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3. 커도 너무 커
평화로운 나날이었다. 회사에서는 팀장으로서 적응을 잘 마쳤고,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이사님과 개인적으로 시간을 가졌다. 조언을 듣기도 하고 현실적인 경영에 대해서 배우기도 했다. 그럴 때면 개진상도 꼭 따라와서 곁에 있었다. 본인도 배워 둬야 한다나, 어차피 이 회사에는 관심도 없으면서 왜 저러는지 모르겠지만.
어찌됐건 회사에서는 그랬고, 집에서도 별다른 일은 없었다. 늘 그랬듯 태주와 상진은 다투는 일 한 번 없었다. 매일 아침 함께 일어나서 같이 밥을 먹고, 시간이 나면 영화를 보러 나가고 한강을 따라 걷거나 드라이브를 했다.
태주로서는 그와의 일상은 지금까지의 어떤 날들보다도 행복했다. 반짝거리고 눈이 부실 정도로 매일매일이 소중했으니까. 그래, 분명 우리는 앞으로도 잘 해낼 것이다. 지금처럼 말이다. 서로 의견을 달리하거나 언성을 높이는 일은 없을―,
“싫어요!”
―없, 없을 것, 이, 아, 저 개진상.
“뭐가 싫어.”
“그거 하기 싫다고요!”
“왜! 왜 싫어!”
상진이 보기 드물게 목소리를 키웠다. 태주가 침대 위에 올려놓은 ‘그것’을 보자마자 말이다. 아직 뭔지 설명도 안 했는데 일단 이야기나 들어 보세요, 선생님.
“뭘 대뜸 싫대. 아직 아무 말도 안 했는데.”
“그거 끼우라는 거잖아요. 아니에요?”
흠, 어떻게 알았지. 살짝 당황했다. 저 물건은 태주로서도 실제로는 처음 본 물건이었다. 당연히 그 용도를 모를 거라고 생각했는데.
태주는 목소리를 큼큼 다듬으면서 문제의 물건을 집어 들었다. 부드러운 실리콘 재질을 손으로 매만지고는 그에게 상품 설명을 하듯 말을 이었다.
“자, 고객님. 이게 나쁜 물건이 아닙니다. 여기 구멍 보이죠? 여기에 고객님의 흉기를 끼우시면 되는 거고요.”
외국에서 주로 사용하는 물건이라서 국내 시장에는 낯선 제품이었다. 태주는 마치 진상 고객님을 대하듯 사근하고 친절하게 덧붙였다. 도넛들이 여러 개 이어 붙은 원통형의 모양새로, 그 구멍 안으로 성기를 끼우는 것이 사용법이다.
대체로 페니스가 너무 크거나 긴 사람들에게 필요한 제품이며, 이것을 끼우고 성관계를 하게 되면 상대방에게 가는 부담을 줄여 줄 수 있도록 디자인되어 있었다.
“자, 보세요. 이 구멍 안에 고객님의 흉기를 끼우시면 관계를 가질 때―”
“깊게 못 들어가잖아요.”
“깊게 못―, 아니, 이게 아니라.”
불만이 잔뜩 들러붙은 상진이 입술을 삐죽거렸다.
“고객님의 성기가 워낙 훌륭하셔서 이게 필요합니다. 상대방의 부담을 줄여 줄 수도 있고요, 조금 더 안전한 성생활을 즐기실 수 있답니다.”
“…….”
“한번 만져나 보세요. 우와, 엄청 부드럽죠? 쿠션 역할을 해 줘서 고객님도 편하실 거라니까요. 하나 장만하시고 사용해 보시는 걸 권합니다.”
“…….”
태주는 결국 그의 손에 그 물건을 들려주었다. 영 탐탁지 않은 표정이었다. 자신의 성화에 못 이기는 척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금세 침대 위로 내려놓는다.
“이거 끼고 하자고요?”
“응.”
단호하게 답하자 그의 입술이 댓 발 튀어나왔다. 귀여운 표정으로 그렇게 애교 부린다고 해결될 일이 아닌데.
“왜요……? 이런 거 안 해도 되잖아요.”
“야, 그건 네 입장이고.”
정말 진심으로 하는 소리일까. 오죽했으면 해외 배송까지 기다려 가며 이런 물건을 주문했겠냐고.
“양심 있냐? 진짜 까 놓고 말해서, 너무 커. 커도 너무 크다고!”
입술 실룩거리지 마라. 칭찬한 거 아니거든.
태주는 배시시 웃는 그에게 톡 쏘아붙였다.
“할 때마다 아파 죽겠어.”
“그래서 최대한 조심하는데요.”
“조심한다고 해도 말이지. 굵기를 조절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길이를 짧게 만들 수도 없잖아.”
둘 중 하나라도 평범했다면 해외 직구는 안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저 인간은 굵기도 너무 굵고 길이도 너무 길었다. 자신이니까 받아 주는 거지, 아마 다른 사람이었으면 징그럽다고 혀를 내둘렀을 것이다.
“어차피 지금도 다 못 넣잖아. 안 그래? 그러니까 쿠션처럼 껴보자는 거지.”
상진이 억울한 얼굴을 하는 것도 이해는 되었다. 그는 자신의 몸을 걱정해서인지 무리하게 박아 대지는 않았으니까. 이제는 조금 적응이 되어서 다는 아니더라도 꽤 깊게 들어가긴 하는데, 더 넣으면 안 될 것 같단 말이지.
“그렇긴 하지만…….
“왜, 뭐가 불만인데.”
“형은, 괜찮겠어요?”
“뭐가?”
그가 우물쭈물하며 눈동자를 굴렸다. 잠시 시선을 옆으로 두었다가 이내 태주에게로 향했다. 어딘지 모르게 옅은 미소가 걸린 채로.
“형, 맨날 할 때마다 깊게 박아 달라고 하잖아요.”
“응?”
“다칠까 봐 진정하라고 해도 허리 맘대로 흔들고.”
“어…….”
“결국 마지막에는 다 넣고 싶어 하면서.”
“그, 그런 적 없거든?”
“맨날 그러는데. 설마 이것도 기억이 안 나요?”
상진의 눈썹 양끝이 아래로 떨어졌다.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그가 되묻는다. 마치 아주 순수한 이야기를 건네는 것처럼 말이다. 방금까지만 해도 박네, 흔드네, 남사스러운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내뱉었으면서.
그와는 별개로 상진의 어조는 혹여 자신의 기억력에 이상이라도 생긴 것은 아닌지 순수하게 걱정하는 투였다.
“흥분하면 형이 더 적극적인데, 그래서 좋지만요.”
“아직 초저녁인데 자꾸 그런 소리할래?”
“기억을 못 하는 것 같아서 알려 주는 거예요.”
태주는 자신의 눈동자를 빤히 들여다보는 그의 시선을 피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말이지. 네, 기억이 납니다, 나요. 기억이 안 날 리가 없지 않은가. 매일 관계를 하다시피 하는 데다가 간혹 술에 취한 채 한다고는 해도, 대부분은 제정신인 채로 뒹굴었다.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괜찮은데요.”
“야, 누가 부끄러워한다고 그래.”
부끄럽다. 까 놓고 말해서 무진장 부끄럽다. 우리가 사귀는, 어, 그런 사이기는 하지만 아직 섹스토이랄지 그런 물건은 좀체 다뤄 본 적이 없었다. 물론 회사의 주력 제품이 성기능 개선 의료기기이니 낯선 종목은 아니다만, 그래도 의료기기와 성(性) 기구는 엄연히 다르다. 해외 사이트를 통해 구매한 저 물건도 따지고 보면 섹스토이는 아니긴 한데.
민망함에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그러자 상진이 태주에게서 시선을 떼고는 침대에 덩그러니 놓인 그것을 만지작거린다. 조금 시무룩해진 얼굴이어서 그런지, 태주는 양심이 살짝 쑤셨다. 저 인간도 저렇게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났겠냐고. 그냥 솔직히 말을 할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알게 되면 얼마나 옳다구나 달려들까.
“……형이 원한다면 하겠지만요. 그렇게 힘들어하는 줄 몰랐어요.”
“……어? 아니, 뭐, 힘들다기 보다는―”
……그러니까 사실은 거짓말이다. 저걸 구매한 이유가 온전히 저 인간의 크기 때문은 아니었다. 누군가 그랬다, 무엇이든 크면 클수록 쓸 만하다고. 그중에서도 클수록 좋은 것이 무엇이겠는가. 남들에게 이런 고민을 털어놓으면 배부른 소리라고 욕을 할지도 모르겠다.
그래, 크기가 문제는 아니었다. 이런 거짓말까지 해 가며 저런 물건을 사들인 이유는, 바로 태주 자신 때문이었다.
“아니에요, 형. 솔직히 말해 줘서 고마워요. 난 그냥 형이 좋아하는 줄만 알았는데.”
“음, 조, 좋긴 한데 말이야.”
“많이 아파 하는 줄은 몰랐어요. 저도 형이 다치는 건 싫어요, 절대로.”
풀이 죽은 상진을 보니 헛웃음이 나왔다. 아픈, 적이 있긴 했다만 벌써 오래전 이야기였다. 지금은 오히려 그 반대였다. 너무 좋은 게 문제다.
막연한 불안감이 있었다. 지금도 이렇게 좋은데, 미치겠는데, 저 큰 걸 다 넣으면 어떻게 될지. 이성을 잃고 저 인간에게 매달리거나 헛소리를 지껄이게 될까 봐, 태주는 그것이 두려웠다. 침대 위의 상진과 침대 아래에서의 현우를, 구분하려고 아직 애쓰는 중이니까. 부질없다는 걸 알아서 이제 차차 익숙해지려는 참이긴 한데.
“조금 참아 볼게요.”
상진이 희미하게 웃으며 말했다. 어느새 거멓게 어두워진 얼굴이 애써 입술을 달싹거린다. 그가 씁쓰름한 것을 삼키듯 목울대를 움직이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형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는 않아요. 그러니까, 조금 참아볼게요.”
“응? 뭐, 뭘 참아?”
상진의 손이 태주에게 닿았다. 당황한 낯빛이 역력한 태주의 볼을 쓰다듬고 슬며시 떨어진다. 뚝뚝 미련이 남은 손길이 애처로울 지경이었다.
“설마, 지금, 그, 그걸 참겠다고?”
“네? 아, 네.”
“그러니까 너 지금 덜 하자는 거야?”
“아무래도 형 몸에 부담이 가니까…….
아니, 어, 그, 그렇다고, 뭘, 또. 한창 혈기왕성할 때인데 뭘 또 그걸 참겠다고. 하, 참나, 절대 꼭 하고 싶어서 이러는 건 아니지만, 뭘 또 그렇게 배려한답시고.
“그, 그렇게 부담은 아닌데.”
“아니에요. 저도 걱정은 하고 있었는데 형이 솔직하게 말해줬으니까요.”
태주는 다정하게 웃는 그의 얼굴에 말문이 턱 막혔다. 아니, 이러다가 진짜 덜 하는 거 아닌가? 그걸 저 인간이 참을 수 있을까. 기회만 되면 붙어 오는 인간이.
“너, 참을 수 있겠어? 무리할 필, 요는 없어.”
“참아 봐야죠, 형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는걸요.”
그런 것까지 참을 필요는 없는데. 태주는 이걸 뭐라고 설명도 못 하겠어서, 침을 꼴깍 삼켰다.
“형, 안색이 안 좋아요. 괜찮아요?”
상진이 고개를 기울이며 물었다. 평소처럼 몸을 가까이 붙여오다가 이내 흠칫 멈추더니 떨어진다. 오히려 거리를 더 벌리고 있었다. 스스로를 제어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 모습에 태주는 순간 머리가 핑 돌았다. 이 정도 스킨십까지 조절하겠다고? 참겠다고?
“아니, 야! 왜 떨어지는데!”
“네? 그렇지만 저도 모르게 만질까 봐―”
“만지는 게 뭐 어때서!”
상진의 손에 들린 실리콘 덩어리가 천천히 구겨졌다가 다시 모양을 되찾았다. 그는 그것을 만지작거리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형도 알잖아요. 한번 불붙으면 참기 힘들다는 거.”
“야, 누가 하지 말자고 했어? 그냥 그, 저거 끼고 하자는 건데.”
“그럴 정도로 형이 힘든 거잖아요. 제가 미안해서요.”
속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왜 중간이랄 게 없냐고, 저 인간은.
“그동안 많이 힘들었을 텐데, 미안―”
“미안하다는 소리 그만해! 안 힘들거든?”
미안하다는 소리로 자꾸 속을 박박 긁어 대는 통에 태주는 그만 목소리를 높이고야 말았다. 지금까지 다툰 전적이 없었는데, 오늘로써 하나가 생긴 셈이다.
미적지근한 상진의 태도에 현우가 겹쳐 보이고, 그래서 더 신경질이 났다. 왜 저렇게 주눅이 들어 있는 건지. 현우가 그럴 때면 괜히 속이 상했다.
“그렇지만 형이…….
“안 힘들어, 안 힘들다고! 너무 좋아서 그런다, 왜!”
그의 말을 끊고 우다다 쏘아붙였다. 왠지 여기까지 말하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잠깐 스쳤지만, 이미 물꼬가 트여 버린 터라 막을 수가 없었다.
“……네?”
현우가 놀란 얼굴로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릴 적의 그 얼굴이다. 귀엽고 순수하던 그때의 현우처럼 동그란 눈으로 자신을 응시하고 있었다.
“참을 필요 없다고!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돼. 싫, 거나 힘든 거 아니니까. 무슨 말인지 알겠어?”
“형…….”
“또, 또 그런 표정! 왜 풀이 죽었어. 누가 너 싫대?”
태주가 현우의 양 볼을 손바닥으로 감쌌다. 볼이 살짝 눌린 모습이 귀엽기만 하다. 싫을 리가 없지, 이렇게 귀여운 놈을 싫어할 수 있을 리가.
태주는 그를 확 끌어안았다. 물론 그의 품에 태주가 끌어안긴 모양새긴 했지만, 그래도 끌어안고 그의 등을 토닥거렸다. 그러자 머리 위에서 그의 숨결이 느껴졌다. 둘은 마주 끌어안은 채로 한참을 그대로 있었다.
“……형.”
“응?”
“제가 생각을 해 봤는데요.”
“뭘?”
“다른 방법이 있어서요.”
상진의 가슴에 포옥 얼굴을 묻었다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는 태주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윽하게 내리깐 눈동자 안으로 인영이 어른거린다.
“무슨 방법?”
기다렸다는 듯, 그의 눈매가 휘었다. 달처럼 휜 눈꺼풀 아래로 입술 끝이 빙긋 올라붙는다.
* * *
“읏, 으윽…….”
단단히 묶인 손목을 비틀었다. 부들부들한 천으로 감겨 있으나 매듭은 단단했던 모양이다. 아무리 팔을 뒤틀고 손을 아래로 주욱 당겨 보아도 소용이 없었다. 되레 그럴수록 조여 오는 압박감이 심해지기만 했다.
발끝에서 바스락거리는 촉감이 들었다. 그가 있을 만한 곳을 발로 더듬어 보았다. 시야가 가려진 터라 그저 추측을 할 뿐이지만 잠시 자리를 비운 듯했다. 발소리도 잘 내질 않으니 헷갈릴 수밖에.
“변태 새끼.”
불안한 와중에 마음이 놓여 툭, 내뱉었다. 방법이 있다기에 순순히 응하기는 했는데. 다만 그 ‘방법’이라는 것이 이리도 변태스러울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는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태주의 눈부터 가렸다. 검은 색의 안대를 머리에 씌우고 끈을 조절했다. 제법 면적이 커서인지 안대를 차고 나서는 아무것도 보이질 않았다. 아래로 눈동자를 굴려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몇 마디 투덜거렸더니 말꼬리를 잡고 늘어졌다.
‘아무래도 이거 가지고는 안 되겠네요, 형의 안전을 위해서.’
안전을 위한답시고 팔을 둘둘 묶었다. 어딘지는 모르겠으나 머리 위쪽으로 고정해서 팔이 들리게 되었다. 팔자에도 없는 만세를 종일 하게 생긴 것이다.
“형, 기다렸죠.”
“뭔데, 대체 뭘 하기에 이렇게까지 하는데.”
반가운 목소리에 몸을 일으키려 했다. 하지만 팔이 덜컹거리며 움직이질 않았다. 동시에 가벼운 티만 한 장 걸친 상체를 그가 쓰다듬으며 지그시 내리눌렀다. 분명히 다정한 손길이었으나 순간 숨이 턱, 막히고 말았다.
“진정해요.”
“진정하게 생겼, 읏!”
상체와는 달리 완전히 벗겨진 다리가 허전했다. 그 허전함을 달래 주기라도 하듯 차갑게 식어 있던 살갗에 그의 손바닥이 닿았다. 그는 태주의 무릎에서부터 손을 대고 천천히 훑어 올라갔다. 드러난 곳이라면 빈틈이 없을 만큼 그의 손길이 와 닿았다.
마치 붓질을 하듯 유연히 움직이는 손은 허벅지를 그려 냈다. 흠칫 놀라 닫아 버린 다리 사이를 벌리며 제자리를 찾아가듯 파고들었다. 손끝이 허벅지 안쪽을 스치고 미끈한 안쪽을 두드리자 호흡이 흐트러진다. 이 다음이, 어떤 것일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불안과 기대감이 뒤섞여 뜨거운 숨이 터졌다.
“읏, 상, 진아.”
목울대가 꿀렁거렸다. 침을 꿀꺽 삼키는 소리와 함께 낮게 웃는 그의 음성이 들렸다. 시야가 가려져 있기에 다른 감각들이 곤두선다. 그의 살결에 마주 닿는 열기와 더불어 그가 내는 아주 작은 소리들마저 천천히 달구어지는 불씨와도 같았다.
“형, 벌써 흥분했어요?”
웃음기를 머금은 목소리였다. 만족스러운, 여유가 담뿍 담긴 채였다. 눈이 보이지 않으니 어떤 표정을 하고 있을지 알 수 없으나 그는 꽤나 즐기고 있음이 분명했다.
아래를 배회하던 손끝이 중심을 타고 올라왔다. 반쯤 선 태주의 것을 어루만지며 기둥을 잡아 흔든다. 부러 조롱하는 투로 말을 던지고는 부끄럽게 하려는 것이다. 그러면 자신의 아래에 누운 태주가 금세 흥분한다는 걸 알고 있을 테니까.
“네가, 자꾸 만지니까.”
“이제 막 건드렸을 뿐인데. 이거 봐요, 이렇게나 세우고.”
“하으, 으읏, 거기, 아아.”
“으응, 여기요.”
귀두 아래 부근을 손끝으로 느릿하게 문지르자 태주의 허리가 들떴다. 잔잔하던 가슴께가 크게 부풀어 오르며 숨소리 역시 거칠어졌다.
상진은 태주에 대해서라면 모르는 것이 없었다. 그의 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어딜 건드리면 그가 좋아하는지, 어떻게 만지는 것에 흥분하는지. 태주 자신도 모르고 있을 외설적인 영역까지 말이다.
“으응, 으, 읏, 하아.”
차츰 빨라지는 그의 손놀림에 발끝이 움찔거렸다. 안으로 곱아들었다가 죄 펴지며 다리에 힘이 들어간다. 긴장감으로 굳은 종아리가 흔들리고 얌전했던 허벅지가 사이를 벌렸다. 불가항력이었다. 몇 번이나 놀아난 그의 손아귀에서 들썩거리는 몸을 주체하질 못한 채 앓는 소리를 내었다. 탁, 탁, 탁, 서서히 부푸는 성기가 자극적인 마찰을 가까스로 견딘다.
“형, 내보내도 돼요.”
“하아, 응, 싫, 으읏, 아―”
상진의 손은 이미 젖은 채였다. 태주가 내보낸 투명한 액이 좁은 구멍에서 질질 새었다. 단단히 묶어 둔 팔을 비틀며 그가 고개를 흔들었다. 사정을 하기 직전, 늘 하는 행동이었다. 고개를 흔들며 싫다고 신음을 흘리고는 여지없이 정액을 내보냈다. 지금처럼 말이다.
“으읏, 윽!”
가볍게 뿜어낸 정액이 손등을 적시며 튀었다. 아까와는 달리 불투명한 액체가 그 끝에서 흘러내린다. 상진은 그가 내보낸 욕정을 보며 입 꼬리를 당겼다. 언제 보아도 즐거웠다. 붉은 입술 사이로 밭게 내뱉는 숨이, 허벅지 안쪽을 파르르 떨며 몸을 뒤로 무르는 몸짓이. 기어이 되잡힐 것을 알면서도 수치심과 부끄러움에 도망치는 ‘척’을 하는 것이다. 그것이 어찌나 사랑스러운지.
“빠르네요.”
“시, 끄러워.”
상진이 고개를 숙였다. 둥글게 말린 상체를 아래로 숙여 아직도 움찔거리는 태주의 것을 입에 머금었다. 뜨거운 동굴이 그것을 감싸 안고 물컹한 살덩이가 들러붙었다. 오돌토돌한 단면이 느껴질 만큼, 진득하게 빨아 댄다.
“아읏, 야, 잠ㄲ, 아직―!”
춥, 츄웁, 물기 가득한 소리가 다소 외설적으로 들렸다. 그는 입 안을 채운 기둥을 정성스레 핥았다. 비릿하게 남아 있는 정액도 남김없이 삼키며 고개를 움직였다. 앞과 뒤로 천천히 흔들릴수록 타액으로 젖은 기둥이 드러났다가 이내 감추어진다. 파들파들 떨고 있는 태주의 허벅지를 양손에 쥐고 버둥거리지 못하게 막은 채였다.
“하으, 으응, 상, 진아, 아, 읏!”
어찌할 바 없이 몰아치는 쾌감에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핑핑 도는 정신 너머가 아득해진다. 터진 입술 새로는 비명 섞인 신음을 내질렀다. 온몸을 그에게 묶인 듯했다. 그가 원하는 대로 몸을 내맡기고 되돌아오는 고양감을 온전히 느끼고만 있었다. 그것이 스스로를 흥분하게 한다는 걸, 태주 역시 어렴풋이 짐작했다.
“아! 윽!”
두 번째의 사정은 길지 않았다. 혼탁한 액체를 그의 입 안으로 쏟아내자 전신의 힘이 풀렸다. 바짝 굳어 있던 긴장감이 흩어지고 가빴던 숨의 간격이 멀어졌다. 부풀었던 가슴께가 진정될 무렵에서야, 상진은 고개를 들었다.
혀를 내어 입맛을 다시고는 태주의 귓가에 속살거렸다.
“맛있어요, 형.”
아직 입 안에 남아 있는 그의 정액을 혀로 굴리며 태주의 귓바퀴를 핥았다. 타액과 섞인 혼탁한 액체가 그의 귓가에 묻는다. 붉게 물든 살갗 위로 입술이 부딪쳤다. 그 주위를 맴돌던 숨결이 이내 태주의 입가로 다가왔다.
“싫, 읏, 아파. 안대라도 벗겨 줘, 응?”
위로 바짝 올라간 팔을 당기며 칭얼거리자, 상진의 입술이 맞닿아 왔다. 그는 붉게 달아오른 태주의 것을 삼키고 아랫입술을 핥아 올렸다. 묶인 팔 때문에 이리도 저리도 피할 수 없었기에 그저 그의 입맞춤을 받아들여야 했다.
늘 그랬듯 부드러운 입술이 진득하게 섞였다. 능숙하게 안을 잡아 벌리고 자그마한 틈새로 파고든다. 축축하고 뜨거운 점막을 스치며 혀를 감아 쪽, 쪽, 소리를 내었다. 그는 그렇게 소리를 내는 것을 퍽 좋아했다. 야살스러운 마찰음들은 태주의 귓가를 홧홧하게 만들곤 했으니까. 그가 하는 행위의 모든 이유의 중심에는, 태주가 있었다.
“흐읍, 하아…….”
“형…….”
제 정액을 가득 담았던 입술이 떨어졌다. 체액인지 타액인지 모를 것들이 혼탁하게 섞여 목구멍으로 흘러 넘어간 뒤였다. 밭은 숨을 내쉬며 그를 올려다보자, 거멓던 안대 너머로 희미한 얼굴이 비추었다. 몸을 버둥거리던 틈에 안대가 살짝 비틀어진 모양이었다. 완전히는 아니지만 조금은 앞을 구분할 수 있었다.
눈을 가느다랗게 뜬 채 집중하자, 잔뜩 상기된 그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럼 이제 시작할게요.”
말과 함께 탈칵, 무언가의 뚜껑을 여는 소리가 들렸다. 어느새 그의 손에는 튜브 형태의 투명한 것이 들려 있었다.
“뭐, 야, 이제 시작한다고? 지금까지 한 건 뭔데, 그럼.”
대답도 없이 그의 눈가가 휘었다. 손바닥 위로 치덕치덕 올린 젤을 보란 듯이 아래로 떨어뜨린다. 주르륵 흘러내린 점액질이 태주의 복부 아래쪽에 묻어났다. 툭, 투둑, 후두둑, 한 방울, 두 방울, 이제는 아예 덩어리진 그것들을 죄 털어내자 차갑고 서늘한 촉각이 곤두섰다.
“상진, 하아, 윽!”
이상했다. 분명 차갑고 서늘했던 촉감이 그의 손아래에서 문질러지자 뜨겁게 달구어졌다. 티셔츠가 살짝 올라간 아래로, 훤히 드러난 복부에 상진의 손이 닿았다. 그는 치덕하게 흩뿌려진 젤을 손끝으로 어루만지며 천천히 아래로 움직였다.
그러니까, 그때부터였다. 점성질의 액체에 그의 체온과 태주의 것이 겹쳐진 후에 말이다. 점점이 흘러내리는 젤이 길을 내며 흩어지자 그 길을 따라 온몸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숨을 겨우겨우 참아낼 정도로.
“흣, 윽, 뭐야, 이거.”
“조금 뜨겁다고 느낄 수도 있어요.”
“으응. 윽, 이상해.”
“괜찮아요, 형이라면 금세 기분 좋아질 거니까.”
다정한 목소리에 다정하지 않은 말이 담겼다. 홧홧하게 달아오른 허리를 뒤틀며 젤을 털어내려 했다. 그러나 이내 상진의 손아귀에 가로막혀 의미 없는 몸부림이 될 뿐이다. 그는 그 이상한 물건을 손바닥에 묻힌 채, 그대로 아래를 향했다. 연이은 사정에 반쯤 여문 페니스를 지나 더 아래로, 손을 굽이고 깊이 넣어야 드러날 회음부에 가 닿는다.
“하읏! 야, 잠, 안 돼, 상진아.”
반쯤 가려진 안대를 벗어내려 고개를 흔들었다. 제대로 보이질 않으니 불안감이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반투명한 시야 너머로 상진은 아래를 보고 있었다. 그의 손 또한, 한쪽은 태주의 허벅지를 짓누르고 다른 한쪽은 아직 굳게 닫힌 구멍을 문질렀다.
축축하게 젖은 그의 손가락은 태주의 애원 섞인 부름에 응하지 않았다. 비어 있던 공간 안으로 이물감이 들이찬다. 스스럼없이 내벽으로 비집고 들어선 그것이 제멋대로 안을 헤집어 대기 시작했다. 문제는, 질척하게 묻은 젤이었다.
“읏, 윽, 하아, 흐윽.”
“형, 안이 좁아요. 매일 박고 쑤시는데도.”
안쪽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뜨거운 물을 끼얹은 듯 고통에 몸부림쳤다. 생전 처음 느껴 보는 감각이었다. 괴로움과 뒤섞인 통증이 내벽 곳곳을 간지럽히며 할퀴어 대었다. 신음을 토해 내고 온몸을 뒤틀었으나 안을 쑤시는 손길은 좀처럼 물러서질 않았다. 젤이 묻은 손가락은 계속해서 안을 벌리고 내벽에 그것을 문지르며 추삽질을 이어 갔다.
“흐으, 윽, 으아, 상, 진아, 안, 으, 흑…….
무척이나 생경한 통각들이 뒤엉켰다. 안쪽에서부터 지끈거리는 통증은 저릿저릿한 쾌감을 언뜻 내비친다. 이상한 일이었다. 방금 전까지는 분명 고통에 가까웠던 감각이 어느새 허리를 들뜨게 하고 있었다. 태주는 뜨겁게 달구어진 아래를 저도 모르게 조이며 신음을 흘렸다.
“기분 좋아요, 형?”
“읏, 아, 잠깐……!”
팔을 덜컹덜컹 흔들었다. 당장이라도 손을 내려 그를 막고 싶었다. 안으로 침범하던 상진의 손가락을 잡고 떼어낼 수만 있다면. 그러나 푸욱, 쑤셔 박힌 손가락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곳을 찾아 더듬었다. 그 끝이 음부의 깊은 곳을 스치자 여지없이 숨이 터져 나간다.
“으읏!”
“응, 알아요. 천천히 숨 쉬어요.”
“하으, 으, 거, 기.”
상진이 미소를 지었다. 그는 너무나 익숙하게 태주의 그곳을 알아채곤 했다. 미끈한 손가락이 전립선 부근을 더듬고는 힘을 주어 꾹 누른다. 단숨에 수축한 내벽이 손가락을 오물거리며 빨아들였다.
“귀여워요.”
자신의 손끝에 솔직하게 반응하는 태주를 기꺼이 내려다보았다. 꾹 다문 잇새로 뜨거운 숨을 토해 내고 있는 그의 모습만으로도 아래가 묵직해진다. 붉어진 살결을 손으로 쓸어 올리며 흐트러진 안대를 마저 벗겨 주고 그의 젖은 입술에 쪽, 입을 맞추었다.
“형, 이제 넣을게요.”
갑자기 시야가 환해져 눈꺼풀을 찡그렸다. 서서히 익숙해지는 시선 너머로 상진이 보였다. 그는 손에 또 다른 무언가를 든 채였다.
“읏?!”
“힘 풀어요, 긴장하지 말고.”
어느새 질척해진 구멍 안으로 낯선 것이 고개를 들이밀었다. 상진의 것이라면 분명 알아챘을 테지만 전혀 달랐다. 그것보다 훨씬 작은, 탄탄하지만 물컹한 무언가가 안으로 밀려들어온다. 그는 손가락으로 꾹, 꾸욱 그것을 밀어 넣었다. 누운 채로 다리를 벌린 태주로서는 그것이 대체 무엇인지 알 도리가 없었다.
“야, 으읏, 너 지금 뭐 하는 건데.”
“방법이 있다고 했잖아요, 형.”
“그러니까―”
“걱정할 거 없어요.”
느껴지는 것이라고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안을 가득 채우는 이물감과, 안쪽으로 치덕치덕 발린 젤의 열감뿐이었다. 태주는 숨을 후 내뱉었다. 몸속에서 머무르고 있는 열기를 빼내고 싶어서였다. 지금, 지금 당장 그에게 박히게 된다면 정신을 차리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런 불안감이 선뜻 들었다.
“윽?!”
다행인지 불행인지, 상진은 손을 대지 않았다. 단지, 그는 손에 들린 동그란 것을 꾹 눌렀다가 떼었다. 그러자 이상하게도 안에 있던 그 이물감이 더욱 커지게 된 것이다. 마치 튜브에 바람을 넣듯, 쪼그라들었던 것이 팽팽하게 부푸는 것처럼 말이다.
“느낌이 와요?”
“읏, 상진아, 이거.”
“조금 더 해 볼게요. 젤을 발라 놔서 괜찮을 거예요.”
타원형의 검은 손잡이를 누르면 호스로 연결된 것이 부풀어 오르는 구조였다. 애널에 넣는 풍선, 확장용 도구의 일종이다. 언젠가 쓸 일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이렇게 빨리 쓰게 될 줄은 그조차 몰랐다. 태주에게 고맙다고 해야 할까. 짐짓 걱정하는 투로 말을 건넸으나, 아래에서부터 피어오르는 흥분감을 감추기는 어렵다.
“악! 앗, 이거 싫어!”
버둥거리는 발목을 잡아 벌렸다. “이러면 다쳐요.”라고 넌지시 던지면서. 그리고 다시 또 꾹, 누르며 태주의 반응을 살폈다.
“읏, 흐윽……!”
제멋대로 안을 넓혀 가는 압박감은, 정말이지 끔찍했다. 그가 생각한 이 방법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알았다면 태주는 절대 승낙하지 않았을 터였다. 태주는 속절없이 벌어진 제 다리를 굽혀 세웠다. 골반을 벌리듯 허벅지 사이를 넓히자 발아래에서 구겨지는 시트의 감촉이 그대로 느껴진다.
“조금만 더요.”
“흐윽, 읏, 안, 안 돼. 제발, 아직.”
“괜찮아요, 형. 평소엔 이거보다 더한 것도 넣으면서.”
흡, 숨을 들이켰다. 차마 신음조차 내지 못한 채, 안에서 크기를 키워 가는 그것을 삼켜 물었다. 꽤 깊숙이 밀어 넣어진 벌룬이 팽팽하게 확장되자 자연스레 내벽을 짓누른다. 강제로 넓혀져 장기를 짓이기는 압박감은 평소와는 다른 흥분감을 가져왔다.
가히 미칠 노릇이었다. 이런 짓거리에도 흥분이 된다니, 기다렸다는 듯 아래를 조여 물다니. 스스로에게로 혐오감이 넘실거린다.
“거봐요, 형이 좋아할 줄 알았어요.”
“읏, 이, 미친놈, 하아…….
“조금 더 해 볼까요?”
“으응, 하아, 안 돼. 진짜.”
상진의 손가락이 태주의 입구를 스쳤다. 움찔거리며 안을 좁히는 바깥의 주름을 손끝으로 어루만진다. 오밀조밀 모여 있던 신경들이 예민하게 곤두섰다. 장벽을 차지한 장난감과 밖에서 맴도는 상진의 손가락으로. 입이 바짝 마를 정도의 긴장감이 들뜬 신음으로 드러난다.
“너무 좋아하니까 질투 나는데.”
“윽! 아! 아윽!”
갑자기 서늘해진 그의 목소리가 끝나기도 전에, 그것의 부피가 더욱 커졌다. 이제는 단순히 기분이 좋은 정도가 아니었다. 감당하기 버거울 만큼 넓혀진 내벽에 숨이 턱턱 막히기 시작했다.
벌어진 다리 사이가 파르르 떨렸다. 잔뜩 수축된 허벅지 안쪽이 처연하게 경련하며 둔부까지도 들썩거리는 것이다. 의도하지 못한, 반사적인 행동이었다. 본래의 모양보다도 강제로 벌어진 고통을 잊기 위해 몸이 펄떡이고 있었다.
“형이 내 것만 좋아해 줬음 좋겠거든요.”
“하아! 흐윽, 상, 진아, 아파, 진짜―”
“이런 거에 지고 싶지 않아요. 내 것도 예뻐해 줘요, 형.”
“흑, 윽, 아, 아파, 아.”
눈가에 고여 있던 눈물이 후두둑 떨어졌다. 눈꼬리에 아슬아슬 걸린 액체가 관자놀이를 타고 흩어진다. 태주는 대체 저 인간이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팠다. 아랫배에 살짝 힘을 주기만 해도 선뜻한 이물감이 전해졌다. 그것은 아무 애정도 없는, 그저 목적을 위한 삽입이라는 걸 이제야 깨닫고 만 것이다.
“상, 진아. 싫어, 흐윽, 이거, 빼 줘.”
그래서 더욱 그에게 애원했다. 이런 것보다는, 차라리 그의 것을 원했다. 비록 그것 역시 아플지라도 이보다는 나을 테니까.
“저도 빨리 넣고 싶어요, 형.”
그의 목소리 역시 메마른 채였다. 방금 전의 서늘함과는 달리 사근사근 태주를 달래는 투로 말이다. 그가 태주에게 속살거리며 입술을 핥았다. 붉게 물든 눈꺼풀을 손끝으로 어루만지고는 다시, 아래에 놓인 손잡이를 꾹 잡아 눌렀다.
“하윽! 아! 싫, 그만!”
고통 섞인 쾌감이 온몸으로 퍼진다. 한계까지 벌어진 내벽은 그 안쪽의 성감대를 뭉개 놓았다. 찌릿찌릿한 열락이 둔부 사이에서 퍼져 척추를 타고 등골까지 집어삼킨다. 태주는 온몸을 비틀며 새된 비명을 질렀다. 강한 쾌감은 강한 고통과 다를 바가 없었다.
트인 채 닫히지 못한 입가로 타액이 점점이 흐른다. 그가 그만둬 주기를 바랐다.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고 눈물과 침으로 엉망진창인 얼굴을 좌우로 흔들었다. 마음으로는 상진에게 발길질이라도 하고 싶었으나 도무지 꼼짝을 할 수가 없다. 움직이면 어딘가 찢어질 것만 같았다.
“흐읏, 하아, 윽.”
아래가 화끈거리며 욱신욱신하더니 반쯤 섰던 페니스에서 체액이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안쪽에 가해지던 압박감이 느슨해졌다. 서서히 꺼져 가는 기구에서 바람이 새는 소리가 들린다. 이어서 푹 꺼진 그 물건이 몸 밖으로 빠져나가고 있었다.
겨우, 이제 겨우 편해지는가 싶었다. 그러나,
“아! 아읏!”
“윽.”
그것이 빠져나가자 이번엔 두터운 선단이 안을 벌렸다. 주름진 입구를 더듬던 것이 이내 내벽을 채우고 들어선다. 방금 전과 버금가는 압박이 숨을 콱 조이는 듯했다. 어느새 태주의 다리 사이에 자리 잡은 그의 두터운 몸통이 허벅지를 벌려 놓는다. 차마 안을 닫지도 못하고 그의 허리 아래쪽으로 종아리를 걸쳤다.
“하아, 형. 아직도 조여요.”
“흣, 으윽, 천, 천히.”
“못 참겠어요.”
육중한 무게가 서서히 앞으로 쏠렸다. 그의 몸이 가까이 맞붙을수록 안으로 밀려 들어간 페니스가 더욱 깊게 자리를 잡았다. 이전에는 다 담지 못했던 부근까지, 아니, 그보다 더한 곳으로 빨려 들어간다.
태주는 오싹한 충족감에 젖었다. 제 안을 그득 채운 상진의 것이 너무나 좋았다. 두렵던, 불안했던 감정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난 뒤였다.
“더, 더어, 상진아. 다 넣어 줘.”
“윽, 형, 알았으니까.”
그의 골반에 걸쳤던 종아리를 슬금슬금 위로 올렸다. 금세 허리에 다다른 다리를 교차하여 감싸고 그의 몸을 당기자, 상진이 웃음을 흘린다. 어서 그가 다 들어오기를 원했다. 굵고 기다란 것으로 간지러운 열감을 문질러 주기를.
“하아, 형. 너무 좋아요.”
“흐응, 으윽, 아―”
기어이 바짝 맞붙은 다리 사이로 그의 몸이 겹쳐졌다. 처음이었다, 그렇게 완벽히 몸을 겹친 것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고양감이 전신을 욱신거리게 만든다. 마침내 다다른 끝처럼 두 사람은 가만히 살갗을 마주 대었다.
“이거, 풀어 줘.”
촉촉하게 젖은 눈동자를 깜빡거리자, 상진은 홀린 눈을 하고서는 매듭을 풀어 주었다. 자유로워진 팔과 어깨가 저려왔다. 태주는 천천히 팔을 내리고 지척까지 다가온 상진의 양 볼을 쓰다듬었다. 그의 입술에 제 것을 문지르며 입술을 벌리자 당연하게도 그가 얽혀 들어온다. 위도 아래도, 모두가 합쳐진 뒤였다.
“―흐읍, 읏!”
상진의 손이 태주의 뒷목을 받쳤다. 그에게 매달린 채로 아래를 조였다 풀자 깊숙이 자리 잡았던 페니스가 서서히 빠져나갔다. 그리고 그것을 선단까지 걸쳐 빼내었던 그가, 숨을 고르고는 크게 허리를 튕겼다.
퍽! 말도 안 되는 파열음이 이어지고 태주의 고개가 뒤로 꺾이려 했다. 호흡을 토해 내고 들이쉴 때면 그가 파고들었다. 그것은 뜨거운 내벽을 가르고 긴 걸음으로 안을 헤집어 놓았다. 기둥이 안을 스치며 밀려 들어오고 이내 다시금 빠져나갈 때면 몇 번이고 성감대가 짓눌려졌다. 태주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그의 몸에 매달려 신음과 숨을 터트리는 것뿐이다.
“하아! 응! 아아! 아, 깊, 깊어, 너무, 아!”
생각보다 더했다. 안쪽을 완전히 담금질하는 그의 성기가 태주의 저항력을 상실하게 만들었다. 온몸이 예민하게 달아올라 그에게 닿는 곳이라면 어디든 불에 댄 듯 뜨거웠다.
“헉, 하, 형. 윽.”
느릿하게 아래를 놀리던 상진이 앞으로 풀썩 고꾸라졌다. 그의 몸이 태주의 위로 무너지고 그의 입술이 태주의 목덜미를 지분거렸다. 티셔츠 위로 드러난 흰 살결에는 어느덧 발간 숨이 들어 있었다. 자신에 의해 물든 그 색이 못내 만족스러웠는지 그 위로 이를 내어 콱 깨물어 버린다.
“흐윽! 아! 읏!”
겹쳐진 몸 사이로 질척한 액이 스며들었다. 그의 몸에 이를 박아 넣듯 깨물자 태주가 몸을 바르르 떨며 이내 파정하고야 말았다. 복부가 태주의 것으로 적셔지고 금세 침대 시트까지 축축하게 젖어들었으나 상진은 상관하지 않았다.
그는 잠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애매하게 걸쳐졌던 태주의 다리를 들어 제 어깨에 걸었다. 양쪽을 모두 고정한 뒤에야 다시 몸을 수그린다.
“형, 미안해요.”
내내 참아왔던 욕정은 조금도 정제되지 못했다. 곱디 고운 애정으로 포장되어야 함이 마땅했지만 지금의 상진에게는 그마저도 서툴렀다. 매번 탐했던 몸일지라도 완벽히 들어맞았던 적은 없었다. 지금에서야 하나로 합쳐짐에 이성의 끈을 놓기 직전인 것이다.
“상, 진아, 하읏, 좋아.”
부채질은 태주의 몫이었다. 이미 눈이 반쯤 풀린 채 흔들리던 그가 툭 내뱉었다. 신호탄이라도 쏘아진 듯 상진이 태주의 안으로 기둥을 재차 박아 넣었다.
“헉, 읏.”
푹, 푸욱, 버겁게 벌어진 구멍이 겨우겨우 거근을 받아 물었다. 꼭 맞는 짝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저 물건에게는 그런 짝이 존재하지 않을 테니까. 그러나 태주의 몸은 겨우 그것에 맞는 틈을 내어주었다. 더불어 페니스에 짓이겨지는 장기며 성감대로부터 저릿한 쾌감이 돋아난다.
“흐윽, 아, 으응!”
“형, 혀엉.”
밭은 숨이 터지는 태주의 입술을 삼키며 그의 신음을 달게 씹었다. 갈수록 거세지는 몸짓에 튼튼하던 침대 틀이 끼걱, 끼익 소리를 낸다. 신음 소리와 숨, 그리고 목재가 뒤틀리는 갖은 소음들이 뒤섞였다.
그의 다리를 단단히 고정한 상진이 제 무게를 담아 그대로 찍어 눌렀다. 뿌리까지 태주의 안으로 박아 넣고는 잘게 허리를 튕기자 안이 꿈틀거리며 페니스를 물어 대었다. 신경 마디마디까지 조여지는 감각에 가슴께가 크게 부푼다. 쿵, 쿵, 심장이 크게 널뛰기 시작했다.
“상, 진아, 하아, 으읏! 안 돼, 또, 또 가아, 제발……!”
“형, 내, 이름, 불러줘요.”
“읏, 상―.”
고개를 떨어트리고 그의 귓가에 속살거렸다, 그가 바라던 답이 아니었기에.
“아니에요, 형.”
여전히 흔들리고 있는 아래가 무색할 만큼 차분한 목소리였다. 그의 밑에서 신음을 흘리는 태주에게 그가 재차 말했다.
“형, 현우라고 불러 줘요.”
그의 말에 화들짝 놀란 태주가 눈을 크게 치떴다. 그로서는 절대, 할 수 없는 말이었다. 하물며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말이다.
“무, 무슨, 하윽!”
쾌감에 넋이 나가 있던 표정이 잠시 제자리를 찾을 무렵, 여지없이 쑤셔 박히는 페니스가 말문을 막아 버렸다. 현우는, 아니, 상진은 지금까지 그런 소리를 한 적이 없었다. 특히나 이런 상황에서는 태주가 그 이름을 불편해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일부러 모르는 척 넘어갔던 것이다. 그런데, 왜, 갑자기.
“현우라고 불러주세요, 평소처럼.”
“흐읏! 안, 안 돼, 싫―”
“형, 제가 현우잖아요.”
폭풍우처럼 몰아치던 몸짓이 이내 사그라들었다. 그는 기어코 그 말을 듣겠다며 결심이라도 한 듯, 천천히 몸을 뒤로 물렸다. 그러나 결코 안을 채우던 것을 완전히 빼내지는 않았다. 아주 서서히, 태주가 충분히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느릿하게 몸을 흔들며 안을 자극하고 있었다.
“하아, 으응, 미, 친 소리 하지 마.”
“봐요.”
침대 시트를 움켜쥐고 있던 태주의 손을 쥐었다. 그리고 그의 손등을 당겨 제 볼에 문대며 비비적거리자 태주가 숨을 헉 들이킨다.
“현우잖아요, 형.”
“읏, 아니―”
“지금 현우한테 박히고 있잖아요. 알고 있으면서.”
“아니, 아니, 아읏!”
태주가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땀이며 눈물, 타액으로 엉망이 된 얼굴에는 기운이 하나도 남아 있지 못했다. 그가 현우라는 건 알고 있다, 모를 리가 있나. 상진이 현우라는 것도, 현우가 상진이라는 것도 당연히 알고 있었다. 다만, 아직은 현우와 이런 짓을 한다는 건―
“하아, 형, 조여요.”
“읏! 야!”
“왜 아까보다 더 움찔거려요? 방금 더 흥분했잖아요.”
“아니, 거든?!”
“거짓말. 김현우한테 박히는 게 그렇게 좋아요?”
상진의 얼굴을 한 현우가 애교를 섞은 투로 투덜거렸다. 느물스레 입술을 당겨 미소 짓고는 짐짓 다른 사람인 양 굴었다.
“나랑 섹스하면서 다른 놈이나 생각하고 있고.”
“미쳤, 너 미쳤어? 무슨 소리, 읏, 으―”
잠시 느려졌던 허릿짓이 다시금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안을 가득 채웠던 젤이 질척거리며, 내벽을 가르는 페니스에 엉겨 붙는다. 찌걱, 찌걱, 장벽에 흡착되었던 거근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재차 안을 쑤셔 대고 있었다.
“아! 으응, 앗―”
“형, 어릴 때 이렇게 손 잡아 줬던 거 기억나요?”
현우가 태주의 손을 붙들었다. 손등을 침대 위로 누이고 손바닥과 손바닥을 맞닿은 채 손가락을 교차시켰다.
“하아, 내가 울면 형이 이렇게 깍지껴 줬는데.”
“읏! 아, 그만, 그, 그만.”
지금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 기어이 꺼내고만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떨쳐 내려 고개를 흔들었다. 허나 그의 손에 붙잡힌, 손가락 사이로 맞닿은 온기마저 떨쳐 낼 수는 없었던 것이다. 어린 태주의 손 안에 쏙 들어오던 어린 현우의 손은, 어느새 태주의 것을 덮고도 남았다.
그렇게 보살펴 주었던 동생과, 품에 안고 도닥거렸던 그 기억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태주는 턱 밑까지 차오르는 자기혐오를 내뱉지 못했다. 그저 끝도 없이 침범하는 그의 것을 당기듯 조였다.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스스로를 혐오하면서도 그 밑바닥에서 도사리는 어그러진 흥분을 외면하긴 힘들다는 사실이.
“형, 이름 불러 줘요.”
현우가 깊게 몸을 기울였다. 그를 한껏 몸 안으로 받아들인 채, 파르르 허리를 떨었다. 배덕감과 쾌감에 조이는 몸뚱이는 이미 그가 주는 쾌감에 함락된 지 오래였다.
태주가 타액으로 번들거리는 입술을 길게 핥았다. 바짝바짝 솟구치는 극치감이, 그를 온전히 눈에 담고 나서야 온몸으로 퍼졌다. 자르르 경련하는 손끝으로 그의 얼굴을 쓸었다.
“……현우, 김현우.”
“태주 형.”
현우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가 낮게 신음을 흘리고는, 바투 박아 둔 성기를 뽑아내었다가 퍽, 쑤셔 박았다.
“읏! 아!”
“윽.”
단숨에 내벽을 짓뭉갠 그의 페니스를 꽉 받아 물며 태주의 몸이 들썩거렸다. 어느 때보다 깊숙이 받아들인 그의 것을 고스란히 안에 담은 채, 또다시 질금질금 사정을 하고야 말았다. 이제는 실금을 하듯 그저 투명한 액체만 질질 새어 침대를 적신다.
“태주 형, 사랑해요.”
현우가 말했다. 그는 빙긋이 웃으며, 참아 왔던 욕정을 태주에게로 모두 토해 내었다. 뜨겁고 물컹한 감각이 내벽을 가득 채운다.
태주는 그 소름 끼치는 감각을 뿌리치지 않았다. 자신을 내려다보며 웃음 짓는 현우에게, 꾹 감았던 눈꺼풀을 열고 그를 마주보았다. 곧 무어라 소리를 내었으나 열기 섞인 신음에 가려져 입 밖으로 내보내지는 못했다.
다만, 그라면 들었을 것이다. 뻐끔거리는 태주의 입술을 가만히 보던 현우가, 함박웃음을 지으며 그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