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권-그의 파랑새 (6/16)

그의 파랑새

일에만 미쳐 살던 엄마가 대뜸 골프 웨어를 차려입은 날이 있었다. 거울 앞에 서서 이리저리 제 모습을 비춰 보던 뒷모습이 아직도 생각난다.

“어때? 엄마 예쁘니, 태오야?”

연분홍색 스윙 재킷에 희고 짧은 치마를 입은 엄마를 보면서,

“누구신데 저한테 말을 거세요?”

그런 대꾸를 농담처럼 건넸었다.

각지고 까맣고 딱딱한 정장만 입고, 외출은 출퇴근이 전부이던 엄마였다. 그런 엄마가 치마를 입고 놀러 다니기 시작했다. 나는 그 변화가 싫지 않았다. 오히려 돈 많고 어른스러운 아저씨라도 만난다면 다행이라고 여겼다. 돈 없는 가난뱅이 젊은 남자만 아니면 좋겠다고도 생각했다.

내가 아주 갓난애일 때 엄마는 아빠와 이혼했다. 엄마는 남을 험담하는 성격이 아니어서 아빠 이야기를 많이 하진 않았다. 그래도 이모들이 해 주는 얘기가 있어서 나는 내 아버지가 아주 씹새끼란 걸 알고 자랐다.

어린 머리로 생각하기로, 씹새끼랑 결혼한 건 잘못일지 몰라도 이혼한 건 잘한 일이었다. 그런데도 엄마는 이혼녀 타이틀을 달고 살아야 했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사람. 나의 엄마는 슈퍼맘이었다. 대기업 한성의 몇 없는 여자 임원으로서 엄마는 ‘권태오 엄마’보다는 ‘권주원’이라는 이름으로 자주 불렸다.

휴가는커녕 주말도 없이 열심히 일해 번 돈으로 엄마는 나를 모자람 없이 키웠다. 나의 무엇에서도 아버지의 부재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나는 하고 싶은 건 뭐든 할 수 있었고 갖고 싶은 건 뭐든 가질 수 있는 행복한 초딩이었다.

그때가 좋았다. 어린 마음에, 사는 게 그냥저냥 재밌던 그때.

문제는 은허동 주택가로 이사한 뒤에 벌어졌다. 정원 있는 집에서 큰 개를 키우고 싶다는 바람이 이뤄져서 나는 마냥 기뻤지만, 권태오 엄마 권주원의 사정은 복잡해졌다.

부촌 주택가는 언뜻 보면 다정하고 평화로운 동네였지만, 가구 수가 적은 만큼 폐쇄적이었다. 나를 근방에서 가장 좋은 사립 초등학교에 전학 보낸 게 실수라면 실수였는지도 모른다. 교육열이 펄펄 끓는 동네 학부모 사이에서 엄마는 왕따를 당했다.

열두 살밖에 안 된 아들을 ‘똑바로’, ‘일류로’, ‘제대로’ 키워 내기 위해서 엄마는 없는 시간을 쪼개어 학부모 모임에 참석해야 했다. 그리고 그때마다 몹시 시무룩한 얼굴로 귀가하곤 했다.

어떤 날에는 내 침실 문을 벌컥 열더니 이렇게 말했다.

‘태오야. 혹시 아빠가 보고 싶어? 우리 태오 아빠 만들어 줄까? 엄마가 그냥… 집에서 우리 태오만 키울까?’

남들 앞에서는 당당하다 못해 매섭기까지 한 권주원 씨가 우는 소리로 징징거리면 나는 소름이 끼치곤 했다. 그럴 때마다 이불을 정리해 주려는 엄마의 손을 팍 쳐 놓고, 잔소리하는 게 내 몫이었다.

‘아, 또 왜 이래? 어디서 이상한 소리 듣고 와서 주정이야? 엄마가 돈 안 벌면, 천둥이 밥은 어떻게 사 먹여?’

그러면서 나는 6개월 된 내 동생, ‘천둥이’의 목을 껴안고 돌아눕고는 했다. 그러면 천둥이는 늘어지게 하품하며 까만 꼬리를 슬렁슬렁 흔들었다. 엄마는 ‘그래, 그래’ 하고는 일찍 철든 아들과 어린 개의 머리를 양손으로 만져 주었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엄마가 거울 앞에 서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예쁜 옷을 입었고 안 어울리게 조그마한 가방을 사기 시작했으며, 화사한 스카프를 두르거나 밝은색의 구두를 신기 시작했다.

‘만나는 남자 친구가 생겼나 보다’, 나는 그렇게만 생각했다. 그리고 엄마의 연애를 응원했다. 또래보다 키도 일찍 크고 철도 일찍 든 편이었지만, 그래 봐야 나도 열두 살 애새끼였다. 애새끼를 키우기 위해 엄마는 무진장 고생하고 있었다. 훤칠하고 예쁘고 능력 좋은 권주원이 내게는 엄마라기보다는 누나 같았다. 늦은 밤, 때론 새벽마다 내 이부자리에 고개를 푹 묻으며 ‘힘들다’거나 ‘죽겠다’며 한탄하는 모습은 불쌍하기도 했으니까….

그런데, 아니었다. 남자가 아니었다. 어느 날 엄마가 집으로 데려온 손님은 여자였다. 엄마 또래의, 키가 작고 머리는 주먹만 하고, 노란 원피스 차림새에 하늘색 카디건을 어깨 위로 둘러 묶은 엄청나게 예쁜 여자.

‘언니는 무슨, 아들을 혼자 낳기라도 했어? 언니랑 너무 판박이다.’

인사할 타이밍을 놓친 채 눈만 끔벅거리는 날 보며 예쁜 아줌마가 말했다.

‘안녕, 태오야? 나는 태오네 엄마 친구야. 이모라고 불러도 돼.’

‘아, 네…. 안녕하세요.’

‘여긴 이모 아들! 태오랑 동갑.’

그러더니 등 뒤에서 쓰윽, 꼭 저처럼 키가 작고 머리는 주먹만 하고, 노란 멜빵바지를 입은 예쁜 남자애를 내밀어 보였다. 매가리 없이 털레털레 끌려 나온 녀석이 ‘안녕’ 하고 나를 보며 인사했다.

‘어, 안녕.’

학교에서 몇 번 본 적 있는 얼굴이었다. 얼굴은 동그랗고 눈은 아주 크고, 몸은 통통한 녀석의 이름은 이혁이었다. 이혁은 친구가 많았고 나도 친구는 많았는데, 각자 노는 부류가 다르고 반도 다른지라 엮이는 일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아주 곤란했다. 그날 엄마 옆에 어색하게 붙어 선 나를 보더니 녀석이 갑자기 내게 꽂혀서는,

‘엄마들처럼 우리도 친구하자.’

그러면서 그림자처럼 붙어 다니길 시작한 것이었다.

솔직히 말해 나는 이혁이 싫었다. 엄마 말로 이혁은 ‘아주 소중한 애’였다. 작은이모가 그 애를 아주 힘들게 낳았는데, 갓난아기 시절에 욕조에 빠뜨리는 바람에 큰일날 뻔한 뒤로 몹시 애지중지한다고 했다. 나는 그 말들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렸다.

이혁이 제 부모한테 소중하든 말든 내 알 바인가 싶었다. 예쁘다 예쁘다 좋은 소리만 듣고 자라서 그런지 녀석은 나에 비해 너무 어린애 같았다.

방학 동안 함께 지내 본 결과, 녀석은 애교 섞인 목소리로 나를 소름 돋게 만들었고 놀이에 있어서도 이기적이라서 반칙을 자주 저질렀다. 모든 게 자기중심적이어서 자기가 이길 때는 몇 판이고 같은 게임을 계속하자고 졸랐고, 지기 시작하면 컴퓨터 코드를 뽑아 버렸다.

문제는 엄마가 ‘제발’이란 말을 해 가며 그 녀석과 잘 지내 달라고 부탁했단 점이었다. 엄마는 이혁네 아줌마를 너무 많이 좋아했다. 그 아줌마와 친해지고서 동네 학부모 모임에 잘 어울리게 되어서인가 생각해 봤지만, 그것 때문이라기엔 정도가 좀 지나쳤다. 뭐라 그럴까…, 영 딴사람이 된 거 같았다. 사람이 바보처럼 변해서는, 그 아줌마 말에는 쩔쩔매고 그 아줌마 앞에서는 헤실거리고, 그 아줌마가 좋아하는 거라면 뭐든지 사 주고 원하는 일이라면 뭐든지 들어주려 애썼다.

엄마의 이상한 부탁을 나는 적당히 들어주었다. 6학년 내내 이혁과 붙어 다녔고 그럭저럭 잘 지냈다. 간간이 짜증 나는 일이 있기는 해도, 한편으로 좋은 점도 많았다.

형제처럼 지내게 된 나와 이혁을 보며 엄마가 마음의 짐을 좀 덜어 냈고, 어느새 내게 ‘작은이모’가 된 이혁네 아줌마와 엄마는 자매 같은 사이가 됐으며, 엄마가… 뭐, 그래. 나한테 좋은 점은 그닥 없지만 아무튼 간에 엄마가 기뻐했다.

다 이해하는 척, 아는 척,

‘뭐, 그럼 됐어.’

…겉으로만 그랬을 뿐이지 나는 내게 닥쳐온 변화에 대해 전혀 몰랐다.

중학생이 된 뒤 상황은 빠르게 달라졌다. 키가 180㎝를 훌쩍 넘긴 나는 유도를 시작했다. 제대로 배운 지 두 달도 안 되어서 도 대회에 나갔고, 2등 상을 탔다. 한 달 뒤에는 더 큰 대회에 나갔고, 1등 상을 탔다.

나는 운동이 좋았다. 땀을 흘린 뒤 정강이 근육이 꿈틀거리며 통증을 일으킬 때면, 체온으로 펄펄 끓는 유도복 안으로 스미는 찬 바람을 느낄 때면, 꼭 나처럼 열받고 답답하고 빡돈 새끼들을 힘으로 제압하고 엎어 칠 때면… 탈출하는 기분이었다. 내 속에 든 것을 다 끄집어내고 갈비뼈 안이 가벼워진 느낌이었다. 딱히 갇혀 사는 줄도 몰랐건만 해방감을 느꼈다.

그리고 딱 그만큼, 나는 이혁이 귀찮았다.

‘이 자식, 언제까지 나만 졸졸 따라다닐 생각이지?’

이혁은 이상할 정도로 나를 좋아했다. 어느 정도냐 하면 제 집에서 지내는 시간보다 우리 집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을 정도였다. 하나 있던 게스트 룸이 자연스럽게 이혁의 방이 됐다. 나와 이혁이 친형제인 줄 착각하는 놈들이 더러 생겼다.

이혁이 나를 좋아할수록 나는 놈이 싫었다.

책이나 영화를 더 좋아하는 이혁을 위해 관심에도 없는 글을 읽고 재미도 없는 영화를 보러 다니기가 지루했다. 방과 후 시간은 유도 학원에서 보내는 게 더 재밌었고, 주말에는 야구 경기를 보러 가고 싶었고, 저녁에도 이혁네와 비싼 저녁을 먹기보단 천둥이랑 산책로를 뛰고 싶었다.

슬슬 다른 친구들이 더 좋아졌다.

‘학원 빠지고 나랑만 놀면 안 돼?’

‘야구장은 더워서 싫은데….’

‘천둥이는 산책 알바 맡겨도 되잖아.’

…그런 말로 어리광을 부리는 이혁보다 더.

녀석을 떼어 내고 유도부 친구들과 야구 경기를 보러 간 날이 있었다. 개중 한 녀석이 야구팀 감독과 친분이 있어, 경기를 마친 프로 선수와 사진도 찍었고 그날 2루타를 친 사인 볼을 선물 받았다.

한껏 기분이 좋아진 채 돌아온 집 앞에는 이혁이 앉아 있었다. 어울리지 않게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손에는 천둥이의 리드 줄을 쥔 채였다.

‘네가 안 와서, 오늘 천둥이 산책은 내가 시켰어.’

녀석이 하는 말에 나는 조금 미안해졌다. 그러면서도 들뜬 기분을 감추지 못해서, ‘미안’이란 말은 건성으로 뱉고 주머니 안에 넣어 온 야구공으로 화제를 돌렸다. 곧 메이저리그로 진출할 프로 선수의 사인 볼이라고 자랑하자, 이혁은 두 눈을 심드렁하니 가늘게 떴다.

그리고 말했다.

‘그거 나 주면 안 돼?’

‘뭐? 무슨 소리야. 야구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그거 주면, 그 공은 좋아할지도 모르잖아.’

‘안 돼.’

그 말을 끝으로 나는 야구공과, 천둥이의 리드 줄을 양손에 쥔 채 집으로 돌아갔다. 아무튼 간에 내일 보자고 어색한 인사를 건네는 내게 이혁은 대답해 주지 않았다. 터덜터덜 대문 밖을 나서는 녀석이 왠일로 얌전하길래, 나는 조금 어리둥절했다.

의문은 두 시간 만에 풀렸다. 이혁은 제 입으로 전할 말을 남을 시켜 듣게 하는 버릇이 있었다.

‘태오야, 저녁에 혁이랑 싸웠니? 이모가 그러던데? 너랑 혁이랑 싸웠다고.’

그리고 그 사람이 우리 엄마라는 건 절대로 좋은 일이 아니었다.

‘혁이가 너무 서운해서 울면서 집에 갔대. 기사도 안 부르고, 그 조그만 애가 얼마나 속상했으면…. 태오 너, 사인 볼은 벌써 세 개인가 네 개인가 더 있잖아. 하나는 혁이 주면 되지, 그런 걸로 친구랑 싸워서 되겠어?’

혁이는 네 형제 같은 애잖니, 걔가 얼마나 착하고 순진한데, 엄마가 이모 볼 면목이 없다, 태오 너를 그렇게 키우진 않은 것 같은데… 비슷한 잔소리가 하루 종일 이어졌다. 나는 아주 당황스러웠다. 뒤통수를 세게 맞은 느낌이었다.

‘왜 엄마가 내 편을 안 들지?’

처음으로 그런 의구심이 들었다. 그러나 깊이 생각하진 않았다. 단순히 짜증이 났고, 좀 서운했으며, 말마따나 사인 볼은 여러 개 있으니 기분을 더 잡치느니 이혁에게 하나 주고 말지 싶었다.

그래서 이튿날에는 사인 볼을 챙겨 학교로 갔다. 맞춤 아크릴 케이스에 넣은 상태로 건네주자 이혁은 꽤나 기뻐했다.

그리고 쉬는 시간이 되었을 때, 그 공은 더 이상 사인 볼이 아니게 되었다. 이혁이 책상 위에 올려놓고 붉은 올을 툭, 툭 건드려 대는 그 공에는, 더 이상 프로 야구선수의 사인이 없었다.

‘…그게 뭐야?’

일순 다른 공인가 싶어 물었다. 그러자 이혁은 깨끗해진 공의 단면을 보여 주며 헤실헤실 웃어 보였다.

‘여자애들한테 아세톤 빌려서, 내가 닦았어. 봐 봐, 이제 깨끗해졌지?’

그러고는 이해하기 힘든 소리를 했다. 자기한테 이 공은 권태오인 내가 줘서 중요한 물건이니까, 누군지도 모르는 선수의 이름이 적혀 있는 건 싫다고….

화가 펄펄 끓고 빡이 돌아 버린 내가 듣기로 그 말은 개소리였다.

‘야…, 너 일부러 이러는 거냐?’

‘…응?’

‘재밌냐? 착한 척 웃는 얼굴로 사람 골탕 먹이니까 재밌냐고.’

그러자 이혁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조금 당황한 듯 녀석은 야구공을 제 손안에 감췄다. 큰 눈을 도록도록 굴리는 동작이 당시 내 눈에는 작위적인 연기처럼 보였다.

그래서 화가 났고,

‘넌 다른 사람 기분보다 무조건 네 기분이 먼저지?’

그래서 화를 냈다.

‘너 절대 착한 새끼 아니야, 씨발. 그냥 이기적인 놈이지.’

‘태오야, 나는….’

‘나한테서 떨어져. 꼴도 보기 싫으니까.’

그러고는… 이어지는 기억은 모두 희미하다.

이후 몇 달간 어른들에게 시달리며 수십, 수백 번 읊어 주었던 말이 대본처럼 고정되어 남아 있을 뿐이다.

‘…그다음엔 학교 친구들한테 말하고 다녔어요. 이혁이랑 싸웠고, 이혁이 짜증 나게 굴어서 싫다고요. 걔가 우울해하는 게… 저녁에 유도 학원까지 따라올 거 같은데, 나는 걔 좀 안 보였으면 좋겠다고요. 진심으로 그렇게 말한 거 아니에요. 그냥 화가 나서 잠깐 그런 거예요.

…그리고 유도 학원에 갔는데요. 이혁이 자꾸 저한테 전화를 걸었어요. 끊어도 끊어도 자꾸요, 문자도 확인 못 할 정도로 많이요. 저는 아직 화가 나 있어서요, 폰은 캐비닛에 집어넣었고요. …네, 전화는 안 받았어요. 그날 학원끼리 친선 경기가 있었거든요.

근데, 경기를 다 하고 보니까… 학원을 같이 다니는 친구들이… 웃고 있더라고요. 학교에서 나랑 얘기했던 애들이요. 걔들이 이혁 얘기를 하길래, 뒷담화를 까는 줄 알고 끼어들었어요. 됐으니까 그만하라고 하려고요.

근데 걔들이 그러더라고요…, 이혁한테 너 대신 복수했다고. 제 번호로 이혁한테 문자해서… 6시에 주현역 9번 출구에서 보자고 했다고요. 진짜 지하철 타러 가는 거, 자기들이 봤다고….

…네. 제가 알았을 땐 9시 반이었어요. 이혁한테 전화를 걸었는데 안 받았어요. 폰이 꺼져 있었어요. 그래서 택시를 타고 주현역으로 갔는데 이혁이 없었어요. 출구를 다 돌아다녔는데… 없었어요.

저는 걔가, 좀 기다리다가 집에 간 줄 알고… 저도 집에 왔는데… 엄마가 왜 혁이랑 같이 안 오냐고 해서. 안 만났다고 그러니까 너무 놀라길래. 이모한테… 전화하길래.

걔가 없어졌다는 거도 그때 알았어요.’

중얼거리는 내 앞에 앉은 어른은 계속 모습을 바꿨다. 걱정 어린 얼굴의 엄마였다가,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경찰이었다가, 인상을 잔뜩 찌푸린 남자 형사였다가, 들리는 모든 말을 수첩 안에 받아 적는 여자 형사였다가,

‘왜 전화를 안 받았어?’

소리를 내지르는 ‘이모’, 이혁네 엄마였다.

‘왜…? 혁이가 너한테만… 너한테만 스무 통 넘게 걸었는데. 왜 한 번도 받지 않았어? 왜? 왜 혁이한테 화를 냈어? 친하게 지내기로 했잖아, 형제처럼 챙겨 주겠다고 약속했잖아! 도대체 왜 그랬어? 왜 그랬어, 태오야!’

내 어깨를 부여잡고 울부짖는 이모의 얼굴이 괴물 물고기 같았다. 식은땀을 뒤집어쓴 채 비난을 듣던 경찰서 복도가 기억난다. 춥지도 않은데 벌벌 떨리던 몸, 내 체온으로 미지근해진 의자에 씌운 싸구려 가죽 시트의 감촉, 내 어깨를 파고들던 열 개의 손톱이 주던 통증, 귓바퀴를 파고들던 악에 받친 비명 소리, 그리고 남 보듯이 나를 응시하던 엄마가 있었다.

이미 나보다 이모가 더 중요하게 된, 내 슈퍼맘이 있었다.

‘이건 꿈이겠지.’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이혁이 사라진 지 나흘째 되던 날에 ‘혁 군 사건’이라는 이름으로 보도되는 실종 뉴스를 보면서, 언론에도 알리지 않고 내게도 보여 주지 않았지만 아무튼 납치 정황 증거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대대적인 수사팀이 꾸려진 뒤 담당 형사가 재차 내게 그날 있었던 일의 진술을 요구할 적에, 이모네 가족들이 뉴스며 방송에 출연해 제발 우리 혁이를 무사히 돌려 달라고 흘리는 눈물을 볼 때에.

‘이거… 이거, 그냥 악몽이겠지….’

나는 이만 꿈에서 깨고 싶었다.

그리고 넉 달이 흘렀다. 한 계절 동안의 기억을 나는 잃어버렸다. 돌이켜 회상하려 해도 무엇 하나 분명한 게 없다. 엄마는 4년 만에 회사를 쉬면서 이혁을 찾겠다고 이모네에서 살다시피 했고… 모르겠다, 어른들이 뭘 했는지. 구체적으로 얼마나 노력했고 어떻게 수사했는지. 내가 기억하는 건 시시때때로 날아오던 원망의 눈초리뿐이었다.

네가 조금만 신경을 썼더라면 수사 범위가 훨씬 줄어들었을 텐데.

걸려 온 전화를 받기만 했어도, 위치를 추적해서 찾아낼 수 있었을 텐데.

애초에 화내지만 않았더라도 걔가 혼자서 사라질 일이 없었을 텐데.

‘죽었으면 어떡할 거야?’

엄마가 그렇게 중얼거렸다.

‘혁이가 벌써 죽었으면… 그럼 우리는…, 엄마는 어떡해야 되니, 태오야?’

천둥이를 끌어안고 침대에 누운 채 나는 자는 척 움직이지 않았다. 비정상적으로 떨리는 내 숨소리를 한참 들을 뿐, 엄마는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한 번도 울지 않았다. 엄마가 울고 이모가 울고 이모부가 울어 대니까, 온 국민이 야단법석을 떨며 ‘혁 군’을 찾아 헤매니까, 나는 울 수 없었다.

긴급 속보가 뜬 것은 정확히 실종 넉 달째 되던 깊은 밤, 자정이었다. 실종됐던 이혁이 주현동 뒷산에서 발견됐다는 속보를 들으면서 나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모르게 됐다. 수사망에 꼬리를 밟히자 범인이 이혁을 산에 묻었다고… 그 문장을 듣고 나는 기절했다.

다시 눈을 떴을 땐 흔들리는 차 안이었다. 뒷좌석에 나를 실은 채 엄마는 운전대를 쥐고 있었다.

창밖으로 텅 빈 심야 도로가 보였다.

‘태오야, 그동안 많이 걱정했지? 이제 괜찮아, 혁이 안 죽었대. 병원에 있어, 지금… 지금 너부터 찾고 있대. 보고 싶다고, 기다리고 있대.’

몹시 흥분한 목소리로 엄마가 말했다.

‘얼른 가자. 혁이 보러 가자. 엄마도, 이제 이모랑 화해해야지….’

나는 갈팡질팡하며 어른들의 손에 잡혀 끌려다녔다. 1인 병실의 문을 열자 침대에 누운 이혁의 인영이 보였다. 일순 나는 녀석을 알아보지 못했다. 다른 애를 데려다 놓은 게 아닌가 하는 걱정마저 들었다.

이혁은 예전에 비해… 아니 예전 모습이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비쩍 말라서, 꼭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은 모습이었다.

‘태오야….’

이혁이 나를 불렀다.

파랗게 질린 채 얼어붙은 내 손을, 이모가 당겼다. 병실 안으로 질질 끌려가 침대 옆에 서자, 이혁이 내 손을 힘주어 붙잡았다. 박박 씻어 내리고 소독까지 마친 이혁의 손은 창백했고 아주 차가웠다.

입술을 벙긋거리며 이혁이 말했다.

‘네가 아끼는 공… 잃어버렸어. 미안해. 억지로 달라고 하지 말걸 그랬어.’

‘…아냐, 괜찮아. 공 같은 건 아무래도 상관없어.’

그제야 나는 울기 시작했다. 내내 참아 왔던, 뒤늦게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되는대로 쏟아냈다. 정말로 많이 걱정했다고, 전화 안 받아서 너무 미안하다고, 네가 죽은 줄 알았다고, 다시 돌아와서 다행이라고… 해도 될 말과 하지 않아야 할 말을 분간하지 못하고 마구잡이로 고백했다.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엉엉 울며 눈물 콧물을 다 흘리는 나를, 이혁은 누운 채 올려다봤다.

‘태오야, 나를… 많이 걱정했어?’

묻는 말에 나는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이혁이 웃었다.

‘그럼… 앞으론 날 바람맞히지 않을 거지?’

나는 아주 세고 단단한 것에 머리를 맞는 기분이었다. 영문 모를 감정에 소름이 끼쳐서 몸을 떨었고, 그러면서도 도무지 녀석의 손을 놓지 못했다.

산 채로 산에 묻혔다가, 폭우가 내리는 바람에 기적적으로 흙이 씻겨 내려가서… 그렇게 살아 돌아온 이혁이었다. 비쩍 마른 손가락이 내 손을 잡는데, 나는 그것을 놓을 수가 없었다. 내가 놓으면 그 애가 다시 사라질 것 같았다. 넉 달을 보이지 않다가, 다시… 산에 파묻혀서 돌아올 것 같았다.

‘그…래.’

그래서 그렇게 대답했다. 약속을 요구하는 녀석의 말에 순순히 새끼손가락을 걸고 흔들면서,

‘그래…, 그럴게….’

최면에 걸린 사람처럼 웅얼거렸다.

이혁이 돌아온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납치범이 잡혔다. 범인은 순 또라이 같은 새끼였다. 범죄 사실을 감출 의지조차 없는 그 남자는 여러 의미로 정신이 나간 사람이어서, ‘전리품’이라며 실종 아동들의 소지품을 제 손으로 경찰에 제출했다.

녹색 공룡이 달린 열쇠고리, 재킷에서 뜯어낸 지퍼, 노란색 이름표와 학생증, 그리고 붉은 올이 뜯긴 내 야구공….

‘혁 군 사건’은 그 후 몇 배는 더 유명해졌다. 당시 라이징 스타로 손꼽히던 남자 아이돌이 과거 피해자 중 하나였다며 뉴스를 탔기 때문이었다. 낯선 이름이 박힌 학생증이 알고 보니 아이돌 가수의 중학생 시절 소지품이라는 걸, 공중파 채널에서만 오십 번도 넘게 다루었다.

자극적인 뉴스에 사람들은 열광했다. 제대로 조사하고 강력하게 처벌하라며, 경찰서 앞을 메우고 시위까지 해댔다.

그 바람에 이혁의 상황은 씨발스럽게 됐다. 찾을 때야 요란하고 시끄러울수록 좋다지만, 애가 무사히 돌아오고 보니 타인들의 관심이, 씨…발 넉 달 동안 장기를 털렸네, 변태 새끼에게 성범죄를 당했네 마네 허튼 루머로 변질됐다.

더 이상 ‘혁 군 사건’은 그냥 둔다 해서 잊히고 지나갈 일이 아니게 됐다.

이혁은 못 알아보게 말라붙은 몸매를 유지했고, 쌍꺼풀 수술을 받았다. 그리고 개명 신청서를 작성했다.

‘얼굴이 반쪽이 돼서… 어쩜 좋아, 내 새끼….’

원한 적 없던 변신에 속상해하던 이모의 얼굴이 사진처럼 또렷하게 기억난다. 어째선지 신난 얼굴로, 종이에 적힌 이름 후보들을 하나하나 지워 나가던 이혁까지도.

그렇게 이혁은 이찬희가 됐다. 앞으로는 새 이름으로, 새 인생을 살 거라고 웃음 지었다.

엄마는 이모네와 함께 채홍동으로 이사를 했고, 나는 이찬희와 함께 새로운 중학교로 전학 갔다. 이찬희가 그러듯이 나도, 친구들과 칼로 도려내듯 이별하고 두 번 다시 연락하지 않아야 했다. 지난 일에 대해 죄책감을 느꼈고, 책임 의식도 느꼈기 때문이었다.

이찬희는 과연 새 이름으로, 새 인생을 살고자 했고… 새 사람이 되어 있었다. 이찬희는 이혁과는 다른 존재였다. 이찬희는… 내게 타투처럼 새겨진 트라우마의 이름이었다.

그 새끼는 여러 방식으로 나를 미치게 만들었다. 놈의 이상 행동은 단순히 납치 사건의 트라우마 징후라고 단정 짓기엔 조금 버거운 감이 있었다. 이모나 선생님들, 엄마는 그렇게 믿는지 몰라도 내가 보기에… 이찬희는 이혁이던 시절부터 원래 그런 성격을 타고난 놈이었다. 그 성격이, 주변의 과보호와 실종된 채 보냈던 넉 달의 시간 탓에 더욱 강력해졌을 뿐이었다.

트라우마 징후는… 씨발… 오히려 나에게 있는 것 같았다. 나는 한동안 잠을 자려고 침대에 누울 때마다 불안감에 파랗게 질렸다. 하루에도 서너 번씩 똑바로 숨 쉬는 방법을 잊어 먹었다. 증세가 너무 심각해서 내 방 안에서 실신하는 일까지 종종 있었다.

새 학교, 새 친구, 새 환경에 적응하며 이찬희는 지난 반년간 지병을 앓았었다고 거짓말했다. 나는 그런 친구의 오래된 보호자 노릇을 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깨달았다. 이찬희가 회복되지 않는 한은 나 역시 악몽 같던 그 계절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걸.

거절당하는 걸 죽도록 못 견디는 이찬희가 있는 한은, 내가 다른 사람과 친해지는 것도, 그로 인해 자신이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것도, 전화 한 통 문자 하나까지도 무시를 당하고서는 견디지 못하는 이찬희가 있는 한은, 비쩍 곯은 얼굴로 자길 버릴 거냐고 묻는 한은… 나는 그놈의 손아귀에서 떠날 수 없었다.

새로 사귄 친구들과는 좀처럼 깊게 어울리지 못했다. 같이 놀자는 초대를 받을 때마다 이찬희가 아프다고 나를 불러 댔기 때문이었다.

여름마다 즐기던 수상 스키도 그만둬야 했다. 파도 위에서는 이찬희가 걸어 온 전화를 받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사랑하는 내 동생, 천둥이와도 헤어져야만 했다.

천둥이는… 천사였다. 정말, 아주아주 착한 개였다. 눈동자는 동그랗고 헥헥거릴 때 혓바닥이 핑크색이던 내 천둥이는 장난으로라도 사람을 문 적 없는 순한 애였다. 덩치만 크고 색깔만 검었지, 터그 놀이를 하다가 신이 나서 ‘으르릉’ 소리를 내고는 제가 낸 소리에 제가 놀라서 꼬리를 말 정도였다.

이찬희는 어느 날 갑자기 우리 집에 찾아와서는 울면서 신발장에 주저앉았다. 천둥이가 저를 보고 두어 번 짖었다는 이유에서였다. …제 시체를 찾던 수색견이 짖던 소리를 떠올리게 한다면서, 놈이 오열하던 시간에 나는 공항에 있었다. 가지 말라던 이찬희의 만류를 무시하고 미국의 사촌 형을 만나러 가려 한 죄로, 어머니는 천둥이를 물건 치우듯 그렇게 파양했다.

연락을 받자마자 급하게 캐리어를 챙겨 들고 눈물과 땀을 뻘뻘 흘리며 집으로 돌아왔을 땐 이미 늦은 후였다. 천둥이도 엄마도 보이지 않았다. 그 죄 없는 개를 벌써 차에 실어서, 내 천둥이를, 엄마가 데리고 나가 버렸다.

허둥지둥 올라가 내 방문을 열자 이찬희가 있었다. 그 애는 내 방 침대에 앉아 방싯거리며 웃는 낯이었다.

‘도대체 나한테 왜 이래? 네가 이러면, 이, 씨발… 나는 도대체 언제 괜찮아져?’

나는 이찬희를 두들겨 패고 싶었다. 2층 창문 밖으로 집어 던지고 싶었다. 주먹으로 세게 때리고 발로 걷어차고 싶었다.

‘나랑 약속했는데, 네가 자꾸 안 지키잖아.’

이찬희가 그렇게 말했다.

‘나한테서 도망치려고 하잖아, 날 이상하게 생각하고 싫어하잖아. 다시 바람맞히려고, 떼 놓고 가 버리려고… 너 낫고 싶다는 거, 그거잖아. 날 보내 버리려고 준비하는 거잖아.’

그러면서 녀석은 하하 웃고, 또 흑흑 울었다.

‘네가 없을 때 그 아저씨가 나 잡으러 오면 어떡하려고 그래? 다시 날 산에 데려가서 묻으려고 하면, 그땐 어떡할 거야?’

나는 땀을 줄줄 흘리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무릎으로 기어가다시피 이찬희에게 다가가서, 놈의 손을 와락 움켜쥐었다. 그리고 빌었다.

‘내가, 내가 다시 왔잖아. …돌려줘. 천둥이는 돌려줘. 다시 데려오라고 해 줘. …찬희야, 내가…. 내가 앞으론 안 그럴게. 떨어지려고 안 할게, 내가 계속 옆에 있을게. 천둥이 다시 데려오게 해 줘. 우리 엄마한테 네가 말 좀 해 줘….’

애걸복걸하는 나에게 이찬희는 휴대폰을 툭 내밀었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주는 줄 알고 기뻐하던 것도 잠시, 나는 이내 창백해졌다. 직사각형 화면 속에 띄운 것은 주소록 따위가 아니었다.

그건 CCTV 영상이었다.

주현역 9번 출구, 뜨문뜨문 상가와 가판대, 길을 오가는 행인이 찍혀 있는, 저화질 영상이었다. 더 이상 무조건 내 편이 아니게 된 엄마조차도 애써 감추었던, 차라리 모르고서 상처 입지 말라고 막아 주었던, 그 영상. 그날의 이혁이 찍힌 영상….

목격자가 곧 방관자였다. 대뜸 다가온 성인 남자에게 팔을 잡힌 이혁을 보고도 행인들은 발을 멈추지 않았다. 외면한 채 가던 방향으로 마저 걷거나 주위 사람들의 눈치나 살필 뿐, 아무도 납치범을 만류하지 않았다. 영상 속의 이혁이 뭐라 소리치자 납치범은 그를 다그치듯 시늉했다. 자신이 그의 보호자라도 된다는 양 행세하며, 그는 사람 많은 거리에서 이혁을 끌고 갔다.

화면 밖으로 두 사람이 사라지고서 잠시간은 행인들의 모습만 찍혔다. 오토바이를 탄 배달원, 저들끼리 뭐라 떠들며 걷는 노인들, 휴대폰을 귀에 붙인 채 걷는 여자, 그리고 검은 비닐봉지를 든 남자애 하나가 지나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승합차 한 대가 차도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혁을 실은 차라는 걸, 나는 알 수 있었다. 승합차는 빠른 속도로 사라졌다. 우스울 정도로 쉬운 납치였다.

‘태오 네가 안 와서 이렇게 된 거야.’

조곤조곤한 목소리에 나는 얼굴이 시뻘게졌다. 멍하니 눈을 깜빡일 뿐 어떤 반응도 보일 수가 없었다. 식은땀이 턱 끝에서 무릎 위로 뚝 떨어졌다.

‘너도 내가… 없어질까 봐 불안하잖아. 또 이렇게 될까 봐, 그래서 지금 벌벌 떨잖아.’

‘…나는….’

‘나도 네가 필요해, 태오야. 우리… 계속 같이 지내자. 형제처럼, 가족처럼. 응? 네가 내 옆에 좀 붙어 다녀 줘…. 그래야 울 엄마가 너네 엄마랑 계속 같이 놀 거 아냐.’

이상한 소리에 고개를 들자 이상한 이찬희가 보였다. 이마며 목덜미, 구레나룻이 사포로 벅벅 민 것처럼 시뻘건 상태였다.

송골송골 아주 작은 핏방울이 묻어나는 목덜미를, 나는 인상을 찌푸린 채 살폈다. 그 자국이 도대체 어쩌다 생긴 건지 알아채기에는, 나는 너무 둔했고 아주 슬픈 채였다.

‘천둥이는… 상관없잖아.’

내가 신음하듯 말했고,

‘태오 네가 없으면, 네가 없으면… 내가 힘들어서 그래….’

이찬희는 웃다가 또 울었고,

‘천둥이는 너한테 아무런 잘못도 안 했잖아….’

우리 대화는 서로 이어지지 않는 채로 끝이 없었다.

나는 이찬희가 싫었다. 정말이지 너무 귀찮았다. 내게 집착하고 들러붙어서 성가셨고, 제 상처를 들여다보느라 나를 놓아주지 않아서 짜증났고, 억지로 천둥이를 떼어 놓게 만들다니 악마 새끼 같았다.

그리고 불쌍했다. 뒤늦게 쏟아지는 관심과 연락으로는 바싹 말라붙은 몸을 불리지 못하는 이찬희가, 반년간 불치병을 앓다가 죽다 살아났단 거짓말이 너무나 잘 어울리는 이찬희가, 씨발 너무 불쌍했다.

제발 죽지 않았으면 바랐다. 개 같은 아저씨인지 뭔지와 보낸 넉 달의 계절은 잊고 전처럼, 존나 이기적이고 눈치 없고 멍청한 이혁으로 돌아왔으면 바랐다. 그렇게 행복한 어른이 돼서, 어디든지 혼자서도 잘 다니고 헤실헤실 웃으면서, 멋대로 떵떵거리며 잘 살았으면 싶었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사람이, 내가 세상에서 제일 불쌍하게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그 사람과 너무 친한 나머지, 내게 부려 대는 온갖 패악질의 이유를 이해한다는 게 나를 미치게 만들었다.

그래도 나는 이해한다는 게. …나만 이해한다는 게.

‘제발 천둥이는 돌려줘….’

열네 살의 겨울, 그 계절에서 나와 이찬희의 성장은 멈췄다. 우리에게는 열다섯 살의 봄이 오지 않았다. 열여섯이 되어도 열일곱이 되어도 매한가지였다. 내 키가 190㎝를 찍고 이찬희의 연기가 보다 완벽해진 다음에도 우리는 열네 살이었다.

그 겨울의 추위, 눈덩이처럼 불어난 감정, 살 에이던 상처에 각자 한 발씩 담근 채 빼지 않기로… 우리는 새끼손가락을 걸지 않고 약속했다.

그리고 열일곱 살의 봄이 왔다.

3월 3일. 봄비가 폭우처럼 쏟아지던 날 나는 그 애를 만났다. 생략된 줄 알았던 내 성장기, 전부 비워 낸 줄 알았던 욕심, 심장 철렁하게 예쁜 이우신을.

유도는 누구에게도 구애받지 않고 오롯하기로 유일한 내 것이었다. 근육이 비명을 지를 때까지 운동하는 게 나는 좋았다. 온몸의 접히는 부위가 빨갛게 달아오르고 심장이 너무 세게 뛰어서 갈비뼈까지 울리는 통증이 좋았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정수리 위로 고약한 김이 폴폴 솟는 느낌이 좋았다.

그렇게 힘들면 아무 생각도 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좋았다. 여기가 어디인지도 지금이 언제인지도 내가 누구인지도 생각하지 않고 그저 숨이, 이러다 죽겠다 싶게 차오르는 몇 분. 온몸의 감각만이 살아서 꿈틀거리고 뇌는 텅 비는 수십 초의 순간.

그때 나는 자유로웠다.

반대로 그 외의 모든 시간이 끔찍하게 지루했다.

국가 대표 유도 선수들의 모교라 불리는 채홍 고등학교는 내게 아무런 감흥도 주지 못했다. 유도 전형 입학시험이 대입보다 어렵다고는 하는데 나한테야 뭐 상관없는 일이었다. 중딩 시절 모아 놓은 상과 트로피들이 있어 따로 시험을 칠 필요도 없었다.

유도부 신입생 훈련은 2월 중순부터 시작됐다. 몇몇 놈들이 나를 알아보고 아는 척을 해댔다.

“오…! 오올, 권태오! 네가 제일 먼저 합격했다더니 진짜였구나. 반갑다, 야!”

언제 봤다고 어깨에 손을 대고 지랄이지.

“…어, 야아. 나 기억 안 나? 그 왜, 1월 대회에서 너한테 존나 발렸는데…. 작년에도 예선전에서….”

“어. 기억난다. 반갑네.”

전혀 모르겠다.

뻔질뻔질한 채홍관이나 호화로운 수준의 훈련소나 모든 게 새것인 경기장이나, 이렇다 할 특징 없는 상판을 쳐들고 헤죽헤죽 웃어 대는 어수선한 놈들이나… 모든 게 그저 그랬다.

한 주간 지루하고 심심한 예비 훈련기를 보냈다. 희소식이라고는 2학년이 되면 선택하는 과목에 따라 반이 나뉠 거란 소식뿐이었다. 나는 체육 특기생을 모아놓은 반으로 갈 테고 이찬희는 제 나름대로, 작은이모가 정해 놓은 진로를 따를 거였다.

‘2학년만 되면… 교실에서 안 볼 수 있겠네.’

이제는 본격적인 선수 생활 준비에 돌입할 시기였다. 하던 대로 잘하면 될 일이었다. 대회도 되는 대로 전부 나가고, 꾸준히 노력해서… 작은 숨구멍을 하나라도 뚫을 수 있다면 그걸로 족했다.

그리고 3월 3일이 왔다.

오후부터, 두툼한 운동부 놈들만 오가던 교내 산책로에 어중이떠중이 멸치들이 걸어 다녔다. 듣자 하니 기숙사 입사식이 있는 날이랬다.

“내일 개학식이잖아. 아! 이쁜 여자애들 좀 많으면 좋겠다. 연애 좀 해 보자!”

“아, 그러니까. 중학교 때는, 씨발 복도만 지나가면 아주 우웩….”

그런 소리 하는 놈들은 어째 하나같이, 연애 못 하는 이유가 본인 얼굴에 있다.

부산스러운 분위기 속에 운동부도 훈련소 입사식을 시작했는데, 시작과 동시에 끝날 정도로 단출했다. 따로 강당으로는 갈 필요도 없었다. 채홍관에 모여 10분 동안 과자나 뜯어 먹고 상반기 대회 일정이나 들으면 그만이었다.

내게는 훈련소 숙소 3층의 가장 구석 자리 1인실이 배정되었다. 방 안에 몇 가지 짐을 넣기는 했다. 그러나 그곳에서 묵을 날이 많을 거란 기대는 하지 않았다. 내가 없으면 이찬희가 언제 발작을 빙자한 지랄 쇼를 벌일지 모를 일이니까.

그렇게 생각하며 가방을 챙겨 드는데 휴대폰이 울렸다.

[이찬희]

양반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가만, 그건 호랑이던가?

“어.”

대충 전화를 받으며 훈련소 문 앞에 섰다. 휴대폰 너머에서 이찬희는 여러 말들을 쏟아 냈다.

―태오야. 너 없어서 나 오늘 완전 심심했어. 아, 맞아. 네 교복도 우리 집으로 왔더라? 1학년 넥타이 색깔 완전 구려! 내일 차 타고 학교 가면서 갈아입든지 해, 미리 실어 놓을게. 너 아직 밥도 안 먹었지? 훈련은 다 끝났고? 배고프겠다. 있지, 나는 파스타 먹고 싶은데 너는 느끼한 거 안 내키지? 매운 필라프도 하는 가게 찾았는데. 혹시 필라프는 좀 어때?

요점만 첨삭하면 다음과 같아진다.

[태오야. (…) 내일 차 타고 (…) 학교 가 (…). (…) 파스타 (…) 어때?]

…집 가서 라면이나 끓여 먹고 싶은데.

“작은이모는?”

―엄마? 큰이모랑 여행 갔잖아. 지금쯤이면 공항에 도착했을지도?

‘큰이모’라면 우리 엄마, 권주원 씨를 뜻했다. 여행을 갔다니 금시초문이었다. 엄마가 말을 안 한 건지, 했어도 내가 귀담아듣지 않은 건지 둘 중 하나일 터였다. 어느 쪽이든 별로 놀라운 소식은 아니었다.

문제는 이찬희가 제집에 혼자 남았단 부분이었다. 이모부는 상해로 출장 간 지 두 달째이고, 녀석은 동네에 친한 친구도 없다. 친구가 있다 한들 낯을 존나 가리는 새끼가 아무나 불러서 밥을 먹을 리도 없다. 구체적으로 파스타에 꽂혔고 벌써 가게까지 찾아 뒀다면, 내가 거절하자마자 이찬희 혼자서 먹으러 갈 가능성이 컸다.

한숨이 콧김처럼 훅 나왔다.

“…그래. 밥 먹으러 가자.”

―밖에 지금 비 와. 기사 아저씨 불러서 내가 그리로 갈게.

“어.”

―우산은 있지?

“어.”

그렇게 전화를 끊었다.

훈련소 정문으로 나서자 문 밖으로 쏟아지는 굵은 빗방울이 보였다. 우산꽂이에 남은 우산도 내 것 하나뿐이었다. 새카만 장우산을 들고 나서려는데, 복도 끝에서부터 코치가 나를 불렀다.

가장 늦게까지 남은 죄로 나는 심부름 하나를 맡게 됐다. ‘나가는 길에 겸사겸사’라길래 응하고 보니, 영 귀찮은 심부름이었다. 본관 운동장 앞에 있는 대강당을 소등하고 문을 좀 잠가 달란 거였다.

“뭐…. 알겠어요.”

어차피 이찬희가 올 때까진 여유가 있었다. 나는 군말 없이 열쇠를 건네받았다.

터덜터덜, 산책로를 걸어 내려가자니 맑은 아침과 다른 풍경을 볼 수 있었다. 비에 젖은 잣나무는 잎의 색이 더 짙어져서 거의 남색으로 보였다. 흙먼지가 씻겨 내려간 산책로도 온통 진회색이었다. 벌써 해가 지고 있었다.

저 멀리 불이 켜진 강당이 보였다. 정문으로 들어가자 텅 빈 내부에서 한기가 풍겼다. 우산을 문고리에 걸어 놓고, 바닥을 나뒹구는 농구공부터 집어 들었다. 골대를 찾아 둘러보는데, 활짝 열린 후문이 보였다.

농구공을 있던 자리에 던져 놓고 나는 터벅터벅 걸었다. 후문 밖에서 사람 그림자가 보였다. 저벅저벅 다가가면서 볼 적에 그 뒷모습엔 딱히 특별할 게 없었다. 까만 생머리로 덮인 뒤통수가 주먹만 하고 재킷은 벙벙한 핏에, 물 빠진 청바지를 입은 남자애였다.

성가신 마음에 저리 비키라는 의미를 담아 어깨를 툭 쳤다. 그러자 마른 어깨가 놀란 물고기처럼 팔딱거리더니, 그 애가 나를 돌아보았다.

“아…, 미안. 문 닫으려고?”

아니 씨발, 뭐야?

나는 그대로 얼어붙었다. 마주 보는 얼굴의 어디가 이렇다 저렇다 하는 기억 같은 건 남지 않았다. 그저 덩그러니 서 있는 날 보는 눈동자가, 까맣고 동그랬다.

인간 눈동자야 다 까맣고 동그란 게 당연한 거 아닌가. 근데 왜 그 눈은 좀 달랐다. 까맣고 동그란, 그저 그런 눈인데. 그 얼굴에… 분위기에, 목소리에.

나는 쿵 소리가 나게 후문을 안에서 닫아 버렸다. 쪽팔리고 당황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뭐 하자는 거냐’면서 들어오기라도 할까 봐 문을 잠그고, 주어진 일을 했다. 강당을 밝힌 불을 모두 꺼 버리고 정문으로 도로 나가, 꼼꼼하게 걸쇠를 걸었다.

그러고 나니 숨이 찼다. 운동장 다섯 바퀴를 뛰어도 숨이 안 차는데, 고작 문단속 좀 했다고 호흡이 거칠어졌다. 장우산을 펼쳐 쓰고 교문 밖으로 나서려는데, 후문의 남자애가 신경 쓰였다.

‘우산이 없던데.’

손에 뭘, 들고 있는 거 같긴 했는데 우산은 아니었다. 희미한 기억을 되짚어도 도통, 그 까만 눈동자 두 개만 생각나지 다른 건 머릿속에 남아 있질 않았다. 조금 어리둥절한 채 나는 후문을 향해 걸었다. 강당 외곽을 돌아 걷느라 시간이 좀 걸렸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그 애는 아직도 그 자리에 혼자였다. 후문 밖의 작은 가림막 아래에서 비를 피하면서, 생각 많은 얼굴로 하늘을 구경하고 있었다. 까만 뒤통수는 동글동글한데 옆얼굴의 윤곽은 날렵했다. 앞머리로 덮인 이마 밑으로 코, 인중, 입술, 턱…. 모든 게 뚝뚝 떨어지는 산이다가 가파른 절벽이었다.

왜 까만 눈동자만 생각났는지 이제 알 것 같았다. 눈동자 빼고 그 얼굴엔 색이 없었다. 크레파스로 따지자면 옛날 명칭으로 ‘살색’, 요즘 말로 ‘살구색’조차도 그 얼굴에선 찾아볼 수 없었다. 그냥, 무지하게 하얬다.

둔한 건지 졸린 건지 모를 얼굴로 그 애가 회색 외투를 벗었다. 그러자 얼굴보다 하얀 팔뚝이 드러났다. 팔꿈치에, 되게 쪼그만 갈색 딱지 하나가 점처럼 앉아 있었다.

녀석은 외투로 제 짐이 담긴 캐리어를 덮기 시작했다. 그제야 나는 불쑥 움직였다.

“야.”

이게 귀신인지, 사람인지. 구미호 중에 남자가 있으면 이런 얼굴이려나.

“누구 기다리냐?”

불퉁한 목소리로 그렇게 물었다. 그러자 남자 구미호가 눈을 내리깔고 이리저리 굴린다. 허여멀건 두 뺨에 뒤늦게 발그스름한 색이 돌았다.

“아, 어… 어. 나는 우산… 이따, 어머니가 가지고 오기로 해서.”

“그래?”

“응.”

구라 치고 있네.

“이거 쓰고 가라. 좀 있음 운동장 문까지 닫히니까.”

그대로, 낯선 애에게 내 우산을 떠넘기듯 건넸다. 까만 장우산이 그의 작은 손에 들리자 파라솔처럼 크게 느껴졌다.

어영부영 우산을 건네주긴 했는데 그 뒤엔, 뭐라고 해야 하나 모르게 됐다. 대화를 나누긴 했는데 뇌를 거치지 않은 말을 아무렇게나 주절거린 수준이었다. 혓바닥을 움직이면서도 나는 걔의 얼굴을 구경하느라 바빴다.

휘둥그레 뜬 두 눈 위에 실처럼 가느다란 속쌍꺼풀이 있었다. 눈썹은 가늘고 가지런하고, 코와 입술은 잔뜩 보정된 사진처럼 이쁘다는 느낌으로만 존재하고, 잘생기진 않았는데 뭐 그럭저럭 단정한, 아니, 이 정도면 무지 잘생긴 거 아닌가?

‘이거 진짜 구미호 아냐?’

이름을 묻거나 인사를 해야 한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귀신에 홀린 기분이었다. 나는 문득 도망치고 싶어졌다. 널뛰는 기분이 너무 남의 것 같았다.

그래서 도망쳤다.

비를 맞으며 운동장을 가로지르는데 쪽팔려서 헛웃음이 났다. 뭐 하는 똘추가 제 우산을 남한테, 그것도 사내새끼한테 주고 비를 처맞으면서 도망친단 말인가? 근데 그 똘추가 나였다.

얼굴을 적시는 비가 무지하게 차가웠다. 안 하던 짓을 벌인 몸이 펄펄 끓고 있었다.

교문 밖으로 나서자 검은 차가 보였다. 세단 뒷문을 벌컥 열자 이찬희가 놀란 얼굴을 했다. 어지간히 화가 나지 않고서야 이찬희의 얼굴이 못나 보일 때는 없었는데, 이때만큼은 놈의 낯짝이 맹숭맹숭 달걀처럼 느껴졌다.

“우산은 어쩌고 뛰어와?”

“깜빡했어.”

대충 대답하며 차에 오르자 기사 아저씨가 수건을 넘겨주었다. 건네받아 얼굴을 벅벅 문질러 닦고 머리칼의 물기를 털어 냈다. 어서 출발해요… 그렇게 말하려는데,

“깜빡한 거 아닌데?”

이찬희가 차창을 똑똑 두들겼다.

“…뭐?”

“저기 있잖아, 네 우산.”

녀석의 손끝을 따라 시선을 옮기자 커다란 우산을 들고 걸어 나오는 소년이 보였다. 운동장 외곽을 천천히 돌아 걸으면서, 물웅덩이를 피하느라 그 속도가 느릿느릿했다.

차창을 향해 고개 뻗은 이찬희가 ‘어?’ 하고 감탄사인지 되묻는 건지 모를 소리를 흘렸다. 나는 얼굴의 빗물을 마저 훔치는 척 표정을 숨겼다. 그리고 거짓말했다.

“저거 내 거 아니야.”

아, 저거 아끼던 우산인데….

‘돌려주겠지?’

검지 끝으로 눈썹 위를 긁적거리며 괜히 반대쪽 창을 내다봤다. 뒷좌석 시트에 파묻은 등의 온도가 축축하고 뜨거웠다.

‘돌려주러 오면 좋겠다….’

그러나 내 바람은 이후 두 학기가 지나도록 이뤄지지 못했다.

유감스럽게도 권태오의 첫인상이, 내가 자부하는 만큼 강렬하진 못한 모양이었다. 그게 아니면 그 애가 얼굴에 천운을 다 쓴 편이라 머리는 좀 멍청한 거든지. 192㎝나 되는 커다란 남자애가 어버버버하며 하나뿐인 우산을 준 일을 잊을 정도로.

…사실은, 후자의 가능성은 거세당한 수준이란 걸 나도 안다. 이튿날이 되자마자 나는 그 애를 다시 봤다. 교복 차림새라 모습이 전날보다 멀끔하긴 했지만, 그 얼굴을 못 알아볼 정도로 내 시력이 나쁘진 않았다.

입학식 단상에 오른 그 애는 성적 장학생이자 신입생 대표였다. 가까이서 볼 적에는 되게 조그맣다고 생각했는데, 멀리 단상 위에 선 걸 보니 팔다리가 길쭉한 게 모델 같았다.

“선, 서.”

주어진 선서문을 낭독하는 목소리가 조곤조곤, 음질 후달리는 마이크를 타고 강당을 울렸다.

‘성격 무지 예민해 보이네.’

재미없는 글을 정성 들여 읽는 목소리를 감상하려는데 주변의 소란이 날 방해했다. 낄낄거리며 발장난을 치던 남자애들 중 하나가 투정하듯 볼멘소리들을 냈다.

“여자들은 저렇게 생긴 놈이 대체 왜 좋다는 거야?”

구시렁대는 말을 따라 눈길을 돌리자, 강당 한편에 모여 꺅꺅 웃어 대는 여자애들이 보였다. 단상 위를 구경하며 저들끼리 어깨를 두드리고 귓속말을 나누는 게 아주 신난 얼굴이었다. 그 행동이 내 눈엔 별반 유난스러워 보이지는 않았다. 그냥 눈이 있다는 뜻 아닌가.

개중 곱슬머리에 키가 작은 여자애가 시선을 느낀 듯 우리 쪽을 흘겨보았다. 눈이 마주치자 나는 이마를 움직여 눈썹을 한 번 으쓱였다.

톡톡 옆자리 친구의 어깨를 치더니 여자애들은 이제 이쪽 자리를 힐끔대기 시작했다.

그 바람에 나는 구미호의 이름을 들을 기회를 놓쳤다.

고1 남자애들이 중3과 다르지 않다는 건 절망스러운 일이었다. 중3 남자애들은 중1과 다르지 않았고, 중1 남자애들도 초6과 다르지 않았으므로, 사방천지 남자애들이 초등학생 수준이었다.

그중에 가장 빛나는 초딩은 공주윤이었다.

입학식이 지난 뒤에야 단둘 있는 추가 인원으로 뽑혀 유도부에 들어온 게 공주윤이었다. 신입 중에서도 신입이란 뜻이었다. 그런데 놈에게는 낯가림도, 쑥스러움도, 일말의 매너도 없었다. 처음 만났을 땐 혹시 귀가 아픈 친구가 아닌가 생각하고 내 멋대로 배려까지 해 주었다. 알고 보니 놈은 그저 목청이 쓸데없이 클 뿐이었다.

새 학기가 시작되고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 채홍관에 새 규칙이 생겼다. 남들이 경기 중일 때는 시끄럽게 떠들지 말 것. 그 규칙을 지키는 사람은 안타깝게도, 그 규칙을 만들게 한 사람 이외의 전원이었다.

덕분에 공주윤은 유도부 생활을 시작하는 동시에 벌점을 차곡차곡 쌓아 갔다. 덕분에 놈은 매주 금요일마다 경기장 청소를 도맡아 했다. 그러면서도 주절주절 욕설 섞인 말을 늘어놓길 멈추지 않았다.

대화 소재는 늘 같았다. ‘공신’이라는 특이한 이름을 가진 같은 반 남자애에 대해서였다. 처음엔 여자 얘기가 아닌가 할 정도로 징그럽게 설렌 얼굴로, ‘아 근데’로 시작하는 말들이 있었다.

나는 그 말을 주의 깊게 듣지 않았다. 공주윤도 내 옆에서는 ‘그나마’ 조용해지는 경향이 있었다. 쓸데없는 말에는 대답하지 않았더니 놈도 말을 골라 뱉게 된 거였다.

“근데 너는 그, 공신한테 왜 그렇게 집착해? 어차피 남자잖아.”

“내가 씨발, 뭐?”

또 시작이다. 유도복을 벗어 가방 안에 욱여넣으면서 나는 경기장 구석에서 열을 내는 공주윤을 힐끔 살폈다.

“이 새끼야, 지금 날 호모 취급하는 거야?”

그러더니 괜한 시비를 붙여 싸우길 시작했다. 징그러운 초딩 새끼들. 공신이고 나발이고 남자애 얘기를 주절주절 설렌 얼굴로 하는 공주윤도 바보 같고, 성질 불같은 줄 알면서도 기분 상할 소리를 생각 없이 떠드는 놈도 바보 같다. 어떻게 된 게 단 하루도, 채홍관은 조용한 날이 없다.

열일곱 남자애들은 모두가 그랬다. 모두가 신나고, 별것 아닌 일에 열을 뿜고, 화를 내다가도 금세 식어 버리고, 급식 메뉴 하나에 발목이 부러져라 계단을 뛰어 내려간다.

나만이 다르다.

나만 심심했다.

‘지루해.’

심드렁한 기분으로 복도에 선 채 나는 쉬는 시간을 멍하니 보냈다. 훈련은 잘 끝냈냐며 달려온 여자애들, 그보다 더 흥분한 듯 보이는 남자애들에게 붙잡혔기 때문이었다.

어째 아이들은 내 옆에 서면 더 즐거워 보인다. 사람 놀리는 것도 아니고 하나같이 요란한 소리를 내고 제 감정을 못 숨기며 허둥지둥, 날벌레처럼 몰려와 들러붙는다. 도대체 숨은 쉬어지나 싶게 허리를 조인 셔츠를 입고 웃는 여자애들은 모델 같고, 그렇게 예쁜 애들 옆에는 근육도 아니고 살을 찌운 멧돼지 같은 놈들이 남친이랍시고 붙어 다녔다.

나로 말하자면 개중 뭣도 아니었다. 딱히 어디에 끼고 싶은 마음도 없고 사귀고 싶은 사람도 없었다. 학교에서의 시간 중 절반은 정신을 꺼 놓고, 남은 절반은 별수 없이 켜 놓고 살았다.

그런데 어째 내 옆으로 모여드는 애들은 죄 이런 식이다. 남자고 여자고 간에 일진, 아니면 일진 꿈나무들.

이리저리 건네 오는 시답잖은 말을 들으면서 나는 창틀에 허리를 기댔다. ‘태오야’로 시작된 대화의 대부분은 내가 대답하지 않아도 저들끼리 알아서 흘러가곤 했다.

“근데 권태 존나 의외야. 형님들이랑만 놀고 그럴 거처럼 생겼는데, 이찬희랑 베프라니.”

어. 너는 되게 안 의외야. 굽실거리면서 비루먹게 생겼어, 딱.

“걔 뭐, 중딩 때 아파서 학교도 못 다녔다며? 어쩐지…. 생긴 거도 비실비실해서 남자답지가 못하더라고.”

아주 고추 소믈리에 납셨네.

“근데 우리 신입생 대표 말야. 입학식에서 선서 읽은 애. 그 새끼 거지라며?”

그러든지 말든… 지금 이 새끼가 뭐라고 한 거지?

문득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일부러 흐릿하게 뜨고 있던 시선을 바로 고치고, 나는 주절주절 입을 놀리는 놈을 노려봤다. 그러고 보니 지난날 강당에서, ‘여자들은 저렇게 생긴 놈이 어쩌고저쩌고…’ 열등감을 표출하던 놈이었다.

쳐다보는 시선도 못 느끼는지, 놈은 낄낄거리며 말을 이었다.

“존나 멀리서 장학금 받고 여기까지 학교 다닌다던데. 특기 전형은 그게 뭐가 특기야, 그냥 공부 잘하는 거지란 뜻 아냐? 그 장학금 다 우리 수업료에서 나가는 건데, 다 같이 천 원씩 내준 거랑 뭐가 달라?”

“어, 고맙다.”

“…어?”

불쑥 끼어들자 놈이 아무 의미도 없는 소리를 냈다. 눈을 끔벅거리는 녀석을 내려다보며 나는 말을 이었다.

“네가 낸 천 원 잘 받아먹었다고.”

특기 전형 장학생이라 해 봐야 교내에 두 명 있었다. 그중 하나가 나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 아마 없을 것이다.

따지자면 성적으로 입학생 대표를 해 먹고 선서문을 읽은 그 비실비실 귀신 같은 남자애보다, 매번 이찬희를 비롯해 친구 놈들을 몰고 다니며 복도를 시끄럽게 만드는 내가 더 유명했다.

“아…, 아니, 태오야. 하하, 왜 그래? 난 너한테 그런 게 아니라….”

“‘그런 게 아니라’?”

나는 반 발짝 놈에게로 다가갔다. 손을 뻗어 녀석의 가슴팍을 짚자, 한 대 맞는 줄 알았는지 땀내 나는 몸이 꿈틀 움직였다. 이름표에 붙은 ‘곽성중’, 세 글자를 눈으로 읽어 내리며 나는 표정을 굳혔다.

그러고는 평소에는 쓰지도 않던 머리를 굴렸다. 이, 씨발… 개 같은 이야기를 어떻게 해야 막을 수가 있지? 그 구미호 같은 새끼 뒷담을 절단 내 놓고 싶은데, 거지니 뭐니 주절거리는 주둥아리를 전부 쥐어박을 수도 없고….

이야기를 훼손시켜야 한다. 원본에 집중할 수 없게, 누가 가난하다느니 돈을 받았다느니 저열한 농담 따위에서는 아무런 감흥도 느껴지지 않을 만큼 자극적인 일화를 덮어서.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 씨발놈이 고맙게, 거지 권태오한테 변명을 다 해 주시고.”

화난 척 연기할 필요는 없었다. 진짜로 내가 모욕당한 것처럼, 머리꼭지가 뜨거워지도록 열받았으니까.

갑자기 복도 멀리서 오가는 말소리가 크게 들렸다. 소란스럽게 낄낄거리던 내 주변 녀석들의 입이 싹 닫혔기 때문이었다. 남자애들은 곽성중을 힐끔거리며 저와는 상관없는 일인 척 척 입을 닦았고 여자애들은 망가진 분위기가 싫은지 이마를 찌푸렸다.

몇 초 지나지 않아, 새로운 애들이 종알종알 수다를 떨며 주변으로 다가왔다. 대열의 중앙에서 양팔로 두 친구와 팔짱을 낀 여자애가 보였다. 어깨에는 연보라색 카디건을 두르고 손에는 피자 빵을 든 채였다. 어디서 본 적 있는 얼굴이었다.

명찰로 이름을 확인하자마자 나는 그 애에게 손짓했다.

“민아야.”

“어?”

그러자 여지껏 ‘유미나’인 줄 알았던 ‘윤민아’가 후다닥 내 옆으로 다가왔다.

“나? 나 불렀어? 왜 왜?”

“어. 지금 돈 가진 거 좀 있어?”

“응? 응응! 나 잔돈 있긴 한데…. 아 씨, 방금 빵 돌리느라 많이 썼는데…. 왜? 얼마나 필요한데? 내가 빌려줄까?”

“응. 천 원만.”

“천 워언? 그거면 돼?”

윤민아가 제 치마 주머니를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왕창 줄인 교복 치마 안쪽에는 이미 주머니가 들어갈 자리가 없어서, 흰 안감이 불룩 나와 있었다. 그 주름 틈에서 동전이 나왔다. 오백 원이 하나, 백 원이 네 개였다.

윤민아가 일자형으로 길게 뻗은 눈썹을 찡그렸다. 입술을 비틀며 고민하는 듯하다, 주먹 안에 동전을 말아 쥐고는 내게 내밀었다.

“구백 원밖에 없는데…. 자, 태오야. 이거라두 너 써.”

“나 말고.”

나는 곽성중을 향해 턱짓했다.

“쟤한테 줘라. 내가 빌린 돈이 있거든.”

그러자 윤민아는 뾰로통한 얼굴이 됐다. 저를 부른 용건이 남에게 있단 걸 알고 속상한 기색이었다. 상한 기분을 고스란히 드러낸 채 윤민아가 내민 손의 방향을 틀자, 곽성중의 얼굴은 허옇게 질렸다. 좀 전까지만 해도 유세를 떨더니, 사내자식이 주먹까지 파르르 떨어 댔다.

내 앞에선 잘 보이겠다고 빌빌 기며 남의 뒷담화나 끌어내던 새끼가, 분홍색 롤로 앞머리를 만 조그만 여자애에게 구백 원을 받기는 또 쪽팔린 모양이었다.

“뭐 해? 받아.”

한 마디 던지는데 목소리가 내 의도보다 더욱 낮게 튀어 나갔다. 마지못해, 곽성중이 동전을 받았다. 띨띨한 놈은 와중에도 백 원 하나를 떨어뜨렸다. 데굴 떨어진 동전을 나는 발끝으로 툭 찼다. 작은 동전이 또르르 소리 내며 복도 구석으로 날아갔다.

“백 원은 다음에 갚을게?”

그랬더니 곽성중이 식은땀을 흘리며 비실거렸다.

“아, 아냐, 안 갚아도 돼….”

멍청한 놈. 진짜 갚겠다는 뜻이겠냐?

심드렁한 얼굴로 곽성중을 흘겨보던 윤민아가 ‘풉’ 하고 웃음소리를 냈다.

“뭐야…, 꼴랑 천 원 갚으라고 유난 떤 거?”

그러더니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권태, 나한테는 돈 안 갚아도 돼. 알지? 대신 다음에 훈련 경기하는 거 구경시켜 주기야? 응?”

그제야 나는 윤민아의 얼굴을 어디서 봤는지 알아차렸다. 채홍관 옆길에서 공주윤과 함께 담배 피우는 걸 오며 가며 본 적 있었다. 체육복 바지를 입고 짝다리로 서서는, 괄괄하게 욕을 하고 침을 ‘탁’ 뱉던 모습이 기억났다.

이찬희 뺨치는 연기 실력을 알아채자 피식 웃음이 났다. 내가 웃자, 무엇이든지 화제를 돌릴 기회가 오기만을 기다리던 놈들이 ‘하하하’ 웃으며 호응을 해댔다.

분위기를 못 견딘 곽성중이 뒷걸음질 치며 제 교실로 돌아가자 아이들의 말소리가 다시금 커졌다. ‘하여간에 이상한 새끼’라며 조금 전까지만 해도 곽성중과 붙어 있던 놈들이 새로운 뒷담을 시작했다.

“방금 곽성중이 나 흉내 낼 수 있음. 볼래? ‘아, 아뉘앙, 안 갚아두 뒈에’….”

“아, 씨발! 완전 똑같애! 미친 새끼.”

농담하며 분위기를 끌어 올리려 애쓰는 놈들의 면면을 나는 가만히 쳐다봤다. 내가 방금 뭘 한 건지 조금은 어리둥절한 상태였다.

당장 내가 느끼는 기분의 정체를 알지 못하고 고민하는데, 그 애가 보였다. 멍청한 소리를 하며 멍청한 얼굴로 웃어 젖히는 놈들의 뒤로, 아주 빠른 걸음으로, 교과서와 노트를 끌어안고 명찰을 가린 채로.

빠르게 지나쳐 복도 건너편으로 사라져 버리는 뒷모습을 나는 멍하니 좇았다. 위장이 콱 뒤틀리는 느낌이었다.

‘방금 한 이야기, 듣지는 못했겠지?’

목을 뻗고 쳐다봐도 그 애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구름다리 방향으로 쏙 사라져 버리는 그림자만, 나는 오래도록 지켜봤다.

전국 체대, 소년 체대, 생활 체대. 우승 세 번. 1학기 끝.

합숙 훈련 2주, 대한 체대 우승. 여름 방학도 끝났다.

이름만 2학기지 땡볕 뜨겁긴 마찬가지인 가을이 왔다. 땡볕에 목덜미 피부가 다 벗겨져서, 오랜만에 입은 교복 셔츠 칼라가 무진 불편했다. 터벅터벅 채홍관을 향해 걸어갈 적엔 이찬희가 함께였다.

늘 그렇듯 놈은 이상한 소리를 했다.

“태오, 너는 시력 나빠져도 안경 안 낄 거지?”

그러더니 저 혼자서,

“너는 왠지 그럴 거 같아.”

멋대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붙어 걸었다.

왜 그런 소리를 하냐고 물었더니 이찬희는 소리 내어 하하 웃었다.

“너 방금, 성중이 인사 쌩깠잖아.”

그게 누구지?

“곽성중 말이야, 곽성중. 너랑 친해지고 싶어서 맨날 기웃거리는 애 있잖아.”

곽성중이 누구지….

“애들이 가끔 물어봐. ‘태오 나한테 화난 거 있어?’, 이렇게. 그럼 내가 뭐라는 줄 알아? 너 시력 무지하게 나쁘다고 해. 평소에는 렌즈 끼고 다니는 거라고. ‘아마 네 얼굴이 잘 안 보여서 그런 걸 거야’, 이렇게.”

아주 재밌는 얘기인 양 이찬희는 연신 웃어 댔지만 나는 앞만 보고 걸었다. 뒤에서 내 이야기를 뭐라고 하건 상관없었다. 새 계절도 빨리 지나기만 바랄 뿐이었다.

나중에야 혼자서 해 본 생각인데, 이찬희 말이 맞긴 했다. 만일 시력이 나빠지더라도 나는 안경을 쓰지 않을 거였다. 몽골 독수리 뺨치게 좋은 시력을 타고나서 오히려 피곤한 걸 보면 그랬다.

사실 세상에는 그다지 눈여겨볼 게 없다. 1080p HD 화질일 필요가 좆도 없다는 거다. 온 세상 인간들이 전부 144p가 된다면 오히려 이쁘지 싶었다. 멍청한 상판이 다 구질구질 흐려지면 좋겠다.

“태오야, 있잖아….”

“어! 권태, 혹시 지금….”

“권태야, 저기….”

웅얼웅얼 구시렁대는 빡추 같은 소리들도 차라리 잘 안 들리면 좋겠다.

남자 구미호도 마찬가지다. 하얀 상판에 까만 눈 두 개가 찍힌 그놈도, 다를 게 없다. 가까이서 보지 않는 게 더 낫다. 자세히 보지 않아야 멀쩡한 종류의 사람들 중 하나일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다, 가끔 복도를 오가면서 스쳐 지날 때마다.

‘알고 보면 별로겠지, 뭐. …친해지고 나면 별거 없을 듯.’

그러고는 자괴감을 느꼈다. 야, 씨발 권태오. 권태오 이 새끼야. 왜 찌질한 놈들이 이쁜 여자애들을 상대로 구시렁거리는 핑계를 따라 하고 자빠진 거야? 내가 왜 이렇게 됐지? 나는 찌질이도 아니고 그 애는 여자애도…, 아닌데….

남자 구미호. 그놈은 여자애가 아니었다. 그건 아주 명료하고 분명한, 1080p짜리 사실이었다. 그나마 여자들 특징이랑 비슷한 건 뭐, …속눈썹이 좀 기다랗다는 거. 얼굴이 뭐라도 바른 양 하얗다는 거. 교복 셔츠가 늘 깨끗하다는 거. 점심시간에 축구 백 판을 해도 뛰쳐나와 끼는 법이 없다는 거. 공부를 잘한다는 거.

그리고 종종 교무실에서 마주칠 때면 문제집을 품에 안고 수학 쌤 옆자리에 서서,

“저…, 선생님. 모르는 문제가 있어서요.”

지랄 아양을 떨고 있다는 거.

수학 쌤이 한 명뿐인 것도 아니고…. 엔간한 애들은 다 남자 쌤 옆에 줄을 서 있는데 구미호는 매번 여자 쌤한테 붙어 있었다. 누가 구미호 아니랄까 봐, 살살 웃으면서 꼬리를 살랑대는 게 어른 간도 빼먹을 기세였다.

그뿐만이 아니다. 어느 순간부터 그 애한테는 늘 여자애 하나가 그림자처럼 붙어 있었다. 얼굴값 한다고 여친을 사귄 모양인데 둘이 아주 안 어울렸다. 나란히 문제집을 껴안고 복도나 자습실 근처를 돌아다니는데, 키 차이도 안 어울리고 얼굴도 안 어울리고 목소리도 안 어울렸다.

연애를 해도 왜 저런 애랑 하나… 그런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 여자애로 말하자면 화장기 없는 얼굴과 깔끔하게 다듬은 단발머리만 딱 봐도 똑 소리 나게 생긴 애였다. 헐렁하게 입은 셔츠에, 하의는 교복 치마일 때도 있고 바지일 때도 있었다. 사교성 좋고 쾌활한 성격이라 인기도 많았다. 유도부 선배 중 하나와도 아주 친해서, ‘짱세라’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몇 번 채홍관을 오가기도 했다.

그때 느끼기로 목소리가 아주 반듯했다. 시커멓고 멍청한 놈들만 득시글한 채홍관에 대뜸 울리는 목소리가 꼭 라디오를 켜 둔 것 같았었다. 상식적이고, 이지적인 애였다. 말투가 되게 상징적이었는데, 그러니까, ‘…한 거 같아’, ‘…인 거 같아’. 그런 식으로 모호하게 말끝을 흐리는 법이 없었다.

‘하….’

내 주변을 맴맴 도는 여자애들과는 부류가 달랐다. 난 그래서 장세라가 싫었다. 꼭 그만큼, 그 구미호 놈과 나의 부류도 다른 듯해서.

그러나 장세라를 향한 내, 소리 없고 어이도 없는 악감정은 얼마 지나지 않아 눈 녹듯이 사라졌다.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공주윤 덕분에 말이다.

“아, 나 오늘 컨디션 존나 좋은데?”

생활 체대에서 3등 상을 한 번 탄 뒤로 공주윤의 데시벨은 더욱 커졌다. 가끔 놈의 근처에 앉아 있으면, 그 방향 귀만 따끔거릴 수준이었다. 그날도 매한가지였다. 매번 기술 싸움에서 밀려 판정패를 안겨 주던 상대를 힘껏 엎어 쳐 두 판 연속으로 이기더니,

“야, 다 붙어! 다 붙어!”

경기장 위를 팔짝팔짝 뛰어다녔다.

“이럴 게 아니라 공신도 불러야지. 걔는 공주 멋진 줄을 모른다고….”

그러더니 휴대폰을 꺼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댔다. 이리저리 발을 놀리며 애교를 부리는 목소리가 듣기 더러웠다. 성대가 고장 난 줄 알았더니 하려고 하면 작은 목소리도 낼 줄 아는군… 옷을 갈아입고 몸을 풀면서 나는 그 지랄을 관전했다.

채홍관의 분위기는 조금 지저분하게 됐다. 평소 공주윤을 아니꼽게 생각하는 놈들 여럿이 시선을 주고받더니, 킥킥거리며 모여든 탓이었다. 연습 경기라고는 해도 두 판 연속 엎어치기를 해 댄 공주윤이었다. 서너 명이 순서대로 덤벼들면 질 수밖에 없었다.

‘여기가 놀이터인 줄 아나.’

운동선수로서의 자각이 조금도 없는 모습에 나는 조금 질렸다. 세 놈이 순서를 정하자며 가위바위보 하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경기장 중앙으로 걸어갔다.

공주윤이 ‘어어’ 하고는 놀란 소리를 냈다.

“뭐야. 권태오. 손목 아파서 며칠 더 쉰다며….”

“마구십이랑 붙는 게 무슨 의미가 있어.”

내 말에 –90㎏ 체급 두엇이 헛기침을 했다.

“너랑 나랑 몸이나 풀자. 남자끼리.”

그러자 공주윤이 씩 웃었다. ‘권태오 말 들었냐’는 듯, 몸무게 가벼운 놈들을 눈으로 훑더니 허리춤의 띠를 똑바로 고쳐 묶었다. 나도 상의 끝단을 주먹으로 콱 쥐고 구겼다가 팍팍, 세게 털어 내며 손을 풀었다.

공주윤과 나는 사이가 꽤 좋았다. 하루 종일 시끄럽게 떠들다가도 내가 경기할 때면 입을 다물고 눈에서 불나게 관찰하는 공주윤이었다. 두어 번 심각한 얼굴로 판 읽는 법을 물어 올 때도 있었다. 키가 비슷하고 체급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내게 함부로 덤비고, 멋대로 어깨를 견주려는 멍청한 돼지 새끼들과는 달리 뇌가 있단 증거였다.

늦게 시작한 유도를 제 것으로 만들려고 용쓰는 놈을 나는 존중했다. 한 학기 만에 예비 신입 명찰을 뗄 정도로 성장한 공주윤이, 하루 빨리 더 커지길 바랐다. 그래야 나도 연습하는 맛이 날 테니까.

무엇보다, 공주윤은 심플했다.

“손목 빠져도 안 봐준다, 권태오.”

내가 ‘우리끼리’, ‘남자끼리’. 그런 말을 해 주면 놈은 불처럼 달려드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든지.”

그러고는 놈과 내가 맞붙었다. 지켜보던 코치가 심판을 맡아 나서자 장난 같던 연습이 금세 진지한 경기가 됐다. 내 손목이 빠지건 말건 공주윤이 봐줄 필요는 애초에 없었다. 내 팔이 어떤지는 내가 잘 알았다. 그래서 불편한 왼팔로는 띠를 묶어 쥐기만 하고, 오른팔에 온 힘을 싣고 버텼다.

더운 숨을 씩씩거리며 공주윤이 두어 번 경기장 바닥을 밀듯이 찼다. 별반 의미 있는 동작은 아니었다. 제 열을 못 이겨 숨 고르는 동작으로, 개가 배변감을 떨치려 땅을 차는 것과 다르지가 않았다.

그게 공주윤이 나를 이기지 못하는 이유였다. 싸움과 스포츠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고서는, 도 단위 대회에서야 날뛸 수 있을지 몰라도 더 큰 경기에서는 승리하기 힘들 터였다.

펄펄 날뛰는 공주윤을 상대로 기술을 걸기보다는, 나는 놈이 틈을 드러내길 기다렸다. 패배라고 해서 다 같은 패배는 아니기 때문이었다. 일방적인 기술에 휘둘려서 열 번을 지더라도 공주윤은 아무것도 배우지 못할 터였다. 오래 버티다가 어영부영 한 번을 지더라도, 제 실수에서 기인한 것이어야 놈도 무얼 깨닫지 싶었다.

2분 40초. 남은 시간을 카운트하며 자세를 살짝 고치는데… 남자 구미호가 보였다.

‘…우산.’

다음 순간 온몸이 제멋대로 움직였다. 못 이기는 척 잡고 버티던 공주윤의 팔뚝을 뿌리치고, 놈의 도복 어깨를 왼손으로 와락 움켜쥐었다. 그러고는 직선으로 엎어 쳤다. 손목의 얼얼한 열감도, 대뜸 힘이 들어간 허리의 뻐근함도, 놀란 종아리의 통증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심장이 펄펄 뛰었다.

“윽, 악….”

발라당 나동그라진 채 공주윤은 빠르게 경기장 바닥을 탁탁 쳤다. 굳히기에 들어갈 필요도 없었다. 어차피 졌다는 걸 알고 기권한 것이었다.

내게 투정해 올 거라 생각하고 자세를 고치는데,

“어, 공신! 벌써 왔어?”

공주윤은 내가 아닌 관중석을 올려다봤다. 가쁜 숨을 헐떡헐떡 내쉬면서, 자리에서 번쩍 일어나더니 홀로 앉은 남자애에게 두 팔을 붕붕 흔들어 댔다.

“권태오, 이놈아. 무리하지 말라고 몇 번을 말해?”

정신이 하나도 없어서, 다가온 코치의 잔소리도 귀에 담기지가 않았다.

‘…‘공신’? 그게 쟤였다고?’

코치의 신호에 따라 공주윤과 마무리 인사를 하면서도 그저 얼떨떨했다. 나를 보러 온 줄 알았던 남자 구미호는, 그러고 보니 검정색 장우산 같은 건 들고 있지 않았다.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손끝으로 투명 파일을 구기고 있을 뿐이었다.

활어처럼 팔딱거리며 공주윤이 놈에게 달려갔다.

“가져왔어? 내 숙제?”

…우산 갖다주러 온 게 아니었어?

“하….”

황당해서 헛웃음이 났다. 허리춤에 짚은 왼손이 뒤늦게 얼얼했다. 찜질 팩을 찾아 아이스박스를 뒤적이는 코치를 등진 채 나는 구미호… 아니, ‘공신’을 올려다봤다. 저, 양심도 없는 허여멀건 새끼.

‘야, 여기 좀 봐 봐. 내 얼굴 보라고. 나 기억 안 나? …어떻게 나를 기억 못 할 수가 있지? 내가, 그냥도 아니고 하나뿐인 우산을 줬는데. 대신 비를 맞았는데?’

공주윤과 무어라 대화를 나누는 듯하던 녀석은 도망치듯 채홍관을 떠나 버렸다. 빗물처럼 흐르는 미지근한 땀방울을 훔치며, 나는 그 날씬한 뒷모습을 노려보았다.

“권태를 따악 이겼으면 내가 졸라 멋졌을 텐데! 아쉽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며 공주윤이 입맛을 다셔 댔다.

미안한데, 여기서 제일 아쉬운 사람은 네가 아니라 나다.

…우산 먹튀 당했다.

1학년 2학기는 아주 지루해서 기억할 만한 이벤트가 따로 없었다. 겨울 방학도 마찬가지였다. 겨울 동안은 대회가 많지 않아서 여름에 비해 두 배로 지루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운동장을 뛰고, 오전 내내 훈련을 하고, 점심은 이찬희가 찾아오거든 같이 먹고 아니면 대충 때웠다. 그러고 다시 훈련하다 보면 금세 저녁이었다.

집, 채홍관, 집, 채홍관, 집, 채홍관, 가끔 훈련소, 채홍관, 집….

심심해 죽겠다는 얼굴로 유도복을 벗는 내 어깨를 코치가 퍽퍽 두들겼다. 그러지 말고 3학년들과 함께 동계 훈련을 가는 게 어떻겠냐는 제의를 해 왔지만, 거절했다. 겨울 내내 떨어져 있었다가 이찬희가 뭐라고 할지 모른다고 생각해서였다.

“그래?”

코치는 내 거절이 퍽 서운한 눈치였다.

“열아홉 살 선수들이랑 같이 훈련하면 네가 좋아할 줄 알았더니. 흠…, 그래. 너도 계획이 있겠지. 우리 다녀오는 동안 체중 조절 꼭 해 놔라. 오자마자 네 몸무게부터 잴 줄 알어.”

“네.”

그러고는 채홍관을 빠져나왔다.

교문 앞에 선 채 나는 5분쯤 멍하니 서 있었다. 오늘은 이찬희도, 이찬희를 태운 차도 안 오는 날이란 건 그 뒤에야 깨달았다. 매월 20일은 녀석이 이모의 손을 잡고 상담 의사를 만나러 가는 날이었다. 그래 봤자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하고 아무것도 치료하지 못할 텐데…. 뻔한 사실을 어른들만 몰랐다.

이찬희나 나는 알았다. 무슨 놈의 이야기를 나눠도 걔는 실종됐던 네 달 동안 일어난 일을 기억해 내지 못할 거고, 제 마음의 상처 따위를 말하지 않을 거란 걸.

허전한 기분에 잠깐 교문 근처를 둘러보다가 나는 집까지 걸어가기를 선택했다. 추운 날씨 때문인지 몸도 덜 풀렸고 가슴께도 답답하기 때문이었다.

넓은 보폭으로 빨리 걸어 채홍고에서 대여섯 블록 떨어진 거리에 있는 중학교를 지나쳤다.

“…….”

잠시 발을 멈췄다가, 나는 왔던 길을 뒷걸음질로 돌아갔다. 철망 너머에 소란스럽게 모여 있는 중딩들이 보였다. 그들 발밑에서,

“깨앵!”

제자리를 맴맴 도는 강아지가 있었다.

저들끼리 외계어 수준의 은어를 중얼거리며 중딩들은 담배를 물고 있었다. 덩치가 큰 편인 녀석이 개의 목덜미 가죽을 꼬집듯이 잡았고, 다른 녀석 둘은 무어라 불평 섞인 욕을 뱉으며 낄낄대기 바빴다.

비싼 학교, 비싼 교복, 딱 봐도 뇌가 없는 남자 중학생.

“야.”

상황 파악을 마치자마자 내가 말했다. 담배를 막대 사탕처럼 입에 물고 연기를 입으로 빠끔빠끔 뱉으면서, 놈들이 울타리 너머를 돌아봤다.

“개 내려놔.”

그러자,

“…뭐라는 거야?”

한 놈이 제 옆자리 친구의 어깨를 툭, 치며 웅얼거린다. 센 척하느라 비웃음을 입에 걸긴 하지만 그뿐이다.

왜 븅신 새끼들은 하나같이, 사람을 앞에 놓고 안 보이는 척 친구한테 말을 걸까? 어디 븅신 나라 븅신 학교 븅신 교과서에 실려 있기라도 한 건가?

“‘뭐라는 거야’, 새끼야? 나를 보고 똑바로 말을 해야지.”

연두색으로 칠해 놓은 철망을 손으로 잡고 한 차례 당겨 본 다음, 나는 중간 턱에 운동화 끝을 걸고는 몸을 올렸다. 울타리 위까지 단숨에 도달했고 건너편으로 뛰어넘는 것은 그보다 더 빨랐다.

“개 내려놔.”

재차 말하자 담배를 문 놈들이 어영부영 저들끼리 눈을 굴려 댔다. ‘하’ 하고 헛웃음을 짓는 놈도 하나 있었다. 자존심을 세우느라 도망치진 못하겠고, 그렇다고 멸치 같은 몸으로 내게 덤비지도 못하는 눈치였다.

성큼성큼 다가가자,

“어, 어어….”

혼자 웃어 대던 놈이 개를 놓고 뒷걸음질 쳤다. 몇몇 여자애들 말에 의하면 ‘권태오는 멀리서 보면 엄청 큰데, 가까이서 보면 진짜 존나 크다’고 했다. 그건 비단 여자에게만 제한된 감상이 아닐 터였다.

제자리에 발이 붙은 두 놈을 제치고, 나는 개중 그나마 덩치가 있는 놈의 뒷덜미를 붙들어 잡았다.

“악! 씨발! 이, 이거 놔! 왜 갑자기 지랄인데, 썅…, 이, 이거 놔!”

중딩이 바락바락 악을 쓰며 허겁지겁 팔을 휘둘러 댔다. 잡은 목이 바닥을 향하게끔 손을 내리고 팔을 쭉 뻗자, 놈의 주먹은 내게 닿지 못했다.

“뭐라고? 놔 달라고?”

“씨, 씨발…, 놔, 놔주세요.”

“그래, 사람이 놔 달라고 말을 하면 놓아야지.”

잡은 목을 놓아주자, 녀석이 휘청거리며 피우던 담배를 바닥에 던졌다. 발로 팍팍 밟아 끄는 놈을 따라 나머지 두 녀석도 부랴부랴 담배를 껐다. …누굴 씨발 선도부인 줄 아나.

중딩 놈들 폐가 썩든지 혓바닥이 곪든지 그런 건 내 알 바가 아니었다. 나는 놈들 사이로 걸어가, 침을 흘리는 먼지투성이 개를 안아 들었다. 한 손에 들릴 정도로 작은 개를 그대로 몸에 붙인 채, 울타리가 아닌 정문을 통해 걸어 나갔다.

등 뒤에서 ‘씨발, 뭐야’ 하고 뒤늦게 센 척 소리치는 음성이 들렸다. ‘야아’ 하고 그런 놈을 만류하는 목소리도 들려왔다.

엉겁결에 주운 개를 품에 안고 집으로 향했다. 예상대로 넓은 집은 텅 비어 있었다. 엄마도 이모와 함께, 이찬희 상담에 따라간 모양이었다. 우선은 내 방 안으로 들어가 가방을 팽개치듯 던져 놓고, 화장실 세면대에 개를 내려놓았다.

어리숙한 얼굴에 발만 큰 걸 보니 어린 시절 천둥이가 생각났다. 따듯한 물을 틀어 놓고는 세면대에서, 아쉬운 대로 물로 살살 씻겨 주었다. 어린 개는 ‘헥헥’ 소리를 내면서도 크게 반항하지 않았다.

‘중딩 새끼들한테 어디서 주운 개냐고 물어볼 걸 그랬나….’

생각이 들다가도, 아마 그놈들도 인근 길에서 주워 온 게 분명하다는 확신이 함께 들었다.

수건으로 개를 깨끗하게 닦은 다음에는 방 안의 미니 냉장고를 열었다. 닭가슴살 팩 하나를 뜯어 양념이 안 된 면을 잘라 개에게 먹였다. 후추와 소금이 발린 면을 내 입 안에 욱여넣을 때쯤 창밖에서 눈이 내렸다.

이런 날씨에 밖을 헤매지 않아도 돼서, 개에겐 잘된 일이었다. 허겁지겁 밥을 먹으며 ‘아르릉’ 소리까지 내는 버르장머리 없는 강아지가 그걸 알까 모르겠다.

누가 잃어버린 애일까 싶어 사진을 여러 장 찍었다. 휴대폰 앱스토어를 열고 ‘유기견’을 검색한 다음, 순위권에 있는 어플을 전부 다운 받았다. 지역, 채홍동. 견종, 믹스. 몸무게, 1㎏ 미만… 검색어를 넣고 돌려 보았지만, 눈앞의 개를 찾는다는 글은 보이지 않았다.

그때쯤 멀리, 1층에서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찬희가 병원에 가는 날이면 소득 없는 상담에 작은이모도 지치고 엄마도 지치곤 했다. 예전 일이 떠올라 피곤할 때면 엄마는 날 보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러니 오늘 엄마가 내 방으로 올라올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그래도 혹시 몰라, 자리에서 일어나 방문을 조용히 잠갔다.

그러고는 배가 뚱뚱해진 강아지를 안아 들고 침대로 향했다.

“밖에 눈 온다, 인마.”

터덜터덜 걸어가서는 털썩 몸을 눕히자, 품 안의 개가 꿈틀거렸다. …그냥 내가 키우면 안 되나. 엄마가 반대하겠지, 이찬희 때문에.

“…천둥아.”

킁킁, 강아지 냄새를 맡으며 눈을 감았다. 개 샴푸가 따로 없어서 물로만 헹궜더니 어째 구수한 냄새가 더 짙어진 것 같다. 꼬질꼬질한 털에서 털 비린내가 났다.

“…야, 천둥아….”

강아지는 존재만으로도 내 기분을 달래 주었다. 개한테서만 나는 특유의 꼬신내. 말랑말랑한 발바닥. 찹찹거리면서 내 턱을 핥아 대는 젤리 같은 입술 감촉….

이튿날은 새벽 일찍 일어났다. 빨리 세수하고, 빨리 양치하고, 빨리 옷을 갈아입었다. 밤새 침대 위를 구르고 달리며 놀다 지친 강아지를 스포츠 가방 안에 집어넣고, 최대한 조용히 계단을 내려갔다.

집에서 빠져나오자마자 지퍼를 조금 열어 주자, 강아지가 허둥지둥 얼굴을 내밀었다. 그대로 가방을 품에 안고 학교로 직행했다.

평소처럼 채홍관으로 가는 대신에 향한 곳은 본관이었다. 개가 든 가방을 안고 복도를 돌아다녀도 이른 시간의 학교 복도에는 나를 볼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목적지는 교감실이었다.

예상대로, 부지런한 교감 선생이 창가의 난을 닦고 있었다.

“삼촌.”

불쑥 부르자, 삼촌의 어깨가 화들짝 들썩거렸다. 놀란 눈으로 돌아보는 얼굴에 원망이 서려 있었다.

“어휴, 야! 인마. 놀랐잖아.”

“네, 네.”

대충 고개를 끄덕거리자, 삼촌이 쯧쯧 혀를 차댔다.

“학교에선 선생님이라고 부르라니까.”

‘삼촌’과는 따지자면 외종숙인가 6촌인가 뭐 그러했다. 엄마와도 연락을 자주 하진 않아서, 내가 고등학교 입학을 준비할 때 즈음에야 ‘가만있어 봐, 그 학교에 네 외숙이 있는데’ 하며 그마저도 틀리게 말할 정도였다. 4촌이고 6촌이고 간에 따져 봐야 골만 아픈지라, 나는 그를 ‘삼촌’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가방을 앞으로 고쳐 메며, 나는 지퍼 사이로 빼꼼 내민 강아지의 얼굴을 보여 주었다.

“개요.”

그러자 삼촌이 눈을 가늘게 떴다. 눈가 주름이 여러 겹이 됐다.

“훈련소에서 키워도 돼요?”

“훈련소에서?”

“네. 졸업할 때 다시 데리고 갈게요.”

그러자 삼촌이 입술을 비틀었다. 고민하는 그의 얼굴을 나는 멀뚱멀뚱 쳐다봤다. 우리 집에 온 적이 없으니 천둥이를 본 적도 없는 삼촌이지만, 이찬희와 내 사정을 아는 만큼이나 나에게 키우던 개가 있었단 것도 알 터였다.

“아무리 그래도 학생들 생활하는 곳에 개를 둘 순 없어.”

“그럼요?”

“‘그럼요’라니.”

“저 얘 학교에서 주웠는데, 내다 버리시게요?”

그리고 나는 다음 말을 준비했다. 여차하면 삼촌… 아니, 외종숙 씨랑 내가 친척 사이라는 걸 친구들에게 소문내겠다고 협박할 생각이었다. 그럼 교감 선생이 이번 해 신입생 가운데 딱 두 명뿐인 전액 장학생으로 제 친척을 뽑았다는 걸 모두가 알게 될 터였다.

나야 뭐, 중학교 때부터 받아 온 상이 있으니 꿇릴 게 없다. 그래도 교감 정도 되면, 그런 소문에 해명하는 것 자체가 피곤할 터였다.

덤덤한 얼굴로 입을 여는데,

“그래, 이리 줘라.”

삼촌이 대뜸 말했다.

“교직원 휴게소에 두고 경비한테 키워 보라고 할게.”

“네.”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나는 가방 안에서 강아지를 꺼냈다. 감촉이 묘하게 축축하고 뜨끈뜨끈했다. …얘 내 유도복 위에 쉬한 건 아니겠지?

내 품 안의 강아지를 조심스럽게 건네주자 삼촌이 어색한 자세로 개를 들었다. ‘안는’ 게 아니라 ‘드는’ 자세가 제법 불편해 보였다. 귀여운 녀석의 얼굴을 쳐다보더니, 삼촌은 혀를 찼다.

“어디서 주워 와도 이런 똥개를 주워 왔어?”

“학교 안에 있었다니까요.”

“태오 너도 사춘기냐? 안 하던 짓을 다 하고…. 훈련이나 잘해, 인마. 뭐 아쉬울 게 있다고 이런 똥개를….”

자꾸 똥개똥개거리네, 씨발 듣는 똥개 기분 나쁘게?

그래도 나는 입을 다물었다. 대충, ‘잘 부탁드립니다’ 인사하고는 교감실을 나섰다.

얼마 지나지 않아 교사 전용 휴게 공간과 정보관 사이에 개집이 생겼다. 사립 학교 운영하면서 한 푼 두 푼 많이 해쳐먹은 걸 뻔히 아는데, 딱 봐도 3만 원도 안 해 보이는 플라스틱 집을 가져다 놓은 삼촌에게 짜증이 났다.

‘휴게소에 둔다길래 나는 휴게소 안에서 키운다는 줄 알았지. 쬐그만 애를 밖에다가 두냐?

개집 앞에 앉아, 목에 묶인 리드 줄을 씹으며 노는 강아지를 보자니 기분이 착잡했다. 좀처럼 내 뜻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었다.

‘차라리 새 주인을 찾아 줄 걸 그랬나? 내가 괜히 욕심을 냈나….’

새 학기가 시작되거든 학생들이 오갈 텐데, 철없는 새끼들이 개를 건드리거나 괴롭힐까 봐 걱정스러웠다. 그래서 작은 팻말을 구해다가 개집 문 옆에 걸어 놓고, 세 글자를 굵은 매직으로 적어 넣었다.

‘개 조 심’

이러면 무서운 개인 줄 알고, 물릴까 봐 안 건드리겠지… 생각하면서.

“여기서 2년만 참아, 천둥아.”

개집 앞에 앉아 여러 번 불러 보아도, 강아지는 내게 다가오질 않았다. 집에서는 입술도 핥고 팔짝팔짝 잘만 치대더니 황당한 일이었다.

“어이, 천둥아? 천둥아.”

어쩌면 녀석은 내가 저를 남에게 버린 줄 착각하는 것 같았다. 그러니 싫다는 듯 고개를 팽 돌리거나, 꼬리를 붕붕 흔들면서도 집 안에만 처박혀 있는 식으로 토라진 티를 내는 거였다.

나중에야 안 사실인데, 그 개는 여학생들에게만 가끔씩 꼬리를 살랑거리며 모습을 비추었다. 덩치 작은 남자애들에게도 두어 번 머리를 내주었다. 아마도 나처럼 큰 남자만 싫은 듯했다. 중딩들이 저를 괴롭히던 걸, 조그만 머리로 기억하기라도 하는 건가 싶었다.

‘건방진 놈. 지 구해 준 사람도 못 알아보고….’

나중에는 녀석과 친해지기를 거의 포기해야 했다. 착한 척 잘 대해 주는 대신에 나는 녀석의 입을 억지로 벌려다가 심장사상충 예방약을 먹이고, 다음 주에는 진드기 약을 사다가 목덜미에 발라 주었다. 그 바람에 녀석은 나를 더욱 무서워했다.

“돌봐주는 보람이 없다, 보람이 없어….”

개집 안에서 눈알만 도록도록 굴리는 개를 쳐다보면서 나는 한숨 쉬었다. 그러면서도 녀석이 방학 사이에 제법 큰 것 같아, 휴대폰을 꺼내 사진을 여러 장 찍었다.

잘 찍혔는지 확인하려고 갤러리를 열고 보니, 휴대폰이 개 사진을 ‘동물’ 폴더로 자동 분류해 놓았다. 스크롤을 내려도 내려도 끝이 없는 천둥이 사진을 한참 들여다보다가, 나는 휴대폰을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

‘뭐가 아쉬울 게 있어서 이런 똥개를 신경 쓰냐’고…. 그러게. 내가 뭐가 아쉬워서, 이런 똥개가 아니면 다 싫을까. 나에 대해 잘 아는 척 말하는 아이들도, 일 년에 몇 없는 휴가 기간 동안 이모 옆에 찰싹 붙어 여행이나 다니는 엄마도, 아직도 2년이나 남은 좆같은 미성년자의 날도, 이제는 이게 지겨운 건지 친한 건지 분간할 수 없는 이찬희도, 이찬희가 없으면 불안한 나도.

싫다.

그냥… 다. 전부 다 싫다.

“천천히 가자.”

그리고 그 애를 봤다. 아침 7시 반, 정해진 시간에 유도부 2학년과 운동장 열 바퀴를 뛰고 식수대로 향하는 길에, 그 애를 봤다.

“조심아…, 천천히. 천천히 가자….”

잣나무 산책로 아래, 후드 재킷을 교복 위에 겹쳐 입고 그 애는 헉헉 숨을 고르고 있었다. 등에는 책가방을 멨고 손에는 리드 줄을 꽉 쥔 채였다. 그 앞에서 내가 데려온 그 개, 한 달 사이 주둥이도 다리도 길쭉해지고 제법 성견 티가 나서, 개 조심 팻말도 필요 없을 정도로 모두의 관심 밖에 나 버린 똥개가 웃고 있었다.

그 애는 제 소유도 아닌 똥개를 ‘이리 와’, ‘같이 가’ 달래면서 산책시키고 있었다.

“권태오, 뭐 해? 더 뛰게?”

멍하니 서 있는 나를 2학년 친구들이 불렀다.

“어.”

대충 대답한 뒤, 나는 턱에 맺힌 땀을 손등으로 훔쳤다. 그러고는 새로 달리기 시작하는 1학년들 뒤로 붙었다.

“어? 우리 차례 끝났는데 왜? 열 바퀴를 더 뛴다고?”

“와…, 저 미친놈….”

혀를 내두르는 녀석들을 뒤로한 채 나는 열의 뒤에서부터 앞으로 뻗어 나갔다. 반 바퀴를 돌아 산책로를 마주 보게 되자 나무 그늘 아래에서 웃고 있는 남자애가 보였다.

‘이제 2학년이네.’

개를 앉혀 놓고 물을 먹이는 얼굴이 하얬다.

‘…열여덟 살이 됐어.’

온통 흐릿한 화질구지 세상 안에 그 애만, 사진을 잘라다가 붙여 놓은 듯 뚜렷했다.

‘태오야. 나 같은 반 친구랑 싸웠어. 걔랑 친해지고 싶어서 오지랖을 좀 부렸는데… 그 바람에 걔가 화가 많이 났나 봐. …응, 자초지종을 말하자면… 걔네 부모님이 이혼을 하셨대. 그런데… 그 이야기를 듣다가 내가 리액션을 잘못 취했어. 다시 불러다가 잘 얘기하고 화해하려고 해 봤는데, 그것도 실패했어. 걔도 어쩌다 보니 나한테 화풀이를 한 것 같기도 한데…. 혹시 네가 나 대신 말 좀 해 줄 수 있을까? 내가 미안하다고. 그냥 친해지고 싶어서 그런 거라고. 응? 애들은 나보단 네 말을 더 잘 들어주잖아. …아, 정말? 도와줄 거야? 진짜 고마워! 응응, 그 애 이름은 이우신이고, 지금 도서관 열람실에 혼자 있어.’

…그 말을 믿은 내가 등신이다.

오지랖을 부렸다느니 리액션을 잘못 취했다느니 하는 이찬희 짖는 소리에, 혹시 발작이라도 도졌었나 걱정한 내가 등신이다.

상대가 누가 됐건 대충 가서 어깨나 잡고 ‘잘 좀 지내라’ 하면 말을 듣겠거니 쉽게 생각한 내가 등신이다.

나는 그 사실을, 텅 빈 열람실에서 혼자 걸어 나오는 남자애의 뒷모습을 본 뒤에야 깨달았다. 뒤통수가 남들보다 더 동그랗고, 목덜미는 A4 용지보다 희고, 교복 셔츠 칼라 밑으로 넥타이를 딱 맞게 조여 맨….

“…이우신.”

이찬희에게 들은 이름 세 글자를 부르고는 입을 딱 다물었다. …아니겠지, 아닐 거야. 속으로 그렇게 외쳤다. 그게 네 이름은 아닐 거야, 아니지. 너는 공신인지 뭔지, 하여간에 그렇게 불린다며… 하고.

그런데 공신이, 남자 구미호가, 아니, ‘이우신’이 고개를 돌려 나를 봤다.

“내 이름을 어떻게 알아?”

이찬희 이… 악마 같은 새끼가….

‘속았다’는 배신감이 머리를 채웠다. 그러나 이찬희에 대한 분노는 다른 감각들에 의해 쉽게 밀려났다. 목구멍이 좁아지고 아랫배가 무거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자각하지 못했던 허기가 채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이우신’.

다시 보니 그 이름과 잘 어울리는 얼굴이었다. 구미호도 아니고, 공신도 아니고, 이우신. 우신…이었구나. 이름이, 이우신이었구나.

날 보는 이우신의 눈은 여전히 까맸다. 그러나 얼굴은 좀 변한 것 같았다. 가까이서 못 본 새에 좀 더 윤곽이 뚜렷해진 모습이었다. 하얗고 동글동글하니 젖내가 묻어 있던 뺨이 이제 날씬했다. 키도 좀 더 큰 것 같았고 어깨도 전보다 넓어진 듯 보였다. …꼴에 남자라고.

“…너 이찬희랑 같은 반이지?”

“어. 근데 왜?”

목소리만큼은 여전했다. 여전히 듣기 좋았다.

나는 그를 위아래로 티 나지 않게 살펴보았다. 이우신에게는 보통 범생이들에게 으레 있는 비굴한 면이 없었다. 나한테 대뜸 붙들려서 이름을 불릴 때면 누구라도 시선을 내리깔게 마련인데, 이우신은 달랐다.

그 애는 내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웃기는 착각이지만 마치, 내가 불러 주길 기다린 사람처럼 두 눈동자에 빛이 돌았다.

학교를 다니기 시작한 지 2년째에 접어들어 처음 와 본 도서관이었다. 복도에서부터 책 냄새가 풍겼고, 전등 빛은 너무 옅어서 창밖의 노을이 더 강할 정도였다. 내게 낯선 공간이 이우신과는 아주 잘 어울렸다. 지는 석양빛 때문에 이우신의 뺨이 불그스름해 보였다.

나는 천천히 숨을 골랐다.

“음…. 이찬….”

떨리는 바람에 목소리가 반 톤 높게 나왔다. 마른침을 겨우 삼키고, 다시 숨을 골라야 했다.

“…이찬희가 좀… 마음이 여리거든. 걔가 하는 말들이 오지랖 부린다고 느껴지기도 하겠지만, 워낙 착한 애라 뭘 모르고 그런 거니까.”

반가운 마음에 긴장한 와중에도, 말은 술술 나왔다. 처음부터 끝까지 다 구라였다. 이찬희를 의심하거나 이상하게 여기는 사람이 생길 때마다 줄줄이 읊어 주던 대본이었다.

이찬희와 깊게 엮이거나 그놈에게 미움을 받아서는 누구라도 곤란했다. 의도치 않게 바람맞힌 일로 인생을 저당 잡힌 나처럼은 누구도 되지 말아야 했다. 그게 이우신이라면 더더욱 안 될 일이었다.

“괜히 애한테 화풀이하지 말고 잘 좀 지내.”

들은 말이 있으니 되는 대로 말하자마자,

“‘화풀이’?”

나는 내 실수를 깨달았다.

“이찬희가 그렇게 말했어? 내가 자기한테, 화풀이를 했다고?”

이찬희가 나를 얘한테 보낼 적에는, 곧이곧대로 사실을 말했을 리 없는 건데.

“걔도 권태오 너도, 지금… 사람 어이없게 이게 무슨…. 이찬희가 정확히 뭐라고 그랬는데? 아니, 너… 제대로 이야기를 듣고 오기는 한 거야?”

몰아치듯 묻는 말에 얼이 빠졌다.

“…어. 너네 부모님 이혼했다며.”

그런 건 별로 대수로운 일도 아니었다. 그리고, 대수롭지도 않은 일을 대수롭게 만드는 게 이찬희가 잘하는 짓이었다. 그런 놈과는 싸우고 자시고 하며 엮이지 않는 게 무조건 좋았다. …그렇게 말하려 했다.

“내 말은….”

눈빛이 흐려진 ‘이우신’을 보기 전까지는 그랬다.

“…아니다.”

그런 의미로 꺼낸 말이 아니라….

실언을 깨닫고 입을 열었을 땐 이미 늦은 뒤였다.

“아니…, 됐어. 뭔 말인지 알겠으니까….”

이우신이 나를 저지했다. 손사래를 치는 팔이 가느다랗게 떨리고 있었다. 이내 흰 손이 주먹으로 꽉 말리고, 손등 위로 푸르스름한 핏대가 섰다.

내 심장은 무겁게 뛰기 시작했다. 한 번 두 번 쿵쿵 뛸 때마다 계단 밑으로 내려앉는 느낌이 들었다.

“그게 아니라, 이우신….”

오해를 풀어 보려 입을 열자마자, 그 애는 날카롭게 언성을 높였다.

“그만 말해. 내가 알겠다잖아.”

거의 외침에 가까운 소리였다. 나를 올려다보는 두 눈 안에 작은 분노마저 서렸다. 그러더니 공격받은 사람처럼 어깨를 웅크린다. 둔한 나조차도 알았다, 내가 이우신을 상처 입혔다는 걸.

“이우신.”

“아, 씨발….”

‘아, 씨발’이라고….

‘씨발’이라고….

‘씨발’….

…그러고는, 이우신은 한 손으로 제 입가를 훔치듯 닦았다. 까만 눈이 예민해진 채 나를 담았다. 그 애는 그대로 뒷걸음질을 쳤다. 더러운 것 피한다는 듯한 태도였다.

그대로 가 버리게 둘 순 없었다.

할 수 있는 말이 많진 않지만 하고 싶은 말은 많았다.

그러나 손을 뻗어 팔을 잡자마자, 이우신은 나를 세게 쳐냈다.

“놔.”

팔을 쳐내는 손이 제법 맹렬했다. 힘으로는 이길 수 있겠지만 기세로는 내가 졌다. 뒤돌아 사라져 버리는 이우신을 도무지 쫓을 수가 없었다. 온몸의 힘이 턱 하고 풀렸다.

“하….”

나도 모르게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스치듯 붙잡았던 팔뚝의 감촉이, 무슨 놈의 시체처럼 차가운 온도로 손바닥에 남아 있었다. 그마저도 펄펄 끓는 내 체온으로 이내 덮여 버렸다. 손금 위로 땀방울이 찼다.

그 순간은 멍청한 내 머리가 한탄스러웠다. 내가 느끼는 기분의 이름을 알 수 없어 속이 답답했다. 도대체 뭣 때문에 삐질삐질 목덜미 위로 땀까지 흐르는 건지 이유를 추측할 수조차 없었다.

무엇보다도 이찬희의 의도를 모르겠다. 이 모든 게 우연일 리는 없었다. 싸움이라고는 나와도 해 본 적 없는 놈이 이찬희였다. 잘 알지도 못하는 누구네 부모가 이혼을 했다고 오지랖을 부릴 리도 없는 녀석이었다. 그놈 옆에는 진작 엄마밖에 없는 내가 있었다.

모든 게 연출된 상황임이 분명했다.

‘하지만, 왜?’

왜?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거지? 숨이 막혀서 코가 아팠다.

왜 나한테, 왜 이우신한테, 왜 그런 거지? 의식적으로 참고 있던 숨을 들이켜자 목구멍에서 이상한 소리가 끓었다.

‘내가 요즘… 너무 괜찮아 보였던가? 혼자 낫는 것처럼, 보였던가?’

이찬희 앞에서 내가 어떻게 굴었더라. 지나간 내 모습을 복습해 보려 노력했다. 잘되진 않았다. 평소처럼 지루하기 짝이 없는 날들을 심심하게 보냈을 뿐이었다. 구태여 남자 구미호를 본 일이나 공신이라는 별명에 대해서 언급한 적도 없었다.

‘씨…발. 어차피 친해질 생각도 없었어.’

싸늘한 기운에 점령당한 복도를 성큼성큼 걸으면서 그렇게 생각했다. 어차피 상관없다고. 이우신에게 다가갈 생각 같은 거, 애초에 없었다고. 그냥 아침마다 산책하는 모습을 보고, 아주 가끔 복도나 교무실에서 어깨나 스치고, 어떤 애일까 내 멋대로 상상하는 게 좋았을 뿐이었다. 나는 그걸로도 만족했었다.

여태껏 별거 없다고 생각한 나날에 손상이 갔다. 별거 없는 그 나날에조차, 상실이 생겼다.

아침 훈련조에 끼어 운동장을 열 바퀴, 스무 바퀴, 서른 바퀴를 뛰어도 이우신은 보이지 않았다.

‘괜히 화풀이하지 마.’

그 말은 부메랑이 돼서 내게 돌아왔다. 되는 대로 힘을 쓰며 유도부 놈들 여럿을 엎어 쳐 댄 끝에, 코치가 내게 역정을 냈다.

“권태오!”

얼떨떨한 얼굴을 통증으로 와락 구긴 상대를, 나는 멍하니 내려다봤다. 좀 전까지만 해도 1학년 신입의 훈련 상대나 해 줬던 것 같은데, 어느새 내 팔 밑에 깔린 사람은 3학년 선배였다.

“적당히 안 해? 왜 애새끼처럼 굴어! 어? 누구 다치게 할 일 있어?”

버럭버럭 질러 대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몸에서 힘을 풀었다. 종아리에서 근육이 소리를 질러 댔다. 일어나 손을 내밀자, 선배는 혀를 내두르며 내 손을 잡고 일어섰다. 서로 간에 땀과 열로 젖어 엉망진창이 된 채였다.

당장 이리 오라는 코치의 말에 고개를 돌리려다, 나는 문 앞에 선 이찬희를 발견했다. 건네받은 수건을 내던지고 그대로 녀석에게 직진했다. 정강이 알이 꿈틀대는 탓에 걸음걸이가 절로 절뚝거렸다.

“너… 나한테 도대체 왜 그런 거야?”

듣는 귀가 있어 큰소리로 말할 수가 없었다. 구체적으로 물을 수도 없었다. 정말로 묻고픈 말은 따로 있었다.

‘너, 지금 나를 벌주려는 거야?’

그러나 온몸의 피부가 붉어진 채 절뚝이며 선 나를 바라보며, 이찬희는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녀석은 도대체 무슨 말을 들은 건지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그러고는 한참 만에 입을 열었다.

“…어? 태오 너, 우신이 일 때문에 이렇게 화난 거야?”

“…….”

“안 그래도 너한테 물어보려고 온 건데. 둘이서 이야기를 어떻게 한 거야? 우신이가 이제는 나를 쳐다도 안 봐.”

“너도 쳐다보지 마.”

“왜?”

우후죽순 이어지는 대꾸 하나하나에 열이 받았다.

“왜? 태오야? 나는 네가 걔를 마음에 들어 하는 거 같길래, 그리고 나도….”

“마음에 들어 한 적 없어.”

이러다간 뇌가 끊어질 것 같았다.

“…전부 개좆같으니까, 씨발 걔랑 엮이지 마. 두 번 다시 말도 섞기 싫고 너랑 다니는 거 보고 싶지도 않으니까, 그냥 좀 내버려 두라고.”

몰아붙이듯 말을 마쳤을 때 이찬희의 등이 철제문에 부딪쳤다. 한 발, 두 발 다가서는 나를 피해 뒷걸음질 친 결과였다.

“알았어.”

어색한 얼굴로 미소 지으며 이찬희가 말했다.

“알았으니까 화내지 마.”

“…….”

그러더니 녀석이 ‘하하’ 소리를 냈다. 웃음기 없이 그저 소리로만 ‘하하’, 그랬다. 아무렇지 않은 척 고개를 숙이더니 제 손에 들린 종이 가방을 내게로 내밀었다. 딱딱해 보이는 상자 하나가 덜렁 들어 있었다.

“자, 이거. 엄마가 너한테 갖다 주랬어. 큰이모랑 같이 쇼핑한 건데, 운동화래.”

“어.”

“네가 많이 좋아했다고, 고맙다고 했다고 전해 줄게.”

“어.”

종이 가방을 건네받자 이찬희는 ‘흠’ 하고는 입을 다물었다. 놈이 무슨 말을 기다리는지 알기에, 나는 억지로 입을 열었다.

“훈련 끝났어. 집에 가자.”

그러자 이찬희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문 밖으로 나서는 놈을 확인한 뒤, 나는 유도복을 벗어 가방 안에 구겨 넣었다. 성난 코치를 향해 허리를 깊이 숙인 다음 채홍관을 나섰다.

경기에 임하기 전에 몸을 풀 때면, 이어폰을 통해 다큐멘터리 녹음본을 듣고는 했다. 해양, 정글, 우주. 소재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지금, 여기, 나와 관련 없는 것이라면 뭐라도 족했다.

그러다 한 번인가 녹음본을 잘못 고르는 바람에 경기를 망친 적이 있었다.

―…블랙홀은 죽음의 별이라고도 불립니다. 빛마저도 블랙홀의 강한 중력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가까이 다가오는 모든 물체를 찢어 버리고 심연 깊숙이 끌어당겨, 우주의 모든 것을 소멸시킵니다.

멍하니 이어폰을 뽑고 경기장에 오르는데, 빨려 들어 죽는다는 우주의 그 무어가 나 같았다. 가까이 다가오는 모든 걸 찢어발기고 심연으로 당긴다는 게 꼭 이찬희 같다가도, 이모 같다가도, 엄마 같았고, 내 세상에 뭐가 특별히 안 그런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대회 경기 예선전에서 패배한 건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내 동작이 너무 거칠어 상대 선수를 다치게 할 것 같았다는 주심의 말에 나는 순응했다. 다만 반칙패로 보기에는 모호한 판정임을 서로 간에 받아들여, 컨디션 문제를 들어 기권 패로 기록했다.

‘왜 그런 거냐’며 내 걱정을 하는 이찬희를 보면서 나는 약간 미안했었다. 놈을 블랙홀이라고 생각한 게, 그래서 잠깐이나마 숨이 막혔다는 게, 마지못해 미안했었다.

내게 블랙홀이 있듯이 이찬희에게도 블랙홀이 있음을 나는 알았다.

4월 둘째 주에는 학교에서 귀찮은 일정 하나를 기획했다. 제주도…, 뭐더라, 하여간에 역사 다큐멘터리를 틀어 놓고 2학년 전원을 커다란 시청각실에 집어넣은 것이었다. 팔짱을 끼고 이찬희 옆자리에 앉아, 나는 무진 지루했다.

많은 것들이 그렇듯이 학교에서 틀어 놓은 영상 자료조차도 내 뜻대로는 풀리지 않았다. 역사적인 사실을 어쩌고저쩌고 기술하던 중간에, 당시 상황을 재연한답시고 만든 애니메이션이 상영됐다.

군복을 입은 악당 캐릭터들이 아직 살아 있는 사람들을 구덩이에 집어넣고, 마구잡이로 총을 쏘고 삽을 들어 흙으로 파묻었다.

‘씨발….’

턱이 당기도록 입을 다문 채 살피자 아니나 다를까 이찬희의 상태가 이상했다. 두 눈을 크게 뜬 채 깜빡이지도 흔들리지도 않고 그저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이러다 기절하는 게 아닌가 싶을 때쯤 녀석이 손을 떨기 시작했다.

트라우마라는 게 참 귀찮은 거였다. 남들에게는 학습이고 오락이고 괴담인 것에도 이찬희는 머릿속 빨간 버튼을 자극당하고는 했다. 하기야, 누군들 산 채로 흙에 파묻힌 경험이 있을 거라고 짐작이나 하겠는가.

나는 이찬희의 손을 잡아 책상 밑으로 내렸다. 아플 정도로 힘주어 꽉 잡았다가 놓아주자 이찬희가 시선을 스크린에서 떨어뜨렸다.

애니메이션 상영이 겨우 끝나고 지루한 PPT가 시작될 무렵, 멍청한 새끼들이 낄낄거리기 시작했다.

“야야, 이찬희 운다.”

아무것도 모르는 주제에 놀리는 말에 꿈틀한 건 오히려 나였다. 이찬희는 ‘아아’ 하고는 눈물을 훔치는 시늉하며 자연스럽게 혀를 놀렸다.

“나 저런 일이 있었는 줄 처음 알았단 말이야.”

거짓말하는 놈의 머리를 나는 한 손으로 덮고 흔들었다. 쓸데없는 관심이 좀, 꺼져 주기를 바라면서.

그러고 나니 안심이 됐다. 그래 여기가 내 자리구나, 싶었다. 144p의 머저리들 사이에 앉은 144p의 권태오 자리. 누가 별이고 누가 블랙홀인지 씨발 알 바가 아닌 멍청이들에게 둘러싸인 내 자리.

그래, 이 정도면 괜찮다.

‘…아니야.’

사실 안 괜찮았다. 사실은 아무것도 안 괜찮다. 그 무엇 하나 괜찮은 게 없다. 그래도 그저 그렇게, ‘괜찮다’, ‘괜찮아’라고 나는 구질구질하게 자기 위안을 했다.

그러면서도 나는 그 도서관을 찾았다. 이우신이 내게 ‘아, 씨발’이라는 명언을 날린 도서관을 찾아가서, 잘 읽지도 않는 책을 두 권 대여했다.

물론 충동적으로 대여한 책은 일주일이 지나도록 10페이지를 못 넘겼다. 결국 열흘을 다 채우고 반납 기한이 다 됐을 때도 다 읽어 내질 못해서, 반납을 재촉하는 문자에 못 이겨 도서관을 찾아야 했다.

그런데 간만에 찾은 도서관의 풍경은 전과 달랐다. 복도를 오가는 애들도 많았다. 그러고 보면 시험 기간인 듯했다.

나는 책을 덜렁 든 채 자동 반납기를 찾아 헤맸다. 그렇게 도착한 복도 끝에는 자동 반납기와 함께, 열람실이 있었다. 퉁, 퉁… 책 두 권을 기계 안에 집어넣는데 유리로 된 문 너머에 이우신이 보였다.

반납기 모니터를 꾹꾹 눌러 학년, 반, 이름을 입력하면서 나는 이우신을 살폈다. 열람실 맨 끝자리에 앉은 이우신은 저를 쳐다보는 시선도 느끼지 못하는 듯했다. 아주 진지한 얼굴로 문제를 푸는데, 샤프를 쥔 손이 무척 빠르고 전투적이었다.

다음 날에도 나는 도서관을 찾았다. 열람실 문 밖에서 잠깐 들여다볼 적에, 이우신은 같은 자리에 앉아 있었다. 오늘은 옆자리에 친구가 함께였다. 자주 같이 다니던 장세라는 아니고, 멀대처럼 키만 큰 남자애였다.

무어라 벙긋벙긋 입을 움직이며 이우신은 녀석의 노트에 무얼 적었다. 언뜻 보기로 모르는 문제를 풀어 주는 듯 보였다. …그러고 보면 공주윤이 ‘공신’ 이야기를 안 한 지 꽤 된 듯했다. 반이 갈리면서 저 멀대 놈에게 친구 자리를 빼앗겼나 보다.

‘그럼, 장세라랑도 헤어졌을까?’

세 번째 도서관을 찾아간 날에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똑같은 후드 티를 입고 똑같은 자리에 앉아, 이우신은 엎드린 자세였다. 두 팔은 책상 밑으로 내리고 한쪽 볼을 책 위에 댄 뒷모습이, 언뜻 잠든 것처럼 보였다. 근처 자리는 전부 빈 채였다.

뒤돌아 걸어 나오려다, 나는 자판기 앞에 섰다. 생각 없이 이온 음료 하나를 뽑아 들고 열람실로 다시 향했다. 유리문을 열고 들어가자 공부에 집중하던 여자애들 두엇이 힐끔힐끔 나를 살폈다.

이우신은 내가 옆으로 다가가도 일어나지 않았다. 가까이서 내려다보니 어깨가 숨결로 들썩이는 게, 완전히 잠든 기색이었다. 목을 뻗어 감긴 두 눈을 확인한 다음, 책상 위를 훑어보았다. 수식이 잔뜩 적힌 종이 낱장이 즐비했고 뭔 놈의 벽을 세운 것처럼 스톱워치, 캘린더, 필통이 줄지어 서 있었다.

그리고 교과서가 보였다.

‘2-1 이우신’

…교과서 따위를 누가 훔쳐 간다고 이름을 적어 둔 건지. 그걸 보고 있자니 자그마치 1년 동안이나 이 애의 이름을 몰랐던 내가 우스웠다. 몰랐던 게 아니라, 알 생각이 없었던 거였다. 빤히 살피고 알아봐야 못 가질 사람이란 걸 알았던 거지.

교과서 위에 음료 캔을 올려놓고 나는 이우신의 옆자리에 앉았다. 다른 범생이들이 내는 사각거리는 소음 사이로, 색색거리는 숨소리가 들렸다.

주먹으로 턱을 괸 채 나는 삐딱하게 고개를 기울였다. 자는 얼굴이 욕 한 마디 못 하는 어린애 같았다. 꾹 감긴 눈꺼풀에 달린 속눈썹은 숱이 많고 길었다. 우뚝 솟은 코끝이 반들반들했다. 반사된 백열등 빛이 작게 반짝거렸다.

그리고, 입술. 저 분홍색 입술 안에도 혀가 숨어 있을 거였다. 도란도란 좋은 목소리로 입학생 선서를 읽기만 해도 듣기 좋고, 똥개 앞에선 ‘조심아’ 하고 상냥하면서, 내 앞에선 ‘씨발’이라고 욕도 할 줄 아는 새빨간 혀가.

이우신은 지 여친 앞에서도 그렇게 예민하게 굴까, 아니면 조심이한테 그러듯이 달달한 목소리를 낼까. 가끔 복도에서 보면 장세라가 불쌍해 보일 정도로 차갑고 도도하던데, 둘만 있을 땐 또 다를지도 모르지.

꼭 이렇게 생긴 놈들이 꼴값 떤다고 뒤에서는 별의별 짓 다 하던데. 아니지, 이우신은 씹선비 같은 스타일일 게 분명하다. 키스도 야금야금 아껴 가면서 하겠지. 남들 본다고 손도 안 잡아 주는 거 아냐? 하하, 이런 놈이랑 결혼할 여자가 불쌍하네.

그래도 집에 혼자 있을 땐 문 잠그고 딸도 치고 그러겠지? 좆도 씨발 얼굴처럼 하얀 거 아냐? 커도 웃길 거 같고 작아도 귀여울 거 같네. 아다는 뗐을까? 흥분하면 존나 빨개지겠지? 섹스할 때 우는 거 아냐? 가끔 그런 놈들도 있다던데.

손끝이 툭, 이우신의 가느다란 앞머리를 건드렸다. 반듯한 이마에 송골송골 조그만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

‘더운가 보다.’

손톱을 바짝 밀어 깎은 검지 끝으로 살짝 누르자 땀 한 방울이 금세 없어졌다. 손을 쭉 편 채 눈앞으로 가져다 대고 보니 지문 위에 맺힌 물기가 보였다. 아랫입술에 슬쩍 묻히고 핥았다.

존나 아무 맛도 안 난다.

“…….”

뒤늦게 주위를 둘러봤다. 구석 자리인 덕에 날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래도 괜히 열이 올라, 최대한 조용히 의자에서 일어났다.

교과서 위에 음료 캔만 두고 가려다가, 나는 다시 멈추어 섰다. 그리고 마구잡이로 쌓인 채 주인이 두고 떠난 책 더미로 손을 뻗었다. 포스트잇이 있기에 한 장 찍 뜯고, 마찬가지로 누구 건지 모를 펜을 움직였다.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적을 수 있는 건 하나뿐이었다.

‘함부로 말했던 거 미안해.’

음료 캔에 붙이자 이우신이 자세를 조금 뒤척였다. 나는 부랴부랴 밖으로 도망쳤다.

티셔츠 밑으로 가슴께가 벌게진 채 밖으로 나왔을 때, 나를 맞이한 건 이찬희였다.

“내가 채홍관에서 얼마나 기다렸는데, 권태오가 도서관에 가 있을 줄 누가 알았겠어?”

“…….”

휴대폰을 확인하자 7시 40분이었다. 7시에 저녁을 먹으러 가기로 약속한 걸, 새하얗게 잊어버린 내 잘못이었다. 잠깐 들렀다 간다는 게 도서관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다.

“미안.”

벤치에 앉은 이찬희를 데리고 떠나려는데, 놈이 자리에서 일어나질 않았다. 나는 입을 다문 채 이찬희의 얼굴을 살폈다. 이렇다 할 표정도 없고 제 말마따나 서운한 기색조차 없었다. 무표정한 놈의 속을 알 수 없었다.

이내 이찬희가 내 옆구리 너머로 고개를 뻗었다. 그러고는 밝게 소리쳤다.

“어? 우신아, 안녕?”

그딴 장난질에 내가 속을 줄 알고. 헛웃음을 치며 서 있는데,

“어…. 안녕.”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당황해 얼어붙은 나를 한 번 살피더니, 이찬희가 뺨을 올리며 웃었다. 방실방실 사람 속 뒤집어 놓는 미소였다.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있었구나? 여기가 집중이 잘 돼?”

웃는 이찬희의 얼굴을 가만히 노려본 다음, 우리 뒤에 선 이우신을 확인했다. …자다 깨서는 곧장 나왔는지 꾹 눌린 한쪽 뺨에 붉은 자국이 남아 있었다. 손에는 음료수 캔이 들린 채였다.

“우신아?”

대답 없이 무뚝뚝한 얼굴로 선 이우신에게, 이찬희는 귀찮게도 들러붙었다.

“저기, 우신아? 우신아.”

“어.”

일어나 이우신에게 다가가려는 이찬희를, 나는 억지로 붙들었다.

‘그만해.’

입술만 움직여 말하자 이찬희의 눈썹이 작게 꿈틀거렸다.

“괜찮아? 너 되게 아파 보여.”

내 무엇 때문에 심보가 상한 게 틀림없었다. 웃는 낯으로 꿋꿋하게 말을 걸어 대는 걸 보면 그랬다.

“…그냥 졸려서 그래.”

먼저 대화를 마친 것은 다행히도 이우신이었다. 도도한 태도를 고수하며 그 애는 더러운 똥 피한다는 듯이 내리막길로 사라졌다. 그 뒷모습을 잠시간 눈에 담다 고개 돌리자, 이찬희가 ‘하하’ 소리 내어 웃었다.

“태오 너, 진짜 웃겨. 꿀단지 숨겨 놓는 거도 아니고. 아니 꿀단지면 뭐 어때? 내가 훔쳐 먹기라도 할까 봐 그래?”

“…….”

“우신이 보러 여기까지 오고…. 하하….”

어찌나 신나게 웃어 대는지 졸지에 이찬희의 두 눈엔 눈물마저 글썽거렸다. 키득키득 나를 놀리며 팔뚝 밑으로 파고드는 놈을, 나는 힘껏 팽개치고 싶었다. 그런 게 아니라고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그랬다가는 10년 치 놀림감이 되리란 걸 뼈저리게 잘 알기 때문이었다.

“싫어한다며. 말도 섞기 싫다며. 꼴도 보기 싫다며? 그런데 뭐야? 도대체 뭘 어떡하고 싶은 건데…, 응?”

“나도 몰라.”

그래서 그렇게만 대답했다. 나도 모른다고, 도대체 뭘 어떡하고 싶은 건지….

나는 몰랐다. 하얀 얼굴이 파래 보일 정도로 질린 채 운동장 벤치에 앉은 이우신을 보면서도, 그 애 몸에서 펄펄 끓는 열기를 내 것처럼 느끼면서도, 아파서 헉헉 내쉬는 숨소리에 은근히 꼴리는 데에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땡볕 아래서 기절하는 한이 있어도 10분만 내 주변에 있어 줬으면 바라면서도.

나는 몰랐다. 종합 평균 백 점이라는 기록 옆에 새겨진 이우신 세 글자를 보고도 몰랐다. 불완전한 애새끼들에게 둘러싸여서 나조차도 내가 누군지도, 뭐가 되어 가는지도 모르고 허우적거리는데, 이우신은 혼자서 어른이었다. 걔만이,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나는 이우신만큼 똑똑하지 못해서 깨달음이 느린 편이었다. 그래서 뒤늦게야 알았다. 그 애 옆에 붙어 다니는 친구로 기억하고 있던 강건우를 알아보고, 그 친화력 좋은 놈에게 부탁 하나를 받은 아주 뜻밖의 순간에.

“미안, 미안, 미안! 나 화학 수업 늦어서, 으악. 진짜 좀 부탁할게, 저쪽 가는 길에 교무실 우리 담임 책상에 이거 좀 놔 주라, 제발, 제발, 제발.”

그러더니, 강건우는 제 담임이 누구인지 알려 주는 것도 잊고 복도 끝으로 부리나케 달려 사라졌다. 놈에게 받아 든 종이 뭉치를 나는 느긋하게 살폈다. 유인물의 정체는 그 반 담임이 직접 만들어 학급 전체에 돌린, 백 문 백 답 조사지였다.

강건우, 강세찬, 김민아, 김지예… 한 장 두 장 종이를 넘기자 ‘이우신’이 나왔다. 그 종이를 맨 위로 올려 뺀 채 천천히 읽어 내리며 복도를 걸었다.

과연 이우신은 모범생다웠다. 담임이 내놓은 쓸데없는 조사지에도 녀석은 모든 답을 꼼꼼하게 기록한 상태였다.

―장래희망: 대기업 정직원

뭐 이런, 우리 엄마 같은 장래희망이 다 있지?

―특기: 영국 뉴스 아나운서 발음 따라 하기

그게 도대체 뭔데? 어떻게 하는 건데?

―남들과는 다른 신체적인 특징이 있다면: 없음

없기는 거울이 없냐? 1. 존나 잘생김, 2. 피부가 백짓장임, 3. 눈동자 미인임. 벌써 세 개나 나오는구만.

―좋아하는 것 세 가지: 1교시. 강아지. 동그랑땡.

1교시 좋아하는구나. 성격 되게 특이하네. 수업 말고 훈련이면 나도 아침부터 뛰는 거 좋아하는데.

강아지 좋아하는구나. 이건 내가 알지. 내 똥개 이름을 조심이라고 붙여 놨잖아.

동그랑땡 좋아하는구나. 느끼하고 고급진 거만 찾게 생겨서는. 나도 이왕이면 한식이 더 좋더라고.

‘…나 이우신 좋아하는구나.’

나는 갑자기 깨달았다. 털레털레 복도를 걸으면서 혼자 웃고 있다는 걸 느낀 순간에. 내가 흘린 웃음소리, ‘하하’ 두 글자가 너무 낯설어 화들짝 놀란 순간에.

‘나 이우신…, 좋아하는구나.’

좋아해 봤자 소용없다는 걸 알았다. 욕심부려서도 안 된다는 걸 알았다. 아는데, 알기 때문에 욕심이 났다. 온 세상에 그 애만 뚜렷한데, 걔만 생각하면 사는 게 덜 지루한데, 블랙홀 구덩이에 빨려 들어간 기분이 쉽게 소생되는데, 욕심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좋아한다. 한 번 깨닫고 나니 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었다. 전처럼 참을 수가 없었다. 모르는 척 외면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막아 내지 못했다. 완전히 거부하지 못했다. 이찬희가 제멋대로 이우신을 친구로 만들고, 그를 내게 소개하고, 같이 밥을 먹자고 일방적으로 통보하고는, 점심시간 40분을 함께 보내게 만드는걸.

그 40분이 너무 즐거웠다. 달리 나와 나누는 대화는 없는데도, 눈만 마주쳐도 시선을 돌리기 바쁜데도, 내 감정을 들키지 않기 위해 혀에서 단내가 나도록 입을 닥치고만 있는데도. 그런데도 너무 재밌었다.

이우신이 재밌었다.

이우신은 이따금 혼자만의 생각에 골똘히 잠겨 있다가 폭소할 때가 있었다. 눈물 빠지게 ‘하하학’ 웃어 대다가도 금세 진정하는 게 버튼을 잘못 눌린 로봇 같았다.

그리고 보기와 달리 많이 먹는 편이었다. 점심 메뉴에 제육볶음이 나온 날엔 국그릇 가득 고기를 받아와 와구와구 먹어 치우고는 했다. 어쩌면 운동선수인 나보다도 많이 먹는 것 같았다. 강건우가 ‘어릴 때는 어떻게 했냐’고 묻자 ‘늘 배고팠다’고 대꾸했다. 이찬희가 ‘난 배불러서 못 먹겠어’라고 남겨 놓은 반찬도 더러워하는 법 없이 기꺼이 가져다가 먹어 치웠다.

또, 이우신은 아주 친절한 성격이었다. 주말에도 조심이를 챙겨 주느라 사비를 들여 간식까지 사다 먹일 정도였다. 인간인 나에게나 도도하지 개에게는 그렇게나 상냥할 수가 없었다. 나도 속으로는 개새끼인데 말이었다.

“거봐, 내 말이 맞지? 다 같이 잘 지내면 좋잖아.”

그런 내 변화를 이찬희가 못 알아챌 리 없었다.

1년에 두어 번 있을까 말까 한, 나를 놀릴 기회를 그 녀석이 놓칠 리가 없었다. ‘다음 수업 교실까지 바래다 달라’며 매달리기에 별수 없이 같이 들어선 화학실에서도, 이찬희는 이우신을 들먹이며 나를 놀렸다.

“…갑자기 무슨 변덕이 분 거야, 이찬희. 왜 나한테 이우신이랑 친하게 지내라 마라 하느냐고.”

실습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주먹에 힘을 주며, 내가 말했다. 그러자 이찬희가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려 댔다.

“그냥…. 우신이는 부모님도 이혼했고, 학교도 장학금으로 겨우 다니는 거 같고. 친구도 건우밖에 없잖아.”

“동정하는 거네.”

너 그런 거 하는 새끼 아니잖아. 어디서 구라를 쳐?

“그렇게 말하지 마, 태오야. 우신이가 들으면 얼마나 속상하겠어?”

아주 지랄한다. 언제부터 남의 기분 같은 걸 신경 썼다고….

입을 다물고 노려보는 것으로 나는 답을 대신했다. 그러자 전등이 반만 켜진 화학실이 단숨에 고요해졌다. 창문 밖에서 왁자지껄 떠들어 대는 남자애들의 환호성이 들려왔다.

뻔한 거짓말을 해 대는 이찬희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나는 알았다. 제대로 말하라고 채근, 부탁, 혹은 재촉을 해서는 효과가 좋지 못했다. 차라리 제풀에 지쳐 사실을 말할 때까지 가만히 기다리는 게 나았다.

물끄러미 노려보는 시선에 못 이겨, 이찬희가 천천히 표정을 고쳤다. 이내 새 부리 같은 입술이 슬그머니 비틀린다. 꺼내기 싫은 소리를 마지못해 뱉어야 할 때마다, 놈은 입술을 비틀고는 했다.

“우신이랑 태오 너랑… 둘이 많이 닮았어.”

“…왜. 이젠 나도 불쌍하냐?”

“아, 그런 게 아니고!”

이찬희는 내 팔뚝을 소리 나게 쳤다.

“너랑 우신이랑, 나한테 하는 말이 똑같단 말이야. 네가 나한테 했던 말을 걔가 똑같이 해. 네가 나를 쳐다보는 눈빛으로 걔가 나를 봐.”

나는 도무지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예쁘고 똑똑한 이우신은 나랑은 아주 달랐다. 이찬희의 간섭이 없었더라면 나는 졸업하는 날까지 이우신과 엮일 일이 없었을 거였다. 걔는 구름 위에서 노는 신선 여우였고 나는….

말이니 눈빛이니 이우신의 그 무어가 나와 비슷할 리 없었다.

그러고 보면 이찬희는 전에도… 뭐랬더라, 내가 이우신을 좋아하는 것 같아서 일부러 자리 마련한 거라느니 웅얼웅얼 변명을 늘어놓은 바 있었다.

‘입만 열면 거짓말이지.’

화학 실습 테이블에 반쯤 걸터앉은 채, 이찬희가 무어라 말하려 입을 열었다.

“그리고…. …아니, 아니다.”

저 혼자 뭔 생각을 하는지, 놈이 짧게 한숨 쉬었다.

“내가 이러는 게, 너는 싫어?”

이어지는 말들은 협박에 가까웠다.

“싫으면, 지금이라도 우신이한테 네가 말해. 나한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네가 그날 뭘 했었는지…. 어른들한테 말했던 것처럼, 이우신 앞에 가서 이야기해. 그리고 우리랑 엮이지 말라고 경고하든지 말든지 마음대로 해.”

아래턱에 통증이 일 정도로 힘이 들어갔다. 말아 쥔 주먹 안으로, 짧은 손톱이 살갗을 파고들었다. 머릿속은 펄펄 끓는데 심장은 느리게 뛰었다.

“그런데…, 태오야. 너 그 이야기 못 하잖아. 내가 너무 귀찮고 성가셨다고, 그래서 친구들한테 내 욕했다고, 전화도 귀찮아서 안 받았다고… 말 못 하잖아.”

온몸의 장기가 꿈틀꿈틀 움직대는 동작을 느낄 뿐 머릿속은 비어 버렸다. 몇 초간 그렇게 멍을 때렸다. 입을 다문 채 들은 말을 소화해 보려 노력하다가 대뜸,

“내가 왜 말을 못 해?”

소리치듯 되물었다.

지나치게 크게 나온 내 목소리에 이찬희보다도 내가 더 놀랐다. 눈을 크게 뜬 채 깜빡거리기만 하는데, 이찬희가 문과 창문을 힐끔 살폈다. 귀하디귀한 점심시간에, 복도 구석에 처박힌 화학 실습실을 미리 찾는 학생은 없었다.

“…아니야? 그럼 지금 말해 봐.”

이찬희가 낮게 속삭였다.

“응? 지금 나한테 말해 봐.”

이, …새끼가 지금 뭐라는 거지? …왜 나한테 그런 짓을 시키지? 나를 놀리려는 건가, …그런 거라면 왜 더 이상 웃지 않지?

“…….”

난 왜 그 쉬운 말을 못 하지…?

머릿속에 떠오르는 문장들이 있었다. 한 번, 두 번, 다섯 번, 열 번, 열다섯 번… 오가는 어른들의 면면에 대고 읊어 댄 말들이 있었다. 그건 마치 국기에 대한 경례와 같이, 뜻을 이해할 필요도 없이 입만 열면 술술 나오게끔 통째로 외운 구절이었다.

이제 와서 말 못 할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말아 쥔 주먹이 부들부들 떨렸다.

“…너는.”

묵묵히 숨을 고르기를 한참, 나는 다른 말을 꺼냈다.

“그러는 너는, 씨발 왜 말 못 하는데?”

말이 뇌가 아닌 혓바닥에서 튀어 나갔다.

“네 달 동안 어디서 무슨 짓 당했는지 왜 입 한 번 벙긋 못 하냐고, 이 새끼야.”

한국에 있는 시간보다 해외로 출장 가는 시간이 더 많은 이모부는 열외로 치더라도, 옆에서 지켜보기 무서울 정도로 이찬희를 아끼고 사랑하는 이모가 있었고 나보다도 이찬희의 건강을 더 신경 쓰는 듯 보이는 내 엄마가 있었다. 그러나 이찬희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건 결국 나였다. 너무 지겨워서 두드러기가 날 것 같고 가끔은 이찬희를 존나 팬 다음 나도 어디 차가운 강에 뛰어들고 싶을 때가 있을 정도였다.

그러니까 나는 알았다. 나만 알았다. 이찬희의 기억력은 아주 멀쩡하다는 걸. 어른들의 면면에 대고 읊고 싶지 않아 모르는 척 삼킬 뿐이라는 것도.

‘기억 상실’? 씨발 빛 좋은 개자두지. 그렇게 좋은 수가 있는 줄 내가 빡대가리라 미처 몰랐다. 나도 그냥, 이모든 엄마든 경찰이든 형사든지 간에 좆도 기억 안 난다고 둘러댔어야 하는 건데. 하여간 똑똑한 새끼….

쏟아 내고픈 비난이 속에서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어디 말해 봐, 너야말로 말을 해 보라고….

그러나 이찬희는 나보다 똑똑했다.

“그래서 우리가 친구인가 봐, 태오야.”

허탈하게 단순한 말로 놈은 내 기세를 꺾어 놓았다.

이찬희가 ‘하하’ 소리 내어 웃었다. 녀석의 가짜 웃음이 나는 싫었다. 알러지가 생기도록 익숙해진 저, 방실방실 웃어 대는 얼굴이, 뭐가 문제냐며 가볍게 어깨를 으쓱거리는 동작이, 아등바등 이 상황을 엎어 놓으려는 내 시도를 아무렇잖게 제압하는 주둥아리가.

싫으면서도, 사실 그 말이 맞다고 생각했다.

놈의 말마따나 이우신과 친하게… 지낸다 해서 나쁠 것은 없었다. 지금과 같이 현상 유지 정도에만 힘을 쓴다면, 이 정도는 괜찮을지도 몰랐다. 고민 없이, 단순하게, 하루 중 40분을 행복하게 보낼 수만 있으면. 이찬희도 그냥, 이우신과 친해지고 싶어 할 뿐이라고 생각해 보면….

그러나 늘 그렇듯 내가 틀렸다.

이찬희에게는 뜻밖에도 문제가 없었다. 변수는 이우신이었다.

씨발.

돌 깔린 흙바닥에 되는 대로 허리와 왼쪽 팔꿈치를 부딪쳤다. 두 명분의 체중이 주는 통증이 머릿속을 마비시켰다. 날아오는 축구공을 향해 제 몸을 던지는 이우신을 보자마자 반사적으로 움직인 결과였다. 빡 소리가 나도록 공을 맞은 이우신은 뒤로 나동그라졌고, 나는 그런 이우신을 두 팔로 힘껏 껴안은 채 그와 같이 나자빠졌다.

돌바닥에 세게 찍힌 팔꿈치에서 거센 통증이 밀려들었다. 팔뚝을 타고 찌르르 오른 통증에 중지 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아, 윽…’, 앓는 신음은 그러나 내가 아닌 이우신의 입에서 새어 나왔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쥔 채 이우신은 정신없이 내 몸 위에서 끙끙 앓았다. 얼얼한 팔의 통증도 잊고 나는 그를 먼저 살폈다.

삐질삐질 눈물을 한쪽 눈으로 흘리는 이우신은 혼미해 보였다. 하얗게 질린 손은 달달 떨며 얼굴 반쪽을 가리기 바빴고 이마와 뺨과 귓불은 온통 새빨갛게 붉었다. 꾹 다물린 입술에서 신음 소리와 우는소리가 번갈아 빠져나왔다.

나는 덩달아 넋이 빠질 것 같았다.

넘어지는 걸 껴안을 게 아니라 애초에 공을 쳐냈어야 하는 건데… 오늘따라 유독 하얀 목덜미를, 쳐다보느라 넋을 빼 버려서. 내가 멍청했다, 차라리 앞서 걷는 건데….

“눈 좀 보자.”

“아, 아파…, 아파….”

“눈 떠 봐.”

나는 이우신의 약점을 하나 알아차렸다. 보기보다, 아니 겉보기에도 별로 강인해 보이지는 않는 이우신은 역시나 고통에 약한 편이었다. 몸을 던져 이찬희를 밀쳐 내고 공을 맞아 놓고는 눈살을 움찔움찔 찡그리며 자꾸 울었다.

주사 맞은 어린애처럼 울어 대는 주제에,

“놔, 놔줘….”

정신이 들자마자 나부터 밀어내는 게 이우신다웠다.

“…이거 좀, 놔줘.”

사람을 쿠션으로 쓸 때는 언제고, 거의 몸통 박치기를 나한테 하셨구만 이제는 놔 달란다. 한쪽 눈만 겨우 뜬 주제에, 외눈으로도 내 시선을 피하고 어깨며 손을 연신 밀쳐 내기 바빴다.

어이가 없고 기가 막혀서라도 나는 이우신을 놔주고 싶지 않았다.

‘…나 변태인가?’

그런 생각이 불쑥 들었다. 왜… 좋은 거지? 허겁지겁 눈물을 훔쳐 가며 훌쩍훌쩍 우는 이우신을 보는 게…. 잠깐이지만 새하얀 범생이 가면 밑의 얼굴을 본 기분이 드는 게.

사내새끼가 오만상을 찡그리고 울어 대는데, 그게 왜 예쁘지?

“아, 뭐 하는데? 양호실부터 데려가야지.”

벙찐 내 정신을 깨운 건 강건우였다. 내 허벅다리 사이에 애처럼 안겨 있던 이우신도 정신이 들었는지 후다닥 자리에서 일어섰다. 잠깐이나마 색 돌던 세상이 꺼진 기분이었다.

놀람 반, 왠지 모를 허탈한 기분을 반 섞어 어리둥절한 와중에 나는 이찬희를 발견했다.

“…….”

바보처럼 들떴던 기분이 단숨에 가라앉았다. 목 잘린 귀신을 보면 이런 기분일까? 아니, 달려온 차에 치이더라도 이 기분과 맞먹을 순 없을 것이다.

이우신을 쳐다보는 이찬희의 얼굴을 나는, 알았다. 그 표정을 알았다.

‘엄마들처럼, 우리도 친구 하자.’

순진하게 말해 오던 어린 날의 그 얼굴. 열여덟 살 고등학생 이찬희가 아니라, 열세 살 덜떨어진 초딩 이찬희가 보이던 얼굴. 어릴 적 내가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 녀석을 돌봐 줄 적에, 호의에 숨겨진 지시 따위는 모르는 채 그저 감동에 겨워 하던, 두 눈동자에 그렁그렁한 눈물까지 만들어 내던… 그 표정.

소름이 끼쳐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무어라 중얼거리며 홀로 산책길을 내려가는 이우신의 뒤를 이찬희가 쫓았다. 나는 그런 이찬희를 쫓았다.

‘안 돼.’

이성보다 먼저 본능이 그렇게 말했다.

‘안 돼, 이우신은 안 돼. 이우신은….’

이우신은 그냥 내버려 둬.

외치고 싶은 말을 삼키자니 목구멍이 다 아팠다. 허둥지둥 다가붙는 내 동작은 마음과 다르게 굼떴다. 돌바닥에 나자빠졌던 탓에 걸음걸이가 평소보다 둔한 탓이었다. 내리막길을 달리기가 쉽지 않았다.

반면 이찬희는 신속하게 움직였다. 두 눈동자를 아이처럼 빛내면서, 녀석은 이우신의 옆으로 바짝 붙었다. 그러고는 무어라, 천진한 얼굴로 귓속말을 속삭였다.

이우신이 작게 대답하고는 떠났다. 그 말을 들어주려는 양, 이찬희가 즉각 강건우와 나를 향해 돌아섰다. 작은 두 손이 이내 우리의 팔뚝을 붙들어 쥐었다. 딱딱한 손톱이 느껴지도록 강한 손길이었다.

그러고는 속삭였다.

“따라오지 마. 지금 따라오면, 우신이한테 내가 다 말할 거야.”

어리둥절한 채 멈춰 선 강건우가 ‘뭐라는 거야’ 중얼거렸다. 반면, 나는 시커멓게 그을린 기분으로 다리를 멈춰 세웠다.

재차 강건우가 ‘뭘 말한다는 거냐’ 물어왔지만 입술이 떨어지질 않았다. 햇볕에 두 눈이 너무 시렸다. 산책로 돌길에 달라붙은 듯하던 발바닥이 앞으로 차마 움직이질 않았다. 대신에 나는 몸을 돌렸다. 뒤돌아 운동장으로 향했다.

점심 축구에 한창이던 유도부 녀석들이 따개비처럼 다닥다닥 모여 있고, 그 중심에는 펄펄 날뛰는 공주윤이 있었다. 가까이 다가서자마자 뜨거운 열기와 독한 땀 냄새가 내 피부를 찌르며 파고드는 듯했다.

“…공주윤, 진정해.”

나는 습관적으로 몸을 움직였다. 싸움인지 일방적인 폭행인지 모를 소란을 말리려는 놈들은 진작에 많았지만, 공주윤을 붙들고 뜯어낼 정도로 적극적인 사람은 없었다. 나는 공주윤의 허리춤에 팔을 끼워 넣으며 놈을 뒤로 끌어냈다.

씨발, 씨발… 욕설하며 나를 밀치려던 공주윤이 내 얼굴을 확인했다. 그러고는 분한 숨을 식식대며 소리쳤다.

“권태! 이 씨발 새끼가, 일부러 찼다고…, 이 개새끼가!”

“…그게 무슨 소리야?”

“너네 올라오는 거 보고 이 새끼가, 일부러, 보고 공을 찬 거라고!”

어안이 벙벙하다는 게 이런 느낌인가.

소란의 중심에서 나는 바닥에 나자빠진 놈을 내려다봤다. 교복 바지에는 흙과 발자국이 묻었고 하얀 티셔츠는 땀으로 젖은 놈은 벌써 여러 대를 세게 맞았는지 코피까지 흘리고 있었다. 미간을 찡그린 채 나는 놈의 눈 코 입을 천천히 훑어보았다.

누구더라…. 아는데, 이 얼굴.

‘…아.’

몇 초 늦게 내가 입을 열었다.

“곽성중. 진짜야?”

자초지종을 좀 묻겠다는데,

“미친 거 아냐? 일부러 그랬다고?”

“왜 그딴 짓을 해, 위험하게.”

이리저리 여러 목소리가 밀려들었다. 나를 대신하기라도 하려는 양 채근하는 놈들이 몹시 거추장스럽게 느껴졌다.

한쪽 눈썹을 올린 채 나는 곽성중을 내려다봤다.

내가 이름까지 기억하는, 유도부가 아닌 동급생은 아주 드물었다. 영 이상하고 기분 나쁜 새끼가 아니고서는 금붕어처럼 까먹고는 했다. 곽성중은 유도부 소속은 아니었으므로, 후자에 속했다. 작년 언젠가, 복도에서 놈에게 구백 원을 갚았던 기억이 났다.

‘그러고 보니 백 원을 덜 갚았네.’

그런 생각을 멍하니 떠올리는데,

“아니, 나는….”

곽성중이 느릿느릿 입을 열었다.

“그렇게 세게 맞을 줄 모르고, 피할 줄 알고…. 그, 공신이 아니라 이찬희한테 찬 건데….”

“…뭐?”

“그냥 좀 얄미워서 그랬어. 맨날 네 옆에 붙어있는 게 좀, 그…, 그러니까, 매일 네 훈련도 방해하…고, 그러는 게, 그…. 태, 태오… 너도 좀 귀찮다고 생각했잖아.”

이 새끼가 지금 뭐라고 하는 거지?

“내가?”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갑자기?

“내가? 내가 이찬희를?”

도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

“내가 언제.”

“궈, 권태오….”

이리저리 말 얹으며 구경하던 놈들이 내 어깨와 팔뚝을 잡고 들러붙었다. 큰 거머리 여럿에게 잡힌 기분이었다. 어깨를 털어 내고 주먹을 휘두르며 나는 놈들을 떼어 냈다. 그러면 녀석들은 다시금 내 몸을 잡고 뒤로, 뒤로 떼어 내려 애썼다.

“…내가 언제. 너한테. 걔를, 떼어 내 달라고, 그러지 않았잖아.”

곽성중의 티셔츠 어깨에서 찢어지는 소리가 난 뒤에야, 나는 내가 뭘 하고 있는지 알았다. 한 손으로 놈의 멱살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거듭 유도부 후배 놈들을 쳐내고 있었다.

“아니잖아? 내가 그런 게 아니잖아. 내가 걔 좀 떼 달라고, 귀찮다고, 짜증 난다고… 말한 적 없잖아.”

혼잣말이 잇새로 중얼중얼 새어 나갔다.

“야, 권태오, 왜 그래….”

말리는 놈의 어깨를 손등으로 밀어 쳐 낸 다음, 나는 곽성중을 내려다봤다. 얼이 빠진 얼굴 위로 땀줄기가 흐르고 있었다. 거머리들을 겨우 떼어 낸 왼손으로, 나는 놈의 뺨을 밀쳐 닦아 주었다.

“…근데 왜 나를 탓해? 그게 왜 내 잘못이야?”

“궈, 권태오!”

재차 뺨을 닦아 주려는데 ‘악’ 소리가 울려 퍼졌다. 제대로 맞기도 전에 곽성중이 비명부터 꽥 지른 것이었다. 놀란 후배 놈들이 우르르 달려들어 나를 뜯어말렸다.

“아, 아이, 형까지 진짜 왜 그래요! 축구 하다 가끔 그럴 수도 있죠!”

“형이 공주윤이랑 똑같이 굴 필요는 없잖아요, 네?”

언제부터 선수들끼리 이렇게 단합이 잘 됐었나 모르겠다. 3학년들까지 모여들어서는 싸움은 안 된다며 나를 뒤로, 뒤로 당겼다. 찢어 먹은 곽성중의 티셔츠가 손안에서 빠져나갔다.

대회도 나가야 되는데 이러면 어떡하냐, 넌 일류 선수잖아, 아하하… 너까지 그럴 건 없잖아… 공주윤이랑 넌 다르잖아… 그러고는 웃는다. 하나같이, 웃음으로 모든 것이 무마된다고 믿는 기색이다. 멍청한 거머리 새끼들, 온통 호구처럼 얼빠진 놈들, 부랄 딸랑대며 여기저기 붙는 것 말고는 삶에 고민이 없는 머저리들….

…너네는 뭐가 그렇게 재밌어? 뭐가 그렇게 씨발 재밌어? 뭐가 그렇게 웃기고 즐거운 거지?

나는 사는 게 좆같은데.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는데.

내가 어디서, 뭘 하는, 누구인지도 모르겠는데.

“너네가 선수지 깡패야? 그런 식으로 할 거면 당장 유도부에서 나가!”

정신을 차렸을 땐 성난 코치 앞이었다.

운동장에서 어영부영 엉켜 있던 죄로 거머리들과 호구들, 머저리들이 일렬로 섰다. 나는 행렬의 뒤에 앉은 채 수건으로 이마를 닦고 있었다. 주절주절 코치의 잔소리엔 끝이 없었고, 문제를 일으킨 장본인인 공주윤은 어느 틈에 도망친 건지 보이지도 않았다.

한참 이어지는 잔소리를 듣는데 머릿속이 천천히 맑아졌다.

‘눈… 많이 다쳤나.’

이우신이 걱정됐다. 그래서 자리에서 일어나, 2절 3절 길어지는 잔소리를 끊었다.

“전교 1등이에요.”

불쑥 말하자 코치가 눈살을 찌푸렸다.

“…공 맞은 애요. 교감 쌤이 이름도 아는 유명한 애예요. 3학기 내내 장학금 받았고 얼마 전엔 올 백 점 맞은…. 채홍관 운동장에서 사람이 다쳤으니까 유도부 일이죠. 공 찬 놈은 곽성중이라고, 자주 경기장 안까지 들락날락거리는 놈이에요. 걔, 유도부라고 착각하는 애들 천지일 걸요.”

주절주절 말하는 나를 보는 다른 놈들의 시선이 곱진 않았다. 그렇다고 밉지도 않았다. 온통, 신기해하는 기색이었다.

내가 생각해도 이런 내가 신기하긴 했다. 채홍관 안에서 한 학기 동안 해 온 말을 다 합쳐도 오늘 변명만큼 길진 않을 것이었다.

나라고 일부러 과묵하려 그런 것은 아니었다. 평소에는 딱히 할 말이 없어서 입을 열지 않은 것뿐이었다. 좀 지내다 보니 입 닥치고 사는 데에는 이점이 많았다.

우선, 허튼소리를 해 우습게 보일 일이 전혀 없었다.

둘째로, 무슨 말이든 긴 이야기를 시작하면 모두들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하…, 이 정신 빠진 놈들이. 운동하라고 모아 놨더니….”

그래서 코치도 잔소리를 멈췄다. 그 기회를 틈타 나는 허리를 곧게 세웠다.

“얼마나 다쳤는지, 공 맞은 애부터 확인하는 게 먼저일 것 같습니다. 제가 가서 보고 오겠습니다. 벌은 나중에 받을게요.”

“그래, 그래라…. 가는 김에 공주윤도 좀 잡아 오고.”

“네.”

다녀와서 처벌받을 줄 알라고 을러대는 소리를 뒤로한 채, 나는 채홍관을 혼자 빠져나왔다. 그러고는 곧장 학교 본관으로 뛰어갔다. 이미 수업이 시작된 복도는 텅 비어 있었다. 양호실의 상황도 그와 다르진 않았다.

양호 선생이 노트북을 두드리고 있을 뿐, 이우신은 없었다.

“어? 우신이? 아까 나갔는데…. 병원 다녀오라고 외출증 끊어 줬거든. 왜 그러니?”

선생의 말을 듣자마자 학교 밖으로 다시 나섰다. 교문 앞까지 달려갔지만 이우신은 보이지 않았고, 대신에 구름 색이 구질구질했다.

택시를 잡아타고는 근처에 있는 병원으로 가 달라고 했다. 창밖으로 지나는 사람들 가운데 이우신이 있는지 노려보는데, 내심 황당했다.

‘똑똑한 줄 알았더니 바보 아냐? 그 꼴을 하고서 혼자 병원에 갔다고…? 머리를 그렇게 세게 맞았는데. 길에서 쓰러지기라도 하면 어떡하려고.’

가장 가까운 병원 건널목에 내리자마자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곧장 편의점에 들어가 우산을 하나 샀다. 포장된 비닐을 뜯어내어 벗기고는 인도를 둘러보는데, 내내 찾던 이우신이 저 멀리 보였다. 인파 속에 섞였는데도, 나는 이우신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제대로 치료를 받고 나왔다기엔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았기에, 혹시 이우신이 늦장을 부리느라 나보다 늦게 병원에 도착한 걸까 잠깐 착각했다. 다시 살펴보니 이우신은 막 병원을 나서려는 듯 보였다. 아무래도 의사가 돌팔이 새끼라서 진료를 개발새발 대충 본 모양이었다. 손에는 약도 안 들었고 머리에는 붕대도 안 감은 채 이우신은, 구멍 뚫린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내 앞에선 세상 무심하고 덤덤하니 마네킹처럼 굴더니, 혼자 있는 이우신이 왠지 슬퍼 보였다.

‘…저 얼굴을 하고서 비를 맞겠다고?’

근방을 둘러보다가, 나는 테이크아웃 전용 카페 앞으로 갔다. 갓 나온 제 음료를 받는 대학생 옆으로 다가가서는 억지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저기요, 누나. 죄송한데 제 부탁 하나만 들어주실 수 있어요?”

그러자 낯선 누나가 눈을 크게 뜨고는 나를 올려다봤다. 무해함을 강조하느라 나는 억지웃음을 더욱 크게 지었다. 머쓱한 기분에 목덜미가 다 붉어졌다.

“…저기 병원 앞에 있는 애요, 제 친군데. 저랑 싸워서, 우산도 안 갖고 갔거든요. 이거 좀 전해 주시면 안 돼요? 제가 줬단 말은 하지 말고요.”

말을 마치자 낯선 누나가 ‘으음’ 하고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다행스럽게도 친절한 사람이었다. ‘그래’, 손쉽게 대답하더니 우산을 들고 곧장 병원 앞으로 향했다.

빗방울로 눈이 흐린 와중에 이우신이 보였다. 접이식 우산을 건네받더니, 울 것 같던 표정을 환하게 고친 이우신이… ‘감사합니다’, 입 모양으로 그렇게 말하는 것도 같았다. 사라진 낯선 누나의 뒷모습을 쳐다보는 듯하다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이내 우산을 펼쳤다.

이우신이 개찰구로 사라질 때까지 나는 가만히 서 있었다.

손날을 타고 빗물이 흘러내리기에 털어 내는데, 빗방울이 이상하게 분홍색이었다. 퉁퉁 부은 왼손을 들고 살핀 뒤에야 나는 돌바닥에 찧었던 팔꿈치가 찢어졌단 걸 알았다.

감각이라는 게 참 이상해서 다쳤다는 걸 알자마자 아프기 시작했다.

“아야야….”

터덜터덜 걷는데, 정수리를 적시는 비가 시원했다.

빗물에 쫄딱 젖어 속옷 안까지 축축해진 채 돌아온 채홍관은 텅 비어 있었다. 한 발 한 발 움직일 때마다 물이 쏟아지는 운동화에서 발을 빼내고, 축축한 양말도 껍질 뜯어내듯 벗어 던졌다. 맨발이 되어 고개를 들자 경기장 중앙에 혼자 서 있는 공주윤이 보였다.

공주윤은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멀리서도 눈빛의 레이저가 따갑게 느껴질 정도인데, 왼손에는 대걸레 자루를 잡은 채였다.

그제야 아차 싶었다. 다녀오면 처벌받을 줄 알라던 코치의 외침이 떠올랐다. 누구보다 빨리 도망쳤던 공주윤이, 그새 나보다 먼저 돌아와서 벌 청소를 하는 모양이었다.

터벅터벅 걸어가서 살펴보니 과연 양동이에는 대걸레 한 자루가 남아 있었다. 축축한 와이셔츠 밑단을 쥐고 물기를 쫙 짜낸 다음, 파란 대걸레 자루를 손에 들었다. 철퍽철퍽 소리 나게 세제 섞인 물을 터는데, 공주윤의 시선이 영 아니꼬웠다.

‘왜 저래, 여친한테 까였나.’

어디서 뺨이라도 맞고 온 듯한 표정으로, 공주윤이 대뜸 말했다.

“권태오. 나랑 너랑 둘이, 한 판만 붙자.”

나는 실소했다.

그도 그럴 게 당장 채홍관 안에는 심판을 봐 줄 사람이 없었다. 공주윤도 나도, 심판 없는 경기를 금지당한 상태였다. 공주윤은 불같은 성질 머리 때문이었고, 나는 왼손의 컨디션 문제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 채홍관에는 공주윤과 나, 둘뿐이었다. 심판이 없을 뿐만 아니라 관객도 없었다.

“그래.”

마침 온몸이 답답해서 미칠 지경인데 잘됐다.

빗물에 젖어 자꾸만 몸에 들러붙는 셔츠를 벗어 던졌다. 바지까지 갈아입긴 귀찮아서, 그대로 유도복 상의를 걸쳐 입고 끈을 묶었다. 공주윤도 티셔츠에 체육복 바지를 입은 채로 대충 도복만 걸쳐 보였다.

평소보다 더 성질이 더러워진 공주윤과, 평소보다 더 기분이 좆같아진 내가 뒤엉켰다. 왠지 화가 난 놈과, 덩달아 화가 난 채로…. 맞붙는 몸이 녀석이나 나나 뜨끈뜨끈했다.

웬일로 공주윤은 내가 거는 기술에도 제법 잘 버텼다. 상식적이고 신사적인 경기는 그러나 20초를 못 버텼다. 우린 미친놈들처럼 뒤로, 옆으로, 서로를 넘어뜨리고 어깨로 쳐대며 엉겨 붙었다. 분이 풀릴 때까지 힘주어 어깨를 밀고 다리를 걸고 머리로 어깨를 찧었다.

솔직히 말해 놈도 나도 유도를 하고 있질 않았다. 복식부터 동작까지 반칙 천국이었다.

먼저 거친 숨을 헉헉 뱉은 건 공주윤이었다. 작게 욕을 읊조리는 놈의 어깨를 붙들어 쥐고, 나는 그대로 공주윤을 엎어 쳤다.

거친 소리를 내며 젖은 경기장 바닥에 자빠진 공주윤은 그대로 뻗어 버렸다. 오르락내리락 벌게진 가슴을 움직이며 헐떡이는 놈에겐 일어날 의지가 없어 보였다. 나도 구태여 그를 짓누르지 않았다.

더운 숨을 몰아쉬며, 나는 공주윤의 옆에 풀썩 몸을 눕혔다. 경기장 바닥에 등이 닿느냐 마느냐를 구분할 심판 따위 어차피 없었다. 점수고 나발이고 놈도 나도 반칙패였다.

“하여간에… 허억… 권태오… 씨발아…, 한 번을 안 져 주지.”

주먹으로 ‘쿵’ 경기장 바닥을 치며 공주윤이 말했다. 같잖은 투정에 황당했다.

“내가 일부러 져 줬으면 좋겠냐?”

“아니, 미친놈아. 그딴 짓을 하면 내가 너 죽여 버리지.”

그러더니 공주윤이 킥킥 웃기 시작했다. 배를 들썩대며 낄낄거리는 놈을 따라, 나도 큭큭 웃었다.

“야.”

이내 공주윤이 벌떡 상체를 일으켰다. 그러고는 물었다.

“너랑 내가 뭐가 그렇게 다르냐?”

나는 눈을 끔벅거렸다. 찬 바닥에 대자로 누운 채 올려다보자니 울분에 찬 공주윤의 얼굴이 아주 잘 보였다. 슬렁슬렁 이목구비를 살피자 놈이 ‘눈 코 입 말고’라고 농담을 한 마디 덧붙였다.

피식 웃으며 나는 고개를 내저었다.

“별로 안 달라.”

꽉 묶었던 허리띠를 풀어 던졌다. 그제야 숨통이 좀 트였다.

“나도 너랑 똑같애. 맨날 존나 빡돌아 있고, 코치가 나한테 잔소리하면 ‘네가 뭘 알아, 씨발아’. 멍청한 놈들이 친한 척 들러붙으면 ‘저리 떨어져, 개새끼들아’…. 나도 속으로는 맨날 그래.”

“으하하, 씨발…, 방금 이걸 녹음했어야 하는 건데.”

아쉽다는 듯 공주윤이 입맛을 쩝 다셨다. ‘아’ 하고는 의미 없는 탄식도 재차 내질렀다. 속이 답답해 죽겠다는 표정을 한 놈을 나는 빤히 살폈다.

그리고 평소라면 하지 않을 오지랖을 부렸다.

“운동 열심히 해라.”

“엉?”

“열심히 하라고…. 빡친다고 장난치거나 그만두거나 하지 말고. 열심히 하고, 잘해. 그럼 아무도 뭐라고 못 해, 너한테.”

그에 공주윤의 눈썹이 꿈틀 움직였다. 지렁이처럼 눈썹을 구기더니 놈이 되물었다.

“그게 다야?”

“어. 그게 다야.”

친절하거나 다정하진 못한 태도로 읊조린 말이었다. 그래도 진심이었다. 아마도 내가 아니면 아무도 공주윤에게 이런 말은 해 주지 않을 거였다. 나와 같은 생존 기술을 가졌거나, 그럴 필요가 있는 유도부원을 나는 본 적이 없었다.

“아, 씨발 좆같은 거네.”

그에 대한 공주윤의 평가는 잔혹했다.

“그러게.”

그리고 맞는 말이었다.

“…씨발 좆같다.”

들은 말을 따라 읊조리며 나는 천장을 올려다봤다. 공주윤이 ‘팔이 왜 그러냐’며 팔꿈치 상처를 지적하기에 ‘영광의 상처’라고 대답해 주고는, 긴 한숨을 푹 내쉬었다.

비와 땀과 세제에 젖은 경기장 바닥에서는 미처 못 닦아 낸 누군가의 체취가 풍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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