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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ATHLETES TO THE LINE
<드디어 세계 유도 선수권 대회 남자 90kg급 결승! 권지완 선수가 출전 준비를 마쳤습니다. 또 한 번 한국에 새로운 금메달을 안겨줄 것이라 믿습니다. WRL 세계 랭킹 1위의 늠름한 모습이 보이네요.>
<네, 물론입니다. 백색 도복의 권지완 선수 대 청색 도복의 브라질 선수, 피터슨 테이먼드 입니다. 각각 세계 랭킹 1위와 5위를 차지하고 있는 무시무시한 선수들이죠. 경기가 시작됩니다! 다행히도 몸놀림이 가벼워 보입니다, 우리 권지완 선수.>
그러니까 이현은 처음부터 지완과 맞지 않았다.
<이번에 경기 일정이 고됐죠? 권지완 선수, 지금 다섯 경기째 업어치기 한판승으로 깔끔하게 밀어붙이고 있는데요, 조심해야 합니다. 상대 선수 피터슨도 주특기가 업어치기 아닙니까? 창과 창의 대결이죠.>
<맞습니다. 아, 이때 권지완 선수의 업어치기! 공격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권지완 선수입니다! 안타깝게도 점수로 연결되진 않았습니다. 권지완 선수, 좀만 더 적극적으로 밀어붙일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만만한 상대가 아니거든요.>
이현이 기억하는 지완과의 첫 만남은 7살쯤이었다.
이현은 타고난 천재였다. 처음부터, 이현이 기억하고 있는 그 첫 순간부터 이현은 방아쇠를 당기고 있었다. 이현의 소질을 일찍부터 알아본 아버지 덕분에 줄곧 사격 외길인생이었다.
종목은 10m 에어 피스톨에서 10m 에어 라이플로 바뀌었고, 그러다 50m 라이플에 정착하게 되었으나 어찌 됐든 이현의 눈은 언제나 가늠자와 가늠쇠를 통해 세상을 바라봐 왔다. 굽은 곳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직선의 시야.
<두 선수 모두 업어치기가 주특기기 때문에 옷깃을 뺏기지 않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죠. 아, 잠시 심판이 경기를 중단시킵니다. 심판이 피터슨 선수에게 ‘지도’를 줬네요! 피터슨 선수가 소극적인 플레이를 했다는 판정입니다.>
<그렇습니다. 적극적으로 임하기 쉽지 않겠죠. 아무래도 상대가 권지완 선수니까 말입니다. 그러나 이번 경기는 권지완 선수에게도 쉽지 않아 보이죠? 전 경기들과는 다르게 쏜살같이 파고들지 않고 있어요. 기회를 봅니다.>
그 조준선 끝에 서 있던 권지완은 항상 재수가 없었다.
태성제약의 임원으로서 매번 권지완 부자에게 굽실거리는 제 아버지의 모습도 맘에 들지 않았지만, 무엇보다 지완의 안하무인하고 거만한 태도가 아니꼬웠다. 권지완은 태생이 그랬다. 뭐든 그 새끼 발밑에 있었다.
고작 7살 주제에 지랄 맞았던 그 눈. 그 말투, 그 태도. 뭐가 그리 재밌는지 지완은 틈만 나면 이현을 괴롭히고 상처 냈다. 이현은 언제나 지완의 그 두 눈을 향해 조준하는 상상을 했다. 어린 마음의 치기였다.
<아, 이때 피터슨! 빗당겨치기로 공격하나 권지완 선수-! 잘 방어했습니다! 확실히 결승전입니다. 권지완 선수에게 손도 못 대고 당하기만 했던 선수들과는 달라요! 권지완 선수, 틈을 보여선 안 됩니다. 피터슨 선수는 저 빗당겨치기로 결승에 올라온 선수죠. 무서운 기술입니다.>
<피터슨이 ‘지도’를 받은 이후에 공격적인 모습을 계속 보이고 있습니다. 아, 이때 또다시 피터슨! 빗당겨치기를 시도합니다! 심판이 경기를 중지시키네요. 아… 이번에는 권지완 선수가 ‘지도’를 받습니다. 권지완 선수, 치고 나가야 합니다.>
지완은 이현의 모든 것을 갈취하려 했다.
이현에게 붙은 ‘천재’, ‘신동’같은 꼬리표가 맘에 들지 않았는지, 지완은 이현이 주목받기 시작할 때쯤 돌연 운동을 시작했다. 회사를 물려받을 유일한 외동아들이 운동의 길을 선언했을 때, 그 집안은 한 번 난리가 났었다. 어떤 종목을 하겠다, 도 아니었다. 그냥 운동을 하겠다, 이거였다.
지완은 태권도를 잠시 했다가, 펜싱과 레슬링을 맛보고, 결국 유도에 정착했다. 행운인지 우연인지 모르겠으나 지완은 꽤 재능이 있었고, 이후 지완과 이현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가 되어 버렸다. 이현에겐 불행이었다.
<경기 시간은 20초가량 남았는데, 양 선수 모두 ‘지도’한 장씩을 받은 상황에서 스코어가 나지 않고 있습니다. 집중해야 합니다! 아 또다시 피터슨의 업어치기 시도! 조심해야죠, 권지완 선수!>
<그래도 잘 막았습니다! 경기가 쉽지 않아요. 시간은 5초가 남았습니다. 양 선수 모두 체력적인 소모가 엄청난 것 같습니다. 아! 대한민국의 권지완! 기술 들어갔습니다! 밭다리후리기!>
서로의 수상 소식은 끊임없이 들려왔고 둘은 경쟁하듯 온갖 대회에서 상을 휩쓸었다. 이현은 질 수 없었다. 이것마저 지완에게 뺏길 수는 없다. 수식어를 하나씩 하나씩 공유하게 될 때마다 이현은 독한 마음을 아로새겼다. 지완은 이현의 재능에 불을 지폈다.
승리의 여신은 이현의 편이었고, 동시에 이현의 편이 아니었다. 그녀는 어린 이현을 달래듯, 그리고는 다시 우롱하듯, 이현과 지완의 손을 모두 잡아 주었다. 어째서 손은 두 개일까?
7년 전 올림픽을 준비하며 지완과 이현은 동시에 국가대표 선발전에 합격했다. 네 거품도 곧 빠지겠지. 선발전에 합격한 날, 지완이 이현에게 건넨 첫마디였다.
깔보는 눈빛, 이현은 몸서리를 쳤다. 더 싫어할 사람을 꼽자면 그건 자신이었다. 꿈까지 훔쳐 먹듯 자신을 따라 질퍽하고 비겁하게 이 길에 들어온 주제에, 지완은 그 개 같은 태도를 바꾸지 않았다.
<한판! 한판! 한판입니다! 심판이 한판을 선언합니다!>
<금메달! 권지완 선수, 이번에도 이변 없이 금메달을 얻어냅니다! 5초를 남겨둔 상황에서 연장을 허용하지 않고 승부를 내는 대한민국의 권지완 선수! 대단합니다!>
레버 제쳐, 탁.
한발 넣고, 툭.
단발 사격, 탕.
그래서 결국 쏴버렸다.
죽이려고 쏜 건 아니었고 그냥 참을 수 없었다. 권지완이 너무 괘씸해서. 그 잘난 낯짝을 꼴 보기 싫어서. 국가대표 선발전에 동시에 합격한 그날, 이현은 지완을 쐈다.
<피터슨의 집중력이 흐려지자마자 파고들었어요! 역시 천잽니다. 기회를 놓치지 않아요. 이전 경기들에선 경기 시간 4분을 다 사용하지 않았는데, 결승을 위한 이벤트였을까요? 손에 땀을 쥐는 경기였습니다!>
<한판으로 세계 유도 선수권 대회 남자 90kg급 금메달은 대한민국의 권지완 선수로 결정됩니다! 한판을 받아낸 명장면 다시 보시죠! 대한민국의 보물입니다!>
10m 공기 소총. 지완의 쇄골엔 아직도 살을 파고든 연지탄의 흉터가 남아있다.
*
<…네, 이제 시상대에 오릅니다. 당당하게 올라가는 권지….>
“…형! 이현이 형!”
미친…! 난데없이 뒤에서 자신의 어깨를 잡아채는 손길에 놀라, 이현이 소스라치며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형, 대체 뭘 듣고 있는 거예요? 한참 불렀는데.”
재민이었다. 이현은 갑작스러운 손길의 주인을 알아차리고 놀란 마음을 진정시켰다. 이어폰에선 지완이 시상대 위에 올라 애국가가 흘러나오고 있는 참이었다. 이현은 천천히 이어폰을 빼냈다.
“아, 미안해요, 형. 놀래려던 건 아니었는데. 하하.”
재민은 멋쩍게 웃으며 여전히 주저앉아 있는 이현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현은 그 손을 잡고 뻐근한 몸을 일으켜 세웠으나, 밀려오는 통증에 인상을 한껏 찌푸려야만 했다. 고작 넘어진 것 때문에 이렇게까지 호된 건 아닌 듯했다. 온몸이 저리고 근육마저 떨려대는 것을 보아, 여태 계속 무리를 한 결과 같았다.
“근데 형, 휴가 아니었어요? 왜 여기 있어요? 멀리서 보고 형이랑 닮았네…, 하고 있었는데 진짜 형인 거예요. 형 잡으려고 저 엄청 뛰었다니까요.”
“훈련실에 있다가 답답해서 좀 뛰었어. 근데 지금 몇 시냐? 나 얼마나 뛴 거지? 미쳤다. 이것 봐, 나 지금 다리 엄청 후들거려.”
이현의 팔다리는 눈에 보일 만큼 덜덜 떨리고 있었다. 그걸 자각하지도 못하고 지금껏 트랙을 돌고 있던 이현의 미련함에, 재민은 얕은 웃음을 흘렸다.
“휴가가 며칠이나 된다고 그새 나와서 훈련을 해요, 형. 천재들은 다 이래요? 이거 재수 없다고 해도 되는 거죠?”
“야, 재민아. 잠시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나 지금 진짜 못 걷겠어. 일단 좀 앉자. 트랙에서 나와 봐. 멀리도 못 갈 거 같으니까 잔디로.”
이현은 진심으로 괴로웠다. 재민의 장난스러운 놀림을 받아줄 여유는 없었다. 이 정도까지 뺑뺑이를 달린 건 청소년 국가대표 후보단 이후로 처음이었다. 어느덧 시간도 꽤 많이 흘러 이미 해가 지고 있었다. 이현은 그조차도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쓸데없는 생각들로 지난날을 반추하느라 정신이 완전히 홀린 탓이다.
이현이 후들거리는 다리로 트랙을 한 걸음씩 벗어났다. 혹여 이현이 쓰러질까, 재민은 그 뒤를 따라가며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다행히 이현은 트랙 위에서 두 번이나 쓰러지는 볼품없는 꼴을 보이진 않았다.
“형, 맞다. 이번에 메달 딴 거 축하해요. 카톡 보냈는데 이번에도 또 확인 안 했죠? 너무하십니다…. 훈련 복귀했으면서 연락도 안 하고….”
이현이 먼저 잔디 위로 털썩 주저앉았고, 재민이 투덜대며 그 옆에 자리했다. 재민은 울상을 지으며 퍽 귀여운 얼굴을 했다.
이재민, 클레이 사격 남자 스키트 국가대표로, 그 역시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동메달을 따낸 유망주였다. 이현의 키도 작지 않았지만, 재민은 그보다 지나치게 컸다. 덩치도 크고, 권총이나 소총도 아닌 산탄총을 휘두르는 주제에 하는 짓은 곰살맞았다. 종목은 달랐지만 이현은 붙임성 좋은 재민을 맘에 들어 했다. 이현의 몇 없는 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