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폭풍우 (13/22)

폭풍우

발소리가 복도를 가로질렀다. 희미하게 물소리도 섞여 들렸다.

투욱, 툭. 검지로 테이블을 두드리던 건호는 몸을 길게 기울이며 턱을 괴었다. 물과 수건을 챙겨 가는 듯한 인기척은 희미한 문소리와 함께 사라졌다. 아마 그 방 안에는 쾌락에 취한 유진이 있으리라. 승자처럼 웃고 있을 승일을 떠올리니 손등을 타고 혈관이 불쑥 솟았다.

대체 무슨 이간질을 한 것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건호를 대하는 유진의 태도가 묘하게 변화한 것만은 확실했다. 정황을 보았을 때 범인은 명백히 백승일이었다. 이대로라면 승일이 보란 듯이 유진을 독점할 것이 뻔했다. 이번 미션에서 유진이 승일을 선택한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었다.

제 아래에서 가장 먼저 구멍을 열었던 오메가가, 제 발로 다른 알파에게 간 것이다.

“…….”

승일을 향해 치솟았던 분노는 금방 유진에게로 옮겨붙었다.

미션에 따라 유진을 짓눌렀을 때, 자의로 품은 것이 아니었음에도 금방 빠져들 정도로 유진의 몸은 달큰하고 말랑했다. 잘 다져진 근육으로 군살은 없었으나 둔부와 은밀한 비부의 구멍은 부드럽기 그지없었고, 탄탄하던 가슴 또한 페로몬에 녹아내릴수록 유두를 통통하게 세우며 성감을 한껏 내보였다.

그중에서도 가장 자극적인 것은 바로 냄새였다. 농축된 꿀과 과육을 통째로 삼키는 듯한 달착지근한 페로몬은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아랫도리가 두둑해질 정도로 외설적이었다. 그 냄새를 거절할 알파가 있을 리 없다.

그 모습과 향내를 다른 알파의 아래에서도 모두 내보였을 테다. 다리를 활짝 열고 유혹하듯 구멍을 벌리면서 말이다. 승일이나 제원, 태운의 아래에서 할딱였을 모습을 생각하면 지독한 노기가 너울 치며 뇌를 삼켰다.

그 오메가를 독점하고 싶다. 제 방에 가두어 저만 보고 제게만 반응하게 만들고 싶다. 분명 처음에는 저를 무시하는 오메가에 대한 불만에 불과했던 감정이, 시간이 흐르고 갈증과 시기가 실타래처럼 뒤엉키며 결국 거대한 지배욕을 낳았다.

오메가가 쾌락에 넘쳐 교성을 내지른다면 그건 자신의 아래서다. 오메가가 누군가를 의식하고 더 나아가 두려워한다면 그 대상은 자신이 되어야만 했다.

사나운 페로몬을 휘감은 건호는 안광을 빛내며 손바닥 아래로 열쇠를 강하게 눌렀다.

***

깊은 밤, 아무리 단절된 저택이라고 해도 겨울 특유의 메마른 냉기는 공기를 타고 전해졌다. 오메가의 냄새와는 사뭇 다른 향취를 코끝으로 즐기며 책을 넘기던 태운은 시계를 확인했다. 새벽 한 시, 한창 어둠이 습한 입김을 내뿜을 시간이었다.

타이머가 돌아가던 모니터는 검게 변했다. 혹 유진이 울먹이며 찾아올까 하여 자리를 지키고 있었으나 그는 오지 않았다. 자존감보다는 미션의 성공을 우선한 모양이었다. 어떤 알파와 하든 사정하지 않는 것은 불가능했을 테지만 말이다.

문득 괴롭게 흐느끼던 얼굴이 뇌리를 차지했다. 페이지를 넘기던 손끝이 슬며시 멈추었다. 태운은 검은 눈으로 책을 내려다보았다. 고집스럽게 노려보던 눈동자가 활자 위를 활보하며 돌아다녔다.

어리석은 오메가는 아직도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자신이 지키고 있는 것이 충견인지 맹수인지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줄기가 꼿꼿할수록 바람을 맞이했을 때 사정없이 꺾이는 법이다.

하지만 지금의 유진에게는 아마 융통성을 발휘할 여유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부하밖에 남은 것이 없는 지옥 속에서 부하마저 손에서 놓으면 어떻게 되겠는가.

저택이라는 거대한 철창은 유진에게 희망과 절망을 번갈아 주며 그의 마음을 난도질하고 있었다. 구석까지 내몰린 오메가가 내릴 수 있는 결정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유진은 열린 방문을 두고도 찾아오지 않았다.

이대로 유진이 계속 고집스럽게 버티는 것과 체념하고 포기하는 것, 어느 쪽이 더 그를 낭떠러지로 몰고 갈지는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

태운은 책을 덮었다. 위태롭던 눈매가 짙은 감색의 표지에 덮여 사라졌다. 애처롭던 흐느낌도 귓바퀴를 두드리다가 흩어졌다. 어쨌든 이곳에 더 있을 이유가 없어졌으니 이제 슬슬 다시 나가 볼 시간이었다.

흐느껴 우는 유진의 얼굴을 머리 한구석으로 밀어내며 태운은 몸을 일으켰다. 문에 가까이 다가서자 희미한 소란이 들렸다. 쿵쿵거리는 둔탁한 소리 이후 뭉개진 음성이 연달아 이어졌다. 눈썹을 치켜올린 태운은 방문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웅웅대던 목소리가 조금 선명해졌다.

“……길래, …션 실패…….”

“…러니까―…!”

미션 실패. 입안으로 되씹은 태운은 소리 없이 방문을 열었다. 복도의 끄트머리에 뒤엉켜 있는 두 남자가 보였다. 벽으로 밀어 붙여진 쪽이 백승일, 밀어붙인 쪽이 신제원이었다.

“저럴 줄 내가 알았겠냐고.”

“가능성이 있다면 배제했어야지.”

“대장이 해달라고 했다니까.”

“알아서 판단하는 능력이 없다면 짐승과 다를 게 뭐야.”

“하, 진짜.”

승일이 기가 막힌 듯 헛웃음을 흘리며 제 머리카락을 흩뜨렸다.

“질책을 받아도 대장한테 받아. 넌 네가 뭐라고 생각하는 거냐?”

“백승일.”

“비켜. 좋은 기분 잡치게 하지 말고.”

툭. 제원의 어깨를 거칠게 밀어낸 승일이 계단을 내려갔다. 건조한 눈으로 그를 응시하던 제원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문지방에 기대어 선 채 구경하던 태운과 눈이 마주쳤다. 일순 미묘한 공기가 내렸다. 하지만 찰나의 적막은 벌컥 열린 방문으로 깨부수어졌다.

“왜 이렇게 시끄러워?”

문틈으로 고개를 내민 건호가 거칠게 쏘아냈다. 기분이 썩 좋지 않은지 날 선 눈빛이 곧장 제원을 향했다. 입매를 기울인 태운은 느긋이 걸음을 옮겼다. 잠시 따라오던 제원의 시선은 건호에게 돌아갔다.

“일이 좀 있어서. 이제 끝났으니 들어가.”

“쯧.”

신경질적으로 한숨을 흘린 건호가 다시 방으로 돌아갔다. 쿵. 거세게 닫힌 방문이 묵직한 소리를 흘렸다. 제원은 다시 옆으로 눈을 돌렸다. 태운은 더 이상 복도에 남아 있지 않았다.

“…….”

어렴풋이 남은 자취를 길게 응시하던 제원은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

저택을 빠져나간 태운은 옷을 갈아입고 곧장 클럽으로 향했다. 도착하니 밤은 더욱 깊어 색욕을 추구하는 이들의 분위기가 무르익은 상태였다. 계단을 내려가기 전부터 이미 난잡한 페로몬이 연기처럼 풍겨 올랐다. 물론 연초나 기타 다른 연기 또한 뒤섞여 있었다.

팔을 들어 올리자 소맷단이 올라가며 시계가 몸체를 드러냈다. 작은 바늘은 숫자 3에 거의 가까워진 상태였다. 주건이 언급했던 시간이 두 시 반이었던가. 매캐한 공기를 가르고 계단을 내려가며 태운은 주건에게 전화를 걸었다.

요란한 통화 연결음이 이어지다가 곧 뚝 끊겼다. 안내 음성은 나오지 않았다. 전화를 끊은 것이다.

“흠.”

태운은 검게 변한 휴대폰을 미련 없이 주머니에 쑤셨다. 그리고 바 근처에 서서 연초를 입에 물었다. 오랜만에 맛보는 인공적인 향내가 텁텁하고 밍밍했다. 영 즐길 것이 못 되었지만, 폐부 깊이 빨아 마셨다.

지루한 기다림의 시간을 달래는 것은 다시금 머리를 채우는 유진의 얼굴만으로도 충분했다.

그 시각, 황급히 전화를 끊은 주건은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미묘한 정적이 책망하듯 주변을 맴돌았다. 손톱 끝으로 전원 버튼을 길게 누르며 나직이 사죄했다.

“죄송합니다.”

“뭐…, 괜찮네.”

주건은 휴대폰의 전원이 완전히 꺼진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상대의 얼굴을 살폈다. 애매한 대답이나 질타하는 듯한 시선이나, 결코 호의적이지 않은 반응이었다. 중요한 자리에 무음을 해두지 않은 주건의 잘못도 명백했으나, 상대가 약속 시간보다 삼십 분이나 늦은 점을 고려하면 오만하기 짝이 없었다.

드디어 잡은 무명 간부와의 약속에 주건은 약속 시간보다 삼십 분이나 일찍 도착했다. 어떻게 잡은 약속인데 상대의 심기에 거스를 수야 없었다. 그런데 상대는 정한 시간이 넘도록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혹여라도 상대가 또다시 파투 낼까 초조해하며 한 시간이나 기다린 것을 생각하면 열불이 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노기가 충만한데, 전화를 받을 상황이 아님을 알면서도 뻔뻔하게 걸었을 태운의 낯짝을 떠올리니 그야말로 속이 끓었다. 상스러운 욕을 정성스럽게 씹어 삼킨 주건은 다시금 사무적인 미소를 입가에 띄웠다.

“한 번쯤은 얼굴 뵙고 싶었습니다, 구 사장님. 무명 내부에서도 높으신 분이라는 말 전해 들었습니다.”

“이전 건은 미안하게 됐네. 내가 워낙 바쁜 몸이라.”

“이해합니다. 최근 매매 쪽으로도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고….”

소파에 늘어지듯 기댄 구철용이 뒤편으로 손가락을 까딱였다. 그러자 대기하고 있던 조직원이 다가와 입에 연초를 내밀고 불을 붙여 주었다. 치익, 탁. 탁한 연기가 밀폐된 방을 그윽하게 채웠다. 무언가 독한 것이 섞였는지 근처에 있는 것만으로도 눈알이 아리고 매웠다. 주건은 슬쩍 눈살을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

“꼭 논의하고 싶은 건이 있었습니다.”

“논의?”

“예. 협력하는 과정에서 타협점을 찾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협력이라….”

나직이 중얼거린 구철용은 다시금 연기를 깊이 빨았다. 두툼한 입술 사이로 연초 끄트머리가 빠져나가고, 곧 새하얀 연기가 주건을 향해 뿜어져 나왔다. 안면을 휘감는 독한 연기에 주건이 얕게 기침을 토했다. 구철용의 입술이 삐뚜름하게 올랐다.

“내가 박 중위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 짭새 정보를 많이 물고 온다고?”

“…맞습니다.”

“덕분에 부하들이 제법 편하게 돌아다닌다고 들었네. 그 점에 있어서는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 아무래도 협력자는 하나라도 많은 편이 좋으니까 말이야. 믿음직스럽지.”

“…….”

미묘한 어감이 자존심을 갉작이듯 긁었다. 주건이 불쾌감을 감추지 않고 입을 닫자, 구철용은 바람 새는 웃음을 흘리며 손가락을 움직였다. 두툼한 손가락 사이에서 퉁퉁 튕긴 연초가 잿빛 가루를 날렸다.

“그래서, 내가 이번에는 조금 더 중요한 건을 맡기려고 하네.”

“…무엇을 말씀이십니까.”

“요즘 인형들이 제법 잘 팔려서 일손이 부족하거든. 어차피 박 중위 지금 한 손이 비어 있을 텐데, 큰물을 보고 건너오는 게 어떤가?”

“청운 부대를 넘기라는 말씀이십니까?”

“정확히는 처리하라는 소리일세.”

“구 사장님.”

주건이 목소리를 낮게 깔았다.

“처음 시작할 때 약속하셨던 부분입니다.”

“모든 것에는 때가 있는 법이네. 때가 되면 정리해야 하고, 그 시기는 한없이 가까워지고 있어. 귀가 밝은 중위도 알고 있을 테고 말이야.”

거기까지 말한 구철용은 다시금 연초를 빨았다. 주건은 이를 바득, 갈았다. 이제야 아귀가 맞아 떨어졌다.

주건이 여태까지 만남을 요청했던 이유를 저 사내는 일찌감치 알아채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계속해서 약속을 미루었고, 바깥 작업이 마무리될 즈음에 날짜를 잡았다. 애초에 주건의 요구를 들어줄 생각이 없었으니 말이다.

“그럼 하유진만이라도 넘겨주시죠. 저는 그 하나면 됩니다.”

“꼬리 잘린 도마뱀을 죽었다고 하던가? 머리가 멀쩡히 살아 있으면 가치가 없어.”

“구철용 사장님.”

“가랑이가 허전하면 인형 하나 가져가겠어?”

“하유진을 넘기세요. 그 외에 협상의 여지는 없습니다.”

“으흠.”

하찮다는 듯 조소를 흘린 구철용이 연초를 테이블에 눌러 비볐다. 치이익. 나무 표면이 그을리며 희미한 연기를 피워 올렸다. 의미심장한 손길이 구겨진 연초를 툭 쳐 냈다. 낙엽처럼 추락한 연초가 바닥에 건조된 이파리를 흩날렸다.

남은 냄새마저 털어내듯 손가락 끝을 툭툭 튀긴 구철용은 무릎을 짚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뭐, 알고는 있겠네.”

가느다란 눈으로 주건을 훑어본 그는 몸을 돌렸다. 구철용과 조직원이 룸에서 느긋하게 빠져나갔다. 홀로 남은 주건의 목덜미가 붉으락푸르락 물들더니, 곧 욕지기가 튀어나왔다.

“씨발.”

이 정도로 무시를 당하면 못 알아챌 수가 없다. 무명은 주건을 업신여기고 있다. 일이 순조롭게 풀리고 협력자가 늘어날수록 콧대도 동시에 하늘로 치솟은 것이다.

“좆같은 새끼.”

하. 헛웃음을 크게 뱉은 주건은 두피를 거칠게 문지르다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룸을 빠져나가 스테이지 쪽으로 갈수록 광광 울리는 클럽 음악이 골을 뒤흔들었다. 이곳에 온 김에 한바탕 뒹굴 생각이었지만 생각을 고쳤다. 집에 가서 하유진의 낯짝을 눈에 넣어야 이 분노가 조금이나마 가라앉을 것 같았다.

거친 걸음으로 출입구에 향하자, 옆에서 잔잔한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끝났습니까?”

흠칫한 주건이 옆을 돌아보았다. 바 테이블에 천태운이 기대어 서 있었다. 태연하게 웃고 있는 얼굴을 마주하자 뒤늦게 그를 불렀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협상이 성공하면 그것을 반찬 삼아 태운의 반응을 떠볼 요량이었다. 그런데 다 글러 먹었다.

주건은 신경질적으로 눈썹산을 치켜올렸다.

“끝났습니다만.”

“방금 정장 입은 사내 둘이 뒷문으로 나가던데. 저들이 간부입니까?”

“그―.”

말을 멈춘 주건이 아니꼬운 눈으로 태운을 보았다. 안 그래도 미심쩍은 놈에게 그런 정보까지 줄 이유는 없다.

“아뇨. 사복 차림이었습니다.”

“그렇습니까.”

태운이 짧게 웃었다. 신경이 예민해진 탓인지 그 웃음이 조소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이런 곳에서 실랑이하며 스트레스를 받느니, 그 시간에 하유진을 구경하는 것이 훨씬 나았다. 생각을 정리한 주건이 빠른 어조로 말했다.

“다음번에 다시 보겠습니다. 미안하게 됐습니다, 볼 일이 따로 생겨서. 나중에 연락하겠습니다.”

대답할 여유조차 주지 않고 쏘아붙인 주건은 그대로 옆을 스쳐 지나갔다. 눈썹을 들었다가 느리게 내린 태운은 다시금 웃음을 흘렸다. 굳이 묻지 않아도 협상의 결과는 알 만했다. 저 정도로 심기가 상했으니 아마 하유진을 보러 갈 요량이리라. 기절한 이를 깨워 억지로 미션을 밀어붙일 수는 없을 테고, 앓는 모습을 보며 자위나 하겠지.

그나저나 의도치 않게 시간이 비었다. 난잡한 내부를 길게 둘러본 태운은 클럽 안쪽 깊은 복도로 향했다. 구불구불한 길을 익숙하게 가로지르자 큼지막한 문이 모습을 드러냈다.

“들어가시겠습니까?”

문 앞을 지키고 선 직원이 태운을 알아보고 물었다. 태운은 고개를 짧게 끄덕였다. 허리를 숙인 직원이 문을 열어젖혔다.

클럽보다도 훨씬 적나라하고 음란한 난교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헐벗은 몸들이 이곳저곳에서 뒤엉킨 채 페로몬을 쏟아냈다. 정중앙에 서서 주변을 둘러보자, 태운의 존재를 알아차린 오메가 여럿이 슬금슬금 페로몬을 흘리며 다가왔다.

“안녕, 혼자 왔어?”

싸구려 단내가 코를 찔렀다. 있던 입맛마저 없게 만드는 냄새였다. 태운은 그들을 무시하고 걸음을 옮겼다.

얼마간 돌아다니자 방의 구석, 알파의 위에서 허리를 흔들고 있는 오메가가 눈에 띄었다. 쾌락으로 녹아내린 눈매와 얼굴을 훑어본 태운이 가까이 다가섰다. 엉덩이를 흔들며 정신없이 신음하던 오메가가 뽀얀 얼굴을 들었다.

예쁘장한 속눈썹이 팔랑거리며 위아래로 오르내렸다.

“……어라? 익숙한 얼굴이네….”

“또 봅니다.”

“으응. 그거, 나한테 박아 줄 거예요?”

탐욕스러운 시선이 태운의 하반신에 맴돌았다. 태운은 부정하는 대신 오메가의 뺨을 쥐었다. 다소 거칠고 페로몬 없는 건조한 접촉이었지만, 오메가는 바르르 떨며 눈시울을 붉혔다.

“옆방으로 옮기겠습니까? 여기는 좀 시끄러워서.”

나직한 속삭임에 오메가는 취한 듯 몸을 들었다. 주륵. 엉덩이 깊이 박혀 있던 성기가 빠지고 열린 구멍으로 정액이 흘렀다. 하지만 대수롭지 않은 듯 몸을 일으킨 그는 먼저 성큼성큼 걸음을 옮기는 태운의 뒤를 따랐다.

“내가 그렇게 먹고 싶었어요? 당신 같은 사람이 일부러 찾아오다니, 기분 좋은데.”

“기분 좋으면 입술도 좀 가벼워지나?”

“보기보다 엉큼하시네.”

교태롭게 웃은 오메가가 눈을 휘었다. 하얗고 말간 얼굴이 색스러운 빛을 머금었다. 누군가를 떠올리게 하는 얼굴이었다. 태운은 그의 어깨를 이끌어 방에 밀어 넣었다. 난잡하고 외설적이던 난교장의 소음은 정적에 휩싸여 사라졌다.

***

장내가 어수선했다. 널찍한 무대를 향한 수백 쌍의 시선이 번뜩였다. 존경을 담은 것 같기도, 혹은 자그마한 트집이라도 잡아내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 같기도 했다. 수군거리던 소란은 무대 위로 제복 차림의 사내가 올라서면서 가라앉았다.

모두의 시선을 받으며 단상 중앙에 선 사내는 마이크를 몇 번 만지는가 싶더니, 이내 엄중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 표창식을 시작하도록 하겠다. 호명하는 장병은 앞으로 나와 주길 바란다.”

기다렸다는 듯 제복을 입은 남자들이 하나둘 차례로 나왔다. 그들의 각종 업적과 치하하는 말이 줄지어 쏟아지고, 묵직한 박수 소리가 건물을 뒤흔들었다. 관중의 시선 역시 존경심으로 빛을 발했다.

한 명, 또 한 명. 그렇게 십수 명의 표창이 이어진 끝에 사내의 눈이 굳었다. 이름을 확인하는 듯하던 눈빛이 굴러 무대 옆쪽을 보았다.

“중위 하유진. 앞으로 나오도록.”

그 순간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분위기가 서늘해졌다. 활촉처럼 날선 시선들이 유진을 향해 날아들었다. 유진은 담담한 걸음으로 단상에 올랐다. 사내의 눈이 눈꺼풀로 반쯤 감긴 채 유진에게 올랐다.

“중위 하유진.”

“예.”

“그대는 오메가의 몸임에도 불구하고 야망에 눈이 멀어 제국군에 입단하였다.”

쥐 죽은 듯하던 장내가 조금씩 꿈틀거렸다. 등 뒤로 오르기 시작한 검붉은 열기가 공기를 덥혔다. 유진은 건조하게 눈을 깜빡였다.

“또한 그대는 부족한 실력과 신체적 조건으로도 부대장의 자리를 떠안고 알파들을 거느리는 만행을 저질렀다.”

“예.”

“그 결과 다른 동료들을 사지로 몰아넣고, 자신의 몸만을 보전했다. 이번에는 제국군으로서의 기개를 잃은 채 제국의 얼굴에 먹칠을 했다. 음탕하게 다리를 벌리고 구멍을 벌름거리며 부하들을 유혹하고 타락시켰다.”

사내의 어조가 거칠어질수록 분위기가 점점 무르익었다. 뜨끈하던 공기는 이내 화마처럼 휘몰아치며 유진의 등에 발톱을 세웠다. 찌익, 찍. 제목이 엉망으로 찢기며 검게 그을렸다. 탁한 연기가 유진의 숨결을 타고 들어가 폐를 오염시켰다.

“종래에는 욕정을 이기지 못하고 고귀한 부대원들을 모조리 죽음으로 내몰았으니 그 죄가 심중한 바!”

우우우우우―! 야유와 비난이 노골적으로 쏟아졌다. 무대를 기어올라 단상까지 이른 손길들이 너덜거리는 제복 사이를 파고들어 손톱을 박았다. 생채기가 길게 남고 그 사이로 피가 흘렀다. 유진은 혼탁한 눈으로 앞을 응시했다.

사내의 입술이 비틀렸다. 그의 하관이 어쩐지 조금, 주건과 닮은 것처럼 느껴졌다.

“그대를 영원히 음지로 추방한다.”

그 순간 단상이 쩌억 갈라졌다. 유진은 어둠에 빨려 들어가듯 그대로 추락했다. 야유가 멀어지고 매서운 겨울바람이 몸을 휘감았다.

유진은 시체처럼 늘어져 바람에 몸을 맡겼다. 채찍질하는 듯한 매서운 바람이 전신을 후려치고 피부를 긁었다. 까마득한 암흑 아래로 바닥은 보이지 않았다.

“중위님.”

그렇게 얼마나 추락했을까, 목소리가 들렸다. 유진은 고개를 돌렸다. 빠르게 지나치던 주변의 풍경이 일순 멈추고, 제원과 건호, 승일이 보였다. 허공에 서서 유진을 내려다보고 있는 그들의 눈은 하나같이 경멸을 담고 있었다.

“그게 최선이었어요? 대장.”

“당신에게 오지 말 것을 그랬습니다.”

“역시 오메가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건호가 몸을 돌리고, 곧 제원과 승일도 유진을 외면했다. 멈추었던 추락은 다시 시작되었다. 날카로운 바람이 뺨을 베고 전신에 자상을 남겼다. 암흑 속에서 스멀스멀 올라온 검은 손들이 더듬거리며 유진의 허벅지를 쓸어 올렸다.

저린 감각이 허리를 울렸다. 유진은 흑, 하고 신음을 삼키며 발끝을 굽혔다. 여린 살결을 애무하듯 깊이 파고든 손이 회음부와 엉덩이를 감쌌다. 뭉근한 손짓이 구멍 위로 닿았다.

그때 다시금 풍경이 멈추었다. 류진모가 모습을 드러냈다. 멍하던 유진의 눈이 움칠 떨렸다.

“대, 령님…….”

“하 중위.”

저벅, 저벅. 느긋한 발소리가 가까워졌다. 마치 허공을 내딛는 것처럼 꼿꼿한 자세로 걸어오는 그를 따라 유진이 눈동자를 움직였다. 형편없이 흔들리는 시선을 받으며, 류진모가 유진의 곁에 쭈그려 앉았다. 무감한 눈길이 유진의 꼴을 훑어내렸다.

“유진아.”

“…대령, 대령님…. 제가…….”

“실망스럽구나.”

“……―!”

유진의 눈이 크게 벌어졌다. 여태껏 담담하던 것이 거짓말처럼 격통이 심장을 꿰뚫었다. 유진은 얼굴을 와락 일그러뜨렸다. 대령님. 다급하게 입을 열며 그를 부르고자 했지만, 목이 꽉 막힌 듯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런 게 아닙니다. 잘못했어요. 모두 제 잘못입니다. 제가 원했던 것이 아닙니다!

뒤엉키는 변명과 사죄가 혀뿌리를 옭아맸다. 하지만 류진모의 얼굴 위로 선명한 멸시가 떠오르자, 마치 스위치를 누른 것처럼 온몸이 얼어붙었다.

“넌 내 수치다.”

“…….”

“네게 어울리는 자리로 돌아가 한평생 죗값을 치르도록 해라.”

몸을 일으킨 류진모가 멀어져갔다.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멈추었던 검은 손이 다시 움직였다. 외설적인 자극이 성기를 휘감고 구멍을 벌렸다. 감전을 당한 것처럼 유진이 몸을 튕겼다.

“제발, 내 말을―…….”

검은 손들이 허벅지를 휘감고 목을 옥죄었다. 가슴팍을 쓸어내리며 다리를 벌렸다. 옷가지가 모조리 찢겨 암흑 속으로 떨어졌다. 멈추었던 추락이 다시 시작되어 유진은 아래로, 또 아래로 떨어졌다.

제발. 유진은 바들거리는 손을 펼쳤다. 먼지처럼 작아지는 류진모의 뒷모습을 향해 팔을 뻗었다. 하지만 시커먼 어둠은 늪처럼 나신을 집어삼켰다. 버둥거리던 유진은 점차 힘을 잃어갔다. 모든 것이 멀어져갔고, 감각은 마비된 듯 바스라졌다.

암전되는 시야로 더 이상 그 누구도 보이지 않았다.

“헉―!!”

눈을 뜬 유진이 확 상체를 일으켰다. 헉헉대는 숨소리가 고막을 어지러이 긁었다. 피부 위로 맺혀 있던 식은땀이 등골을 타고 흘러내렸다. 창백한 낯으로 가쁘게 헐떡이던 유진은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침대 위였다.

……꿈이었다.

“하…….”

지독한 악몽이다. 유진은 고개를 떨구고 덜덜 떨리는 손으로 이마를 감쌌다. 얼음장 같은 손가락에 비해 손바닥은 땀으로 흥건했다. 끈적이는 물기를 피부 위로 비비듯 문지르며 눈두덩이를 꾹 눌렀다.

경멸 섞인 류진모의 눈빛이 지나치게 생생했다. 꿈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덜컹거리는 심장이 좀체 가라앉지를 않았다. 눈시울에 열이 올랐다.

유진은 울컥 오르는 응어리를 애써 목구멍 너머로 삼켰다. 눈썹 끝을 내리며 감정을 다스리고 있자,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대장? 깼어요?”

승일이었다. 몸을 움찔 떤 유진은 크게 들숨을 마시고, 부디 제 표정이 아무렇지 않기를 바라며 손을 떼어냈다. 다행히 눈가는 축축하지 않았다. 침대에 걸터앉은 승일이 고개를 들이밀었다.

“어디 아파? 마킹은 안 했는데.”

“……괜찮아.”

대답하자마자 목이 비틀리며 날카로운 통증이 올랐다.

유진은 저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리며 목을 감싸 쥐고 큼큼댔다.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승일이 물컵을 집어 건넸다. 받아서 목을 축이니, 미지근한 물이 식도를 훑고 지나가며 조금이나마 건조함을 완화시켰다.

헛기침하여 목소리를 고른 유진이 다시 입을 열었다.

“몇 시야? 건호랑 제원이는?”

“아홉 시 조금 넘겼어요. 신제원은 설거지. 이건호는 씻고 있고.”

아홉 시? 제 귀를 의심한 유진은 침을 삼켰다. 막연히 새벽이리라 생각하고 있었다. 다시 보니 협탁에 승일이 들고 온 쟁반이 놓여 있었다. 큼지막한 그릇에는 흰죽이 가득했다. 고소한 냄새를 풍기며 폴폴 오르는 김을 내려다보고 있자, 승일이 슬쩍 웃었다.

“아침은 저희끼리 챙겨 먹었어요. 저건 대장 몫.”

“…고맙다.”

분명 피로가 누적되었던 것이리라. 최근 잠을 자도 잔 것 같지 않았다. 오늘은 그에 더불어 식은땀으로 몸이 끈적거리기까지 했다. 여러모로 최악이었다.

유진은 한숨과 함께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쓸어넘겼다. 얼른 몸을 씻어버리는 것이 꺼림칙한 꿈을 잊어버리는 데 도움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침대와 근처의 바닥을 훑어보아도 벗어두었던 셔츠와 바지는커녕 속옷조차 보이지 않았다. 이마를 슬핏 찡그리며 눈을 굴리다 보니 슬그머니 의문이 떠올랐다.

한 명은 설거지, 한 명은 샤워. 그렇다면 감시는 누가 하고 있다는 말인가?

“천태운은…… 나갔고?”

“…….”

침묵으로도 대답은 충분했다. 유진은 쓴맛을 삼켰다.

이번에는 비교적 상황이 순탄해 잘 감시할 수 있을 줄 알았더니 그것도 아닌 듯했다. 애초에 이 저택에서 태운의 움직임을 방해하려던 것 자체가 허무맹랑한 생각인지도 몰랐다. 태운의 말대로 그냥 온전히 체력을 회복하게 두는 것이 현명할까.

유진은 볼 안쪽 여린 살을 잘근 씹었다. 올바른 결정을 내린다는 것은 늘 어려운 일이었다.

“대장.”

“일단 알겠어. 자세한 건 신제원한테 보고받고….”

“대장이 봐야 할 게 있어.”

승일이 슬쩍 몸을 물렸다. 마치 가리고 있던 무언가를 드러내 보이는 듯한 움직임이었다. 유진은 본능적으로 눈을 굴렸다. 승일의 어깨 너머로 여전히 빛나고 있는 모니터가 보였다.

[미션 실패

-치트 사용 경고-]

빨간색의 거대한 글씨가 동공으로 쑤셔 박혔다.

……실패? 나직이 중얼거린 유진이 미간을 좁혔다. 실패라니? 어제 분명 승일과 제대로 미션을 이행했을 터다. 그런데 실패는 뭐고, 치트는 또 무슨 뜻이란 말인가.

“…저게 대체 무슨 소리야.”

탄식하기 무섭게 팟, 하는 소리가 터지고 화면이 꺼졌다. 희게 질린 유진은 황급히 어제의 일을 되짚었다.

참았다고 생각했는데 모르는 사이에 정액이 흘렀나? 폭력적인 쾌락에 거의 정신이 나갔었기에 가능성은 충분했다. 혹은 승일이 뿌리에 끼워 주었던 링이 제대로 작용하지 않은 것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 별안간 깨달음이 번졌다.

사정 방지 링이다. 물리적인 도구를 사용한 것이 반칙으로 여겨진 것이다.

말문이 막혔다. 그럼 온전히 의지만으로 사정을 참았어야 성공으로 인정된다는 뜻이 아닌가. 애초부터 불가능한 미션이었다. 불가능한 것을 뻔히 알 텐데도 주건은 알파 억제제를 미끼 삼아 낚싯대를 던진 것이다. 그것에 보기 좋게 넘어갔다. 멍청하게도 말이다.

악몽 속의 목소리가 메아리쳤다.

‘실망스럽구나.’

하필 그런 꿈을 꾸어서는. 유진은 억지로 기억을 몰아내고 눈썹을 문질렀다.

“링 쓴 건 아웃이었나 봐. 미안해요, 대장.”

“…됐어. 어차피 그걸 안 썼어도….”

안 썼다면 일찌감치 실패했을 것이다. 도저히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기에 승일을 지하실로 내려보낸 것이었다. 결국 알파 억제제는 얻지 못한 것인가. 묵직해지는 승모근에 눈살이 절로 찌푸려졌다.

“저것 때문에 신제원이랑 잠깐 다퉜거든요. 그 사이에 천태운이 사라졌다더라고.”

충분히 그럴 만했다. 무겁게 끄덕인 유진은 몸을 일으켰다.

“그 부분은 나중에 회의에서 다시 얘기하자. 밤새 네 침대 차지해서 미안하다.”

“몸은 좀 어때요?”

“버틸 만해.”

연갈색 눈동자 위로 이채가 서렸다. 유진은 움직임을 멈추고 경계 어린 눈빛으로 승일을 보았다. 승일이 짓궂은 얼굴로 이죽거렸다.

“어디까지 기억하고 있어요?”

“……기억은 전부 하고 있어.”

“전부? 정말로?”

“…하고 싶은 말이 뭐야?”

얄쌍한 눈매가 샐그러졌다. 마치 사냥감이 덫에 걸리기만을 기다리는 것처럼 승일이 동공을 느릿하게 접어 얼굴을 훑어내렸다. 피부 위로 시선이 느껴지는 듯했다. 유진은 미간에 골을 만들었다. 짐작 가는 바가 없었다.

“뭐……. 기억 못 하면 어쩔 수 없죠.”

“무슨 소린지 똑바로 말해. 빙빙 돌리지 말고.”

“재밌는 걸 볼 수 있었을 텐데, 아쉽네. 밥 천천히 먹어요. 난 내려가 있을게.”

“백승일.”

비죽이 웃은 승일이 방을 나갔다. 유진은 침대 위에 덩그러니 앉은 채 닫힌 문을 응시했다. 어쩐지 기시감이 들었다. 재밌는 거. 어디선가 저 말을 들었던가.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식은땀이 말라붙어 끈끈한 불쾌함이 느껴졌다. 풀처럼 끈적하게 엉기는 땀을 엄지로 문지르니 기시감이 더욱 강해졌다. 불현듯, 질척하던 애액의 감촉이 떠오르며 승일의 웃음이 필름처럼 눈앞을 스쳤다.

‘시간이 날 때, 이건호 방에 들어가 봐. 물론 방이 비어 있을 때. 재미있는 걸 볼 수 있을 거야.’

잊고 있었던 것이 거짓말처럼 선명하게 기억났다. 유진의 얼굴이 흠칫 굳었다. 설마 건호가 정말로 억제제를 숨기기라도 했다는 소리인가?

“……하아.”

머리가 배로 무거워졌다.

고개를 저은 유진은 더듬거리듯 침대에서 내려섰다. 역시나 입고 왔던 옷은 보이지 않아, 그 대신으로나마 손에 걸리는 담요를 뒤집어쓰고 벽을 짚어 복도로 나섰다.

한 걸음이 백 보 같았다. 맨발에 닿는 바닥의 감촉도 낯설었다. 지끈거리는 허리를 부여잡고 겨우 욕실에 당도해 문고리를 돌렸다. 문을 열고 쏟아지는 습기를 얼굴로 맞을 때까지도 유진은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나체로 서 있는 건호를 시야 가득 담을 때까지 말이다.

유진은 아연한 기분으로 자리에 얼어붙었다. 건호가 씻고 있다던 승일의 말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인기척을 느낀 건호가 흘끗 고개를 틀어 유진을 보았다. 눈이 마주쳤다.

“…….”

“…….”

놀란 기색 하나 없는 고동색 동공이 유진의 얼굴을 둥글게 스친 후 천천히 아래로 향했다. 자그마한 담요로 채 다 가려지지 않은 나신을 타고 시선이 흘러내렸다.

목과 쇄골, 부어오른 유두. 치골을 훑고 내린 눈길이 은밀한 곳에 머물렀다. 하얗게 늘어진 성기와 허벅지에 닿은 시선이, 마치 손으로 희롱하는 것처럼 느리고 질척하게 살결을 쓸어 올렸다.

유진은 제 나신을 훑어보는 건호를 망연히 눈에 담았다. 아닐 거라는 간절한 마음이 폭우에 휩쓸리는 모래알처럼 손끝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이건호.”

떨리는 목소리를 겨우 쥐어짰다. 나직한 부름이 욕실을 울리자, 맹수의 것처럼 가늘게 수축했던 동공이 이완되며 건호의 시선이 유진의 얼굴로 올랐다. 언제 탐욕스러운 눈으로 보았냐는 듯 그의 눈매는 평소처럼 묵직하게 가라앉았다.

“다 사용했습니다.”

“…….”

“들어오세요.”

하반신에 타월을 두른 건호가 걸어 나왔다. 유진이 굳은 다리를 옮겨 옆으로 비켜서자, 복도로 나선 건호가 다시금 유진을 내려다보았다. 머리카락과 담요 사이, 은근하게 드러난 유진의 뒷덜미로 시선이 내려앉았다.

혀로 핥는 듯한 감각이 척추를 쓸어 올렸다.

“……읏.”

유진은 목뒤를 손바닥으로 감싸고 서둘러 욕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문을 거세게 닫아 시선을 차단했다. 하지만 솜털이 솟은 뒷덜미는 무언가 달라붙은 것처럼 따끔거렸다. 순간적으로 느낀 오싹한 감각이 피부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착각? 과연 방금 저 시선조차 정말로 착각일까?

유진은 무릎을 짚은 채 한참을 침묵했다. 그러자 공기 중에 떠돌던 습기가 건조한 피부를 감지하고 달라붙었다. 그 물기에는 미미한 알파 향이 섞여 있었다. 민감해진 살갗이 그마저도 버티지 못하고 저릿저릿 울렸다.

얕게 휘청거린 유진은 결국, 힘없이 바닥에 주저앉았다.

***

하루는 빠르게 지나갔다. 혼란의 파도 위에 부유하는 정신은 돌아올 기미를 보이지 않았는데, 그래도 시간은 꾸역꾸역 흘렀다.

저택에 태운이 없으니 할 일은 없었다. 정해진 쳇바퀴를 도는 것처럼 밥을 먹고 부대원들을 모아 회의를 진행했다. 얼핏 승일에게 정신이 팔려 태운을 놓쳤다고 고개를 숙이는 제원을 보았던 것 같은데, 복잡한 머리로는 진중한 사과가 스치듯이 들어왔다가 나갈 뿐이었다.

유진은 내심 주건의 연락을 기다렸다. 이번 미션에 대해 항의하고 가능하다면 미약한 정보라도 얻고 싶은 마음이었다. 하지만 홀로 방을 지켜도 전화기는 침묵을 유지했다. 삭막한 분위기만이 꿈틀거리는 유진의 마음에 불씨를 튕겼다.

그렇게 어떻게 지났을지 모를 시간을 하염없이 흘리고 저녁이 되었을 때, 유진은 겨우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잘 먹었어.”

빈 밥그릇을 개수대에 내려놓자 건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유진은 눈만 움직여 그의 손에 들린 수세미를 확인했다. 그리고 2층으로 올라 비어 있는 복도를 살핀 후, 조심스럽게 건호의 방으로 들어갔다.

종일 의구심과 자기 자신을 향한 자괴감으로 갈등하고 나니 오히려 망설임이 사라졌다. 유진은 굳은 얼굴로 건호의 방을 둘러보았다.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와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설거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그가 오기 전에 빠르게 해결해야 했다.

침대 근처의 협탁부터 수색을 시작했다. 더할 수 없을 정도로 꼼꼼하게 살펴보았지만 협탁과 서랍장, 그리고 책상을 살필 때까지도 특이점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럴수록 마음은 조금씩 이완되었다. 그저 터무니없는 오해였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서랍장과 침대까지 모조리 뒤지고 이상이 없음을 확인했을 때, 희망해 불과했던 바람은 확신에 가까워졌다. 유진은 저도 모르게 느슨한 미소를 머금었다. 역시 오해였다. 승일의 질 나쁜 장난이었던 것이다.

건호가 돌아오면 그에게 솔직하게 털어놓고 사과하자. 그 이후에 동료를 믿지 못한 자기 자신을 질책해도 늦지 않다.

유진은 가벼워진 걸음으로 방을 가로질렀다. 이제 남은 것은 옷장 하나였다. 우선 위쪽 진열장부터 열어 바닥과 천장 부분을 더듬고, 걸려 있는 재킷의 주머니까지 뒤졌다.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무릎을 꿇어 아래쪽의 서랍을 열었다.

달그락. 무언가 단단한 것이 긁히는 소리가 났다. 유진은 반사적으로 시선을 내렸다. 그림자 속에 감추어진 무언가가 반짝였다. 얼핏 제복 배지처럼 느껴지는 은색의 물체였다.

아까 걸려 있던 재킷에 배지가 없었던가. 기억을 더듬으며 물체를 끌어당겼다. 하지만 손끝에 닿는 감촉은 배지라기에는 지나치게 컸고, 또 서늘했다. 손끝이 움찔 굳었다.

“…….”

이 감촉을 지닌 물건을 알고 있다. 하지만 이곳에 있을 리가 없는 물건이었다. 유진은 물건을 손에 쥔 채 굳어 있다가, 천천히 손을 빼냈다. 예상을 빗나가지 않은 기다란 물체가 조명 아래 드러났다.

지하실 열쇠였다.

“……아니겠지. 설마.”

착각일 것이다. 유진은 손끝으로 열쇠의 끄트머리를 매만졌다. 하지만 열쇠를 자세히 살펴보는 눈동자가 점점 동요로 흔들렸다. 음각과 양각, 머리 부분의 문양까지 모두 기억하는 모습과 일치했다. 차이점을 찾으려고 하면 할수록 이것이 정말 지하실 열쇠라는 사실이 확실해졌다.

“헉.”

너무 시간을 오래 끌었다. 퍼뜩 정신을 차린 유진은 열쇠를 제자리에 쑤셔 넣었다. 서랍까지 서둘러 닫고 방을 뛰쳐나가자 계단을 오르는 인기척이 느껴졌다. 조금만 늦었더라면 마주쳤을 것이다. 가까워지는 발소리를 들으며 서둘러 제 방으로 돌아왔다.

문을 닫자마자 협탁에 넣어두었던 지하실 열쇠를 찾았다. 기다란 은색 몸체나 열쇠 머리, 양각과 음각. 더듬더듬 훑어가는 손끝이 덜덜 떨렸다. 단순히 같은 디자인이 아니었다. 완전히 동일한 열쇠였다. 지하실 열쇠가 두 개였던 것이다.

뒤통수를 후려치고 지나간 충격이 저릿한 열감을 낳았다.

“아….”

현기증이 일었다. 머리를 잡고 신음한 유진은 침대에 걸터앉았다. 눌린 하반신에서 둔탁한 통증이 올랐다. 들숨을 머금는 폐부가 점점 무거워졌다.

만일 건호가 무언가를 숨겼다면 억제제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하실 열쇠는 상상을 아득하게 뛰어넘었다. 대체 승일은 어떻게 알고 있었던 걸까? 저를 믿으라 속삭이던 승일이 오히려 두렵게 느껴졌다.

유진은 뾰족하게 솟은 의구심을 감싸 쥐고 천천히 이성을 돌이켰다.

지하실 열쇠를 건호가 갖고 있을 이유는 하나밖에 없다. 박주건이 건호에게 열쇠를 넘겨준 것이다. 대체 언제부터였는지는 의문이었지만 주건의 접촉 가능성이 농후한 만큼, 건호가 입은 피해가 없는지 먼저 살펴야 했다.

유진은 가장 처음 부대원들과 함께 탐색한 이래로 지하실을 방문한 적이 없다. 그러니 그곳에서 모종의 접촉이 이루어졌어도 알 방도가 없었다. 외면하고 싶은 마음에 기피했던 제 행동이 부하에게 악영향을 주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뒷덜미가 쭈뼛 섰다.

지하실을 확인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만약 지하실에 내려간 것을 누군가가 본다면 이유를 설명해야 했다. 건호에 대한 진실이 밝혀지지 않은 이상 부대원들에게, 그리고 건호 본인에게도 이 이야기는 말할 수 없었다.

지하실을 탐색한다면, 적절한 시간은 새벽이었다.

***

정신없이 흘러갔던 낮과 달리 시간은 굼벵이처럼 지났다. 이따금 부대원들이 복도를 지나는 소리가 들리고 종종 대화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유진은 인기척이 사라지기를 가만히 기다렸다. 이윽고 새벽이 찾아오고 짙은 고요가 깔렸다.

모두가 잠들었음을 확신했을 때, 유진은 몸을 일으켜 지하실로 향했다.

깊은 새벽의 지하실은 낮과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추웠다. 벽은 얼음장 같았고 호흡을 내뱉을 때마다 입김이 연기처럼 피어났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지나친 한기로 신경이 분산되어 도구를 민망해할 겨를조차 없다는 것이었다.

유진은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우선은 바닥이나 벽, 천장 위주로 살펴보고 그 다음으로는 서랍장을 살폈다. 첫 탐색 때보다도 훨씬 공을 들여 확인했지만 여전히 발견되는 것은 없었다. 손가락만 차게 얼어 점차 감각을 잃어갈 뿐이었다.

마음은 점점 조급해졌고 몸은 한기에 짓눌려 둔해졌다. 입술을 짓씹은 유진은 쭈그려 있던 몸을 일으켜 옆의 서랍장으로 향했다. 가장 위쪽의 칸을 열어젖히자, 다른 곳보다는 비교적 시야가 편안해졌다. 약이나 집게 등 정체를 알기 힘든 물건들이 들어 있는 칸이었다.

유진은 물건들을 이리저리 밀어내며 세심하게 살폈다. 그러다 보니 눈에 익은 약상자가 근처로 밀려왔다. 언젠가 승일이 효과가 대단하다고 칭찬했던 오메가 발정제였다.

“……하아.”

과연 지금 이게 의미가 있는 행동일까. 문득 허탈해졌다. 깊게 쑤셨던 손을 도로 빼냈다. 그러자 발정제 상자가 끌려 나왔다. 아무 생각 없이 시선을 내린 유진은 멈칫 굳었다. 상자의 포장이 뜯긴 상태였다.

그때 승일이 이것을 뜯었던가? 기억을 더듬어 보았지만 그런 장면은 떠오르지 않았다. 주변 기온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유진은 조심히 상자를 열어 내부를 보았다. 짙은 그림자 사이로 비어 있는 공간이 어렴풋이 드러났다. 마치 사용하기라도 한 것처럼, 알약 하나가 사라진 상태였다.

“…….”

툭. 상자 안쪽에 끼어 있던 설명서가 떨어졌다. 유진은 본능에 이끌리듯 그것을 주워서 펼쳤다. 약에 대한 설명서가 드러났다. 사용법이나 부작용에 관한 설명이 다 읽기 힘들 정도로 세세하고 길었다. 하지만 하단에 적힌 볼드체의 문장만큼은 또렷이 뇌리에 쑤셔 박혔다.

[주의: 히트 사이클에 임박하여 복용할 시 사이클이 앞당겨질 수 있습니다. 의사와의 상담 후 복용을 권장합니다.]

마지막 마침표를 읽기 무섭게 플래시백처럼 히트의 기억이 떠올랐다. 예상보다 이틀 앞섰던 히트가 주의 사항과 자물쇠처럼 끼워 맞춰졌다. 유진은 벅차오르는 호흡을 삼키며 뒷걸음질 쳤다.

날짜를 착각한 것이 아니라 발정제를 먹고 히트가 앞당겨졌던 거라면, 제원의 러트가 유발된 것이 아니라 제대로 된 날짜에 터진 것뿐이었다면. 그렇게 생각하면 모든 정황이 퍼즐처럼 들어맞았다. 단 하나, 제원에게 억제제를 사용했던 날의 러트만 빼고 말이다.

퍼뜩 고개를 든 유진은 다급한 손길로 서랍장을 뒤졌다. 제원과 사용했던 정조대는 투명한 상자 안에 담겨 있었다. 정조대 본품은 벨벳 재질의 복주머니 안에, 그리고 열쇠는 상자 바닥에서 모습을 찾을 수 있었다.

유진은 떨리는 손으로 주머니를 집어 들었다. 주머니 아래 깔려 잘 보이지 않던 열쇠가 모습을 드러냈다. 툭. 힘이 빠진 손가락 사이로 주머니가 빠져나가 바닥을 굴렀다. 가파르게 오르는 호흡이 기도를 틀어막았다.

정조대 열쇠는 두 개였다. 분실의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 애초에 두 개씩 만들어진 것이었다.

“…….”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하실의 열쇠가 두 개였던 것처럼, 만약 정조대의 열쇠 역시 두 개라면 제원이 아니더라도 정조대를 풀 수 있지 않았을까. 만약 건호가 그때에도 지하실을 드나들 수 있었다면 충분히 이것을 발견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날 유진을 덮치고 정조대를 풀었던 것은 과연 제원이었을까?

“……읏.”

유진은 황급히 정조대를 정리하고 계단을 뛰쳐 올랐다. 도망치듯 방으로 올라와 문을 닫자마자 허리가 꺾였다. 차게 식은 손이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벽을 짚고 휘청거리며 걸어가 무너지듯 소파에 앉았다.

이제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경계가 보이지 않았다.

동료들을 누구보다 신뢰했다. 저택에 갇혔을 때도, 주건의 배후에 무명이 자리 잡고 있음을 깨달았을 때도 부대원들과 함께 있으니 어떻게든 헤쳐나갈 수 있으리라 여겼다. 정작 저들의 생각은 달랐을까? 억제제 없이 저택에 갇혔음을 알았을 때, 과연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문득 악몽이 떠올랐다. ‘역시 오메가는.’ 그렇게 말했던 건호의 표정이 어땠던가.

오늘 욕실에서 마주쳤던 얼굴과 닮지는 않았던가?

“헉.”

소용돌이치던 상념이 얼어붙었다. 유진은 파리한 얼굴로 입을 틀어막았다. 방금 대체 무슨 생각을 한 거지. 위기감을 느낀 이성이 반짝반짝 경고등을 울렸다. 참고 있던 호흡을 터뜨린 것처럼 현실감이 되돌아왔다.

“진정해. 진정하자.”

유진은 양 팔뚝을 감싸 쥐고 깊이 심호흡했다. 설령 정말로 건호가 유진에게 발정제를 먹이고 정조대의 잠금을 풀었다고 하더라도 당장 달라지는 것은 없다. 어쩌면 박주건이 유진 몰래 건호를 협박했을 수도 있다. 유진이 무너지기만을 바라는 인물이니 가능성만큼은 충분했다.

밤이 깊었다. 새벽은 본래 이성적으로 생각하기 어려운 시간이다. 지금 혼자 이럴 것이 아니라 한숨 자고 일어나서 냉정하게 판단해도 늦지 않다. 거기까지 생각이 이르니 겨우 숨을 제대로 쉴 수 있었다.

유진은 소파에 늘어져 이마를 눌렀다. 격한 감정을 따라가지 못한 신체가 욱신거렸다. 피로도가 한계에 다다랐다. 아침부터 내내 긴장하고 있었던 근육이 비명을 질러댔다. 잠이 오지 않는다면 억지로라도 눈을 감아야 할 것 같았다.

소파 등받이를 짚고 침대를 향해 돌아섰다. 그러자 보여서는 안 되는 광경이 사진처럼 선명하게 머리로 들어왔다. 환한 화면을 발하고 있는 모니터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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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α는 F21을 사용하여 Ω 스팽 30회」

- 성공 시: 알파용 억제제

- 실패 시: ???

- 제한 시간: 3:00:00

당신은 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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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션? 지금 이 시간에?

……지금 이 타이밍에?

황망하게 서서 모니터를 응시하던 유진은 천천히 화면을 읽어내렸다. 낯선 단어들이 파편처럼 흩어지며 이성을 마구 두드렸다.

하필 지금 이랬어야 할까.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고통스러운 이 순간에마저 자신을 괴롭혀야 직성이 풀렸을까. 암담함이 뇌수를 물들였다. 한 발자국을 움직일 기력마저 남아 있지 않았다. 하지만 3이라는 숫자가 눈에 들어오자, 맥없이 늘어져 있던 손끝이 움칠 떨렸다.

스팽이라는 것을 경험해 본 적이 없으니 30회가 얼마나 대단한 횟수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세 시간은 결코 긴 시간이 아니었다. 망연자실하고 있을 여유가 없었다. 우선은 미션 대상인 알파가 누구인지부터 알아내야 했다.

유진은 순간 멈칫했다.

“……알파?”

미션 안내는 각 방의 모니터에 떠오른다. 그리고 미션 창이 타이머로 전환되기까지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지금 부대원들은 모두 자고 있다. 오싹함이 허리를 타고 올랐다.

유진은 뒷걸음질 치듯 방을 나왔다. 앞뒤 잴 것 없이 가장 먼저 보인 승일의 방문을 박차고 들어갔다. 쾅! 문이 벽과 충돌하며 요란한 소리가 났다. 침대에서 승일이 부스스 이불을 내렸다.

“대장……?”

유진은 황급히 빛이 느껴지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방의 구조는 모두 같았기에 단박에 모니터를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화면을 눈에 담기 직전, 팟! 하고 울리는 짧은 소리가 귀를 스쳤다. 안 돼. 밀려드는 절망감을 애써 외면하며 유진은 더듬더듬 눈을 굴렸다.

[02:59:59]

절박함을 비웃기라도 하는 것처럼, 거대해진 타이머가 화면을 가득 메웠다. 째깍, 째깍. 들릴 리 없는 숫자가 귓전에 천둥처럼 울렸다. 유진은 풀리는 무릎을 지탱하지 못하고 벽을 짚었다. 그런데도 바닥이 무너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건 아니다. 시키는 대로 하기를 바란다면 이래서는 안 되었다. 미션을 할 상대가 누군지 알지 못한다면 시도조차 해볼 수가 없지 않은가. 미션이라는 그럴싸한 포장재로 감싼 가학에 불과했다.

그러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주건에게 접촉하여 불합리에 대한 항변조차 하지 못한다. 이 꼴의 어디를 보아서 부대장이란 말인가. 한없이 무력한 느낌이 들었다.

“대장, 무슨 일이―….”

“…….”

유진은 삐걱거리는 고개를 비틀었다. 화면을 응시하고 있는 승일이 보였다. 그의 얼굴에 떠오른 놀라움이 일순 가식적으로 느껴졌다. 솟구치는 의구심을 억누르고 간신히 숨을 가다듬었다.

“일어나. 다른 애들도 깨우고. 미션이다.”

가라앉는 목소리로 말한 유진은 고개를 돌려 그 착각을 외면했다.

***

먼저 거실로 내려간 유진은 부대원들이 내려오길 기다리며 이마를 감쌌다. 다급한 생각이 줄지어 머리를 스쳐 갔다.

미션은 ‘스팽’, F21은 아직 찾아보지 않았지만 아마 미션을 위한 도구일 테다. 성공 보상으로 떠오른 알파 억제제도 간절하긴 했으나 그보다는 실패 페널티로 떠오른 물음표가 더욱 큰 문제였다. 이번에야말로 셋이 함께 발정을 일으킬 수도 있다. 최악의 경우, 유진까지 발정제를 먹게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애초에 주건은 미션을 거부할 선택권을 유진에게 줄 생각이 없다. 만약 이번에 또 미션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면 그 이후의 여파는 감히 상상하는 것조차 꺼려졌다.

상대 알파가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시도할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 부대원들과 차례대로 미션을 하는 것밖에 없었다.

“…….”

제한 시간은 고작 세 시간. 한 명과 제대로 하기에도 촉박한 시간이다. 아마 이미 10분은 족히 흘렀을 것이다. 그리고 가장 큰 문제로, 스팽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스팽이 대체 뭐지. 나직이 중얼거릴 때 나른한 숨결이 뒷덜미를 간질였다.

“엉덩이 맞으라는 소리예요.”

움찔 떤 유진이 뒤를 돌아보자 승일이 웃으며 허리를 폈다. 유진은 찝찝한 목덜미를 문지르며 눈짓했다. 그러자 비척비척 걸어온 승일이 자리에 앉았다. 평소보다 부스스한 머리카락이나 풀어진 얼굴 근육이 그의 잠기운을 대변했다.

“…엉덩이라니?”

“수치 플레이의 일종이죠.”

눈앞이 아찔해졌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세계였다. 손바닥에 얼굴을 묻고 있자 건호와 제원도 금방 계단을 내려왔다. 유진은 그들이 모두 자리에 앉았을 때 겨우 동요를 가라앉혔다.

“미션은 스팽 30회, 보상은 알파 억제제에 페널티는 미지수고. 보고 왔겠지만 제한 시간은 세 시간, 이미 시작되었어. ……도구는 F21.”

소파를 짚고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세 쌍의 시선이 따라 올라왔다. 저도 모르게 건호에게 흘끗 눈길을 던진 유진은 여전히 주머니에 들어 있는 지하실 열쇠를 꺼내 들었다.

“같이 내려가자.”

이번에야말로 도피하지 말고 제대로 현실을 직시하고 싶었다. 짙은 고동색에서 눈을 떼어낸 유진은 지하실을 향해 앞장섰다.

“어우, 춥네.”

후우. 입김을 불어내며 승일이 팔뚝을 문질렀다. 거침없이 계단을 내려간 유진은 알파벳 F를 찾아 다급히 시선을 돌렸다. 중위님. 조용하던 제원이 유진을 불렀다. 걸음을 재촉하여 그의 곁으로 걸어갔다.

“여기인 것 같습니다.”

제원의 앞에는 옷장처럼 생긴 진열장이 있었다. 유진은 굵은 서체의 글씨를 향해 눈을 들었다. [F21]. 확실히 이것이 맞았다. 다만 태그가 붙어 있는 것은 ‘물건’이 아닌 ‘진열장’ 자체였다.

타액을 삼킨 유진은 조심스럽게 진열장의 문을 잡았다. 뭉뚝한 나무 손잡이가 축축한 손바닥과 맞닿았다. 조금의 힘만으로도, 문은 소음 없이 부드럽게 열렸다.

내부가 희미한 조명 아래 훤히 드러났다. 진열장은 한 치의 빈틈조차 없을 정도로 빽빽하게 물건들이 들어차 있었다. 채찍부터 회초리, 가죽 패들까지. 하나같이 고문 도구로밖에 보이지 않는 물건들이 말이다. 유진은 할 말을 잃은 표정으로 진열장을 응시했다.

“이 중에서 선택해서 쓰라는 건가? 서비스가 좋은데.”

승일이 즐거운 기색으로 이것저것 건드리고 뒤적이며 재질을 확인했다. 유진이 아연한 기분으로 물러서자, 한 걸음 뒤에 서 있던 건호가 대신 다가와 진열장 내부를 훑어보았다. 그 눈빛이 마치 먹잇감을 고르는 하이에나처럼 느껴졌다.

제원의 시선이 볼에 와 닿았다. 차마 그의 표정까지 확인할 엄두가 나지 않아 입술을 씹어 물었다.

악질이다. 간사하고 저열한 속내가 노골적이었다. 미션 상대조차 알 수 없게 만든 후 이런 선택지를 주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유진은 손톱을 세워 손바닥에 박았다. 주건의 목적이 너무나도 명백한데, 아무리 생각해도 의도한 대로 움직이는 것밖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다시금 시커먼 무력감이 발목을 타고 올랐다.

“한 명씩… 시도해 보자.”

목소리 끝이 갈라졌다. 유진은 저를 돌아보는 부하들을 둘러보았다. 지금은 주건의 의도대로 넘어가 주는 수밖에 없다. 괜찮다. 부하들을 위험 속으로 몰아넣느니 차라리 모멸감을 조금 참겠다는 결심은 이미 끝난 지 오래다.

무너지지만 않으면 된다. 버티기만 하면 되었다.

“아플 거야, 대장.”

“아픈 게 나아. 익숙하니까.”

“하긴, 고문 훈련하면 대장이 늘 1등이었지.”

중얼거린 승일이 고개를 기울였다.

“그럼 여기 있는 것 중에서 아무거나 고른다?”

시선이 절로 진열장에 향했다. 유진은 애써 얼굴을 정면으로 고정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무엇을 쓰든 크게 다르지 않다. 엉덩이를 까는 수치심만 조금 버틴다면 고통은 그리 크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제한 시간과 미션 대상이다. 한 명씩 차례대로 시도해 보는 것은 불가피했다. 남은 것은 순서를 정하는 것뿐이었다.

“……순서는….”

객관적으로 생각했을 때, 승일은 가장 최근 미션을 했으니 곧바로 다시 돌아올 확률이 낮다. 하지만 이번 사태는 다분히 의도적이었으므로 오히려 승일을 골랐을 수도 있다. 유진은 쉽사리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입술을 축였다.

생각이 깊어질수록 망설임은 커졌다. 이 순간에도 타이머는 줄어들고 있다. 빨리 결정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유진은 이 주저의 이유를 알고 있었다.

저를 때릴 이를 제 입으로 호명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었다.

“…….”

“…….”

침묵이 이어지자 부대원들이 서로를 흘끔대며 시선을 섞었다. 맥동치는 심장 소리가 밖으로까지 나올 것 같았다. 결정을 내려야 했다. 깊게 심호흡을 한 유진은 억지로 입술을 비틀어 열었다.

그때, 내내 침묵하고 있던 건호가 입을 열었다.

“저희끼리 정하겠습니다.”

과부하가 올 정도로 돌아가던 사고가 푸스스 식었다. 유진은 느리게 시선을 돌려 건호를 보았다. 담담한 눈빛과 마주치자마자 반짝이며 이성이 돌아왔다. 그래, 이렇게 시간을 허비하느니 차라리 그게 나을 것 같았다.

몇 번 입을 달싹인 끝에 유진은 나직이 수긍했다.

“그렇게 하자.”

대답하는 순간 부대원들의 눈에 비릿한 기운이 스쳐 지나갔다. 신기루 같았다. 눈을 힘주어 깜빡인 유진은 반달 모양의 생채기가 남은 손바닥을 느릿하게 풀어 늘어뜨렸다.

***

먼저 방에 들어온 유진은 침대에 앉아 차게 식은 손바닥으로 무릎을 눌렀다. 문밖으로 부대원들이 상의하는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은연중에 귀를 뾰족하게 세웠지만, 내용까지는 들리지 않았다.

차오르는 긴장감을 얕은 호흡과 함께 내보내며 유진은 슬쩍 눈을 내렸다. 말끔하게 정돈된 제복 셔츠와 재킷, 그 위에 달린 수많은 배지와 완장이 보였다. 조명 아래 반짝이는 은빛이 바늘처럼 동공을 매섭게 찔렀다.

대한제국 제국군, 중위. 한낱 복식이 주는 의미는 결코 단순하지 않았다.

“…….”

유진은 몸을 일으켜 재킷을 벗었다. 조금 주름이 진 부분을 가볍게 털어 옷장 안에 걸어놓자 그림자 속에 반짝임이 가려졌다. 흐린 눈으로 은빛의 별을 응시하다가 조용히 문을 닫았다. 동시에 방문이 열렸다.

“중위님.”

첫 순서는 제원이었다.

유진은 그의 손에 들린 물건을 흘깃 보았다. 가죽으로 된 넓적한 패들이었다. 진열장에 있는 갖은 모양새의 기괴한 물건들 중에서는 그나마 가장 정상적으로 보이는 것이기도 했다. 만약 개중 징이 박힌 패들이라도 가져왔다면 피부가 남아나지 않았을 것이다.

말없이 침대에 오르자 제원이 문을 닫고 들어왔다. 그리고 서슴없이 다가와 유진의 허리를 당겼다. 망설임 없는 손길은 버클을 풀고 지퍼를 내렸다.

“읏…….”

“허리 올리세요.”

투둑, 툭. 몇 번의 접촉만으로도 손쉽게 풀린 바지는 속옷과 함께 주륵 내려갔다. 순식간에 하반신이 허전해졌다. 엉덩이를 때리는데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목 끝까지 물음이 올라왔지만 유진은 입술을 물었다.

제원은 잔뜩 경직된 몸을 뒤집어 침대에 엎었다. 흰색의 셔츠 아래로 엉덩이가 훤히 드러났다. 그 위로 빳빳한 가죽이 와 닿았다. 침대 시트를 와락 쥔 유진이 고개를 옆으로 비틀었다.

[02:39:48]

벌써 20분이나 지나 있었다.

“……신제원.”

“예, 중위님.”

“사정 봐줄 필요 없어. 괜찮으니까.”

등 위로 시선이 느껴졌다. 부하의 아래에서 엉덩이를 드러낸 채 엎드려 있다는 사실을 직시하니 묵직한 수치심이 하반신을 물들였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그저 고통을 참으면 될 이야기였다. 근육을 극한까지 혹사시키는 신체 단련과 큰 차이가 없다.

유진은 긴장한 손끝을 말아 침대 시트 사이로 밀어 넣었다.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따라 제원의 눈이 굴렀다. 침대를 붙잡은 창백한 손과 흑발이 흐트러진 목덜미, 그리고 탐스럽게 드러난 볼기를 길게 훑어본 제원이 손을 들었다.

은근한 손길이 엉덩이 위로 닿았다. 느릿하게 볼기를 쓸고 올라 셔츠 사이로 파고들었다. 빳빳한 셔츠가 밀려 올라 등허리를 드러냈다. 긴장한 유진이 어깨를 잔뜩 경직시켰다. 제원의 눈이 가늘어졌다.

“알겠습니다.”

단단한 손바닥이 아랫배를 받쳐 올렸다. 조금만 더 내려가면 성기에 닿을 정도로 깊은 위치였다. 흠칫하며 아래쪽을 내려다보자 가죽 패들이 높이 들렸다.

철썩―! 날카로운 소리가 엉덩이를 파고들었다. 유진의 눈이 홉뜨이며 위로 높게 들렸다.

“아윽……!”

순간 흉곽이 수축하며 숨이 막혔다. 저도 모르게 허리를 둥글게 굽힌 유진이 이마를 침대에 박았다. 헉, 헉. 놀란 호흡이 다급히 터지며 시트를 적셨다. 혼란스러운 머릿속으로 화륵, 타오르는 듯한 아픔이 밀려들었다.

상상 이상의 통증이었다. 볼기를 강타한 충격이 잔열처럼 남아 살갗을 팽창시키는 것이 실시간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놀라고 있을 틈은 없었다. 제원이 다시금 손을 높이 들었다.

짜악―! 가죽이 서슴없이 피부를 후려치고 거세게 긁으며 지나갔다.

“윽, 흐윽―!”

날카로운 고통이 허리를 일직선으로 타고 올랐다. 입술을 와락 깨문 유진이 어깨에 힘을 주었다. 후끈거리는 엉덩이를 향해 패들이 다시 날아들었다. 철썩―! 요란한 타격음과 함께 유진의 몸이 덜컥 튕겼다.

“아흑! 아, 흑.”

철썩!

“으흑――!”

패들이 엉덩이를 스치고 지날 때마다 눈앞에서 벼락이 치는 느낌이었다. 유진은 다급히 침대 시트를 그러쥐며 어떻게든 신음을 참으려고 했다. 하지만 날붙이로 생살을 헤집는 듯한 통증이 반복될수록 손발이 덜덜 떨리며 입술이 비틀렸다.

짜악―! 과육처럼 부푼 볼기가 타격을 이기지 못하고 밀려 올라갔다. 깊게 스미는 통증이 내벽까지 징징 울렸다. 유진은 참다못해 몸을 위로 물렸다. 그러자 아랫배를 받치고 있던 손길에 힘이 더해졌다.

마치 내벽을 덧그리는 것처럼, 피부를 뭉근하게 문지르는 손끝에서 페로몬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헉…! 잠, 아흑―!”

다시금 강한 힘이 엉덩이를 후려쳤다. 이를 절로 악물게 될 정도로 강한 통증이 번쩍였다. 유진은 덜덜 떨며 고통을 삭였다. 그사이 아랫배를 파고드는 페로몬은 더욱 선명해졌다.

예민해진 신체는 쏟아지는 고통을 쾌락으로 막기 위해 적극적으로 반응했다. 선명한 페로몬이 피부를 뚫고 들어와 혈관을 타고 번졌다. 하반신을 중심으로 열기가 급속도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제원, 흑, 잠깐…!”

“…….”

“페, 로몬 새고 있, 아윽――!”

다시금 벼락같은 통증이 볼기를 갈랐다. 파드득 떤 유진은 말을 마치지 못한 채 고개를 떨궜다. 아랫배를 뱀처럼 문지르며 지나간 페로몬은 다리 사이를 지나 둔부를 스쳤다. 그 순간, 팽팽하게 부어오른 피부 위로 불이 화르륵 붙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헉……!”

유진은 눈을 크게 뜨고 몸을 비틀었다. 이대로는 안 된다. 벗어나야만 했다. 페로몬과 만난 엉덩이가 기다렸다는 듯 허겁지겁 자극감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스팽만으로도 벅찬 지금 알파 향까지 나온다면 버틸 재간이 없었다.

유진은 어떻게든 아랫배를 쥔 손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쳤다. 하지만 단단한 팔은 아무리 밀치고 두드려도 떨어지지 않았다. 조급한 가운데, 귓속으로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파고들었다. 안 돼. 목 안으로 외친 순간 패들이 엉덩이를 내려쳤다.

철썩―! 눈앞이 순간 하얗게 물들었다. 동시에 볼기가 터져나가는 듯한 감각이 솟구쳤다. 불타는 볼기 위로 페로몬이 들이닥치고, 날카로운 열락이 피부를 길게 갈랐다. 유진은 참지 못하고 비명을 질렀다.

“아흐윽―! 아흑, 아……!”

너무 뜨거웠다. 살갗이 모조리 도려내진 것만 같았다. 이게 고통인지 쾌감인지 분간되지 않았다. 감각이 곤두서니 하반신을 긁어대는 통증이 더욱 격하게 느껴졌다.

가죽 패들이 다시 허공으로 올랐다. 사색이 된 유진이 다급히 제원의 손목을 붙잡았다. 엉덩이에 꽂혀 있던 제원의 시선이 굴러왔다. 눈이 마주친 찰나, 여태까지와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짙은 페로몬이 흘러나왔다. 아랫배에 질척한 용암이 차올랐다.

“―……! 아, 힉―.”

파드득 튀어 오른 유진이 제원의 손에 매달리듯 몸을 비틀었다. 배를 짓누르는 손가락 사이사이로 손끝을 밀어 넣었다. 제원의 손길을 떼어내기 위해 손톱을 세워 긁기도 하고 몸을 이리저리 흔들기도 했다. 그런데도 주입되는 페로몬이 멈추지 않자, 벌겋게 익은 볼기는 생존을 위해 본능적으로 향기를 흘리기 시작했다.

“아으, 힉…! 으흑―!”

태세를 전환한 오메가의 몸이 속절없이 녹아내렸다. 붉게 부어오른 볼기가 탐스럽게 흔들리고, 그 사이에서 움츠러들어 있던 구멍은 조금씩 봉긋하게 올랐다. 축 늘어져 있던 유진의 성기 역시 통통하게 몸집을 부풀렸다.

제원은 아랫배를 문지르던 손을 더 깊숙한 곳으로 밀어 넣었다. 손끝에 보드라운 성기가 스치듯 만져졌다. 페로몬을 가득 감은 손길이 말랑한 귀두에 닿았다. 그 순간 왈칵 터진 쾌락이 성기를 휘감고 마구 주물렀다. 번쩍 튕겨 오른 유진이 고개를 저었다.

“제, 흑! 신, 제원…!”

“…….”

“페로몬―… 흑! 그만….”

꿈틀거리는 목덜미를 타고 붉은 기운이 스멀스멀 올랐다. 통제에서 벗어난 오메가 페로몬도 점차 농도를 더해갔다. 손끝에 스치는 성기는 점점 단단해졌다. 말랑한 감촉의 성기가 유혹이라도 하듯 제원의 손에 몸체를 이리저리 비볐다.

“아흑, 제, 발. 신제원……!”

침대에 엎어진 채 바르작거리는 몸을, 그 몸을 가린 낱장의 하얀 셔츠를 응시하던 제원은 툭 눈을 내렸다. 먹음직스럽게 익은 볼깃살이 씰룩거렸다. 둔덕 사이로 은밀하게 보이는 골은 달큼한 냄새를 머금은 채 주름을 꽉 조였다.

심해처럼 깊이 가라앉은 눈이 제압당한 오메가의 신체를 응시하다가, 느리게 페로몬을 거두었다.

“허윽, 흑…!”

유진은 그대로 침대에 무너졌다. 엉덩이에서 오르는 통증이 성감과 뒤엉켰다. 이미 달아오른 기도는 산소를 들이켤 때마다 자극을 받았다. 다리 사이에서 성기가 쿠퍼액을 흘리는 것이 느껴졌다.

“……읏. 흐…….”

도대체 왜 페로몬을. 붉어진 눈시울을 들어 제원을 올려다보았다. 덤덤하기만 한 눈길이 정면으로 마주쳤다. 심연처럼 시커먼 눈으로부터는 의중이 전혀 읽히지 않았다.

너무 고통스러워하니 페로몬으로 아픔을 조금 덜어 주려는 요량이었을까? 그와의 첫 미션을 수행할 때 유진이 수치스러워할 것을 염려해 먼저 페로몬을 쏟아부었던 것처럼 말이다.

알 수 없다. 유진은 입술을 깨물고 시선을 돌렸다. 대답을 구할 수 없는 질문을 하는 대신 현실을 끌어당겼다. 시간은 제한되어 있고, 닥친 일을 해결하는 것이 먼저다. 그렇게 생각하며 애써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화면에 비친 타이머를 눈에 담자마자 모든 사고가 정지했다.

[01:13:52]

……뭐지?

눈을 힘껏 감았다가 다시 떴다. 한층 또렷해진 초점으로 숫자가 눈에 들어왔다. 1시간 13분. 달라지지 않은 타이머가 뇌리에 꽂혔다. 유진은 다급히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제원과의 미션을 시작했을 때, 타이머에 표시된 시간은 분명 2시간 40분이었다.

벌써 한 시간이 넘게 흘렀다는 것인가? 말도 안 되는 소리다. 하지만 타이머는 유진을 기다려 주지 않았다. 1초씩 줄어드는 숫자가 유진을 채찍질하듯 화면에 선명하게 떠올랐다.

사색이 된 유진이 황급히 제원을 돌아보았다.

“얼마나 남았지?”

“이제 절반입니다.”

고작 열다섯 대를 때리는 데 한 시간이나 흘렀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하지만 앞뒤를 재 볼 시간적 여유 따위 없었다. 볼 안쪽을 씹은 유진은 바들거리는 팔로 몸을 일으켜 다시 자세를 바로잡았다.

“이제 괜찮아. 다시 시작해.”

유진은 토실하게 부어오른 엉덩이를 다시 높이 치켜올렸다. 자연스럽게 볼기가 벌어지며 은밀한 골 사이를 내보였다. 핑크빛의 구멍 위로 제원의 시선이 닿았다. 오밀조밀한 주름이 움칠 떨렸다.

시선을 내리뜬 제원은 패들을 들었다. 철썩―! 익숙해지지 않는 통증이 허리를 관통했다. 절로 새는 짙은 신음에 유진이 눈을 일그러뜨렸다. 그때 모니터 위로 낯선 글귀가 스쳐 지나갔다.

“……저게 뭐….”

제원은 곧바로 다시 패들을 휘둘렀다. 짜악! 날카롭게 울리는 소리가 귀를 스치고 지나갔다. 뒤이은 통증이 하반신을 울렸지만, 또다시 화면을 스친 글자가 이번에는 조금 더 선명하게 보였다.

[실패 페널티: -5분]

자그마한 글자가 사라진 순간 타이머의 숫자가 훅 줄어들었다. 이제 화면에 떠오른 숫자는 1시간 3분. 아까보다 십 분이 줄어든 상태였다.

“자, 잠깐. 신제원. 멈춰 봐!”

공기를 가르던 패들이 우뚝 멈추었다. 경악스러운 호흡과 적막이 뒤섞였다. 유진은 파리한 얼굴로 제원을 보았다가 다시 모니터를 확인했다.

[01:03:02]

착각이 아니었다. 숫자가 비정상적으로 줄어들었다. 실패 페널티라는 문구와 함께.

“……네가 아니었어.”

저기서 말하는 ‘실패’가 미션 자체의 실패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면 상정할 수 있는 가능성은 하나뿐이다. ‘알파’가 제원이 아니기 때문에 그에 대한 페널티로 숫자가 줄어든 것이다. 한 대당 5분씩 말이다.

유진은 얼굴에서 핏기가 가시는 것을 느끼며 숨을 삼켰다. 여태까지 몇 대나 때렸더라. 아까 절반이랬으니 이제 열일곱 대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미 벌써 페널티만으로도 85분이 줄어들었다.

만약 이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한 상태로 미션을 계속했다면 30회를 마친 순간 미션 실패가 떴을 것이다. 척추를 타고 오한이 올랐다.

“네가 아니야……. 그 페널티로 한 대당 5분씩 줄어들어서 벌써….”

주건의 비웃음 소리가 귓전에 울리는 것 같았다. 주먹을 와락 쥔 유진은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목구멍으로 넘겼다. 그래도, 지금에라도 알아차려서 다행이었다. 아직 한 시간이 있고 규칙도 알아냈으니 촉박하기는 해도 불가능하지는 않을 터였다.

감정을 가라앉힌 유진은 한결 차분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밖에 나가서 다음 순서를 불러와. 방금 말한 것도 설명하고. 시간적 여유가 없으니까 늑장 부리지 말고 바로 들어오라고 해.”

“…….”

“신제원?”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유진은 뒤를 돌아보았다. 제원은 아까의 자세 그대로 유진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눈이 마주쳤다. 기이한 적막이 흘렀다. 유진은 이 침묵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눈을 찌푸렸다. 다시금 그를 부르려고 한 순간, 제원이 엉덩이 위로 손을 얹었다.

“읏.”

저린 통증과 함께 미미한 열감이 볼기를 감쌌다. 몸을 움찔 떤 유진이 눈썹을 일그러뜨렸다. 제원은 유진의 얼굴에 시선을 고정한 채, 따끈한 살집을 쓸어 올려 한쪽 엉덩이를 둥글게 말아 쥐었다.

스윽. 단단한 손바닥이 부어오른 살갗을 문지르고 지나갔다. 그리고 볼깃살을 가볍게 주물렀다. 건드리는 것에 가까울 정도로 약한 접촉이었지만, 벌겋게 익은 피부는 그것만으로도 통증을 호소했다. 읏, 흑. 짤막한 신음이 입술 새로 흘러나갈 때마다 뒤를 매만지는 손길이 더욱 강해졌다.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이지.

혼돈이 휘몰아쳤다. 유진은 흔들리는 눈으로 제원을 올려다보았다. 분명 신제원이 맞는데, 감정 하나 드러나지 않은 얼굴이 꼭 가면을 덧씌운 것처럼 느껴졌다. 엎드린 유진과 서 있는 제원 사이의 높이가, 제원의 등 뒤로 역광처럼 비치는 조명이 그를 낯설게 만들었다.

“……제, 원…….”

달싹이는 입술로 제원의 눈길이 길게 머물렀다. 폐부가 조여드는 긴장감이 전신을 오르내렸다. 가늘게 좁아진 기도가 희박한 산소를 가쁘게 실어 날랐다. 유진의 눈동자가 좌우로 잘게 흔들렸다.

느릿하게, 엉덩이로부터 손이 떨어졌다.

“불러오겠습니다.”

짤막하게 말한 제원이 몸을 돌렸다. 발소리가 멀어지고 문이 닫혔다. 복도를 가로지르는 걸음이 멀어질 때까지도 유진은 자리에 굳은 채 움직이지 못했다. 부어오른 엉덩이는 욱신거렸고, 알파 향이 파고든 아랫배는 꿈틀거리며 성감을 호소했다.

하지만 그보다도 훨씬 강한 위기감이 몸을 떨게 만들었다. 유진은 양손을 말아 쥐었다. 서늘한 손가락이 둥글게 말리며 잘게 경련했다.

착각일까? 알파 페로몬을 느끼고 공황에 빠져 과민하게 받아들인 걸까?

자문해 보아도 답은 나오지 않았다. 유진은 더듬더듬 엉덩이 사이로 손가락을 넣었다. 아주 약간 물기가 느껴졌다. 그제야 조금씩 새고 있는 자신의 페로몬이 느껴졌다. 화들짝 놀라 서둘러 페로몬을 거두었다.

누구의 페로몬이 샌 것이 먼저였을까. 유진이 페로몬을 흘렸기 때문에 제원이 저런 반응을 보였던 것일까?

확인할 방법은 존재하지 않았다.

“대장?”

문이 벌컥 열렸다. 유진은 황급히 엉덩이에서 손을 떼어내고 고개를 돌렸다. 때맞추어 얼굴을 들이민 승일이 방을 둘러보더니 안으로 들어왔다. 다음 순서는 승일인 모양이었다. 애써 동요를 다잡고 몸을 일으켰다. 똑바로 앉을 생각이었지만, 엉덩이가 침대에 눌리자 찌릿한 통증이 솟구치듯 올랐다.

“흣.”

짧은 신음이 터져 나왔다. 승일의 입꼬리가 둥글게 휘었다.

“많이 맞았어요? 신제원 눈빛이 심상치 않던데.”

“…버틸 만해.”

“엉덩이는?”

휘익. 공기를 가르는 날카로운 소리가 허공에 울렸다. 등허리가 쭈뼛 섰다. 반사적으로 승일을 돌아보자 그의 손에 들린 기다란 회초리가 눈에 들어왔다. 어린아이를 훈육할 때 사용할 법한 모양새였다. 경악을 감출 길이 없었다.

하지만 승일은 태연한 얼굴로 성큼 들어와 유진의 뺨을 쥐었다. 뭉근한 손길이 눈 근처의 여린 살을 문질렀다.

“울지는 않은 것 같은데.”

“…….”

웃음기 섞인 짓궂은 목소리가 꼭 울기를 바란 것처럼 들렸다. 반짝이는 눈빛을 마주하니 한숨이 절로 샜다. 제원으로 가득 찼던 머릿속이 푸시시 식는 것이 느껴졌다. 유진은 승일의 손을 털어내듯 밀쳤다.

“그만 떠들고 시작해.”

“넵, 대장.”

비죽 웃은 승일이 침대에 걸터앉았다. 유진은 식도를 따끔하게 채우는 수치심을 꿀꺽 삼켜내고 침대 중앙으로 향했다. 하지만 한 걸음 움직이기가 무섭게 발목이 잡혀 주륵, 끌려 내려갔다.

“무슨….”

맥없이 끌려간 몸은 승일의 위로 엎어졌다. 아랫배가 승일의 다리 위에 얹어지고 엉덩이가 상승하여 승일의 시야 아래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발긋하게 익은 볼기를 훑어본 승일이 슬쩍 시선을 기울였다. 움찔거리는 하반신 아래로 반쯤 발기한 유진의 성기가 보였다.

입매를 들썩인 승일이 그것을 덥석 쥐었다. 파드득 튀어 오른 유진이 일그러진 낯빛을 내보였다.

“백승일!”

“세웠네? 느꼈어? 이런 취향인 줄 알았으면 더 아픈 걸로 가져올 걸 그랬나.”

“아, 흑…!”

밀가루 반죽을 주무르듯 사정없는 손길 아래 성기가 이리저리 눌렸다. 직접적인 자극은 애매하게 달아올랐던 성감을 멱살 잡아 끌어 올렸다.

유진은 침대를 짚고 몸을 일으키려고 했다. 그러자 승일이 다른 손으로 유진의 척추를 묵직하게 눌렀다. 엎어진 자세에서 유리한 것은 승일이었다. 저항을 하던 몸은 곧 강제적으로 밀려드는 폭력적인 쾌감에 점점 힘을 잃어갔다.

“으흑. 아! 아, 그만….”

“아니면, 페로몬이라도 흘렸어요?”

“흐읏……!”

성기를 감싼 손에서 알파 향이 흘러나왔다. 민감한 성기는 맞닿는 페로몬을 빠른 속도로 흡수해 아랫배로 날랐다. 화르륵 일어난 열기가 내벽을 짙게 물들였다. 덜컹거린 몸이 허리를 휘며 고개를 저었다.

“그만, 흣! 이럴, 때가―.”

“아무래도 이번 알파가 나는 아닌 것 같거든. 그런데 고작 한 대만 때리고 물러나면 내가 너무 억울하잖아요.”

흥얼거리듯 말한 승일이 슬쩍 눈을 내렸다. 약간 말랑하던 성기가 어느새 통통하게 부풀어 쿠퍼액을 찔끔찔끔 뱉고 있었다. 엄지로 요도구를 둥글게 문지르자 척추선이 잘록하게 패이며 바들거렸다. 달큼한 향기도 탁 퍼지듯 풍겨 나왔다.

만족한 듯 성기를 놓아준 승일은 이번엔 엉덩이로 타깃을 바꾸었다. 평소에도 토실한 엉덩이는 부기가 더해지자 봉긋하게 솟아 더욱 입맛을 자극했다. 생채기가 남은 피부를 손끝으로 가볍게 문지르니 유진이 앓는 소리를 내었다. 근육도 한껏 수축했다가 도로 늘어졌다.

승일의 입술이 비틀렸다. 따끈한 살집을 살살 문지르다가 벌리고 구멍 위로 손끝을 올렸다. 화들짝 놀란 주름이 모여들며 손가락 끄트머리를 물었다.

“흣! 백승일……!”

“걱정 마요. 아직 한 시간 가까이 남았고, 엉덩이는 안 때릴 테니까. 대신 우는 모습 구경 좀 하게 해주세요. 이번에는 그걸로 넘어가 줄게.”

말을 끝맺는 동시에 승일이 페로몬을 개방했다. 알싸한 향기가 기도를 파고들고 삽시간에 전신으로 퍼졌다. 헉 숨을 들이켠 유진이 몸을 뒤틀었다. 뒤는 안 돼. 제발 뒤만은 안 돼. 간절한 마음을 간파하기라도 한 것처럼, 날을 세운 페로몬이 주름을 흥건하게 적셨다.

“아흑! 아아……!”

송곳처럼 뾰족한 알파 향이 주름을 비집고 들어왔다. 점막으로 밀려든 요란한 기세가 아랫배를 헤집듯 돌아다니며 열감을 끌어 올렸다. 안 된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몸은 통제되지 않았다. 움찔거리던 성기가 완전히 발기해 승일의 허벅지를 찔렀다.

낮게 웃은 승일이 손끝으로 맞물린 구멍을 문질렀다. 급속도로 부푸는 구멍 사이로 달큼한 애액이 스며 나왔다. 그것을 지문 사이사이로 펴 바르듯 진득하게 문지르니 유진이 바들바들 몸을 떨었다.

“음탕하네, 대장. 엉덩이 맞으면서 애액이나 질질 흘리고.”

“으, 흣! 승일, 아읏….”

“귀여워.”

피식 웃은 승일은 고개를 숙여 파르르 흔들리는 목덜미에 짧게 입을 맞추었다. 유진이 겨우 흐물거리는 눈에 힘을 주어 승일을 돌아보았지만, 주름을 문지르던 손가락이 조금씩 밀려들기 시작하자 다시 표정을 허물고 고개를 푹 떨궜다.

주름이 하나씩 펴지며 단단한 손가락이 내벽 사이로 밀려들었다.

“으흣, 아, 흣…!”

“여기, 어떤 감촉인지 알아? 구멍은 존나 통통하고 말랑한데 안쪽은 뜨겁고 찐득해. 소리 들려?”

손가락이 옅게 추삽질하듯 움직였다. 그러자 내부에 고여 있던 애액이 쿨쩍거리는 소리를 냈다. 물장구를 치는 듯한 그 소리가 고막을 두드리자 수치심이 얼굴을 물들였다. 유진은 흐느끼듯 목구멍에 힘을 주었다.

낮게 웃은 승일은 움찔거리는 어깨와 목선을 응시하며 손끝에 힘을 주었다. 내벽을 긁듯이 천천히 밀어 올리자 붉은 볼기가 힘을 잔뜩 주었다. 꾸물거리는 내벽이 손가락에 촘촘히 달라붙었다.

귀여워하듯 몇 번 점막을 문질러 준 승일은 내벽 깊은 곳에 자리한 도톰한 살점을 두드렸다. 톡. 가볍게 건드리기 무섭게 격렬한 반응이 돌아왔다.

“아읏! 거, 거기는…. 아!”

“저번에 여기 문질러 줬더니, 페로몬 없는데도 자지러졌잖아. 그때 대장 엄청 귀여웠는데. 야하고.”

“흐윽…! 그, 그만해. 아흐―.”

손가락이 주륵 빠져나갔다. 바들바들 떨던 유진이 힘없이 축 늘어졌다. 하지만 곧 손가락 두 개가 주름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유진이 다급히 구멍에 힘을 주었지만, 틈새를 후벼 파듯 쑤시는 손길을 막기란 불가능했다.

다시금 열린 구멍 속으로 두툼한 손가락이 파고들었다. 점막이 매달리듯 손가락에 들러붙었다. 눈을 갸름하게 좁힌 승일은 단숨에 전립선을 향해 찔러넣었다. 말캉한 살점이 손끝에 꼬집히듯 짓이겨졌다.

내벽이 와락 수축하며 애액과 페로몬을 왈칵 쏟았다.

“아으! 흑! 승일, 하읏…!”

“엄청 조이네…. 그렇게 좋아? 부하 손가락 물고 앙앙거릴 만큼?”

웃음기 섞인 목소리가 속살거렸다. 수치심이 화마가 되어 기도를 불태웠다. 유진이 붉어진 눈을 바짝 치켜올려 승일을 돌아보았지만, 살벌한 눈길에도 불구하고 승일의 미소는 배로 짙어졌다.

구멍을 파고든 손가락이 본격적으로 내벽을 자극하기 시작했다.

“흑! 아, 아흑…!”

구멍을 쓸고 나간 손가락이 내벽을 가르며 전립선까지 도달했다. 한껏 긴장한 그 부위를 둥글게 문지르고 쿡쿡 찔렀다가, 내벽이 꽈악 조여들어 파르르 경련하면 느리게 빠져나갔다. 그리고 다시 삽입되어 전립선을 건드리기를 반복했다.

그럴수록 구멍과 폐를 통해 흡수되는 알파 페로몬은 급속도로 진해졌다. 지나치게 농도 짙은 알파 향 탓에 내벽이 벌겋게 익어 스치는 것만으로도 쾌락이 올랐다.

유진은 최대한 입술을 짓씹고 침대를 힘주어 붙들었다. 신음과 쾌감을 조금이라도 막으려는 몸짓이었지만 효과는 미미했다. 뒤를 파고드는 손길이 지나치게 생생하게 느껴졌다. 스팽의 여파로 부어오른 볼기가 알파 향을 더욱 민감하게 받아들였다.

“백승, 흑. 그만….”

“구멍 벌름거리면서 무슨 소리야. 여기 오메가 냄새 풀풀 풍기고 있는 거 안 느껴져?”

손가락이 가위질하듯 구멍을 넓게 벌렸다. 뜨거운 점막 사이로 건조한 공기가 파고들었다. 동시에 공기와 뒤섞여 있던 알파 페로몬이 비틀린 내벽 사이로 들어찼다. 마치 끓는 물을 구멍 속으로 쏟아부은 듯한 느낌이었다.

“으흐윽, 아…!”

“아, 너무 강했나?”

“흐읏. 아, 아….”

따끈한 엉덩이 살을 벌려 구멍을 들여다본 승일은 벌렸던 손가락을 다시 좁혔다. 그리고 오므라든 구멍 사이로 손가락 하나를 더했다. 찐득한 구멍이 동그랗게 늘어나며 손가락을 오물오물 삼켰다.

유진이 작게 흐느꼈다. 하지만 그에 비해 승일의 허벅지를 찌르고 있는 유진의 성기는 쿠퍼액을 질척하게 흘려대고 있었다. 입꼬리를 든 승일이 손가락을 둥글게 굽혀 전립선을 비볐다.

“아으, 아! 안 돼, 흑, 승일아…!”

“야하게 울면서 가 봐요. 그럼 엉덩이 때려 줄게.”

“아, 앗, 흐윽!”

통통한 살점이 반죽을 당하듯 손끝에서 이리저리 밀리고 눌렸다. 손가락을 통해 쏟아지는 페로몬도 극에 달해 구멍이 온통 간지럽고 뜨거웠다. 가려운 곳을 긁어 주는 것처럼 손끝이 스치자 전율처럼 쾌락이 올랐다. 몸을 도저히 가만히 둘 수가 없었다.

유진은 승일의 허벅지를 부여잡고 엉덩이를 들썩였다. 그럴 때마다 승일이 칭찬이라도 하는 것처럼 내벽을 살살 긁어 주었다. 구멍이 벌어지고 내벽이 문질러지는 그 감각이 저리도록 좋았다.

좋다고 인정하고 싶지 않은데, 좋지 않을 수가 없었다.

“기분 좋아? 대장.”

낮은 음성이 성감을 부추겼다. 구멍이 와락 수축해 손가락을 깨물자, 작게 웃은 승일이 손가락을 깊이 쑤셨다. 구멍이 바짝 벌어지고 내벽이 채워졌다. 그리고 전립선이 강하게 짓눌렸다. 파득파득 튀기는 쾌락이 배 속을 가득 물들이고 허리가 쭈뼛 섰다. 더는 버틸 수가 없었다. 승일의 미소가 짙어졌다.

“가도 돼.”

허가의 말처럼 떨어지는 속삭임 아래에서, 유진은 절정에 올랐다.

“흐윽, 아아! 아, 흑!”

구멍이 미친 듯이 조여들고 엉덩이는 허공으로 들썩였다. 승일은 절정하는 오메가의 냄새를 폐부 깊이 들이마셨다. 잘록한 척추 선을 손끝으로 문지르고 꿈틀거리는 내벽 사이로 푹푹 손가락을 쑤셨다. 유진의 흐느낌이 높아졌다.

“아, 아……! 으흑…―.”

투둑. 하얀 정액이 쏟아지며 승일의 바지를 적셨다. 코가 아리도록 달큼한 향내가 기도를 자극했다. 하아. 나른한 숨을 흘리며 만족스럽게 웃은 승일이 느리게 손가락을 뽑았다. 찐득하게 달라붙는 구멍이 조금 딸려 나왔다가 조금씩 오므라들었다.

처음보다 많이 부푼 분홍빛의 구멍을 손끝으로 매만지며 승일이 웃었다.

“잘했어요, 대장.”

“…으, 흣…….”

“이제 엉덩이 때려 줄게.”

승일은 회초리를 들어 가볍게 휘둘렀다. 얄쌍한 회초리가 찰싹 소리를 내며 엉덩이 위로 기다란 자국을 남겼다. 몸을 움찔 떤 유진이 고개를 비틀었다. 화면 위로 실패라는 문구가 짧게 스쳐 지나갔다.

[00:41:02]

여태껏 본 적 없던 작은 숫자가 흐릿한 시야를 가득 채웠다.

“역시 아니었네. 바로 때렸으면 나만 아쉬울 뻔했어.”

찰싹찰싹. 볼기를 두어 번 두드린 승일이 유진을 침대에 내려 주었다. 달아오른 숨을 가쁘게 쉬고 있자 눈웃음을 지은 승일이 손을 뻗었다. 반사적으로 눈을 감았지만, 손길은 흐트러진 머리카락 위를 가볍게 두드리고 떨어져 나갔다.

“이제 이건호 불러올게요. 조금이라도 쉬고 있어.”

“…….”

손을 저은 승일이 슬렁슬렁 방을 빠져나갔다. 유진은 닫히는 문을 멍하니 보다가 고개를 툭 내렸다. 버석한 침대 시트가 뺨에 눌렀다. 탁한 숨이 터져 나왔다.

열기가 가라앉지 않았다. 절정의 여운이 전신을 맴돌며 부족한 자극을 갈구했다. 사정했는데도 구멍은 알파를 부르짖듯 애액을 찔끔찔끔 흘려댔다. 볼기를 휘감은 통증마저도 본능을 부추겼다. 도저히 익숙해질 수가 없는 감각이었다.

침대에 엎어진 채 바르작거리자 문이 열렸다. 움찔 떤 유진은 시선을 들었다. 건호가 들어오고 있었다.

“실례하겠습니다.”

건호는 문을 닫고 곧장 걸어왔다. 그가 가까워질수록 절정감에 부유하던 정신이 조금씩 돌아왔다. 유진은 고개에 억지로 힘을 주고 들었다. 품평하듯 내려다보는 고동색 눈과 똑바로 마주쳤다.

은빛의 열쇠가 눈앞에서 반짝거리는 착각이 일었다.

“…….”

적막이 내려앉았다. 건호는 침대맡에 선 채 유진의 몰골을 훑어보았고, 유진은 그 눈길을 고스란히 받아내며 몸을 떨었다. 진득한 시선이 나신을 쓸어내릴 때마다 솜털이 바싹 섰다. 유진은 일그러지는 눈으로 건호를 올려다보았다. 온갖 물음들이 뒤섞여 혀를 두드렸다.

왜 지하실 열쇠를 갖고 있었어? 왜 제원과 있었다고 거짓말을 했지?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텐데 어째서 억제제를 잃어버린 거야. 그것도 이렇게 공교로운 타이밍에.

물어야 한다. 물어야 했다. 부대장의 책임감이 어깨를 짓이기고 목을 타고 올라 기도를 조였다. 긴장한 호흡이 색색거리며 주변 공기를 물들였다. 건호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돌연, 어마어마한 페로몬이 유진의 머리 위로 쏟아졌다.

“……――! 헉―.”

용암처럼 쏟아지는 지독한 페로몬이 기도로 흘러들자마자 점막을 갈기갈기 찢어발겼다. 살점을 밀치고 파고든 알파 향은 창이 되어 혈관을 향해 돌진했다. 단숨에 침범당한 혈관은 고통스러운 페로몬을 머금은 채 전신을 파고들었다.

온몸이 잠식당하는 데는 몇 초도 채 걸리지 않았다. 크게 휘청거린 유진이 침대 위로 엎어졌다.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바들거리는 모습을 건호가 내리뜬 눈으로 지켜보았다.

“어흑, 아! 흐……!”

하얀 몸이 점차 울긋불긋하게 달아올랐다. 붉게 부푼 엉덩이 사이로는 애액이 주륵 쏟아졌다. 호흡이 막힌 얼굴이 벌겋게 익었지만, 고통스러워하는 표정과 달리 다리 사이에서는 하얀 성기가 빳빳하게 부풀어 올랐다.

불거진 마디마디가 침대를 긁었다. 홍수처럼 쏟아지는 날카로운 페로몬이 오메가의 신체를 집어삼켰다. 가슴이 부풀고 유두는 팽팽하게 올라 진한 향기를 왈칵 뿜었다. 방 내부의 공기가 더할 수 없을 정도로 진한 오메가 향으로 물들었다.

바들바들 떨던 유진이 눈물을 주륵 흘렸을 때, 건호가 페로몬을 거둬들였다. 침대 위로 풀썩 쓰러진 유진은 작열감에 타오르는 목을 감싸 쥐고 숨을 들이켰다.

“쿨럭! 쿨럭, 으흑―. 건, 호….”

목소리를 내는 것마저 고통이었다. 폐가 온통 화상을 입은 것처럼 화끈거렸다. 몸은 두려울 정도로 달아올라 침대 시트마저 자극이 되었다. 특히 엉덩이 사이는 애액으로 흠뻑 젖어 타들어가는 듯했다.

어째서. 눈물로 얼룩진 시야를 들자 침대 옆에 선 건호의 다리가 보였다. 그리고 그가 손에 쥐고 있는 가죽 벨트도 보였다. 모양새가 낯익었다.

매일같이 착용하는, 제국군 제복 벨트였다.

“허, 헉…. 이, 건호….”

“제대로, 지하실 진열장에 있는 걸 가져왔습니다.”

건호는 엎어져 있는 유진을 끌어당겨 침대 가장자리에 놓았다. 골반이 잡혀 들리고, 다리는 벌어져 엉덩이만 허공으로 올랐다. 건호는 찬찬히 유진의 엉덩이를 훑어보았다. 불긋하게 부어 있는 볼기도, 애액을 찔끔찔끔 흘리고 있는 구멍도 다른 알파의 향을 머금고 있었다.

스륵. 묵직한 손길이 볼기 위로 내렸다. 크게 들썩인 유진이 고개를 꺾어 뒤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곧 머리채가 거칠게 쥐어 잡히고 다시 침대에 억눌렸다. 안면이 뭉개지듯 시트 위로 압박되었다.

“이게 가장 효과적일 것 같아서요.”

“…으욱, 으으…!”

“제국군 제복. 끔찍하게 아끼시지 않습니까.”

피부 위를 쓸듯이 문지른 손가락이 봉긋한 둔덕 사이를 파고들었다. 꾹, 꾹. 구멍 주변을 가늠하듯 눌러보는 압박감이 저린 쾌감을 낳았다. 유진은 몸을 들썩이며 벗어나려 애썼다. 하지만 페로몬에 잠식된 팔다리가 말을 듣지 않았다.

건호의 눈매에 희열이 올랐다. 달큼한 오메가 냄새를 한껏 들이마시며 꿈틀거리는 몸을 내려다보았다. 위로는 제복 셔츠만 입고 하반신은 훤히 드러낸 채 헐떡이는 모습이 정복욕을 아득하도록 충족시켰다. 여태껏 참아왔던 것이 거짓말처럼 욕망이 폭발했다.

드디어. 감히 다른 알파의 아래에서 다리를 벌리고 구멍을 내주었던 오메가가.

제 손 아래에.

안광을 번뜩인 건호가 손을 들었다. 반으로 접힌 벨트가 허공을 가르고 날아들었다. 짜악―! 움찔거리던 볼기가 가죽에 밀려 납작하게 눌렸다가 되돌아왔다. 곧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한 고통이 살집을 파고들었다.

“아악―……!”

비명을 내지른 유진이 고개를 확 꺾었다. 살갗이 갈가리 찢겨 나가는 듯한 통증이 하반신을 지배했다. 칼로 피부를 베어내는 것만 같았다. 순간적으로 열기가 썰물처럼 밀려 나가고 대신 고통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으흑…. 아, 윽…….”

건호는 흘끗 눈을 굴려 모니터를 확인했다. 타이머는 아까와 큰 차이가 없었다. 제원에게서 전해 들은 기묘한 문구가 떠오르지도 않았다. 이번 알파는 틀림없는 자신이었다. 그 사실만으로도 하반신이 열을 받았다.

손바닥 아래 흐트러진 흑발을 강하게 잡아챈 건호는 고개를 숙였다. 인기척을 느낀 유진이 눈물 맺힌 눈을 굴려 시선을 마주했다.

“숫자 세세요, 중위님. 한 대 때릴 때마다.”

“무, 흑. 무슨….”

“세지 않으면 때려 드리지 않을 겁니다.”

머리채를 쥐어 옆으로 꺾었다. 고통스럽게 신음하는 유진의 시야에 타이머가 들어왔다.

[00:37:41]

남은 시간은 이제 고작 삼십 분 남짓이었다. 시간을 확인시켜 준 건호는 다시 유진의 머리를 침대에 짓눌렀다.

“숫자.”

“…….”

“세세요.”

뺨이 침대에 납작하게 눌렸다. 유진은 거칠게 헐떡이며 몸을 떨었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숫자라니. 숫자를 세어야 엉덩이를 때려 ‘준다’라니. 혼란이 가중될수록 호흡은 점점 가빠졌다.

정말 저게 이건호가 맞는 것인가. 페로몬으로 제압하고 엉덩이를 맞으며 숫자를 세라고 협박하는 저 사람은 자신이 알고 있던 부하가 맞는가.

건호는 제대로 사고할 여유조차 주지 않았다. 머리채를 놓은 그가 이번에는 유진의 목뒤를 감쌌다. 그 순간 벼락처럼 오른 기시감이 등줄기를 역류했다. 정조대를 찬 채 잠들었던 밤. 눈을 가리고 손을 묶어 뒷덜미를 억누르던 그 손길이 지금 떠오르는 것은 과연 그저 우연일까.

“숫자.”

“……흣.”

시간이 없다. 유진은 몸을 떨며 눈을 질끈 감았다. 실패하면 부대원들이 모두 위기에 처한다. 건호만이 아니다. 승일과 제원까지도 신변을 장담할 수가 없다. 수치심에 굴복해 포기할 수 있는 이들이 아니었다.

덜덜 떨리는 입술을 벌렸다. 바람 새는 소리가 몇 번 이어지더니, 잔뜩 비틀린 음성이 침구를 적셨다.

“하, 나…….”

건호의 입꼬리가 하늘로 치솟았다. 엎드린 유진에게는 그 미소가 보이지 않았지만, 공기를 가르는 벨트의 소리만큼은 소름 끼칠 정도로 선명하게 들렸다. 희게 질린 손마디가 침대 시트를 그러쥐었다.

철썩―! 번쩍이는 고통이 하반신을 관통했다. 유진은 피부 겉가죽이 들리는 듯한 감각을 이기지 못하고 입을 크게 벌렸다.

“아으흑! 흑, 아…!”

“숫자.”

“흐윽, 두, 둘….”

건호는 기다려 주지 않았다. 곧장 팔을 휘둘러 볼기를 내려쳤다. 바짝 올라붙은 볼기가 새빨갛게 익으며 비명을 질렀다. 유진이 덜컹 엎어지며 침대에 얼굴을 박았다.

“아윽―…!! 세, 셋. 잠깐만….”

짜아악―!

“아악! 흐윽, 아으…!”

손발이 덜덜 경련했다. 엉덩이가 모조리 뜯겨 나간 것만 같았다. 앞선 제원과 승일의 스팽은 장난이었던 것처럼, 비교조차 되지 못하는 어마어마한 통증이 작열하듯 올랐다. 엉덩이를 맞을 때마다 그 숫자를 세는 것의 수치심 따위 느껴지지도 않았다.

유진은 쏟아지는 눈물을 막지 못했다. 뺨이 젖어가는 것을 느끼며 바들바들 떨었다. 불개미가 살점을 물어뜯는 듯한 고통이었다. 머릿속이 둔탁하게 조여들었다.

“네, 넷, 흐으….”

건호는 흐느끼는 유진을 나른히 내려다보았다. 괴로워하는 모습에 비해 오메가 향기는 점점 더 진해졌다. 사과처럼 붉게 익은 엉덩이도 토실하게 부풀어 맑은 애액을 질질 흘려냈다.

위협을 느낀 오메가의 본능적인 반응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꼭 건호의 분노를 달래고자 흘리는 유진의 애교처럼 느껴졌다. 빳빳한 벨트 끄트머리를 둔덕 사이로 밀어 넣었다. 엉덩이 골 사이를 흘러내리던 애액이 가죽을 적셨다.

건호는 그것을 벨트에 펴 바르듯 슥슥 움직였다. 가죽이 부어오른 구멍에 스치듯 지나갔다. 이미 민감해질 대로 민감해진 점막이 와락 수축했다. 주륵, 통통해진 주름의 틈새로 투명한 액체가 흘러나왔다. 혀가 아릴 정도로 단내를 들이켜며 건호는 벨트를 높게 쳐들었다.

철썩―! 따끈하게 부푼 볼기 위로 가죽이 강하게 달라붙었다. 벨트를 적신 애액은 마찰감을 배로 상승시켰다. 자상처럼 깊게 스미는 통증이 신경을 지배했다. 파드득 튕겨 오른 몸이 침대를 그러쥐고 앞으로 기었다.

“아윽! 어흑. 건, 이건호, 잠시만―….”

유진이 다급히 몸을 물렸다. 이대로라면 정말 아래가 종잇장처럼 찢길 것만 같았다. 하지만 불쑥 다가온 손이 뒷덜미를 잡아 푹 찍어 눌렀다. 얼굴이 다시금 침대에 처박혔다.

“으훅―!”

“숫자 세라고 했습니다.”

꾸욱. 단단한 손가락이 뒷덜미를 깊게 파고들었다. 피부를 헤치고 억센 악력이 기도를 조였다. 유진이 꿈틀거리며 발버둥을 쳤다. 하지만 그 손에서 짙은 알파 페로몬이 방출되기 시작하자 주륵 무너져내렸다.

“흐윽, 아, 아…!”

전신의 혈액이 요동쳤다. 내벽이 더없이 부어오르며 화끈한 열감을 머금었다. 지독한 가려움이 점막을 오르내렸다. 유진이 다급히 자신의 목덜미를 억누른 손을 부여잡았지만, 오히려 맞닿은 피부로부터 날카로운 자극감이 올랐다.

지나친 성감이 고통스러웠다. 부어오른 기도에 스며드는 알파 향이 과도했다. 뒤에서 애액이 왈칵 새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유진은 침대 위에서 벌레처럼 꿈틀거린 끝에 토해내듯 뱉었다.

“다, 다섯―…. 흑, 다서….”

그제야 페로몬이 멈추었다. 목뒤를 짓뭉갤 듯 억누르던 힘도 약해졌다. 탈진하듯 늘어진 유진이 시선을 돌렸다. 희뿌연 안개가 낀 눈으로는 건호의 표정이 잘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벨트를 쥔 그의 손이 높이 오르는 것만은 똑똑하게 보였다. 눈물로 젖은 눈을 느리게 감았다.

감내해야만 했다.

짜악, 짝―! 채찍 같은 타격음이 연달아 울렸다. 가죽에 내몰린 엉덩이는 붉게 부르텄다. 건호가 벨트를 내리칠 때마다 벌어진 볼기 사이로 구멍이 꽉 조여들며 애액을 흘렸다. 그 음란한 액체는 가죽을 적셔, 스팽을 더욱 자극적으로 만들었다.

“아흑! 여, 열일곱―….”

철썩! 짜악―!

“아악……! 흑, 열, 여덟. 아홉….”

과신했다. 웬만한 고통에는 단련이 되어 있다고 자만했다. 쾌락과 고통을 넘나드는 감각은 차마 익숙해질 수가 없는 영역이었다. 엉덩이가 찢기는 고통에 비명을 지르면 그 위를 덮치는 페로몬에 휩쓸리기를 반복했다.

엉덩이는 이미 감각이 마비된 것처럼 얼얼했다. 하지만 피부를 파고드는 가죽의 형태만큼은 생생하게 느껴졌다. 저것이 늘 몸에 착용하는 제복 벨트라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고문 기구만큼이나 격렬한 타격이었다.

“으흑, 윽―! 흑, 스물, 다섯….”

아팠다. 견디기 힘들 정도로 아팠는데도, 온몸에 열이 오를 정도로 괴로운데도 발기가 풀리지 않았다. 유진은 고개를 꺾어 아래를 보았다. 빳빳하게 선 채 쿠퍼액을 뚝뚝 흘리고 있는 제 성기가 보였다. 금방이라도 사정할 것만 같았다.

그것만은 안 된다. 엉덩이를 맞더라도, 페로몬에 굴복하듯 바르작거리며 숫자를 세더라도. 맞으며 사정하는 것만은 견딜 수 없었다. 그것만은 자존감이 허용할 수 없었다.

유진은 침대에 손톱을 박으며 이를 악물었다. 철썩! 끔찍한 고통이 하반신을 물들였다. 동시에 내벽이 지잉 울리며 수축했다. 전신을 통과하는 충격이 달아오른 점막을 한껏 긁어내렸다.

“윽흐윽! 스, 물 아홉….”

“…….”

이제 한 대밖에 남지 않았다. 한 대만 더 맞으면 이 지옥이 끝이었다.

유진은 벌벌 떨며 찾아들 고통을 기다렸다. 고통에 몸부림친 체력이 한계에 다다랐지만 도망치고자 하는 본능을 억제했다. 이것만 해낸다면 알파용 억제제를 얻어낼 수 있다. 그 일념으로 버티고 또 버텼다.

“……?”

하지만 기다리던 고통은 찾아오지 않았다. 대신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색색거리며 고개를 돌리자 침대에 떨어져 있는 벨트가 보였다. 그리고 곧 볼기를 감싸는 단단한 손길이 느껴졌다.

“흣! 아흐….”

건드리는 것만으로도 격한 통증이 올랐다. 유진은 고통을 참기 위해 목을 세우고 주먹을 쥐었다. 스윽, 슥. 피부를 주무르는 손길이 느리게 볼기를 벌렸다. 애액으로 번들거리는 구멍이 양쪽으로 당겨졌다.

‘……뭘, 하는 거지….’

아직 미션은 완료되지 않았다. 혹여 숫자를 잘못 세었나 싶어 눈을 굴리니 모니터가 보였다.

[00:24:54]

역시나 아직 끝나지 않았다. 타이머는 여전히 줄어들고 있었다. 설마 건호가 착각한 걸까. 방금 스물아홉이라고 말한 것 같은데, 워낙 제정신이 아니었기에 확신이 서지 않았다.

유진은 뒤로 고개를 비틀었다. 건호의 손 아래 바짝 벌어져 있는 제 엉덩이와 그곳에 눈을 고정한 건호가 보였다. 엉덩이 사이를 파고든 엄지가 구멍을 건드렸다. 찌릿한 열감이 주름을 통해 흡수되었다.

“흑! 이, 건호…! 아직, 하나, 으흣―.”

볼기를 움켜쥔 악력이 더욱 강해졌다. 손바닥에 닿는 따끈한 볼기를 마음껏 주무르며, 건호가 조금씩 고개를 숙였다. 움찔거리는 볼깃살 사이로 건호의 얼굴이 파고들었다. 유진의 눈이 홉뜨였다.

후우. 깊은 호흡이 구멍 근처의 공기를 빨아들였다. 달착지근한 내음이 건호의 폐로 이끌려 들어갔다. 곧 건호의 눈이 음습하게 가라앉았다. 본능적인 위협감이 유진의 뇌리를 파고들었다.

“하지 마, 이건호.”

“……하아….”

“하, 지마. 하지 말라고!”

유진이 발버둥 치듯 튀어 올라 침대를 기었다. 하지만 얼마 가지 못해 머리채가 잡혔다. 쿵! 요란한 충격이 안면을 강타했다. 등 뒤로 지퍼가 내려가는 소리가 들렸다.

“중위님.”

“이건호! 정신, 흑! 아직 미션이―…!”

“중위님은 백승일이 좋으십니까?”

뜨거운 살덩이가 엉덩이 위로 와 닿았다. 진한 열감이 생채기 난 둔부를 통해 흡수되었다. 하얗게 질린 유진이 다시금 팔다리를 뒤흔들었다. 하지만 전신을 내리누르는 건호의 체중을 이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신제원이 믿음직스럽습니까?”

허벅지가 잡혔다. 엉덩이가 벌어지고 구멍 위로 기둥이 눌렸다. 맞닿은 그 부위로부터 강렬한 성감이 올랐다. 부푼 내벽이 긁어 달라 요동치며 유진의 이성을 흩뜨렸다.

“중위님.”

귀두가 주름을 위아래로 문질렀다. 거의 본모습을 잃은 봉긋한 구멍이 이리저리 쓸리며 애액을 머금었다. 비소를 머금은 건호는 저를 빨아들이는 듯한 구멍 속으로 성기를 눌렀다. 푸욱. 질척한 점막이 벌어지며 귀두를 삼키기 시작했다.

“아, 으흑! 아아…!”

“날 봐.”

둥근 귀두가 주름을 제 형태로 벌리고, 더 나아가 꾸물거리는 내벽을 묵직하게 채워 올렸다. 알파 향을 한껏 머금은 살덩이가 내부로 들어올수록 유진의 몸부림은 거세졌다. 아득한 작열감이 쾌감으로 녹아내렸다. 구멍이 점점 더 넓게 벌어졌다.

“흐, 아! 아으흑……!”

삽입이 깊어질수록 밀려난 볼기가 통증을 호소했다. 건호는 그것을 간파한 것처럼 파들거리는 볼깃살을 와락 쥐고 성기를 밀어붙였다. 부욱. 점막이 강제적으로 벌어지며 기둥을 머금었다. 일직선으로 긁힌 내벽을 타고 화마가 치솟았다.

유진은 고개를 내저으며 침대 시트를 움켜쥐었다. 하지만 뒤를 파고드는 움직임은 멈추지 않았다. 주름이 팽팽하게 늘어나 기둥에 긁혔다. 비어 있던 내부는 단단한 남근으로 끝도 없이 차올랐다.

기분 좋다. 싫다. 더 긁어 주었으면 좋겠다. 이래서는 안 된다.

상반된 의지가 격렬하게 충돌했다. 머릿속을 쾅쾅 뒤흔드는 충돌이 반복될수록 분홍빛의 구멍은 기둥에 밀착되어 알파 페로몬을 삼켰다. 입매를 비튼 건호가 성기를 푹 욱여넣었다. 좁은 내부가 활짝 벌어지며 남근이 뿌리까지 박혔다.

“아으윽―!”

말랑하고 뜨끈한 볼기가 건호의 골반과 완전히 맞닿았다. 뿌리를 머금은 구멍은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바짝 수축했다. 찐득한 조임에 낮게 신음한 건호가 고개를 숙였다. 바들거리는 가여운 귓불이 송곳니에 스쳤다.

“당신을 가장 먼저 범한 건 나야.”

꾸우욱. 성기가 더 들어올 수 없을 정도로 깊이 파고들었다. 내벽이 짓이겨지고 점막이 벌어졌다. 내부를 차지한 성기가 강렬한 열기를 들이부었다. 아, 아. 경련하는 유진의 손에서 점점 힘이 빠져나갔다. 삽입의 충격으로 수축했던 내부도 조금씩 쫄깃하게 풀렸다.

그게 신호가 된 것처럼, 건호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퍽, 퍽! 거센 돌진이 점막을 가르고 깊은 곳을 쳐올렸다. 폭죽처럼 터지는 강렬한 쾌락이 배 속을 거북하도록 가득 메웠다.

“흐윽, 아, 아! 하윽…!”

벌겋게 익은 엉덩이가 골반과 철썩이며 거세게 부딪혔다. 눈물이 줄줄 흐를 정도로 아팠다. 하지만 고통보다 가려운 점막이 거침없이 긁히는 충족감이 훨씬 강했다. 구멍이 열리고 뿌리가 틀어박힐수록 알파에게 범해진다는 전율이 아득하게 올랐다.

유진은 몰아치는 쾌락에 이리저리 흔들렸다. 푹 쑤신 남근이 깊은 곳을 문질렀다가 주륵, 빠져나갔다. 두툼한 기둥을 따라 점막이 길게 긁혔다. 그리고 곧 다시 부욱 벌어졌다.

“아흐윽―…!”

꾸물거리는 내벽이 기둥과 마찰되었다. 교접부를 중심으로 지독한 페로몬이 쏟아졌다. 작살에 꿰인 것처럼 파드득거린 유진이 흐느꼈다. 질척한 애액이 점막과 뒤섞여 기둥 표면을 야금야금 씹었다.

“큭.”

건호가 목 안으로 거친 호흡을 흘렸다. 알파를 자극하는 단 향기가 한층 더 짙어졌다. 구멍을 벌려 제 것을 힘겹게 삼킨 엉덩이의 모습이 시각을 격하게 자극했다.

꾸물. 동그랗게 벌어진 분홍빛 구멍이 기둥에 질척대며 비비적거렸다. 귀두를 머금은 내벽은 오물거리며 오메가 페로몬을 듬뿍 뿜었다. 퉁퉁 부은 볼기는 손바닥 아래 말캉하게 감겨 열을 냈다. 하나같이 음탕한 모양새였다.

건호는 교접부를 엄지로 문질렀다. 팽팽하게 늘어난 구멍이 흠칫거렸다. 비틀린 틈으로 미끈한 애액도 스며 나왔다. 그것을 동그랗게 밀려난 구멍 전체에 펴 바르며 낮게 중얼거렸다.

“지조 없는 구멍에게는 벌을 줘야겠지.”

“아, 으흐….”

“싸세요, 중위님.”

점막을 뭉근히 자극하며 빠져나간 남근이 푹 박혔다. 번쩍 튀긴 쾌락이 유진의 전신을 옭아맸다.

“으흑! 거, 건….”

“제 걸 물고 자지러지며 싸세요. 그리고 이번에는 그 머릿속에 똑똑히 기억하시죠.”

주욱. 거대한 열기를 품은 기둥이 다시 점막 사이를 빠져나갔다. 표면에 점막이 스치고 저릿한 쾌감이 올랐다. 피식 웃은 건호가 페로몬을 더욱 개방했다. 구멍에 걸린 귀두로부터 진득한 알파 향이 쏟아졌다. 내벽 사이로 물줄기처럼 흘러드는 향기가 점막을 벌겋게 달궜다.

유진은 언어조차 제대로 담지 못하고 벌벌 경련했다. 미소를 지은 건호가 경직된 허리에 손을 얹고 천천히 성기를 삽입했다.

“아, 아아…! 힉!”

“누가 이 구멍을 채웠는지.”

삽입은 끈질기고 길었다. 끝도 없이 들어오는 알파 향에 유진의 눈이 일그러졌다. 구멍이 천천히 벌어지고 가장 굵은 부분이 부욱 파고들었다. 질척한 내부가 벌어지는 감각이 허리를 타고 선명하게 올랐다.

진득한 내부의 감촉을 음미하는 듯 느리게 파고든 성기가 이윽고 뿌리까지 밀려들었을 때, 쾌락을 버티지 못한 유진이 고개를 젖히며 절정했다.

“으흑, 아, 흐아……!”

“하….”

납작하게 깔린 몸이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한 채 정액을 흘렸다. 음탕한 구멍은 남근을 찐득하게 조였다. 건호는 비린 미소를 머금고 얕게 추삽질했다. 가볍게 구멍을 찌른 것만으로도 유진이 자지러지며 고개를 저었다.

“안, 안 돼, 아!”

“윽, 후. 구멍 조여 봐요, 중위님. 시간 끝나기 전에 저를 만족시켜야 엉덩이를 때려드리지 않겠습니까.”

“아, 아! 아흑…!”

절정하는 내벽을 가르고 기둥이 드나들었다. 벌름거리는 구멍이 더한 쾌락을 갈망하는 것처럼 성기를 빨아먹었다. 건호는 그 요구를 무시하지 않았다. 탐스러운 볼깃살을 마구잡이로 주무르며 거세게 들이박았다.

퍼억―! 폭력적인 삽입이 가려움을 종식시켰다. 대신 해일처럼 몰아치는 쾌락을 박아넣었다. 번개를 맞은 것처럼 튕겨 오른 유진이 또다시 사정했다. 질척한 냄새가 침대 시트에 스며들었다.

“흐아, 아흑! 아! 앗, 흐윽…!”

“후우, 윽.”

“으흐아…―!”

굵은 살덩이가 구멍을 빠르게 갈랐다. 울음과 뒤섞인 교성을 흘리며 유진이 연이은 절정에 올랐다. 거센 흡입력으로 빨아들이는 감촉이 성기를 강하게 씹었다. 건호는 요동치는 내벽을 쳐올리다가 이내 낮게 신음하며 사정했다.

구멍 깊이 박힌 남근이 진한 정액을 쏟았다. 그 자극감을 이기지 못한 유진이 고통스럽게 헐떡였다.

“아으…! 흑, 아, 으흑….”

“후…….”

탁, 탁. 말캉한 내벽 사이로 몇 번 파고들며 사정한 건호는 시선을 들었다. [00:01:45] 아슬아슬한 숫자가 모니터를 채우고 있었다. 다시 눈을 내리자 침대에 엎어진 나신이 보였다. 두꺼운 뿌리를 간신히 삼킨 엉덩이가 바들바들 경련하며 흐느꼈다.

“으, 아흐…. 힉―….”

끈적한 움직임이 기둥을 휘감고 유혹하듯 깨물었다. 그 모습을 내려다보고 있자 조금 시들었던 성기가 다시금 힘을 받았다. 구멍이 벌어지는 감각에 유진이 발발 떨었다. 하지만 거부의 말은 나오지 않았다.

비죽 웃은 건호는 대충 내려두었던 벨트를 집어 들어 볼기를 가볍게 내리쳤다.

“으흑!”

내벽이 와락 수축했다. 흘끗 옆눈으로 살피자 화면에는 [성공] 글자가 가득 차올라 있었다. 건호는 벨트를 바닥에 떨어뜨리고, 손에 찹쌀떡처럼 감기는 양 볼기를 그러쥐었다.

“원하는 대로 해드렸습니다.”

“아, 으흑. 건, 건호…….”

“그러니 이제 제 차롑니다.”

파르르 떨리던 어깨가 이내 침대 위로 축 늘어졌다. 체념의 기운이 어리는 목선을 흡족하게 훑어보며 건호가 허리를 움직였다. 그사이에 돌덩이처럼 단단해진 남근이 붉은빛의 엉덩이를 갈랐다. 괴로워하던 오메가는 금방 열에 올라 달뜬 신음을 흘렸다.

아직 새벽은 길었고, 고작 한 번의 섹스는 그간 인내하던 욕망을 모두 담아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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