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Epilogue~
그날의 하늘은 세상에서 태어나 가장 새파란 색이었다고 기억한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 아래 바람이 적당히 살랑거리며 장내에 모인 사람들의 더위를 식혀주었다. 한자리에 모인 사람들의 눈은 앞으로의 기대에 반짝이고 있었다. 주인공들이 없음에도 맑은 하늘 아래로 끊임없이 꽃종이가 뿌려지고 식장 주위에는 반짝이는 빛 무리들이 한가득 자리 잡고 있었다. 낮에도 보일 정도로 환한 빛 무리는 마법사들의 역작이었다.
장식되어 있는 꽃들에서 나는 향기가 온 식장을 덮었다. 황궁의 너른 뜰을 통째로 사용한 이 화려한 결혼식장은 어느 황제도 가지지 못한 규모였다.
이제는 로윈의 왕이 된 로렌이 얼떨떨해 놀랄 정도였다.
“원래 황제의 결혼식이라는 것이 이렇게 화려한가요?”
“아니. 이번이 유별나다고 하더라고.”
“대단하네요.”
“그야 내가 대단하니까. 사실 모자란 감도 있어.”
“좀 많이 모자란 것 같네요.”
라엘은 화려하고 복잡한 예복을 입고 있었다. 그 위를 보석으로 장식하고 잠자리 날개 같은, 반짝이며 투명한 보석 달린 망토를 이리저리 대보던 시종들이 ‘그렇죠!’하고 맞장구를 쳤다.
로렌은 뿌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벌써 시종들을 모두 장악하다니 역시 형님은 대단해! 새 형님도 이전의 형님만큼이나 대단해서 뿌듯하다는…… 부단장 입장에서는 잘못된 생각을 로렌이 하고 있었다. 그는 요즘 라엘이 다니엘보다 더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금실과 은실로 화려하게 놓아진 자수 사이로 보석이 알알이 박혀 반짝이고 있었다. 실루엣에 따라 자연스럽게 늘어진 자수들은 라엘의 날씬한 허리를 더욱 돋보이게 만들었다. 책으로 미리 살펴본 황제의 예복보다 더욱 화려한 라엘의 예복을 보며 로렌은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사랑받고 있구나.
머리를 한쪽으로 잘 넘기고 화려한 보석으로 고정시켰다. 머리에 고정된 보석 아래로 투명한 천이 늘어졌다. 망토보다 더 얇은 반투명한 천은 어떻게 보면 면사포 같았지만 신부의 것 같지는 않았다. 잘생긴 그와 어울리는 우아한 천은 역시 화려하게 은실과 보석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아마 야외의 식장에서 햇빛을 받으면 라엘은 빛 무리 가운데 서 있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라엘은 거울을 보며 만족했다. 살짝 화장한 얼굴은 그렇지 않아도 잘난 얼굴을 더 잘나게 자체발광 시키고 있었다. 완벽했다!
“역시 대단해.”
“본바탕이 워낙 좋으셔야죠!”
“그렇지? 나도 그렇게 생각해.”
시종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어 목걸이와 귀걸이를 채웠다. 라엘이 허락하자 망토를 채운다. 언뜻 보기에는 가벼워 보이는 반짝이는 망토였지만 그것을 옮기려고 남자 시종이 두 명이나 붙어서 와야 했다. 금은 자수에 보석이 주렁주렁 매달린 망토는 무겁기 그지없었다. 라엘이 거울 앞에서 움직이자 망토를 잡기 위해 시종들이 붙었지만 그는 손을 저어 거절했다.
천천히 걷기 시작하자, 음. 역시 나는 대단해! 혼자 걸을만했다. 히죽 웃으며 홀로 천천히 걸어가자 시종들이 주변에서 박수를 쳤다. 역시 라엘 님은 대단하세요!
“어때? 혼자 걸어서 들어가면 더 멋있겠지?”
“물론입니다! 황제 폐하도 잊힐 정도로 멋있습니다!”
정말로 문밖에서는 레온이 잊힌 채로 문에 기대어 있었다. 보…… 보고 싶다, 라엘의 신부복……. 신부라기보다는 너무 신랑 같은 옷이었지만.
라엘의 방문 앞에서 기웃거리던 레온은 순식간에 시종들에게 연행됐다. 오늘만큼은 시종들의 날이었고 문 앞을 기웃거리며 이미 완성된 옷매무새를 흩트려 놓았다는 이유로 레온은 다시 거울 앞에 서서 괴로운 시간을 보내야 했다. 결국 라엘의 치장한 모습을 전혀 보지 못한 레온은 한숨만 푹푹 내쉬었다.
“이따 볼 건데 대체 뭐가 문제세요!”
“난 1분 1초라도 라엘이 내 눈앞에 없는 것이 싫단 말이다!”
아니 이 황제가 정말! 시종들은 가자미눈을 뜨며 숙덕였다. 역시 폐하께 황비마마는 아까운 존재였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신경을 쓰지 않을 뿐인 것인지 레온은 시종일관 시무룩한 표정을 거두지 못했다. 머릿속으로 오늘의 라엘이 얼마나 아름다울지 상상하고 있었고 시종들은 역시 황제 정도가 되면 이 정도로 비범하게 뻔뻔해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몇 차례 더 탈출을 감행한 레온이었지만 라엘을 다시 본 곳은 결국 식장이었다. 그는 라엘을 보자 넋이 나간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걸 알아볼 수 있는 것이 라엘 정도라서 다행이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그는 아주 객관적으로,
“잘생겼네요.”
“……라엘, 나 기절할 것 같아.”
“왜인지 이유를 알 것 같지만 말하지 말아주세요.”
“네가 너무 아름다워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어.”
“……말하지 말라니까 진짜 말 안 듣네요.”
“이렇게 아름다운 네가 내 곁에 선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아.”
“영영 없던 일로 만들기 전에 입 닥쳐요.”
레온은 잽싸게 입을 다물었다.
황홀함에 정신을 놓은 레온은 정신상태만 뺀다면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모습이었다. 잠자리처럼 하늘하늘하게 밝은 색을 사용하고 보석과 꽃으로 주로 장식한 라엘의 예복과는 다르게 레온의 예복은 묵직한 모양새였다. 보석도 큼직하고 더 차분한 색을 사용한 무게감 있는 예복을 걸친 레온은 마치 천상에서 내려온 군신과도 같은 위엄이 있었고 그렇지 않아도 잘생긴 얼굴이 오늘따라 더 잘생겨 보였다. 평소의 수수한 레온의 차림도 좋았지만 보석으로 장식된 옷을 입고 치장을 한 레온은 음……. 그래, 역대 최고로 잘생긴 것 같았다.
라엘은 만족하여 미소를 지었다. 이 정도면 여자 대신 결혼할 맛이 났다. 안쪽의 상태는 상한 것 같았지만 그 정도 하자는 봐줄 수 있을 정도로 레온은 참 잘생겼다. 라엘은 씩 웃으며 팔을 살짝 흔들었다.
“팔짱 끼게 팔 내놔요.”
“응!”
그날 결혼식장에서는 신랑(황제)이 신부(황비)의 팔을 붙잡고 들어가는 기이한 장면이 펼쳐졌다. 하지만 아무도 그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신의 앞에 부부가 됨을 서약한 후 라엘의 머리 위로 묵직한 왕관이 올려졌고 홀이 쥐여졌다. 라엘은 솔직히 당황했다. 미리 살펴본 일반적인 황비의 것과는 다른 왕관이었다. 심지어 황제의 왕관이라고 해도 전혀 하자가 없을 것 같은 느낌적 느낌이 들었다. 이거 왜 결혼식을 치르고 황비가 되는 기분이 아니라 황제가 되기 위한 대관식을 치르는 기분이죠?
예상치 못한 상황에 혼란스러워진 라엘을 더없이 사랑스럽다는 눈으로 바라보던 레온이 그새를 참지 못하고 기어코 라엘의 입술에 뽀뽀를 했다. 뭐 하는 거야! 아직 그 타이밍 아니거든요! 저기서 아직도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이 잘생긴 미친놈이! 왜 입술 쪽을 시전하고 난리야! 키스 정도는 해야지!
라엘은 레온의 뒷덜미를 잡아 끌어당겨 진하게 키스를 했고 주변에는 와-하는 함성소리가 들렸다. 성황은 꿋꿋하게 두 부부에게 축언을 내리고 있었다.
남자끼리의 결혼식이라니 상상도 한 적이 없었고, 쓰인 왕관이 황제의 것인지 황비의 것인지 헷갈리고, 뭔가 성황이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지만……. 라엘은 눈앞의 레온에게 집중하기로 했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럽게 미친 남자가 눈앞에 있었고 그 남자는 이제부터 합법적으로 자신의 것이었다. 이걸로 충분하지 않을까?
많은 순간 엇갈리고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마음이 해진 적도 있었고 분노하고 증오했던 적도 분명히 있었다. 하지만 결국 둘은 처음부터 끝까지 서로를 사랑했고 지금은 그 사랑이 형태가 되어 결실을 맺는 순간이었다. 이 과정에 이르기까지 주변에 어마어마한 민폐를 끼친 기분이지만……. 그냥 기분 탓이라고 하자!
지금까지 겪었던 일은 모두 시작을 위해서라고 생각했다. 이제부터 긴 시간을 행복해지기 위해 함께 노력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라엘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남자에게 다시 키스했다.
- The En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