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최선의 꼴 (14/16)

최선의 꼴

나는 조용히 문제집 안에 시선을 고정했다. 교실 안을 가득 채운 소란, 책상 앞을 분주히 오가는 다리, 이리저리 떠들어 대는 말들, 앞뒤로 설쳐 대는 기운을 무시하려 노력했다.

침착하게 문제를 풀어 내리는 내 고독을 교실 안의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아이들에게는 제멋대로 떠들어 댈 자격이 주어진 듯 보였다. 오늘이 한국대 수시 2차 발표일이라는 이유에서 말이었다.

힐끔 시선을 들고 살피자, 멀찍이 박민아를 둘러싼 무리가 보였다. 개중 박민아의 남친이라는, 멀대 같은 남자애 하나가 캠코더를 들고 있었다. 오늘 교실이 소란한 이유도 다 저놈이 개인 동영상 채널에 올릴 브이로그를 찍겠다고 나선 탓이었다. 다른 것도 아니고 제 여자 친구가 수시 2차 면접을 통과했는지 확인하는 모습을 찍어서, 보관만 하는 것도 아니고 불특정 다수가 보는 인터넷에 전시를 하겠다니 나로서는 황당한 이야기였다.

그런데 아이들은 그 황당함을 사랑하는 모양이었다. 한국대에 수시 원서를 접수한 3학년이란 3학년은 죄 우리 교실로 모여들어서, 무리의 머릿수가 점차 늘어났다.

나는 반도 못 푼 문제집을 탁 소리 나게 덮었다. 웅성거리는 소리들이 시끄러워서 도무지 집중할 수가 없었다.

고개를 들어 칠판 위에 걸린 시계를 확인했다.

‘11시 29분….’

아이들의 시선도 온통 시계나 휴대폰을 향해 있었다. 수시 2차 면접 결과를 홈페이지와 문자 메시지로 알려 준다던 시간이, 오전 11시 30분이었다. 틱, 틱… 초침이 움직이는 모습을 나는 물끄러미 쳐다봤다.

‘58초, 59초….’

초침이 숫자 12에 멈추어 서자마자 휴대폰이 하나둘 울리기 시작했다. 진동음과 알람음이 여러 방식으로 울리는 교실 안에서, 나는 내 휴대폰 화면 위로 떠오르는 문자 메시지 알림을 가만히 바라봤다.

“야야, 한 명씩 까! 한 명씩 반응 찍게!”

캠코더를 든 놈이 소리를 버럭 질렀다.

“자아… 우리 민아부터! 민아야, 여기! 카메라 보고 기분 좀 말해 봐. 어떻게 될 거 같아?”

왁왁 시끄러운 녀석들을 등지고, 나는 벽에 어깨를 붙였다. 검지로 톡톡 액정을 두들기고는, 도착한 문자 메시지를 확인했다.

“…….”

휴대폰을 보는 속도는 누구나 비슷한지라, 그와 동시에 비명이 교실을 가득 채웠다. 문자를 확인한 박민아가 내지른 환호성으로 귀가 따가울 지경이었다. 눈썹을 찌푸리며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손에는 휴대폰을 꽉 쥔 채였다.

교실 앞문으로 향하는 나를, 번지르르한 캠코더가 불쑥 가로막았다.

“야, 이우신. 너도 한국대 수시 넣었댔지? 어디 과냐? 합격 발표 난 거 확인했냐?”

“어.”

나는 눈썹을 찌푸리며 캠코더를 손으로 밀어 치우려 했다. 그러나 놈이 팔을 높이 들더니 각도를 트는 바람에, 내 손은 거기까진 닿지 않았다. 짜증스러운 기분에 카메라 렌즈를 노려봤다.

“표정이 왜 그래? 떨어졌냐? 아니면… 붙었냐?”

“어.”

대충 대답해 주자, ‘뭐’ 하는 외침과 ‘와’ 하는 환호성으로 교실이 대번에 소란스러워졌다. 나는 덤덤한 얼굴로 교실 앞문으로 나섰다. 드르륵 문을 열고 나서는 내 뒤로, 남자애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저, 저 미친 새끼…. 한국대 붙어 놓고 반응이 저게 다야?”

“이우신 저 새끼 저거 사람 아니라니까. 로봇이야, 로봇.”

한숨을 작게 내쉬며 나는 복도를 가로질렀다. 빠른 걸음으로 본관을 벗어나 산책로를 향해 걸었다. 오른손 안에서 휴대폰이 반짝거리기에 내려다보니, 강건우가 보낸 메시지가 보였다.

강건우

[빵사왓더니어디감??

합격빵먹어야지!!!!!!!]

합격 빵이고 뭐고 지금 교실로 돌아갔다간 손바닥으로 내 등이나 쳐 댈 게 분명했다. 소란스럽고 또 요란스러운 공간으로 돌아가는 대신, 나는 산책로를 걸어 올라갔다.

오늘따라 유독 하늘이 맑고 높았다. 볕이 이리저리 투과되어 번지는 통에 잣나무길이 몹시도 환해 보였다.

‘이 길이 이렇게 예뻤던가?’

나는 조금 당황했다.

‘학교 건물이… 이렇게 보기 좋았었나?’

얼떨떨한 기분에 잠겨 혼자 걷는 두 발이 가뿐했다. 채홍관이 모습을 드러내자 체중이 사라진 것 같았다. 날듯이 걸어가, 나는 채홍관의 철문을 천천히 밀어 열었다. 조심스럽게 들어서자 저 멀리, 훈련에 한창인 권태오가 보였다.

거친 숨소리와 기합이 메아리치듯 귀를 울렸다. 얼굴 위로 물을 끼얹듯 밀려드는 체취를 맡으며 나는 관중석으로 향했다. 멀찍이 떨어진 자리 세 번째 줄에 털썩 앉아, 조용히 손을 모아 쥐었다.

한참 발을 뒤로 내빼고, 기술을 걸며 상대 선수와 맞붙는가 싶더니, 권태오의 시선이 내게 닿았다. 어찌할 새도 없이 두 눈이 마주쳤다.

그와 동시에 권태오가 상대 선수를 제 어깨 힘으로 넘겨 버렸다.

쿵.

덩치 커다란 2학년 선수가 경기장 바닥 위에 나자빠졌다. 코치가 얼른 그들 사이로 달려가는데, 권태오는 고개를 치켜들고 활짝 웃었다. 그러더니 나를 향해 뛰어왔다.

관중석 펜스를 훌쩍 뛰어넘는 두 다리가 가뿐해 보였다.

“우신아. 무슨 일 있어? 표정이 왜 그래.”

훅 끼치는 살내음과 끓는 듯한 열기를 느끼며 나는 권태오를 올려다봤다. 왠지 모를 데자뷔를 느낀 탓에 심장이 쿵쿵거리며 달음박질을 해댔다.

“내 표정이 뭘?”

“너 엄청 기분 좋아 보이는데? 아니야?”

나는 연신 눈을 깜빡였다. 웃고 있지도 않은데 권태오 눈에는 그게 어떻게 보일까. 다른 애들은 기계다, 로봇이다… 다들 그러는데 권태오는 내 얼굴도 아니고 기분을 따라 활짝 웃었다.

“나… 수시 면접 합격했어.”

조용히 소식을 전해 주자,

“뭐?”

권태오의 외침이 천둥처럼 울렸다.

나는 깜짝 놀라 주위를 살폈다. 선수들이 잠깐 이쪽을 바라보긴 했지만 두어 명일 뿐이었다. 대다수는 채홍관 내에서 누가, 언제, 뭐라고 소리를 지르든 관심조차 없었다. 그 언젠가 공주윤이 하던 말처럼, ‘여기서 누가 목청으로 기네스북 신기록을 세운다 해도 목격자가 없어서 기록으로 못 남길 것’ 같았다.

이내 권태오의 두 손이 내 뺨을 잡았다. 저를 보게끔 위로 홱 들더니, 해사하니 눈부시게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날카로운 외꺼풀 눈매가 세상 순하게 휘어지고, 하얀 앞니가 드러나나 싶더니 옴폭 들어간 볼우물이 생겼다.

“우신아!”

기뻐하는 권태오를 올려다보며 나는 만족스러웠다. 권태오는 아주 멋진 대리인이었다. 그는 내게 주어진 기쁜 순간을 순전히 즐기지 못하는 나를 대신해 웃고, 기뻐하고, 짧게 환호성까지 내질러 주었다.

“거 봐! 나는 그럴 줄 알았어. 누가 네 얼굴을 보고도 탈락을 시키겠어? 그럼 이제 어떻게 되는 거야, 우신아? 입시 다 끝난 거야?”

“아니…, 아직. 수능 최저 학력 기준을 맞춰야 합격이야.”

“최저 학력 기준?”

‘한국대 수시 기준 수능 성적의 하한선 위로 등급을 따내면 된다’고 말해 주려 입을 열었다가 다시 다물었다. 그러고는 ‘음’ 하고 좀 더 가볍게 말을 골라냈다. 우리 태오는 단순한 걸 선호하니까….

“수능을 그럭저럭 잘 치면 된다는 뜻이야.”

“‘그럭저럭’이라는 거는, 남들이 아니고 네 기준에서 말하는 거지?”

“그렇지, 뭐.”

나는 평소답지 않게 수다스러워졌다.

“국어, 수학 가 영역, 영어, 과탐2 합해서 5등급만 받으면 되니까…. 하나 망쳐도 괜찮다는 뜻이지.”

그러자 미간을 웅크린 채 내 말을 듣던 권태오의 얼굴이 활짝 폈다. 그는 몹시 신난 듯 말했다.

“5등급? 그 정도면 껌이네! 나도 운 좋으면 5등급은 받는데.”

“태오…야. 합한다는 말의 의미를 몰라?”

나는 조금 망연자실해졌다. 수학 다섯 문제 맞혔다고 했을 때 알아봤어야 하는 건데, 권태오는 산수에 약한 편이었다. 지금 보니 그뿐만이 아니라 다른 과목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운 좋으면 5등급이라니…. 모집 기준 ‘실기 100’, 정원 ‘1명’, 학과명 ‘내 미래 남자친구’의 예비 합격자께서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조금 더 바보인 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축하해, 우신아.”

그러나 나의 바보는 아주 귀여웠다. 미소 지으면 백배로 잘 생겨졌고, 웃을 때면 목소리가 반 톤쯤 더 낮아져서 심장을 간지럽게 했다. 나도 모르게 그를 따라 웃으려다, 조용히 입꼬리를 내리눌렀다.

“축하는 무슨….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계속 공부해야 해.”

애써 표정을 지우며 나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러고는 다짐하듯 말했다.

“이렇게 쉽게, 다 잘될 리는 없어.”

“너는 참….”

이내 권태오의 표정이 묘해졌다. 웃음기가 아직 남아 있는데, 두 눈에는 뭔지 모를 조용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검은 눈 안에 담긴 내가 유달리 작고 새하얘 보였다.

“…힘들게만 생각해, 왜 맨날.”

“…….”

나는 그저 입을 다물고 웃어 보였다. 이런 내가 다른 누구의 눈에 답답해 보일지라도 별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몇몇 아이들은 수시에 붙어 놓고도 유난이라고 욕을 할 테고, 질투도 할 것이고, 열등감을 느끼겠지만 나로서는 최선을 다하는 것만이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다.

다른 아이들이 제 허리 높이의 계곡물에서 태어났다면 나는 바다 한가운데에서 났다. 최선을 다해 두 발을 휘젓지 않으면 언제 가라앉을지 모른다. 지금 떠올라 부표라도 잡지 않으면 미래라고 부를 만한 그 무엇이 없다. 그래서 나는 늘 힘들었다.

문득, 권태오가 내 머리를 만져 주었다. 머리칼을 앞뒤로 쓰다듬는 거친 손길이 몇 초간 이어졌다. 나는 놀랐다. 기분이… 너무 좋아서. 너무 좋아서 놀라울 지경이었다.

“뭐야?”

멍하니 물어도 권태오는 웃기만 했다.

“잘했으니까 칭찬하는 거야. 잘했어, 우신아.”

“…….”

권태오는 알았다. 가라앉는 게 무서워서 미친 듯이 노력하는 내 어제가 어땠었는지, 권태오는 알았다. 알고도 나를 칭찬해 주었다.

“너라면 앞으로도 잘할 수 있을 거야. 그렇지?”

“…….”

사람은 저와 닮은 이를 사랑하게 된다고 그랬던가….

한때 나는 그 말을 비웃었었다. 내가 좋아하는 권태오는 나와는 대척점에서 태어난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권태오는 내가 사는 세상이 어떤지 모를 것이라고, 섣부르게 판단했던 봄이 있었다. 애정 없는 부모, 답답하기 짝이 없는 집, 갈 곳 없는 마음, 혼자서 멍하니 차악을 찾아 노력하는 생활 같은 건, 권태오는 절대로 모를 것이라고….

그러나 오늘은 달랐다. 권태오는, 그런 내 기분을 이해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정말로 잘했어, 우신아. 이러니까 내가 널 좋아할 수밖에 없지…. 이렇게 예쁜데, 어떻게 너를 안 좋아하고 버티겠어.”

허리 숙여, 비밀을 속삭이듯 말하는 권태오는 즐거워 보였다. 나는 그 순진무구함에 내심 감탄했다.

나를 세상에서 제일 예쁜 것 보듯, 반짝이는 것 다루듯, 찬란한 것 보듯 눈을 좁히며 웃을 적에, 권태오는 순진하고 완전무결했다. 사실은 이 세상에 그렇게 예쁘고 반짝이고 찬란한 건 저뿐임을, 권태오만 몰랐다.

때로는 쏜살처럼, 가끔은 다리 저는 거북이처럼, 시간은 빠르게 또 느리게 흘러갔다. 하루하루가 너무나 짧았고 한 주는 또 엄청나게 길게 느껴지는 묘한 날들이 일상이 됐다. 언덕길을 오르듯 시험 하나를 치르고 나면 다시금 새로운 시험이, 그리고 대회가, 다시 시험이… 구불구불하게 이어져 있었다.

여러 언덕을 올랐다가 내렸다가 하며 우리는 몹시 분주했다.

“우신아. 너는 소원이 뭐야?”

11월의 초입, 수학 심화반 선생님이 내어 준 기출문제를 받고 돌아오는 길에 장세라가 내게 물었다.

멍하니 창문 밖으로 다가온 겨울을 쳐다보며, 나는 중얼거렸다.

“지금 당장 수능 치는 거….”

“응?”

“올해부터 교육 과정이 바뀌어서 지금 당장 수능 치면 좋겠어. 준비된 학생들만 좋은 성적을 받아야 한다던가, 뭐 그런 이유로…. 지금 당장 수능 치고, 성적을 내서 그대로 대학 입시가 끝나면 좋겠어.”

이제는 외울 글자도 없고, 익힐 영어 단어도 없고, 못 푸는 수식도 없게 되어 그렇게 말했다. 답이 뻔한 문제들을 기계적으로 풀어 내리고, 머릿속에 채워 넣은 정보를 잊어버리지 않기 위한 무의미한 복습만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몹시 지루했다. 수능 당일만을 기다리며 허송세월한다는 기분마저 들었다. 차라리 지금 당장 수능을 쳐 버렸으면 싶을 지경이었다.

멍하니 생각을 늘리다가, 나는 뒤늦게 아차 싶었다. 다른 아이들이 종종 그러듯이 이런 내가 재수 없다고 느껴지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그제야 조심스럽게 장세라의 표정을 살폈다.

내 걱정과 달리 장세라는 이렇다 할 표정은 짓고 있질 않았다. 손끝으로 제 아랫입술의 벗겨진 살을 건드리며 한숨을 푹 쉴 뿐이었다. 그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 그럼 좋겠다….”

잠시간, 말없이 우리는 창밖을 바라봤다. 무얼 쳐다보며 구경한다기보다는 우두커니 서서 멍을 때리는 것에 가까운 시간이었다. 창밖의 나뭇잎들이 마녀의 후드 끝자락처럼, 와아 와아 뻗어 대는 관중들의 손처럼 흔들거리고 있었다.

손에 들린 캔 커피의 남은 한 모금을 입에 털어 넣고, 나는 다시금 걸음을 움직였다. 자습실로 조용히 돌아가자 장세라도 제자리로 가 착석했다. 시계를 힐끔 확인한 다음, 나는 평소보다 일찍 가방을 챙겼다.

“오늘은 먼저 가 볼게.”

지나가듯 작은 말로 인사하자 장세라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어… 벌써? 어디 가? 또 권태 만나러 가?”

불쑥 물어 놓고는,

“아….”

제 말에 제가 더 놀란 듯 입술을 다물었다. 무심결에 뱉은 말인 듯했다. 손으로는 입술을 닦는 척 가리는데, 두 눈동자는 나에게로 고정된 채 떨어질 줄을 몰랐다.

나는 가방끈을 고쳐 쥐었다.

“아니. 공주윤 경기 보러 가. 예전에 약속했었거든, 아무리 바빠도 대회 경기는 보러 가 주기로….”

“아…아.”

장세라가 모호한 숨소리를 냈다. 말소리도 탄식도 아닌 음성을 내고는 혼자 입을 다물더니,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응…. 내일 보자, 우신아.”

“그래.”

가방의 무게에 집중하며 나는 학교 밖으로 걸어 나갔다. 지난 몇 달간 기숙사, 교실, 자습실, 채홍관만 번갈아 들른 탓에 교문 밖으로 나서는 게 아주 간만의 일이었다. 휘, 뒤를 돌아보자 11월의 교내 풍경이 유난히 추워 보였다.

머릿속을 부유하는 생각들을 잡지 않고 흘려보내려 노력하면서, 나는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휴대폰을 들어 시간을 확인한 뒤, 늦지 않게 도착한 버스에 올랐다.

‘나 대회 나가는 날 응원하러 와.’

무덥던 여름밤에 했던 약속을 지킬 때였다.

채홍체육종합회관의 내부는 무척 소란스러웠다. 두 개의 경기장을 놓고 네 명의 청소년 선수들이 쉼 없이 예선전을 치렀다.

한 번 공주윤의 위치를 확인한 뒤로 나는 그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공주윤은 학교에서 보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등판에 ‘채홍’ 두 글자가 새겨진 남색 유도복 차림임은 변함없었으나, 그는 장난질을 하며 웃질 않았고 욕을 하거나 짝다리를 짚지도 않았다. 묵묵히 제자리에 서서 예선전을 치를 뿐이었다.

관중석 자리에 앉아 아래를 내려다보면서 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왜 저렇게… 아파 보이지?’

공주윤의 컨디션이 어째선지 무척 나쁜 듯했다. 예선 경기를 훌륭하게 치른 뒤에도 안색이 어두웠다. 땀에 젖어 뭉친 머리칼을 털어 내며, 그는 무거운 발을 코치 옆으로 옮겼다. 차가워 보이는 철제 벤치 의자에 몸을 앉히는 공주윤을 확인하고, 나는 휴대폰을 들었다.

그리고 꾹, 꾹, 메시지를 입력했다.

[나 왔어.]

‘어디 아파?’, ‘무슨 일이라도 있어?’, 그런 질문을 보낼까 하다 관두었다. 한눈에 예민해 보이는 선수에게 질문 세례를 퍼붓고 싶진 않아서였다. 결국은 세 글자만 적어 전송 버튼을 눌렀다.

그러나 공주윤은 미동도 하질 않았다. 표정 없는 얼굴로 경기장 바닥을 내려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휴대폰을 확인할 정신도 없는 듯해서, 나는 할 수만 있다면 보낸 메시지를 취소하고 싶어졌다.

지친 얼굴을 슬그머니 찌푸린 그에게 코치가 다가가더니 물에 적신 수건을 내밀었다. 공주윤은 그 수건을 접어 제 입에 넣고는, 씹지도 뱉지도 않고 그저 머금은 채 멍하니 앉아 있기만 했다.

그제야 나는 상황을 파악했다.

‘물도 못 마시나 보다….’

체급에 맞추어 체중 조절을 하느라, 경기 당일인 오늘까지 아무것도 먹지도 마시지도 못하는 게 분명했다. 생수를 들이켜는 대신 젖은 수건으로 입 마름을 달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괜히 나까지 갈증이 났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켜보는 가운데 준결승 경기가 시작됐다. 공주윤과 다른 선수의 이름을 나란히 호명하는 안내 방송이 들려왔다.

경기장에 올라서기도 전에 공주윤은 이미 균형을 잃은 듯 보였다. 권태오가 보이던 유도가 기술의 게임 같았다면 공주윤이 보이던 유도는 격투기처럼 느껴지곤 했었다. 그런데 오늘 공주윤에게선 지난날의 적극적인 공격성이 엿보이질 않았다.

이미 지친 상태로 상대 선수와 맞붙자마자, 공주윤은 상대가 걸어오는 발을 피하려 뒤로, 뒤로 내몰렸다.

‘차라리 체급을 올리면 안 되는 거야? 저러다 애 쓰러지겠는데….’

나는 입술을 꾹 다물고 경기를 지켜봤다. 컨디션 난조에도 불구하고 공주윤은 무척 잘 버텼다. 몇 번인가 기술이 들어가도 다리를 무너뜨리지 않고 버텼고, 몸이 기우뚱 바닥에 쓰러질 뻔하다가도 상대 선수를 역으로 메어치려 시도했다.

상대 선수도 아주 힘겨운 듯 안색이 변했다. 온 힘을 실어 건 기술이 연이어 실패로 돌아간 탓이었다. 헐떡거리는 거친 호흡과 발바닥이 경기장 바닥을 누르며 미끄러지는 소리, 도복을 잡고 끌어 대는 마찰음이 경기장을 울렸다.

경기는 기어코 4분을 가득 채웠다. 서로 간에 엉겨 붙은 채 허리끈과 도복 가슴팍을 긁어 쥔 두 선수를 심판이 떼어 놓았다.

잠시간 장내에는 침묵이 머물렀다. 하얀 천을 깔아 덮은 테이블 자리의 심사위원 세 사람이 무어라 이야기를 나누는 듯하더니, 심판에게 말을 전했다. 심판은 상대 선수의 팔을 들어 주었다.

“아….”

나는 쥐었던 주먹을 느릿느릿 펼쳤다. 손바닥 위에 손금보다 짙은 손톱자국이 남았다. 묻어나는 땀을 바지 허벅지에 문질러 닦고, 다시금 경기장을 살폈다.

공주윤은 상대 선수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는 곧바로 모습을 감췄다. 철문을 밀고 어디론가 들어가는 공주윤을 쫓아, 나는 관중석 계단을 뛰어 올랐다. 복도로 빠져나가 계단을 찾아 1층으로 내려가서는, 대기실을 찾아 걸음을 빨리 했다.

이내 저 멀리서, 익숙한 외침이 들려왔다.

“씨발!”

공주윤이었다.

음성이 들려온 복도 끝을 몇몇 선수들과 학부모가 힐끔 살폈지만 그뿐이었다. 엮이지 않는 게 상책이라는 듯 어른들조차 말없이 자리를 피하기만 했다.

모두가 피하는 복도 끝의 공주윤을 향해 나는 걸어갔다. ‘아’, 탄식 섞인 소리를 지르고는 주먹으로 이마를 훔치는 공주윤은 오늘따라 붉었다. 펄펄 끓어 넘치는 화가 나에게까지 튀는 것 같았다.

천천히 곁으로 다가가자, 성난 얼굴이 나를 홱 돌아보았다.

“저리 꺼져, 이우신. 여긴 왜 왔어?”

얼굴 가득 불만족스러운 성화가 고여 있었다. 턱을 타고 흐르는 땀방울이 송골송골한데, 입술은 바싹 말라 거칠어 보였다.

“네가 오라고 그랬잖아. 경기 보러 오라고.”

나는 공주윤의 굵은 팔뚝을 살짝 잡아당겼다. 도복 옷깃을 쥐는 내 손을, 공주윤이 세게 뿌리쳤다.

“쪽팔리니까 씨…발 저리 꺼지라고. 더 잘할 수 있었는데…, 씨발!”

버럭 욕설을 뱉으며 공주윤이 바닥에 놓인 캔을 깡 소리 나게 걷어찼다. 벽면에 부딪쳤다가 튕겨져 나가는 음료수 캔을 힐긋 내려다본 다음, 나는 공주윤을 노려봤다.

“쪽팔리긴 뭐가 쪽팔려?”

황당한 마음에, 공주윤만큼 큰 목소리가 내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너, 진짜 엄청 잘했어. 거의 이길 뻔했잖아, 멀쩡하던 선수가 4분 만에 곤죽이 다 됐는데, 네가 뭐가 쪽팔려? 너도 잘 버텼잖아. 정말 잘했어…. 엄청 멋있었어.”

흥분한 채 터져 나온 목소리가 내 의도보다 크고, 높았다. 뒤늦게 입가를 문질러 닦아보았지만 이미 뱉은 이야기는 흩어지고 없었다. 시선을 올려 공주윤을 보자마자 나는 갈증을 느꼈다.

두 눈을 크게 뜬 채 공주윤은 어떤 말도 하지 못했다. 그 흔한 자랑도, 으스대는 농담도, 얄궂은 장난질도 보여 주지 않았다.

굳은 듯 딱딱해 보이는 턱을 올려다보며 나는 천천히 말했다.

“정말 고생했어, 주윤아.”

공주윤이 대번에 얼굴을 찌푸렸다. 보이지 않는 누군가의 손이 그의 얼굴을 잡고 콱 구기기라도 한 것 같았다.

“너…는 씨발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그리고 토해 내듯 말했다.

“내가 너….”

“…….”

“…너는 다 알면서, 네가 그렇게 말하면, 새끼야. 나는 어떡하라고….”

들은 말을 소화해 내는 것보다 닥쳐온 충격에 흔들리는 게 더 빨랐다. 공주윤을 올려다보던 내 시야가 낮아지는가 싶더니, 이내 내 어깨에 쿵 기대 온 머리의 무게에 나는 뒤로 흔들렸다. 비틀거리는 내 두 팔을 공주윤의 손이 움켜쥐었다.

“…….”

그에게 단단히 붙들린 채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어깨에 파묻힌 얼굴의 온도가 뜨거웠다. 헐떡거리는 소리가 신경을 긁고 지나는 듯했다. 짙은 땀 냄새가 났다.

천천히, 나는 잡힌 두 팔목 중 오른팔만 빼냈다. 그러고는 조심스럽게 손을 들어 공주윤의 뒷머리를 만졌다. 알고 지낸 지가 벌써 3년째인데, 내가 먼저 공주윤을 만지는 건 오늘이 처음이었다.

느릿느릿 앞뒤로 쓰다듬을 적에 짧은 머리칼의 감촉이 까슬까슬했다. 흥건하게 젖은 땀이 어느새 차갑게 식어 있었다.

내 가슴팍에 제 코를 쿡 뭉개면서, 공주윤이 목소리를 냈다.

“진짜 1등, 하고 싶었는데….”

어느 때보다 느릿하고 작은 목소리에 나는 왠지 웃음이 났다.

“그래.”

그렇게 대답하자 공주윤이 뜨거운 숨을 내 가슴에 묻혔다.

“다시 하면 진짜, 1등 할 수 있는데….”

“그래.”

가만히 멈추어 선 채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공주윤은 몇 분이고 내 가슴팍에 숨을 뱉어 대다가, 한참 지난 뒤에야 얼굴을 들었다. 그때쯤 공주윤의 얼굴 위엔 약간의 불그스름한 혈색이 감돌 뿐 달리 무어라 지칭할 표정은 없었다.

그는 경기를 치렀고 나는 그 모습을 지켜보았으니, 지난여름의 약속은 오늘로 마쳤다는 걸 우리는 알았다. 팔뚝까지 흘러내린 가방끈을 조용히 고쳐 메고, 나는 돌아설 준비를 했다. 그런 나를 공주윤은 한 번 더 붙잡았다. 내 팔뚝을 거친 손으로 와락 움켜쥐더니, 제 짐이 있는 작은 대기실로 끌고 가기 시작했다.

질질 끌려가다시피 걸어가며 나는 두 눈을 빠르게 깜빡거렸다. 공주윤은 캐비닛에 부딪치도록 나를 거칠게 팽개쳤는데, 그 즉시 낭패가 서린 얼굴을 보여 주었다. 아무래도 경기로 인한 흥분이 가라앉지 않은 탓에 힘 조절에 실패한 것 같았다. ‘쿵’ 소리 나게 부딪친 팔뚝을 쓸어 만지며 나는 덤덤한 척 표정을 고쳤다.

그제야 공주윤이 내게서 돌아서더니 검은 가방을 열었다. 안쪽 주머니에서 무얼 꺼내어 들기 위해서였다. 잠시간 숨을 씩씩거리며 고민하는 듯하다 그는 내 앞으로 두 발짝 다가오더니, 내 손안에 무얼 억지로 쥐여 주었다.

나는 눈에 익은 작은 케이스를 내려다보았다. 기다랗고 매끄러운 모양에 가벼운 무게감만 느껴 봐도 내용물이 무언지 알 수 있었다. 1학년 여름 방학이 지났을 때, 유럽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공주윤이 내게 선물했던 만년필이었다. 함께 건네준 가죽 노트는 받았지만 만년필은 비싸다는 이유로 거절했었다.

기어코 내 손으로 돌아온 만년필 케이스를 두 손으로 움켜쥐고는 만지작거리다가, 조용히 열어 보았다. 내가 거절했던 그 물건에는 아직도 사용감이 전혀 없었다. 3년째 새것이었다.

“…….”

그러고 보면 나도 공주윤에게 줄 게 있었다. 느릿느릿, 받은 케이스를 내 가방 안에 집어넣은 뒤 나는 스프링 노트 하나를 꺼내 들었다. 중학생 시절 기초 필기용으로 썼던 노트 속에는 국어와 영어의 기초 문법이 정리되어 있었다.

“이거….”

천천히 노트를 내밀어 보이며 나는 변명하듯 말을 늘렸다.

“체대…도, 듣기로는… 수능, 최저 등급이 있다면서. 국어랑 영어 문법 정도는 바짝 열심히 하면 베이스를 뗄 수 있으니까…, 수능 치기 전에 이것만이라도 잡아 놓으면 도움이 될 거야.”

내 말에 공주윤이 피식 웃었다. 그럴 만도 했다. 그는 내게 3학년이 되도록 미뤄 온 선물을 주는데 나는, 그 앞에서 끝까지 공신으로 남고자 했으므로.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었다. 그런 말은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걸 잊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머뭇거리며 건넨 노트를, 공주윤이 받아 들었다.

“고맙다.”

나는 고개를 푹 숙였다.

“나도, 고마워….”

그러고는 천천히 돌아섰다.

등 뒤로 팔랑팔랑, 또박또박 눌러 적은 글씨를 한 장 두 장 살피는 소리가 들려왔다. 복도를 지나는 동안 얼굴이 눈에 익은 코치가 한숨을 내쉬며 나를 지나쳐 달려갔다. 상 받으러 가야지, 뭘 하고 있냐며 꾸중하는 소리를 남의 것처럼 들으면서, 나는 조용히 경기장 밖으로 걸어 나갔다.

케이스 안에서 만년필이 자꾸만 달그락달그락 소리를 냈다.

‘미안해.’

버스 정류장을 지나쳐 하염없이 걸으면서 나는 만년필에게 사과했다. 너를 쓰게 될 일이 평생 없을 텐데, 그게 못내 미안하다고….

며칠째 메스꺼운 기운이 사라지질 않았다. 내가 자는 동안에 새 한 마리가 입 안으로 잘못 들어간 건 아닐까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그 새는 물을 마시면 식도에서, 밥을 먹으면 배 속에서 푸드덕푸드덕 날갯짓을 해대고 내 몸 안을 쪼아 댔다. 딱 그만큼 속이 울렁거리고 또 쓰라렸다.

장세라가 뜨거운 물을 채운 물주머니를 가져다줘서 배에 대고 2교시를 보냈지만, 따끈해서 기분이 좋을 뿐이지 딱히 복통에는 소용이 없는 듯했다. 강건우가 죽 같은 걸 먹으면 낫지 않겠냐 하며 매점에서 데워 먹는 죽을 사다 주었지만 맛도 없고 식욕도 없었다. 사다 준 마음을 생각해서 억지로 먹는 게 겉으로 티가 났는지, 이찬희가 내 손에서 일회용 스푼을 빼앗아 갔다.

“먹지 마. 이따 급식 먹어, 오늘 소고기 나온다고 그랬어.”

칠판에 붙은 11월 급식 메뉴 표를 손가락질하기에 오늘의 메뉴를 따라 읽어 내리다가, 나는 얼굴을 굳혔다.

‘대학수학능력평가 D-1’

수백 일간 숫자를 적었다가 닦았다가 새로 적은 흔적이 뽀얀 분필 자국으로 남아 있었다. 누군가의 지문이 묻은 흰 흔적이 내 신경을 긁어놓았다. 조용히 한숨을 쉬고는, 읽던 노트로 고개를 돌렸다.

이찬희가 건넨 말처럼 급식으로는 소고기 반찬이 나왔다. 나는 자리에 앉아 식판을 채운 1인분의 밥을 비운 다음 수저를 내려놓았다. 식판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나, 반납대에 가져다 놓고는 물 두 잔을 따라 들고 식탁으로 돌아갔다.

그러자 권태오가 나를 귀신 보듯 쳐다봤다.

“밥은?”

“어? 방금 먹었잖아.”

“왜 한 그릇밖에 안 먹어?”

물 잔 하나를 건네주면서, 나는 어깨를 가볍게 으쓱거렸다.

“배불러.”

그러자 자잘한 대화를 나누며 웃어 대던 이찬희며 강건우까지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세 사람이 나를 보는 눈빛이 죄, 무덤에서 기어 나온 시체를 보는 듯했다. 조금 겁에 질린 기색까지 엿보였다. 나는 황당해졌다.

“나라고 매일 잘 먹는 건 아니야….”

변명하듯 말해도 아이들의 안색은 나아지질 않았다. 오죽하면 근래 들어 식사를 남기는 법 없던 이찬희마저 걱정스러운 듯, 제 그릇의 차돌박이 구이와 부추 무침을 숟갈 위에 올려 내밀었다. 나는 고개를 내저으며 손사래를 쳤다.

그러자 강건우가 탄식했다.

“야…, 이우신. 너 그러다 죽는 거 아냐? 네가 고길 안 먹는다고…? 왜 그러는데…? 오늘 밥도 맛있잖아. 내일 수능이라고 영양사 쌤이 존나 힘 줘서….”

못마땅한 듯 한참 군소리를 하던 강건우가 문득 입을 다물었다. 질문하는 도중에 제 말 안에서 해답을 찾은 듯했다. 이내, 녀석은 고개를 길게 뻗어 나를 살폈다.

“너 설마… 수능 땜에 긴장돼서 밥 못 먹냐?”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가져온 물로 목구멍을 적실 뿐이었다.

“어쭈. 왜 대답 안 하냐? 너 시험장도 짱세라랑 같은 데라며. 공부도 다 해서 볼 게 없다며? 한 달 전부터 빨리 수능치고 싶다고 노래를 불러 대더니, 왜 이제 와서 약한 척이야?”

“그런 거 아니야.”

1절 2절 길어지는 잔소리를 끊어 놓으려 나는 겨우 목소리를 냈다.

“그냥 속이 안 좋아서 그래.”

사실대로 털어놓자 강건우는 더는 나를 놀리지 않았다. 다만 영 탐탁지 않다는 양 나를 흘겨보았다.

그 눈빛이 어딘지 익숙했다. 언제 저런 눈을 봤었나… 곰곰이 생각해 보니, 달동네 살던 시절 집 근처 정육집 사장님 눈빛이 저랬었다.

‘어딜 짐승 새끼가 재수 없게 비실거려!’

쌀쌀맞은 목소리로 을러 놓을 적에, 사장님 발치에는 까만 얼룩이 된 눈곱이 콧등까지 흘러내리는 길고양이가 앉아 있었다. 가끔 돼지 뒷다리살이나 막고기를 사려고 들를 때마다 정육점 문 앞에는 삶은 고기를 담은 쇠그릇이 놓여 있곤 했었다.

잊고 있던 옛날 일이 기억나는 바람에, 매점에서 소라빵을 사다가 내 품 안에 던져 주는 강건우를 보자니 기분이 싱숭생숭했다.

“건우야. 나는 길고양이가 아니야.”

그렇게 알려 주어도, 강건우는 코웃음을 치며 일갈했다.

“또 쌉소리한다.”

앞으로는 강건우가 아니라 강 첨지라고 불러야겠다….

나는 가방 안에 소라빵을 챙겨 넣었다. 성의를 봐서라도 먹는 모습을 보여 주고는 싶은데, 이상할 정도로 식욕이 생기질 않아서 별수 없었다.

싱숭생숭한 분위기 속에 종례를 마치고 자습실로 향했지만, 달리 할 공부가 없어 일찍 나와야 했다. 내내 공부만 해 온 덕에, 수능 전날이랍시고 특별히 들여다볼 게 없었다. 내 머릿속에 이미 교과서가 들어 있어서, 국어 몇 페이지에 어떤 시가 있고 수학 몇 페이지에 어느 문제가 실려 있는지 그것까지 전부 외울 지경이었다. 그러니 책을 볼 필요가 없었다. 맞힐 게 뻔한 문제를 풀 필요도, 마찬가지였다.

자습실을 나서는 내게 몇몇 여자애들이 초콜릿이며 찹쌀떡을 챙겨 줬다. 사양하지 않고 전부 받아 챙기면서도 당장은 그중 무엇도 먹고 싶지 않았다. 받는 족족 가방 안에 집어넣고는 느릿느릿 움직여 자습실 문을 열자, 복도 창가에 기대어 선 권태오가 보였다.

무어라 말하기도 전에 권태오가 내 팔에 걸린 무거운 가방을 받아 갔다. 불룩한 책가방은 권태오의 어깨에 걸리자 메신저 백처럼 작아보였다. 이내 권태오는 내 손목을 부드럽게 잡아끌었다.

“우신아. 오늘 내 방에서 같이 잘래?”

다정하게 건네 오는 말을 듣자마자 오묘한 안도감이 나를 감쌌다. 종일 정신은 붕 뜬 듯하고 속 쓰림에 시달리느라 미처 몰랐는데, 그 말을 듣자니 내가 그러기를 원했었구나 생각됐다. 나는 머뭇거림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권태오와 나란히 걸어, 기숙사에 도착하자마자 내 방부터 들렀다. 내일 아침 수능 시험장으로 출발하기에 앞서 필요한 짐을 미리 챙겨야 했기 때문이었다.

“수험표, 신분증, 가채점표, 샤프심, 수정 테이프, 아날로그시계랑 여분 배터리, 컴퓨터용 사인펜 세 자루, 과목별 요약 노트….”

하나하나 이름을 부르며 챙겨다가 바닥에 놓자, 권태오가 그 앞에 쭈그려 앉았다. 허벅다리 근육 때문에 다리가 깊이 굽혀지질 않아, 앉은 자세가 엉거주춤 둔해 보였다.

“흠…, 이게 다 챙긴 거야?”

“응.”

그러자 권태오가 침음했다. 심각한 얼굴로 천천히 고민하는 권태오 앞에 나도 나란히 쭈그려 앉았다. 웅크린 양 무릎을 두 팔로 껴안고 쳐다보아도 딱히 빠진 준비물은 보이지 않았다.

문득 권태오가 물었다.

“구급약은? 급할 때 먹을 거.”

‘아’ 하고 작은 탄성을 내지른 뒤 나는 책상 자리로 돌아갔다. 서랍장의 문을 열자 여러 종류의 두통약과 해열제가 모습을 드러냈다. 약국에서 산 것도 있었고, 양호 쌤에게 받은 것도 있었다. 여러 종을 꺼내 들고, 개중 수면제가 포함되지 않은 것을 골라 챙겼다.

그제야 권태오가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가자.”

“응.”

내 가방을 대신 안아 든 권태오와 함께, 나는 훈련소 숙소로 향했다. 언제고 요란하던 숙소는 아주 조용해서 텅 빈 건물처럼 느껴졌다. 수능 전날이랍시고 유도부 선수들도 모두 집으로 돌아간 모양이었다.

너는 집에 가지 않아도 괜찮으냐고 물을까 하다 나는 입을 다물었다. 최저 등급을 맞출 필요도 없이 상벌 점수와 실기만으로 진작에 유도학과에 합격한 권태오였다. 그러니 그에겐 수능 성적이 조금도 중요하지 않았다. 순전히 ‘궁금하다’는 이유로 수능 시험 원서는 접수했다지만, 덕분에 발등에 불이 떨어진 강건우며 이찬희에게 원성을 샀었다.

무엇보다도, 권태오에게 집이라는 게 편안하지 못한 공간임을 나는 알았다. 우리의 지갑 사정이 하늘과 땅만큼 다르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종종 그런 착각이 들고는 했다. 나처럼 권태오에게도 집이라는 게 없다는, 애틋한 한편 건방지기 짝이 없는 착각이….

‘태오 냄새….’

훈련소 숙소 3층 가장 안쪽, 권태오의 방에 들어가자마자 나는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졸업 후에 딱 한 가지 아쉽고 또 그리운 마음이 남는다면 그건 모두 이 방에 대한 미련일 터였다.

볕 드는 방 안 가득 풍기는 살내음을 맡으며, 나는 가만히 신발을 벗었다. 밑창 색이 노랗게 닳은 스니커즈를 가지런히 정리하기도 전에, 권태오가 내 손목을 잡아끌었다. 맥없이 줄줄 끌려가 나는 침대에 풀썩 몸을 앉혔다.

“아직 옷도 안 갈아입었는데….”

교복 외투를 벗으며 중얼거리자, 권태오가 ‘됐어’ 하고는 저는 괜찮다며 내 양말을 벗겨 주었다. 도톰한 수면 양말이 사라지자 발가락에서 횅한 느낌이 들었다. 권태오가 내 발을 만지려 들기에 나는 얼른 침대 위로 다리를 올렸다.

“야아!”

그래도 와락 달려드는 손을 피하기엔 역부족이었다. 내 흰 발을 움켜쥔 권태오의 손은 아주 컸고, 또 뜨끈했다. 얼굴이 홧홧 달아오른 채 노려보는데, 권태오는 아무렇잖게 제 두 손으로 내 발을 잡고 주물렀다.

“발이 왜 이렇게 차.”

이내 큰 손이 내 종아리를 옭아매듯 잡았다. 그대로 아래로 끌어당기는 힘에 못 이겨, 나는 풀썩 침대 위에 나자빠졌다. 당황스러운 마음에 눈만 깜빡이는데, 권태오는 내 두 다리를 일자로 뻗어 정리해 주었다.

그리고 웃었다.

“누워 있어. 오늘은 일찍 자게.”

“잠…이 안 올 거 같은데….”

진심을 담아 중얼거리는데, 권태오가 침대 위로 올라왔다. 그가 내 옆자리에 눕자 매트리스가 비스듬히 기울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내 허리 밑으로 손이 파고들더니, 그대로 몸이 쑤욱 권태오의 품 안으로 들어갔다.

“…….”

단단하게 붙들어 껴안는 힘이 꼭 포로를 묶는 밧줄 같았다. 덫에 걸린 쥐처럼 나는 무기력하게 몸에 힘을 빼냈다.

작은 한숨을 후우 내쉬자, 권태오의 오른손이 내 배 위에 닿았다. 먹은 게 없어 푹 꺼진 배를 만지작거리며 눌러 보는가 싶더니, 싫은 듯 앓는 소리를 낮게 흘렸다.

“우신아.”

“응.”

“수능 성적, 등급 네 개 합해서 5면 된다면서…. 너는 기본이 1등급이니까, 당연히 4일 거 아냐. 모의고사 내내 1등급 밑으로 내려간 적 있어? 없잖아.”

“응….”

나는 빙그레 미소 지었다. 꼼지락꼼지락 뭘 그렇게 고민하나 생각했더니, 내 불안을 달랠 말을 떠올린 모양이었다. 수능 커트라인이 무얼 뜻하는지, 의예대가 의대인지 예대인지조차 모르던 권태오가 어느덧 입시 박사가 되어 있었다.

입가에 조그맣게 걸린 미소를 보았는지, 권태오가 내 몸을 홱 돌렸다. 들썩 허리가 들리더니 이내 모로 눕혀질 적엔 내가 사람이 아니라 작은 강아지라도 되는 듯 느껴졌다. 이리저리 휙휙 움직이는 통에 심장이 쿵쿵거렸다. 나와 마주 보는 권태오의 얼굴이 몹시 가깝고 눈동자는 매우 다정해서, 더운 피가 차가운 발끝까지 퍼졌다.

이내 서서히, 커다란 손이 얼굴로 다가오는가 싶더니 검지와 중지 끝이 내 눈꺼풀을 살살 내렸다. 손길을 따라 두 눈을 꼭 감았다가, 손가락 감촉이 가시자마자 다시 눈을 반짝 떴다. 그랬더니 권태오가 다시금 내 두 눈을 감겼다.

같은 동작을 서너 번 반복하며 나는 장난을 쳤다.

“진짜… 혼날래?”

권태오가 실소를 못 참으며 속삭이기에, 그제야 작은 콧김을 내쉬며 눈을 꼭 감았다.

시야가 어두워진 와중에 내 얼굴을 살피는 시선이 느껴졌다. 권태오의 시선은 늘 이런 식이었다. 그 애의 시선만이 물리적인 힘을 갖고 있었다. 나를 노려볼 때면 나는 그 시선에 맞는 듯 아팠고, 가만히 내려다볼 때면 납작해지는 압박감을 느꼈으며, 이렇게 다정하게 바라볼 때면 두 뺨과 입술이 간질간질했다.

이내 권태오의 속삭임이 들려왔다.

“우신아. 우리 대학생 되고 나면… 너랑 나랑 같은 집에서 자취하자. 어때?”

현실감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을 만큼 달콤한 이야기였다.

나는 대학생이 된 우리를 떠올려보았다. 권태오와 함께 사는 집도 머릿속에 그려 보았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신발장에는 310㎜ 사이즈의 운동화가 언제나 놓여 있겠지. 거실에는 작은 화분을 놓고 싶었다. 볕이 잘 드는 창문 하나, 거기에 놓인 화분 한 개…. 나는 늘 그런 집을 꿈꿨었다. 대리석 바닥이나 화려한 조명, 비싸고 번지르르한 가구 같은 것보다도, 장마철에도 곰팡이가 슬지 않는 천장, 환기가 잘 돼서 물때가 끼지 않는 화장실, 햇볕이 들어오는 창문을 원했다.

평수는 넓지 않아도 좋았다. 방도, 두 개… 아니, 큰 방 하나만 있어도 좋을 거 같았다. 그럼 그 방을 권태오에게 줘야지. 침대는 제일 큰 걸로 넣어야 할 테고, 내 침대는…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그래도 냉장고는 크기도 크고 성능도 좋았으면 싶었다. 그 속에 먹고 싶은 음식을 가득가득 채워 놓고 싶었다. 돼지고기의 싼 부위를 잔뜩 사다가 냉동고에 얼려 놓지 않고, 선반을 라면으로 채워 놓지 않고, 배고플 때면 제대로 된 요리를 해 먹고 싶었다. 인터넷 쇼핑 사이트에서 핫 딜을 노려 10㎏씩 구입한 ‘인간 사료’ 과자로 속을 채우는 밤만 없어진다면, 나는 그것만으로도 행복할 것 같았다.

그리고 밤이면 권태오가 옆에 있겠지.

“우신아.”

이렇게 나를 부르고 속을 헤집어 놓겠지….

나는 입술을 꾹 다물고 감긴 눈꺼풀에 힘을 주었다. 그래도 별수 없이, 속눈썹이 축축해졌다.

“…좋을 거 같아. 너랑… 같이 살게 되면….”

천천히 입을 열고 대답하자, 권태오가 한숨 같은 실소를 흘렸다. 손가락 끝마디의 둔한 살로, 조심스럽게 내 속눈썹을 닦아 내는 게 느껴졌다.

“너는 대학교 가서도 1교시 수업부터 들을 거야? 대학교 1교시는 아침 9시라던데.”

권태오의 질문에 나는 어리둥절해졌다.

“내가 1교시 좋아하는 거… 어떻게 알았어?”

눈을 반짝 뜨고 그렇게 묻자, 권태오가 검은 눈동자를 도록 굴려 내 시선을 피했다. ‘어…’ 하고 의미 없는 소리를 흘리더니, 그는 손을 뻗어 내 눈가를 가렸다.

“아무튼 대답이나 해.”

부러 퉁명스럽게 내는 목소리가 귀여워, 나는 웃었다.

“응…. 아침에 공부가 더 잘되니까 아마 그럴 거 같아.”

“그럼 너는 아침 일찍 일어나서 수업 들으러 가고, 나는 같은 시간에 훈련하러 가겠네.”

“응, 그렇겠지….”

두 눈을 다시 꼭 감고는 권태오의 손바닥에 고개를 기댔다. 따끈따끈한 손바닥 온도가 기분 좋았다. 굳은살이 박인 피부는 결이 단단한데, 손바닥 안쪽 살은 또 말랑말랑했다. 보드라운 손금 위에 코끝을 문지르자 권태오가 움찔 손을 굳혔다. 잠시간 ‘하’ 하고 실소를 흘리는가 싶더니, 이내 커다란 손이 내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같이 일어나서 아침 든든하게 챙겨 먹고, 같이 학교 가고. 시간 맞으면 같이 점심도 먹는 거야. 내가 찾아봤는데, 체육관이랑 의예대 건물이랑 별로 안 멀더라고.”

쓰담쓰담 어루만지는 손길을 받기도 잠시, 나는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내가 찾아봤을 땐 멀던데…. 체육관 건물이 제일 구석에 있고 의예대는 동쪽이라서… 완전 끝에서 끝이던데?”

“그건 네 다리로 걸을 때 그런 거고. 내 다리로 뛰면 안 멀어.”

듣던 중 일리 있는 소리였다. 고개를 끄덕거리자, 권태오가 내 머리를 제 품 안에 꽉 끌어안았다. 포근하고 너른 가슴팍에 이마가 폭 파묻혔다. 팔뚝이나 배, 다리와 같이 가슴 근육도 돌처럼 단단할 줄로만 알았는데, 의외로 권태오의 가슴은 말랑하고 폭신했다. 그 바람에 내 목덜미로 열이 피어올랐다.

“하…, 둘이서 같이 살면 되게 좋겠지?”

따끈따끈 달아오른 내 목과 어깨를 권태오의 손이 감쌌다. 그는 물 한 방울 없이 나를 삶고 있었다.

“집에서 만나면 손을 잡든 뽀뽀를 하든 다 자유일 거 아냐. 아침은 내가 만들게. 나 토스트 되게 잘 만들어. 아, 쓰레기도 내가 치울게. 설거지도 내가 하고, 청소도 내가 할게.”

“그럼… 나는 뭘 해, 태오야? 빨래할까?”

“빨래 같은 소리 하네. 야, 너는 공부해야지. 나 선수 생활 은퇴하고 나면, 네가 의사 선생님 돼서 날 먹여 살려야 할 거 아냐?”

“뭐야, 그게….”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말끝을 흐리는 내게 권태오는 언뜻 진지하게 들리는 농담을 이어 나갔다. 내가 골병들어서 골골거리고 누워 있으면 네가 치료해 줘야지 않겠냐느니, 너는 나한테 인생 저당을 잡힌 거라느니….

“황금알 낳을 닭인 거 알아보고, 내가 너 병아리일 때 빨리 주운 거야.”

그 말에 나는 큭큭 웃음을 터뜨렸다.

“황금알 낳는 건 닭이 아니라 거위야….”

어깨를 들썩이며 나는 한참 웃었다. 권태오가 너무 귀여웠다. 키는 문짝만 하고 몸무게는 나보다 30㎏는 더 나가는 권태오가, 귀여워서 웃음을 참아 낼 수 없었다.

내 삶에 황금을 안겨 준 건 정작 권태오, 너인데….

“이제야 웃네.”

권태오가 말했다. 귓가를 간질이는 목소리에 감았던 눈을 뜨자, 미소 짓는 권태오의 얼굴이 보였다. 얼굴과 얼굴 사이 거리가 가까운 탓에 내 시야에는 온통 다정뿐이었다.

“응….”

나는 권태오의 품 안으로 도로 머리를 파묻었다. 얼굴을 기대어 묻자 그가 들이쉬는 숨과 내쉬는 숨에 따라 흉곽이 넘실거리는 게 느껴졌다. 나도 그 흐름에 파묻힌 채 함께 넘실넘실했다.

“그만 자, 이우신. 너는 내일, 무조건 잘할 거니까 아무런 걱정도 하지 말고.”

“응…. 내가 잘할게.”

더 이상 식도가 가렵지도 배가 아프지도 않았다. 메스껍고 갑갑한 기운이 사라진 손발이 따끈따끈했다.

며칠간 도통 청하질 못했던 졸음이 쏟아지는 순간에는 오히려 내일이 기대됐다. 하루 빨리 수능을 해치우고 권태오와 함께하고 싶었다. 내 시간을 온통 권태오를 위해 쓰고, 그와 같이 웃고, 그와 함께 살고 싶었다.

눈을 감자 어둠 속에 청사진이 그려졌다. 내일을 상상하며 설레는 게 얼마만의 일인지 몰랐다.

‘어쩌면, 처음인가…?’

그 생각을 끝으로 나는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수능 당일 새벽은 아주 추웠다. 지나간 밤의 공기는 무던하게 쌀쌀했는데, 새벽부터 몰아치는 차가운 바람이 창문을 두들겨 댈 정도였다. 퉁퉁 부은 눈을 문지르며 침대에서 일어나자마자, 내 가방을 뒤적거리는 권태오의 등이 보였다.

“뭐 해?”

졸음이 덜 가신 채 목소리를 내자 권태오가 홱 나를 돌아보았다.

“더 자도 되는데 왜 벌써 깼어.”

“바람 소리 때문에….”

침대 밑으로 느릿느릿 내려가, 나는 권태오의 등에 상체를 기댔다. 반쯤 업히다시피 하며 어깨 너머를 기웃거리자 웃음소리와 함께 커다란 몸이 들썩거렸다.

권태오의 점퍼 옷깃을 슬그머니 만졌다가, 나는 천천히 손을 거뒀다. 힘주어 꽉 안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졸음이 다 달아나 버려 용기가 없었다. 대신에 내 가방 안을 채운, 못 보던 비닐봉지를 내려다봤다. 하얀 봉지 속에 작은 물방울이 맺혀 있었다.

“도시락 좀 포장해 왔어. 시험장에서 먹어.”

“응….”

졸음이 달아나는 것을 느끼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가는 길에 편의점에 들러 아무 도시락이나 살 생각이었는데, 이런 것까지 신경 써 주다니 그 다정함이 내심 놀라웠다.

쭈뼛거리며 가방 안을 살피는 내게 권태오는 피식 웃어 보였다.

“내 거 사는 김에 네 것도 산 거니까 신경 쓰지 마. 어제도 말했지만, 나중에는 네가 나를 먹여 살려야 하는 거니까.”

“…….”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퉁명스럽게 건네는 게, 그 나름의 애정 표현인 걸 나는 알았다. 슬그머니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멋쩍은 듯 제 귓불을 만지작거렸다.

나는 익숙한 교복을 챙겨 입었다. 셔츠 위에 얇은 후드 점퍼와 재킷을 겹쳐 입고, 양말에 발을 넣는 내게 권태오는 제 패딩 점퍼를 꺼내 주었다. 너무 커서 가져가도 못 입는다며 사양해도 소용없었다. 부득불 팔을 잡고는 옷 안에 꿰어 넣는 통에, 나는 커다란 패딩에 갇혀 어깨 부자가 되고야 말았다.

“그런데 태오야. 네 준비물은 다 챙겼어?”

“어. 도시락 챙겼잖아.”

“손목시계는?”

“어차피 봐도 소용없어. 없어도 돼.”

“컴퓨터용 사인펜은?”

“아.”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는 감탄사를 뱉는 권태오 때문에 나는 황당해졌다. 내 가방에는 두통약과 점심 도시락까지 챙겨 넣어 줘 놓고는, 저는 답안지에 마킹할 펜 하나도 안 챙기다니 바보도 이런 바보가 없었다.

“너 어떡하려고 그래, 정말….”

필통을 열어 여분 사인펜 하나를 건네주자 권태오가 머쓱한 듯 받아들었다. 그러더니 수험표와 신분증이 든 지갑을 바지 주머니에 쑤셔 넣고, 사인펜을 넣은 도시락 봉투만 손에 덜렁 든 채 방을 나섰다.

완전히 대조되는 태도로 우리는 채홍관 앞에서 헤어졌다. 시험장까지 바래다주겠다며 극성으로 나서는 권태오를 떼어 놓느라 얼마나 힘겨웠는지 몰랐다.

“너랑 같이 가면, 그게 더 떨려! 장세라랑 같이 가기로 했으니까 걱정하지 마.”

그러자 권태오가 잘생긴 눈이 일자가 되도록 나를 흘겨보았다. 한참을 무표정한 채 노려보는가 싶더니,

“됐다, 됐어.”

저 혼자 무슨 충동을 정리한 건지 한숨을 푸욱 내쉬며 몸을 돌렸다. 후문을 향해 걸어가는 권태오를 가만 쳐다보다가, 나는 그의 뒤를 쫓아 내달렸다. 탁탁탁… 뛰는 발소리를 들었는지 권태오가 홱 뒤를 돌아보았다.

위아래로 흔들리던 가방이 등을 때리는 것조차 기분 좋게 느끼면서, 나는 권태오의 허리에 팔을 둘렀다. 말없이 세게 안아 보고는, 얼른 그를 놓아주었다.

“갈게. 시험 잘 쳐.”

그러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치듯 달렸다. 누가 보았더라면 나를 치한으로 오해했을 터였다. 등 뒤에선 권태오가 ‘야’ 하고 미련 넘치는 목소리를 내는데, 얼굴이 달아오른 채 허둥지둥 내빼느라 차마 그를 돌아보지 못했다.

잣나무길을 반쯤 내려갔을 무렵, 휴대폰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장세라인가 하고 확인한 화면 위에는 익숙하면서도 오랜만인 이름이 적혀 있었다.

[옥혜 씨]

세 글자를 보자마자 나는 큰 숨을 ‘후우…’ 내쉬었다. 반가운 마음과 기대감이 별수 없이 차올랐다. 왜 오늘, 지금 이 시간에 옥혜 씨가 내게 전화했는지 알 것 같아서였다. 천천히 통화 버튼을 누르며 나는 교문으로 향하던 발을 동쪽으로 틀었다.

“여보세요?”

그러고는 성큼성큼 기숙사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우신아. 이른 시간에 전화해서 미안해. 혹시 내가 깨웠니?

“아니요. 저 한참 전에 일어났어요.”

기숙사 건물이 저 멀리 보이기 시작하자 내 발걸음은 더욱 바빠졌다. 두리번두리번, 인영을 찾아 사방을 살폈다. 기숙사 정문이 시야에 들어오자, 숨이 차오르고 옆구리가 찌릿했다.

―그럼 혹시, 시험장 가기 전에 잠깐 시간 있을까? 다른 건 아니고, 내가….

그리고 옥혜 씨가 보였다. 베이지색 외투 칼라를 목 위까지 세운 채 고개를 숙인 옥혜 씨는, 휴대폰을 귀에 댄 채 무어라 입을 벙긋거리고 있었다.

“옥혜 씨!”

휴대폰을 주머니에 집어넣고서 나는 옥혜 씨 앞으로 다가갔다.

놀란 눈으로 나를 보더니 옥혜 씨가 웃었다. 나도 옥혜 씨를 따라 웃다가, 늦게 밀려든 부끄러움에 표정을 애써 고쳤다. 반가운 기색을 꾹 삼켜 보았지만, 이미 들켜 버린 듯했다.

귓불이 뜨거워진 채 호흡을 가다듬는 내 행색을 살피더니, 옥혜 씨는 제 손에 낀 털장갑을 벗었다.

“추운데 장갑도 없이…. 바지는 왜 그렇게 얇은 걸 입었어, 감기 걸리겠다.”

그러더니 체온으로 데워진 장갑을 내 왼손과 오른손에 번갈아 끼워 주었다. 헉헉 숨을 몰아쉬며 나는 멍하니 옥혜 씨를 바라봤다. 어린아이이던 나를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으면서도, 옥혜 씨는 나를 어린아이처럼 대하는 유일한 어른이었다.

“왜 그쪽에서 뛰어와. 어제 태오 방에서 잤니?”

옥혜 씨가 물었다. 나는 얼떨떨하니 고개를 끄덕거렸다. 작년 여름에 딱 한 번 만났을 뿐인데, 아직도 권태오의 이름이며 훈련소 숙소 위치를 기억하는 옥혜 씨였다.

나는 마른침을 삼키며 옥혜 씨를 바라봤다. 기대감을 감추려 노력하는 내 앞에, 옥혜 씨는 사각형의 보온 가방을 내밀었다.

“어제, 뉴스를 보는데… 수능 시험장에는 급식이 안 나온다잖아. 점심시간에 먹으라고 싸 왔어. 너 소화 안 될까 봐, 닭죽이랑 장조림만 조금 넣었어.”

고개를 끄덕이며 나는 보온 가방을 받아 들었다. 내 손에 비해 장갑이 작은 탓에 동작이 뻣뻣했다.

“공부는 잘 했니? 긴장되지는 않고?”

언제나 유연한 건 옥혜 씨였다.

“네. 긴장 안 돼요.”

조금 챙겼다는 것치고 보온 가방은 꽤 묵직했다. 두 손으로 손잡이를 꽉 쥐어야 할 정도였다.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고 싶었다. 그런데 말이 목구멍에 걸려 잘 나오지가 않았다. 너무 큰 마음이라 오히려 뱉기가 힘들었다.

“그래…, 내가 괜히 찾아온 건 아니지?”

“아니에요.”

나는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가, 다시 다물었다. 내가 만들어 낸 작은 침묵이 내 등을 찔러댔다. 솔직히 고맙다고 말하고 반갑다고 인사하기가 몹시 버거웠다. 시험장에서 나만 도시락이 없을까 봐 걱정했냐고 묻고, 그래 주어서 기쁘다고 말하기가 아주 버거웠다. 내가 좋아하는 기색을 못 감추고 드러내면 내 버거움이 옥혜 씨에게 옮겨 갈 것 같아서였다.

착한 옥혜 씨가 괜히 나에 대해 책임감을 느낄까 봐 걱정됐다. 나는 내내 그랬었다. 냉큼 누구의 등에 업히기엔 나이가 많다고, 다 컸다고, 너무 무거운 존재라고 생각해왔다. 열다섯 살의 봄에는 그랬었다.

그래서 한 번도, 옥혜 씨에게 살가운 미소나 듣기 좋은 인사말을 건네준 적 없었다.

그래도 오늘은…,

“고마워요.”

나는 무거운 네 글자를 말했다. 보온 가방을 향해 떨궜던 시선도 용기 내어 올려 보였다. 그리고 봤다. 옥혜 씨의 낯에 전구가 켜지는 걸. 이가 보이도록 웃으며, 내 팔뚝을 맨손으로 쓰다듬는 걸.

“우신아…. 아무 걱정하지 말고, 수능 잘 쳐.”

“네.”

“그다음에는… 나한테 꼭 연락을 해 줘.”

“…….”

“대답해야지?”

“…네.”

내 두 손이 뻣뻣한 만큼이나, 나를 도닥이는 옥혜 씨의 손길도 어색하기 그지없었다.

“우신아!”

그때 장세라가 나를 불렀다.

깜짝 놀라 돌아보자 크로스백을 멘 채 뛰어오는 장세라가 보였다. 급히 손목시계를 확인해 보니 7시 20분이었다. 교문 앞에서 만나기로 한 걸 새하얗게 잊어버린 탓에, 나를 데리러 기숙사까지 찾아온 모양이었다.

아차 싶어 장세라를 쳐다보다가, 나는 옥혜 씨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아, 저… 친구랑 같이 가기로 해서요. 시험장까지 걸어가기로 해서….”

“그래, 얼른 가 봐.”

옥혜 씨는 선뜻 나를 보내 주었지만 우리가 헤어지는 것보다는, 장세라가 내 옆으로 달려와 붙는 게 더 빨랐다.

“어? 안녕하세요?”

그러고는 밝게 인사하며 나와 옥혜 씨를 번갈아 살폈다. 누구냐는 듯 웃는 낯으로 우선은 꾸벅 묵례해 보이는 장세라를 보며, 나는 도시락 가방을 꽉 쥐었다.

그 순간 당황한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곤혹스러운 얼굴로 입술을 다무는 옥혜 씨가 보였다. 어찌할 바 몰라 미소만 지어 보이는 그 모습이, 나에게 원인 모를 용기를 안겨 줬다.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리고 아주 간단한 문장 하나를, 온 신경을 기울여 말했다.

“우리 엄마야.”

아무렇지도 않은 척 노력하는 걸, 부디 장세라가 몰라 줬으면 바랐다. 누구에겐 당연하고 별것 아닌 소개말 하나가 내겐 너무 벅차다는 걸 아는 사람은 옥혜 씨만으로도 충분했다.

“아! 네, 안녕하세요? 우신이 친구 장세라예요.”

장세라가 얼른 인사했다. 이상한 기색을 느끼거나 의심하기는커녕, 흐트러진 머리칼을 손으로 빗어 내리고는 예의 바르고 착해 보이는 미소를 얼른 지어 보였다.

“…….”

옥혜 씨는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래….”

두 글자를 겨우 뱉는 옥혜 씨를 향해 장세라가 무어라 말하려 입을 열었다. 나는 장세라의 팔을 잡고는 뒤로 당기며 걸었다.

“다녀올게요.”

그러고는 도망치듯 앞장서 걸었다. 장세라는 내 손에 잡혀 끌려가듯 걸으면서도 옥혜 씨에게 꾸벅 인사를 했다.

“우신아! 근데 너네 어머니, 엄청 미인이시다.”

내리막길을 뛰듯이 내려가는 나를 쫓아, 장세라가 후다닥 발소리를 내며 말했다.

“너랑 좀… 분위기가 닮은 거 같아.”

“…….”

무어라 대답해야 좋을지 몰라 나는 입을 다물었다. 말없이 걸음을 재촉하는 나를 보며 장세라가 웃었다. 천천히 가도 늦지 않는다며, 부끄러워 도망치는 내 분주함을 다른 무어로 착각한 듯 달래기까지 했다.

아주 현실적이면서도 또, 여느 날과는 사뭇 다른 아침이었다. 그 느낌은 수능 시험장에 들어선 뒤에도 날 떠나질 않았다. 낯선 책걸상에 가방을 내려놓고 앉은 오전 8시 30분, 국어 시험지를 받아 한 장 두 장 넘기면서도 그랬다.

문제를 순서대로 풀어 내리기 시작하자 내 머릿속의 청사진들이 자취를 감췄다. 햇살 드는 집 신발장에 놓인 커다란 운동화도, 창틀 위에 놓아 둘 작은 화분도, 너를 알게 된 게 참 행운이었다고 웃음 짓는 옥혜 씨도 사라지고 없었다. 주어진 문제와 나, 둘뿐이었다.

15번 문제까지 막힘없이 풀어 내린 뒤 확인했을 때 시간은 8시 55분이었다. 유독 긴 지문이 나온 비문학 문제에는 30분을 썼고, 문학에는 25분도 채 쓰지 않았다. 3개 지문 중 2개 지문이 이미 읽어 본 소설이기 때문이었다.

OMR 카드를 다 채우고도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았다.

“…….”

이쯤 되니 이번 국어가 물수능으로 출제된 건지, 아니면 내가 잘한 건지 알 수 없게 됐다. 혹시 틀린 문제가 없나 두 번 더 살펴보았지만 모든 답안이 정확하다고 생각됐다. 결국에는 두 손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 손목시계의 초침을 지켜봤다. 사각사각 샤프심 깎이는 소리, 팔랑팔랑 시험지 넘기는 소리들이 적당한 소음을 자아내고 있었다.

나머지 시간도 그와 비슷하게 흘러갔다. 대학수학능력평가에 대한 나의 종합 감상은 다음과 같았다.

‘별거 없네.’

모의고사와 수능의 차이점이라고는, 수능의 경우 아이들이 조용해서 좀 더 집중하기 좋다는 점뿐이었다.

점심은 장세라와 함께 먹었다. 급식실 자리에 앉아 꺼내 든 도시락은 두 개였다.

“…그걸 다 먹게?”

장세라가 놀란 듯 날 보며 눈을 깜빡거렸다. 나는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는, 권태오가 챙겨 준 도시락부터 확인했다. 내용물은 깨가 뿌려진 소불고기 덮밥이었다. 숟갈을 쥐고 우물우물 먹어 치운 다음에는 보온 가방을 열어, 옥혜 씨가 싸다 준 도시락을 열었다.

‘소화 안 될까 봐 조금만 넣었다면서요….’

윗면에 미지근한 물이 고인 닭죽에는 고봉밥이 다섯 그릇은 들어간 듯 보였다. 애초에 보온 도시락통부터가 오가는 학생들이 힐끔힐끔 우리 쪽을 살필 정도로 컸다. 숟가락을 집어 들고 나는 반쯤 식은 닭죽을 떠먹었다.

‘맛있다.’

우물우물 메추리알 장조림 하나까지 남김없이 싹싹 긁어 비우자, 기분 좋은 포만감이 적당히 배를 채워 주었다.

“괜찮아? 다음 시간에 안 졸리겠어?”

식사를 마친 내게 걱정 섞인 질문을 건네면서도, 장세라는 딸기 요거트를 하나 내밀어 보였다.

“어제 많이 자서 안 졸려.”

후식 삼아 요거트를 느릿느릿 떠먹고 나니 점심시간이 끝나 있었다.

탐구 영역 시험지를 받아 들고, 한 문제 한 문제 훑어 내릴 적에는 편안하기까지 했다. 모르는 문제가 단 하나도 없었다. 헷갈리는 답안조차 보이질 않았다. 천재지변이 일어나지 않는 한, 한국대학교 수시 합격자 명단에서 내 이름이 빠질 일은 없다고, 누가 들었더라면 섣부르다 지적할 법한 확신마저 들었다.

마지막 답안지까지 전부 제출하고 나니 왠지 허탈한 기분이 들었다. 역시, 한 달 정도는 일찍 수능을 쳤어도 좋을 뻔했다.

탄식하고 한숨 쉬고, 자유를 만끽하느라 소리 지르는 아이들 틈에 앉아 나는 묵묵히 가방을 챙겼다. 가채점지를 가방 앞주머니에 집어넣고 손목의 시곗줄을 풀어내며 시험장을 나서는데, 장세라가 내 뒤를 쫓았다.

“우신아, 잘 봤어?”

“아…, 그럭저럭.”

권태오의 말마따나 나의 ‘그럭저럭’은 오직 내 기준에서의 ‘그럭저럭’이었다. 그 생각에 희미하게 미소를 지어 보이자, 장세라가 내 얼굴을 말없이 몇 초간 응시했다.

눈 한 번 깜빡이지 않는 빤한 시선을 알아채고 나는 장세라를 마주 봤다. 그러자 장세라가 대뜸 내 손을 붙잡았다. 무어라 건네는 말은 없고, 다만 조용한 턱짓으로 인적 드문 학교 후문을 가리켰다.

쇠사슬과 큰 자물쇠로 걸어 잠근 후문 앞에는 오가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 멀찍이, 누군가 세워 두고 간 빗자루 하나가 철봉 옆에 놓여 있을 뿐이었다.

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천천히 장세라를 따라 걷는 내내, 장세라는 내게 아무런 설명도 해 주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내게 다가올 상황이 무언지 알았다.

“우신아.”

그렇게 입을 연 장세라가 뱉어낼 말이 무언지도, 너무나 잘 알았다.

“나 너 좋아해.”

장세라의 목소리는 아주 여상스러워서, 그 말조차 처음임에도 불구하고 이미 들어 본 것 같은 느낌을 줬다. 나는 가만히 그 애의 얼굴을 쳐다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심심한 대답밖엔 내놓지 못하는 날 보며 장세라가 웃었다. 살짝 주먹으로 말아 쥔 내 손가락 틈새로 제 손가락을 비집어 넣더니, 덤덤하니 손을 잡아 왔다.

단정한 얼굴의 안색 하나 변하지 않고, 장세라가 말했다.

“1학년 때부터… 3년 내내 널 좋아했어. 공주가 너한테 숙제 맡기는 거 알고, 친해지려고 일부러 말 걸었던 거야. 인터넷에서 본 기사에서, 맛이나 향기가 느껴지는 소품으로 존재를 각인시키면 그 사람을 좋아하게 된다더라. 그래서 매일 너한테 딸기 요거트를 먹였는데…. 소용없었지?”

솔직하게 대답하자면, ‘소용없었다’. 싫어하던 딸기 요거트를 좋아하게 됐을 뿐이었다.

“수능 치고 나면 고백하려고, 내내 준비했는데…, 미리 예고하려고도 생각했었는데 우신이 네가, 그럴 리는 없겠지만… 혹시라도 괜히 날 신경 쓸까 봐. 하하….”

그러더니 장세라는 제 가방을 열었다. 부스럭, 구겨지는 소리와 함께 꺼낸 것은 반으로 접힌 종이 가방이었다.

“이거… 받아 줘.”

내 손에 떠넘기다시피 건넨 가방을, 나는 엉거주춤 받아들었다. 가방 입구를 열어 살피자 새빨간 털실 목도리가 보였다. 손을 넣어 뒤적이자 그 아래에, 펭귄 캐릭터가 그려진 메모리폼 방석이 들어 있었다.

나는 도저히 할 말을 찾질 못했다. 뭐라 말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온종일 쉬운 문제를 풀어 내리고 시간을 남기는 여유를 부렸는데, 대뜸 멍청해진 기분이 들었다.

“대답 안 해도 돼.”

내 표정을 확인하고는 장세라가 웃어 보였다. 재차 내 오른손을 가져가 제 두 손으로 쥐더니, 평소답지 않게 목소리를 떨었다.

“이우신, 네 덕분에 내 3년이 반짝거렸어.”

“미안해.”

짧은 말로 나는 그 고백을 끊어 놓았다. 도저히 멍하니 듣고만 있을 수 없어서였다.

잠시나마 침묵이 닥쳐왔다. 잡힌 손을 힘주어 맞잡지도, 그렇다고 뿌리치지도 못하고 가만히 둔 채 나는 말했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해서…. 미안해.”

그러자 장세라가 작게 손사래를 쳤다. ‘하하’ 하고 웃음소리까지 냈다.

“아니야, 나도 다 들킨 줄 알고 있었어. 그래도 너한테 직접 고백 한 번은 해 보고 싶더라. 그리고… 나야말로 미안해. 예전에 내가…. 2학년 때, 수학 경시대회 날에… 네 사정도 모르면서 이겼다고 자랑했었잖아.”

“아니야. 나는 잘 기억도 안 나….”

뻔한 거짓말인 걸 장세라는 알 것이다. 우리는 몇 달이고 몇 학기고 같이 공부를 해 온 사이였다. 장세라가 돌아서면 잊어버리던 어려운 영단어도, 나는 두어 번 받아 적고 입으로 외는 것으로 쉽게 암기했다. 사진 같은 기억력이 부럽다고, 내 기억력을 나보다 더 대단하게 여기던 장세라였다.

“우신아. 우리 졸업하고서 영영 헤어지는 건 아니지?”

“응.”

“대학 가서도 나랑… 친구로 지내 줄 거지?”

“…응.”

나는 이제 힘겨웠다. 소화된 줄 알았던 새가 배 속에서 움직거리기 시작했다. 배 속에서 날갯짓을 해대며 내 호흡을 방해하고 있었다. 그런데 토를 해서 뱉어 낼 수도, 내 배를 세게 쳐서 죽여 버릴 수도 없었다.

“세라야.”

그러고 보니 장세라를 이름 두 글자로 불러 본 적이 없는 듯했다. 장세라도 그걸 아는 눈치였다. 두 눈동자가 동그랗게 커졌다. 눈 안에 비치는 애정을 보자마자 말문이 턱 막혔다.

‘그렇게 부르지 말걸….’

하필 이런 날에, 하필 이런 순간에 상냥해지지 말걸 그랬다.

“고마워….”

작은 소리로 나는 그렇게 말했다. 그러자 장세라가 크게 웃었다. ‘활짝’이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미소는 어여쁜 한편 무척이나 어색했다. 그렁그렁한 눈동자만이 진심인 게, 마치 눈구멍만 뚫려 있는 웃는 가면 같았다.

“진짜… 많이 좋아했다, 이우신!”

호탕하게 소리를 내지르더니, 장세라는 내 손을 놓아주었다. 그러고는 두어 걸음 뒤로 물러서며 ‘아’ 하고 탄성을 내질렀다.

“속이 다 시원하네!”

나로부터 돌아서며 장세라가 씩씩하게 걸어갔다. 그 모습을 보자마자 나는 얼른 등을 돌렸다. 그러고는 도망치듯 걸음을 빨리했다. 괜히 제자리에서 가는 모습을 쳐다보면서, 나 때문에 괜한 연기를 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런 모습을 모르는 체하는 건 3년이면 충분하다 못해 차고 넘쳤다.

나는 낯선 학교의 산책로를 빙빙 둘러 걸었다. 칼바람이 뺨을 벨 것처럼 불어 대고 있었다. 귓바퀴가 꽁꽁 얼어서, 손으로 세게 치면 얼음 조각이 되어 떨어질 것 같았다.

무심결에, 종이 가방 안에 든 목도리를 꺼내 들었다. 부드러운 털실로 짜낸 목도리에는 댕기머리를 닮은 나선무늬가 놓여 있었다. 차마 그걸로 목을 데울 수가 없어서, 그저 손에 꽉 쥔 채 걸었다.

수험생들 가운데 내가 가장 마지막으로 시험장을 벗어난 듯 했다. 이미 텅 빈 운동장을 느릿느릿 가로질러 걷는데 저 멀리, 덩치는 커다랗고 얼굴은 잘생긴 남자애가 보였다. 권태오였다.

그제야 눈물이 났다.

“우신아.”

권태오가 웃으며 나를 불렀다.

두 발을 운동장 한가운데에 멈추어 세우고 나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무거운 고개가 느릿느릿 바닥을 향했다. 애써 울음소리를 참는 내게로 권태오가 달려왔다. 내 발 바로 앞에서 멈춘 하얀 운동화가 보였다.

나는 그대로 상체를 앞으로 넘어뜨렸다. 권태오의 어깨에 얼굴이 푹 파묻혔다.

그제야 흐느끼는 소리가 새어 나갔다.

“이우신, 왜 그래?”

커다란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부르며, 권태오가 나를 와락 안았다. 권태오의 품은 무척 크고, 넓고, 따듯해서 나를 아주 작고, 마르고, 차갑게 느끼게 했다.

“태오야.”

숙였던 고개를 들자, 얼떨떨해하는 권태오의 얼굴이 보였다. 나는 주룩주룩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덜덜 떨리는 아래턱도, 볼품없이 흔들리는 목소리도 통제되질 않았다.

“나… 머리, 쓰다듬어 줄래?”

다만 그렇게 애원했다.

“나 좀 칭찬해 줘.”

권태오가 내게 잘했다고 말하면, 권태오가 나를 칭찬하고 안아 주면, 그럼 이 순간이 괜찮아질 것 같았다.

“수고했어, 우신아.”

그리고 거친 손이 내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잘했어. 정말… 잘했어.”

권태오는 목이 흔들거릴 정도로 내 머리칼을 세게 쓰다듬고, 탈탈 털더니, 이내 정수리에 턱을 기댔다. 제 입술이 뭉개지도록 입 맞추는 감촉에 나는 굵은 눈물을 거듭 쏟아야 했다.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눈물이 났다. 마음이 벅차고, 속이 아프고, 어째선지 서운하고, 한편으로 개운하고, 많이 미안해서 눈물이 났다.

“흑…, 윽, 태오야…. 태오야.”

주먹으로 눈물을 벅벅 문지르면서 나는 어린애처럼 권태오의 이름을 불렀다. 그래, 그래… 날 달래는 목소리가 언제까지 돌아오는지 확인하려는 사람처럼, 그를 부르고 또 불렀다.

누가 보았더라면 나를 아주, 아주 한심한 수험생으로 착각했을 거였다. OMR 카드를 밀려 적었거나 부정행위 따위로 성적을 죽 쑨 사람인 줄 오해했을지도 몰랐다. 얼굴이 새빨개진 채 엉엉 우는 나를, 권태오만이 이해했다.

“그래, 좀 울어도 돼.”

그만이 내게 듣고 싶던 말을 해 주었고,

“이제 다 끝났으니까.”

눈물로 흠뻑 젖은 내 손을 꽉 쥐고는 끌어 주었다.

펑펑 쏟아낸 울음을 그치는 데엔, 누구에게나 공평하다는 신까지는 필요하지 않았다. 불균형으로 치우친 내 세계에 필요한 건, 다른 방향으로 기우뚱대는 권태오 하나면 충분했다. 그가 무거운 발을 올려놓자 기울어진 내 세상이 마침내 평평해졌다.

권태오가 없었으면 나는 오늘을 버티지 못했을 터였다. 내 말에는 쩔쩔매고 내 앞에서만 헤실거리고, 내가 좋아하는 것이라면 뭐든지 해 주고 부탁하는 말이라면 뭐든지 들어주는, 권태오가 없었더라면… 나는 내일로 가지 못했을 거였다.

그리고 권태오의 말이 맞았다.

‘이제 다… 끝났어.’

우리의 고교 시절이 저물어 가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