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마저 좋아
현관문을 열자마자 온통 노랑이었다. 거실 안으로 스며드는 점심 햇빛이 노랑, 거실 중앙에 동그랗게 깔린 러그도 노랑, 소파 위의 쿠션 세 개와 높이가 낮은 테이블 위에 줄지어 선 조그마한 화분들이 노랑이었다. 집의 첫인상은 그렇게 포근했다.
밑창이 닳은 스니커즈 뒤꿈치에 검지를 집어넣고 어정쩡한 자세로 선 채 나는 몇 초간 머뭇거렸다. 나보다도 먼저, 권태오가 제 운동화를 던져 놓듯이 벗고는 집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들어와, 우신아.”
권태오가 말했다.
“아니…, 여긴 둘러볼 필요도 없을 거 같은데….”
혼잣말하며 눈치를 살폈지만, 권태오는 한쪽 눈썹을 올린 채 나를 바라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결국 신발을 툭툭 벗어 내리고는 집 안으로 들어섰다.
2층으로 통하는 나무 계단에 이르기까지, 나는 아무런 기대도 없이 집 안을 아주 대충 둘러보았다. 열의를 가지고 열심히 살피지 않은 이유야 당연히 돈 때문이었다. 봄기운이 거실 곳곳에 햇살로 다정한 집은 전체적으로 작고 포근했지만, 결단코 값이 싸 보이진 않았다.
7평 남짓한 정원으로 통하는 커다란 유리문이 달린 거실부터 레트로 스타일의 하늘색 냉장고가 놓인 부엌, 화장실로 통하는 작은 복도에 걸린 손바닥만 한 그림 세 점에 이르기까지, 모든 게 다정하고 소박하니 어여뻤다.
그러나 때깔 좋은 다정과 소박함이란 미디어 속에서나 존재하는 것이었다. 만약 누군가가 2층 방문을 열고 걸어 나온다면, 그 혹은 그녀는 저녁 8시 수목드라마의 ‘가난하지만 마음은 누구보다 넓고 따듯하다’거나 ‘깡다구 하나로 고난을 극복하며 성장해 나가는 사회 초년생’이라는 설정의 가짜 서민이지 싶었다. 현실에서는 서울 시내에 단독주택을 소유한 이십 대 청년을 서민이라고 부르지는 않으니까 말이었다.
둘이서 자취할 만한 집을 찾기로 한 오늘, 이렇게나 터무니없이 좋은 집에 날 데려온 권태오 때문에 당황스러웠다. 2층도 둘러보지 않겠냐는 권태오의 말에 고개를 내젓고, 나는 괜스레 목덜미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2층까지는 좀…. 우리끼리 그렇게 돌아다녀도 돼? 아직 짐도 안 뺀 집 같은데…, 사실 지금도 부동산 직원이랑 같이 봐야 하는 거 아니야?”
작은 소리로 묻자 권태오가 ‘음’ 하고는 목 끓는 소리를 냈다. 고개를 숙인 채 눈길로만 그를 올려다보는 게 나였고, 등짝 가득 단청무늬 자수가 놓인 항공 점퍼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서 덤덤한 얼굴인 게 권태오였다.
“집은 어때 보여. 마음에 들기는 해?”
조용히 건네 온 질문에 나는 피식 웃고야 말았다.
“마음에 들고 말고 할 게 있어? 과분한 수준인데…. 정해 둔 예산에 비해 너무…, 그러니까 내 말은…. 태오야. 현실적으로 생각해서, 이런 집 월세를 우리가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아.”
“월세 아니고 연세집이야.”
덤덤하게 튀어나온 대답에 나는 눈을 두 번 깜빡였다. 얼떨떨하니 굳어 버린 내 얼굴을 쳐다보더니, 권태오가 한숨 섞인 목소리로 가장 중요한 정보를 덧붙였다.
“…엄마가 내주기로 했어. 2년 치 월세 한 번에.”
내 잇새로 ‘아아’ 하는 감탄인지 탄식인지 모를 소리가 조그맣게 새어 나갔다. 그러고 보니 장세라가 비슷한 이야길 했었다. 부잣집 자녀들은 자취방도 학교 근처 아파트나 독채로 구하는데, 부모가 몇 년 치 월세를 한 번에 줘 버리고 그 기한 동안 제집처럼 쓴다고 말이었다. 그런 용도로 나온 좋은 집이 한국대 근처에도 많을 거라 그랬던가….
‘그건 아주 남의 일인 줄 알았는데….’
어떻게 반응해야 좋을지 모르게 되어 나는 입을 다물었다. 그러자 권태오의 미간에 ‘11’ 모양의 주름이 졌다. 자를 대고 종이를 접은 듯한 구김이었다. 눈살을 찌푸린 채 거실 바닥을 내려다보는 그는 민망해하는 듯 보였다.
“그게…, 독립할 거라고 말했더니, 화해하자면서 집을 구해 주더라고. 권주원 씨가 좀 그래.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보다 돈으로 달래는 게 편한가 봐. …물론 여기서 살지 말지 아직 정하지는 않았어. 일단 너한테도 보여 주고 의견을 묻기는 해야 할 것 같아서.”
겸연쩍은 듯 쭈뼛거리며 말하는 모습이 평소의 권태오답지 못하다는 건 차치하고, 나는 번뜩 떠오른 답을 큰소리로 말했다.
“나는 당연히 좋지!”
집 안을 울리다시피 하는 내 목소리에 권태오가 눈을 크게 떴다. 나는 인내심 없는 사람처럼 줄지어 말을 쏟아냈다.
“이런 식으로… 재화로 화해를 하자고 하셨다는 게 물론, 되게 유감스러운 일이긴 한데…. 그렇지만…, 만약에 네가 연세든지 월세든지 돈을 안 받겠다고 그러면, 그땐 너한테 미안하다고 말씀하시면서 제대로 사과를 해 주실까? 미안하다고 말도 하고 집도 구해 주시면 물론 좋겠지만, 제대로 사과를 못 하는 대신 집이라도 마련해 주시는 거라면… 거절할 이유가 있어? 집 받으면 기분이라도 좋지.”
겨우내 자취방 문제로 가슴 졸여 온 나였다. 나야 몸 눕힐 자리만 난다면 곰팡이 핀 원룸 빌라든 바퀴벌레 나오는 고시원이든 가릴 처지가 아니었지만, 권태오의 사정은 나와 다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조금은 무리해서 예산을 정했다. 가진 돈을 전부 보증금으로 걸어서라도 괜찮은 집을 찾고, 월세는 아르바이트라도 해서 충당할 계획이었다. 권태오로 하여금, 내 수준에 맞추느라고 억지로 작은 집에서 살게 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런데도 한국대 근처 자취방들은 너무 비쌌다. 국립대 다니며 아낀 학비를 월세로 다 털리겠다 싶을 지경이었다. 인터넷에 올라온 매물들을 모아 엑셀 시트에 모았더니 아주 가관이었다.
어쩐 일로 전세 매물이다 싶으면 대출 문제가 꼬여 있어 은행에 압류당하기 직전인 건물이었다. 내 장학금은 물론이고 권태오의 소중한 독립 자금의 운명까지 건물 경매에 내맡길 순 없는 노릇이었다.
방 두 개에 월세도 적당하다 싶으면 한국대는 물론이고 지하철 역사와도 너무 멀어서 문제였다. 혼자 살 것 같았으면 후자를 선택해서 매일 40분씩 일찍 일어나고 말았겠지만, 아침마다 훈련을 나서야 하는 권태오에게는 40분의 수면이 천금인지라 포기했다.
답답한 마음에 ‘발로 뛰면 좀 낫겠지’ 하고 혼자서 부동산 몇 군데를 돌아보기도 했다. 그래도 도통 ‘이거다’ 싶은 매물이 없었다.
그런데 개나리를 뜯어다가 문질러 낸 것 같은 따듯한 이층집에서 살겠느냐고 물어오다니, 나로서는 좋다 못해 황당한 일이었다.
무엇보다도,
“여기서 조심이 키워도 돼?”
가장 큰 걱정이 단번에 해소되어 기뻤다.
“응. 키워도 된대.”
권태오가 느릿느릿 대답했다.
흥분한 탓에 나는 홍조를 감추지 못하게 됐다. 얼른 거실로 들어가 부엌을 살펴보고는, 권태오의 손을 덥석 잡았다. 그러고는 2층 계단을 앞장서 올라갔다. 좁은 계단을 올라 복도를 가로지르는 동안 권태오는 말없이 내 뒤를 쫓아왔다.
고동색 문을 밀어 열자, 퀸 사이즈로 추정되는 큰 침대가 놓인 방이 모습을 드러냈다. 벽 한 면을 옷장과 수납장이 채우고 있었고 바닥에는 파란색 카펫이 깔려 있었다.
“방 엄청 크다. 여기는 네 방으로 쓰면 되겠어.”
두 발짝 거리에 놓인 다음 방문을 열자 새로운 방이 드러났다. 벽장과 책상이 덩그러니 놓인 방은 큰 방에 비해 작았지만, 정사각형 창문이 환했고 바닥 한편에 싱글 사이즈 침대 하나쯤은 놓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여기 내 방으로 쓸 수 있겠다….”
다시 복도로 나와 둘러보자 저 멀리, 조그만 테라스가 보였다. 작은 타일이 다닥다닥 깔린 테라스는 아직은 비어 있어 휑했지만, 빨래 건조대 하나만 놔도 금세 빈틈이 없어지지 싶었다.
“어! 난간에 신발 건조대도 있어. 저기 네 운동화 널고, 유도복도 해에 말리고…, 아니면 강아지 방석 놔둬도 되겠다. 조심이는 바깥 구경하는 걸 좋아할 테니까.”
권태오의 손을 더욱 꼭 잡아끌며 내가 말했다.
“어, 그러고 보니까 여기 가구가 다 새것 같은데, 전부 이 집에 딸린 옵션인 거야?”
“응.”
“와….”
내 주제엔 과분해도 권태오가 살기에는 아주 좋은 집이었다. 테라스 밖으로 보이는 한국대 건물을 쳐다보다가, 나는 2층의 마지막 문을 열었다. 그러자 넓은 욕실이 환히 드러났다. 커다랗고 하얀 욕조가 너른 창에 바짝 붙어 있었다.
밝은 채광에 눈살을 좁힌 채 나는 달칵달칵 벽면의 버튼을 눌러 보았다. 욕조 위에 달린 오렌지빛 전등은 은은했고, 메인 등인 백열등은 아주 밝았다. 마지막 버튼을 누르자 환풍기가 힘차게 돌아갔다. 세면대도 깨끗한 데다 높이 달린 편이었고, 물도 콸콸 쏟아져 나오는 데다, 변기도 잘 내려갔으며, 하수구 냄새도 나지 않았다.
“나 이렇게 큰 욕조 처음 봐.”
중얼거리면서 나는 꽉 잡고 있던 권태오의 손을 놓고, 욕조 안에 들어갔다. 너른 창에 달린 블라인드를 내려 보고 싶어서였다. 작은 구슬이 달린 끈을 당기자 블라인드가 착착 접혔다.
닫힌 블라인드 커튼 틈에 손가락을 끼워 넣고, 나는 창밖을 살폈다.
“태오야, 여기서도 한국대 보여. 학교랑도 가까워서… 너 아침 훈련 다니기 좋겠…다.”
말끝을 흐지부지 흩뜨리며 나는 두 눈을 꽉 감았다. 너무 흥분하고 설렌 나머지, 일방적으로 수다를 떨며 촐랑거렸단 생각이 들었다. 목구멍 안에서 부글거리는 수많은 감탄사를 참아 내기 위해 몇 번이고 침을 삼킨 다음, 나는 욕조 바닥에 털썩 앉았다.
‘내가 너무 들떴나 봐….’
이제 와 쭈뼛거리기엔 열 박자는 더 늦은 뒤였다.
“태오야. 내가… 이런 집은 생각도 못 해 봐서 좀 흥분했는데…. 나랑 네 사정은 다른 거니까… 내키지 않으면 거절해도 돼.”
가까스로 덤덤한 목소리를 내면서도 나는 권태오가 있는 문 쪽은 쳐다볼 수 없었다. 나에게나 이 집이 대단하다는 걸 미처 생각지 못하고 나선 게 부끄러웠다. 채홍동의 크고 넓은, 갤러리라고 소개해도 속아 넘어갈 법한 주택에서 살아온 권태오에게는 이 정도 집의 연세금이야 우스울지도 몰랐다.
두 뺨으로 열기가 몰리는 걸 느끼며 내가 말했다.
“어머니랑 어떻게 화해할지는 태오 네가 결정해야 할 일인데… 내가 좀, 그… 놀라는 바람에 오버했어.”
‘미안해’, 작은 목소리로 사과하는데 불쑥, 욕조 맞은편으로 커다란 발이 들어왔다. 고개를 들어 살필 새도 없이 권태오가 나를 보며 양반다리로 앉았다. 잠시 무표정한가 싶더니, 입꼬리가 왼쪽부터 씩 올라갔다.
“여기서 살래.”
장난꾸러기처럼 웃어 보이며, 권태오가 말했다.
“나도 좋아졌어, 이 집.”
“갑자기 왜?”
얼떨떨하니 목소리를 내자마자 눈앞으로 두 손이 뻗쳐 왔다. 반사적으로 움찔 눈을 감는데, 양 볼이 꽉 붙잡혔다. 고개를 숙일 수도 돌릴 수도 없게 잡는 손길이 어찌나 강한지, 볼이 아릿할 정도였다.
“우신이 너랑 이 집이 잘 어울려. 여길 둘러보는 내내 네 눈이, 반짝반짝해…. 그래서 나도 좋아졌어. 이 집에서 너랑 같이 살고 싶어졌어.”
그렇게 속삭이는 권태오의 두 눈이 아주 예쁜 것 보는 듯해서, 나는 잡힌 얼굴을 빼내려 애썼다. 홧홧하니 달아오르는 체온을 들키고 싶지 않아서였다. 내 반항은 그러나 권태오의 손아귀에선 허무할 정도로 미약했다.
결국에는 전보다 단단히 볼살을 붙들리고야 말았다. 집개손으로 내 볼을, 반죽 늘리듯 잡아 쥔 채 권태오가 야릇할 정도로 짓궂게 웃어 댔다.
“하아….”
표정을 숨기길 포기하며, 나는 권태오의 손등 위에 내 두 손을 겹쳤다. 그리고 말했다.
“알겠어. 그럼… 보증금이랑 연세, 절반은 내가 내겠다고 어머니께 말씀 전해 줘. 전에 알아보니까, 의대생은 대출이 잘 나오는 편이랬어. 재단 통해서 따로 독립 자금 대출도 받을 수 있으니까… 보증금은 다음 달까지 드릴 수 있을 거 같아.”
내 말이 은근하게 길어질수록 권태오의 미소가 흐려져 갔다. 눈동자를 좌우로 굴리며 나는 머뭇머뭇 질문을 덧붙였다.
“저, 그런데 연세는 아무래도… 매달 끊어서 보내 드려야 할 것 같은데 괜찮으실까? 혹시 2년 치 합한 게 얼마인지 알아?”
“몰라.”
“…….”
완전히 무표정해진 권태오의 대답은 심드렁하다 못해 투정하는 듯했다. 정 없이 툭 던진 대꾸에 어떻게 반응해야 좋을지 모르게 되어, 나는 잠시간 침묵했다.
“…몰라서 하는 말이야, 몰라도 된다고 하는 말이야?”
혹시나 싶어 묻자,
“몰라도 된다고 하는 말.”
아니나 다를까 그다운 대답이 튀어나왔다.
나는 터져 나오는 한숨을 가감 없이 푹푹 내쉬었다. 그런 날 보는 권태오의 눈길이 삐뚜름했다. 언제는 듬직하니 세상 어른스럽게 느껴지던 권태오가, 이럴 때면 어린아이 같고 철없는 동생 같았다.
권태오에게 주어진 화해의 선물 상자 안에, 내가 멋대로 들어가선 안 될 일이었다. 갓 스무 살이 된 아들을 위해 집을 마련해 주는 부모라니…, 그건 내가 모르는 영역이었다. 나는 이 영역 안에서 어떤 역할로 존재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내 몫을 지불하고 하숙생이 되길 택했다.
“태오야. 어머니 연락처 나한테 줘, 내가 전화로 말씀드릴게. 여긴 너 혼자 지내라고 구하신 집이잖아. 친구까지 멋대로 얹혀살라고 큰돈을 보태시진 않으실 거 아냐.”
“야. 엄마가 아무리 돈을 잘 벌어도 나 혼자 살라고 이층집을 구할 정돈 아니야.”
“어?”
“엄마도 안다고, 이우신이랑 같이 사는 거.”
그 말을 듣는 내 표정이 꽤나 이상했을 거였다. 기분마저 아주 이상해져서는, 얼굴 근육이 꿈틀 움직이는 걸 조절하지 못했다. 눈썹을 찡그리며 눈을 크게 뜬 내 얼굴을 가만히 쳐다보는가 싶더니, 권태오가 한숨 쉬었다.
“이찬희가 네 얘기를 얼마나 많이 해 놨는지 너도 알면 기절초풍할걸. 일단 나는 한 번 기절초풍했어. 진짜 어이가 없더라….”
그는 말끝을 흐렸고 나는 두 눈동자가 흐려졌다. 당장에 떠오르는 의문과 걱정은 오직 하나뿐이었다.
“혹시… 내가 네… 애인인 것도 알고 계셔?”
떨리는 목소리로 질문하자마자,
“아….”
권태오가 눈을 내리감더니 탄성을 흘렸다. 그가 다가오며 고개를 푹 숙이자, 단단한 이마가 서로 맞닿았다.
“‘애인’이라니까 진짜 듣기 좋다…. 한 번만 더 말해 주라.”
실없는 웃음을 흘리며 권태오가 말했다. 도통 내 의견이며 생각을 진지하게 수용하질 않는 눈치였다.
나는 두 눈을 표독스럽게 홉떴다.
“장난치지 말고.”
목소리를 내리깔고 말하는데, 어째선지 권태오의 웃음은 더 짙어지기만 했다. 두 손바닥을 쫙 펴더니 내 두 뺨을 마구 문지르기까지 했다. 얼굴이 제멋대로 이리저리 움직거릴 때마다 내 표정은 더욱 구겨지고 사나워졌다.
“이거 안 놔?”
제멋대로 ‘하하’ 웃던 권태오도 그제야 분위기를 읽었는지, ‘흠흠’ 하고 목을 가다듬었다. 두 손을 느릿하게 떼어내더니, 무안한 듯 흐트러진 내 앞머리를 살짝 건드리며 말했다.
“엄마한테는 내 페이스메이커라고 해 뒀어.”
사실대로 남자친구라고 밝히지 않아서 우선 다행이었다. 그러나 안도하기도 잠시, 또 다른 의문이 내 머리를 채웠다. 꼭 잡힌 머리를 좌로 기울이며 내가 물었다.
“페이스메이커…? 유도 선수한테도 그런 게 있어?”
“있지, 왜 없어. 경기마다 애착 인형 가지고 다니는 놈도 있는데.”
“…….”
나는 말을 잇지 못했다. 순간 그 말이 칭찬인지 비아냥인지 헷갈렸기 때문이었다. 권태오의 표정을 보면 세상에서 제일 심각하고 진정성 있는 사람이라서, 몇 초간 고민한 끝에 ‘그런가’ 하고 수긍하고야 말았다.
그러고 보면 권태오는 중등부 때부터 잘나가던 선수이긴 했으나, 감정 기복이 컨디션에 지장을 주는 편이라 어떤 대회는 예선에서 기권했단 얘기도 있었다. 경기력이 정점을 찍고는 흔들림이 없게 된 건 열여덟 살 여름 이후의 일이었다.
“너 만나고 내가 되게… 좋아졌잖아. 전부 네 덕분이지.”
권태오의 속삭임이 나로서는 황당하게만 들렸다. 그의 전성기가 시작된 지점과 나와 사귀…자는 약속을 한 시기가 딱 맞아떨어지기는 했지만, 그런 것은 우연이고 마음가짐의 문제일 뿐이었다. 권태오가 좋은 선수인 거야 권태오가 그만큼 잘하고, 대단하고, 노력해서였다.
그런데 순진한 권태오는 내게 제 공을 넘기려 들었다.
“내가 뭘 했다고….”
손끝으로 눈썹 위를 만지작거리며 나는 시선을 내리깔았다. 그러고 보면, 유도부 코치 쌤도 ‘우신이랑 어울리기 시작하더니 권태가 아주 순순해졌다’고 자주 말했었다. 덕분에 채홍관을 오갈 적에 일종의 출입 자격이 생긴 듯해 나야 좋았지만….
‘태오가 얼마나 착하고 좋은 앤데…. 원체 잘해서 그런 게 나랑 무슨 상관이야.’
그런 핑계가 권태오네 어머니께도 통했다는 게 놀라웠다. 커밍아웃, 정체성 혼란, 카페에서 권태오네 어머니를 만나 ‘우리 아들이랑 헤어져 줘요’라는 말과 함께 돈 봉투 혹은 물세례 받기…. 그런 과정들을 맞닥뜨리지 않아도 되니 좋긴 했다. 그러면서도 권태오를 애착인… 아니, 페이스메이커가 있어야만 하는 심약한 선수로 평가 절하하는 것 같아서 싫기도 했다.
입술을 꾹 다물고 고민하기도 잠시, 나는 또박또박 말했다.
“그래도 연락처 꼭 줘. 더는 너한테 빚지고 싶지 않아.”
내 말에 권태오는 눈을 둥그렇게 떴다. 저렇게, 놀란 듯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내려다보는 건 엄밀히 따져 반칙이었다. 그때마다 나는 나보다 한 뼘은 더 큰 권태오를 세상 순진하고 착한 어린애처럼 느낄 수밖에 없었다.
머쓱한 마음에 목덜미를 매만지며 내가 말했다.
“…너한테는 주고만 싶어, 이제….”
애써 덧붙인 진심에 권태오가 천천히 미소 지었다. 광대가 동그랗게 올라가도록 웃을 때면, 그의 두 뺨에 보조개가 옴폭 들어갔다. 세상 단단해 보이던 얼굴이 단숨에 보드라워졌다.
그렇게 예쁜 얼굴로 권태오가 속삭였다.
“그럼 뽀뽀해 줘.”
거절할 이유도 저항할 방법도 없어, 나는 두 손을 조심스럽게 뻗었다. 여름 볕에 그을린 빛깔이 고스란히 뺨을 조심스레 감싸 쥐고 입 맞추려는데, 권태오는 잠깐을 참지 못하고 내 허리를 와락 끌어당겼다. 중심을 잃고 그의 가슴팍을 향해 자빠지다시피 기울어진 채, 나는 입술을 와락 덮는 키스를 받았다.
‘내가 준다니까….’
헐떡헐떡 달려들며 입 맞추느라 꽉 감은 두 눈을 살피다가, 나도 눈을 감아 버렸다.
그게 ‘우리 집’에서의 첫 키스였다.
현관문 앞이 꽉 막히도록 커다란 짐 박스가 겹겹이 쌓였다. 권태오의 짐들은 하나같이 커다랗고 무거웠는데, 특히나 운동 기구가 많아서 내 힘으로는 들어 올리기조차 버거웠다. 용달차 앞에 놓인 파란 상자를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나는 그나마 혼자 힘으로 들 수 있는 상자를 찾았다. 목장갑을 낀 두 손으로 단단히 받쳐 들자마자, 내 팔 위에서 무거운 짐 박스가 쑥 하고 사라졌다.
“내놔.”
제 두 팔로 이미 가져가 놓고는, 권태오가 말했다. 나는 무안해져서는 ‘어어’ 하고 의미 없는 소리만 흘렸다. 척척 짐을 옮기는 권태오를 따라, 그만큼 덩치가 크고 팔뚝이 우람한 동생들이 각자 박스 두 개씩을 들고 움직였다. 이사 소식을 듣고는 도와주겠다며 따라온 채홍고 유도부 후배들이었다.
머쓱한 마음에 목덜미를 문지르다가, 나는 플라스틱 상자를 발견했다. 속에는 트로피며 메달, 상장이 가득했다. 그나마 가벼워 보이기에 다가가서 들어 올리려는데, 그마저도 시야에서 홱 하고 사라져 버렸다.
“건드리지 마.”
상자를 옆구리에 낀 채 권태오가 말했다. 무거운 짐을 연신 옮겨 놓고도 멀끔해 보이는 얼굴을 올려다보며, 나는 불만스러운 목소리를 냈다.
“그건 별로 안 무거워 보이는데…. 내가 옮길게.”
“또 아프다고 지랄하지 말고 가만있어.”
그렇게 을러 놓더니, 권태오는 무거운 박스 세 개를 겹쳐 올리고선 한 번에 들고 사라졌다. 빠른 속도로 줄어드는 짐 박스 사이에 나는 꾸어 놓은 보릿자루처럼 남았다. 몇몇 유도부 후배들이 나를 보며 농담할 정도였다.
“제가 형도 옮겨 줄까요?”
킥킥거리며 웃는 소리에 대답하기도 전에,
“까불지 말고 박스나 옮겨.”
어느새 등장한 권태오가 내 대답을 대신했다. 그러더니 뜨끈한 손으로 내 팔뚝을 잡고는 작은 정원으로 데려갔다.
“정 심심하면 네 짐이나 보고 있어.”
권태오가 말했다. ‘내 짐’이라고 해 봐야, 내가 챙겨 온 물건은 너무 적어서 거의 없는 수준이었다. 그중 가장 크고 무거운 게 조심이일 정도였다.
바람처럼 빠른 속도로 권태오는 집 안으로 사라졌다. 그가 무어라 후배들에게 지시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정원 랜턴에 줄이 묶인 채 앉아 있는 ‘내 짐’, 조심이에게 다가갔다. 한숨을 푹 쉬고는 리드 줄 손잡이를 움켜쥐고, 정원을 천천히 걸었다.
대뜸 옮겨 온 공간이 낯선지, 조심이는 아주 어색하게 두리번거리며 풀 냄새를 맡았다. 구석 자리에 마킹하며 흥미를 보이는가 싶었지만 그것도 잠깐일 뿐, 조심이는 내 발치로 와 바닥에 엉덩이를 대고 앉아 버렸다.
“왜 그래. 뭐가 이상해?”
조곤조곤 말을 걸자 조심이가 잔디 위에 풀썩 몸을 엎드렸다. 개를 따라 자세를 낮추며, 나는 조심이의 머리를 살살 긁어 주었다.
“조심아, 여기가 이제 네 집이야. 이상해하지 않아도 돼.”
최대한 다정하게 달래 주며 엎드린 몸을 일으켜 주어도, 조심이는 도통 기운 나지 않는 눈치였다. 낯선 환경이 어색한지 연신 내 주변을 핑핑 돌기만 할 뿐이었다. 넓고 나무 많은 채홍고 잔디밭이 그리운가 싶어, 우선은 집 안에 들여 놓고자 했지만 그것조차 쉽진 않았다.
박스를 거실 안에 쌓아 놓고 짐을 푸는 남자애들은 온통 분주한데, 현관문 앞의 나와 조심이만 제자리걸음이었다. 문밖에서 머리를 갸웃거릴 뿐, 리드 줄을 잡아끌어도 도통 움직이질 않는 조심이 때문이었다. 결국 리드 줄 손잡이를 내려놓고, 나는 집 안으로 들어가 내 가방을 뒤적였다. 막대 모양 오리고기 간식을 흔들어 보이자, 그제야 조심이가 앞발을 신발장에 걸쳤다.
“이리 와. 조심아. 까까? 까까 먹을까?”
간식 끝을 부러뜨려 던져 주자, 할짝거리며 맛보는가 싶더니 조심이가 눈을 크게 떴다. 식탐을 이기지 못해 한 발 두 발, 눈치를 보며 집 안으로 들어오는 조심이를 나는 가만히 기다렸다. 그러면서도 내심 마음이 아팠다. 교직원 휴게실, 경비실, 본관, 기숙사… 어디를 가도 ‘나가’라는 말을 듣고 때론 혼쭐이 나면서 지낸 탓에, 조심이도 예전 일을 기억하고 경계하는 것 같았다.
마침내 조심이가 내 품 안까지 다가왔다. 덩그러니, 좁은 복도 구석에 앉은 채 나는 조심이에게 간식 한 봉지를 전부 먹이고, 커다란 머리를 꼭 안아 주고, 딱딱하고 흙 묻은 발바닥을 물티슈로 닦아 주었다. 그러고도 한참이나 시간을 보낸 뒤에야 조심이는 용기 내어 집 안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흥미로운 듯 여기저기 킁킁거리는 녀석을 따라다니면서, 혹시 집 안에 배변 실수를 하진 않을까 걱정했다. 그런데 조심이는 2층 계단을 느릿느릿 올라가서는, 포장도 덜 뜯은 반려견 방석 위를 킁킁거렸다. 잠시 호기심을 보이나 싶더니, 이내 제 자리인 줄을 어떻게 알았는지 쏙 들어가 몸을 웅크리고 눕는 바람에 나는 환호성을 지를 뻔했다.
“조심아. 너… 천재야?”
처음 보는 방석을 잘 쓰는 조심이가 마냥 신기하기만 했다. 학교에서는 사고뭉치 똥개 소리만 내내 들어온 조심이인데, 이렇게 보니 아주 똑똑하고 귀엽기만 했다. 얼른 개 샴푸며 빗을 사서 씻기고, 단장을 시켜 주고 싶었다. 그러면 조심이도 영락없이 집 강아지가 될 거 같았다.
“착해, 착해….”
눈을 굴리며 이리저리 복도를 살피는 조심이를 토닥거리는데, 1층에서부터 ‘아이 씨’ 하는 짜증스러운 중얼거림이 들려왔다. 한집에서도 ‘멀리 들리는 소리’가 있을 수 있다니…. 새삼스러운 감동을 느끼면서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계단으로 향했다. 내 뒤로 조심이가 졸졸 따라붙었다.
난간을 쥐고 아래를 살피자, 거실에 앉은 권태오의 커다란 뒷모습이 보였다.
“똑바로 안 하냐? 나사 구멍 위치가 안 맞잖아.”
권태오가 성난 듯 말했다. 그 주변에는 조립되다 만 나무판자와 못이 굴러다녔고, 맞은편에는 곤혹스러운 듯 인상을 구긴 유도부 후배들이 어정쩡한 자세로 앉아 있었다.
상황을 잠시 훑어본 다음, 나는 거실 한편에 쌓여 있는 박스 더미로 향했다. 스티로폼 조각들 사이에서 조립 설명서를 찾아내기 위해서였다. 한참을 뒤적거린 끝에 꺼내 든 종이를 살핀 뒤에야, 나는 거실에 널브러진 정체불명의 나무판자의 완성형은 책장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물푸레무늬 나무 책장, 240, 31, 186㎝…. 엄청 크네.’
학교 시험지처럼 갱지로 만들어진 책자가 내 눈에는 흘깃 봐도 중요하게 느껴지는데, 유도부 남자애들 눈에는 쓰레기 같은 모양이었다. 요란하게도 구겨 놓아서, 손으로 눌러 편 뒤에야 페이지를 넘길 수 있을 수준이었다.
“태오야. 옆판을 거꾸로 조립했잖아. 여기, 봐….”
조립 설명서 첫 페이지를 넓게 펼치면서, 나는 권태오 옆으로 다가가 무릎을 쪼그리고 앉았다. 손가락으로 설명서의 그림을 가리키자 권태오가 내 어깨에 제 턱을 걸쳤다.
“자, 그림 보면…. 여기 보면 끝이 각진 게 B면, 바닥에 닿는 쪽이고 저기, 지금 나사를 박아 놓은 게 끝이 동그랗잖아. 저기가 A면, 위쪽이어야 하는데 이걸 거꾸로 붙여 버렸으니까 조립이 안 되지. 나사도… 여기는 작은 나사 A-1이 아니라 큰 나사, B-1을 써야 하고.”
“어. 진짜네.”
날 보면서는 순순히 수긍하며 착한 목소리를 내는가 싶더니, 권태오가 인상을 구기며 정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걸 누가 이딴 식으로 내밀었어?”
나는 권태오의 팔뚝을 꼬집듯이 꽉 잡았다. 그래 봐야 딱딱해서 내 힘으로는 눌리지도 않았지만, 손끝으로 누르면서 움켜쥐는 것으로도 눈길을 다시 받기엔 충분했다.
“도와주러 온 애들한테 괜히 그러지 말고…. 뭐든지 설명서를 잘 읽었어야지.”
속삭임 끝에 권태오가 ‘응’ 소리 내며 순응했다. 그의 어깨를 토닥토닥 두드려 준 다음, 나는 나사못에 코를 대고 킁킁거리는 조심이를 데리고 소파 자리로 향했다.
샛노란 쿠션에 허리를 푹 기대고, 내 발등 위에 턱을 괸 조심이의 체온을 느끼자니 천천히 흐르는 시간조차 기분 좋았다. 편안한 자리에 편안한 자세로 앉아, 덩치 커다란 남자애들이 끙끙거리며 나무 책장을 조립하는 모습을 구경하는 건 생각보다 재밌는 일이었다. 하기야, 그중 한 명이 권태오인 이상에야 팔만대장경의 팔만사천법문을 옮겨 적는데도 보기 좋지 싶었다.
‘애들 일 다 끝나면… 중국집 배달이라도 시켜 줘야겠다.’
가장 적게 노동한 주제에 가장 빨리 피로감을 느끼면서, 나는 스르르 감기는 두 눈을 애써 들어 올렸다. 두어 번인가 몰려드는 졸음을 내쫓고 나니 남은 힘마저 쭉 빠져 버렸다.
“그 나사가 아니라잖아, 우신이가. 어? 작은 나사를 달라고.”
구시렁거리는 권태오의 목소리를 들으며 웃다가, 나는 기분 좋은 낮잠에 빠져들었다.
멍하니 눈을 떴을 때는 늦은 저녁이었다. 중국집 배달을 시켜 주기는커녕 복작복작하니 목소리로 거실을 가득 채우던 남자애들은 사라진 지 오래였고, 소파 위에서 잠들었던 내 몸은 2층 큰 방의 침대 위에 뉘어져 있었다. 가슴 위를 덮은 이불을 내리면서 나는 어리둥절하니 눈을 비볐다.
비척비척 상체를 일으키자 덥석, 손목을 붙잡는 손길이 느껴졌다. 그제야 내 옆자리에 모로 누운 권태오가 보였다. 두 눈을 말똥말똥하게 뜬 채, 그는 나를 직시하고 있었다.
“어…, 태오야. 미안…, 내가 깜빡 졸았나 봐. 지금 몇 시야?”
“좀 더 자.”
다시 누우라는 듯 잡아끄는 손길이 이어졌다. 나는 고개를 내저으며 몽롱한 정신을 깨워 보려 애썼다. 테라스 창 바깥이 어둑어둑한 걸 보면, 족히 다섯 시간은 넘게 자 버린 것 같았다. 이삿짐 정리를 전부 마쳤는지 커다란 방 곳곳에 행거며 옷가지, 물건들이 차곡차곡 정리된 상태였다.
민망한 마음에 나는 작게 중얼거렸다.
“나 깨우지….”
“너무 귀엽게 잘 자길래 안 깨웠어. 엄청 피곤했나 봐?”
뜨끈하니 열 오르는 뺨을 손등으로 훔치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잡힌 팔을 슬그머니 빼냈다.
“나, 그럼 내 방 가서 짐 정리 좀 할게.”
“여기가 네 방인데 가긴 어딜 가.”
부루퉁하게 느껴질 정도로 딱딱하게 대꾸하며, 권태오는 내 허리를 와락 끌어안았다. 굵은 팔로 잡아끄는 통에 나는 앉은 채로 휘청휘청 흔들거렸다. 어리둥절하니 눈만 끔벅이는 내게, 권태오가 콕콕 귀에 박히도록 또렷하게 말했다.
“침대가 이렇게 넓은데 왜 따로 자야 돼? 채홍관 숙소에서는 이거보다 작은 침대에서 잘만 잤으면서. 그냥 여기서 자. 여기 네 방하고, 같이 자자.”
“잘 데가 없어서 같이 자는 거랑은 상황이 다르잖아. 너… 비좁게 느껴지지 않겠어?”
조심스럽게 대답하면서도 나는 내 의견을 세게 밀어붙이지 못했다. 한 침대를 쓰면서 나란히 누워 자자는 권태오의 말이 무척 유혹적으로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그와 함께 있고 싶은 마음에 진로까지 바꾸어 결정한 나였다. 권태오와 보내는 시간이 너무 좋고 소중해서, 내 고등학교 시절은 그에게 고백하기 전과 후로 갈릴 정도였다.
그래도 선뜻 옆자리에 몸을 눕히지 못하는 이유는 내가 아닌 권태오에게 있었다. 넓은 집과 남는 방을 두고도 한 침대를 쓰기 시작하면, 어느 순간에는 그가 ‘좀 혼자 있고 싶다’고 생각할지도 몰랐다.
그런 시기가 오더라도 권태오는 겉으로 드러내어 나를 옆방으로 내보낼 남자가 아니었다. 속으로 싫증을 내면서도 애써 참고 넘어갈 사람이 권태오였다. 그에게 있어 싫증의 대상이 내가 되는 날이 올까 봐, 그 순간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제법, 많이 두려웠다.
‘사랑의 유효 기간은 900일이라던데….’
그런 글을 과학 잡지에서 읽은 적이 있었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호르몬이 분비되며 일어나는 일시적인 화학 작용에 불과한데, 같은 호르몬이 계속 분비되다 보면 대뇌에 항체가 생성된다고 했다. 그러면 더는 화학 작용이 일어나지 않게 되고, 사랑이라는 감정도 그친다는 거였다. 그 기한이 짧으면 2년, 길면 900일이었다.
좋아한다고 마음을 고백한 날을 기준으로 쳤을 때 우리 관계는 대략 600일을 넘어섰다. 권태오의 대뇌에 항체가 생성되기까지 길게는 300일 남았다는 의미였다.
나는 고개를 내저었다.
“옆방 가서 잘게.”
길고도 끈질긴 연애를 하자면 권태오의 대뇌를 쉬게 해 줘야 했다. 잠자는 동안만이라도 호르몬 분비를 멈춰 줘야, 밤새 화학 작용을 멈춘 뇌가 팔팔하게 오랫동안 방심할 테니까. 900일이라는 기간을 90년으로 연장시키자면 각방은 필수였다.
그런 내 계략을 알 턱 없는 권태오는 토라진 애처럼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어차피 옆방은 이제 못 써, 이우신.”
“어? 왜…?”
“책장을 중앙에 세워 놔서 좁아졌거든. 침대 놓을 자리도 없고, 네 다리도 쭉 못 뻗어. 거긴 이제 서재로 써야 돼. 별수 없어.”
그 말에 나는 소리 내어 웃어 버렸다. 어쩐 일로 책이랑은 담을 쌓고 지내던 권태오가 커다란 책장을 주문해서 조립까지 손수 하나 싶었는데, 그에게도 그 나름의 깜찍한 계략이 있었던 거였다. 작은 방을 채워서 내 방을 없애려고 들었다는 게 웃기기도 했고 귀엽기도 했다.
그 애교에 못 이겨, 나는 권태오에게 굴복했다. 그가 시키는 대로 침대 위에 풀썩 상체를 눕히고, 두 무릎을 모으고 마주 보았다.
“태오야….”
손을 들어 잘생긴 콧등을 매만지자 권태오가 눈을 내리깔았다. 잘 다듬어 낸 석상 같은 얼굴에서 가장 높은 코끝을 검지로 톡톡 건드리자, ‘웃음’ 버튼이라도 눌린 듯 권태오가 입꼬리를 올렸다. 나는 그 완벽한 미소를 홀린 듯 감상했다.
그리고 속삭였다.
“나는 있지…, 가끔 네가 무서워.”
손끝으로 입술 위를 살살 쓸어내리며 말하자, 권태오가 눈썹을 들어 보였다. 은은한 조명 빛을 받은 그의 귓불이 불그스름했다. 매끄러운 턱을 따라 손가락으로 선을 그리며, 나는 솔직한 고백을 꺼냈다. 오늘, 지금, 여기가 아니고서는 도무지 뱉을 용기가 나지 않을 만큼 간지러운 고백이었다.
“왜냐면, 가끔… 네가 파도 같거든. 거친 파도 같아. 갑자기 나한테 왔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물러날 거 같아. 네가 나를 두고 저 멀리 가 버릴까 봐 나는 무서워.”
부끄러움을 애정으로 이겨내고 건넨 말을 듣고도 권태오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대답 없는 그의 뺨을 오른손으로 감싸 어루만지며, 나는 마른 입술을 혀로 축였다.
“내가 무슨 말 하는지… 이해가 돼? 내 마음이 너는 이해가 돼?”
선생님이라도 된 것처럼 질문한 뒤에야,
“어. 이해돼.”
단단한 대답이 튀어나왔다. 누운 자세를 조금 고치는가 싶더니, 권태오가 빠르게 말했다.
“이우신. 내가 파도면 너는 우물이야. 존나 깊어서 도통 뭔 생각을 하는지 몰랐었는데… 알고 나니까 못 빠져나오겠어. 그래서 나는 너한테 빠져서 죽을 때까지 버티려고.”
나는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읽어 본 어떤 시보다도, 권태오의 고백은 과격한 한편 사랑스러웠다. 입술이 절로 안으로 말리고 아래턱에 힘이 들어갈 정도였다. 권태오는 자신이 내게 어떤 폭탄을 던졌는지도 모르고선 덤덤한 얼굴인데, 나는 심장이 펑 하고 터져 버렸다.
“…태오야.”
무어라 대답해야 좋을지 몰라 이름만 연신 부르는데, 권태오가 내 옆구리를 꽉 붙잡았다. 그러더니 제 배에 내 아랫배가 닿도록 강하게 끌어당겼다.
“됐으니까 이리 와.”
화학 작용이고 대뇌고 파도고, 전부 잊어버린 채 나는 권태오의 품 안에 고개를 숨겼다. 팔을 뻗어 마주 껴안으며 파고들자, 권태오의 심장이 꼭 나처럼 쿵쿵거렸다. 서로 간에 폭격을 날린 셈이었다.
“좋아해, 태오야….”
어깨에 입술을 파묻은 채 속삭이자,
“그건 나도 알지.”
여유를 가장한 듯 웃음소리 섞인 답이 돌아왔다.
“사랑해, 태오야.”
“그건 나도….”
이내 숨소리가 뚝 그쳤다. 눈을 지르감은 채 나는 콩닥거리는 심장 박동이 같은 박자로 맞춰지는 것을 느꼈다.
“…나도….”
어둠 안에서 낮은 목소리가 흐르듯 새어 나오다가, 그쳤다. 데일 것처럼 뜨겁게 달아오르는 그의 어깨 위에 뺨이 눌리도록 얼굴을 기대고, 나는 꽉 깨물고 있던 아랫입술에서 윗니를 떼어 냈다. 그리고 힘주어 말했다.
“사랑해, 권태오.”
“하….”
“사랑해.”
대답이 돌아올 때까지 연거푸 말해 줄 생각이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거센 손길에 턱이 잡히고, 부드러운 입술에 입술이 막혔기 때문이었다. 와락 맞닿은 입술이 말캉말캉하고 부드러웠다. 꾹 눌리는 압력이 배가 당길 정도로 기분 좋았다.
바싹바싹 목이 타는 느낌에 혀끝으로 입술을 훑자, 권태오가 불쑥 내 잇새로 제 혀를 밀어 넣었다. 말랑한 입술이 겹쳐지고, 중심을 잃은 몸은 등허리가 다 닿도록 이부자리 위로 무너졌다.
“읍….”
권태오가 내 몸 위로 곰처럼 올라탔다. 내 귓가에, 시트를 짚은 그의 손이 닿았다. 할딱할딱 입을 맞추고 혀를 섞으며 나는 손에 닿는 대로 이불을 긁어쥐었다. 가슴 안에서 끓어오르는 찌릿한 흥분과 머리가 마비될 것 같은 긴장감을 애써 털어 내는 내 손을, 권태오의 큰 손이 덥석 움켜쥐었다.
“우신아.”
꼭 감았던 눈을 가늘게 뜨자, 코가 닿도록 가까운 권태오의 두 눈이 보였다. 검은 두 눈이 어느 때보다 더 어둡고, 맹렬하게 느껴졌다. 그와 내 피부 밖으로 성욕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고, 서로 얽히는 기분이 들었다.
“우신아….”
권태오는 내게 아무런 요청도 할 필요가 없었다. 그가 무어라 말하기도 전에, 나는 고개를 연신 끄덕거렸다. 그러자 뜨끈하고 커다란 손이 기다렸다는 듯 내 티셔츠 밑으로 파고들어 왔다. 허리를 쓰다듬고 장골 뼈대 위를 훑는 손길에 등 아래에 땀이 고였다.
“아, 조심이는?”
허둥지둥 내 배를 어루만지는 권태오의 어깨를 움켜쥐며 내가 물었다. 그러자 권태오가 내 가슴 위에 턱을 올렸다.
“1층 소파에 자기 방석 깔아 줬더니 거기서 자더라. 네가 사 줬던 방석 있잖아, 그거.”
“아….”
“이제… 마저 해도 돼?”
얼굴이 새빨개진 채 나는 끄덕끄덕 고갯짓했다. 잠시 멈춘 듯하던 권태오의 손이 망설임 없이 내 티셔츠 끝자락을 움켜쥐더니, 위로 훅 끌어 올렸다. 늘어난 라운드넥이 머리 위로 막힘없이 쑥 빠져나갔고, 소맷자락에 걸린 팔까지 풀어내자 나는 단숨에 반쯤 나신이 됐다.
“아, 씨발….”
권태오가 대뜸 욕설했다. 놀란 마음에 눈을 크게 뜨고 올려다보는데, 그는 내 눈을 보지 않았다. 큰 손바닥을 허공에 둔 채 머뭇거리는 듯하다가, 특별할 것 없는 가슴 위에 조심스럽게 얹을 따름이었다. 쿵, 쿵, 쿵… 그 속에서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가만히, 양손을 내 두 가슴에 올린 채 권태오가 멈췄다. 제 손금 아래서 뛰는 내 심장 박동을 느끼는 듯했다. 그 모습이 호기심 많은 동물 같아 웃기도 잠시, 나는 금세 여유를 잃어버렸다. 권태오가 기다란 손가락으로 한 줌 움켜쥐듯 내 가슴살을 긁어쥐고, 유두를 긁기 시작했다.
“아, 어? 어…?”
야릇한 손길에 당황한 나머지 허리가 다 들썩거렸다. 다소 허둥지둥하며 나는 그의 어깨에 주먹을 대고 뒤로, 뒤로 밀치려 애썼다.
“왜 그렇게 만져? 가슴도 없는데….”
억울하고 수치스러워 얼굴이 새빨개진 채 바락 외쳐도, 권태오는 꽉 움켜쥔 손을 풀지 않았다. 오히려 두어 번 더, 내 젖꼭지를 퉁기듯이 건드려 댔다. 약한 통증과 함께 거듭 허리가 팔딱팔딱 움직였다. 기분이 이상했다.
“하지 마….”
입술을 꽉 깨물며 어깨를 세게 두드리자, 권태오가 그제야 못된 손을 멈췄다.
“빨개졌어.”
대신에 고개를 깊이 숙이더니 내 가슴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볼 것도 없는데 왜 그러냐고 타박해도, 그만 쳐다보라며 머리를 잡고 뒤로 밀어내도 그는 꿈쩍도 하질 않았다. 도리어 얼굴을 묻고 코끝을 내 살결에 문지르는가 싶더니, 젖꼭지에 입을 대고 빨고 핥기 시작했다.
“악!”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나는 양다리를 버둥거렸다. 갑자기 숨쉬기가 힘들었다. 마냥 귀엽다고, 착하다고 생각했던 권태오가 난생처음 아주 나쁜 놈으로 느껴진 순간이었다. 온 힘을 다해 뒤로 밀치고 팔다리를 바르작거려도 나는 힘주어 내려앉은 그의 머리를 가슴에서 떼 낼 수가 없었다.
뜨거운 혓바닥이 싹, 싹, 살 쓸리는 소리가 나도록 내 유두를 핥아 올렸다. 말랑하던 젖꼭지가 단숨에 딱딱해졌다.
“하…, 하지 마, 하지 마….”
의미 없는 반항을 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조금 지쳐 버렸다. 헐떡거리며 부탁하는 것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사타구니 사이로 열이 몰리고, 팬티 안의 성기가 다소 힘겹게 부피를 키워 나가고 있었다. 가슴 빨리며 발기했다는 쪽팔림보다도, 오늘 무슨 속옷을 입고 왔더라 하는 걱정이 더 컸다.
“태오, 야, 나… 나, 옷… 옷이라도 갈아입고 올게.”
머리 꼭대기까지 열이 오른 채 나는 상체를 비틀었다. 가까스로, 짐승처럼 들러붙는 권태오와 내 가슴 사이에 두 팔을 끼워 넣을 수 있었다. 양팔을 엑스 자로 교차시켜 상체를 가린 채, 나는 더운 숨을 몰아쉬었다. 바지 위가 불룩해진 게 느껴져 눈물을 쏟을 것만 같았다.
“어차피 벗을 건데 왜 갈아입어?”
“아, 그게, 먼저 씻어야 할 거 같아서….”
“너 섰잖아.”
“아.”
낮은 목소리가 내 머리 위로 세게 떨어지는 듯했다. 그의 시선이 위로 솟은 내 다리 사이에 닿았다. 울컥 치미는 서러운 감정을 꾹 삼키며 나는 그의 뜨거운 시선을 애써 외면했다. 고개를 옆으로 젖힌 채 두 눈을 내리깔고, 다리를 어영부영 굽혀 사타구니의 윤곽을 가려 보려 애썼다.
“그…, 그게… 네가, 네가….”
무어라 변명할 말을 찾아 더듬거리는 내 허리에 권태오의 손이 재차 닿았다. 크게 움찔거리며 나는 온몸의 근육을 수축시켰다. 전처럼, 아무렇잖게 그의 손길을 만끽할 수가 없게 됐다.
“하아….”
얕은 한숨을 잘게 내쉬며, 권태오는 제 두툼한 아랫입술을 혀로 연신 훑었다. 커다란 손이 거듭 내 옆구리와 아랫배를 쓰다듬더니, 가슴팍을 가로막은 두 팔 밑으로 기어 들어왔다.
“만, 만지지 마….”
허둥지둥하며 나는 몸을 틀었다. 침대 위에서 반쯤 구르다시피 하며, 차라리 엎드렸다. 그러나 상체에 들러붙은 권태오의 손길은 더욱 집요해지기만 했다. 내 등 위를 덮다시피 하며 엎드리더니, 제 품 안에 나를 가둬 놓고 주물럭대기에 이르렀다.
“태오야, 태오야….”
고개를 내저으며 나는 가슴팍에 들러붙은 손을 뜯어내려 애썼다. 굵고 딱딱한 손가락이 재차 내 가슴의, 얼마 있지도 않은 살을 쥐고 주물럭거렸다.
“가만히 좀 있어 봐.”
흥분이 들어찬 목소리가 내 왼쪽 귀를 간질였다. 낮은 목소리에 놀라 움찔거리며 몸을 웅크리자, 헐떡거리는 더운 숨결과 함께 엉덩이 밑을 찔러 오는 딱딱한 살덩이 감촉이 느껴졌다.
“너, 살이… 존나 부드러워, 씨발…. 어떻게 이렇게 감촉이….”
입을 꽉 다문 채 나는 뜨거운 콧김만 연거푸 내쉬었다. 권태오의 음성에는 장난기도, 희롱하려는 기색도 섞여 있질 않았다. 내 가슴팍을 이리저리 쓰다듬고, 주물럭거리면서 그는 제가 욕을 하는 줄도 모르는 듯했다. 귓가에 닿는 숨소리마저 손길처럼 거칠어서, 가슴팍에 생긴 붉은 손자국이 뇌리에도 남는 듯했다.
입술을 꽉 깨물며 나는 청바지의 버클을 풀었다. 바지 안이, 비좁다 못해 눅눅해서 답답해 죽을 것 같았다. 천천히, 느릿느릿 바지를 아래로 끌어 내리자, 엉덩잇살에 비벼지던 권태오의 하반신이 더욱 바짝 다가왔다. 내 가슴팍을 움켜쥐던 오른손이 아래쪽으로 내려가더니 불쑥, 팬티 위를 움켜쥐듯 붙잡았다.
“아…!”
눈썹을 찡그리며 나는 시트 위에 얼굴을 반쯤 묻었다. 권태오의 손안에서, 팬티의 얇은 천에 비벼지며 성기가 젖어드는 게 느껴졌다. 사정하고픈 마음을 참아 내느라 발가락에 절로 힘이 들어갔다.
“아, 이우신. 진짜….”
주물럭거리며 내 성기를 움켜쥐는 손길에 이가 꽉 악물렸다.
“하아, 읏….”
고개를 푹 숙인 채 나는 잘게 목을 떨었다. 부르르 허벅다리가 경련하고 발기한 살덩이로 찌르르한 통증이 밀려들었다.
“하, 미친…. 존나 말랑말랑해.”
팬티 위로 덩어리를 가늠하듯 내 성기를 움켜쥐며, 권태오가 말했다. 나는 두 눈을 꽉 감으며 고통에 찬 신음을 흘렸다.
“흐, 으…, 아, 아파….”
그러자 권태오가 더욱 흥분한 듯, 더운 콧김을 내 어깨에 닿도록 크게 내쉬었다. 입술과 코를 내 목덜미에 파묻으며, 그가 속삭였다.
“아파?”
나는 바삐 고개를 끄덕였다.
“응, 응…, 아파…. 놔, 놔줘….”
그러자 권태오가 힘주어 움켜쥐었던 오른손을 풀었다. 숨통이 트이는 느낌에 학학 밀린 숨을 내쉬는 것도 잠시, 축축하게 젖어 살갗에 들러붙어 있던 팬티가 바지를 따라 허벅지까지 끌려 내려갔다. 일순 해방감이 내 머리를 점령했다가, 개운한 감각은 이내 자리를 떠났다. 그 자리를 숨 가쁜 자극이 채웠다.
“아, 아…!”
거친 손바닥이 한껏 예민해진 내 성기를 움켜쥐더니, 위아래로 쓸어대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크네. 그게 더 귀여운 거 같기도 하고….”
“아흑! 읏….”
이를 꽉 악문 채 나는 두 손으로 권태오의 손목을 부여잡았다. 거의 쥐어짜 내다시피 문질러 대는 손길에 성감보다 큰 고통이 밀려들었다. ‘흑’, 울음소리가 먼저 목구멍 밖으로 새어 나갔고, 눈물은 그보다 늦게 눈꺼풀 사이로 삐질삐질 흘렀다.
“흐윽…, 흑, 태오, 태오야…아, 앗….”
온몸이 구부정하니 앞으로 말렸다. 공처럼 둥글게 몸을 만 채 나는 권태오의 팔 힘을 못 이겨 앞뒤로 흔들거렸다. ‘헉’ 하는 둔한 신음이 입 밖으로 터져 나갔고, 젖은 살을 쓸어대는 색정적인 소음이 방 안 가득 울렸다.
“흐윽, 흐으윽….”
빳빳해진 목을 앞으로 뻗으며 나는 발가락 끝까지 세게 힘을 줬다. 타인의 손길이 내 것을 어루만지는 감각은, 내 손으로 자위하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것조차 부끄럽게 느껴져서 손에 꼽도록 적게 해 본 나로서는 권태오의 품에 욱여넣어지다시피 안긴 채, 권태오의 손이 내 것을 만지는 상황을 도무지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우신아.”
귓가로 굵직한 목소리가 닿을 때마다,
“…….”
입술을 꽉 깨문 채 사정을 참아내야 했다.
관자놀이가 흥건해지도록 눈물만 찔찔 흘리는데, 대뜸 왼쪽 귀가 엄청나게 아팠다. 권태오가 대뜸 제 입에 내 귀를 넣고는 세게 깨문 것이었다.
“아, 악…!”
아릿한 느낌에 흠칫 몸을 웅크리자, 커다랗고 단단한 몸이 내게 그림자처럼 바짝 붙었다. 남의 입 안에 들어간 귀가 순식간에 침으로 축축해졌다. 귓등을 뭉근하게 짓누르는 혓바닥 감촉에 오스스 소름이 끼쳤다.
“우신아, 하아…, 빨리….”
“흐읏, 읏….”
“빨리 싸. 너 싸는 거, 보고 싶어….”
내 귀를 빨고, 깨물고, 핥느라 뭉개진 발음으로 권태오가 말했다. 발끝까지 빳빳하게 편 채 나는 고개를 좌우로 내저었다. 몰아치는 자극 앞에 함락당하고픈 나약한 욕망이 머리를 채웠다. 그 순간, 이성보다 몸이 먼저 백기를 들었다. 이를 악물고 신음을 참아 내려 애쓰는 것을 끝으로, 온몸의 힘이 탁 풀렸다.
“학, 하아, 아…윽….”
온몸을 푸르르 떨자 권태오가 기다렸다는 듯 내 성기를 부드럽게 감싸 쥐었다. 아픈 사람처럼 앓는 소리를 내며 나는 사정했다. 한껏 자극받은 성기가 정액을 뱉어내며, 움찔움찔 떨리는 게 느껴졌다.
“…….”
무어라 소리를 내긴커녕 숨조차 쉬지 못한 채 나는 울컥울컥 정액을 쌌다. 엉덩이로 절로 힘이 바짝 들어가고, 발끝이 시트를 긁으며 뻗쳤다. 성감이 한 번, 두 번, 간헐적으로 밀려 들어와 숨통이 턱 막혔다.
“하아….”
그 순간에는 내게 밀려든 감각보다도, 권태오가 내쉬는 만족스러운 한숨이 더욱 짙은 듯했다. 제 손안에서 거듭 맑은 정액을 흘리는 내 살덩이를 엄지로 문지르면서, 권태오는 내 반응을 구경했다. 표정을 숨기려 애를 써 봐도 소용없었다. 성기 끝을 쓱쓱 소리가 나도록 문지르는 자극에, 온 얼굴이 오만상으로 구겨지고 헉헉거리는 밭은 숨으로 입술이 절로 벌어졌다.
“흣, 흐윽…. 그…만, 읏! 그만, 제발… 그만 만져, 제발….”
눈물 줄을 진하게 만들며 애원하자, 그제야 권태오의 심술도 멈췄다. 제 손안의 내 성기를 놓아주진 않았지만, 대신에 부드럽게 감싸 쥔 채 내 몸을 세게 안아 주었다. 서러운 숨을 헐떡거리며 나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 사정 후 탈력을 달래주는 뜨거운 포옹이, 어이없을 정도로 기분 좋았다.
“우신아….”
“…응….”
“화났어?”
“…….”
대답하는 대신 나는 고개를 잘게 내저었다. 입을 열었다가는 말소리 대신 울음소리를 흘릴 것 같아서였다. 찔끔찔끔 남은 눈물을 떨어뜨리는데, 권태오가 황당하다는 듯 낮게 웃었다.
“내가 딸 좀 쳐 줬다고 우는 거야, 너?”
나는 주먹을 꽉 말아 쥔 손으로 입가를 가렸다. 축축해진 얼굴을 문질러 닦아 내며, 분에 찬 목소리를 흘렸다.
“네가 갑자기… 만져서… 놀랐어.”
“너도 평소에 딸은 칠 거 아냐?”
“…….”
훌쩍거리는 내 뺨에 권태오가 ‘쪽’ 소리 나는 입맞춤을 남겼다.
“응? 우신아.”
그러더니 어서 대답하라는 듯, 내 성기를 쥔 제 오른손에 힘을 주었다. 입술이 벌어지며 왼발이 발차기를 하듯 툭 뻗었다. 단숨에 치미는 열기로 머릿속이 해롱해롱해졌다.
나는 애원하듯 말했다.
“제발 그만 만져, 흑, 나는 자위도 잘 안 해….”
“딸을 안 친다고?”
놀란 듯 권태오가 안은 팔을 풀었다. 느슨해진 포옹과 함께 꽉 잡혔던 사타구니에도 해방이 왔다. 권태오가 내 것을 다시 움켜쥘까 봐, 나는 두 손을 내려 다리 사이를 어정쩡하게 덮어 가려야 했다. 훌쩍이는 소리를 내며 시선을 올리자 나를 내려다보는 권태오의 얼굴이 보였다.
어딘지 놀란 듯, 당황한 듯, 또 기쁜 듯 보이는 이상한 미소가 그 얼굴에 걸려 있었다.
“너 진짜… 딸도 잘 안 쳐?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
“그래도 일주일에 한 번은 하지?”
“…….”
“그럼 한 달에 한… 두세 번? 너도 남잔데 그 정도는….”
“…….”
“진짜 안 해? 조금 만져 줬다고 좋아 죽어 놓고… 진짜 안 한다고?”
“그만 놀려.”
“아…니, 나는 놀리는 게 아니라, 신기해서…. 그래서 좆 색깔이 그렇게 예쁜 건가…? 그럼 살면서 자위 몇 번 해 봤어?”
집요하게 캐묻는 말에 나는 입을 꽉 다물었다. 그래 봐야 ‘응?’, ‘응? 우신아’ 하며 연거푸 밀려오는 독촉을 막아낼 순 없었다. 차라리 대답을 해 주고 빨리 이 화제에서 벗어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런데 정확한 자위의 횟수까지는 기억나지 않는 게 문제였다.
머뭇거리다 손을 들고는 나는 하나둘 손가락을 접었다. 중학교 1학년 때 샤워하다가 처음 해 봤고, 그게 너무 이상하고 못된 짓하는 것 같아서 그 뒤로는 2년 동안 해 본 적이 없고… 고등학교 입학하고서는, 자다가 권태오 꿈을 꾸는 바람에 화장실에 숨어든 적이 한 번, 그리고….
“아, 씨발 진짜.”
우물쭈물 손가락을 꼽다가 나는 깜짝 놀랐다. 욕설하며 소리를 버럭 질러 놓은 장본인 주제에, 권태오는 제가 더 억울하고 서럽다는 듯 인상을 구긴 채 내 턱을 꽉 붙잡았다. 그러고는 몰아치듯 마구잡이로 내 입술과 뺨과 이마에 입 맞추기 시작했다. 부황을 뜨면 이런 느낌일까 싶을 정도로 ‘쪽’ 소리가 나다 못해 ‘쫍’ 소리가 나도록 거센 입맞춤이었다.
“태, 오야….”
“진짜 씨발 왜 이렇게 귀엽냐고.”
두 뺨이 꽉 눌리도록 턱을 움켜쥔 채, 권태오가 말했다. 울 것처럼 얼굴은 붉었고 눈망울은 그렁그렁했다. 이마 위에 핏대마저 튀어나와 있었다.
“이우신.”
큰소리로, 권태오가 나를 불렀다. 나는 ‘응’ 하는 작은 대답 소리를 흘릴 뿐이었다. 귀엽다는 말이며 예뻐 죽겠다는 눈빛이며 그 무엇에도, 내 대뇌가 도무지 항체를 만들 기미를 보이질 않아서 문제였다. 도통 면역이 생기지 못하니 매번 부끄러웠다.
심각하게 표정을 굳히며, 권태오가 말했다.
“난 이제 너랑 섹스를 할 거야.”
“…….”
“근데 네가… 자위도 세 번밖에 안 했다니까 내가 좀…, 며칠은 더 참아 줄 수도 있을 것 같거든? 그러니까 오늘 하기 싫으면, 나중에 울지 말고 지금 말해.”
“…….”
나는 입술을 달싹거렸다. 하고픈 말은 분명한데 목소리가, 조금은 설레고 아주 많이 긴장한 탓에 잘 나오질 않았다. 부끄러운 마음에 얼굴이 다시금 달아올랐다. 이러다 홍조가 영원히 내 뺨을 떠나지 않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될 정도였다.
약간의 두려움을 가까스로 짓누르며, 나는 말했다.
“나…도, 참았어.”
내 턱을 쥔 권태오의 손에 힘이 바짝 들어왔다. 양 볼이 꾹 눌려 입술이 붕어처럼 빠끔빠끔 움직였다.
“너랑… 하고 싶어, 태오야.”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권태오가 침대 밖으로 대뜸 벗어났다. 튕겨지기라도 한 듯 움직이며 방 밖으로 걸어 나가는 바람에, 깜짝 놀라 그를 쫓아가려다가 나는 뒤늦게 내 몰골을 알아차렸다. 체액이 끈적하게 묻은 성기가 훤히 드러나 있었고 바지와 속옷이 더러워진 채 무릎에 걸려 있었다.
바지를 마저 벗어야 하나, 아니면 다시 입어야 하나 머뭇거리는 사이, 권태오가 침대로 돌아왔다. 쿵쿵 울리는 걸음으로 다급하게 가져온 건 다름 아닌 구급상자였다. 하얀 상자를 침대 위에 툭 내려놓길래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누가 어딜 다쳤나 하고 둘러보기도 잠시, 구급상자가 달칵 열리더니 안에서 처음 보는 물건들이 쏟아지듯 떨어져 나왔다.
“…이게 뭐야?”
까맣고 납작한 종이 상자며 무얼 뜻하는지 알기 어려운 알파벳이 쓰인 살색 튜브, 표면이 미끌대는 하얀 병을 내려다보며 내가 물었다. 권태오의 손가락이 내 시선을 따라 차례로 상자, 튜브, 그리고 병을 가리켰다.
“콘돔, 젤, 이건 오일.”
“어… 어디서 이런 걸 샀어?”
뭐 그런 질문을 하냐는 듯 권태오가 눈을 가늘게 떴다. 엉거주춤 바지 자락을 움켜쥔 내 손을 보더니, 불쑥 다가와 바짓단을 움켜쥐고는 제 쪽으로 세게 끌었다. ‘헉’ 소리를 내며 나는 침대에 볼품없이 나자빠졌다. 바지와 함께 주르륵, 권태오의 몸 앞으로 쓸려 내려가기도 잠시, 바지와 속옷이 발끝으로 쑥 빠졌다.
발라당 배가 보이도록 드러누운 내 허벅지 안쪽에 제 손을 대더니, 권태오가 짐짝 치우듯 내 다리를 좌우로 벌렸다.
“우신아. 나 믿지?”
“어…, 어?”
그제야 권태오의 허벅지로 눈길이 갔다. 나에 비해 딱히, 사타구니 위로 불쑥 솟은 무어는 없길래 발기한 줄을 몰랐는데, 다시 보니 허벅지 중앙에 이르기까지 몽둥이 같은 윤곽이 드러나 있었다. 놀라 두 눈을 크게 뜨고 올려다보자, 권태오가 다시금 말했다.
“안 아프게 잘해 볼게. 응? 나 믿지?”
“어? 어…. 으응….”
당황한 나머지 나는 조금 주눅 든 채 대답했다. 내 반응이 웃기고 귀엽다는 듯 웃기도 잠깐, 권태오의 표정이 자못 진지해졌다. 그는 심각한 얼굴로 오일 병을 집어 들더니, 남는 손으로 내 허벅지를 움켜쥐고 위로 들었다. 쑥 배가 접히더니 하반신이 덜렁 들렸다. 인형 다루듯 내 허벅지를 덜렁 잡아 드는 손길에, 부끄럽기보다는 놀라움이 앞섰다.
두 다리가 권태오의 어깨에 얹어졌다. 내 발목 사이에 얼굴을 둔 남자를 올려다보자니 평생 느껴 본 적 없는 기분이 들었다. 다리를 벌리지도, 모으지도 못하는 채 엉거주춤 나는 시트 위에 어깨를 기댔다.
“나… 무겁지 않아? 돌아누울까?”
대답 대신 권태오는 내 눈을 마주 봤다. 번들거리는 두 눈동자만 봐도 나는 답을 들은 듯했다. 두 손으로 시트를 움켜쥐며 입을 다물자, 권태오가 오일 병을 열었다. 뚜껑 돌아가는 소리가 ‘끽’ 소음을 냈다. 우리 사이 침묵이 어찌나 짙은지, 그 소리가 귓바퀴를 찌른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이내 차갑고 미끄러운 감촉이 내 엉덩이골에 쏟아졌다. 눈을 질끈 감자 투박한 손길이 내 성기를 만지작거리며 적시는가 싶더니, 둥그런 고환을 움켜쥐었다. 나는 머릿속으로 ‘꽥’ 소리를 내질렀다. 장난감 다루듯 손에 쥐고 주물럭거리는 손이 뜨끈했다. 너무 부끄러우니까 부끄럽단 말도 나오질 않았다. 입술을 깨물고 모르는 척, 눈을 감고 참을 수밖에 없었다.
한참 내 성기를 주무르던 손이 점차 아래로 움직였다. 오일 방울이 배와 등허리를 타고 흐르는 감촉이 더는 차갑지 않았다. 땀과 섞인 오일이 이제는 뜨거웠다. 흥분한 나머지 내가 착각하는 건지, 아니면 오일에 그런 기능이 있는 건진 몰라도, 하반신을 중심으로 오른 열이 전신으로 퍼졌다. 이마 위로 송골송골 땀이 맺혔다.
마침내 권태오의 손끝 마디가 내 비문에 닿았다. 눈을 가늘게 뜨자 오일로 범벅된 커다란 손이 거미처럼 움직이는 게 보였다. 긴장을 풀어 보려 나는 숨을 ‘후우우’ 길게 내쉬었다. 권태오의 숨결도 꼭 나만큼, 기대감과 긴장감으로 젖어 있었다.
“우신아. 힘 좀 풀어 봐.”
제 어깨에 걸친 내 발목에 입 맞추며 권태오가 말했다. 입술의 감촉이 소름 끼칠 정도로 좋았다.
“응….”
벅차오르는 숨을 정돈하려 애쓰며, 나는 비문 위를 오일로 적시는 손을 가만히 바라봤다.
남자끼리의 섹스에 대한 예습은 인터넷을 통해 마친 상태였다. 게이 포르노 서너 편을 통해 익힌 과정은 단순했다. 손가락으로 비문을 넓힌 다음에, 근육이 충분히 풀리면 성기를 삽입하는 거였다. 찾아보니 포르노 배우 중엔 나보다 마르고 작은 사람도 많았다. …권태오의 성기가 내 짐작보다 더 큰 것 같아서 좀 무섭기는 하지만, 준비를 열심히 하면 괜찮을 것 같았다.
이내 권태오가 손목을 살짝 굽혔다. 꾹, 엉덩이골 사이의 구멍에 이물감이 들었다. 나는 공포보다 큰 호기심을 느끼며 온몸의 힘을 쭉 풀었다.
그러나 현실은 내 생각처럼 녹록지 않았다.
“흐, 읍, …악!”
손가락이 콱 뒤를 쑤시고 들어오자, 예상치 못한 아픔이 밀려들었다. 두 눈이 꽉 감기고 무릎이 꿈틀거렸다. ‘아파’, 크게 소리 지르며 파드득 몸을 떠는데, 도망치려는 내 허벅지를 커다란 손이 콱 붙들어 잡았다.
“아파, 태오야…! 빼, 빼 줘…!”
두 다리가 내 것이 아닌 양 파드득 떨렸다. 마치 하반신에만 전기가 흐르는 것 같았다. 짐작했던 것보다 훨씬 큰 이물감에 생리적인 눈물이 주륵 흘렀다. 참지 못해 우는 소리를 흘리는데, 내 허벅지를 바짝 움켜쥔 채 권태오는 나보다 더 놀란 눈치였다.
“아프다고? 검지 하나만 넣은 건데….”
“아, 아파…. 아파, 빼, 빼 줘….”
“잠시만 참아 봐. 좀 더 넣으면 괜찮아질 거야.”
“아니야! 아니야, 빨리 빼!”
바락 소리를 지르자 권태오가 당황한 듯 손을 거뒀다. 그가 쥐고 있던 허벅지를 놓아주자마자, 나는 매트리스 위로 두 다리를 풀썩 떨어뜨렸다. 당황한 나머지 심장이 벌렁벌렁 뛰었다.
“흑….”
다소 허둥지둥하며 나는 침대 구석 자리로 후다닥 몸을 피했다. 얼얼하고 아픈 엉덩이를 두 손으로 가리고서 잔뜩 경계하며 올려다보는데, 권태오가 황당하다는 듯 실소했다.
나는 충격 먹을 정도로 많이 아픈데, 재밌다는 듯 웃는 권태오가 야속하기 짝이 없었다.
“웃지 마….”
이마 위로 오르는 열이 뜨겁게 느껴졌다. 머릿속이 핑핑 돌고 있었다. 성욕에 차서는, 아프다는 말도 믿어 주지 않고 나를 걱정해 주지도 않는 권태오가 영 다른 사람 같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는 젤이 든 튜브 뚜껑을 달칵 열었다.
그러곤 질척질척한 손을 마귀처럼 뻗어왔다. 큰 손에 발목이 잡히자마자 나는 흠칫 몸을 떨었다.
“…누가 너 잡아먹는대냐? 이리 대, 젤을 좀 더 뿌려 볼게.”
“느낌 이상해…, 생각한 거랑 달라. 엄청 아팠어….”
서럽고 당황스러워서, 어리숙한 목소리가 삐져 나갔다. 투정하듯, 일러바치듯 구시렁거리면서 나는 고개를 푹 떨궜다. 별것 아니라는 양 구는 권태오의 태도에 내 심장에 가시가 돋는 것 같았다. 마음이 따끔따끔했다.
“엄살이 아니라… 진짜 아팠단 말이야. 네 손가락이 너무 굵어서 그런 거 같아….”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에 중얼거리자, 권태오가 표정을 고쳤다.
“그렇게 많이 아파?”
“어. 아파.”
“알겠어…. 웃어서 미안. 그럼 새끼손가락부터 넣어 볼게.”
종아리를 어루만지며 속삭이는 말에, 내 시선이 권태오의 새끼손가락으로 향했다. 가만 살펴보니 저 큰 손에서, 그나마 새끼손가락이 남들 검지만 해 보였다. 애써 고개를 끄덕이며 나는 엉덩이골을 가로막고 있던 손을 치웠다.
전과 달리 내 전신은 바짝 얼어 있었다. 부쩍 무서워진 탓이었다. 두려워하는 기색을 읽었는지, 권태오는 천천히 내 등허리를 쓰다듬더니 몸을 돌려 엎드리게 했다. 풀썩 가슴팍을 시트에 대고 눕자, 베개 하나가 쑥 얼굴 밑으로 파고들어왔다. 슬그머니 돌아보자마자 권태오의 입술이 뺨에 닿았다.
고개를 바짝 숙인 채 그가 ‘쪽’ 소리 나게 내 볼에 입을 맞췄다. 손을 올려 권태오의 보드랍고 짧은 머리칼을 어루만져 주자, 훅 빠져나온 숨결이 내 인중에 닿았다.
“살살 할게.”
긴장을 달래 보려 베개를 껴안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내 큰 손이 내 엉덩이 한 짝을 콱 움켜쥐는 게 느껴졌다. 그래도 좋다고 허락한 건 나인데, 막상 민망한 부위를 살피는 눈길이 느껴지자 몸이 절로 들썩거렸다.
‘부끄러워….’
다시금 질척거리는 액체가 엉덩이골을 적셨다. 애초에 무얼 느끼는 용도로는 생각도 안 해 본 구멍에 재차 손가락이 닿았다. 새끼손가락인 걸 알아서 그런지, 전보다는 좀 더 작게 느껴지는 이물감이었다. 나는 숨을 후우후우 내쉬며 힘을 풀어보려 노력했다.
그러자 흥분한 듯 권태오가 헐떡이는 목소리를 냈다.
“존나… 빠끔거려.”
“…….”
나는 베개 깊숙이 얼굴을 푹 파묻었다. 차라리 이대로 숨이 막혀 죽는 편이, 덜 창피스러울 것 같았다.
수치심으로 머릿속이 펑펑 터지는 와중에도 이물감은 느릿느릿 내 몸 아래, 구멍 안으로 밀려 들어왔다. 젤을 거의 짜 넣다시피 한 탓에 손가락이 쉬엄쉬엄 밀어 넣어질 때마다 액체가 밖으로 새는 것이 느껴졌다.
“흐으….”
입술을 꾹 깨물고서 나는 절망감을 느꼈다. 새끼손가락 하나만으로도 꽉 차는 느낌이 들어, 내 속에는 무얼 집어넣을 자리가 없다고 확신했기 때문이었다. 배 속이라는 게 내 생각보다… 훨씬 딱딱하고 좁은 듯했다.
“태오야, 잠깐. 잠깐만….”
“또 왜?”
“젤, 그거, 좀 더 발라 봐….”
“또 아파?”
고개를 끄덕거리자, 권태오가 튜브를 집어 들더니 아예 내 뒷구멍에 입구를 대고 짜기 시작했다. 차가운 액체가 ‘퓩’ 바람 새는 소리를 내며 밀려드는 느낌에, 부끄러워서 눈시울이 타 버릴 것 같았다.
“하아….”
고개를 돌리면 욕망에 들뜬 듯 볼을 붉힌 권태오의 얼굴이, 평소보다 더 크게 부푼 것 같은 어깨와 가슴이, 그리고 사타구니가 보였다. 허벅다리까지 뻗어 있어 설마 저게 성기일까 생각했던 그 물건은, 제 정체를 의심하지 말라는 듯 더욱 팽팽하게 발기하여 윤곽이 또렷해진 상태였다.
나는 차라리 소리 내어 울고 싶어졌다.
“그걸 어떻게 넣지…?”
울먹거리며 내려다보자, 권태오가 목을 벌겋게 붉혔다. 큰 손으로 제 허벅다리에 바짝 붙은 성기를 쓸듯이 만지면서,
“왜…. 뭐가 어때서.”
괜스레 불퉁한 목소리를 냈다. 쭈뼛거리는 걸 보니 저도 제 것이 지나치게 크다는 걸 아는 듯했다.
숨을 크게 들이쉬며, 나는 엎드렸던 자세를 고쳤다. 슬그머니 바로 앉자 허벅지를 타고 흐르는 액체가 느껴졌지만 애써 무시했다.
“태오야, 있잖아. 우리 잠시 논리적으로 생각하는 시간을 좀 가져 보자.”
침대 한편으로 구겨진 이불을 끌어당겨 몸을 덮으면서, 내가 말했다.
“우린 지금 바늘구멍에 바게트를 넣으려고 하고 있어. 무슨 뜻이냐면… 그만큼 무리한 일이라는 거지….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 작은 주머니에 큰 빵을 넣는 거보단, 큰 배낭에 작…은, 아니, 상대적으로 덜 큰 걸 넣는 게 맞지 않을까?”
“아니지.”
비유를 들어가며 열심히 설명한 것치고 권태오의 대답은 차갑고도 짧았다. 단호한 대꾸에 나는 울컥했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어차피 섹스가 목적인 거잖아. 포지션만 바꾸자는 건데… 왜 안 돼?”
“내 목적은 섹스가 아냐.”
퉁명스럽게 튀어나온 말에 어리둥절해졌다. 눈을 끔벅거리며 바라보자, 권태오가 매트리스 위에 두 무릎을 꿇더니 내 코앞까지 단숨에 기어왔다. 흥분으로 충혈된 눈동자가 시커멓게 짙었다.
“난 너한테 존나 박고 흔들고 싶어. 네 안에 내 좆을 쑤셔 넣고, 널 따먹고 내 아다도 따이고 싶다고.”
“그….”
나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을 식히지도, 애써 덤덤한 척 연기하지도 못했다. 점잖게 설득하려던 내 노력이 와르르 무너지고, 권태오가 던진 직구가 몸을 뚫고 들어오는 게 느껴졌다.
“이우신 너는, 나한테 박고 싶단 생각 해 본 적 있긴 하냐?”
권태오가 물었다.
“뭐? 아, 아니…! 없어. 절대 없어! 안 했어, 그런 생각….”
나는 깜짝 놀라 고개를 내저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권태오에게, 내가… 그런 것은 상상조차 해 본 적 없었다. 애초에 누구든지 간에 사람을 보면서 그런, 부도덕한 상상을 떠올린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고 또 수치스러운 일이었다.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을 푹 숙이려는데, 권태오의 오른손이 내 볼을 콱 움켜쥐었다.
“그럼 나한테 박히고 싶었던 적은?”
질척한 액체가 뺨에 묻었다. 저를 똑바로 보라는 듯 내 얼굴을 잡아당기는 손길에, 나는 궁지에 내몰렸다.
“그런 적도 없…어, 절대로. 없어…. 진짜야…. 나는 단지…, 난…, 너랑….”
내 뺨의 온도 때문에 권태오의 손이 뜨거워져 갔다. 우물쭈물하며 나는 두 눈을 내리깔았다.
“너랑 처음으로 하고 싶은 거뿐이야….”
말끝에 작은 한숨이 새어 나갔다. 내가 뱉은 숨을, 권태오가 꿀꺽 삼켰다. 두툼한 입술이 크게 벌어지더니 내 입술을 통째로 삼킬 것처럼 덮친 것이었다.
“읍….”
헐떡거리며 나는 발가락에 힘을 줬다. 입술이 절로 벌어지고, 온몸으로 더운 열기가 뱀이 기듯이 번져나갔다. 축축하고 뜨겁고 말랑한 혀가 마구 입 안을 침범했다. 입천장을 훑는 감촉에 소름이 올라, 팔뚝 털이 다 서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아랫배가 뭉근해졌다. 흥분과 애정으로 뒤엉킨 타액이, 뜨겁고 달았다.
‘학’ 소리 내어 거친 숨을 내뱉는데, 그새 익숙해진 이물감이 내 뒤를 쑤시며 파고들었다. 내 엉덩이를 받치기라도 하는 양 손바닥으로 움켜쥐고 만지작거리면서, 권태오가 제 손가락을 꾸역꾸역 밀어 넣고 있었다. 그런데 그 감촉이 전과 달리 아프지가 않았다. 오히려… 흥분됐다.
헐떡거리며 나는 권태오의 티셔츠를 잡아끌었다. 멱살을 쥐다시피 하며 내게로 가까이 당기고, 숨이 막히도록 키스를 퍼부었다. 뜨거운 입 안으로 내 혀를 밀어 넣고, 권태오의 혀를 쫓아 빨고 또 빨았다.
“하아, 으, 읏….”
굵은 손가락이 꾸역꾸역 뒤를 밀고 들어오더니, 빠져나갔다가 깊이 쑤시길 반복하기 시작했다. 나는 진통제를 삼키는 사람처럼 권태오의 아랫입술에 매달렸다. 입술을 모아 빨고, 이를 세워 살짝 깨물어 댔다.
“하아….”
문득 권태오가 입을 딱 다물었다. 끓는 듯 뜨거운 눈동자에 담긴 내 얼굴이, 새빨갛고 동그랬다. 뒤를 쑤시던 손가락이 빠져나가는가 싶더니, 개수를 늘려 밀려들기 시작했다. 폭풍 치듯 정신없이 닥쳐오는 자극에 움찔움찔 온몸의 근육이 수축했다.
“하아…, 하아….”
흉통 안에서 심장이 쾅쾅 문을 두들겨 댔다. 더는 키스에 집중할 수가 없게 됐다. 헐떡거리며 숨을 몰아쉬는 게 고작이었다. 티셔츠를 찢어 버릴 것처럼 움켜쥔 채 헉헉거리는 나를, 권태오의 시커먼 눈동자가 위아래로 훑어 내렸다.
“너 지금 존나 분홍색이야.”
권태오가 말했고,
“…너는, 너는 새빨개….”
나는 그 말을 따라 하듯 중얼거렸다.
“하아, 씨발….”
그랬더니 대뜸, 묵직한 고개가 내 가슴에 부딪쳤다. 와락 달려드는 몸짓의 무게와 힘을 버티지 못해, 나는 풀썩 시트 위로 나자빠졌다. 더운 숨을 헐떡거리며 권태오가 제, 늘어나고 구겨진 티셔츠를 걷어 올렸다. 그의 몸을 제대로 감상하기도 전에 나는 가슴을 깨무는 입질에 신음했다.
“읏….”
권태오가 내 젖꼭지를 빨고, 깨물어댔다.
“아! 읏, 하지 마….”
잔뜩 예민해진 몸에 쏟아지는 감각은 조금 전과는 완전히 달랐다. 아프고 수치스럽기만 하던 자극이 이제는 흥분을 낳았다. 성기로 딱딱하게 열이 몰렸고, 손가락을 받아들이는 뒷구멍이 움찔거리며 절로 수축했다. 싫다고, 빼달라고 밀어내던 근육이 우물거리며 이물감을 당기는 느낌에 나는 소스라쳤다.
“하아….”
쭙 소리가 나도록 권태오가 내 가슴을 세게 빨았다. 나는 팔다리를 버둥거리며 신음성을 냈다.
“으응, 읏… 하지 마, 아! 그만….”
내가 반항할수록 권태오는 더 흥분하는 것 같았다. 찌걱거리는 소리가 나도록 손가락으로 내 뒤를 쑤시며 더욱 세게 가슴을 빨기 시작했다. 내 입에선 한 번도 내 본 적 없는 높은 신음이 튀어 나갔다.
“아윽…, 흐으…, 태오야, 태오…야.”
내 몸은 당혹스러울 정도로 쉽게 권태오에게 점령당했다. 다리는 넓게 벌어진 채 권태오의 양 허리에 걸렸고, 등허리 밑을 받치듯 파고든 그의 무릎으로 인해 엉덩이가 반쯤 들려 있었다. 고개를 숙이자 내려다보이는 내 허벅다리가, 권태오의 근육 덩어리 허리 옆에 두자니 너무 하얗고 가늘어 보였다.
부끄럽고 창피한 마음에 나는 아랫입술을 짓씹었다.
“아…, 너무 예뻐.”
권태오가 고개를 깊이 숙여 내 목덜미에 입을 맞췄다.
“엄청 부드러워…. 하아, 너무 기분 좋아….”
간지러운 기분을 견디지 못하고 나는 발가락으로 시트를 긁어 댔다. 잠깐 멈추었나 싶던 손가락이 재차 구멍 안을 쑤시기 시작했다.
“읏, 하아…! 으, 응…!”
젖은 숨을 정돈할 새 따윈 없었다. 손바닥이 질척거리며 엉덩이 살에 부딪치듯 닿고, 속을 쑤신 손가락이 빠르게 들락날락 움직였다. 마치 그의 손과 섹스하는 기분이었다.
할딱거리며 시트를 움켜쥐고, 구기고, 긁어 대며 버티는데, 권태오가 깊숙이 제 검지와 중지를 쑤셔 넣더니 손을 멈췄다. 헉헉대는 흥분한 숨소리가 귓가를 울리기도 잠시, 꾸역꾸역 이물감이 속을 휘젓는 감각에 이가 악물렸다.
“아아!”
갑자기 큰소리가 내 잇새로 튀어 나갔다. 콱 밀려든 자극에 허리가 붕 떴다. 붉어진 성기 끝에서 맑은 액체가 후드득 튀어나왔다.
“학…, 학, 하아….”
거칠어진 숨을 할딱거리며 나는 권태오를 올려다보았다. 방금 뭘 한 거냐고 물으려는데, 그의 표정은 나보다 더 놀란 듯 보였다. 손을 멈추고 나와 시선을 맞추기도 잠시, 권태오가 내 왼쪽 허벅지를 콱 움켜쥐었다.
재차 손가락이 뒤를 쑤시기 시작했다.
“학, 아…악, 태오야…!”
좀 전과 같은 찌릿한 자극이 폭풍처럼 밀려들었다. 나는 단숨에 땀에 젖었다. 두 발이 절로 이리저리 휘젓듯이 움직였고, 허리에 자꾸만 힘이 들어갔다. 성기가, 바짝 선 채 앞뒤로 흔들거렸다.
“아, 아, 이…, …이상…, 하지 마, 하지 마….”
“‘이상하지 마’?”
“이상하니까 하지 마아….”
울컥울컥 밀려드는 자극에 호기심이 들고 좋던 것도 아주 잠시였다. 벗어나려고 두 발을 버둥거리는데도 꿈쩍 않고, 오히려 거센 자극이 치밀자 숨이 턱턱 막혔다. 나는 고통스러운 사람처럼 고개를 거세게 내저었다. 울컥 눈물이 날 것 같았다.
“헉, 흑…! 그만, 그, 만, 제발, 이상해…, 흑, 하아….”
“하나도 안 이상해. 씨발…, 이우신, 그거 알아? 너 진짜 야해….”
경련하듯 덜덜 떨리는 내 허벅다리를 아플 만큼 세게 움켜쥐더니, 권태오가 약지까지 뭉쳐 손가락 세 개를 내 뒤에 쑤셔 넣었다. 벌어진 구멍이 당기는 느낌에, 나는 입술을 깨물며 소리를 삼키려 애썼다. 팔딱거리며 느끼던 부분을 찾으려는 것처럼 권태오가 손끝을 이리저리 구부려 댔다.
“다시 해 봐, 우신아. 좀 전에…, 그거처럼…. 다시 해 봐.”
“으…, 읍…. 으으읏….”
고개를 좌우로 내젓는데, 삐질삐질 땀과 눈물이 흘렀다. 반응하지 않고 버티려 해도 내 몸이 제멋대로 움찔거렸다. 구부러진 손끝이 몸 안을 꽉 짓누르자, 허리가 들리고 온몸이 파르르 경련했다. 숨이 막히는 느낌에 나는 고개를 고꾸라뜨리며 ‘악’… 들릴 듯 말 듯 작은 비명을 흘렸다.
“이거야? 이러는 게 좋아? 응?”
“학, 흐…, 윽….”
“더 세게 할까?”
“으응…!”
수치심에 물든 채 나는 고개를 연방 도리질했다. 뜨거운 눈물이 관자놀이를 타고 주르륵 흘러내렸다. 창피해서 제대로 말도 할 수가 없는데, 빌어먹을 성기에서는 자꾸만 말간 물이 찔끔찔끔 흘러나왔다. 축축한 물방울을 뚝뚝 흘리며 덜렁거리는 살덩이를 내놓고 있자니, 차라리 정액을 싸는 게 덜 창피하지 싶었다.
문득 ‘후우’… 한숨이 들리더니, 뒤를 꽉 조이던 이물감이 사라졌다. 자유로운 한편 허전한 느낌에 젖은 눈을 깜빡이는데, 좀 전과 비교할 수 없게 묵직하고 뜨거운 것이 엉덩이에 와 닿았다. 깜짝 놀라 나는 손으로 눈을 벅벅 문질렀다.
맑아진 시야로 살펴보니 제 바지를 허벅지까지 끌어 내린 권태오가 보였다. 그제야 나는, 권태오의 발기한 성기가 어떻게 세워지지 않고 윤곽만 드러냈는지 이해했다. 몸에 바짝 달라붙은 드로즈가 반바지 형태여서, 굵은 성기가 왼쪽 허벅지에 뉘어진 채 꽉 눌린 거였다. 성기 끝이 위치한 허벅지 중앙에만 젖은 물 자국이 남아 있었다.
“…….”
권태오는 더운 숨을 길게 내쉬더니, 브랜드명이 영어로 쓰인 드로즈 허리 밴드를 아래로 끌어 내렸다. 그러자 까만 음모가 잠깐 시선을 사로잡았다가, 튕겨 나오듯 벌떡 선 성기가 나를 충격에 빠뜨렸다.
컸다.
“아, 어….”
짐작했던 것보다 큰 줄은 알았지만, 재차 각오했던 것보다도 더, 훨씬 더 컸다. 팽팽하게 발기한 성기를 보자마자 내 몸은 덜 자랐다고 생각될 정도였다. 빛깔은 검붉은 데다 체액으로 젖어 번들거리는데, 모양새가 지나치게 거칠어서 무서웠다. 귀두 옆면은 버섯 머리처럼 불룩하고, 기둥 중앙에는 힘줄인지 뼈대인지 분간도 되질 않는 선이 잎맥처럼 튀어나와 있었다.
화난 것처럼 빨개진 성기 끝에서 프리컴이 뚝, 떨어져 정확히 내 배꼽을 적셨다.
“아….”
솔직히 말해 나는 겁에 질렸다. 입이 바싹 마르고 온몸이 쪼그라들었다. 저렇게 큰 걸 몸에 넣었다가는 무사하기 힘들 것 같았다.
내 기분을 아는지 모르는지, 권태오가 제 성기 기둥을 잡더니 끝을 내 엉덩이골에 가져다 댔다. 구멍에 대고 꾹 누르는 감촉이, 성기 끝이 아니라 주먹을 턱 하고 대는 듯했다. 다리에 힘이 풀리고 목덜미로 식은땀이 흘렀다.
“태오야, 태오야! 잠시만! 아, 안 들어가…, 안 돼….”
구불구불한 핏줄이 오돌토돌하게 선 것이 괴물처럼 느껴졌다. 두려운 마음에 나는 애원하듯 말했다.
“너무 크잖아, 아, 안 돼…, 이건 아니야…. 안 들어갈 거 같아. 아니, 절대 안 들어가.”
“살짝 눌러만 볼게.”
돌아오는 목소리를 듣자마자 나는 마음 안의 무얼 내려놔야 했다. 쇳소리가 반쯤 섞인 낮은 음성에서 짐승 같은 흥분이 느껴졌다. 그는 애원하는 내 얼굴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아파 보일 정도로 거세게 발기한 제 것을 쓰다듬으며, 내 허벅지 한 짝을 쥐더니 엉덩이 밑이 드러나도록 잡아 올렸다.
이내 굵은 것이 꾸역꾸역 뒤를 쑤시기 시작했다.
“아, 악….”
억지로 힘을 주어 구멍을 좁히려 해도 잘 되질 않았다. 아래를 꽉 채우며 밀치고 들어오는 커다란 이물감에 눈앞에서 불똥이 튀었다. 머릿속이 허옇게 번지고 발가락이 절로 굽었다.
“윽…, 힘 좀 빼.”
구멍 안에 성기 끄트머리를 콱 쑤셔 박고는, 권태오가 내 엉덩이 두 짝을 움켜쥐고 좌우로 벌렸다. 호빵 찢듯이 잡아 쥐는 바람에 볼기가 아렸다. 젖은 숨을 삼키며 나는 컥컥 작게 기침했다.
“콜록, 컥… 아윽, 흑….”
손가락처럼 이것도, 참다 보면 좋아질까 생각하며 노력했지만, 힘을 뺄수록 거센 이물감이 턱턱 치듯 밀려들어 고통이 커지기만 했다. 관자놀이를 따라 눈물이, 입매로는 침이 흘렀다.
“우신아. 씨…발, 너무 조이니까 제발 힘 좀 빼….”
“흐윽, 태오야…, 아, 아파, 아아… 안 들어가, 빼, 빼 줘….”
시트를 긁어쥐던 주먹을 풀고, 나는 두 팔을 길게 뻗었다. 내게로 기울어 오는 권태오의 상체를 가로막기 위해서였다. ‘허억’, ‘억’ 하는 둔한 신음성을 내뱉을 때마다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태, 오야, 태오야, 그만….”
체면이고 자존심이고 다 버려 놓고 나는 애원했다. ‘제발’, 하고는 흑흑 울었고 ‘태오야’ 부르면서 윽윽 신음했다.
거칠어진 숨을 몰아쉴 때마다 뒤의 근육이 움찔거리며 권태오의 성기를 조이고 있었다. 나는 그게 너무 부끄러웠다. 한 번도 성기라고 생각해 본 적 없는 내 뒷구멍이, 지나치게 색정적인 부위로 느껴져서 무서웠다.
“미안해….”
부글부글, 거품이 솟구칠 것처럼 뜨거운 목소리로 권태오가 말했다.
“그건 못 하겠어.”
닥쳐온 말을 이해하기도 전에, 거센 이물감이 뒤를 꽉꽉 밀고 들어왔다. ‘악’ 비명이 절로 터져 나왔다. 상체를 구부러뜨리면서 나는 새된 소리를 내질렀다.
“태오야…!”
눈물이 울컥울컥 새어 나갔고 양다리가 추운 사람처럼 마구 옹송그려졌다. 거친 숨소리가 ‘헉’ 울리더니 권태오가 허리를 앞으로 세게 밀쳤다. 나는 머리통이 흔들리도록 크게 덜컹거리며 소리 질렀다.
“아, 아윽…! 태오야, 태오야…아!”
“하아, 씨발…. 씨발….”
험한 욕설을 내뱉으며 권태오가 동작을 멈췄다. 내 엉덩이를 움켜쥐고 잡아 벌린 손안에 땀이 차기 시작했다. 남의 것처럼 낯선 신음을 흘리며 나는 뒷머리를 시트에 풀썩 눕혔다. 벌어진 다리가 허공에서 덜덜 떨렸다.
“하아, 학…, 하아….”
시선을 내려 아래쪽 상황을 살피려는데, 기죽은 것처럼 옆으로 늘어진 내 성기와 엉덩이 밑으로 권태오의 성기 기둥이 보였다. 체감상으론 전부 들어온 줄 알았는데, 귀두만 보이지 않을 뿐 기둥면이 눈에 보이도록 남은 상태였다.
나는 아연실색했다. 더운 땀이 빗물처럼 몸을 적셨다.
“그, 만해…, 더 넣지 마, 더 넣지 마….”
“하아, 흐…. 너무 좁아서… 이제 안 들어가.”
“으, 응. 이제 넣지 마…. 하지 마, 응? 제발. 제발….”
눈썹을 구기며 권태오가 눈을 지르감았다. 주름이 생기도록 눈을 꽉 감더니, 더운 숨을 훅 뱉으며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땀방울이 뚝, 내 접힌 배 위로 떨어졌다. 안도감에 몸의 긴장을 풀기도 잠시, 권태오의 두 손이 내 허리 밑으로 옮겨 왔다. 위에서 아래로 쓰다듬으며 등허리를 받치는가 싶더니, 이내 내 상체를 거의 들다시피 하며 들썩들썩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 어, 어…!”
몸이 멋대로 덜렁덜렁 흔들리고, 밑을 쑤신 성기가 잘게 빠져나갔다가 재차 밀려들기 시작했다.
“하아…. 기분 좋아…, 음, 존나 뜨거워….”
“태, 태오야, 흣, 태오야아…!”
학학 밭은 숨을 내쉬면서 나는 권태오의 어깨를 움켜쥐었다. 찌걱찌걱 소리를 내며 엉덩이골 사이로 질척한 액체가 넘쳐흘렀다. 끈적한 젤에 권태오의 성기에서 뿜어져 나온 프리컴이 섞인 것 같았다. 아픔에 익숙해지고 나니 뜨끈한 성감이 온몸을 채웠다.
“아, 흐, 으응….”
덜렁덜렁 흔들거리며 나는 애써 듣기 좋은 신음을 흘리려 노력했다. 조금, 아주 조금만 더 노력하면 훨씬 나아질 것 같은데, 도통 어떻게 반응해야 좋을지 몰라서였다. 포르노에서는 이렇게 했던 거 같은데…. 본 걸 따라 하듯 신음성을 내는데, 대뜸 목덜미가 거센 손에 덥석 잡혔다.
“아….”
어린아이를 받쳐 올리듯 내 허리와 목 뒤를 부여잡고, 권태오가 내 두 눈을 마주 봤다. 나는 눈을 두어 번 깜빡거리며 시야를 흐리게 만드는 눈물을 떨구어 냈다.
“너, 지금 연기해?”
“어…어?”
“…별론 거 같은데, 아냐? 좆보다 손이 더 기분 좋아?”
대뜸 던져 온 질문에 나는 할 말을 잊어버렸다. 그러고는 아차 싶었다. 대답이 늦어진 순간 권태오의 눈 안에서 불꽃이 터지는 것 같았다.
뒤를 쑤시던 어색한 감각이 사라지더니, 반쯤 들린 채 떠 있던 몸이 풀썩 매트리스 위에 떨어졌다. ‘어’ 하고 둔한 소리를 낼 뿐 나는 상황을 파악하질 못했다. 철퍼덕 엎드린 채 엉거주춤 돌아보려는데, 옆구리가 콱 잡히더니 상체가 번쩍 들렸다.
그대로 권태오가 나를 뒤에서 끌어안았다. 묵직한 두 팔에 완전히 사로잡힌 채 나는 숨을 골랐다. 짧은 머리칼과 귀의 감촉이 내 뺨에 닿는가 싶더니, 빠져나갔던 성기가 재차 뒤를 쑤시고 들어왔다.
“아, 아….”
전과 달리 급하게, 빨리 밀려 들어오는 커다란 감각에 나는 어리둥절했다. 얌전히 버티기도 잠시, 무언가 잘못됐단 생각이 들었을 땐 이상한 포만감과 낯선 통증이 밀어닥쳤다. 두어 번 허리를 쳐올린 끝에 권태오가 제 것을 내 안에 완전히 쑤셔 넣었다. 철썩 살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내 엉덩이가 그의 샅에 주저앉다시피 무너지는 순간에는, 배 속을 주먹으로 맞은 것 같았다.
“하아, 헉….”
“아…!”
온몸에 힘이 풀리고 다리고 상체고 할 것 없이 맥이 풀렸다. 찌르르한 성감을 느끼기도 전에 성기 끝에서 정액 방울이 울컥 새어 나갔다.
“으, 흑, 아아…!”
굵은 두 팔에 와락 안긴 채 사정하면서, 나는 경악으로 물들었다. 훤히 내려다보이는 내 아랫배가 볼록하게 튀어나와 있었다. 몰아치는 성감을 만끽할 새도 없이, 아연한 기분에 등줄기가 쭈뼛 섰다.
‘이…거, 태오 거 때문에… 튀어나온 거야?’
눈앞의 상황을 믿기 어려워 나는 일단 부정했다.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며 식은땀을 뻘뻘 흘리는데, 재차 권태오가 ‘하아’ 숨소리를 내며 내 등허리에 제 배를 바짝 붙여 왔다. 끈적하게 살이 닿는 감각과 함께 튀어나온 배의 윤곽이 보다 선명해졌다.
“악….”
난생처음 겪어 보는 충격에 온몸이 벌벌 떨렸다.
“태…, 태오야, 악, 빼, 빼 줘…, 빼 줘!”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 것만 같았다. 겁에 질려 허둥지둥 애원하면서, 나는 허리를 옭아맨 그의 팔을 때어내려 두 손으로 버둥거렸다. 그러자 권태오가 더욱 힘주어 내 상체를 제 몸 가까이 바짝 붙였다.
“하아, 윽…, 소리 지르니…까 더 조여.”
“아, 흐윽…, 빼 줘, 흑, 윽…! 빼 줘….”
눈물이 그렁그렁 고인 채 나는 손을 달달 떨었다. 권태오의 팔뚝에 짧은 손톱 끝을 박아 넣고, 긁다시피 하며 말했다.
“나, 배가…, 배가 이상하단 말이야….”
그제야 권태오가 안은 자세를 조금 고치더니, 제 한 손을 움직여 내 아랫배를 어루만졌다. 불룩 튀어나온 배꼽 부분을 가늠하듯 어루만지더니, 제 허리를 뒤로 슬그머니 뺐다가, 재차 바짝 쳐 붙였다.
“…아, 앗!”
소리를 바락 지르며 내 고개가 앞으로 고꾸라졌다. ‘히이’, ‘히이이’… 괴상한 숨소리가 목구멍에서 새어 나왔다. 내 반응에 저도 놀란 듯, 권태오가 짧은 숨소리를 냈다. 그러고는 한 번, 두 번, 찌걱찌걱 소리가 나도록 같은 동작을 반복했다.
“힉, 흐으, 흐으으….”
숨조차 바로 쉬질 못하고 나는 입을 벌린 채 꺽꺽 울었다. 권태오의 손바닥 아래서, 내 아랫배가 불룩 나왔다가 밋밋하게 들어가며 움직거렸다.
“…괜찮아.”
뜨거운 콧김을 내 어깨에 묻히며, 권태오가 낮게 속삭였다.
“이 정도로는 배 안 뚫려.”
그 음성이 걱정보다는 흥분으로 가득 차 있어, 나는 몹시 억울하고 또 분했다. 주먹을 움켜쥐고는 그의 팔을 때리고, 손을 뒤로 뻗어 딱딱한 권태오의 허리며 골반을 뒤로 밀치려 애썼다. 그래 봐야 나만 숨이 막힐 뿐이었다.
무기력한 기분에 나는 고개를 푹 떨구며 울었다.
“으, 흐윽…, 이상해, 흑, 무서워….”
“으음….”
곤혹스럽게 침음하며, 권태오가 나를 고쳐 안았다. 앞으로 푹 고꾸라졌던 몸이 그의 커다란 품 안으로 쑤욱 들어갔다. 나는 그 포옹을 즐길 수가 없었다. 끅끅 목 긁히는 소리를 내며, 온 신경을 아랫배에 쏟을 뿐이었다.
무얼 생각하는 듯 머뭇거리기도 잠시, 권태오가 낮게 신음했다. 연신 움찔거리며 제 성기를 조이는 내 근육에, 자극받아 성감이 북받치는 기색이었다.
“제발.”
불안한 마음에 나는 얼른 소리쳤다.
“제발 움직이지 마, 태오야. 제발…, 흑, 제발, 제발….”
그러자 권태오의 두 팔이 은근히 뻣뻣해졌다. 핏줄과 근육이 울퉁불퉁해진 팔로 나를 세게 껴안으며, 그가 말했다.
“안 움직이고 어떻게 섹스를 해?”
“흑, 넣었으니까… 됐잖아, 흑… 이제 그, 그만하자….”
“하아…, 음….”
망설이는 듯 신음하며, 권태오가 내 목덜미에 제 얼굴을 깊이 묻었다. 뒤로 안긴 탓에 그 표정을 확인할 수 없어 나는 무진 불안했다. 심장이 벌렁벌렁 뛰다 못해 터질 것 같고, 속에서 연신 몰아치는 압박감 때문에 당장이라도 기절할 것만 같았다. 더운 땀이 허리를 타고 주르륵 흘러내렸다.
“아.”
문득 좋은 생각이 났다는 듯, 권태오가 말했다.
“너 배 안 튀어나오게 내가… 눌러서 잡고 있어 줄게. 그럼 되지?”
그러고는 무어라, 대답할 새도 없이 큼직한 손바닥이 내 아랫배를 콱 짓눌렀다. 입을 벌린 채 나는 ‘컥’ 작은 기침 소리를 냈다. 허리가 비틀리고 머릿속이 허옇게 질렸다. 눈앞이 하얗게, 또 빨갛게 점멸했다.
“아…!”
감전된 사람처럼 몸을 홱 젖히며 나는 울음소리를 크게 내질렀다.
“아, 아아…!”
성기 밖으로 묽은 액체가 후둑 튀어나왔다. 더는 쥐어짜 낼 것도 없어져, 맑은 색이 된 정액이었다. 한 방울 두 방울 볼품없이 뚝뚝 흘리면서, 나는 꺽꺽거리며 울었다. 연신 배를 짓누르는 권태오의 손을 떼어 내려, 그를 밀쳐 내고 마구 때렸다.
“아, 흑! 흐으윽, 놔, 놔아…!”
“…….”
“아, 아흑…!”
반항할수록 배를 누르는 압력이 더욱 강해졌다. 목이 졸리는 듯한 신음을 가늘게 흘리며 나는 무너졌다.
이상했다. 섹스라는 건 성기를 넣었다가 빼내는 운동인 줄 알았는데…, 이상했다. 이상하고 무서워서 너무 서러웠다. 아무런 말없이 연신 세게 내 배를 누르는 권태오가 나를 무섭고, 서럽고, 이상하게 만들었다.
“아…응, 아… 태오야, 태오, 야…. 앗, 흐으윽….”
자꾸만 눈앞이 흐려졌다. 눈물을 너무 흘려 눈매가 짓무를 거 같았고, 콱 조이는 배 속이 터질 것만 같았다. 성기가 아니라 꼬챙이에 꿰인 것 같은 통증과 열감을 느끼며 나는 부르르 몸을 떨었다.
“하아, …흑, 으, 읏… 흐윽….”
“헉, …헉.”
권태오가 한 차례, 허리를 거칠게 쳐올렸다. 내 몸이 들썩 움직였다. 그 순간 몸이 조각나는 것도 같았고, 커다란 차에 치인 것도 같았다.
“…아, 아!”
소리를 지르며 나는 한 번 더 사정했다. 물에 가까운 정액이 배와 시트에 마구잡이로 튀었다. 근육이 꿀렁거리며 멋대로 수축하기 시작했다. 생리적인 쾌감에 가슴팍이 시뻘겋게 달아오르고, 흥분한 말처럼 온몸이 푸르르 경련했다.
입술 새로 밀려든 눈물에서 짠맛이 났다.
“허억…, 헉….”
거친 숨소리를 뱉어 내길 한참, 권태오가 낮게 신음했다.
“크, 윽…, 아, 씨…발.”
돌처럼 딱딱해진 두 팔이 나를 거세게 끌어안았다. 속을 찌르던 단단한 감촉이 문득 풀어지는가 싶더니, 엉덩이 밑으로 뜨거운 액체가 꿀렁거리며 밀려 나오는 게 느껴졌다.
“하아…, 학….”
진빠진 머리를 뒤로 기대며, 나는 젖은 입술을 핥았다.
“태오야…. 너… 쌌어?”
잔뜩 쉰 목소리로 내가 물었고,
“아, 씨….”
권태오가 내 어깨에 얼굴을 푹 파묻었다. 손을 들어 나는 그의 머리칼을 더듬더듬 만졌다. 땀방울이 어찌나 흥건한지, 샤워를 하고 나온 사람처럼 온통 축축했다.
멍하니 눈을 깜빡거리면서, 나는 중얼거렸다.
“나 아무…, 아무것도 안 했는데… 너 싼 거야?”
질문을 마치기가 무섭게,
“야!”
권태오가 억울하다는 듯 소리를 쳤다.
“아무것도 안 하긴 뭘 안 해. 네가… 막, 되게 야하게…. 존나 조이는데…, 하아, 그걸 어떻게 참아.”
거친 말투와 달리 내 몸을 끌어안는 팔은 다정하기만 했다. 어찌나 세게, 또 소중하게 끌어안는지 나는 잠시나마 그의 솜인형이 된 것 같았다.
“지금도, 아, 후우…. 미친….”
말끝에 목을 긁는 듯한 쇳소리가 섞여 나왔다. 작게 웃으며 방심하던 것도 잠시, 울룩불룩 도드라진 팔 근육을 보자마자 나는 소스라쳤다.
“아…, 안 돼. 그만해. 으…읏, 한 번 쌌으니까 이제 그만해.”
허둥지둥, 허리에 묶인 팔을 풀어내며 말했다. 그러나 오른팔을 풀어내면 왼발이 옭아매듯 달라붙고, 왼팔을 때어내면 오른팔이 재차 가슴을 움켜쥐며 들러붙어 내 힘으로는 그를 완전히 떨쳐낼 수 없었다.
“어떻게 하는 건지 이제 알겠는데, 그만하긴 뭘 그만해?”
권태오가 투정하듯 내 말을 꼬집어 물었다. 나는 숨을 씩씩거리며 말했다.
“나, 나는 안 돼…, 더 못해. 아파…, 이제 그만할래.”
그렇게 말하는 동안에도, 끈적한 액체로 흥건해진 아래 구멍의 살갗이 쓰라렸다. 권태오의 근육에 얻어맞다시피 한 엉덩이도 뜨거웠다. 배 속을 채운 아릿한 느낌도 낯설기 짝이 없었다. 같은 짓을 한 번 더 했다가는, 그때야말로 기절하거나 죽거나 둘 중 하나라는 확신이 들었다.
“아, 으음…. 그치만 힘들게 겨우 넣었는데… 아깝잖아.”
“아냐, 아냐. 아깝기는 뭐가 아까워…!”
고개를 좌우로 마구 흔들며 나는 권태오의 팔을 철썩철썩 때리며 풀어냈다. 그대로 엉금엉금 앞으로 기어서라도 도망치려는데, 권태오가 내 두 팔뚝을 동시에 덥석 움켜쥐었다. 그러고는 쑥 제 쪽으로 끌어당겼다.
“앗!”
놀라 소리를 지르며 나는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갔다. 개구리처럼 납작 엎드린 채 다리가 벌어졌고, 뒤를 쑤셔대는 성기가 재차 부피를 키워 나갔다.
“윽, 싫어…! 태오야, 제발…, 흑…. 놔줘, 이거 놔아….”
권태오가 이렇게나, 말이 통하지 않는 고집쟁이인 줄을 나는 미처 몰랐다. 이왕이면 그와 연애를 약속하기 전에 알았으면 좋았을 거였다. 아니 하다못해, 한집에 이사하고 같은 침대에서 첫 관계를 맺기 전에 알았더라면 어떻게든 대비책을 세웠을 거였다.
무지했던 죄로 나는 나의 착한 태오, 귀여운 태오에게 호되게 배신당했다. 힘들어서 죽을 것 같다고 소리를 질러도, 권태오는 내 말을 응석이나 투정으로 받아들인 듯 웃음소리를 냈다. 그러고는 펄펄 열이 끓는 몸으로 내 등짝을 완전히 덮었다. 그의 품 아래서 납작해진 채 나는 생리적으로 빠져나오는 눈물만 연신 흘렸다.
“아, 우신아…, 우신아, 아….”
이내 권태오가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밑에 깔린 내 몸을 찢어 놓기라도 할 것처럼, 아래로 내리찍는 동작을 따라 굵고 커다란 성기가 나를 마구잡이로 들쑤셔 놓았다. 나는 테디베어가 된 기분이었다. 권태오의 것이 배 속 깊이 쑤셔 박힐 때마다 버튼을 눌린 듯이 소리가 튀어나왔다. 다만 내게 녹음된 말은 ‘알러뷰’ 따위의 사랑스러운 문장이 아니었다.
“아, 흑, …아, …아앗, 앙…!”
철썩철썩 살 맞는 소리가 뺨 맞는 소리처럼 세게 울렸다. 볼기가 아프고 속이 꽉 차는 느낌에 나는 실신할 것 같은 감각을 느꼈다.
“으응, …하아, 아… 아!”
머리가 덜컹 흔들리고, 아랫배가 불룩 솟으며 시트에 뭉개질 때마다 눈물이며 침이며 가릴 것 없이 질질 흘렀다.
“아, 아…! 흑, 흐으윽…, 그…만, 그만…!”
절박하게 내지르는 내 목소리는 형편없이 작아서,
“허억…, 헉…!”
권태오가 흘린 만족스러운 숨소리에 파묻히고야 말았다.
속을 마구잡이로 들쑤셔진 끝에 컥컥 밭은기침이 나왔다. 부들부들 몸을 떨며 나는 성감을 느꼈지만, 축 늘어진 성기에선 더는 빠져나오는 정액이 없었다. 온몸의 신경이 쭈뼛 서는 감각에 전신을 잔뜩 구부린 채 서럽게 울 뿐이었다.
“흐윽….”
눈물을 뚝뚝 흘리며 나는 바들바들 경련했다. 발기한 것도 아닌데 파도처럼 몰아치는 성감이, 배 속에서부터 찌릿찌릿 밀려들었다. 나도 모르게 왼다리가 꿈틀 움직이더니 헛발질을 한 차례 했다.
“흑, 끅…, 끅….”
“허억, 헉….”
권태오가 헐떡거리며 상체를 일으키더니, 마침내 깊게 박았던 성기를 뒤로 빼냈다. 질펀해진 성기를 문지르면서 그는 나를 내려다봤다. 빤한 눈길을 고스란히 맞으면서 나는 바들바들 허리를 떨었다.
“하아, 음….”
낮게 신음하며, 권태오가 정액으로 뒤덮여 거의 하얀 색이 된 제 성기의 기둥을 쓸었다. 그의 야한 숨소리에 나는 온몸의 근육이 움찔 수축했다.
“흑, 으, 응! 흐읏….”
뒤를 꽉 채웠던 성기가 빠져나간 뒤인데도 자꾸만 찌릿찌릿한 감각에 몸이 떨렸다. 배 밑에서 있는 줄도 몰랐던 장기가 꿈틀꿈틀 더운 기운을 뿜어내며 용솟음치는 것 같았다. 목 끓는 소리를 내며 나는 연신, 작게 발작하듯 다리를 꿈틀거렸다. 손가락이 꽉 말리고 눈물이 삐질삐질 흘러나왔다.
몰아치는 감각에 정신을 못 차리고 시트에 얼굴을 문지르는데, 불쑥 발목이 붙들렸다. 놀랄 새도 없이 주르륵, 이불을 구기며 온몸이 권태오의 배 앞까지 끌려갔다.
“하아, …흐으, 흐윽….”
간헐적으로 꿈틀, 경련하는 내 몸을 권태오의 검은 눈이 관찰했다. 두 차례에 걸쳐 싸지른 정액이 꾸역꾸역, 구멍 밖으로 빠져나가 흘렀고 새빨갛게 달아오른 허벅다리가 달달 떨렸다.
‘설마, 설마….’
멍하니 서로를 쳐다보기도 잠시, 나는 난생처음 권태오를 걷어차야만 했다. 내 다리를 벌리더니 재차 세운 제 성기를 들이밀었기 때문이었다.
“그…만, 안 해!”
소리를 지르며 나는 마구 발버둥을 쳤다. 날 선 감각으로 눈앞이 핑 돌고 아직도 전신이 벌벌 떨리는데, 이런 내게 박겠다고 좆을 들이미는 권태오가 짐승 같고 또 괴물 같았다. 나는 잔뜩 화난 채 말했다.
“작작 좀 해, 미쳤어…?”
강하게 소리를 지르고 싶은 마음을, 잔뜩 쉬어 버린 목소리가 따라 주질 않았다. 오들오들 떨리는 음성이 연약한 숨소리와 함께 빠져나갔다.
권태오가 그런 날 보며 피식 웃었다. 내 온몸을 마구잡이로 다루며 가지고 노는 듯한 그의 태도가 나는 낯설었다. 마구잡이로 휘둘리며 제대로 말조차 못하는 나 자신도 꼭 그만큼 낯설었다.
“이제 안 할 거야…. 그만해.”
다시금 목소리를 내어 말하자, 권태오가 제 머리를 왼쪽으로 갸웃거렸다.
“왜…? 우신아. 너도 엄청 느꼈잖아. 아니야?”
내 다리를 벌려 제 양 허리에 붙이는 손길을, 나는 거부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거부할 힘조차 남아 있질 않았다’.
폭삭 나자빠진 채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차마, ‘아니야’라는 거짓말은 뱉을 수가 없었다. 처음 해 본 섹스는 정말, 좋았다…. 고등학교 때 이걸 알았더라면 시험이고 입시고 간에 모두 집어치우고, 종일 섹스만 하다가 망해 버렸을 거란 생각이 들 정도였다.
“힘들어서… 싫어.”
에둘러 대꾸하자 권태오의 미소가 짙어졌다. 흥분과 애정이 넘쳐흐르는 그 얼굴에, 나는 부끄러워서 두 뺨이 뜨거워졌다. 나를 몹시 이상하게, 또 야하게 다루는 그에게 도저히 적응되질 않았다.
“한 번만 더 해.”
권태오가 말했다. 나는 고개를 마구 내젓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응?”
제 머리를 연신 갸웃거리며 권태오가 말했다. 못되게 굴어 놓고는 귀엽게 애교를 부리는 게 괘씸해서, 나는 더욱 세게 고개를 내저었다.
“우신아아. 한 번만…, 응?”
이내, 엉덩이 사이로 뜨거운 살덩이의 감촉이 느껴졌다. 두 무릎에 흠칫 힘이 들어갔고, 온몸이 절로 수축했다. 뒷구멍도 꽉 다물렸다. 권태오도 그걸 느낀 듯 더욱 짙게 미소 지었다.
“우신아.”
“으, 응?”
“해도 되지? 한 번만…. 넌 그냥 가만히 누워만 있어. 아프게 안 할게.”
기어코 불그스름한 성기 끝이 내 뒤를 쑤시고 들어오기 시작했다. 엉금엉금 뒤로 기어 물러나려 했으나 헛손질만 할 뿐, 나는 제대로 힘을 쓰질 못했다. 권태오가 큰 손으로 내 허리를 잡아 누르자 더더욱, 옴짝달싹도 할 수 없게 됐다.
“으응, 으으응….”
어린아이가 아양 부리듯 소리 내며 나는 거듭 도리질했다. 두 팔을 직선으로 뻗어 권태오의 가슴팍을 뒤로, 뒤로 밀어냈다.
그러자 권태오가 보란 듯 상체를 깊이 숙였다. 팽팽하게 버텨 보려던 내 팔이 휙, 구부러지고 금세 그의 가슴이 내 가슴 위에 닿았다. 호떡처럼 꽉 짓눌려지며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권태오는 너무 강했고 또 무거웠다.
뒤를 밀고 들어오는 성기의 압박감에 눈물이 다시금 삐질 흘렀다. 이대로 한 번 더 했다가는, 전처럼 미칠 거 같은 기분에 다시금 사로잡혔다가는, 정말로 숨이 넘어가서 죽어 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나 자신이 아니게 되는 거 같은, 그 천박하고 자극적인 감각이 나는 무서웠다.
“흐으윽….”
목울대가 빳빳해진 채, 나는 권태오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쌌다. 눈물 때문에 앞이 흐릿했다.
“태오야, 제발…, 흑, 제발….”
우는 얼굴을 정면으로 보여 주며 애원하자, 이제야 내 말이 권태오에게 먹혀드는 것 같았다. 그가 움찔 눈썹을 찡그리더니 마구잡이로 밀고 들어오던 몸을 멈춘 것이었다. 나는 학학 더운 숨을 뱉어내며 훌쩍이며 말했다.
“제발, 응…? 나 너무 힘들어, 흑…. 한 번만 봐줘어…. 나 이…제 못 해. 흑, 흐윽…. 그만할래…, 제발. 나 아프게 할 거 아니지? 나… 아픈 거 너도 싫잖아…, 흑, 응? 태오야. …제발, 태오야….”
“아…. 하아, 이우신….”
시커먼 두 눈동자가 내 몸을 서서히 훑어 내렸다. 소름이 끼쳐 나는 잘게 몸을 떨었다. 애써 불쌍한 척 연기할 필요도 없었다. 눈물이 샘물처럼 자꾸만 흘러나갔다.
“나 너무 힘들어, 흑, 태오야…, 제발 그만해….”
권태오의 손이 느릿느릿 내 가슴팍을 짚었다. 쿵쿵 뛰는 박동을 느끼는가 싶더니, 딱딱해진 젖꼭지를 거쳐 아래로 물 흐르듯 내려갔다. 성기에 손이 닿자, 진이 죄 빠진 줄 알았던 내 허리가 퍼뜩 튀었다.
“…너 섰는데?”
지적하는 말에 놀라 내려다보자, 뱉을 정액도 없는 주제에 내 성기가 반쯤 서 있었다. 나는 허둥지둥 말했다.
“아, 아니야…, 아니야, 이…건 그냥, 육체적인 반응…, 그, 그런 거야.”
“…그래?”
“응, 응! 나…, 나는 엉덩이도 쓰라리고…, 허리도 너무 아파. 네 거 너무 커서 힘들어. 배탈 날 거 같아, 나… 몸살 날 거 같고, 또…. 지금, 지금도… 열나는 거 같아.”
그러자 큼직한 손바닥이 내 이마를 덮었다. 열이 나는지 짚어 보는 손을, 나는 두 손으로 부여잡고 훌쩍거렸다.
“이거 봐, 나 뜨겁지…?”
“너보다 내 손이 더 뜨거운 거 같은데….”
“아냐, 나 열나. 어지러워. 한 번만 봐줘…. 진짜 이제 못 해. 흑…, 응? 나 쉬고 싶어….”
기나긴 설득 끝에, 권태오가 ‘쪽’ 소리 나게 내 볼에 입을 맞췄다. 그러더니 마침내 제 몸을 떼어 냈다. 벌어졌던 뒷구멍 밖으로 성기가 쑥 빠져나갔고, 내 몸은 굵은 성기에 주르륵 딸려 내려가다가 겨우 멈췄다.
풀썩 사지를 뻗으며 나는 안도했다. 오늘따라 이상하고, 못됐어도, 역시 권태오는 권태오였다. 아프다며 부탁하는 내 말을 들어주는 걸 보니 그는 내 권태오가 맞았다.
“하아, 하….”
훌쩍훌쩍 코 먹는 소리를 내며 나는 권태오를 올려다보았다. 더운 숨을 길게 내쉬며 권태오는 제 가슴 근육을 조금 꺼뜨리는가 싶더니, 이내 침대 자리를 벗어났다.
“잠깐만 여기서 기다려.”
그러더니 나신으로 터벅터벅 걸어 침실 밖으로 걸어 나갔다. 나를 그렇게나 시달리게 해 놓고는, 걸어 나가는 동작에서 아직도 힘이 넘쳤다. 근육이 도드라지다 못해 울퉁불퉁하니 너른 등짝을 나는 홀린 듯 구경했다.
몇 분쯤 숨을 고르면서 아픈 엉덩이를 만지작거렸을까, 권태오가 돌아왔다. 손에는 검정색 가죽 지갑이 들린 채였다.
‘…뭐지?’
멍하니 쳐다만 보는 나를 향해, 그는 무릎부터 침대 매트리스에 딛더니 기듯이 다가왔다. 그러더니 내 다리 사이에 다시금 자리를 잡았다. 나는 무방비하게 늘어진 채 그를 올려다봤다.
“자.”
권태오가 말했다. 지갑 안에서,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종이 세 장이 빠져나와 그의 손을 타고 팔랑거렸다.
“쿠폰 쓸게.”
“…뭐?”
권태오가 ‘찌익’ 종이 한 장을 찢더니, 반쪽을 내게 건네주었다. 얼떨떨하니 상황 파악이 덜 된 채 두 손으로 받아 확인하는데, 익숙한 손 글씨로 익숙한 문장이 쓰여 있었다.
‘이우신 이용권.
쿠폰 옆면을 찢어 이우신을 자유 이용 가능.
재사용 불가, 30분 후 효력 말소’
나는 멍하니 입을 빠끔거리다, 이내 아악 소리를 내질렀다.
“아니…, 야! 이건 아니지! 이건, 이건 내가 공부할 때, 너 진짜 심심할 때 쓰라고 만들어 줬던 거잖아!”
“그래서? 진짜 심심할 때 안 쓰고 내가 아껴 뒀잖아.”
“아…, 아니지, 태오야. 네 마음대로 그러는 게 어딨어? 지금은 이거 못 써…! 이건 그런 용도로 만든 게 아니야! 이건…, 이건… 내가 순수한 마음에… 어? 태오 너한테, 정말 고마운 마음에, 좋은 마음에 준 건데… 어떻게 이걸 지금 쓸 수가 있어?”
“여기는 그런 주의사항 안 적혀 있는데?”
길게 펼쳐진 종이가 내 눈앞에 들이밀어졌다. 종이 위로, 장난꾸러기처럼 신난 권태오의 얼굴이 올려다보였다.
“뭐라고 그랬더라? ‘뭐든지 설명서를 잘 읽어 봐야지’. 네가 그랬던 거 같은데.”
“내…가 언제 그렇게 재수 없게 말했다고 그래….”
말문이 막히고 어이가 없어, 나는 입을 벙긋거렸다. 논술도 토론도 심지어는 웅변마저도 누구에게 져 본 적 없는 내 입술이 패배의 쓴맛에 작게 떨렸다.
심장까지 새하얗게 창백해지는 기분에, 나는 숨을 고르며 표정을 고쳤다.
“태오야.”
불쌍한 표정, 불쌍한 표정….
“나 한 번만 봐주면 안 될까…?”
그러고는 권태오의 오른손을 두 손으로 꼭 쥐었다. 커다랗고 뜨거운 손을 내 턱 밑에 끌어다가, 그 위에 고개를 올리고는 두 눈을 최대한 크게 떴다. 입술을 꾹 다물고 시무룩한 얼굴로 올려다보자 권태오의 눈썹이 꿈틀 움직였다.
“제발요…, 제발, 태오야…. 응?”
몇 초간 눈조차 깜빡이지 않고 애원하자,
“하아….”
권태오의 잇새로 버거운 한숨이 새어 나갔다.
“알았어.”
마침내 그 세 글자가 들려온 순간,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이대로 더러워진 몸을 새집의 새 욕조에 담가 씻고, 늦은 저녁을 먹고, 침대에 뻗어 쿨쿨 자고 싶었다. 기쁜 마음을 못 감추고 웃는 내게, 권태오는 영 탐탁지 않다는 듯 말을 덧붙였다.
“그럼 이거 한 장만 쓸게. 벌써 찢어 버렸으니까.”
“…뭐?”
나는 경악으로 물들었다.
‘그…럼 지금 30분짜리 쿠폰 세 장을 모두 찢으려 했단 말이야?’
당황스러워 뭐라 말도 못 하는 내 다리를, 권태오가 잡아 벌렸다. 기세가 조금도 수그러들지 않은 두꺼운 성기가 ‘툭’ 소리 내며 내 사타구니에 놓였다.
“태오야, 제발….”
나는 짓무르기 직전인 눈을 다시금 적시며 속삭였다.
“제발 살살 해 줘….”
권태오가 웃었다.
사랑스러운 미소를 끝으로 잠시간의 휴식 시간이 깨졌다. 굵은 성기가 예민해진 구멍 안으로 밀려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제 나는 아픔을 느끼지 않았다. 다만 온몸에서 열이 펄펄 끓고, 눈앞이 허옇게 번지더니 절로 신음성이 터져 나갔다.
마구 밀어낼 줄만 알던 뒷구멍의 근육이, 이제는 빠끔거리며 권태오의 좆을 빨고 안으로 당기고 있었다. 부끄러워 죽고 싶었지만, 그보다는 마구잡이로 느끼다가 심장 마비가 오는 게 더 빠를 것 같았다.
“아…, 아, 아!”
이번에, 권태오는 내 부탁을 들어주었다. 그는 성급하게 몰아치거나 아프게 나를 움켜쥐지 않고, 다만 느릿느릿 허리를 밀어 올리며 부드럽게 나를 끌어안았다. 커다란 품에 고개를 푹 파묻으며 나는 그에게 매달렸다.
“아, 태오야, …으응, 응! 태오야아…!”
두 팔로 등을 긁으며 안겨 들면서, 나는 몰아치는 감각을 못 이겨 도리질을 쳤다. 어깨에 이마를 꿍 박듯이 파묻자, 권태오가 내 뒷머리를 부드럽게 쥐더니 제 품 안에 기대게끔 받쳐 주었다.
너른 품에 안겨 나는 질식당하는 꿈을 꿨다.
“…아, 아! 아….”
아주 짧은 순간 꺼졌던 정신이, 빛이 번쩍 튀는 느낌과 함께 켜졌다. 온몸이 들썩들썩, 권태오의 움직임을 따라 마구잡이로 흔들리고 있었다.
“아흑, 응…! 태오야, 태오야….”
‘안아 줘’… 내 귀에도 들리지 않을 만큼 작게 속삭이자, 거센 포옹이 재차 나를 옭아맸다. 고통도 성욕도 아닌 감정에 취해 나는 울었다. 뱃속에서 아플 만큼 거센 애정이 몰아치고 있었다.
나를 부술 듯 세게 안는 권태오의 목과 허리를, 나는 팔과 다리로 있는 힘껏 끌어안았다. 내가 권태오를 느끼는 만큼 권태오도 나를 느껴 주었으면 바랐고, 동시에 내 바람이 이뤄졌음을 알았다.
나는 속에 든 말을 모두 토해 내기에 이르렀다.
“사랑해, 태오야…. 아, 으응, 너무 좋아, 좋아해….”
슬프지도 않은데 눈물이 났다. 권태오가 미워 죽겠고, 또 귀여워 죽겠고, 좋아 죽겠어서, 나는 그에게 눈물을 묻혔다.
“나… 놓지 마. 흑, 안아 줘…. 더, 더 세게, 세…게, 응! 세게 안아 줘….”
그러자 나를 사로잡은 두 팔에 터질 것 같은 힘이 실렸다. 나는 이대로 허리가 부러져 죽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흥분한 그의 숨결에서, 꼭 나처럼 축축한 울음 냄새가 났기 때문이었다. 나는 훌쩍훌쩍 울면서, 마찬가지로 훌쩍훌쩍 우는 그의 품 안으로 마구잡이로 파고들었다.
끝내 정액을 줄줄 토하며 몸을 덜덜 떠는 순간이 왔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신음을 터뜨리며 우리는 서로의 품에 파고들었다. 세게 끌어안고, 또 안고, 또 안았다. 두 팔의 근육이 당기고 숨이 꽉 막힐 만큼 강한 포옹이었다.
“좋아…해….”
이내 권태오가 나를 끌어안은 채로 침대에 털썩 몸을 눕혔다. 헐떡거리는 숨결을 함께 정돈하면서 껴안고 있기를 한참, 나는 땀이 마르는 느낌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러자 권태오가 이불을 끌어당기더니 내 몸 위를 덮어 주었다.
물에 젖은 솜인형처럼 축 늘어진 목 밑으로, 팔베개가 들어왔다. 눈물 줄을 가로로 그리며 바라볼 적에 권태오의 얼굴이 아주 가까웠다. 야속하게도, 이런 순간마저 나는 그의 잘생긴 얼굴에 가슴이 떨렸다. 손가락으로 더듬더듬, 짙은 눈썹과 잘빠진 광대뼈, 단단한 턱과 통통한 입술을 천천히 쓰다듬다가, 그 위에 내 입술을 내리눌렀다.
“우신아.”
권태오가 나를 불렀다. 할 말이나 용건이 있어서가 아니라, 제 안에서 북받치는 감정을 견디지 못하고 토해 내듯 부른 이름이었다.
나는 코를 훌쩍이며 권태오의 큰 손에 뺨을 맡겼다. 내 이마를 쓰다듬고, 젖은 머리칼을 쓸어 넘기면서 권태오는 행복해 보였다. 별수 없이 나는 기뻤다. 나를 품에 안고는 행복에 겨운 권태오가 너무나 사랑스러워서, 기쁨이 넘실넘실 입 밖으로 흘러나갔다.
“널 보려고 매일… 산책로를 뛰어 올라갔었어. 운동장을 달리는 널 보려고…. 복도에서 우연히 널 마주친 날에는 종일 기분이 좋았어….”
쉬어버린 목소리로 볼품없이 속삭이는 말에 권태오가 웃었다. 휘어지는 두 눈 가득 뜨끈한 애정이 방울져 고였다.
“…네가 너무 예뻤어, 그때부터…. 그때도 지금도 네가, 너무 예뻐. 태오야.”
가물가물 감기는 눈꺼풀을 억지로 들어 올리면서, 나는 ‘태오야’ 하고 그를 불렀다. 그때마다 ‘응, 우신아’ 하는 듣기 좋은 대답이 들려오는지 확인하려는 사람처럼.
“태오야.”
부르고,
“태오야….”
또 불렀다.
“너를 정말 좋아해….”
속삭임 끝에 까무룩 시야가 어두워졌다. 내 입술에 제 입술을 겹치며 권태오가, 무슨 말을 인공호흡 하듯 밀어 넣은 것도 같았다. 제대로 듣지 못했으면서도 나는 그 말에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
말이 씨가 된다더니 침대에서 주절거린 내 거짓말이 딱 그 꼴이었다. 배탈 날 거 같고, 몸살 날 거 같고, 열도 나는 거 같다고 그랬었나? 문자 그대로 나는 반나절 내내 배앓이와 몸살, 그리고 미열에 시달려야 했다.
더욱이 억울한 것은 섹스의 여파가 오직 내게만 몰아친단 점이었다. 오전부터 잠든 나를 깨우더니, 제 허벅지에 머리를 기대어 올리고 해열제를 먹여 주는 권태오는 멀쩡하다 못해 완벽하게 멋진 상태였다.
“괜찮아, 우신아?”
까무룩 정신이 꺼졌다가 반짝 켜질 때마다 권태오는 여기저기서 분주했다. 뜨끈한 감촉에 눈을 뜨면 물수건으로 내 가랑이를 닦아 내고 있었고, 추워서 눈을 뜨면 더러워진 이불을 걷어 내고는 새 이불을 덮어 주고 있었다. 또, 미미한 통증에 신음하며 눈을 떴을 땐 내 아랫배에 치덕치덕 약을 발라 주고 있었다.
“…아, 깨워서 미안. 멍 빠지는 약인데… 잠깐만 바르고 자자.”
조곤조곤 듣기 좋은 목소리로 말하는 소리에, 시선을 내렸다가 나는 희미하게 푸르스름해진 아랫배를 발견했다. 놀라 자리에서 일어서려다가, 척추뼈가 빠질 것 같은 허리 통증에 풀썩 고꾸라지기도 연속이었다.
“아, 으으….”
끙끙거리며 허리를 더듬더듬 만져 보니, 언제 붙여 둔 건지 파스의 감촉이 시원했다. 원망을 가득 담아 올려다보아도, 권태오는 말로만 ‘미안해’ 그럴 뿐이지 좋아 죽겠다는 듯 얼굴에 미소가 환했다.
결국, 오후가 되도록 나는 권태오의 간호를 받으며 침대에 뻗어 있어야 했다. 옥혜 씨와 전화도 하고 싶고, 집 근처도 돌아다니며 살펴보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목이 쉰 나를 대신해 권태오가 옥혜 씨에게 전화해서 이사를 잘 마쳤다고 보고했고, 나를 대신해서 조심이를 데리고 나가 동네 산책을 다녀왔다.
헥헥거리며 신난 듯 뛰어다니는 조심이 발소리가 ‘타닥타닥’ 복도 저 끝에서 ‘타닥타닥’ 1층으로 내려갔다.
축 늘어진 채 기운 없는 내게, 권태오가 슬금슬금 다가왔다.
“우신아. 계란죽 좀 끓였어. 내려와서 먹어.”
“…못 일어나겠어….”
잔뜩 쉰 목소리로 헉헉거리며 겨우 말하자, 권태오가 이불 안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근육 마사지 해 줄까? 이리 와 봐.”
“손대지 마.”
허리에 와 닿는 그의 손을 철썩 쳐낸 다음, 나는 두 눈에 힘을 주고 권태오를 흘겨보았다. 그러자 권태오가 입꼬리를 아래로 끌어 내리더니, 시무룩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머쓱해 보이는 얼굴에 나는 괜히 손가락이 구부러졌다.
‘태오가 일부러 날 아프게 한 것도 아닌데, 너무 매몰차게 쳐 냈나….’
후회가 속을 채울 때쯤, 권태오가 재차 두 손을 이불 안에 집어넣었다. 그러더니 오른팔로 내 등허리를, 왼팔로 무릎 아래를 받쳐 안았다.
“알았어, 알았어. 그럼 계단까지만 내려줄게.”
“뭐? 뭘 내려준다고…?”
이내 번쩍, 내 몸이 이불에 돌돌 말린 채 위로 들렸다. 깜짝 놀라 두 다리를 버둥거리다가, 이대로 떨어지기라도 했다가는 허리가 부러질 것 같아 반항을 멈췄다. 거칠어진 숨을 씩씩거리며 눈을 굴리자, 권태오가 이거 보라는 양 나를 단단히 고쳐 안았다.
머리를 그의 어깨에 푹 기댄 채, 나는 발 한 번 땅에 딛지 않고 계단을 내려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모습을 드러낸 부엌 식탁 위에는 대접 그릇 한가득 계란죽이 들어 있었다. 김이 모락모락 풍겨 나오는 식탁 자리까지 나를 데려가더니, 권태오는 두 팔을 천천히 내렸다가, 다시 위로 번쩍 들었다.
그러더니 웃으며 말했다.
“우신아, 이거 운동 된다?”
“열받게 하지 말고 내려놔.”
“응….”
이불로 나신을 엉거주춤 가린 채, 나는 숟가락을 집어 들었다. 맛있는 냄새가 폴폴 풍기는 계란죽 위를 휘휘 젓자, 표면에 동동 떠 있던 간장과 참기름이 잘 풀어진 밥알 사이로 스며들었다.
한 술 크게 떠서 먹으려는데,
“후우….”
시원한 입김이 내 앞머리를 간질였다. 눈을 추켜뜨고 쳐다보자, 어느새 맞은편 자리에 앉은 권태오가 고개를 길게 뻗고 있었다.
“방금 만든 거라서 뜨겁거든…. 후우….”
재차, 권태오가 숟갈 위의 죽에 대고 입김을 불었다. 눈을 두 번 끔벅거리다가, 나는 그가 식혀준 계란죽을 입에 넣었다. 빈속에 따듯한 죽이 들어가자 이제야 살 것 같았다.
“우신아. 이러고 있으니까 너랑 나, 신혼부부 같다. 그지?”
그렇게 말해오는 권태오는 어느 때보다 해맑았다.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남자처럼 볼을 붉히며 웃는 커다란 권태오를, 나는 가만히 쳐다보았다. 마음 같아서는 조금 더 화난 척 연기해서, 두 번 다시는 침대에서 고집을 부리지 못하게 만들고 싶었다.
“…….”
입을 꾹 다물고 나는 집 안을 둘러봤다. 벌써 해가 지려는지, 노을빛이 창을 통해 스며들고 있었다. 오후의 볕은 점심의 볕보다 훨씬 길고, 또 은근했다.
소파 테이블에 놓여 있던 샛노란 화분이 어느새 식탁 위에 올려져 있었다. 거실 구석의 작은 책장에는 내가 가져온 시집들이 어느새 일렬로 선 채였다. 정원에는 조심이가 가지고 놀다 버려 놓은 테니스공이 굴러다녔고, 내 발등에는 조심이의 촉촉한 코끝 감촉이 차가웠다. 그리고 고개를 들면, 보조개를 만든 권태오가 보였다.
결국,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야 말았다.
“응. 그러게….”
그러자 권태오가 나를 따라 웃었다.
그는 내 앞에만 서면 반칙왕이었다. 저 미소, 저 보조개 하나 때문에 내가 여기까지 왔다. 그리고 두 번 다시는, 권태오를 모르던 시절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었다.
네 사람이 자리한 단체 채팅방 메시지의 99%를 강건우와 이찬희가 차지하고 있었다. 이사 이후 이틀 동안 메시지도, 전화도 받지 않은 권태오와 나 때문에, 두 사람이 아주 야단이었다. 집들이는 언제 할 거냐, 집에 초대도 안 해 주냐, 집 사진도 안 보여 주냐, 방은 어떻게 꾸몄냐… 물음표가 스무 개씩 붙은 메시지를 하나 둘 읽어 내리다가, 나는 한숨을 푹 쉬었다.
“태오야. 애들이 집들이 좀 하자는데 어떻게 생각해?”
소파에 등을 푹 기대며 묻자,
“절대 안 된다고 해.”
권태오가 욕실 문을 벌컥 열고 소리쳤다. 그의 다리 사이로, ‘깨애앵’ 비명을 지르면서 조심이가 뛰쳐나왔다.
“어, 어어! 야! 권조심!”
거품투성이 몸을 카펫 위에 문지르는 조심이를, 권태오가 두 팔로 번쩍 안아 들더니 성큼성큼 욕실로 돌아갔다. 혓바닥을 길게 내민 채 조심이는 구조 요청을 하는 듯 절박한 눈으로 나를 쳐다봤지만, 나는 ‘하하’ 웃을 뿐이었다.
그러고는 메시지 입력창에 엄지를 붙인 채 고민했다.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집에도 오지 말라고 해?”
고개를 갸웃거리며 혼잣말하는데, 재차 욕실 안에서 굵은 외침이 울려 왔다.
“절대 안 돼! 이찬희는 절대로 이 집에 못 들어와! 그랬다가는 남는 방 하나가 그 새끼 방이 될걸.”
단호한 말에, 나는 설마 그렇게까지 하겠냐고 대답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모두가 ‘설마’ 할 때 그 ‘설마’를 넘어서는 사람이 이찬희였기 때문이었다.
결국 고민 끝에, 아직 짐 정리가 덜 끝나서 집들이는 무리라는 핑계를 대며 약속을 잡았다. 장학금을 많이 받았으니 술을 사라는 강건우의 말에는 ‘ㅎㅎ’ 두 자로 대응했다. 술은 몰라도 밥은 사 줄 수 있다는 내 대답을 철저히 무시한 채, 강건우는 제멋대로 밤새도록 운영하는 한국대 근처 주점을 찾아냈다.
결국 저녁이 되자마자 청바지와 반팔 셔츠를 챙겨 입고 집을 나서야 했다. 내키지 않아 하면서도, 권태오는 나를 혼자 보낼 수 없다며 따라붙었다. 우리는 집 앞 내리막길을 걷는 내내 손을 잡고 움직이다가, 번화가가 드러나자마자 머쓱하니 각자의 손을 주머니에 넣었다.
강건우가 후보군을 뽑고 이찬희가 선택한 약속 장소는 ‘카르딘 바’라는 반지하 주점으로, 장사가 잘되는지 간판 아래에 ‘2호점’이란 글자가 박혀 있고 유리문을 밀고 들어서자마자 와인 냉장고가 보이는 곳이었다. 정장 바지에 셔츠를 차려입은 직원이 우리를 안쪽 자리로 안내했다.
“어, 왔다. 왔다.”
권태오는 각자 왼쪽, 오른쪽 한 자리씩을 차지하고 앉은 강건우와 이찬희를 오래도록 노려보더니, 이찬희의 옆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이찬희가 ‘아’ 하고는 짜증스럽게 탄식했다.
“여기 우신이 자린데….”
나는 하하 웃으며 강건우의 옆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직원이 신분증을 보여 달라 요구해 왔다.
“…아, 저요?”
권태오를 등진 채, 내게만 그랬다.
묵묵히 지갑 안의 주민등록증을 꺼내어 갓 성인이 되었음을 확인시킨 뒤에야, 술을 처음 먹어 본다고 고백하고 적당한 맥주를 골라 달라고 요청할 수 있었다. 직원은 한결 부드러워진 목소리로 ‘목 넘김이 좋기로 유명한 맥주’를 추천해 주었다.
시원한 맥주를 한 모금 꼴깍 삼키자마자, 나는 얼굴이 새빨개진 채 테이블 위의 멜론 조각을 집어 먹어야 했다.
“도대체 이걸 무슨 맛으로 먹는 거야…?”
황당한 마음에 작게 중얼거리자, 맞은편의 권태오가 웃으며 제 앞에 놓인 맥주를 꿀꺽꿀꺽 들이켰다. 맛도 없고 끝맛이 떨떠름한, 잘못 만든 탄산수 같은 걸 어떻게 저렇게 아무렇잖게 마시는 건지 나는 그가 신기했다.
“너 근데 짱세랑 연락하냐? 걔 벌써 과대하기로 했다던데…. 민주가 그러는데 오티날에 존나 취해서, 교수가 경영 왜 왔냐고 그랬더니 ‘좋아했던 남자애가 경영학과 간다고 해서 열심히 공부했는데 저만 왔습니다’ 그랬대.”
열아홉 살에서 한 살 더 먹어, 스무 살 성인이 되었다지만 우리의 대화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강건우는 주절주절 여기저기서 들은 소문을 전하기 바빴고, 이찬희는 빙그레 미소 지으며 내 포크를 가져가더니, 멜론 한 조각과 저민 햄을 함께 찍어 건네주었다.
“이거 이렇게 같이 먹는 거야. 하몽이라는 건데…. 자, 아.”
무심결에 ‘아’ 하면서 이찬희가 내민 안주를 받아먹자마자, 권태오가 운동화를 벗은 발로 내 발목을 살짝 걷어찼다. 나는 피식 실소했다.
“풉….”
“뭐야, 이우신. 왜 웃냐?”
“아니, 그냥… 웃겨서.”
혼자 웃음을 터뜨리자 강건우가 ‘징그럽다’며 내 웃음소리를 놀리기 시작했다. 한참 웃어 댔더니 목이 말라서, 차가운 맥주도 그럭저럭 목을 축이는 용도로는 괜찮게 생각됐다.
나로 시작해서 한 명 한 명, 꼬집어 놀리는 장난이 시작됐다. 강건우는 ‘나노전자기계공학과’가 도대체 뭐 하는 과냐는 권태오의 질문에 무척 억울해하며 10분 넘게 열변을 토했고, 이찬희는 반항심에 부모님 몰래 넣었던 수시에 합격하는 바람에 디자인의 ‘디’ 자도 모르는 주제에 디자인학과를 다니게 생겼다.
조금 더 놀리는 재미가 있는 쪽은 단연 강건우였다. 맥주 두어 병을 넷이서 나눠 마신 끝에 강건우는 제일 먼저 취해서는 주어와 목적어가 불분명한 말을 줄지어 뱉어 댔다. 반면 이찬희는 학교가 집에서 멀어서 어쩌냐고 놀려 봐야,
“난 그래서 좋은데. 자취하면 되니까.”
싱글벙글 웃으며 와인 잔 겉면만 만지작거릴 뿐이었다.
“아, 생각하다 보니까 열 받네?”
문득 강건우가 버럭 외쳤다.
“야, 이우신. 너는 왜 권태랑 자취를 하냐? 이거 은근 짜증 나네? 너 나랑 더 친했으면서, 어? 왜 나한테는 물어보지도 않고 홀라당 권태랑 같이 사냐? 울 학교도 한국대에서 멀지 않거든?”
“어…?”
느닷없는 말에 나는 눈을 끔벅거렸다. 강건우는 ‘어디 대답해 봐’ 하면서 제 이마로 내 어깨를 쿵쿵 찧어댔다. 나는 강건우의 뜨끈한 머리를 부여잡아 똑바로 세워 주면서 말했다.
“아니 그거야… 나랑 태오랑 사귀니까 같이 살지.”
당연한 소리를 왜 묻나, 술에 취하면 기억력이 나빠지는 경우도 있나 싶어 조용히 건넨 말에,
“뭐?”
강건우가 제자리에서 활어처럼 펄떡 튀어 올랐다. 두 눈이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처럼 휘둥그레 커지고, 입이 목젖까지 보이도록 벌어진 상태였다. 그러더니 당황한 나와 이마를 짚은 이찬희, 그리고 무뚝뚝한 권태오의 얼굴을 번갈아 살피더니 말했다.
“아…니 씨발…, 뭐? 뭐라고? 너 게이였어? 아니, 잠시만… 권태도 게이라고…? 어? 언제부터?”
“목소리 좀 낮춰.”
“야! 어떻게 감쪽같이… 와, 도대체 언제부터 그런 거야?”
배신감에 물든 강건우의 눈동자에 나는 황당해졌다. 퍼드덕퍼드덕 날갯짓하듯 어깨를 올리며 자리에서 일어서려는 강건우를 내리누르고, 또 내리눌러 앉히면서 내가 말했다.
“너야말로 갑자기 무슨 소리야? 내가 전에 분명히 말했잖아, 친구랑 애인 사이는 다른 거고, 그러니까 너랑 태오는 나한테 각자 다르다고.”
“뭐…, 그게 그런 뜻이었어?”
그제야, 강건우가 입을 다물었다. 기숙사 건물 앞에서 나누었던 대화를 되짚어 보는 듯하더니, 자기는 왜 갑자기 그런 소릴 하나 했다며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그 바람에 나는 실소했다. 그날, 나는 강건우를 참 속 깊은 친구라고 생각했었는데…. 지금 보니 이해력이 모자란 친구일 뿐이었다.
한참 이야기를 나누며 건네 오는 질문에 대답하고 나니 그제야 맥주가 맛있었다. 이찬희가 시켜 준 소시지 요리도 맛있었고, 작고 예쁜 그릇에 담겨 온 날치알 크림우동도 아주 맛있었다. 와구와구 안주를 먹어 치우는 나를 보며 강건우가 혀를 내둘렀다.
“너는 술집 오기 전에 꼭 밥부터 먹어야겠다, 야.”
그 말에 나는 실실 웃고는 말았다. 잔 안에 남은 맥주를 꿀꺽꿀꺽 들이켜고는, ‘캬아’ 소리치자 강건우가 내 얼굴을 휴대폰 카메라에 담으며 킬킬거렸다. 취했으니 그만 마시라고 만류하는 권태오가 있었고, 재밌는데 더 구경하게 놔두라는 이찬희가 있었다.
술자리를 파하고 헤어질 무렵에는 새벽 2시가 지난 시간이었다. 밤새 달리기로 했는데 어딜 가냐며 강건우가 내 팔뚝을 잡고 매달렸지만, 권태오가 왼손으로 떠밀자 팽이처럼 빙글 돌며 이찬희의 품 안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아하하학….”
그 모습이 웃겨 나는 배를 쥐고 웃었다. 너무 웃기고 너무 들떠서 내 몸 하나 가누기도 어려운데, 권태오가 자꾸만 내 어깨에 제 몸을 기대 와서 무거웠다.
“태오야아, 자꾸 나한테 기대지 마!”
무겁다고 소리치며 나는 권태오를 뒤로 밀쳤다. 그러자 ‘이우신 저거 취했다’는 강건우의 핀잔과 함께, 권태오의 큰 손이 내 어깨를 더욱 세게 쥐더니 제 품 안으로 바짝 붙였다. 나는 한숨을 푹 내쉬며 권태오의 허리에 두 팔을 둘렀다.
“얘들아, 태오가 많이 취했나 보다. 내가 집에 바래다줘야겠다.”
고개를 들고 중얼중얼 말하자, 권태오가 ‘허’ 소리 내며 황당하다는 듯 웃었다. 코끝에 닿는 그의 입김이 기분 좋아서, 나는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히히 웃었다.
“태오 집에 바래다주고, 나도 집에 가야겠다. …어? 그런데 태오네 집이 내 집이네? 그럼 어떡하지?”
“야…, 권태. 그냥 들어가라. 이우신 주정 감당 안 되네….”
헤어지기 전에, 나는 대로변에서 이찬희를 향해 터벅터벅 걸어갔다. 녀석이 듣는다면 좋아할 만한 소식이 있기 때문이었다.
“찬희야! 나아 너, 어디서 봤었는지 기억났어.”
아니나 다를까 이찬희가 눈을 둥그렇게 떴다. 귀엽게 생긴 얼굴을 올려다보며 나는 아저씨 같은 웃음소리를 ‘흐흐’ 흘렸다.
“너 나한테 길 물어봤었잖아. 1학년 때 복도에서. 그치?”
정답을 말했는지 이찬희가 픽 새는 웃음소리를 냈다. 나는 검지 끝으로 내 관자놀이를 톡톡 두들겨 보였다. 이거 봐, 나 똑똑하다니까. 기억력 최고!
그런 다음 녀석을 와락 안아 주었다. 등을 퍽퍽 때려 주면서 격려하자, 이찬희가 어색하게 몸을 굳히더니 내 어깨를 마찬가지로 토닥토닥 두들겼다.
강건우가 꽥 소리를 지르며 저도 안겠다고 달려드는 바람에, 추운 펭귄들처럼 엉겨 붙은 우리를 떼어 내느라 권태오가 신경질을 제법 냈다.
취기에 젖고 보니 나는 세상에 무서울 게 없었다. 대학로 번화가를 오가는 사람들은 모두 거나하게 취해 있어서, 내가 권태오와 손깍지를 끼든지 그의 허리를 와락 안고 걷든지 관심을 두지 않았다. 무관심을 즐기면서 나는 권태오와 길을 걸었다.
“태오야.”
“어.”
“태오야아.”
“어, 왜.”
“나는 너를 만나려고 채홍고에 입학했었나 봐….”
권태오의 팔뚝에 볼을 찰싹 붙이고서, 내가 말했다. 내 얼굴은 지나치다 싶을 만큼 뜨거운데, 권태오의 팔뚝은 기분 좋게 서늘했다. 그러나 그마저도 몇 초 지나지 않아 뜨겁게 달아올랐다.
붙였던 얼굴을 홱 떼어 내며, 나는 소리쳤다.
“아니! 아니야. 너를 만나려고 이 세상에 태어났나 봐….”
그러고는 실없이 웃었다. 떠오르는 말을 아무렇게나 내뱉고 웃고 싶은 만큼 소리 내어 웃고 있자니 어린애가 된 기분이었다. 정말로 어린애인 시절에도 이렇게 마음대로 굴어 본 적 없는 나로서는, 지금의 붕 뜬 듯한 감각이 몹시 색다르고 재밌었다.
‘…가만.’
나를 부축하는 권태오의 팔에 온몸을 내맡기며, 나는 눈을 게슴츠레 떴다.
“태오야. 나 지금 취했어?”
“어. 좀 그런 거 같다.”
“그렇구나….”
정신을 차리고 보니 새벽의 길바닥이던 눈앞에, 샛노란 쿠션이 놓여 있었다. 거실 소파에 몸을 눕힌 채 나는 눈을 끔벅거렸다. 부엌 한편에서 기쁜 듯 폴짝거리는 조심이의 발소리가 들렸고, 그런 조심이에게 ‘앉아’, ‘기다려’, ‘빵야’를 시키는 권태오의 말소리가 들렸다. 뒤이어 무어 맛있는 간식이라도 줬는지, 조심이가 와드득와드득 무얼 먹는 소리가 났다.
한참 발소리를 내는 듯하더니, 조심이가 2층 계단을 타고 올라가 버렸다. 맛있는 간식은 꼭 2층 테라스 제자리에서 먹는 습관 때문이었다.
피식 웃으면서, 나는 소파 위에 가로로 누워 버렸다. 작고 귀여운 거실 소파는 내 몸을 얹어 놓자 가득 차 버렸다. 그런 내게로 권태오가 터벅터벅 걸어왔다. 커다란 손이 다가오더니, 한 겹 두 겹 내 옷을 벗겼다.
“으으, 추워….”
셔츠 단추를 푸는 손길에 나는 몸을 떨었다. 권태오는 아랑곳 않고 내 허리 벨트를 잡아당기더니, 바지까지 아래로 홱 끌어 내렸다.
“주정뱅이…. 술 냄새 나.”
말로는 싫은 듯 툴툴거리면서도, 그는 더운 얼굴을 내 가슴에 묻었다. 나는 헉헉거리며 그의 머리를 끌어안았다. 몽롱한 정신에 올려다본 거실 천장이 참 예뻐 보였고, 속옷 안을 파고 들어오는 권태오의 손이 차가워서 허리에 힘이 들어갔다.
거칠어지는 숨을 몰아쉬며, 내가 말했다.
“나, 너무 많이 먹어서… 배 나왔어.”
그러자 권태오가 코웃음을 쳤다.
“네가 배가 나와 봤자지.”
“진짜야. 맥주 너무 마셨어…. 신경 쓰여….”
그러자 권태오가 천천히 제 고개를 내 아랫배에 가져다 댔다. 내 살결에 제 뺨을 붙이고서 감촉을 즐기는 듯하더니, 이내 코끝을 옆구리에 대더니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내 열 발가락에 절로 힘이 들어갔다.
“하아…, 너한테서 좋은 냄새 나….”
“아까는 술 냄새 난다며…, 주정뱅이라며.”
“삐지지 말고.”
권태오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훨씬 무뚝뚝하게 들렸다. 나는 실실 웃으며 그의 머리를 마저 쓰다듬어 주었다. 내 손바닥에 제 머리를 문지르는 모습이 커다란 고양이 같고, 감촉은 보드랍고 따끈따끈하니 사랑스러워서 좋았다.
가만히 미소 지으며 꿈결에 빠져들려는데, 아주 가까이에서 쓱쓱 무얼 문지르고 비비는 듯한 소리가 났다. 어리둥절한 마음에 눈을 뜨고 시선을 내리자 내 가슴팍에 머리를 기댄 권태오의 정수리와 어깨가 가장 먼저 보였다. 그 옆으로, 이리저리 바삐 움직이는 팔꿈치가 보였다.
“좋은 살냄새 나…. 하아…, 존나 꼴려.”
그는 내 체취를 맡으며 제 바짓단 위를 쓰다듬고 있었다. 왜 허벅지를 문지르는 거지… 생각하며 얼떨떨하니 쳐다만 보기도 잠시, 나는 그가 허벅다리 위에 걸친 제 성기를 쓸고 있단 걸 깨달았다.
얼떨떨하던 정신에 빨간 등이 켜졌다. 제 아랫입술을 핥는 권태오의 혀도 꼭 그만큼 새빨갰다. 나는 단숨에 더워졌다.
“태오야….”
체온이 오르자 술기운이 확 밀려오는 것 같았다. 가슴은 쿵쿵 뛰는데 머릿속은 멍하니 흐려지는 게, 술 때문인 게 분명했다.
이내 축축해진 권태오의 손이, 그보다 더 축축한 내 팬티를 끌어 내렸다. 세게 당기는 힘을 따라 내 몸이 소파 위에 흐트러졌다. 기대감과 설렘, 그리고 충만한 애정으로 웃으며 나는 흥분한 권태오의 얼굴을 살폈다. 두 눈을 마주 보려 그의 뺨을 만지는데, 그는 내 두 손을 단숨에 옭아매듯 쥐더니 머리 위로 내리눌렀다.
“응?”
당황한 채 권태오의 두 눈을 살피다가, 나는 무엇인가 잘못됐음을 깨달았다. 잔뜩 취해서는, 술기운에 정신을 못 차리는 게 나뿐인 줄 알았는데 권태오의 두 눈도 해롱해롱 풀려 있는 것이었다.
‘어쩐지, 새벽인데 조심이한테 간식을 주더라니…!’
뭐라 말해야 좋을지 몰라 입만 벙긋거리는데, 권태오가 남는 손으로 내 다리를 좌로, 우로 벌렸다. 다리 한 짝이 소파 등에 걸렸고 남은 한 짝은 바닥을 향해 벌어졌다.
이래도 괜찮을까? 취한 사람이랑 해도 되는 건가? 나중에 정신 차리고서 후회하진 않겠지…? 갖가지 고민이 머릿속에 불순물처럼 차올랐다가, 그가 제 바지 버클을 풀고 지퍼를 내리더니 커다랗게 발기한 성기를 꺼내는 순간 가라앉았다.
“태오야, 천천…히.”
말을 꺼내기가 무섭게, 굵직한 성기 끝이 내 뒷구멍을 누르면서 쑤시고 들어오기 시작했다.
“악…!”
술이 확 깨는 느낌에 나는 비명을 내질렀다. 너무 놀란 바람에 심장을 토할 거 같았다. 커다란 고통에 본능적으로 두 다리가 버둥버둥 움직였다. 그러자 권태오가 꽉 쥐고 있던 내 두 손을 놓아주더니, 내 양 허벅지를 붙잡아 위로 쑥 들어올렸다.
“하아, 하아….”
뜨거운 숨을 몰아쉬며 나는 의미 없이 허리를 비틀었다. 허벅다리가 완전히 위로 들리자 몸이 반으로 접히다시피 해서, 내 무릎이 어깨에 닿을 지경이었다. 훤히 드러난 엉덩이 사이에 대고 권태오가 재차, 제 성기를 맞대더니 꾸역꾸역 눌러 박으려 들었다.
“앗, 아, 태오…야, 태오야! 너 취했어…!”
말려 보겠다고 주먹을 휘둘러도 역부족이었다. 오히려 권태오는 내가 가한 자극에 달아오른 듯, 이마까지 벌겋게 붉힌 채 더욱 거칠게 굴었다. 그러나 꽉 닫힌 내 뒷구멍은 너무 좁아서, 억지로 벌려도 잠시간 빠끔거릴 뿐 그의 굵직한 성기를 제대로 받아 내진 못했다. 꽉꽉 누르며 밀어 넣으려 치면, 두드러진 귀두 옆면의 둘레에 막혀 미끌거리며 벗어나길 반복했다.
애초에 사이즈가 안 맞는 물건을 억지로 쑤셔 박겠다고 들이미니 나는 죽을 맛이었다. 이러다 성난 권태오가 조금 더 거칠게 군다면, 그때는 아픈 정도를 넘어서서 정말 다치게 될 것 같았다. 나는 이를 악물고 말했다.
“아…파, 태오야, 아, 안 들어가…, 아파.”
그러자 권태오가 숨을 길게 내쉬더니, 제 손가락을 입에 넣고 침을 적셨다. 춥춥 소리 나게 손가락을 빠는 얼굴을 나는 홀린 듯 멍하니 쳐다봤다. 이내 권태오의 두 손가락이 내 뒷구멍을 쑤시고 들어오기 시작했다.
“악, 앗….”
관자놀이에서 펄펄 뛰는 박동을 느끼면서, 나는 눈을 꽉 감고는 두 손을 아래로 뻗었다. 억지로라도 내 엉덩이를 쥐고 좌우로 벌려야 했다. 성급한 손길이 금방이라도 찢어 놓을 것처럼 예민한 살결을 쑤셔댔다.
거칠게 손을 놀리길 한참, 권태오가 마찰로 인해 재차 뻑뻑해진 내 뒷구멍을 향해 고개를 파묻었다. 깜짝 놀라 내려다보는데 그는 쓰라린 내 뒤를 핥는가 싶더니, 엉덩이를 꽉 잡아 벌리고는 구멍 안에 침을 뱉었다. 충격에 물든 채 나는 내려다보이는 모습을 멍하니 쳐다만 볼 뿐이었다.
연신 ‘퉤’ 소리가 나도록 두어 차례 침을 뱉더니, 권태오가 액체를 손끝으로 긁어모은 중지로 구멍 안을 쑤셨다. 달아오른 숨을 억지로 내쉬면서 나는 이 와중에 흥분되는 내가 미쳤거나, 윤활제가 없다고 침을 뱉는 권태오가 미쳤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우리 둘 다 미쳐 버린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하아….”
들뜬 숨을 뱉으며 권태오가 제 성기를 다시금 곧게 세웠다. 위로 휠 정도로 바짝 흥분한 성기에서 묽은 프리컴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그는 그 액체마저 내 뒤에 넣으려는 듯, 구멍 앞에 제 것을 대고는 위아래로 문질거렸다.
미끄덩거리며 살덩이가 스치는 감촉에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대로 권태오의 성기가 뒤를 쑤시며 밀려들었다. 두꺼운 귀두를 안으로 쑥 들이밀더니, 권태오는 더운 땀방울을 뚝 흘렸다.
“하아…, 흐으….”
그의 목에서 만족스러운 숨소리가 울려 나왔다. 끄트머리만 집어넣은 제 것을, 우물우물 세게 삼키는 감각이 기분 좋은 듯했다.
“컥, 아…학, 악….”
반면에 나는 죽을 맛이었다. 구멍이 찢어질 것처럼 벌어졌고, 이물감을 받아들이지 못한 허리가 꿈틀거리며 비틀렸다. 술에 취한 권태오가 이대로 사정해 주었으면, 그런 바람이 들 정도였다.
억지로 신음을 삼키는 순간 반사적으로 삐져나온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흐으, 음….”
이마를 구기며 신음하는 권태오를 올려다보며, 나는 학학 숨을 골랐다. 와중에도 찌르르한 감각이 성기로 쏠리는 내가 짐승 같았다.
더 큰 문제는,
‘화장실….’
사정 욕구보다도 저릿하게 저려오는 오금에서 울리는 비상벨이 더 크다는 거였다.
“태, 오야, 태오야…, 잠시만.”
목덜미에 핏대가 서도록 온몸에 힘을 주며, 내가 말했다.
“나… 나, 화장실. 진짜… 급해. 화장실 좀….”
“하아….”
그러자 흥분에 취한 권태오의 두 눈이 내 얼굴에 와 닿았다. 눈이 마주친 순간 나는 아주 작게 안도했고, 그의 시선이 발기한 내 성기에 내려가 꽂힌 순간에는 절망감을 느꼈다. 퍼뜩, 나는 몸을 옆으로 돌렸다. 그래 봐야 다리 사이에 자리한 권태오를 떨쳐 낼 순 없어, 상체만 가까스로 모로 비틀었을 뿐이었다. 소파 등받이를 잡고 어떻게든 버둥버둥 벗어나려는데, 문득 살 맞는 소리와 함께 온몸이 푹 앞으로 고꾸라졌다.
장기가 위로 퍽 쏠리는 느낌과 온몸의 근육이 경련하는 감각에 나는 두 다리를 의미 없이 바르작거렸다. 뒷구멍을 마구 벌리며 권태오가 제 것을 끝까지 밀어 넣은 것이었다. 시야가 까매지더니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힉….”
이내, 기이한 포만감과 거칠게 부딪쳐 오는 충격이 나를 감쌌다. 철퍽철퍽 볼기에 딱딱한 몸이 닿을 때마다 나는 짐승처럼 마구 소리를 질렀다.
“아아, 악…! 어, 흑, 아윽….”
뻑뻑하기 짝이 없던 뒷구멍 밖으로 이젠 미지근한 액체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프리컴과 침, 어쩌면 정액이 마구 뒤엉키며 흘러나오는 게 느껴졌다. 소파 등받이에 빨래처럼 걸린 채 나는 정신없이 흔들렸다.
“헉, 허억….”
흥분한 숨을 헐떡헐떡 뱉으며, 권태오가 단단하고 커다란 몸으로 내 등허리를 덮었다. 소파 등받이를 구겨 쥔 손등 위에 그보다 한 마디는 더 큰 손이 와락 겹쳐졌다.
“아, 아… 태오야, 태오야아!”
술기운이 홧홧하게 밀려 올라왔다. 재차, 권태오가 허리를 쳐올릴 때마다 나는 머리까지 덜렁댔다. 커다란 것이 내 배를 뚫을 것처럼 박혀 올 때마다 토할 것 같은 기분과 속에 든 것을 전부 싸 버리고 싶다는 충동에 부딪쳐야 했다.
“컥, …흑, 흐윽….”
퍽 소리가 나도록 세게 밀쳐온 순간 나는 완전히 중심을 잃고 고꾸라졌다. 앞으로 구부러진 내 목을, 권태오의 손이 콱 움켜쥐더니 제 품 가까이 당겼다. 그러고는 발정 난 짐승처럼 추삽질을 시작했다. 나는 배를 앞으로 내밀고, 엉덩이와 어깨를 뒤로 젖혀진 채 마구 흔들거렸다.
“악, 윽…, 으응, 흑!”
손 둘 데를 못 찾고 헤매던 두 팔을 뒤로 뻗어, 나는 손에 닿는 대로 권태오의 피부를 마구 긁어댔다.
“아윽, 응, 태오야, 아! 제발, 제발… 으응!”
술 때문인지 온몸이 금세 흐물거렸다. 머리 안에서 뇌가 녹아 버린 느낌이었다. 짐승처럼 철썩철썩 살을 부딪치며 달라붙는 행위에, 수치심보단 흥분이 더 크게 피어올랐다.
엉덩이를 쳐대는 살덩이의 느낌에 어리둥절한 채 아파하다가, 그게 고환이 맞는 소리란 걸 알고서는 쭈뼛 소름이 올랐다.
“하아, 우신아, 아, 흐으….”
목덜미를 깨물며 권태오가 신음했다. 부르르 정신이 경련했다.
“우신아…, 우신아.”
“흐으, 으…응! 응….”
더는 섞을 수 없을 만치 깊게, 그와 내가 밀착했다. 그 감각이 좋은 나머지 나는 다른 문제는 전부 잊어버리고야 말았다.
“하아, 하아….”
엉덩이를 뒤로 들고 바짝 붙이고, 배를 가득 채우는 기이한 포만감과 함께 이상야릇한 성욕에 점령당했다.
눈물을 줄줄 흘리며 나는 권태오의 손을 쥐고는, 내 허리를 잡도록 옮겼다. 그러자 권태오가 거센 악력으로 내 옆구리를 터뜨릴 듯 움켜쥐더니, 거칠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구 박히면서 앞으로 고꾸라졌다.
“아흑, 응, 아, 아아…!”
도무지 내 것 같지 않은 음성이 입 밖으로 터져 나왔다. 그때마다 권태오가 흥분한 듯 신음하며 더욱 세게 성기를 박아 왔다.
“하아, 아! 우신아….”
“으…응! 흣, 아, 앗….”
앞으로 고꾸라진 채 덜렁거린 끝에, 내 머리가 소파 구석에 처박혔다. 부끄러운 새처럼 대가리만 쿠션 속에 파묻고서, 엉덩이는 뒤로 덜렁 들린 채 나는 끅끅 울었다. 눈을 뜨면, 마구잡이로 뒤섞인 채 내 허벅다리를 타고 흘러내리는 허여멀건 액체가 보였다.
내 안에 여러 번 싸 놓고도 다시 꿈틀꿈틀 근육을 세우며, 권태오가 허리를 밀쳐 올렸다.
“태오야, 아, 앙! 태오야아…!”
두 무릎이 바짝 붙고 비명 같은 신음성이 터졌다. 다리에 힘이 풀리고 전신은 허물어진 지 오래인데, 권태오가 그런 내 허리를 제 두 손으로 움켜쥐고 흔들고 있었다. 내 하반신을 고스란히 잡아 든 채 앞뒤로 흔들며, 제 것을 박고 또 박아 댔다.
“아아! 악, 흑, 아앙!”
눈물과 침, 땀과 정액으로 범벅이 된 채 나는 내 성기를 손으로 틀어막았다. 더는 치미는 사정 욕구를 참아내기 힘들었다. 욕망이 날카로운 바늘이 되어 내 성기를 찌르는 것 같았다.
연거푸,
“하…, 으윽….”
목 끓는 소리를 내며 권태오가 신음했다. 울컥, 점액질의 뜨거운 액체가 구멍 밖으로 흘러나왔다. 나는 기진맥진한 채 달아오른 성기를 움켜쥐고, 틀어막았다. 힘을 풀었다가는 싸게 될 게 정액이 아니라 오줌일 것 같아 두려웠다.
“태오야, 이, 이제… 그만, 제발….”
벌벌 떨며 나는 ‘화장실’ 세 글자를 계속 말했다. 제발 놓아 달라고 애원도 해 보았고, 금방 다녀오겠다고 설득도 해 보았다.
“하아, 우신아….”
만족스러운 흥분에 젖은 음성이 내 귓가에 맴돌았다. 권태오가 허리를 살살 돌리듯이 움직이자, 내 엉덩이 사이에서는 찌걱거리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먼저 터져 나온 정액이 마르기도 전에, 새 체액이 주르륵 그 위를 흐르며 뒤엉켜댔다.
“아, 흐윽, 흐으…. 제, 제발, 쌀 거 같아…. 화장…실, 제발… 가게 해 줘….”
마지막 힘을 쥐어짜 내어 애원한 순간,
“가게 해 줘…?”
돌덩이 같은 말이 쿵 떨어지더니 뜨거운 손이 내 성기를 움켜잡았다.
“알겠어.”
“아, 아냐! 아냐, 이거, 이거 말고… 악!”
비명을 내지르며 나는 온몸을 파르르 떨었다. 권태오의 큰 손이 내 걸 감싸 쥐고는, 위아래로 거침없이 쓸고 흔들기 시작했다. 모든 감각이 날카로운 고통으로 이어졌다. 제대로 된 문장조차 구사하질 못하고, 나는 의미 없는 울음소리를 냈다. 허공에 뜬 다리를 버둥거리다가 그대로 시트 위에 얼굴을 처박으며 고꾸라졌다.
“아아…악….”
이내 온몸의 힘이 쭉 빠졌다. 성기 끝에서 탁한 정액이 튀어나오며 쿠션 시트를 적시더니, 연이어 물이 줄줄 흐르기 시작했다.
“힉…, 흐, 흑…! 으응! 윽…!”
순간 배에 거센 통증이 일었다가, 쪼르르 싸 댄 물을 따라 몸 밖으로 배출됐다.
“하아, 하…아, 으읏….”
나도 모르게 만족스러운 숨을 헉헉 내쉬는데, 순간 허리가 재차 덜렁 들렸다. 놀라 버둥거리기가 무섭게 권태오는 예민해지고 더러워진 내 몸 안으로, 굵은 성기를 재차 쑤셔 박기 시작했다. 세게 처박아 오는 감각에 두 다리를 후들후들 떨며 나는 입을 벌렸다. 철퍽철퍽 몸이 흔들릴 때마다 성기가 덜렁거리면서 정액이고 물이고 할 것 없이 시트와 내 얼굴 가득 튀었다.
“아, 아…, 아아….”
‘잠깐만’ 하는 쉬운 말조차 나오질 않았다. 거세게 휘몰아치는 감각에 나는 마구 휩쓸렸다. 고꾸라진 얼굴 가득 정액을 맞으면서도, 사정 욕구를 제어하지 못하고 더러워지며 빨개졌다.
퍽 소리가 나도록 권태오가 힘껏 나를 밀어붙였다.
“앙, 아윽…!”
소파를 마구 적시며 나는 재차 물을 싸댔다. 찔끔찔끔 정액을 싸다 그치면, 물이 줄줄 새는 식이었다. 오래 참았던 오줌을 싼 것 같은 느낌도 들었고 온몸의 진이 주르르 빠지는 느낌도 들었다. 비명을 내지르느라 입술 안으로 물방울이 튀며 들어온 듯했다. 입술에서 이상한 맛이 감돌았다.
콜록거리며 밭은기침을 하기도 잠깐, 내 몸이 풀썩 무너져 내렸다. 꼬챙이처럼 몸에 박혀 있던 성기가 뒤로 쑥 빠진 순간이었다.
“아! 흑, 윽…, 흐으윽….”
두 다리가 바닥에 나동그라지고 상체는 소파에 파묻힌 채 나는 꿈틀꿈틀, 세게 밟힌 지렁이처럼 경련했다. 체액으로 더러워진 시트 위에 뺨을 붙인 채 눈물을 줄줄 흘리는데, 굵은 팔이 허리 밑을 파고들었다.
이내 나자빠졌던 몸이 위로 번쩍 끌어 올려졌다. 단단한 팔에 안기자마자, 나는 기절했다.
…데자뷔인가? 배탈, 몸살, 미열 기운을 느끼며 나는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아무리 힘주어도 바로 떠지지 않을 만큼, 두 눈이 퉁퉁 부어 있었다. 얼굴의 상태만큼 몸의 상태도 그야말로 엉망진창이었다.
침대에서 비척거리며 일어서려다, 나는 뭉근한 통증에 신음했다. 이불을 걷어 내리고 살펴보니 그나마 파자마를 챙겨 입은 상태였다. 연하늘색 파자마 상의를 끌어 올리자, 가장 먼저 허리에 난 뻘건 손자국이 보였다. 중앙부는 보라색인 게, 벌써 멍울이 진 것 같았다.
어깨며 팔뚝, 배, 가슴… 부위를 가릴 것 없이 짐승에게 깨물린 것 같은 잇자국과 꽉 죄인 손자국, 그리고 군데군데 짙은 멍울이 남아 있었다.
멍하니 어젯밤 일을 회상하다가, 나는 문득 흠칫거렸다.
‘어제…, 소파에….’
생각이 거기 닿자 억지로라도 몸을 일으킬 수밖에 없게 됐다. 고개를 휘휘 돌려 침실을 둘러보았지만, 권태오는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벌써… 봤을까? 내가….’
술기운에 저지른 짓을 권태오가 어디까지 기억하는지 알 수 없어서, 나는 그게 무서웠다. 제가 밀어붙이고 그냥… 싸 버리라며 억지로… 그래서 별수 없이 그랬던 건데…. 혹시라도 필름이 끊겼다거나 하는 뻔한 일이 발생했다면 나로서는 무척 곤란한 일이었다. 소파 시트를 살펴보면 누구라도, 그게 오줌 싼 자국이라 생각할 테니 말이었다.
벌떡, 자리에서 일어서려다 나는 재차 시트 위에 고꾸라졌다.
“아….”
뭐라 표현하기 어려운 부위부터 저릿저릿 통증이 일었다. 힘을 내어 억지로 일어서긴 했지만, 일자로 걷기가 힘들었다. 펭귄처럼 뒤뚱뒤뚱, 어기적거리는 걸음으로 나는 침실 문을 열었다. 멀리, 1층에서부터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
혹시나 하고 살펴본 거실 소파는 커버가 벗겨진 상태였다. 그걸 보자마자 내 얼굴은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입술을 꾹 악물고 창피함을 참아내려 애쓰는데, 현관문이 벌컥 열렸다.
“아. 벌써 깼어?”
권태오가 들어서며 말했다. 오른손에는 조심이의 리드 줄이 잡혀 있었고, 왼손에는 동네 빵집 이름이 인쇄된 종이 가방을 안아 든 상태였다.
권태오는 분주하게 움직였다. 먼저 조심이를 욕실에 데려다 놓더니, 부엌으로 가 가져온 짐을 풀어놓았다. 가져온 빵을 하나씩 꺼내어 정리하면서 그는 나를 단 한 번도 똑바로 보지 않았다.
나는 발끝부터 불이 붙는 것 같은 통증을 느꼈다. 홧홧한 감각이 온몸을 타고 피어올랐다.
‘내가…, 내가 싼 걸, 보고….’
그걸 치우면서 권태오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 상황을 추측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부끄럽고 민망하고 억울했다.
‘내가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닌데….’
우물쭈물 입을 열었지만, 할 말이 없었다. 입술을 꾹 다물고 애써 뒷모습만 살피는데, 권태오는 포장지를 뜯어낸 인스턴트 수프를 사기그릇에 옮겨 담았다. 덤덤한 척 나를 외면하는 등을 보자니 설움이 차올랐다.
한참의 침묵 끝에 권태오가 말했다.
“앞으로 술은 좀, 우리 둘 다 자제하는 게 좋을 거 같아.”
그 소리에 내 숨결은 단숨에 더워졌다.
“왜…?”
애써 소리 내어 묻자, 권태오가 홱 나를 돌아봤다. 또르르 굴러떨어진 눈물이 코끝에 고였다가, 뚝뚝 바닥으로 떨어졌다.
아, 씨….
“내가, 흑…, 내가 일,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닌데….”
쪽팔려서 이러고 싶지 않은데 너무 억울해서 눈물이 샘물처럼 펑펑 솟구쳤다. 꽉 말아 쥔 주먹으로 두 눈을 가리며 나는 코 먹는 소리를 냈다.
“흑, 흐윽, 내가, 끅, 취해서, 흑, 그런 게 아니고, 화장실 가, 가고 싶다고 말했, 흑, 는데…, 네가…, 흐윽, 네가 너무….”
훌쩍이는 소리를 삼키면서, 최선을 다해 변명한다는 소리가 이것밖엔 되질 않았다. 세상 서러운 마음에 나는 난간을 움켜쥐고 비틀거렸다.
“더러우면 그냥 놔두지, 그럼 내가 치울 텐데, 왜, 끅, 흑….”
날 보는 권태오의 눈이 유령 보듯 하다가, ‘허’ 소리와 함께 일그러졌다. 당황한 얼굴로 그는 쿵쿵 발소리를 내며 내게 달려왔다. 그러고는 외쳤다.
“도대체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이우신! 왜 울어? 울지 마!”
“흐윽, 왜 소리를 지르고 그래!”
버럭 언성을 높이며 나는 오른손을 세게 휘둘렀다. 권태오의 너른 가슴을 소리 나게 퍽 치고는, 억울한 마음에 크게 외쳤다.
“내가 싸고 싶어서 오줌 싼 것도 아닌데, 너무하잖아!”
“뭐?”
끅, 끅… 숨넘어가는 소리를 내며 나는 내가 휘두른 주먹의 반동을 못 이겨 비틀거렸다. 난간을 쥔 채 뒤로 나자빠지려는 내 몸을, 권태오가 두 팔 뻗어 붙들었다. 허리를 받치듯 껴안는 팔이 지난밤과 달리 부드럽고 또 조심스러웠다.
“아니, 아니, 아니…, 우신아. 그게 아니야.”
고개를 좌우로 잘게 내저으며, 권태오가 허둥지둥 변명했다.
“내 말은, 내가, 씨발 너무, 어제… 어제 취해 가지고, 네가 계속 강건우랑 붙어 있질 않나 이찬희 그 새끼랑 껴안고 지랄하는 게 너무 싫어서…. 집에 오자마자 내가 너무 흥분했어. 너를 아프게 한 거 같아서… 그게 미안해서….”
예상치 못한 이야기가 줄줄이 쏟아졌다. 흐트러졌던 정신이 되돌아와 한데 붙는 것을 느끼며, 나는 눈을 깜빡거렸다. 그리고 말했다.
“…내가 오줌 쌌다고 뭐라 한 거 아니야?”
“아니지!”
버럭 소리 지르는 권태오의 눈시울이 새빨갛게 부어 있었다. 이제 보니, 코끝도 불그스름하고 속눈썹도 축축한 게 내 걱정에 저도 마음고생을 한 눈치였다. 그 바람에 안심이 되어, 나는 눈물 두 방울을 주르륵 흘렸다.
권태오가 ‘아’ 하고는 탄식했다.
“이우신…. 그만 울어, 귀여우니까 그만 울어!”
“소리 지르지 마….”
“진짜 그만 울어…, 너 우니까… 진짜 너무 귀여워서 그래.”
큼직한 손이 이내 내 볼을 감싸 쥐었다. 쪽, 쪽… 입맞춤으로 눈물방울을 잡아먹으면서 권태오는 거짓말로 나를 달랬다. 어제 그건 오줌이 아닐 거라면서, 가끔 그렇게 싸는 포르노 배우도 있는 것 같았다면서, 제 말을 믿으라고, 속고만 살았냐고 주절주절 수다를 늘어놓았다. 저답지 않게 말이 많은 권태오가 귀여워서,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았다.
“우신아, 이러지 말고 아침부터 먹자. 내가 빵 구워 줄게. 수프도 사 왔어. …너 배 아플 거 같아서.”
“으응. 아파….”
어기적거리며 나는 계단 아래로 발을 뻗었다. 엉거주춤한 내 자세를 살피는 권태오의 표정이 꽤나 착잡했다. 나는 그를 더 놀리고 싶어졌다.
“엉덩이도 아프고… 허리에 멍도 생겼어. 척추가 골절된 거 같아. 목구멍도 너무 아파…. 의사 되기도 전에 환자부터 되게 생겼어.”
“…알겠어, 내가 미안해….”
“어제도 너무 아팠어. 곰한테 잡아먹히는 줄 알았어.”
“…….”
뒤뚱거리는 걸음으로 부엌으로 향하면서, 나는 연신 투덜거렸다.
“사람이 말을 하면 들어야지…, 네가 짐승 새끼도 아니고. 섹스할 때마다 도대체 왜 그러나 몰라…. ‘낮져밤이’ 뭐 그런 거라면 재미없어. 내가 얼마나 억울하고 답답한지 알기나 해? 진짜… 그만하라고 말하는데 못 들은 척하고….”
“…….”
식탁 앞에 도착해 고개를 돌리자, 꼭 나만큼 느린 걸음으로 뒤따라온 권태오의 얼굴이 올려다보였다. 입을 굳게 다문 채 표정이 꽤나 심각해 보였다.
‘내가 너무 투정했나….’
슬금슬금 눈치를 살필 때쯤, 권태오가 침묵을 깨며 ‘하아’…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너 쫑알거리니까 존나 흥분돼. 나 또 섰어…. 밥 먹기 전에 한 번만 더 하면 안 돼?”
“진짜 죽고 싶어?”
식탁 위에 한 팔을 딛고서 이마를 찡그리는데, 권태오는 그 새를 못 참고 내 뒤로 제 몸을 바짝 붙여왔다. 푸근하고 커다란 품에 안기자마자 두툼한 살덩이의 감촉이 엉덩이에 와 닿았다. ‘섰다’는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는 순간이었다.
곧바로 거절하며 권태오를 밀어내지 못한 이유는, 내 목덜미에 와닿는 콧대의 감촉이 너무 좋아서였고, 식탁을 짚은 내 손 위에 제 손을 짚으며 뻗어오는 그의 팔뚝이 내 팔의 두 배로 보일 정도로 굵어서였고,
“응? 우신아.”
그렇게 묻는 목소리가 듣기 좋아서였다.
침묵하며 머뭇거리는 사이, 권태오는 내 파자마 바지를 슬그머니 끌어 내렸다. 조심스러운 손길이 엉덩이골 사이를 누르는 감촉에, 나는 입술을 꾹 짓씹으며 고개를 저었다.
“안 돼. 넣지 마…, 진짜…, 아파.”
“하아. 그래…, 아직도 엄청 빨갛다.”
“…….”
“부어서… 말랑거려.”
그러더니 손가락이 ‘쑥’ 뒤를 쑤시고 들어왔다. 갑작스러운 삽입에 무릎을 오므리며 움찔거리는데, 구멍 밖으로 질척한 것이 주르륵 흐르는 게 느껴졌다. 깜짝 놀라 내려다보자 질척한 액체 한 방울이 부엌 바닥으로 뚝, 떨어졌다. 어젯밤 권태오가 내 안에 싸지른 정액이었다.
얼굴이 대번에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아, 어….”
나는 권태오를 곧장 뒤로 밀치고, 식탁을 빙 돌아 도망쳤다. 얼굴이,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벌겋게 달아오른 권태오가 나를 쫓았다. 추격전은 길지 않았다. 어기적거리며 걷다가 지쳐, 나는 냉장고 앞에서 그에게 붙들렸다.
권태오는 곧장 내 입술을 빨아 삼켰다. 큼직한 두 손이 파자마 밴드를 완전히 끌어 내리자 주르륵, 옷가지가 발목까지 떨어졌다.
두 손이 덥석 내 엉덩이 양쪽을 움켜쥐었다. 주물럭거리며 만지는 손길에 이마 위로 열이 올랐다.
“하아…, 흐, 읏….”
“아, 진짜…, 진짜 너무 귀여워….”
“아, 아…, 마, 만지지 마, 아파….”
“엄청 예민하네….”
쪽쪽거리며 입술을 빨기를 한참, 권태오는 내 목덜미로 머리를 옮겼다. 그러고는 혓바닥을 내밀어 목선을 길게 핥아 올렸다. 간질간질한 자극에 나는 온몸이 흠칫거리며 수축했다. 흥분이 자꾸만 거칠게 심장을 두들겨댔다. 손끝, 발끝까지 피가 너무 빠르게 도는 듯했다.
이내 권태오는 내 몸을 돌려세웠다. 홱 돌아서자 차가운 냉장고 문짝이 배에 닿았다. 괜스레 손잡이를 움켜쥐고 더운 숨을 식히는데, 흥분에 찬 목소리가 내려앉았다.
“좆… 박기만 하고, 안에 안 쌀게.”
“…….”
“어제 싼 게 남아 있어서 빼 주려는 거야. 손가락으론 다 안 빠질 거 같아서 넣는 거뿐이야. 응? 우신아, 이해하지?”
“…개소리하지 마.”
말도 안 되는 헛소리에 참지 못해 을러놓자, 낮은 웃음소리가 연이어 내 귀를 간질였다. 커다란 손이 뱀처럼 허리를 타고 올라왔고, 파자마 옷자락을 사이에 두고 가슴을 주물거리며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나는… 이우신, 네가 욕하면 너무 흥분돼…. 몰랐는데 사실 변태인가 봐.”
진지한 목소리로 바보같이 고민하는 소리에, 나는 입술을 꾹 악물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버티는 내 허리를, 권태오가 와락 껴안았다.
“대답해 줘. 우신아…, 한 번만….”
뭉근하게 맞닿는 몸의 온도가 따끈따끈했다. 들끓는 성욕을 주체하지 못하는 권태오는, 오히려 고등학교 시절보다 어려진 것 같았다. 이제야 그에게 사춘기가 온 것 같았다. 아니 어쩌면 발정기일지도 몰랐다.
“응? 우신아.”
재촉하는 목소리에 나는 냉장고 문짝을 꽈악 움켜잡았다. 그리고 말했다.
“…지금…, 알겠다고 가만있는 거잖아….”
말하기가 무섭게, 묵직한 성기가 뒤를 쑤시고 들어왔다. 취기에 달아올라 마구잡이고 들쑤신 지 오래 지나지 않은 탓에, 권태오의 말처럼 내 뒷구멍은 말랑말랑하게 풀어진 상태였다. 오히려 어젯밤보다 더 수월하게 그의 성기를 받아들였다.
“헉, 헉….”
들뜬 숨소리를 훅훅 뱉으며 권태오가 몸을 밀어붙이자, 그와의 키 차이를 못 이겨 나는 발뒤꿈치가 꼿꼿하게 들렸다.
“하아, 아, 아….”
살짝살짝 뒤로 뺐다가 쳐올릴 때마다 속을 채운 성기가 보다 깊게 들어왔다. 철썩거리는 소리가 예닐곱 번 반복될 즈음 허벅지가 덜덜 떨리고 두 무릎을 오므려졌다. 개처럼 붙어먹는다는 게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일까 싶었다.
“허억, 윽… 우신아, 아….”
“아, 아, 아…, 아!”
덜컹덜컹 몸이 흔들릴 때마다 숨결마저 뚝뚝 끊겼다. 커다란 성기가 제 자리라는 양 억지로 속을 쑤셔대는 통에, 아랫배에서 홧홧하게 열이 오르고 눈물이 주르륵 흘렸다. 박자에 맞추어 덜렁덜렁 흔들리는 내 성기 끝에서 맑은 액체가 흘러나왔다.
“빠, 빨리… 흑, 빨리….”
그냥 싸 달라는 말은 차마 내뱉을 수 없어, 나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부엌 바닥에 대고 사정하고 싶진 않은 마음에 조금 더 인내하며 버티려는데, 대뜸 오른발이 붕 떴다. 권태오가 내 무릎 밑을 움켜쥐고는 번쩍 들어, 옆으로 벌린 것이었다.
“아, 흑, 아아!”
다리가 허리 높이만큼 들리고 엉덩이가 벌어지자, 속을 쑤시는 성기가 더 깊어진 듯했다. 뒤로 빠져나갔던 성기가 도로 깊이 박혀 올 때마다 내 머릿속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고개를 거칠게 흔들며 나는 내 허리를 잡은 손등을 마구 긁었다. 그러나 떼어 내려 하면 할수록, 권태오는 나를 더욱 세게 붙들고 막무가내로 몰아쳤다.
“아윽…, 윽!”
한 발로 겨우 몸을 지탱하고 서 있다가, 힘이 빠져 주저앉으려는데 그것마저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 내 상체를 휘어잡듯 껴안은 권태오의 팔 때문이었다. 뺨이 냉장고 문에 붙고, 두 발이 허공에 뜨다시피 한 채 나는 마구잡이고 쳐 대는 행위에 밀쳐지고 또 밀쳐졌다.
“헉, 헉…!”
권태오가 깊숙이 쳐올릴 때마다 내 발끝이 바닥에서 떨어졌다.
“악! 앙, 아아…!”
똑바로 버티지 못하고 앞으로 고꾸라지려 하길 여러 번, 나는 중심을 잃고 냉장고 문에 머리를 쿵 부딪쳤다.
그 순간 권태오가 신경질이 난 듯 신음하며 내 상체를 번쩍 안아 올렸다. 속을 찌르는 커다란 이물감에 식은땀을 뚝뚝 흘리며 나는 그의 팔에 들려 움직였다. 정신없는 시야며 두 발이 이리저리 흔들리더니, 이내 식탁 위에 상체가 털썩 엎어졌다.
“하아, 하아….”
서늘한 식탁에 몸을 붙이자마자, 찌걱거리는 소리를 내며 재차 몸이 맞붙기 시작했다. 온몸의 힘이 빠져 버린 채 나는 식탁에 완전히 엎어졌고, 내 몸과 함께 식탁 다리가 삐걱거리며 앞으로 덜컹덜컹 밀렸다.
“잠…깐, 흑. 응! 잠깐마안…!”
나는 고개를 마구 내저으며 식탁 가장자리를 손으로 움켜쥐었다.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없고, 등 뒤로 권태오의 호흡만이 들렸다.
“하아…, 윽…, 하아….”
그 소리가 너무 낮아서, 내가 아는 권태오의 목소리처럼 생각되지 않았다. 덜컥 공포심이 고개를 추켜들었다.
“아, 아… 자, 잠깐, …아!”
그만두라고 두 팔을 마구 휘젓는데, 연이어 살 맞는 소리와 함께 굵은 성기가 내 속을 마구잡이로 쑤시고 들어왔다. 턱, 턱… 울리는 소리를 내며 식탁에 들러붙은 채 나는 덜컹거렸다.
“잠, 깐…, 컥, 콜록…!”
숨구멍이 턱 막히는 듯해 기침하다가, 나는 기어코 울었다.
“그만해! 그만하라고…!”
날 선 목소리로 바락 외치자, 허리를 움켜쥐던 손이 서서히 풀렸다. 얼얼한 통증에 이마를 구기며 나는 눈물을 줄줄 흘렸다. 왈칵 터져 나온 설움에 주먹을 꽉 말아 쥐고, 얼굴을 가리며 말했다.
“흑, 읏, 싫다잖아…. 이렇게 세게 하는 거, 흑…, 싫단 말이야….”
꽉 쥔 주먹을 덜덜 떨며 말하는데, 이런 나를 권태오가 어떻게 바라볼지 걱정스러웠다. 그러면서도 나는 터져 나오는 말들을 멈추지 않았다. 섹스할 때마다 다른 사람처럼, 낯설고 사납게 느껴지던 권태오의 문제를 알아차렸기 때문이었다.
그는 나와 섹스가 아니라 경기를 하는 것 같았다.
“태오야, 너 왜… 왜 자꾸…. 흐, 윽…, 난 너랑, 너랑 싸우려는 게 아닌데, 자꾸…. 흑, 네가 날 이기려고, 짓뭉개려고 하는 거 같아서, 흑, 나 너무…. 이런 식으로는 싫어, 하기 싫어. 무서워….”
주먹으로 입술을 꽉 누르며, 눈을 지르감고 건넨 말이었다. 볼품없이 오들오들 떠는 내 어깨를, 커다란 손이 아주 천천히 붙잡았다. 애써 눈을 떠 뒤를 돌아보는데, 눈꺼풀마저 파르르 떨렸다.
그리고 권태오가 보였다. 꼭 나만큼 당황한 얼굴로, 그는 손을 떨고 있었다. 한참 허공에 댄 채 머뭇거리다가, 두 팔을 뻗어 내 허리를 와락 끌어안았다.
“하아….”
그러고는 식탁을 꺼뜨릴 것처럼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미안해.”
부드러운 입술이 내 귓가에 닿았고, 속삭이는 목소리가 물리력을 갖춘 것처럼 귓바퀴를 간질이며 파고들었다.
“무섭게 할 생각은 아니었는데…. 나는 너무… 너무 흥분이 돼서… 주체가 안 돼서 그랬어. 네 몸이, 너무 좋아서….”
그렇게 속삭이는 말끝에서조차 벌건 흥분이 묻어났다. 거칠고 딱딱한 손가락이 내 가슴의 살갗을 짓뭉개듯 누르며 쓰다듬었다.
“피부가… 존나 너무 부드럽고….”
너른 몸통이 커다란 지붕처럼 내 등허리를 완전히 덮었다.
“…네 구멍도, 하아, 존나 조이는 게… 너무 기분 좋아. 너무 흥분돼서 그랬어.”
등줄기에 소름이 오스스 돋았다. 끅끅거리며 울음의 여운을 삼키는 내 볼에, 권태오가 마구 입술을 맞춰대기 시작했다. 눈물을 줄줄 흘리며 나는 막힌 숨구멍을 뚫듯 다소 힘겹게 호흡했다. 헐떡헐떡 가쁜 숨을 들이쉴 때마다 권태오가 말한 ‘내 구멍’이 움찔움찔 수축하는 게 느껴졌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우신아. 많이 무서웠어?”
“흑, 응….”
“정말 미안해…. 그럼 그만 할까?”
“응…, 여기선 안 할래.”
그러나 내 말이 떨어진 뒤에도, 권태오는 밀착한 몸을 떼어 내질 않았다. 침묵 안에, 내 몸을 훑어 내리는 눈길과 덜 해소된 성욕에 대한 미련이 느껴졌다.
나는 느릿느릿 입을 열었다. 권태오에게 내 상태를, 정확하게 각인시킬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태오야, 나… 마육육이야.”
“…….”
‘마육육’, 유도 체급으로 따지면 -66㎏이란 의미였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스르륵, 내 상체를 붙든 팔이 풀렸다. 뒷구멍을 꽉 채우고 있던 성기도 뒤로 빠져나갔다. 이를 악물고 나는 빠끔빠끔 벌어진 구멍이 다물어지는 감각을 느꼈다.
“흐….”
신음을 꾹 삼키며 고개를 돌리자, 어느 때보다 충격받은 얼굴을 한 권태오가 보였다. 두 눈동자가 갈 곳을 잃어버린 채 좌우로 바삐 흔들거리며 내 전신을 천천히 살폈다. 전과 달리, 이번에 그의 검은 눈에는 성욕이 실려 있지 않았다. 차라리 그 눈동자에는 약간의 자기혐오가 실려 있는 것 같았다.
“진짜야?”
믿기지 않는다는 듯 권태오가 말했다.
“너… 진짜 몸무게… 그것밖에 안 나가?”
나는 연신 고개를 끄덕거렸다. 권태오의 시선이 천천히, 식탁 아래로 축 늘어진 내 하얀 다리를 살폈다. 그에 비하면 근육이라곤 없는 편인 허리도, 어깨를 움직거릴 때마다 도드라지는 날개뼈도, 딱 벌어진 어깨 끝의 뼈대도 살폈다. 그러더니 이마를 짚으며 긴긴 한숨을 내쉬었다.
‘됐다.’
이젠 나를 좀, 동정하며 봐주겠지… 생각하며 나는 머뭇머뭇 엎드린 몸을 일으켰다. 그 즉시, 권태오는 무척 조심스러운 동작으로 팔을 뻗어 나를 안아 들었다.
“가만있어, 마육육. 내가 옮겨 줄게.”
그러고는 계단을 밟고 2층으로 올라갔다. 바지가 벗겨진 채 나는 얼굴을 벌겋게 익히며 2층 복도를, 그리고 김이 모락모락 빠져나오는 욕실 문을 바라봤다. 권태오가 발로 가볍게 밀어 열자, 넓은 욕조 가득 채워진 연녹색 온수가 내려다보였다.
“뭐야…?”
맥 빠진 목소리로 묻자, 권태오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 바람에 그의 팔에 들린 내 몸이 위아래로 흔들거렸다.
“너 전에, 펜션 갔을 때… 입욕하는 거 좋아했잖아. 그게 생각나서 입욕제를 좀 사 놨거든.”
그는 나를 오른팔로 단단히 끌어안고, 왼손을 뻗어 물의 온도를 확인했다. 그러더니 내 몸을 욕조 안에 천천히 앉혔다.
“…….”
따끈한 물 안에 들어가니 온몸의 피로가 찌르르한 느낌과 함께 물 밖으로 빠져나가는 듯했다. 입을 다물고 올려다보는데, 권태오는 아이 다루듯 내 어깨를 매만지더니 물에 젖은 파자마 상의를 마저 벗겼다.
그러고는 내 머리칼을 두 손으로 마구 쓰다듬기 시작했다.
쪽!
이마 중앙에 입 맞추는 권태오를, 나는 힘껏 노려봤다.
“…섹스할 때 조심 좀 해 달랬지, 누가 평소에도 어린애 취급하랬어?”
또박또박 말을 하건 말건, 권태오는 재차 내 이마에 뽀뽀했다. 쪽, 쪽, 쪽… 뽀뽀 귀신이 붙었나, 입술로 내 얼굴을 뭉개려는 사람처럼 마구잡이로 뽀뽀하기 시작했다. 울컥 가슴 안에 열이 차올라서, 나는 주먹으로 권태오의 가슴이며 어깨를 마구 때려 주었다.
“저리 안 가?”
그제야 권태오가 슬금슬금 일어섰다.
“알겠어, 화내지 마.”
그러고는 눈치를 이리저리 살피다가, 커다란 덩치가 아깝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조심스럽게 큰 수건 한 장을 욕조 턱에 올려주더니, 욕실 밖으로 나가 버렸다.
나는 두 배로 큰 목소리로 외쳤다.
“빨리 일루 안 들어와?”
그러자 ‘하하하’ 웃음보 터진 소리가 들리더니, 몇 초 뒤에야 권태오가 들어섰다. 얼굴이 새빨갛게 익은 채 마구 웃으며, 권태오는 제 옷을 훌러덩 벗어 던졌다. 굵다란 팔뚝이며 말처럼 팽팽한 허벅지가 훤히 드러났다. 그가 욕조 안으로 들어오자 물의 절반이 촤아아 소리 내며 넘쳐흘렀다.
“이제 화 풀렸어?”
내 코끝을 집게손가락으로 가볍게 문지르며 닦으며, 권태오가 물었다.
“…너한테 화난 적 없어.”
야속한 얼굴을 흘겨보다가, 나는 권태오의 품 안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의 다리 사이에 몸을 앉히고 등을 기대자 권태오가 말없이 나를 끌어안았다.
“우신아.”
“응….”
“이제 정말로 안 그럴게. 내가 더 조심할게.”
“응….”
고개를 돌리며 나는 권태오의 아래턱에 입을 맞췄다. ‘쪽’ 소리를 내기 무섭게, 권태오가 나를 와락 끌어안았다. 어찌나 요란하게 포옹하는지, 남은 물의 절반도 욕조 밖으로 넘쳐흐를 지경이었다.
흠뻑 젖은 굵은 팔뚝에 볼을 기대며, 나는 그에게 내 온몸을 맡겼다. 더는 권태오에게 내 존재가 지나치게 무거울까 봐, 짐이 될까 봐, 혹은 버겁다고 느껴질까 봐 걱정되지 않았다.
다만,
“…태오야. 너 조심이 1층 욕실에 가둬 놓지 않았어?”
작은 속삭임으로 물보라를 일으킬 순 있었다.
‘허억’ 소리를 지르며 벌거벗은 채 욕실 밖으로 뛰쳐나가는 뒷모습을 보며, 나는 배가 당길 때까지 하하 웃었다. 잔뜩 토라진 듯 성난 조심이를 데리고 올라온 권태오가 ‘그만 웃어’ 하며 나를 타박할 때까지, 웃고 또 웃었다.
개강이 목전에 온 3월의 첫날, 나는 무난한 평상복 여러 벌, 볼펜 위주의 필기구와 새 노트, 실라버스를 챙겨 넣을 파일 하나, 그리고 한국대학교 홈페이지 강의 공지에 띄워져 있던 책을 샀다. 개강에 앞선 내 준비물은 그게 전부였다.
반면 권태오의 준비물은 커다란 캐리어 하나를 채우고도 모자라, 검정색 스포츠 가방을 하나 더 얹어 놓아야 할 지경이었다. 3월 1일, 청소년 국가 대표 출신 선수인 권태오는 한국 국가 대표 선수촌 합숙에 참여해야 했다. 3주간 오리엔테이션과 훈련을 거쳐, 하계 아시안 게임에 참여할 국가 대표를 선발할 예정이었다.
내가 다 떨릴 정도로 대단하고 또 중요한 합숙 훈련임에도 불구, 권태오는 떠나기 싫어 죽겠다는 얼굴로 죽상을 한 채 신발장 앞에 섰다.
“늦겠어. 얼른 가. 가서 훈련 열심히 해야지.”
두 팔을 쭉 뻗고 현관문 밖으로 꾹꾹 밀어도 권태오는 꿈쩍조차 하지 않았다.
“아, 왜. 가기 싫어 죽겠어, 진짜….”
3주라는 합숙 기간 내내, 얼굴도 보질 않고 어떻게 버티느냐며 야단이었다. 어차피 선수촌도 서울에 있는데 뭐가 문제냐며 달래 봤지만 소용없었다.
작게 침음하며, 나는 그를 자극하기 위해 최후의 수단을 꺼내 놓았다.
“나는 군대 면제야.”
단순명료한 문장이 떨어지자마자 권태오의 몸이 슬며시 뒤로 밀렸다. 당황한 얼굴로 권태오가 나를 내려다보았다.
“…너 군대 안 가?”
“응. 생계유지 곤란 사유로 면제야. 나 돈 없잖아.”
“…….”
여러 의미에서 장학금을 참 잘 받았다. 여차하면 ‘생계유지 곤란자’ 재산 기준액을 넘어설 뻔했는데, SS상호저축은행에서 주기로 한 장학금은 전액을 따지면 큰돈이나 6년간 총 12회에 나누어 받기 때문에, 지금으로서는 내 재산으로 계산되지 않았다. 덕분에 나는 군대에서도 거부하는 아주 완벽한 가난뱅이였다.
입을 다문 채 좌우로 눈만 굴리는 권태오의 손을 잡고, 나는 말했다.
“태오야. 내가 좀 알아봤는데, 네 경우에는 올림픽 대회에서 3위 안에 들거나 아시안 대회에서 1위를 해야 군 면제래. 정확히는 면제가 아니라 제33조의 7조에 따라 공익근무 체육 요원이 되는 거긴 한데, 국위 선양을 위해서 너는 유도 활동을 계속하면 되니까 결과적으로는 면제나 다름없지.”
한 자 한 자 또박또박 짚어 말하는 나를 보는 권태오의 눈동자 안에서, 작은 충격이 넘실거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맞잡은 손에 힘을 꼭 주었다.
“그러니까 너, 꼭 메달리스트가 되어야 해. 나 놔두고 군대 가 버릴 거 아니지?”
한참의 침묵 끝에,
“아, 미친….”
권태오가 내 말의 의미를 알아챈 듯했다. 지금 열심히 해서 국가 대표 선수가 되지 못하면, 나중에 무려 18개월 동안이나 나와 이별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이건 일종의 경고였다.
“욕하지 말고. 훈련 빼먹지 말고, 열심히 해. 태오 너 없으면 내가 어떻게 살아? 조심이 산책은 누가 시키고, 터그 놀이는 또 누가 해 줘?”
“알겠어….”
“훈련소 가서 선수들이랑 싸우지 말고, 밥 잘 챙겨 먹어. 코치한테 너무 다 내맡기지 말고, 네 컨디션은 네가 알아서 조절 좀 해. 새벽에 탈출해서 뛰쳐나오고 그러지 말고. 이제 어른이니까 너도 네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하니까.”
“아, 알겠다고.”
투덜거림 끝에 권태오가 현관문을 열었다. 그러고는 캐리어와 짐 가방을 끌어다가 문 밖에 먼저 내놓았다. 떠나려는 권태오를 향해 나는 손을 흔들었다. 잘 다녀오라고, 조심이 걱정은 하지 말라는 인사도 덧붙였다.
그런데 문을 나서기 직전, 권태오가 걸음을 멈췄다.
“우신아.”
“응?”
그리고 내 몸이 ‘퉁’ 소리가 나게 신발장에 밀쳐졌다. 입술을 덮으며 물고 빠는, 짐승 같은 키스가 마구 이어졌다. 허겁지겁 내 바지 버클을 풀어 내리는 손길에, 나는 얼굴이 새빨개진 채 억지로 입술을 떼어냈다.
“뭐, 뭐야? 왜…?”
떨리는 목소리로 그렇게 묻자, 권태오가 잔뜩 흥분한 채 말했다.
“지금 나가면 3주 동안 못 보는데. 21일을 내가 어떻게 참아.”
열 오른 두 눈동자 밖으로 벌써 그리움 같은 것이 애처롭게 넘실거렸다. 어쩌다 권태오가 이렇게나 어리숙해졌을까, 생각하자니 내게 그 책임이 있는 것 같았다.
그의 머리를 처음으로 쓰다듬어 준 사람인 죄로, 나는 헐떡거리며 권태오의 바지 단추를 풀었다. 지퍼를 끌어 내리기가 무섭게 그가 내 몸을 잡더니 홱 뒤돌아 세웠다. 커다란 신발장 위에 상체를 얹다시피 한 채 나는 바지와 속옷만 허벅지에 걸리게끔 끌어 내리고, 뒷구멍을 쑤시는 손길에 앞뒤로 흔들렸다.
“흐으, 흐읏….”
갑작스러운 관계에 당황한 심장이 펄떡펄떡 내달리기 시작했다. 이성도, 이게 뭐 하는 짓이냐고 소리를 지르는 듯했다. 그래도 권태오의 눈을 보면, 헐떡거리며 흥분한 채 달려드는 숨소리를 들으면, 이제는 제법 능숙해진 태도로 손가락을 구부려 가며 느끼는 지점을 찾아 들쑤셔 올 때면, 나는 순순히 뒤를 내어 줄 수밖에 없었다.
다리에 힘이 빠져 후들거릴 때쯤, 뒤를 바삐 쑤시던 손가락이 물러났다. 권태오는 꺼덕꺼덕 발기한 내 것을 부드럽게 감싸 쥐더니, 동시에 말랑해진 내 뒤에 제 것을 쑤시기 시작했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동거를 시작하고 섹스를 안 한 날이 없다 보니 나는 전보다는 수월하게 뒤의 힘을 뺄 수 있었다.
“헉…, 우신, 아, 큭… 힘 좀 빼 봐.”
…뺀 건데….
잠시간 헐떡거리며 땀을 뻘뻘 흘린 끝에, 권태오의 굵은 성기가 속을 완전히 찌르고 들어왔다. 이렇게나 급하게, 또 짧게 할 것 같으면 전부 넣지 않아도 좋을 텐데… 생각만 할 뿐, 나는 내 육신을 최대한 옭아매고 싶어 하는 그의 열망을 내칠 방법을 몰랐다.
“아…, 응!”
다만 신음성을 토해 내듯 뱉으며 파르르 떨 뿐이었다.
“하아, 하아….”
헐떡헐떡 신음하며, 권태오가 내 것을 움켜쥔 손을 흔들기 시작했다. 뒤로는 턱, 턱… 몸 부딪치는 소리가 나도록 허리를 잘게 쳐올렸다. 앞뒤로 밀려드는 자극에 나는 온몸을 바르르 떨며 경련했다. 아주 잠깐 지나치다 싶을 만큼 좋았다가, 이내 정말로 지나치게 되어서는 곧 죽을 것 같은 성감이 밀려들었다.
“아, 아…, 아응! 아…!”
신음마저 배 속을 쳐올리는 박자에 따라 잘게 쪼개졌다. 나는 두 손을 바삐 뒤로 뻗었다. 권태오를 마구 때리고 긁으며, 뒤로 밀쳐 내려 애썼지만, 자세가 불편해 손에 힘이 실리질 않았다. 그런 내 두 팔마저 권태오가 옭아매듯 붙잡았다.
뒤로 홱, 당겨지는 힘을 못 이겨 허리가 젖혀졌다.
“앙, 아윽….”
“허억, 헉, 우신아, 아….”
“흐윽…!”
숨이 꽉 막힐 때마다 나는 근육을 움찔움찔 수축시켰고, 권태오는 제 성기를 조이는 압박감을 못 견뎌 사랑스러운 신음을 낮게 내질렀다.
벌벌 떨고 소리를 내질러 가며, 우리는 누가 어떻다 말할 것 없이 짐승처럼 붙어먹었다.
“빨리, 싸…, 태오야, 빨리….”
이러다 훈련소 첫 입소날 지각을 하게 될까 봐, 나는 다급하게 소리 내어 말했다. 그러자 권태오가 나를 와락 끌어안고는, 내 엉덩이 밑에 고환이 닿도록 거세게 성기를 박아 넣었다. 신발장 벽에 이마가 닿도록 거칠게 내붙여진 채, 나는 맥없이 토정했다.
“아…!”
짧은 신음을 내지르며 권태오가 부르르 몸을 떨었다. 열기로 달아올라 거의 분홍색이 된 내 허벅지 사이로, 그가 싸지른 하얀 정액이 줄줄 흘렀다.
“하아, 하아….”
짧고 거친 섹스의 여운에 정신을 못 차리는 내 뺨에, 권태오가 마구잡이로 입을 맞춰댔다.
“아, 우신아…. 너 없이 내가 어떻게 살지?”
“흐으…, 나는, 하… 너 없으면, 좀 살 만할, 거 같아….”
숨을 헐떡헐떡 몰아쉬며 겨우 대꾸하자, 권태오가 실소했다. 그러고는 내 귀를 깨물고 또 빨아 대며 잠시간 나를 못살게 굴었다. 팔을 마구 휘두르며, 나는 권태오의 옆구리를 퍽퍽 두드렸다.
“빨리, 가…! 늦겠어, 이러다가….”
“알겠어, 알겠어.”
쉽게 들려온 대답과 달리, 내 속에서 조금 말랑해졌나 싶던 그의 성기가 다시금 부피를 키워 나갔다. 이를 악물고 나는 고개를 도리질했다.
근래, 권태오에겐 열 받는 습관이 하나 생겼다. 아직 서지도 않은 제 걸 내 뒷구멍에 되는대로 쑤셔 넣고는, 내 허리를 쥐고 마구 흔들어 제 걸 조이게 하는 식이었다. 속에서 점점 단단하게 커지는 권태오의 남성을 느낄 때면 나는 아주 수치스러웠고 또 화가 났다. 속을 채우는 감각에 어김없이 흥분이 되어, 성기가 달아오르고 신음성이 터져 나갔기 때문이었다.
“씨, 하지 마…!”
“왜? 하아, 씨발… 기분 좋아.”
“하…지 마, 읏, 그…만, 그만, 해!”
아니나 다를까, 권태오는 내 허리를 움켜쥐고 앞뒤로 세게 흔들기 시작했다. 온몸이 덜렁덜렁 권태오의 팔에 붙들린 채 흔들렸다. 내 몸으로 딸을 치는 것 같아서, 기분이 정말로 이상했다. 그 와중에 얼얼한 열기가 전염된 듯, 성감을 느끼는 나도 참 이상했다.
“태오, 야, 아, …잠깐, 아…, 흑, 아!”
마구 흔들거리는 전신에 열꽃이 피어올랐다. 당장이라도 고꾸라질 것처럼 고개부터 두 다리에 이르기까지 마구 구부러지는데, 권태오가 단단히 쥐고 받치는 탓에 내 멋대로 넘어질 수조차 없었다.
“앙, 앗…, 흡….”
야한 신음성을 내지르자마자, 나는 두 손으로 입을 텁 틀어막았다. 눈을 꽉 감고 소리를 참아내는데,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성감을 느낄 때마다 왜 눈물이 나는 건지, 나도 내 몸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흑, 읍…, 흐윽….”
바르르 떨며 애처럼 우는 내 뺨에, 권태오가 제 뺨을 바짝 붙였다.
“하아…, 너 진짜, 은근히 울보야.”
마구잡이로 나를 뒤흔들던 동작을 멈추며, 그는 내 성기를 움켜쥐고 쓸어 올렸다. 쥐어짜 내는 듯한 손길에 못 이겨 나는 훌쩍훌쩍 울며 두 번째 사정했다. 정액이 신발장 벽에 마구 튀었다.
“아, 아윽, 응…!”
마치 제가 사정한 양 권태오는 거친 숨을 마구 뱉어 내더니, 내 오른쪽 귀를 콱 깨물었다. 거센 통증에 나는 온몸을 바짝 웅크렸다. 뒷구멍이 꽉 조이며 권태오의 것이 더욱 깊숙이, 쑤욱 밀려들었다.
헐떡거리며 권태오는 그 감각을 즐기더니,
“으음, 우신아….”
음미하듯 내 이름을 부르며 나를 꽉 끌어안았다. 아랫배가 불룩 튀어나온 채 나는 정신없이 그에게 몸을 기댔다. 잠시간 말없이 내 육신이 주는 감각을 만끽하다가, 권태오는 느긋하게 사정했다.
“아, 으음….”
꾸역꾸역, 앞서 속을 채운 정액이 비좁은 구멍 밖으로 삐져나오는 게 느껴졌다. 전신의 체온이 지나치게 달아올라서, 살갗 위로 모락모락 김이 오를 것 같았다.
“우신아…. 형아 진짜로 갔다 올게. 조심이랑 얌전히 잘 기다려. 알았지?”
“아, 으응, 알았어….”
“모르는 사람이 사탕 준다고 해도 문 열어 주면 안 돼. 응?”
“알겠다고….”
딱딱하니 굳은살이 박인 손으로 권태오는 내 눈물을 슥슥 문질러 닦아 주더니, 이마 위에 ‘쪽’, 두 볼에 또 ‘쪽쪽’, 입술에도 미친놈처럼 ‘쪽쪽쪽쪽쪽’ 뽀뽀를 퍼부어 댔다. 마구 구겨졌던 미간이 별수 없이 펴졌다.
나는 웃고야 말았다.
“빨리 가아, 좀….”
“또, 또. 마음에도 없는 소리 하지?”
권태오가 큭큭 웃으며 내 콧등을 손끝으로 건드렸다. 그렇게나 무심하고, 그렇게나 대단하던 권태오가 이렇게 애교쟁이 능구렁이가 될 줄을 누가 알았을까….
나는 멍하니 그의 웃는 얼굴을 바라보다 말했다.
“선수촌 가서 아무한테나 그렇게 웃어 주지 마. 너 웃을 때 보조개 들어가는 거 너무 귀여우니까, 안 보이게 조심해서 다녀.”
그러자 권태오가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아주 웃긴 말을 들었다는 듯 ‘허’ 하고 실소하기도 잠깐, 왼쪽 눈썹을 올리며 말했다.
“이우신, 너도 보조개 아무한테나 보여 주지 마.”
“나? 나는 보조개 없는데….”
“있던데. 내가 봤어.”
그러더니, 권태오는 내 엉덩이 양쪽을 두 손으로 콱 움켜쥐었다.
“여기.”
엄지손가락으로 꾹, 볼기 위를 누르는 손길에 나는 폭설처럼 싸늘해졌다.
“…….”
심드렁한 얼굴로 노려보자, 권태오가 저 혼자 한참 웃더니 신발장 위에 놓인 티슈를 몇 장 뽑았다. 제 음모와 성기에 고인 정액 방울과 손을 대충 닦고 옷매무새를 다듬는가 싶더니, 새로 티슈를 뽑아다가 내 가랑이를 닦아 주려 들었다. 고개를 열심히 내저으며, 나는 엉거주춤 더러워진 바지를 그대로 올려 입었다.
“난 씻을 거니까, 너는… 얼른 가, 얼른. 어차피 선수촌도 서울인데, 뭐가 아쉬워서 이렇게 버텨?”
그러고는 벌써 세 번째, 권태오를 현관문 밖으로 떠밀었다. 그제야 권태오가 아쉬움을 뒤로한 채 정원으로 향했다. 풀밭 가운데에서 광합성에 한창인 조심이에게 ‘형아 잘 지켜’ 인사를 건네고는, 캐리어 바퀴를 드르륵 끌며 대문을 열고 나섰다.
그제야, 나는 다리에 힘이 죄 풀려 신발장에 주저앉았다. 이러다 제 명에 못 살겠다고 잠깐 한탄했고, 콘돔 챙기는 버릇을 진작부터 들였어야 했다고 짧게 후회했다. 그리고… 앞으로 3주간은 발정난 개처럼 달라붙는 섹스도, 잘 때마다 무겁게 내 가슴을 짓누르는 팔뚝도, 목욕할 때마다 호시탐탐 기회를 노려 끼어드는 거대한 몸뚱어리도 없겠구나 생각했다.
그러고 나니 아주 작은 해방감과, 커다란 외로움이 나를 덮쳤다. 조심이가 다가와 내 얼굴을 핥을 때까지, 나는 멍하니 닫힌 대문을 바라보며 앉아 있었다.
컴컴한 밤에는 권태오와 전화했다. 그가 없으니 지나치게 넓게 느껴지는 침대 위에 조심이와 함께 누워서, 나는 오후 내내 소설책 두 권을 읽었고, 장세라와 오랜만에 전화했으며, 내일 첫 강의 시간에 입고 갈 옷을 골라 두었다고 근황을 보고했다.
―한국대에서 제일 유명한 신입생 될 준비도 다 했고?
묻는 말에는 작게 실소할 따름이었다. 올해 유일한 수능 만점자가 된 감상이 어떠냐고 묻는 9시 뉴스 인터뷰에 대고 심드렁하게 대답한 일 때문에 그러잖아도 곤란한 참이었다. 멍한 얼굴 아래에 ‘그냥 만점이구나….’ 자막이 입혀진 캡쳐 이미지가 한국대 커뮤니티에 올라왔다고, 장세라도 내게 알려 주었었다.
“그거야 뭐, 준비할 게 있나….”
머쓱한 기분에 괜히 입술을 핥으며, 내가 물었다.
“너는 선수촌 가니까 어때. 좋아?”
―응. 완전!
“…….”
조금 서운한 척, 보고 싶은 척, 아쉬운 척을 해 줄 법도 한데 권태오는 해맑았다. 기쁜 듯 들리는 목소리에 나야말로 서운하고, 보고 싶고, 아쉬워졌다.
“…뭐가 그렇게 좋아?”
조금 뚱해진 마음에 그렇게 묻자, 1초의 망설임도 없는 대답이 튀어나왔다.
―여기 트레이닝 센터가 진짜 좋아.
“…아하.”
맞다. 우리 태오 운동 바보지….
그러고는, 트레이닝 센터에 아주 좋은 기구가 있는데 허리 운동에 제격이라느니, 러시아 선수를 만났는데 경합이 좋았다느니, 공주윤이 추가 모집 인원으로 혼자 뽑혀 들어왔는데 근성이 대단하다느니, 방 안에도 운동 기구가 마련되어 있어 깨자마자 몸을 풀 수 있다고 했다. 조잘조잘 이어지는 말소리를 들으며, 나는 싱글싱글 웃음 지었다.
“벌써 보고 싶어, 태오야.”
그리고 무심결에 속삭였다.
―…….
“…….”
아주 잠깐, 휴대폰 너머의 권태오도 나도 말을 잇지 못했다. 나는 애꿎은 조심이의 정수리만 검지 끝으로 긁어내리며 입술을 살짝 비틀었다.
짧은 침묵 끝에, 권태오가 말했다.
―…이제는 어른이니까 탈출하지 말라며.
“하하.”
애써 웃음소리를 내며, 나는 휴대폰에 귀를 붙였다. 그냥 해 본 말이라고 설명을 덧붙이고, 네가 누워 있던 자리는 이제 조심이 자리가 되었다는 근황도 알려 주었다. 그러자 권태오는 ‘응’ 하는 시무룩한 대답 소리를 들려주었다.
“태오야, 사랑해…. 훈련 힘내.”
―응….
“오늘은 일찍 자야지.”
―응….
“사랑해.”
―…….
이번에, 밀려온 침묵은 나를 기분 좋게 만들었다. 몇 번을 말해 주어도 권태오는 나의 ‘사랑해’에 선뜻 응답하질 못했다. 쉽게 적응하지 못하는 만큼이나, 매번 난생처음 듣는다는 듯 이마와 두 뺨을 새빨갛게 붉히고서 우물쭈물하기 마련이었다.
그러고는 숨을 두 번 크게 들이쉰 다음에야,
‘하나, 둘….’
용기 내어 대답을 들려주었다.
―나도 사랑해, 우신아….
콩닥콩닥 심장 뛰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침대에 풀썩 몸을 눕혔다. 전화기에 대고 두어 번 더 사랑을 고백한 뒤에야, 잘 자라는 인사를 건네고 뜨거워진 휴대폰을 그보다 더 뜨거워진 손가락으로 끌 수 있었다.
등줄기로 피어오른 애정을 느끼며 나는 권태오가 쓰던 베개에 얼굴을 푹 파묻었다. 조심이가 살랑살랑, 꼬리치며 내 발목을 연신 간질였다. 작게 소리 내어 하하 웃다가, 나는 베개에 묻은 체취를 들이마시며 멍하니 시간을 보냈다.
휴대폰이 재차 진동한 것은 그로부터 40분쯤 더 지난 뒤였다. 까무룩 선잠에 들었다가 나는 화들짝 놀라 깨어났다. 멍하니 눈을 끔벅이며 시계를 확인해 보니, 내일이 오기 직전인 11시 59분이었다. 휴대폰 액정 가득 떠오른 발신인의 이름을 확인하자마자, 현관 벨이 울리는 소리가 ‘딩동, 딩동’ 들려왔다.
휴대폰을 오른손에 꽉 쥔 채 나는 침실 밖으로 달려 나갔다. 조금은 허둥지둥하며 계단을 뛰어 내려가는 내 옆으로, 조심이가 헐레벌떡 따라붙었다. 재차 ‘딩동’ 벨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활짝 웃으며 문고리를 움켜쥐었다.
기대감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