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어디에? 제 인스타에요. 갑자기 왜? 형이 제일 잘 나온 걸로 올릴게요. 와 근데 형은 기본 캠으로 해도 잘 나오네요. 재수 없어요.
재민은 영문 모를 소리를 늘어놓으며 사진 고르기에 집중했다. 갑자기 인스타에 함께 찍은 사진을 올리겠다니? 세민에 대한 얘기인 줄 알았는데, 대체 무슨 일인지 알 턱이 없었다. 이현은 재민을 잠시 올려보다, 걸음을 마저 옮겼다. 모르겠고 밥이 먼저였다.
게시글을 올리느라 몇 발자국 뒤처졌던 재민이 금세 성큼한 걸음걸이로 이현을 따라잡았다. 뭐가 그리 뿌듯한지 소성을 실실 흘렸다.
“형, 이거 봐요. 이러면 해명이 좀 되겠죠.”
재민은 칭찬이라도 바라는 것처럼 의기양양해져 어깨를 으쓱거렸다. 재민이 인스타 계정에 방금 막 올린 게시글은 그 짧은 사이 ‘좋아요’가 만 단위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요즘 따라 툭하면 핸드폰 화면이 시야를 가린다. 이 작은 화면이 보여주는 세상은 시끄럽고 성가시기 짝이 없다. 이현이 작게 숨을 내쉬었다.
이재민 이 새끼, SNS 중독이야. 이현이 혀를 찼다. 대충 훑어본 화면에는 영 못마땅하게 웃고 있는 자신과, 눈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환하게 웃고 있는 재민이 얼굴을 딱 붙이고 있었다. 이현은 순간 눈살을 찌푸렸다.
skeet.jm #이현이현이랑 이제 형이랑 밥 먹으러 갑니다! 지완선배 없는 동안 이현이형 독차지하기 ㅋㅋㅋㅋ 지완 선배 보고 싶습니다. 얼른 돌아오세용 여러분 자꾸 이상한 말이 들리던데 형이랑 선배 아무 일도 없어요. 둘이 엄청 친해요 ㅎㅎ 근거 없는 루머 금지!
허…? 이현은 몇 줄 되지 않는 재민의 게시글을 보고 마른 얼굴을 쓸어내렸다. 아니, 뭔 대단한 수를 내나 했더니 고작 이거야? 그러나 재민은 가슴을 당당히 펴고 있었다. 아, 얘 진짜 바보 맞구나. 이현이 핸드폰을 들이밀고 있는 재민의 손을 가볍게 치웠다.
“밥이나 많이 먹어라. 넌 더 크는 게 좋겠다.”
“이거 아니에요?”
“그럼 맞겠냐?”
멀쑥한 얼굴을 한 재민을 향해 이현은 한 번 더, 그러나 이번에는 조금 더 깊은숨을 내쉬어야만 했다. 애가 착하긴 착한데…. 이현이 터덜터덜 다시 앞서 걷자 재민이 그 큰 덩치로 총총거리며 따라왔다. 본인의 지략에 대한 구차한 변호를 늘어놓으려는 듯싶었다. 이현이 검지를 올곧이 펴 제 입에 가져다 댔다.
입 다물고 밥이나 먹어. 입을 다물고 어떻게 밥을 먹어요, 형. 얘 점점 이상해지네.
이현의 무뚝뚝한 반응에 맥이 풀렸는지 재민의 입술이 샐그러졌다. 그 삐쭉한 명란젓 두 덩이는 잡아당기기 딱 좋게 생겼다. 그래도 저를 생각하는 그 행동이 귀여워 이번 한 번은 넘어가노라, 이현은 속으로 생각했다.
재민과 이현은 더 이상의 시간을 길 위에서 낭비하지 않고 속도를 높였다. 보통 밥을 먹으러 갈 때면, 근손실 걱정에 환장한 재민이 느긋한 이현을 끌고 가는 모양이었으나 오늘은 아니었다. 이현의 최애 메뉴, 도가니 수육이 나오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재민도 식사를 앞두고 무용한 투덜거림을 빠르게 거두었다.
*
그러나 재민이 작심하고 부린 귀여운 수작은 생각보다 큰 여파를 불러일으켰다. 재민의 글이 문제인 건 아니었고, 스포트라이트의 원인은….
skeet.jm #이현이현이랑 이제 형이랑 밥 먹으러 갑니다! 지완선배 없는 동안 이현이형 독차지하기 ㅋㅋㅋㅋ 지완 선배 보고 싶습니다. 얼른 돌아오세용 여러분 자꾸 이상한 말이 들리던데 형이랑 선배 아무 일도 없어요. 둘이 엄청 친해요 ㅎㅎ 근거 없는 루머 금지!
rnjswldhks 이현아 정말 아무 일도 없었어?
파란 배지를 옆에 단, 성의 없는 아이디의 주인은 말할 것도 없이 지완이었다.
“형…? 지완 선배가 댓글을 달았는데요?”
“뭐?”
“지완 선배 인스타 안 하지 않았어요? 만들어만 두고 협회가 관리한다고 들었는데?”
밥을 다 먹고 나와서 게시글을 다시 한 번 확인한 재민이, 화들짝 놀라며 이현에게 핸드폰을 건넸다. 그간 협회가 관리하여 온통 스폰십의 광고 글만 올려대던 지완의 계정으로 댓글이 달린 것이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이미 지완의 댓글에는 본 게시물의 좋아요 수를 훌쩍 뛰어넘는 하트가 박혀 있었고, 팬들의 답글도 어마어마하게 쌓이고 있었다. 재민은 지완의 덕분인지, 갑자기 훌쩍 늘어버린 팔로우 수에 당황할 겨를도 없었다. 지완의 댓글을 확인한 이현의 표정이 썩어들어 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rnjswldhks 이현아 정말 아무 일도 없었어?
“미친 새끼 아니야 이거?”
이현은 기가 차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저를 놀려먹는 지완의 조소 어린 음성이 텍스트에서 튀어나와 울려대는 것 같았다. 이현은 재민의 손에서 핸드폰을 빼앗아 들면서까지 몇 번이고 댓글을 다시 읽어 내렸다. 혼자 무슨 지랄을…. 이현은 재민이 제재할 틈도 없이 제 인생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키패드를 눌러댔다.
rnjswldhks 이현아 정말 아무 일도 없었어?
- skeet.jm 일은 뭔 일. 심심하냐?
일은 뭔 일. 이현은 네 글자만 떡하니 남기려다가 잠시 고민했다. 지랄 좀 하지 마, 라고 남기려다가 다시 지워내고, 씨발 새끼야 게이 프레임 씌우지 마, 라고 남기려다가 또 지워냈다. 다시 처음 썼던, 일은 뭔 일, 네 글자와 더불어 심심하냐? 한마디를 더했다.
전자의 말은 혹시나 불거질 게이설을 막기 위함이었고, 후자는 집에만 처박혀 있더니 정신이 나간 것인지, 평소라면 하지 않을 짓을 벌이는 지완을 향한 조롱이었다.
야무지게 스스로 하트까지 누르고 나서야 재민에게 핸드폰을 돌려주었다. 형! 제 계정으로 이렇게 남기시면 어떡해요! 핸드폰을 받아든 재민이 아연한 얼굴로 이현을 보챘다. 곧장 지워버리면 될 것이었으나, 이미 밑으로 수많은 팬들의 답글이 실시간으로 주르륵 달리고 있었다. 괜히 지웠다간 이상한 오해만 살 수도 있었다.
재민은 제 발등을 본인이 찍은 아찔한 상황에 눈을 꼭 감으며, 어색하게 한마디를 덧붙여야만 했다. 부디 지완이 오해를 하지 않기를 바라며. 찌질해 보여도 어쩔 수 없었다.
rnjswldhks 이현아 정말 아무 일도 없었어?
- skeet.jm 일은 뭔 일. 심심하냐?
- skeet.jm 이현이 형이 장난을 치네요 ㅎㅎ;;
댓글의 주인이 이현이라고 밝혀지자 팬들의 반응은 더욱 박차를 가했다. 둘 다 직접 인스타를 하지 않아 그동안 이런 SNS상의 교류는 전혀 볼 수 없던 것이다. 고작 한마디를 주고받은 것이었지만, 이미 둘의 댓글은 캡처로 박제되어 인터넷에 다급히 뿌려지고 있었다.
이현은 그런 것도 모르고 부른 배를 슥슥 매만지며 다시 훈련실로 향했다. 재민은 곤란한 듯 얼굴을 팍 구기고 있다가, 점점 늘어나는 댓글들을 보고 입꼬리를 움씰거렸다. 난감한 상황임에도 웃음이 슬슬 다시 기어 나왔다.
재민은 결국 한량처럼 느긋하게 앞서가는 이현을 불러 세웠다. 이현이 의중을 묻듯 고갯짓을 했다. 왜? 권지완이 지랄해?
“형 근데 이거 좀 웃긴데요. 팬들이 형이랑 선배를 무슨 커플처럼 엮어대네요? 이렇게 실시간으로 보는 건 처음이라 신기해.”
이번엔 이현이 목적 없는 짜증을 토했다. 밥 잘 먹고 기분 좋았는데.
“일일이 나한테 전하지 마. 네가 놀리고 싶은 거 다 안다.”
팬들의 반응이야, 아니, 팬이라고 칭하기에는 어폐가 있었지만, 뭐가 됐든 다른 건 몰라도 지완과 자신을 엮어대는 몇몇 대중들의 반응은 익숙해지려야 도무지 익숙해질 수가 없었다. 대체 어딜 봐서?
이현의 손끝 발끝이 부르르 오그라들었다. 담배나 하나 피우고 들어가야겠다. 이현이 방향을 틀었다. 여전히 뒤에서는 재민이 웃음을 흘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동시에 이현의 핸드폰이 짧게 여러 번 진동했다. 이현은 핸드폰을 확인하고 재차 목에 핏대를 세울 수밖에 없었다. 방금 막 꺼내든 담뱃갑이 볼품없이 잔뜩 구겨졌다. 담뱃갑 위에 새겨진, 발기부전의 원인 흡연! 그래도 피우시겠습니까? 따위의 금연 권장 문구가 함께 일그러졌다.
{응}
{그러니까 이현아}
{와서 운전 좀 해}
{멀리 가야 하니까 대리비는 많이 얹어 줄게} 오후 12:54
이현의 건강한 삶을 위협하는 건 흡연보다 지완이었다.
*
오후 12:57 {너 돈 많잖아. 택시 불러}
이현은 흡연 구역 벽에 등을 기대고 퉁명스레 답을 보냈다. 구겨진 담배라도 하나 입에 물까 하다가 미뤄두었다. 괜스레 화면에 떠오를 지완의 대답을 기다리게 되는 것이다.
지완도 카톡창을 계속 주시하고 있었는지, 이현이 답을 하자마자 1이 빠르게 사라졌다. 그러나 이번에도 답이 바로 오지는 않았다. 어두워지는 화면을 톡톡, 두드리며 이현이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갑자기 운전은 무슨 소리야.
{택시 기사가 알아보면?} 오후 1:05
꽁꽁 싸매면 너라는 거 아무도 몰라. 이현은 재차 지완을 타박하려다 잠시 주춤했다. 이현이 먼저 답을 보내기도 전에 지완이 다시 한 번 카톡을 울렸기 때문이다.
{혼자만 즐거워하니까 괘씸하네}
{누구 때문에 나는 팔병신 돼서 집에만 처박혀 있는데 말이야} 오후 1:08
오후 1:08 {내가 언제 즐거워했어?}
{이재민이랑 보기 좋던데} 오후 1:09
이현이 마른세수를 했다. 누가 봐도 강제로 사진이 찍히는 통에 부자연스럽다 못해 곤혹스러워 보이기까지 하는 그 사진을 보고, 대체 어떻게 하면 즐거워한다고 생각할 수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