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
그럼에도 지완은 멈추지 않았다. 다시 뱀 같은, 아니 구렁이 같은 혀가 이현을 옭아맸다. 피로 범벅된 혀는 짜고, 비리고, 거북하다. 동시에 뜨겁고, 어지러우며, 이현을 혼질시키듯 모든 신경을 자극한다.
정말 목구멍을 틀어막으려는 것처럼, 손가락이 찰나에 짚었던 그 은밀한 곳을 기필코 점령하려는 것처럼, 깊숙이 찔러오는 지완의 혀는 이현의 곳곳을 수축시켰다.
지완의 큼지막하고 차가운 손이 이현의 배를 쓰다듬었다. 몸부림 사이에서 헛나간 손길일지도 모르나, 후드 아래로 훅 들어오는 냉랭한 살갗을 이현이 겨우 잡아챘다. 배를 짓궂게 내리누르는 압박감에 이현은 비린 숨을 터뜨렸다. 탄탄하게 단련된 복근은 강압적인 손길에 쉬이 무너져 내렸다.
주인 모를 침이 섞인 피가 이현의 아랫입술을 타고, 턱 언저리로 흘렀다. 이현은 도리질을 쳤다. 다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울렸다. 확실히 기억한다. 지완은 문을 잠그지 않았다.
“권지완 선수님? 안에 안 계십니까?”
그 목소리에 이현은 컥컥거렸다. 결국 눈가에 맺혔던 물기는 방울져 흘러내렸다. 동시에 이현의 몸이 붕 떴다. 여전히 이현의 입은 새로운 주인의 강압적인 숨으로 틀어막혀 있었다. 지완은 일말의 틈도 주지 않은 채, 이현을 그대로 업어 들었다.
다시 지완의 고개가 반대로 꺾였다. 이현은 살기 위한 숨을 간절히 들이쉬었다. 그러나 이현의 들숨은 곧 지완의 날숨이었다.
지완은 한 손으로 이현을 받치고, 다른 한 손으로는 이현의 뒷머리를 눌러 잡은 채 한 걸음씩 문으로 다가갔다. 당장이라도 떨어질 것 같은 중력을 체감하며 이현의 몸은 얼어붙었으나, 지완은 성인 남자를 든 채로, 조금의 흔들림이 없었다.
이현은 지완에게 매달리면서도, 동시에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쳤다. 그러나 소용은 없었다. 지완의 도복만 이리저리 흐트러지다가, 끝내 띠가 풀어지며 널찍한 가슴팍이 온전히 모습을 드러냈다. 이제 밀어내는 이현의 손바닥에 닿는 것은 도복이 아닌 지완의 살갗이었다.
지완은 이현을 다그치듯 이현의 혀 말단을 거칠게 빨아냈다가, 다시 달래듯, 부드럽게 감쌌다. 치열을 훑고 잇따라 공격적으로 들이닥쳤다. 이현이 정신을 차릴 여유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주무시나…. 선수님, 저 들어가겠습니다!”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은 더한 파국으로 치달을 위기에 놓여 있었다. 이현이 다급히 손을 뻗었다. 무엇을 위한 발버둥인지는 모르겠으나, 이현의 움직임보다 지완이 빨랐다. 스태프가 문손잡이에 손을 올림과 동시에 지완은 손을 뻗어 문을 잠갔다.
지완은 곧장 문 옆의 벽으로 이현을 밀쳤다. 아릿해져 오는 등과 달리 머리는 지완의 손바닥 위로 안착했다.
철컥.
“뭐야, 이거 왜 잠겨있어? 안 계시나?”
한 손으로 이현을 둘러업은 채, 한 손으로 이현의 뒷머리를 감싼다. 지완은 헌칠한 성인 남성을 그렇게 감당하면서도 그 폭력적인 호흡을 멈추지 않았다.
“이 방 맞는데….”
스태프의 발소리가 멀어지고 나서야 지완은 이현에게 새로운 숨을 허락했다. 천천히 벌어지는 입술과 입술 사이에 누구의 것인지 모를 가는 침 한 줄기가 진득하게 늘어졌다. 고개를 빼내던 지완은 그 줄기를 삼키듯, 다시 다가와 이현의 입술을 가볍게 물고 떨어졌다. 끝없이 길었던 교류는 그제야 끝을 맺었다.
지완은 들고 있던 이현을 놓아주었다. 이현은 부족했던 숨을 연신 들이마시며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중이었다. 지완의 엄지가 이현의 입술을 쓸고, 피와 타액이 흘러내린 턱을 지분거렸다.
휴지를 한 장 뽑아 이현에게 남아있는 흔적을 지완이 손수 다 닦아낼 때까지도, 이현은 밭은 숨만 고를 뿐이었다. 여파는 지독했다.
“이게 가능할 줄은 나도 몰랐는데. 되네.”
“….”
“생각보다 덜 역겹고. 꽤 흥분도 되고?”
지완은 거의 다 풀어 헤쳐진 도복의 윗도리를 벗어 던지며 말을 툭 뱉었다. 더할 나위 없이 권지완다운 태연함이었다. 침과 피를 닦아내 너저분해진 휴지는 바닥에 나뒹굴었다.
“…야.”
겨우 정신을 차린 이현이 입을 열었다. 아직도 말에는 떨림이 가득했다. 이현은 관자놀이에 핏대를 세우며 흥분과 분노를 눌러 내렸다.
지완의 품에서 몸부림치던 이현이 이젠 한없이 가라앉은 음성을 드리웠으나, 미세하게 떨리는 하관이 이현의 심경을 대신 나타내고 있었다.
“권지완.”
지완이 품이 큰 니트에 몸을 집어넣으며 이현을 돌아봤다. 이현은 반쯤 풀려있던 몸에 힘을 주었다. 요동 없는 저 지완의 눈동자가 경멸스럽다. 이현의 말에서는 여전히 떨림이 묻어나왔다. 그건 흥분과 분노로 얼룩진 떨림이었다.
“…겨우 참아줄 때, 똑바로 해명해. 놀림도 정도가….”
“그렇게 정성 들여가며 놀리는 취미는 없는데.”
“놀리는 게 아니면 더 문제지, 이 씨발 새끼야!”
이현은 곧장 테이블 위에 놓인 생수병을 집어 들었다. 하릴없이 빼앗긴 입 안을 게워내듯, 거북함을 헹궈내듯, 물을 삼켰다. 그대로 권지완의 얼굴에 뱉어버리고 싶었으나 더 이상의 침이 섞이는 건, 아니 더 이상의 호흡을 마주하는 건 그 자체로 좆같았다.
이대로 지완을 쳐 죽여 버릴까 싶다가도, 분노 따위로 해결하고 끝을 보기엔 도저히 이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현은 입술만 달싹거릴 뿐이었다.
“이현아, 네가 다 가져가라며. 하하. 잊었어?”
“너 진짜 미쳤구나. 제정신이 아니야. 어, 확실히 제정신이 아니야. 너 지금…!”
처음은 의문 어린 당혹, 그다음은 탄식, 끝은 분개였다. 이현은 입에 담은 물을 뱉는 대신 그대로 생수병을 던졌다. 뚜껑을 잠그지 않은 생수병은 그대로 지완을 가격하고 바닥에 나뒹굴었다. 남아있는 물은 지완의 몸을 덮쳤다. 지완의 얼굴과, 방금 갈아입은 니트는 순식간에 젖어 들었다.
“따끔하네.”
“뭐?”
“그러고 보면 이현아, 넌 어렸을 때부터 뭘 잘 물긴 했어. 개처럼.”
지완은 휴지를 뽑아 얼굴을 닦아내고, 툭툭 니트를 치며 물방울들을 털어냈다. 새로 한 장을 뽑아내 물이 튄 입술을 훔쳤다. 그제야 지완의 입술이 이현의 눈에 들어왔다.
순식간에 또다시 얼굴에 열이 올랐다. 조금 전 이현이 살점을 뜯을 기세로 아득 물었던 지완의 입술은 정말 너덜너덜하게 찢겨있었다.
저 입술에서 팍 터져 나온 붉은 피는 아마 지금쯤 이현의 몸속을 핑핑 돌고 있을 것이다.
“사과라도 해줘?”
“사과는, 씨발!”
“다행이네. 할 마음 없었거든.”
지완은 곱게 접어놓았던 이현의 목도리를 집어 들었다. 잔뜩 흩뿌려진 물로 지완이 디딘 바닥은 추적거렸다. 지완은 그 위로 벗은 유도복을 던졌다. 하얀 유도복을 그대로 지르밟으며 지완이 이현에게 다가왔다. 이현은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몸이 겁을 먹은 것인지, 제 의사와는 상관없이 먼저 경직된 것이다.
그러나 이현은 빠르게 감각을 털어내며 입을 열었다. 더듬더듬 말이 끊겼다.
“너… 설마 진짜….”
“….”
“너 여자 좋아하잖아. 야, 나도 씨발 여자 좋아해. 아니, 갑자기? 아니 왜….”
“….”
“너… 씨발, 아니다, 그건 말도 안 되지.”
침착하게 상황을 판단하려 했지만, 도리어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이미 사고는 상식을 벗어나 있었다.
권지완이 내게 키, 아니 입을 맞췄다. 키스라는 표현을 갖다 붙일 수는 없었다. 같은 말임에도 불구하고 차마 그 표현은 용납할 수 없었다. 왜? 권지완이 왜? 다른 사람도 아니고 권지완이?
더구나 그건 폭력이었다. 그 강압적이고 갈취적인 순간들은… 도저히 키스 따위의 낭만적인 형용으로 포장될 수 없었다. 그 분풀이 같은 입맞춤,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건 권지완이 입에 달고 사는 채이현을 향한 성희롱,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게 아니고선.
아무렇지 않은 지완의 태도에 이젠 이현의 입에서 헛웃음이 터졌다. 꿈인가? 허, 지금 꿈?
“무슨 변명이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니냐? 왜 나만 당황스럽지? 너 지금 네 눈앞에 누가 서 있는지 알고는 있냐?”
“네 입으로 계속 말하고 있네. 여자 좋아하고, 당황스러운 채이현?”
“그걸 아는 새끼가 이래? 야…, 야.”
“그래, 말해.”
“너 설마 나 좋아하냐?”
이현의 침착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지 않은가. 이현의 입에서는 믿기 힘든 말이 흘러나왔다. 이현 스스로도 제가 뱉은 말에 얼어붙었다.
필터를 거치지 않은 그 말은, 실상 최선의 도출이긴 했다. 이현에겐 그랬다. 순간 새어 나온 말은, 아주 단순한 논리를 따랐다. 누군가 제게 입을 맞췄는데, 그것도 아주 아주 폭력적이고 진득한 입맞춤에다가, 그게 놀림이 아니다. 그렇다면?
“하하. 정말 설마. 정신 차려, 이현아.”
“….”
“혹시 진심이야? 그런 이유로 설명이 되는 건가. 몰랐는데 채이현 꽤나 감성적이네.”
그러나 말없이 다가오던 지완은, 마지막 이현의 물음에 크게 웃음을 보였다. 그 소성은 이현의 이성을 깔끔하게 잘라내었다.
지금 정신 차리라고 했냐? 권지완, 네가? 나한테? 할 말을 빼앗긴 형국에 이현은 처참히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지완은 이현을 억눌렀던 손으로, 이번엔 이현의 목에 목도리를 둘렀다. 두어 번 돌려 매더니, 뒷문 쪽으로 가 떨어진 이현의 모자까지 챙겨 들었다. 느긋하게 로커 안에서 더플백을 빼내곤 마저 짐을 정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