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2화 (42/151)

#42

근래에 바다를 본 적이 있었나? 곰곰이 떠올려봤지만 작년 하계 전지훈련 이후로는 바다 내음을 맡는 것이 처음이었다. 물을 좋아하지 않는 이현은 바다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나 얼굴을 스치고 지나가는 짠 바닷바람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이현은 싱겁게 콧잔등을 찡그렸다. 이상하네.

이현은 걸음을 늦추며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사용한 적이 손에 꼽을 만큼 적은 카메라 어플을 켜 바다 쪽으로 향했다. 화면의 아래 반절은 모래사장으로, 윗부분은 바다로 채웠다. 정확히 반을 쪼개 화면에 담으면서 이현은 어둑한 수평선 너머를 과녁처럼 가늠했다. 멀긴 멀다. 바다를 향해 총을 쏴본 적은 당연히 없었다. 이현은 해풍 사이를 가르고 날아가는 탄환을 연상했다. 속이 뚫리는 기분이었다.

찰칵, 따위의 진부한 효과음이 오랜만에 이현의 핸드폰에서 울렸다. 그 소리가 이 소란스러운 주변을 관통하여 지완에게 닿은 것일까. 지완은 뒤를 돌아보았다. 별거 아닌 일임에도 불구하고 사진을 찍어대던 자신의 모습이 괜히 멋쩍어, 이현은 손을 내렸다. 지완의 얼굴에는 별다른 감흥이 보이지 않았다. 이럴 거면 왜 온 거야.

이현이 찍은 사진을 대강 확인했다. 급하게 마무리를 한 마지막 사진의 끝자락에는 지완의 손이 아주 작게 찍혀있었다. 그마저도 흔들려 살색 인영인지 모래사장인지 주의 깊게 보지 않으면 구별이 가지 않을 정도였다. 지울까, 이현은 잠시 멈칫했다. 그러나 그냥 두었다.

“권지완. 여기 왜 왔어?”

이현은 괜스레 목소리를 낮췄다. 지완은 이현을 말없이 내려다보고만 있었다. 가뜩이나 속을 알 수 없는 지완은, 눈밖에 보이지 않으니 그 얼굴을 읽어내기가 더욱 힘들었다. 깊은 모자의 챙이 더 짙은 그림자를 만들어내는 바람에 그 밝은 눈동자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지완은 다시 걸음을 옮겼다. 좀 더 바다 쪽으로 가는가 싶더니 방향을 돌려 모래사장을 벗어났다. 이현이 지완의 뒤를 천천히 따랐다. 바다라면 이현도 가까이하고 싶지 않았다.

“시끄럽네.”

지완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네가 오자며? 이현이 되물었다. 지완도 이 정도로 사람이 많을 것이라는 생각은 못 한 듯했다. 이현이 어이가 없어 슬쩍 비소를 흘렸다. 동시에 조개구이 가게들에서 새어 나오는 짭짤한 냄새가 이현의 후각을 자극했다. 그러고 보니 슬슬 저녁을 먹을 시간이었다. 이현이 잠시 고민했다.

“너 밥 안 먹냐?”

밥은 먹고 살아야지. 이현이 작게 덧붙였다. 괜찮다면 여기까지 온 김에 조개구이가 먹고 싶었다. 물론 조개구이를 초장에 찍어 먹는 권지완의 모습은 잘 상상이 되지 않았다.

물으면서도 이현은 한편으로 걱정을 하고 있었다. 이렇게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얼굴을 내놓고 밥 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여기까지 와서 컵라면이나 먹어야 하나.

“따라와.”

그러나 지완의 대답은 예외였다. 을왕리를 많이 와봤나? 지완은 익숙하게 앞장을 섰다. 재민만 봐도, 저렇게 몸을 만드는 놈들은 하나같이 밥시간에 예민해져서 신경을 곤두세우곤 하던데. 지완은 딱히 배가 고픈 것 같지도 않았다.

이현은 다시 한 번 외투를 여몄다. 저보다 큰 키의 보폭에 맞추려 속도를 높여야 했다. 이현은 지완의 긴 다리를 노려보았다. 재수 없는 새끼.

지완이 도착한 곳은 줄지어 늘어진 조개구이 가게들과 한참 동떨어진 곳이었다. 계속 음습한 곳으로 향하기에 어딜 가나 했더니… 덕분에 사람은 없어 보였으나, 이런 외진 곳을 어떻게 알았는지는 모를 일이었다. 간판조차 제대로 달려 있지 않았지만 막상 문을 여니 조촐한 가게가 나타났다.

“여긴 어떻게 알았어?”

“정유진.”

지완의 입에서 자연스레 흘러나온 그 이름에 이현이 잠시 멈칫했다. ‘연애 같은 거 안 하는데.’ 이전에 지완이 했던 말도 함께 떠올랐다. 대체 둘은 뭔 사이야? 이현이 잘 어림 되지 않는 둘의 사이에 얼굴을 굳혔다. 물을까 하다가 관두었다. 내가 알아서 뭐 해. 이현이 가게를 한 번 쭉 훑으며 읊조렸다.

“연예인들 비밀연애 뭐 그런 거 할 때 자주 찾나 보네.”

“그래도 구석에 붙어. 나까지 네 게이설에 엮이게 하지 말고.”

채이현, 너까지 안 보태도 달고 있는 스캔들이 너무 많아서. 지완이 이현의 약을 올렸다. 이현은 하, 짜증을 내며 지완이 앉으려 하던 의자를 발로 찼다. 밥은 네가 사라, 양심이 있으면. 이현이 신경질적으로 응수했다. 지완은 마스크를 내리며 가볍게 웃고 말 뿐이었다.

지완이 팔을 뻗어, 이현의 발길질에 의해 멀리 밀려간 의자를 끌어당겼다. 이현은 팔짱을 꼈다. 턱을 까딱거리며 메뉴판을 가리켰다. 지완 보고 알아서 고르라는 의미였다.

“사장님! 여기 소주 하나 먼저 주세요.”

지완이 메뉴를 살피기도 전에 이현이 먼저 술을 주문했다. 지완이 못마땅한 얼굴로 이현을 바라보았다. 이현은 습관처럼 올라간 지완의 눈썹에 대고 퉁명스레 입을 열었다.

“뭐. 갈 땐 대리 써.”

“이현이는 뭐가 이렇게 뻔뻔할까.”

“돈 없으면 내가 꽂아주고. 웃돈까지 얹어줄게.”

어차피 권지완, 너 아무도 못 알아봐. 알아봤으면 진작 여기 난리 났겠지. 이현은 샐쭉하게 덧붙였다. 대리비를 주겠다던 지완의 말을 따라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제멋대로 구는 이현의 모습에, 지완은 희소했다. 유쾌하진 않았다. 지완은 다시 한 번 사람을 불러 대강 주문을 하고, 이현의 앞에 놓인 컵에 물을 채웠다.

“이현아, 이번에도 술 냄새 풍기면서 내 차에 오르려고?”

“야, 내가 미쳤냐? 또 길거리에 버려지게? 넌 대리 부르고 난 택시 탄다고. 기사한테 들킬까 걱정되면 너 혼자 노숙하든지.”

“하하. 곧 1차 선발전 아니야? 몸 관리를 너무 안 하네. 다른 선수들은 얼마나 좆같을까.”

지완은 마치 이현을 위해 걱정이라도 하는 것처럼 되물었다. 기저에는 선발전을 치르지 않는 이현에 대한 조롱이 녹아있었다. 이현은 낯빛을 지워냈다.

이현은 올림픽 선발전을 치르지 않는다. 치러야 하지만 따르지 않는다.

세계선수권, 이외에도 올림픽 출전권을 확보할 수 있는 국제경기들에서 메달을 휩쓴다 할지라도, 그 출전권은 국가에 지급되었다. 개인 선수에게 부여되는 것이 아니었다. 즉 이현이 국제 대회에서 메달을 따내 올림픽 출전권 티켓을 가져온다 하더라도, 국가대표 후보단 안에서 다시 한 번 올림픽 선발전을 치러야 하는 것이다. 양궁 같은 경우는, 국가대표단 안에 쟁쟁한 선수들이 차고 넘치는 까닭에, 올림픽에서 금메달 따기보다 올림픽 선발전을 통과하는 게 더 어렵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선수층이 얇은 국가나, 종목들에서는 쿼터 획득자에게 이점을 주기도 하지만, 한국 사격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 또한 대외적인 얘기였고, 사실 선발전을 치르지 않고 암묵적으로 출전이 확정된 선수들이 분명 존재했다. 이현 역시 그랬다. 선발전을 구태여 치르지 않는 데에는 물론 그럴듯한 이유가 있었다. 압도적인 성적 차이로 다른 선수들의 사기를 꺾지 않기 위함이 그 표면적인 이유였다. 가뜩이나 올림픽을 앞두고 예민한 선수들의 자격지심과 허무함에 불을 지필 필요는 없었다.

이현의 월등한 커리어에 반발은 새어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새어 나오지 않았을 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쌓이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동료 선수들은 공평하지 못하다고 욕을 하면서도, 막상 실력 차이를 직접 보고 나면 열등감에 허덕였다. 이현이라고 어찌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다.

밝혀진다면 큰 논란을 불러일으킬 얘기였지만, 이현의 등장 이후, 사격 판 안에선 불문율이었다.

“너나 신경 써. 그 좁은 유도부 안에서도 다들 널 죽이고 싶어서 안달이던데. 성격이 얼마나 좆같으면 그러냐. 쥐도 새도 모르게 진짜 뒤지는 수가 있어 너.”

“왜. 또 누가 내 욕했어?”

지완은 흥미로운 눈으로 이현을 바라봤다. 안 죽게 조심하라는데 뭐가 그리 재밌는 건지. 지완의 눈이 반짝였다. 때마침 주문한 세트가 나오고, 둘 사이에 놓인 테이블 위가 가득 채워졌다.

잠시 둘 사이의 대화가 끊겼다. 가게 주인으로 보이는 나이 지긋한 노인이 불판 위에 조개를 쏟아부었다. 이현이 침을 꼴깍 삼키며 참X슬 병을 흔들었다. 손바닥에 축축한 차가움이 가득했다.

“말해봐. 이번에는 내가 또 뭘 조심해야 하는데, 이현아.”

“….”

“또 무슨 하찮은 걱정을 했을까.”

주인이 떠나자, 올라오는 열기가 뜨겁지도 않은지 지완이 이현 쪽으로 몸을 가까이했다. 말만 질문형이었지 얄궂게 웃고 있는 꼴은 대답을 바라는 것 같지도 않았다.

별 미친놈을 다 보겠네, 이현은 혀를 차며 제 잔에 술을 꼴꼴 채웠다. 잠깐 고민하다, 대답 대신 지완의 잔에도 술을 따랐다. 부상으로 마실 수 없다고 해도 동석한 상황에 예의상 따라 놓은 것이다.

지완은 차오르는 제 잔을 내려보다가, 상을 가로질러 긴 팔을 뻗었다. 이현은 술을 따르던 손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지완의 손이 이현의 턱을 감쌌기 때문이다. 손에 잡힌 술병의 냉기만큼 차가운 지완의 손에, 이현은 순간 움찔 떨었다. 큼지막한 손은 한 손 가득 이현의 얼굴을 쥐면서도 억세지 않았다.

이 새끼는 틈만 나면 불쑥 사람 얼굴을 잡고 지랄이야. 이현이 얼굴을 구겼다. 지완의 손가락에 잡힌 볼이 눌려, 볼살이 볼록하게 올라왔다. 지완은 그 모습을 보고 웃음을 얕게 터트리며 손을 떼어냈다. 씨발, 이현이 병뚜껑을 던졌다. 그 작은 병뚜껑은 지완의 얼굴을 맞고 볼품없이 떨어졌다. 이현은 제 볼을 벅벅 닦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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