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00. Prologue
“미친 새끼….”
이현은 얼굴이 시뻘게진 채 TV 화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어찌나 온몸에 힘을 줬는지 리모컨을 잡고 있던 손은 힘줄이 돋아 푸르뎅뎅할 정도였다.
[권지완, 25세, 190cm, 89kg, B형, 태성제약 외동아들, 대한민국 국가대표 유도선수, 수상 경력 : 올림픽 유도 -90kg급 금메달리스트 / 세계 유도 선수권 대회 -90kg급 금메달리스트 / 파리 그랜드슬램 국제유도대회 -90kg급 은메달리스트 / …]
이름만 검색해도 온갖 정보가 줄줄이 떴고, 하루가 멀다 하고 실검에는 지완의 이름이 올라왔다. 기본적인 신상은 물론이고 취미, 특기부터 시작해서 별자리, 발 사이즈, 이상형, 심지어 대학 시절 성적까지. 그의 모든 것은 주목받고 있었다.
권지완. 그는 현재 대한민국에서 연예인보다 더 뜨거운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스포츠 스타 중 하나였고, 동시에….
<이번 유도협회의 비리 사태 때문에 한국은 아주 시끄러운데요. 권지완 선수는 이 일에 대해서 하실 말씀 없으십니까?>
<없는데요.>
<아… 하하. 그렇군요. 그러나 이번 일이 대회를 앞둔 권지완 선수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진 않을까, 대중들의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이번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예상하시나요?>
<누가 질 생각 하고 경기합니까. 결과는 해 봐야 알겠죠.>
<하하! 역시 솔직하시네요. 마지막으로, 채이현 선수가 응원 영상을 보냈습니다. 두 분은 어렸을 때부터 친구였다죠? 조금은 아쉬운 성적으로 대회를 끝낸, 고생한 채이현 선수에게 답장 한 말씀 해주시죠.>
TV 속, 짧은 인터뷰 내내 무심하고 냉랭했던 지완의 눈빛은 이현의 이름이 나오자 묘한 열기를 띠었다. 날카로워 보이기도 했고, 음흉해 보이기도 했으며, 흥미로운 장난감을 건네받은 어린아이같이 짓궂어 보이기도 했다.
<아, 채이현 선수…. 요새 성적 안 좋아서 자꾸 내 이름 팔고 이목 좀 돌려보려는 것 같은데. 이현아, 시간 있으면 연습이나 해. 폼 엉망이더라. 그래서 올림픽 나갈 수 있겠어?>
권지완, 그는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 메이커였다.
-- xx. xx. xx. 실시간 검색어 순위 --
1. 권지완
2. 채이현
3. 유도협회 비리
4. 권지완 채이현
5. 권지완 인터뷰
6. ISSF 월드컵 파이널
7. 권지완 인스타
8. 세계 유도 선수권 대회
9. …
카톡, 카톡, 카톡….
삽시에 실검은 그의 인터뷰 내용으로 도배됐다. 그와 동시에 저를 약 올리듯 끊임없이 울려대는 핸드폰을 노려보다, 이현은 들고 있던 리모컨을 냅다 던졌다. 캉! 귀를 찌르는 시끄러운 소리와 함께 리모컨이 TV에 부딪혔고, 액정에 금이 가 TV 화면이 몇 번이나 끔뻑거렸다.
“권지완… 이 씹새끼가?”
권지완, 채이현. 그들 덕분에 진천선수촌의 바람은 잘 날이 없었다.
*
이현은 억울했다. 이현 역시 지완과 더는 엮이고 싶지 않았고, 할 수만 있다면 지난 20년의 끈을 싹둑 잘라내 버리고 싶었다.
다만 협회 차원에서 자꾸 지완과 자신을 세트 상품처럼 묶어 판매하려고 안달이 나 있어, 이현은 어쩔 수 없이 끌려다닐 뿐이었다. 물론 협회도 그럴 만한 것이, 이현과 지완은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핫한 한 쌍의 스포츠 스타로, 근 10년째 꾸준히 각광 받고 있었다. 매 순간 몸집이 불어나는 돈 덩이인 것이다.
서로 다른 종목의 선수들이 대체 왜? 그건 7년 전으로 돌아가야 한다.
7년 전 하계 올림픽 이후 지완과 이현은 순식간에 스타덤에 올랐고, 이들에겐 엄청난 관심이 쏟아졌다.
처음 참가한 올림픽에서 남자 50m 소총 복사 금메달, 남자 50m 소총 3자세 금메달을 모두 휩쓴 이현과, -90kg 체급에서 금메달을 얻어낸 지완은 당시 18살의 나이로 스포츠계를 뒤흔들었다.
현재는 올림픽에서 사라진 50m 소총 복사 경기는, 그 많은 경기들 중에서도 단연 최고라 일컬어질 만했다. 엘리미네이션 형식으로 진행되는 사격 결선에서 이현은 이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였던 제이슨 안델과 단둘이 남았고, 마지막의 마지막인 슛오프를 통해 만점 10.9점을 얻어내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세계가 혜성 같은 천재의 등장에 눈이 뒤집히는 순간이었다.
지완도 마찬가지였다. 결승의 업어치기 한판승은 유도 역사에 길이 남을 장면으로 평가되며 전 세계를 뜨겁게 달궜다.
이후 지완과 이현은 나가는 대회마다 놀라운 성적을 거둬가며 각자의 분야에서 압도적인 명성을 쌓아 올렸다. 두 번째로 출전한 3년 전 하계 올림픽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현은 이례적인 점수 차로 금메달 두 개를 쟁취해 냈으며, 지완은 그해 유도 세계랭킹 WRL 1위를 기록하며 금메달을 놓치지 않았다.
그리고 또다시 다가오는 올림픽을 1년 앞둔 현재, 지완은 세계선수권 대회를 위해 일본에 가 있었고, 이현은 뮌헨에서 ISSF 월드컵 파이널을 치르고 며칠 전 한국으로 돌아왔다.
지완이 이현에게 빈정대는 이유는, 이현이 파이널 마지막 라운드에서 전무한 실수를 남겼기 때문이었다. 이현은 처음 겪는 컨디션 난조 때문이라고 여겼으나 언론은 ‘천재의 실수? 추락의 시작…’, ‘믿었던 천재 사격 선수 채이현의 배신’, ‘1년 남은 올림픽, 사격은 이대로 괜찮은가?’와 같은 자극적인 기사를 쏟아냈다. 천재라는 것도 피곤한 일이었다.
“그러니까 씨발 내가 응원 영상 찍기 싫다고 했는데….”
TAKE YOUR POSITION. (사격 준비)
사격 훈련장 안에서 삐- 하는 신호와 함께 구령이 울려 퍼졌다. 이현은 끓어오르는 분노를 삭여가며 팔을 더 밀착시켰다.
지완과 이현이 유명한 건 비단 실력 때문만은 아니었다. 운동선수라기엔 지나치게 매력적인 외모와 어렸을 때부터 함께 커온 ‘운동 천재 소꿉친구’라는 프레임이 크게 한몫을 했다.
더군다나 공식 석상에서 자꾸만 서로 날을 세우고 다녔더니, ‘투닥거리는 영원한 동갑내기 라이벌’ 따위의 말도 안 되는 이미지까지 덧씌워져 이현을 아주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이현은 진실로 지완과 얽히고 싶지 않았지만, 발악을 하면 할수록 하늘이 이현을 조롱하듯 더 엮이고야 말았다. 서로의 언급을 그만둔다면 혹시 모를 일이었으나, 싸가지 없는 지완이 이렇게 먼저 도발을 해올 때면 이현도 차마 가만히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는 것이다.
FOR THE FIRST COMPETITION SERIES… LOAD. (본사 첫 시리즈… 실탄 장전)
START. (사격 개시)
탕- 탕- 탕- 탕-
구령과 동시에 슬사 자세의 이현이 흔들림 없이 4발을 연달아 격발했다.
10.7, 10.7, 10.8, 10.8.
계기판에 뜬 점수는 나쁘지 않았고, 마지막 한 발은 시간이 꽤 여유로웠다. 200초 안에 다섯 발을 쏴야 하는 상황에서 남은 건 60초가량. 이현은 입술을 축이며 표적에 몰두했다. 초점은 5mm의 안쪽 원을 차분하게 조준했다.
폼 엉망이더라. 그래서 올림픽 나가겠어? 순간 재수 없게도 이현의 머릿속에서 지완의 인터뷰가 다시금 재생됐다. 이죽거리던 입꼬리, 명백한 도발 어린 눈빛. 이현의 집중력이 흩어지며 과녁의 경계선이 흐려질 듯 흔들렸다. 이현은 눈을 깜빡이는 대신 습관처럼 어금니를 아득 깨물었다. 턱관절에 저릿한 압박이 가해지며 뚜렷한 시야를 확보한 이현이 다시금 표적을 겨냥했다. 호흡을 멈추고.
탕-
10.9.
“엉망은 무슨. 지랄을 하네.”
잠시의 동요가 우습게도 결과는 깔끔한 만점이었다. 이현은 지금쯤 세계 선수권 대회에 참가하고 있을 지완을 향해 조소했다. 참았던 숨이 고른 박자로 진정되고 있었다.
STOP.
FOR THE NEXT COMPETITION SERIES… LOAD. (본사 다음 시리즈… 실탄 장전)
훈련장엔 다음 구령이 울려 퍼졌다. 이현은 다시 두 번째 시리즈 준비에 들어갔다.
그런 이현과 지완을 아는지 모르는지 여전히 인터넷에서는 둘에 관한 자료들이 사방팔방 돌아다녔고, 말도 안 되는, 그러나 혹시 모를 추측들이 이리저리 퍼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