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3화 (143/151)

#143

이현을 탈의시키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후드 집업은 이미 내팽개쳐졌다. 등을 타고 올라오는 지완의 왼손에 의해 두툼한 맨투맨은 이현의 가슴팍을 내보이며 말려 올라갔다.

지완의 다른 한 손은 꽤 오랫동안 다른 사람의 손을 타지 못한, 정확히 말하자면 지완의 손을 타지 않았던 이현의 성기를 향했다. 서서히 오르던 미열은 서늘한 지완의 손길에 오히려 더 뜨거워질 뿐이었다.

이현이 어깨를 들썩이자 지완은 그 어깨에 그대로 고개를 묻었다. 지완의 위에서 이현에게 피할 길 같은 건 없었다.

“좁아서… 씨발….”

말 그대로 이현은 지완의 위에 있었다. 아무리 넓다 한들 두 성인 남성이 몸을 겹치기엔 한없이 협소하다. 그럼에도 그 불편함 역시 색다른 자극제였다.

이현은 눈살을 찌푸리면서도 지완을 밀쳐내지 않았다. 스스로 자세를 조금씩 바꿔가며 호흡에 익숙해지려 노력했다.

그게 문제였다. 이현은 제 성기를 지완의 손에 맡긴 채 느릿하게 허리를 움직이고 있는 형국이었다. 이현은 차마 자각하지 못했고, 그 점이 지완의 흥분을 더 몰아붙였다.

거봐, 너무한 건 늘 네 쪽이잖아. 말을 삼킨 지완의 목울대가 울렁였다. 어색하게 움직이는 이현을 한 손으로 바로 앉혔다.

“이현아.”

“읏….”

“혼자 한 적 있어?”

지완은 파묻고 있던 고개를 들어 이현과 눈을 맞췄다. 노골적인 시선이 생략된 목적어를 대신했다.

조금 압박을 가한 큰 손이 기둥 아래에서부터 귀두의 끝까지 어루만지듯 움직였다. 오랜만에 경험하는 소름 끼치고 자극적인 손길에 이현이 밭은 숨을 터트렸다. 그의 아랫입술을 씹어대던 지완은, 대신 느린 속도로 입을 가볍게 맞추었다. 촉, 하는 민망한 소리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혼자 한 적 있냐고 물었잖아.”

입술을 놓아준 지완은 본인이 제일 좋아하는 이현의 목을 다시 차지하며 재차 물었다. 이현은 마지못해 고개를 저었다.

지완의 손이 속도를 조금씩 올렸다. 그의 눈에는 이현의 부정에 대한 확신 어린 불신이 가득했다. 이현은 지완의 목에 두른 제 팔에 힘을 더할 뿐이었다.

“날 생각했어?”

물론 이현의 부정이 거짓은 아니었다. 손을 댄 적은 있지만 끝까지 간 적은 없었다.

권지완이 제 좆을 잡고 흔드는 것보다, 스스로 권지완을 생각하며 파정을 하는 것이…. 수치스러움의 문제가 아니었다. 이현 혼자서 감당하기에는 너무 과했을 뿐이었다. 이현은 오히려 포기하는 쪽을 택했다.

차라리 권지완, 네가…, 이런 발칙한 생각을 했다는 사실을 이현이 입 밖으로 꺼낼 리는 없다.

“넌 생각 안 하려고 해도…, 어디에서든 튀어나오잖아.”

“….”

“넌 얼굴을… 너무 팔고 다녀. 짜증 나게.”

어느 순간부터 꿈에 권지완이 나오는 게 당연한 일이 되어버렸다. 곳곳에서 튀어나오는 권지완을 볼 때마다, 곳곳에서 흘러나오는 그의 이름을 들을 때마다 그가 꿈에 나왔다. 이 역시 목에 칼이 들어온다고 해도 권지완에게 말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현아, 난 그러려고 일해. 맞댄 볼을 통해 지완의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이 생생히 느껴졌다.

“읏….”

지완은 부드럽게 위아래로 움직이던 손에 속도를 더했고, 지완의 손이 귀두의 굴곡을 올려 칠 때마다 이현의 몸도 함께 흔들렸다.

사정감은 아직 그리 가깝지 않았으나, 이현도 알고 있었다. 흥분하면 목에서부터 열감이 올라와 제 볼이 부끄러울 정도로 빨개지는 것을. 이현은 애써 제 팔에 볼을 비볐다. 얼굴을 가리는 게 못마땅한지 지완은 콧잔등을 찡그렸다.

“아…!”

“난 네 손만 떠올려도 좆이 섰다는 거, 사실이거든.”

“….”

“이현아, 난 상상 속 네가 입을 오물거릴 때마다 거기에 좆을 박아 처넣었어.”

천하고 외설적인 말은 거침없었다. 그러면서도 지완은 쿠퍼액이 조금씩 흘러나오기 시작한 귀두와 요도구를 쥐고 놓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현은 지완의 손목을 짙은 신음과 함께 잡아채야만 했다.

이번에는 기필코 승기를 잡겠노라 다짐한 지 십 분도 지나지 않았다. 이대로 가다간…. 안 된다. 이번만큼은 안 된다. 오기와 흥분으로 얼룩진 이현의 음성이 드리웠다.

“그래서 그때마다…, 어땠어.”

“….”

권지완을 생각하며 제 성기를 움켜잡았던 것, 매 순간 권지완의 손에 파정을 맡기고 싶었던 것, 매일 꿈에서 달갑지 않은 그를 맞이해야만 했던 것. 그 무엇 하나도 지완에게 말할 수 없는 이현은 이상한 곳에서 부끄러움을 몰랐다.

“진짜 네 좆을 내 입에 처박으면… 어떨 거 같냐고.”

“….”

“권지완, 네가 먼저 정신을 잃는 거….”

난 정말 봐야겠거든. 이현은 입술을 적셨다. 그건 분명한 도발이었고, 어리석은 짓이었다.

*

“읏…!”

이현은 지완에게 매달려 들썩였다. 주차장에서부터 엘리베이터를 거쳐 지금 이곳까지. 그 모든 과정을 자각하지 못할 정도로, 이현은 지완에게 들려 사정없이 그를 받아내야만 했다.

이현을 두 갈래로 찢을 것처럼 깊이 박혀 있는 지완의 성기는 그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끝을 모르고 더 깊이 들어왔다. 결장에 쑤셔 박히는 감각은 마치 지완의 것이 배 속 장기를 뚫고 목구멍으로 튀어나오는 환각을 일으켰다.

“아읏…, 아…!”

고통에서 파생되었던 신음 소리는 열락에 함락당한 지 오래였다. 찌걱거리는 색정적인 소리가 그 힘겹고 뜨거운 숨 사이사이의 공백을 채우며 낮게 퍼졌다.

“씨발, 채이현….”

이현의 고운 목은 온통 붉었고, 팽창한 혈관들이 솟아올랐다. 고개를 한껏 뒤로 젖힌 이현은 차라리 바닥으로 떨어지고 싶었으나 그건 헛된 꿈이었다. 지완은 이현의 등을 힘껏 움켜쥐었다. 이현이 발버둥 칠수록 지완은 더 강하게 이현을 끌어당겼다. 중력이 더해진 삽입은 이현의 정신을 멀게 하기에 충분했다.

“권…지완, 제발….”

무엇을 갈구하는 것인지 스스로도 알 수 없는 이현은 지완의 이름을 수없이 되뇌었다.

방을 지나쳐, 테라스 앞으로 온 지완은 그대로 이현의 등을 벽에 기댔다. 미약한 안정감을 찾은 이현은 감당 못 할 사정 욕구로 괴로워했다. 지완은 자유로워진 한 손으로 곧장 이현의 성기를 붙잡았다.

지완의 손이 닿자마자 이현은 파정했다. 오기는 오기일 뿐이었다.

“아, 흣….”

“이현아, 나 봐.”

“….”

“이현아, 응?”

지완은 멈추지 않았다. 다급한 흥분에 젖은 그의 호흡은 축축했다. 지완은 갓 토정한 이현의 정액으로 흥건한 제 손을 음미하듯 핥으며, 다시 한번 깊게 박아 넣었다. 엇박의 자극 속에서 이현의 성기는 다시금 껄떡댔다.

“씨발, 너무 깊….”

이현은 견딜 수 없는 열감에 도리질을 쳤다. 온몸을 새빨갛게 달군 채 헐떡였다. 이현에겐 들숨뿐이었다. 과호흡이 절로 목을 졸랐다.

“아…!”

지완은 그대로 테라스 문을 열고 밖으로 향했다. 미지근한 밤공기가 뜨거운 이현의 열을 식히듯 몸을 감쌌다. 간절했던 호흡이 그제야 이현에게 허용되었다. 그 잠시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지완은 입술을 사납게 깨물었다.

한 손을 뒤로 뻗어 테라스의 난간을 가까스로 짚은 이현의 팔이 파르르 떨렸다. 한 손은 여전히 지완의 목을 감싸고 있었다. 이 순간을 벗어나고 싶은 것일까, 벗어나고 싶지 않은 것일까.

“권지완. 여긴….”

이현은 어렵게 지완의 이름을 내뱉었다. 이현의 가슴은 한껏 부풀어 오르고 가라앉기를 반복했다.

“걱정 마, 담은 높아.”

낮게 울리는 지완의 목소리에 이현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마지막으로 이현의 시야를 가득 채운 건 별 하나 없는 밤하늘이었다. 서울다운 무미건조한 하늘만이 일말의 현실감을 부여했다. 나머진 전부 미몽이었다.

*

가운을 걸친 지완이 젖은 머리를 털며 나왔을 때, 이현은 네 번의 파정 후 지칠 대로 지친 몸을 침대에 축 늘어트리고 있었다.

이현이 네 번 절정을 경험할 동안, 지완은 고작 두 번이었다. 이 점을 이현은 잊지 않았다.

“깼어?”

“…잠든 적 없어.”

“그럼 채이현 몸은 누가 씻겼을까.”

시간은 종잡을 수 없는 새벽 그 어디쯤이었다.

이현은 길고 사나웠던 섹스를 마친 뒤 지완의 손에 그대로 몸을 맡겼다. 그래도 적응이라는 것을 하는지, 이번에는 정신을 잃지 않았으나 그렇다고 정신이 온전한 것도 아니었다. 이현은 저를 씻기는 지완의 손길을 잠자코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건 생각보다 편했다. 깨끗한 몸으로 침대에 누워, 한참 동안 몽롱함을 만끽한 뒤에야 이현은 서서히 정신을 차렸다.

물론 이건 지완이 전적으로 이현을 봐줬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 점 역시 이현은 잊지 않았다.

“야.”

지완이 침대에 걸터앉자, 이현이 몸을 돌렸다. 푹신한 이불에 파묻힌 이현의 음성은 나른했다. 지완은 당연한 듯 협탁에서 담배를 꺼내 들었다. 이어 자신의 입에 물어 먼저 불을 붙이고 그것을 이현의 입에 물렸다.

“이걸 말하려던 건 아니었는데.”

“그래서 싫어?”

“…나쁘지 않지.”

이현은 순순히 연초를 빨아들였다. 오랜만에 문 담배는 또 다른 안정감을 부여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일이다. 권지완은 늘 흡연 욕구를 점화시킨다. 여러모로 그가 해악인 건 변함없다.

“권지완. 너 이거 마셔.”

담배를 문 지완은 불을 붙이려다 미간을 얕게 찌푸렸다. 이현은 그 얼굴을 향해 연기를 내뿜었다. 그 잘난 얼굴에 닿기도 전에 연기는 전부 흩어졌지만, 자욱한 연기 사이로 보이는 못마땅한 그 얼굴이 꽤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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