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1화 (131/151)

#131

“…그건 싫은데.”

네 말대로 굴어주긴 싫어, 나도. 이현은 그대로 지완의 입술을 머금었다. 그 누구도 예기치 못한 새벽의 끝자락에서 두 입술이 닿는 순간, 이현은 눈을 감았으나, 아직 지완은 눈감지 못했다.

*

지완은 이현의 뒷머리를 받치며 손을 뻗었다. 소파의 널찍한 카우치는 성인 남자 둘이 몸을 겹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겨우 호흡을 가다듬던 이현은 쿠션이 안정적으로 제 머리를 받치고 나서야 자신이 지금 소파에 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급한 숨길을 따라 손길이 엇나간다. 이현은 소파의 등받이를 다급히 더듬거렸다. 도저히 이것만큼은 익숙해지지 않는다. 지완은 방황하는 이현의 손을 잡아 이현을 결박했다.

먼저 지완의 숨을 침범했던 이현은 순식간에 기세를 빼앗기고 그 진한 혀 놀림에 농락당했다. 빌어먹을 권지완. 조금만 여유를 놓쳐도, 지완은 어떤 제어도 불가능한 사람처럼, 이상할 만큼 폭력적으로 굴었다.

지완은 이현이 숨을 헐떡거릴 때마다 몸을 더 깊숙이 붙여왔다. 이현은 떨어지려는 한쪽 무릎을 올려 세웠다. 그 다리 사이는 지완의 허벅지가 차지했다.

지완은 이현에게 일말의 숨을 허락하며 고개를 틀었다. 이현의 사타구니에 야릇한 압박이 가해지고 있었다. 이현의 입 안, 그 여린 살을 끈질기게 훑어 내리면서 지완은 여유를 부렸으나, 그의 움직임은 노골적이었다.

“…잠, 깐….”

미처 끝내지 못했던 자정의 유희가 아쉬웠던 것일까. 지완은 이현의 말을 들어주지 않을 것처럼 오히려 혀끝에 무게를 싣는다. 그러나 이 또한 순간뿐이다. 이현이 결박당한 손에 힘을 주자마자, 지완은 긴 입맞춤을 뒤로한 채 이현의 아랫입술을 짓궂게, 그러나 가볍게 물어뜯고는 이현에게 여유를 허가했다.

안간힘을 써도 밀어낼 수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고작 손아귀에 힘 한 번 주는 걸로 해결될 일이었다니. 그새 신열로 불거진 이현의 볼은, 노란 조명 빛을 받아 약간의 붉은색을 띠는 그 머리칼과 색이 비슷했다. 이현은 더운 숨을 몰아쉬느라 색색거릴 뿐이었다. 입술은 자유를 얻었음에도 정작 발언권은 돌아오지 않았다.

“…왜. 내가 지금 많이 급한데, 할 말 있어?”

지완은 이현의 단정하고 깔끔한 눈썹, 열감이 분명한 눈가, 곧은 코끝, 그리고 보기 좋게 말려 올라간 입꼬리에 차례대로 입을 맞추었다. 지완의 입술이 도장을 찍듯 이현의 얼굴을 간질였다.

질문을 해놓고 대답할 틈을 주지 않는다. 이현은 일부러 고개를 위로 젖혔다. 끝이 보이지 않는 지완의 입술을 피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지완은 드러난 이현의 턱선을 따라갈 뿐이었다. 촉촉거리는 낯뜨거운 소음이 적나라했다.

귀에서 턱으로 연결되는 피부를 심술궂게 깨물고, 아직도 지나친 호흡으로 울렁이는 이현의 목울대를 입술로 짓누른다. 이현은 호흡이 통제당하는 직접적인 감각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런 이현을 알아챈 지완은, 파르르 떨리는 이현의 속눈썹에 가볍게 입을 맞추곤 다시 고개를 들었다.

“이현아, 난 기회를 놓칠 생각 없어.”

지완의 두 눈은 흥분을 숨길 생각이 없었다. 도색적인 그의 시선이 끊임없이 이현을 좇았다. 겨우 숨을 진정시킨 이현은 지완의 헝클어진 머리칼에 손을 집어넣었다. 손을 감싸는 부드러운 감촉이 묘하게 자극적이다. 그대로 지완의 머리칼을 쓸어 넘겼다. 지완의 이마를 스치는 손끝에도 열감이 선명하다. 그 작은 열감은 또 다시 지완을 자극했다. 눈썹을 치켜올리는 지완의 모습은 예민하다 못해 포악했다.

“너, 선발전, 정말 이러다가….”

“이젠 상관없어.”

“…뭐?”

“어차피 내 출전은 선발전과 관계가 없거든. 알잖아.”

지완은 거만했지만, 이번에도 그의 말은 틀린 게 없다. 지완이 불참한다 한들, 유도 협회가 온갖 핑계를 만들어서라도, 그의 출전에 이변이 생기지 않도록 할 것이다.

“선발전 불참으로 생길 잡음보다, 난 이쪽이 우선이라서.”

“…미친 새끼.”

“알아.”

사격과 달리 공개적으로 진행하는 유도 선발전은, 지완의 표현처럼, 간단한 잡음 정도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지완의 말은 진심인 듯했다. 분명 녹진해 보였던 피곤도 더 이상 그에게서 찾아볼 수 없었다. 이현은 지완의 검고 부드러운 머리칼 사이에서 손가락을 천천히 움직이며 입술을 물었다.

“권지완, 왜 안 물어봐.”

“뭘.”

“….”

“…내가 여기서 다른 생각을 할 정도로 여유가 있어 보여?”

“….”

“날 언제까지 과대평가하려고.”

이현의 손은 그대로 지완의 뒷목까지 따라 내려갔다. 지완은 이현의 다음을 꽤 순순히 기다려주며, 어리석은 이현의 질문에 현명한 대답을 건넸다. 그러나 이현이 손을 움직일 때마다 지완의 날카로운 눈가가 움찔거렸다. 그의 인내가 오래갈 것 같진 않았다.

“내가 먼저 한 거, 안 놀라워?”

“…놀랍지. 선발전을 포기할 정도로는 부족해?”

“전혀 바란 적 없는데.”

심심한 대답과 함께, 이현은 이내 자연스럽게 지완의 어깨를 끌어내리곤 자세를 다시 전복시켰다. 지완은 순간 얼굴을 구겼으나, 제 위에 올라탄 이현을 바라보며 퍽 즐거워 보이는, 그리고 퍽 건방진 웃음을 새겼다.

“질문은 그것 정도야. 대체 너한테 뭐가 먹힌 건지, 이번에는 나도 잘 모르겠거든.”

위에서 내려 본 지완은, 그가 앉아 있을 때와 또 사뭇 달랐다.

정말 권지완은 재수가 없다. 오히려 지완은 누워 있을 때 그 거만한 아름다움이 더 빛을 발했다. 이기적인 이목구비는 더욱 여실하게 드러났고, 보다 짙어진 얼굴 위 그림자가 뚜렷한 얼굴선들을 오만하게 자랑했다.

지완의 입술은 이현에게 답을 요구했으나, 이현은 손끝으로 그 두툼한 덩이를 짓누를 뿐이다. 분명 지완을 제 아래로, 통쾌하게 깔아뭉갠 게 처음은 아닌데. 그러나 곧이어 이현은 수긍했다. 맞아, 그때도 예쁘긴 했지. 그때도 재수 없었고.

“얼굴, 병신아. 아니고 뭐겠냐.”

코웃음을 친 이현은 지완이 제게 했던 것처럼, 선명한 그의 목울대를 입술로 머금듯 짓눌렀다.

“…더 이상은 무리야. 이현아, 난 두 번이나 참을 자신, 전혀 없어.”

“뭘?”

“뭐겠어.”

지완은 소리 없이 웃었고, 이번에도 이현은 웃지 않았다. 성급한 둘의 입술이 다시 겹쳐졌다. 블라인드 너머로 얄궂은 아침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

어느새 이현은 침대에 걸터앉아 있었다. 다시 한번 긴 시간 지완에게 숨을 갈취당한 이현의 가슴팍은 부풀어 올랐다가 가라앉기를 빠르게 반복하고 있었다.

지완의 닿을 듯 말 듯 한 입술이 이현의 얼굴을 간질였다. 이현이 호흡을 정리하길 기다려 주는 것처럼, 시혜적이고 발칙하다. 고양이가 콧잔등을 비비는 것만 같다. 그러나 농도 짙은 입맞춤보다 이럴 때 더 숨이 막히는 것은 왜일까. 이현의 호흡은 조금도 진정되지 못했다.

이현의 뒤로 손을 뻗은 지완이 허리를 조금 더 숙였다. 그가 나름의 조절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현의 몸은 점점 뒤로 밀렸다. 이현은 뒤로 팔을 뻗어 밀리는 상체를 가까스로 지탱했다. 짚을 곳을 더듬대던 이현의 손이 지완의 손을 툭 건드리자, 지완은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자신을 빤히 올려다보는 이현의 붉은 눈가를 가만히 내려다본다. 곧이어 한쪽 눈썹을 못마땅하게 치켜올린 지완은 입술을 아득 깨물더니 예쁜 얼굴을 신경질적으로 찡그렸다.

…어쩔 수 없지. 지완은 뜻 모를 혼잣말을 중얼거리고 바로 앞에 있는 소파에 자리했다. 지완은 머리를 한 번 대강 쓸어 넘겼다.

“…야, 너 뭐 해?”

다시 한번 말하지만 권지완은 부끄러움을 모르는 인간이 분명하다.

지완은 이현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반쯤 발기한 성기를 꺼내 들었다. 그 작태에서 머뭇거림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다시 봐도 놀라운 크기, 이현은 순간 움찔거렸다. 한때는 경외의 대상이었는데 이젠 두려움의 대상이다. 겨우 가라앉은 숨이 다시 더워진다.

처음 제대로 마주한 권지완의…. 이현은 입술을 가만히 물어뜯었다.

씨발. 권지완은 좆도 예쁘다. 열이 올라 얼룩처럼 검붉어진 지완의 좆이 이현의 시선을 받고 차츰 더 팽팽하게 부풀어 올랐다. 피부 위로 선명하게 튀어 오른 혈관들은 이상야릇한 흉흉함을 상기시켰다.

“왜… 지금….”

지완은 천천히 손을 움직였다.

그 손짓이 어딘가 어설프다. 적어도 그의 혀 놀림보다는 덜 능숙하다.

“….”

남이 수음하는 모습을 코앞에서 보는 건 당연히 생전 처음이었다. 그것도 이렇게 갑작스럽게. 권지완이 자위라니. 내 앞에서?

지완의 두 눈은 새붉고 흐트러진 이현에게 그대로 고정되어 있었다. 그 눈빛이 노골적이고 적나라하다. 이현은 차마 그 시선에 응하지 못하고 어색하게 시선을 흩트렸다. 흥분이 어린 지완의 낮은 숨소리와 민망한 마찰음에 이현은 고인 침을 삼켰다.

“이렇게 안 하고 시작하면.”

“….”

“이현아, 너 다쳐.”

지완의 대답에 웃음기라곤 없었다. 그의 목소리와 두 눈에는 숨길 생각 없는 선명한 흥분만이 존재했다.

지완은 눈으로 이현을 핥고, 맛보고, 음미했다. 제 성기를 아래에서 위로 느릿하게 쳐올리는 손짓은 더 이상 권태롭지 않았다. 권지완의 희고 고운 손이 기둥뿌리에서부터 귀두의 굴곡까지 거칠게 쓸어 올렸다. 그 손등 위로 성기의 그것과 비슷한 혈관들이 울긋불긋 튀어나와 있었다.

거북함이 몰려들어야 정상일 텐데. 고약하고 음란한 짓거리를 훔쳐보는 이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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