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4화 (144/151)

#144

“…이런 게 여기 있을 리 없는데.”

“지난 넉 달 동안 여기선 네가 아니라 내가 살았거든.”

이현이 내민 건 술이었다. 의아함을 넘어 지완의 얼굴은 점점 썩어들어 갔으나 이현은 오히려 태연했다.

지완의 집에 술이란 게 있을 리 없지만, 이현의 말마따나 이곳에 이현이 자리를 튼 지 벌써 넉 달이었다. 이현은 양주를 꺼낼까 하다가, 확실한 소주를 택했다. 아무래도 잘난 권지완에게 가장 취약한 건 소주일 테니까.

“뭐 해, 안 마시고?”

“….”

지완은 대꾸도 하지 않은 채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러나 언짢은 두 눈은 줄곧 이현이 들고 있는 술병을 향했다. 깊게 볼이 파였다가 불만이 진하게 섞인 연기가 입술 사이로 흩어져 나온다. 이현은 어깨를 으쓱였다.

“사람 죽일 듯이 좆 박아 넣었으면 이 정도는 해야지.”

“…내가 술 취해서 잠들길 원해?”

“그건 아니고.”

이현은 욱신거리는 몸을 어렵사리 일으켜 세웠다. 타들어 가는 연초를 입에 물고, 지완이 샤워를 하는 사이 챙겨온 잔에 그대로 소주를 들이부었다. 소주잔은 아니었다. 락잔이었다.

“제정신이야?”

지완은 아직 젖어 있는 머리를 쓸어 넘겼다. 물방울들이 지완의 가슴팍으로 떨어져 두툼한 근육의 굴곡에 맺혔다. 이현은 자신의 시선을 굳이 거두지 않았다. 벌어진 가운 사이로 보이는 지완의 투명한 살갗이 또 한 번 괘씸한 야릇함을 불러일으켰다. 이현은 입술을 축이며 잔을 내밀었다.

“그럼. 난 제정신이고… 넌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말인데.”

지완은 말없이 고개를 숙여 이마를 짚었다. 묘하게 일그러진 얼굴과 달리 그 입에서 더 험한 말은 나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바로 이현이 내민 술잔을 받아들지도 않았지만.

“네가 나한테 빚진 거, 이걸로 갚아.”

“….”

“내가 직접 먹여줘?”

지완의 품에서 이현이 피할 길이 없었듯, 이번엔 지완이 피할 길이 없었다.

지완은 더 묻지 않았다. 그 얼굴에 좆같다는 감정이 훤히 드러났으나, 지완이 제 말을 거절하지 않으리란 걸 이현은 알고 있었다.

“내가 취하면 뭘 하려고.”

“….”

“이현아, 아직도 분해?”

그러나 잔을 받아든 지완은 묘한 눈으로 이현을 바라보다가, 이내 얄미운 소성을 터트렸다. 길고 흰 손가락 사이에서 타들어 가고 있던 담배를 덤덤히 재떨이에 털어낸다.

일그러졌던 그 얼굴에는 다시금 흥미로운 즐거움이 피어났다.

“어. 내 오기가 만만치 않아.”

“…그래, 그럼. 기대되네.”

이현의 말에 지완은 예쁜 보조개를 깊이 드러내 보였다. 그대로 락잔에 넘실대는 술을 머금었다.

목울대가 울렁일 때마다 그의 미간은 점점 더 구겨졌지만, 그는 그다음에 대한 기대로 그조차 음미하듯 느릿하게 삼켜냈다. 고통을 감내하는 지완의 모습은 짜릿하면서도 불길하다. 자신이 원했던 것임에도 이현은 공연히 초조해졌다.

이 변태 같은 새끼…. 이현은 어금니를 아득 깨물었다.

물론 오만한 태도와 달리 지완의 몸은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한 모금에 그의 쇄골에서 붉은 열감이 피어났고, 이어진 한 모금으로 붉은빛은 뱀처럼 그의 목을 휘감아 올라갔다. 그다음은 귀였다. 하얀 뒷목을 물들인 뒤 두 귀를 새빨갛게 붉혔다.

그와 반대로 얼굴은 더 냉랭하고 희디흰 빛을 띠었다. 서늘한 살갗에서 몰씬대는 붉은색은 언제 봐도 도색적이다. 이현은 지완이 마지막 한 모금을 넘길 때까지 숨을 참았다. 알코올 향이 스며드는 축축한 입술이 이현의 말초신경을 자극했다.

지완은 몰려드는 술기운에 눈을 지그시 내리깔았다. 얼굴을 잔뜩 일그러트리면서도 기대 어린 입꼬리를 말아 올린다. 술잔을 내려놓은 지완이 연초의 마지막 호흡을 머금었다.

“이현아, 이다음은 뭐야.”

“….”

“이걸로 확실히 난 취했는데.”

지완은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이며 팔을 뒤로 뻗었다. 이현은 지체 없이 담배를 비벼 껐다.

천박한 흥분이 일었다. 본능적인 정복욕이다.

*

지완 앞에 무릎을 꿇은 이현은 그대로 입술을 벌렸다. 머뭇거림 따윈 없었다.

“….”

이현은 굴복의 자세를 취했다. 그러나 진정한 굴복감은 지완의 몫이었다. 지완이 다급히 아랫입술을 깨물어 그의 낮고 사나운 신음을 겨우 가로막았다.

씨발, 너무 크잖아.

귀두에서 조금 더, 그조차 겨우 입에 머금은 이현은 고작 그 정도에 막혀오는 호흡을 간신히 감당했다. 이현은 지완이 제게 했던 것을 떠올리며, 짓눌리는 혀를 조금씩 움직였다. 그때의 감각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이현의 두 볼에 열이 올랐다.

발칙하게 올려다보는 눈과, 그와 대비되는 엉성하고 건방진 혀, 제 것을 문 채 발갛게 상기된 볼까지 그 모든 것이 지완의 포악함을 부추겼다. 알코올을 제외하고도, 실로 모든 것이 과했다.

“이현아, 이런 거….”

이현의 혀가 굴곡진 귀두를 쓸고 내려가 선단을 힘겹게 감쌌다. 서툴게 놀리는 혀와 기둥을 긁는 치아가 오히려 지완의 흥분을 가속시켰다, 지완은 말을 채 끝내지 못했다.

한껏 입을 벌린 이현은 두 손으로 남은 지완의 것을 붙잡았다. 목 안쪽을 찌르는 지완의 성기를 더 깊숙이 받아들이며.

지완의 손이 이현의 뒷목에서부터 거칠게 올라와 부드러운 머리칼을 헤집었다. 느릿하게 고개를 젖히는 지완의 손에는 점점 힘이 들어갔다. 이현의 갈색 머리카락이 지완의 손가락 사이에서 흐트러졌다.

“…윽!”

성기로 틀어 막힌 이현의 입술 사이로 외마디의 허덕임이 터져 나왔다. 입 안의 가장 깊은 곳을 침범하던 지완의 것은 혀의 깊은 뿌리를 농락하다 목의 구멍까지 꽂혀 들었다. 이현이 지완의 성기를 입에 담았을 때부터 이미 숨은 쉬어지지 않았으나, 지완은 노골적으로 그 이상을 탐내기 시작했다.

지완의 손길은 더욱 거칠어졌고, 어느 순간부터 혀는 이현의 자의로 움직일 수 없었다.

가로막힌 호흡은 야릇한 자극으로 바뀌어 이현을 조금씩 적셨다. 권지완의 좆으로 목구멍이 틀어박힌 채 이현은 달싹였다. 진실로 알고 싶지 않은 흥분이었다. 어느새 눈에는 아찔한 눈물이 고였다.

그러나 이현은 지완을 밀쳐내지 않았다. 읍읍거리는 신음과 캑캑거리는 소리만을 잇따라 토해냈다.

끝내 고통과 흥분이 뒤섞인 눈물이 이현의 붉고 말간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흐르는 걸 인지하지 못했기에 닦을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씨발….”

지완은 욕정에 사로잡혀 욕설을 토해냈다.

이현의 눈물은 바로 이 순간에만 볼 수 있었다. 눈물은 발칙하고 억울한 흥분을 타고 흘렀다. 오직 자신에게만 허용된 이현의 눈물은 언제나 지완을 아득한 열락으로 몰고 갔다. 채이현도 모르는 채이현의 모습. 채이현으로부터 채이현을 뺏고 싶은 지완의 비틀린 독점욕은 비정상적인 육욕으로 변질되곤 했다.

이현의 눈에서 흐르는 건 정액 같았다. 성기에서 정액을 빨아들여 눈으로 배설하는 것만 같았다. 지완의 추잡한 생각은, 그의 사정감을 몰아붙였다.

“….”

지완은 가까스로 손에서 힘을 풀었다. 대신 사납게 깨문 입술이 찢겨 피가 고였다. 술 냄새가 밴 피 맛이 지완의 입 안에 맴돌았다. 이현의 물기 어린 눈은 여전히 오기로 범벅되어 있었다.

지완은 스르르 눈을 내리감았다. 흥분으로 미약하게 떨리는 손으로 머리를 쓸어 넘기고, 다시 제 손을 속박하듯 팔을 뒤로 뻗어 몸을 기댔다.

이현은 그 질식의 고통을 승기로 이끌고자 했다. 지완의 손에서 벗어난 이현은 천천히 고개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현은 자해 같은 행위를 계속했다. 자의로 이끄는 자해이자 자위였다.

이현은 확실한 승리를 예감했고, 이번에는 틀리지 않았다.

*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도, 지금이 밤인지 낮인지도 알 수 없었다. 해는 알아서 둘을 비췄다가 눈치껏 모습을 감췄다. 둘은 짐승처럼 난잡하게 몸을 섞을 뿐이었다. 식욕을 성욕으로 풀었고, 수면욕은 지쳐 쓰러질 때까지 뒤로 미뤘다.

승자와 패자는 연신 전복되었다. 전등이 나가는 것처럼 순간 정신을 잃었다가 눈을 뜨면 다시 지완의 젖은 호흡이 이현을 감쌌다. 퓨즈가 끊긴 이현은 욕실에서 눈을 떴다. 한 번은 계단이었으며, 다른 한 번은 소파 위였고, 다른 한 번은….

종료를 알리는 휘슬을 기다리는 이는 없었다. 경기는 무한히 재개되었다.

이현이 실신하듯 기절한 뒤 눈을 떴을 땐 또다시 새벽이었다. 끔뻑대는 눈꺼풀 사이로 눈동자만 힘없이 돌려보았다. 시선의 끝에 걸린 지완은 의자에 몸을 기대, 짤막해진 연초를 비벼 끄고 있었다.

바스락거리는 이불 소리에 지완이 느릿하게 고개를 돌렸다. 어둠 속에서 둘의 시선이 마주쳤다. 이현은 말라버린 입술을 가까스로 열었다. 몽롱함 속에서 현실의 감각이 하나둘 돌아오기 시작했다.

“…권지완, 더는 안 돼.”

“일어나자마자 꺼낸 거치고는 좀 야한 편이지. 그 말.”

갈라진 이현의 음성이 띄엄띄엄 이어졌으나, 그 기세만큼은 분명 단호했다.

“이미 내 몸에 무리고…, 내 훈련에 지장이야.”

“….”

“더 가면 내 경기에 방해가 될 테지.”

정말 더는 안 된다. 원초적인 본능에 함락당했던 이성이 드디어 본래의 역할을 수행했다. 이미 상당히 늦었고, 이현도 그걸 모르지 않았지만.

“내가 네 경기에 방해가 될 수 있다는 건 꽤 기쁜 소식인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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