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눈짓
Q. 지금 당장 가고 싶은 곳이 있다면?
A. 한국대학교 경영학과요.
Q. 꿈이 뭐예요?
A. 대기업 정직원이요.
언제 어디서 그 누가 묻는대도 내 대답은 같았다. 누군가는 갑갑하고 심심하다고 말하겠지만 나는 굳건했다.
장래희망이니 꿈이니 ‘어른이 되면’으로 시작하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난, 머리 위를 벽돌로 된 천장이 바짝 가로막고 있다고 느끼고는 했다. 내가 나이를 한 살 두 살 먹고, 학년이 한 학년 두 학년 오르고, 키가 1㎝ 2㎝ 자랄 때마다 그 천장은 내 정수리를 턱 하고 가로막았다.
내가 자리한 낮은 천장의 세계는 불친절했다. 주변을 둘러보면 택시 기사와 바람이 나 그의 차를 타고 떠나 버린 ①어머니, 맞바람 ③내연녀를 집에 들이고도 방랑벽을 못 고친 ②아버지가 있었다.
그럼, 여기서 문제.
위 예문에서 가장 책임감 있는 인물을 고르시오.(1점)
① 이혼장만 보내고는 죽었는지 살았는지 연락도 없는 어머니
② 몇 달에 한 번 집에 와서 ‘너 아직도 성인이 아니냐’는 아버지
③ 얼레벌레 우리 집에 눌러앉은 내연녀 아줌마
정답은 3번이었다. 두 달간 국내를 이리저리 떠돌아다닌 끝에 아버지가 데려온 그 아줌마는 타 지역 사람으로, 어느 집 가사 도우미로 일하던 중 아버지를 만났다고 했다. 아줌마는 아버지도 잘 들어오질 않는 우리 집에서, 2년 동안이나 나와 같이 살았다.
우리는 의외로 잘 지냈고 제법 평화로웠다. 순전히 아줌마의 착한 성미 덕이었다. 부인과 사별했다는 빨간 거짓말로 저를 속인 남자의 다 큰 자식이, 뭐가 예쁘다고 아줌마는 내게 밥을 해 줬고 내 교복을 다려 줬다. 사는 동네가 좁다 보니 마을 사람들이야 아줌마와 내가 모자가 아니란 걸 알았지만, 생판 모르는 남이 보면 엄마와 아들로 오해하고는 했다.
중학교 졸업식에도 아버지나 어머니가 아니라 그 아줌마가 꽃다발을 들고 찾아왔었다. 단둘이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외식하고, 나는 집으로 아줌마는 버스 터미널로 떠나야 했지만 말이다.
아버지의 내연녀를 칭하는 말은 따로 없는지라, 나는 끝까지 그 아줌마를 ‘옥혜 씨’라고 불렀었다.
“기숙사 가서도 잘 지내, 우신아. 무슨 일 생기면 꼭 연락하고. …이건 용돈.”
옥혜 씨랑은 그렇게 안녕했다. 건네받은 가방 안에는 용돈이라기엔 너무 큰돈이 들어 있었다. 나는 그 가방을 쉬이 비우지 못했다. 받았을 적 무게 그대로, 옷장 맨 위 칸에 숨겨 놓았다.
내 세계에 남은 어른은 다시, 아버지뿐이었다. 생각해 보면 내 가난의 원흉은 그의 성질머리와 방랑벽, 그리고 좆에 있는 듯했다. 성격이라도 좀 좋든지, 한 군데에서 끈덕지게 살기라도 해 보든지, 차라리 고자라서 여자나 덜 만나든지 하면 좋을 텐데. 아버지는 셋 중 하나도 똑바로 못 했다.
버러지
[명사] 곤충을 비롯하여 기생충과 같은 하등 동물을 통틀어 이르는 말.
사회는 내 아버지와 같은 사람을 그렇게 부른다.
나는 그와 같은 세계에 남고 싶지 않았다. 아버지 말마따나 머리 좋은 것 하나는 친엄마를 닮은 나였다. 어머니가 다른 남자를 찾아 도망친 것처럼, 나도 내 방식대로 독립하여 도망치고 싶었다.
그래서 채홍 고등학교를 노렸다. 매년 세 손가락 안으로만 꼽는다는 성적 장학생 자격에 맞추느라, 중학교 2학년 즈음부터 나는 놀아 본 기억이 없었다. 친구들에게 붙들려 노래방에 끌려가서도 의자에 등을 기대고 앉아 영단어를 외우곤 했었다. 나는 죽도록 열심히 공부했고, 죽기 일보 직전에야 채홍고에 입학했다.
부촌 채홍동에 위치한 채홍고는 사립 학교로, 교사진이 대단하다고 말할 수준으로 좋았다. 한국대학교 경영학과를 노리기에 가장 제격의 커리큘럼을 갖추었으며, 시설은 드라마 촬영지로 쓰일 규모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기숙사가 있었다. 성적 장학생은 기숙사비가 면제였다. 그러니까, 옥혜 씨도 없는 빈집에서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아버지 눈치를 보며 혼자 공부하지 않아도 된단 뜻이었다.
오래된 임대 아파트의 좁디좁은 집구석에서 빠져나와 기숙사로 들어갔을 때 나는 행복했다. 아주 오랜만에 해방감을 느꼈다. 룸메이트는 까칠한 놈이었지만 어차피 친구가 될 사이도 아니니 괜찮았고, 새집 증후군을 불러일으키는 페인트 냄새도 좋기만 했다.
그리고 조그마한 신발장에는 까만 장우산이 놓였다.
‘한국 중고등 유도 연맹’
뜬금없이 그 자리에 놓인 장우산은 붙박이가 되어 긴 시간 제자리를 지켰다. 오가며 그 우산을 볼 때마다 빚진 기분도 들고 도둑이 된 것도 같아서 찝찝했지만 별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도무지 권태오에게 말을 걸 수 없었다.
변명하자면 이러했다. 새 학교와 새 교복에 적응을 마친 뒤에도 나는 권태오와 대화할 일이 없었다. 반도 다르거니와 특별 활동 따위로도, 유도 특기생인 그와 나는 접점이 싹틀 조건을 갖추지 못했다.
그래도 가끔 복도에서 스쳐 지나갈 때가 있기는 했다. 그때마다 번번이 나는 권태오에게 말을 걸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문제는 내가 아니라 권태오에게 있었다.
“아, 햄! 태오햄! 함만, 함만 봐 달라고오.”
“권태! 2반 강지주 알아? 걔가 이거 너한테 전해 주라는데.”
“태오야, 너 원정 훈련 왜 신청 안 했어?”
녀석은 언제나 너무 많은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사춘기 남자애들은 야생 동물 같은 면이 있었다. 폭력적인 걸 좋아하고 몸에서는 홀애비 냄새가 나고 성질은 매몰차면서, 서열에 아주 민감했다. 그 속에서, 권태오는 먹이 사슬의 꼭대기에 앉은 놈이었다.
권태오로 말하자면 키가 컸고 근육질이었고, 돈도 많았다. 부유한 집에서 태어나서 하고 싶은 건 다 해 보며 살았다. 검도, 야구, 농구, 수상 스키를 거쳐 유도도 그렇게 시작한 거라고 했다. 얼굴도 잘생긴 축에 속했는데 소위 말하는 기생오라비 같은, 남자들이 열폭하는 류의 꽃미남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돌을 칼로 쳐서 깎은 것처럼 거칠고 남자다운 얼굴이었다.
남자애들은 그런 남자를, 어떤 의미에선 여자보다 더 좋아했다. 예쁜 여자애는 트로피 혹은 희롱의 대상이지만, 멋진 권태오는 존경스러운 알파 메일이자 선망의 대상이었다.
‘웃겨….’
떼로 몰려들어 권태오 주변을 감싼 동급생들을 보고 있자면 웃음이 났다. 쾌재도 실소도 아니었다. 그냥 허탈하게 웃겼다. 도저히 저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서, ‘저기 그때 우산 말이야’ 하고 입을 열고 싶지 않았다.
나로 말하자면 권태오와 어울릴 일도, 공통으로 아는 지인도, 다니는 모임에 발붙일 기회도 없는 변두리벽이었다. 다가가 말을 걸어 봐야 권태오는 검은 우산도 내 얼굴도 기억 못 할 터였다.
애초에 우산도 제 것이 아니라 유도부실 어디에 굴러다니던 단체 우산이지 싶었다. 돌려주겠다고 말을 걸어도 ‘그럼 유도부실에 가져다 놔’ 할지도 모를 일이다.
검은 상어 같은 권태오를 중심으로 이리 ‘와아’, 저리 ‘와아’ 하며 휩쓸리는 정어리 떼 남자애들을 나는 멀찍이서 구경했다.
수업 시작 5분 전을 알리는 예비 종이 칠 때에서야 내 머릿속의 해양 다큐멘터리도 끝이 났다. 복도 벽면에 거의 붙다시피 하며 우르르 모여든 인파를 비켜나는 동안, 나를 아는 체하는 사람은 없었다.
깍두기
[명사] 어느 쪽에도 끼지 못하는 사람이나 그런 신세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그게 나였다.
1학년의 초반부 한 달 내내 나는 깍두기 신세를 벗어나지 못했다. 고등학교 사회에서 ‘깍두기’의 의미는 다음과 같았다. 셔츠와 블레이저는 구입했지만 바지와 넥타이는 졸업한 선배 것을 물려받아 묘하게 천이 번질거리고, 외지 달동네에서 굴러들어 와 장학금과 정부 지원금을 받는, 교내에서 가장 가난한 집 애.
그런 나와 구태여 친해지려는 녀석은 없었다. 나 역시, 교내의 누구와도 친해지고 싶지 않았다.
1차 지필 고사 성적이 나온 뒤부터는 상황이 꽤나 변했다. 괜찮은 방향으로 진전이 있었다. 나는 전 과목 가운데 딱 한 문제를 틀렸다. 대뜸 등장한 미적분 응용문제 때문에 수학은 97점, 그래도 A+. 나머지는 전부 백 점, A+였다.
전교 1등으로 소문이 나자마자, 나를 괄시하던 눈빛들이 달라졌다.
“와, 이우신 뭐냐?”
“존나 조용해서 뭐 하는 놈인가 했는데…. 맞다! 너 입학할 때도 1등이었지?”
같은 반 남자애들이 얼레벌레 나를 인정한다는 투로 칭찬할 때면 나는 그들의 교복을 발가벗겨 농구대에 머리부터 거꾸로 집어넣는 상상을 했다. 관심을 갖고 돌봐주는 부모, 아낌없는 금전적 지원, 비 올 때면 누군가는 반드시 우산을 챙겨 주는 그런 인생을 사는 녀석들과 나는 달랐다. 녀석들이 아무리 ‘대단하다’며 나를 추켜세워도, 졸업하고 사회에 나가 보면 내가 선 자리는 녀석들과 가까스로 비등비등할까 말까 할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들의 칭찬에 웃어 주지 않았다. 대답 한 마디 하지 않는 방식으로, 머쓱하게 만들어 실없는 놈들을 쫓아냈다.
열일곱, 남자들의 세계는 좀 이상하게 돌아갔다. 친절하고 잘 웃고 예의 바른 친구는 호구라고 부르고 부려먹으면서, 무뚝뚝하고 무례하고 뻗대는 나는 좋게 보는 식이었다. 내 성적이 나빴거나 얼굴이 못생겼거나 키가 좀 작았더라면 단박에 괴롭힘을 당했겠지만, 나는 셋 중 무엇에도 해당하지 않았다.
나는 ‘신은 공평하다’는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 말은 대체로 아주 잘난 줄 알았던 사람에게 의외의 결함이 있을 때, 혹은 아주 못난 줄 알았던 사람에게 특출난 장기가 있을 때 쓰이기 때문이었다. 불균형을 또 다른 불균형성으로 맞추는 건 ‘공평’이 아니었다.
나라는 사람도 그러한 가짜 공평으로 눈 가린 채 아웅 하고 있었다. 어머니가 물려준 게 똑똑한 머리뿐이라 성적이 좋고, 아버지가 물려준 건 잘난 껍데기뿐이라 생긴 것만 말짱한 게 ‘이우신’이었다. 신이라는 존재가 나를 사회 밑바닥의 가난한 집에 태어나게 해 놓고는, 그렇게 땜빵질을 해 둔 셈이다.
열여섯 살 때인가, ‘넌 여차하면 여자한테 비루먹고 살아도 되겠다’는 험담을 들은 적이 있는데 기분이 썩 좋진 않았다. 내게 상판을 물려준 아버지의 인생이 딱 그랬기 때문이었다. 그 외에 평생 외모 지적 따위는 들어 본 적 없었다. 키도 뭐… 모자라진 않았다.
덕분에 같은 반 아이들도 나를 ‘자발적 아싸’라고 부를 뿐이지 시비를 걸어오거나 폭력적으로 굴지 않았다.
‘자발적 아웃사이더.’
그 말만큼 나 자신을 잘 표현하는 수식은 없을 거였다.
혼자 겉돌기를 선택한 내게 구태여 다가오는 사람은 없었다. 다른 애들과는, 우연찮게 길을 물어오는 경우에나 말을 섞을 따름이었다.
“저기, 정보관 가는 구름다리가 어느 쪽인지 알아?”
덥석 내 팔뚝을 잡고 물어오는 말에 나는 상대를 힐긋 살폈다. 키가 크고 몸이 마른 남자애가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중앙 계단 통해서 2층으로 가면 나와. 올라가자마자 정면.”
“그렇구나. 고마워.”
복도 한 방향을 턱짓하며 알려 주었는데도 남자애는 움직이지 않았다. 내 얼굴을 물끄러미 살피며 눈을 빛내더니, 반 발짝 가까이 다가와 섰다.
“너는 이름이 뭐야? 난….”
“이우신.”
얼른 대답한 다음 나는 그를 지나쳤다. 잰걸음으로 이동 수업 교실로 향하는 나를 잡는 손은 이제 없었다. 제 이름을 말할 기회를 놓친 낯선 애는 복도 저 멀리에, 한 손으로 목덜미를 문지르며 서 있을 뿐이었다.
같은 방식으로 말썽도 없고 소란도 없이 생활하던 나를, 기어코 제 옆구리에 끼워 넣은 게 공주윤이라는 남자애였다. 공주윤은 주윤이라는 이름보다 ‘프린세스 윤’이라는 별명으로 자주 불리던 날라리였다. 별명과는 다르게 몸집이 컸고, 눈빛이 호랑이 같았으며, 유도부 소속이었다. 운동을 좋아한다기보다 싸움을 좋아하는 듯 보였다.
물론, 그는 공부에는 소질이 없었다.
“지문도 다 못 읽겠어, 씨발! 시간 모자라. 속독이라는 건 대체 어떻게 하는 거냐?”
그런 말을 바락바락 외치면서 공주윤이 내게 왔다. 나는 내 턱 앞에 들이밀어진 문제집을 물끄러미 내려다봤다. 페이지 속 문제는 지난 학년도의 국어 지필 고사였는데, 마지막 페이지를 풀어 보지도 못해 전부 틀린 상태였다.
“…속독하는 게 아니라, 필요한 부분만 읽는 거야.”
놈과의 첫 대화였지만 나는 그런 건 신경 쓰지 않고 대답했다. 상대가 차리지 않는 예의를 일방적으로 중요시하는 건 피곤한 일이었다.
문제집을 받아 내 책상에 내리자, 공주윤은 내 앞자리 의자에 제 몸을 앉혔다. 그리고 말했다.
“짱세라가 문제부터 보래서 봤거든? 아, 그래도 다 못 풀겠어!”
내 시선이 힐끔 ‘장세라’의 자리로 향했다. 등을 돌린 채 앉아 있는 장세라는 학급 부회장으로, 내가 기억하기론 공부를 열심히 하는 모범생이었다. 몇 번인가 ‘아, 쫌 조용히 해!’ 하고 뛰어노는 남자애들에게 윽박지르는 모습을 본 적 있었다.
장세라의 짧은 단발머리 사이로 귀를 막은 이어폰이 언뜻 보이기에, 나는 마음 놓고 입을 열었다.
“문제 유형을 이해하고 시작하면 돼. 그럼 굳이 문제부터 훑어볼 필요가 없어. 지문에서 뭘 봐야 할지 이미 뻔하니까, 문제를 두 번씩 읽지 않아도 되는 거지.”
“말 한번 씨발 어렵게 하네.”
“…이해 못 하겠으면 그냥 외워. 자, 8번부터 10번까지 봐 봐. 시 유형인데… 시 문제에서 이렇게 지문이 여러 개 나오는 건 무조건 비교 문제가 있단 뜻이거든? 그러니까….”
공주윤에게 국어 지문 보는 법을 알려 주고 나니 쉬는 시간이 전부 지났다. 당연한 이야길 해 줬을 뿐인데 공주윤은 무척 감탄하면서, 나를 ‘공부의 신’이라고 칭송했다.
“나아는 바다 공주님, 당시인은 육지 공신님! 천생연분 결혼합시다악, 이야 이야 이야 이야!”
미친놈….
공주윤이 요란을 떠는 바람에 모든 반 애들이 깔깔 웃기 시작했다. 한동안은 그가 지은 요상한 별명에서 벗어나지 못하겠구나, 나는 직감했다. 늘 그렇듯 내 직감은 맞아떨어졌다.
이어 몇 주간 공주윤은 나를 들들 볶으며 귀찮게 굴어 댔다. 그러나 한 달도 채 채우지 못하고, 놈은 공부에 흥미를 완전히 잃어버렸다. 오른쪽 귀에 대고 말해 주면 왼쪽 귀로 줄줄 흘려버리는 무의미한 자투리 수업을 요구하는 대신에, 놈은 자신의 숙제를 대신 풀어 달라며 내게 통째로 넘기기 시작했다.
남을 시켜 사 오게 한 빵이나 우유맛 아이스크림 같은 걸 하나씩 건네면서,
“70점만 넘기게 해 주라! 엄마가 들들 볶아서 씨발 유도도 못 하게 생겼어. 나 좀 살려 줘!”
내 팔을 잡고 무겁게 매달려 댔다.
“아…. 무거워. 놔줘.”
“아아, 해 주라! 네가 그냥 대충 풀어 주면 되는데, 어? 제발 제발요!”
“쉬는 시간에 풀어 줄게, 이거 놔줘.”
나는 그런 공주윤에게 친절한 모범생이었다.
“악! 고마워, 공신! 진짜 땡큐!”
바보 같고 게으른 공주윤에게 감사한 건 오히려 나였다. 공주윤이 개똥 취급하는 그의 숙제들은 몸값 비싼 과외 선생이 손수 뽑아 준 수학 기출 문제였다. 그 덕분에 나는 팔자에도 없던, 입시 코디네이터가 짜낸 응용문제까지 풀어 볼 수 있었다.
한 번 두 번 받아 주다 보니 공주윤은 숙제가 생길 때마다 내게 시험지를 넘겼다.
나중에는,
“옛다, 공신이 좋아하는 기출문제!”
그런 말을 떵떵 외치면서 숙제가 아닌 문제집도 척척 보여 주었다. 공주윤네 어머니가 아셨더라면 기절을 했겠지만, 내가 걱정할 필요는 없어 보였다.
공주윤의 장점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가 넘겨 준 시험지를 다 풀고 검산하고 있자면, 장세라가 내게 오곤 했다.
“이우신. 그거 박쌤 시험지지?”
당연한 일이었다. 장세라는 공주윤과 입시 코디 동기였고, 공주윤의 숙제가 곧 그녀의 숙제였으므로.
공주윤의 숙제를 내가 대신 해 준다는 거야 안 들키는 게 이상한 일이었다. 똑똑한 장세라도 80점을 겨우 넘긴 고난도 미분 시험을 공주윤이 70점이나 맞는다는 게 애초에 말이 안 됐다. 아직 학교에선 배우지도 않은 걸, 공주윤이 무슨 수로 혼자 풀고 검산까지 적어 내겠는가.
공주윤은 머리를 세게 치면 ‘땡그랑’ 소리가 날 만한 놈이었다. 그리고 땡그랑 소리 나게 머리를 맞은 일도 몇 분 못 가 잊을 것이었다.
“응, 공주윤 거.”
내가 인정하며 시험지를 슬쩍 보여 주자,
“…너 혹시 19번 어떻게 풀었어?”
장세라는 내 앞자리에 앉았다. 번갈아 가며 자리를 뺏긴 앞자리 녀석이 ‘아’ 하고 거친 탄성을 내질렀지만, 무시당하고야 말았다.
비슷한 방식으로 장세라는 자주 내 앞자리, 혹은 옆자리를 채웠다. 그때마다 나는 그 애와 함께 수학 문제를 풀거나, 그 애가 못 푼 문제의 풀이를 알려 주었다. 그러면서 장세라와 나는 아주 조금 친해졌다.
가끔 장세라는 내게 여러 가지 질문을 건네고는 했다.
“우신아, 넌 국어가 좋아 수학이 좋아?”
“진로 선택 뭐 들을지 미리 정했어?”
“너 학원도 안 다닌다는 게 진짜야?”
그마저도 공부에 대한 이야기일 뿐, 개인사를 궁금해하는 법은 없었다.
“국어.”
“어.”
“응.”
내 대답은 늘 짧았다.
나는 그 거리감이 참 좋았다. 같이 밥을 먹거나 밖에서 만날 정도의 사이는 아니면서 필요한 책을 빌리거나 옆자리에 앉아 공부할 정도는 되는 사이.
내게는 딱, 그 정도의 관계만이 필요했다.
나의 열일곱은 그렇게 명료했다. 자발적 아웃사이더로 지내면서 나는 나 자신을 챙기기에도 바빴다. 그래서 심심할 새도 없었다. 바쁜 만큼 더웠던 여름 방학이 지나, 다가온 2학기도 매한가지였다.
여름 방학을 해외에서 보내고 돌아온 공주윤은 덩치가 더 커진 듯했고, 행동거지는 요란스러운 방향으로 업데이트됐다. 독일에서 사 온 여행 선물이랍시고 가죽 노트와 만년필을 건네 올 때는 황당해서 실소가 났다.
‘쉬워서 좋겠다….’
그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 하기 싫은 숙제를 떠넘기고 별명을 붙여 부르는 것만으로도 친구를 사귀었다고 생각하는 공주윤이 못내 부럽기도 했다. 공주윤이 특이하단 이야기는 아니었다. 내 또래 남자애들은 대체로 그처럼 심플했기 때문이었다. 특이한 건 오히려 그들과는 다른 나였다.
“선물 고마워. 그런데… 노트만 받을게.”
한눈에 비싸 보이는 만년필을 돌려준 다음 나는 생각했다, ‘이걸로 빚은 없는 거’라고. 대신 숙제를 해 준 데에 대한 값으로는 노트 하나면 충분하며, 그 밖의 무얼 받는 건 불필요한 일이라고. 그 밖의 무어가 되는 것 역시, 피곤한 일이라고.
초가을, 날씨가 아직 여름을 벗어나지 못한 오후에 공주윤이 대뜸 전화해서는, 자기 숙제를 꼭 좀 가져다 달라고 애원해 댄 일이 있었다. 내일인 줄 알았던 과외 날짜가 오늘 저녁이라며 외치는 목소리가 애잔했다.
―어? 꽁신! 제발, 제발, 어? 지금 가지고 바로 와. 나중에 형님이 담배든 술이든 다 사 줄게!
그 말에 나는 웃었다.
“그런 건 필요 없어. 아무튼 알겠어, 지금 가져갈게.”
전화를 끊자마자 공주윤의 숙제를 챙겼다. 녀석의 수준에 맞게, 어려운 문제는 일부러 틀리게 풀어 둔 상태였다.
유도부실이 위치한 체육 시설은 ‘채홍관’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는데, 학교 이름을 따다 붙인 만큼이나 번지르르한 건물이었다. 듣기로는, 작년까지 예능 촬영장으로 대여해 줬다고도 했다.
채홍고 유도부는 서울에서 제일 유명했다. 국가 대표가 모교라며 종종 훈련을 보러 와서 후배들을 챙길 정도였다. 그러니 학교에서도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기숙사 안에도 유도부 학생들이 머무르는 층이 따로 있었고, 그 층이 제일 시끄러웠다.
커다란 채홍관의 문을 밀고 들어가자 바깥보다 후끈한 공기가 나를 덮쳤다. 가장 먼저 땀 냄새가 코를 쑤셨다. 검지를 눕혀 콧구멍을 살짝 가리고 나는 벽에 붙어 걸었다. 열 발짝도 채우지 않아 더는 아무 냄새도 나지 않았다. 벌써 코가 마비된 모양이었다.
손을 내리고 주변을 살피자 멀찍이, 매트가 깔린 유도 경기장이 보였다. 열댓 명의 소년들이 키와 덩치를 자랑하며 뭉쳐 앉아 있었다. 너른 등짝을 덮은 남색 도복에 ‘채홍’ 두 글자가 백색으로 새겨져 있었다. 그 가운데에서, 공주윤이 동급생 선수와 겨루기에 한창이었다.
유도에 대해선 잘 몰랐지만, 어느 스포츠든 경기 도중 방해해선 안 된다는 것쯤은 알았다. 나는 경기장이 내려다보이는 계단식 관중석으로 향했다. 조용히 두 번째 계단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가방을 열었다.
시험지를 꺼내서 공주윤에게 줄 것과 내가 검산해 볼 심산으로 떠 둔 복사본을 따로 나눴고, 공주윤 것만 입시 코디의 이니셜이 박힌 가죽 파일에 끼워 넣었다.
정리를 마치고 고개를 들자 어느새 공주윤의 얼굴은 뒤통수가 되어 있었다. 대신에 그와 자리를 맞바꾼 상대의 얼굴이 정면으로 보였다. 새카만 머리칼은 못 본 사이 아주 약간 긴 듯했고, 각진 이마 밑으로 굵은 눈썹이 구겨진 채였다.
그는 씨름하는 선수처럼 공주윤과 서로 허리춤을 쥐고서 멈춰 있었는데, 무얼 재 보는 듯 생각에 잠긴 눈동자는 허공을 담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멍하니, 열에 올라 힘겨루기에 집중하는 이의 얼굴을 바라봤다. 잠깐이나마 잊고 지낸 얼굴이, 뭐 얼마나 아는 사이라고 보자마자 반가운지 모를 일이었다.
‘…권태오.’
미처 피할 겨를도 없이, 그의 눈동자가 허공이 아닌 나를 직시했다. 아주 미세한 차이였지만 검은 눈동자 안에, 나를 알아보기라도 한 것처럼 이채가 서렸다.
그러고는 순식간에 상황이 변했다. 엉킨 채로 서로 팔뚝을 밀어내며 버티던 두 사람의 팔이 홱 풀리더니 공주윤의 도복 어깨가 권태오의 손에 잡혔고,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공주윤의 커다란 몸이 날아가듯 허공으로 붕 떴다. 그대로, 그는 공주윤을 엎어 쳤다.
경기장 바닥으로 공주윤이 나가떨어지는 소리가 ‘쿵’ 울렸다.
“헉!”
놀라 소리를 내는 바람에 시선들이 내게 몰렸다. 삼삼오오 둘러앉아 친선 경기를 관전하던 선수들은 그러려니 하며 다시 고개를 돌렸지만, 경기장 중앙에서 숨 고르며 선 권태오의 시선은 가시질 않았다.
두 눈이 마주친 순간, 당황한 내 어깨가 움찔했다.
“어, 공신! 벌써 왔어?”
발라당 뒤로 쓰러진 채, 공주윤이 고개를 쳐들고 나를 향해 소리쳤다. 녀석은 숨을 헐떡헐떡 내쉬면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유도부 코치가 한 손을 들고 신호를 보냈다. 상황으로 미루어 보아 경기 종료를 알리는 듯했다. 공주윤과 권태오가 서로를 향해 대충 고개를 주억거리며 인사했다.
그 즉시, 공주윤이 내게로 달려왔다.
“가져왔어? 내 숙제?”
“…….”
그렇게 말하니 내가 놈의 똘마니라도 된 것 같았다. 따지자면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권태오에게 들릴 수준으로 쩌렁쩌렁 알릴 소식은 아니라고 생각됐다.
“아, 작게 말해.”
“왜? 하하하, 경기 봤다고 쫄았냐?”
그러더니 공주윤이 내 머리에 제 오른손을 올리고, 머리칼을 탈탈 털어 내기 시작했다. 놈의 거친 손길에 머리가 좌우로 흔들거렸지만 나는 반항하지 않았다. 잔뜩 흥분한 기운이 공주윤의 피부 위로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더운 기운과 체취에 숨이 다 막혔다.
나는 공주윤의 일방적인 스킨십이 끝나길 기다렸다. 그리고, 녀석에게 파일을 넘겼다.
“자. 네 거.”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서자 공주윤이 내 어깨를 잡았다.
“왜? 온 김에 좀 구경하다 가지?”
“…그래도 돼?”
그럼 그럴까? 마음이 싱숭생숭 흔들렸다. 당장은 바쁘지도 않았으며 살면서 운동 경기를 가까이서 본 적이 한 번도 없어서, 내심 궁금하기도 했다. 조금 전 짧게 보았을 뿐이지만 친선 경기조차 선수들의 집중력이며 분위기가 장난이 아니었다.
특히나 몰두하는 권태오가 무서워 보이기도, 멋있어 보이기도 했다.
힐긋, 그쪽으로 시선을 들었다가 나는 제 허리춤에 주먹을 댄 권태오를 발견했다. 순간 나도 모르게 움츠러들었다. 권태오는 아직도 내 쪽을 보고 있었는데 어딘지, 화난 듯한 얼굴이었다. 원체 인상이 무뚝뚝하긴 했지만, 경기를 갓 마친 그는 흥분한 황소 같았다. 유도복 사이로 보이는 가슴팍이 붉어진 채 오르락내리락 움직이고 있었다.
그 바람에 나는 조금 혼미해졌다. 혹시 내가 아까, 그의 경기를 방해했나? 나 때문에 집중력이 깨졌던가? 고민해 보았지만 나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아니야, 나는 가 볼게.”
어깨에 놓인 공주윤의 손을 대충 풀어내고, 나는 계단 자리에서 내려섰다. 공주윤의 고개가 절로 위에서, 아래로 움직였다.
지난달 신체검사를 하며 쟀을 때 내 키가 177㎝였는데, 공주윤과 마주 서니 줄어들기라도 한 듯 작게 느껴졌다. 가방을 고쳐 메는 나를 향해 공주윤은 입맛을 쩝 다셨다.
“아, 왜? 형님 이기는 거 보고 가지, 쪽팔리게 하필 권태랑 붙을 때 와 가지고….”
“너 이기는 걸 내가 왜 봐?”
“쫌 전까지는 세 판 연속 이기고 있어서 부른 거거든?”
하여간에 공주윤 이 정신 빠진 놈이. 급하대서 부랴부랴 제 숙제를 갖다줬더니만… 폼 재려고 부른 거였나 보다. 허세를 부릴 거면 여자애들 앞에서나 부릴 것이지. 도무지, 나는 그의 심리를 알다가도 모르겠다.
“아무튼 나는 가 볼게. 73점이야, 그거.”
그대로 채홍관을 걸어 나갔다. 뒤 한 번 돌아보지 않고 잰걸음으로 움직이면서 머릿속으로는, 공주윤의 도복 어깨를 와락 움켜쥐던 커다란 손을 기억했다.
나는 반듯하게 걸었다. 권태오의 그 커다란 팔이 내 허리를 감고, 재빠른 발이 내 정강이에 걸리고, 그대로 내 몸을 내팽개치는 상상을 하면서. 크고 퉁퉁한 공주윤이 날아갈 정도니까 나는 아마 맥도 못 출 터였다. 목이 꺾여서 죽을 수도 있을 것 같았고, 못해도 어깨가 부러질 것 같았다.
그러고는 머릿속이 텅 비었다. 그 외의 무엇도 나는 권태오를 주어로 한 문장을 지어낼 수 없었다. 그와 나는 딱 그 정도 사이였다. 그와 내가 무얼 한다는 가상의 문장조차 꾸려 낼 수 없는….
‘딱 그 정도 사이.’
그래야만 했다. 성적을 제외한 내 모든 요소와 어울리지 않는 부촌의 사립 채홍고에 다니려면, 나는 마지노선을 지켜야 했다.
‘문제 유형을 이해하고 시작하면 돼. 그럼 굳이 문제부터 훑어볼 필요가 없어. 지문에서 뭘 봐야 할지 이미 뻔하니까….’
아는 체하며 뱉었던 조언이 다시 내게로 돌아왔다. 나는 내 앞으로 놓인 문제들의 유형을 안다. 닥쳐오는 일들 가운데 무어에 집중해야 하고 무얼 버려야 하는지도, 그러니까 벌써 안다.
나를 노려보던, 아마 본인은 달리 생각도 의도도 없었을 권태오의 눈짓에 의미 부여를 해서는 안 됐다. 그 억센 손이며 큰 발이며 벌어진 도복 사이로 보이던 가슴팍, 핏줄 오른 목덜미에 대해서는 집중하지 말아야 했다. 앞으로 닥쳐올 입시를 준비하기에도 바쁜데, 쓸데없이 두근거리는 심장 소리를 찬찬히 살필 이유는 없었다. 남자를 좋아하는 게이가 될 필요도, 여유도 없었다.
3월의 폭우도 돌려주지 못한 우산도 낯설면서 친숙한 권태오도… 나는 다 무시하기로 했다. 그러기만 하면, 내 생활은 잔잔할 수 있었다. 그저 그런 깍두기로 버티면서, 누구와 사귀지도 싸우지도 않고, 성적을 잘 유지해서 장학금을 계속 받고, 한국대학교에 진학하기만 하면.
그럼 끝.
고등학교는 내게 어떤 추억도 유의미한 상처도 남기지 않을 것이었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2학년의 초입을 맞닥뜨리기 전까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