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5화 〉최종장
자가암시가가능하다는 것을 알게된 후로 몇 번이고 마음 먹고 포기하길 반복했던 암시가 있었었다.
이러한 사태에 대비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함과 동시에 내 인생에서도 중요한 터닝포인트가 될 수도 있는 암시였었는데, 그만큼 위험부담이 이제껏 걸었던 자가암시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았기에 시도는 하지 않았었다.
그리고 루키아의 공격을 예상은 했지만 확증은 없었기에 선뜻 대비책으로 사용하기에도 그랬었고.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일어날지도 모를 일이었던 그 일은 결국 일어났고 상대의 선전포고로 시작된 전쟁의 승기를 잡기 위해선 결국 나도 위험을 무릅쓰고 전진해야만 됐다.
방어만해서는 절대 이길 수 없으니까.
고로, 영화에서도 몇 번 소재로 사용된 그 일을 모티브로 삼아 내게 새로운 자가암시를 걸기로 했다.
전능한 최면이란 능력을 넘어 `나` 자체를 전능하게만들어줄극강의 암시를.
이름하여 [리미트리스]
뭐.. 이름을 거창하게 다는게 유치할 수도 있지만 그만큼 내겐 일생일대의 일이기에 각오를 다지는 선에서 이름을 달아둔 것이었다.
조금 더 유치뽕짝하게 이름을 단다면 [ 각성 : 리미트리스 ]랄까.
여하튼 헐리우드 영화에서도 자주 사용된 소재로 뇌의 사용량을 극한으로 끌어올리는 것이 이 암시의 맹점이었다.
물론 그간 자료를 조사해본 결과, 아인슈타인이 뇌의 15프로를 사용하고 일반인은 보통 10프로 이하를 사용한다는 항간의 말은 뇌피셜인 것으로 일단락되고 있었었다.
최근 연구결과를 본다면 뇌의 각 담당영역이 섹터를 나누어 때에 맞춰 활성화가 된다는 건데, 이것도 아직까진 현 기술력으로 파악해낼 수 있는 `추측`일 뿐.
즉, 미지의 뇌란 세계는 아직 정확히 파악된 것은 없으며 시대에 따라 뇌의 사용량에 대한 정의가 달라지고 있을 뿐이었다.
한가지 정확한 정보라면 대뇌피질이 두꺼울수록 시냅스가 많아지고 외부에서 들어오는 정보를 더 많이, 더 빠르게 처리하게 된다는 것이다.
즉, 외부자극에 의해 대뇌피질이 두꺼워지면 정보처리효율이 높아지고 유입되는 정보량이 계속 증가하면 고용량 시냅시스 네트워크가 형성되어 지능이 높아지고 두뇌의 영역들이 더욱 넓어진다는 것이다.
그것은 곧, 지능이란 것을 후천적요인으로 발달시킬 수 있다는 것. 그렇기에 난 미지의 영역인 뇌라는 곳을 후천적요인으로발달시켜 지능을 극대화시킬 계획이다.
그것도 일반적인 요인이 아닌, 최면암시라는 극강의 후천적요인으로 말이다.
물론 위험부담이 상당히 크다. 영화에서야 알약을 먹거나 약물을 투여받아 기적적으로 특수능력을 얻는다지만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은 현실.
뇌의 사용량 즉, 지능을 극한으로 증가시켰을 때에 어떠한 반응이 나올지 모른다.
과부하로 미쳐버릴 수도 있고, 아니면 허무하게 죽어버릴 수도 있고.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공격책에서 이것말고는 답이 없었다. 상대는 나보다 고차원적인 존재인 `서큐버스`. 그들을 당해내기 위해선 나도 고차원적인 존재가 되는 수밖에 없었고, 그 길이 모 아니면 도라는 미친 도박성의 길일지라도 나는 발걸음을 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아니고선 도저히 승산이 없었다. 독기를 품은 루키아는 자신들의 규율을 어겨서라도 기필코 나를 죽이려들 테니까.
어차피 죽을목숨이라면 도박 한번 해보는 것도 괜찮지 않겠는가.
그렇기에난 지금 핑거스냅을 튕겼고, 녹음해둔 파일내용은 내게 암시를 각인한다.
최후가 될 지도 모를 세뇌암시를.
물론 아무리 도박이라해도 원금손실을 최소화시켜두는 방책은 잊지 않았다.
ㅡ이설우, 당신의 뇌는 버틸 수 있는 한계치까지 대뇌피질을 두껍게 만들고 지능을 발달시켜 사용한계를 극도로 증가시킵니다.
이 암시가 어떤 향방을 가져올지 루키아조차 모를 것이다. 어쩌면 신이란 존재조차도.
* * * * * * *
[ 각성 : 리미트리스 ]
어디 RPG게임에 잘 어울릴 법한 이름을 붙인 나의 공격책이자 내게 특수한 무언가를 선사해줄 세뇌암시는 끝이 났고, 난 깨어났다.
처음엔 어떻게 된 건지 감조차 잡지 못했다. 그저 머리가 어지러웠을 뿐.
하지만 점차 머리가 어지럽다는 느낌은 마치 두뇌가 두개골 속에서 빠르게 회전하고 있는 듯한 느낌으로 증폭되어갔고, 그 회전은 다면체의 입체적인 수천갈래로 갈라지며 뇌 속 뉴런과해마, 신경세포들이 뇌간을 타고 광속을 뛰어넘는 속도로 도는 것이 느껴졌다.
기이한 느낌이었다.
로봇처럼 뇌가 움직이는 것이 느껴진달까. 그 뇌간의 흐름은 루멘 단위급 이상, 인간이 표현할 수 있는 속도범위를 넘어서 더욱 빨라지기 시작했고, 이내 세상이 돌아가는 듯한 어지러움과 함께 난 허무하게 정신을 잃고 말았다.
* *
"으음…"
얼마나 정신을 잃었던 걸까. 다시 깨어난 것은 나를 걱정한 피앙새 지나와 내과의에 의해서였다.
화장실에서 내가 나오지 않는 것을 걱정한 지나가 내과의를 불러온 것인데 그 호출에 호텔에 있는 육노예들이 모두 모여들었다.
다급한 내과의의 진찰과 육노예들의 호들갑에 삽시간에 장터마냥 어수선해졌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너무나도 차분했다.
뭔가 감흥이 없다거나 모든 감각이 반응에 둔해진 것 같달까.
무미건조하게 앉아 내과의의 진찰에 응했고, 그녀는 놀란 눈빛으로 나를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어, 없는데요?"
그녀의 당혹스런 물음이 무엇인지 알기에 웃옷을 내린 후 편안히 일어섰다.
아니, 정확힌 몸이 생각에 맞춰 스스로 움직인 느낌이었다.
팔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는데도 내 몸은 바로 섰으니까.
"주, 주인님? 괜찮으세요? 아니 상처가 어떻게 없어졌…"
내과의가 믿을 수 없다는듯 날 쳐다보았다. 불과 2시간만에 칼에 찔린 자국이 말끔히사라졌기에 마치 귀신을 보는 듯도한 눈빛이었다. 그리고 술렁이는 육노예들.
"주인님 이상하지 않아…?"
"그로게.. 갑자기 분위기가 바뀐 거 같아."
"어떻게 칼에 찔린 상처가 없지?"
"나두 피 흘리는 거 봤는데…?"
뇌가 각성해서 그런 것일까, 모든게 당연한듯 무덤덤했다. 감각세포가 무뎌진 듯한 느낌이랄까. 도박적이었던 각성의 성공에도 쾌재나 기쁨 따위의 감정은 느껴지지 않았다. 득도하면 이런 기분일까 싶을 정도로 모든 것을 달관한 듯한 평온함만 들 뿐이었다.
여하튼 그렇게 난 각성 리미트리스라는 유치찬란한 이름을 붙인 세뇌암시에 성공했고, 간혹 생기는 빈혈과도 같은 증상도 차차 옅어져갔다.
걱정하고 긴장하고 불안해했던 지난 날이 우습게 느껴질 정도로 당연하다는듯 두뇌 각성에 성공한 것이다.
내일이면 드디어 정기구슬 회수의 날.
그리고 전쟁의 끝이 시작될 날이기도 했다.
짧은 시간 내에 알아낸 것은 공기의 파동을 이용해 사물을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이 생겨났고 더불어 상대의 눈을 쳐다보면 과거의 일들과 생각을 읽어낼 수 있는 능력, 그리고 상대의 신체를 조종하는 능력 등등, 나열하기도 힘든 능력들이 내게 생겨났다.
어찌보면 이제는 최면이란 능력이 가소로울 정도로.
대망의 D-DAY.
호텔의 모든 육노예들을 불러모은 난 그들에게 잠시간의 이별에 대해 말해주었다.
어떻게 될 지 아직 가늠할 수 없었다. 각성된 나의 뇌도미지의 세계까지는 들여다볼 수 없었으니까.
그렇기에 선미의 아버지에게 혹여 내가 돌아오지 않을 때를 대비해 그간 축척해놓은 3년간 호텔 운영이 가능한 현금을 건네주고 만약 자금이 다 떨어지면 호텔을 처분하고 그 돈을 육노예들에게 고루 배분해주라 명했다.
물론 돈이란 하찮은 물질을 직접 만들 수도 있을 것 같았지만 3년이란 시간동안 돌아오지 않는다는 의미는 나의 죽음을 뜻하는 것이기에딱히 그러지는 않았다.
만약 이세계에서 죽음을 맞이한다면 이 호텔과 나의 육노예들은 존재의 이유와 의미가 없어지니 말이다. 다시금 원래의 일상으로 돌아가게될 뿐.
마치 전쟁에 나가는 가족을 떠나보내듯 눈물바다가 되어버린 호텔.
지나와 선아, 선미, 연주, 벨라 등이 내게 어디 가는 거냐며 눈물로 물었지만 모든 것은 갔다오면 얘기해주겠다며 일축했고, VVIP룸의 내측에서 문을 걸어잠근 후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도록 문과 걸쇠의 분자구조를 변형시켜 완전히 밀폐시켰다.
그 누구도 들어오지 못하도록 말이다.
그리고, 곧장 잠에 들었다.
* * *
이세계로 넘어오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정기구슬을 회수하러 온 서큐버스를 이용해 쉽게 넘어왔으니 말이다. 다행히 지구와 같은 환경이었다. 산소농도는 조금 옅은 듯했는데 체력에 딱히 문제될 것은 없었다.
자신을 피오사라고 소개한 서큐버스의 안내에 따라 하층서큐버스가 지내는 성 외곽의 변두리 지역을 지났고, 드디어 성문 앞에 도달했다.
굳게 닫힌 성문의 좌측하단 편에 있는 쪽문. 그곳만이 성으로 들어갈 수 있는 출입구라 했고, 경비를 맡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서큐버스의 육체를 공기파동으로 속박시킨다음 최면을 걸어 무사통과했다.
문제는 지금부터.
성내에 활보하는 서큐버스들에게 발각되면 곧장 루키아의 귀에 들어갈 것이고, 제 아무리 각성두뇌라 하더라도 준비도 하지 못하고 그녀와 결전을 벌이는 것은 위험했기에 정체를 숨길 필요가 있었다.
귀찮은 일은 질색이기도 했고.
그렇기에 낯선 이세계에 대한 정보와 지구인이라면 누구나 동경하는 이곳을 소소하게 즐기며 밤을 기다렸고, 은밀히 첨탑으로 향했다.
"여깁니다. 이곳에 갇혀계세요."
첨탑의 입구. 1층의 작은 문 앞에 썩 잘어울리는 삼지창을 든 서큐버스 두 명이 경비를 서고 있었다. 더 이상 피오사의 도움은 필요 없었기에 그녀를 보내고 곧장 서큐버스 둘의 신체를속박해 최면으로 노예로 만들었다.
"문 열어."
"네."
ㅡ끼익.
철제 대와 나무로 이뤄진 문이 열렸고, 그 안엔 피오사의 말대로 루시아가 있었다. 슬픔에 잠긴 눈으로 창가에 걸터앉아 달빛을 바라보던 그녀가 나를 쳐다보았고, 곧 그녀의 적적한 얼굴은 새파랗게 질리고 말았다.
그리고 나의 얼굴엔 재회의기쁜 미소가 피어 올랐다.
"오랜만이군, 루시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