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2. 김현우, 꿈
‘……태주, 형, 은?’
처음 내뱉은 말이었다. 내가 알던 내 목소리와는 너무나 다른, 굵지만 건조한 음성이 허공에서 흩어졌다. 나는 그 낯선 음성이 자신의 것이라는 걸 인식하지 못했다. 그것에 적응하는데도 꽤나 오랜 시간을 소요해야 했다.
그것이 참을 수 없을 만큼 화가 났다. 주위에서 눈물을 흘리는 아버지나 양모, 그리고 그의 가족들은 눈에 차지도 않았다. 아무 필요도 없는 존재들이다. 그저 멍청하게 이 침대에 누워서 보냈을 시간들이 안타깝기만 했다.
당장이라도 형의 곁에 가야 할 그 귀중한 시간을, 아깝게도 허비하게 되었다는 사실이.
너무나 오랜 기간 병원 신세를 지었기에 몸은 엉망이었다. 의식이 돌아옴과 동시에 나는 초조해졌다. 시간을 따라잡아야 했으니까. 내가 누워 있던 그 사이, 형의 곁에 다른 누군가가 있을까 봐 불안해졌던 탓도 있었다.
형은, 태주 형은 다정하니까 누구라도 곁을 바란다면 기꺼이 내어줄 터였다.
‘××동 ×××―×번지, ××편의점 골목 근처의 빨간 벽돌집에서 산답니다. 그곳에서 산 지는 오래되었고 집주인과도 친밀한 관계로 보입니다. 집주인은 슬하에 아들이 하나 있는데 도박 빚에 허덕이는 상황입니다. 그 외에 집을 드나들거나 특별한 관계로 보이는 인물은 없습니다.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에 정착한 지는 1년 정도 되었습니다.’
나는 그간 놓치고 있었던 형의 이야기들을 매일 들었다.
‘별다른 일은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어제와 동일하게 회사에 출근을 했고 밤 열 시 경에 퇴근을 했습니다. 퇴근길에 집 앞 편의점에 들렀다가 곧장 귀가했습니다. 가던 중에 동전을 하나 줍더니 좀 기뻐하는 눈치였습니다. 그리고 현관에서 다른 이와 통화를 했으나 상사인 것으로 추정됩니다.’
하루도 빠짐없이, 오늘은 어디에 갔고 무슨 일이 있었으며 누구를 만났는지. 그 시간만이 행복이고 기쁨이었다.
‘가족의 기일인 모양입니다. 오전 일찍 마트에 들렀다가 귀가한 후, 짐을 들고 ××납골당으로 향했습니다. 그곳에서 간단히 제사를 지내고 입구에서 서성거리고 있습니다.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지만 통화를 했고요. 이번에도 직장 상사로 추정됩니다. 음, 네. 오늘은 주말이죠. 아, 회사 대표를요? 알겠습니다, 염두에 두신 인물이 있으신가요. 네, ××물산 대표였던 김현우 씨. 알겠습니다, 자리를 마련해 보도록 하죠.’
형은 아직 아무도 곁에 두지 않았으며 외로워하고 있었다. 가족을 잃은 그의 슬픔을 위로하는 건, 상처 입었을 그를 이해하는 건, 반드시 나여야만 했다.
* * *
눈을 감으면 가슴 뛰었던 그 시간들이 스쳐 지나간다. 재활과 치료는 고되었을지라도 내일의 형을 기대하며 웃음 지었던 날들이. 하루하루가 설레던 그 기억이.
그러나 이윽고 눈꺼풀을 열어야 했다. 동시에 쿵쿵 심장이 뛰던 것이 쥐죽은 듯 잠잠해졌다. 차문을 닫고 내리자 무거운 추가 떨어지듯 감정이 침잠했다.
오랜만에 방문한 그 집은 여전했다. 부와 명예를 과시하듯 으리으리한 대문부터, 저택이라고 이름 붙여도 손색이 없을 만한 크기의 공간까지. 정원을 따라 걸으면 멀리서부터 컹컹, 개 짖는 소리가 들리곤 했다.
검은 털의 짐승이 현우를 향해 이를 드러내며 침을 흘렸다. 마치 처음 보는 인물이라도 되는 듯, 경계심을 한껏 드러내었다. 가시가 삐죽삐죽 솟아난 목걸이가 그것의 목에 걸려 쩔그렁 소리를 낸다. 잠시 그것에 시선을 두었다가 이내 거두었다.
저택의 외양도 내부도, 바뀔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조금도 달라진 건 없었다. 시시하기 짝이 없다.
“그대로네요.”
현우가 덤덤하게 말을 내뱉자 맞은편에 앉은 이가 미간을 구겼다. 그 중년의 남자가 하, 짧게 숨을 내뱉고는 입을 열었다.
“그대로라고?”
기가 차다는 얼굴이었다. 현우가 아닌, 그의 입장에서는 그럴 만도 했다. 태주와 현우가 느닷없이 들이닥친 이후로 이 집에서 그대로인 것은 단 하나도 없었으니까.
김이 폴폴 나는 커피 잔을 들었다가 다시 내려놓았다.
“계속 그 아이와 살 작정이냐.”
그는 그렇게 물음을 던지며 그날을 떠올렸다.
성태주였나, 어릴 적에나 보았던 그 아이는 곱게 자라 있었다. 모진 세월이 그 아이만 빗겨 가기라도 한 듯 고생이라고는 조금도 하지 않은 것 같은 얼굴이었다. 그런 얼굴로 어깨를 떨고 있었다. 파르르 떨리는 손끝에는 두툼한 흰 봉투를 쥔 채였다.
“네.”
“너 이 자식, 정말로―”
덜컹거리며 자리에서 엉거주춤 일어서자, 현우의 시선이 올라섰다. 정면을 향하는 턱 끝은 조금도 들리지 않았으나 눈동자만이 눈꺼풀로 올라붙었다. 흉흉하게 날선 시선에 흠칫, 남자의 기세가 죽고 말았다.
“그러는 아버지야말로 계속 살고 있잖습니까.”
뒤는 생략했다. 양모를 입에 담는 것조차 몸서리가 쳐졌다.
“나간 지 오래다. 그러니 쥐 죽은 듯 조용하지.”
“그저 여행이라는 핑계로 요양을 간 것뿐이죠. 어차피 완전히 갈라선 것도 아니실 텐데.”
그날 이후로 양모의 존재는 이 집에서 공기나 먼지, 아니, 그 정도도 못 되었다. 예전처럼 빳빳하게 고개를 들 수도 없거니와 이복형제들에게 갔던 수많은 혜택과 재산도 다시금 회수되어야 했다. 그리고 앞으로 가야 할 모든 이득마저도 포기하는 것이 맞았다.
그러나 아버지는 양모와 그의 형제들을 완전히 쳐 내지는 못했다. 현우는 그가 그럴 것이라고 예상하던 바였으나, 차마 태주에게는 말할 수 없었다. 그들은 이 저택에서 아무것도 아닌 존재들이 되었다. 하지만 호적과 수혜는 그대로였다.
“괜한 일로 말을 만들 필요 없다.”
가족끼리의 분란은 좋은 이슈가 아니었다. 특히나 그처럼 여느 기업의 회장쯤 된다면 말이다. 게다가 여기저기서 먹잇감으로 물어뜯기 좋은 사연이지 않은가.
대중들의 흥미를 자아낼 재벌가의 모략과 암투, 그것을 중심으로 한 의문의 사고. 계모와 적장자, 떠들썩했던 납치사건과 사용인 매수 의혹. 무엇보다 그 사고로 식물인간이 되었던 적장자가 기적적으로 깨어나기까지 했다.
한 편의 시나리오로 만든다면 아주 훌륭한 아침 드라마가 되었을 것이다. 막장이라고 욕을 먹을지라도 시청률 하나는 건졌을 테지.
“아들을 잃을 뻔 하셨는데 그걸 ‘괜한 일’이라고 하시네요.”
“죽지 않았으니 되었다.”
맞다, 저런 인간이었다. 그는 과정이야 어찌되었든 결과만 명확하면 그거로 만족하는 인간이었다. 주변의 그 누가 상처를 입건 눈물을 흘리건 상관하지 않았다. 오로지 그 자신의 앞길에만 문제가 없으면 된다. 만약 그의 발끝에 돌멩이가 챈다면 방법은 두 개뿐이리라. 덮거나 제거하거나.
이번에 그는 덮는 것을 택했다.
“무슨 일로 찾아온 거냐. 오랄 때는 오지도 않더니만.”
이유는 단 하나밖에 없었다. 태주가 가라고 했으니까. 아, 정확히는, 가라고 직접 말을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어딜 봐도 마음에 쓰이는 모양이었다. 혹여 그로 인해 자신과 아버지의 사이가 더 틀어진 건 아닐지, 그게 걱정되었을 터였다. 태주는 다정하니까.
그러니 물어보지도 못하고 혼자 끙끙 앓았을 것이다. 현우도 그의 속내쯤이야 진작 눈치채고 있었다. 그러나 잠시 두었다. 오롯이 자신만을 걱정하며 속을 끓이는 그가 너무 귀여웠다. 사랑스러웠다. 당장이라도 가둬 두고 싶을 정도로.
“아버지가 만족할 답을 가지고 왔습니다.”
내내 미간을 찌푸리던 중년의 사내가 눈썹을 움찔거렸다. 그가 만족할 답이란, 경영권에 대한 것이었다.
“시간을 조금 더 주세요. 아버지가 원하는 대로 할 테니까.”
그는 보수적이고 꽉 막힌 인간이다. 그런 성정이니 그 누구도 믿지를 못했다, 양모도 그의 아들들도. 제 피가 이어져 있지 않았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의 피가 이어진 이라고는 오로지 현우뿐이었다. 어머니는 자신을 낳다가 세상을 떠났고 양모와는 자식이 없으니 다른 핏줄이 더 있을 리가 없지.
그는 식물인간으로 누워 있던 현우가 눈을 떴을 때에도 그랬다. 입 안이 바싹 마른 채 겨우 숨소리를 내던 자신을 보며 눈물을 쏟았으나 바로 다음날부터 후계자 수업을 운운했다. 열 해를 건너 겨우 눈을 뜬 핏줄에게, 아직 몸도 가누지 못하는 아들에게 말이다.
“드디어 네가 정신을 차렸구나.”
만면에 웃음을 띤 그가 손을 내밀었다. 허나 그저 허공에서 머무르고만 있었다. 현우는 그의 손을 잡지 않았다. 그에게 닿고 싶지 않았다. 닿을 생각도 없었다.
아직 제 손에는 그의 온기가 남아 있으니까. 더러운 걸 묻힐 수는 없다.
“대신 조건이 있습니다.”
현우는 그에게 두 개의 조건을 내걸었다. 하나는 양모와 그 아들들에 대한 처분권이었고 다른 하나는 태주에 대한 보호 조건이었다. 설령 회사를 이어받고 그 자리에 앉게 되더라도, 태주와 떨어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것에 대해 못을 박아야 했다. 분명 핏줄에 또다시 핏줄을 이어 가려고 할 테니.
“대체 무슨 꿍꿍이인 거냐. 뭘 어떻게 하려고.”
다시 깨어났을 때도 현우는 양모나 그의 아들들 따위에는 관심조차 없었다. 그들이 자신을 어딘가로 보내려 했을지라도, 혹은 죽이려 했을지라도 상관없었다. 그런 시시한 것들보다 오로지 한 사람의 곁으로 돌아가는 것이 더 중요했다.
“아버지 얼굴에 먹칠할 일은 없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그러나 마음이 바뀌었다. 역시 그냥 두는 것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는다. 태주를 아프게 한 인간들을 그냥 두어서는 안 되겠지. 차근차근 밟아 줄 것이다. 처음에는 손톱 하나로, 그리고 그다음에는 팔꿈치까지, 이어서는 팔을 하나 뽑을 것이고. 종국에는 몸뚱이조차 남지 못하게 할 것이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재산과 명예를 송두리째 앗을 생각이었다. 빈털터리로 거리에 나앉게 만든다면 더없이 좋겠지. 그렇게 된다면 아마 꿈틀, 할 터였다. 그래도 상관없다. 현우는 그들이 설령 그 지난 일들을 들먹일지라도 태주를 지킬 자신이 있었다.
물론 그쪽도 피해자를 건드리는 멍청한 짓은 하지 않을 테지.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는 한이 있더라도.
* * *
[이야기는 잘했어?]
“네, 그럼요.”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그의 목소리는 밝았다. 마음이 놓인 모양이다.
[그, 아버지, 아니, 회장님은 괜찮으시지?]
“네, 괜찮으세요.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형.”
[걱정은 무슨. 나는 그냥 네가…….]
옅게 숨을 내쉬는 소리와 함께 그가 웃음을 머금었다.
[아니다, 아무튼 너도 괜찮은 것 같아서 다행이야.]
“저요?”
[응, 목소리가 밝은 걸 보니 마음이 놓여서.]
“아, 네. 조금 설렜거든요.”
쿵쿵, 다시 심장이 뛰었다. 하루하루가 설레던 그날들처럼 말이다.
[설렜다고?]
“네, 저번에 형이 그랬잖아요. 하고 싶은 일은 없냐고.”
현우는 그렇게 대꾸하며 작게 웃었다. 들뜨고 설레는 기분은 입가에만 머무르던 웃음을 흘리게끔 했다. 자신의 목소리의 변화를 눈치챘는지 그 역시 조금 들떠 보였다.
[응. 아, 혹시 하고 싶은 일이 생긴 거야? 뭔데? 설마 저번에 말한 취미?]
“그건 아니지만.”
그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갖기를 바랐다. 또래의 다른 청년들처럼 대학교도 가고, 하고 싶은 일이나 꿈도 가지게 된다면 좋을 것이라고 몇 번이나 말했다. 그의 말에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실상 현우로서는 아무 의미 없는 소리였다.
이미 꿈은 이루었는데. 형이 곁에 있으니까.
[뭐야, 궁금하게! 집에 바로 올 거지?]
“네, 지금 출발하려고요.”
하지만 이제 또 다른 꿈을 꾸게 되었다. 그를 중심으로, 제 세계의 전부이자 유일한 존재인 성태주를 중심으로 말이다.
현우가 천천히 핸들을 꺾었다. 둥글게 말린 눈매를 감추지 않고 입술 끝을 비뚜름하게 당겼다. 머지않아 이루게 될 그의 꿈이 눈앞에 펼쳐져 비릿한 웃음이 터진다. 무척이나 기대가 되었다. 절망으로 빚어 둘 그들의 얼굴이, 손에 잡을 칼자루로 그들을 난도질할 날을. 태주를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었다. 그가 괴로워한 만큼, 아니, 그보다 몇 배라도 더 되돌려 줄 것이다.
가진 것을 모조리 빼앗는다면 그들도 태주 앞에 머리를 조아리고 무릎을 꿇겠지. 그럼 태주는 기뻐할까, 아니면 슬퍼할까. 어떤 반응이든 좋았다. 그는 기쁘든 슬프든, 혹은 두려움에 젖어 온몸을 덜덜 떨지라도 자신을 감싸 줄 테니까.
황홀한 상상에 그만 오싹, 뒷목에 소름이 돋았다. 이제 또 다른 미래를 기대할 차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