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감정의 이름 ~Name of Emotions~
기묘한 느낌이 들었다.
라엘은 피로에 찌들어 뻣뻣하게 굳은 몸을 억지로 움직여 품 안의 작은 수정구슬을 꺼냈다. 잘 떠지지 않는 눈을 억지로 떠서 구슬을 보자 영락없이 다니엘이 통신을 요청하고 있었다. 쓸데없이 성능 좋은 통신 기구는 짜증을 불러일으킨다. 진동모드도 아닌, 굳이 말하자면 무음모드인 알림이었지만 상대방이 통신을 요청하면 그 사실을 자연스럽게 알 수 있는 물건이었다. 하나의 수정을 다듬어 두 개의 수정구로 만든 후 마법을 덧씌운 아주 비쌀뿐더러 구하기도 어려운 이것은 이 세계의 무전기쯤 되는 물건이었다. 두 사람에게는 꼭 필요한 것이라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었지만 아무리 비싼 물건이라도 잠을 방해받는 타당한 이유를 만들어주지는 못했다.
“……뭔데요.”
“야, 야아! 급해! 완전히 큰일 났어!”
“그 큰일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혼자 해결해 주시면 안 될까요? 반란 진압 어제 끝난 거 못 들으셨어요? 저 제대로 자는 거 열흘 만…….”
“……라엘? ……자? 자냐고!”
정말로 피곤하다. 궁에서 황제의 어마어마한 어택을 피해 일단 용병단 라엘 모드로 돌아왔지만 이쪽도 바쁘기는 마찬가지였다. 반란을 진압하는 군사로 고용된 용병단을 고용주는 비싼 값만큼 알차게 부려먹었다. 제 용병단의 고용 단가가 시가보다 높은 것을 충분히 아는 라엘은 열심히 일했다. 그나마 정신공격이 없으니 살 것 같다며 반란군을 상대로 스트레스 해소를 열심히 했고 덕분에 기분도 조금 나아졌다. 그렇게 진압 후 뒤처리까지 끝낸 것이 바로 어제였고 이 잠자리는 근 열흘 만의 제대로 된 잠자리였다.
몸이 부서질 것 같았다. 그런데도 왕궁에 있을 때보다 마음이 편하니까, 그냥 편하다.
라엘의 목소리가 뚝 끊기자 수정구 너머의 목소리가 급박해졌다. 짜증을 일으키는 목소리였다. 아, 목소리는 똑같다고 했던가. 더 짜증나.
“진짜 큰일이란 말이야!”
“…….”
“자지 마! 안 돼! 일어나!”
“……미친…….”
평소라면 곯아떨어진 라엘에게 욕이나 몇 번 하고 통신을 끊었을 다니엘이었는데 오늘따라 끈질기다. 다니엘이 라엘의 이름을 계속 부르자 결국 그는 잠들지 못하고 일어났다. 이건 뭐, 전원을 꺼둘 수도 없고! 어째서 마법이냐고! 수정구냐고! 핸드폰 좋잖아, 응!? 기왕이면 기술문명이 발전된 곳이면, 응!? 부스스한 머리를 제대로 수습하지도 못한 채 겨우 몸을 일으켜 앉아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내 팔자야…….
“깼어!? 깼어!?”
“……깼는데 잠깐만요……. 왕자님 목소리가 한 귀로 들어오고 한 귀로 나가요.”
“아니, 빨리 정신 차려야 해!”
“대체 무슨 일인데 그래요. 일단 말이나 해 보세요.”
“아, 아……. 아……. 미친!!”
“말이 아니라 욕 같은데요.”
잔뜩 흥분하여 펄펄 뛰는 것이 수정구 너머로 느껴진다. 성격이 지랄맞긴 하지만 제 감정을 컨트롤하는 것만큼은 자유로운 다니엘이 이 정도로 흥분하는 일은 드물었다. 정말로 큰일은 큰일인가 싶어 어서 말해보라 채근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은 정신을 번쩍 들게 하는 것이었다.
“……뭐라구요? 다시 말 좀…….”
“아아악! 진짜 미친 게 틀림없어!”
“지금 상황으로는 제가 미친 것 같기도 하니까 다시 한 번만 말해주세요.”
수정구 건너편에서 호흡을 고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이어 또박또박 한 글자씩 들려오는 단어들은 조금 전 라엘이 들은 것이 절대로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시켜 주었다.
“황제가 나와의 하룻밤을 사고 싶다고 했어.”
이런 미친.
라엘은 벌떡 몸을 일으켜 앉았다. 잠이 홀딱 깬다.
결국 한달음에 왕궁으로 돌아와야 했다. 길드의 온 마법사를 총출동시킨 덕분에 대륙 반대편에서 로윈까지 도착하는 것이 채 사흘도 걸리지 않았다. 얼마나 당황했는지 안에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도 확인하지 않고 벌컥 비밀통로 문을 열어젖힌 라엘의 눈에 나라 잃은 표정의 다니엘이 보였다.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의자에 넋을 놓고 앉아 늘어져 있었다.
“왕자님!”
“……라, 라엘……!”
“수정구가 고장 났다고 해줘요! 제가 잘못 들은 거라고 해주세요!!”
“……그랬으면 좋겠다…….”
푹 무너지는 다니엘의 어깨를 붙잡고 미친 듯이 흔들었다. 결 좋은 검은 머리가 힘없는 모가지와 함께 흔들렸고 금세 산발이 되었다.
“황제가 미쳤데요!? 어떻게 그딴 말을 대놓고……!”
“……나한테 바로 한 것도 아니야…….”
“네?”
“아바마마가…… 세상…… 무너진…… 표정으로…….”
“미쳤어!”
어떻게 아버지에게 제 아들과 하룻밤을 보내게 해달라고 말할 수 있는 거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애초에 같은 남자를 원하는 것부터가 그랬지만 그건 특이한 성벽으로 넘어가 줄 수 있다. 하지만 어떻게 아버지를 포주로 삼으려는 그런 악독한 생각을 할 수가 있나! 라엘은 손을 부들부들 떨며 이를 악물었다.
“그래서 대가는 뭔데요?”
세상에 어떤 아비가 제 아들을 남자에게 팔아먹으려 하겠는가. 무능하다, 무능하다, 농담처럼 외지만 그 무능함이 상냥함에서 기인한 만큼 왕은 다니엘을 아끼고 사랑한다. 그가 다니엘의 몸을 팔아넘기는 제안에 쉽게 납득했을 리가 없다. 그는 무능한 만큼 아들에게 해가 되는 모든 것들을 정치적 영향 따위 생각하지 않고 단호하게 거절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결국 다니엘에게 말을 전했다는 것은 그 대가가 그야말로 어마어마하다는 것일 테지. 그리고 그런 엄청난 대가이기 때문에 다니엘도 쉽게 결정하지 못하고 라엘을 부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다니엘의 목소리가 떨린다.
“다섯별에 대한 모피 독점 무역권. 그를 위한 해로 이용권한이 10년, 무료로.”
“……정말로 미쳤어.”
다섯별이라면 제국의 주요 무역도시 다섯을 하나로 이르는 별명이었다. 그 어마어마한 도시들에 한 품목의 완전 독점 무역권이라니……. 게다가 그중 셋은 해상무역도시였고 그곳으로 가는 해로는 제국해군에 의해 철저하게 관리되고 있었다. 안전한 만큼 그곳을 지나기 위해서는 어마어마한 세금을 지불해야 했지만 그것을 내고도 이득이 더 크게 남기 때문에 많은 상인들이 이용하고 있는 곳이다. 그런데 그것마저 무료라니. 하룻밤의 몸값치고는 너무 크다. 황제는 절대로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한 것이다.
“미쳤는데 똑똑하게 미친 것 같아서 억울해요.”
“황제급으로 미친다는 것은 이 정도 스케일인 것 같다.”
방 안의 한숨은 두 사람 분으로 늘어났다.
고민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사실 결론은 하나뿐이었다.
“제가 황제와 밤을 보내죠.”
“……괜찮겠어?”
“괜찮지 않으면 어쩌겠어요. 그렇다고 이런 기회를 내버릴 수도 없잖아요.”
다시 한숨이 깊어진다.
솔직히 말하자면 다니엘은 이 이야기를 꺼낼 때부터 라엘이 저 대신 황제에게 안길 것이라고 이야기할 것을 알고 있었다. 라엘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저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꺼낸 것이 ‘네가 대신 밤을 보내라.’라고 강요한 것만 같아 마음이 불편하다. 다니엘의 이마를 찡그렸다. 오랫동안 그를 대한 라엘이었기에 어렵지 않게 그의 생각을 알아차렸다.
“그날, 왕자님께서 구해주시지 않았다면 전 그 후로 어떻게 됐을지 모릅니다.”
“……라엘.”
“죽었을지도 모르고, 아니 차라리 죽는 게 나을 정도로 더 지독한 일을 당했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솔직히 이런 제안은 처음이 아닙니다.”
몇 달 되지도 않았던 뒷골목 생활이었지만 그것은 세상에서 태어나 겪었던 일 중에서 가장 지독한 경험들뿐이었다. 살기 힘들다며 입버릇처럼 외며 지내왔던 이전의 세계와 이곳은 전혀 달랐다. 아무것도 없는 채로 홀로 뚝 떨어진 그에게 이곳은 사막이고 정글이었다. 빵 한 조각을 얻는 것이 금을 얻는 것보다 어려웠고, 알량한 친절에 기대어 근근이 생을 이어나갔다.
그 과정에는 분명히 번들거리는 눈으로 제 몸을 뜯어먹고자 노리는 무리들도 있었다. 체격이며 힘이 좋아 그들의 뜻대로 되지 않았을 뿐, 그마저도 없었다면 아무 기반도 없는 주제에 얼굴은 고운 그가 먹잇감이 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다니엘이 거둬주지 않았더라면 체력으로 버티는 것도 한계에 다다랐을 것이다.
라엘이 다니엘에게 감사하는 마음은 진심이었다. 정말로. 라엘은 어깨를 으쓱였다.
“왕자님의 그림자인 제가 어두운 부분을 맡는 것을 당연한 일이 아닙니까?”
납득하기 힘든 변태적인 요구를 받았음에도 라엘은 웃었다. 당신은 내 은인이니 이 정도는 아무 일도 아니라며 웃는 그에게 다니엘의 가슴이 아프게 반응한다.
라엘은 저를 향한 충심과 고마움으로 움직이고 있었지만 다니엘은 그를 단순히 신하나 부하 중 한 사람으로 대하고자 한 적은 없었다. 그를 만난 후 마치 잃어버린 형제를 찾은 듯한 기쁨을 맛보았다. 영혼으로 이어진 쌍둥이. 다른 이의 배를 빌려 다른 세계에서 태어난 한 존재는 아닐까. 마치 신이 내려준 선물과도 같이. 다니엘에게 라엘은 분명히 그러한 존재이다. 그런 이유로 봄날 날뛰는 망아지인 양 제멋대로인 다니엘이 라엘에게만은 한 수 접고 들어가는 것이었다. 물론 라엘은 모르고, 너무 비밀이라 다니엘 스스로도 모른다.
“……라엘.”
울컥 솟아오르는 벅찬 감정을 멈추지 못한 다니엘은 라엘을 껴안았다. 그리고 딱 3초가 지났다.
“어어헉!”
“징그러워!”
감동은 감동이고 징그러운 것은 징그러운 거다.
영혼의 쌍둥이고 뭐고 남자랑 껴안는 것은…… 아니다. 징그러…….
“크윽……!”
레온은 비명을 삼키며 몸을 벌떡 일으켰다.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부끄러움과 쪽팔림이 온몸을 휘감고 이제는 오한까지 든다. 대체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왕자와의 하룻밤을 사고 싶소.”
왕에게 제 입으로 했던 말을 지금이라도 과거로 돌아가 취소하고 싶었다. 없던 일로 하고 싶었다. 그 시간의 자신의 멱살을 붙잡고 ‘정신 차려, 멍청아!’라고 외치고 싶었다. 그러나 시간을 되돌릴 수 있을 리 만무하다. 명언이 있지 않는가. 후회는 아무리 빨리 해도 늦는다고.
그날 그의 제안을 들은 왕은 굉장히 난처해했고 당황했고 황망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때만큼은 자신이 황제라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왕은 제 아들들을 굉장히 아끼는 이였고 본래라면 이딴 제안을 받는 순간 레온은 멱살이 잡히고 엉망진창으로 얻어맞은 후 궁 밖으로 던져져야 옳았다. 하지만 제국의 황제를 그리할 수는 없었기에 왕은 입술 끝만 부들부들 떨었고 황당함에 말을 잇지 못했다.
레온은 기왕 뻔뻔한 김에 끝까지 그 뻔뻔함을 이어나가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그 앞에서 애원했다. 자신이 정신 나간 제안을 하고 있음을 충분히 알고 있고 하지만 이런 말을 꺼낼 수밖에 없을 정도로 그를 원하며 그것을 위해서는 어떤 대가라도 치를 수 있다 하였다. 그저 단 하루의 추억이면 된다. 그 이후로는 어떤 형태로든 그를 그리지도, 이러한 제안이 다시 오지도 않을 것이라 말했다.
구구절절하고 절실하게 이야기를 했지만 그것이 얼마나 자신을 구질구질하게 보이게 만들었을지는 충분히 안다. 하지만 다니엘에게 한순간이라도 제 흔적을 남겨 기억의 한구석에라도 자신의 존재를 심어놓고 싶었다. 제 몸이 그에게 한순간이라도 닿기를 바랐다. 그래서 다섯별에 관한 제안을 했다. 그가 내민 대가를 들은 왕의 눈이 커졌다. 분노와 난처함이 섞인 눈으로 황제를 바라보던 눈이 온전히 당혹스러움으로 덮였다.
“상상도 하지 못한 엄청난 대가입니다. 결코 거절할 수 없는 조건을 이야기하셨고, 또 폐하께서 어느 정도로 제 아들을 원하는지는 알겠습니다.”
하지만 왕은 고개를 저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저는 아들의 의사를 무시하고 일을 진행할 수는 없습니다. 본래라면 이런 제안은 처음부터 받아들이지도 않았겠지만 폐하께서는 저를 참으로 난처하게 만드시는군요.”
“미안하오.”
“제게 미안해하실 것은 없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무능한 아비라도 자식을 팔아넘기는 포주가 되고 싶지는 않습니다. 국정에 관한 부분은 이미 내 아들이 맡고 있으니 이런 부분을 혼자 결정할 수는 없겠죠. 그에게 묻겠습니다.”
“아…….”
“모든 것은 내 아들이 결정할 것입니다. 폐하께서는 다니엘의 답을 기다리십시오.”
피로한 표정으로 이제는 나가달라 부탁하는 왕의 말대로 방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지금이 되었다.
레온은 발치께에 밀려나 있는 구멍 난 이불을 신경질적으로 발로 찼다. 도저히 부끄러워서 잠을 잘 수가 없다. 낮에는 그나마 괜찮지만 밤이 오면 증상은 더욱 심해졌다.
왕에게 이야기를 꺼낸 후로는 다니엘을 만나러 가지 않았다. 이불을 발로 차며 부끄러워하는 것만으로도 바빴고, 그를 만나러 갈 뻔뻔함도 이제 그에게는 없었다. 쉽게 돌아올 대답은 아니었다. 그리 알고 기다리고는 있었지만……. 기다리는 동안 레온은 이불을 몇 장이나 갈기갈기 찢어놓거나 구멍을 뚫어놔 교체를 해야 했다. 남아나는 이불이 없을 정도로 부끄러웠다, 너무나!
가장 부끄러웠던 것은 그 제안을 본인에게 직접 할 용기도 없어서 그 아비에게 했다는 것이었다. 세상에 그 어떤 아비가 제 아들을 포주처럼 팔아넘기려 하겠는가. 자신의 대가에 혹하여 그러마, 하고 대답하기라도 할 것을 기대한 것일까. 그가 왕의 말을 듣고 수긍할 것이라 생각했을까. 잠깐 돌아버린 것이 분명하다.
차라리 마음으로만 그를 품어야 했다. 첫날 보았던 그 미소들을 추억으로 남기고 평생 그저 품속에서만 그를 그리고 안아야 했다. 홀로 아프고 괴로웠겠지만 그에게 자신의 존재를 이런 식으로 마무리 짓지는 않았을 것이다. 귀찮은 황제일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독특한 추억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이미 말은 쏟아졌고 왕이 다니엘에게 제 제안을 이야기하고도 남을 시간이 됐다. 게다가 이제 와서 그 말을 취소하기에는 이미 다니엘을 향한 자신의 욕망이 너무나도 커져서 주체할 수 없었다. 성적인 욕망보다 큰 것은 그를 품고 싶고 그리고 싶은 마음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이렇게라도 그를 취해 단 한 순간이라도 제 것으로 하고 싶었다.
레온은 심호흡을 내쉬며 침대머리에 기대앉았다. 며칠을 부끄러워하고 미친 짓이라며 자신을 다독인 결과 그는 욕망 사이에 묻혀있던 이지를 겨우겨우 찾아낼 수 있었다. 그리고 결심했다. 다니엘을 품고 싶었지만 그가 자신을 혐오하는 것은 더욱더 참을 수 없었다. 차라리 좋은 추억으로 남기자. 황제의 미친 발작이었다고 생각하도록 하고 그에게 더 이상의 나쁜 기억은 남기지 말자고 생각했다.
며칠 밤을 새워서 내린 결론이었다. 다니엘이 거절한다면 그것을 받아들이기로. 아니, 그 이전에 그에게 직접 가서 그런 제한은 없었던 일로 해달라고 하고 그저 순수하게 제 마음을 고백하자. 제가 그에게 어떤 마음을 품고 있는지 그것만을 알아주면 그래도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다시는 만나지 못하겠지만 그저 그 사실만으로 그는 움직일 수 있었다. 개중에서는 가장 현명한 선택지이기도 했다.
한심한 자신을 책하며 레온이 밖으로 나갈 준비를 하는데 시종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왕자님께서 폐하를 뵙기를 청하십니다.”
“나가겠다!”
당장에 벌컥 문을 열고 뛰쳐나가는 황제를 시종이 애타게 불렀다.
“폐하, 신발은!!!!”
조금 전의 결심이 무색하게도 그의 이름에 격하게 반응하는 레온이었다.
다니엘-라엘은 응접실에서 레온을 기다리며 찻잔만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항상 레온이 먼저 찾아갔었기 때문에 그가 이렇게 자신을 기다리는 일은 처음이었다. 이 상황이 너무나도 떨렸지만 한편으로는 두렵기도 하여 레온은 문을 열었음에도 머뭇거리며 안으로 쉽사리 들어가지를 못했다.
“간밤에는 강녕하셨습니까.”
전혀 강녕하지는 못했지만 레온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앞으로 가서 앉았다. 다행히도 시종이 레온의 걸음을 따라잡았고 간신히 그에게 신발을 신겨주었기 때문에 레온은 맨발로 라엘을 맞이하는 참사는 겨우 피할 수 있었다. 그러고 보면 제대로 빗지 못한 머리도 신경 쓰였다. 옷도 하필이면 이걸 걸치다니, 평소에는 좀 더 옷을 고르는 시간을 가졌었는데. 남들이 보기에는 여전히 눈부신 미모의 레온이었지만 머릿속은 이딴 생각으로 가득 차서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라엘에게는 전혀 중요하지 않은 것들이었다.
레온은 생각했다. 어서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그의 입에서 어떤 대답이 나오기 전에 먼저 이야기를 해야 했다. 그 제안을 할 때는 잠시 미쳤던 것이 틀림없다고. 나는 결코 그런 생각만으로 그대를 바라본 것은 아니라고. 그런 제안은 없던 것으로 해달라고. 그저 내 마음을 알아달라고.
하지만 며칠 밤을 새우며 치열하게 고민했던 말을 그는 단 한마디도 꺼낼 수가 없었다.
마치 그에게서부터 세상의 모든 빛이 시작된다는 듯 눈에 담을 수 없을 만큼 빛나는 라엘을 앞에 두고 황제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요즘에는 괜찮아졌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아니었다. 당장에라도 심장이 가슴을 뚫고 튀어나올 것 같았다. 아니 가슴을 부여잡아도 목구멍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격하게 뛰는 심장을 어떻게든 진정시켜야 했지만 황제는 그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는 것 외에는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아무리 눈치가 없는 라엘이라도, 눈치가 하도 없어서 눈치 없는 새끼라는 말을 다니엘에게 삼시세끼 밥보다 더 많이 처먹고 있는 라엘이라 하더라도 황제의 이런 태도를 눈앞에서 보고도 그의 감정을 깨닫지 못할 정도의 바보는 아니었다. 잠시 궁을 떠나 있는 동안 그는 레온이 자신에게 얼마나 지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었는지를 객관적으로 생각해볼 수 있었다. 게다가 이러한 제안을 받고 나서도 그것이 순수한 인간 대 인간의 호감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그는 순진하지도 않았다. 라엘은 그냥 눈치가 없을 뿐이었지 바보는 아니었으니까.
레온은 저와 눈을 제대로 마주치지도 못했다. 표정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지만 새빨갛게 달아오른 귀나 찻잔만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시선이나 잔뜩 긴장한 어깨를 왜 지금까지는 알아채지를 못했을까. 하긴 알아챘다 하더라도 무슨 수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라엘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째서 황제가 자신에게 이러는지는 솔직히 이해하지 못하겠다. 잔뜩 긴장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는 그는 세상에 다시없을 미남자였고 어떤 이든지 손을 뻗으면 얻지 못할 이가 없는 그런 사람이었다. 하지만 어째서 자신일까. 은실처럼 늘어진 기다란 속눈썹이 긴장에 파르르 떨리는 것을 보며 라엘은 입을 열었다.
“폐하.”
라엘이 말을 건네자 레온이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마치 잘못을 하고 혼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아이처럼 그는 잔뜩 긴장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왠지 웃음이 나왔지만 꾹 눌러 참았다.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었으니까.
“아바마마께 이야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아…….”
결국 제때 말을 하지 못했다.
“아직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으십니까?”
지금이라도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목구멍에서만 맴도는 말은 결국 문장으로 완성되지 못했다. 머리로는 이래서는 안 된다고 어서 제 진심을 고백하고 이 제안은 없었던 것으로 하라고 했다. 하지만 왜인지, 어째서인지 제 목은 고개를 끄덕이고 만 것이었다. 이런!
라엘이 한숨을 내쉬는 소리가 들리자 어깨가 놀라 파득 떨렸다.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그는 자신을 어떤 표정으로 보고 있을까. 경멸의 표정을 짓는 그를 본다면 정말로 버틸 수 없을 것 같다.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하는 레온의 앞에 라엘의 흰 손이 슥 밀어졌다. 너무 놀라서 심장이 떨어질 뻔했다.
“정 그러하시다면.”
손이 사라진 자리에는 곱게 접힌 쪽지가 한 장 놓여 있을 뿐이었다. 라엘은 쪽지를 건넨 후 자리에서 일어났고 레온은 그가 나가고 한참 후에도 그 쪽지를 펼쳐 볼 수가 없었다.
라엘이 그를 방문한 다음 날 레온은 왕궁을 떠났다. 그를 배웅하는 왕도 다니엘도 착잡한 표정을 감출 수가 없었다. 황제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레온은 손 안에 꽉 쥐고 있던 쪽지를 다시 펼쳤다. 왕궁을 나선 후 단 한 번도 손에서 놓은 적이 없는 것이었다. 단순하게 도시의 이름과 장소, 시간이 적혀져있을 뿐인 그 쪽지는 얼마나 쥐고 펼치기를 반복했는지 이미 너덜거린다. 너덜거리며 형태를 알아보기 힘든 쪽지가 마치 제 마음만 같다. 해지고 엉망이 된 종이 안에 정갈하게 색을 잃지 않은 글씨는 마치 그와 같았고.
레온은 끊임없이 자신을 다독였다. 어쩔 수 없다고. 정말로 어쩔 수 없다고. 그렇지 않으면 자신이 정말로 죽어버렸을지도 모른다고.
반쯤 정신을 놓은 채로 길을 재촉했다. 주변의 누구도 레온의 이상을 깨닫지 못했다. 그저 바쁘게 움직여야 하는 일정 때문에 쉼 없이 목적지로 향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뿐이었다. 중간중간 들르는 영지에서는 잠자리만을 빌렸을 뿐 길게 머무르지 않았다. 로윈의 왕성에서는 나사가 열두 개쯤 빠진 행동을 보이던 그였지만 어쨌거나 황제였다. 다니엘을 매일 방문하는 기행을 하긴 했지만 어차피 그 정도에서 끝났을 뿐 별다른 일도 없었다. 황제의 한순간 유희에 깊은 생각을 할 사람은 없었다.
라엘이 지정한 도시에 도착한 것은 로윈에서 출발하고 일주일 후였다. 딱 약속된 날짜에 도착한 황제는 영주가 마련한 오찬마저 거절하고 성 밖으로 나섰다. 갑작스러운 황제의 잠행에 모두 놀랐지만 그는 자신이 연락하기 전까지는 찾지 말라는 답만 남겨두고 거리로 나섰다. 미리 구해 둔 평범한 옷을 입었지만 유난히도 튀는 외모 때문에 로브를 구해 후드를 뒤집어써야 했다. 솔직히 입으나 안 입으나 튀기는 마찬가지였고 수상해 보이기는 매한 가지였지만. 얼굴이 드러나지 않는 것이면 충분했으니 레온은 급히 걸음을 옮겼다.
쪽지에 적힌 장소에 있는 여관은 굉장히 허름한 곳이었다. 물론 전지적 레온의 입장에서만 어마어마하게 허름한 여관이었을 뿐 사실 나름대로 깨끗하고 좋은 여관이었다. 서민의 마음을 황제가 어찌 알리오.
레온은 이런 허름한 곳을 어떻게 그가 알고 있는지 궁금했다. 혹시 일부러 알아본 것일까? 자신과의 일에 대해 그가 고민했다는 증거를 본 레온의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실상은 라엘이 용병일을 하며 이용한 적 있는 그나마 깨끗한 여관이었을 뿐이었지만, 정말로 레온과 밤을 보내기 위해 여관을 알아봤다 하더라도 그가 두근거릴 이유 자체가 없었다. 이런 사실을 알려준다고 해도 제대로 인식도 하지 못할 상태였다, 그는.
문 앞까지 안내를 받았지만 레온은 쉽사리 문을 열지 못했다. 문을 여는 순간 빈방이 자신을 맞이할 것 같았다. 불안감이 발끝부터 머리꼭대기까지 온통 휘젓고 있었다.
다니엘이 약속을 지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에 대한 신뢰는 분명히 있었지만 그 이유는 조금 슬픈 것이었다. 황제인 자신과의 약속을 다니엘은 어길 리가 없다. 자신은 제국의 황제였고 그는 제후국의 왕자였다. 일개 왕국의 왕자가 황제와의 약속을 어기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 그와 자신의 위치를 깨닫게 되자 황제로서 권력과 부를 이용하여 그를 억지로 취하려 하는 파렴치한 자신을 다시 깨닫게 되었다. 레온의 어깨가 무거워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가지고자 하는 마음에는 변함이 없었다. 레온은 심호흡하며 문을 열었다.
이른 오후 햇살이 가득한 방이었다.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이 얇은 커튼을 움켜쥐고 흔들며 방을 꽉 채우는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조금 전까지는 낡고 허름한 여관이라 생각했던 것이 무색하게도 이 공간은 따뜻하고 기분 좋았다.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은 아마도 방 안에 있는 한 사람 때문일 것이다.
라엘은 가벼운 셔츠와 바지를 입은 채로 침대 위에 걸터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방금 도착한 것은 아닌 듯 작은 방에는 생활의 흔적이 조금 남아 있었다. 어떻게 자신보다 더 빨리 왔는지 궁금해지긴 했지만 무리를 끌고 이동하는 자신과 단신으로 움직인 그의 이동속도가 달라서일 것이라며 가볍게 넘겼다.
“일찍 오셨네요.”
차분한 라엘의 목소리에 레온은 새삼 제가 부끄럽다고 생각했다. 지금부터 하려고 하는 행동이 부끄럽다. 그것은 분명히 제 권력과 재력을 이용하여 그를 범하려는 것이었으니, 거래가 오가고 그것을 수락한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거절할 수 없는 상황을 이용한 것은 자신이었고 그는 응했을 뿐이다. 대답을 들었지만 결코 합의가 아닌 강요일 뿐이었다.
지금까지는 그저 그를 단 한 번만이라도 품고 싶다, 그를 추억할 기억을 가지고 싶다는 생각밖에 없었는데……. 끊임없이 자신을 합리화하며 이곳까지 왔는데……. 정작 도착하여 그와 단둘이 있게 되자 이런 생각이 떠오르고 부끄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자신보다 먼저 이곳에 도착한 그는 어떤 생각을 하며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을까. 아마도 끔찍한 기분이 들었을 것이다.
“……미안하오.”
차마 걸음을 내딛지 못하고 가만히 서 있자 먼저 다가온 것은 라엘이었다. 그는 레온의 후드를 뒤로 넘기고는 그 아래로 드러난 얼굴을 확인하고 팔을 잡아끌었다. 후드를 내리며 살짝 귀에 닿은 손 때문에 이미 얼굴은 달아올라 있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하고 부끄러움과 함께 기대가 한데 뒤엉켜 이제는 지금 기분이 어떤지조차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에게 이끌려 들어가는 평범한 방이 마치 천상으로 이끌려가는 것 같다는 것만은 확실히 알 것 같다. 레온은 뜨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미안하오, 난…….”
“무엇이 그렇게 미안하십니까?”
담담하게 되묻는 그의 목소리는 차갑지 않았다. 궁에서 자신을 대할 때처럼 다정하고 상냥한 목소리라 레온은 오히려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아무렇지 않게 돌아오는 대답이라 하여 정말로 그가 아무렇지도 않을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이런 부탁을 한 것 자체가……. 그대의 명예에 흙을 끼얹고, 그대를 이런 눈으로 보는 것 자체가.”
그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오직 그것만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저 욕망뿐으로 그를 안으려 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어떤 말을 한들 결국 변명일 뿐이다. 이런 상황까지 만들어 이곳에 다다른 이상 자신은 분명히 그를 안을 것이며 그 행위에 대해서는 어떤 변명도 할 수 없었다. 이렇게밖에 그를 가질 수 없는 것이 비참할 뿐이다. 변명의 행위조차 비참함을 키우는 것뿐이었다. 절망감에 레온은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난……. 내가 정말로,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정말로 미쳐버릴 것만 같았소.”
“폐하.”
“그저……, 그저 단 하루만이라도 그대와의 추억을 가지고 싶었어.”
“폐하.”
“이후로는 그대를 찾지도 떠올리지도 않겠네.”
“폐하.”
라엘은 침착하게 그를 불렀다. 금세 두 눈에서 굵은 눈물을 뚝뚝 흘릴 것만 같은 레온의 볼을 감싸 쥐고 그의 눈이 자신을 향하게 한다. 잔뜩 젖은 눈동자가 마치 바다에 빠진 보석 같았다. 어쩌면 이리도 아름다운 사람이 이렇게 비굴하게 자신과의 시간 한 조각을 구걸하는 것일까. 그것이 안타까워 라엘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까지 미안해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온갖 감정이 내부에서 휘몰아쳐 정신없는 레온의 귀에도 그의 목소리는 부드럽게 꽂혀왔다. 볼을 쓰다듬고 손을 미끄러뜨려 로브를 벗기며 라엘은 말했다.
“폐하께서 제안하신 것 때문에 제가 온 것이 아닌가요.”
“……그대가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했어.”
“알고 계시는군요. 저는 순수한 마음으로 온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저는 여염집 아낙이 아닌 로윈의 왕자입니다. 정말로 달아나고 싶었다면 저는 그 자리에서 거절했을 겁니다.”
“…….”
“폐하. 저는 속물적인 사람인지라 이리도 순수하게 저를 바라는 당신에게 대가를 받기 위해 온 것입니다.”
“……그래도!”
“미안해하실 필요는 없다는 겁니다. 그저 서로의 셈이 맞아떨어진 것이라고 생각해주세요.”
그 말이 그리도 가슴이 아프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안심되기도 했다. 적어도 그는 이 관계로 인해 자신을 증오하거나 혐오하지 않을 것이다. 그저 원하는 대가를 서로 주고받는 거래로 이루어진 관계. 그는 단순히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남자로서, 일국의 왕자로서 수치스러운 이 관계를 그는 그렇게 정의하고 받아들이려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자신도 그리하면 되는 것이다. 그와의 하룻밤의 추억을 금전을 지불하고 사는 것이라 생각하면 된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서는 여전히 서글픔이 머물고 있다. 담담하게 말하는 그를 보면서도 심장은 미친 듯이 뛰고 있다.
사랑하고 있다.
생각보다 더 많이. 그리고 이 순간에서조차 사랑은 더욱 커지고 있었다.
손을 뻗어 그의 볼을 쓰다듬어 보았다. 희고 매끄러운 볼은 보드랍고 따뜻하다. 자신의 손을 피하지 않고 저를 올려다보는 그가 못 견디게 사랑스럽다. 조심스럽게 입술을 겹치자 마주한 입술이 살며시 열리며 자신을 허락한다.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올 뻔했다.
의문이 떠올랐다. 과연 나는 단 하루의 추억으로 만족할 수 있을까?
레온의 팔이 라엘의 허리를 꽉 끌어안았다. 상상했던 것보다 더 강한 힘에 라엘은 이대로 허리가 바스러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레온이 자신을 거칠게 다룬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조심스럽게 밀고 들어와 헤집는 뜨거운 살은 거칠었지만 상냥하기도 하다. 남자와의 키스임에도 걱정했던 것처럼 욕지기가 치밀어 오른다거나 혐오감이 들지도 않았다.
살짝 눈을 뜨자 자신을 끌어안은 레온의 감은 눈이 보였다. 수십 번을 보았던, 마치 은실로 만들어진 듯 신비하고 아름다운 색의 속눈썹이 바들거리며 떨리고 있었다. 아, 그렇구나. 황제의 미친 미모는 남녀를 초월하는 것이었다. 라엘은 자신이 홀린 것이라 생각하며 알아서 납득해버렸다. 손을 뻗어 속눈썹을 만져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레온과 자신의 사이에 꽉 껴안긴 팔은 스스로의 뜻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조금 아쉽다는 기분이 들어서 그것이 신기했다.
영원히 놓아주지 않을 듯 긴 키스에 숨이 막혀왔다. 고개를 살짝 돌리자 그제야 레온의 입술이 떨어진다. 마주한 그의 눈은 이제 욕망을 감추지 않고 살짝 젖어 짙푸른 색을 띠고 있었다. 보석 같다고 생각했던 눈동자는 이제는 깊은 호수 같아 보인다.
가쁜 숨을 내쉬는 가슴들이 맞닿았다. 심장소리가 쿵쿵거리며 가슴으로 바로 전해진다. 잘게 숨을 내쉬며 들썩이는 것이 사랑스러워서 레온은 라엘의 허리를 더욱 강하게 끌어안았다. 조금의 틈도 내어주고 싶지 않았다. 온전히 제 것으로 만들고 싶었다. 이 시간만이라도 그리 하고 싶었다. 라엘을 꽉 끌어안자 작게 윽, 하는 신음 소리가 들리자 바로 주춤하였지만. 너무 강하게 끌어안았던 것일까. 라엘이 레온의 가슴을 살며시 밀어냈다. 자신을 거부하는 작은 몸짓에도 심장이 쿵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러나 라엘은 울 것 같은 표정을 짓는 레온에게 작게 이야기했다.
“달아나지 않아요.”
“……아…….”
너무 조바심을 낸 것이다. 작은 목소리로 미안하다고 웅얼거리자 라엘이 눈을 내리깔며 웃는다. 사랑스럽다. 그의 작은 행동 하나하나가 사랑스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천천히 입술을 내밀어 가만히 입술을 대었다. 동의를 구하듯 잠시 기다리자 라엘은 자신을 피하지 않고 입술을 열어 온전히 자신을 받아들였다. 두 번째 키스는 조금 진정되어 아까처럼 잡아먹을 것처럼 다급한 키스는 아니었다. 그러나 밀착된 몸은 난처할 정도로 부풀어 오른 중심의 존재감을 라엘에게 전했을 것이다. 제 존재감을 과시하는 것에 라엘의 표정은 조금 난처하게 바뀌었다. 황급히 입술을 떼며 레온이 사과했다.
“……미안하…….”
레온이 당황하며 몸을 떼어내자 라엘은 그의 팔을 부드럽게 잡아 자신 쪽으로 끌어당겼다.
“침대로 가요.”
그때에서야 레온은 자신이 문 앞에서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은 채로 라엘과 입술을 겹쳤다는 것을 깨달았다. 혹여 그가 자신을 거부할까, 달아날까, 다급한 마음에 입술부터 겹친 것이 부끄러워 참을 수가 없었다. 얼굴이 화끈하게 달아오른다.
레온은 라엘이 이끄는 대로 침대로 걸어갔다. 달아오른 볼을 진정시키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힘이 들었다. 그것을 깨닫자 문득 떠오르는 어떤 생각에 레온은 저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세상에, 제국의 황제 레온하르트는 단 한 번도 이성을 놓은 적이 없었다고 자신했었는데 지금 나는 뭘 하고 있는 거지? 지금까지 알던 자신의 모습과 너무나도 다른 것들이 생경하다. 그럼에도 역시 다시 한 번 그 따뜻하고 축축한 입술을 맛보고 싶어 라엘의 눈을 마주 보았다. 라엘은 입술을 여는 대신 섬세한 손놀림으로 자신이 입고 있는 셔츠의 단추를 하나하나 풀어내기 시작했다. 섬세한 손길로 하나하나 풀리는 단추들이 목덜미만큼이나 흰 가슴을 천천히 드러내게 만들었다. 차마 똑바로 바라볼 수 없어 고개를 돌렸다. 라엘이 작게 웃는 소리가 들린다. 귓가가 화끈해진다.
툭툭 옷이 하나씩 바닥으로 떨어졌다. 처음부터 간단한 셔츠와 바지만을 걸치고 있었기에 맨몸이 되는 것도 순식간이었다. 희게 빛나는 눈부신 나신을 레온은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어떻게 보아도 여인 같은 몸은 아니었다. 늘씬하다고 생각했지만 옷 아래의 몸은 보기 좋게 근육이 자리 잡은 분명한 남자의 것이었다. 가슴이 부풀거나 허리가 한 줌밖에 되지 않는 그런 몸이 아니었다. 그 사실을 머리로는 인식하면서도, 그런데도 몸은 착실하게 반응했다. 심장이 쿵쿵 뛰고 얼굴이 화끈하게 달아오르고 중심으로 불이 난 것처럼 피가 쏠렸다.
자신의 몸을 보고 착실히 반응하는 레온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라엘은 입술을 살짝 깨물고 침대 위로 올라갔다. 홀린 듯 그를 따라 침대 위로 올라온 레온은 스스로 다리를 벌린 라엘의 허벅지 사이에 자리를 잡았다. 단단하게 발기한 것을 라엘의 샅에 꾹 누르자 그는 작게 신음했다. 최대한 천천히 옷을 벗어 던지면서도 욕망과 이성 사이에서 레온은 미친 듯이 고민해야 했다.
이리된 상황에서도 이성은 외치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 멈추려고 한다면 멈출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라엘을 만났을 때부터 반응하고 있던 자신의 아랫도리는 본능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제는 절대 멈출 수 없었다. 레온은 자신의 몸 위에 실오라기 하나 남기지 않고 모두 벗어던졌다. 그는 크게 심호흡했다. 이성의 편은 입뿐이었다.
“……정말 미안.”
“그런 말씀은 이제 그만……. 아…….”
그의 아름다운 몸에 자신의 흔적을 남기고 싶었다. 그가 좀 더 편하게 자신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천천히 준비를 하고 싶었지만 그 욕망은 쉬이 누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벌려진 다리 사이로 보이는 은밀하게 감추어졌던 곳에 이미 시선을 빼앗겨버렸다. 날름 박고 보자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 유혹은 차마 무시할 수 있는 것도 아니어서 저도 모르게 손을 뻗었다. 입구를 살살 문지르자 라엘이 몸을 살짝 떨었다. 조심스럽게 손가락을 안쪽으로 넣자 생각보다 수월하게 안으로 쑥 들어가는 손가락에 놀랐다. 흐읏, 갑작스러운 타인의 침입에 약간 높게 울리는 라엘의 신음소리까지 겹치어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이었다. 레온은 더욱더 넋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손가락은 너무나도 쉽게 안을 헤매고 있었다.
“……이건…….”
“흐…… 주, 준비를…… 했…….”
안쪽은 이미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뿐만 아니라 이미 적당히 벌어진 곳은 지금 당장에라도 레온의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었다. 홀린 듯 손가락을 하나 더 집어넣어 확인하듯 안을 헤집었다.
“아앗……!”
밭은 신음소리를 내며 고개를 뒤로 젖히는 것에 침이 꿀꺽 삼켰다. 뜨거운 안쪽의 살이 손가락을 휘감다가 꽉 조인다. 더 이상 참기 힘들었다. 무방비하게 열려 침입자를 너무나도 쉽게 받아들인 그곳에 자신의 것을 가져다 댔다. 끄트머리를 입구에 대었을 뿐인데도 불이라도 난 듯 뜨거웠다.
“다니엘.”
“……아아…….”
그의 이름을 부르며 허리를 꾹 눌러 제 것을 안쪽으로 밀어 넣었다. 육중하게 부풀어 오른 타인의 신체가 안쪽을 침범하는 감각에 라엘은 탄식인지 탄성인지 알아듣기 힘든 소리를 내며 허리를 들었다. 미리 풀어놓은 덕에 무리 없이 받아들이기는 하였지만 타인에게 어떤 거리조차 남기지 않고 가장 깊은 곳을 내어주는 기분은 무어라 말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레온은 자신의 것을 꽤 수월하게 삼키는 그가 사랑스럽다고 생각했다. 숨을 한 번 들이켜고 천천히 허리를 밀어 더 깊숙한 곳까지 닿기를 원했다. 성기가 천천히 밀고 들어갔다 나올 때마다 철벅거리는 물소리가 들려왔다. 젖은 신음소리와 한데 섞여 더욱 음란하게 들리던 소리가 멈추었다. 깊은 곳은 스스로 풀기에는 어려웠던 것인지 어느 지점에서 턱하고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레온은 밭은 숨을 내쉬며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레온의 아래에 누워 그의 것을 받아내던 라엘은 입술을 작게 열어 헐떡이고 있었다. 레온은 그 사랑스러운 입술에 키스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직 제대로 다 받아들이지도 못한 그가 아파할 것 같아 손가락으로 그의 얼굴을 쓸어내렸을 뿐이다.
“……다니엘.”
“흐으…….”
손끝으로 입술을 매만지다 입술 안으로 손가락을 밀어 넣었다. 충동적인 행동에 라엘이 잠시 눈을 크게 뜨는가 싶더니 곧 입술을 오므렸다. 뜨거운 혀가 손가락을 휘감으며 쪽쪽 소리가 날 정도로 강하게 손가락을 빨았다. 상상도 하지 못했던 호응에 이번에는 레온의 눈이 커졌다. 잠시 굳어있던 레온은 참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급하게 허리를 움직였다. 다시 아래쪽으로 밀려오는 묵직하게 쳐올리는 감각에 라엘의 입술이 열렸다.
“앗, 흐아…….”
라엘의 양손이 시트를 꼭 쥐며 부들부들 떨렸다. 각오한 일이었고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같은 남자의 아래에서 다리를 벌리고 아래를 꿰뚫리는 감각은 도무지 받아들이기 힘든 종류의 것이었다. 버겁게 올라오는 기묘한 느낌에 라엘은 헐떡였다.
“다니엘.”
누구도 닿지 못하였던 깊은 곳까지 들어온 사람이었다. 그리 깊이 몸을 겹치는 와중에 들오는 목소리가 라엘을 조금 서럽게 만들었다. 레온은 다정하게 제 이름을 불렀지만, 그러나 그것은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말하고 싶었다. 그건 제 이름이 아니에요. 저를 불러줘요. 가장 깊은 곳에 닿았지만 그는 누구에게 닿은 것일까.
목구멍까지 치밀어 오르는 것을 흩어냈다. 아아, 그가 사랑하는 것은 로윈의 왕자 다니엘이다. 비록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이 자신이었다 하더라도 여전히 레온은 왕자 다니엘을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을 사랑한다 고백하는 이에게 제 이름마저도 제대로 알려줄 수 없는 상황은 참으로 얄궂기도 하다.
“……으……. 아앗, 흑……!”
뒤로 허리를 뺐다가 강하게 안쪽으로 치달아 오른다. 철벅거리는 소리가 나며 자신의 안을 헤집는 남자의 것에 라엘은 정신없이 신음했다. 허리가 들썩이며 시트 째로 몸이 위로 밀려왔다 다시 아래로 끌려 내려온다. 정신없이 안쪽을 유린당하던 라엘은 드디어 잠시 움직임이 멈출 때까지 밭은 신음소리를 내어야 했다.
“……후.”
레온이 뜨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가슴을 간질이는 날숨에 꾹 감았던 눈을 떠 슬쩍 아래를 바라보았다. 아래쪽은 틈 하나 없이 꼭 물려있었다. 배 안쪽을 묵직하게 가득 채우는 생경한 감각에 왠지 울고 싶어졌다. 벌려진 허벅지가 바들바들 떨렸다. 남자에게 몸을 내어준다는 것의 의미에 숨이 헐떡여진다. 가만히 숨을 고르며 라엘을 내려다보던 레온의 손가락이 라엘의 눈가에 닿았다.
“울지 마, 다니엘.”
“……아, 흐으……. 윽……!”
아아, 이미 울고 있었던 것이다. 아래를 꿰뚫리는 물리적인 아픔뿐이 아니었다. 무어라 형언할 수 없는 기분이 몰아치고 있었다. 탄식일 수도 있었고 상실감일 수도 있었다. 가슴을 뜨겁게 물들이는 낯선 감각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 것이 옳은지 몰라 눈물이 도무지 멈추지 않았다. 평생 겪을 일 없었다고 생각하는 일이 벌어졌다. 대비되지 않은 상황은 결심과는 다르게 눈물을 쏟아내게 만들었다.
레온은 라엘을 끌어안아 달래기 시작했다. 쉬이, 괜찮아. 그대를 아프게 하지 않을 거야. 다정한 목소리로 속삭인다. 눈가와 이마와 뺨에 입 맞추며 어린아이를 달래듯 무척 다정하고 부드러웠다. 조금 뒤 확 치밀어 올랐던 감정이 조금 진정되자 라엘은 눈을 끔뻑였다. 레온은 자신을 완벽하게 위로하였다. 그러나 아래쪽은 여전히 짐승처럼 자신의 아래에 박혀있지 않는가. 전혀 수그러지지 않은 그의 것을 깨닫고 결국 라엘이 작게 웃어버렸다. 젖은 뺨이 마르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라엘이 진정된 모습을 보이자 레온은 다시 몸을 일으켰다. 그 사이에도 욕망은 착실하게 부풀어올라 라엘의 몸 안에서 한계까지 커져 있었다. 더 이상 참는 것도 힘들어 천천히 몸을 움직이자 라엘이 저도 모르게 높게 신음 소리를 내었다. 레온이 멈칫하며 많이 아픈 것인지 걱정하였다. 당장에라도 아래가 터질 것 같이 부풀어있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를 괴롭게 하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괜찮…… 괜찮아요……. 그저…… 익숙하지…… 않아서…….”
“……다니엘.”
자신의 이름을, 결코 자신의 것이 아닌 이름을 애타게 부르는 레온에게 라엘은 희미하게 웃어보였다. 그러나 곧 아래쪽을 묵직하게 쳐올리는 감각에 퍼뜩 놀라 어깨를 움츠려야 했다. 손이 절로 시트를 찾아 쥐었다. 이미 엉망으로 흐트러진 시트는 잔뜩 구겨져있었다.
아래쪽으로 육중한 것이 드나드는 감각에는 곧 익숙해졌다. 부단장을 채근하여 구해둔 향유며 민망하게 생긴 도구들을 이용하여 미리 아래를 열심히 풀어놓은 보람이 있었는지 레온의 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생각보다 끔찍한 고통은 아니었다.
하지만 단순히 발기한 것을 자신의 아래에 넣은 것뿐이 아니었다. 위에서 자신을 누르는 체중과 뜨겁게 닿아오는 피부의 온기는 상상하지 못한 종류의 것이었다. 그러나 제 위에서 천천히 몸을 움직이며 자신을 갈구하는 레온의 열에 달뜬 얼굴은 생각보다 보기 좋았다. 자신을 욕망 가득한 눈으로 내려다보는 시선은 익숙하지 않으면서도 오직 자신만을 바라는 것이 기분 나쁘지 않았다.
아래쪽이 천천히 마찰하며 기묘한 감각이 올라왔다. 철벅거리는 젖은 살 부딪히는 소리를 내며 느릿하게 움직이는 것이 내벽을 스치자 묘한 느낌이 들었다. 쾌감과 비슷하지만 그것만은 아니었다. 기묘하고 낯선 감각에 팔을 뻗어 레온의 목을 감싸는 순간 그의 표정이 다급해졌다. 그는 곧 참을 수 없다는 듯 움직임을 빠르게 했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를 라엘은 아니었다. 어쩐지 슬그머니 올라오는 기대감이 낯설어 라엘은 레온의 목을 꽉 끌어안고 그의 품에 얼굴을 묻었다. 열기와 함께 그의 내음이 확 끼쳐 올랐다.
두 사람의 몸이 엉키며 곧 레온의 움직임이 완전히 멈췄다. 이제는 라엘의 어깨에 이마를 기댄 레온의 몸이 잘게 떨리고 있었다. 절정을 맞이하여 안쪽에 사정하는 것은 천천히 오랫동안 진행되었다. 그것이 어쩐지 사랑스럽다 생각하며 라엘은 레온의 이마에 입 맞췄다. 땀에 잔뜩 젖어 축축하다. 레온의 눈이 커지더니 곧 더없이 아름다운 미소를 지어 보인다. 그의 미소가 향하는 곳이 온전히 진실 된 곳이 아니라는 기분에 참으로 얄궂다는 생각을 했다. 몰려오는 피로감에 라엘은 눈을 감았다. 아래쪽을 버겁게 채우던 것이 빠져나가는 기분이 들며 곧 레온이 라엘을 자신의 품 안으로 끌어당겼다. 아주 한참동안 숨을 섞으며 그것을 진정시켰다. 라엘은 한참 후 눈을 감은 채로 말을 건넸다.
“폐하.”
“응……?”
“……만족하십니까?”
“……으, 응…….”
말은 긍정하였지만 조금 전부터 그의 손은 라엘의 가슴과 허리를 주무르고 있는 중이었다. 급히 삽입한 탓에 전혀 없었던 전희를 채우겠다는 듯 집요하게 애무하는 손길에 허리가 절로 뒤틀린다. 사정의 여운으로 밭은 숨을 내쉬던 입술이 라엘의 가슴을 훑다가 솟아오른 곳을 살짝 빨아올렸다. 결국 라엘은 눈을 감은채로 물을 수밖에 없었다. 석연찮은 긍정의 말에 라엘은 눈을 떴다.
솔직히 전혀 만족한 표정은 아니었다. 그럭저럭 아프지 않게 처음을 보낼 수 있었던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레온의 배려일 뿐이었다. 그렇다고 정말로 억지로 당하는 것을 바라는 것도 아니지만 생각이 복잡해지는 것이다. 뭐랄까……. 불공정 거래라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온몸이 땀범벅이 될 때까지 몸을 섞었고 굉장히 피곤했지만 레온의 표정은 여전히 풀지 못한 욕망이 그대로 머물고 있었다. 분명히 자신을 안았다는 사실에서 오는 충족감이 보이긴 했다. 그러나 역시 뭔가…… 뭐랄까……. 이런 느낌이 자꾸…….
결국 라엘은 곧 후회하게 될 말을 내뱉고야 말았다.
“폐하.”
“응.”
“마음껏 하셔도 됩니다.”
레온의 젖은 눈이 라엘을 마주 보았다. 찬찬히 눈을 끔뻑이는 것이 마치 초식동물의 눈과 같았다. 주르륵, 콧잔등에서 흘러내리는 땀방울이 침대 위로 떨어졌다. 대답하지 않는 레온에게 라엘은 천천히 말했다.
“폐하께서는 저의 오늘을 사셨습니다.”
“……다니엘.”
“그렇다면 부디 후회 없이…….”
단 하루의 추억이라면 그에게 온전한 무언가를 주고 싶었다. 낯선 이곳으로 떨어진 후 온전히 저를 원한 이는 지금까지 단둘뿐이었다. 왕자와 황제. 그러나 제 몸뚱이와 인생은 이미 다니엘에게 바쳤으니, 그렇다면 레온에게는 온전한 하루를 선물하고 싶었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오직 저를 연인처럼 안을 수 있는 하루를. 라엘이 그의 입술에 입술을 맞대자 레온의 눈이 커졌다. 젖어가는 그의 눈이 마치 물속의 보석 같았다.
그리고 라엘은 잠시 후 미친 듯이 후회했다. 후회 없게 하기는 무슨! 무스으으은!!
“악, 흐아…… 자, 잠까……악……!”
“흐…….”
젖은 살이 부딪치는 소리가 귓전을 쾅쾅 울렸다. 퍽퍽 강하게 치대는 움직임에 내장이 딸려 나올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제발 천천히 해달라며 애원했지만 이미 레온의 귀에는 그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열기와 젖은 살 부딪치는 소리로 작은 방 안이 가득 찼다. 조금 전의 다정한 관계는 마치 환상이었던 양 레온은 거칠게 허리를 움직였다.
레온은 라엘의 한마디가 마치 봉인을 해제하는 키워드라도 된 양 거침없이 그를 안기로 했다. 어차피 단 하루의 관계라면 그래, 후회 없이 그를 품어야지. 그리고 그 본인의 허락이 떨어진 이상 거절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 본인이 아래에서 울부짖으면서 취소를 외친다 하더라도 이미 계약은 체결되었으니까.
그가 자신의 아래에서 가쁜 호흡을 몰아쉬며 제 움직임에 맞추어 정신없이 흔들리는 것이 사랑스럽다. 붉게 달아오른 눈 아래며 눈물 맺힌 눈꼬리며 단 한 군데도 아름답지 않은 곳이 없었다. 퍽하고 제 것을 치댈 때마다 높은 신음 소리와 함께 우는 목소리를 내는 것이 못내 자극적이어서 레온은 고개를 숙여 그의 목덜미에 입 맞췄다. 잠시 움직임이 멈추자 엉덩이 골을 따라 끈적거리는 액체가 흘러내린다. 모든 게 제 것이라는 것에 만족하며 레온은 다시 움직였다. 살이 달라붙으며 찌걱거리는 소리와 퍽퍽 살이 부딪치는 소리가 다시 시작됐다.
“……다니엘…….”
“폐하, 앗……! 아…… 아파…….”
아프다며 눈꼬리에 눈물마저 달고 있었지만 꼭 그것만은 아닌 것 같았다. 안쪽은 제 것을 꼭 감싼 채 바들거리며 수축하고 있었고 정신없이 흔들리면서도 그의 것은 단단하게 발기해 있었다. 덜덜 떨리는 허벅지를 잘 잡아 허리에 걸쳐놓자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올려다본다. 하지만 허벅지로 제 허리를 감싸는 것이 너무나 자극적이라 레온의 움직임이 다시 커졌다.
제 움직임과 함께 거친 숨을 몰아쉬며 입을 살짝 벌리는 것이 귀여워 입을 맞추었다. 저를 흘겨보는 것이 사랑스럽다. 허리를 움직일 때마다 끈적이는 액체가 침대 위로 뚝뚝 떨어졌다. 퍽퍽 치대는 제 움직임에 그의 머리가 뒤로 젖혀졌다. 위로 바짝 솟아오른 가슴이나 흰 목덜미가 온전히 드러나자 입 맞추고 싶은 충동이 가득했지만 그보다도 아래쪽의 사정이 급해졌다.
사정감을 느낀 레온이 라엘의 허리를 꽉 붙잡고 제 것을 퍽퍽 깊숙하게 치대기 시작했다. 아, 아……. 라엘도 레온의 사정감을 느낀 듯 낮게 신음하며 허리를 뒤틀었다. 본능적으로 피하는 그의 허리를 잡아 다시 제 쪽으로 끌어와 몸을 꽉 안았다. 달싹이는 가슴을 온전히 제 품에 가둬놓자 만족감이 온몸을 휘감았다. 그의 안에 파정하자 온 세상을 가진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모든 것을 가졌다 생각하였는데도 그를 안으면 단 한 번도 느끼지 못한 충족감이 제게 다가온다.
“……사기꾼…….”
“사랑한다.”
그렁그렁한 눈에서 결국은 뚝하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는 적잖이 놀랐는지 눈알이 굴러떨어질 것처럼 커진 채였다. 그마저도 사랑스러워 레온은 그에게 입 맞췄다. 그의 조언대로 정말로 후회 없는 하루를 보낼 생각이었다. 밤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라엘은 말 한마디 잘못한 죄로 밤새도록 괴롭힘을 당해야 했다. 레온은 하반신에 짐승이라도 기르고 있는 것인지 아래쪽에 불이 나도록 제 것을 박아댔다. 더욱 화가 나는 것은 그것이 절대로 하루에 끝난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눈에 눈물을 그렁그렁 단 채로 라엘이 레온에게 말했다.
“……지, 짐승…….”
“……면목이 없…….”
“……불공정 거래입니다.”
레온도 할 말이 없어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한다.
라엘의 말대로 레온은 어마어마한 계약 위반을 했다. 하룻밤이라고 그렇게 땅땅 박아둔 기간을 한참이나 초과했던 것이다. 라엘은 무려 삼 일 밤낮을 그와 함께 보내야 했고 이제는 스스로 일어날 힘도 없어 침대 위에 누워 그를 흘겨보는 중이었다. 그마저도 예쁘고 사랑스럽다고 말을 하면 라엘의 표정이 구겨질 것 같아 레온은 입을 꾹 다물었다. 하지만 라엘을 씻겨 침대 위에 올려놓은 것도 본인이었으니 그 부분에서는 만족 중이었다.
“……사람이세요, 짐승이세요?”
“미안하네.”
입은 미안하다고 싹싹 빌고 있지만 레온의 눈은 아직도 그를 범할 것처럼 욕정으로 번들거리고 있었다. 이러다 정말로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에 라엘은 저도 모르게 뒤로 물러섰다. 레온은 아쉬운 표정으로 한걸음 물러났다.
지난밤 레온은 정말로 지독하게도 라엘을 안았다. 마치 내일 세상이 끝나는 사람처럼 그는 라엘을 탐했고, 지독한 통증과 쾌감에 저도 모르게 몇 번이나 뒤로 도망가려는 그를 붙잡아 끝내 그 안에 사정하였다. 속으로 얼마나 욕을 외웠는지 모른다. 후회 없이 저를 안으라고 말했던 과거의 나를 죽여, 도라에몽! 단 하루의 추억이면 된다던 레온은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도록 라엘을 놓아주지 않았다. 결국 레온이 라엘을 놓아준 것은 삼 일째. 더 이상 그가 아래쪽으로 무언가를 받아들일 수 없을 때였다.
레온은 입으로는 다정한 사랑의 언어를 읊조리면서 허리 아래로는 그러하지 않았다. 마치 짐승과도 같이 퍽퍽 소리가 날 정도로 세차게 움직이며 라엘을 범했다. 처음에는 의연하게 버티던 그가 결국에는 엉엉 울면서 제발 그만해 달라고 애원을 할 때까지, 아니 애원하고 나서도 레온은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라엘이 기진하여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어서야 레온은 그를 범하는 것을 포기했다.
다리가 후들후들 떨려 움직일 수가 없었다. 돌아가고 싶었지만 지금 상태로는 돌아가기는커녕 다시 일어설 수 있을지가 의문일 정도였다. 하지만 제 곁에서 떨어지지 않는 레온을 보며 라엘은 두려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어째서 돌아가지 않는 거죠?
“……돌아가실 때가 되지 않으셨습니까?”
“그대가 움직이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자리를 뜨겠는가.”
이 꼴로 만든 것이 누구냐고 빽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허리가 울릴 것 같아 입을 꾹 다물었다. 하지만 레온을 보내지 못하면 다시 범해질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목 끝까지 차오르는 기분이었다. 그는 여전히 라엘에게 욕정을 느끼고 있었고 아직도 젖은 눈은 번들거리며 드러난 팔이며 목덜미를 훑고 있었다. 끔찍이고 자시고 그냥 살아야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리고 구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폐하! 여기 계십니까, 폐하!”
삼 일이나 자리를 비운 황제를 아무도 찾지 않을 리가 없었다. 이틀째까지는 조용히 레온을 기다리던 신하들도 결국 참지 못하고 오늘 그를 찾아온 것이었다. 레온은 저와 라엘의 시간을 방해받은 것이 퍽이나 기분 나쁜 듯 미간을 찌푸렸다. 그리고 작게 한숨을 내쉰 후 라엘의 이마에 입 맞췄다. 왠지 간질거리는 느낌에 이마를 손으로 감쌌다.
“그대의 호의에 감사하오.”
“……천만의 말씀입니다.”
“나는 약속대로 그대를 찾지 않을 것이지만……. 그래도…….”
뭐라 더 말을 하려던 레온은 결국 입을 꾹 다물었다. 결국 마지막까지 하지 못한 뒷말을 라엘은 애써 모르는 척했다. 두 사람의 교집합은 딱 여기까지였다. 애초에 섞일 리가 없는 사이였다. 엄청난 우연히 맞물려 이런 상황까지 되긴 했지만 그것으로 끝이었다. 함께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머뭇대던 레온이 크게 심호흡하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그렇게 끝이었다.
잠시 잠이 들었던 것 같다.
지난 삼 일 동안 제대로 자지 못해서 굉장히 피곤했다. 아니 삼 일뿐만 아니라 황제를 만난 후로 제대로 잠이 든 적이 없었다. 문이 닫히고 황제가 나가는 소리를 듣자마자 눈꺼풀은 납덩이를 단 것처럼 완벽하게 닫혔다. 이대로 평생 눈을 못 뜰 것 같다.
잠결에 누군가 들어오는 소리를 들었다. 설마 황제가 돌아온 것일까 생각하여 눈을 더 꽉 감자 침대가 출렁이며 누군가가 침대 위에 걸터앉았다. 높은 확률로 황제요, 낮은 확률로 강도나 도둑일 가능성을 생각했었는데 이걸 보니 강도나 도둑은 아니었다. 팔자 좋게 침대 위에 앉는 강도나 도둑이 있을 리가 없으니. 황제로구나!
번쩍 눈을 뜨고 뭐라고 화를 내야겠다고 생각하는데 눈이 제 말을 듣지 않는다. 어어, 싶어 몸을 움직이려는데 몸뚱이가 비협조적이다. 존나게 피곤한 거다, 이건. 아 모르겠다 싶어 숨만 색색 고르는데 문득 서늘한 손이 이마에 닿았다.
“미안하다.”
같은 말을 잠들기 전에도 들은 적이 있는데. 다른 두 사람에게 사과를 연달아 듣는 기분은 참 묘하다. 확률 상으로 고려조차 하지 않았던 다니엘의 등장은 그럼에도 자연스러웠다. 그는 라엘의 얼굴에 들러붙은 머리카락을 정리해주며 한숨을 토해내듯 말을 이어나갔다.
“내가 감당해야 할 부분을 네게 이런 식으로 떠넘겼구나.”
그건 아니라고 답하려 했지만 눈도 몸도, 이제는 입술도 열리지 않는다. 피곤한 몸은 제 주인의 의지를 무시했고 그저 정신만이 반듯하게 깨어 다니엘의 말을 듣게 만들었다.
“이게 모두 내가 겁쟁이기 때문이야. 내 몸을 사리느라 너를 이런 상황에 처하게 만들었으니.”
다니엘의 목소리가 몹시도 슬펐다. 그런 것이 아니라고 다시 답하고 싶었다. 처음부터 황제가 반한 것은 자신이었고 그래서 저를 취하기 위한 제안을 한 것이다. 그렇다면 제안에 응하는 것도 자신이어야 했다. 그 과정에서 취해지는 이득을 제 주군인 다니엘에게 주는 것도 순전히 제 마음이고 선택이었다. 이런 식으로라도 자신의 목숨을 구해주고 살아갈 자리와 이름을 나눠 준 다니엘에게 보답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를 위해서…….’라고 한다면 그것은 다니엘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말일지도 모른다. 그냥 반은 책임감으로, 반은 보답으로 한 일일 뿐이었다. 제 스스로 선택하여 황제에게 안긴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다니엘이 미안하다고 하는 것인지.
“넌 어떤 상황이든 똑바로 보고 나아가는구나.”
작게 웅얼거리는 목소리는 부럽다는 말을 만들어낸다. 오늘따라 감상에 젖은 다니엘이 어색하다. 혹시 무슨 약이라도 먹고 온 것은 아닌지 걱정됐다. 예전에 이런 다니엘을 딱 한 번 본 적이 있는데…….
“어쩌면 네가 나보다 더 강할지도 모르겠어.”
‘그건 찬성합니다. 동감입니다.’라고 속으로만 대답했다. 어차피 열리지도 않는 입이었고 움직이지 않는 몸뚱이였지만 이 시점에서 벌떡 일어나서 그 말을 한다면 다니엘에게 턱주가리를 처맞기나 하겠지. 그냥 얌전히 누워있는 것이 상책으로 오랜만에 감상에 젖은 제 주군의 넋두리를 듣기로 하고 이어지는 말을 기다렸지만 다니엘은 잠시 잠잠해졌다. 그리고 부스럭거리며 제 곁에 눕는다. 이건 또 무슨 상황인 거죠? 라는 생각이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지만 몹시도 피곤한 몸은 다시 라엘을 잠에 빠지게 만들었다.
두 사람이 다시 눈을 뜬 것은 다음 날이었다. 늦게 도착한 주제에 제대로 꿀잠을 잔 다니엘은 라엘이 일어날 때까지도 깨어나지 못했다. 어이가 없어서 곁에 누워있던 그를 흔들어 깨우자 짜증까지 내며 일어난다.
“뭡니까?”
“알리바이 만들러.”
“아아…….”
그러니까 황제와 밤을 보내는 알리바이 말씀이십니까. 하기야 그런 제안이 아무리 비밀리에 이뤄졌다 하더라도 적어도 왕은 알고 있었으니 왕성에 쭉 남아있는 것이 이상하기도 하겠다. 고개를 끄덕이는데 다니엘이 걱정스럽게 라엘을 올려다본다. 뭐라고 말하려 하는 다니엘보다 라엘의 질문이 먼저였다.
“혹시 감기라도 들었습니까?”
“그건 왜?”
“완전히 단잠을 주무시기에 감기약이라도 먹었나 했죠.”
“응. 급히 오는데 감기 기운이 있는지 몸살이 있길래 약을 좀 먹었어. 궁에서 준 약이 아니라 그런지 좀 많이 졸려서…….”
“그럼 더 주무십쇼.”
역시. 라엘은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저 인간이 제정신으로 그런 간지러운 말을 할 리가 없지. 다니엘은 약에 예민해서 감기약이라도 먹으면 굉장히 졸려 하며 상태가 나빠진다. 예전에도 저런 식으로 상태가 나쁜 적이 있었는데 그때도 감기약을 먹었다고 했었다. 라엘은 지난밤의 일은 말하지 않기로 했다. 다니엘은 아주 높은 확률로 기억을 하지 못할 터였고, 그 이야기를 하면 매우 부끄러워할 것이다. 이러나저러나 제 주군이라고 챙기는 라엘이었다.
황제는 약속을 지켰다.
지켰을 뿐만 아니라 어겼던 부분에 대한 보상까지 확실히 책임졌다. 금전적으로 따지자면 이미 약속했던 대가의 배가 되는 값을 그는 로윈에 지불했고 두 사람은 씁쓸한 기분으로 그것을 받아야 했다. 왠지 화대 같아서 찝찝하기 그지없었지만 그렇다고 이미 있었던 일이 없었던 것이 되는 것도 아니었다.
황제는 라엘을 샀고, 그는 몸을 제공했다. 그것이 바뀌지 않는 진실이라면 차라리 생명의 은인인 다니엘을 위해 뭔가를 했다는 위안으로 그날의 기억을 포장하는 편이 훨씬 나았다. 그것만은 아니라며 가슴 한구석에 응어리 진 무언가가 있는 것 같기도 했지만 돌아보지 않았다. 앞으로 매우 바빠질 테니 하나하나 다 들여다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황제는 돌아가는 길, 로윈에 다시 방문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