설정했다.

‘형에게 연락부터 해야 해.’

역시 첫 목표물은 윤치영의 핸드폰이었다.

희성은 도둑질을 하기 위해 어둠 속에서 조심스레 움직였다. 발꿈치를 든 채 움직일 때마다 허벅지의 상처가 욱신거렸지만 상관하지 않았다. 희성은 민감하게 강아지 귀를 세운 채 침실부터 노렸다.

침실로 향하자 느슨하게 잠든 윤치영이 보였다. 희성은 조심조심 침대로 다가가 그의 핸드폰을 찾았다. 핸드폰은 윤치영의 베개 바로 옆에 놓여 있었다. 다만 침대 안쪽에 있어서 식인 늑대의 몸을 가로질러 팔을 뻗어야만 했다.

희성은 윤치영의 시원스러운 이목구비를 째려보며 고심했다.

‘어차피 잘 안 깨는 놈이니까 괜찮겠지?’

평소 윤치영은 강아지가 제 몸을 밟고 다니거나, 가슴팍에 앉아 살인을 모의해도 깨지 않았다. 다만 잠꼬대가 있는 편이라 강아지가 고생을 좀 했다. 갑자기 자다가 윤치영의 손에 납치를 당하거나 접힌 귀를 날벼락처럼 깨물린 적도 있었다.

‘가만히 있어라, 진짜. 나 인간형이다.’

희성은 긴장했지만 괜한 자존심을 부리며 침대에 고양이처럼 살며시 무릎을 디뎠다. 하필 침대는 더럽게 넓어서 팔만 뻗어선 핸드폰을 쥘 수 없었다.

희성은 윤치영의 상체 너머로 조심스레 팔을 뻗었다. 상처 난 허벅지가 욱신거렸지만 신음을 내지 않기 위해 이를 악물었다. 다행히 윤치영의 핸드폰은 유연하게 손을 뻗자 손에 쥘 수 있었다.

다만 호락호락하진 않았다.

스윽.

“……!”

윤치영이 잠결에 희성의 가운 안으로 손을 넣었다. 그러더니 강아지를 만지듯 자연스럽게 뽀얀 엉덩이를 쓰다듬었다. 희성은 당장 송곳니를 드러내며 작게 으르렁거렸다.

그러다가 스스로 놀랐다. 당장 윤치영에게 주먹을 휘두르지 않은 자신이 신기했다.

‘…계속 강아지로 지내서 그런 건가?’

얼마나 같이 지냈다고, 윤치영과의 스킨십이 익숙해진 걸까. 희성은 처지가 한탄스러워졌다. 자신이 콤플렉스인 작은 강아지 모습으로 사는 게 익숙해진 것조차 싫었다.

그래도 지금만큼은 주먹을 안 휘두른 게 다행이었다.

희성은 무례한 윤치영의 손을 조심스레 떼어 냈다. 손도 어찌나 큰지 희성의 한쪽 엉덩이를 가볍게 덮을 정도였다. 괘씸함에 윤치영을 평소처럼 물어뜯고 싶었지만, 희성은 이번만 봐주자 생각하고 조심히 일어났다.

겨우 침대를 벗어난 도둑 강아지는 핸드폰을 손에 쥐고 도망치듯 침실에서 빠져나갔다.

침실과 가장 먼 방으로 간 희성은 핸드폰을 카펫에 내려놓고 참았던 심호흡을 했다. 긴장한 탓에 이마에 식은땀에 났고 심장이 쿵쿵거렸다.

‘분명 형 번호가 저장돼 있을 거야.’

겨우 진정해 핸드폰을 만져 보니 역시 윤치영의 것에는 잠금이 없었다. 핸드폰 배경 화면이 화내는 강아지와 찍은 그의 셀카라 꼴도 보기 싫었지만, 희성은 침착하게 형의 번호를 떠올려 눌렀다. 다행히 윤치영의 핸드폰에 형의 번호가 저장돼 있었는데, ‘도박장2’라고만 무성의하게 추가돼 있었다.

희성은 통화 버튼을 누르길 망설이다가, 숨을 꾹 삼킨 채 무작정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통화 연결음이 세 번도 이어지기 전에 상대방의 목소리가 들렸다.

- 예! 윤 이사님. 전화받았습니다.

“…….”

- 무슨 일 있으십니까? 오시는 거면 자리 준비해 둘까요?

전화 통화 너머 높은 영업 톤인 형의 목소리가 들렸다. 희성은 윤치영이 소리를 들을 리도 없는데 어두운 문밖부터 초조하게 바라봤다. 다시 핸드폰을 귀에 댔지만, 희성은 차마 목소리가 나오질 않았다.

‘…형에게 뭐라 말해야 하지?’

희성은 윤치영의 품에 근 한 달 가까이 있었다. 그간 마약도 잃어버린 채 사라진 자신을 대체 형이 뭐라 생각할까. 차라리 사라지는 게 형에게도 낫지 않을까? 아니면 전부 사실대로 말해야 할까? 혼란스러운 마음에 희성은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 …….

그런데 통화 너머 형도 말이 없었다. 핸드폰을 긴장한 채 꼭 움켜쥐던 희성이 용기 내 입을 떼려 할 때였다.

“혀….”

- 희성이냐?

“…….”

희성의 눈이 놀라 커졌다. 짧은 희성의 외마디에 정체를 확신했는지, 박건태가 영업 톤을 버리고 평소처럼 말을 쏟아 냈다.

- 희성아. 너 거기 있는 거 맞았구나.

“…형, 나….”

- 알아, 이놈아…. 그간 얼마나 고생했어.

“…….”

희성은 순간 울컥했다. 절대 눈물을 보이는 성격이 아닌데 까만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그간 식인 늑대의 품이 편해졌던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질 정도로 형은 다정했다. 희성은 그제야 더듬더듬 목소리를 죽인 채 입을 뗐다.

“형, 나… 미, 미안해. 말하면 너무 긴데, 내가 물건을 가져오다가 습격을 받아서 다쳤었어. 그래서….”

- 희성아, 다 괜찮다. 알아.

“…….”

- 일단 돌아만 와라. 응? 그 식인 늑대랑 있지 말어. 아무리 그래도 목숨이 중요한 거 아니겠냐.

다정한 말 몇 마디에 기어코 희성은 눈시울을 붉혔다. 잠시 희성은 떨리는 숨을 가다듬었다.

“형, 나… 돌아가도 괜찮아?”

- 당연한 걸 왜 묻냐, 이놈아.

형이 한숨처럼 걱정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 같은 견인족인데, 다들 네 걱정 얼마나 했는데. 다 괜찮으니까, 일단 돌아와서 얘기부터 하자. 문제 생겨도 형이 해결할게.

“…….”

희성은 이를 꾹 악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고민하던 자신이 한심했다.

역시 형은 자신의 가족인데.

그간 희성이 사라져서 분명 그 책임을 형이 혼자 졌을 것이다. 그런데 형이 먼저 이렇게 말해 주니 너무도 미안하고 고마웠다.

역시 형이 모든 책임을 혼자 뒤집어쓰게 둘 수는 없었다.

희성은 눈물을 쓱 닦아 내며 한층 단단해진 눈으로 대답했다.

“알겠어, 형.”

- 연락은 어떻게 했어, 내가 또 연락하면 안 되나? 아니면 데리러 갈까?

“아니야. 내가 지금 갈게, 형.”

희성은 문밖을 바라보며 굳세게 말했다. 그러곤 목소리를 죽인 채 자리에서 서서히 일어났다.

“가서 다 얘기할게. 조금만 기다려….”

- 희성아, 너 함부로 나와도 되는….

뚝.

희성은 더 듣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 어차피 윤치영 때문에 통화를 더 길게 할 수도 없었다. 아무리 집이 넓어도 윤치영은 후각만큼 귀도 밝았다. 잠들어 있다 해도 수상한 행동은 길게 하지 않는 게 좋았다.

곧 마음을 굳힌 희성은 빠르게 행동했다.

‘…집으로 돌아가자.’

윤치영의 핸드폰을 제자리에 놓으려다가, 그마저 그를 깨울 위험이 있어서 아예 핸드폰을 테라스 밖으로 멀리 던져 버렸다. 아파트 꼭대기 층에서 힘껏 던진 핸드폰은 찾지 못할 가능성이 컸다. 만약 찾았다고 해도 산산조각이 나 통화 기록은 확인하지 못할 것이다.

희성은 다음으로 드레스 룸으로 향했다. 집은 어둑했지만 희성은 강아지로 살며 이 집의 구조는 눈 감고도 그릴 수 있을 정도로 익숙해졌다.

‘차라리 작아진 모습으로 탈출하는 게 나을 거야.’

희성은 이 집 주변에도 조직원들이 오가거나 대기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 때문에 지금이야말로 작은 강아지의 모습을 적극적으로 이용해 탈출할 때였다.

희성은 윤치영의 티셔츠와 가장 가벼운 트레이닝복 바지를 꺼냈다. 옷을 최대한 작게 뭉쳐 참외만 한 보따리로 만들어 품에 안았다. 그리고 소파 아래 숨겨 둔 5만 원권 여러 장을 꺼내 보따리에 구겨 넣었다. 예전에 윤치영이 피 냄새가 나는 돈다발을 탁자에 뒀을 때 몇 장 물어다가 숨긴 돈이었다.

형에게 돌아가기 위한 준비는 끝났다.

마지막으로 현관으로 향한 희성은 침실 쪽을 바라봤다. 미련이 남은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윤치영이 신경 쓰였다.

평소와 달리 점심 즈음 혼자 일어날 윤치영에게 조금 미안했다.

하지만 희성은 그가 찾을 게 자신이 아닌 강아지임을 알기에 탈출을 선택했다. 자신은 평생 강아지로 살아갈 수는 없었다.

달칵.

조심히 문을 열고 나간 희성은 일부러 엘리베이터를 쓰지 않고 지하 주차장까지 걸어 내려갔다. 허벅지의 상처에서 피가 더 새어 나왔지만 상관하지 않고 지혈용으로 두른 천을 더 꽉 조여 맸다. 12월 새벽인지라 몹시 추웠지만, 희성은 어차피 겨울 털갈이를 마친 강아지로 돌아갈 거라 상관 안 했다.

‘다행이다. 아무도 안 마주쳤어.’

무사히 지하 주차장까지 내려간 희성은 마지막 층에서 강아지로 돌아갔다. 가운과 다리를 조여 매던 천은 던져 버린 채였다. 강아지로 돌아가는 건 다행히 수월했다.

작은 강아지는 보따리를 입에 문 채 주차장을 힘껏 달리기 시작했다.

아무리 뛰어도 출구가 가까워지지 않았지만 희성은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달렸다.

‘이제 다 됐어.’

마침내 바깥으로 나온 희성은 고급 아파트 단지를 멀리 벗어나, 공중화장실에서 인간으로 돌아가 보따리를 풀고 얇은 옷을 입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살이 칼에 베이는 것 같은 강추위가 느껴졌지만 참아 냈다.

마지막으로 도로로 향한 희성은 지나가는 택시를 잡아탔다. 목적지를 말한 희성은 덜덜 떨며 몸을 웅크렸다. 그러자 택시 기사가 백미러를 보며 걱정스레 말했다.

“아이고… 학생 이 겨울에 안 추워요?”

“괜찮아요.”

“술 먹고 본체로 변했었구나? 맞지?”

“…네.”

택시 기사가 자신도 젊을 때 그런 적이 있다며 주절거렸다. 그러더니 히터를 세게 틀어 주었다. 그러나 그의 말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고, 희성은 다만 다리의 상처가 신경 쓰였다. 갈아입은 윤치영의 회색 바지에 붉은 피가 배어 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희성은 의연하게 상처를 무시한 채 창밖을 바라봤다.

모처럼 혼자 바깥으로 나오니 기분이 이상했다. 애초에 도박장에서 일할 때도 바깥 구경을 제대로 한 적이 없었다. 윤치영이 사는 비싼 부자 동네는 희성의 도박장 근처와 달리 새벽에 구토를 하거나 소리를 지르는 취객도 없이 고요하고 깨끗했다.

‘…이렇게 탈출이 쉬웠다니.’

희성은 울컥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감정은 애써 무시했다. 조금 전 형의 괜찮으니 돌아오라는 말만이 귓가에 맴돌았다.

형의 말을 들었을 땐 정말 가슴이 울컥했지만, 그리고 견인족의 회귀 본능이 강력하게 희성을 이끌었지만… 이상하게도 희성은 자꾸만 속이 울렁거리며 다른 생각이 들었다.

도박장에 돌아가기 싫었다.

마약을 빼앗긴 억울한 일에 대한 추궁도 두려웠고, 배신자라 생각할지도 모르는 도박장의 동족들도 두려웠다. 희성이 의리를 중시하는 견인족인 만큼 그들도 똑같았다. 희성은 앞으로 조직에서 도망치려 했다는 오해나 꼬리표를 평생 달게 될지도 몰랐다.

하지만 유일하게 남은 가족 같은 존재를 외면할 수는 없었다.

‘내가 돌아가지 않으면… 형이 모든 책임을 뒤집어쓸 거야.’

결국 희성은 형을 위해서라도 도박장으로 가야만 했다.

체념한 희성은 몸을 웅크린 채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일단 형에게 돌아가는 것만 생각하자. 애써 그렇게 자신을 다독이며 입을 고집스레 닫았다.

“…….”

택시는 빠르게 새벽의 도로를 달렸다. 어느덧 익숙한 번화가가 보였다. 네온사인이 어지럽게 늘어서 있고 여러 수인이 호객을 하는 거리가 보였다.

그 광경을 보던 희성은 전혀 다른 기억이 떠올랐다.

이상하게도, 느지막한 점심 즈음 깨어나 작은 강아지에게 입을 맞추려 하던 윤치영이 생각났다. 오늘 뭘 할지 묻는 조금 잠긴 목소리와 제 몸을 조몰락거리는 손길도 기억에 선했다. 늘 귀찮고 짜증스레 여겼는데 지금은 좀 다르게 느껴졌다.

다시 생각해 보면, 나쁘지 않은 아침이었다.

* * *

윤치영은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눈을 떴다.

원래 페로몬이 진해지는 시기에는 독한 약을 먹어서 평소보다 깊게 잠들곤 했는데. 이상한 일이었다.

깨어난 윤치영은 습관처럼 옆을 더듬었다. 그런데 손에 부드럽게 잡혀야 하는 강아지가 없었다. 윤치영은 의아함에 몸을 반쯤 일으켰다. 강아지는 워낙 작아서 침대에서조차 찾는 데 시간이 좀 걸렸다.

“…강아지?”

윤치영은 굳은 얼굴로 일어났다. 혹시나 싶어 주변을 둘러본 윤치영은 예민하게 검은 늑대 귀를 드러낸 채 후각에 정신을 집중해 보았다.

하지만 강아지가 어디 있는지 갈피가 안 잡혔다. 워낙 집 안 곳곳에 강아지의 잔향이 남아 있어서 오히려 후각으로 찾기가 힘들었다.

윤치영은 언제 졸린 눈을 떴냐는 듯 예리해진 눈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집 안 곳곳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원래 늑대들은 웬만해선 꼬리로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데, 안 좋은 예감에 허리 아래 삐져나온 검은 늑대 꼬리가 움찔거리고 있었다.

‘견희성이 내 곁을 쉽게 떠날 리가 없는데.’

윤치영은 오늘 강아지가 동족의 하울링을 듣고 불안해한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윤치영은 견희성이 쉽게 자신의 곁을 떠날 거라 생각하지 않았기에 믿고 잠이 들었었다. 정에 약한 강아지의 성격을 진작 눈치채서였다.

그 때문에 윤치영은 일부러 자신의 나약한 면모마저 보여서 강아지의 동정심을 끌었다. 페로몬에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숨기지 않았다. 그러면 강아지는 제 뺨에 작은 얼굴을 댄 채 품에서 자리를 지켜 줬다. 그게 귀여워 일부러 무르게 대처하긴 했다. 이 정도면 자신에게 정이 들어 쉽게 떠나지 못할 거라고 믿었다.

그리고, 이제는 강아지가 자신에게 많이 의지하는 줄 알았다.

당연히 견희성이 더러운 도박장에 돌아가기 싫어할 거라 생각했는데. 기어코 강아지는 사라져 버렸다.

“하.”

윤치영은 언제 강아지를 걱정스레 찾았냐는 듯, 회색 눈을 섬뜩하게 빛내며 머리칼을 거칠게 쓸어 넘겼다. 어느덧 이마에는 힘줄이 돋았고 숨결마저 깊어졌다.

박건태.

그 멍청한 도사견이 어떻게 머리를 쓴 것일까.

정말 집 안 어디에도 강아지가 없었다. 윤치영이 발견한 건 홈 시어터 룸 앞의 복도에 남은 희성의 핏자국 정도였다.

윤치영은 굳은 얼굴로 거실로 향했다. 핸드폰도 사라져 손에 잡히는 대로 태블릿 PC를 들었다. 소파에 기대앉은 채 태블릿을 켜니 CCTV 화면이 나타났다. 윤치영의 집 주차장 쪽 CCTV였다.

시간을 앞으로 돌리니 강아지의 모습이 아주 작게 CCTV 화면에 걸렸다. 제 몸만 한 보따리를 물고 절뚝절뚝 달려가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이제 12월이라 날이 많이 추운데. 다친 몸으로 나가 버렸다. 윤치영은 미간을 구긴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차피 강아지가 향할 곳은 뻔했다. 견인족 도박장. 오랜만에 그곳으로 갈 시간이었다.

* * *

도박장에 도착한 희성은 일부러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저 맨발로 더러운 번화가를 걸어 도박장에 들어섰다. 직원들만 다니는 뒷문을 통해서였다.

희성은 모처럼 퀴퀴한 도박장 냄새를 맡으며 한 가지 생각만을 했다.

자신은 형과 여길 벗어날 방법이 정말 없는 건지에 대해. 하지만 이번 사고로 도박장을 벗어날 길은 더 멀어지기만 했을 것이 분명했다.

“희성아, 희성이 왔냐?”

사무실에 들어가자 형이 책상에 담배를 지져 끄고 급하게 일어났다. 가까이 다가온 박건태는 추위에 떠는 희성을 살피더니 낡은 점퍼를 어깨에 둘러 주었다. 희성을 배신자처럼 언짢게 노려보던 가드들도 모두 물러 주었다. 희성은 울컥 눈물이 날 것만 같아져 잘 안 하던 사과를 먼저 했다.

“…미안해. 형.”

“그래, 미안해야지. 그간 형이 얼마나 걱정했는데 인마, 연락 하나를 못 넣었냐? 허….”

“…….”

희성은 입술을 꾹 깨문 채 시선을 떨어트렸다. 원래 눈물이나 약한 모습을 다른 사람에게 절대 보이는 편이 아니었는데, 형의 말 한마디에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형은 희성에게 별다른 말을 묻지 않았다. 희성은 그것조차 그간의 고생을 알아주는 것 같아서 도리어 고마웠다.

“일단 마셔라. 이제 괜찮으니까 속 좀 놔.”

“…응.”

박건태가 희성에게 술을 한 잔 따라 줬다. 희성은 의연하게 눈가를 쓱 닦고 낡은 가죽 소파에 앉았다. 끼익거리는 낡은 소파의 소음과 그 아래 더러운 바닥 어딘가가 보였다. 희성은 그제야 자신이 도박장에 돌아온 현실이 체감됐다.

그 앞쪽에 박건태도 앉았다. 그는 조용히 술을 마시는 희성을 다 이해한다는 듯한 눈으로 바라보다가, 넌지시 입을 뗐다.

“희성아… 그간 맘고생 많았지.”

“…아니야. 형. 형이 고생했겠지.”

희성은 정말 형에게 미안했다. 아마 자신이 사라져서 형이 고생을 많이 했을 것이다. 거기다 늑대 일족의 영역에서 사라져서 희성의 행적을 쉽게 찾기도 어려웠을 텐데, 하울링으로라도 자신을 불러 준 게 고마웠다.

박건태는 희성이 입은 치수가 훌쩍 큰 옷을 보다가 넌지시 물었다.

“그간 정말 윤치영이랑 있던 거냐?”

“…응.”

“어떻게 같이 있게 된 거야…. 그놈이 설마 몸이라도 달라고 협박했어?”

“아, 아니야. 난 부상 때문에 강아지로 지내서, 윤치영이… 그냥 날 애완견처럼 대했어.”

그 말에 박건태가 눈에 띄게 안심했다.

“그래. 애완견. 다행이네….”

“…….”

희성은 어쩐지 애완견이란 말을 정정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차마 윤치영과 자신의 관계가 그것 이상이라 말할 사건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정말 윤치영은 자신을 강아지로 대했을 뿐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다.

그래서 오히려 윤치영의 곁이 편했던 것 같다.

그 생각을 떠올리자마자 희성은 흠칫 고개를 저었다. 이제 형의 곁에 돌아왔는데 이런 헛생각을 해선 안 됐다.

목이 탄 희성이 잔을 다 비울 즈음, 형이 넌지시 입을 뗐다.

“그럼 어차피 윤치영은 널 단순히 개 한 마리로 알았다는 거네.”

“…….”

“그럼 됐다, 희성아. 그냥 조직으로 돌아와도 괜찮아.”

희성은 형의 말이 전혀 기쁘지 않았다.

지난 5년간 희성은 형에게 이곳을 벗어나고 싶다고 끊임없이 말했었다. 그런데 돌아와도 괜찮다니. 차라리 함께 도망이라도 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간 희성이 모은 돈이 있으니, 그것만 있으면 조직에서 무사히 나올 수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 희망은 이어지는 박건태의 말에 산산조각이 났다.

“형. 그냥 우리 지금이라도….”

“물건 사라져서 생긴 구멍은 네가 모았던 돈으로 반은 메꿨어. 나머지는 다시 시작하자, 희성아.”

박건태는 희성의 5년 치 월급에다가 마약을 판 돈도 같이 꿀꺽했지만 말하지 않았다. 세 치 혀로 희성을 속이는 것도 권기혁에게 미리 방법을 배워 뒀다. 그리고 희성이 돈을 모아 둔 현금과 계좌쯤은 박건태가 노리기 쉬웠다. 이미 오래전부터 준비한 일이었다.

“…뭐?”

하지만 희성에겐 아니었다.

목숨을 걸고 형에게 돌아왔는데, 청천벽력과도 같은 말이었다. 충격에 판단력마저 느려져, 희성은 오래도록 박건태를 노려보며 상황을 이해해야 했다.

내 돈을 전부 거기 부었으니, 반은 다시 갚으라고?

뭐를? 그 밑바닥에서 기는 노동을 하면서?

멍하니 굳어 있던 희성은 뒤늦게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충격을 받아서인지, 혹은 허벅지의 상처 때문에 걷기 힘든 건지 알 수 없었다. 희성은 더듬거리며 형에게 물었다.

“내, 내 돈을 왜? 형, 난. 피해자잖아.”

“희성아….”

“그 돈으로는, 우리 같이 집 구해서 나가기로 했잖아. 형, 대체 왜?”

분명 3년 전에 그런 약속을 하긴 했다. 박건태도 분명히 기억한다.

하지만 이제 박건태는 사랑하는 여자와 집을 구하고 싶을 뿐이었다.

“대체 왜냐고!”

“희성아…. 왜 소리를 쳐. 너 지금 네가 피해자라고 생각하냐?”

“그럼, 뭔데?”

희성을 내려다보던 박건태는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반 뼘 작은 희성을 그저 어리다는 듯 보던 박건태는 안색을 굳혔다.

“이게 다 네가 자초한 거란 생각은 안 드냐?”

“…뭐?”

“네가 물건 잃어버린 거, 형이 좋게 해결해 준다는데 왜 그러냐. 응?”

소파에 불량하게 걸터앉은 박건태가 품에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그 앞에 비틀거리며 다가간 희성이 박건태를 노려보았다.

“씨발… 형.”

탁!

희성이 박건태가 담배에 불을 붙이려던 라이터를 손으로 세게 쳐서 떨어트렸다.

“나한테 말부터, 제대로 해.”

“아… 이 새끼 성깔 이거.”

그 성질머리에 박건태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개의치 않고 희성은 형을 노려본 채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그간 희성은 밤낮없이 일하며 현금을 꽤 모았었다. 비록 조직에서 가장 적은 돈을 받았지만, 그게 무려 5년이었다. 손님들에게 온갖 수모를 겪으며 모은 돈.

그런데 그 돈을 조직에 대 줬다니. 그리고 다시 처음부터 일하라니. 그동안 희생을 지탱해 온 작은 희망마저 부서져 내리는 기분이었다.

형이 충격으로 멍해진 희성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희성아. 원래 너 돌아오면 당장 죽을 뻔한 거, 그나마 내가 조직에 잘 말해서 이렇게 넘긴 거야. 네가 물건만 잘 가져왔어도 이럴 일 없었다.”

“그건 나도 빼앗긴 거라고! 갑자기, 모르는 놈들이 날 습격해서….”

툭. 말하던 희성의 무릎이 무너졌다.

상황에 절망해서가 아니었다. 다리의 부상 때문도 아니었다. 갑자기 몸에 힘이 풀려 스스로 서 있기조차 버거워졌다. 그런 희성을 본 형은 괜찮냐고 묻지 않았다. 그저 손목시계를 보며 안도할 뿐이었다.

“형, 나… 몸이….”

“약발도 드럽게 늦게 받네.”

희성의 눈이 홉뜬 채 커졌다. 힘이 풀린 고개를 들려 했지만, 희성은 도리어 옆으로 픽 고꾸라져 넘어졌다. 더러운 도박장 바닥에 쓰러진 희성은 몸을 흠칫흠칫 떨었다. 자신의 몸이 왜 말을 안 듣는지 알 것 같았다.

조금 전 박건태가 줬던 술.

거기 약이 든 게 분명했다. 희성은 투견처럼 눈을 부릅뜬 채 형을 노려봤다. 금방이라도 잠들 것 같았지만, 희성은 마지막 발악처럼 눈을 뜬 채 스스로 움직이려 했다. 하지만 손끝은 벌벌 떨리기만 할 뿐, 입 밖으로는 볼품없는 물음만이 새어 나왔다.

“…왜? 형… 나한테 왜…?”

“희성아, 씨발. 내가 너한테 해 준 게 얼만데.”

그런 희성의 몸을 박건태가 대충 질질 끌고 가며 화를 냈다.

“내가 찬 길바닥에서 다 죽어 가던 널 데려와서 먹여 주고 키워 줬는데! 희성아, 넌 왜 기브 앤 테이크를 못 해?”

그 말을 들어도 희성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어차피 평소에 자주 듣던 말이었다. 형이 술에 취하면 늘 하던 타박이었으니까. 그래서 희성은 형을 위해 죽도록 싫은 도박장에 남아 일을 했었다.

하지만 이어지는 말에 희성은 박건태가 정말 원하던 걸 알 수 있었다.

“손님이 한 번 빨아 달라면 빨아 줄 수도 있고, 벌려 달라면 벌려 줄 수도 있잖아! 어? 내가 네 승질머리 때문에 잃은 손님이랑 매출이 얼만 줄 알아?”

“…흐으….”

“네가 진작 융통성 있게 굴었으면 매출 세 배는 올렸어! 이 새끼야.”

희성은 그제야 형이 자신을 키운 이유를 알았다.

형은 처음에 자신을 충동적으로 든 동정심에 데려오고, 이후에는 얼굴이 반반하단 이유로 투자를 한 것이었다.

‘이미 형은 오래전부터 날 버린 거였어….’

몸에 힘이 풀린 희성은 쓰러진 채 눈물을 뚝뚝 흘렸다. 그간 부질없는 곳에 매달렸던 자신이 한심했다. 애초에 그럴 필요가 없는 곳을 마지막 동아줄처럼 꼭 붙잡고 있었다. 가족에게 한 번 버려졌으니 또 버려지긴 싫다고, 혼자만 가족처럼 여긴 사람에게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희성의 처량한 눈물을 본 박건태가 씁쓸하게 말했다.

“미안하다, 희성아…. 그래도 네가 잘했으면 이럴 일 없었어.”

“…….”

차라리 없었으면 나을 잔정이었다. 늘 희성을 더러운 도박장에 붙잡아 둔 어설픈 잔정이 이토록 추잡하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온몸에 힘이 풀린 희성은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도 증오스러워하는 눈으로 박건태를 노려봤다.

박건태는 그 시선을 피한 채 희성의 두 손을 등 뒤로 꽉 묶었다. 희성은 의식이 흐려지는 와중에도, 그가 자신을 포박하는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박건태는 사무실로 따로 사람을 불러 말했다.

“최대한 아무도 못 보게 뒷문도 쓰지 말고, 주방 쪽 쪽문으로 나가.”

박건태가 명령한 사람은 도박장 직원이 아니었다. 희성은 부릅뜬 눈으로 마지막까지 몸을 움직여 보려 했지만, 이미 몸에 대충 천이 감싸인 채 누군가의 어깨에 둘러메진 상황이었다.

‘안 돼. 지금 잠들면….’

희성은 어떻게든 몸부림쳐 몸을 움직이려 했다. 하지만 의식은 점점 흐려져만 갔다. 더는 눈도 뜨기 어려워 희성은 눈꺼풀을 바르르 떨며 무너지듯 눈을 감았다.

* * *

얼마나 지났을까. 희성은 희미하게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하지만 시야는 천으로 가려졌고 약 기운 때문에 손끝 하나 움직일 수가 없었다. 독한 술에 온몸이 절어 버린 것처럼 아무런 힘도 들어가지 않았다.

‘대체, 어디까지 가는 거지….’

그나마 희성이 알아챈 건 한참 차를 타고 이동한 자신이 어디론가 옮겨졌다는 것이다. 그 이후에는 남자들이 희성을 짊어진 채 어느 건물로 들어섰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어느 조용한 방에 들어갔다. 마지막으로 희성이 침대에 던져지듯 눕혀졌고, 눈을 가리던 천이 벗겨졌다.

‘여긴….’

희성은 희미하게 뜬 눈으로 주변을 분간해 보았다. 시야에 침대와 투명 유리로 구분된 샤워실이 보였다. 모텔이라 예상했는데, 희성을 끌고 온 남자들이 하는 말에 장소를 확신할 수 있었다.

“진짜 사내놈을 따먹으려는 거야?”

“그러겠지. 모텔에 아예 달빵 넣었다는데.”

“이래서 말 일족 새끼들이 역겹다는 말 듣는 거라니까….”

그들은 희성을 대충 내버려 둔 채 객실에서 담배를 피웠다. 마지막으로 누군가와 깍듯한 인사말로 통화를 한 그들은 미련 없이 방을 빠져나갔다.

객실에 홀로 덩그러니 남겨진 희성은 숨을 가늘게 내쉬며 상황을 파악하려 했다.

그나마 알 수 있는 건 지금이 이른 저녁이라는 거였다. 희성이 새벽에 탈출했으니 만 하루가 지나갔다. 희성은 자신이 한참 차를 타고 온 걸 떠올리며, 일부러 형이 자신을 아무도 못 찾을 곳에 숨긴 거라 추측했다. 조직원들이 켕기는 일이 있을 때 하는 짓이었다.

“하아, 흐….”

가늘게 심호흡을 하며 얼마나 보냈을까.

달칵.

객실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희성은 그나마 약 기운이 빠져 힘없이 팔다리와 꼬리를 움직일 수 있었다. 그래 봤자 볼품없는 움직임이었다.

가까스로 고개를 돌리자 희성의 시야에 역겨운 놈이 보였다.

“우리 개새끼, 드디어 찾았네.”

한쪽 팔에 붕대를 감은 권기혁이었다.

그는 문밖에 수행원을 세워 두고 혼자 객실로 들어섰다. 희성은 약에 온몸이 절어 버린 와중에도 그를 보자마자 송곳니부터 내보였다.

“너… 씨, 발….”

공격성을 내보였지만, 희성은 반쯤 본체가 드러나 부드러운 하얀 귀와 꼬리가 솟아나 있었다. 그 모습을 본 권기혁은 희성을 보며 온전한 왼손으로 담배를 피웠다. 입가에는 비웃음뿐이었고 실핏줄이 터져 붉어진 두 눈은 희성을 즐겁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우리 귀여운 개새끼. 야. 내가 널 얼마에 산 줄 알아?”

가까이 다가온 권기혁이 희성의 뺨을 툭 쳤다. 손에 끼우고 있던 담뱃재가 떨어져 희성의 귓불 아래 이불을 새까맣게 태웠다. 희성은 그런 것은 상관 안 하고 숨을 색색 몰아쉬며 그를 노려보았다.

“하, 이게 윤치영 개새끼 노릇을 하는 줄도 모르고 한참 찾았네.”

“…….”

“이제 윤치영 볼 일 없을 거야. 여기 그 새끼 영역에서 한참 벗어난 곳이거든.”

침대에 구둣발로 올라선 권기혁은 퍽 즐겁다는 듯 웃으며 희성의 가슴팍에 무릎을 꿇고 주저앉았다.

희성의 말간 얼굴 아래 그의 묵직하게 부푼 사타구니가 가까워졌다. 희성은 굴욕감과 더불어 가슴팍이 눌려 숨을 쉬기 힘들어졌다. 점점 희성의 숨이 거칠어지며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그런 희성의 마른 턱을 권기혁이 이리저리 돌리며 말했다.

“다시 봐도 존나 꼴리게 생겼네….”

“하, 흐으….”

“야. 너 21살에 아다라며? 내가 처음 떼 주는 거네?”

“꺼, 져. 미친, 새끼야….”

희성이 욕을 지껄이며 권기혁의 목을 움켜쥐려 했다. 하지만 팔은 앞으로 뻗는 게 고작이었다. 그 광경을 담배를 피우며 내려다보던 권기혁이 슬슬 웃었다.

대충 담배를 침대에 지져 끈 권기혁은 희성의 송곳니가 드러난 입에 손가락 하나를 넣었다. 축축한 혀를 누르던 그는 맛있지 않냐며 천박하게 웃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희성은 참지 않았다.

“아아악! 이 개새끼가!”

그나마 약 기운이 풀린 희성은 온 힘을 다해 송곳니로 그의 손가락을 물었다. 권기혁의 손가락에서 피가 날 정도로. 송곳니가 제대로 박혀 고통스럽게 살을 파고들었다.

간신히 손을 빼낸 권기혁은 제 손가락을 보며 이를 악물었다. 목울대에 핏대가 선 권기혁은 작은 머리통에 대고 거칠게 손을 휘둘렀다.

쫙!

희성의 고개가 거세게 돌아가며 뺨에 붉은 자국을 남겼다. 희성은 그때만큼은 이를 악물며 신음 하나 내지 않았다. 그저 화가 나고 억울해 눈물이 방울방울 흘렀다. 그 모습을 보고 그제야 픽 웃음을 흘리는 권기혁이 너무도 역겨웠다.

“하… 피 낸 거 괜찮아. 원래 개들은 다 이러니까.”

권기혁이 희성의 흐릿한 눈깔을 보며 퍽 자비롭게 주절거렸다.

“저번에 네가 내 좆에 국 쏟은 것도 상관없어.”

“…….”

“이번엔 그 좆으로 네 구멍 헐 때까지 박아 줄 거니까. 그럼 대충 수지타산이 맞잖아?”

한 손으로 느긋이 벨트를 푼 그는 희성의 얼굴 앞에 두툼한 성기를 꺼낸 채 수음을 하기 시작했다. 역겨운 광경에 희성의 얼굴이 사납게 일그러졌다. 당장이라도 그를 후려갈기고 싶어 손과 발이 움찔움찔 떨렸다.

“하아, 씨발….”

흥분이 고조됐는지 권기혁이 급하게 몸을 일으켰다. 그는 희성의 허리 아래에 자리 잡더니 부드러운 허벅지를 거칠게 벌렸다. 하필 사이즈가 훌쩍 큰 윤치영의 옷도 손쉽게 벗겨졌다.

“뭐야, 속옷도 안 입고 왔어? 기다린 거야?”

“씨, 발… 놔…!”

희성이 굳은 혀로 욕을 짓씹었다. 하지만 오히려 권기혁은 귀엽다는 듯 희성을 바라봤다.

희성은 당장이라도 그를 물어 죽이고 싶었다. 저 웃는 낯을 바닥에 갈아 버리고 직접 송곳니로 온몸을 물어뜯고 싶었다. 그나마 약 기운이 풀려 권기혁의 허리를 밀어내듯 짚었지만, 별반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권기혁이 희성의 하얀 허벅지를 탐스럽게 쓰다듬을 때였다.

꺄아악!

바깥에서 갑자기 비명이 들렸다. 곳곳에서 문을 부수는 소리도 들렸고, 사람들이 혼비백산 도망가는 소리도 우르르 들렸다. 그러자 권기혁의 눈이 불안으로 일그러졌다. 무언가 불길한 걸 예감한 듯이.

“씨발, 뭐야?”

그의 감은 나쁜 쪽으로 잘 들어맞았다.

희성은 권기혁이 뒤를 돌아본 순간, 마지막 힘을 쥐어짜 그의 면상을 힘껏 발로 차 냈다.

“아아악!”

권기혁이 꼴사납게 침대 아래로 넘어졌다. 희성은 기다렸다는 듯이 작은 강아지로 돌아갔다. 입고 있던 옷은 손쉽게 떨쳐져 강아지는 곧장 문으로 비틀비틀 달려갈 수 있었다. 하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아 강아지는 몇 번씩이나 둥글게 고꾸라졌다.

마침 문이 부서질 듯이 열렸다. 정장을 입은 남자들이 안을 둘러보고 곳곳을 뒤졌다. 하지만 시야가 한참 낮은 희성은 그들의 검은 구둣발만 보였다. 강아지는 제 다리에 또다시 피가 흐르는 줄도 모르고 복도를 필사적으로 달렸다.

하지만 복도는 이미 방에서 뛰쳐나온 투숙객들로 난장판이었다.

깨갱!

도망치던 누군가의 발에 작은 솜 덩어리 몸이 차였다. 작은 강아지가 멀리 날아가 바닥을 굴러 쓰러졌다. 그나마 사람들이 없는 쪽으로 차여서 다행이었지만, 희성은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다.

‘아파, 아파….’

사람의 발에 차인 것조차 강아지에겐 큰 위협이었다. 그 충격으로 까만 코에서 코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희성은 어지러움에 구토감마저 느꼈지만, 필사적으로 일어나 절뚝절뚝 걸었다. 어떻게든 이곳에서 도망쳐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나마 객실이 1층이라 다행이었다.

겨우 주차장을 통해 빠져나간 희성은 모텔 뒤쪽 골목으로 나가게 됐다.

다행히 골목만큼은 조용했다. 강아지는 절뚝절뚝 걸어 그저 구석 어딘가로 향했다. 제발, 자신이 안전할 수 있는 곳으로.

“…….”

이내 희성은 어느 에어컨 실외기 옆에 픽 쓰러졌다. 누군가 귀하게 길러 줬던 하얀 털은 엉망이 됐고 눈물 자국이 흠뻑 난 강아지 얼굴도 엉망이었다.

한겨울에 겨우 누운 콘크리트 바닥은 너무도 차가웠다. 희성은 자신의 몸 색깔처럼 하얀 눈이 쌓인 골목을 보며, 이번만큼은 누구도 자신을 찾지 못할 거라 예감했다.

하지만 아무도 자신을 찾지 못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희성은 더는 아프기 싫었다. 이제 돌아갈 곳이 없다는 현실도 싫었고, 죽기 직전인 마지막에도 믿을 만한 가족 하나 없다는 게 싫고 서러웠다.

그나마 희성이 떠올린 건 윤치영이었다.

‘윤치영한테… 미안한데….’

비록 윤치영은 자신이 강아지인 줄 알았겠지만, 그가 귀하게 키워 주었던 것만큼은 구차하던 제 삶에서 유일하게 좋은 기억이었다. 그의 곁에서 한 달을 지내며 값진 음식의 맛도 알았고 진정으로 사랑받는 느낌도 알았다. 비록 그를 속이고 받은 애정이지만, 사실 강아지에겐 작은 몸으로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행복했다.

윤치영을 떠올리며 숨을 거칠게 색색대던 강아지는 간헐적으로 몸을 떨었다. 의식마저 흐릿해질 무렵, 마지막으로 시야에 누군가의 검은 구둣발이 보였다.

“견희성….”

“…….”

“…대체 왜 혼자 나갔어.”

그는 강아지인 자신을 어떻게 알아봤는지 이름을 불러 주었다. 작은 몸을 따듯하게 껴안고 흐느끼는 듯한 소리도 들렸다.

하지만 희성은 그에게 아무런 대답도 못 한 채 까무룩 정신을 잃고 말았다.

* * *

어릴 적 희성은 유독 몸이 약했다.

음식은 꼼꼼하고 깨끗하게 조리되지 않으면 먹는 족족 토해 냈고 툭하면 병원에 실려 가기 일쑤였다. 하지만 가난했던 희성의 집은 병원조차 제대로 데려가 주지 못해 희성은 날이 갈수록 허약해졌다.

대신 희성의 동생만큼은 건강했다. 잘 먹지 못한 희성과는 반대로 쑥쑥 자라나 일찍이 형의 키를 따라잡을 정도였다.

어느 날 아빠와 동생이 큼직한 짐을 들고 집을 나섰다. 엄마는 희성을 품에 안고 표정을 숨겼다.

〈희성아, 우리 희성이….〉

희성은 엄마가 우는 걸 보았지만, 원래 눈물이 많은 걸 알기에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래도 늘 자신이 아픈 것보다 엄마가 우는 게 더 슬펐다.

엄마는 희성에게 늘 주의시켰던 과자를 한가득 주며 말했다.

〈희성아, 배고프면 이거 먹고… 집에서 기다리고 있어.〉

〈알겠어!〉

희성은 철없이 과자만 보고 신이 났다. 몇 입만 먹어도 늘 소화를 못 하고 토해 내면서, 귀한 과자를 무서운 아빠가 없는 집에서 마음껏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들떴다.

그때 아빠가 엄마를 호통치듯 불렀다.

〈뭐 해? 빨리 안 나오고!〉

〈여보….〉

〈나와. 저건 약해서 못 데려가!〉

희성은 아빠가 늘 자신을 탐탁지 않아 하던 걸 알기에 집 안에 가만히 있었다.

흐느끼던 엄마는 희성의 뺨을 연신 쓰다듬더니 미안하다는 말을 남기고 집을 나섰다. 트럭 운전기사와 아빠가 몇 마디 싸우는 소리가 들렸고, 끝으로 시끄러운 트럭 엔진 소음마저 멀어졌다.

이후 가족들은 희성을 데리러 돌아오지 않았다.

희성이 과자를 실컷 먹고 토한 날에도, 동생을 위해 과자를 아껴 먹은 날에도 돌아오지 않았다. 엄마에게 전화를 하고 싶어도 집에 정상적으로 돌아가는 기구가 없었다.

빠르게 희성이 살던 가난한 동네도 조용해졌다. 사람들이 쫓기듯 짐을 싸 들고 떠났고 벽에는 ‘철거’라는 빨간 글씨가 써졌다. 희성이 대낮에 거리로 나가도 벽에 스프레이로 엑스 자가 그려진 마을은 고요했다. 배고픔에 얼마 없는 동전을 들고 나가도 자주 갔던 슈퍼는 문을 닫았고 얼마 못 가 집에 전기도 끊겼다.

혼자 남은 희성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나마 도움을 구하려 멀리 나가 보았지만, 희멀건 희성을 배 나온 아저씨가 억지로 끌고 가려 했다. 두려움에 질린 희성은 간신히 집으로 도망쳐 와 구석에 몸을 웅크렸다.

〈…엄마가 기다리라고 했어.〉

이후 희성은 기약 없이 가족을 기다리기 시작했다. 체력을 아끼기 위해 강아지로 변한 채였다. 사실 돈이 없어 별달리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 움직일 기력도 잃을 즈음, 누군가 집에 들이닥쳤다.

〈이 새끼 개는 뭐야? 죽었나?〉

〈개 수인 아닙니꺼?〉

조폭들이 희성의 집에 신발을 신고 들어와 어슬렁거렸다. 그중에는 형도 있었다. 희성이 형을 처음 봤을 때 그는 더 젊고 일반인다웠지만, 옷만큼은 조폭의 차림새 그대로였다.

조폭들은 메마른 채 다 죽어 가는 강아지의 눈깔을 이리저리 뒤집었다.

〈이거 살았는데?〉

〈뭐? 그 쪼만한 게 여태까지 살았다고?〉

조폭들은 희성을 그냥 두고 가려 했지만, 무슨 생각인지 형이 희성을 품에 안고 데려가 줬다. 자신의 어릴 적이 생각난다는 이상한 이유에서였다.

그곳에서 며칠 동안 먹을 걸 챙겨 먹은 희성은 겨우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간신히 사람으로 돌아간 희성은 마른 입으로 물었다.

〈엄마는요?〉

질문에 형 옆에 있던 나이 든 남자가 아이고, 하고 혀를 찼다.

형은 그런 희성의 메마른 뺨을 툭 치며 씁쓸하게 설명해 주었다.

〈잘 들어, 너 버려진 거야. 알겠어?〉

〈…….〉

〈이걸 어떡하나. 그냥 키워? 곱상하긴 한데.〉

희성은 형이 뭐라 하든 멍하니 그 자리에 있었다.

울지는 않았다. 그동안 가족에게 버려졌다는 생각은 외면하듯 절대 하지 않았지만, 마치 학교를 졸업하듯 살면서 언젠가 맞이할 순간이라 생각해 의연하게 받아들였다.

삶의 어느 지점을 졸업한 만큼 배운 것도 있었다.

아프고 약하면 무리에서 버려지는 거구나.

그런 희성을 형이 쓸모가 있을 거라고 조직에 말해 거둬 줬다. 다른 조직원들은 약한 희성을 탐탁지 않게 여겼지만, 희성은 늘 제 쓸모를 다하려 노력했다.

누구에게도 약해 보이지 않으려 했고, 아픈 건 필사적으로 숨겼다. 언행은 세상에 쉽게 굽히지 않는 투견들을 따라 했고 가장 나약한 모습은 형에게도 꼭꼭 숨겼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희성은 어른이 됐다. 그간 희성은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에서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했다.

하지만 희성은 또다시 버려졌다. 형이 원하는 대로 행동하지 않아 가치가 떨어져서. 애초에 자신의 가치를 알아주지도 않을 사람이었는데 말이다.

절망에 빠진 희성은 기절한 채로도 계속 악몽을 꿨다.

악몽은 여러 끔찍한 기억이 뒤섞여 희성을 괴롭혔다. 혼자 남은 희성의 집 문을 누군가 부술 듯이 두드리거나, 검게 다가온 누군가 희성을 때리거나, 억지로 손을 끌고 가는 꿈이었다.

〈희성아. 네가 좀 참으면 되잖아.〉

끔찍한 악몽 속에서는 형도 마주했다. 희성은 그 앞에 선 채 현실이 싫어 눈물을 뚝뚝 떨어트렸다.

* * *

강아지와 함께 지낸 뒤로 가장 조용한 밤이다. 윤치영은 침대에 웅크려 누운 희성을 바라보고 있었다. 표정은 평소와 달리 차갑게 가라앉은 채였다.

예상과 틀어져 강아지를 조금 늦게 찾았다.

그나마 박건태에게 감시를 붙여 둬서 권기혁의 뒤를 바로 밟을 수 있었지만, 이미 강아지는 상처투성이가 됐다.

윤치영은 권기혁이 그렇게까지 희성을 탐낼 줄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어차피 아버지가 곧 감옥에 갈 놈이라 집안 꼴 보고 몸을 사릴 줄 알았는데, 권기혁이 발악하듯 현실을 외면하더니 기어코 희성을 멀리 데려갔다.

그나마 윤치영이 온 모텔을 뒤져 희성을 찾아내서 다행이지, 그게 아니었다면 강아지가 어떤 꼴을 당했을지 몰랐다. 윤치영은 생각만으로도 불쾌해져 미간을 구겼다. 스스로 감정 제어가 힘들어져 머리 위로 검은 늑대 귀가 솟아나고 송곳니가 아프게 제 입술을 찌를 정도로 돋아났다.

“…….”

희성은 그나마 부상이 덜했는지, 혹은 어떤 의식이 남은 건지 잠시 정신을 차렸을 때 고집스레 인간형으로 변하더니 다시 픽 쓰러졌다. 하지만 윤치영의 눈에는 희성이 여전히 작고 부드러운 강아지 같았다.

검은 머리칼 사이에 솟은 하얀 귀를 쓰다듬던 윤치영은 희성의 이마에 난 식은땀을 닦아 주었다. 자꾸 악몽을 꾸는지 희성이 고통스럽게 앓는 신음을 냈다.

“엄, 마….”

그때 희성이 잠꼬대처럼 무언가 읊조렸다. 이미 한참 그의 잠꼬대를 들어주었던 윤치영은 말간 뺨을 조심히 짚었다. 그간 귀하게 키웠는데 이렇게 다친 채 돌아온 걸 보니 가슴이 답답하면서도 미어졌다.

뺨에 온기가 닿자 희성이 낑낑거리듯 읊조렸다.

“나, 나 안 아파….”

“…….”

“나도… 데려가…. 나, 안 아플게….”

윤치영의 미간이 고통스러운 듯 일그러졌다. 늑대들은 원래 부정적인 감정을 표정에 드러내지 않도록 교육받지만, 이번만큼은 어쩔 수 없었다. 희성의 말에 버려진 강아지가 시달린 고통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다.

조용히 희성을 내려다보던 윤치영은 답지 않게 차갑게 말했다.

“누가 널 데려가.”

“…흐윽….”

“너 이제 여기서 나랑 평생 살아야 해.”

단호한 말에 희성이 눈을 꾹 감은 채 흠칫흠칫 몸을 떨었다. 고통스러운 악몽을 헤매는 중일 텐데, 손을 뻗어 윤치영의 옷소매를 꽉 붙잡기도 했다.

그 손을 조용히 내려다보던 윤치영은 희성의 이마를 덮은 검은 머리칼을 정리해 주었다. 그러곤 이번만큼은 한결 다정하게 속삭였다.

“너 그냥 계속 쓸모없는 강아지 해.”

“…….”

“잘 먹고 성격 더러운 강아지.”

그 말이 대체 뭐가 서럽다고, 희성의 표정이 울듯이 무너졌다. 하지만 깨어나진 못하고 몸을 더욱 웅크린 채 잠이 들었다. 어둑한 방 안에서 드넓은 침대에 누운 희성의 몸이 유독 왜소해 보였다.

윤치영은 그런 희성을 평소처럼 품에 안아 주고 눈꼬리에 맺힌 눈물을 닦아 주었다. 따듯한 품이 닿자 안정감이 느껴지는지, 희성이 더는 잠꼬대를 하지 않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스윽.

희성이 잠에 빠진 걸 확인한 윤치영은 자리에서 조용히 일어났다.

아픈 강아지와 떨어지고 싶진 않은데, 해야 할 일이 떠올랐다. 강아지를 위해 특별한 선물을 준비할 생각이었다. 윤치영은 조용히 코트를 챙겨 입고 강아지 앞에 앉았다.

“금방 올게.”

나직이 말한 윤치영은 강아지의 작은 머리에 입을 맞추고 나왔다. 바깥은 늦은 밤이었지만 상관하지 않았다. 어차피 윤치영이 활동하던 시간이었다.

* * *

희성이 다시 깨어났을 때는 해가 진 이른 저녁이었다.

유독 창이 큰 집 안으로 주홍빛 햇살이 파고들었다. 희성은 희미하게 눈을 뜬 채 주변을 둘러봤다. 익숙한 집 안의 풍경이 보였다.

‘윤치영 집이잖아….’

희성은 숨을 깊게 몰아쉬었다. 다리 쪽에서 싸한 통증이 느껴졌지만 신음을 참고 조급하게 전자시계를 봤다. 쓰러진 뒤 삼 일이나 지나 있었다. 뭔가 이상함을 느낀 희성은 그제야 제 모습을 확인했다.

자신은 인간형의 모습이었다.

거기다 사이즈가 큰 윤치영의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새 브리프도 입혀져 있었고 제 하얀 꼬리도 보였다. 팔에는 수액이 꽂혀 있었고 지난번보다 커다란 깁스도 다리에 감겨 있었다.

제 모습을 내려다보던 희성은 흠칫 몸을 굳혔다.

윤치영이 자신의 인간형 모습을 보았다.

윤치영은 눈치가 빨랐고 후각도 뛰어났다. 분명 자신이 돌보던 강아지임을 눈치챘을 것이다.

“안 돼….”

희성은 입술을 깨물며 불안하게 주변을 둘러봤다. 그가 자신을 다시 집에 데려온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희망적인 생각은 떠오르지 않았다.

윤치영은 단순히 자신을 더 가지고 놀려는 것일 수도 있었고, 어떤 보복을 하려는 것일 수도 있었다. 혹은 잘해 봐야 수하로 부리려는 심산일 것이다. 희성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침실과 이어진 드레스 룸으로 절뚝절뚝 걸어갔다.

일단 어디로라도 도피하는 게 나을 것이다.

희성은 무작정 손에 잡히는 옷을 꺼내 들고 나가려 했다. 하지만 이내 희성의 손짓이 굳어 버렸다.

‘어디로 가게? …갈 곳도 없는데, 왜 도망치는데?’

이제 희성은 돌아갈 곳이 없었다. 형은 자신을 배신해 권기혁에게 팔아넘겼고 가족은 진작 자신을 버렸다. 열심히 모은 돈조차도 형이 잃어버린 마약 대금으로 처리해 버렸다고 했으니, 희성은 완전히 빈털터리였다.

“…씨발….”

울어도 부질없는데 희성은 눈앞이 흐려졌다. 그나마 돈을 모아 조직을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으로 살아왔는데 모든 것이 무너졌다. 자신은 다시 식인 늑대의 굴에 들어오게 됐고 몸도 성치 않아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이내 희성은 눈물을 쓱 닦아 냈다. 그래도 이곳보단 바깥이 나을 것이었다.

달칵.

그런데 하늘이 희성을 버린 건지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집이 넓어서 작게 소음이 났을 뿐이었지만 희성은 예민하게 강아지 귀를 세웠다.

윤치영이다.

안절부절못하던 희성은 무작정 숨을 곳을 찾았다. 몸이 아팠지만 억지로 다리를 끌고 옷장 안으로 들어갔다. 윤치영의 고급 코트들이 구겨지며 희성의 몸 위로 떨어졌다.

희성은 그중 도톰한 코트 하나를 몸에 뒤집어썼다. 그러곤 숨소리를 내지 않기 위해 이를 악물었다. 윤치영에게 눈물도, 인간의 모습도 보이고 싶지 않았다. 다시 강아지로 돌아가려 해도 몸 곳곳에 붕대가 감겨 있어서 그마저 여의치 않았다.

수인인 희성의 코에 윤치영의 체향이 점점 진하게 스쳤다. 그가 가까워지고 있다는 뜻이었다. 몸을 웅크린 채 후각에 집중하던 희성의 눈이 커졌다.

피 냄새.

윤치영에게서 또 진득한 피 냄새가 났다.

이번에는 딱히 숨길 생각도 없었는지 비누 향이나 향수 냄새도 나지 않았다. 그저 바깥의 찬 공기 내음을 함께 풍겼을 뿐이었다.

희성은 그가 또 누군가를 처리하고 왔음을 알았다. 이젠 익숙할 만한 일인데, 지금 부상을 당한 희성은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의연해지려 했는데도 손끝이 덜덜 떨렸고 하얀 꼬리는 가랑이를 푹 감쌌다.

“하….”

가까운 곳에서 윤치영의 한숨 소리가 들렸다. 피 냄새도 진해졌다.

희성은 옷장 안에서 더욱 작게 몸을 웅크렸다. 어차피 후각이 예민한 늑대가 자신을 금방 찾을 걸 알지만 본능처럼 몸을 숨기게 됐다.

점점 윤치영이 가까워졌다. 그는 옷장 앞에 섰는지 발걸음 소리도 끊겼고 체향도 지척에서 풍겼다.

희성은 소리 없이 심호흡하며 생각했다.

‘문을 열면, 바로 후려치고 도망가면 돼.’

어차피 식인 늑대가 정을 붙인 건 ‘견희성’이 아닌 강아지에 그쳤을 것이다. 이미 희성은 강아지로 살지 않겠다고 결심한 만큼 그의 품을 벗어나야 했다. 거기다 견인족 도박장에서도 쫓겨났으니 혼자 살 길을 찾아야 했다.

오직 자신 혼자서.

그 생각을 하자 희성의 몸에 힘이 빠졌다. 모든 희망을 잃은 강아지처럼.

드르륵.

그때 옷장의 미닫이문이 부드럽게 열렸다. 희성은 눈물을 감춘 채 윤치영의 코트에 파묻혀 있었다. 대체 그런 자신을 보고 윤치영은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한동안 아무런 말이 없었다.

뒤늦게 그가 자신을 불렀다.

“강아지.”

조심스레 코트 자락이 들쳐졌다. 그러자 웅크려 있던 희성의 검은 머리칼과 하얀 강아지 귀가 드러났다. 서서히 무릎에 파묻었던 고개가 들리고 희성의 겁에 질린 동그란 두 눈이 조심스럽게 보였다.

희성은 곧장 셔츠에 피를 묻힌 윤치영과 눈이 마주쳤다. 무릎을 굽혀 시선을 맞춘 그는 평소처럼 희성을 보며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질겁한 채 웅크려 있던 희성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후의 발악을 했다.

“저리 꺼져…!”

희성은 힘껏 윤치영을 밀치기 위해 주먹을 뻗었다. 체구답지 않게 날렵하고 옹골진 주먹이었다.

하지만 윤치영은 주먹을 쉽게 잡아챘다. 오히려 그 반동으로 희성을 자신의 품까지 끌어당겼다. 겁에 질린 희성의 까만 눈이 코앞이었다.

윤치영은 그런 희성에게 평소처럼 행동했다.

“놔! 이 미친 새…!”

말하던 희성의 말이 부드럽게 묻혔다. 윤치영은 기꺼이 강아지의 송곳니를 입술로 품었다. 그는 입술에 피를 흘리면서도, 즐겁게 눈을 휜 채 경직된 희성과 혀를 섞었다. 생각보다 희성의 반응이 민감해 순진한 소년을 질 나쁜 유혹으로 잡아먹는 것만 같았다.

윤치영은 강아지의 약점을 알게 됐다. 스킨십에 늘 주먹다짐으로 반응하던 강아지는 고작 야릇한 키스 하나에 당황해 어쩔 줄 몰라 했다. 손으로 윤치영의 품을 밀어내려 했지만 체격 차이는 늘 강아지가 이기지 못했다.

“하, 흐으….”

점점 희성의 몸이 옷장 안으로 물러났다. 그런 희성의 등허리를 윤치영이 지탱하듯 한 팔로 강하게 감싸 안았다. 다른 손으로 붙잡은 희성의 주먹에 아직 힘이 들어가 있었지만, 윤치영은 인내심 있게 강아지가 긴장을 풀 때까지 지그시 혀를 섞었다.

곧 희성의 몸에 점점 긴장이 풀렸다.

혀가 부드럽게 섞일 때마다 반쯤 접힌 강아지 귀가 나비의 날개처럼 팔랑거렸다. 입술을 겹친 채 놀란 눈을 동그랗게 뜬 희성을 본 윤치영은 그의 눈을 손바닥으로 조심히 가려 주었다.

곧 희성의 몸이 무너지며 옷장의 옷더미 위로 부드럽게 파묻혔다. 그 위로 윤치영이 진정한 희성을 내려다보며 희게 웃었다.

“나 기다렸어?”

“…….”

코트 더미에 파묻힌 희성은 멍하니 굳은 채 입술을 달싹였다. 윤치영이 지긋지긋하게 잘생긴 얼굴로 자신의 표정을 세심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강아지일 때랑 똑같네.”

낯간지러운 말에도 희성은 아무런 반응도 못 했다. 줄곧 인상을 사납게 쓰던 미간은 허무하게 풀어진 채였고, 까맣고 동그란 눈이 강아지 때처럼 도드라졌다. 윤치영은 그 허술한 표정을 보곤 눈을 휘며 즐거운 웃음을 터트렸다. 희성이 당황해 눈이 동그래진 모습은 정말 강아지일 때랑 똑같아 보였다.

“너, 너….”

“응.”

다만 강아지일 때와 달리 이번엔 말이 통했다. 하얀 강아지 귀를 한껏 뒤로 눕힌 희성은, 첫 키스의 소감을 저답게 말했다.

“미, 미, 미친 거야…?”

결국 크게 웃음을 터트린 윤치영은 희성의 어깨에 고개를 파묻은 채 어깨를 떨었다.

말이 통하는 강아지는 생각보다도 훨씬 귀여웠다.

* * *

희성은 윤치영의 품에 안긴 채 옷장을 나오게 됐다. 윤치영이 커다란 티셔츠를 입혀 주고, 그도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또 식탁으로 옮겨 줄 때까지도 멍하게 굳어 있었다.

처음에는 윤치영이 자신을 안아 옮기는 게 당연하게 느껴져서였고, 그다음에는 익숙해진 자신이 충격적이어서였다.

‘…얘 나 찾아서 죽이려는 게 아니었나?’

그동안 당연하다 생각한 의문이 머릿속에 꽉 찼었다.

희성은 만약 자신이 키우던 강아지가 사실 자신을 엿 먹인 수인이었다면, 그랬다면… 죽이고 싶다기보단 배신감을 꽤 느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윤치영은 배신감은커녕 희성을 평소처럼 다정하게 대해 주었다.

“배는 안 고팠어? 지금 배고플 시간이잖아.”

“…….”

그 물음에 희성은 숨만 쉬는 인형처럼 그가 옮기는 대로 앉아 있었다. 얼결에 윤치영의 허벅지 위에 앉게 됐는데, 머릿속엔 혼란이 그득해서 뭔가 이상하다는 자각도 못 했다.

‘얘가 나한테 그렇게 정이 들었나…?’

그래서 수인이었다는 것도 상관 안 하는 건가? 희성은 작은 머리를 필사적으로 굴리며 상황을 파악하려 했다.

뒤늦게 그럴듯한 가설을 찾았다.

‘설마 날 이대로 강아지처럼 키우려는 건가?’

그럴싸했다. 희성처럼 본체가 작은 수인은 흔치 않기도 했고, 윤치영의 또라이 같은 성격을 생각해 보면 그 가능성밖에 없었다. 그리고 희성을 강아지로 계속 키우는 거 자체가 가장 크게 엿 먹이는 방식이기도 했다.

윤치영의 품에서 계란죽을 받아먹던 희성은 참다못해 물었다.

“너… 왜 평소처럼 대해?”

“뭐가?”

윤치영이 알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가까이 기울이며 물었다. 귓가에 나른하면서도 부드러운 목소리가 또렷이 파고들어 움찔했다. 희성은 윤치영이 한결같이 자연스럽게 굴어서 자신이 여전히 강아지인 줄 알았다.

‘난 투견인데.’

안겨 있던 희성은 윤치영의 품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곤 강아지 귀와 함께 경계심을 잔뜩 세운 채 옆쪽 의자에 기대서며 공격적으로 물었다.

“너, 이대로 날 강아지로 키울 생각이지?”

“그게 무슨 소리야?”

“아니면 왜 평소처럼 대하는데?”

송곳니를 드러내며 화내듯 물어도 윤치영은 그저 의아해하는 얼굴이었다.

답답함에 희성은 그에게 정신 차리라는 듯 사납게 말했다.

“내가… 네 얼굴 후려쳤었잖아!”

“아… 그거.”

윤치영이 잔잔하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읊조렸다. 희성은 그 모습을 잔뜩 긴장한 채 바라보았다.

회색 눈동자로 마치 멀리 별을 보듯 허공 어딘가를 응시하던 윤치영은, 뒤늦게 희미하게 웃으며 혼잣말했다.

“진짜 짜릿했지….”

“…….”

“열받으면서도 가슴이 엄청 두근거렸는데… 그때부터였나?”

희성의 표정에 경악과 놀라움, 한심함을 비롯한 여러 감정이 뒤섞였다. 하지만 윤치영은 그런 눈빛조차 익숙했다. 태연자약하게 웃은 그는 희성의 입에 계란죽을 마저 떠먹여 줬다.

희성은 자연스럽게 계란죽을 받아먹다가 흠칫 놀랐다. 이 새끼의 손길에 익숙해진 자신이 싫어서.

자신은 누군가의 강아지가 아니다.

“자꾸 먹여 주지 마!”

희성이 또 계란죽을 물려 주던 숟가락을 빼앗았다. 갑자기 참을 수 없는 기분에 희성은 의자를 거세게 끌며 뒤로 조금 물러났다. 등 뒤의 꼬리도 잔뜩 경직된 채 털이 송송 서 있었다. 희성은 숟가락을 무기처럼 쥔 채 사납게 말했다.

“그럼 너, 그동안….”

더듬대며 묻는 희성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화가 난 것도 있지만, 그보다도 수치심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강아지가 나인 걸 다 알았으면서, 바, 반려견처럼 키운 거야?”

“내가? 언제?”

윤치영이 말도 안 된다는 듯 순진한 척 눈을 떴다. 다리를 꼬아 앉은 그는 우아하게 눈꼬리를 휘며 웃었다.

“난 항상 애인처럼 키웠는데.”

“미친 새끼야!”

역시 윤치영은 교활한 늑대 새끼였다. 형에게, 박건태 십새끼에게 경고를 들었는데도 왜 잊었는지 모르겠다. 희성은 숟가락을 꽉 움켜쥔 채 죽일 듯이 그를 노려보았다.

그간 강아지인 척한 걸 윤치영은 진작 알고 있었다니. 윤치영이 교활하다 못해 악독하게 느껴졌다. 희성은 죽일 듯이 윤치영을 노려보면서도, 수치심에 귀 끝을 바들바들 떨며 물었다.

“그럼 처음엔 왜 내가 수인인 걸 모른 척했는데?”

“그건….”

물음에 윤치영이 쑥스럽다는 듯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같잖게 입을 쓸던 그는 퍽 부끄럽다는 듯 말했다.

“귀여워서 내 곁에 두고 싶었어….”

“…너, 너….”

희성은 이제 욕도 안 나왔다. 그러자 화가 고였는지 가슴에 싸한 통증이 느껴졌다.

희성은 가슴을 짚은 채 미간을 찌푸렸다. 차라리 윤치영과 말이 안 통하는 강아지일 때가 나았지, 말까지 통하니 속에 천불이 나기 시작했다.

“으으….”

그런데 고통이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이번에 당한 부상 때문에 작은 자극조차도 몸이 견디기 힘들어했다. 희성이 가슴을 짚고 비틀거리자 윤치영이 일어나 품에 지탱해 줬다.

“자기 괜찮아?”

“저리, 저리 가! 너 때문에… 더 아파….”

역시 배를 걷어차인 통증이 남은 듯했다. 희성은 일단 윤치영의 가슴에 기대며 고통에 신음했다. 안 그래도 희성은 몸이 약한 편이라 부상을 당한 채 인간형을 유지하는 건 쉽지 않았다.

“나, 나….”

“의사 부를게. 침대로 가자.”

“됐어. 그냥… 쉬게 두면, 되는데… 너만 닥치면….”

말하며 끙끙 앓던 희성의 몸이 점점 무너졌다. 그 몸을 잡아 주던 윤치영은 다가올 일을 예감한 것처럼 희성을 품에 가볍게 들어 안아 줬다.

그리고 희성이 식은땀을 흘리며 다시 눈 떴을 무렵, 그는 자신의 몸에 일어난 변화를 알았다.

…왕.

또 강아지로 변했다. 강아지는 허무한 얼굴로 윤치영의 손 위에 힘없이 주저앉게 됐다. 어차피 부상 때문에 본체로 돌아가야 할 걸 예감하긴 했지만, 이렇게 속에 열불이 터져서 돌아가게 될 줄은 몰랐다.

‘이게 다 너 때문에…!’

“이제 좀 괜찮아?”

‘괜찮겠냐?’

걱정스러운 물음에도 강아지는 윤치영에게 이를 드러내고 사납게 째려봤다. 그러자 윤치영이 솜털 강아지를 귀여워 죽겠다는 듯 내려다보더니, 갑자기 하얀 머리통을 한 입 베어 먹듯 아프지 않게 깨물었다. 이제 강아지는 그것마저 익숙해져서 머리를 물리고도 체념한 채 앉아 있었다.

윤치영은 자신이 어떤 모습이든 정말 한결같았다. 열받을 정도로.

* * *

결국 강아지는 의사의 진료를 받고 수액을 맞았다. 그렇게 꼬박 이틀을 온실 속 화초처럼 지내니 좀 통증이 가라앉아 살 것 같았다.

한숨 자고 일어난 뒤, 희성은 한결 나아진 몸으로 눈을 떴다.

“깼어?”

노곤하게 눈을 뜬 강아지를 윤치영이 기다렸다는 듯 내려다보았다. 그는 강아지의 접힌 귀를 살살 어루만지며 쑥스럽게 말했다.

“나 선물 준비한 거 있는데.”

‘안 해.’

강아지는 뚱하게 고개를 돌렸다. 어차피 윤치영이 이러다가 해 줄 건 입맞춤 같은 스킨십이었다. 이미 많이 겪어 봐서 희성은 별 기대감이 안 들었다.

그러자 윤치영이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 말했다.

“뽀뽀 아니야.”

‘…아니야?’

“강아지가 진짜 좋아할 거 같은데.”

말하던 윤치영이 갑자기 제 손목시계를 살폈다. 새벽 2시가 넘었다. 하지만 윤치영은 늦은 시간에도 개의치 않고 강아지에게 기대감이 서린 목소리로 물었다.

“같이 보러 갈래?”

‘지금?’

“식기 전에 봐야 해.”

“……?”

강아지가 의아해하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 모습이 귀여운지 윤치영이 슬슬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하필 어둑한 조명 아래에서 그러고 있으니 수상한 일을 저지르고 혼자 즐거워하는 사이코패스 같았다. 다정한 면모만 겪었던 강아지는 이제야 그가 조직 보스라는 걸 떠올렸다.

귀찮았지만, 궁금증이 좀 생겼다. 식기 전에 봐야 한다니. 희성은 그가 자신을 위해 근사한 식사라도 차려 놨나 싶었다.

“가자.”

그렇게 강아지는 노곤한 몸으로 윤치영의 품에 딸려 가게 됐다.

윤치영이 강아지를 데리고 향한 곳은 차로 30여 분 거리였다.

희성은 차에서도 꾸벅꾸벅 졸며 윤치영의 품에 누워 있었다. 아직 갈무리하지 못한 감정들이 많아서일까, 계속 몸에 기운이 없었다. 특히 형에게 배신을 당한 기억이 자꾸 떠올라 무척 마음이 고됐다.

“강아지한테 선물하려고 내가 오랜만에 돈이랑 인맥 좀 썼어.”

‘무슨 선물에 인맥까지….’

그나마 윤치영 덕분에 그런 절망적인 감정이 가셔서 다행이었다. 희성은 대체 이 식인 늑대가 무슨 생각인지, 정말 자신이 좋아서 이러는 건지 의문을 품다가 포기했다. 또라이를 이해할 수는 없는 법이었다.

차는 도시 외곽의 어느 버려진 건물 앞에 섰다. 윤치영이 탄 차를 포함한 세 대의 검은 차에서 늑대 일족 조직원들이 조용히 내렸다.

그들은 모두 정해진 것처럼 버려진 건물에 들어섰다. 희성은 윤치영의 품에 푹 안긴 채였다.

낡은 건물은 안에 들어서도 무척 추웠다. 털갈이를 마쳤음에도 하얀 털옷은 12월의 추위를 막아 주지 못했다. 추위에 떨던 강아지는 윤치영을 난로로 이용하기로 마음먹었다.

‘날 안아.’

강아지는 대충 그의 품을 긁어서 자신을 옷으로 여미라는 뜻을 전했다. 다행히 뜻을 바로 알아들었는지 윤치영이 기다렸다는 듯 강아지를 코트로 꼭 여미며 물었다.

“자기 추워?”

‘또라이.’

희성은 이제 윤치영의 개소리는 익숙하기에 그저 무시했다.

강아지는 윤치영의 가슴에 뒤통수를 기대게 됐다. 키 훤칠한 남자의 코트 한가운데에 강아지의 작은 얼굴이 튀어나왔다. 그 사납게 눈을 빛내는 강아지의 뒤로 늑대 일족의 조직원들이 묵직하게 뒤따랐다.

윤치영은 훤칠한 다리로 폐건물 안쪽으로 걸어갔다. 건물 안에는 공사를 앞뒀는지 여러 자재가 이리저리 늘어져 있었다.

‘이런 곳에 인맥까지 쓴 선물이 있다고?’

어쩐지 수상했다. 희성은 코트에서 삐져나온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상황을 파악해 보려 했지만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윤치영이 선 곳은 어느 철문으로 닫힌 창고 앞이었다.

강아지는 그의 품에서 수상한 철문을 살폈다. 그 위에서 윤치영은 조직원들에게 건물의 조명을 밝히게 했다. 쨍한 형광등이 몇 개 밝혀졌지만, 빛이 미약해서 여전히 건물은 음산하게 느껴졌다.

“여기 앉아서 봐 봐.”

마지막으로 윤치영은 문 앞쪽에 담요를 깔고 그 위에 강아지를 내려 두었다. 그러곤 자신은 키와 비슷한 철문 옆에 밝은 표정으로 섰다.

‘또 무슨 짓을 한 거야.’

유일한 관객인 강아지는 별 반응도 없었다. 그저 추위에 담요를 두른 채 뚱하게 앞을 보고만 있었다. 그 앞에서 윤치영은 수줍어하면서도, 기대감이 서린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강아지를 위해 준비한 선물이야.”

‘보여 주기나 해.’

재촉하듯 강아지가 한 번 짖자, 윤치영이 혼자 카운트까지 하더니 철문을 열었다. 음산한 소리와 함께 철문이 열리자 안에서 아득한 전구의 불빛부터 새어 나왔다.

철문을 완전히 열자 다 무너져 가는 창고가 보였다. 안 쓰는 물건을 처박아 둘 것 같은 낡은 곳이었다. 그 안을 본 희성은 윤치영이 준비한 선물의 정체를 한 번에 알 수 있었다.

‘…미친놈….’

그 안에는 팬티 바람으로 네발로 엎드린 말 수인, 권기혁이 있었다.

강아지의 눈이 놀라 커졌다. 권기혁의 몸에는 멍이 없는 곳이 없었고 깨끗하던 얼굴도 엉망이었다. 거기다 목에는 이상한 줄까지 묶여 있었고, 주변에 핏자국이 드문드문 나 있었다. 그래도 의식은 남아 있는지, 윤치영의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권기혁이 과도하게 몸을 떨었다.

그 옆에 선 윤치영이 쑥스러워하면서도 뿌듯하게 선물을 소개했다.

“자, 선물이야.”

“…….”

“어때? 마음에 들어?”

쏟아지는 물음에도 강아지는 그저 놀라 굳은 얼굴로 창고 안을 노려보고 있었다.

‘…시발.’

일부러 반응을 자제하는 이유는 윤치영 때문이었다. 그는 문 옆에서 어서 반응을 어서 보고 싶다는 듯 강아지를 기대감이 서린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희성은 윤치영이 원하는 반응을 보여 주고 싶지 않았다. 괜히 지는 기분이 들었다.

희성은 일부러 한숨을 내쉬는 척했다. 정상적인 상황은 아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변태 말 수인에게 당한 게 너무 많은 강아지는 까만 눈을 빛내며 생각했다.

‘…마음에 들어….’

생각을 따라 짧고 하얀 꼬리가 먼저 가쁘게 흔들렸다. 그 반응을 본 윤치영이 뿌듯하게 올라간 제 입가를 쓸었다. 선물은 성공적이었다. 윤치영은 역시 강아지의 성향이 자신과 같다고 믿었다.

강아지의 솔직한 반응을 본 윤치영은 내친김에 사용까지 권유했다.

“자, 강아지 마음대로 해도 돼.”

“흐….”

윤치영이 권기혁의 목에 걸려 있던 목줄을 배려 없이 대충 당겼다. 마감이 되지 않은 노끈이라 통증이 있는지 권기혁이 신음했다. 하지만 아무도 권기혁의 고통을 신경 쓰지 않았다. 그간 그가 잔인하게 농락한 수인만 해도 수두룩했다.

강아지의 제 앞에 곱게 놓인 끈을 바라보았다. 희성은 그 끈을 뚱하게 바라보다가, 담요에서 나와 기꺼이 끈을 물었다.

왕!

당한 게 많은 강아지는 사냥감처럼 끈을 문 채 고개를 마구 휘저었다. 권기혁에게 희롱당한 만큼 마음껏 화를 냈다. 고작 끈이 조금 출렁인 정도였지만, 그래도 권기혁이 조막만 한 강아지의 눈치를 보며 덜덜 떠는 모습을 보는 경험만큼은 일품이었다.

그 모습을 귀엽게 보던 윤치영이 기꺼이 물었다.

“이대로 데리고 다닐래? 아니면 잡아먹을까?”

질문에 화를 마음껏 내던 강아지의 입에서 끈이 툭 떨어졌다. 희성은 한 번에 두 가지를 못 하는 편이라 생각할 시간이 따로 필요했다.

‘가지긴 싫은데.’

권기혁은 트럭으로 줘도 관심이 없었다. 희성은 이미 엉망진창이 된 놈을 보는 것만으로도 흡족해졌다.

다만 여기서 끝내기가 아쉽긴 했다. 거기다 윤치영이 인맥까지 써서 데려온 거면 정말 희성 마음대로 해도 될 터였다.

마침 좋은 생각이 났다.

주변을 둘러보던 희성은 늑대 조직원 중 지영배를 찾기 위해 키가 큰 조직원들을 하나하나 둘러봤다.

‘나 통역해 줘.’

지영배를 찾은 희성이 꿍얼거렸다. 사람으로 변해 직접 말해도 되겠지만 옷이 없어서 차선책을 택했다.

“예.”

다행히 통역 성공률이 높아진 지영배가 금방 강아지의 말을 알아들었다.

지영배는 강아지를 윤치영 쪽으로 들고 선 채 통역해 주기 시작했다.

‘저거 더러워서 가지긴 싫어.’

“더럽다고 하십니다.”

‘하….’

강아지는 한숨을 푸 내쉬었다. 통역 실패가 익숙하긴 했지만 윤치영이 상처받은 표정이 되는 건 좀 피곤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끈기 있게 소통을 시도했다.

‘저게! 더러워서. 가지긴 싫어.’

“아. 더러워서 가지기 싫다고 하십니다.”

“아… 그렇긴 하지.”

윤치영이 납득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서운해하던 표정도 한결 풀어졌다. 강아지는 이제 절도 있는 신체 언어까지 곁들여 말했다.

‘그러니. 넘기자.’

“그러니 던지자.”

‘내 일터 쪽에.’

“내 일터에.”

통역은 엉성했지만 어쨌든 윤치영은 이해한 듯했다. 던지자는 말에 창밖으로 건물의 높이를 재 보던 윤치영이 아, 소리를 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강아지가 일하던 도박장 같은 곳에 처넣자고?”

‘맞아!’

두세 번 만에 알아들어 주니 이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강아지는 탁탁 꼬리를 느리게 흔들며 권기혁을 언짢게 바라보았다. 도박장에서 일하는 건 정말 더럽고 힘들었다. 그 때문에 희성은 권기혁이 자신이 겪은 것의 반만큼이라도 당해 보길 바랐다.

윤치영도 괜찮게 느꼈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권기혁의 상태를 살피더니, 혼잣말처럼 읊조렸다.

“그럼 누가 알아보면 곤란하니까… 말도 안 통하는 동남아 쪽 도박장에 넣어 줘야겠다.”

그 말에 권기혁이 과하게 몸을 떨었다. 고개를 들며 주변을 두렵게 둘러보기도 했다. 말도 안 통하는 도박장이라니. 권기혁이 당할 꼴이 뻔했다. 도박장에서 어리숙하고 입을 잘 못 놀리는 직원은 늘 가장 더러운 일을 맡게 됐다. 예를 들어 권기혁 같은 손님이 난리 치고 간 룸을 치우거나, 그가 시키는 대로 옷을 벗는 짓이었다.

“제, 제발. 거기는….”

권기혁의 애원에도 윤치영은 그저 즐겁게 웃으며 강아지와 상의했다.

“한… 3년만?”

나직이 말한 윤치영이 꼬리를 흔들던 강아지를 안으려 다가왔다. 강아지는 기꺼이 윤치영의 품에 넘어가려다가, 마침 떠오른 게 있어서 땅으로 내려 달라고 부탁해 바닥에 섰다.

네발로 엎드린 권기혁에게 다가간 강아지는 그의 손 중 그나마 성한 쪽 손등을 발로 꾹 찍었다.

‘이 손을 내 입에 쑤셔 넣었어. 씨발.’

“…저 손을 강아지에게 박으려 했다고 합니다.”

“아….”

격렬한 웅얼거림을 지영배가 당장 통역해 주었다. 어딘가 엉터리였지만 어쨌든 뜻은 좀 통했다. 하지만 그 약간의 해석 차이가 누군가에겐 몹시도 중요한 문제였던지, 윤치영의 얼굴에 쭉 즐거워하던 미소가 차갑게 굳었다. 그는 다시 권기혁 쪽으로 긴 다리로 저벅저벅 걸어가며 말했다.

“진작 말하지 그랬어.”

“잠, 까, 잠깐만요…. 제가 그런 게 아니라… 아아악!”

정확히 강아지가 발 도장을 찍은 곳에 윤치영의 구둣발이 찍혔다. 다시 두세 번 구둣발이 내리 찍혔다. 손등이 으스러지는 소리가 나며 권기혁의 찢어지는 비명이 울려 퍼졌다.

윤치영은 그제야 굳은 표정을 풀며 강아지를 품에 들어 올렸다.

“가자.”

그 뒤로 행동 빠른 조직원들이 권기혁을 짐짝처럼 들어 옮기고 있었다.

낡은 건물에 계속 권기혁이 절망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희성은 윤치영의 어깨 너머로 그 모습을 봤지만, 불쌍한 마음은 들지 않았다. 어차피 권기혁은 자신이 하던 짓대로 고스란히 돌려받고 올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3년은 짧은 듯했다.

그래도 희성은 마음이 조금이나마 개운해졌다. 제 편을 들어주는 윤치영도, 그의 선물도 사실 마음에 들었다. 강아지는 이번만큼은 먼저 윤치영의 코트 사이에 뺨을 파묻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 * *

개운한 마음으로 차에 올라탄 강아지는 윤치영의 무릎을 차지했다.

‘…설마.’

문득 한 가지 걱정되는 것이 떠올랐다. 직접 대화가 필요한 주제이기도 했다. 강아지는 곧장 윤치영의 손등을 긁어 불렀다.

왕.

“왜?”

‘나 변할 거야.’

강아지는 윤치영에게 신호를 보내고 직접 사람으로 변했다. 상처에서 통증이 느껴졌지만, 그래도 희성은 고통을 익숙하게 넘겼다.

“아무 데서나 이럴래?”

오히려 놀란 건 윤치영이었다. 사람으로 변한 희성이 하얀 알몸으로 무릎에 앉자, 윤치영이 급하게 앞좌석과 이어진 차단막을 쳤다. 희성은 같은 남자끼리 뭐 어떠냐고 무던하게 생각하며 옆 좌석에 있던 윤치영의 코트를 포근하게 입었다.

희성은 코트를 입자마자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너 혹시… 박건태도 건드렸어?”

“걔는 왜?”

윤치영이 미묘하게 미소가 가라앉은 얼굴로 물었다. 희성이 설마 그놈을 걱정하는 건가 싶었다. 걱정할 가치도 없는 놈인데.

그 서늘한 회색 눈을 본 희성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은 채 사납게 말했다.

“넌 절대 건드리지 마. 내가 직접 복수할 거니까.”

“…….”

윤치영은 엄하게 눈을 뜬 희성을 빤히 바라보며, 서서히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그간 강아지와 말이 안 통해서 답답한 적은 없었지만, 진작 사람으로 함께 지낼 걸 싶었다.

강아지가 이렇게 예쁜 말만 하는 줄은 몰랐다.

어찌나 귀여운지 목 뒤까지 짜릿하게 느껴졌다. 윤치영은 희성의 허벅지를 품에 당겨 안으며 그를 깨물고 싶은 감정을 간신히 억눌렀다.

그가 원하는 건 뭐든 들어주고 싶었다. 윤치영은 희성의 어깨에 슬쩍 고개를 기대며 여리게 웃었다.

“나도 박건태 마음에 안 들었는데… 강아지 도와줘도 돼?”

“왜?”

“박건태가 나 좆같이 만든 게 있어서.”

“…뭔데?”

궁금증에 강아지의 귀가 움찔 솟았다. 그것조차 귀여운지 윤치영이 하얀 귀를 아프지 않게 씹었다. 짜증스럽게 접힌 귀를 사수한 희성이 다시 사납게 물었다.

“뭐냐고.”

“있어. 예전에 도박장에서부터 느낀 건데….”

윤치영이 희성의 얼굴 곳곳을 섬세하게 보며 말했다. 희성처럼 증오를 느끼는 표정은 아니었다. 마치 어딘가에 푹 빠진 것처럼 회색 동공이 흐렸고 홀린 듯 반응이 느렸다. 재차 물어도 이유는 말해 주지 않았다. 희성은 그 모습을 수상쩍게 쳐다보다가, 원래 이런 놈이라는 걸 떠올리곤 말을 말았다.

“…나 말릴 생각만 하지 마.”

희성은 딱히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사실 조금 안심도 됐다. 윤치영이 자신의 편을 들어줄 때마다 빚을 지는 기분이 들어서 싫었는데. 뜻이 같으면 자신이야 좋았다.

사실 희성은 윤치영이 눈치를 준 것도 아니지만, 그의 집을 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이제 누구도 의지하거나 믿고 싶지 않았다. 차라리 홀몸으로 세상을 살아가고 싶었다. 그러면 적어도 이번 배신과 같은 일을 다시는 겪지 않을 것이었다.

그런데 복수 동업이라니. 그럴싸했다.

희성이 치열하게 머리를 굴리는 걸 지켜보던 윤치영이 살살 구슬리듯 말했다.

“나도 박건태 싫어하니까, 꼭 복수해 줘.”

“…응.”

“우리 집에서도 계속 같이 살아야 해.”

뭔가 조건 같은 느낌이 들긴 했지만 희성은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하는 짓은 괘씸해도 어쨌든 윤치영은 든든한 아군이었다. 뜻이 같으면 자신이야 좋았다.

그래도 뭔가 윤치영에게 말려든 느낌이 들었지만… 희성은 심각하게 눈을 뜬 채 자신의 무릎 어딘가를 봤다. 윤치영을 어떻게 이용할지 고민 중이었다. 아직 악의적인 일을 주도하기에 자신은 초보이긴 했다.

“아, 이 하룻강아지 정말….”

그 진지한 표정을 본 윤치영이 좋아 미치겠다는 듯 웃으며 희성의 목덜미에 고개를 묻었다. 밤이 되자 어둠 속에서 선명하게 빛나는 회색 눈동자가 유독 섬뜩하게 보였다. 하지만 강아지에게 하는 짓은 평소보다 진득했다. 희성은 이 늑대 자식이 대체 왜 이렇게 좋아하는지 몰라 제 목덜미에 뺨을 비비는 놈을 기괴하게 바라봤다.

희성의 목덜미에 뺨을 기댄 윤치영이 물었다.

“왜 이렇게 못됐어?”

“…왜?”

희성은 괜히 주눅이 들었다. 박건태 새끼한테 혼날 때 느끼던 기분이 들었다. 어떤 일이든 자신이 모두 잘못한 듯한 더럽고 우울한 느낌.

그런데 역시 윤치영은 달랐다.

“너무 섹시해 보여.”

“…….”

희성은 이제 대꾸할 기력도 없었다. 이 자식이 이상한 놈인 건 진작 알아서 그저 다른 곳을 뚱하게 바라봤다.

그래도 네가 참으라는 말은 안 들어서 좋았다.

희성은 윤치영이 제 목덜미에 콧날을 비비는 게 간지러워도 얌전히 있어 주었다.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이제 희성은 더는 참지 않을 생각이었다.

“여기는 이렇게 깨끗하면서….”

그때 윤치영이 혼자 은밀하게 말했다. 생각에 빠져 있던 희성은 그제야 윤치영의 시선을 따라가 봤다.

윤치영의 시선이 닿은 곳은 희성의 배꼽 아래 사타구니였다. 순식간에 희성의 얼굴이 뜨겁게 달아올라 코트를 제대로 여몄다.

기어코 윤치영은 희성에게 주먹으로 어깨를 맞았다. 하지만 별반 아프지도 않아서 간지러운 웃음을 길게 터트렸다.

* * *

집에 돌아왔을 때는 막 해가 떠오르는 이른 아침이었다.

둘은 이왕 밤을 새운 거 아침을 챙겨 먹었다. 희성은 가만히 있으면 자꾸만 우울해져서 일부러 잠자리에 눕지 않고 영화를 봤다.

자꾸만 박건태의 목소리가 머릿속에 스쳤다.

〈나도 미안하다, 희성아…. 그래도 네가 잘했으면 이럴 일 없었어.〉

“…….”

복수할 거라 굳게 다짐하긴 했지만, 배신의 경험은 희성에게 깊은 상처로 남아 버렸다. 가장 힘들었던 성장기에 5년이나 믿고 따랐던 사람이다. 거기다 한평생 서로를 믿기로 한 같은 견인족 무리였다. 희성은 왜 이런 일이 자신에게 또다시 생겼는지 자조적인 생각을 하다가, 이내 그것마저 지쳐 몸을 웅크렸다.

희성은 영화가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모르고 멍하게 화면을 응시했다. 몸에 남은 상처도 그저 망연자실하게만 느껴졌다.

그래도 윤치영이 곁에 있어서 우울감은 오래가지 못했다.

“…자꾸 깨물지 마!”

뚱하게 있던 희성이 버럭 화를 냈다. 곁에서는 윤치영이 희성을 품에 꼭 껴안은 채 목덜미나 어깨, 혹은 손목을 계속 아프지 않게 깨물어 대고 있었다. 머리칼 사이로 검은 늑대 귀와 꼬리까지 튀어나온 채였다.

희성은 그간 강아지로 살며 깨물리는 것에 어느 정도 익숙해졌는데도, 오늘은 윤치영이 더욱 지긋지긋할 정도로 들러붙고 있었다. 눈빛도 취한 것처럼 흐렸는데, 희성은 그저 오늘 유독 심하다 생각하며 평소처럼 성질을 부렸다.

밀어내도 꿈쩍도 안 하고 목덜미에 콧날을 묻던 윤치영이 읊조렸다.

“네 살냄새 진짜 좋은 거 같아….”

“언젠 꼬순내라더니.”

불평에 윤치영이 입꼬리를 매끄럽게 올려 웃었다. 자꾸 희성이 좋다고 온몸으로 안아 주는데, 그 넓은 품이 따듯하긴 했다. 실랑이를 하던 희성은 꾸벅꾸벅 졸음이 밀려와 윤치영을 밀어내기도 포기했다.

결국 졸던 희성은 소파에 쓰러져 잠이 들었다.

그러자 곁에서 윤치영이 자신을 안고 함께 눕는 게 느껴졌다. 강아지일 때부터 한결같던 모습이라, 희성은 별 거부감 없이 잠에 푹 빠져들었다.

하지만 그게 문제였다.

식인 늑대의 품이 익숙해졌다는 것.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점심쯤 잠든 희성은 해가 다 졌을 무렵 다시 깨어났다.

저절로 눈이 떠진 건 아니었고, 목덜미에서 느껴지는 다른 감촉과 낯선 소리 때문이었다.

그르르….

“…….”

희성의 머리 위로 솟은 하얀 강아지 귀가 쫑긋 섰다. 뭔가 이상했다. 평화로운 윤치영의 집에서 들릴 만한 소리가 아니었다.

가까스로 졸린 눈을 뜬 희성의 눈앞에 기묘한 검은 생물체가 보였다. 어둠 속의 새카만 것이 분간이 힘들어 희성은 한참 초점을 잡은 끝에 정체를 알았다.

희성의 몸 위에 거대한 검은 늑대가 네발로 서 있었다.

‘…윤치영?’

희성은 회색 눈동자를 보고 짐승의 정체를 눈치챘다. 그럼에도 공포심을 내려놓을 수가 없었다.

짐승은 그간 늑대 일족의 영토에서 본 일반 늑대들보다도 두 배는 큰 듯했다. 희성의 손가락만 한 송곳니를 가진 그것은 자꾸만 하얀 목덜미의 체향을 맡아 보고 있었다.

자신의 영역에 들어선 것의 정체를 확인하는 행동이었다. 까딱 잘못했다간 언제 물어뜯길지 몰랐다.

두려움에 사후 경직처럼 굳어 있던 희성은 뒤늦게 참았던 숨을 내쉬며 짐승을 밀어냈다.

“저리, 저리 가!”

늑대는 얼마 밀려나지도 않았다. 하지만 희성이 일어나며 담요를 던지고 가서 시야가 잠시 가려졌다. 희성의 등 뒤에서 짐승이 낮게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섬뜩하게 들렸다.

그때 식인 늑대가 덩치답지 않게 날렵하게 희성의 등을 덮쳤다.

“윽…! 올라타지, 마!”

늑대에게 등을 깔린 희성이 애처롭게 몸을 버둥거렸다. 희성도 나름 마른 근육이 꽉 찬 편인데 늑대의 발짓 한 번에 마른 몸이 이리저리 휘둘렸다. 그나마 다행인 건 늑대가 사냥감을 대하듯 목덜미를 물진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희성은 빠른 속도로 강아지로 변했다.

옷더미 안에서 버둥대던 강아지는 옷 안에서 빠져나와 젖 먹던 힘까지 쥐어짜 힘껏 달렸다.

깨갱!

그때 꼬리에 늑대의 송곳니가 스쳤다. 강아지는 비명을 지르며 필사적으로 좁은 침대 아래에 기어들어 갔다. 가장 안쪽까지 들어가 먼지를 뒤집어쓴 강아지는 덜덜 떨며 바깥을 불안하게 살폈다.

‘나, 날 공격하려 했어.’

침대 아래 숨은 강아지의 눈앞에 늑대의 거대한 네 다리가 오갔다. 두툼한 발은 거의 강아지 몸통만 했고, 가끔 식인 늑대가 침대 아래로 이빨과 코를 들이밀었다.

‘개새끼야…!’

두려움에 눈물을 찔끔 흘린 강아지는 괘씸한 늑대의 코를 소심하게 앞발로 퍽 쳤다. 정말 너무 무서웠다. 그간 희성이 도박장에서 본 수많은 짐승들은 별것도 아니라 느껴질 정도였다.

눈앞의 늑대는 우아한 검은 모피를 자랑하면서도, 슬슬 걸어 다니며 자꾸만 거친 숨을 내쉬었다. 마치 사냥감을 잡지 못해 화가 난 것처럼.

부욱!

기어코 늑대가 침대 위의 베개를 문 채 찢어발기기 시작했다.

‘시, 시발….’

강아지는 늑대가 쿠션을 물고 흔들 때마다 흩날리는 하얀 솜이 제 몸 조각처럼 보여 달달 몸을 떨었다.

‘계속 같이 살자며…?’

겁에 질려 눈이 촉촉해진 강아지는 꼬리마저 가랑이 사이에 넣은 채 몸을 조막만 하게 웅크렸다.

희성의 불안이 서린 까만 눈 앞에 윤치영이, 식인 늑대가 굴을 파듯이 카펫을 제 몸체만 한 발로 긁는 것이 보였다.

분명 갯과 동물이 번식을 준비하기 위해 굴을 파는 행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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