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권-세상이 좁아지고 있다 (1/16)

세상이 좁아지고 있다

열일곱 살의 봄을 맞이하기까지 내게는 손꼽아 기다려 본 날이 없었다. 어제에서 오늘로, 오늘에서 내일로 가는 시간들을 나는 그저 버티면서 살았다. 그래서 3월 3일은 몹시 유별난 날이었다. 3월 3일은, 시인의 말을 인용하자면 ‘죽은 나무뿌리’ 같은 집구석에서 ‘부끄러운 바다’ 1)로 해방되는 출옥일이자, 채홍 고등학교 기숙사 입사일이었다.

입사식 집합 시간은 느지막한 오후였다. 기숙사에 발을 디디기에 앞서 신입생 전원이 강당에 집합했다. 어중이떠중이 모여든 백여 명의 학생들 사이에 섞여, 나는 기숙사 규칙이며 설명을 들었다. 그런데 교장 선생의 훈화가 한 마디 두 마디 길어지기 시작하더니 한 시간을 꼬박 채웠다. 긴장한 얼굴로 서로를 둘러보던 신입생들은 캐리어나 짐 가방을 깔고 앉았다. 나도 그들과 다르지 않았다.

하품을 열한 번쯤 하고 단어장 속 경제 영단어를 서른 개 외웠을 때에서야 입사 연설이 끝났다. 인파에 이리저리 밀리며 우르르 강당을 빠져나가려는데,

“어, 비 온다!”

놀란 듯한 외침이 들려왔다.

운치 있는 봄비는 나에게만 나쁜 소식인 듯했다. 우르르 몰려든 동갑내기 소년들은 욕을 하거나 싫은 듯이 소리를 지르면서도 웃는 낯이었다. 우산을 꺼내거나 휴대폰을 두드리거나, 반응은 두 가지였다.

‘아….’

우두커니 멈춰 선 건 나뿐이었다.

강당 밖으로 나서는 행렬이 점차 느려지더니, 우산을 펼치는 소리가 파앙 파앙 들려왔다. 무리의 맨 끝에 덩그러니 서서 나는 그 ‘비’라는 게 가벼운 여우비였으면 바랐다. 그러나 준비성 좋은 녀석들이며 부모와 함께인 놈들이 우산을 쓰거나 차를 타고 우르르 빠져나간 자리에는, 안개라고 느껴질 만치 공기를 빽빽하게 채우는 폭우가 쏟아지고 있었다.

검정색 캐리어를 유리문에 기대어 놓고 나는 비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 냄새를 맡았다. 축축한 비 냄새에 섞여 운동장 흙냄새가 났고 봄의 풀 냄새가 났다.

나는 강당 뒤쪽 쪽문으로 캐리어를 끌었다. 강당에 남아 부모인지 친구인지에게 전화하는 녀석들이 너무 시끄러워서였다. 후문에서 본다 한들 비 내리는 풍경이 달라지진 않겠지만, 요란스러운 무리 옆에 눈곱처럼 붙어 있는 것보다야 혼자가 나았다.

딱 한 발짝의 폭만큼만 비를 가려 주는 가림막 밑에서 올려다볼 때, 하늘은 회색이었다.

‘조금 기다리면 그치려나?’

평소 같았더라면 눈 딱 감고 5분 동안 달려서 기숙사로 향했을 텐데, 그러기엔 천으로 된 캐리어가 몽땅 젖을 게 염려됐다. 캐리어 안에는 내일부터 입어야 할 교복부터 잠옷과 책과 필기 노트들, 오래된 노트북, 베개 커버, 그리고 슬리퍼 두 개가 들어 있었다.

결국 짐짝 위에 엉덩이를 대고 앉았다. 뛰쳐나갈 의지를 상실하고 구경이나 하자니 비 내리는 학교 풍경이 제법 예뻤다. 근방 학교들관 견줄 수 없을 만큼 커다란 운동장이 훤했고, 그 너머로 보이는 본관 건물은 깨끗하니 높이도 폭도 길쭉길쭉했다. 그 뒤로, 내가 향해야 할 기숙사 건물의 꼭대기가 보였다.

20분쯤 멍하니 있었을까. 하늘이 컴컴해진 탓에 주변은 어두워지고 상대적으로 불 켜진 기숙사 건물이 환해지기 시작했다. 비는 그칠 생각을 하지 않았다.

10분쯤 더 지났을 때는 조금 전 외웠던 영단어를 복습했다. 거칠게 쏟아지는 빗소리가 귀에 거슬리기 시작했다.

의미 없는 기다림에 5분을 보탠 뒤에야 노을이 질 시간이란 걸 알았다. 그러나 주황색으로 번져야 할 햇볕은 먹구름에 가려져서 보이지 않았다. 지독한 비가 결국 밤까지 내리겠구나 생각됐다.

‘그냥 맞고 가자.’

늦게 들어온 주제에 비까지 맞고 옷부터 빨래하는 나를, 룸메이트가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았으면 좋겠는데. 예를 들면 이런 날 우산도 안 챙기고 나온 칠칠맞은 애라든가, 이 동네에 친구 한 명 없는 외톨이라든가, 챙겨 주는 부모도 없는 놈이라든가….

커다란 손이 내 어깨를 친 건 그때였다. 팍 소리가 날 만큼 거친 손길에 놀라서 뒤를 돌아보자, 열쇠 뭉치를 손에 든 키 큰 남자가 보였다. 그가 언제 다가왔는지 나는 알 수 없었다. 뒤늦게 둘러본 강당은 텅 비어 있었고 사람이라고는 그뿐이었다.

내 시선이 그의 어깨에 닿았다가 얼굴로 올라갔다. 키 차이 때문에 고개가 절로 젖혀졌다.

‘되게… 크다.’

반사적으로 몸을 문 옆으로 비키면서 나는 주춤거렸다. 반 발짝만 더 움직였다간 빗물이 쏟아지는 흙바닥이었다. 입을 벌리고 멍하니 고개를 든 나를, 그는 눈동자만 움직여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눈길에 나는 부끄럽게도 압도당했다.

“아…, 죄송합니다. 문 닫으려고요?”

그러고는 아주 조금 더 물러섰다.

“…….”

낯선 남자는 아무 말 없이 내 얼굴을 노려보기만 했다. 사람 주눅 들게 만들기 충분할 정도로 차가운 눈길이었다. 대번에 어색하고 뻣뻣해진 분위기에 나는 조심스럽게 그를 살폈다.

그는 새카만 머리카락이 무지 짧았고 턱이 딱딱해 보였다. 해에 그을린 듯 진한 피부며 뚜렷한 눈썹에 푹 꺼진 눈동자까지, 모든 게 나보다 짙어서 콩테로 그린 그림 같았다. 키가 크고 어깨는 넓고 온몸이 굵직한데, 둔하다기보다 무섭다는 말이 어울리는 외모였다. 무엇보다도 귀 모양이 이상했다. 귓바퀴 굴곡이 거의 없다시피 뭉개져서는, 만지면 말랑하기는커녕 딱딱할 것 같았다. 하필 까만 티셔츠에 까만 트레이닝 바지 차림새여서, 더 위협적이었다.

그러나 눈동자에서 어린 티가 났다. 언뜻 사나워 보이고 기세등등한 눈빛에서 나는 정제되지 않은 소년의 기운을 느꼈다.

‘땀 냄새….’

그는 비켜선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쪽문을 닫으며 강당 안으로 다시 들어갔다. 대번에 시야를 차단당한 탓에 당황해하는데, 안쪽에서 문을 잠그는 소리까지 들려왔다.

“…….”

나는 좁다란 가림막 아래에 혼자 남았다.

그제야 강당 안을 걷는 발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창을 통해 밖으로 비치며 어슴푸레한 공기를 가르던 강당의 전등불이 하나둘씩 꺼졌다. 강당 문을 닫으러 온 선배…일까? 나는 그의 정체를 추측해 보았다.

‘그럼 그렇다고 말로 하지….’

세게 맞은 탓에 저릿한 어깨를 문지르면서 닫힌 철문에 등을 기댔다. 손안에서 구겨진 단어장을 주머니에 집어넣고 나니 저 멀리서 퉁 소리가 났다. 내가 선 곳과 정확히 반대편, 강당의 정문을 닫는 소리였다.

더는 이 자리에서 비가 그치길 기다릴 수 없게 됐다. 외투를 벗어 캐리어에 두르면서, 나는 빗길을 가로지를 준비를 했다.

“야.”

그리고 낮은 목소리가 바람처럼 확 닥쳐왔다.

“…어?”

놀라 고개를 들자 조금 전 보았던 남자가 빗길 안에 서 있었다. 새카만 우산을 쓰고 빈손에는 열쇠 꾸러미를 쥔 채였다. 그 짧은 새에 강당 정문에서 쪽문까지, 건물을 둘러 걸어왔다는 게 놀라웠다.

“누구 기다리냐?”

언성은 크고, 어조는 낮은데, 태도는 투박하기 짝이 없었다. 내 두 눈이 절로 커졌다.

“아, 어… 어. 나는 우산… 이따, 어머니가 가지고 오기로 해서….”

존대를 해야 하나, 반말을 해야 하나, 고민한 끝에 나는 모호하게 어미를 흐렸다.

“그래?”

“응.”

아니. 거짓말이었다.

‘놀래라. 왜 말을 걸고 난리야….’

그 바람에 상황이 좀 민망하게 됐다. 닫힌 문에 붙어 선 채 나는 그가 떠나기를 기다렸다. 나도 모르게 거짓말을 해 버렸는데, 그래 놓고 비를 가르면서 뛰어가면 너무 없어 보일 게 아닌가.

그런데 그는 나를 보며 장승처럼 서 있다가, 대뜸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제 우산을 접었다. 좁은 가림막 안으로 그가 들어오자 그림자가 내 얼굴을 덮었다.

대뜸, 그가 우산을 내밀었다.

“이거 쓰고 가라. 좀 있음 운동장 문까지 닫히니까.”

무뚝뚝하게 건네는 말은 친절했다. 모순이 주는 위화감에 나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와 나 사이 거리가 너무 가까웠고, 솔직히 말해 이렇게 큰 사람은 처음 맞닥뜨리는 거라 좀 무서웠다.

대답 없이 주변만 살피고 있자, 그가 다시 강조해 말했다.

“오늘 7시 반에 소등된다고, 학교.”

“아, 아… 그래?”

“어.”

재차, 장우산이 내게로 뻗쳐 왔다. 맹렬하다고 표현해도 좋을 동작에 나는 떠밀리다시피 그 우산을 받아 들었다. 타인의 온도가 아직 남아 있어 손잡이 표면이 뜨끈했다.

“어, 고맙긴 한데 나한테 이걸 줘 버리면… 그쪽, 아니, …너는 어떡하려고?”

“난 저 밖에 차 있어.”

“아….”

말을 마치자마자 그가 고개를 추켜든 채 턱을 까딱였다. 턱짓을 좇아 시선을 드니 컴컴해져 가는 하늘이 보였다. 봄의 초입인 3월인데, 해가 지는 속도는 아직 겨울이었다.

‘저기, 그럼 너 차 타는 데까지는 같이 쓰고 가자.’

그렇게 말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내가 입을 열어 ‘저기’를 말하기도 전에, 낯선 상대는 이미 운동장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쏟아지는 빗방울을 고스란히 맞으며 뛰는 속도가 무척 빨랐다.

황당함 반, 놀람 반으로 나는 얼굴이 더워졌다. 어깨부터 빠른 속도로 젖어 드는 커다란 뒷모습을 멍하니 보다가, 손에 들린 우산을 펼쳤다.

“…….”

까만 장우산은 직접 펴고 보니 엄청나게 컸다. 순간 파라솔인가 싶을 정도였다. 캐리어 속 짐을 지켜 내면서 기숙사로 오르기에 무리 없이 넉넉한 크기였다.

두 손으로 쥔 손잡이를 좌로 돌돌 돌리자 우산이 나를 중심으로 자전했다. 혹시 어디가 망가져서, 버린다 치고 주고 간 건 아닐까 싶어 살을 확인하려던 건데, 한 면에 코팅된 하얀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한국 중고등 유도 연맹’

그제야 그 커다란 덩치며 울룩불룩하던 팔 근육, 봄 내음보다 짙게 풍기던 땀 냄새가 이해됐다. 어른인지 선배인지 깡패인지 알 수 없게 인상이 무섭더라니, 유도부 선수였구나 싶었다.

‘고맙다고 인사도 못 했네….’

그의 이름이 권태오라는 건 나중에야 알았다.

권태오는 3월 3일의 폭우와 같아서, 내가 기다린다고 해서 그치는 존재가 아니었다. 권태오를 주어로 한 많은 말들은, 내가 알고자 바란 모습부터 몰라도 좋았을 비밀까지 두서없이 닥쳐오곤 했다.

권태오는 나와 동갑이었고, 특별 전형으로 입학한 신입생 동기였다. 우리의 공통점은 거기까지였다. 그 애는 부유한 집안의 외동아들이자 유도계의 신예로 받들어지는 특기생이었지만, 나는 성적을 유지하지 못하면 이 비싼 학교에 다닐 수조차 없는 가난한 장학생이었다.

그 애에게 우산을 돌려주지 못하는 시간은 본의 아니게 길어졌다. 그 긴 나날 내내, 나는 권태오가 나와 얼마나 다른가를 확인해야 했다. 종국에는 권태오라는 이름이 내 안에 깊은 흔적으로 남았다.

나는 아직 그 자국에 붙일 이름을 짓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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