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늦은 새벽임에도 불구하고, 가게 밖에는 SNS에서 퍼진 사진을 보고 알음알음 찾아온 이들이 몰려 있었다. 이현을 끌고 가는 지완과, 팔이 잡힌 채 졸졸 따라가는 이현의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웅성댔다. 이현은 무슨 연행되는 사람처럼 고개를 푹 숙였다. 술을 마셔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던 것뿐이다. 안타깝게도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얼핏 스캔들 기사에 실린 한 장면처럼 보인다는 게 문제였다.
지완은 가게 앞에 주차한 자차에 이현을 태웠다. 태웠다기보다 실었다는 표현이 더 맞겠다. 들듯이 끌어당겨 조수석에 처박았다. 지완은 선수촌에서 따로 출발했었다. 술을 입에 대지 않은 것도 차를 가지고 와서 그랬던 것일까.
권지완은 좆같아도, 이현은 편안하게 선수촌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를 얻어 내심 속으로 기뻐하고 있었다. 취한 척을 해야 하나? 잠시 고민하던 이현은 조수석 차창에 머리를 박았다. 어설픈 시도였다.
“이현아, 너 이미 술 다 깼잖아.”
“….”
“왜 취한 척해.”
“…권지완 차 좋네.”
지완이 이현을 비꼬며 빠르게 차를 출발시켰다. 안정적인 승차감에 몸의 긴장을 풀고 늘어지던 이현이 뜨끔하며 몸을 바싹 세웠다. 지완은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현은 당황한 속내를 감추며 허튼소리를 늘어놓았다.
지완의 차가 끝내주게 훌륭하긴 했다. 입꼬리를 들어 올려 어색한 미소를 띠어 보았으나 광대만 부들거릴 뿐이었다.
“병신.”
지완이 속도를 높였다. 한심하다는 듯, 지완이 혀를 차는 소리가 조용한 차 안에 낮게 흩어졌다. 이현도 억지로 올렸던 입가에 힘을 풀었다.
그 뒤로 차 안에는 정적이 흘렀다. 세민을 도발해대던 지완의 흥분도 이미 침전하듯 가라앉아 있었다. 주변 공기가 묵직했고, 젖었던 이현의 바지가 눅눅하게 마르며 찬기가 퍼졌다. 비싼 값을 하는 차는 그 어떤 소음도 만들어 내지 않았고, 침을 삼키는 것조차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단둘만의 공간에서 이현은 조용히 숨을 골랐다.
술을 마셔서 그런지 쌔액거리는 숨소리가 더 크게 울리는 것 같아, 이현은 창문을 내렸다. 도로를 가르는 바람 소리가 이현의 밭은 숨을 감춰 주었다. 이현은 혹여라도 지완을 힐끔대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귀신같은 놈이었다. 눈알이 또록또록 굴러가는 소리마저 잡아챌 새끼였다.
지완의 차에 타본 것은 당연히 처음이었다. 좁은 공간에 단둘만 함께 있어 본 적도 이번이 처음이었다. 심지어 엘리베이터도 단둘이 탄 적은 없었다. 적어도 이현이 기억하는 바에 따르면 그랬다.
무턱대고 편한 귀갓길에 좋아했던 이현은 난처함에 허적대야 했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찬 공기가 이현에게 남아 있던 미열마저 앗아갔다. 추위는 질색이었으나 쌀쌀함이 불쾌하지만은 않았다. 술 때문이다.
“…하세민 대체 뭐야? 걘 왜 그래? 난 기억나는 게 하나도 없는데.”
이현은 한참 동안 부유하던 정적을 깼다. 이대로 선수촌까지 가는 것도 고역이었다. 이렇게 된 김에 물을 건 묻고 가자.
아무리 봐도 세민과 지완의 사이에 있던 일에는 자신이 껴 있는 듯했다. ‘병신 스토커’, ‘오랜만에’, ‘다시 보니’, 지완과 세민의 입에서 나온 말들은 다분히 공교로웠다. 본인만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둘 사이에서 우왕좌왕 엮이는 것은 질색이었다.
“그렇겠지.”
아니나 다를까, 지완은 곱게 답을 주지 않았다. 단조로운 시선 한 줌도 주지 않은 채 무심히 앞만 볼 뿐이었다. 답답함이 울컥 치밀었다. 팔을 차창에 올리고 볼을 괴고 있는 지완의 모습이 퍽 심드렁해 보였다. 이현의 궁금함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것이다.
“누가 들어도 내 얘긴데, 그걸 나만 모르는 게 말이 되냐?”
“….”
“넌 왜 돌아왔어? 진짜 내가 하세민한테 따먹히기라도 할까 봐 돌아온 건 아니잖아.”
이현은 입에 담지 못할 말이라도 내뱉는 것처럼, 잠시 멈칫했으나 빠르게 간수했다.
“너 나보고 신경 끄라며. 근데 넌 왜 나서는데. 네가 이딴 식으로 나오는데 내가 뭘 어떻게 신경을 꺼? 너도 하세민이 존나 좆같아서 돌아온 거 아니야? 씨발 사람 찝찝하게.”
이현의 신경질적인 추궁에도 지완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다만 무엇인가 고심하듯 제 턱을 매만질 뿐이었다. 지완의 습관이었다. 종잡을 수 없는 생각에 빠질 때면, 본인의 눈썹이나 볼과 턱을 느릿하게 만지작거리곤 했다. 이현이 입술을 꽉 깨물었다.
“너 아무 말도 안 할….”
“이현아, 난 내 차에 누굴 태워본 적이 없어.”
“…뭐?”
“안 그래도 거슬리니까 그냥 닥치고 있으라는 말이야.”
“….”
“술 냄새 풍기는 것도 좆같은데 지금 내가 겨우 참고 있잖아.”
지완은 눈썹을 까딱이며 ‘봐준다’는 듯 굴었다. 더럽게 제멋대로다.
“그리고….”
지완이 얕은 한숨을 토했다. 한숨보다는 헛웃음에 가까웠으나, 피로가 잔뜩 배어 고단해 보이기도 했다. 낮게 깔리는 목소리로 지완이 덧붙였다.
“그렇게 궁금하면 네가 알아서 생각이란 걸 좀 해봐. 응? 내가 하나하나 다 떠먹여 줘야 해?”
“…야, 말은 똑바로 해. 뭐라도 떠먹여 주고 생색을 내야지. 이건 뭐 스무고개도 아니고.”
“원하는 대로만 생각하고 행동하고…. 원래 그랬잖아, 네 좆대로. 이번에도 그러고 넘어가면 되는 거 아니야? 너 편할 대로 해석해.”
지완이 액셀을 힘껏 밟으며 속도를 높였다. 들이닥치는 짜증을 정신 나간 스피드로 푸는 것처럼. 차는 급격히 올라가는 속도에도 평온한 안정감을 유지했지만, 창문을 통해 일어오는 날 선 바람이 아찔한 감각을 불러일으켰다. 권지완 이 새끼, 진짜 이러다 가드레일에 박지 않을까? 진천의 새벽 도로가 한가하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인 점이었다.
미약하게 남아 있는 술기운을 쥐어 짜내며 이현이 짜증을 토했다. 쌓인 억울함이 함께 터져 나왔다.
“권지완, 네가 나 좆같아 하는 건 알겠는데, 이번엔 좀 참아. 넌 뭐든 씨발 좀 참아 봐. 네가 계속 개같이 굴었어도 내가 그동안 다 참아줬으니까.”
“…이거 술 깬 게 아니네.”
“내가 뭘 내 좆대로 생각했는데? 내가 뭘 나 편할 대로 해석했는데?”
“하?”
“아니면 너 나 좋아해? 하세민이 아니라 네가 게이냐?”
“이게 술 처마시더니… 진짜 머리에 총 맞았나.”
지완이 기가 찬 듯 고개를 저었다. 이현 역시, 정말 뱉은 대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오직 지완을 자극하기 위함이었다. 사실 분에 취해 통제를 벗어난 혀가 제멋대로 지껄인 것도 한몫을 했다.
“내가 궁금해하는 것도 싫다, 이제 와서 같잖게 구는 것도 싫다, 평소처럼 좆같게만 굴어라…. 그러면서 너 왜 아까 하세민한테 지랄했냐고. 나한테 치대는 걸 왜 네가 지랄이야.”
“도와줘도 지랄이지?”
도와줘도 지랄이다, 이건 이현의 입에서나 나오던 소리였다. 그게 권지완 입에서 나오다니. 천지가 개벽하고 해가 서쪽에서 뜰 만큼 놀랄 일이었으나 좌우지간 그런 것을 따질 상황이 아니었다.
“도와줬으면 좀 제대로 알려주든가. 좆대로 끼어들고는 생색은 씨발.”
끼이익, 가격이 집값인 차가 도로 위에서 듣기 싫은 마찰음을 낼 정도로, 지완이 급격히 핸들을 꺾었다. 순식간에 한쪽 길가에 멈춰선 어두운 차 안에서, 지완이 그제서야 처음으로 이현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핸들을 꽉 부여잡는 지완의 손에 그 고약한 성질을 닮은 뼈대와 핏줄이 도드라졌다. 그러나 잠시였다. 지완이 몸에 힘을 풀며 나지막하게 말을 이었다.
“이현아, 네가 어울리지도 않게 별걸 다 신경 쓰니까 같잖은 거야. 갑자기? 이제 와서?”
“….”
“하세민 그 새끼가 아직도 너한테 매달려 있는 게 우습기도 하고….”
“권지완, 너 서론도 존나 길다.”
이현이 지완의 말을 끊으며 이죽거렸다. 어두운 새벽의 도로 위에는 몸값 비싼 차 한 대만 덩그러니 세워진 채 전조등을 깜빡거리고 있었다. 깜빡깜빡하는 붉은빛에 이현의 눈덩이도 감겼다 뜨기를 반복했다. 어둠 속에서 지완은 조금의 동요도 없이 빤히 이현만을 쳐다보고 있었다.
“걘 어떻게든 네 선수 인생 진흙탕에 처박고 싶어 했는데, 이현이가 너무 무심했지. 그게 더 억울한 일이거든.”
“….”
“생각하기 귀찮은 일은 다 내 탓 했잖아, 너. 하세민 기억도 못 하는 거 보고 난 맘이 좀 아팠어.”
지완이 눈썹을 축 아래로 내리며 제 가슴팍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렸다. 세민에게 퍽 연민이라도 느끼는 양 굴었지만, 실상 자리에 있지도 않은 그를 조롱하는 꼴이었다. 지완은 픽,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더니 얼굴을 갈무리했다. 다시 날 선 빛을 띤 지완의 입에서 이번엔 나른함과 지겨움으로 점철된 음성이 흘러나왔다.
“근데 이현아.”
“….”
“내려, 이제.”
목소리는 평온했으나, 나오는 말은 가당찮았다. 잘못 들었나? 이현은 얼굴을 구기며 되물어야 했다.
“뭐?”
“내리라고. 생각해보니까 내가 네 말대로 선 넘은 거 맞아. 내 실수야. 그니까 지금 정정한다고.”
“….”
“이젠 웃기지도 않고…. 널 차에 태운 내 잘못 맞으니까, 더 궁금한 거 있으면 하세민한테 가서 떠먹여 달라고 해. 빽빽대는 거 존나 시끄럽네.”
안 내려? 이어지는 지완의 말에 이현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진짜 내리라고 하다니? 이현은 당황스러움에 차창 밖의 주변을 둘러보았으나 진천의 새벽길은 어둠뿐이었다. 여전히 깜빡거리는 전조등만이 어두운 도로를 드문드문 밝히고 있었다. 심지어 지나가는 차도 한 대 없었다. 이현은 분위기가 싸해지는 것을 느꼈다. 좆 됐다. 여기서 버려지면 진짜 좆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