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5화 〉김지나와의 썸씽
* * *
"흐암~"
"어제 잠 못 잤어? 학교에서도 계속 하품하던뎅."
임신여부확인과 과속배아성장확인 이후 우리 육노예 1호 2호는 학교를 자퇴시키고 호텔매입 전까지 모두 벨라누나의 펜트하우스에 기거하도록 만들어두었었다. 어차피 우리 육노예들의 인생은 이제부터 내가 책임질 것이기에 학교따위는 거추장스러울 뿐이었다.
뭐, 내게도 학교는 부질없는 인생의 허비일 수도 있지만 아직 학교에 남은 최애나와 김지나에 등교의 이유는 충분했다.
아, 육노예 3호 유부담임 김연주도 있었고.
오늘 양호실에서 최애나를 조교해볼까 싶었었지만 결혼식 준비로 연차를 내버려 애석하게도 다소 무료한 시간을 보내야했다. 그렇게 하교시간이 되었고, 나의 피앙새 김지나와 함께 인백스테이크하우스로 출근 중이었다.
"뭐.. 잠을 못 잤긴 했지."
"그래? 흠, 박카스 하나 사줄까?"
순수하게 나를 걱정하는 그녀가 귀여워 똥머리를 일부러 헝클어뜨리게끔 격하게 쓰다듬었고, 지나가 투정 부리며 한걸음 도망갔다.
"오늘은 어쩐 일로 똥머리로 묶었대?"
"아잇! 머리 엉망되잖아…! 바부야!"
미간을 찌푸리며 앙탈부리는 모습마저 사랑스러운 그녀에 피식, 웃고 말았다. 이 무슨 호사인가, 저런 귀엽고 유니크한 미모의 동급생을 순애조교하고 있다니.
"...너무 귀엽잖아."
"또, 똥머리..? 귀여워? 어떨까 싶어서 한번 묶어 봤는데.. 다행이네 히.."
나도 모르게 불쑥 튀어나온 본심에 지나가 머리를 정리해 다시 똥머리로 묶으며 얼굴을 붉히곤 시선을 피했다. 그리곤 다시 약간의 볼멘소리를 섞어 중얼거린다.
"아, 아니. 머, 멍청한 소리하지말구.. 어서 가자고… 늦겠네."
"늦는다고? 아직 한 시간이나 남았는데~"
"아무튼 늦어!"
발을 한번 땅에 구름으로써 마더테레사급으로 선량한 그녀가 낼 수 있는 최대한의 분노를 표출하고는 버스정류장으로 걸어가버린다.
"...쳇. 너무 귀엽다니까."
이제껏 길들인 여성들과는 차원이 다른 귀여움에 심장이 녹아내릴 것만 같았다.
*
"안녕하세요~"
늘 그랬듯 밝게 인사하며 매장문을 열고 들어가는 지나. 그런 그녀의 뒤를 따라 심드렁한 표정으로 고개만 까닥여주었다.
카운터엔 당연히 카운터지킴이 이지은이 서있었다.
"어, 어서 와."
이지은이 나를 발견하고는 급히 시선을 피하며 말을 더듬었다. 하지만 난 볼 수 있었다. 붉어진 얼굴은 조건반사적으로 `한남`인 내게 흥분하고 있다는 것을. 그토록 갈망하던 대물을 만났으니 안달나는게 당연하겠지, 큭큭.
"네~ `부점장님`~"
시선을 피하느라 흘러내린 단발머리칼을 조신하게 귀 뒤로 넘기는 그녀를 골려주기 위해 암시단어를 강조해 내뱉었고, 이지은은 급히 카운터를 짚으며 밑입술을 깨물어야했다.
"흐읍..♡"
이미 보짓물이 한강일 터다.
홀을 지나쳐 탈의실로 들어선 난 느긋하게 유니폼으로 환복한 후, 다시 홀로 나왔다. 하교시간과 저녁시간이 엇비슷했기에 매장은 손님들로 붐비고 있었다.
"러브룸 2번 제가 갈게요~"
나보다 훨씬 빠르게 환복한 지나는 발랄한 걸음걸이로 제 담당구역인 러브룸으로 사라졌다.
점장의 마수에서 벗어났기에 알바조차 상당히 즐거운 듯보였다.
"어이! 여기 사장 나오라그래!"
그런데 그때, 별안간 카운터 쪽에서 고성방가가 튀어나와 매장을 시끄럽게 만들었다.
'..진상인가.'
인백스테이크하우스는 고급 패밀리 레스토랑을 표방하고 있지만, 저렴한 주류도 함께 판매하고 있었었다. 물론 술집이 아니다보니 주류판매량은 그리 높진 않았었는데 지나 말로는 이따금씩 술에 취한 진상이 나타난다고 했었었다.
"씨발 거 할인 좀 해달라면 해줄 것이지! 아니 이거 봐 그리고 홈페이지에 적혀있잖아 이 미친년아!"
홈페이지에 적힌 할인내용이 적용되지않자 잔뜩 화가난 듯했는데, 카운터의 이지은이 미간을 찌푸린 채 한숨을 내쉬는 것으로보아 놈이 착각한 듯했다.
"아빠 그냥 가자고.."
"아이 참! 당신 쪽팔리게 왜이래!"
"거씨발 가만있어봐! 여기 사장 나오라그래!!"
배 째라는 식으로 막무가내 소동을 피우는 취객. 탐욕과 우둔함으로 찌든 살집은 여성이 감당하기엔 버거워보였다.
하지만 딱히 나설 생각은 없었다. 이지은은 진상짓을 당해 마땅한 년이었으니까.
"하.. 제가 부점장이구요. 점장은 지금 못 옵니다. 그리고 거듭얘기드렸듯이 할인기간 만료라…"
"아이 썅년이말 드럽게 많네! 여긴 젖통도 없는 꼬꼬마새끼도 직원으로 채용하고 그러나봐? 보잘 것도 없는 절벽년이 어디서 눈을 부라려! 젖통이나 키우고 와라 빨 것도 없겠는데!? 푸하하학!"
원래 취하면 말의 일관성이 없어지고 의식의 흐름대로 내뱉는 법이다. 별안간 인격모독의 성희롱으로 이지은을 조롱한 놈이 배꼽을 잡고 웃어댄다.
그것도 제 딸이 뒤에 있는데도 말이다. 가관이 따로 없었다.
'쯧쯧..저런 인간들 때문에 없던 남성혐오도 생기는 거겠지.'
수많은 이목이 쏠렸었기에 자신의 콤플렉스이자 치부를 성희롱 당한 이지은이 주변 눈치를 살피다 질끈 눈을 감으며 고개를 떨궜다.
극도의 수치심에 몸이 예사롭지 않게 떨리기 시작했고, 울분을 참느라 한껏 깨문 어금니는 턱살을 비집고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쯧.. 뽕이라도 좀 넣고 다니던지.'
그 모습이 애처로워보이긴했다만 역시나 걸음은 움직이지 않았다.
어차피 그녀는 지나를 괴롭히고 알바들을 점장에게 상납한 파렴치한 년이다.
'감당해야할 짓을 당하는 것 뿐이지 뭐.'
그렇게 난 그냥 걸음을 돌려 담당구역의 빈 테이블이나 치우려했다. 하지만 뒤돌린 걸음은 한 발자국도 못 떼고 멈춰야했다.
잔뜩 성이난 표정으로 입술을 앙다물고는 호기롭게 어디론가로 향하는 앙증맞은 우리 지나에 의해 말이다.
ㅡ쿵쿵쿵!
나뭇바닥을 쿵쿵 찧으며 아주 대차게도 걸어가는 그녀가 나를 지나치려할 때 쯤, 그녀의 셔츠 목깃을 가볍게 잡아 세웠다.
"....잠깐, 우리 지나... 어디 가니?"
"저건 아니잖아…! 아무리 서비스직이라도 사람은 인격이 있고 인격을 짓밟는 건 용납할 수 없다구!"
"그래서 어쩌려고?"
"저건 뭐라고 해야지! 신체모욕은 엄연히 범죄라고!"
"…저 취한 뚱뚱이감당할 수 있겠니?"
"흥! 범죄자는 범죄자일 뿐이야!"
그녀가 범죄, 범죄자 언급할 때마다 왠지 속이 뜨끔했지만 힘으로 밀고 나가려는 그녀의 허리를 가볍게 잡아들어 다시 러브룸 앞에다택배를 배달하듯 갖다놓았다.
"이, 이거 놔아~!"
"어허. 그리고 어차피 부점장은 너 괴롭히기만 했잖아? 근데도 도와주고 싶어?"
"…밉기는 하지만 같은 여자로써 저런 모욕은 참을 수가 없다궁!"
...정의감 하나는 아주 투철한 피앙새다. 이제껏 길들인 여성들과는 확실히 차별화된 정의심과 당돌함에 그녀의 똥머리를 다시금 잡아 헝클었다.
"아앗! 하, 하지마아…! 손님들 보시잖아…!"
"여기서 다시 똥머리나 묶고있어. 내가 갔다올 테니까."
"으응?"
급하게 머리를 다시 묶으며 의뭉스레 나를 올려다보는 그녀에 싱긋 웃어주곤 걸음을 돌렸다. 절대 이지은을 도와주기 위해 나서는게 아니다.
그저 저 폭유꼬꼬마의 안위를 지켜주기 위해 나서는 것일 뿐.
ㅡ저벅저벅.
내가 걸음을 옮기자 주변 알바생들도 저마다 응원의 수근거림을 보내왔다.
"대박. 설우씨가 나서나본데?"
"내가 만약 술 취했을 때 화난 설우 만났으면 그랜절 올렸다."
벌크업 이전의 찌질했던 나였다면 절대 나서지 못했을 것이다. 더욱이 이렇게 이목이 쏠린 곳에서는 최면도 사용하기 힘들었을 테니까.
하지만 어제도 벨라누나와의 쾌락운동으로 벌크업을 했었기에 고개를 까닥해 목관절을 풀어주며 기세등등하게 놈에게 다가갔다.
"어이."
그리고 동석이형으로 빙의해 인상을 험악하게 굳히며 놈을 불렀고, 놈은 아직까지도 인사불성으로 이지은에게 성희롱을 해대고 있었다. 제 딸이 뒤에 있는지는 새까맣게 잊은 모양이다.
"아스팔트에 붙은 껌딱지가 더 볼륨감 있겠다 야이 썅년아~ 젖꼭지는 있냐? 크핡핡!"
"어이."
"뭐야 이 씨.."
나를 쳐다본 놈이 헬렐레팔렐레 자유분방하던 주둥이를 싹 닫았다. 짜리몽땅한 키에 뱃살만 나온 자신의 볼품 없는 몸에 비해 키도 크고 잔뜩 벌크업된 나의 상체는 자신의 두 배는 되었기에 딸꾹! 하며 딸꾹질을 하곤 주춤거리는 놈.
어차피 알바 따위는 지나의 조교 및 추억쌓기를 위해 다니고 있던 것이었었다.
고로, 내게 거칠 게 없다는 것.
"씨? 씨 뭐? 할 말이 뭔데."
"아.. 그, 그쪽이 이설우 씨 되십니까?"
내 명찰을 확인한 놈이 범 앞의 하룻강아지마냥 꼬리를 내리고 몸을 움츠린다. 마음 같아선 놈의 늘어진 뱃살을 잡아뜯어버리고 싶었지만 지나가 보고 있었기에 점잖은 품위는 유지하기로 했다.
"더 볼 일 없으면 꺼져. 씹탱아."
"예, 예!"
다행히 무력진압 없이 놈은 시시하게 도망갔다. 소란스런 장내가 어수선하게 정리되어갔고, 쏠렸던 이목도 분산되어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지나를 쳐다보자 환하게 웃으며 팔짝 뛰고는 따봉을 날려주었다. 그런 그녀가 귀여워 피식 웃었고, 고개를 돌려 이지은을 쳐다보았다.
"…"
군중 앞에서 제 콤플렉스를 성희롱 당했기에 그녀의 어깨는 울분과 수치심에 크게 떨리고 있었다. 처량하게 내려앉은 갈색의 단발머리칼도 어깨의 떨림에 맞춰 바람에 나풀거리는 커튼마냥 흔들려댔고,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듯 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 낮게 흐느끼고 있었다.
딱히 측은지심은 들지 않았다.
내가 막지 않았다면 지나 역시 그들의 성노리개가 되었었을 테니까.
그래도 뭐, 다른 것도 아니고 치부의 성희롱으로 인해 떨리는 여성의 흐느낌은 조금 안타깝긴했다.
'절벽으로 태어나고 싶어서 그런 것도 아닌데.'
기어이 카운터에 비치된 각티슈에서 티슈 한장을 뽑아든 그녀가 떨리는 목소리로 내게 조용히 얘기했다.
"미안한데.. 설우씨 여기 좀 봐줘."
봐준다는 대답도 하지 않았는데 티슈를 든 채 정문으로 나가버리는 이지은.
잠시 멍하니 있자 지나가 곁에 다가와 걱정스레 말했다.
"…어떡해."
"착한 거야. 바보인 거야."
"응?"
"너말이야 너."
지나가 익살스레 입술을 오므리고는 고개를 꺾어 나를 쳐다보았다.
"나? 왱?"
"그리 갈굼당했으면서 부점장이 걱정돼?"
나의 타박스런 말에 입술을 삐죽 내밀고는 살짝 주눅들어 얘기하는 지나.
"그거야 뭐.. 밉기는 해도 안타까운 건 사실이니까."
"위로하기엔 마음이 너무 넓.."
말끝을 흐리며 그녀의 압도적인 젖가슴을 훑어보았다. 키 크고 하반신 육덕에 늘씬한 몸의 이지은에게 가야할 젖가슴이 지나에게 붙은 것 같달까.
확실히 우리 지나의 작은 키에 앳되고 소녀스런 이
미지와는 매칭이 힘든 폭유였다.
'뭐 그것 나름대로 꼴림 포인트긴하지만.'
잠시 상념에 잠기느라 시선을 거두지 못했고, 자신의 슴부위를 빤히 쳐다보는 나에 지나가 등짝에 스매싱을 날리며 말했다.
ㅡ짝!
"어, 어딜 보는 거야아…! 이 뵨태야…!"
"아.. 가슴 봤는.. 아니, 미안."
작은 고추가 맵다더니, 작은 손이 제법 매운 그녀다. 물론 고통의 둔화 암시각인으로 주사바늘에 쏘인듯 따끔한 정도지만 벨라누나에게 맞을 때도 모기에게 쏘인듯 미미한 통증이었기에확실히 매운 손맛임이 틀림없었다.
'쪼꼬만한 게 손이 제법 맵네.'
찰진 타격에 놀란 지나가 헬창근육으로 등어리에 손이 닿지 않는나를 대신해 급하게 등어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아, 미, 미안.. 너무 세게 때렸지?"
"괜찮아. 내가 나가볼 테니까 카운터 좀 봐줘."
"내가 가보는게 낫지 않겠어?"
다시 한 번 그녀의 젖가슴을 노골적으로 쳐다보았다. 빈유에 상처 받은 여성을 거유가 위로한다는 것은 우롱이자 더 큰 치욕만 맛보여줄 뿐일 터다.
'설마 빈유에 대한 자격지심 탓에 지나를 괴롭혔던 건가?
뭐, 이지은에게 줄 것이 우롱과 치욕이란 점은 같긴 했지만 어쨌든 그녀에게 볼 일이 있었기에 적당한 이윳거리를 잡아 지나를 막았다.
"그 가슴으로?"
"뭐, 뭐라구..?!"
"부자는 가난을 이해하지 못하는 법이지. 내가 갔다올게. 걱정마."
"부, 부자? 아…"
발끈했다가 의중을 파악한 지나가 제 미사일 젖가슴을 한번 내려다보곤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래.. 그게 낫겠당. 카운터 보고 있을 테니까 부점장님 위로 좀 잘해줘."
"큭큭 걱정마."
애석하게도 자신있는 건 위로가 아닌 우롱 뿐이었다.
*