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도 눈물도 없는 새끼.
견희성이 처음 윤치영을 봤을 때 들었던 생각이었다.
‘어떻게 자기 아버지가 죽었다는데 저렇게 웃고 다니지?’
견희성은 질린 얼굴로 윤치영을 흘끗 바라봤다.
불과 어젯밤 늑대 일족 수장인 윤치영의 아버지가 죽었다고 들었다. 그런데 윤치영은 멀끔한 양복 차림새로 주변 사람들과 웃으며 해사하게 떠들고 있었다. 그것도 견인족의 도박장에서 말이다.
원래 희성이 일하는 업계에 정 같은 건 없긴 했다. 허구한 날 수인끼리 돈 때문에 물고 뜯으며 범죄까지 불사하는 곳이니까. 하지만 윤치영이 속한 늑대 일족은 일부일처제인 만큼 가족을 중시한다고 들었는데, 지금 윤치영의 모습을 보면 늑대가 아니라 자기 새끼도 물어 죽이는 사자 같았다.
하지만 그런 감상을 겉으로 내비쳐선 안 됐다. 견희성은 사자도 늑대도 아닌 도박장의 작은 개였다.
“안녕하십니까.”
희성은 윤치영이 옆을 지나가자 꾸벅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머리 하나는 더 큰 윤치영은 희성의 인사를 못 들었는지 지인과의 대화에 빠져 있었다.
분명 얼굴은 순혈 늑대답게 잘생겼고 웃을 때면 부드러운 미소가 인상적이었는데, 정작 입으로 지껄이는 말은 정반대였다. 윤치영은 비록 판돈을 잃었어도 징글맞던 소 일족의 귀가 잘리는 걸 봤다며 즐거워하고 있었다.
‘난 저 새끼랑은 절대 얽히지 말아야지.’
견희성은 진저리를 치며 윤치영의 등을 언짢게 바라봤다.
음습한 도박장과 수려한 외모를 자랑하는 윤치영은 미묘하게 어울리지 않았다. 마치 가족의 죽음을 겪고도 웃고 떠드는 행동처럼.
그때 몇 걸음 지나간 윤치영이 나른하게 중얼거렸다.
“어디서 강아지 꼬순내 나지 않아?”
“…….”
반사적으로 희성의 주먹이 꽉 쥐어졌다.
분명 들으라고 한 소리 같았다. 본체가 작은 소형견인 희성은 체구에 콤플렉스가 있었다. 그래서 본체의 향이나 모습을 들키지 않도록 평소 인간화를 철저하게 유지하는 편인데, 이상했다. 후각이 유달리 특출한 게 아닌 이상 꼬순내라는, 자신조차 알 수 없는 향을 맡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재수 없는 늑대 새끼.’
역시 견인족을 비하해서 한 말일 것이다. 윤치영 곁에 선 사내도 뭔 뜬금없는 소리를 하냐며 크게 웃어젖히고 있었다.
희성은 윤치영의 널찍한 등을 죽일 듯이 노려보다가 말았다. 윤치영이 자신을 돌아보며 희미하게 웃는 건 보지 못한 채.
* * *
…희성의 바람과는 달리, 그 이후에도 윤치영과 마주치게 됐다.
두 번째로 윤치영을 본 날은 희성이 형에게 혼나던 때였다.
견인족 조직의 막내인 희성은 쉬는 날도 없이 도박장에서 일해야 했고, 그만큼 사건 사고에도 자주 휘말렸다. 사실 그중 가장 많은 사고는 희성의 지고는 못 사는 성격 때문에 벌어지곤 했다.
“희성아…. 일하려면 성격 좀 죽여야지. 응?”
함께 구석 테이블에 앉은 형, 박건태가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 희성은 기운 없이 고개를 숙인 채였지만, 그래도 반항기를 숨기지 못하고 테이블 어딘가를 노려보고 있었다.
형은 친형은 아니지만, 그 예전 굶어 죽을 뻔한 희성을 거둬 준 사람이었다. 그 때문에 희성은 형을 자신에게 유일하게 남은 가족이라 생각했고, 아무도 들어주지 않던 뒤 사정도 편하게 털어놓았다.
“…그 새끼가 자꾸 포커 치는 동안 빨아 달라잖아.”
“다 네가 예쁘장하니까 분위기 타서 그러는 거잖아. 왜 다짜고짜 칩을 손님 면상에 던져?”
“내 가슴에 꽂아 주길래….”
“어휴…. 그 판에 늑대도 있었는데. 조심 안 할래?”
형이 타이르며 희성에게 술 한 잔을 슬쩍 따라 줬다.
형이 달래 주자 희성은 감정을 드러내는 게 쉬워졌다. 설움에다가 피로까지 쌓여서일까, 어느덧 부드러운 검은 머리칼 위로 반쯤 접힌 하얀 강아지 귀가 드러났다.
술을 반쯤 들이켠 희성은 잔을 탁 내려놓고 반항하듯 말했다.
“형. 나 여기서 일하기 싫어.”
“…….”
형은 씁쓸한 얼굴로 시선을 피했다. 조직에 빚이 있는 형은 도박장에서 쉽게 벗어날 수 없는 처지였다. 그걸 알고 있음에도 희성은 이곳을 도망쳐서라도 떠나고 싶었다. 형만 아니었다면 진작 도망쳤을 것이다.
그때 옆쪽에서 뜬금없는 물음이 들렸다.
“네가 술을 왜 마셔? 자살하게?”
윤치영이었다.
분명 모르는 사이인데, 그는 희성에게 말을 쉽게 걸었다. 지난번에 희성이 도박장 직원으로서 인사를 하긴 했지만, 어쨌든 둘은 초면이었다.
그런데 윤치영은 원형 테이블 옆자리에 자연스럽게 앉아 희성 쪽으로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희성은 떨떠름함과 부담스러움에 몸을 뒤쪽으로 기울인 채 불량한 언사부터 내뱉었다.
“저 아세요?”
“아니, 아직.”
“그럼 신경 끄… 아!”
갑자기 앞쪽에 있던 형이 희성의 발을 밟았다. 그의 얼굴은 식은땀을 뻘뻘 흘릴 정도로 당황에 물들어 있었다.
VIP에게 말조심하라는 거였다.
“겨, 견인족은 술 먹어도 괜찮은데요.”
“억지로 마시는 거야?”
이 새낀 내 말을 듣긴 하는 건가?
“아니요. 그, 마시고 싶어서.”
“아, 마시고 싶어서….”
별거 아닌 말에 윤치영이 웃으며 고개를 기울였다. 그 단순한 행동이 마치 조각처럼 보였다. 분명 흠잡을 곳 없는 뚜렷하고 아름다운 이목구비에다가 보는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부드러운 미소인데, 회색 눈동자가 냉연한 분위기를 풍겨 묘하게 생기가 없어 보였다. 하지만 그 위험한 분위기마저 매력적으로 느껴져 자꾸만 희성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적당히 마셔. 그러다 몸 상해.”
뒤늦게 윤치영이 희성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고 지나갔다. 마치 애인을 걱정하듯 살갑고 다정한 행동이었다.
거기다 그는 희성의 반쯤 접힌 강아지 귀를 한쪽만 까뒤집어 두고 갔다.
‘진짜 미친놈인가?’
희성은 불쾌한 기색을 숨기지 못하고 송곳니를 드러낸 채 하얀 귀를 바르게 접어 뒀다. 욕이라도 대놓고 하고 싶은데, 윤치영은 이미 자신의 조직원들과 사라진 채였다.
“너 윤치영이랑 아는 사이냐…?”
뒤늦게 형이 떨떠름하게 물었다. 희성은 수인 하나 죽일 듯한 얼굴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몰라, 씨발.”
“근데 왜 너한테 아는 척해?”
그건 자신도 알고 싶었다.
희성이 불쾌해하는 기색을 봤는지 형이 신신당부했다.
“너 늑대족 중에서도 윤치영은 특히 조심해라. 동족도 잡아먹는다는 소문 있으니까.”
“…….”
…견희성은 윤치영이 싫었다.
도박장 실장인 형이 아는 정보면 사실일 가능성이 높았다. 가족이 죽어도 피도 눈물도 없는 것처럼 나돌아 다니더니, 동족을 잡아먹는다는 소문까지 돈다. 저런 수려한 낯으로 어떻게 그런 행동을 하고 다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기어코 윤치영과의 세 번째 만남에서 사건이 일어나고야 말았다.
그 개새끼한테―자신도 개라서 개새끼란 욕은 쓰고 싶지 않지만 하필 그 자식도 갯과다―희성은 성희롱을 당했다.
〈야, 인마. 그게 무슨 성희롱이야? 귀엽다고 한 거지.〉
〈내 몸을 지 입에 넣었다고!〉
형마저 그저 웃으며 넘겼지만 희성은 줄기차게 성희롱이라 주장했다.
사건은 이랬다. 전날 밤 희성은 손님이 난리 친 룸을 싹 치우고 소파에서 곤히 잠들었다. 극심한 피로감에 본래의 작은 모습으로 돌아간 채였다.
희성은 본체가 하얀 소형견이라, 대충 정장 재킷 안에서 구겨져 자면 사람들이 빨래 덩어리겠거니 하고 그 존재를 한참 모르곤 했다. 소형견의 유일한 장점이었다.
그런데 윤치영 그 새끼는 달랐다.
대체 언제부터 희성의 곁에 있던 건지 모르겠지만, 눈을 뜨니 잠든 희성의 위에서 시커먼 눈을 뜨고 있었다.
거기다 그 미친 새끼는 희성의 하얀 앞발을 깨물어 대고 있었다!
별거 아닌 거 같지만, 직접 겪어 보면 그 공포를 알 것이다. 수인족은 감정을 제어 못 하면 본모습이 점차 드러난다. 그런데 자고 일어나니 송곳니에 검은 늑대 귀까지 돋아난 뱀파이어 같은 놈이 자신의 앞발을 잘근잘근 씹고 있었다.
깨갱!
희성이 기겁해 몸을 허우적거렸다. 그러자 윤치영이 즐겁게 웃는 소리가 귀청을 찔렀다. 정신없이 소파 위를 달리는 강아지의 몸통을 한 손으로 잡아 솜털 등에 제 입술을 비비기까지 했다.
희성은 꺼지라고 비명을 지르며 제 몸을 잡은 윤치영의 손가락을 힘껏 물어뜯었다. 정말 피가 날 때까지.
하지만 윤치영은 피가 나는 제 손가락은 신경도 쓰지 않은 채, 하얀 덩어리를 발라당 뒤집어 분홍색 배에 입술을 파묻었다.
〈아, 정말 맛있겠다.〉
그딴 개 같은 말까지 하면서.
쪽팔리지만 희성은 끝내 거품을 물고 기절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야생에서도 제 몸의 몇 배나 되는 맹수에게 물리면 기절해 버리듯, 자동 반사적인 현상이었다.
희성은 그날로 윤치영을 향한 증오심을 굳히게 됐다.
사실 동족까지 잡아먹는다는 소문에 겁먹은 것이지만, 인정하고 싶진 않았다. 터프한 자신의 본체가 소형견이라는 사실처럼.
* * *
희성은 악몽을 꿨다.
윤치영에게 강아지로 돌아간 자신이 쫓기는 꿈이었다. 희성은 필사적으로 굴러가듯이 도망쳤지만, 기어코 막다른 길에 몰려 윤치영에게 붙잡혔다.
〈하, 맛있겠다….〉
흙 범벅이 된 강아지를 윤치영은 잘 익은 과일처럼 탐스럽게 바라봤다. 희성은 어떻게든 벗어나기 위해 네 다리를 허우적거렸지만 옴짝달싹할 수조차 없었다.
점점 잘생긴 얼굴이 가까워지며 날카로운 늑대의 송곳니가 보였다.
그리고 윤치영의 오뚝한 코끝이 강아지의 촉촉한 코와 닿은 순간, 희성은 비명과 함께 꿈에서 깨어났다.
‘시… 시발, 개꿈 진짜.’
희성은 강아지 모습으로 발딱 일어났다. 꽤 오래 잤는지 감자만 한 머리의 한쪽만 털이 눌려 있었다. 겨우 정신을 차린 희성은 주변을 살폈다. 아직 한밤중이었다.
거기다 일어난 곳은 도박장 위에 딸린 모텔이었다. 분명 매일 희성의 머리 위에 있던 곳인데 말끔한 주변이 낯설게만 느껴졌다.
희성은 마침 객실에 들어오던 형에게 어이없는 말을 들었다.
“어, 희성이 깼냐? 윤치영이가 미안하다고 너 깽값 대 줬어.”
‘깽값…? 무슨 깽값?’
“자기가 도박장 강아지 잘못 건드린 거 같다고 사과하면서 주던데. 일단 오늘은 푹 쉬어라.”
푹 쉬라니. 갑자기 가지게 된 휴일이었다. 주에 6.5일을 일하던 희성은 막상 휴일이 생기니 뭘 해야 할지 감이 안 잡혔다.
‘다짜고짜 죄 없는 수인 기절시키더니 깽값을 대 주네.’
그래도 귀하디귀한 휴일이었다. 희성은 모처럼 혼자 푹 쉬었다. 이따금 옆방에서 야릇한 신음 소리가 들렸지만 희성은 상관하지 않고 기절하듯 잠만 잤다. 스트레스와 몸에 쌓인 피로는 만 하루를 자고 난 뒤에야 풀렸다.
다시 깨어나니 침대 옆에 음료수와 큼직한 박스가 놓여 있었다.
말랑 고구마 말랭이
박스 위에는 형의 손 글씨로 ‘윤치영이가 사 줬다’라고 쓰여 있었다.
‘그 새낀 누굴 진짜 강아지로 아나?’
윤치영은 간식 센스도 더럽게 없었다. 희성은 제 강아지 몸보다 큰 간식 박스를 내던지려다가, 일단 인간형으로 변해 하나를 까서 먹었다. 달달한 먹거리가 입에 잘 맞긴 했다. 피곤함에 강아지로 되돌아간 희성은 그 자리에서 고구마 말랭이 두 봉지를 더 먹어 치운 뒤, 배가 빵빵해진 채 침대에서 팔짝 뛰어내렸다.
슬슬 생계를 책임지러 나갈 시간이었다.
* * *
희성은 저녁 무렵 도박장으로 내려갔다.
“희성이 왔냐?”
“응.”
사무실로 가니 형이 희성을 반겨 줬다.
실장 박건태
책상 위 검은 명패에 새겨진 직함이 낯설게만 느껴졌다.
형이 도박장 실장이 된 지는 반년이 다 돼 가지만, 희성은 여전히 형이 실장이 된 게 달갑지 않았다. 형과 함께 이 일에서 벗어날 길이 점점 멀어지는 것만 같아서 싫었다.
하지만 불만을 말해도 변하는 건 없을 것이었다. 언짢음에 희성은 소파에 앉아 챙겨 온 고구마 말랭이를 씹었다. 그래도 하루 푹 쉬어서일까, 머리가 좀 돌아가는 것 같았다.
그 와중에 계속 마음에 떠오르는 의문이 있었다.
‘윤치영은 왜 나한테 아는 척하는 거지?’
따로 마주친 적이 있었나, 희성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딱히 떠오르는 기억이 없었다. 그간 희성은 말 그대로 개처럼 일하느라 수많은 손님을 상대했기 때문이었다.
아, 윤치영이 낀 도박판을 담당했던 적이 있긴 했다.
〈어휴… 그 판에 늑대도 있었는데. 조심 안 할래?〉
형의 말대로, 희성이 칩을 말 수인 손님에게 던졌을 때 그곳에 윤치영이 있었다. 특유의 한결같은 웃음을 머금고, 시선만큼은… 자신에게 고정한 채였다.
그 사실을 떠올리자 희성은 등 뒤로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설마 식인 소문대로 윤치영은 자신을 잡아먹고 싶어 하는 걸까? 딱히 배경도 없는 견인족에 본체도 소형견이라 만만해서? 갑자기 윤치영이 자신에게 맛있다고 한 것도, 곁을 지나가며 강아지 꼬순내라는 이상한 표현을 한 것도 수상쩍게 느껴졌다.
희성은 한결 심각해진 얼굴로 입을 뗐다.
“…형.”
“엉?”
“윤치영은 내가… 소, 소형견이라는 걸 알고 괴롭힌 건가?”
“에이, 그놈이 어떻게 알아? 네가 그렇게 숨기는데.”
형이 말이 되냐는 듯 헛웃음을 치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희성은 제 본체를 보이길 꺼리는 편이라 변하는 모습을 본 사람이 손꼽혔다. 그나마 룸에서 본체로 잠든 것도 예약 없이는 아무도 오지 않는 곳이라 변한 것이었다.
하지만 뭔가 미심쩍었다.
“술 마실 때 윤치영이 내 하얀 귀도 뒤집고 갔잖아. 내가 그 소형견인 줄 아는 건, 아니겠지?”
“별걱정을 다 한다. 여기서 일하는 하얀 개가 몇 마리인데 인마.”
하긴. 알아볼 리가 없었다. 한국에 있는 견인족 절반은 귀가 하얀색이었다. 그리고 고작 귀만 보고 본체를 알아보는 건 거의 불가능했다. 인간형일 때 귀만 보고 누구인지 못 알아보는 것과 같았다.
역시 윤치영은 누구 괴롭히는 게 취향인 흔한 도박장 손님일 거였다. 희성이 안심하는 사이 형이 눈치를 보며 한마디 툭 내뱉었다.
“희성아, 너 오늘 물건 운반 하나만 하고 와라.”
“갑자기?”
희성은 의아해하며 고개를 들었다. 그래도 별 거부감은 없었다. 도박장 손님 응대보단 물건 운반이 훨씬 나았다.
“여기서 물건 하나만 받아 오면 돼. 자.”
형이 쪽지 하나를 줬다. 희성은 고구마 말랭이를 우물거리며 쪽지를 확인했다.
목적지는 늑대족의 본거지인 건설사 빌딩이었다.
“…여기 윤치영이 일하는 곳 아니야?”
“흠. 그렇지….”
형이 희성의 반응을 살피더니 조심스레 곁에 다가왔다. 듬직한 체구와 야비한 인상 때문에, 새하얀 희성의 앞에 불량한 깡패가 돈이라도 뜯으러 오는 것 같았다. 그런데 정작 형이 희성의 눈치를 살살 보고 있었다.
“윤치영이가 너한테 관심이 좀 있잖냐. 그래서 네가 가면 좀….”
“지금 그 식인 늑대 새끼한테 날 보내겠다는 거야?”
희성이 으르렁거리듯 이를 악물고 중얼거렸다. 새카만 눈동자도 맹수처럼 날카롭게 섰다. 그러자 키가 반 뼘은 큰 형이 희성의 등을 두드리며 조심조심 달래 주었다.
“에이, 진정하고… 늑대들이 매번 물건 똑바로 안 주고 애들 괴롭히는 거 알잖냐.”
“형은 그걸 알면서도 날 보내?”
“너니까 믿고 보내는 거지! 인마, 형 서운하게.”
“…….”
희성은 형을 미워하고 싶었다. 하지만 자신에게 유일하게 남은 가족 같은 존재를 미워할 수는 없었다. 한 번 가족에게 버려져 봤던 희성은 다시는 무리에서 떨어지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일이 내키지 않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희성은 도박장에서 일하며 주워듣는 소문이 많았다. 최근 늑대 일족과 거래가 늘어났다는 건 도박장에서 불법적인 물건을 받고 있다는 뜻이었다.
예를 들어, 밀수한 물건이나 마약 같은.
그래서 운반책은 위험한 일에 휘말려 실종되거나 혹은 값비싼 물건을 들고 도망가는 경우가 있었다. 그 때문에 운반책은 믿을 만한 조직원에게 맡기곤 했다.
“…형. 이 거래 꼭 가야 해?”
희성이 바닥 어딘가를 노려보며 물었다. 늘 형에게 말한 거지만, 희성은 더는 이런 일을 하기 싫었다. 희성은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아 보고 싶었다.
그때 형이 희성의 어깨에 문신이 새겨진 팔을 꽉 둘렀다. 그는 희성을 품으로 당기며 등을 세게 두드려 줬다.
“그럼 이번만 다녀오자. 됐지?”
“…….”
“형이 그동안 너한테 해 준 게 얼만데, 한 번만 다녀와 줘라, 좀.”
희성은 한동안 말없이 바닥을 바라봤다. 도박장 일만 안 하면 좋을 줄 알았는데. 운반이 더 위험하고 더러운 일이라는 걸 알아 버렸다.
그래도 버려진 자신을 거둬 준 형에게 투정 부릴 수는 없었다.
“놔… 다녀올게.”
이제 체념은 쉬웠다. 희성은 애써 의연하게 검은 헬멧을 챙기고 겉옷을 껴입었다.
그동안 사무실에는 묵묵한 침묵이 감돌았다. 희성은 말없이 나갈 채비를 마치고 문으로 향했다.
그때 뒤쪽에서 나직한 부름이 들렸다.
“희성아.”
“…….”
“우리 이번 일만 하고, 같이 손 털자.”
그 말에 희성이 까만 두 눈에 생기를 머금은 채 형을 돌아봤다. 습관처럼 조이고 있던 인상을 풀자 동그란 눈매가 두드러지며 소년다운 인상이 두드러졌다.
“정말이지?”
형은 잠시 대답이 없었다. 대신 그는 뒤늦게 웃으며 허심탄회하게 말했다.
“그래. 이제 형 빚도 다 갚아 간다. 이게 마지막.”
희성은 형에게 희게 웃어 보였다. 이곳에서 일하게 된 뒤로 모처럼 짓는 진짜 웃음이었다.
“다녀올게.”
희성은 한결 밝아진 얼굴로 쥐 소굴 같은 도박장을 빠져나갔다. 어둑한 지하를 나오자 해가 뉘엿뉘엿 지는 번화가의 풍경이 보였다. 희성은 제 또래의 대학생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검은 헬멧을 푹 눌러쓰고 바이크에 올라탔다.
윤치영, 식인 늑대를 대면하러 갈 시간이었다.
* * *
바이크에서 내린 희성은 도심 한가운데 위치한 빌딩으로 들어섰다. 늑대족의 본거지였다.
순혈을 중시하는 늑대들은 뛰어난 신체 능력과 결속력으로 연예계와 스포츠계, 뒷세계에서 권력을 쥐고 있었고 그만큼 소유한 건물도 높이 솟아 있었다. 개미처럼 지하에 도박장을 이리저리 파 둔 견인족과는 결이 달랐다.
희성은 안내를 받아 건물 위층으로 향했다. 번듯하고 말끔한 건물이 낯설었다. 그곳을 편한 차림으로 걷자 복도에서 희성을 본 누군가가 교만하게 지껄였다.
“아, 개 냄새.”
“지 냄새겠지.”
희성은 이를 드러낸 채 받아쳤다. 뒤쪽에서 상대의 헛웃음과 욕설이 들렸지만 대놓고 시비를 걸진 않았다. 어쨌든 희성은 거래를 위해 온 손님이었다.
그래도 벌써 이곳이 거북하게 느껴졌다. 조직의 막내인 희성은 가끔 자잘한 물건을 운반하러 다니긴 했다. 하지만 이렇게 큰 조직에 운반책으로 온 건 처음이었다.
그만큼 윤치영이 자신에게 가진 호감을 이용하라는 뜻일 텐데, 희성은 도저히 그럴 자신이 없었다. 이미 다혈질인 성격 때문에 도박장에서 사고를 계속 쳐 왔다. 거기다 희성은 애교나 아첨 같은 속에 없는 말은 절대 못 했다.
“하….”
문 앞에 선 희성은 막연한 한숨을 내쉬었다. 검은 오토바이 헬멧을 써서 긴장한 모습이 티 나진 않았지만, 소리가 들렸는지 문 옆에 서 있던 덩치가 산만 한 조직원이 희성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시선에 희성은 시비조로 말했다.
“뭘 봐? 문 열어.”
“…….”
희성은 상대의 덩치가 자신보다 크고 두툼한 건 상관 안 했다. 본체 모습이 작은 소형견이라 그럴까, 희성은 평범한 사람 모습일 때면 자꾸만 자신을 과시하게 됐다.
그런데, 무표정하던 상대는 희성을 응시하더니 희미한 비웃음을 머금었다.
똑똑.
희성이 불쾌해하는 사이 문지기가 문을 두드려 버렸다. 미처 준비할 새도 없었다. 희성은 머리에 쓴 헬멧을 벗어야 할지 고민했지만, 긴장하면 하얀 귀와 꼬리가 튀어나오는 버릇이 있어서 고집스레 쓰고 있기로 했다.
달칵.
문이 열리며 조직원이 여럿 서 있는 말끔한 사무실이 보였다. 그냥 보면 번듯한 회사의 임원실 같았지만 늑대 일족의 영역임을 생각하면 결코 쉽게 들어설 수 없었다.
안은 한낮인데도 블라인드를 쳐서 어둑했다. 장정이 예닐곱 정도 기립해 있었고 그 가운데 하얀 셔츠를 입은 훤칠한 남자가 테이블에 기대앉아 있었다. 그는 노골적으로 희성을 바라보며 즐겁다는 듯 눈을 휘어 웃었다.
난 진짜 개 팔자구나.
희성을 맞이한 건 윤치영이었다.
게다가 안에는 끔찍한 침묵이 감돌았고 오늘 윤치영은 기분이 몹시 안 좋아 보였다. 입만 웃고 있을 뿐 회색 눈동자는 서늘했다. 무언가 격한 일이라도 했는지 셔츠 소매를 걷어붙인 채였고 이마 위로 반쯤 넘긴 새카만 머리칼은 자연스럽게 흐트러져 있었다. 위험한 분위기에 희성은 온몸이 굳는 기분이었다.
희성은 애써 의연하게 말했다.
“물건 가지러…….”
말하던 희성이 숨을 삼켰다. 다시 보니 윤치영의 발치에 무언가 있었다.
검은 대리석 바닥과 비슷한 시커먼 것이라 구분 못 했는데, 그것은 분명 수인이었다. 피떡이 된 수인은 미동도 없었다. 희성은 수인과 윤치영의 붉게 물든 하얀 셔츠를 번갈아 봤다.
“우리 또 만났네.”
윤치영이 반갑다는 듯 태연하게 말을 걸었다.
“나 안 반가워?”
“…….”
그가 보란 듯이 빙긋 웃었다. 분명 헬멧을 썼는데 용케 희성을 알아봤다. 저번에는 강아지 몸을 잘근잘근 씹고, 이젠 수인 하나 다 죽인 걸 보여 줬으면서 아무렇지 않게 굴고 있었다. 희성은 그 화려한 미소를 보고도 아무런 대꾸도 못 했다.
윤치영이 짐짓 서운하다는 듯 물었다.
“헬멧은?”
얼굴 좀 보여 달라는 뜻이었다. 희성은 망설이다 헬멧을 벗었다. 땀에 앞 머리칼이 살짝 젖은 말간 얼굴이 드러났다. 까만 눈동자는 긴장을 머금고 있었고 그 위의 미간도 심각하게 굳어 있었다.
그 얼굴을 본 윤치영은 처음으로 진짜 웃음을 지었다. 위험한 도박장 일을 하기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순한 인상을 볼 때면 웃음이 나왔다. 차라리 아이돌이 어울릴 법한 미형의 말간 얼굴인데, 늘 혼자 세상을 위협하듯 인상을 꽉 쓰고 다녀서 아쉬울 따름이었다. 항상 사납게 굴지만, 사실 겁을 잔뜩 먹은 소동물 같아 안쓰럽기도 했다.
그때까지도 희성은 말없이 굳어 있었다. 윤치영은 퍽 서운하다는 듯 한숨과 함께 말했다.
“우리 구면인데 얼굴도 안 보여 주고, 내 말도 씹고.”
그가 걸터앉은 테이블에 둔 술잔을 들어 마셨다. 팔을 움직일 때마다 그가 입은 하얀 셔츠 너머로 단련된 근육이 은근히 비쳤다.
잔을 마신 윤치영이 이어 말했다.
“서운하네….”
“그게….”
분명 그는 웃으며 말하는데 희성은 살벌함을 느꼈다.
하지만 희성은 받을 물건이 있는 입장이었다. 거기다 형이 호감을 이용해 물건을 잘 받아 오라고 했다. 희성은 애써 없는 말주변을 부려 봤다.
“저, 저도 반가운데요.”
“반가워?”
윤치영이 희성의 굳은 표정을 보고 말도 안 된다는 듯 웃었다. 표정에 거짓말이라는 티가 다 났다. 그는 이마로 흘러내린 검은 머리칼을 쓸어 올리며 즐겁게 웃음을 터트렸다. 잘생긴 얼굴에 걸린 달콤한 웃음만 보면 수인 하나를 초주검으로 만든 것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그가 기분 좋게 말했다.
“물건 가지러 왔지? 줄게.”
“아, 네.”
윤치영이 조직원에게 무언가를 건네받았다. 물건은 수상한 가루가 든 봉투였다. 윤치영의 큼직한 손에 꽉 차는 정도였는데, 희성이 예상하기로 저만한 분량도 몇천만 원이 훌쩍 넘을 터였다.
물건을 쥔 윤치영이 손을 까딱였다. 희성은 굳은 몸으로도 애써 성큼성큼 그에게 다가갔다.
‘한 번만 윤치영한테 맞춰 주고, 물건 받아 가자.’
희성은 자신의 역할을 되새겼다. 형이 분명 이번 일을 끝으로 손을 털자고 했다. 한 번뿐이니까 쉽게 마무리하고 넘기고 싶었다.
가까이 다가가자 예민한 수인의 후각에 여러 향이 스쳤다. 윤치영에게서 나는 청량한 비누 향과 희미한 마약 냄새, 그리고 진득한 피 냄새가 진하게 풍겼다.
“자, 가져가.”
윤치영이 마약을 미끼처럼 내밀었다.
희성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윤치영과 마약을 번갈아 보았다. 어쩐지 물건을 쉽게 내주는 늑대가 수상했다. 눈치를 살피며 망설이던 희성은 머뭇머뭇 손을 뻗어 물건을 쥐려 했다.
하지만 역시나. 윤치영은 물건을 쉽게 넘겨주지 않았다.
윤치영이 희성의 손을 당겨 송곳니로 꽉 깨물었다. 그 한입에 잡아먹힐 뻔한 기억이 있는 희성은 자지러지게 놀라 욕지거리를 내뱉고 말았다.
“이 미친…!”
거기까지만 했으면 그나마 괜찮았을 텐데.
뻑!
억센 주먹질에 윤치영의 고개가 거세게 옆으로 돌아갔다. 검은 머리칼이 그의 반듯한 얼굴에 가늘게 흐트러지며 위태로운 분위기로 변모해 버렸다.
그 순간, 방 안의 시간이 멈춘 것처럼 모두가 굳었다. 동시에 기묘한 침묵이 감돌았다. 희성이 끔찍하게 여긴 살벌한 분위기와 함께.
희성은 저가 때리고도 놀라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
윤치영의 잇자국이 남은 손을 내려다보고, 다시 윤치영의 얼굴을 보고. 그다음에는 제 다리에 채인 피떡을 내려다보았다. 좆 됐다. 생각과 함께 소름이 전신을 타고 올랐다.
“아윽…!”
행동은 조직원들이 먼저였다. 장정 셋이 희성의 뒷머리를 잡아당긴 채 바닥에 무릎을 꿇게 했다.
머리채가 잡힌 희성은 긴장으로 숨을 크게 들이쉬며 윤치영을 올려다보게 됐다. 아래에서 보니 윤치영이 훨씬 훤칠하고 커 보였다. 갑자기 자신이 늑대 일족의 실세이자 도박장 VIP를 때렸다는 현실감이 소름과 함께 느껴졌다.
그는 자신이 얻어맞은 뺨에 손을 대 보고 있었다. 맞은 자리를 기묘해하듯 천천히 쓸던 그는 대리석 바닥에 침을 뱉었다. 침에 붉은 피가 한가득 고여 있었다. 입 안이 찢어진 게 분명했다.
“…생각보다 손이 맵네.”
그런데, 윤치영은 희성이 저를 후려친 걸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뒤늦게 즐겁다는 듯 키득거렸다. 하지만 방 안의 누구도 따라 웃지 않아 기묘하게만 보였다.
‘미, 미친 새끼.’
희성은 그를 두렵게 올려다보며 이를 꽉 악물었다. 조금 전 사고를 쳤는데도, 지금 윤치영이 웃을 때마다 보이는 송곳니가 끔찍하게 싫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긴 웃음 끝에, 그가 진득한 한숨과 함께 말했다.
“놔줘.”
윤치영은 처음으로 웃음기 하나 없는 낯으로 희성을 내려다봤다. 그 특유의 회색 눈동자가 서늘해 보였다. 희성은 늘 부드럽게 웃던 그의 무표정이 이렇게 차갑게 느껴질 줄은 몰랐다.
“손님으로 왔는데. 다친 곳 없이 보내 줘야지.”
윤치영의 말에 조직원들이 희성을 바닥에 내치듯이 놔줬다. 바닥을 짚은 희성의 손에 피가 한가득 묻었다. 코를 찌르는 피 냄새에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어디선가 살이 탄 내도 났다.
희성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잔인한 광경은 도박장에서 많이 봐서 익숙했지만, 지금 희성은 무리에서 떨어진 혼자였다. 두려움이 평소의 몇 배로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잘 가. …또 보자.”
윤치영이 웃음기 하나 없이 말했다. 희성은 또 보자는 단순한 인사가 처음으로 두렵게 들렸다.
훔치듯 물건을 챙긴 희성은 정신없이 빌딩을 도망쳐 나왔다. 윤치영이 자신을 쫓아올 리도 없는데, 꿈에서처럼 쫓기듯 달려 나갔다. 한시도 더는 이곳에 있고 싶지 않았다.
건물을 나온 희성은 골목에 세워 둔 바이크로 다가갔다.
“하아, 하….”
그나마 건물을 나와 바깥 공기를 마시니 살 것 같았다. 그제야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자각이 됐다.
대형 사고 쳤다. 이번엔 늑대 일족의 보스인 윤치영을 후려쳐 버렸다.
형이 호감을 이용해서 물건을 얻어 오라 했는데. 오히려 주먹이나 쓰고 왔다. 희성은 늑대 일족이 지은 높은 콘크리트 빌딩을 올려다보고, 형을 떠올리며 안절부절못한 채 입술을 짓씹었다. 이 사실을 알면 가장 고생할 게 형이었다.
‘형한테는 어떻게 말하지?’
희성은 손끝을 떨면서도 숨을 고르며 물건을 바이크에 싣고, 헬멧을 쓰려 했다. 일단 물건을 받았으니 자신의 무리로 안전하게 돌아가야만 했다.
하지만 고민은 오래가지 못했다.
퍽!
머리 뒤가 찡한 느낌과 함께 희성의 몸이 힘없이 무너졌다.
* * *
…머리를 얻어맞은 뒤의 기억은 드문드문 이어졌다.
습격을 당한 희성은 격렬하게 몸부림쳤다. 형과 이번 달까지 일하기로 약속했는데, 이제 와서 일을 망칠 수는 없었다.
머리를 얻어맞아 눈앞이 새하얀데도 희성은 손에 쥔 헬멧을 닥치는 대로 휘둘렀다. 자신에게 달려든 놈은 네다섯쯤이었다. 분명 마약을 빼앗아 가려는 무리일 것이었다. 희성은 그들을 어떻게든 헬멧으로 내리찍고 틈을 타 도망치려 했다.
“아아악!”
하지만 다리에서 살이 찢기는 고통이 느껴짐과 동시에 몸이 무너졌다. 희성의 허벅다리에 칼이 꽂혔다. 살이 꿰뚫리는 고통에 희성은 제대로 서지도 못하고 웅크리듯 쓰러졌다.
“좆만 한 개새끼가. 성격은 더러워 가지고.”
누군가 지껄이며 희성의 배를 힘껏 걷어찼다. 희성은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꺽꺽대며 바닥을 기었다. 그러자 희성을 친 놈들이 바이크와 몸을 뒤져 늑대들에게서 받은 마약을 빼앗았다.
‘안 돼, 형이 받아 오라고 한 물건인데….’
희성은 이를 악문 채 허벅지에 꽂힌 칼부터 빼냈다. 마지막으로 필사적으로 기어서 그들을 따라가려 했지만, 자신을 비웃는 소리는 멀어져만 갔다.
골목에 버려진 희성은 본능적으로 자신이 이대로 쓰러지면 죽을 걸 예감했다.
‘지금, 본체로 돌아가면 안 되는데….’
너무 작아서 형이 자신을 찾기 힘들 텐데. 그렇게 생각했지만 이미 희성은 작은 강아지로 돌아가고 있었다. 부상을 당한 수인이 회복을 위해 겪는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구석으로 기어간 강아지는 이미 작아진 몸을 필사적으로 움직이려 버둥거렸다.
‘형이… 마지막이랬는데….’
얻어맞은 몸이 너무 아프고 억울해 서러웠다. 울고 싶은데 고통 때문에 그것마저 할 수 없었다.
강아지는 콘크리트 벽에 반쯤 몸을 기댄 채 가까스로 빌딩을 반 바퀴 돌아갔다. 최대한 사람이 많은 곳에서 쓰러져야 그나마 형에게 돌아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더럽게 큰 빌딩은 아무리 걸어도 끝이 보이지 않았다. 피 길을 뚝뚝 이어 오던 희성은 그 끝에 힘없이 쓰러지고 말았다.
그렇게 정신이 희미해질 무렵, 담배 향기와 함께 머리 위에서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이 꼬질꼬질한 강아지는 뭐야?”
‘놔… 십새끼야!’
희성은 속으로 격렬하게 쏘아붙였다. 자신을 기습한 놈들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겉으로 흘러나온 소리는 낑낑거리는 미약한 울음뿐이었다. 다시 도망치려 했지만, 하얀 네 다리는 꼬물거리기만 할 뿐 도저히 힘이 들어가질 않았다.
“아….”
나직한 탄식 끝에, 누군가 조심스럽게 자신을 품에 안아 드는 게 느껴졌다.
“나도 예뻐서 안 건드린 건데.”
이어지는 말은 제대로 듣지 못했다. 다만 희성은 언뜻 윤치영의 목소리가 가까이서 들리는 것 같아 두려움을 느꼈다.
하지만 따듯한 온기에 힘이 풀린 희성은 본능처럼 그의 품에 숨듯이 파고든 채 기절했다.
* * *
희성은 몇 번 희미하게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잠깐 정신을 차리자마자 맡은 건 희미한 약품 냄새와 소독제 향이었다.
‘안 돼….’
병원이라 생각한 희성은 어떻게든 깨어나려 했다. 하지만 도저히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고 낑낑거리는 소리만이 겨우 흘러나왔다.
‘동물 병원 비싼데….’
수인은 보험 적용이 안 될 때가 많아서 동물 병원이든 수인 병원이든 병원비가 비쌌다. 희성은 돈이 없었다. 운반하던 물건도 빼앗겼는데, 형에게 병원비를 대 달라 하기도 미안했다.
속으로 끙끙 앓던 희성은 희미하게 눈을 떴다. 그러자 의외의 광경이 보였다.
‘여긴 대체 어디지…?’
예상했던 병원의 풍경이 아니었다. 희성은 자신의 방만 한 커다란 침대에 누워 있었다. 이불도 까맣고 주변의 세련된 모던 인테리어도 전부 블랙 톤이었다. 그중에 하얀 건 오직 강아지인 자신뿐이었다.
그리고, 희미한 시야에 누군가가 보였다. 하얀 의사 가운을 입은 말라빠진 수인과 침대에 걸터앉은 훤칠한 남자였다. 그중 하얀 가운을 입은 수인은 마약 중독자처럼 안색이 초췌해서 정말 의사가 맞는 건지 수상했다.
“왜 깼어, 더 자.”
역시 자신은 개 팔자였다.
힘겹게 옆을 보자 윤치영이 연인을 달래듯 달콤하게 말했다. 희성은 돌았냐고 욕부터 하고 싶었지만 강아지로 돌아간지라 쌀알만 한 송곳니를 살짝 드러낸 게 전부였다.
의사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안 그래도 워낙 환자분의 크기가 작아서 수술 위험이 컸는데, 다행히 장기에는 손상이 없어서 회복이 빠를 것 같습니다.”
말하며 의사가 희성의 허벅다리 부근을 짚는 게 느껴졌다. 칼침을 맞은 곳이었다. 아픔에 희성은 몸을 동그랗게 웅크리며 잘게 떨었다. 상처에 닿은 손을 내팽개치고 싶었지만 몸에 약 기운이 돌아서 작은 움직임조차 힘겨웠다.
“그리고 이번에도 환자분… 강아지에게서 페로몬이 거의 감지가 안 돼서 수인인지 정확한 판별이 힘듭니다.”
윤치영은 별 상관없다는 듯 강아지만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희성은 처음 듣는 말이었다. 그간 돈 때문에 병원을 멀리하고 살아서 자신에게서 페로몬이 거의 감지 안 된다는 것도 몰랐다.
‘내가 왜 페로몬이 없어?’
수인은 일반 동물보다 몇백 배는 강한 페로몬을 냈다. 그 때문에 페로몬 수치 측정으로 수인과 일반 동물을 판별해 내곤 했다. 다만 희성은 페로몬이 적어 수인임을 들키지 않은 게 다행인지 불행인지 알 수가 없었다.
‘지금은 다행인 건가….’
어쨌든 지금은 윤치영이 자신이 견희성인 줄 모르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면, 내가….’
조막만 한 머리를 굴리던 희성은 점점 몸에 힘이 빠졌다. 윤치영이 강아지의 목을 살살 쓰다듬어 주고 있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쓰다듬는 손놀림이 정말 환상적이었다.
결국 긴장이 풀린 희성은 또다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 * *
이른 새벽, 희성은 강아지 모습으로 깨어났다.
수인은 심각한 부상을 당하면 본체의 모습으로 돌아가는지라 당연한 일이었다. 아마 상처가 깊어 며칠은 본체를 유지해야 할 듯싶었다.
‘이 자식은 왜 나랑 같이 자는 거야?’
희성은 잠든 윤치영을 째려보다가 제 뒷다리를 살폈다. 딱딱한 붕대가 감겨 있었고 앞발에는 카테터를 맞은 흔적이 남아 있었다. 어릴 적 병원을 몇 번 다녀 봐서 알 수 있었다.
윤치영이 다친 자신을 주워 치료해 줬나 보다. 희성은 의외라 생각하면서도 주변을 경계심 어린 눈으로 둘러보았다. 어쨌든 자신은 지금 늑대 소굴에 들어와 있는 상황이었다.
어둑한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강아지는 뒷다리를 절룩대며 움직였다. 침대 끄트머리에 윤치영의 스마트폰이 있었다.
겨우 앞까지 걸어간 희성은 스마트폰 홈 화면을 앞발로 눌렀다. 그러자 바다를 배경으로 한 윤치영의 멋들어진 셀카와 함께―자기애가 존나게 강한 듯했다―날짜가 나타났다.
11월 3일 수요일
‘내가 3일이나 잠들었어?’
분명 윤치영에게 물건을 가지러 갔을 때가 10월 마지막 날이었다. 희성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형이 걱정할 텐데. 시간이 이렇게 지났을 줄은 몰랐다.
운반하던 마약도 누군가에게 털렸는데 자신도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다.
아마 견인족 도박장의 조직원들은 막내가 몇천만 원어치 마약을 들고 혼자 튀었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형만큼은 분명 자신을 믿고 기다려 줄 터였다.
‘형에게 연락이라도 해야 해.’
희성은 똑똑하게 우선순위를 정했다. 역시 형에게 연락해 상황을 알리고 한시라도 빨리 돌아가야 했다.
결심한 강아지는 제 몸의 반만 한 스마트폰을 쓰기 위해 열심히 앞발을 놀렸다. 다행히 잠금이 걸려 있지는 않았지만, 젤리 앞발로 스마트폰을 조작하기는 거의 불가능했다. 꼭 발가락으로 스마트폰을 다루는 기분이었다.
이것저것 잘못 누르던 희성은 갤러리의 ‘털북숭이 친구들’에 자신의 잠든 사진이 한가득 있는 걸 보곤 씩씩대며 스마트폰을 침대 아래로 내던져 버렸다. 허무한 첫 새벽이었다.
그렇게 다음 날, 근사하게 단련된 몸으로 일어난 윤치영이 강아지의 분홍 배에 코를 박으며 이상한 말을 읊조렸다.
“역시 얘랑 자는 건 괜찮네….”
‘무슨 미친 소리야?’
희성은 인상을 한껏 찌푸린 채 윤치영을 노려봤다. 윤치영은 아침이라 그런지 평소보다 더 느슨해 보였다. 강아지는 그의 부스스한 매력이 돋보이는 잘생긴 얼굴에 아침 인사를 해 주었다.
에취!
강력한 재채기 한 방에 늑대 일족의 보스가 허무하게 나가떨어졌다. 침대에 푹 쓰러진 윤치영은 어이없어하는 웃음을 길게 터트렸다. 그 앞에서 강아지가 의기양양하게 혀로 코를 쓸며 그를 노려봤다.
일단 희성은 깨어난 첫날부터 긴장을 풀지 않았다. 우선 더럽게 넓은 집의 동선부터 파악한 희성은 탈출을 꿈꿨다.
하지만 윤치영 미친놈은 자신의 사무실까지 희성을 데려갔다.
또다시 늑대족의 본거지에 가게 된 희성은 이번엔 윤치영의 무릎 위를 차지하게 됐다. 몹시 불편한 상대인지라 강아지는 어정쩡한 자세에 불쾌한 얼굴로 윤치영의 다리 위에 앉아 있었다.
그래도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이사님. 도박장에서 견희성이를 찾는 연락이 왔습니다.”
‘나를?’
희성이 고개를 반짝 들었다. 자세히 들으려 몸도 일으켰다. 강아지는 윤치영의 한쪽 허벅지에 스핑크스처럼 앉은 자세가 됐다.
‘형이 나를 찾고 있는 거야.’
반가움과 형에게 걱정을 끼친 미안함에 희성의 꼬리가 빠르게 흔들렸다. 덩달아 마음이 급해졌다.
‘어떻게 여기서 탈출하지?’
오직 그 고민만이 작은 머릿속에 꽉 찼다.
그때 윤치영이 처음 듣는다는 듯 의아하게 물었다.
“견희성?”
“이번에 우리 쪽으로 물건을 받으러 온 견인족 놈입니다.”
“아….”
나직이 탄식한 윤치영이 뜬금없는 정보를 되새겼다.
“내 얼굴 후려친 애?”
그렇게 말하며 윤치영이 제 한쪽 허벅지에 자리한 하얀 덩어리를 부드럽게 매만졌다.
희성은 윤치영의 표정을 살피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뒤에서 윤치영의 예리한 눈길이 느껴졌다. 지금 뒤돌아 눈을 마주치면 수상해 보일 게 뻔했다.
“견인족 애들이 계속 찾게 내버려 둬.”
윤치영이 즐겁게 말했다. 마치 옆 동네 불구경하듯 태평한 태도였다. 그 불난 집 식구인 희성은 어떻게 탈출해 불을 꺼야 할지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윤치영이 나직이 덧붙였다.
“만약 찾으면… 제일 먼저 내 앞에 데려오라 해.”
“…….”
“빚진 건 갚아 줘야지.”
웃으며 말한 윤치영은 하얀 강아지 몸을 조몰락거렸다. 희성은 유독 큼직한 손이 등에 닿을 때마다 흠칫흠칫 접힌 귀를 떨었다.
‘늑대 새끼가 뒤끝은….’
희성은 소심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아직도 윤치영은 입가에 찢어진 상처를 달고 있었다. 희성이 주먹으로 힘껏 후려쳐 생긴 상처였다.
그때 희성의 머릿속에 강렬하게 남은 기억의 파편이 스쳤다.
윤치영의 앞에 피떡이 된 채 쓰러져 있던 수인.
자신의 정체를 들키면 다음은 자신의 차례일지도 몰랐다. 아니, 어쩌면 한 끼 식사로 이 식인 늑대에게 잡아먹힐지도 몰랐다. 희성은 딱히 배경도 없고 본체도 작은 소형견이라 뒤처리가 더 손쉬울 것이었다.
“꼬리는 왜 말았어?”
그때 윤치영이 물으며 강아지의 꼬리뼈 부근을 살살 매만졌다. 희성이 흠칫 놀라 뒤를 보니, 자신도 모르는 사이 꼬리가 가랑이 사이로 들어가 있었다.
자꾸 말려 들어가는 꼬리를 윤치영이 즐겁게 가지고 놀았다. 웃음기를 머금은 눈매 또한 달콤하게 휜 채, 그는 희성에게 고구마 말랭이 하나를 건네주었다.
“자. 냠냠이.”
“…….”
먹이를 앞둔 희성은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윤치영은 자신이 견희성이라는 걸 모른다. 의사도 자신을 수인이라 판단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회복될 때까지 강아지 행세를 하다가, 사람으로 변신이 가능할 때쯤 탈출해서 형에게 돌아가면 되지 않을까?
그럴싸한 방법이었다. 사실 선택지도 더 없었다. 지금 희성이 사람으로 변했다간 몸에 크게 무리가 갈 것이다. 거기다 정체를 알게 된 윤치영이 무슨 복수를 할지 몰랐다.
결국 희성은 일시적 생존을 선택했다.
왕.
강아지인 척 고구마 말랭이를 받아먹었다. 새까만 두 눈은 세모꼴로 윤치영을 강렬하게 노려본 채였다.
‘형이 굽혀야 할 때 굽히는 건 현명한 거랬어.’
강아지인 척해야 하는 치욕스러움에 희성은 억지로나마 형의 가르침을 되새겼다.
반드시 윤치영에게 잡아먹히지 않고 형에게 돌아갈 것이다. 이왕이면 두둑하게 정보나 돈까지 훔쳐서. 희성은 큰 꿈을 되새기며 다시 한번 간식을 받아먹었다. 맛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