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화 (5/151)

#5

담뱃갑 속 몇 남지 않은 연초를 꺼내 물었다. 가스가 얼마 없는 라이터는 몇 번이나 흔들고 나서야 겨우 불이 붙었다. 타는 말단을 바라보며 깊게 들이마셨고, 동시에 뱉어지는 담배 연기만큼의 해소를 누렸다. 근데 얇은 거 진짜 더럽게 안 빨리네. 이현이 투덜거렸다.

이현이 마저 필터를 빨아들이며 주위를 살폈다. 굳이 감독님에게 이 모습을 들키고 싶지는 않았다. 몸 상태 회복에 전념해야 할 때에, 허튼짓이나 한다며 잔소리가 이역만리까지 쌓일 게 뻔했다. 뒷담에 모여서 담배를 몰래 피우던 고등학생처럼 이현이 멋없게 주변을 기웃거리다, 다가오는 인영의 발견하고 얼굴을 구겼다.

권지완. 누가 봐도 지완이었다.

“타이밍 한번 기가 막히네.”

이현은 지완과 맞담배질이나 하며 하하호호할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다급히 담배를 끄고 일어나려 했으나… 손가락 사이에서 아직 타들어 가는 담배를 차마 버릴 수 없었다. 이현이 버릴지 말지 머뭇거리는 동안 어느새 지완은 바로 앞까지 와있었다. 모르겠다. 이현은 고민을 접고 시선을 돌렸다.

지완도 멀리서부터 이현을 알아본 것인지, 굳은 표정이었다. 지완은 그저 이현을 한 번 흘기고는 담배를 꺼내 물었다.

칙, 칙, 라이터 소리를 제외하고 둘 사이는 적막이었다. 이미 한참 전 뜬 아침 해가 눈이 부시게 비춰오고 있었다. 드문드문 들려오는 훈련 기합 소리가 그 정적인 적막을 메웠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둘은 그렇게 바닥만을 응시하며 각자 연초를 태웠다. 세어보니 대략 3, 4개월 만에 마주한 것이었다. 경기 중계는 봤어도 서로의 일정 때문에 직접 맞닥뜨릴 일이 없었다. 차라리 그게 나았다.

얼굴만 마주쳐도 시비를 걸어대던 지완도 오늘은 조용했다. 둘 다 서로에게 발톱을 세울 만한 체력이 남아 있지 않았다.

“채이현.”

묘하게 둘 사이를 부유하던 긴장감을 깨트리며, 낮게 가라앉은 지완의 목소리가 드리웠다. 오늘은 왜 시비 안 거나 했다. 이현은 속으로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들었다. 지완이 피로에 잠식되어 조금은 몽롱한 눈으로 이현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너 왜 담배 피워. 끊었잖아.”

지완은 말과 함께 다시 한번 연초를 빨아들였다. 살짝 볼이 파였다가 벌어진 입술 사이로 연기가 부옇게 빠져나왔다. 지완의 붉은 입술과 하얀 연기가 대비되어 그 색감이 더 선명했다.

어느새 이현의 담배는 거의 다 타들어 가고 필터 부분만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이현이 몽땅한 연초를 비벼 끄곤, 자리에서 일어서며 응수했다.

“네가 뭔 상관이야. 너야말로 아직도 안 끊었냐? 투기 종목 국대면서 책임 의식 같은 건 없지.”

말하는 이현도 순간 뜨끔했다. 그러나 금연하기 위해 나름 노력하는 사격 선수와 골초인 유도선수와는 결이 다르다고 합리화를 해댔다. 가끔가다 한 번 피우는 건 니코틴 패치 정도라고 치자.

“앵앵대지 마, 이현아. 머리 울려.”

“권지완, 네가 말 건 거야. 그냥 입 다물고 있지 그랬냐. 지금 너 때문에 나까지 괜히 귀찮은 일 맡게 생겼는데….”

울컥한 이현이 이번에는 지완을 몰아붙였다. 지완은 그런 이현의 말을 무시하며 제 머리만 쓸어넘기고 있었다. 지완은 지끈한 두통이 찾아오는지, 관자놀이를 꾹꾹 눌러댔다. 다른 한 손으로는 여전히 담배를 가만가만 태우면서. 퍽 웃기는 그림이었다.

“이현아, 네가 파이널 가서 동메달 말고 금메달 따냈으면 거절할 수 있는 일이었잖아. 아니야? 응? 그게 온전히 다 내 탓이야?”

“….”

“지금 이렇게 연습 안 하고 담배나 피우고 있을 때가 아니지 않아?”

지완이 나른하게 조롱하며 허리를 숙여 이현과 시선을 맞췄다. 순간 가까워진 얼굴에 이현은 질겁하며 몸을 뒤로 뺐으나, 지완은 아랑곳하지 않고 멀어진 만큼 더 다가왔다.

지완의 긴 손가락이 이현의 가슴팍을 툭툭 건드렸다. 제 얼굴 쪽으로 뱉어지는 담배 연기에 이현은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그런 이현을 보며 지완은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마치 이현을 놀려대듯 그 앞에서 지완은 담배를 빠끔, 피워댈 뿐이었다.

우습게도 이현은 그 모습에 침을 삼켰다. 저도 모르게 그런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조차 지완의 손끝에서 타들어 가는 저 담배가 너무 맛있어 보이는 게 문제였다. 얇은 0.1mg짜리 담배로는 답답한 속이 뚫리지 않았다. 흡연 욕구만 더 애태울 뿐이었다.

“….”

이현의 눈이 빠르게 담뱃갑이 들어있는 지완의 바지 주머니를 훑었다. 지완은 그 시선을 놓치지 않았다.

“한 대 더 피우고 싶어? 정신 못 차렸네. 몸 관리해서 금메달 따야지, 채 선수. 나만 응원하고 있을 게 아니라.”

얼핏 들으면 다감한 걱정 같았으나, 본질은 비아냥이었다. 응원 영상이 이현의 자의가 아님을 충분히 알고 있을 텐데도 이딴 식으로 이현의 약을 올리는 것이다. 이현은 모르지 않았다.

네가 할 소리냐? 하며 대응하려다 짧은 한숨으로 대신했다. 이현도 여간 피곤한 게 아니었다. 지금도 손발이 미적지근하게 저려오고 있었다.

그래 너나 실컷 피우다 폐암 걸려 뒤져라, 그냥. 이현이 심드렁하게 지껄였다. 잠기운에 잔뜩 잠긴 목소리였다.

그런 이현을 지완이 묘한 눈빛으로 훑어 내렸다. 어딘가 맘에 들지 않는 것 같기도 했고… 이현은 지완의 눈빛을 읽어내는 것도 관두었다. 괜히 더 피곤한 시비에 얽히고 싶지 않았다.

이현은 지완을 한 번 흘기고는 뒤돌아 자리를 떠나려 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하게도 지완의 손이 이현을 붙잡았다. 그 단단한 팔에 어울리지 않는 부드러움이었다.

“비원?”

지완은 이현에게 제 담뱃갑을 살짝 흔들어 보였다. 내뱉는 말은 의문형이었다. 비원 시가 NO.3, 괜찮겠어? 하며, 이현의 동의를 묻는 듯했다.

이현이 그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고 주춤거리자, 지완이 제 손에서 짧게 타들어 간 담배를 비벼 껐다. 다시 담뱃갑을 열어 하나를 자신의 입에 물고, 담배 한 개비를 이현의 입 쪽으로 내밀었다. 이현은 떨떠름하게 입으로 받아 물었다. 손으로 받을걸, 지금 나 뭐 한 거지? 따위의 때늦은 후회가 밀려왔다. 다 졸린 탓이다. 이현은 그럴듯한 핑계를 찾았다.

코끝을 스쳐 갔던 지완의 손에선 담배 냄새가 살짝 배어 나왔다. 궐련 담배 중 향이 가장 강한 종류다.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같은 담배를 물고 있는 이현의 입술에도 그새 비슷한 향이 퍼지고 있었다.

불을 붙이려 라이터를 흔들면서 이현이 잽싼 눈으로 지완을 곁눈질했다. 이미 불을 붙인 지완은 허공을 바라보며 또 한 번의 호흡을 내뱉고 있었다. 수상할 건 없어 보였다. 뭐가 됐든…, 지금은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이현은 자신의 스트레스 주범이 건네는 손가락 마디의 작은 해방을 받아들였다.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이후 둘은 한마디의 대화도 없이 그 시간을 담담히 공유했다. 녹진한 피로가 가져다준 이례적인 평화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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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무하고 은밀하게 이루어졌던 흡연 구역의 평화휴전은 담배 연기가 흩어짐과 동시에 자취를 감췄다.

운동선수는 괜히 운동선수가 아니었고, 국가대표는 괜히 국가대표가 아니었다. 이현과 지완은 빠르게 컨디션을 회복하고 훈련을 재개했다. 물론 아침 훈련도 예외는 없었다.

보통 선수촌 선수들은 아침 6시부터 한 시간 정도 체력 훈련을 실시하는데, 대부분의 종목 선수들이 모여 트랙을 돌았다. 모자를 푹 눌러쓰고 겨우 눈만 뜬 온갖 선수들의 비몽사몽하는 모습을 다 볼 수 있는 자리였다.

“형, 저기 유도부 애들 모여 있네요. 오늘도 각 잡고 뛰나 봐요.”

이때는 굳이 같은 종목 선수들끼리 함께 모여 뛸 필요가 없었지만, 재민은 늘 이현의 옆으로 와 속도를 맞추곤 했다.

재민아, 내가 유도부만 보면 발작하는 애로 보여? 놀리냐? 그런 건 아닌데요, 좀 재밌긴 해요. 아침부터 뭐라는 거야, 정신 차리고 뛰기나 해. 네, 저 먼저 앞서가겠습니다.

재민은 시답지 않은 소리를 하고는 속도를 올려 이현을 앞섰다. 이현은 청정한 아침 공기를 한껏 들이마셨다. 물기 어린 촉촉한 공기가 폐 안 가득 차오르는 느낌이 나름 기분을 고취시켰다.

이현이 상기되는 감각을 한껏 누리는 그 찰나에, 저 멀리서 몸을 풀던 지완과 눈이 마주쳤다. 늦여름의 부신 아침 햇살이 지완을 조명하고 있었다.

몸에 딱 맞는 얇은 검은색 반팔 운동복과 조금은 짧고 널널한 쇼츠. 꾹 눌러쓴 검은 야구 모자 아래로 지완의 곧은 얼굴이 보였다.

지완은 확실히 미남이었다. 아니 굳이 구분하자면 놀랍게도 미인 쪽에 가까웠다. 언뜻 냉담해 보이기도 하고 단호해 보이기도 하는 그 외모는, 이국적이면서도 위력적이었다. 설익거나 우락부락한 주변 선수들 사이에서 무척 능란한 얼굴을 하는 지완에겐, 사뭇 정숙하고 금욕적인 분위기마저 풍겼다. 물론 실제 행실은 영 딴판이었지만.

둘의 눈빛이 허공에서 얽혔다. 어제 흡연 밀담의 여파인지 모르겠으나, 어쨌든 공교로운 찰나였다. 그것도 잠시였다. 짧은 눈 맞춤은 이현이 뜀박질로 거리를 넓힘으로써 끝이 났다. 시선은 자연스레 거두어졌다. 재민이 때맞춰 속도를 늦추며 다시 이현의 옆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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