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 떠나요 둘이서 (16/21)

3. 떠나요 둘이서

간만에 낭만인 상급자 3인이 모였다.

엄밀히 따지면 사무실에서 지겹도록 얼굴을 마주한 게 사실이지만, 사적으로 모여 반주를 곁들이는 느긋한 식사는 실로 오랜만이었다.

물론 업무상 밀접하게 엮인 사이다 보니 온전하게 사담만 나누기가 어렵긴 했다. 증류주를 한 모금 들이켠 선호는 광어회로 입가심을 한 뒤 말을 꺼냈다.

“이번에 콜라보한 거 반응 좋더라. 다음 것도 바로 이어지게 한댔지? 잘 돼가?”

나이팅의 인기몰이로 요즘 낭만인은 분주했다. 기존에는 데이트 코스 추천과 그에 따른 예약 기능을 중점으로 운영했다면, 근래에는 각종 업체들과 협업해 독점 서비스를 시도하고 있었다.

처음에만 해도 단발성 이벤트였으나 뜻밖에도 반응이 좋았다. 그러다 보니 정식 서비스로 확장하면 좋겠다는 의견이 나와 꾸준한 기획이 이어지는 중이었다.

덕분에 요즘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마케팅 팀장이 서둘러 회를 삼키고 대답했다.

“어. 휴가철 지나고 이제 한풀 꺾일 때라 그런지 캠핑장 업주들이 호의적이야. 렌트 쪽도 그렇고. 그래서 뭐, 수월해.”

업무의 진행 상황을 물은 이는 선호였으나 돌아오는 대답에는 의주가 눈을 빛냈다. 그는 야들야들한 생선살에 고추냉이를 얹다 말고 마케팅 팀장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당사자가 당장 알아차릴 수밖에 없을 만큼 선명한 눈길이었으나 마케팅 팀장은 꿋꿋했다. 질문을 던진 선호만 쳐다보며 말을 이어나간다.

“패키지는 아직 상의 중이긴 한데, 어떤 데는 직접 해보고 보완해서 나가는 게 어떠냐고 먼저 물어보더라.”

“오 진짜?”

“아무래도 초보자들 입문 패키지나 다름없으니까 이걸로 신규 유입이 좀 있었으면 하나 봐. 그래서 더 신경 쓰는 거 같애.”

“이유가 뭐든 먼저 그렇게 권해주면 우리 쪽에서는 환영이지. 원래 해오던 방식이니까.”

두 사람의 대화는 차분하게 이어졌다. 그리고 선호의 말을 끝으로 잠시 공백이 생긴 틈을 타 의주가 말을 거들었다.

“맞아.”

간결하게 내뱉는 목소리는 짧았으나 시선을 모으기에는 충분했다.

이야기를 나누던 두 사람이 빠르게 의주를 돌아본다. 그들의 얼굴에는 마치 짠 것처럼 ‘웬일이래?’ 하는 기색이 가득했다.

자신의 분야가 아닌 이상 크게 관심이 없는 의주임을 알기 때문이다. 셋이 있는 자리에서 업무 얘기가 오갈 때면 늘 이러나저러나 상관없다는 듯이 흘려듣던 그가 어쩐 일로 동조를 하는지 의아해하는 게 분명했다.

그리고 그 답을 알아차리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여기 적임자도 있고.”

의주가 퍽 뻔뻔한 낯을 하고서 자신을 턱하니 가리켰다. 선호는 즉각 받아쳤다.

“무슨 적임자?”

“캠핑 초보자들 입문 패키지라며.”

“근데.”

“나는 3년 전에 너희랑 가본 게 처음이자 마지막 캠핑이니까, 입문자 관점에서 체험해보고 좋은 점 아쉬운 점 날카롭게 판단할 인물로 적합하다는 거지.”

그러니 업체에서 먼저 제안한 패키지 테스트에 자신이 임하겠다는 뜻이었다.

그것도 잘 포장했을 때 얘기고, 적나라하게 해석하자면 저 놀러 가게 판을 깔아달라는 소리다. 그 사실을 바로 알아차린 선호는 기가 막힌다는 양 헛웃음을 쳤다.

“우리 회사 앱 콘셉트가 뭔지는 알지? 네가 누구랑 가게.”

커플을 겨냥하는 서비스를 (대외적인) 솔로가 테스트하는 건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의미로 하는 말이었다.

뭐, 전에도 나이팅에서 메인으로 내세울 업체를 선정하기 위해 의주의 손을 빌린 적이 있긴 했지만….

그때는 숙박업소의 시설 자체를 살펴보려는 목적이 컸다. 그러나 지금은 커플이 1박 2일, 혹은 그 이상을 함께하는 전 과정을 겪어볼 필요가 있었다. 그 때문에 반문하자 의주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받아친다.

“나한텐 우리 광이 있지.”

의주를 지켜보던 두 사람의 표정이 경악 비슷하게 굳어졌다.

벌써 시간이 꽤 지난 일이지만 의주가 재광에게 고백했다가 차였다는 사실, 그리고 술에 취해 대뜸 입을 맞춘 해프닝을 아직도 또렷이 기억하기 때문일 터였다.

순식간에 파렴치한 보듯 바뀌는 눈길을 알아차린 의주는 눈썹을 꿈틀, 움직였다. 누가 봐도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는 안색이다.

“뭐, 왜. 사람을 왜 그렇게 봐.”

“너 아직도 재광 씨한테 미련 못 버렸냐?”

선호는 지레 질린 얼굴을 하며 말했다.

충분히 그럴 수 있었다. 재광이 퇴사한 이후 두 사람 사이가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모르니까. 아마 그의 눈에는 이미 거절 의사를 밝힌 재광에게 의주가 끈질기게 들러붙는 그림으로 보일 게 뻔했다.

그것도 절절한 순애보가 아니라, 원하는 바를 이루지 못해 남은 오기 같은 감정으로.

그런 속내를 훤히 읽은 의주는 바락 따지려 했다.

“야, 미련이 아니라 재광이랑 나는…!”

그러나 패기 좋게 내던진 말은 끝내 주춤거리며 잦아들었다.

실은 사실대로 얘기하려 했다. 너희가 몰라서 그렇지 이미 사귀는 사이라고, 그것도 한참이나 됐다고 말이다. 다분히 충동적이기는 해도 이 자리에서 못 할 이야기는 아니었다.

- 두 분한테는 그냥 얘기해도 돼요.

언젠가 재광이 두 사람에게는 솔직히 터놔도 좋다고 허락했기 때문이다.

재광은 흔쾌했으나 되레 의주가 반대했다. 그 둘에게는 절대 얘기 안 할 거라고 팔을 걷어붙이며 씩씩대진 않았고. 기회를 봐서 제대로 열애 사실을 공표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정도였다.

플래카드 걸고 단상 위에 올라가 중대 발표를 할 것까진 아니지만(할 수 있다면 좋긴 하겠지만), 그래도 최소한의 격식은 차리고 싶은 거다. 적어도 재광과 함께 있는 자리에서 한마음 한뜻으로 관계를 알리고자 했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상황은 적절치 않았다. 재광도 없는데다가, 욱해서 말실수처럼 고백하는 꼴은 정말이지 모양 빠지는 일이 아니던가.

“…사이가 좋다고 몇 번 얘기했지?”

결국 의주는 적당히 말을 끝마쳤다. 잠시 주춤대다가 힘이 탁 풀린 투로 마무리한 터라 더 미심쩍은 눈길이 돌아오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친구 좋다는 게 뭔가. 야근 중에 재광이 사 온 초밥을 먹었던 마케팅 팀장은 애써 의주에게 동조해줬다.

“그래 뭐, 저번에 재광 씨가 초밥도 사 오고. 잘 지내는 거 같긴 하더라.”

비록 ‘네, 네 그러시겠죠’ 하는 말투였으나 의주는 이만하면 만족하는 듯했다. 자신과 재광의 각별함을 증언해줄 사람이 있단 사실이 뿌듯한 얼굴이었다.

“야, 근데 나는 만에 하나 너랑 재광 씨가 쌍방이라고 해도….”

선호는 거기다 대고 다시금 말을 얹었다.

“괜히 내가 재광 씨한테 미안할 거 같다.”

쓸데없이 진지한 목소리였다. 그만큼 진심이 담겨 있었지만 이번에 의주는 발끈하지 않았다.

선호가 하는 말의 의미를 짐작하는 까닭이다. 아마 그는 의주의 이전 연애들을 떠올린 게 분명했다.

매사에 자신이 최우선인 삶을 살아온 의주에게는 연애라고 예외가 아니었다. 늘 상대방보다는 제가 더 중요했다. 조금 과장하자면 연애를 본인의 완벽을 구현하기 위한 조건 정도로 생각했다고도 볼 수 있었다.

- 너는 그냥 거울 보고 너랑 사귀어. 이럴 거면 나랑 왜 만나니?

그러니 그 끝이 좋았을 리가. 선호는 아마 근면성실하고 좋은 직원이었던 재광이 상처를 받을까 봐서 미리 걱정을 하는 게 틀림없었다.

그 속을 들여다본 의주는 기분 나빠하지 않았다. 오히려 기대됐다. 저만 잘난 줄 알고 사방으로 날뛰던 여의주가 쏙 빼닮은 세 살 연하 후배에게 간, 쓸개 다 빼줄 것처럼 굴고 있다는 걸 알면 제 친구들이 얼마나 놀랄지 말이다.

의주의 만면에 흥미로운 미소가 번졌다.

“뭐야, 왜 그렇게 웃어.”

그게 퍽 음흉해 보였던지 선호가 답지 않게 눈동자를 버벅거렸다. 이어 의주가 생긋 웃어 보일 때는 소름이 돋는다는 양 팔뚝을 쓸었다.

“뭐, 뭔데. 말로 해 인마, 그렇게 웃지 말고.”

“쓸데없이 미안해하지 말고 옛정을 생각해서 재광이 바람이나 쐬게 해달라고.”

의주는 재차 요구하는 순간까지 상냥한 미소를 잃지 않았다.

????

당연하게도 선호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일전에는 업무 시간을 빼앗아 타지로 보내야 하는 상황이었기에 어쩔 수 없이 의주를 밖으로 내보냈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지 않던가.

직원들의 성향에 따라서는 부담스러운 업무가 아니라 휴식이 될 수도 있는 기회였다. 이걸 윗선에서 딱 잘라 해결해버린다면 오히려 그편이 더 불공평한 처사가 될 수도 있다는 게 선호의 입장이었다.

그는 정말로 사내 인트라넷을 통해 지원을 받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지원자가 나타났다. 그렇게 의주가 탐내던 기회는 남의 손에 쥐여지는 듯했는데….

“광, 잠깐만.”

여의주가 누구인가. 천운의 사나이다.

업체들과 조율해 일정을 다 잡아놓은 시점에서 가기로 한 직원에게 피치 못할 사정이 생겼다. 그것도 디데이까지 단 이틀을 남겨두고서.

급히 다른 직원들을 수소문 해보기도 했으나 대타를 구하기는 쉽지 않았다.

결국, 기회는 의주에게로 돌아왔다.

“아이스크림 먹으면서 갈까?”

덕분에 잔뜩 들떠 장을 보러온 참이었다. 의주는 채소 코너로 향하려는 재광을 불러 세웠다. 그리고는 냉동고에 든 아이스크림을 들어 보였다.

“….”

낯익은 포장지를 확인한 재광은 별다른 대꾸 없이 그대로 의주를 지나쳐 제 갈 길을 갔다.

의주가 집어 든 게 하필이면 밀크셰이크 맛 파우치 아이스크림이었기 때문이다. 입주 청소를 하던 날, 식후에 입가심으로 먹으려다가 절반은 몸에 바르고 만 그 제품.

당시에는 생경한 감각을 느끼느라 바빴으나 평범한 일과 중에 그때의 기억을 상기하려니 적잖이 민망했다.

그래서 도망치듯 걸음을 빨리하자 등 뒤로 빠른 발소리가 따라붙는다. 부지런히 구르는 바퀴 소리도 함께.

“너무 매정한 거 아니야?”

“그러니까 괜한 장난치지 말고 할 일만 해요. 빨리 출발해야 된다면서요.”

“네, 네. 분부대로요.”

어깨를 나란히 한 의주는 능청스럽게 대꾸하며 제 연인의 엉덩이를 툭툭 쳤다.

“걱정 마. 누가 봐도 각별한 형제처럼 보일걸?”

한 치의 오차 없이 기겁하는 재광에게 사뿐히 윙크까지 날렸다.

당연하게도 재광이 그 한마디에 안심할 리는 없었다. 한 발자국 크게 떨어져 선 그는 “아무리 그래도 밖인데…” 하며 말문을 텄다.

듣지 않아도 뒤가 다 들리는 얘기였다. 분명 밖에서 티 좀 내지 말라며 타박할 테다. 뒤 내용을 짐작한 의주는 단박에 말허리를 자르고 천연덕스럽게 미소 지었다.

“사랑하는 동생, 더 먹고 싶은 거 있어? 형이 다 사줄게.”

긴 눈매를 선명하게 끔뻑이며 하는 말에는 재광도 더 버틸 재간이 없었다. 그가 끝내 웃음을 터뜨리자 틈을 포착한 의주가 곧바로 벌어진 거리를 좁힌다.

이번에는 대범하게 어깨 위로 팔을 얹는데도 재광이 잠잠했다. 이제야 만족스러운 표정을 한 의주가 가뿐한 동작으로 쌈 채소 세트를 집어 카트 안에 넣었다.

이후로는 순탄했다. 내일 아침 겸 점심으로 먹을 라면과 당장 오늘 저녁에 구워 먹을 고기를 고르는 것으로 장보기가 마무리되고, 수월하게 계산까지 마쳤다.

주차장으로 나오는 두 사람의 손에는 커다란 봉투가 하나씩 들려 있었다. 1박 2일, 그것도 오후부터 머무르는 일정임을 고려하면 참으로 거한 양 아닐 수 없었다.

그래도 간만에 기분을 낸다고 생각하면 이 정도의 과소비는 봐줄 만한 수준이었다. 나란히 걸어 나온 둘은 기둥 옆에 세워놓은 차로 발맞춰 다가갔다.

“엄청 눈에 띄긴 하네요.”

들고 있던 마트 봉지를 의주에게 넘겨준 재광이 말했다. 눈으로는 차체를 훑어보면서였다.

이미 짐이 가득한 트렁크를 정리해가며 물건을 실은 의주가 곁을 돌아본다. 그는 경쾌하게 트렁크를 닫고서 씨익 웃었다.

“그치, 좋지. 나도 큰 차로 바꿀까 봐.”

그러고는 부지런히 운전석으로 걸음을 옮긴다. “그건 좀” 하며 충동을 만류하려던 재광도 서둘러 조수석 쪽으로 갔다.

오늘 두 사람의 여정을 책임질 차는 의주의 중형 세단이 아닌 풀 사이즈 SUV였다. 예약해둔 차량을 인수하러 렌트카 업체에 방문했다가 즉석에서 변경한 프리미엄 모델이다.

확실히 사비를 들여 업그레이드한 보람이 있었다. 대형차다 보니 내부 공간이 넉넉해 각종 캠핑 장비를 싣고도 여유가 충분했고, 프리미엄급 차량답게 승차감도 좋았다.

“얼마나 걸릴까요?”

안전벨트를 맨 재광은 안락한 쿠션감을 느끼며 의자에 몸을 묻었다. 조금 더 편한 자세를 찾으려 머리를 고쳐 세우는 동안 내비게이션을 찍던 의주가 가볍게 대꾸했다.

“두 시간 반 정도? 도착해서 짐 풀고 나면 딱 저녁 시간 될 거 같은데?”

말을 마친 그는 이미 시트에 파묻혀 있는 재광을 돌아보고 픽 웃었다. 그러고는 별안간 팔을 뻗어 재광의 뺨을 손등으로 문지른다. 그런 뒤에야 출발할 채비를 하는 모습이 분주했다.

????

두 사람은 캠핑장 가장 안쪽 구역에 차를 댔다.

꽤 좋은 위치였다. 다른 자리에 비해 공간을 넓게 사용할 수 있었고, 여타 방문객들과 동떨어져 남의 시선에서도 자유로웠다.

심지어 바로 앞에는 강이 흘러 정취를 즐기기에도 좋았다. 물이 흐르는 소리나 그러한 풍경만으로도 여기까지 온 이유가 모두 설명되는 것만 같았다.

패키지에 포함된 장비는 또 어떻고. 트렁크에서 이어지도록 설치한 텐트는 풀 사이즈 차량만큼이나 여유로운 크기를 자랑해 성인 남성 둘이 사용하기에도 모자람이 없었다.

처음에는 설치에 조금 애를 먹은 것도 사실이나 요령을 익힌 뒤부터는 일사천리였다. 우레탄 창에 그늘 막까지 갖춘 둘은 늦지 않게 저녁 준비에 들어갈 수 있었다.

저녁 메뉴는 예고되었듯 숯불구이였다. 제공된 화로에 불을 붙인 의주는 팔을 걷어붙이고 집게를 독점했다. 그릴 위에 올라간 고기와 채소를 보는 눈길에서 완벽하게 조리해내겠다는 의지가 엿보였다.

“이거 먹어 봐.”

속으로 카운트라도 세는 사람처럼 집중하던 의주는 앞뒤로 골고루 익은 고기를 재광의 접시에 놓아줬다. 지금 먹어야 맛있다며 익은 고기를 모조리 집어다 재광의 앞으로 옮긴다.

재료들이 익는 동안 멍하니 앉아 있던 재광은 그제야 젓가락을 들었다. 시키는 대로 잘 익은 고기 한 점을 후후 불어 입안에 쏙 넣자 의주가 잔뜩 기대하는 눈으로 이쪽을 본다.

“진짜 맛있다.”

진지한 표정으로 살코기를 몇 번 씹던 재광은 금세 엄지를 척 들어 보였다. 동그랗게 뜨인 눈이 형식적인 리액션이 아님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의주는 대놓고 뿌듯한 안색을 했다. “역시 못 하는 게 없지” 하며 부러 거드름을 피우는데도 재광이 눈을 흘기거나 떨떠름한 내색을 않는다. 대신 그는 가슴을 쫙 편 의주의 모습을 살피다가 급히 젓가락을 놀렸다.

“아.”

윤기가 좌르르 흐르는 살치살을 기름장에 찍어 내미는 손길이 자연스러웠다.

그때까지도 집게를 쥐고 있던 의주는 불 위를 가로지르는 재광의 팔을 슬그머니 옆으로 밀었다. 그런 뒤에야 제게 내밀어진 고기를 받아먹는다. 그는 느릿하게 턱짓하며 여유로이 음미하더니 곧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내가 구웠지만 진짜 예술이다. 광아, 많이 먹어.”

“쌈 싸줄까요?”

많이 먹으라는데도 되레 쌈을 싸주겠다는 재광에게는 별말 하지 않았다. 이미 그의 볼이 불룩하게 튀어나온 걸 확인했기 때문이다. 알아서 잘 챙겨 먹는 재광을 보고 흐뭇하게 웃은 의주는 흔쾌히 수긍했다.

여의주 님의 첫 팀원답게 배움이 얼마나 빠른지 몰랐다. 생채소에 고기를 두둑이 올려 쌈을 싼 재광이 이번에는 불을 피해 팔을 뻗는다. 의주는 냉큼 받아먹었다.

쌈은 물론이고 재광의 손가락도 함께.

“아이….”

이제 재광은 이런 실없는 장난에 기겁하지 않았다. 이번에도 ‘또 그런다’ 하는 눈으로 흘겨보고는 슬그머니 자신의 손가락을 빼내는 게 다였다.

재광을 놀려먹는 재미를 즐기던 의주로서는 퍽 아쉬운 반응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것도 꼭 나쁘지만은 않았다. 그만큼 재광이 제 행동 하나하나에 익숙해졌다는 뜻이니까.

“줘요. 내가 할 테니까 좀 편하게 먹어요.”

그렇지만 이건 명백히 서운했다. 재광 딴에는 혼자 고생하지 말라는 의미로 베푸는 호의겠지만, 의주에게는 재광의 챙김을 받을 수 있는 절호의 찬스를 빼앗기는 격이었다.

그 때문에 잽싸게 집게를 뒤로 빼자 재광이 황당한 표정으로 눈동자를 도르륵 굴린다.

“이건 잘 굽는 내가 할게, 내 밥은 네가 계속 챙겨줘.”

결국엔 계속 먹여달라는 뜻이었다. 당당히 내뱉는 요구에는 재광이 허, 하고 바람 빠지는 소리를 냈다.

“양파랑 마늘만 잔뜩 넣어서 줄까 보다.”

이어지는 말은 재광의 언사치고 꽤 짓궂었으나 그에 동요할 의주는 아니었다.

“나 그거 좋아해.”

또랑또랑 눈을 빛내며 오히려 기대에 부푼 안색을 해 보인다.

이렇게 나오면 뻔뻔함에 있어 걸음마 수준인 재광이 당해낼 수 있을 리 없었다. 재광은 결국 양파와 마늘을 하나씩 곁들인 쌈 위에 고기를 두 점 얹었다.

“자요.”

보란 듯이 투박하게 내미는데도 개의치 않은 의주는 흡족하게 웃으며 쌈을 받아먹었다. 그러면서도 새로 올린 고기를 뒤집는 타이밍만큼은 놓치지 않았다.

????

식사는 아주 거하게 마쳤다. 고기를 양껏 먹은 다음에는 즉석밥에 의주가 직접 제조한 양념장을 넣어 볶음밥을 해 먹었고, 식사가 정리됐다 싶을 즈음에는 과일을 씻어다가 후식까지 말끔하게 해치웠다.

배를 가득 채우고 나자 나른함이 밀려왔다. 대충 주변 정리를 마친 두 사람은 접이식 의자를 나란히 붙여 앉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조리용으로 쓰이던 화로는 이제 남부럽지 않은 장작불 역할을 했다. 타닥타닥 타들어 가는 소리와 함께 피어오르는 불꽃이 꽤 운치가 있다. 소위 말하는 불멍을 즐기기에도 제격이었다.

재광도 이 분위기를 마음껏 즐겼다. 강물 흐르는 소리에 불꽃이 튀는 소리가 조화롭게 어우러지고, 눈앞에는 아담하게 타오르는 불까지 있으니 이보다 더 평화로울 수는 없었다. 그는 온전히 긴장이 풀린 얼굴로 화로를 바라봤다.

“광아, 자?”

넋을 놓고 감상하느라 기척이 없었던 탓인지 의주는 재광이 잠들었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조심스럽게 묻는 말에 “아뇨” 하고 대답하자 기다란 손가락이 올라와 뺨을 톡, 친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아… 그냥 멍 때렸는데.”

몹시도 진솔한 대답에는 의주가 부러 아쉬운 내색을 했다.

“이럴 때 ‘형 생각’ 이런 거 해줘야지.”

“옆에 있는데 뭘.”

“그러니까, 옆에 있어도 보고 싶어 해달라고.”

그의 떳떳한 애정 요구에 재광은 그냥 푸스스 웃고 말았다. 의주 또한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따라 웃을 뿐, 더 강요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뭐라 한마디는 해줄까, 그런 생각이 든 것은 조금 뒤였다. 의주가 한 차례 보챈 영향인지 ‘그동안 너무 무뚝뚝하게 굴었나’ 싶어진 것이다. 여전히 나른하게 불을 응시하던 재광은 불쑥 고개를 돌려 의주를 봤다.

직전의 재광처럼 조용히 불꽃을 바라보는 의주의 옆얼굴이 그럴싸했다. 반듯한 이마에서 코까지 곧게 떨어지는 선은 입체적이고, 불꽃을 반사하는 날카로운 눈매는 유난히 깊어 보였다.

나쁘지 않은 분위기였다. 타들어 가는 장작 소리, 매끄럽게 흐르는 물소리가 자극적이지 않게 귓가를 울리고 적당한 바람이 머리칼을 흔든다. 이만하면 나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완벽한 수준이었다.

평소라면 낯간지러워 꺼내지도 못할 말을 해볼 마음이 설 만큼.

“…고마워요.”

재광이 나직이 읊조리자 곧바로 의주의 시선이 돌아온다. 갑작스러운 고백에 조금은 놀란 듯하면서도 유난히 그윽한 눈길이었다.

“뭐가?”

의주가 한껏 자상한 목소리를 내어 물을 때는 지그시 마주하던 재광의 눈이 끝내 정면으로 돌아갔다. 대신 그는 의주의 어깨에 제 머리를 툭 떨어뜨렸다. 꾸준하게 타오르는 불꽃을 응시하며 잇는 음성이 조심스러웠다.

“그냥….”

“그냥?”

“나는 너무 단조로운 사람인데, 형이랑 만나면서는 새로 경험하는 게 많은 거 같아서.”

의주가 짧게 웃음을 흘리는 타이밍에 맞춰 어깨가 들썩거린다. 그는 곧 재광의 머리 위로 고개를 기울였다.

“하나도 안 단조로운데. 나는 네가 세상에서 제일 재밌어.”

“뭘 또 세상에서 제일까지.”

“진짠데?”

멋쩍어하는 재광의 대꾸를 곧장 받아친 의주는 도로 몸을 반듯이 세웠다. 그러더니 여태 제 어깨에 기대 있던 재광의 볼을 가볍게 감싸 자신과 마주하게 만든다.

닮은 얼굴을 비스듬히 내려다보던 의주는 옅은 미소를 입가에 걸고서 속삭이듯 말했다.

“나는, 네가 나랑 안 닮았어도 결국엔 너 좋아했을 거야.”

별말 없이 의주를 보는 재광의 낯에 퍽 감동한 기색이 돈다. 빠르게 낌새를 알아차린 의주는 빙긋 웃어 보이다가, 이내 재광의 양 볼을 감싼 손을 제 쪽으로 당겼다.

두 입술이 짧게 닿았다 떨어진다. 가까이서 마주 본 두 사람은 장난스럽게 웃었다. 그리고는 다시 한 번 입술을 겹쳤다.

이번에는 서로의 살갗을 감쳐물며 조금 더 진한 온기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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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은 차 안에서 자기로 했다. 풀 사이즈인 만큼 내부가 넓기도 했고, 운전석 뒤로 좌석들을 모두 접으면 꽤 여유로운 공간이 나왔다. 접은 좌석들 또한 평평한 표면이라 그 위로 매트를 얹어주면 제법 안락한 보금자리가 됐다.

“괜찮아요? 안 불편해요?”

그런데도 재광이 물은 이유는 별거 없었다. 대한민국 남성 평균 키 언저리에 있는 자신은 두 다리 쭉 뻗어도 될 정도지만, 거의 10cm가 더 큰 의주에게는 비좁을 수도 있을 것 같아서다.

아니나 다를까, 애매한 대꾸가 돌아왔다.

“모르겠어.”

재광은 목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의주의 눈이 아닌 입술이 시야에 들어온다.

의주는 금방이라도 운전석 등받이에 정수리가 닿을 듯한 모양새였다. 여유 공간을 가득 채워 누웠는데도 그랬다. 그 모습을 본 재광은 끝내 웃음을 참지 못했다.

“모르겠는 게 아니라 불편한 거 같은데.”

“아, 진짜.”

결국에는 의주가 무릎을 접어 세웠다. 그제야 재광과 눈높이가 맞는다.

“키 크다고 다 좋은 건 아니네.”

의주보다 작은 키로 귀엽다느니 어쩐다느니 놀림당한 경험이 있는 재광은 부러 짓궂은 말투를 했다.

“그냥 텐트로 내려가서 잘까요? 날씨 별로 안 추워서 괜찮을 거 같은데.”

그것도 잠깐, 금세 다시 차분한 어조로 돌아와 대안을 제시하긴 했지만.

“아니. 뭐 하러.”

그러나 재광의 배려에도 의주는 굳건했다. 확고하게 대꾸한 그는 잠시간 부산스럽게 몸을 달싹이다가 별안간 재광을 끌어안았다.

재광의 침대에 누울 때와 같은 자세였다. 모로 누워서 정자세인 재광을 껴안는 거다.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이번에는 다리를 접어 올려 상대방의 몸을 완전히 옭아맸다.

“계속 이러고 자게요?”

“따뜻하고 좋네, 뭐.”

이렇게 잠들었다가도 숙면 중에 뒤척이다 보면 운전석 시트에 머리를 박는 게 아닐까. 재광의 솔직한 생각은 그랬지만 굳이 뜯어말릴 의사까지는 없었다. 그는 자신의 배를 가로지른 팔 위로 가만히 손을 얹었다.

그러고 나서는 쭉 편안한 분위기였다. 그런데 불쑥 놀란 음성이 튀어나온다.

“어?”

의주가 덩달아 의아한 목소리로 “왜?” 하자, 대답이 현실감 떨어지는 말투로 흘러나왔다.

“별 보여요.”

그때까지 재광의 어깨에 고개를 파묻고 있던 의주가 슬며시 돌아봤다.

정말이었다. 큼직한 차체만큼이나 널찍하게 뚫린 선루프 너머로 밤하늘에 뜬 별이 보인다. 당장이라도 쏟아질 듯 하늘을 가득 수놓은 정도는 아니지만, 곳곳에서 빛나는 모습이 선명히 눈에 들어왔다.

평소에 쉽게 볼 수 없는 광경이라 그런지 재광이 크게 감탄했다.

“우와….”

재광을 따라 고개를 돌렸던 의주는 그 소리에 눈길을 되돌렸다.

황홀하다는 표현이 이럴 때 쓰는 걸까. 재광은 꼭 꿈을 꾸는 사람 같았다.

멀찍이 시선을 던진 눈이 빛나고, 감탄하며 벌어진 입술 끝은 보기 좋게 호선을 그린다. 올라간 입매를 따라 봉긋 솟은 뺨은 어두운 와중에도 탐스러웠다. 그 모습이 정말이지….

예뻤다.

이목구비의 생김을 떠나 순수하게 감탄하고 좋아하는 모습이 의주의 눈에는 그렇게 예뻐 보일 수가 없었다. 그는 선루프 너머에서 시선을 뗄 줄 모르는 재광을 따라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왜 그렇게 봐요?”

그리고 저에게 고정된 눈동자를 알아차린 재광이 돌아봤을 때, 참지 않고 입 맞췄다.

갑작스러운 흐름에 놀란 재광의 눈이 동그랗게 뜨인다. 눈동자는 갈 곳을 못 찾고 데구루루 굴러다녔다. 그것도 잠시, 이내 눈꺼풀을 반쯤 내리며 의주의 윗입술을 가볍게 물었다.

의주의 반응은 빨랐다. 재광이 채 물러날 틈도 주지 않고 곧장 아랫입술을 진득하게 빨아들인다. 사탕이라도 되는 양 가볍게 머금었다가 부드럽게 뱉어내는 일련의 과정이 매끄러웠다.

재광의 도톰한 아랫입술을 빨아들이는 행위는 몇 번씩 반복됐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재광의 입술이 벌어진다. 의주는 틈을 놓치지 않고 파고들었다.

주춤주춤 움직이는 재광의 혀를 능숙하게 옭아맨 의주는 넓게 마찰했다. 살덩이가 널찍하게 엉겨 붙고 떨어질 때마다 입안에서는 질척한 소리가 샜다.

은밀하게 뒤엉키던 재광이 숨을 들이마시며 잠시 주춤댈 때는 들숨을 따라 의주가 더 깊이 파고들었다. 뾰족하게 세운 혀끝이 입천장 안쪽을 느릿하게 훑자 재광이 어깨를 움찔 떨며 저도 모르게 떨어져 나갈 기미를 보였다.

“흐, 으읍….”

물론 의주는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여태 옷자락 위로 재광의 등을 지분대던 손이 목선을 타고 올라가 뒷머리를 단단히 고정한다. 머리칼을 파고드는 손끝에 제법 강한 힘이 실렸다.

재광이 더 물러서지 못하도록 머리를 받친 의주는 슬며시 제 고개를 틀었다. 그러면서 더 밀착하는 동작이 꼭 재광을 집어삼킬 것처럼 위협적으로 보였다.

아닌 게 아니라 정말로 움직임이 훨씬 격했다. 부드럽게 혀를 얽고 점막을 훑던 이전과 달리 잔뜩 힘이 실린 살덩이가 재광의 입안을 헤집어놓는다.

더는 입맞춤이라고 표현하기도 어려웠다. 입 안쪽의 여린 살까지 푹 처박았다가 입천장을 쓰다듬으며 빠져나오는 움직임은 삽입에 가까웠다.

“으응, 읏… 흐으….”

재광에게서도 연신 신음이 터졌다. 깊게 들어왔다 나가는 혀가 살갗을 긁을 때마다 몸이 잘게 떨린다. 덩달아 숨도 거칠어졌다.

그는 버겁게 숨을 삼키면서도 입안의 부피감이 사라지는 게 아쉬운 사람처럼 굴었다. 힘이 들어간 살덩이가 빠져나갈 때마다 부지런히 볼을 조인다.

그 때문에 혀가 빠져나가는 길이 빠듯했다. 동시에 사방으로 조이는 축축한 점막이 잘 느껴져, 행위가 반복될수록 의주의 흥분감이 더 치솟았다.

“아…!”

그래서 조절이 안 됐던 모양이다. 재광의 입술을 가볍게 물고 떨어지려던 의주가 끝내 이를 세우고 말았다. 제법 세게 깨무는 통에 화들짝 놀란 재광이 어깨를 파드득 떨었다.

“…미안.”

의주는 한 박자 늦은 사과를 건넸다. 조금 전 자신이 물어뜯은 부위를 쓰다듬듯 붙였다 떼는 입술이 부드러웠다.

그러나 들끓는 눈빛만큼은 여전했다. 맞닿았던 입술을 떼어낸 그는 천천히 뜨이는 재광의 시선을 강하게 옭아맸다. 그저 눈길을 받아내는 것뿐인데도 순간 재광의 목울대가 크게 일렁인다. 의주는 느릿하게 말을 더했다.

“입으로… 해줄래?”

조심스러운 한마디에는 또렷하게 마주하던 재광의 눈동자가 비스듬히 내려갔다.

돌아오는 대꾸는 없었으나 그게 거절의 의미는 아니었다. 잠시간 미동이 없던 재광이 곧 부스럭대며 누운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이불을 걷어낸 재광은 슬그머니 의주의 다리를 벌리고서 그 사이에 자리 잡았다. 재광치고는 꽤 대범한 행동이었다. 무릎을 단정하게 접어 앉은 그는 곧 허리를 숙여 사타구니 가까이 고개를 가져갔다.

사방이 어두워 잘 보이진 않지만 의주의 바지 위로 은근한 음영이 졌다. 진득하게 나눈 키스에 그의 몸이 반응했다는 증거였다. 잠시 망설이며 뜸을 들이던 재광은 이내 허리춤의 옷깃을 끌어 내렸다.

“….”

속옷과 함께 잡아 끈 터라 단번에 성기가 드러난다. 반쯤 발기한 형태를 지그시 바라보던 재광은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살덩이를 손에 쥐었다.

위아래로 가볍게 흔들자 의주의 낮은 신음이 재광의 머리 위로 내려앉는다. 재광이 움직임을 반복할 때마다 손안을 채우는 부피감이 착실히 커졌다.

“…할게요.”

재광은 짐짓 긴장감이 도는 음성으로 말했다. 그러나 망설임은 없었다. 말을 마치자마자 고개를 푹 수그린다.

단단하게 부푼 살덩이를 반쯤 집어삼킨 재광은 그쯤에서 고개를 움직였다. 음경의 중간 부분부터 귀두까지를 왕복하며 천천히 삼켰다 뱉었다.

횟수가 더해질 때마다 입술이 더 깊이까지 내려갔다. 입안 깊은 곳, 여린 점막을 귀두가 쿡쿡 쑤실 때마다 재광이 버거운 숨을 흘렸다.

그러면서도 쉽게 뱉어내지는 않았다. 금방이라도 목구멍을 꿰뚫을 듯한 의주의 기세에도 굴하지 않고 오히려 볼 안쪽을 조여 예민한 표피 전체를 감싼다.

그 탓에 의주의 중심부가 드나드는 입안의 길이 빠듯했다. 꽉 조이지만 매끄럽고, 축축하고, 뜨거운 감각들이 한 데 섞여 성감을 빠르게 끌어올렸다.

“으… 우읍!”

결국에는 의주가 허리를 달싹였다. 살짝 튕기는 수준이었으나 입술을 내리던 재광과 타이밍이 맞물려 입천장 가장 안쪽에 있는 점막까지 순식간에 처박혔다. 턱 막힌 소리가 재광의 입안에서 맴돌았다.

“움직여도, 돼?”

의주는 그제야 상대방의 의사를 물었다. 불시에 일격을 당한 재광의 눈에 생리적인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뒤였다. 재광은 눈동자만 위로 올려 의주를 보다가 금세 고개를 끄덕였다.

대답이 떨어지기 무섭게 의주의 커다란 손이 재광의 뒷머리를 감싼다. 그는 키스할 때보다 훨씬 더 강한 악력으로 재광의 고개를 고정했다. 그러고는 여전히 벌어진 입술 사이로 제 것을 밀어 넣었다.

재광은 제법 의연하게 살덩이를 받아냈다. 입안을 가득 채우며 목을 틀어막는데도 내빼질 않는다. 대신 입술을 오므리며 더 적극적으로 의주를 받아냈다.

아래에서 쳐올리는 힘이 거세질수록 점차 버거운 내색이 보였으나 그때도 마찬가지였다. 재광은 턱을 달달 떨면서도 예민한 피부에 이가 닿지 않도록 필사적으로 버텼다.

“하… 씨.”

타액으로 젖은 성기가 들락거릴 때마다 차 안에는 축축한 소리가 울렸다. 그게 청각을 자극했던지 의주가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다 말고 허리 짓에 더 힘을 가한다.

그즈음 재광은 스스로 움직이기를 포기했다. 은근하게 압박하는 의주의 손에 의지해 입을 겨우 벌리고만 있었다.

어쩌다 간신히 움직인 혀가 살갗에 닿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자극이 되는 듯했다. 의주는 농밀한 접촉에 즉각 반응했다. 그리고 그 솔직함이 재광을 동하게 했다. 그는 자못 비장한 얼굴로 깊이 처박히는 의주의 것을 핥아 올렸다.

“흐… 으읍, 윽…!”

그러자 의주가 더욱 거세게 허리를 튕긴다. 그 바람에 쑥 밀려들어온 살덩이가 목 끝을 쿡 찔렀다. 이전과 비교할 수 없는 깊이에 놀란 재광이 허둥거리며 의주의 허벅지를 짚었다.

“우, 으응, 읍!”

“잠깐, 조금만, 아….”

다급한 손짓과 달리 재광은 순순히 버텼다. 조금은 괴로운 듯 눈을 질끈 감고서도 의주의 뜻대로 자리를 지킨다. 한껏 벌린 턱이 덜덜 떨리다 못해 이제는 얼얼하기까지 하건만, 그런데도 용케 이를 감추고서 잔뜩 발기한 물건을 받아냈다.

그래도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꿋꿋하게 버티는 재광의 입술 새로 경도 높은 살 기둥이 요동치는 게 고스란히 느껴졌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 지나지 않아 축축한 입안에 비릿한 향이 확 퍼진다. 순간 재광이 눈에 띄게 굳었다.

“아… 광아.”

의주는 지레 놀란 기색이었다. 상체를 일으키는 동작이 빨랐다.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이전에 재광이 먼저 펠라티오를 해주겠다고 나섰을 적에도 입안에 사정하는 것만은 안 된다고 못을 박지 않았던가.

그런데 방금은 그런 걸 떠올릴 겨를도 없어 그만 사고를 치고 말았다. 그 때문에 의주의 속이 타들어 가는데….

슬그머니 고개를 들어 올린 재광은 오묘한 표정이었다. 입을 꾹 다물고서 말간 눈으로 의주를 쳐다보기만 한다.

봉변을 당한 당사자가 반응이 없자 조급해지는 쪽은 의주일 수밖에 없었다. 그는 재광의 턱 아래 손을 내밀며 말했다.

“뱉어, 빨리.”

그러나 재광은 여전히 요지부동이다. 좀처럼 속을 읽을 수 없는 안색으로 눈동자만 도르륵 굴린다. 그러더니,

“야!”

그대로 꿀꺽 삼켜버렸다. 전혀 예상 못 한 상황에 놀란 의주의 눈이 크게 뜨인다.

“그걸 왜 먹어.”

“…그냥.”

사람 심장을 철렁 흔들어놓고 무덤덤하게 내뱉는 대꾸는 실없었다.

이렇게 되면 의주의 황당함도 금세 사라지고 만다. 10여 분 전까지 별을 보며 순수한 얼굴로 웃던 이가 직전에는 세상 야하게 오럴섹스를 하더니, 금방 또 순진한 표정을 하고서 ‘그냥’ 정액을 삼켰다고 말하지 않던가.

절대 섞일 수 없는 무형의 무언가가 뒤엉킨 듯한 기분이었다. 한쪽 입꼬리를 비죽 올려 웃은 의주는 곧장 재광에게 달려들었다.

“으읏…!”

조금 전까지 재광이 입으로 무얼 담고 있었는지는 중요치 않았다. 의주는 금방이라도 입술을 물어뜯을 것처럼 거칠게 달려들었다. 도톰한 입술을 마음껏 이지러뜨리고 틈새를 갈라 안을 비집고 들어간다.

아까와는 전혀 다른 키스였다. 짓누르는 무게감을 느낀 재광은 서둘러 바닥을 짚어 몸을 지탱했다.

그것도 얼마 가지는 못했다. 스르륵 넘어가던 재광의 등이 이내 쿵, 매트 위로 떨어졌다. 불시에 몸이 넘어간 터라 그를 덮치던 의주 또한 가슴을 맞대며 쓰러졌다.

그 충격에 맞물렸던 입술이 분리되었으나 문제 될 건 없었다. 의사와 상관없이 재광의 목덜미에 고개를 박게 된 의주는 곧바로 눈앞에 보이는 살갗을 물었다.

“아… 흐으, 읏…!”

막 빨아들이는 호흡은 거칠었으나 마냥 투박하기만 한 움직임은 아니었다. 의주는 금방이라도 울혈을 새길 듯 세게 피부를 흡입하다가도 혀로 느릿하게 핥으며 완급을 조절했다. 그뿐일까. 한 손은 이미 재광의 상의 안으로 들어가 가슴을 부드럽게 매만졌다.

다른 한 손은 길게 뻗어 콘솔박스로 향했다. 지갑과 휴대전화 따위를 잡았다 놓은 손은 핸드크림을 찾아내고서야 제자리로 돌아왔다.

“허리 들어 봐.”

요구하는 목소리는 열로 들끓었다. 재광은 착하게 허리를 들어 올리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허리 아래가 일정한 높이로 치솟자 순식간에 하체가 휑해진다.

의주는 곧장 재광의 오른쪽 다리를 접어 올렸다. 그리고는 바깥 방향으로 가볍게 벌린다. 덕분에 더 잘 보이게 된 볼기 사이를 아래서부터 파고들었다.

“아읏, 아…!”

핸드크림을 펴 바른 손은 능숙하게 구멍을 찾아 들어갔다. 마음이 급해 서둘러 가위질하듯 손 틈새를 벌리자 재광이 힘에 겨워 신음한다. 의주는 사과의 뜻을 담아 입 맞추고는 조금 더 천천히 손가락을 밀어 넣었다.

손바닥에 걸리도록 마디 끝까지 집어넣자 긴장한 내벽이 수축하며 사방으로 들러붙는다. 의주는 느릿하게 손가락을 빼냈다가 다시금 뒤를 파고들었다.

이번에는 바로 빠져나오지 않았다. 의주는 손끝으로 안을 지그시 눌렀다.

“형, 아…! 으응, 흐….”

첫째 마디를 구부려 내벽을 살살 긁어내릴 때는 재광의 허리가 들썩였다. 금세 다시 바닥으로 내려오기는 했으나 크게 부푼 가슴은 빠르게 오르내리며 가쁜 숨을 내뱉었다.

의주는 몇 번 더 같은 행위를 반복했다. 뒤를 간질이듯 쓸어내리는 손길에 재광의 뒤가 거세게 수축한다. 그러나 조여들던 안이 풀리면서는 보다 부드러운 감도를 자랑했다.

재광의 긴장이 풀리고 있단 사실은 손끝을 타고 의주에게 고스란히 전달됐다. 빠듯하게 손가락을 받아내던 뒤에 여유가 생길 때마다 의주는 곧바로 개수를 늘려나갔다.

“으읏… 흐, 윽…!”

평소와는 다른 환경이라 그런지 재광은 유독 긴장한 기색이었다. 조금 부드러워졌다고 생각해 손가락을 하나 더 밀어 넣으면 금세 또 빡빡해지는 것이다.

어두운 와중에 지그시 재광을 내려다보던 의주는 뺨이며 목덜미에 입술을 가져다 댔다.

효과가 제법 좋았다. 의주의 입술이 살갗을 스칠 때마다 뒤가 움찔거리며 조여들었다가, 그다음에는 훨씬 더 부드럽게 풀렸다.

의도적으로 전립선 인근을 누를 때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재광이 허리를 짧게 튕기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내벽이 훨씬 유연해졌다.

“아, 아아…! 흣, 형, 잠깐…! 아읏, 응!”

최대치로 밀어 넣은 손가락이 무리 없이 뒤를 오가게 되면서는 자연히 속도가 붙었다. 조심스럽게 안을 넓히던 이전과 달리 빠르게 푹푹 쑤셔대는 의주의 팔에 힘줄이 돋았다.

벅찬 신음을 흘리던 재광은 목을 뒤로 꺾었다가, 옆으로 돌렸다가. 어쩔 줄을 몰랐다. 가슴이 빠르게 들썩거리고, 볼썽사납게 말려 올라간 티셔츠 아래로는 힘이 잔뜩 들어간 아랫배가 간헐적으로 경련했다.

어둠에 익숙해진 시야로 재광의 상태를 살피던 의주는 곧 몸을 숙여 재광에게 키스했다. 재광이 조금 전까지 내뱉던 밭은 숨이 고스란히 의주의 입안으로 넘어온다.

의주는 익숙하게 제게 엉겨드는 재광의 혀를 옭아매며 손짓을 더 빨리했다. 재광은 끙끙 앓는 소리를 내면서도 제 입안을 헤집는 의주를 따라가려 애썼다.

그즈음에는 뒤를 자극하는 손길도 제법 능숙하게 따라갔다. 허리 아래가 부드럽게 달싹이며 뒤를 드나드는 의주의 손과 움직임을 같이 했다.

“하아… 흣! 아, 아아…! 윽!”

의주가 집요하게 물고 빨던 입술을 놓아주었을 때는 기다렸다는 양 신음이 터졌다. 질끈 감은 재광의 눈매 아래로 속눈썹이 바르르 떨리고, 판판한 아랫배 또한 요동쳤다.

재광의 중심부가 발딱 서 있는 걸 확인한 뒤에야 의주가 손을 거뒀다. 그는 걷어 올린 재광의 티셔츠 아래로 맨몸에 입술을 쪽쪽 붙이고는 슬며시 누운 몸을 옆으로 돌렸다.

잦아든 움직임에 이제야 숨을 고르던 재광은 순순히 모로 누웠다. 그러자 곁에 누운 의주가 재광의 등을 끌어안고 함께 눕는다. 두 사람은 같은 방향을 보고 누운 자세가 됐다.

“광아, 다리 좀.”

의주가 재광의 위쪽 다리를 굽힐 때도 마찬가지였다. 재광은 꼭 인형처럼 의주의 손길에 의지해 움직였다. 종아리를 길게 쓸어 올린 손이 접힌 무릎을 정돈하듯 몸 앞으로 내려놓는다.

편한 자세를 찾느라고 잠시간 차 안이 부산스러웠다. 어둠 속에서 두 사람의 다리가 얽히고, 조금 뒤에야 또다시 신음성이 터졌다.

“아…! 아, 으윽….”

재광의 등 뒤로 상박을 붙인 의주는 곧장 아래를 뚫고 들어왔다. 한차례 공들여 풀었음에도 잔뜩 발기한 의주의 것이 들어서자 뒤가 뻑뻑하게 열린다.

그에 재광이 앓는 소리를 내자 의주는 마치 그를 달래듯 손을 옷 안으로 밀어 넣었다. 재광의 아랫배와 갈비뼈 부근을 훑는 움직임이 부드러웠다.

하지만 재광은 영 성에 안 차는 모양이었다. 모로 세운 등을 구부리고서 간신히 앓던 그는 제 몸을 배회하는 의주의 손을 잡아챘다. 그리고는 제 것보다 훨씬 큰 손을 잡아끌어 자신의 가슴으로 이끈다.

재광의 등 뒤로는 가벼운 진동이 울렸다. 아무래도 노골적인 요구에 의주가 웃는 듯했다.

그러나 그게 다였다. 의주는 재광을 놀리거나 괜한 심술을 부리지 않았다. 그저 그가 원하는 대로 가슴을 넓게 쓸었다가 유두를 세심하게 매만지며 부지런히 자극했다. 재광의 뒷덜미에 입을 맞추는 건 덤이었다.

그리고 분산되는 감각에 재광의 뒤가 훨씬 부드럽게 풀릴 무렵, 단번에 성기를 끝까지 처박았다.

“아흑! 아아… 아, 읏, 으윽….”

재광에게는 몸속이 통으로 울리는 기분이 들 만큼 엄청난 압박감이었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의주는 고간을 더 밀착하며 안을 뭉근하게 헤집는다.

버거운 건 사실이나 싫지 않은 감각이었다. 온몸을 저릿하게 울리는 성감에 입술을 질끈 깨문 재광이 앞으로 고개를 숙였다. 그러느라 도드라진 목덜미 뼈에 의주가 가볍게 입 맞췄다.

끝까지 밀고 들어간 의주가 단단한 살덩이를 반쯤 빼냈다가 다시 찌르기를 반복하자 재광의 숨이 점점 달뜬다. 뒤에서 미는 힘에 안간힘을 쓰며 버티던 그는 온몸을 바르작댔다.

“으, 으읏… 흐으, 아, 아아!”

이제는 내뱉는 소리마저 습했다. 척추를 타고 올라오는 감각에 어쩔 줄을 모르던 재광은 아직까지도 제 가슴을 매만지는 손을 끌어냈다. 그러더니 제 입가로 가져가 의주의 손가락을 깨문다.

의주의 손을 꽉 쥔 악력에 비하면 한없이 약한 자극이었다. 차마 세게 깨물 수가 없는지 고른 치아 끝만 겨우 갖다 댄다. 이래서는 고통이든 쾌락이든 무엇도 해소가 안 될 거라고. 의주가 그렇게 생각할 만큼 하찮은 행위였다.

그래서 더 귀여웠다. 정작 본인은 의주가 주는 흥분을 못 이겨 몸부림을 치면서 혹시라도 상처를 입힐까 봐 세게 물지도 못하다니. 의주는 그런 재광이 사랑스러워 미칠 것 같았다.

“아, 아, 아아! 윽, 흐…. 아, 읍, 빨, 라요, 아… 응, 형, 아아!”

북받치는 감정은 고스란히 몸으로 이어졌다. 의주의 허리 짓이 이전에 비할 수 없을 만큼 빨라진다. 그저 뒤를 드나드는 데 지나지 않고 거의 재광의 엉덩이를 고간으로 때리는 것만 같은 움직임이었다.

거세진 힘에 재광이 맥없이 밀리자 의주는 그의 허리를 단단히 감싸 안았다. 옴짝달싹 못 하게 몸이 고정된 재광은 금방이라도 뱃속을 꿰뚫을 듯한 느낌에 겁먹어 제 허리에 감긴 의주의 팔만 꼭 붙들었다.

“형, 제발… 아, 윽…! 깊, 어, 으응… 너무 깊, 어, 빨라, 요….”

뒤에서 쳐댈 때마다 뚝뚝 끊기는 말을 정신없이 이어나가는 목소리는 애처롭기까지 했다. 제가 무슨 말을 하는 줄도 모르고 겨우겨우 마침표를 찍은 재광은 흐느낌에 가까운 숨을 토하며 의주의 팔에 의지했다.

재광이 이렇게까지 애원하는데, 그마저도 외면해버릴 의주는 아니었다. 다만 중간이 없을 뿐.

“….”

“…왜, 왜요. 왜 멈춰요.”

금방이라도 몸을 관통할 기세로 몰아붙이던 의주의 움직임이 뚝 멎었다.

이렇게 되면 재광도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견디기가 벅차서 그렇지, 흥분감이 머리끝까지 치솟았던 건 사실이니까.

“빠르다며. 너무 깊다며, 광아.”

그런데 태연자약하게 말하는 의주는 더는 움직일 생각이 없어 보였다. 구멍에 반쯤 걸친 성기를 빼지도, 그렇다고 넣지도 않고 버티고만 있는 거다.

재광을 놀려먹을 심산으로 일부러 그러는 게 틀림없었다. 속내를 알아차린 재광은 투덜거리며 의주의 허벅지를 찰싹 때렸다.

“그렇다고 누가 멈추래… 아윽!”

제법 따가운 타격이었다. 그 탓에 의주가 움찔거리자 걸쳐놨던 살 기둥이 반사적으로 조금 더 밀려들어간다. 재광은 선명한 자극에 되레 앓느라고 말을 끝맺지도 못했다.

등 뒤에서는 의주가 낮게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민망함에 재광이 입을 꾹 다물어버리자 뒤늦게 그가 자상한 말투를 낸다.

“나는 도무지 조절이 안 돼, 광아.”

“….”

“그러니까 네가 원하는 대로 움직여 봐.”

이건 또 뭔가 싶었다. 재광이 이 무슨 요구인가 싶어 뒤를 돌아보자 의주가 기다렸다는 듯 입을 맞춘다.

짧게 닿았다 떨어지는 의주의 만면에 흥미가 감돈다. 재광은 어쩔 수 없이 눈을 흘기며 도로 정면을 봤다. 그러고는 잠시 갈등하며 가만히 있었더니, 금세 재촉하는 음성이 들린다.

“뭐 해, 안 움직여?”

재광은 잔뜩 심통이 난 얼굴을 하면서도 슬며시 허리 아래를 뒤로 밀었다.

어쩔 수 없었다. 한껏 치솟던 흥분이 뚝 끊겨버리지 않았던가. 의주는 한 발 빼기나 했지, 재광은 끝을 보지도 못한 상태였다. 이대로 그만두면 괴로운 쪽은 결국 본인인 것이다.

그래서 스스로 움직이며 의주의 성기를 제 뒤로 넣었다 빼고 있으려니 수치심이 이루 말할 수 없이 밀려온다.

의주의 위에 앉아서 몸을 달싹일 때와는 또 달랐다. 그런 경우는 애당초 삽입의 주도권이 제게 있지 않던가.

그러나 지금은 의주가 움직이는 편이 훨씬 자연스러운 그림이었다. 그런데 정작 그는 가만히 있고 제가 아래를 치대려니 민망해 죽을 것만 같았다.

“하으… 응, 흣…!”

더군다나 자신의 의지로 의주의 것을 제 안에 넣으면서 앓으려니 자존심도 퍽 상한다. 그런 와중에도 하체를 움직이는 족족 안이 찔리는 느낌만은 확실해 더 비참한 기분이었다. 진심으로 눈물이 찔끔 날 뻔할 정도로.

“얼굴….”

“응?”

“보고 싶어요. 얼굴, 보고 할래요.”

물론 그렇다고 진짜 울지는 않았다. 대신 대면을 요구했다. 차라리 마주하기라도 하면 혼자 뒤를 쑤시는 듯한 수치심은 덜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

그런데 낌새가 심상치 않다. 의주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는데, 등 뒤에서 열기가 확 치솟는 느낌이 든다. 역설적으로 온몸에 솜털이 바짝 섰다.

“나 보고 싶어?”

의주는 장난기가 그득해야 마땅할 말을 낮게 읊조렸다. 그뿐일까. 순식간에 재광을 반듯이 눕히고 그 위로 올라탔다.

“응? 광아, 내 얼굴 보고 싶어?”

반복되는 물음은 다시 한번 그 말을 듣고 싶다는 뜻이었다. 재광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그가 원하는 답을 줬다.

“…보고, 싶어요.”

그러자 의주가 곧장 달려들어 입술을 집어삼킨다. 상황 파악이 안 돼 미동 없는 재광의 입술을 억지로 가르고 들어와 입안을 거칠게 헤집기까지 했다. 그러는 동안 아래도 꽤 거칠게 부딪혔다.

재광은 이게 무슨 변덕인지도 모르고 어설프게 의주를 받아들였으나, 의주에게는 그럴 만한 상황이었다. 늘 섹스 중 상대방의 얼굴을 갈망하는 건 의주의 몫이었으니까.

처음에는 단순히 저와 닮은 얼굴이 생생하게 반응하는 게 짜릿해서였다. 그러나 이후에는 사랑하는 사람이 제 아래서 오롯이 자신의 움직임에 흥분하는 모습을 보는 게 좋았다. 눈이라도 맞출라치면 그 순간이 얼마나 벅찼는지 모른다.

그런데 방금, 재광이 자신의 얼굴을 보고 싶다고 했다. 그 한마디가 의주에게 주는 울림은 컸다. 요망하고, 사랑스럽고, 귀여웠다. 온몸을 잘근잘근 씹어서 먹어버리고 싶을 만큼.

“윽! 아아, 흣…. 으응, 읏, 아, 아아!”

의주는 언제 가만히 있었냐는 듯 거센 힘으로 재광을 몰아붙였다. 할 수 있는 한 깊이, 그리고 세게 치받는데도 재광은 더 이상 그를 말리지 않았다.

혼자서 엉덩이를 달싹이기보다는 이편이 낫기도 했고, 결정적으로는 그럴 정신이 없었다.

“으읍… 으, 하아… 아, 윽, 으읏… 아아, 아…!”

의주가 박는 대로 몸이 밀려 올라갔다가 내려온다. 재광은 위에 올라탄 그의 어깨를 끌어안고서 힘없이 흔들리는 다리를 겨우 허리께에 둘렀다. 이미 깊이 들어온 살덩이가 안을 더 비집고 들어오자 허벅지가 의주의 허리를 꽉 조인다.

부드러운 허벅지 안쪽 피부가 허리에 차지게 감기는 감각이 의주에게 더 자극을 준 듯했다. 뒤에서 빠져나간 살 기둥이 단박에 배 속 깊이까지 처박힌다. 재광의 쇄골 언저리를 부드럽게 맴돌던 입술 또한 이를 드러내며 살갗을 물었다.

“나, 사랑, 해?”

몸은 더없이 격한 주제에 묻는 말만큼은 순수했다. 몇 글자 안 되는 한마디마저 거친 숨에 뚝뚝 끊기건만 희한하게도 어린아이처럼 들리는 물음이었다.

그 목소리는 정신없이 흔들리는 재광의 귀에도 똑똑히 박혔다. 여전히 최선을 다해 매달린 재광이 차마 입술을 뗄 엄두를 못 내고 고개를 끄덕인다.

“아읏… 아, 아아, 아…!”

입 밖으로 내는 소리라곤 신음뿐이지만 확고한 대답이었다. 크게 주억거리는 통에 뒤통수가 매트에 쓸려 머리칼이 마구잡이로 헝클어졌다. 의주는 재광의 뒷머리를 받쳐주며 재차 물었다.

“대답, 해, 줘.”

끈질기게 물으면서 재광을 내려다보는 눈은 매서웠다. 축축한 눈으로 시선을 맞춘 재광이 입술을 질끈 깨물다 말고 간신히 입을 열었다.

“흐… 으, 으응…. 사랑, 해. 아아, 윽!’

원하는 답을 얻어낸 의주가 상체를 바짝 낮춰 재광을 꽉 끌어안는다. 그 바람에 발딱 서 아랫배에 붙어있던 재광의 성기가 두 사람 사이에 끼었다.

일부러 손을 내려 만져줄 필요도 없었다. 허리 아래로 부지런히 움직이는 의주 때문에 예민한 살갗에도 덩달아 자극이 간다. 재광의 허리가 크게 튀어 오르고, 연이어 빳빳하게 굳었다.

“아흣! 흑… 아, 아… 아아!”

그리고 안간힘을 다해 의주에게 매달리며 사정했다.

의주의 절정도 오래 걸리지 않았다. 파정한 여운에 몸을 잘게 떨며 널브러지는 재광을 꽉 끌어안은 그는 더욱 깊이 안을 비집고 들어가 체액을 토했다. 울컥이며 작게 꿈틀대는 살덩이를 조금 빼냈다가 다시 처박으면서 남은 양을 모조리 쏟아내기에 이른다.

“하, 진짜….”

의주는 재광의 위로 쓰러지듯 엎어졌다. 그리고는 꼭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진짜 사랑해. 너무.”

흡사 황홀한 목소리였다. 재광의 목덜미에 고개를 묻던 그는 곧 눈에 보이는 모든 곳에 입을 맞추기 시작했다. 어깨, 목, 턱, 가슴…. 가리지 않고 성심성의껏 입술을 누른다.

당연하게도 마지막으로 가 닿는 부위는 입술이었다. 숨이 차는지 살짝 벌어져 있던 입술을 그대로 파고들어 입안의 잔열을 만끽한다.

재광도 굳이 밀어내지는 않았다. 저를 처음 안는 것도 아니면서 유별나게 벅찬 기색을 비치는 의주가 싫지 않았다. 그는 의주의 등을 당겨 안으며 기꺼이 입맞춤에 응했다.

????

가을이라기엔 아직 여름의 열기가 남아 있는 날씨였으나 강가에 위치한 캠핑장이라 그런지 새벽 공기가 제법 쌀쌀했다. 간밤에 누구보다 뜨거운 시간을 보낸 재광이 한기를 느낄 만큼.

노곤하게 늘어져 있던 재광이 뒤척거리느라 캠핑용 이불이 유난스럽게 부스럭거렸다.

그러나 잠에 취한 재광은 그게 거슬린다고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본능적으로 온기를 따라 움직이기에 바쁘다. 이불 속에서 꿈틀거리던 몸은 한층 따스한 체온에 닿고 나서야 멈췄다.

다리를 살짝 구부리고서 옆으로 누운 의주였다. 평온히 잠든 얼굴을 한 그는 다가온 재광을 금방 알아차리고 자연스럽게 팔을 들었다.

꼭 퍼즐 같았다. 간신히 옷깃만 맞대던 재광이 품으로 들어가자 잠시 열렸던 팔이 등을 감싸 안으며 닫힌다. 의주는 긴 다리까지 척 올려놓으며 재광의 온몸을 옭아맸다.

비몽사몽인 재광은 그게 답답하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눈을 뜰 줄도 모르고 의주의 가슴팍에 머리를 콕 박는다. 동그란 뒤통수를 가만가만 쓰다듬던 의주만이 겨우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

시선을 내려 봐야 얼굴은 보이지도 않았다. 재광이 품에 고개를 묻은 탓에 결 좋게 흘러내린 머리카락만 시야에 들어찬다. 의주는 재광의 정수리 위로 턱을 가볍게 얹었다.

다시 잠이 들기는 글렀지 싶었다. 눈을 한 번 감았다 뜰 때마다 의주의 눈빛이 점점 또렷해졌다. 그는 이내 온전히 눈을 뜨고서 재광의 등을 가볍게 도닥였다.

자다 깬 아이를 달래듯 조심스러운 손길이었으나 그게 오히려 자극이 된 듯했다. 고른 숨소리를 내며 세상모르고 자던 재광이 주춤주춤 움직였다.

가볍게 도리질을 치는 것 같다가, 이내는 폭 파묻었던 고개를 들어 올린다. 덩달아 시선을 내린 의주가 퉁퉁 부은 눈을 보고 푸스스 웃었다.

“졸리면 더 자도 돼.”

잠긴 목소리 끝이 갈라졌으나 말투만은 자상했다. 잠기운이 남아 몽롱한 안색을 한 재광이 조금 뜸을 들이다가 대꾸했다.

“잠은 좀 깼는데, 일어나기가 너무 귀찮다.”

역시나 푹 가라앉은 음성이었다. 한없이 늘어지는 말꼬리에 귀를 기울이던 의주는 손을 바삐 움직였다.

뒤척거리느라 구겨진 이불을 정리하느라고 그랬다. 몸과 이불 사이에 들뜬 구석이 없도록 꼼꼼하게 여민 그는 다시금 재광을 품으로 당겨 안았다.

“나는 좋아. 좀만 더 이러고 있자.”

움직이기 귀찮다는 재광의 뜻에 따라주겠다는 대답 또한 흔쾌히 흘러나왔다.

실로 느긋한 시간이었다. 두 사람은 껴안은 상태로 오가는 말도 없이 그저 누워만 있었다.

둘 중 누구도 잠들지 않았는데도 서로의 숨소리만 들으며 가만히 있었다. 간간이 상대방의 머리카락이나 등 따위를 어루만지는 게 다였다.

찰싹 붙어 있느라고 시간을 확인할 새도 없었다. 오로지 창문 너머의 풍경이 밝아지는 정도로 시간의 흐름을 가늠해볼 뿐이었다.

????

두 사람은 한참 후에야 차 밖으로 나왔다. 잠자코 안겨 있던 재광이 혼잣말로 배고프다 중얼거린 다음이었다.

차 안에서 뭉갠 시간이 길었으나 그렇다고 너무 늦은 시각은 아니었다. 워낙 일찍 눈을 뜬 탓이다. 늦은 기상을 점치고 아점으로 먹기로 했던 라면은 온전한 아침 식사가 됐다.

“아, 좀 졸았네.”

여느 때처럼 야심차게 나섰던 의주는 막판 불 조절 타이밍을 놓쳐 적잖이 아쉬운 기색이었다. 그러나 제 몫을 덜어 맛본 재광은 무덤덤했다.

“이 정도로 뭐. 맛있어요.”

상심한 의주를 달래려 억지로 해주는 말은 아니었다.

어차피 라면 자체가 짠맛에 먹는 음식이잖은가. 국물 조금 졸았다고 대단히 차이가 날 것도 없었다. 늘 완벽을 지향하는 의주에게나 아쉽지, 재광의 입에는 평소 먹던 맛과 다르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지금 타이밍에 먹기 딱 좋은 메뉴라 아쉬움을 느낄 새가 없었다. 해가 중천에 뜨기도 전이라 서늘한 공기를 맞으며 들이켜는 뜨거운 국물은 그야말로 안성맞춤이었다. 꼬들꼬들하게 익은 면발 또한 목을 데우며 넘어가는 느낌이 일품이었다.

밤사이 소모된 체력이 크다는 점도 한몫을 톡톡히 했다. 허기가 밀려드는 상황에 맞닥뜨린 MSG의 맛이 달갑지 않을 리 없었다.

재광은 젓가락 가득 집어 올린 면발을 와앙 집어삼켰다. 의주가 집에서 보내줬다며 직접 싸 들고 온 김치까지 입안으로 쏙 감추는 속도가 빨랐다. 의주도 그 모습을 본 뒤에야 마음 놓고 자신의 식사를 시작했다.

새로운 화제는 어느 정도 배를 채운 다음 떠올랐다.

“이거 패키지 괜찮은 거 같아요.”

한동안 먹는 데만 집중하던 재광이 먼저 입을 열었다. 막 면을 삼키던 의주가 눈동자만 위로 들어 마주 앉은 그를 쳐다봤다.

“기본적으로 필요한 건 다 준비 해주니까 손이 덜 가잖아요. 렌트니까 부담도 없고. 업체랑 소통만 문제없이 되면 반응 좋을 거 같아요.”

긍정적인 평가에 부지런히 턱짓하던 의주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간다. 그는 눈웃음까지 치며 대꾸했다.

“좋았어?”

재광이 이번 일정을 거부한 적은 없지만, 회사 일을 핑계로 의주가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그래서인지 의주는 후한 평을 유난히 만족스러워했다.

“네. 재밌었어요. 저 진짜 이렇게 텐트 치고 자는 건 처음이었어서 더.”

“아, 역시 여의주. 이렇게 만족도 높은 데이트만 쏙쏙 골라 하기도 힘든데 그걸 해내네.”

목을 꺾으며 거드름을 피우면서도 진심으로 기뻐하는 기색이 얼굴에 한가득이었다.

그러다 보니 재광도 눈을 흘기거나 떨떠름한 내색을 하지 않았다. 재밌었다는 자신의 대답 한마디에 이렇게나 좋아하는데, 그게 미워 보일 리 없었다.

덩달아 웃어버리고 말던 재광은 의주의 자아도취가 사그라질 즈음 다시 입을 열었다.

“근데 우리 생각보다 일찍 일어났는데 어떻게 할까요? 이거 먹고 바로 출발해요?”

“뭐, 반납은 일찍 해도 상관없긴 한데….”

곧바로 답하던 의주가 고민하며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러고는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과 닮은 눈매를 지그시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소화도 시킬 겸 해서 좀 걷다가 갈까? 어제 보니까 저 안쪽에 숲길은 사람도 별로 없더라.”

“그럴까, 그럼.”

“그러자. 간만에 멀리까지 왔는데 그냥 가면 아쉽잖아.”

의주가 조금 더 확고한 어투로 권할 때는 재광의 고개가 간단히 위아래로 흔들렸다.

환한 미소를 지은 의주는 그제야 다시 식사를 재개했다. 어차피 이래도 네, 저래도 네 하는 재광인 걸 알면서 흔쾌한 답에 이리도 기분이 좋을 일인가― 새삼스러워하면서.

하지만 다르게 생각하면 그래서 더 들떴는지도 몰랐다. 무얼 하든 따라주고 좋아해 주는 사람을 만나는 일이 결코 쉽지는 않을 테니까.

그렇게 여기면 꼭 세상에 둘도 없는 행운아가 된 느낌이었다.

후루룩, 끊기지 않고 의주의 입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라면 소리가 유독 경쾌하게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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