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화 (10/151)

#10

지완이 스캔들로 광고주에게 고소를 당했던 일. 섹스 스캔들이 터져 당시 지완이 맡고 있었던 명품 브랜드에서 해당 광고를 철회하고 지완에게 위약금을 물었던 적이 있었다. 지완이 깔끔하게 위약금을 배상하고 끝을 냈는데, 이후 상대 배우의 발칙하고 낯부끄러운 인터뷰가 화제가 됐다. 어이가 없게도 그 인터뷰를 통해 지완의 절륜함이 공공연하게 인정받는 꼴이 되어버려, 오히려 지완의 인기는 상승곡선을 탔다. 이걸 왜 이현이 기억하냐면, 그때 그 배우의 말이 인터넷에서 핫한 밈이 될 정도로 이슈가 됐기 때문이다.

‘한 번쯤 아찔하게 혼이 나고 싶었다. 난 그걸 이뤘다.’

3년 전 하계 올림픽.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이때도 지완은 비슷한 스캔들이 터졌었다. 올림픽 선수촌 안에는 콘돔이 통으로 이곳저곳 배치되는데, 누군가 지완이 이걸 매일매일, 한 움큼도 아니고 통째로! 들고 갔다며 인터넷에 글을 올린 것이다. 또 한편으론 기념 삼아 한두 개 챙기던 이현의 목격담이 나오면서, 정말 황당하게도 이현과 지완을 엮는 프레임이 다시 한번 뜨겁게 형성되기도 했었다. 끔찍한 나날이었다. 전자는 과장을 조금 보탠 사실인 듯했고, 후자는 당연히 개소리였다.

그 사이의 수많은 전지훈련들. 사격과 유도는 동계, 하계, 그리고 비정기적인 춘추 전지훈련을 종종 같이 떠났다. 가서는 훈련뿐만 아니라 사기 증진을 위해 선수단들끼리의 족구 내기나, 관련 없는 종목, 가령 축구 시합 같은 걸 열곤 했다. 굳이 기억하고 싶지 않다. 지완이 배구를 하다가 이현의 얼굴에 공을 맞혀, 이현이 그 자리에서 기절했던 좆같은 경험이 있다.

또 수많은 대회들. 지완과 이현은 늘 대회가 끝나면 상대방을 조롱하거나, 비꼬는 말을 인터뷰에서 덧붙이곤 했는데 사실 누가 먼저 시작한 건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다른 공식 석상에서는 모습을 잘 보이지도 않고, 나온들 입만 꾹 다물고 있으면서 꼭 이럴 땐 잊지 않고 으르렁대는 둘의 모습은 인터넷에서 늘 화제가 되었다. 지완은 즐겼고, 이현은 부들댔다. 누가 승자인지 여전히 이현만 몰랐다. 더욱 억울한 사실은, 늘 냉랭한 지완이 이현을 놀려대며 보이는 짓궂은 모습들이, 지완의 이질적인 매력 포인트라고 여겨지며 인기에 한몫을 한다는 것이다.

이현이 술을 처음 먹고 잔뜩 취해 신문 1면에 올랐던 일. 파파라치 앞에서 지완의 욕을 진탕 해버려 원치 않는 이목을 끌었다. 이건 더 떠올리고 싶지 않아서 패스.

7년 전 첫 올림픽. 유도는 사격보다 일정이 앞서, 이현은 ‘동갑내기 라이벌’이라고 칭해지는 지완의 금메달 소식을 경기 전에 접해야 했다. 그때 이현의 인터뷰는 아직까지도 회자가 되고 있다. ‘권지완은 노력이고 나는 타고난 편.’ 이현은 종종 자신이 한 말이 생각나, 자기 전에 이불을 찬다. 그때 이현이 금메달을 못 땄다면 어땠을까. 아마 혀 깨물고 죽지 않았을까.

선발전에 합격하고 지완에게 에어 라이플을 격발했던 일. 낮에 봤던 그 하얀 흉터가 떠오른다. 물론 알 바 아니다. 한번 신경 쓰기 시작하면 골치 아파지는 문제였다.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지완의 흡연 사실을 감독님께 일러바쳐 치고받고 싸웠던 일. 이현은 지금도 자신이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무리 운동 바닥에서 흔한 일이라고 해도, 미성년자가 흡연을 하는 건 명백히 잘못된 일이고, 이현은 투철한 신고 정신을 발휘했을 뿐이다. 지완은 그 일로 유도 감독님께 혹독한 기합을 받았고, 그대로 이현을 찾아와 길바닥에서 업어 쳤다. 그 뒤로는 개싸움이었다.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다. 당연히 이현이 더 크게 다쳤기 때문이다.

그렇게 우스운 사건 사고들을 끊임없이 떠올렸다. 기억해 내지 못한 것이 훨씬 많았다. 장장 19년째다. 지완의 말이 맞다면 5살 때부터 무려 21년째고.

그렇게 한참 과거를 역행하다가, 다섯 살까지 가지 못하고 이번에는 열두 살 즈음에 멈춰 섰다. 조소하던 이현의 마음이 사뭇 무겁게 가라앉았다. 아마 그즈음이 맞을 것이다.

둘 사이의 흐릿했던 적대감이 뚜렷한 윤곽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

그때가 10m 에어 라이플에서 50m 라이플로 넘어가던 때였다. 종목을 바꾸고 얼마 되지도 않아 초등학생인 이현은 ‘50m 라이플 복사’의 고등부 최고 기록을 깔끔히 갈아치워 버렸다. 그 일로 이곳저곳 불려 다니며 하루걸러 하루마다 인터뷰에 응하던 시기였다.

언제였더라.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그날도 아버지와 함께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장소는 기억이 난다. 교실이었다. 이현은 늘 그랬던 것처럼 가만히 앉아 아버지가 미리 알려준 대답만 따박따박 뱉어대고 있었다. 슬슬 피로가 몰려오고, 아버지와 기자, 감독이 나누는 어른들의 대화에 지겨워질 때쯤. 교실 문 쪽에서 흔들리던 인영의 존재를 알아차렸다.

교실 문틈으로 인터뷰를 보고 있던 건 바로 지완이었다. 종례 후 우연히 교실을 다시 찾은 것인지…. 당시 지완은 유도를 이제 막 시작했던 참이었다. 그랬던 걸로 기억한다.

어렸던 이현은 지완의 눈빛을 읽지 못했다. 본능적인 감각으로 꺼림칙함을 느꼈을 뿐이다. 지완이 그런 비슷한 얼굴을 할 때면 꼭 자신을 괴롭혔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으니까.

얼마간을 그렇게 대치하듯 마주하고 있다가, 지완은 자리를 떴다. 이현은 지완이 떠난 후에도 묘한 긴장감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일종의 경고 신호 같은 게 이현의 안에서 울리고 있었는데,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채기까지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인터뷰가 끝나고 이현이 짐을 챙기기 위해 훈련실 로커룸으로 들어갔을 땐, 이현의 사격복이 커터칼 따위에 의해 여러 방향으로 찢긴 채 소파 위에 놓여 있었다. 이미 10m 공기 소총에서 50m로 종목을 바꿨기에 이현은 이전의 사격복이 더 이상 필요 없는 상황이었지만, 그것은 명백한 경고이자 위협이었다. 멸시 어린 질투였고, 형편없는 복수였다. 이현의 이름이 새겨진 부분은 특히 더 갈기갈기 난도질 되어있었다.

아버지는 곧장 경찰에 연락을 취하고 학교 CCTV를 몽땅 돌려보는 등 그 범인을 찾기 위해 애를 썼으나, 밝히지 못했다. 이후에는 그런 일이 반복되지 않아 어영부영 넘어가게 되었다.

그러나 이현은 단박에 그 범인을 알 수 있었다. 이건 권지완이다. 권지완밖에 없다.

이현은 무서워하지도, 그렇다고 봐주지도 않았다. 기회를 봐 유도부에 몰래 들어가 똑같은 짓을 해주고 나왔다. 그리고 그때부터 둘의 신경질적인 탐색전도 끝이 났다. 서로 물고 뜯는 육탄전이 시작된 것이다.

물 위로 떨어진 잉크처럼 찝찝한 과거의 파편은 점점 자욱해져 이현의 머릿속을 온통 물들였다. 오랜 기억은 덮어두고 살기에 잊고 있었다. 지완은 성격이 더럽다. 거만하고, 자신밖에 모르고, 배려 따윈 없고, 이기적이다. 그러나 그것과는 다르다. 그 밑바닥에 깔렸던, 지금은 모르겠으나 어렸던 그때에는 선명했던, 그 근간에는 이현을 향한 경멸이 있었다. 오직 이현에게만 보였던 원색적인 혐오.

권지완, 넌 대체 왜 그렇게 날 싫어했어?

이현은 공연히 떠오르는 과거를 다시 한편에 묻어두며 담배를 챙겨 방을 나섰다. 이미 충분히 몸은 피로했지만 한 대를 피워 둬야 잠이 들 수 있을 것 같았다.

*

두 번째 촬영은 선수단을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이현이 속한 사격 선수팀이 먼저였는데, 이현은 촬영을 도와줄 사람으로 정연과 재민을 두고 고민하다 후자를 택했다. 굳이 같은 종목이 아니어도 상관이 없다기에 다른 팀을 떠올리기도 했지만…. 사실 친한 사람도 없었다.

이현도 대중들의 양가적인 관심을 모르지 않았다. 정연을 택했다면 괜한 연애설로 엮을 것이고, 다른 종목을 택했다면 선수단 내 불화설로 이어질 게 뻔했다. 굳이 가십거리를 내어주고 싶지 않았다.

“형, 제가 형이 힘들다고 할 때마다 업고 뛰어준 게 몇 번인데 이렇게….”

지목받은 재민은 뾰로통한 얼굴로 끌려왔다. 재민 역시 방송이라면 학을 떼는 타입이었다. 축구나 수영의 경우 아예 방송계로 진출하는 선수들이 많기만 하던데, 유독 사격부는 그런 방송계에 데면데면했다.

그러니까 한 번 더 도와줘. 뭐 해주실 건데요, 형. 밥 사줄게. 그건 선수 식당이 제일 맛있는데요. 그럼 술? 형이랑 무슨 재미로 술을 마셔요, 나만 취할 텐데. 그럼 그냥 해.

이현이 투덜대는 재민의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말은 이렇게 해도 재민은 막상 촬영에 들어가면 천상 연예인처럼 능숙하게 굴었다. 맡은 일은 최선을 다하는 타입. 어떻게 보면 팬 관리를 아주 잘하는 선수 중 하나였다. 재민은 SNS 관리도 열심히 했고, 잡지사의 화보나 인터뷰에도 자주 응해왔다.

사실 이현에게도 개인 CF 제안은 무수히 들어오고 있었다. 다만 카메라 앞에서 폼을 잡는 게 퍽 어색했고, 길거리 이곳저곳에 자신의 얼굴이 떡하니 붙어 있는 게 영 낯간지러워 받지 않았다. 그중에서 단 하나, 영국사 대형 쿠페 벤X리 광고만을 받아들였는데, 그조차 때마침 차를 뽑아야 했기에 겸사겸사 찍은 것뿐이었다. 기타의 스폰서 광고들은 다른 동료 선수들에게 미뤄두었다. 인터뷰까진 어찌 응한다고 해도, CF는 최악이다.

이 일로 광고계에서는 이현이 몸값을 불리려 한다는 악질적인 헛소문이 돌았으나, 이현은 조금도 신경 쓰지 않고 그 차를 사 년째 몰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